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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구장 대부분 적자… 대전 年 15억 ‘골골’

    월드컵구장 대부분 적자… 대전 年 15억 ‘골골’

    2002년 월드컵경기장들이 개최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4강 신화’를 뒷받침했던 국민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찼던 각 지역 구장에는 자치단체의 한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9일 각 시·도에 따르면 전국 10개 월드컵경기장 중 서울상암구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변변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대전시는 이날 월드컵구장 지하 1층 2400㎡에 대한 사업자 모집공고를 냈다. 벌써 4번째 공고다. 계속 유찰되면서 연간 임대액이 5900만원에서 4700만원으로 떨어졌다. 해마다 10억~15억원씩 나는 적자를 메워 보려는 자구책이다. 대전구장에서 한 해 열리는 축구경기는 시민구단 시티즌의 홈경기 22경기와 각종 행사가 있다. 응원석 밑 지상 1층에 어린이회관, 볼링장, 스포츠센터, 편의점, 중국음식점 등이 있으나 대부분 공공시설이어서 연간 임대료로 5억원을 받는 것이 전부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때 지축을 흔든 함성을 되돌아보면 초라한 모습이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체육시설은 공익성을 띠기 때문에 반드시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대전시는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대회나 행사는 유치를 자제하고 있지만 정부의 유치로 치러지는 국제대회라면 정부에서 사후 대책과 지원을 자치단체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울산시는 문수축구경기장 관중석 3층에 500명을 동시 수용하는 유스호스텔을 건립할 계획이다. 지난해 1억 7382만원의 적자가 났다. 4만 4102석 규모지만 프로축구 회당 평균 관중 수가 9626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월드컵 때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관중석을 절반 이상 채운 적이 없다. 막대한 경기장 건립비에 유스호스텔 건립비로 125억 4000만원이 추가로 들게 생겼다. 2014년부터 운영된다. 연간 5억 3700만원의 순수익을 기대한다. 전주구장은 골프장, 예식장, 서바이벌체험장 등이 들어서 있다. 전주시설공단 조봉조 팀장은 “경기장 주변에 만든 9홀짜리 골프장이 효자고, 예식장과 서바이벌 체험장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흑자로 돌아서고 있으나 사우나 업소가 임대기간이 끝났는데도 비워 주지 않아 명도소송을 하는 등 골치를 썩고 있다. 제주구장도 임대료 10억원이 체납돼 가슴앓이 중이다. 물놀이와 전시시설 등 입주 업체가 영업난을 겪고 있는 탓이다. 2008년 말 경기장 활성화를 위해 임대료를 대폭 낮췄지만 별 수 없었다. 제주도는 해마다 3억여원의 적자가 나는 마당에 이런 상황에까지 직면하자 고민에 빠졌다. 다른 월드컵구장들도 적자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광주구장은 2007년 롯데마트에 20년간 임대했고, 부산구장은 예식장, 음식점과 홈플러스 주차장으로 임대하고 있다. 특히 수원구장은 운영법인이 별도로 꾸려졌지만 이사장은 경기도지사, 부이사장은 수원시장이어서 때때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반면 서울구장은 전국 월드컵경기장 중 6만 6809석으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흑자 경영을 해 눈길을 끈다. 2007년 113억원에서 지난해 90억원까지 지난 5년간 흑자규모가 470억원에 이른다. 경기장에 대형마트와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입점시켰고, 입점 업소 수익과 연동한 임대료 러닝개런티 방식을 도입했다. 입점 업체와 시설공단이 동시에 마케팅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입점업체 선정도 신중했다. 기존 우체국을 스포츠센터와 예식장으로 교체했다. 스카이박스 관람석을 워크숍 등 각종 모임장소로 대관했고, 오페라 ‘투란도트’와 드림콘서트 등 대규모 문화공연도 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제경기 시설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 자치단체는 개최 후 적자가 나면 이중 부담에 시달린다.”며 “건립 단계부터 인구 등을 고려한 경제성을 면밀히 따지고,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처럼 기업 이름을 붙여주고 건립비 등을 받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서울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구혜선 “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아요… 병행하면 더 발전하니까”

    구혜선 “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아요… 병행하면 더 발전하니까”

    예쁘게만 생긴 ‘얼짱’일 거란 선입견은 몇 분 만에 깨졌다. 영화와 인생에 대한 생각을 조곤조곤 풀어냈다. 하긴, 그는 감독이다. 수십명의 스태프, 배우들을 다부지게 주무를 때는 그만의 마법이 있을 터. 게다가 본업인 연기는 물론 그림과 음악, 소설까지 보폭을 성큼성큼 넓혀 온 그가 아니던가. 두 번째 장편영화 ‘복숭아나무’(작은 10월 31일 개봉)를 내놓은 감독 구혜선(28)을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복숭아나무’는 몸은 하나에 머리는 둘인 샴쌍둥이 상현(조승우), 동현(류덕환) 형제 얘기다. 보통 등이나 배가 붙어 있는 샴쌍둥이와 달리 동현의 뒤통수에 상현의 머리만 얹혀 있는 형태다. 수술을 받으면 동현은 평범하게 살 수 있지만 아버지는 세상과 담을 쌓고 30년 동안 형제를 키운다. 동화책을 쓰고 싶어 하는 동현을 위해 아버지가 캐리커처를 그리는 승아(남상미)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두 형제의 운명은 엇갈린다. 왜 샴쌍둥이에 끌렸을까. 힌트는 그가 쓴 동명소설 ‘복숭아나무’(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찾았다. ‘현대인의 이중적인 삶이, 몸은 하나에 얼굴은 두 개 달린 괴물 인간(샴쌍둥이)의 삶과 결코 다르지 않을 거라는…사람들도 드러내는 선과 숨기며 사는 악이 따로 존재하잖아요…보통의 사람들이 머리가 두 개 달린 그들만 괴물로 생각하는 것이 불편했어요’. ●데뷔작 ‘요술’ 찍고나서 연출에 대한 확신 생겨 구 감독은 “시나리오를 고민할 때 인간이란 존재,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을 했다. 한몸에 붙어 있는 한쪽이 움직이면 다른 사람은 다칠 수도 있는, 그런 양면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샴쌍둥이는 곧잘 호러영화의 소재로 쓰인다. 하지만 구 감독은 판타지와 멜로를 섞은 동화로 풀어냈다. “형제는 애증의 관계죠. 우리와 다르지 않아요. 가족이나 부부를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지만 때론 짜증 나고 괴롭기도 해요. 그렇다고 떼어 버릴 순 없잖아요.” 젊은 음악가의 경쟁과 사랑을 그린 장편 데뷔작 ‘요술’(2010)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신인 감독 중 10~15%만 두 번째 영화를 찍는다는 충무로의 속설을 떠올리면 그는 행운아인 셈이다. 신인 꼬리표를 떼고서 달라진 점은 뭘까. 구 감독은 “칭찬받으면 나태해지고 깨지고, 넘어지면 외려 자신감이 붙는다. ‘요술’을 찍고 나서 연출에 대한 확신이 생겨 현장에서 고집이 세졌다. 스태프들과도 많이 싸웠다.”고 털어놓았다. 부서질 듯 여린 외모에 숨겨진 강단이 느껴졌다. 사정을 들어 보니 그럴 법했다. 10여개 관에서 상영했던 ‘요술’의 흥행이 신통치 않았던 탓에 ‘복숭아나무’는 투자를 받는 게 여의치 않았다. 직접 구혜선필름을 차리고 그동안 드라마와 광고를 통해 모은 돈 1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고민도 많았다. 구혜선이 데뷔한 건 2004년 MBC 시트콤 ‘논스톱5’에서였다. 그의 나이 스무 살 때다. “그해 수입은 0원”이라고 했다. 2006년 첫 드라마 주연작인 KBS ‘열아홉 순정’ 때 몸값은 회당 15만원. 그 돈을 소속사랑 나누고 의상비를 빼고 정산한 결과 1년 동안 200만원을 벌었다. “(나중에 개런티는 올랐지만)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돈을 ‘복숭아나무’에 투자했죠. 가족에게는 미안한 결정이지만 내 돈을 투자 못 하면 남들도 못 할 거라고 생각했죠. 돈을 품고 있으면 집을 살 수도 있겠지만 멀리 보고 무모한 결정을 했다. 언제 조승우, 류덕환, 남상미랑 해 보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만들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저질렀어요.” 그는 30%대 시청률을 찍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2009)로 스타덤에 올랐다. 데뷔작 ‘요술’을 찍은 건 이듬해였다. 영화 현장 경험도 부족한데 서둘러 연출에 도전한 까닭은 뭘까. 감독 구혜선의 출발은 ‘왕의 남자’ ‘님은 먼곳에’ 등을 제작한 영화사 ‘아침’의 고(故) 정승혜 대표와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인생 멘토였던 故정승혜 대표 덕분에 연출 시작했죠” “인생에 대해 한참 고민하던 23살 때 한 모임에서 알게 됐어요. 우연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읽어 보시더니 엄청 혼내면서도 한편을 끝낸다는 걸 기특해하셨죠.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단 걸 아시고는 시나리오에 맞춰 콘티를 만들어 보라고 하셨어요. 또 고1 때부터 가수 데뷔를 준비했다는 걸 아시고는 음악을 만들어 보라고 했어요. 숙제처럼 하나씩 했더니 ‘왜 이걸로 감독 할 생각을 안 해?’라고 되물으시던걸요.” 마침 영화사 아침에는 ‘왕의 남자’ 스태프들이 들락거렸다. 정 대표는 조감독과 스태프들을 예비 감독 구혜선에게 붙여줬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단편 ‘유쾌한 도우미’(2008)였다. 2009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관객상을 받기 하루 전날, 인생의 멘토였던 정 대표는 3년간의 대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울진 않았어요. 죄송한 일이 많아서 못 울겠더라고요. 이준익 감독님하고 한쪽 편에서 울음을 눌렀어요.” 그의 나이 스물여덟. 감독, 배우는 물론 지난 9~10월에만 두 번째 개인전을 연 화가이자 디지털 싱글을 발표한 가수(겸 작곡가), 두 번째 소설을 펴낸 작가로 대중과 만났다. ‘팔방미인’이란 평가와 ‘한우물을 파야 할 때’란 시선이 공존하는 게 사실이다. 구혜선은 “틀 안에 가두고 싶진 않다. 연출을 하면 연기가, 연기를 하면 연출을 하고 싶다. 병행하면 서로 역할을 이해하고 더 발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분야도 영화(혹은 연기)만큼 의미 있다. 요즘은 융합, 통섭의 시대다. 음악과 그림, 소설이 별개가 아니다. ‘복숭아나무’는 영화음악 작업도 했고 소설로도 냈다.”고 덧붙였다.“다재다능한 건 잘 모르겠다. 그저 인생을 잘 살아가려고 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다.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기회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훗날 무엇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지금은 계속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 놓는 과정이다. 누군가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면 더 보람 있을 것 같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창녀엄마·패륜아 다룬 변태감독? 내 꿈은 멜로감독!

    창녀엄마·패륜아 다룬 변태감독? 내 꿈은 멜로감독!

    영화 ‘아버지는 개다’(2010)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두들겨 팬다. ‘엄마는 창녀다’(2011)에서 아들은 포주로 엄마를 부린다. 제목과 줄거리만 들어도 역하다. 그런데 전 세계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관객들은 펄떡거리는 그의 영화 세계에 반했다. 끔찍한 삶 속에 허우적거리는 가족 이야기,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풀어가는 그만의 방식에 주목한 것. 제목부터 파격이다 보니 투자자가 붙을 리 없다. 영어 보모, 번역, 결혼식·CF 촬영 등 아르바이트로 몇백만 원이 모이면 영화를 찍었다. 기성 배우들은 출연을 꺼릴 뿐더러 제작비도 아낄 겸 웬만한 작품에선 아예 주연을 했다. 이상우(41) 감독 얘기다. 그가 10번째 장편 ‘바비’(작은 25일 개봉)로 돌아왔다. 사채를 끌어 500만원 안팎으로 찍었던 이전 영화들과 달리 아리랑TV 등에서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댔다. 한국 상업영화 평균제작비가 4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한없이 미약한 수준이다. 그래도 이천희와 김새론·아론 자매가 노개런티로 참여하면서 ‘상업영화’ 모양새를 갖췄다. ‘바비’는 정신박약 아버지·망나니 삼촌과 함께 포항 민박집에서 사는 어린 자매의 잔혹한 삶을 그렸다. 망나니 삼촌(이천희)은 미국에 큰 조카 순영(김새론·아래)을 입양 보내려 한다.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는 순영은 아버지와 동생 때문에 거부한다. 반면 ‘아메리칸 드림’에 젖어 있는 동생 순자(김아론·위)는 가지 못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이미 딸 둘을 둔 미국인이 한국 소녀를 입양하려는 데는 꿍꿍이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슬픈 결말로 치닫는다. 입양을 가장한 장기매매는 22년 전 실제 있었다. 한 감독이 영화로 만들려고 했지만,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우려한 정부 압력으로 중단됐다는 게 이 감독의 설명이다. 당시 조감독과 알고 지낸 이 감독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영화는 의외의 만남으로 급물살을 탔다. ‘아버지는 개다’로 2년 전 홍콩영화제에 참가한 이 감독은 ‘바비’에서 미국인 딸로 나온 캣 테보의 친아버지를 만났다. 딸이 출연할 영화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열혈 아버지는 이 감독에 반했다. ‘바비’의 얘기를 듣더니 딸의 출연은 물론, 투자까지 거들겠다고 나섰다. 마침 아리랑TV가 투자자로 나섰다. 이 감독으로선 남의 돈으로 처음 영화를 찍게 됐다. “워낙 극악무도한 영화들을 찍었기 때문에”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아역배우는 꿈도 꾸지 않았다. ‘아저씨’로 유명세를 탄 김새론의 어머니에게 시나리오가 들어간 건 행운. “(전작 이미지 탓에) 내가 잔뜩 겁을 먹고 새론이 어머니를 만났다. 그런데 선뜻 승낙했다. 새론이는 천재다. 시나리오를 한번 훑더니 맥락을 다 파악하더라.” 이어 “새론이는 NG가 많아야 한번이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눈물을 흘린다. 동생 아론이에게는 ‘언니는 저렇게 잘 하지 않니’란 식으로 시샘을 돋웠다. 새론이야 검증된 연기파이지만, 아론이도 대사 톤이나 눈빛이 아주 좋았다. 해외에서는 외려 아론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위기도 있었다. 민박집 손님으로 출연한 이 감독이 3000원을 건네며 순영을 더듬는 장면에서 사달이 났다. 시나리오에는 뭉뚱그렸던 장면인데 이 감독이 애드립으로 변태 흉내를 냈다. 김새론이 눈물을 펑펑 쏟아 촬영은 중단됐다. “한동안 새론이와 서먹서먹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바비’는 이 감독 영화로는 처음 30개 안팎의 스크린에 걸린다. ‘영화관 키드’였던 그에게 꿈같은 일. 초등학교 때부터 극장에서 살았다. 수업시간표는 몰라도 대한극장·단성사 등의 상영시간은 줄줄이 뀄다. 고교 때는 이장호 감독의 판 영화사 사무실을 기웃거리며 연출부를 시켜달라고 졸랐다. 정작 첫 단추는 배우로 풀렸다. 고3 때 황규덕 감독의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 오디션에서 400대1의 경쟁을 뚫었다. 당시 뽑힌 15명 가운데 영화판에 남은 건 이 감독과 배우 정재영뿐. 점수가 나올 턱이 없었다. 4수를 했지만, 대학 연극영화과 입시에 줄줄이 떨어졌다. 방위병 시절 쓴 시나리오로 1994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공모전 장려상을 타기도 했다(당시 1등은 훗날 이 감독이 모신 김기덕 감독). 하지만 막둥이 아들이 대학생 되는 게 소원이던 어머니를 위해 미국행을 택했다. “죽기 살기로 했다. 처음 시애틀의 아트스쿨을 다녔지만, 그만뒀다.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알 만한 대학에 가고 싶었다. 기적적으로 UC버클리에 붙었다. 등록금이 700만~800만원이라 졸업할 때까지 식당에서 일했다.” 미국 생활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공중전화 박스에 설치된 사제폭탄이 터져 한쪽 눈을 실명했다. “석 달을 병원에 있었다. 실명을 하면 영화를 못 찍게 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고 떠올렸다. 8년 만에 귀국했지만, 미국 학벌은 별 도움이 안됐다. 김기덕 감독 밑에서 ‘숨’ ‘시간’의 연출부에서 일하고, 6년 동안 시나리오만 썼다. “4년 동안 가장 큰 돈을 만진 게 50만원이다. 이러다가 영화를 못 찍고 끝나겠구나 싶더라. 아버지 일을 도와 300만원을 만들어 필리핀으로 떠났다. 현지에서 사기꾼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배우와 스태프까지 다 구했다. 국내로 들어와 사채를 끌어 완성한 게 ‘트로피칼 마닐라’다.” 당시 쓴 사채는 4000만원쯤 된다. 훗날 이자까지 8000만원으로 불어난 빚을 갚을 때까지 사채업자에게 시달렸다. 이 감독은 “다시는 안 쓴다. 신체포기각서를 썼었다. 그나마 ‘엄마는 창녀다’가 화제를 모으면서 유예를 해줬다. 그거 아니었으면 지금쯤….”이라며 진저리를 쳤다. 그에게는 ‘변태감독’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파격적인 소재와 제목 탓.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그는 “‘변태감독’으로 기억돼도 나쁠 건 없다. 연줄도, 돈도 없는 내가 살아남으려고, 영화제 초청을 받으려고 전략적으로 세게 갔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조선 최초 성형외과 의사를 소재로 한 사극을 준비 중이다. 이번엔 수십 억원 짜리다. 하하. 궁극적으로는 판타지 멜로를 찍고 싶다. 입봉작으로 준비했던 ‘심연’은 상어가 인간의 몸을 빌려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다. 나랑 너무 안 어울린다고? 하하하.”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마이너 인생 김기덕의 구원”

    “마이너 인생 김기덕의 구원”

    ‘묵묵히 비주류 인생을 살아온 김기덕 감독에 대한 구원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9일, 국내 영화인과 네티즌들은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청계천과 구로공단 등에서 노동자로 살았던 데다 단 한 번의 정규 영화교육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그 흔한 단편영화 습작이나 연출부 경력도 없는 김 감독의 독특한 이력을 뒤늦게 알게 된 이들은 또 한 번 놀랐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은 “한국영화 100년사에 최대 쾌거”라며 “한국영화계를 대표해 김 감독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섬’을 제작했던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트위터에 “박찬욱도 봉준호도 홍상수도 이창동도 아닌 김기덕 감독이 먼저 최고상을 받았네요. 한국에서 유독 비주류 아웃사이더였던 그의 오늘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축하했다. ●총제작비 8억… 25만명이 ‘본전’ 김 감독의 독특한 작업방식도 뒤늦게 화제다. 김 감독은 1996년 같은 해에 데뷔한 홍상수 감독과 함께 적은 돈을 들여 빨리 찍는 대가로 통한다. 보통 장편 상업영화의 회차는 40~60회 정도. ‘마이웨이’ 같은 대작은 160회차까지 찍기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15회차 안팎이다. ‘실제상황’(1998)은 서울 대학로에서 불과 3시간 촬영했으니 1회차로 끝낸 셈. ‘피에타’ 또한 지난 2~3월 15회차로 촬영을 끝냈다. ‘피에타’에 조감독으로 참여한 김기덕 사단의 홍일점 문시현 감독은 “빨리 찍는 것은 여전했지만 상대적으로 덜 빡빡했다. 조민수 선배의 드라마 촬영 일정을 피하느라 평일에 쉬고 주말에 몰아 찍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스태프가 20명 남짓해서 감독님이 막내 스태프들 이름까지 외워 부를 만큼 가족적이었다. (3년 동안의 칩거) 이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지셨다.”고 귀띔했다. ‘피에타’의 순제작비는 1억 5000만원이지만, 배급·프린트 및 마케팅비용(P&A)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8억 5000만원이다. 손익분기점이 24만~25만명. 영화에서 악마 같은 사채업자로 나온 이정진, 수십년 만에 나타난 엄마 역할로 열연한 조민수 등 배우와 촬영스태프, 홍보대행사까지 러닝개런티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베니스 특수’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보너스를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조민수 아쉬운 여우주연상 ‘불발’ 조민수는 영화제 기간 내내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꼽혔지만,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주요 부문 수상을 겸할 수 없다는 불문율에 따라 상을 받지 못했다는 게 배급사인 NEW의 설명이다. 배급사 측은 “심사위원과 영화제 관계자들이 폐막식 후 마련된 피로연에서 ‘조민수의 여우주연상은 만장일치였다’고 전하며 아쉬워했다.”며 특히 중국의 천커신(陳可辛) 감독과 영국배우 사만다 모튼 등이 직접 찾아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피에타’, 예매율 3배로 급증 실제 관객도 늘어날 조짐이다. 피에타의 예매 점유율은 이날 오후 8시 현재 9.2%(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로 나타났다. 전날(2.8%)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서점가도 심상치 않다. 시나리오를 소설로 각색한 ‘피에타’(가연)는 9일 서점에 깔리자 마자 초판 5000부가 모두 팔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국영화 제2의 전성기 비결은

    한국영화 제2의 전성기 비결은

    바야흐로 한국영화 전성시대다. 올 초부터 300만~400만명을 넘어서는 ‘중박’ 영화가 잇따라 터지면서 시작된 한국 영화의 흥행 열풍은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에 올라선 ‘도둑들’로 정점을 찍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 31일까지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55.7%. 2007년 이후 한동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한국 영화는 지난해 점유율 51.9%로 다시 50%대를 회복한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국영화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영화 10년 새 양적·질적 균형 성장 한국영화의 맷집이 눈에 띄게 강해진 것은 양·질적인 면에서 동반 성장이 가능했던 덕분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는 양적(관객수 기준)으로 2배 성장했다. 지난해 한국영화 총 관객수는 1억 5972만여명. 하지만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관객수가 이미 1억 3000여만명에 이르면서 업계에서는 올해 2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02년 총 관객수 1억 513명의 2배에 이르는 셈이다. 양적 성장은 CJ, 롯데 등 대기업 자본이 유입되고 동네마다 복합상영관이 들어서면서 가속화됐지만, 커진 덩치에 비해 부족한 콘텐츠의 질이 끊임없이 문제로 지적됐다. 2012년은 그동안의 질적인 문제점을 극복한 해로 평가할 만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올해 한국영화 돌풍의 원동력은 장르의 다양화다. 장르의 쏠림 현상은 늘 한국영화의 병폐로 지적됐다. ‘추적자’로 시작돼 2년여간 불었던 스릴러 열풍처럼 특정 장르가 흥행하면 투자·제작 방향이 그쪽으로 쏠렸고, 다양성의 부재로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 한국영화 흥행 1~10위를 보면 겹치는 장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범죄액션’(도둑들)을 필두로 정통멜로(건축학개론), 누아르(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법정물(부러진 화살) 등 다양한 장르가 동시에 성공을 거뒀다. 스토리 부재 등을 지적받아 온 한국영화의 콘텐츠도 약진을 보였다. 영화 관계자들은 2~3년 전부터 콘텐츠 개발에 자본과 시간을 투자한 결실을 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배급사들은 콘텐츠 기획팀을 내부에 두고 국내외 원작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웹툰 원작의 ‘연가시’나 일본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화차’가 대표적이다. 중소 배급사들은 규모보다는 기발하고 독특한 기획에 집중한 결과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부러진 화살’, ‘내 아내의 모든 것’,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배급한 NEW의 박준경 마케팅팀장은 “요즘 충무로에는 스타, 감독 등 흥행 보증수표를 앞세운 안이한 기획이 사라졌다.”면서 “스타캐스팅이나 제작 규모가 아니라 콘텐츠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증명된 상반기”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이제는 캐릭터와 스토리 등 탄탄한 기획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성공하는 등 거품이 빠지는 것 같다.”면서 “과거 조폭 코미디 등 장르 쏠림 현상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데 따른 학습 효과로 다양한 장르 영화들이 시간 차 공격을 통해 관객들에게 식상함을 주지 않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전성기 이끈 3040세대의 힘 3040세대의 힘도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존 한국 영화는 20대 관객을 겨냥한 작품이 많았으나 30~40대 관객의 공감대를 끌어낸 작품이 많았고, 나아가 50대 관객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나 1990년대의 첫사랑 이야기인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1990년대 X세대를 주인공으로 3040세대 주부들의 애환을 감성적으로 그린 ‘댄싱퀸’(감독 이석훈)이 대표적이다. 자신만의 감성과 연출력으로 승부수를 띄운 3040세대 감독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배급사 쇼박스의 최근하 과장은 “이전 영화의 흥행 패턴은 20대 초반 관객이 입소문을 내주고, 30~40대가 관람하는 것이 주된 패턴이었다면 올 상반기에는 3040세대 예매량이 부쩍 늘었다.”면서 “X세대로 불리며 문화적으로 혜택을 받고 자란 3040세대가 문화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직장 동료와 함께 관람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등 관객층이 두꺼워졌다.”고 말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처럼 10~20대에 한정된 로맨틱 코미디가 30대 기혼자 이상으로 외연을 확장해 성공하는 등 영화를 다루는 3040세대 감독과 프로듀서들의 감각과 연출력이 동시대의 관객들과 잘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적 정서 점차 옅어져… 문제점은? 한국영화 흥행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신파 코드 등 한국 정서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홍콩과 마카오를 배경으로 한 ‘도둑들’처럼 가족애와 사회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흥행 공식도 깨졌다. 반면 지난해 ‘마이웨이’나 ‘퍼펙트게임’, 올해 ‘코리아’처럼 애국주의나 신파 요소가 들어간 영화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센터 황동미 연구원은 “관객들이 신파를 좋아한다는 믿음이 점차 깨지고 있고, 강요된 감동이나 감정 과잉을 내세운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 평론가는 “올해 흥행작을 보면 유머 코드가 포함된 작품이 많았고, 구성의 재미와 편집의 속도가 강조된 기획물이 많았다.”면서 “현실에 지친 관객들은 거대 담론을 다루는 데 피로감을 느끼고 영화 자체의 오락성을 즐기는 풍토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전성시대라고는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거대 자본의 시장 독과점과 영화 스태프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 등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황 연구원은 “한국영화 전성시대는 2000년대 중반 한국영화의 거품이 빠지면서 투자 제작이 경직된 이후 기획 강화, 제작비 절감 등을 거쳐 나온 결과”라면서 “아직도 한해 제작되는 영화의 3분의2는 10억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이고, 배우 개런티는 줄지 않는 반면 스태프 인건비는 2000년대 중반 수준에 머무는 등 영화계의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곽경택 감독 “장편으로 찍고 싶던 내 졸업작품이니 세트 비용 꾸러 다니면서도 버텼지”

    곽경택 감독 “장편으로 찍고 싶던 내 졸업작품이니 세트 비용 꾸러 다니면서도 버텼지”

    1989년 부산 양정의 53사단 헌병대. 훗날 음악평론가와 영화감독이 된 강헌(50)과 곽경택(46)은 군대 선후임으로 이곳에서 만났다. 현역들에게 구박받는 ‘18방’(18개월 복무 방위)의 동병상련, 문화·예술에 대한 공감대로 둘은 퇴근 후 부산 시장통을 돌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당연히 의사가 돼야 하는 줄 알고 의대(고신대)에 들어갔지만, 해부학 수업을 듣고 회의를 느꼈던 곽경택은 제대 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CF 연출을 공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해 보는 게 좋겠다.”는 영화운동 조직 ‘장산곶매’ 출신 강헌의 꾐(?)에 진로를 틀었다. 23년이 흘렀다. 중견 감독이 된 곽경택이 10번째 장편 ‘미운 오리 새끼’(30일 개봉)를 내놓았다. 1987년 부산 헌병대에서 ‘빡센’ 군생활을 하는 어리바리한 ‘6방’(6개월 방위) 전낙만의 얘기다. 고문을 당해 실성한 아버지 때문에 낙만은 단기사병으로 입대한다. 이발, 사진, 화장실 청소까지 도맡는 ‘잡병’ 신세. 하지만 기원을 하는 할아버지를 둔 덕에 바둑 실력은 끝내 준다. 헌병대장의 총애를 받지만,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신임 중대장은 방위도 영창 근무를 서라고 지시한다. 현역 고참들도 낙만을 못 괴롭혀 안달이다. 말년을 무사히 버텨 어머니가 사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려는 낙만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낙만의 모습에는 곽경택과 강헌의 ‘18방’ 경험이 촘촘하게 녹아 있다. “에피소드는 대부분 사실이다. 내가 이발병이고, 헌이 형은 바둑병이었다. 이발을 하다가 실수로 다른 병사의 귓불을 자르고, 그걸 닭 모이로 준 것도 사실이다. 나는 영창 근무를 섰고, 헌이 형은 영창에 끌려갔다. 낙만이 영창에서 만난 ‘행자’ ‘여호와’ 캐릭터 또한 모두 실재 인물이다.” 곽 감독의 작품 대부분은 거친 (부산) 사내들의 우정과 배신, 사랑 이야기다. ‘미운 오리 새끼’는 ‘똥개’(2003) 이후 처음으로 편안한 웃음을 준다. 하지만 제작 과정은 악전고투였다. 순제작비는 20억원 수준. 그나마 감독과 팀장급 스태프들은 개런티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쓴 돈은 10억원 남짓이다. 250억원이 투입된 그의 작품 ‘태풍’(2005)과 비교하면 10분의1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의 모든 투자사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서울 독산동 철거를 앞둔 군부대의 촬영 허가를 받아 놓은 터라 급해진 곽 감독은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부터 했다. 그는 “나중에 찍으려면 세트 비용만 10억원은 들 텐데 도리가 없었다. 며칠 찍다가 3000만~1억원씩 지인들에게 돈을 꾸러 다니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돈이 워낙 조금 들어갔기 때문에 크게 안 터져도 되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목표가 100만명 이하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웃었다(손익분기점은 60만명 정도다). 왜 꼭 지금이어야 했을까. “10억원짜리 세트에 시나리오까지 다 된 상황이다. ‘기적의 오디션’(곽 감독이 멘토로 출연한 SBS 신인배우 오디션)에서 만난 혈기왕성한 친구들이 있었다. (뉴욕대 졸업 작품 ‘영창이야기’를) 언젠가 장편으로 만들 거라면 지금이어야만 한다고 자신을 몰아갔다.”고 했다. 출연진 중 낙만 아버지를 연기한 오달수를 빼면 대부분 ‘기적의 오디션’ 출신이다. 주인공 낙만 역의 김준구는 물론 악질 중대장 역의 개그우먼 조혜련 동생 조지환, 행자 역의 문원주, 권하사 역의 박혜선 등은 ‘기적의 오디션’에서 찾아낸 원석이다. 장동건(‘친구’ ‘태풍’)·정우성(‘똥개’)·권상우(‘통증’) 등 충무로의 미남 배우들을 유독 아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기자분이 처지 바꿔 생각해 봐라. 어리바리한 낙만 역을 장동건·권상우가 하겠나. 하하하. 신인 배우만 쓰는 게 부담은 됐지만, 철저하게 캐릭터에 맞춰 이미지 캐스팅을 하고 실수만 줄이면 된다고 봤다.”는 게 곽 감독의 설명이다. 이어 “신인 배우들은 고맙다고 하는데 사실 내가 고맙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 조지환을 본 순간 살만 25㎏쯤 찌우면 내 기억 속 중대장과 딱 매치가 되겠더라.”고 했다. 전작 ‘통증’은 곽 감독이 처음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로 연출한 작품이다. 서울을 배경으로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는 남자(권상우)와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정려원)의 사랑 등 지금껏 그의 작품들에서 크게 벗어나 더욱 주목받았다. 평단은 곽 감독의 변신에 호의적이었는데 흥행(최종 관객 70만명)은 신통치 않았다. “나도 충격받았다. ‘친구’ 이후 쉬지 않고 영화를 찍은 건 크게 까먹지 않거나 본전은 했기 때문인데 100만명을 못 넘길 줄은 몰랐다.” 최근 1200만 관객을 넘어선 ‘도둑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 법했다. ‘친구’는 2001년 820만 관객(공식 통계는 서울 267만명)을 동원했다. 200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가 본격화된 걸 감안하면 요즘 1000만을 훌쩍 웃도는 기록인 셈. ‘친구’를 넘고 싶은 욕심은 없는 걸까. “이제 포기했다. 하하하. 흥행은 영화만 잘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배급 상황, 사회 분위기, 경쟁작과의 함수관계 등이 맞아떨어져야 나온다. 강형철(‘과속스캔들’ ‘써니’)이나 최동훈(‘타짜’ ‘전우치’ ‘도둑들’)은 대단한 감독이다.” 문득 궁금했다. 의사의 길을 외면한 걸 후회한 적은 없을까. 그는 “안철수 박사처럼 졸업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했다면 모르겠는데, 중도에 그만둔 건 부끄럽다. 하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아닌가. (미스터리 의학영화) ‘닥터K’ 망하고 나서 잠깐 후회한 것도 같다.”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줄거리 탄탄 영화화에 안성맞춤… 오래된 소설 재조명에 더 잘팔려

    줄거리 탄탄 영화화에 안성맞춤… 오래된 소설 재조명에 더 잘팔려

    밀고 당기고. 문학과 영화의 관계가 그렇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하고, 영화가 개봉되면 다시 원작소설이 더 팔린다. 어쨌든 요즘 소설은 영화와 불가분의 관계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문학은 영화에 마르지 않는 우물 같은 영감의 원천이 된다. 올해 문학-영화의 스타트는 ‘은교’로 시작했던 것 같다. 연초에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2009년 살림 펴냄)를 원작소설로 영화 ‘가비’가 제작됐지만 원작이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반면 2년 동안 5만부 정도 팔렸던 소설 ‘은교’(2009년 문학동네 펴냄)는 영화 개봉 전후로 15만부를 더 팔았다. 70대 노인의 10대 소녀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노년에 대한 성찰을 그려 비교적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파장을 일으킨 탓에 더욱 관심을 끌었었다. 멕시코 출신의 노벨문학수상자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원작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05년 민음사 펴냄)은 동명의 영화가 지난 7월 한국에서 개봉되자 원작소설 판매가 5배 이상 늘었다고 복합상영관 CGV는 밝혔다. 민음사 측은 16일 “영화 개봉 전에 월평균 100부 미만으로 판매되다가 7, 8월에 500~600권이 팔렸다.”고 밝혔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90세 노인의 사랑과 인생에 대한 고독과 성찰을 다뤘다는 점에서 ‘멕시코판 은교’이다. 영화는 15개 개봉관에서 1만 751명이 들었다. 출판사 RHK는 에드거 앨런 포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09년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장 출신인 마이클 코넬리가 편집한 포의 단편소설집 ‘더 레이븐’(RHK 펴냄)을 7월 말 영화 ‘더 레이븐’ 개봉에 맞춰 일부러 내놓았다. 동명의 영화 이름 덕 좀 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영화에 에드거 앨런 포가 나온다는 것 말고는 이 단편소설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탓에 RHK는 크게 재미를 못 보고 있다. 관객이나 독자들이 똑똑하게 무(無)상관을 읽은 것이다. 최종 관객은 15만명이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7월 말 국내 개봉 시기에 맞춰 RHK가 펴낸 ‘케빈에 대하여’는 출간 1개월 만에 1만부를 파는 등 판매실적이 좋은 편이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개봉 후 2만 2000여명의 관객이 들었으니, 단순히 산술적으로 따져 보면 영화를 본 절반이 책을 사서 읽었거나, 책을 읽은 사람들 전부가 영화를 관람한 것처럼 보인다. 라이오넬 슈라이버가 2003년 출간한 책으로, 대학살을 저지른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인 아들을 낳은 가족 이야기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던 엄마와 작은 괴물이 된 아들이 실패한 애착관계로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비극을 낳는다는 내용이다. RHK 측은 “영미소설은 많이 팔리면 5000권 정도인데 한 달여 만에 1만권을 팔았으니 베스트셀러 수준”이라고 말했다. RHK는 내년 2월에 국내 개봉할 영화 ‘호스트’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소설 ‘호스트’는 ‘트와일라잇’의 저자 스테프니 메이어의 또 다른 장편소설로 2009년 1월에 번역 출판됐다. 출판 무렵 같은 작가의 영화 ‘트와일라잇’이 개봉되면서 관심이 형성돼 3만 5000부 정도 판매했다. 동명의 영화 ‘호스트’가 내년 초 개봉되면 더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에미야 다카유키가 쓴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만물상자 펴냄)는 임업 기술자인 아사카와 다쿠미가 1914년부터 조선총독부 임업사업소에서 근무하면서 조선의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을 수집하고 조선민족미술관을 건립해 도자기를 기증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원작소설은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출판돼 200만부 넘게 팔렸고, 국내에서는 7월 영화 개봉에 맞춰 책이 출간됐다. 미국 순문학 출판사인 랜덤하우스 빈티지는 지난 7월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시공사 펴냄)가 출간 석 달 만에 2100만부가 판매되었다고 발표했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미국에서 2000만부 이상 팔리기까지 3년이 걸린 것을 떠올리면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영국에서도 J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를 제치고 영국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100만부 판매를 달성한 소설로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인터넷서점 YES24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출판 1주 만에 종합순위 2위를 차지하는 등 놀라운 속도로 판매되고 있다. 그 덕분인지 저자는 영화 판권으로 500만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다 빈치 코드’가 300만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원작료가 아닐 수 없다. ‘주부용 할리퀸 로맨스’라 불리는 여성 취향의 성인소설인데, 영문과 졸업생이자 가난한 아나스타샤와 완벽하게 잘생긴 27살의 성공한 CEO 그레이의 밀고당기는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청소년 시절에 하이틴로맨스류를 좋아한 독자라면 1권 50쪽을 넘기기도 전에 심장에서 반응을 할 것이다. ‘간질간질 너무 재밌다.’는 소리 없는 외침과 함께. 그렇다면 대박나는 영화의 원작소설들은 과연 원작료를 얼마나 받을까. 외국의 경우 작가의 지명도에 따라 원작료가 천차만별인 모양인데, 한국은 그와 상관없이 대체적으로 5000만원 수준이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너도 나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달려드는 바람에 원작료가 1억원으로 껑충 뛰고, 러닝개런티 5%까지 받기로 했다. 문소영·최여경기자 symu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고아출신 ‘한국의 폴포츠’ 성악가 최성봉

    [김문이 만난사람] 고아출신 ‘한국의 폴포츠’ 성악가 최성봉

    참으로 기구한 ‘남자의 일생’이 있다. 살아온 흔적과 기억, 경험이 어디로 갈까. 영화보다, 소설보다 더 진하다. 3살 때 이름도 없이 누군가에 의해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리고 2년 후 구타와 학대를 못 이겨 고아원을 탈출했다. 갈 곳이 없어, 정처 없이 걷다가 다다른 곳이 대전 용전동 유흥가의 중심지였다. 처음 만난 사람이 ‘껌팔이 형’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유흥가에서 껌과 박카스를 팔았다. 떠돌이 유기견처럼, 길고양이처럼 살았다. 잠은 주로 나이트클럽 건물 계단에서 잤다. 그것도 무슨 죄인지 나이트클럽 삐끼형한테 걸리면 얻어맞기 일쑤였다. 이럴 때면 버스 터미널로 피신해서 잤다. 이마저도 직원한테 들키면 공중화장실에서 잤다. 껌이 팔리지 않는 날이면 쓰레기봉투를 뒤져 먹다 남은 족발이나 통닭조각에 붙은 살점을 뜯어먹으면서 허기를 겨우 채웠다. 어쩌다가 껌을 팔아 모처럼 컵라면을 사서 공중화장실에서 먹는 경우가 있다. 이런 날이면 17~19살 된 형들에게 매맞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놓으라며 두들겨 팼다. 그래서 아무리 껌과 박카스를 팔아도 늘 주머니는 비고 퍼런 피멍이 가시지 않았다. 어느 날 포장마차 아줌마가 지어주는 ‘지성’이라는 이름으로 지내다가 14살 때 경찰서에 붙들려 갔다. 이때 지문조회를 해 보니 ‘최성봉’이라는 것이었다. 서글펐다. 스스로 인간이고 싶었다. 이후 어릴 때 꿈이었던 성악을 배우고 싶어 야학을 했다. 그리고 검정고시 시험을 치렀다. 대전예술고에 진학하면서 성악공부를 하게 됐다. 최성봉(23)씨. 지난해 tvN ‘코리아 갓 탤런트’ 프로그램에 출연, ‘넬라 판타지아’를 부르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연이 알려졌다. ‘한국의 폴 포츠’,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주인공에 비교하며 CNN, ABC, CBS, 뉴욕타임스, 타임,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 영국 로이터통신, 독일의 슈피겔 등 전세계 언론에서 그를 주목했다. ●14세때 경찰서 붙들려가 이름 ‘최성봉’ 처음 알아 요즘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바쁜 공연과 불우 청소년을 위한 희망의 전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최씨는 일주일에 4~5회 이곳에서 피아노를 치고 목소리를 가다듬는 연습을 한다. 만나자마자 그는 “오늘 연습하려고 했지만 어제 늦게 자는 바람에 좀 피곤하다.”고 말했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라이온스 세계대회에서 공연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관객이 3만여명 모인 공연장에서 ‘넬라 판타지아’를 불렀다고 했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객들을 상대로 또 한번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11일 런던올림픽 출정 한국 대표단 결단식 행사 때에는 애국가를 단독으로 부를 예정이다. 9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제1회 유튜브페스티벌 행사에 참가해 영국의 폴 포츠와 함께 역사적인 무대에 오른다. 여기에서 그는 릭 애슬리와 폴 포츠에 이어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하기로 돼 있다. 그만큼 예우를 해 주는 무대여서 벌써부터 설렌다고 한다. 최근에는 자서전 ‘무조건 살아 단한번의 삶이니까’를 펴냈다. 그는 글을 쓰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한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씨가 구술하고 작가가 썼다. 자연스럽게 책 얘기부터 나왔다. 얘기는 솔직하면서도 달변 수준이었다. “글은 15살 때 처음으로 더디게 배웠습니다. 글쓰는 게 지금도 너무 힘들어요. 문장으로 이어 나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요즘에는 고급단어를 좀 배우고 있죠. 책은 홍보가 덜 돼서 그런지 많이 안 팔린 것 같아요.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되기는 했지만…. 저는 외국에서 인기가 더 있으니까 영문판을 내면 더 팔리겠지요.(웃음) 유학도 가야 하고….” ●자신보다 안타까운 삶에 위로 받기도 지난 6월 21일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주최하는 ‘나눔 톡 콘서트’에서 불우 어린이를 상대로 ‘그대 아직 절망할 때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호스피스병원에서도 여러 차례 강연했다. 기구한 삶, 아픈 상처를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그를 초청하는 일이 많아졌다. “제가 강연할 때 마음이 약한 사람은 막 울어요. 대장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분이 저를 보면서 ‘이런 아이도 살았는데 나는 신세한탄만 했구나’라고 말씀하셨을 땐 조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거든요. 살려고 산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 살았거든요.” 강연 요청은 기업체 등에서도 많이 온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청와대에서 가서도 인생 역정을 강연했다. 그의 강연 만족률은 항상 1위로 기록된다. 아무런 메모나 원고도 없이 살아온 얘기만 솔직하게 늘어놓은 다음 ‘넬라 판타지아’로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강연과 공연을 하면서 돈은 얼마나 모았을까. “서초동에서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0만원짜리 원룸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를 아껴 주시는 분들이 마련해 준 공간이지요. 돈요? 솔직히 강연 나가면 돈받기 미안해요. 불우 청소년, 호스피스 병동 같은 데서 몇십만원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받으면 거기에 그냥 돈을 놓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대신 미국이나 스페인 등 해외공연할 때에는 개런티를 제대로 받는다고 했다. 사전에 출연료가 맞지 않으면 거절할 정도다. 이 대목에서 고민 하나를 털어놓는다. 국내외 공연을 할 때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혼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속사나 매니저를 두고 활동하고 싶은데 선뜻 결정할 수가 없다고 했다. 왜냐 하면 어릴 때부터 어처구니없이 당한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아서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을 해서 부인이 매니저하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주변에 있는 여자팬들은 대부분 연륜이 많은 분들이다.”라며 웃는다. 그러면서 힘겹게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부연한다. “거친 세상에 내던져져 생존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지난 시간 저는 나쁜 짓도 많이 했고 제가 상처받은 만큼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살아왔습니다. 막장 인생, 하류 인생으로 살아온 제가 하루아침에 다른 얼굴을 하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한다는 게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인생과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희망을 말하려고 합니다.” ●어릴적 당한일 수없이 많아 매니저 두기 결정 못 내려 고아 껌팔이에서 여러 매체에서 오르내리는 유명인이 된 지금, 다른 사람들이 ‘행운아’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는 지금도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살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은 희망의 전도사, 음악으로 세상과 교류하고 싶을 따름이란다. 잠시 피아노를 친다. 복잡한 클래식 악보는 못 읽지만 자신이 즐겨 부르는 노래, 성악 곡은 대부분 칠 수 있다고 했다. 15살 때 피아노를 처음 구경했다.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다가 어릴 적 어떤 노래를 좋아했느냐고 물었다. “어린 시절 껌을 팔다가 들었던 노래가 있습니다. 요즘도 혼자 부르고 있습니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입니다. ‘여자 친구가 전화 안 받아 삐졌네’라는 노래는 공감이 안 되는데 ‘사랑으로’는 지금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라는 가사가 말입니다.” 나머지 노래도 이어진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리라~’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음악을 통해 다리 하나를 건넌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절망이 있는 곳을 찾아가 노래를 부르는 일뿐입니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듯이….”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걸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최성봉은 누구 신인발굴 프로 출연… 동영상 사상 최단 5000만회 조회 서울 출생이다. 5살 때 고아원에서 도망 나와 10년 동안 대전 유흥가에서 껌팔이를 하면서 살았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유흥가 계단에서 잠을 잤다. 주변의 어른은 조폭, 양아치, 노점상인 등으로 말보다 욕을 먼저 배우면서 자랐다. 낮보다 주로 밤에 활동했다. 폭력을 견디며 유년기를 보냈다. 조폭에 쫓겨 야학으로 숨어들었고 기초 수급자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14살이라는 것, 이름이 최성봉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야학에서 한글을 익혔고 껌팔이 시절 들었던 성악에 매료돼 지금의 은사 박정소 선생을 만나게 됐다. 이때부터 신문팔이, 공사장 잡부 등으로 밥벌이를 했다.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까지 마친 다음 대전예술고에 진학했다. 친구들처럼 성악 레슨을 받고 싶어 밤샘 아르바이트로 레슨비를 벌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은 엄두도 못내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하다가 2011년 tvN ‘코리아 갓 탤런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첫 방송 동영상이 최단 기간 5000만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현재 국내외에서 많은 공연과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2년 제9회 촛불상을 수상했으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무조건 살아 단 한번의 삶이니까’라는 자서전을 펴냈다.
  • ‘하우스콘서트’ 10년… 새달 전국서 울려 퍼진다

    ‘하우스콘서트’ 10년… 새달 전국서 울려 퍼진다

    2002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박창수(48)는 특별한 실험을 시작했다. 서울 연희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을 개조해 ‘하우스콘서트’를 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없었다. 연주자는 관객의 눈빛과 감정을 느끼고, 관객은 연주자와 숨소리까지도 함께 했다. 연주자에게 개런티도 없었다. 관객에게 2만원씩을 걷고 그중 절반을 연주자에게 주는 것도 하우스콘서트의 독특한 시스템. 처음에는 곧 망할 거란 수군거림도 있었지만, 하우스콘서트의 매력은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번졌다. 지금껏 315회의 공연에 130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작은 행복을 맛봤다. 이후 하우스콘서트의 콘셉트를 따라한 수많은 공연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긴 건 물론이다. 하우스콘서트 측이 10주년을 기념, 새달 9일부터 15일까지 전국 21개 도시, 23개 공연장에서 ‘2012 프리, 뮤직 페스티벌’이란 제목으로 동시다발적인 무대를 꾸민다. 클래식과 국악, 대중음악 분야의 58개팀, 158명이 함께한다. 공연 장소를 보면 주최 측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충남 보령·논산·계룡, 충북 진천, 전북 김제·익산, 경남 산청·거제, 경북 안동·영덕, 경기 의정부·하남·광주 등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포커스를 맞췄다. 수도권과 스타급 연주자 중심의 대형무대로 쏠린 공연문화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실마리를 찾겠다는 얘기다. 하우스콘서트의 형식을 접목시켜 관객은 객석이 아닌 공연장 무대에 걸터앉아 연주자와 함께 호흡한다. 100~200명이 선착순으로 입장하기 때문에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김태형(피아노), 박승희(테너), 김민지(첼로), 강태환(알토 색소폰), 강은일(해금), 강산에(가수), 김가온(재즈 피아노), 드니 성호 얀센스(기타), 고상지(반도네온) 등 실력파 아티스트가 함께한다. 구체적 일정은 홈페이지(http://freemusicfestival.net/)를 보면 된다. 무료∼1만원.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인기작가 “고영욱 사법처리 미흡하면 내가…”

    인기작가 “고영욱 사법처리 미흡하면 내가…”

    그도 한때는 지독한 문제아였다. 이혼 후 집을 나간 어머니를 원망하며 마냥 삐뚤어져 있었다. 걸핏하면 친구들과 싸웠다. 20대 초반, 시각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마음마저 어두워졌다. 숱한 싸움, 노숙, 수십 차례의 자살기도…. 아무 이유 없이 행인을 때려 법정에 서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 돌보며 새 삶에 눈 떠 판사의 선처로 징역형 대신 받게 된 80시간의 사회봉사. 그 죗값이 한줄기 빛이 됐다.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새 삶에 눈을 떴다. 글쓰기 재능을 발견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8년 처음 발표한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는 곧 영화화된다. 영화 ‘비스티보이즈’의 원작인 ‘나는 텐프로였다’의 작가 소재원(29)씨 이야기다. 그는 “올여름 촬영이 시작되는데 개봉후 관객 한 명당 50원씩 받기로 한 러닝개런티를 아동성범죄 피해자에게 지원할 것”이라면서 “이 일을 계기로 나영이 아빠와 부자(父子)의 연을 맺었다.”고 말했다. 출판사 측도 50%의 인세를 보태기로 했다. 지난해엔 나영이 아빠와 ‘13세 미만 아동·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운동’에 나서 개정을 이끌어 냈다. ●조두순 사건 모티브 소설 올 여름 영화로 올해 중으로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할 계획인 소씨는 “재단이 만들어지면 직접적으로 아동과 장애인 등을 도울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현재는 왕십리 세왕병원과 협의해 무료로 생활보호대상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소씨는 도가니 사건을 계기로 아동성범죄에 관심을 가지며 올 2월 여고생 지수의 사연을 알려 후원자를 찾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2월 2일자 1면> 그는 스스로 ‘쓰레기’였다고 고백했다. 작가가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도 ‘사과’였다. 괴롭혔던 친구들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돈 벌고 나면 제일 먼저 너부터 죽이러 가려고 했어.”라며 응어리졌던 분노를 쏟아내던 친구들이 어렵게 마음을 열었다. 그 후 사회활동과 기부, 봉사에 뛰어들었다. 소설의 인세 대부분을 성폭력 아동과 사회적 약자에게 지원하고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봉사와 아동 성범죄 지킴이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교폭력 문제아가 재능기부 작가로 인생 역전한 셈이다. ●흐릿해지는 눈… “아직 지켜볼 일 많아” 소씨는 “특수렌즈로 교정한 시력 0.1의 눈은 점점 흐려지고 있지만 봉사로 새 삶에 눈뜨게 됐다.”면서 “세상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쓰는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사회 약자를 위해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영욱 사건을 보면서 아직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면서 “사법부 판단이 미흡하면 1인시위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내가 쓰는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사회약자 위해”

    “내가 쓰는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사회약자 위해”

    그도 한때는 지독한 문제아였다. 이혼 후 집을 나간 어머니를 원망하며 마냥 삐뚤어져 있었다. 걸핏하면 친구들과 싸웠다. 20대 초반, 시각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마음마저 어두워졌다. 숱한 싸움, 노숙, 수십 차례의 자살기도…. 아무 이유 없이 행인을 때려 법정에 서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 돌보며 새 삶에 눈 떠 판사의 선처로 징역형 대신 받게 된 80시간의 사회봉사. 그 죗값이 한줄기 빛이 됐다.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새 삶에 눈을 떴다. 글쓰기 재능을 발견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8년 처음 발표한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는 곧 영화화된다. 영화 ‘비스티보이즈’의 원작인 ‘나는 텐프로였다’의 작가 소재원(29)씨 이야기다. 그는 “올여름 촬영이 시작되는데 개봉후 관객 한 명당 50원씩 받기로 한 러닝개런티를 아동성범죄 피해자에게 지원할 것”이라면서 “이 일을 계기로 나영이 아빠와 부자(父子)의 연을 맺었다.”고 말했다. 출판사 측도 50%의 인세를 보태기로 했다. 지난해엔 나영이 아빠와 ‘13세 미만 아동·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운동’에 나서 개정을 이끌어 냈다. ●조두순 사건 모티브 소설 올 여름 영화로 올해 중으로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할 계획인 소씨는 “재단이 만들어지면 직접적으로 아동과 장애인 등을 도울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현재는 왕십리 세왕병원과 협의해 무료로 생활보호대상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소씨는 도가니 사건을 계기로 아동성범죄에 관심을 가지며 올 2월 여고생 지수의 사연을 알려 후원자를 찾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2월 2일자 1면> 그는 스스로 ‘쓰레기’였다고 고백했다. 작가가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도 ‘사과’였다. 괴롭혔던 친구들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돈 벌고 나면 제일 먼저 너부터 죽이러 가려고 했어.”라며 응어리졌던 분노를 쏟아내던 친구들이 어렵게 마음을 열었다. 그 후 사회활동과 기부, 봉사에 뛰어들었다. 소설의 인세 대부분을 성폭력 아동과 사회적 약자에게 지원하고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봉사와 아동 성범죄 지킴이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교폭력 문제아가 재능기부 작가로 인생 역전한 셈이다. ●흐릿해지는 눈… “아직 지켜볼 일 많아” 소씨는 “특수렌즈로 교정한 시력 0.1의 눈은 점점 흐려지고 있지만 봉사로 새 삶에 눈뜨게 됐다.”면서 “세상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쓰는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사회 약자를 위해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영욱 사건을 보면서 아직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면서 “사법부 판단이 미흡하면 1인시위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8쌍둥이 낳은 엄마 ‘옥토맘’ 결국 포르노 배우 변신

    지난 2009년 8쌍둥이를 출산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나디아 슐먼(36)이 결국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었다. 미국에서 ‘옥토맘’(Octomom)으로 불리는 미혼모 슐먼은 이미 6명의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체외수정으로 8쌍둥이를 출산, 총 14명의 자식을 가져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나 슐먼은 최근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해 아이들과 살고 있는 자택이 경매에 넘어갈 예정이었으나 포르노 영화 출연 수입으로 일정이 연기됐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슐먼은 최근 LA에서 포르노 영화의 첫 촬영을 마쳤으며 내용은 혼자서 자위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슐먼은 “이번 촬영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촬영하는 내내 내가 섹시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으며 영화 관계자들은 “정말 연기가 자연스럽고 멋져 보였다.”고 호평했다. 이번 영화 출연으로 슐먼이 얼마나 개런티를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관계자들은 1만 달러(약 1100만원)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슐먼은 그간 양육비를 번다는 이유로 누드 화보를 촬영했으며 복싱 이벤트에도 나서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최근에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포르노영화 출연으로 또다시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뉴스팀 
  • 장나라 “대표 동안요? 저도 주름이 ^.^…노래에 대한 갈증 너무 풀고 싶었죠”

    장나라 “대표 동안요? 저도 주름이 ^.^…노래에 대한 갈증 너무 풀고 싶었죠”

    “아휴, 저도 가까이서 보면 주름이 자글자글해요(웃음).” 국내 대표 동안 연예인 장나라(31). 오죽하면 ‘동안 미녀’라는 제목의 드라마 주인공까지 맡았을까. 최근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여전히 풋풋하고 솔직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먼저 4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가수로서 국내 활동을 재개한 소감부터 물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섰더니 정말 긴장이 많이 됐어요. 아무래도 공백 기간에 대한 부담감일 수도 있고요.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관객 수는 굉장히 많지만 거리가 멀어서 덜 긴장됐거든요. 한국에서는 객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더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요.” 신곡 ‘너만 생각나’로 음악 프로그램의 첫 녹화를 했을 때 떨려서 제대로 한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었다는 장나라. 너무 긴장한 탓에 자신의 목소리가 끊어지는 것도 몰랐다고 하니 오랜만의 국내 무대가 상당히 압박감을 준 모양이다. 하지만 음원이 발표된 지난달 26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그녀의 이름과 노래 제목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팬들은 반가운 기색을 표하고 있다. “사실 저 혼자 반가우면 어떡할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 노래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다가갔으면 했거든요. ‘너만 생각나’는 단순한 멜로디의 발라드로 가사도 굉장히 직설적이에요. 연인과 헤어진 분들께 위로가 돼도 좋을 것 같고…. 저도 나이를 먹는지 뭔가 와 닿는 것이 있어서 공감하면서 불렀어요.” 2001년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로 데뷔해 ‘나도 여자랍니다’ ‘4월 이야기’ ‘사랑하기 좋은 날’ 등을 히트시켰던 장나라. 그는 배우로 한국과 중국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가수로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갈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국내에서 가수 활동을 하려고 준비했었는데 작품을 하게 되면서 앨범 발매 시기가 맞지 않았어요. 사실 제가 가수로서 비음도 많고 다른 가수들에 비해 소리도 약한 편이지만 매 앨범마다 장점을 꾸준히 살려가는 게 좋아요. 제가 폭발력 있는 느낌이 없고 목소리가 여려도 감성이 많이 담긴 편이거든요.” 이번 디지털 싱글 앨범에는 가수 알렉스와 함께 부른 ‘바로 너였어’도 수록돼 있다. ‘너만 생각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봄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달달한 곡이다. 장나라는 “두 곡 모두 들으실 때 편안한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를 이야기할 때 중국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장나라는 중국에서 ‘띠아오만 공주’ ‘순백지련’ ‘철면가녀’ 등 총 6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한류 스타로 입지를 굳혔다. 어느새 한국에서 출연한 작품 수와 똑같아졌다. 한류 스타 대부분의 고민처럼 한국에서의 공백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한국과 중국 활동의 분배를 잘하고 싶었는데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다 보니 (활동이) 좀 치우친 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계속 있었다고 안 잊힌다는 보장은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중국 활동을 하면서 감사한 일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아요. 중국에 가기 전에는 세상을 보는 눈이 좀 편협했어요. 작은 어려움이나 불만이 생기면 내가 제일 슬프고 모든 짐을 다 진 것 같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했었죠. 그렇지만 넓은 곳에서 일하면서 성공하기도 하고 큰일을 겪으면서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장나라는 중국에서 울화통이 치밀고 속상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 만족스럽다면서 웃었다. 그녀는 “처음 중국에 갔을 때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라서 개런티 등의 문제와 관련해 속기도 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내 매니저를 사칭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최근 중국 드라마에 높은 개런티를 받고 출연하는 한국 배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그녀의 표정이 순간 진지해졌다. “개런티 부분은 거품도 많지만 어느 정도 현지 중국 배우들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한국 뉴스가 실시간으로 중국에 전해지기 때문에 한국 배우들이 광고나 드라마에서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 것이 그분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거든요. 잘못하면 한류가 일방적인 자국 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어요. 저는 한국, 중국, 일본의 대중문화가 어울림이 없다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반대로 교류가 잘되면 할리우드가 부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장나라는 자신 역시 처음 중국에서 드라마를 촬영할 때 팀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배우들도 있었고 악의적인 중국 언론의 보도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 말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이 최고”라며 웃는 장나라는 올해와 내년에 국내 활동에 주력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드라마 ‘동안미녀’의 성공이 발판이 됐다. 이후 시놉시스도 많이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동안 미녀’의 첫 회를 보고 눈물을 터뜨렸어요. 혹시 저 때문에 드라마가 안 될까 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다행히 작품이 잘돼서 감사했고 혼자 하는 연기가 아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연기를 배웠어요. 이후에 ‘동안 미녀’와 비슷한 캐릭터가 많이 들어오긴 해요. 그런데 저는 조금씩만 다르게 한다고 해도 만족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죠. 데뷔 2~3년 차에 진짜 창피한 건 다 해봤기 때문에 이제 두려운 연기도 없고요.” 장나라가 지금까지 연예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인 연극배우 주호성씨의 공이 컸다. 한때 그녀를 소속사 대표인 아버지에게 기대는 ‘파파걸’로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장나라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다른 아버지와 딸처럼 투닥투닥할 때도 있지만 아버지가 없었다면 아마 중국에서 일을 못 했을 거예요. 아버지는 처음에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 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해서 이제는 계약도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어요. 참 독하고 똑똑하신 분이죠. 저는 행동력 없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아버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어린 학생들이 “저 누나 처음 보는데, 누구야.” 하는 대화를 듣고는 웃음이 났다는 장나라. 그녀의 30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사실 20대부터 이지적이고 커리어우먼의 상징인 30대가 되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니 현실은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8춘기까지 겪었죠. 나 자신을 추스르기도 힘든데 연애도 부담스럽고…. 하지만 전 일이 좋고 즐거워요. 조금 더뎌도 앞으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윤제균 “관객은 변심할지 모르는 애인같죠”

    윤제균 “관객은 변심할지 모르는 애인같죠”

    영화감독 윤제균(43). 그에게 지난 8개월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2009)로 충무로의 스타 감독 반열에 올랐지만, 지난해 제작을 진두지휘한 국내 첫 3D 블록버스터 ‘7광구’의 흥행 저조로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올해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댄싱퀸’으로 다시 재기한 그는 최근 이명세 감독과 손잡고 새 영화 ‘미스터 K’의 제작에 들어갔다. 누구보다 ‘비싼 수업료’를 치른 윤 감독이 배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21일 서울 논현동 JK필름 본사에서 윤 감독을 만나 영화와 흥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8개월간 낙차가 심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영화를 준비하고 만들고 개봉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결과에 따라서 부침이 생겼다. 지난해 마음으로나 일로나 상처를 받았고, 올해는 ‘댄싱퀸’으로 다시 힘을 얻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14편의 영화를 하면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사실 한 시즌에 100억원대 블록버스터 두편(‘퀵’과 ‘7광구’)을 개봉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변명 같기는 하지만, 너무나 힘든 도전이었다. ‘퀵’은 손익 분기점은 넘겼지만, ‘7광구’의 경우 3D라는 부분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힘이 들었다. 테크놀로지에 집중하다 보니까 드라마에 문제가 생겼다. 관객의 눈높이는 ‘아바타’에 맞춰져 있는데, 한정된 예산으로 따라잡으려니 힘들었다. 욕심이 과했던 것 같기도 하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도전해야 하는데, 3D 기술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SF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실패학이라는 학문도 있듯이 ‘7광구’를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드라마 즉 스토리의 중요성이다. 스케일이나 규모, 화제성 등 이런 것은 다 두 번째, 세 번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토리의 힘에 달려 있다는 원론적인 것이다. 이런 것을 영원히 놓치고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당근을 많이 받았는데 ‘7광구’를 채찍이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생각에는 전세계에서 우리 관객들의 수준이 제일 높고 까다로운 것 같다. 완성도가 담보되지 않으면 예산이나 스케일이 커도 절대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지난해 하반기에 300억원을 들인 대작 ’마이웨이‘도 흥행에 실패하는 등 영화계에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위기론이 제기됐는데. -스토리를 바탕으로 테크놀로지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나라 영화인들이 그런 우를 또다시 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 영화의 드라마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한국 영화가 세계로 시장을 넓히기 위해서는 테크놀로지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것은 신인감독이나 신생 제작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나 역시 어떤 대의명분을 가지고 도전했던 것이다. 앞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워할 부분도 있지만, 한국 영화의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통풍에 걸릴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는데. -아직도 과로하거나 힘이 들면 (통풍으로 생긴) 관절의 염증으로 걷기가 좀 힘들다. 영화에 대한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인신공격성 비난은 참 힘들었다. 앞으로도 영화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나 비평은 얼마든지 수용하지만, 인터넷상의 악의적인 글들은 가족 등 주변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신중했으면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실패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올해 ‘댄싱퀸’은 뒷심 저력을 발휘하며 흥행에 성공했는데, 비결은. -어느 정도 될 줄은 알았는데, 경쟁작들도 많은 상황에서 400만명을 넘길 줄은 몰랐다. 관객들이 고맙다. SNS를 통해 대중적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뒤로 갈수록 영화의 파워가 더 세진 것 같다. 영화는 스토리와 공감대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 결국 관객을 속일 수 없는 것 같다.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관객은 어떤 존재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관객은 언제 어떻게 변심할지 모르는 애인 같다. 아내는 결혼하면 남편의 잘못을 눈감아주고 봐주는 것도 있지만, 애인일 때는 마음도 자주 바뀌고 조금만 속임수를 쓰면 귀신같이 알아낸다. 평소 늘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관객은 신이자 심판자인 것 같다. 요즘 관객들에게 감독이나 배우, 제작사 등이 중요하지 않지 않다. 오직 영화 자체로만 평가를 내린다. 일반 관객은 감독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존재다. →새 영화 ‘미스터K’의 제작자로서 대선배인 이명세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 -‘미스터K’의 출발은 4년 전이다. ‘해운대’ 직후 이명세 감독을 만났는데, 흥행에 대해 목말라했다. 후배 영화인으로서 어릴 적부터 존경해 온 감독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최근 태국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작품을 해서 그런지 상당히 준비를 많이 했고 열정적이더라. 영화는 한국판 ‘트루라이즈’로 남편이 첩보원인지 모르는 평범한 주부가 해외에서 우연히 남편을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첩보 액션물이다. →할리우드 프로젝트 ‘템플 스테이’의 준비는 어느정도 되고 있나. -현재 ‘템플 스테이’의 시나리오를 1년 넘게 준비 중이다. 평범한 중산층 미국인 가족이 한국에 템플 스테이를 하러 왔다가 미스터리한 세계로 빠지는 가족 어드벤처 영화다. 할리우드 진출이라기보다 한국의 기획력과 연출·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뚫어보겠다는 목적 의식이 더 크다. 제작비는 배우 개런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최소화해서 찍으려고 한다. →윤제균은 어떤 감독인가. -무뚝뚝한 것 같지만, 사실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다. 내 영화 현장에서는 한번도 큰 소리가 난 적이 없다. “권위는 무욕에서 나온다.”는 김난도 교수의 말처럼 진정한 카리스마는 목소리가 아니라 배우들이나 스태프와 진실하게 소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따뜻한 가족같은 스타일을 추구하고, 인간적인 유대감과 신뢰를 우선시한다. 그의 스마트폰 메모장은 새 영화의 소재로 가득 차 있다. 때문에 이전에 쓰던 휴대전화들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윤 감독은 “술 마시는 것도 즐겁지 않고, 영화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면서 좋은 감독과 배우들을 발굴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흥행은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움과 익숙함이 잘 어우러진 영화로 사람들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그의 도전은 지금 현재진행형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화려한 한류 뒤 나는 배곯는 가수다

    화려한 한류 뒤 나는 배곯는 가수다

    지난달 9일 흥미로운 증권사 리포트가 발표됐다. LIG투자증권 정유석 애널리스트는 국내 3대 연예기획사의 하나인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의 5인조 아이돌 그룹 빅뱅이 올해 콘서트로만 380억원을 비롯해 음반·음원 120억원, 광고 50억원 등 총 780억원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YG의 또 다른 축인 4인조 여성 아이돌 2NE1의 올 매출액은 콘서트 150억원, 음반·음원 50억원 등 총 300억원으로 추정됐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청년뮤지션 생활환경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인디 음악인 221명의 생활수준을 설문조사했더니 고정수입이 월평균 69만원이었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2012년 55만 3354원)에도 못 미치는 월소득 50만원 이하도 38%나 됐다. 200만원이 넘는 사람은 9%에 불과했다. 77%의 인디 음악가들이 음악활동 외에 강습·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현 정부 들어 짙어진 사회 양극화의 그늘이 대중음악계, 나아가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동남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 남미까지 한류와 K팝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지원과 언론의 관심은 아이돌 그룹 위주의 K팝에만 쏠리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1년에 20개 레이블을 선정해 1000만원을 직접 지원하는 등 창작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정책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창작지원은 실종된 상황이다. 당장 영화를 찍고, 음반을 녹음할 돈이 없는데 좋은 작품을 만들어 오면 유통과 홍보를 돕겠다는 성과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형기획사들의 대대적인 투자와 더불어 음악적 깊이와 폭을 더한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음반·음원시장을 잠식한 것도 비슷한 시기다. 경력 12년차인 고구려밴드의 리더 겸 보컬리스트 이길영(40)씨는 요즘 KBS의 밴드 오디션프로그램 ‘톱밴드 시즌 2’(시즌 1은 신인밴드 발굴 프로그램이었지만 올해부터 기성밴드에도 문호 개방) 출전을 고민 중이다. 골수팬들이 듣는다면 뒷목을 잡을 일이다. 객원보컬로 덴마크에서 열리는 월드뮤직페스티벌에도 참가했고, 일본과 타이완 등에서도 공연을 했던 그다. 2000년 강원도 속초에서 결성된 고구려밴드는 우리네 정서를 제대로 담아낸 록밴드다. 국악기 한두 개를 섞어 놓고 퓨전 운운하는 뮤지션들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스스로의 음악을 ‘(정선)아라리록’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그들의 음악이야말로 ‘한류’의 참뜻에 부합할지도 모른다. 2004년 창작국악경연대회 금상을 받으면서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인정받았다. 정규앨범 두 장을 비롯해 세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등 상업적으로 ‘뜬’ 밴드를 논외로 한다면, 홍대 밴드 중 살림살이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금은 지자체 행사에서 300만~400만원의 개런티를 받는 단계까지 올라왔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가장으로, 생활인으로 버텨 내기란 쉽지 않다. 음악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멤버당 연간 1000만~15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이씨는 최근 고향 정선의 정선문화회관 음악감독으로 옮겼다. 물론 4대 보험이 되는 정규직은 아니다. 다른 멤버들은 서울에서 레슨을 하거나 세션 등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이씨는 “지난 10년, ‘아라리록’을 하는 밴드로 명예를 지키자는 약속은 지켰는데 지금은 정말 힘들다.”면서 “음반·음원시장을 아이돌과 대형기획사가 독식하는 상황에서 공중파를 타지 못한 뮤지션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오죽하면 우리가 ‘톱밴드’ 출전을 고민하겠나. (경연의) 중간단계까지 버티면 지금보단 낫겠다 싶은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커버스토리] 밥은 먹고 예술 하십니까 꿈만 먹고 눈물 흘립니다

    [커버스토리] 밥은 먹고 예술 하십니까 꿈만 먹고 눈물 흘립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다섯 명이 2007년 국악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깜깜했다. 연습 공간을 구하는 것부터 힘에 겨웠다. 겨우 음악학원을 빌렸다. 사용시간은 학원수업이 끝난 오후 6시부터 새벽까지로 한 달에 30만원이었다. 가끔 공연하고 받는 출연료가 수입의 전부였던 터라 이 돈마저도 빌려 내야 할 시기가 닥쳤다. 근근이 무대를 찾고, 공연을 하고, 음악을 만들며 기량을 다지기를 2년. 한 공연기획자를 만났다. 프로젝트 그룹이 아니라 아예 고정 그룹을 결성했고, 자비를 털어 음반을 냈다. 조금씩 출연 제의가 늘었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 충무아트홀의 상주예술단체로 지정됐다. 지난 11일에는 이 공연장 대극장에서 연출가 박근형, 무용인 이원국과 정영두, 국악인 백경우 등 쟁쟁한 국악인들과 공연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국악그룹 ‘앙상블 시나위’ 얘기다. 앙상블 시나위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나도….”를 목표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영화] 명문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A(32)씨가 영화판에 뛰어든 건 10년 전. 촬영감독을 꿈꾸며 2002년부터 조명부 막내로 현장에 입문했고 3년 전 촬영부로 옮겼다. 충무로 체계는 여전히 ‘도제식’이다. 보통은 촬영감독 밑에 팀장 격인 퍼스트, 그 아래 세컨드와 서드 등 4명이 한 팀을 이룬다. 퍼스트를 가장으로 둔 가족과 비슷하다. 퍼스트가 제작사와 ‘통계약’을 맺고 ‘짬밥’(경력)에 따라 스태프에게 돈을 나눠 준다. A씨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단순작업부터 시작해 지금은 세컨드까지 올라갔다. 이 정도면 한 달에 300만원 안팎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일감이 없다는 것. 게다가 촬영 준비단계에는 테스트 촬영 몇 번이 전부여서 다른 일도 못 하고 수입도 없다. 지난해 서드급으로 영화 두 편에 참여했다. 언제 촬영이 끝날지, 언제 쉴지 예측 불가능한 현장에서 주 60~70시간을 일하며 7개월을 보냈다. 지난해 총수입은 1600만원 남짓이다. 틈틈이 홍보영상 촬영 등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버텨 낼 재간이 없다. “야외촬영은 해가 떨어지면 끝이니까 하루 12시간만 일하면 됩니다. 그나마 행복하죠. 세트촬영은 짐작도 안 돼요. 3~4일 밤샘하면 쉬고, 장마가 겹치면 쭉 쉬는 게 휴일인 거죠. ‘통계약’이라 휴일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는 불가능하고요. 꿈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버티죠. 결혼하고 애가 있는 선배들은 생활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그래요. 나이 들어서 전직을 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뮤지컬] 요즘 가장 주목받는 뮤지컬계도 명암이 엇갈린다. 뮤지컬 주연급 배우의 출연료는 회당 200만~300만원. 유명해지면 쑥쑥 오른다. 지난해 배우 조승우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하며 회당 1800만원대 개런티를 받아 화제가 됐다. 한 해 공연되는 뮤지컬은 100여편에 이르지만 이런 경우는 몇 명에 불과하다. 1~3차로 나눠 받는 출연료를 1차만 받고 끝나는 사례도 많다. 주연급이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은 배우들의 생활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09년부터 2년간 세 개의 작품에 출연한 B(27)씨는 총출연료를 따져 보니 740만원이었다. 그나마 140만원은 아직 받지 못했다. 2년 내내 공연과 연습에 매달렸지만 연봉은 300만원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래서 작품하는 틈틈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뮤지컬 경력 7년차 앙상블(코러스) 배우 C(31)씨는 회당 5만~7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때 기준이라 연습 기간엔 수입이 없다. 게다가 흥행이 안 돼 출연료를 아예 못 받은 일도 허다하다. “생계가 어려워 낮에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서빙을 한 적도 있어요. 주변 동료 중에는 밤에 대리운전하는 배우도 있죠. 무대에 선다고 생활이 화려한 것만은 아니죠.” [무용] 무용수들은 병이 친구요, 반창고가 피붙이다. 높이 뛰어 올라 착지하는 동작이 많은 공연이면 무릎과 허리엔 반창고투성이다. 현대무용을 하는 D(35)씨는 한 시간에도 십수 번 몸을 뒤척인다. “어떤 움직임에만 익숙해져 한 자세로 앉아 있으면 몸이 쑤신다. 이럴 때마다 다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니 자연히 ‘은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남들은 한창 일할 30대에 말이다. “현대무용 하는 사람들은 한국무용 하는 사람들이 부럽고, 발레 무용수들은 또 우리를 부러워하죠. 발레는 30대 중반만 돼도 은퇴 얘기가 나오거든요. 한국무용은 일흔을 앞두고도 무대에 오르잖아요.” E(29)씨는 이따금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무대에 선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달 수입 50만원인, ‘예술하는 사회인’으로 몇 달을 버텼다.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무용 강사를 하고, 가끔 지인을 통해 공연 제의가 들어오면 한 달 가까이 연습하고 이틀 무대에 올라 40만원을 받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1시간 30분에 5만~10만원을 받지만, 수업과 공연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공립 무용단에 들어가면 기본급에 무대수당 등을 받아 금전적인 상황은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무용수 생명이 길지 않은 현실을 따져 보면 ‘노후대책’ 따위는 꿈일 뿐이다. “그래도 목표가 있고 내 실력을 믿으니까 버티고 있어요. 아직은 젊다는 거 하나로 밀고 나가는 거죠. 하지만 설 수 있는 무대가 점점 줄면 그 이후에는 어떡해야 할까요.” [미술] 미술은 단독작업이다. 스태프 같은 집단이 없다. 해서 작업은 더 어렵고 지원은 더 간절하다. 판매시장이 형성된 회화 쪽은 그나마 낫다. 영상, 설치, 퍼포먼스 작업은 판매가 제로에 가깝다. 동시대미술이라 각광받지만 수입은 제로인 셈이다. F(47)씨도 마찬가지. 나름대로 미술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다. 그럼에도 작업에 한번 착수하려면 몇 달간 돈을 모아야 한다. F씨는 “공연 분야는 티켓 수익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록 적자라도 일정 수익이 보장되겠지만 미술 쪽은 그렇지 않다.”면서 “나 역시 작품 판매로 인한 수입은 거의 없기 때문에 평균 수입이 얼마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들쭉날쭉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늘 마이너스 인생이다. 거기다 작가들은 작업실 유지비용이 들어간다. “남는 땅이나 건물 같은 것을 작업실로만 쓰게 해 줘도 한결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F씨는 그나마 자기 사정은 낫다고 했다. F씨는 “그래도 미술계에서 쌓아 온 인지도 때문에 특강, 원고 청탁, 심사위원 활동 같은 것이 있어 간간이 수입이 들어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작품 경력인 포트폴리오의 단절이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세계의 변화와 발전을 보여 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목숨과도 같은데 돈 문제에 치이다 보니 흐름이 끊겨 버립니다. 사실 미술 쪽 사람들에게 돈 문제는 생계보다 포트폴리오의 단절이라는 문제가 더 크죠.” 시인 90%가 출판 업무·학원 강의로 생계 [문학]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출신 시인 G(32)씨는 올해부터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면서 월수입이 100만원 안팎을 왔다갔다할 만큼 올랐다. ‘88만원 세대’보다 못한 무명 시인으로 어떻게 혼자의 힘으로 서울 생활을 꾸려 왔나 돌아보면 자신이 대견하기만 하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출신은 훈장일 뿐 고봉밥을 주지는 않는다. 시인들의 원고료는 편당 계산된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 대여섯 개 전통 문예 계간지는 편당 10만원을 준다. 한 번 게재될 때 3~5편이 실리니 30만원에서 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날은 운수대통한 날이다. G씨는 “시문학 잡지들이 많아 시인들의 창작 횟수는 많지만, 시가 게재돼도 고료를 주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두 편을 3만원에 퉁 치는 곳도 있고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을 권유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전업 시인’은 전업 소설가와 달리 거의 불가능하다. 시인의 90%가 출판사에서 일하거나 학원강사를 하는 등 시간제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 최근 문예창작과가 많아지면서 논술과 창작 지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첫 시집을 내려면 대부분이 등단 5년 이상은 돼야 한다. 소설가는 시인보다는 좀 낫다. 원고지 70~120장의 원고를 쓰고 보통 100만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조금 팔리는 성싶으면 두세 군데 출판사가 선계약하는 등 출판이 더 원활하고, 원고 청탁도 더 낫다고 G씨는 덧붙였다 문소영·최여경·조태성·김정은기자 symun@seoul.co.kr
  • [열린세상] 미래 준비를 위한 조급함은 어떨까/모철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

    [열린세상] 미래 준비를 위한 조급함은 어떨까/모철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

    그리스로부터 촉발된 유럽의 재정위기가 전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2002년 유로화 도입과 함께 시작된 유럽의 경제통합이 이제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유로존 국가들의 통화정책을 유럽중앙은행(ECB)에서 행사하면서 단일통화체제로 출범한 거대 경제공동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통합 이전인 1990년대 초반, 유럽공동체 주창자들은 궁극적 통합을 위해서는 회원국가 간의 언어와 관습 등 사회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의 국민성을 역설적으로 그린 한쪽짜리 카툰을 배포했는데 그 표현이 재미있다. 내용인즉, “완벽한 유럽인은 이탈리아인처럼 절제력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인처럼 조직적인 사고를 가져야 하고, 스페인인처럼 겸손해야 하고, 독일인처럼 유머가 있어야 하고, 영국인처럼 요리를 잘해야 하고, 프랑스인처럼 운전을 잘해야 하고….” 필자는 오랫동안 파리에서 근무하면서 프랑스인들의 운전 솜씨에 감탄한 바 있다. 그들의 국민성처럼 예술적인 운전이라고 해야 할까. 좁은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가 하면, 차도 앞뒤로 촘촘히 일렬 주차를 하는 주차의 달인이기도 하다. 신호가 바뀌었을 때 조금이라도 주춤하면 영락없이 뒤차의 경적 세례를 받는다. 앞서 카툰에서 프랑스인의 운전을 언급한 것도 급하고 곡예에 가까운 그들의 운전기술을 빗댄 것이리라. 그러나 일상 업무로 만나는 프랑스인들은 운전에서 보여주는 조급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리의 국립오페라극장의 극장장은 통상적으로 임기 종료 2년여 전에 결정된다. 임기는 6년이고 3년 연장이 가능하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니콜라 조엘 극장장은 2006년 말에 내정되어 2009년 가을 정식 취임 때까지 본인의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내정 기간 동안 작품을 위한 기획부터 캐스팅, 예산까지 전적인 지원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로써 새로운 극장장이 부임하더라도 국립오페라극장은 중단 없이 세계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 이러한 사전 준비 시스템은 프랑스 내 국립극장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상 극장장들의 임기는 5년이고, 많은 경우 연임을 한다. 프랑스 한국문화원장으로 일하는 동안 그곳 문화예술기관과 공동 작업을 하면서 놀란 점도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그들의 안목과 계획성이었다. 한국영화 회고전을 개최하려면 최소 2, 3년 전부터 기본적인 합의하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방안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충분한 기간 동안 철저한 기획과 마무리를 거쳐 관객들이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단기간에 실행에 옮길 방법은 프랑스 내에서는 없다. 우리 문화예술기관들도 사전 준비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노력하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극장장(예술감독)들의 임기가 3년으로 상대적으로 짧고 연임도 쉽지 않다. 국공립의 경우 정치적인 영향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프랑스처럼 사전에 충분한 기간을 두고 임명한다는 것은 현재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현직 예술감독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볼 수 있는 작품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 기획이 필요한 작품들을 누가 책임 있게 밀고 나갈 수 있겠는가. 이 같은 문제는 해외 공연에서도 발생한다. 단기간에 공연을 준비하려니 무엇보다 유수한 공연장 확보가 어렵다. 해외 공연장은 2, 3년 전에 기획이 모두 끝난 탓이다. 아울러 개런티, 공연 일정 등 공연 조건에서도 불리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 사회의 조급한 성정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경계해야 한다. 그 이면에는 결과에 대한 조급함과 즉흥적이고 자기편의적 태도가 도사리고 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문화예술은 단기간에 물을 준다고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시간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미래를 준비하는 미리미리의 조급성으로 치환하면 어떨까. 한 사회가 진정으로 위대한 예술가를 갖기 위해서는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내를 갖고 지켜보는 사회적 성숙함이 요구된다.
  • 특별 게스트 관객몰이

    특별 게스트 관객몰이

    ‘출연 배우 이외에 깜짝 게스트 배우들을 덤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주연배우들 외에 스타급 특별 게스트들이 출연,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는 뮤지컬 작품들이 줄을 잇고 있다. 뮤지컬계 훈남 훈녀 김산호, 윤공주, 정상훈, 김지현이 주연배우로 무대에 서는 뮤지컬 ‘카페인’은 배우와 제작진의 인맥을 동원,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들이 대거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눈길을 끈다. 특별 게스트들은 매회 1명씩 등장하며 세 가지 장면에서 감초 역할을 한다. ‘애드리브송’ 열창은 물론 게스트 소개 시간, 멀티맨 등 활약이 상당하다. ‘카페인’ 특별 게스트 명단을 보면 제작진과 배우들의 섭외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유명 작품의 주연배우들은 죄다 모아 놓았기 때문이다. 뮤지컬 ‘헤드윅’의 대표 스타 조정석, 송용진은 물론 뮤지컬 ‘영웅’의 정성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이석준, ‘늑대의 유혹’의 성두섭, ‘쓰릴 미’의 정상윤, ‘김종욱 찾기’의 이창용, 이외에도 고영빈, 김동현, 김대종 등 뮤지컬 팬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 배우들이 특별 게스트로 ‘카페인’에 참여한다. 뮤지컬 ‘카페인’의 한 관계자는 “특별 게스트의 명단을 공연 일주일 전에 사전 공지한다.”면서 “관객들이 뮤지컬 주연배우만큼이나 게스트로 무대에 서는 스타들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스타 배우들이 게스트로 무대에 서는 만큼 티켓 판매량도 늘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카페인’에 앞서 작품 속 특별 게스트 열풍을 이끈 것은 한국공연 10년을 맞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이다. 최근 공연에선 ‘YB밴드’의 윤도현, 임재범의 그녀로도 유명한 뮤지컬 배우 차지연, 뮤지컬 ‘서편제’의 이자람, 배우 조여정과 주지훈, ‘오페라의 유령’과 ‘지킬앤하이드’에서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을 보여 준 뮤지컬계의 디바 김소현, ‘모차르트’의 박은태, ‘에비타’의 정선아, ‘넥스트 투 노멀’의 한지상 등 유명 배우들이 잇따라 게스트로 출연,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호평을 받았다. 특별 게스트들은 노 개런티로 출연하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들의 섭외에 있어 뮤지컬계의 대모로 불리는 이지나·이유리 연출의 인맥이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관계자는 “특별 게스트들의 출연이 티켓 판매에 상당한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매회 새로운 게스트가 출연, 신선한 재미를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안성기 “사법부 부담 이해하지만 반대 생각도 있을 것”

    안성기 “사법부 부담 이해하지만 반대 생각도 있을 것”

    “사법부가 껄끄러워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있다면 다르게 생각하는 쪽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요.”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 안성기(60)는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와 만나 “이 영화의 흥행은 기존 상업영화의 흥행과 다른 의미가 있다. ‘워낭소리’처럼 완성도가 있으면 저예산 영화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영화의 성과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안성기는 영화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에 대해 영화의 주제와 예술적인 가치가 조화를 잘 이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워낙 민감한 이슈라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적인 완성도가 뛰어나지 않다면 주목받을 수 없죠. ‘부러진 화살’은 규모는 작은 영화지만 연출과 촬영·편집은 물론 연기 등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는 순제작비 5억원이 투입됐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계 안팎의 관심도 흥행 수익에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흥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많은 분이 봐 주셔서 고맙다.”면서도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흥행 수익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작품에 노개런티로 출연해 제작비를 낮췄다. 다만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을 경우 러닝개런티 개념의 보너스를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러진 화살’은 5년 전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교수 김명호씨가 재판장의 집을 찾아가 석궁을 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토대로 만들었다. 영화는 석궁으로 위협만 했을 뿐 화살을 쏘지 않았다는 김 교수 측과 피 묻은 옷을 증거로 내밀며 테러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부장판사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갈등이 고조된다. 안성기는 이번 영화에서 온화한 이미지를 벗고 깐깐한 원칙주의자인 김 교수 역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논란의 복판에 있는 인물이고, 기존에 제게 있던 원만한 이미지 때문에 부담은 됐지만 철저히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했습니다. 권력에 대항하는 개인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동안 수없이 이야기된 소재가 아닐까요. 워낙 시나리오가 완벽했고 충분히 영화적으로 만들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기에 충실히 임했습니다.” 그는 “영화 속 김 교수는 법은 아름다운 것이라면서 법대로 하라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변호사는 ‘법은 쓰레기’라고 말한다.”면서 “이 대목이 사회의 모순점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꼬집었다. 사법부에서 ‘영화가 사법 테러를 미화한다.’며 반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렸기 때문에 사법부가 껄끄러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보는 쪽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쪽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속 김 교수의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라는 대사가 화제가 됐다고 하자 “평소 나는 욕도 잘 안 하는 성격인데 다소 센 대사들이 나와 연기하기가 힘들었다.”며 웃었다. 아울러 ‘부러진 화살’은 최근 화제가 됐던 ‘도가니’와는 색깔이 다른 영화라며 선을 그었다. “과거에 얽매인 영화라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한 영화입니다. 엔딩 장면에서 김 교수가 밝게 웃는 것도 힘들지만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면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쥬얼리·임정희 등 참여…‘사랑의 열매’ 뮤직다큐

    쥬얼리·임정희 등 참여…‘사랑의 열매’ 뮤직다큐

    유명인들의 재능 기부로 제작되는 ‘사랑의 열매’ 뮤직다큐멘터리(이하 뮤직다큐)가 꿈과 희망을 전달한다. 이번 ‘사랑의 열매’ 뮤직다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김성식(14)군의 이야기를 담는다. 김성식군은 초등학교 5학년때 재능을 알아봐 준 은사님의 권유로 씨름을 시작했다. 2년도 채 안되 전국을 제패한 소식, 부모 없이 조부모와 함께 살게 된 배경, 가족에 대한 소중함 등 시골 마을 씨름천재 성식군의 인간적인 모습과 가슴 아픈 사연 등이 담긴다. 지난 9일부터 충북 청주와 음성에서 진행된 뮤직다큐 촬영현장에선 추운 날씨 속에도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는 김성식군을 위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을 진행했으며, 성식군은 중학생답지 않은 기특함으로 촬영 내내 스태프들을 감동시켰다. 이날 김성식군은 인터뷰를 통해 “이만기와 강호동 같은 최고의 씨름 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전했다. 또 ‘사랑의 열매’ 뮤직다큐는 유명인들의 재능기부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수 김범수, 아이유, 그룹 제국의 아이들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오세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인기 4인조 걸그룹 쥬얼리와 가수 임정희, 작곡가 박덕상, 작사가 김희선, ‘O15B’ 객원보컬 출신 가수 치열 등이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지난 20일 서울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뮤직다큐 주제가를 녹음한 쥬얼리 멤버들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어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주제가 ‘STEP’은 하하의 ‘너는 내 운명’, 지아의 ‘수호천사’ 등을 작곡한 유명 작곡가 박덕상 씨와 보컬트레이너 및 작사가로 활동 중인 김희선씨가 공동으로 만든 곡으로 파이팅 넘치는 노랫말과 경쾌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곡이다. 최근 ‘불후의 명곡2’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는 가수 임정희도 뮤직다큐에 내레이션으로 목소리를 기부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였다. 사랑의 열매 측은 “뮤직다큐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이웃들, 장애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자세한 사항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홈페이지 (www.chest.or.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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