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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제성 박초은 결혼, 얼마나 만났나 보니 ‘상상초월’

    황제성 박초은 결혼, 얼마나 만났나 보니 ‘상상초월’

    4일 한 매체는 개그맨 황제성과 박초은이 9년 열애 끝에 다음달 12일 서울 여의도 KT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황제성은 2007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현재 MBC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이름을 알렸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도 출연 중이다. 박초은은 MBC 16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성아에서 박초은으로 개명하고 배우로 전향해 드라마 ‘사랑했나봐’ 등에 출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황제성 박초은 결혼, 9년 열애 결실 ‘비주얼 커플’ 박초은 미모+몸매 보니

    황제성 박초은 결혼, 9년 열애 결실 ‘비주얼 커플’ 박초은 미모+몸매 보니

    황제성 박초은, 9년 열애 끝 9월 웨딩마치 ‘개그계 비주얼 커플’ 박초은 미모 보니 ‘박초은 황제성 결혼’ 개그맨 황제성과 배우 박초은이 결혼한다. 4일 한 매체는 황제성과 박초은이 다음달 12일 서울 여의도 KT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연예계 공식 커플로 잘 알려져 있는 두 사람은 9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제성 소속사 측은 “황제성이 오는 9월 12일 박초은과 결혼한다. 오랜 기간 교제한 끝에 최근 결혼식 날짜를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황제성은 2007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현재 MBC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이름을 알렸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도 출연 중이다. 박초은은 MBC 16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성아에서 박초은으로 개명하고 배우로 전향해 드라마 ‘사랑했나봐’ 등에 출연했다. 황제성 박초은은 지난 2009년 2년 째 교제 중인 사실을 알린 바 있다. 사진=황제성 박초은 결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황제성 박초은, ‘연예계 장수커플’ 9년 열애 결실 맺어

    황제성 박초은, ‘연예계 장수커플’ 9년 열애 결실 맺어

    4일 한 매체는 개그맨 황제성과 박초은이 9년 열애 끝에 다음달 12일 서울 여의도 KT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황제성은 2007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현재 MBC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이름을 알렸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도 출연 중이다. 박초은은 MBC 16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성아에서 박초은으로 개명하고 배우로 전향해 드라마 ‘사랑했나봐’ 등에 출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황제성 박초은 결혼, 9년 열애 결실 ‘개그계 비주얼 커플’ 박초은 비키니 몸매 보니

    황제성 박초은 결혼, 9년 열애 결실 ‘개그계 비주얼 커플’ 박초은 비키니 몸매 보니

    박초은 황제성 결혼, 9년 열애 결실 ‘알고보니 개그 커플?’ 반전 ‘박초은 황제성 결혼’ 개그맨 황제성과 배우 박초은의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4일 한 매체는 황제성 박초은이 다음달 12일 서울 여의도 KT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연예계 공식 커플인 황제성 박초은은 9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제성 소속사 측은 “황제성이 오는 9월 12일 박초은과 결혼한다. 오랜 기간 교제한 끝에 최근 결혼식 날짜를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황제성은 2007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현재 MBC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이름을 알렸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도 출연 중이다. 박초은은 MBC 16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성아에서 박초은으로 개명하고 배우로 전향해 드라마 ‘사랑했나봐’ 등에 출연했다. 황제성 박초은은 지난 2009년 2년 째 교제 중인 사실을 알리고 공개 연애를 이어왔다. 황제성 박초은 결혼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황제성 박초은 결혼, 9년 열애 대단하네”, “황제성 박초은 결혼, 잘 어울린다”, “황제성 박초은 결혼, 개그계 비주얼 커플이네”, “황제성 박초은 결혼, 예쁘게 잘 살길”이라며 축하를 보냈다. 사진=방송 캡처(황제성 박초은 결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황제성 박초은, ‘연예계 장수커플’ 박초은 누구?

    황제성 박초은, ‘연예계 장수커플’ 박초은 누구?

    4일 한 매체는 개그맨 황제성과 박초은이 9년 열애 끝에 다음달 12일 서울 여의도 KT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황제성은 2007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현재 MBC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이름을 알렸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도 출연 중이다. 박초은은 MBC 16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성아에서 박초은으로 개명하고 배우로 전향해 드라마 ‘사랑했나봐’ 등에 출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황제성 박초은 결혼, 박초은 누구? 몸매 보니.. ‘헉’

    황제성 박초은 결혼, 박초은 누구? 몸매 보니.. ‘헉’

    4일 한 매체는 개그맨 황제성과 박초은이 9년 열애 끝에 다음달 12일 서울 여의도 KT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황제성은 2007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현재 MBC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이름을 알렸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도 출연 중이다. 박초은은 MBC 16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성아에서 박초은으로 개명하고 배우로 전향해 드라마 ‘사랑했나봐’ 등에 출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황제성 박초은, 9년 열애 끝 9월 결혼 골인 ‘잘 어울려’

    황제성 박초은, 9년 열애 끝 9월 결혼 골인 ‘잘 어울려’

    4일 한 매체는 개그맨 황제성과 박초은이 9년 열애 끝에 다음달 12일 서울 여의도 KT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황제성은 2007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현재 MBC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이름을 알렸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도 출연 중이다. 박초은은 MBC 16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성아에서 박초은으로 개명하고 배우로 전향해 드라마 ‘사랑했나봐’ 등에 출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초은 황제성 결혼, 교제 9년 만에..

    박초은 황제성 결혼, 교제 9년 만에..

    4일 한 매체는 황제성과 박초은이 9년 열애 끝 다음달 12일 서울 여의도 KT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황제성 소속사 측은 “황제성이 오는 9월 12일 박초은과 결혼한다. 오랜 기간 교제한 끝에 최근 결혼식 날짜를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박초은은 MBC 16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성아에서 박초은으로 개명하고 배우로 전향해 드라마 ‘사랑했나봐’ 등에 출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초은 황제성, 9년 장수커플 결혼

    박초은 황제성, 9년 장수커플 결혼

    4일 한 매체는 개그맨 황제성과 박초은이 9년 열애 끝에 다음달 12일 서울 여의도 KT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황제성은 2007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며 현재 MBC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이름을 알렸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도 출연 중이다. 박초은은 MBC 16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이후 박성아에서 박초은으로 개명하고 배우로 전향해 드라마 ‘사랑했나봐’ 등에 출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영사 前사장, 現대표 ‘350억 횡령’ 고소

    박은주(58) 전 김영사 사장이 김강유(68·김정섭에서 개명) 현 김영사 대표이사 회장을 총 350억원 규모의 배임과 횡령, 사기 혐의로 지난 23일 검찰에 고소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김 회장이 2007년부터 공공연히 경영에 개입해 매달 1000만원의 비자금과 운전기사 비용, 카드 대금 등으로 자금을 유용하고 자신의 소유 주식 등 재산을 가로챘다는 주장이다. 박 전 사장은 1989년 김영사 대표이사 사장을 맡은 이래 25년간 김영사를 실질적으로 이끌며 연매출 500억원이 넘는 회사로 키워 내는 등 출판계를 주도해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난해 5월 말 박 전 사장이 전격 사임하고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직에서도 물러나면서 출판계에서는 여러 의혹이 제기돼 왔다. 특히 박 전 사장의 사임을 전후로 일부 임직원의 부당 해고와 배임, 횡령 소송 등이 잇따르며 경영권을 둘러싼 김 회장과 박 전 사장 간의 갈등 심화설 등이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하지만 박 전 사장이 1년 넘게 외부와의 접촉을 끊으면서 이는 의혹으로만 남겨졌다. 박 전 사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김강유 측에서 유통 쪽 직원들을 상대로 208억원을 횡령했다고 고소한 사건이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보고를 받았다고 증언해서 그런 것이라며 항고를 하겠다고 했다”면서 “김영사를 지키기 위해 침묵을 지켰지만 어차피 법정에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직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음해와 혼란을 정리하려면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김강유를 배임·횡령·사기 혐의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회장 측은 언론사에 이메일을 보내 “어떤 방식으로도 회사에 손해를 입히지 않았음을 떳떳하게 밝힌다”고 주장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 최고령 손태랑, 나이를 뒤집다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 최고령 손태랑, 나이를 뒤집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한번 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한국 선수단 최고령 손태랑(28·국민체육진흥공단)이 5일 남부대 국제수영장에서 열린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U대회) 다이빙 남자 싱크로 3m 스프링보드 결승에 김진용(26·강원도청)과 함께 출전해 합계 381.42점으로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3m 스프링보드에서 4위에 그친 아쉬움을 하루 만에 털었다. 손태랑은 경기 후 “연습 때 파트너와 호흡이 맞지 않아 걱정했지만 실전에서는 잘됐다. (동메달 경쟁을 펼친) 멕시코 선수들이 막판에 실수를 범해 메달의 영광을 안았다”며 밝게 웃었다. 2007년 방콕대회와 2009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회에 이어 세 번째로 도전한 U대회에서 마침내 시상대에 섰다. 부산진고 3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발탁된 손태랑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다이빙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태극마크를 단 유일한 다이빙 선수였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선 네 살 후배 박지호와 호흡을 맞춰 싱크로 3m 스프링보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안고 있는 손태랑은 2012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다시 점프대 위에 섰다. 원래 이름은 ‘성철’이었으나 지긋지긋한 부상 악몽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지금 이름으로 개명했다. 지난해 초당대 대학원을 졸업해 이번 대회 참가 자격을 얻은 손태랑은 더는 U대회에 나갈 수 없다. 선수 생활 마지막 목표는 내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다. 그러나 병역 의무를 아직 이행하지 않아 출전을 자신할 수 없다. 손태랑은 “내년까지 병역 연기가 된다면 브라질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겠다”고 말했다. U대회 일정을 모두 마친 손태랑은 후배들의 경기가 끝날 때까지 남아 응원을 펼칠 계획이다. 그는 열 살이나 어린 다이빙 대표팀 막내 문나윤(18·인천시청)에게 “첫 출전 대회라 떨리겠지만 긴장을 풀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각별한 애정과 응원을 보냈다. 광주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동부그룹] ‘승부사’ 김준기 회장의 뚝심 경영 46년… 위기 딛고 다시 선다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동부그룹] ‘승부사’ 김준기 회장의 뚝심 경영 46년… 위기 딛고 다시 선다

    동부그룹은 2015년 현재 국내 재계에서 창업주가 활발하게 경영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몇 안 되는 대기업이다. 1969년 건축업으로 시작했던 업종이 철강과 금융, 전자 등으로 꾸준히 확대된 배경에는 매번 중요한 순간마다 승부수를 던졌던 김준기 회장의 결단력과 뚝심이 자리잡고 있다. 김 회장이 만 24세였던 1969년 직원 2명과 함께 자본금 2500만원으로 시작한 미륭건설이 지금의 동부그룹의 모태가 됐다. 당시 이미 600여개 건설사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던 ‘레드오션’(치열한 경쟁시장)에서 김 회장은 틈새시장을 노렸다. 연세대 이공대 건물 등 민간 발주 공사와 영국대사관, 독일문화원, 용산미군기지 등 외국인 발주 공사를 집중 공략했다. 미륭건설은 신생사였기 때문에 도급순위가 낮아 정부 발주의 대형 공사는 발주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착실히 사업을 키워 나간 미륭건설이 지금의 동부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 입찰이었다. 1974년 당시 국내 수주 사상 최대 규모였던 4800만 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은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금과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미륭건설은 당시 이 공사에서만 1600만 달러의 이익을 남겼다.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 이후 미륭건설은 2억~4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공사 수주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1980년 중동에서 철수하기까지 5년 동안 2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후 중동에서 성공한 자금을 바탕으로 김 회장은 차근차근 사업의 영역을 확대했다. 직원 2명으로 시작했던 건설사가 그룹사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부’(東部)라는 이름은 1971년 동부고속이 설립되면서 처음 쓰였다. ‘도전과 개척’(東) ‘안정과 풍요로움’(部)을 상징하는 뜻의 ‘동부’는 계열사 사명으로 하나둘씩 쓰이기 시작하다 1989년 미륭건설을 동부건설로 개명하면서 그룹명으로 정해졌다. 김 회장은 1983년 한국자동차보험을 인수해 금융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당시 총적자 규모가 2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자동차보험은 집중적인 노력으로 경영정상화를 이뤘다. 이어 정부가 30년 만에 금융시장을 개방하면서 동부그룹은 동부투자금융(현 동부증권)과 동부생명 등으로 금융업을 확대했다. 금융업은 현재 제조업과 함께 동부그룹의 양대 축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이어 1985년 ‘장영자·이철희 어음 사기 사건’과 함께 부도를 맞았던 일신제강을 인수하면서 제조 분야의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김 회장은 인수와 함께 그해에 사명도 동부제강(현 동부제철)으로 변경했다. 이어 합금철(동부메탈), 특수강(동부특수강) 등으로 철강 분야의 폭도 점차 키워 나갔다. 아울러 여객운송업을 주로 하던 동부고속 역시 물류와 하역, 창고 업종을 추가시켜 육상운송전문 종합운수회사인 동부익스프레스로 탈바꿈시켰다. 이와 함께 반도체 사업에도 손을 댔다. 1983년 미국 몬산토사와 국내 최초로 반도체용 실리콘웨이퍼 제조회사인 실트론을 합작 설립하면서 전자 분야에 발을 들여 놓았다. 김 회장은 이후 1997년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동부전자를 세운 뒤 현재의 동부하이텍으로 사명을 바꿨다. 당시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이 선택한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비메모리 반도체를 선택한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흑자(영업이익 455억원)에 성공하며 사업의 본궤도에 올랐다. 김 회장이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뚝심 있게 사업을 지켜온 결과였다. 동부그룹은 그러나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유동성 위기와 철강 등 업황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2015년 현재 동부그룹의 중심 축은 동부화재를 중심으로 한 금융계열사와 대우전자가 전신인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해 운영 중인 동부대우전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계열사 두 축만 남았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여전히 동부그룹의 재기 가능성을 남겨 두고 있다. 매 순간 승부수를 던지고 그 결정을 성공으로 이끌어 왔던 김 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절망, 그 끝엔 시대의 비극

    절망, 그 끝엔 시대의 비극

    1938년은 우리 민족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일제는 이른바 ‘제3차 교육령’을 선포하고, ‘국어상용화 정책’을 폈다. 이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주창하고 조선어교육을 폐지하며 민족을 말살하려는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이었음이 오래지 않아 확인됐다. 나아가 제국주의적 탐욕과 침략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강제징병, 창씨개명의 신호탄이었다. 이와 함께 작은 의문의 사건도 하나 발생했다. 그해 언론에도 제법 자세히 보도되며 세간에 화제가 됐던 ‘경성 근처 한 기숙학교에서 발생한 여학생 연쇄 실종사건’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명씩 무려 16명이 실종됐다는 내용이었다. 사건은 호사가들의 술자리 안주거리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 채 단순 가출실종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영화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은 1938년 실제 발생했던 사건의 뼈대에 많은 것을 기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배경은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여학생 기숙학교다. 선택된 단 두 명만 일본 도쿄로 유학 떠날 수 있다. 이를 유일한 꿈이자 목표로 여기는 여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는 공간이다. 폐병을 앓는 주란(박보영)이 유학온 뒤 따돌림을 받는다. 급장 연덕(박소담)이 주란을 챙겨주려 하지만 그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 친구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상처를 안고 있다. 반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가운데 주란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늘 자상한 미소를 잃지 않는 교장(엄지원)이 오히려 공포스러운 사건의 주체였음을 확인한다. 절묘하다. 어디로도 닿을 수 없는 폐쇄된 절망적인 공간, 기껏 도망쳐봐야 거대한 일본군의 병영을 발견할 따름이다. 파리한 표정으로 각혈하는 유약한 식민지 학생, 지도한다는 명분으로 뺨을 마구 갈기는 교사가 있는 학교는 식민지에서 겪어야 할 불가피한 장면이었다. 주체를 잃어버린 시대는 제국주의 괴물이건, 피압박 민중의 괴물이건 어떤 형태로든 괴물들을 양산한다. 여학생이 잇따라 실종됐지만, 이를 지켜줄 국가와 민족이 없었으니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었다. 물론, 비극적인 시대에 행복한 결론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마지막에 교장이 울부짖듯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다 너희를 위해서야. 너희들은 약하고 힘이 없잖니.” 악의 평범함 같은 더 무서운 현실이 아닌, 익히 들어왔던 뻔한 얘기다. 그럼에도 분노가 치밀어 오름은 슬픈 역사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어른거리고 있는 현실이 있는 탓일 테다. 광복 70주년, 그리고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일본에 소개해도 좋음직하다. 일본의 영화관객들이 당시 피압박 백성들의 심경과 정서를 우회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소름 그 자체…그네타며 해맑게 웃는 소아성애자 충격

    소름 그 자체…그네타며 해맑게 웃는 소아성애자 충격

    이름을 바꾼 소아성애자가 어린이들이 노는 놀이터에서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는 ‘섬뜩한’ 사진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메트로 등 현지 언론의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2004년 15세 소녀를 유괴하고 성적 학대한 혐의로 5년 5개월 형을 받았던 매트 리차드(46)는 소아성애자로 판명돼 미성년자 접근 금지령이 내려진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이름을 앤드류 와트로 바꾸고 햄프셔 주에 사는 한 부부에게 접근했다. 이 부부에게는 어린아이가 한명 있었으며, 그는 이 어린아이를 노리고 1년이 넘도록 정체를 숨긴 채 친밀하게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된 사진 역시 그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부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찍은 것으로, 마치 어린아이처럼 미끄럼틀과 그네 등 놀이기구를 타며 해맑게 웃고 있다. 소아성애자라는 ‘정체’와 빗대어 보면 어쩐지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현지 언론은 리차드가 타인의 의심을 받지 않고 어린아이들에게 접촉하기 위해 개명을 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아성애자이며 미성년자 접근 금지령이 내려진 상태라는 것을 속였다고 보도했다. 리차드의 정체를 알게 된 부부는 “1년 가까이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가끔 아이에 대한 강박증세 같은걸 보였는데, 매우 무섭다고 느꼈었다”면서 “우연히 그의 실제 이름을 알게 됐고, 그것이 십 수 년 전 어린 소녀를 성적 학대한 범인의 이름이란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NSPCC (국립아동학대예방협회) 측은 “매트 리차드가 아이에게 접근하기 위해 해당 가족과 의도적으로 친밀감을 쌓은 것이 확실하다”면서 “우리는 어린이 성범죄자가 매우 위험하며,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타인을 쉽게 기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리차드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현지 경찰은 그가 미성년자 접근 금지령을 어긴 대가로 33개월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헤지펀드 제왕 이름 붙인 하버드 공대 ‘파산한 독일 은행 공대’라 부르겠다”

    “헤지펀드 제왕 이름 붙인 하버드 공대 ‘파산한 독일 은행 공대’라 부르겠다”

    “앞으로 ‘하버드 공대’를 ‘파산한 독일 은행 공대’라고 부르겠다.” 미국 콜롬비아대 경제학부 제프리 삭스 교수가 헤지 펀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존 폴슨의 투자 행태와 그의 돈을 받아 대학 이름까지 바꾼 미국 하버드대학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버드대 출신인 삭스 교수는 6일(현지시간) 미국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최근 4억 달러(약 4429억원)를 하버드에 기부한 폴슨의 과거 투자행태를 거론하며, 하버드대가 그의 돈을 받아 공과대학의 이름을 ‘하버드 존 폴슨 공학응용과학대학’으로 명칭을 바꾼 행위에 윤리적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삭스 교수에 따르면 2007년 폴슨은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이른바 아바커스로 알려진 서브프라임모기지 금융상품을 설계, 상품이 망하는 쪽에 투자해 10억 달러를 벌었다. 역으로 이 상품이 수익을 내는 쪽에 걸었던 투자자 중 일부는 큰 손실을 보고 파산했는데,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중소기업 관련 대출을 전문으로 하던 IKB도 그중 하나다. 삭스 교수는 “비윤리적 행태 때문에 골드만삭스는 금융당국에 고발을 당해 벌금 5억 5000만 달러를 물었지만, 폴슨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면서 “그의 돈을 받았다고 해서 하버드대가 폴슨 공대로 명칭을 바꾼 일은 비윤리적”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따지자면 폴슨이 기부한 돈의 출처는 독일의 IKB”라면서 “이 단과대학을 ‘파산한 독일의 IKB 공대’라고 부르겠다”고 덧붙였다. 치열한 기부금 유치 경쟁에 미 대학들이 기부자 이름으로 단과대 명칭을 바꾸는 일은 드물지 않아 캠퍼스가 금력에 장악됐다는 비난은 종종 있었다. 하버드대 보건대학원만 해도 지난해 홍콩 부동산업체 항룽그룹 창업자인 T H 챈 후손의 기부를 받고 명칭을 ‘T H 챈 보건대학원’으로 바꿨다. 당시 기부액인 3억 5000만 달러(약 3875억원)는 폴슨 이전 최고 기부액이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윌비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나요

    윌비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나요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바 있는 ‘윌비스’가 올해도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 다양한 윌비스의 도서를 선보이게 된다. 성인수험교육 대표주자인 윌비스 교육사업부는 변호사 시험, 사법 시험, 5급 공채, 법률실무, 7급 공무원, 9급 공무원, 취업, 감정평가사 등 다양한 고시 및 자격시험 관련 도서를 매년 300여 종 출간하고 있다. 이번에 윌비스가 참가할 ‘2015 서울국제도서전’은 ‘출판! 광복 70년을 읽고 미래 100년을 쓰다’라는 주제로 오는 6월 1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이번 행사에는 총 30개국의 국내외 출판사가 참여해 아동도서를 비롯한 인문사회, 과학, 문학, 예술, 철학 등 각 분야의 다양한 도서가 소개되고, 특별전시 및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윌비스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윌비스 교재를 비롯해 윌비스의 다양한 수험 컨텐츠를 홍보 및 판매할 예정으로, 고시 및 취업도서를 비롯해 공무원 등 다양한 윌비스 교재를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윌비스고시학원의 대표교수인 황남기, 배미진, 이리라, 한덕현, 김신주, 최진우, 김윤수, 이진욱 동영상 강좌 및 학원 수강에 관련된 자세한 상담도 진행한다. 윌비스 관계자는 “부스(booth)는 입구를 기준으로 중간 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출간도서 할인판매를 비롯해 윌비스의 다양한 컨텐츠를 홍보할 예정이다”라며, “이를 위해 수험강좌의 컨텐츠와 멀티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는 M&C팀뿐만 아니라 윌비스사이버아카데미와 윌비스한림법학원, 윌비스고시학원 담당자들이 현장에서 다양한 홍보 및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국제도서전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국내 유일의 도서전으로, 1954년 ‘서울도서전’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해 지난 1995년 ‘서울국제도서전’으로 개명한 이후 현재까지 매년 열리고 있다. 2013년 서울국제도서전은 세계 25개국의 610개 출판사가 참가해 부스를 운영했으며, 전시 기간인 5일 동안의 국내외 방문객 수는 약 13만 명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합병회사 간판 ‘삼성물산’으로 정한 이유는?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합병회사 간판 ‘삼성물산’으로 정한 이유는?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합병회사 간판 ‘삼성물산’으로 정한 이유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는 회사의 이름은 삼성물산으로 정해졌다. 형식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기준 주가에 따라 1대 0.35로 합병하는 형식이지만, 사명은 반대로 삼성물산 쪽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삼성 측은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와 삼성그룹의 창업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기존 삼성물산을 쓰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는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내에서 갖는 상징성을 고려하고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살리겠다는 결정으로 풀이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제일제당과 함께 삼성그룹의 3대 모태 기업 중 하나로, 특히 삼성물산은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삼성그룹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창업한 회사다. 1938년 3월 1일 대구시 수동(현 인교동)에서 청과물·건어물 수출업으로 창업한 ‘삼성상회’가 그 뿌리다. 이때를 기준으로 해 삼성그룹은 올해를 창업 77주년으로 부른다. 당시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에 지은 250평 규모의 창고로 자본금은 불과 3만원이었다. 삼성상회는 해방 후 서울로 터를 옮겨 1948년 ‘삼성물산공사’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어 1951년 ‘삼성물산 주식회사’로 개명했다. 1975년에는 한국의 종합상사 1호로 지정돼 해외영업을 주도해왔다. 1995년 삼성건설 합병 후에는 건설과 상사부문으로 나뉘어 전세계 50여개국에서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삼성물산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 제일모직은 1954년 9월 설립됐다. 이병철 회장은 자본금 1억환을 들여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를 설립, 1975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국내 직물·패션 부문의 선두기업이었던 제일모직은 1956년 대구에 국내 최초의 모직 공장을 설립하고 독일의 전문기술자를 초빙해 민간기업 최초로 해외기술을 도입하는 등 각종 기록을 양산했다. 이병철 회장은 1987년 별세 전까지 제일모직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을 만큼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3년 12월에는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인수, 작년 7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꿨다. 제일모직 리조트·건설 부문의 전신인 삼성에버랜드는 1963년 동화부동산으로 출발해 부동산 및 테마파크 사업을 했다. 이후 건설, 식음 서비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중앙개발(1967년), 삼성에버랜드(1997년)을 거쳐 2014년 제일모직으로 개명했다. 이번 합병으로 네 번이나 이름을 바꾸게 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잇따른 공습에도 파죽지세 세력 확장… IS, 궁금증 10문10답

    IS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 수립을 목표로 출범한 지 1년 만에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무서운 속도로 확장했다. 라마디에서 이라크 정부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IS에 관한 궁금증을 ‘10문 10답’으로 알아봤다. ① 어떻게 탄생했나 - 反시아파 ISIL이 전신 IS는 원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라는 반시아파 세력이 전신이다. 이는 ‘이라크와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에 이슬람국가를 건설하자’는 뜻이다. IS는 2003년 알카에다의 이라크 하부조직으로 출발해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의 탈영병과 반군 세력이 합세하면서 세를 키웠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시리아로 근거지를 옮겼다. 지난해 6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과 인근 유전 지역을 점령한 후 현재 명칭인 IS로 개명했다. ② 국가로 성공 가능성은 - 국민 뒷전… 존속 어려워 IS는 국가로 자립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IS의 지배계층이 전쟁 수행과 엄격한 규율 부과에만 매달리다 보니 국민의 삶의 질 개선에는 뒷전이라는 것이다. IS가 점령한 지역은 공적 서비스가 붕괴되면서 물가는 치솟고 의약품은 부족해졌다. 사람이 살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강압적으로 불만을 억누를 수 있겠지만 국가로 지속되기는 어렵다. ③ 재원 마련은 - 주요 수입원은 강탈·징세 주요 수입원은 석유 판매가 아닌 강탈 및 징세다. IS는 지난해 이라크 점령지에서 강탈 및 징세로 6억 달러(약 6600억원)를 거뒀다. 이라크의 국영은행을 빼앗아 추가로 5억 달러(약 5500억원)를 빼앗았다. 반면 석유 판매 수입은 1억 달러(약 1100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의 석유시설 공습과 원유 가격 하락으로 수익이 줄었으나 IS는 강탈과 징세로 부족한 재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④ 무기는 어디서 - 이라크·시리아서 탈취 IS는 무기와 군사 장비를 이라크와 시리아의 군사기지에서 탈취해 무장한다. 또 외국 정부가 시리아 반군에 공급한 군수품도 중간에 절취한다. IS가 주로 사용하는 총기인 M16·M4와 로켓인 M79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다른 무장단체에 지원한 것이다. ⑤ 대원 모집은 - 최근 수니파 빈곤층 유입 IS는 현재 약 2만 5000명의 전투대원을 갖추고 있다. 이 가운데 약 1만 5000명은 이라크와 시리아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합류한 대원들이다. 대부분은 인근 이슬람 국가 출신이지만 유럽과 아시아 출신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차별을 겪은 수니파 빈곤층 청년들이 대거 IS로 유입되고 있다. ⑥ 비이슬람권 출신 대원도 있는데 - 유럽·아시아서 SNS 가담 IS는 막대한 자금을 기반으로 디지털세대의 취향에 맞는 홍보 영상 및 게임을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한다. IS를 모르는 서방 출신의 청년들도 이를 통해 IS를 접하고,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IS에 가담하고 있다. ⑦ 문화유산 파괴는 왜 - 무함마드 따라 우상 파괴 IS는 지난 3월 님루드와 하트라를 점령한 뒤 비이슬람 문화유산을 파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의 동료도 메카를 점령한 뒤 우상을 파괴했기에 자신들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⑧ 세력 확장은 어떻게 - 인프라 대신 인적 투자 집중적인 공습으로 내부 이탈자가 증가하고 있다.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대한 것은 수시로 변하는 전략전술 때문이다. 공격 목표가 되기 쉬운 인프라 투자는 자제하고 인적 투자에 주력한다. 또 정부군에 밀릴 때는 테러에 집중하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영토확장에 몰입한다. 민간인 주거지역을 따라 이동하는 반인륜적 전술도 구사한다. ⑨ 모든 이슬람교도에 우호적? - 이란 등 시아파는 적 IS는 수니파 이슬람교에 기반한 무장단체다. 수니파는 이슬람의 가장 큰 종파이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과 관행인 수나를 따르는 사람을 뜻한다. 전 세계 이슬람교도의 90%가 수니파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해역의 왕정국가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반면 이란을 맹주로 한 시아파 이슬람은 IS의 ‘적’이다. ⑩ 최종 목표는 - 완전한 칼리프 국가 건설 완전한 칼리프(이슬람 정치·종교 지도자) 국가의 건설이다. 지난해 1971년생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칼리프로 추대한다고 발표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라크 바그다드 점령을 표방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IS를 공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클린턴과 불륜 ‘르윈스키 드레스’ 11억에 일반전시

    클린턴과 불륜 ‘르윈스키 드레스’ 11억에 일반전시

    무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클린턴의 악몽' 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 에로틱 해리티지 박물관 측은 과거 모니카 르윈스키가 입었던 드레스를 100만 달러(약 11억원)에 제공받아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거대한 액수의 값어치가 매겨진 이 드레스는 '추악한 역사'를 담고있다. 바로 1990년대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41)의 소위 '부적절한 관계'의 '증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DNA가 담긴 이 파란색 드레스는 이제는 차기 백악관 주인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의 인기에 편승해 권력과 정치라는 주제로 당당히(?) 일반인들 앞에 전시될 전망이다. 적어도 클린턴家에게는 잊고싶은 기억이 여전히 이어지는 셈. 불과 22세 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스캔들의 주인공인 르윈스키는 사실 영국 런던경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그러나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가져온 ‘후폭풍’으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다. 르윈스키는 지난해 ‘포터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내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때때로 가명을 사용했으며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적도 있다” 면서 “스캔들 이후 10년 동안 변변한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과거의 스캔들이 다시 언론에 회자되는 것이 가장 불편한 사람은 역시나 대권 출마를 선언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르윈스키가 혹시나 '발목'이나 잡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지만 이와 맞물려 르윈스키의 행보도 커지고 있다. 특히 르윈스키는 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포브스 주최 ‘30세 이하 정상회의’에 참석해 10년 만에 공개 연설을 했다. 사이버 폭력을 주제로 한 연설에서 르윈스키는 “자신이 최초 ‘사이버 왕따’ 의 피해자” 라면서 “그 때의 일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클린턴과 불륜 ‘르윈스키 드레스’ 11억에 박물관전시

    클린턴과 불륜 ‘르윈스키 드레스’ 11억에 박물관전시

    무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클린턴의 악몽' 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 에로틱 해리티지 박물관 측은 과거 모니카 르윈스키가 입었던 드레스를 100만 달러(약 11억원)에 제공받아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거대한 액수의 값어치가 매겨진 이 드레스는 '추악한 역사'를 담고있다. 바로 1990년대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41)의 소위 '부적절한 관계'의 '증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DNA가 담긴 이 파란색 드레스는 이제는 차기 백악관 주인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의 인기에 편승해 권력과 정치라는 주제로 당당히(?) 일반인들 앞에 전시될 전망이다. 적어도 클린턴家에게는 잊고싶은 기억이 여전히 이어지는 셈. 불과 22세 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스캔들의 주인공인 르윈스키는 사실 영국 런던경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그러나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가져온 ‘후폭풍’으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다. 르윈스키는 지난해 ‘포터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내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때때로 가명을 사용했으며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적도 있다” 면서 “스캔들 이후 10년 동안 변변한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과거의 스캔들이 다시 언론에 회자되는 것이 가장 불편한 사람은 역시나 대권 출마를 선언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르윈스키가 혹시나 '발목'이나 잡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지만 이와 맞물려 르윈스키의 행보도 커지고 있다. 특히 르윈스키는 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포브스 주최 ‘30세 이하 정상회의’에 참석해 10년 만에 공개 연설을 했다. 사이버 폭력을 주제로 한 연설에서 르윈스키는 “자신이 최초 ‘사이버 왕따’ 의 피해자” 라면서 “그 때의 일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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