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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생 7만여명 개명/대법원/지난해 신청자 96% 허가

    대법원은 8일 한시적으로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개명허가절차를 간소화한 지난 해 전국에서 7만3천1백86명의 어린이가 개명을 신청,96% 가량인 7만3백17명이 허가받았다고 밝혔다. 전국 법원 가운데 춘천지법(접수 인원 4백37명)과 원주(4백49명)·속초(2백28명)·영월(2백92명)·충주지원(4백31명)은 1백%의 개명 허가율을 보였다.
  • 이합집산속 「개혁입법」 큰 성과/막내린 14대 국회… 뭘 남겼나

    ◎통합선거법 개정… 깨끗한 선거 기틀 마련/신당 창당·사정여파로 의원 1백26명 당적 옮겨/5·18법으로 과거청산 법적 근거도 확보 27일 폐회된 임시국회를 끝으로 제14대 국회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지난 92년 5월30일 개원한 14대 국회는 4년동안 역대 어느 국회보다도 파란만장했다.당초 민자당(1백56석),민주당(96석),통일국민당(32석) 3당과 박찬종씨의 1인당인 신정당으로 출발했으나 현재 원래 그대로의 당명을 보유한 정당은 하나도 없다. 9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정주영·김대중씨가 정계를 은퇴한 뒤 개원한 14대 국회는 민자·민주 양당 체제로 2년6개월 정도 운영됐다.그러나 민자당은 95년 3월 김종필씨의 자민련이 떨어져나간 뒤 지난 연말 노태우씨 비자금파동으로 신한국당으로 개명했다.민주당은 95년 9월5일 김대중씨의 국민회의가 분당해 나간 뒤 12월16일 개혁신당과 합쳐 통합민주당이란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다.13대 국회처럼 4당구도가 6년만에 다시 정립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의원들의 이합집산이 극심했다.전체의원 중 1백26명이 한번 이상 탈당과 입당을 거듭했다.김용환의원은 민자­새한국­국민­신민­무소속을 거쳐 자민련에 입당하는 등 6번이나 당적을 옮겼다. 14대 국회가 이처럼 유례없이 변동이 많았던 것은 김영삼대통령 정부출범후 개혁과 사정,그리고 최근의 과거청산 정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총의원수 2백99명중 결원은 사직 20,사망 5,퇴직 10,당선무효 1명 등 모두 36명이었으며 이중 보궐선거 11,승계 15,당선재결정 1명 등 27명이 충원됐다.대표적으로는 93년 재산공개의 여파로 김재순·박준규·유학성·김문기의원등이,정치권 사정으로,박철언·김종인·이원조의원등이 각각 의원직을 사퇴했다.또 지난 연말연시에는 전두환·노태우씨 구속과 5·18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정호용·김상구·최재욱의원 등이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그러나 14대국회는 파란속에서도 개혁입법을 대거 제정하는 등 의정활동 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94년에는 통합선거법·정치자금법·지방자치법 등 3개 정치개혁 입법을 여야 만장일치로 가결해 돈안쓰는 선거의 기틀을 마련했다.안기부법 개정,율곡사업 국정조사도 주요성과다. 특히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5·18특별법은 일부 위헌시비에도 불구하고 과거청산을 위한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개혁입법으로 꼽힌다.14대 국회의 정치는 혼미했지만 정책심의기능은 훨씬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14대 국회는 총 1천4백28건의 안건을 접수해 이중 1천2백85건을 처리하는 양적발전을 보였다.법률안도 6백54건을 가결했다.이는 12대국회가 6백41건의 안건을 접수,5백11건을 처리하고 2백22건의 법안을 통과시킨 것보다 세배 가까운 것이다.13대 국회는 1천4백39건의 안건을 접수,1천2백77건을 처리했으나 법률안 가결은 4백92건에 불과했다. 또 긴급현안 질문제도및 4분발언제를 도입,의사진행을 활성화했다.본회의 및 예결위회의장 등의 의사활동을 중계방송한 것도 14대 국회가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다만 법률안의 제출 및 처리가 아직도 정기국회에 몰려 있는 데다,대부분의 법률안이 「회기중 제출­회기중 통과」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임시국회의 입법활동 활성화 및 각종 법률안의 심도있는 심사방안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민주당측의 『박일전대표와 최욱철의원이 최근 청와대를 방문,김영삼대통령을 만났다』는 주장은 청와대측과 당사자인 박·최의원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확인돼 발설자의 진의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당 김원기대표는 26일 몇몇 기자들에게 『김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최욱철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신한국당 입당을 권유했다』고 주장했었다. 이와관련,이원종청와대정무수석은 27일 『고향후배인 최의원을 개인적으로 청와대 밖에서 만나 식사를 한 적은 있지만 그 자리에서 영입얘기는 없었다』면서 『더구나 김대통령이 최의원을 만났다는 것은 단연코 사실이 아니며 김대통령은 최의원의 얼굴도 잘 모를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수석은 『박일의원도 지난해말 민주당 대표시절 여야대표와 3부요인 청와대 초청모임에 온 이외에 따로 김대통령을 만난 일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당은 최욱철의원 지역구(강원도 강릉 을) 지구당조직책에 최중규전명주군수를 이미 내정해놓고 있는데 최의원을 영입하려 면담했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당사자인 최의원과 박전대표도 김대통령 면담을 부인했다.최의원은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만난 적은 있으나 김대통령을 만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신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김원기대표가 민주당과 자신의 선거구 사정이 어려운 것을 만회하려 정확치 않은 얘기를 마구 하는것 같다』고 꼬집었다.
  • 일본 사회당의 소멸(박화진 칼럼)

    소련과 동구공산권 붕괴에서 비롯된 탈냉전의 새로운 국제정치구도는 아시아 각국의 국내정치에도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북한도 결국은 별수 없겠지만 중국,베트남,몽골 등 공산권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 제일의 서구식 선진 민주국가라 할수 있는 일본의 정치에도 중대한 변화를 야기시키고 있다.2차세계대전 패전후의 동서냉전상황에서 정립되어 지난 50년간 일본을 지배해온 냉전시대의 옛정치구도에서 탈냉전시대의 새정치구도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이른바 「55년 체제」로 불리는 그동안의 일본 정치구도는 소련 동구 공산권과 서방세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국제정치적 냉전구도의 일본 국내정치적 반영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전후의 혼돈속에서 1955년 사회당의 좌우파가 극적인 단합에 성공,『사회주의 혁명을 구현한다』고 선언한데 자극받아 자유와 민주 두당으로 대립되었던 보수세력도 자유민주당으로 힘을 합쳐 『자유사회를 수호한다』는 기치를 내걸어 보수·혁신대결의 전후 일본 정치구도를 만들어냈던 것이다.옛소련 공산권 붕괴로 인한 미·소 냉전구조의 종언이 그러한 보혁구도의 의미를 퇴색시켜버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해야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소련 동구 공산권 붕괴와 탈냉전의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지난 19일 전당대회를 열어 당명까지 사회민주당으로 바꿔야 했던 사회당이라 할수 있다.그것은 한마디로 사실상의 사회당 붕괴와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1945년 무산정당 각파가 결집,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출발한후 좌우파간의 격렬한 대립과 분열을 거듭한 끝에 55년 자민당 출범 한달 앞서 재출범한 사회당은 제1야당으로서 지난 50년동안 자민당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는 중요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소련 동구 붕괴이후 불기 시작한 세계적 탈사회주의바람은 그렇지 않아도 미·일 안보조약 및 일본자위대와 국기·국가 그리고 한국존재의 부정등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정책에의 집착으로 지지기반이 약화되고 있던 사회당에 대한 일본국민의 지지를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이같은 분위기속의 93년 총선결과는 사회당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의석수가 절반(자민 2백7석,신진 1백69석,사회 64석)으로 줄었으며 득표율도 15.4%로 폭락하는 참패를 당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당은 자민당과의 연립에 참여한후 그동안 비판 받아오던 비현실적 노선을 청산하는 변화를 시도했으며 마침내 당명까지 바꾸게된 것이다.사회당의 이같은 변신은 전반적인 보수화흐름을 타고있는 일본사회 현실을 반영한 위기타개의 몸부림이라 할수 있지만 사회당으로서의 고유 이념과 정책이라는 나름대로의 장점마저 청산해 버린 보수화변신이 과연 사회당의 진정한 구명책이 될수 있을지 의문이다.현 연립파트너인 사키가케와의 통합에 의한 신당창당으로 제3세력을 형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나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1선거구 1의원」의 새선거법으로 늦어도 내년 7월까지는 치러야 할 총선 또한 사회당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다. 이미 일본정치는 자민당과 자민당을 이탈한 신진당의 2대보수당이 양립하는 미국식 보·보대결구도로 나가고 있다.사회민주당으로의 개명과 정책노선의 현실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이 한때 위력을 발휘했던 제1야당으로 재기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사회당은 그동안 반한친북 정책으로 우리를 괴롭혀 왔다.그러나 이제 그 사회당의 몰락을 보면서 우리가 새로운 우려감을 갖게되는 것은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란 말인가. 일제의 잘못에 대한 망각·외면·왜곡 그리고 일본의 민족주의·대국주의·팽창주의지향의 오만무례한 보수우경화질주에 제동을 걸어줄 그나마의 견제력이 없어지는 이제부터의 일본의 향방과 그것이 몰고올수 있는 국제적 파란을 우리는 주목하고 경계해야할 것이다.
  • TV스타 대거 출진…총선판도 새변수/「얼굴」무기로 표밭갈이 분주

    ◎박성범·이윤성·맹형규·김한길씨 도전­신한국당/정동영·유재건·정한용씨에 돌풍 기대­국민회의/김희라·이대엽씨 앞세워 수도권 교두보 확보 모색­자민련 오는 4월 15대 총선에서는 「안방스타」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다.TV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앵커 출신이나 방송인,연예인들이 그 주역이다.이들은 「얼굴」을 무기로 여야 각당의 부름을 받고 표밭 공략에 나서고 있다. ▷신한국당◁ ○…KBS 9시뉴스 앵커출신의 박성범 전 보도본부장은 서울 중구에서 국민회의 중진인 4선의 정대철부총재에게 도전장을 냈다.역시 KBS 9시뉴스 앵커출신인 이윤성씨는 인천 남동갑을 맡아 최근 3개 CF를 통해 「얼굴」을 더 알리는데 주력하면서 표밭을 다지고 있다.SBS 8시뉴스 앵커출신의 맹형규씨는 서울 송파을을 맡아 여성표를 집중 공략하며 발판을 넓히고 있다.특히 이 지역은 비교적 여권성향표가 많은데다 맹씨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어서 신한국당이 기대를 걸고있다.이밖에 MBC 9시뉴스 앵커출신인 엄기영씨는 서울지역 영입대상으로 분류되고있다. 방송인으로는 교통전문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가수 서유석씨가 경기 고양을에 거론되고 있으며,TV토크쇼 진행자인 김한길씨는 경기 분당을 원해 오세응의원과 공천 경합중이다.탤런트 출신에는 최영한전국구의원과 이덕화씨가 있다.최의원은 TV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15년동안 출연해온 「전원일기」를 중도포기,지역구에 매달리면서 국민회의 김민석씨와 서울 영등포을에서 격돌할 태세다.이씨는 지난 92년 대선 때 민자당 연예인자원봉사단으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경기 광명갑을 맡아 국민회의 남궁진의원과 한판 붙는다.코미디언 출신으로 지난 14대때 국민당으로 당선,신한국당에 입당한 정주일의원은 경기 구리에 재출마할 계획이나 공천여부는 불투명.또 지난 11대때 서울 용산갑에 출마,낙선했던 영화인 강신성일씨는 대구 동을에 공천이 유력시된다.강씨는 당시 본명인 강신영으로 출마했다가 신성일이라는 예명이 유권자들에게 「입력」이 덜 됐다는 분석아래 이번에는 아예 본·가명을 합친 강신성일로 개명해 맹렬히 도전하고 있다.이밖에 아직 확정단계는 아니지만 MBC탤런트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지난번 영입을 시도했다가 무산된 유인촌씨도 아직 유효한 상태이며 역시 탤런트인 한인수씨도 영입대상으로 거명되고 있다. ▷야권◁ ○…변호사로 TV심야토론에서 명성을 얻은 유재건씨를 이미 부총재로 영입한 국민회의는 이번에 MBC 정동영앵커(43)를 전격 영입했다.TV 앵커출신이 없는 점을 감안,정씨의 대학동창인 이해찬 전 서울시부시장과 박지원대변인이 오랫동안 설득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정씨는 고향인 전북 임실·순창에 박정훈의원(전국구)이 낙점상태에 있어 서울 또는 전주출마가 유력시 되고있다. 국민회의는 이미 가수출신 최희준씨를 경기 안양 동안갑,탤런트 정한용씨를 구로갑의 조직책으로 내세웠다.최씨는 지난달 22일 지구당 창당대회이후 아예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췄다.정씨도 최근까지 MBC 주말연속극 「아파트」에 출연했으나 6일 밤 극중 중국출장으로 처리돼 브라운관을 떠났다. ○…민주당에서는 동대문 시의원인 KBS 탤런트 김을동씨가 총선출마를 희망,공천신청을 내기 위해 최근 의원직을 사퇴했다.그러나 당 지도부에서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시·도의원의 공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당론을 정해 공천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다. 민주당은 TV스타에 대한 반대여론을 의식,영입에 다소 비판적이나 1∼2명 정도의 영입은 필요하다고 보고 대상자를 물색중이다. ○…자민련은 영화배우겸 탤런트인 김희라씨를 광진을에 내정,수도권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김씨는 지난 주말 MBC 코미디프로 특별출연을 끝으로 지역구 일에 매달리고 있다.같은 영화배우 출신 이대엽 전 의원은 성남 수정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고 최무용씨도 파주에서의 재기를 검토중이다. 아나운서실장 출신인 변웅전씨는 한영수원내총무 지역구인 충남 서산을 물려받은뒤 열심히 표밭을 다지고 있다.
  • 태풍이름 내년 대폭 “개명”/미 공군/92개중 「댄」만 남겨

    ◎“나쁜 이미지 가진것 많아” 내년부터 태풍의 이름이 대폭 바뀐다. 28일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 이름을 관장하는 미공군 태풍합동경보센터는 그동안 사용해 온 태풍 이름 가운데 큰 피해를 입혀 나쁜 이미지를 가진 것이 많고,태풍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변경을 요구해옴에 따라 태풍 이름을 전면 수정키로 했다. 따라서 내년에 가장 먼저 발생하는 태풍의 이름은 「앤」,그 다음은 「바트」「캠」「댄」「이브」「프랭키」의 순이다. 북서태평양과 남중국해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을 통칭하는 태풍의 이름은 괌에 있는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알파벳 순으로 4개조 23개씩 모두 92개를 미리 만들어 놓고 발생 순서에 따라 하나 하나씩 붙여 나간다. 연도에 상관없이 1조에서 4조까지 전부 쓰고 나면 다시 1조로 되돌아가 차례로 붙인다. 「재니스」「페이」등 올해까지 사용해 오던 이름은 89년 10월1일 1개조 단위가 21개에서 23개로 늘어나면서 전면 수정됐던 것.이중 「댄」 하나만 남고 모두 새로운 이름으로 바뀐다.
  • 「대쪽판사」부친 이어 학계서 두각/「이수성 총리 4형제」 스토리

    ◎동경대수석졸업 외삼촌 영향 “학문의 길”/모두 서울대 출신… 세동생부인도 강단에 이수성 국무총리 내정자는 명문가 출신으로 4형제 모두 그 맥을 잇고 있다.맏아들로 서울대 총장출신인 그에 이어 수인(54)수윤(52)씨는 교수로,수억씨(50)는 언론인으로 재직하고 있다. 부친 이충영씨(6·25때 납북·작고)는 일제 때 동경제대를 나온 법조인 출신.일제때 평양 복심법원 판사로 재직중 창씨 개명을 거부하고 판사직을 내던지는 등 「대쪽 판사」로 명성을 날렸다. 어머니 강금복여사(85)도 일본 여자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재원이다.외삼촌 강정택씨 역시 제일고보(현 경기고)를 거쳐 동경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동경대 강단에 섰던 인물이다.이총리 내정자 가족들이 학문의 길을 택하게 된 것도 외삼촌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4형제는 모두 서울대를 나왔다.이총리 내정자는 법대,수인씨는 경제학과를 나와 정치학과로 학사편입,수윤씨는 문리대 철학과를 나와 정치학과로 학사편입,수억씨는 정치학과 출신이다.이총리 내정자와 수인·수윤씨는 서울고 동문이고,수억씨는 경기고를 나왔다. 이총리 내정자 집안은 대부분이 교수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그에 이어 수인씨는 영남대 정외과,수윤씨는 교원대 철학과 교수다.또 수인씨의 부인 김인자씨는 영문학,수윤씨의 부인 권희경씨는 음악전공으로 대학강단에 서고 있으며 수억씨의 부인 전수용교수도 경희대 영문과 교수로 있다. 하지만 4형제가 걸어온 길은 저마다 다르다.형법학자로 지난 72년 이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 온 이총리 내정자는 지난 1월 직선 최다득표로 서울대 총장에 선출되는 등 교수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 영남대 교수인 둘째 수인씨는 인혁당 사건과 관련,「청맥회」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다.수인씨는 젊은 재야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정치연구회」회장을 지내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이때의 인연으로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에게 발탁돼 지난 90년 밀입북혐의로 구속된 서경원의원이 내놓은 전남 함평·영광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영남사람임에도 당선돼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셋째 수윤씨는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해온 두 형과는 달리 학문에만 몰두해 왔다.지금은 교원대 교수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있다.서울고 시절에는 「교내 제일의 주먹」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넷째 수억씨는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고 미국 시카고대에 유학했다가 SBS출범 때 언론계에 몸담았다.
  • “개혁 성향”… 강직한 성품의 법학자/새 총리 이수성은 누구인가

    ◎서울대 두번째 직선총장… 학생에 인기/신군부에 고초… 「3형제 교수」로 명망 15일 국무총리에 내정된 이수성 서울대총장은 신의와 도덕성을 중시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품의 법학자로 통한다. 주위에서는 이총장의 이러한 성품이 평가받아 국무총리에 전격 발탁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총리 내정자는 학문적 업적 뿐만 아니라 보직 교수 시절 많은 일화를 남겨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80년 5월 서울 전역에서 시위가 한창일때 서울대 학생처장으로 서울역에 모인 시내 28개대 학생대표들과 대화를 갖고 「일단 해산및 안전귀가」를 약속한 뒤 당시 김종환 내무장관과 담판,이 약속을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또 집회를 마친 학생들에게 먹을 것은 주어야 한다고 주장,서울대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준비케 해 5천명의 학생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다.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돼 수사기관에 끌려가 8일동안 문초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 2월 교수·학생·교직원 등 전체 대학 구성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아 서울대의 두번째 직선총장으로선출됐다.이보다 앞서 88년에는 첫 직선제 법대학장으로 뽑혀 임기 2년을 채웠었다. 취임 이후 3월에는 제38대 총학생회 발대식에 참석해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84년 총학생회 부활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총리 내정자는 일제하 평양복심법원 판사로 재직중 창씨개명을 거부,쫓겨난 고 이충영 변호사의 장남이다.그 밑의 동생 두명도 교수로 재직중이다.아버지 이변호사는 그 뒤 납북됐으며 어머니가 8남매를 키웠다. 영남대교수인 수인씨(54)는 경북 칠곡 출신이면서도 90년 평민당 공천으로 전남 영광·함평지역 보궐선거에 출마,당선된 이색전력을 갖고 있다.수인씨는 당시 공천결정 18일만에 국회의원이 돼 지역감정해소에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 한국교원대교수인 수윤씨(52)는 정치철학 분야에서 활발한 저서활동을 벌이고 있다.「사회사상사」「역사철학」「서양철학사」등의 저서를 냈다. 이총리 내정자는 특히 형사법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한국형사정책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피해자학회 부회장·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사로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사로 참여한 것은 서울대법대 동기로 절친한 친구인 정해창 전법무부장관의 권유에 의해서이다.그동안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에도 여러번 물망에 올랐었다. 국교동창생인 부인 김경순씨(57)와 1남 1녀가 있다.아마 4단의 탄탄한 바둑 실력을 갖고 있다.
  • 민자,오늘 신한국당 개명

    민자당은 5일 고위당직자 회의를 열어 새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5·18특별법인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등에 관한 특례법」을 심의한뒤 6일 이를 의결할 당무회의에 회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또 선거법및 정치자금법 개정과 정치자금 세탁방지법 제정등을 추진하기 위해 당내에 특별위원회를 구성,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키로 했다.
  • 환영 분위기속 향후 정국에 촉각/「특별법」 제정과 야권 반응

    ◎「5·18」 매듭 기대… 정국 주도권 뺏길까 우려­국민회의/“여권 개편 신호탄”­민주/입장표명 유보­자민련 민자당이 24일 5·18 내란사건처리 특별법을 제정키로 한 데 대해 국민회의와 민주당·자민련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그러면서도 야권은 당명개명에 이은 이번 5·18특별법 제정결정이 김영삼대통령의 정국구상에 직결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자당의 개편을 포함한 정국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회의◁ 민자당의 5·18특별법 제정방침에 대해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이를 계기로 5·18이 완전히 매듭지어지기를 기대한다』면서 환영했다.국민회의는 그러나 5·18관련자 처리를 위해서는 특별검사제를 도입,지금까지의 검찰수사결과를 바탕으로 정밀한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대중총재는 『여권의 특별법 제정방침을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5·18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김총재는 이어 『반드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하며 여당도 이를 수용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회의는 그러나 여권의 발빠른 정국타개행보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이미 김총재가 한달 전부터 이같은 상황을 예상해 왔다』(신기하 원내총무·정상용 의원)면서 짐짓 태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김대통령의 다음 수순이 어느 범위에서 어느 수위로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이다.국민회의는 특히 민자당의 이번 조치로 정국의 주도권이 완전히 여권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하면서 다각도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작업에 나섰다.김총재가 『5·18과 대선자금문제는 별개의 것』이라면서 계속 김대통령의 대선자금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도 정국의 주도권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민주당◁ 환영의 뜻과 함께 민자당의 전면적인 개편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김대통령이 민자당의 당명을 바꾸기로 한 데서부터 이미 정계개편의 시나리오가 시작됐다는 해석이다. 이철 원내총무는 『곧바로 민자당에 변화의 회오리가 일 것 같다』고 전망했다.이총무는 『김대통령이 당명을 바꾸기로 한 것은 이미 개편의 1단계가 시작됐음을 뜻하는 것』이라면서 『특히 5·18특별법 제정은 당내 5·6공세력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면적인 물갈이는 아니더라도 일부 수구인사의 이탈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당직자도 『선거구제 개편문제는 민자당의 인적 개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 『조만간 민자당에 큰 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 다른 두 야당과 마찬가지로 향후 정국에 큰 회오리를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구창림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5·18문제가 역사적으로 말끔히 정리돼야 하지만 현재 헌법재판소에 이 문제가 계류중이므로 결정이 나면 입장을 밝히겠다』고 입장을 유보한 것도 자민련이 받아들이는 충격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 민자 당명변경 제도­인적정비 “시발”

    ◎“깨끗한 정치” 깃발… 후속조치 뭘까/당 조직 직능중심 전환 검토­제도 정비/「흠집 인물」 개혁인사로 대체­인적 정비 민자당의 「새이름 짓기」가 변혁의 시발점이라면 그 종착역은 어디인가.민자당이 구시대와의 청산을 위한 첫 시동을 걸면서 앞으로 변화될 모습에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그 진폭과 강도가 여권 내부는 물론 정치권 전체에 미칠 파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민자당은 당명개칭에 이은 후속조치의 확대전망을 경계한다.제도를 바꾸고,이에 따라 사람을 바꾸게 될 것으로 비쳐지면서 총선전열이 흐트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김윤환대표나 강삼재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전국위원회에서 당명개칭 말고는 없다』고 못박고 나선 것도 이를 감안해서다. 후속조치는 제도와 인적 정비라는 두가지 측면으로 요약된다.물론 돈안드는 정치,깨끗한 정치의 구현을 제1목표로 지향한다. 우선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내부적으로 정당구조의 개선,지도체제 및 정계개편 등의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 숙제가 산적해 있다.외부적인 과제는 선거구제도등 전반적인 정치제도의 개선이다. 민자당은 정당구조의 개선을 첫 후속조치로 추진할 방침이다.거대 집권당의 군살을 빼고,씀씀이를 줄여보겠다는 계산이다.하지만 내년 총선,내후년의 대선을 앞두고 쉽지 않은 사안이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역중심,즉 시도지부 및 지구당 중심의 당 조직을 돈이 덜드는 직능중심으로 대폭 전환할 것을 검토중이다.강용식기조위원장은 『일본은 직능 대 계선조직의 비율이 7대3으로 우리는 최소한 5대5 내지 6대4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부적인 과제로 현행 소선구제를 돈이 덜들고,지역감정을 다소 해소시킬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방안은 유동적이다.야당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강행하지 않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서정화 원내총무는 『중·대선거구제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계개편은 이미 물 건너 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지도체제 개편은 유동적이다.김대표는 『지도체제 개편은 없다』고 미리 못박았다.민주계 한 실세인사도 『김윤환 대표­강삼재 사무총장 체제로 총선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문패만 새로 달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부총재 제도의 도입을 주장,주목된다. 공천구도를 통해 가시화될 인적 정비문제는 민자당의 진로를 가늠할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당명 개칭이 민자당 창당 주역인 노태우씨와의 단절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구정치 행태와의 결별은 불가피하다.민자당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내세우는 세대교체라는 측면에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혁성향 인사의 대거영입은 움직일 수 없는 대세다. 현재로서는 당내에 공존하는 노씨 비자금사건에 연루돼 「흠집」있는 의원들을 포함한 5·6공 세력들이 어느정도 정리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다만 그 폭에 따라 민자당이 새로 태어날 수도,아니면 허물어질 수도 있는 탓에 무척 조심스럽다. ◎“정계개편 서곡” 풍향에 촉각/개혁신당­영입협상 준비/국민회의­총선타격 우려 민자당의 당명 변경을 보는 야권의 시각엔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겉으론 「민자당을 탄생시킨 3당합당은 구국의 결단이 아닌 망국의 결단」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다.정치권,특히 야권에 불어올 정치적 풍향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야권은 먼저 당명변경 결정이 비자금정국이후 김영삼 대통령의 첫 처방이라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아직 인적·제도적 차원의 민자당에 대한 「대수술 플랜」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현재로서는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온 김대통령의 향후 구상을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단초이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민주당·자민련 할것없이 야권은 김대통령이 의도하고 있건,그렇지않건 간에 이번 결정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여긴다.김윤환 대표와 강삼재 총장의 『민자당 지도체제 개편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언급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눈치다.설사 민자당이 지금 당장은 내부 방침을 그렇게 정했다 하더라도 향후 정치권 전반에 미칠 파장의 수위가 그대로 따라줄 지는 미지수라는 판단이다. 벌써부터 개혁신당은 「민자당이 먼저제의해 온다면」의 단서를 달긴 했지만,영입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할 태세이다.민주당 개혁파 의원들도 『좀 더 지켜보자』며 유보적인 자세이다.자민련의 김종필총재는 『민자당이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정식으로 제의해 온다면 자민련의 생각과 같은 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민자당과 협상에 나설 뜻임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민자당이 당명개명 이후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제도개혁과 중·대선구제 개편으로 풍향을 이어간다면 야권 전체가 다시 큰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국민회의 문희상의원의 『벌써부터 정치권 일각에서는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은 이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정계개편으로 이어진다면 그 판이 과거 3당합당과 같은 수뇌부에 의한 단순한 「세규합」에 머물지 않을 전망이다.당간판을 거침없이 내린 점으로 볼 때 이는 정치권의 제 정파를 화학적으로 통합할 「태풍의 눈」이 될 공산이 크다.야권이 민자당의 내부 혁파가 도덕성의 추락과 이전투구의 현 정치판에 염증을 느낀 신진 개혁인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진다면 정치권의 세대교체와 지역주의 청산을 요구하는 바람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불 것으로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경우,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당은 다음 총선에 모든 승부를 걸어야 할 국민회의측이다.국민회의측이 이날 『민자당 김대표를 위시한 민정계를 팽하기 위한 수단』『대선자금 정국을 흐리기 위한 작전』이라고 공세를 편 것도 사실은 이러한 위기의식의 발로인 것 같다.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으로 태풍권에 휩싸여 있는 정치권은 이제 그 위력조차 가늠할 수 없는 또다른 대형 태풍과 맞닥뜨리게 될 형국이다.
  • 정치권 사정없다/김윤환 민자 대표

    민자당의 김윤환 대표는 23일 『비자금 여파에 따른 정치권 사정과 당체제개편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표는 이날 지역구인 구미에서 지역언론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당명 개명작업은 당 분위기쇄신을 위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고 밝혔다.
  • 기네스협,법인으론 조흥은행 선정/“국내 가장 오래된 기업은 두산

    한국기네스협회(회장 김재기)는 30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법인기업에 조흥은행을,개인기업에 두산그룹을 각각 선정했다. 조흥은행은 1897년 탁지부(현 재정경제원)의 인가를 받은 법인형태의 한성은행으로 출발,1903년 공립 한성은행으로 개명한 뒤 1백주년을 앞둔 오늘의 조흥은행으로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 인정됐다. 두산그룹은 1882년 창업자 박승직씨(1864∼1950년)가 개인 환포상(이동 포목상)으로 시작,상인의 길로 들어서면서 1896년 8월1일 배오개 네거리에 박승직 상점을 개업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점에서 그 시기를 창업의 기점으로 삼아 가장 오래된 개인기업으로 결정됐다. 한편 상업은행은 이에 대해 『조흥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은 1900년 1월에 폐업했으며 그후 1903년 2월에 조흥은행 전신인 공립 한성은행이 설립됐으므로 한성은행과 공립 한성은행은 별개로 봐야 한다』며 『따라서 1899년 1월30일에 설립된 상업은행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이 최초의 민족 자본은행』이라고 주장했다.
  • “한­일 합방 합법” 되풀이/무라야마 일 총리

    ◎체결과정은 불평등 【도쿄=강석진 특파원】 한일합방조약이 합법적으로 체결됐다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총리의 발언에 한국과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는 가운데 무라야마총리는 13일 『합방조약이 형식적으로는 합의에 의해 성립돼 조약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법적으로 유효함을 되풀이 강조했다. 무라야마총리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 답변을 통해 그러나 『체결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이 평등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실질적으로는 불평등조약이었음을 인정했다. 한편 하시모토 류타로 자민당총재(통산상)는 이와 관련,『한·일 양국간 마찰을 논하기 이전에 나 자신 창씨개명을 요구당했다면 참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부당한 조약이었다는 한국측의 인식에 이해를 표시했다. ◎한일조약 대해석 심각하게 수용을/공 외무 일본에 촉구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13일 『한·일 양국이 역사적 사실에 관해 공동인식을 갖지 않으면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정부가 전달한 한·일기본조약의 재해석문제를 일본측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바란다』고 말했다. 공장관은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외신기자들과의 오찬회견에서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총리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과 관련,이같이 밝혔다.
  • ’96 대입정원 조정의 특징/양적팽창 지양… 대학별 특성화 중점

    ◎국립대 이공계열 많이 늘려/외국어·첨단분야등에 비중/복수지원… 외형 경쟁률 4∼8대1 예상 96학년도 대학정원조정의 특징은 대학의 양적 팽창보다는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유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96년은 대학정원자율화의 1차연도로서 교육부가 대학의 계열별 증원규모를 대학에 통보해주면 각 대학이 증원범위 안에서 학과를 신설하거나 학과및 계열정원을 스스로 조정하고 학과통합도 자율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사립대는 대학 나름의 특성화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해 정원을 조정하도록 했으며 정부의 통제를 받는 국립대학은 국가 산업발전에 필요한 이공계열을 중심으로 정원을 늘렸다. 또 수도권대학은 인구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증원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같은 원칙 아래에서 전국 대학정원 증원규모 1만2천8백55명 가운데 55개 수도권대학은 3천명 증원을 요청했으나 한·약분쟁의 합의에 따른 경희대 한약학과 20명을 신설하고 야간부 정원을 2천1백60명 늘리는 것 말고는 입학정원을 늘리지 못했으며 나머지 1만6백95명은 지방대에 배당됐다. 국립대학은 지난해보다 4백75명이 적은 1천8백75명을 이공계 중심으로 증원했으며 사립대는 1만9백80명을 늘렸다. 설립별로는 국·공립대가 1천8백75명,사립대가 1만9백80명이 늘어나며 계열별로는 인문·사회계가 6천3백50명,자연계가 5천15명,예체능계가 1천4백90명을 증원했다. 특히 세계화시대의 사회적 인력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국제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외국어·지역연구·정보통신 등 첨단산업분야를 중점적으로 증원했다. 구체적으로는 ▲정보산업분야에 1천5백10명 ▲기계조선 7백50명 ▲신소재 1백90명 ▲에너지 4백55명 ▲우주해양 3백60명 ▲기타 이공분야 7백60명등 4천25명으로 총증원의 31.3%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국제관계인력은 ▲외국어 1천2백10명 ▲통상 등 국제관계 3백10명 ▲지역연구 2백40명 등 총증원규모의 13.7%에 해당하는 입학정원을 늘렸다. 논란이 거듭되어온 의료인력증원문제는 당초 65개대에서 5천4백명을 증원해주도록 요청한 데 크게 못미쳐 2백80명만 늘어났다. 다만 제주대학에 40명 정원의 의예과가 신설돼 의대가 없던 제주도에 의료인력을 공급하게 됐으며 경희대와 원광대에 정원 20명의 한약학과가 신설됐고 동아·강원·경산대 등 의대는 있으나 간호학과가 없는 대학에 간호학과가 새로 생겼다. 이같은 증원규모에 따라 96학년도 전기대 입시의 경쟁률은 2.2대1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추정경쟁률은 전기대 지원예상자 52만1천7백명에 23만5천7백명을 나누어 나온 것이다.52만1천7백명의 지원예상자는 96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응시자 84만2천6백명에 대학지원율 62.5%를 곱하고 농어촌 특별정형인원인 4천8백78명을 빼서 나온 것이고 23만5천7백명은 96년 대학정원 27만1천명에서 특차 3만5천2백명을 제외해 산출된 것이다. 그러나 복수지원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각 대학의 외형경쟁률은 4∼8대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내년부터 신설되는 학과/시대변화 반영 「인간복지학부」 등 탄생/만화·경호학과 등 특수 분야 두드러져/토지행정→부동산학과 등 개명 급증 96학년도에도 급변하는 산업사회의 인력수요에 맞추어 30개 대학에서 37개의 신종학과를 새로 개설해 학생을 모집한다. 신종학과의 특징은 주로 고도로 전문화된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분야다.따라서 특수분야에 한정된 경우가 많다. 가톨릭대학의 「인간복지학부」,경희대의 「국제법무학과」,동서공대의 「마케팅학과」등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탄생했다. 또 해양대의 「자동차정보공학부」,부산수산대의 「탐사공학과」,전북대의 「신소재공학부」,동신대의 「보석공학과」,중부대의 「관광디자인학과」,계명대의 「패션디자인학과」,상명여대의 「무대디자인학과」와 「만화예술학과」,용인대의 「경호학과」,홍익대의 「목조형 가구학과」등도 새로운 흐름의 산물이라는 지적이다. 패션디자인학과와 무대디자인학과는 디자인전문분야이면서도 대학에서 전문인력을 양성하지 못하던 분야이며 경호학과와 만화예술학과도 만화에 대한 열기와 유명인사의 신변경호에 대한 인력수요가 늘어나면서 생겨난 학과다. 해양스포츠학과는 국민소득의 증대에 따른 레저인구의 급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에 사회의 수요가 적은 일반 인문사회계나 사범계는 내년 입시에서 정원이 오히려 줄었으며 학과명칭을 바꾸어 시대변화에 맞추어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학과도 많다. 강원대는 토지행정학과를 부동산학과로,축산경영학과를 농업자원경제학과로 바꾸었으며 경북대는 가정관리학과를 아동가족학과로,부산수대는 식품영양학과를 식품생명학과로,가톨릭대는 가정관리학과를 소비자주거학과로 변경했다.
  • 멕시코 “한국은 독일 식민지”/외국 교과서 한국 역사 왜곡 사례

    ◎스페인­남한 수도 평양/폴란드­6·25는 북침이다/독일­독도는 일본 땅/캐나다­서울 인구 1백만/일본·베트남등선 상당부분 바로잡혀/민간 학술교류 통한 「바로 알리기」 시급 외국 교과서들이 한국 역사를 왜곡 기술한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나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따르면 우리 역사를 잘못 기술하고 있는 국가는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동남아시아·중동 지역 국가와 미국까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각국의 왜곡 사례등을 통해 실태를 살펴본다. 다른 나라들의 우리 역사 왜곡사례는 주로 한국전쟁에 관한 것에서부터 수십년전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경우가 많다.이밖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하고있는 예도 많다. 정부는 최근들어 공보처·외무부·교육부가 공동으로 이런 왜곡된 역사 교과성의 내용을 고치는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특히 최근에는 과거 적성 국가였던 국가들과의 수교로 외교 통로가 확보되어 교과서 문제를 거론할 수 있게 되었다.교육부는 외국의 교과서를 입수해 고쳐야할 부분을 찾아 시정자료를 만들고 공보처의 한국바로알리기 위원회나 외무부 등이 자료를 보내주고 잘못된 내용을 고치도록 교섭하는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단기간에 바로 잡기는 힘들것으로 보인다.교과서를 내는 주체가 외국의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면 시정 요구를 하기가 더욱 어렵다. 한명희 교육부 편수국장은 『정부도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민간 차원의 학술교류를 통한 한국바로 알리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장은 또 외국에서 한국학이 발전해야 다른 나라들이 한국에 관심을 많이 갖고 올바른 역사를 기술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지난 82년부터 한국 역사 왜곡이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었던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우리 정부와 학자들의 노력으로 상당히 고쳐졌다. 대표적인 것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범죄시 해왔던 태도를 의병투쟁의 지도자로 바꾸었다.또 관동 대지진을 우발적인 사건으로 기술했던 사례도 고쳐 민족적 편견에 가득찬 유언비어 유포와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와함께 아예 빠졌던 신사 참배와 창씨 개명,징병제를 새로 포함시켰고 조선 여성 등을 종군위안부로 동원한 내용도 추가했다. ◇미국=미국을 비롯한 다른 외국은 우리 역사를 잘못 쓰고 있는 예가 많다.미국은 한국의 미술 철학,인쇄술 등 세계사에 기여한 문명을 소개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강조하며 한국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특히 한국의 현대사를 냉전체제의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멕시코=한국을 백인종 지역으로 표시하거나 공산주의 국가에 포함시키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역사 교과서를 내고 있다.또한 서울의 인구를 4백만이 넘지 않는 도시로 표시하고 있고 독일의 식민지라고 쓰고 있다. ◇캐나다=서울은 인구 백만의 도시로 한반도의 가장 큰 농업 지역 중심도시라고 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한국에 관한 내용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한국이 후진국으로 장기간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아래 있었던 국가로 묘사하고있다. ◇중국=1932년 4월 김일성의 영도아래 조선인민은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미국은 조선 남부에 지주나 부르주아 계급의 친미세력을 부각시키고 48년 8월 대한민국의 수립을 선포했다.1950년 6월25일 조선전쟁이 일어났다.트루먼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의 해·공군을 파견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침공할 것을 명령했다.이것이 중국교과서의 한국 역사 내용이다. 최근에는 6·25가 북침이라는 내용을 수정하여 기술하고 있으나 미흡한 형편이다. ◇인도네시아=한일관계 속에서 한국을 취급하고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베트남=분단의 책임을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에 전가시키고 국호를 남조선으로 부르고 있다.그러나 베트남의 역사 교과서는 최근 외교 채널을 통한 시정 노력으로 많이 고쳐졌다.최근 발간된 역사 교과서에는 국호를 대한민국 또는 한국으로 표기하고 있고 6·25가 남침이라는 사실을 명기하고 있으며 신흥공업국의 하나라고 쓰고 있다. ◇인도=19세기말 한국이 중국의 속국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고 청일전쟁 결과 중국이 한국의 독립을 인정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일본 학계의 연구 결과에 편향되어 한국 역사를 기술했다. ◇독일=한국에 관한 내용이 빈약하며 지리부도에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오늘날 한국 기업의 3분의 1은 국영기업이거나 한국인 소유이고 3분의 1은 미국과 관련된 사람이 소유하고 있으며 3분의 1은 일본 관련자들이 갖고 있다는 엉터리 내용이 교과서에 담겨 있다. ◇스페인=남한의 수도를 평양이라고 하고 있고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2백50달러 이하의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러시아=러시아 교과서의 잘못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1910년 이전의 항일의병을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빨치산이다.한반도의 분단 책임은 미국에 있고 한국정부는 꼭두각시 정부이며 북한이 민주적 합법정부이다.72년 남북공동성명은 북한이 주도한 것이다.러시아는 그러나 최근에 펴낸 역사교과서에서는 6·25를 남침으로 수정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폴란드=「1950년 6월 25일 남한 정부는 드디어 북조선인민공화국을 공격했다」는 그릇된 사실을 싣고 있다. ◇루마니아=북한은 정식 국호를 쓰고 있으나 한국은 남한으로 표시하고 현재의 모습이 아닌 옛날 모습이 지리교과서에 실려 있다. ◇중동지역=한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부족으로 지명과 내용 등에 오류를 범하고 있다.38도선을 휴전선으로 표기하고 있는가 하면 한국을 남한공화국이라고 하고 있다.
  • 「여아 낙태」와 사회/최미애 충북여성민우회 공동대표(굄돌)

    요즘 가부장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여기저기서 탄식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지금 한창 유행하고 있는 「간 큰 남자 시리즈」가 바로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그러나 과연 그런가? 과연 남성의 사회적,가정적 위치가 흔들리고 있나.여성의 지위가 그런 왜곡된 각본이 전달하려는 것처럼 남성을 압도하고 있는가? 서로 말 안하고 오로지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아낙태는 우리사회의 여성의 실제 지위를 잘 말해주고 있다.해마다 2만여명의 아이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15년 후에는 결혼연령에 있는 남자의 20% 이상의 결혼상대를 구하기 어려울 것은 분명하다.여성의 지위가 남자들이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왜 그런 무자비한 일이 그리 횡횡하는가. 우리의 아이들은 여성을 놓고 자기들 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고 이는 가뜩이나 스트레스로 가득찬 남성들의 세계를 더욱 살기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결국 힘이 있는 남자들은 몇명의 여자를 차지할 것이고 힘이 없는 남자들은 강요된 독신생활을 감수하거나 여성을 향해 폭행을 일삼을 것이다.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남성으로서 선택된 이들 앞에 놓인 것은 더욱 더 살벌해진 경쟁뿐이다.우리의 딸들은 이런 살벌한 세상에서 더욱 더 잘난 남성에게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존재,거리에서 더욱 더 조심해야되는 존재로 살 것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러한 일들이 예상되는데도 그래도 나만 아들나으면 된다는 사고는 오히려 미련하기까지 한듯하다.이런 개명천지에 그런 우매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루바삐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남성중심의 가족제도를 고쳐 딸을 낳아도 사회적으로나 가족적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되어야겠다.
  • 부랴트공 수도 울란우데(시베리아 대탐방:37)

    ◎시장마다 중국상인 호객소리 시끌벅적/중 국경과 인접,17세기부터 국제 교역도시/한때 칭기즈칸이 지배… 몽골·중·러 문화 혼재 울란우데에 도착하며 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5천5백32㎞로 늘어났다.이곳에서 제일 먼저 실감하는 것은 중국상인들의 위력이다.몽골국경을 넘어 들어온 중국상인들은 울란우데 시내 곳곳에 대형 중국시장을 형성해 오랜 소비에트체제에 젖어 굼뜬 이곳 사람들의 「혼을 빼놓고」 있다.우리나라 남대문·동대문시장의 축소판을 연상시킬 정도로 활기찬 중국상인들의 호객소리·흥정소리는 주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이곳 러시아인들의 의식에 가히 폭풍같은 변화를 몰고 왔다. ○남대문시장 축소판 이곳 민족시인 개세르의 이름을 딴 호텔 리셉션의 부랴트 아가씨는 얼마나 친절한지 이 도시에 대한 인상을 여행중 최고로 만들어 놓았다.택시기사·식당의 여급 등 대부분의 시민들이 지나온 시베리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개방 마인드를 보여주었다.중국상인들의 영향과 함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거쳐 북경으로가는 기차의 교차역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개방의식을 불어넣는 데 일조했음이 분명하다. 울란우데는 국제무역 도시로서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처음 도시는 1666년 코사크요새로 출발했다.이 요새를 거점으로 부랴트인·에벵키인 등 원주민들로부터 「애삭(공물)」을 거둬들였다.우다강과 그 지류인 셀렝가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울란우데의 옛지명은 「우다강 상류」라는 뜻의 베르흐니우딘스크였다.베르흐니우딘스크는 중국국경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곧바로 바이칼 이동 지역의 대형 상업중심지로 성장했다.이곳을 거점으로 중국으로부터 차·비단 등이 대거 수입됐다.1899년 시베리아횡단열차가 이곳을 통과하며 도시발전을 더욱 가속화시켰다.1920년 잠시 극동공화국 수도였고 58년부터 부랴트공화국의 수도가 됐다.「붉은 우다강」이라는 뜻의 울란우데로 개명한 것은 1984년이었다. 부랴트인들은 원래 이곳 토착민들이다.그러다 8세기에는 위구르·투르크한의 지배를 받았고,9세기 때 몽골의 침략을 받기 시작해 10세기에 들어 칭기즈칸에 의해 완전히 몽골로 편입됐다.이후 줄곧 몽골말과 몽골글을 사용했다.그러다 17세기중반부터 러시아의 점령이 시작됐고 1939년부터 러시아문자를 쓰기 시작했다.이같은 복잡한 역사 탓에 여러 문화·종교·관습이 어지럽게 혼재돼 있다. ○곳곳에 라마교 사찰 특히 이곳은 시베리아에 진출한 라마교의 총본산이 있는 곳이다.도착한 이튿날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이곳을 찾아갔다.도심을 벗어나자 곧바로 광대한 평원이 펼쳐진다.평원 뒤로 얕은 산이 둘러쳐진 전형적인 자바이칼 스텝이다.평원에는 주말을 맞아 사람들이 대거 몰려나와 감자를 심고 있다. 불교의 절을 부랴트 말로는 「다싼」이라고 부른다.불과 1시간여만에 유명한 항공기 제작공장이 있는 소콜시를 지나 1백여호의 이볼긴스키 다싼 마을에 도착했다.평원 한 가운데 요란한 치장을 한 다싼의 불탑이 솟아있다.티베트에 있는 라마교 사원과 거의 똑같은 양식이고 불당안에는 달라이 라마의 초상이 곳곳에 걸려있다.주말인데도 불구하고 10여명의 승려만 예불을 보고있고 신도는 2∼3명에 불과했다.부랴트의 다싼들은 스탈린시절인 30년대말 종교탄압때 거의 폐쇄당해 이볼스키 다싼 한곳만 남았다고 한다.물론 NKVD(KGB의 전신)의 철저한 통제를 받았다.그러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복원운동이 일어나 현재는 부랴트공화국 안에 모두 14개의 다싼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이볼스키 다싼에는 시베리아유일의 라마교 신학교도 개설돼 있다.바이칼 서쪽의 퉁가라는 마을에서 왔다는 한 신학생의 말에 따르면 현재 1백명의 신학생이 있으며 철학·천문·티베트어·영어·몽골어 등을 공부한다고 했다.그는 라마교와 불교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라마교는 샤머니즘 요소가 강하며 호랑이·큰 바위 등 잡신을 많이 섬긴다』고 했다. 이곳과 달리 바이칼 서쪽의 부랴트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정교를 믿는다.이 지역의 기독교화는 1681년부터 시작됐는데 러시아역사에는 이 선교운동을 「다우리아 미션」으로 부른다.18세기에 이르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10만명 정도의 부랴트인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초대형 레닌 두상도 울란우데 시내중심가의 주청사앞 광장에는 아마도 러시아 전역에서 제일 클 것같은 초대형 레닌두상이 세워져 있다.기단높이 20여m,두상높이가 15m는 됨직하다.그런데 그 두상을 정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부랴트인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알마아타 중앙광장의 레닌얼굴은 어딘가 카자흐인을 닮았고 타슈켄트의 레닌동상에서는 우즈베크인의 분위기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묘한 일이다. 주청사 꼭대기에는 백·청·적의 러시아국기와 함께 청·백·황의 부랴트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현재 이곳은 2년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 레오니드 보탐포브 대통령이 있고 자체국기,자체 공식언어 등 외형적으로는 거의 독립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울란우데 교외에는 시베리아 최대의 민속촌이 있다.고대 에벵키인·부랴트인들의 무속·관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면 반드시 한번 둘러볼만한 곳이다.이들이 사용했던 유르타(천막집)·사냥도구·각종 무구 등이 잘 보존,전시돼 있다.차르 이반 그로즈니때 러시아정교가 신구파로 양분되고 난 뒤 구파 정교회의 건물도 이곳에만 보존돼 있다.지금의 러시아정교회는 당시 왕실과 타협해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새로운 전통을 받아들인 신파다.「라스콜(분리)」이라고 부르는 이 신구파 분리는 러시아 교회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구파,즉 「스타라오브랴치(전통관습이란 뜻)」는 주도권을 신파에게 빼앗긴 뒤 얼마간 독자적인 교회양식,전통을 고수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하오에는 트람바이를 타고 울란우데 외곽을 돌아보았다.반갑게도 「크바스」라고 부르는 러시아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전통음료를 길거리에서 팔고 있었다.이스트를 넣어 시큼달콤한 맛을 내는데 리어카에 실은 큰 철제탱커에 수도꼭지를 달아 아주 싼값에 판다.모스크바에서는 2∼3년전부터 코카콜라·펩시 등 서방음료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는데 시골마을이라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큰 유리컵에 가득 담긴 크바스를 노인과 젊은이 2명이 번갈아 마시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 고구려 지명새긴 기와 첫 발견/반월산성서/포천 옛이름 「마홀」입증

    경기도 문화재 제48호인 포천군 군내면 구읍리 산5­1 반월산성에서 고구려시대의 옛 지명이 정확하게 새겨진 기와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단국대 사학과팀(단장 박경식교 수)이 지난 7월1일부터 반월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와 25일 공개한 기와는 폭 4.3㎝,길이 19.5㎝ 크기의 회백색 연질로 「마홀수해□」란 글자가 뚜렷하게 양각돼 있다. 삼국사기 권35 잡지 제4지리2는 『견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마홀군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였다.지금의 포주니 영현이 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단국대 사학과팀은 따라서 『포천은 고구려 당시 마홀군으로 불려졌음을 알 수 있으며 기와의 명문이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는데 삼국시대의 지명이 기와로 확인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박경식 발굴조사단장은 『명문기와의 발견으로 반월산성이 고구려에 의해 처음으로 축조됐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면서 『출토된 기와의 처리수법과 문양을 볼때 앞으로 남한지역에서 출토되는 고구려 기와 연구에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인니/한인 양칠성씨 영웅 추앙/19일 기념식 거행

    ◎2차대전때 징집… 일 항복후 안착/독립전쟁 참가중 30세에 전사 지난 1945∼48년에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식민통치국이던 네덜란드와 싸우다 전사한 한국인 양칠성이 인도네시아의 국가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관리들이 22일 밝혔다. 양칠성의 전사를 기리는 기념식이 지난 19일 그의 유해가 안장된 인도네시아 남동부 가루트에서 열렸으며,기념식에는 양칠성의 아들 에디 캄베이등 가족 20여명이 참석했다. 양칠성은 2차대전중 일본군에 징집돼 인도네시아로 왔으며 45년 일본의 항복후 인도네시아독립전쟁에 가담,코마루딘이라는 인도네시아 이름으로 개명했다. 그는 48년8월10일 자카르타에서 남동쪽으로 1백90㎞ 떨어진 가르트전투에서 네덜란드군과 싸우다 3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이후 양칠성의 친지와 한국관리들이 인도네시아당국에 그의 묘지명을 인도네시아 이름 코마루딘에서 양칠성으로 바꾸도록 요청해왔으며 지난 19일 기념식에서 한국이름으로 정정됐다.
  • 부산파이프사 개명/내년부터 「세아」로

    부산파이프 그룹은 내년부터 그룹 이름을 세아로 바꾸기로 했다고 18일 발표했다. 세아는 세계속의 아시아라는 뜻이다.부산파이프 공장이 지난 70년 부산에서 포항으로 이전한 데다,그룹의 업종구조가 강관 일변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현재의 이름이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많아 이름을 바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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