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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린턴과 불륜 담은 ‘르윈스키 드레스’ 박물관으로

    클린턴과 불륜 담은 ‘르윈스키 드레스’ 박물관으로

    무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클린턴의 악몽' 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 에로틱 해리티지 박물관 측은 과거 모니카 르윈스키가 입었던 드레스를 100만 달러(약 11억원)에 제공받아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거대한 액수의 값어치가 매겨진 이 드레스는 '추악한 역사'를 담고있다. 바로 1990년대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41)의 소위 '부적절한 관계'의 '증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DNA가 담긴 이 파란색 드레스는 이제는 차기 백악관 주인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의 인기에 편승해 권력과 정치라는 주제로 당당히(?) 일반인들 앞에 전시될 전망이다. 적어도 클린턴家에게는 잊고싶은 기억이 여전히 이어지는 셈. 불과 22세 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스캔들의 주인공인 르윈스키는 사실 영국 런던경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그러나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가져온 ‘후폭풍’으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다. 르윈스키는 지난해 ‘포터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내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때때로 가명을 사용했으며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적도 있다” 면서 “스캔들 이후 10년 동안 변변한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과거의 스캔들이 다시 언론에 회자되는 것이 가장 불편한 사람은 역시나 대권 출마를 선언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르윈스키가 혹시나 '발목'이나 잡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지만 이와 맞물려 르윈스키의 행보도 커지고 있다. 특히 르윈스키는 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포브스 주최 ‘30세 이하 정상회의’에 참석해 10년 만에 공개 연설을 했다. 사이버 폭력을 주제로 한 연설에서 르윈스키는 “자신이 최초 ‘사이버 왕따’ 의 피해자” 라면서 “그 때의 일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프로야구] 장시환의 마법… kt 8전 9기 안방 첫 승

    [프로야구] 장시환의 마법… kt 8전 9기 안방 첫 승

    9년차 ‘노망주’(나이 먹은 유망주) 장시환(kt)이 팀의 홈 첫 승과 개인 통산 첫 승의 감격을 동시에 누렸다. kt는 22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BO리그 SK와의 경기에서 장시환의 호투와 박경수의 홈런 등에 힘입어 2-0으로 이겼다. 홈에서 치른 9번째 경기만에 값진 첫 승을 신고했고, 5연패 수렁에서 탈출하며 시즌 3승(16패)에 성공했다. 1회 김민혁의 빠른 발과 2회 박경수의 솔로 홈런으로 두 점을 얻은 kt는 선발 정대현의 불안한 투구로 살얼음판 리드를 걸었다. 그러나 4회 2사 만루에서 등판한 장시환이 김성현을 뜬공으로 잡고 불을 끈 데 이어 9회까지 5와3분의1이닝 무실점의 완벽한 피칭을 했다. 2007년 현대에 입단한 장시환은 계약금 1억 8000만원을 받은 유망주. 구속은 빨랐지만 제구력이 좋지 않았고 좀처럼 1군에서 자리잡지 못했다. 2013년 본명 장효훈에서 개명하며 심기일전했고, 지난해 11월 특별지명을 통해 kt로 둥지를 옮겼다. 스프링캠프에서 조범현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 개막 엔트리에 합류했다. 지난 12일 목동 넥센전에서 3과3분의1이닝 무실점으로 팀 사상 첫 세이브 투수가 되더니 이날은 홈 첫 승 투수로 이름을 새겼다. 광주에서는 롯데가 최준석의 만루포를 앞세워 KIA에 7-6으로 승리, 전날 패배를 설욕했다. 2회 강민호의 선제 솔로홈런으로 앞서간 롯데는 3회 2사 만루에서 최준석이 상대 선발 험버의 140㎞짜리 커터를 밀어쳐 우측 담장을 넘겼다. 2002년 데뷔한 최준석의 개인 통산 네 번째 만루홈런으로 공교롭게도 KIA를 상대로만 3개를 기록했다. 두산 시절인 2011년 4월 8일과 롯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지난해 6월 13일 각각 KIA 좌완 양현종을 상대로 그랜드슬램을 작성했다. 마산에서는 삼성이 NC를 6-2로 꺾고 5연승을 질주했다. 이승엽은 6회 시즌 4호, 통산 394호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김경문 NC 감독은 2회 상대 김상수의 홈런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고 번복되지 않자 강하게 항의, 결국 퇴장당했다. 지난 15일 김기태 KIA 감독에 이어 시즌 두 번째로 퇴장당한 사령탑이 됐다. 두산은 목동에서 넥센과 홈런 8방을 주고받는 공방전 끝에 12-9로 승리했다. 양의지(두산)와 김하성(넥센)이 나란히 ‘멀티 홈런’을 쳤으나 희비가 엇갈렸다. 잠실에서는 한화가 5-2로 LG를 꺾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비영리 ‘삼성꿈장학재단’ 이례적 세무조사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모태로 한 비영리재단인 ‘삼성꿈장학재단’을 국세청이 조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비영리 재단에 대한 세무조사는 이례적이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은 전날부터 40일 일정으로 삼성꿈장학재단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재단에 대한 세무조사는 2002년 7월 ‘삼성이건희장학재단’으로 첫발을 뗀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이 재단은 삼성이 2006년 대선자금 지원,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X파일 작성 등 논란에 휩싸인 뒤 비난 여론에 대한 대응으로 헌납한 삼성이건희장학재단 기금 4500억원과 추가로 조성된 3500억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기부금에는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인 고 이윤형씨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를 포함해 삼성SDS 등 계열사 비상장 주식이 포함됐다. 재단은 2006년 삼성고른기회 장학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뒤 2010년 삼성꿈장학재단으로 개명했다. 삼성그룹 측은 세무 조사와 관련, “삼성은 삼성꿈장학재단과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재단은 삼성SDS 지분 300만주(시가 8200억원) 등 1조 3500억원대의 삼성 계열 주식을 갖고 있다. 11명의 이사진 가운데 2명이 삼성 계열사 사장 출신이다. 10여명 규모인 재단의 사무총장은 삼성생명 자회사인 STS커뮤니케이션 우진중 전 경영지원실장이 맡고 있으며, 삼성생명 직원 2명이 파견 형식으로 근무 중이다. 비영리법인에 대한 조사는 상속·증여세에 대한 문제일 수 있어 삼성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번 조사는 재계에 대한 전방위적인 검찰 수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삼성에 대한 모종의 신호가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원더스의 후예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원더스의 후예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고양 원더스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하던 일 그만두게 하고 다시 야구에 끌어들였느냐’면서요. 한 가지를 간과한 게 있습니다. 그들이 원더스에서 야구를 못 했다면 평생 후회를 했을 거란 사실을요.”(영화 ‘파울볼’ 대사 중) 김성근 감독과 국내 첫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 ‘파울볼’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 개봉 첫날인 지난 2일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다인 200여개의 스크린을 확보했고, 9일까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2만 4905명이 관람해 이달 개봉한 영화 중 5위에 올랐다. ●해체된 고양원더스 출신 선수 33명 프로 진출 지난해 9월 11일 하송 단장이 “더는 야구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흐느끼는 말 한마디와 함께 해체된 원더스는 3년간 계속한 뜨거운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원더스의 후예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음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새로운 신화를 꿈꾸고 있다. 2011년 창단한 원더스는 이듬해부터 꾸준히 프로에 선수를 보냈다. 2012년 7월 LG에 입단한 이희성을 시작으로 총 33명이 프로 유니폼을 입었고, 현재 29명이 1군 벤치나 퓨처스(2군)리그, 육성군에서 뛰고 있다. 주전급으로 발돋움한 선수는 없지만, 끊어질 뻔한 야구 선수의 삶을 살며 하루하루 그라운드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희성은 안타깝게도 방출의 아픔을 겪었으나 프로 진출 ‘2호’ 내야수 김영관(LG)은 지난해까지 1군에서 총 21경기를 뛰었고, 올 시즌도 2군에서 가능성을 시험받고 있다. 9일까지 7경기에 나와 타율 .300(20타수 6안타)에 홈런 1개를 기록했고, 출루율은 .440에 달한다. 원더스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넥센 내야수 안태영을 꼽을 수 있다. 2012년 프로행에 성공한 안태영은 2013년 7월 27일 대구 삼성전에서 7번 지명타자로 출전해 1군 데뷔전을 치렀는데, 7회 선두타자로 나와 우측 담장을 훌쩍 넘는 장외 홈런을 터뜨렸다. 원더스 출신 선수 첫 홈런.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를 바라보던 안태영은 오른손을 번쩍 들며 무명으로 얼룩진 그간 설움을 씻었다. 지난해에도 홈런 한 개를 친 안태영은 2년간 1군 53경기에 출전, 타율 .299(97타수 29안타)의 녹록지 않은 방망이 실력을 과시했다. 올해는 2군에 머무르고 있으나 염경엽 감독으로부터 다시 기회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넥센 내야수 안태영, 2년간 1군 53경기 출전 2013년 5월 세 명의 동료와 함께 NC에 입단한 투수 김용성은 현재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김건국이라는 새 이름으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세울 건(建)’과 ‘판 국(局)’을 새 이름으로 골라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013년 2차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조범현 감독의 지명을 받아 kt로 둥지를 옮긴 김건국은 아직 1군에 서지 못했다. 원더스에 가기 전인 2007년 두산에서 딱 한 경기 등판한 게 그의 유일한 1군 경험이다. 김건국이 8년간 오르지 못한 1군 마운드에 다시 서는 날이 올지 주목된다. ‘파울볼’에서 김 감독 다음으로 자주 등장한 이는 외야수 설재훈이다. 광주 진흥고 3학년 때 “야구는 내 길이 아니다”며 유니폼을 벗었지만 군 입대 후 다시 야구와 짝사랑을 했다. 제대 후 일본 독립구단 해치에 입단했고, 원더스 창단 멤버가 됐다. 원더스 소속일 때도 한 차례 야구를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갔으나, 아버지한테 혼이 난 뒤 김 감독을 찾아가 무릎 꿇고 빌며 재입단했다. 함께한 동료들이 하나둘 프로팀의 부름을 받았지만 설재훈은 원더스가 해체될 때까지 둥지를 찾지 못했다. 김 감독이 “넌 어떻게 할 거야?”라며 진로를 묻자 “일본 독립구단을 알아보겠다”며 선수 생활 계속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11월 SK가 육성선수로 영입하면서 설재훈도 꿈에 그리던 프로의 꿈을 이뤘다. 2~3월 대만에서 열린 2군 스프링캠프에서는 야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등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나 아직 그가 가야 할 길은 더 남았다. 올 시즌 2군에서는 7경기에 나와 타율 .296(27타수 8안타)을 기록 중이다. ●한화 송주호, 김성근 감독 시즌 첫 승에 한 몫 송주호(한화)는 올 시즌 1군에서 뛰는 유일한 원더스 출신이다. 2013년 한화에 입단해 1군에서 45경기를 뛰었으나 1할대 타율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화 사령탑으로 새로 부임한 옛 스승 김 감독은 송주호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타석에 내세운 적은 많지 않았지만 대주자 등으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인연이란 것은 있나 보다. 지난달 29일 넥센전에서 김 감독이 시즌 첫 승이자 1323일 만의 승장이 됐을 때 결승 득점을 올린 이가 송주호였다. 3-3으로 맞선 8회 2사 1·2루에서 2루 주자 김태균과 교체돼 들어간 송주호는 정범모의 안타 때 홈까지 파고들어 역전에 성공했다. 원더스 최고령 최향남(44)은 돈키호테라는 별명이 꼭 들어맞는다. 1990년 연습생으로 해태에 입단해 10승 투수가 됐으나 메이저리그 꿈을 꾸며 두 차례 미국으로 건너갔다. 끝내 빅리그에 입성하지 못하자 일본 독립구단 도쿠시마에서 잠시 뛰었고, 지난해 김 감독의 부름으로 원더스에 갔다. 지난 3월에는 18살 어린 원더스 출신 황건주와 함께 오스트리아 세미 프로팀 ‘다이빙 덕스’에 입단했다. ●‘최고령’ 최향남, 오스트리아 세미 프로팀 입단 다이빙 덕스는 최근 홈페이지에 연습 경기 중인 선수들의 사진을 여럿 올렸는데, 마운드에서 힘차게 공을 뿌리는 최향남도 있다. 등번호 3번을 단 그는 경기 종료 후 활짝 웃는 모습으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최향남이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글러브를 벗지 않는 것은 이 순간의 기쁨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더스 후예들은 다시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더 행복했을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그렇게 구슬땀을 흘렸지만, 날마다 TV로 중계되는 KBO리그에서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2군에서 눈물겨운 빵을 먹고 마음 한편에는 언제 방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야구를 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원더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도 후예들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싸고 질긴 나일론 1963년 첫 생산… 한국 섬유역사 산증인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코오롱그룹] 싸고 질긴 나일론 1963년 첫 생산… 한국 섬유역사 산증인

    코오롱그룹의 역사는 대한민국 섬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4년 12월 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설립한 개명상사는 당시 생소한 나일론사를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왔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나일론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터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양말은 물론 의류까지 나일론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사업이 번창했다. 코오롱(KOLON) 이름도 코리아+나일론(Korea+Nylon)의 합성어다. 한국 기업 최초의 영어 사명으로 ‘KORLON’으로 표기하다 1968년 ‘KOLON’으로 변경됐다. 고 이원만 창업주와 고 이동찬 명예회장은 1957년 4월 12일 한국 최초의 나일론 제조회사인 한국나이롱주식회사(현 코오롱인더스트리㈜)를 설립했다. 스트레치 나일론 생산쯤은 우리 손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다는 각오로 설립한 회사다. 같은 해 11월 스트레치 나일론 공장 건립의 첫 삽을 떴고 이듬해인 1958년 10월 총건평 1500평의 공장을 준공했다. 싸고 질긴 합성섬유를 접한 소비자들은 말 그대로 열광했다. 그 덕분에 1963년에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한 일일 생산 2.5t 규모의 나일론원사제조 공장은 4년 만인 1967년 4배가 성장해 하루 10t의 나일론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도약했다. 초기 코오롱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1960년대 섬유제품의 수출은 주로 수입된 섬유를 가공해 수출하는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코오롱은 섬유산업을 수출산업으로 만들기 위해선 저렴한 가격에 원사를 확보하는 일이 필수라고 생각해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에 돌입했다. 결국 코오롱은 이를 기반으로 1973년 타이어코드 사업에도 진출했다. 등산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했던 1970년대, 코오롱상사는 코오롱스포츠 브랜드를 출시해 등산의류와 용품 등을 선보였다. 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 코오롱은 또 한번의 도전을 시작했다. 기존 섬유사업 외 필름, 비디오테이프, 메디컬사업 등 비섬유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1988년에는 정보기술(IT) 소재필름을, 1991년에는 냉동·냉장식품 포장에 사용되는 나일론 필름을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연산 1000만권 규모의 비디오테이프 공장을 준공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코오롱은 1993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머리카락 굵기의 1000~1만분의1에 불과한 초극세사를 이용하는 첨단 섬유소재 샤무드를 생산했다. 2002년에는 액정표시장치용 광학산 필름과 프리즘 필름을, 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강철보다 강한 섬유 헤라크론(아라미드) 양산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코오롱의 포트폴리오는 첨단부품과 소재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계열사 간 합병과 사업부문의 분할도 진행했다. 모기업인 ㈜코오롱을 중심으로 2007년 코오롱유화㈜의 합병, 2008년 원사사업부문 물적 분할, 지난해 8월 FnC코오롱㈜와의 합병법인을 출범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코오롱그룹은 또 2009년 12월 31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코오롱은 또 한번 변신 중이다. 화학섬유 제조와 건설, 무역에 주력하던 사업 영역을 하이테크 산업 및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바이오 신약과 웨어러블 기술이 대표적 사례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세계 최초 퇴행성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티슈진-C’를 국내에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며, 미국에서도 임상 3상을 준비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유기태양전지 제조 분야에 주력한다. 유기태양전지는 유기물 기반으로 제작된 태양전지로 기존 무기태양전지에 비해 가볍고 유연하며 형태 및 색상 구현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태양전지는 실외가 아닌 실내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의류, 포장지, 벽지, 소형 전자기기 등 사용 범위도 다양하다. 코오롱글로텍㈜은 국내 최초로 섬유에 전자회로를 인쇄해 전류를 흐르게 한 전자섬유를 상용화했다. 히텍스(HeaTex)란 이름의 섬유는 전류 및 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 전류가 흐를 수 없다고 인식됐던 섬유에 전류를 흐르게 함으로써 웨어러블 컴퓨터의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전기로 열을 내는 아웃도어 의류에 적용 중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13년 수소연료전지 차량의 핵심 부품인 연료전지용 수분제어장치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성과는 연구에 대한 투자가 바탕이 됐다. 코오롱은 미래신수종 산업 발굴과 인재 육성을 위해 2011년 8월 대전 카이스트(KAIST) 내에 ‘코오롱-KAIST 라이프스타일 이노베이션 센터’를 열었다. 아울러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약 2464억원을 투자해 그룹 차원의 연구·개발(R&D)센터인 ‘미래기술원’도 신규 건립할 계획이다. 2017년 8월 완공 예정인 이 시설은 향후 100년을 책임질 기업의 싱크탱크이기도 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OCI그룹] 국내 화학산업 개척… 글로벌 태양광업계 리더로 ‘우뚝’

    [재계 인맥 대해부(4부) 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OCI그룹] 국내 화학산업 개척… 글로벌 태양광업계 리더로 ‘우뚝’

    50여년 전통의 종합화학기업인 OCI그룹은 21세기 신재생에너지로 각광받는 태양광 전문 기업으로 유명하다. 태양광발전의 기본 소재는 태양광을 전기로 바꿔 주는 폴리실리콘인데 OCI그룹은 미국 헴록, 독일 바커와 함께 폴리실리콘 제조 ‘세계 3강’으로 꼽힐 만큼 글로벌 그린 에너지 메이커로서의 위상을 뽐내고 있다. OCI그룹은 자산 규모 12조원대로 2013년 기준 국내 재계 서열(공기업 제외) 23위에 올라 있다. OCI그룹의 창업자는 국내 재계 마지막 ‘개성 상인’으로 불리는 고 이회림 명예회장이다. 개성에서 송도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14세 때부터 도매상 손창선 상점에 취직해 송상(松商·개성을 중심으로 사업 활동을 하던 상인)의 길을 걸었다. 1951년 서울에서 국내 최초의 수출 업체인 개풍상사를 운영하면서 면사 등을 팔아 강원도 대한탄광(1955년) 등을 인수했다. 이렇게 번 돈으로 미국의 개발차관(AID)을 받아 1959년 OCI그룹의 모태인 동양화학을 설립했다. 동양화학은 국내 최초로 유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소다회를 제조하는 기초화학소재 업체로 첫발을 뗐다. 그러나 1968년 공장 준공 이후 일본과 미국의 소다회 제품이 범람해 적자와 재고가 쌓이면서 사업 초기부터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이 명예회장은 장남이자 OCI그룹을 승계한 이수영 회장을 회사에 불러들여 부자 경영을 시작했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유학 중이던 이 회장은 지금의 부사장 격인 전무이사 타이틀로 1970년 입사했다. 이후 1979년 사장으로, 1996년 회장으로 OCI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 회장 투입 이후 당시 박정희 정부의 도움과 경제개발 계획에 힘입어 동양화학은 위기를 극복했다. 이후 화이트카본을 생산하는 한불화학(1975년), 세제의 원료인 과산화수소 공장(1979년), 지금은 유니드로 개명한 한국카리화학(1980년), 실리카겔 공장(1988년), TDI 공장(1991년), 동우반도체약품(1991년) 등을 설립해 다양한 화학 분야로 진출하며 종합화학그룹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다. 업계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후유증으로 고전하던 시기인 2000년. 당시 예금보험공사에 담보로 잡혀 있던 제철화학과 제철유화를 인수하며 또 한번의 변신을 꾀했다. 제철화학은 포스코의 포항공장과 광양공장에서 배출되는 부산물인 콜타르를 정제해 피치 등 고부가가치 화학소재를 만들어내는 사업이다. 동양화학은 이듬해인 2001년 제철화학과 합병하면서 동양제철화학으로 거듭났다. OCI그룹에서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주요 기업이자 지주회사 격인 OCI는 당시 인수·합병을 계기로 1990년대 후반까지 3000억원대이던 매출이 2000년 기준 1조 6000억원대로 5배 이상 확대됐다. 이수영 회장은 2004년 3월부터 6년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맡으며 재계를 이끌었다. OCI그룹(당시 동양화학)은 2006년 태양광산업의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 진출을 본격 선언하면서 다시 한번 도약에 나섰다. OCI그룹 내 주력 회사인 OCI는 2008년 제1 폴리실리콘 공장(연산 5000t)의 상업 생산이 시작된 후 제2공장(1만t), 제3공장(1만t)을 잇따라 건설했다. 이후 이들 공장의 생산 설비 합리화로 2011년 말 폴리실리콘 생산 능력을 4만 2000t으로 확대하면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해 세계 3위권의 폴리실리콘 메이커로 우뚝 섰다. 동양화학은 2001년 동양제철화학에 이어 2009년 회사명을 지금의 OCI로 바꿨다. 시련도 이어졌다. 이수영 회장의 두 아들인 이우현 OCI 사장과 이우정 넥솔론 관리인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불공정 거래 혐의로 2011년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인 2012년부터 유가 하락 등으로 태양광 업계가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OCI는 적자 전환했다. 이 여파로 OCI 계열인 넥솔론은 201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1년 60만원대까지 치솟았던 OCI 주가는 2015년 3월 현재 10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OCI그룹은 폴리실리콘 사업에서 삼성정밀화학이 사실상 손을 떼고, 웅진이 국내에서 관련 사업을 거의 포기한 태양광에너지 업황 부진 속에서도 지난해 흑자 전환(연결 기준)에 성공했다. 폴리실리콘 시장은 호전되지 않아 OCI는 적자지만 석유석탄화학과 기초화학 분야에서의 안정적인 매출과 영업이익 창출로 태양광 분야 적자를 보전해 흑자를 냈다. OCI그룹은 올해를 기점으로 폴리실리콘뿐 아니라 태양광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도 투자하며 성장 동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OCI는 태양광과 ESS 완제품을 모두 생산하는 명실상부한 태양광 전문 업체로 거듭날 수 있다. OCI그룹 측은 “태양광 시장이 유럽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데다 이달 말 전북 군산 폴리실리콘 3공장 증설을 끝내면 OCI는 세계 폴리실리콘 수요량의 17%를 차지하는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서 “태양광 소재에서 발전 사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해 태양광 시장의 성장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라디오스타 강예원, 마법의 성 찍고 개명한 이유?

    라디오스타 강예원, 마법의 성 찍고 개명한 이유?

    라디오스타 강예원 강예원은 18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2’에서 활약들과 출연했다. 이날 강예원은 “사실 ‘라디오스타’를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상처 받는 것도 안 즐겨서 제가 볼 땐 못 보겠더라. 그리고 ‘라디오스타’에서 저를 완전히 보내버리셨다”고 토로했다. 강예원은 “예전에 찍은 영화가 검색 순위가 올라오더라. 김국진 선배님이 예전 ‘마법의 성’에 출연 제의를 받으셨다고 얘기 하셨다. 근데 거기 나온 여자 주인공이 그거 찍고 없어져 버렸다고 하셨다. 저 되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라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이에 MC 김구라는 “없어져 버린 게 아니라 영화 쪽에서 사라지셨다는 표현을 쓴 거다”며 해명했지만, 이를 듣던 규현은 “없어졌다와 사라졌다가 많이 다른가?”라며 의문을 제기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강예원은 “’마법의 성’ 이후 이름을 바꿨다. 바뀐 이름 알리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본명은 김지은”이라고 덧붙였다.연예팀 chkim@seoul.co.kr
  • [사설] 친일파를 ‘이달의 스승’으로 뽑은 정신 나간 교육부

    교육부가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적을 한 인물을 ‘이달의 스승’이라고 선정하는 정신 나간 짓을 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에 따르면 교육부가 ‘이달(3월)의 스승’으로 뽑은 최규동(1882~1950)씨는 경성중동학교 교장이던 1942년 6월 일제 관변지인 ‘문교의 조선’에 ‘죽음으로써 군은(君恩·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최씨는 “반도 2400만 민중도 마침내 병역에 복무하는 영예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 광영에 감읍하여 한 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 드리는 결의를 새로이 해야 한다”면서 “군무에 복무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황국신민 교육의 최후의 마무리로 완성된다”고 썼다. 일왕의 은혜를 갚기 위해 죽음으로 보답하자고 선동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표적인 친일 행각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최씨를 ‘민족의 사표, 조선의 페스탈로치’라고 선전했다. 전국 초·중·고교 1만 2000여곳에 최씨에 대한 교육 자료와 포스터를 나눠 주는 한심한 작태를 벌였다. 정부세종청사에도 최씨의 홍보 입간판을 내걸었다. 매일신보에 따르면 최씨는 조선신궁(신사)의 중일전쟁 기원제 발기인, 임전보국단 평의원, 징병제 실시 축하연에도 참가한 것으로 나와 있다. 교육부는 검증을 했지만 최씨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검증을 처음부터 엉터리로 했거나 아니면 교육부가 무능하다는 얘기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이달의 스승’ 사업은 지난해 8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한다며 귀감이 될 만한 교육계 인사를 매달 1명씩 선정하기로 한 것이다. 최규동씨는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첫 번째 인물이다. 교육부는 그를 민족운동가로 소개하면서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자제를 교육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우리말 수업을 고수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으니 제 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친일 행각이 드러나자 교육부는 뒤늦게 이달부터 초·중·고교에서 시작한 최씨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중단하고, ‘이달의 스승’ 12명을 전부 재검증해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후약방문 격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역사를 오독하게 한 교육부의 잘못이 크다. 사달이 일어난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잘못이 드러난 사람들은 추천위원회에서 영구 제명하는 등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알고 보니 친일 행적?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알고 보니 친일 행적?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알고 보니 친일 행적? ‘충격’ ‘이달의 스승’‘백농 최규동’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최규동(1882∼1950) 전 서울대 총장의 친일 행적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모범적 스승’으로 가르칠 인물을 선정하면서 검증 작업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교육부는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최규동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기고한 (친일 논란) 글이 발견됐다”면서 “최 선생을 포함해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에 대해 전문기관에 의뢰해 철저히 재검증하도록 하겠다”고 8일 밝혔다. 이어 교육부는 “당시 심사과정에서 최 선생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했다. 창씨개명 거부, 건국훈장 추서 등 대한민국 초기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역사정의실천연대의 분석 결과, 최 전 총장은 일제 관변 잡지인 ‘문교의 조선’ 1942년 6월호에 실명으로 “죽음으로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는 제목의 글을 일본어로 게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부는 이달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한 최 전 총장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달 16일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고자 최 전 총장과 도산 안창호 선생, 고당 조만식 선생 등을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에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에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에 ‘충격’ ‘이달의 스승’‘백농 최규동’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최규동(1882∼1950) 전 서울대 총장의 친일 행적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모범적 스승’으로 가르칠 인물을 선정하면서 검증 작업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교육부는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최규동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기고한 (친일 논란) 글이 발견됐다”면서 “최 선생을 포함해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에 대해 전문기관에 의뢰해 철저히 재검증하도록 하겠다”고 8일 밝혔다. 이어 교육부는 “당시 심사과정에서 최 선생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했다. 창씨개명 거부, 건국훈장 추서 등 대한민국 초기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역사정의실천연대의 분석 결과, 최 전 총장은 일제 관변 잡지인 ‘문교의 조선’ 1942년 6월호에 실명으로 “죽음으로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는 제목의 글을 일본어로 게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부는 이달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한 최 전 총장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달 16일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고자 최 전 총장과 도산 안창호 선생, 고당 조만식 선생 등을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 친일작가 가옥에 밀려 미래유산 안 된 반민특위 터

    [단독] 친일작가 가옥에 밀려 미래유산 안 된 반민특위 터

    친일 논란 인물의 가옥이 ‘서울 미래유산’에 포함되는가 하면, 참스승상을 정립하겠다며 시작한 ‘이달의 스승’ 첫 대상자로 친일 인사가 뽑혀 논란이 예상된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서울시와 교육부의 몰역사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8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일 공개된 서울시미래유산 홈페이지에는 1980년대 대표적 공안사건인 ‘학림사건’의 발원지인 대학로 학림다방과 엘리트스포츠의 요람 태릉선수촌,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대오서점 등과 함께 친일 논란이 제기된 시인 노천명·서정주, 교육자 겸 정치인 김성수의 가옥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종로구 필운대로의 노천명 가옥은 그가 1949~1957년 거주했던 곳으로 “현재 서촌에 몇개 남지 않은 한옥으로 보존할 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뽑혔다. 1969년 지어진 관악구 남부순환로의 서정주 가옥은 현재 ‘서정주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두 시인은 태평양전쟁과 강제 징병 찬양시를 써,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됐다. 종로구 계동길의 김성수 가옥은 1918~1955년 김성수가 거주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배후지원 및 민족교육, 민족문화의 보급을 위해 노력했던 장소로 보존가치가 있다”는 명목으로 뽑혔다. 하지만 김성수는 조선총독부의 태평양전쟁 동원을 위한 징병 및 학병 지원을 찬양·독려한 점 등이 인정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됐다.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1942~1944년 김성수가 전국 일간지에 태평양전쟁 동원을 위한 징병 및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을 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기고한 점 등이 인정된다”며 친일진상규명위 결정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앞서 서울시는 2012년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근·현대 유산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 ‘서울미래유산 보존사업’을 시작했다. 2013년 293건에 이어 지난해 55건 등 모두 350여건의 미래유산을 선정했다. 하지만 친일 논란을 빚은 인물들의 유산은 뽑힌 반면, 1980~199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유산들은 예비후보에 포함됐다가 최종 선정과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기념비, 기념관과 1991년 시위도중 백골단에 맞아 강경대 열사가 숨진 명지대 정문 담장 등이 대표적이다. 1948년 친일파 청산을 위해 제헌국회에서 설치했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본부 표석은 시민단체 추천에도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다. 미래유산 선정에 참여한 서울연구원 민현석 박사는 “친일 행적에 대해 고민하다가 (친일 유산을 빼버리면) 남길 게 없더라”면서 “친일을 했다고 해도 그들의 문학사·정치사적 의미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의 ‘이달의 스승’은 첫 선정자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교육부는 지난달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매일 아침 학생들에게 우리말로 훈화한 청렴한 교육자”라며 서울대 총장을 지낸 최규동 조선교육연합회(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전신) 초대 회장을 선정했다. 하지만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일제시대 관변잡지 ‘문교의 조선’ 1942년 6월호에 드러난 그의 친일 행적을 공개했다. 당시 중동학교 교장이자 수학교사였던 최규동은 ‘죽음으로써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기다리고 바라던 조선동포에 대한 병역법 시행이 확정돼 반도 2400만 민중도 마침내 병역에 복무하는 영예를 짊어지게 되었다”며 “조선동포가 내선일체의 이념에 눈을 뜨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정성을 피력해 온 결과이자, 폐하(천황)의 중요한 신하라는 자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그가 친일 인명사전에도 나오지 않았고, 논설이 일본어로 돼 찾기가 어려웠다”며 “역사 전문기관 등에 재검토를 요청하고 계기 수업 등은 중단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방은희 역사정의실천연대 사무국장은 “친일 인명사전에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친일 행적이 없다고 덮어버린 것은 역사인식이 그만큼 무개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 드러나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 드러나 ‘충격’

    이달의 스승 최규동 선생, 친일 행적 드러나 ‘충격’ ‘이달의 스승’‘백농 최규동’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최규동(1882∼1950) 전 서울대 총장의 친일 행적이 드러났다.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모범적 스승’으로 가르칠 인물을 선정하면서 검증 작업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교육부는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최규동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기고한 (친일 논란) 글이 발견됐다”면서 “최 선생을 포함해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에 대해 전문기관에 의뢰해 철저히 재검증하도록 하겠다”고 8일 밝혔다. 이어 교육부는 “당시 심사과정에서 최 선생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했다. 창씨개명 거부, 건국훈장 추서 등 대한민국 초기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역사정의실천연대의 분석 결과, 최 전 총장은 일제 관변 잡지인 ‘문교의 조선’ 1942년 6월호에 실명으로 “죽음으로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는 제목의 글을 일본어로 게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교육부는 이달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한 최 전 총장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달 16일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하고자 최 전 총장과 도산 안창호 선생, 고당 조만식 선생 등을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아빠 전성시대/문소영 논설위원

    TV를 틀면 ‘아빠 전성시대’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산업화 세대 아버지 덕수의 헌신에 열광하면서도 파독 간호사로 생고생한 덕수 아내의 수고는 그저 묻어서 평가하는 듯하다. 아빠와 엄마의 고생을 편 갈라서 누가 더 고생했나 경연을 붙이고 편애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대중매체에서 건전한 엄마가 사라진 것 같아 섭섭하다. ‘엄마’는 아침 드라마 등에 건재한데 ‘막장 캐릭터’라는 것이 문제다. 개명한 21세기에도 시어머니라는 지위만으로 며느리와 사돈네에 막말을 일삼고, 남편에게는 벌이가 시원찮다며 구박하는 몰상식한 인물들로 나온다. 한겨울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하다 동상에 걸린 엄마나, 본인은 무학이지만 가난 속에서 아들딸을 고등교육까지 시키는 엄마가 대중문화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엄마가 사라진 그 자리를 가설 오븐에 식빵을 구워 내는 ‘차줌마’(차승원+아줌마)가, 세 쌍둥이를 육아하는 송일국 아빠가 차지했다. 밥벌이에 바빠 20대 딸과 원만하지 못한 50대 아빠를 그려 낸 ‘아빠를 부탁해’는 또 어떤가. 체력이 필요한 리얼리티TV 탓 같기도 한데 전업주부로, 경단녀로, 슈퍼우먼으로 묵묵히 사는 엄마들이 괜히 서럽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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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 ◇지방우정청장△서울 김영수△경인 백기훈△부산 김기덕△충청 이승재△경북 이병철 ■방위사업청 △기획조정관 강은호 ■서울시교육청 ◇초등학교 교장·교감 <교감에서 교장 승진>△초당초 강인혜△장월초 강혜숙△홍제초 구자청△방학초 김동하△대영초 김명애△상현초 김복근△후암초 김연옥△공릉초 김영임△길음초 김인숙△개화초 김정규△구의초 김태순△대조초 나성대△용암초 박영주△미성초 박인숙△숭례초 배혜경△강신초 백경희△화일초 서성숙△신화초 서숙년△한산초 성희숙△염동초 양귀순△언남초 여문옥△개명초 오연주△덕암초 우종희△대신초 원용진△금천초 유철상△창도초 유춘만△전농초 윤경희△서이초 이경재△양동초 이경희△동원초 이만영△종암초 이명숙△신상계초 이봉애△영림초 이선기△문정초 이순애△고산초 이윤복△동의초 이주원△소의초 이해순△세륜초 임혜영△태릉초 임희수△은명초 장명희△사당초 장정애△세곡초 장태진△양재초 전애실△영서초 정경화△계남초 제양순△대치초 조근희△잠전초 주미자△송파초 주정희△공덕초 주천봉△언북초 채광수△원광초 최광옥△월계초 최동렬△반포초 최영주△홍파초 탁현주△증산초 한민희△천왕초 홍진용<공모교장 임용>△동작초 강신택△불광초 김화△서빙고초 라민호△등명초 문진철△갈산초 박지원△수리초 윤성한△노원초 윤영진△고일초 이동섭△신용산초 이동재△월천초 이종탁△신암초 임현주△금산초 전동일△가동초 조병래△강명초 최영욱△하늘초 허선화<공모교장에서 교장 임용>△영중초 고광덕△경동초 고옥순△돈암초 박종석△동자초 박진숙△역촌초 배영복△정목초 서진숙△양원초 송지석△삼각산초 심영면△두산초 유지영△상곡초 이홍흠△잠원초 홍춘성<교장 중임·전보>△화곡초 고근식△중대초 김영동△은진초 김옥희△당현초 김월규△잠신초 김의경△오륜초 이종숙△이수초 조선영△염리초 지청환△난향초 채종길△금화초 강성현△창원초 김상호△조원초 안주형<교육전문직(관급·사급)에서 교장 전직>△대도초 강학구△휘봉초 강세창△옥수초 고영규△개포초 박금은△보라매초 오장길△영도초 임동찬△안암초 송영미△중곡초 홍주희◇중등 교장·교감 <교감(공모교장)에서 교장으로 승진>△경복고 이원휘△신목고 정상윤△인헌고 박인규△중화고 장정찬△효문고 김진호△불광중 박춘구△풍납중 김병오△문창중 모상기△광남중 이명호△서초문화예술정보학교 강희철△종로산업정보학교 조중기△장안중 황병근△전일중 조풍호△대림중 최진흥△대영중 김기숙△문래중 김정희△영림중 김희자△신창중 민성기△중원중 심상문△덕수중 신미현△가락중 박동근△명일중 김명숙△문정중 박연숙△송파중 고화영△천일중 정연수△공진중 박용수△마곡중 김영훈△염경중 고화순△화원중 이재춘△대왕중 윤영단△대치중 김명옥△방배중 박미정△언북중 김정근△당곡중 박영창△광장중 곽수근△광진중 김출배△양진중 장기동△수송중 김승수△수유중 박상근△월곡중 오병웅△인수중 김순채<공모교장 임용>△남성중 장학순△숭곡중 유신모△경동고 이광진△경일고 오승모△대영고 우종선△원묵고 유대환<교장 중임>△가재울고 선영규△경인고 김철환△구로고 김성수△구일고 윤용수△노원고 이경석△서울방송고 양한석△선린인터넷고 김정일△송파공업고 이교식△신림고 이덕기△동대문중 김인화△상신중 오정호△노곡중 김영문△신방학중 박한구△을지중 전인호△중평중 고래억△잠실중 허성일△청담중 윤영준△봉림중 김미혜△자양중 김신△행당중 백남교<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경기고 박건호△반포고 김동식△명일여고 임영호△압구정고 김영윤△연서중 오희석△용강중 한봉희<교장 전보(전보유예 포함)>△성동공업고 문수남△상도중 김인회△개포고 김응갑△광남고 김재홍△서울금융고 박상철△아현산업정보학교 방승호△잠신고 허재환△한강미디어고 박진관△홍은중 류명호△천호중 김영숙△신화중 이영숙◇중등 특수 교장·교감 <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서울정인학교 김형근
  • [인사]서울시교육청

    ◇유치원 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원감에서 원장 승진> △노일유 백해옥 <교육전문직원(관급·사급)에서 원장 전직> △경인유 김기경△탑동유 김애순△마곡유 최봉옥 <단설유치원 원장 전보> △청계숲유 여명선△은곡유 이경희△길음유 한혜일 <교사에서 원감 승진> △서부교육지원청 김명나 김영일△성동광진교육지원청 류미숙△강남교육지원청 신현광 이향희△동부교육지원청 윤수지△성북교육지원청 이지현 <원감 청간 전보>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광미△강서교육지원청 박신정 윤향금△북부교육지원청 이혜정 <교육전문직원(관급) 승진> △유아교육과 유아생활교육장학관 고문영 <원감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 전직> △강서교육지원청 박선자△유아교육과 박현주△북부교육지원청 위효실 <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 △남부교육지원청 김정숙△유아교육과 김태희△서부교육지원청 맹진아△동작관악교육지원청 황보영△동부교육지원청 황지현 ◇초등학교 교장·교감 <교감에서 교장 승진> △초당초 강인혜△장월초 강혜숙△홍제초 구자청△방학초 김동하△대영초 김명애△상현초 김복근△후암초 김연옥△공릉초 김영임△길음초 김인숙△개화초 김정규△구의초 김태순△대조초 나성대△용암초 박영주△미성초 박인숙△숭례초 배혜경△강신초 백경희△화일초 서성숙△신화초 서숙년△한산초 성희숙△염동초 양귀순△언남초 여문옥△개명초 오연주△덕암초 우종희△대신초 원용진△금천초 유철상△창도초 유춘만△전농초 윤경희△서이초 이경재△양동초 이경희△동원초 이만영△종암초 이명숙△신상계초 이봉애△영림초 이선기△문정초 이순애△고산초 이윤복△동의초 이주원△소의초 이해순△세륜초 임혜영△태릉초 임희수△은명초 장명희△사당초 장정애△세곡초 장태진△양재초 전애실△영서초 정경화△계남초 제양순△대치초 조근희△잠전초 주미자△송파초 주정희△공덕초 주천봉△언북초 채광수△원광초 최광옥△월계초 최동렬△반포초 최영주△홍파초 탁현주△증산초 한민희△천왕초 홍진용 <공모교장 임용> △동작초 강신택△불광초 김화△서빙고초 라민호△등명초 문진철△갈산초 박지원△수리초 윤성한△노원초 윤영진△고일초 이동섭△신용산초 이동재△월천초 이종탁△신암초 임현주△금산초 전동일△가동초 조병래△강명초 최영욱△하늘초 허선화 <공모교장에서 교장 임용> △영중초 고광덕△경동초 고옥순△돈암초 박종석△동자초 박진숙△역촌초 배영복△정목초 서진숙△양원초 송지석△삼각산초 심영면△두산초 유지영△상곡초 이홍흠△잠원초 홍춘성 <교장 중임·전보> △화곡초 고근식△중대초 김영동△은진초 김옥희△당현초 김월규△잠신초 김의경△오륜초 이종숙△이수초 조선영△염리초 지청환△난향초 채종길△금화초 강성현△창원초 김상호△조원초 안주형 <교육전문직(관급·사급)에서 교장 전직> △대도초 강학구△휘봉초 강세창△옥수초 고영규△개포초 박금은△보라매초 오장길△영도초 임동찬△안암초 송영미△중곡초 홍주희 <교사에서 교감 승진> △강남교육지원청 강명자△동부교육지원청 공희천△강남교육지원청 김경희△북부교육지원청 김관억△강서교육지원청 김광숙△성동광진교육지원청 김기연△중부교육지원청 김기인△서부교육지원청 김명순△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미영△중부교육지원청 김성섭△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송연△강남교육지원청 김순자△중부교육지원청 김영택△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용숙△남부교육지원청 김윤옥△성북교육지원청 김은숙△강서교육지원청 김은주△북부교육지원청 김정란△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정주△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종우△강남교육지원청 김찬영△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태인△동부교육지원청 김향미△남부교육지원청 김현숙△중부교육지원청 김혜숙△강남교육지원청 남순영△강서교육지원청 류록희△강서교육지원청 문헌주△강동송파교육지원청 박금란△서부교육지원청 박남숙△중부교육지원청 박명희△서부교육지원청 박우자△북부교육지원청 박은숙△강동송파교육지원청 박지성△강서교육지원청 박향연△강동송파교육지원청 배숙희△서부교육지원청 배영기△서부교육지원청 서은주△남부교육지원청 손만철△강동송파교육지원청 송성심△강동송파교육지원청 신미희△성북교육지원청 심향순△남부교육지원청 안금덕△서부교육지원청 안말례△동부교육지원청 엄길미△동작관악교육지원청 엄수경△강남교육지원청 오문환△성동광진교육지원청 오숙경△성북교육지원청 오연평△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경숙△강서교육지원청 이경애△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미란△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복임△강남교육지원청 이선옥△강서교육지원청 이수연△강남교육지원청 이승순△북부교육지원청 이승찬△북부교육지원청 이애숙△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영희△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옥영△동부교육지원청 이정래△남부교육지원청 이정식△성동광진교육지원청 이종윤△서부교육지원청 이행국△동부교육지원청 임규식△강서교육지원청 임채길△남부교육지원청 장선희△강동송파교육지원청 장은녕△성동광진교육지원청 장진혜△성동광진교육지원청 장현숙△강남교육지원청 전은미△동작관악교육지원청 정경미△강서교육지원청 정순복△강남교육지원청 정정남△동작관악교육지원청 정태성△동작관악교육지원청 정화희△북부교육지원청 조복주△강동송파교육지원청 조성숙△중부교육지원청 조인제△강동송파교육지원청 차승규△성북교육지원청 채정현△중부교육지원청 최병혜△강남교육지원청 최인숙△성동광진교육지원청 최천심△동작관악교육지원청 한미자△강서교육지원청 한숙경△동부교육지원청 허남희△강동송파교육지원청 허윤호△동작관악교육지원청 허혜련△강서교육지원청 현연옥△동작관악교육지원청 홍승란△북부교육지원청 황기봉△강서교육지원청 황위숙△남부교육지원청 황의정 <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교감 전직> △강서교육지원청 강민경△동부교육지원청 곽윤철△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희정△남부교육지원청 류인철△서부교육지원청 박현숙△북부교육지원청 안은주 이영관△성북교육지원청 주윤숙 <교감 청간 전보> △남부교육지원청 김종배△강동송파교육지원청 남영주△중부교육지원청 이정숙 ◇초등 교육전문직원 <교장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 전직> △성북교육지원청교육장 류제천△동작관악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김홍식△강동송파교육지원청 교육협력복지과장 양희두△초등교육과 기초학력·방과후학교장학관 유선주△학생생활교육과 상담·대안교육장학관 이상래 <교감·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 전직> △남부교육지원청 김장균 김영진△성북교육지원청 박현주 손윤득△강동송파교육지원청 배창빈△대변인 이병재△초등교육과 전용재△성동광진교육지원청 임정미△북부교육지원청 정천연△동작관악교육지원청 조미연△서부교육지원청 조영숙△강남교육지원청 한선혜 <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 △강서교육지원청 강복란△동부교육지원청 고연숙△교육연구정보원 김혜정△교육혁신과 라향숙△남부교육지원청 문성현△감사관 박상준△교육연수원 배현정△중부교육지원청 송남규△강남교육지원청 이경수△정책·안전기획관 이경아△초등교육과 이정훈△동부교육지원청 임태상△성북교육지원청 조순래△초등교육과 최선철△성동광진교육지원청 허진△교육연수원 현선희 ◇교육부 교류(전출)△교육부 이은정 ◇특수학교(초등) 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교감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 전직> △학생생활교육과 특수교육장학관 염유민 <교감 전보> △정민학교 함미애 ◇중등 교장·교감 <교감(공모교장)에서 교장으로 승진> △경복고 이원휘△신목고 정상윤△인헌고 박인규△중화고 장정찬△효문고 김진호△불광중 박춘구△풍납중 김병오△문창중 모상기△광남중 이명호△서초문화예술정보학교 강희철△종로산업정보학교 조중기△장안중 황병근△전일중 조풍호△대림중 최진흥△대영중 김기숙△문래중 김정희△영림중 김희자△신창중 민성기△중원중 심상문△덕수중 신미현△가락중 박동근△명일중 김명숙△문정중 박연숙△송파중 고화영△천일중 정연수△공진중 박용수△마곡중 김영훈△염경중 고화순△화원중 이재춘△대왕중 윤영단△대치중 김명옥△방배중 박미정△언북중 김정근△당곡중 박영창△광장중 곽수근△광진중 김출배△양진중 장기동△수송중 김승수△수유중 박상근△월곡중 오병웅△인수중 김순채 <공모교장> △남성중 장학순△숭곡중 유신모△경동고 이광진△경일고 오승모△대영고 우종선△원묵고 유대환 <교장중임> △가재울고 선영규△경인고 김철환△구로고 김성수△구일고 윤용수△노원고 이경석△서울방송고 양한석△선린인터넷고 김정일△송파공업고 이교식△신림고 이덕기△동대문중 김인화△상신중 오정호△노곡중 김영문△신방학중 박한구△을지중 전인호△중평중 고래억△잠실중 허성일△청담중 윤영준△봉림중 김미혜△자양중 김신△행당중 백남교 <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 △경기고 박건호△반포고 김동식△명일여고 임영호△압구정고 김영윤△연서중 오희석△용강중 한봉희 <교장 전보(전보유예 포함)> △성동공업고 문수남△상도중 김인회△개포고 김응갑△광남고 김재홍△서울금융고 박상철△아현산업정보학교 방승호△잠신고 허재환△한강미디어고 박진관△홍은중 류명호△천호중 김영숙△신화중 이영숙 <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 △삼각산고 신정록△선사고 김춘자△언남고 강은숙△동부교육지원청 박성재△동부교육지원청 유정근△서부교육지원청 양진국△남부교육지원청 김용미△남부교육지원청 박세란△남부교육지원청 이우열△남부교육지원청 이한구△북부교육지원청 김기옥△북부교육지원청 안재학△북부교육지원청 유강우△북부교육지원청 이해도△강동송파교육지원청 고원철△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현숙△강동송파교육지원청 류정구△강동송파교육지원청 민경익△강서교육지원청 김인서△강서교육지원청 오성근△강서교육지원청 정옥환△강서교육지원청 최용제△강서교육지원청 최희경△강남교육지원청 심미경△강남교육지원청 이동석△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상규△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용완△동작관악교육지원청 박명숙△성동광진교육지원청 박선자△성동광진교육지원청 조정기△성북교육지원청 강경림△성북교육지원청 윤형택△성북교육지원청 이성열 <교육전문직원에서 교감으로 전직> △가락고 안재민△강일고 이표상△경기고 주소연△경동고 백운진△도봉고 송현섭△둔춘고 박정란△서울산업정보학교 조민희△성동공업고 신상열△월계고 김영산△한성과학고 김규상△서부교육지원청 양승욱 조상주△강동송파교육지원청 박숙희△강서교육지원청 이수만△강남교육지원청 최정례△성북교육지원청 류민석 <교감전보·전보유예> △가재울고 문혜영△강서공업고 이주암△경기고 이재억△노원고 채현구△누원고 편무섭△서울방송고 양승진△서울전자고 임성빈△선유고 하태진△수락고 이경희△신도고 복영숙△신림고 오석종△영신고 박정희△중경고 이점순△창덕여자고 류상국△태릉고 이세연△동부교육지원청 이인구△동부교육지원청 이재경△서부교육지원청 김성신△서부교육지원청 이규명△서부교육지원청 이신미△남부교육지원청 권성근△남부교육지원청 김두섭△남부교육지원청 박경실△남부교육지원청 박노용△남부교육지원청 오애영△남부교육지원청 유양옥△남부교육지원청 이준용△남부교육지원청 조규태△남부교육지원청 한재근△북부교육지원청 박진석△중부교육지원청 박래숙△중부교육지원청 박종근△강동송파교육지원청 백남이△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경률△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상일△강서교육지원청 강희정△강서교육지원청 기규서△강서교육지원청 박영란△강서교육지원청 박혜은△동작관악교육지원청 오창석△성동광진교육지원청 노영자△성동광진교육지원청 손원석△성동광진교육지원청 전찬호△성동광진교육지원청 황용련△성북교육지원청 박의동△성북교육지원청 송선화△성북교육지원청 안정찬 ◇중등 교육전문직원 <교육전문직(관급) 전보> △동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정대영 <교장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 박문수△강동송파교육지원청 교육장 정정옥△학생생활교육과장 나징기△강서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정정혜△중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박수찬 <교감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 △교육혁신과 학교혁신기획·운영담당 장학관 조호규△교육혁신과 과학·영재·정보화교육담당 장학관 김윤경△강서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송형세 <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으로 전직> △교육연구정보원 김창영△교육연구정보원 박윤정△교육혁신과 최정윤△민주시민교육과 홍승균△동부교육지원청 정종호△서부교육지원청 안성은△서부교육지원청 홍정림△북부교육지원청 조기식△중부교육지원청 장인혜△중부교육지원청 허현정△강동송파교육지원청 안명심△강서교육지원청 김선호△강남교육지원청 한미정△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종현△성동광진교육지원청 박창래△성동광진교육지원청 김선옥 <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 △교육연구정보원 김향숙△교육연구정보원 박경신△교육연구정보원 윤금숙△교육연수원 김양수△교육연수원 정나미△학생교육원 변영수△감사관 김성준△정책·안전기획관 김종미△교육혁신과 박미숙△교육혁신과 홍경희△초등교육과 서근주△중등교육과 김부용△중등교육과 선미향△중등교육과 양정순△중등교육과 홍숙정△학생생활교육과 양한재△진로직업교육과 김용국△진로직업교육과 이화영△체육건강과 강순원△체육건강과 김석균△동부교육지원청 권미숙△동부교육지원청 이지수△남부교육지원청 정인숙△북부교육지원청 박정숙△북부교육지원청 정동회△강동송파교육지원청 전국△강서교육지원청 박병용△강남교육지원청 최성희△성동광진교육지원청 조흠관△성북교육지원청 정영순 <교육부·국립학교 및 기관 전출입> △교육부 김대원△국제교육원 한덕주△은평고 교장 이동환△덕산중 김진태△중부교육지원청 임길선△강서교육지원청 박재철△동작관악교육지원청 윤유숙 ◇중등 특수 교장·교감 <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 △서울정인학교 김형근 <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교감으로 전직> △서울경운학교 이윤동 <교감 전보> △서울정진학교 김현진
  • A부터 Z까지 알파벳 전부로 이름 만든 여자

    A부터 Z까지 알파벳 전부로 이름 만든 여자

    평범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던 여자가 세상에 하나뿐인 이색적인 이름으로 개명에 성공해 화제다.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콜롬비아 여성 레이디 숭가(36)는 최근 성과 이름을 한꺼번에 바꿨다. 예쁜 스페인어 이름을 버리고 그가 선택한 이름은 Abcdefg와 Hijklmn, 성은 Opqrst Uvwxyz이다. 이름과 성을 차례로 쓰면 알파벳이 완성된다. 여자는 카우카 주의 포파얀에서 남자로 태어났다.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과 정신적인 성이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였다. 콜롬비아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포파얀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성적 정체성 때문에 갈등을 겪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여자친구를 3명이나 사귀어봤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남자가 아닌 것 같았다. 혼란에 빠진 그는 아르헨티나로 유학,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디자인 공부에 전념했다. 공부를 마치고 디자이너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귀국을 결심했다. 귀국한 그의 인생은 확 바뀌었다.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자로 다시 태어난 그는 개명을 추진했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위해 성까지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 가능한 일이었다. 새로운 이름과 성을 놓고 고민하던 여자가 선택한 게 알파벳이었다. 여자는 "세상에 하나도 없는, 유일한 이름과 성을 찾았다"면서 "여러 옵션을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알파벳을 성명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항공티켓이나 호텔을 예약할 때 이름과 성을 불러주면 장난인 줄 알고 끊어버리는 경우가 있어 가끔은 불편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이름을 갖게 돼 만족한다"고 말했다. 사진=ABC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삼성그룹 모태’ 삼성상회 내년 복원

    대구 북구에 있는 옛 제일모직 부지에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가 복원된다.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은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대구 중구 인교동의 지상 4층, 지하 1층 삼성상회에서 청과물, 건어물 등을 팔며 장사를 시작했다. 10일 삼성그룹은 ‘대구 삼성창조경제단지’ 기공식을 열고 경제단지 내 삼성존에 삼성상회를 복원해 내년 말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상회는 삼성물산이 보관해 온 당시 건물 자재를 이용해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된다. 삼성상회는 1948년 삼성물산공사, 1951년 삼성물산으로 개명했다. 삼성존에는 삼성그룹의 탄생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창업기념관도 들어선다. 이곳은 이병철 회장의 집무실, 창업홀, 제2창업홀, 영상관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한편 대구 삼성창조경제단지는 삼성존 외 창조경제존, 아틀리에존, 커뮤니티존으로 꾸며진다. 창조경제존에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문화예술창작센터, 아틀리에존에는 미술 소품과 공예품을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공방과 카페가 들어선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조하니 ‘Afraid(어프레이드)’로 두려움 깨고 첫 싱글

    조하니 ‘Afraid(어프레이드)’로 두려움 깨고 첫 싱글

    싱어송라이터 조하니가 사랑의 상처로 인한 두려움을 노래로 표현했다. 8일 조하니의 소속사 피앤와이뮤직(PnY Music)은 각종 온라인 음원 사이트와 소속사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하니의 첫 싱글곡 ‘Afraid(어프레이드)’의 음원 및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Afraid(어프레이드)’는 사랑의 상처로 인해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진 마음을 잘 담아낸 곡으로, 조하니가 사회도 연애도 초년생인 20대 청춘들에 바치는 선물이자 자기고백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가득 채운 노랫말처럼 공개된 뮤직비디오 영상 속 조하니는 어두운 분위기의 캄캄한 방 안에서 깊은 내면의 두려움을 노래한다. 이후 문을 열고 바깥세상과 마주한 조하니는 여전히 두렵다는 메시지로 계속 노래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선 왠지 모를 ‘힐링’이 느껴진다. 결국,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감춰놓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꺼내 직면할 때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첫 번째 싱글이라는 두려움과 부담감 속 조하니가 직접 작사·작곡한 ‘Afraid(어프레이드)’는 그녀의 코러스에 국내 최고의 재즈피아니스트 민경인의 연주가 더해져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한편, 조하니는 각종 실용음악 대회 입상과 가수 허각 등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다방면의 경험을 키워온 실력파 가수다. 지난 2013년 ‘은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디지털싱글 ‘곰신송’을 발표한 조하니는 이번 싱글로 개명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사진·영상=PnY Music<조하니(Cho Hani) - Afraid MV>/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UAE, 요르단에 F16 비행대를 파견…IS 공습을 지원한다

    UAE, 요르단에 F16 비행대를 파견…IS 공습을 지원한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자발적인 국가연합의 공습 지원을 목적으로 F16 전투기 비행단을 요르단에 파견하는 명령을 7일(현지시간) 내렸다. UAE 국영 WAM통신은 이번 명령은 연방군 부총사령관을 맡은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왕세제(왕위를 이어받을 왕의 동생)가 내린 것으로 “이번 결정은 UAE와 요르단의 변함없는 연대와 영웅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의 순교로 나타난 바와 같이 국가가 중동 지역의 안보와 안정을 위해 크게 희생하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통신은 UAE에 의한 이번 F16 전투기 파견은 요르단의 “잔학한 테러집단”인 IS 공습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도했지만 파견하는 전투기 수나 IS 공습의 역할 등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이 통신은 IS는 “여러 가지 포악한 범죄를 통해 전 세계에 그 추악함은 물론 종교적 인도주의 가치를 모독하고 과시해 중동 지역 사람들 사이에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추락 요르단 공군 전투기를 조종하고 있던 알카사스베 중위가 IS에 구속된 이후 UAE는 자국 조종사의 안전에 대한 배려에서 자발적인 국가 연합의 공습에 참여를 보류하고 있었다. 미 정부 관계자는 6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독일 뮌헨에서 걸프 국가의 장관과 회담한 후 UAE가 며칠 이내에 공습 참여를 재개할 전망이라고 발언하고 있었다. UAE는 이라크와 시리아 광대한 범위를 지배하에 두고 있는 IS 파괴를 위한 미군 주도의 자발적인 국가 연합에 참여하는 것을 재차 표명했다. 다른 미 정부 관계자는 IS가 알카사스베 중위를 잔인하게 죽인 만행에 대해 “‘다에시’(Daesh)와 싸울 결의를 두 배로 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다에시는 이라크·샴 이슬람국가(ISIS)의 아랍어식 약자를 말하며 이 단체가 칼리프 체제의 국가라고 선포하며 IS로 개명하기 전에 썼던 명칭으로 IS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무장 테러집단으로 여기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문화재 반환

    [격동의 한·일 70년] 문화재 반환

    1993년 한·일 양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경복궁 안에 있어야 할 자선당 유구(遺構, 옛 건축물의 흔적)가 일본 도쿄의 오쿠라호텔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가 찾아냈다. 김 교수는 “건축문화재는 우리뿐 아니라 일본도 몰랐다. 1965년 한·일협정 때도 논의되지 않았다. 건물까지 뜯어서 갖고 갔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이 머물던 전각이다. 일본은 1914년 식민통치 홍보 박물관인 ‘조선총독부미술관’을 세우기 위해 자선당을 철거했다. 당시 작업을 맡았던 오쿠라 기하치로는 데라우치 총독에게 자선당 반출을 부탁, 일본으로 뜯어갔다. 조선관으로 개명, 오쿠라슈코칸 전시실로 사용했다. 1923년 간토대지진 때 소실됐다. 기단, 주춧돌, 계단 등 석재들만이 남아 수십년간 방치됐다. 자선당 유구는 반출 81년 만인 1995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경복궁에서 뜯어간 가마쿠라의 ‘관월당’, 벽제 또는 경복궁에서 옮겨간 것으로 알려진 이와쿠니의 ‘정자’, 이천에서 가져간 오쿠라호텔 경내 이천오층석탑 등 일본에는 아직 국내의 건축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김 교수는 “관월당, 정자 등은 일본에서 돌려줄 것처럼 얘기했는데 한·일관계가 경색되면서 대화 채널이 완전히 끊어졌다. 일본 측은 예민한 한·일문제 때문에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정년퇴직 뒤 우리근대건축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건축문화재 반환에 힘을 쏟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된 한국 문화재는 공식 확인된 것만 6만 7000여점에 달한다. 개인 소장 등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20만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 소재 우리 문화재는 김 교수 사례처럼 민간의 노력으로 돌아온 게 많다. ‘김시민 선무공신교서’는 시민 모금으로 되찾았다. 1592년 10월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진주목사 김시민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1604년 전공 및 김시민과 그의 가족에게 내리는 포상 내용을 적은 임금의 글이다. 2005년 일본 도쿄 고서점가 경매에서 이 교서를 낙찰받은 한 일본인 고서적상이 재판매하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국민 모금이 시작됐다. 2006년 7월 1400만엔(당시 환율로 약 1억 2000만원)을 주고 찾아왔다. 정부 협상으로 돌아온 문화재도 적지 않다. 1965년 한·일협정 부속협정에 의거해 고고유물, 도서, 도자기 등 1326점이 돌아왔다.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을 앞두고 일본은 ‘외교적 제스처’로 1958년 4월 경남 창녕 고분군 출토 유물 106점을 반환했다. 1991년에는 한·일 정부 간 협상에 의해 복식류, 장식물, 장신구 등 ‘영친왕 일가 복식’ 333점이 환수됐다. 이는 이방자 여사가 소장했다 1957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2002년 이토 히로부미가 무단으로 일본 황실로 반출했던 규장각 도서 숫자를 기재한 문서철이 발견됐다. 한·일협정 때 반환된 90책을 제외한 900여책에 대해 반환요구 움직임이 일었다. 2010년 11월 ‘도서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 협정’에 의거 이듬해 일본 궁내청에서 소장하고 있던 900여책과 조선왕실의궤 등 1205책이 반환됐다. 민관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북관대첩비는 남북 합작으로 반환이 이뤄졌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정문부가 함경도 길주, 쌍포, 단천 등지에서 왜군을 격퇴한 업적을 기리는 비로, 숙종 때 세워졌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무단 반출해 야스쿠니 신사에 세워 놨다. 일본 유학생과 학자에 의해 존재가 국내에 알려지면서 정부와 남북 불교단체가 환수에 앞장섰다. 2005년 국내에 돌아온 뒤 이듬해 북한으로 보내져 본래 자리에 세워졌다. 2006년에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가운데 47책이 되돌아왔다. 일제강점기 조선 연구를 명목으로 조선총독부를 통해 도쿄대학으로 무단 반출됐다. 1923년 간토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됐다. 혜문 스님이 2004년 도쿄대학 도서관 귀중본 서고에서 발견, 반환 운동을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에 되돌아온 문화재도 있다. 국외 유출 문화재의 첫 환수 목록에 올라 있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등이다. 현재 국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후쿠이현 조구진자(常宮神社) 소장 신라종, 도쿄 오쿠라호텔 경내 이천오층석탑,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오구라컬렉션 등 반환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문화재가 반출된 지 100년이 넘으면서 일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들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류, 문서, 목재 건축물 같은 건 보존이 시급하다. 조선왕조 도서 환수 공로로 훈장을 받은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은 “어떤 문화재가 어디 있는지 실태부터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며 “실태도 모른 채 반환 캠페인을 앞세워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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