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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최장수 총리인데…왜 일본인들은 아베 총리 국장에 반대하나

    역대 최장수 총리인데…왜 일본인들은 아베 총리 국장에 반대하나

    “단기간에 이렇게나 서명이 모인 것은 국장에 국민의 불만이 얼마나 압축됐는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르포라이터 가마타 사토시는 지난 5일 도쿄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아베 신조 전 총리 ‘국장’(國葬) 반대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가마타를 비롯해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각각 주도한 아베 전 총리 국장 반대 온라인 서명 운동 결과 28만명이 국장 중단을 요구했다. 특히 우에노 교수 등이 주도한 서명 활동은 지난달 23일 시작해 2주 동안 15만명 넘는 인원이 국장 반대에 서명했다. 오는 27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 국장이 10일 현재 2주가량 남았지만 일본 내 반대 여론은 갈수록 들끓고 있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2~4일 유권자 1075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전 총리 국장 실시를 결정한 데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반대)는 56%로 ‘평가한다’(찬성)의 38%를 크게 웃돌았다. 이 신문이 지난달 같은 내용으로 여론조사를 했을 때 국장 찬성 의견은 49%, 반대 의견은 46%로 찬성의견이 근소한 차이로 많았다.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에서 국장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을 뒤집은 데다 반대 응답률도 과반을 넘었다. 정치 활동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일본에서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대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반대 의견이 터져 나오고 있다. 헌정 사상 8년 8개월의 최장수 총리인 데다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암살이라는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국장에 일본인들의 반대가 그토록 거센 것일까.일본에서 아베 전 총리 국장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세금’ 문제가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6일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국장 비용으로 약 2억 5000만엔을 올해 예산 일반예비비에서 지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외국 인사 접대비나 국장 경비 등의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 대규모 세금이 들어가는 데 대한 비판이 우려돼 감춘다는 지적이 나오자 일본 정부는 지난 6일 뒤늦게 최종 내역을 공개했다. 앞서 2억 5000만엔 이외에 경비 및 외국 인사 접대비 등으로 14억엔가량이 들어가면서 총 16억 6000만엔(약 162억원)이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뒤늦게 최종 비용을 공개했지만 국장으로서는 패전 후 두 번째인 데다 역대 일본 총리의 장례식으로는 가장 큰 비용이 투입되면서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더욱 쏟아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8일 중의원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국장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대해 “지난날 여러 행사와 비교해서도 타당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최초 국장이었던 1967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국장 비용은 1804만엔이었고 전액 국비로 치러졌다. 2020년 정부와 자민당의 합동장으로 치러졌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장례 비용은 1억 9000만엔이 들어갔다. 당시 지나치게 고액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정부와 자민당이 절반씩 부담했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국장 반대가 큰 데는 세금 문제도 있지만 그가 국장을 치를 만큼의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도 많다. 요시다 전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재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국장이 치러졌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아베 전 총리 국장을 강행하면서 그가 최장수 총리를 지내며 국정 운영에 이바지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과오는 더 많다. 아베 전 총리가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의 ‘모리토모·가케학원 스캔들’, 국가 예산이 들어간 정부 행사를 사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으로 수사가 진행됐던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 등 각종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태다. 도쿄신문은 6일자 사설에서 “국장에 대한 근거 법령이 없음에도 국가권력의 최고 기관으로 입법부인 국회를 거치지도 않고 내각의 독단으로 정한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국장에 대한 일본 내 뿌리깊은 거부감도 아베 전 총리 국장을 반대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국장의 성립 메이지국가와 공신의 죽음’이라는 책을 쓴 미야마 준이치 주오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국장은 천황(일왕) 아래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태평양전쟁 시절에는 전쟁 동원의 장치로 이용됐다”며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 국장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진 않겠지만 장래에 정권에 악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아베 전 총리 국장에 일본 국민이 반대하는 데는 때아닌 국장을 통해 과거 군국주의 사회로 회귀시키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깔렸다는 이야기다. 특히 아베 전 총리 국장이 가까워질수록 반대 여론이 더 많아지는 데는 그의 암살 원인이었던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뿐만 아니라 자민당 내 상당수 의원이 이 종교와 유착 관계가 있었다는 점이 끊이지 않고 드러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0일 이 종교와 관련 있는 각료를 배제하는 등 조기 개각을 단행하며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하지만 새롭게 임명된 각료의 상당수도 이 종교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가 수습되지 않고 있다. 또 자민당은 8일 이 종교와 접점이 있는 의원이 전체 379명 가운데 약 절반인 179명이라고 발표했다. 자민당은 앞으로 이 종교와 일절 관계를 갖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8일 이 종교와 접점이 깊은 아베 전 총리를 국가적으로 추모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해당 종교와의 관계는 본인이 사망한 지금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 통일교 논란에 결국 고개 숙인 기시다 “솔직하게 사과드린다”

    통일교 논란에 결국 고개 숙인 기시다 “솔직하게 사과드린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1일 일본 내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논란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코로나19 완치 후 31일 기자회견을 개최한 기시다 총리는 통일교 논란이 있는 각료들에 대해 언급한 뒤 “국민으로부터 (통일교에 대한) 우려와 의혹을 받고 있다”며 “자민당 총재로서 솔직하게 사과드린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중 통일교에 대한 원한으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된 이후 일본에서 통일교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아베 전 총리를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는 어머니가 종교 활동에 심취해 1억엔(약 10억원)이 넘는 돈을 헌금하면서 이 종교에 대한 원한을 키워왔다. 아베 전 총리가 이 종교 행사에 축전을 보내고 상당수의 정치인이 이 종교와 접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이 커져갔다. 특히 기시다 총리가 통일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고려해 지난 10일 조기 개각을 단행하며 분위기 전환에 나섰지만 새롭게 임명된 각료의 상당수가 이 종교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가 수습되지 않고 있다. 급기야 이 종교 논란은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에도 타격을 줬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7~28일 유권자 998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47%로 집계됐다. 지난달 조사보다 10% 포인트 급락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9%로 지난달보다 14% 포인트 급등했다. 특히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지난해 10월 내각 출범 이후 최고치였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통일교에 대한 부실 대응이 꼽힌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총리의 통일교 논란 대응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65%로 긍정적인 평가(21%)보다 3배 이상 많았다.
  • 통일교 덫 걸린 기시다, 지지율 한달 새 10%P 급락

    통일교 덫 걸린 기시다, 지지율 한달 새 10%P 급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한 달 사이에 10% 포인트 급락했다. 지난달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대한 원한 때문에 암살됐고 자민당 의원 상당수가 이 종교와 접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시다 총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지지율 하락의 늪에 빠진 상황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27~28일 유권자 998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47%로 집계됐다고 29일 밝혔다. 지난달 조사보다 10% 포인트 추락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9%로 지난달보다 14% 포인트 급등했다. 특히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지난해 10월 내각 출범 이후 최고치였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통일교에 대한 부실 대응이 꼽힌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총리의 통일교 논란 대응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65%로 긍정적인 평가(21%)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기시다 총리는 통일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고려해 지난 10일 조기 개각을 단행했다. 그럼에도 새롭게 임명된 각료의 상당수가 이 종교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자민당 총재를 맡고 있는 기시다 총리는 지난 26일 당 차원의 실태조사에 나섰다.
  • 기시다 내각서 첫 야스쿠니 참배… 외교부 “유감”

    외교부가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이 지난 13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14일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부 각료가 참배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뒤 기자들과 만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생각하며 일본의 평화,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결의를 다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비로 공물인 ‘다마구시료’(비쭈기나무에 흰 종이를 단 것)를 냈고 방명록에는 ‘중의원 의원 니시무라 야스토시’라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참배는 15일 태평양전쟁 패전일을 앞두고 진행됐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이 지난해 10월 발족한 뒤 현직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시다 총리와 각료들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열린 예대제(제사)에 직접 참배하지 않고 공물을 봉납했다.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 소속으로 지난 10일 개각에서 재입각했다. 지난해 태평양전쟁 패전일엔 기시 노부오 당시 방위상 등 각료 5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지만 공물을 봉납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에서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역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 줄 것을 촉구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 외교부, 일본 각료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깊은 실망과 유감“

    외교부, 일본 각료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깊은 실망과 유감“

    외교부가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이 지난 13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14일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부 각료가 참배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뒤 기자들과 만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생각하며 일본의 평화,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결의를 다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비로 공물인 ‘다마구시료’(비쭈기나무에 흰 종이를 단 것)를 냈고 방명록에는 ‘중의원 의원 니시무라 야스토시’라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참배는 15일 태평양전쟁 패전일을 앞두고 진행됐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이 지난해 10월 발족한 뒤 현직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시다 총리와 각료들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열린 예대제(제사)에 직접 참배하지 않고 공물을 봉납했다.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 소속으로 지난 10일 개각에서 재입각했다. 지난해 태평양전쟁 패전일엔 기시 노부오 당시 방위상 등 각료 5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지만 공물을 봉납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에서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역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 줄 것을 촉구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 “아베 생각” 일본 각료 야스쿠니신사 참배, 외교부 “실망”…기시다 내각서 처음

    “아베 생각” 일본 각료 야스쿠니신사 참배, 외교부 “실망”…기시다 내각서 처음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이 13일 오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발족한 후 현직 각료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이 처음이다. ● “아베 신조 전 총리 생각” 그는 다마구시(玉串·비쭈기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료를 개인 돈으로 냈으며 ‘중의원 의원 니시무라 야스토시’라고 방명록에 적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참배를 마친 후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생각하면서 일본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 소속으로 지난 10일 개각 때 각료로 다시 기용됐다. ● 외교부 “깊은 실망과 유감”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이날 “우리 정부는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부 각료가 참배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시다 내각 출범 후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에 예대제(例大祭·제사)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기시다 총리와 각료 중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들이 없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를 비롯한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 기시다, 야스쿠니 공물 봉납 앞서 일본 여야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12월 7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국회 초당파 의원 모임인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은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이는 2019년 10월 18일 이후 2년 2개월만의 일로, 코로나19로 중단된 바 있다. 기시다 총리는 같은해 10월 한국과 중국 등 이웃 국가의 반발을 고려해 참배 대신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NHK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명의로 ‘마사카키’라는 공물을 봉납했다. 마사카키는 신단이나 제단에 바치는 비쭈기나무를 말한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총재 후보로 나섰던 같은해 9월 말 총리가 된 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지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상황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답변을 유보한 바 있다.
  • [포착] 일본이 또…야스쿠니 신사 참배한 日 각료, 기시다 내각 후 최초

    [포착] 일본이 또…야스쿠니 신사 참배한 日 각료, 기시다 내각 후 최초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 산업상이 13일 오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교도통신, NHK 등 현지 언론의 이날 보도에 따르면, 니시무라 경산상은 오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떠올리며 일본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결의를 다졌다”고 말했다.니시무라 경산상은 다마구시(玉串·비쭈기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단 것)료를 사비로 지출했으며, 방명록에는 '중의원 의원 니시무라 야스토시'라고 적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지난해 10월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발족한 뒤 현직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니시무라 경산상은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 소속으로, 지난 10일 개각 당시 각료로 다시 기용됐다. 그동안 기시다 총리와 내각 각료들은 지난해 10월 추계예대제(제사)와 올해 4월 춘계예대제 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고 공물을 봉납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두고 주변국과 꾸준히 갈등  한편,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 일본 수도 도쿄도 지요다구 구단키타에 세워진 일본 최대 규모 신사다.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민간인 등 246만 6000여 명이 합사돼 있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를 비롯한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포함돼 있다.야스쿠니 신사에 총리와 일본 각료들이 참배하는 것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것과 같아 비난을 받아왔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그 어떤 전통 종교와도 연관이 없으며, 전범을 미화하는 장소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비난을 꾸준히 쏟아냈고, 특히 역대 총리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주변국과 외교 문제로 번지기도 했다. 예컨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취임 직후인 2001년 8월 13일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방문해 참배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취임 1년 만인 2013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한 바 있다.
  • 기시다, 각료 19명 중 14명 교체… 통일교 내쳤지만 아베파 품어

    기시다, 각료 19명 중 14명 교체… 통일교 내쳤지만 아베파 품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0일 단행한 2차 개각과 자민당 간부 인사의 핵심은 ‘안정’이었다. 각료 19명 가운데 14명을 교체했지만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우대하고 장관 경험이 있는 의원들을 재기용하는 등 기시다 총리가 장기 집권을 위해 개혁보다는 정권 안정에 방점을 둔 인사를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날 임명된 각료 19명의 파벌을 보면 아베파(93명)와 3위 파벌인 아소파(49명)가 각각 4명, 2위인 모테기파(54명)와 4위인 기시다파(44명)가 각각 3명으로 파벌 간 균형을 맞췄다. 지난해 10월 기시다 1차 내각 출범 당시와 비교해 보면 아베파와 기시다파의 각료 수는 그대로였고 아소파는 1명 늘고 모테기파는 1명 줄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아베파) 방위상과 하기우다 고이치(아베파) 경제산업상 등 14명의 각료가 교체됐다. 기시 방위상은 국가안전보장담당 총리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야시 요시마사(기시다파) 외무상과 마쓰노 히로카즈(아베파) 관방장관 등 5명의 각료는 유임됐다.새로 교체된 9명의 각료 가운데 5명은 과거 장관직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다. 무파벌인 하마다 야스카즈 전 방위상이 다시 방위상에 임명됐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이들을 2차 내각에 기용했다. 아베 전 총리의 ‘입’으로 활약했던 다카이치 사나에(무파벌)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경제안보담당상에, 고노 다로(아소파) 자민당 홍보본부장은 디지털상에 각각 임명됐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간부 인사도 균형에 초점을 뒀다. 아소 다로(아소파) 부총재, 모테기 도시미쓰(모테기파) 간사장은 유임됐다. 총무회장에는 엔도 도시아키(무파벌) 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선거대책위원장에는 모리야마 히로시(모리야마파) 총무회장 대행을 배치하는 등 비주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지난해 10월 31일 중의원 선거에 이어 지난달 10일 참의원 선거도 승리로 이끈 기시다 총리는 향후 3년간 대형 선거가 없어 별 탈 없이 집권이 가능하기에 이번 개각에서 본인만의 색깔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물가 상승, 코로나19 확산, 아베 전 총리 국장 찬반 논란 등의 요인으로 내각 지지율이 하락하자 모험을 하기보다는 안정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또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치권과의 유착 관계로 사회적 비판이 큰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와 관련이 있는 각료 7명을 교체했다. 기시 방위상을 비롯해 스에마쓰 신스케 문부과학상, 하기우다 경제산업상 등이 가정연합과의 관계를 인정했다. 다만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하기우다는 당의 정책을 책임지는 핵심 보직인 정조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민당과 가정연합은 조직적인 관계가 없다”며 “(자민당 소속) 의원들에게 (가정연합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엄정하게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 아베파 배려하고 통일교 쳐낸 기시다 2차 내각…장기집권 노린다

    아베파 배려하고 통일교 쳐낸 기시다 2차 내각…장기집권 노린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0일 단행한 2차 개각과 자민당 간부 인사의 핵심은 ‘안정’이었다. 각료 19명 가운데 14명을 대폭 교체했지만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우대하고 장관 경험이 있는 의원들을 재기용하는 등 기시다 총리가 장기 집권을 위해 개혁보다는 정권 안정에 방점을 두고 인사를 실시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날 임명된 각료 19명의 파벌을 보면 아베파(93명)와 3위 파벌인 아소파(49명)가 각각 4명, 2위인 모테기파(54명)와 4위인 기시다파(44명)가 각각 3명으로 파벌 간 균형을 맞췄다. 지난해 10월 기시다 1차 내각 출범 당시와 비교해보면 아베파와 기시다파 각료 수는 그대로였고 아소파는 1명 늘고 모테기파는 1명 줄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아베파) 방위상과 하기우다 고이치(아베파) 경제산업상 등 14명의 각료가 교체됐다. 기시 방위상은 국가안전보장담당 총리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야시 요시마사(기시다파) 외무상과 마쓰노 히로카즈(아베파) 관방장관 등 5명의 각료는 유임됐다. 교체된 9명의 각료 가운데 5명은 과거 장관직을 경험해본 인물들이다. 무파벌인 하마다 야스카즈 전 방위상이 또 방위상에 임명됐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이들을 2차 내각에 기용했다. 아베 전 총리의 ‘입’으로 활약했던 다카이치 사나에(무파벌)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경제안보담당상에, 고노 다로(아소파) 자민당 홍보본부장은 디지털상에 각각 임명됐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간부 인사도 균형에 초점을 뒀다. 아소 다로(아소파) 부총재, 모테기 도시미쓰(모테기파) 간사장은 유임됐다. 총무회장에는 엔도 도시아키(무파벌) 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선거대책위원장에는 모리야마 히로시(모리야마파) 총무회장 대행을 배치하는 등 비주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지난해 10월 31일 중의원 선거에 이어 지난달 10일 참의원 선거도 승리로 이끈 기시다 총리가 향후 3년간 대형 국정 선거가 없어 별탈 없이 집권이 가능하기에 이번 개각에서 본인만의 색깔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물가 상승, 코로나19 확산, 아베 전 총리 국장 반대로 내각 지지율이 하락하자 모험을 하기보다는 안정감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개각 전날 기자회견에서 “전후 최대급의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의 결속이 지금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또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치권과의 유착 관계로 사회적 비판이 큰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와 관련이 있던 각료 7명을 교체했다. 기시 방위상을 비롯해 스에마쓰 신스케 문부과학상, 하기우다 경제산업상 등이 가정연합과의 관계를 인정했다. 다만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하기우다는 당의 정책을 책임지는 핵심 보직인 정조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요미우리신문은 “하기우다의 임명은 아베파를 존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특파원 칼럼] 아베의 나라는 바뀔 수 있을까/김진아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아베의 나라는 바뀔 수 있을까/김진아 도쿄특파원

    지난 4일 오후 6시쯤 일본 참의원(상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일·일한의원연맹 합동간사회의 취재를 끝내고 건물을 나서는데 수십 명의 일본인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시위 풍경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무엇이 그들을 화나게 해서 거리로 나오게 했는지 궁금해 잠시 멈춰 살펴봤다. 아베 신조 전 총리 국장(國葬) 반대 시위였다. 일본에서 국장은 일왕이나 큰 업적을 가진 이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이 치러지면 패전 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이래 55년 만이다. 국장은 법률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각의(국무회의) 결정으로 이뤄진다. ‘국장의 성립 메이지 국가와 공신의 죽음’이라는 책을 쓴 미야마 준이치 주오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국장은 천황(일왕) 아래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는데, 태평양전쟁 시절에는 전쟁 동원의 장치로 이용됐다”며 “지금 일본 사회에서 국장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장래에 정권에 악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밝혔다. 많은 일본인이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일본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국장 반대 의견이 많다. 그중 눈에 띄었던 건 산케이신문 여론조사였다. 산케이신문과 FNN이 지난달 23~24일 유권자 11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국장 찬성 의견은 50.1%였고, 반대는 46.9%였다. 반대보다 찬성이 많았지만 산케이신문이 일본에서 가장 보수적인 매체이고, 이 신문 조사에서 보수의 상징이었던 아베 전 총리 국장 반대 의견도 많이 나왔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일본 보수층에서 아베 전 총리 국장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은 건 7월 8일 그의 예상치 못한 죽음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냉정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베 전 총리 국장을 밀어붙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헌정사상 8년 9개월의 역대 최장수 총리였다는 점을 국장 거행의 근거로 강조했다. 하지만 과오도 많다. 그의 대표적인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왔고, 미국ㆍ러시아와 돈독한 관계를 맺은 대신 한국ㆍ중국과는 최악의 관계에 놓이게 했다. 모리토모·가케학원 스캔들,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 등 각종 개인 비리 의혹은 아직도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그를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는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모친과 가정을 망가뜨렸다며 이와 관련이 있던 아베 전 총리를 노렸다. 그리고 그 가정연합은 일본 정치권과 유착 관계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과오를 덮고 과거를 미화하며 국가가 개인에게 추모를 강요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국장 반대 여론으로 터져 나온 셈이다. 죽은 사람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고,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싫어하는 데다 단체주의 습성이 강한 일본에서 이처럼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이제 공은 기시다 총리에게 던져졌다.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대한 불만, 코로나19 대책, 고물가 등으로 내각 지지율이 지난해 10월 출범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고 있다. 국장으로 분열된 일본의 민심을 수습하고자 하는 기시다 총리의 첫 해결책이 10일 개각에서 드러날 예정이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일본에도 변화의 흐름이 올지 한일 관계 격변 속 한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
  • 야스쿠니 신봉 ‘아베의 오른팔’, 日자민당 정책 사령탑으로

    야스쿠니 신봉 ‘아베의 오른팔’, 日자민당 정책 사령탑으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자민당 총재)가 10일 정부 개각과 집권당 간부 인사를 단행할 예정인 가운데 여당 정책을 총괄할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에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하기우다 고이치(59) 경제산업상을 임명할 것이라고 NHK와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이 9일 일제히 보도했다. 정조회장은 여당의 정책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자리로, 입헌내각제인 일본의 당정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크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9월 총재에 당선된 뒤 역시 아베 전 총리의 측근이었던 다카이치 사나에(62) 중의원 의원을 정조회장에 임명했다. 두 사람은 총재 선거에 함께 출마해 경쟁했던 사이여서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지만, 기시다 총리는 최대 파벌인 ‘아베파’ 중심의 정치역학 구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카이치를 정조회장에 앉힐 수밖에 없었다.실제로 다카이치 정조회장은 방위비 대폭 증액 등 강경 일변도의 주장을 펴 기시다 총리,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과 갈등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을 거두면서 기시다 총리는 다카이치를 내보낼 수 있는 정치적 여유를 갖게 됐다. 일본 언론은 “다카이치의 자리에 하기우다를 앉혀 아베파를 배려하는 한편 당정협의를 원활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차기 정조회장에 내정된 하기우다 경산상도 아베 전 총리의 오른팔로 불렸던 강경파다. 정치 평론가 아리마 하루미는 “하기우다는 아베 총리가 ‘하얗다’라고 말하면 검은 것도 하얗다고 말할 정도로 충성심이 두텁다”고 평한 바 있다.자민당 내에서도 골수 우익 보수파로 분류되는 그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에 대해 “역할이 끝났다”고 부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도 참배해 왔다. 경산상에 앞서 문부과학상으로 재직하면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내용의 교과서 개편을 주도하기도 했다.
  • 아베 사망 한 달… 日의 ‘뒷북 경호’

    아베 사망 한 달… 日의 ‘뒷북 경호’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참의원 유세 도중 피격돼 사망한 지 한 달이 된 8일 일본 정부가 사건을 계기로 드론과 방탄유리 등을 활용한 경호 방식을 새롭게 도입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NHK에 따르면 일본 경시청(경찰청)은 선거 유세 등 많은 청중이 모이는 야외에서 요인 경호 시 드론 활용을 검토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가 지난달 8일 피격될 당시 사방이 전부 노출된 곳에서 참의원 지원 유세를 하면서 경찰이 암살범인 야마가미 데쓰야의 접근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총기 규제가 엄격한 일본이지만 사제총이 아베 전 총리 암살에 사용되면서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따라 경시청은 미국 등에서 대중 연설 시 요인 주변으로 방탄유리를 설치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방탄유리의 무게가 상당해 선거 유세 시 기동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건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국장’(國葬)이 다음달 27일 예정된 가운데 여론은 ‘국장 반대’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민영방송 TBS 계열 JNN이 지난 6일 유권자 11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장 ‘반대’ 의견은 45%로 ‘찬성’(42%) 의견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장 반대 여론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국면 전환을 위해 10일 개각 및 자민당 간부 인사를 단행하는 가운데 당 4대 간부 중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을 교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교체 대상인 3명은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으로 꼽힌 다카이치 사나에 정무조사회장과 아베파 소속인 후쿠다 다쓰오 총무회장, 엔도 도시아키 선거대책위원장 등이다.
  • 유탄 맞은 아베파, 통일교 연관 인사… 개각 때 낙마 위기

    유탄 맞은 아베파, 통일교 연관 인사… 개각 때 낙마 위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는 10일 실시하는 개각 및 자민당 간부 인사에서 당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배제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전날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히로시마 원자폭탄 전몰자 77주기 위령식·평화기념식에 참석한 후 기자회견에서 “나 자신은 해당 단체(통일교 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각에 새로 지명되는 각료뿐만 아니라 현 각료와 부대신(차관) 등도 포함해 해당 단체와의 관계를 확실히 점검해 그 결과를 밝히게 하고 (가정연합과의 관계를) 적절한 형태로 재검토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일본 내에서는 여야 관계없이 정치권과 가정연합의 연관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총으로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범행 동기로 어머니가 가정연합에 거액을 기부해 가정이 엉망이 됐고 가정연합 관계자를 암살하기 어려워 이와 관계가 있던 아베 전 총리를 노렸다고 진술했다. 이후 가정연합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가정연합과 연관이 있는 정치인들이 폭로됐는데 상당수가 아베파에 속했다. 현직 각료 중에는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을 비롯해 스에마쓰 신스케 문부과학상, 아베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등이다. 정치권과 가정연합의 연관성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아베파를 등용하기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자민당 내 4위 파벌 수장이자 보수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보수 강경파인 아베 전 총리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아베 전 총리가 아베파를 완전히 배제하면 최대 파벌의 불만이 폭발해 당내 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NHK는 “기시다 총리가 아소 다로 부총재(3위 아소파),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2위 모테기파)과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아베파)은 유임시키면서 정권의 골격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기시다 “나와 통일교는 관계없어”…10일 日 개각 때 아베파 물 먹나

    기시다 “나와 통일교는 관계없어”…10일 日 개각 때 아베파 물 먹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는 10일 실시하는 개각 및 자민당 간부 인사에서 당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배제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전날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히로시마 원자폭탄 전몰자 77주기 위령식·평화기념식 참석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개각 때 일본 내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이하 가정연합)와의 관계를 반영하겠다고 했다. 그는 “나 자신은 해당 단체(가정연합)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각에 새로 지명되는 각료뿐만 아니라 현 각료와 부대신(차관) 등도 포함해 해당 단체와의 관계를 확실히 점검해 그 결과를 밝히게 하고 (가정연합과의 관계를) 적절한 형태로 재검토하도록 지시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재 일본 내에서는 여야 관계없이 정치권과 가정연합의 연관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총으로 암살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범행 동기로 어머니가 가정연합에 거액을 기부해 가정이 엉망이 됐고 가정연합 관계자를 암살하기 어려워 이와 관계가 있던 아베 전 총리를 노렸다고 진술했다. 이후 가정연합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가정연합과 연관이 있는 정치인들이 폭로됐는데 상당수가 아베파에 속했다. 현재 기시다 내각에 있는 4명의 아베파 각료 가운데 3명은 가정연합과의 관계를 인정했다.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을 비롯해 스에마쓰 신스케 문부과학상, 아베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등이다. 이 가운데 기시 방위상은 건강 문제 등도 있어 물러나는 게 확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아베 전 총리의 비서관 출신인 이노우에 요시유키 참의원은 가정연합의 지원을 받아 당선됐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시모무라 하쿠분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문부과학상 재직 시절인 2015년 통일교의 명칭을 가정연합으로 바꿀 수 있도록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모두 아베파 소속이다.정치권과 가정연합의 연관성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아베파를 등용하기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자민당 내 4위 파벌 수장이자 보수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보수 강경파인 아베 전 총리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도록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개각 일정이 나오자 아베파 내에는 ‘가정연합과 관련된 의원은 인사에서 제외되는데 아베파에 이런 의원들이 많아 기시다 총리가 어려움 없이 아베파를 제외하고 세력을 약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밝혔다. 다만 아베 전 총리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흔들리고 있는 아베파를 완전히 배제하면 최대 파벌의 불만이 폭발해 당내가 불안정해질 가능성도 있어 이점을 고려해 인사를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NHK는 “기시다 총리가 아소 다로 부총재(3위 아소파),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2위 모테기파)과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아베파)은 유임시키면서 정권의 골격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여기는 일본] 태풍·코로나에도 ‘회식’한 日 총리…당국 “문제없다”

    [여기는 일본] 태풍·코로나에도 ‘회식’한 日 총리…당국 “문제없다”

    일본 열도에 폭우 특별 경보가 발령되고, 코로나19 확산세도 확연한 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나치게 자주 회식을 즐긴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말부터 당의 간부, 경제계 인물들과 저녁 회식을 이어가고 있다. 3일(이하 현지시간)에는 도쿄의 한 호텔에서 아오키 미키오 전 관방장관과 모리 요시로 전 총리 등과 회식을 가졌다. 모리 전 총리는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끌던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 소속이며, 아오키 전 관방장관은 정계 은퇴 후에도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이 이끄는 모테기파에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기시다 총리가 9월 개각을 앞두고 당의 결속력을 높이고자 각계각층의 인물들과 회식 자리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곳곳에서 폭우 피해가 발생하는데다 코로나19 확산세도 심각한 상황에서 부적절한 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4일 새벽 일본에서 시간당 강수량이 100㎜ 이상을 기록한 곳이 10곳 이상이었다. 거대한 비구름이 동해를 건너 일본 열도를 덮으면서 일본 도호쿠 지역은 홍수가 발생하기도 했다.현재 태풍 5호 송다와 6호 트라세의 영향으로 곳곳에 폭우 특별 경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총리의 회식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당국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4일 오후 총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날 밤 폭우 상황에 대해 총리는 비서관을 통해 적시·적절하게 보고를 받았다”면서 “관저 위기관리 센터에 연락실을 설치하고, 관계 부처가 일체가 돼 대응해왔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총리의 회식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지만, 잦은 회식이 총리의 코로나19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지난 2일 일본 정부는 기시다 총리의 미국 뉴욕 방문에 동행했던 야마모토 다카요시 총리 비서관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미국에서 격리 조치됐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 비서관의 확진 사례는 이번이 3번째다. 총리 관저 내에서도 감염 사례가 잇따르는 데다, 일본 전역에서도 확진자가 폭주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일 일본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2주 연속 세계 최다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신규 확진자 수는 약 656만 명인데, 이 가운데 일본의 신규 확진자 수는 약 137만 9000명이었다. 이어 미국이 92만 3000명, 한국이 56만 4000명이었다. NHK가 후생노동성과 지방자치단체의 발표를 집계한 데 따르면 지난달 25일 일본의 신규 확진자 수는 12만 6520명이었고, 약 열흘 뒤인 이달 3일에는 24만 9830명으로 급증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총리 관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대로 (회식이) 계속될 경우 첫 ‘총리 감염’이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 與 “이대론 안 된다” 쇄신 신호탄… 尹대통령, 응답할까

    與 “이대론 안 된다” 쇄신 신호탄… 尹대통령, 응답할까

    31일 국민의힘에서 당·정·대 전면 쇄신론이 제기되고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면서 지지율 20%대의 위기에 처한 윤석열 정권 전반의 쇄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날 친윤(친윤석열) 조수진 최고위원은 여당과 정부, 대통령실을 ‘3축’으로 칭하면서 ‘동반 쇄신’을 주장했다. 쇄신이라면 인적 쇄신을 의미한다. 국민의힘 소속 김태흠 충남지사도 여당, 내각, 대통령실 등을 ‘세 축’으로 규정하면서 전면 쇄신을 요구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대행직에서 사퇴하고 당 지도체제를 조속한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기로 한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서 여당이 먼저 쇄신의 신호탄을 쏜 것”이라며 “대통령실과 정부 쪽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쇄신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른 의원은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비서실장이나 수석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당내에서 많다”며 대통령실 쇄신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다른 의원은 “내각은 인사 검증 실패 논란과 야당의 거센 공세 속에 가까스로 꾸려졌고 새로 지명하면 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쇄신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전면적인 개각이 어렵다면 지명 과정에서부터 각종 의혹으로 논란이 됐던 일부 장관을 교체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여당발 쇄신론이 분출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1일부터 5일까지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간다. 윤 대통령은 휴가 닷새 중 2~3일은 지방에서 보낼 예정으로, 역대 대통령이 자주 이용했던 경남 거제 저도 등이 유력한 휴가지로 거론된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파업 사태 등 국정 현안 때문에 뒤늦게 휴가 일정이 확정됐지만, 윤 대통령으로서는 휴가 기간에도 정국 구상에 몰두하며 마냥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휴가 하루 전인 이날에도 대통령실은 권 원내대표의 직무대행 사의 표명 소식을 듣고 급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등 내부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윤 대통령이 업무 복귀와 함께 국정 쇄신안을 내놓을 경우 대통령실 인적 개편과 같은 고강도 대책이 포함될지도 관심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여당이나 여론에서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면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아베 뜻 잇겠다지만… 기시다, 새달 개각으로 ‘홀로서기’ 시험대

    아베 뜻 잇겠다지만… 기시다, 새달 개각으로 ‘홀로서기’ 시험대

    기시다, 온건정치 서서히 시동無파벌 스가, 부총리 기용 검토아베파 93명 구심점 잃고 흔들방위상 등 측근들 줄교체 예상지난해 10월 일본 중의원 선거에 이어 지난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까지 집권 자민당의 승리를 이끌어내며 정치적 입지를 탄탄히 굳힌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온건파’인 본인만의 정치를 펼칠지 관심이 쏠린다. 12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르면 다음달 말 개각 및 자민당 간부 인사를 단행한다. 이번 인사는 기시다 총리가 자신만의 정치를 어떻게 할지 보여 주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0월 당내 최대 계파인 아베파(93명)를 이끄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지지로 총리가 된 기시다 총리는 인사를 비롯해 정책까지 아베 전 총리와 협의해 할 수밖에 없었다. 기시다 총리가 전날 기자회견에서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계승하겠다”고 말한 것도 지지층을 다독이기 위한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가 암살되고 아베파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기시다 총리는 우익 성향의 강경파였던 아베 전 총리와 달리 아시아 외교와 분배를 중시하는 온건파인 제 색깔을 서서히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민당 간부는 마이니치신문에 “앞으로 기시다 총리의 기시다파,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모테기파, 아소 다로 전 총리(당 부총재)의 아소파 등 3개 파벌이 정권 운용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파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과 기시다파인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과 아베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무계파이지만 아베 전 총리의 입김으로 임명된 다카이치 사나에 정무조사회장은 교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기시다 총리가 파벌에 속하지 않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를 부총리 겸 재무상으로 기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전 총리라는 구심점을 잃어버린 아베파는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마쓰노 관방장관, 하기우다 경제산업상, 시모무라 하쿠분 전 정조회장 등이 있지만 무게감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계를 은퇴한 지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아베파를 이끌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 아베 뜻 이어받겠다는 기시다…‘온건파’ 제 색깔 낼 수 있을까

    아베 뜻 이어받겠다는 기시다…‘온건파’ 제 색깔 낼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일본 중의원 선거에 이어 10일 참의원 선거까지 자민당의 승리를 이끌어내며 정치적 입지를 탄탄히 굳힌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온건파’인 본인만의 정치를 펼칠지 주목되고 있다. 12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르면 다음달 말 개각 및 자민당 간부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이번 인사는 기시다 총리가 자신만의 정치를 어떻게 할지 보여주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0월 당내 최대 계파인 아베파(93명)를 이끄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지지로 총리가 된 기시다 총리는 인사를 비롯해 정책까지 아베 전 총리와 협의해 할 수밖에 없었다. 기시다 총리가 전날 기자회견에서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계승하겠다”고 말한 것도 지지층을 다독이기 위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가 암살되고 아베파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기시다 총리는 우익 성향의 강경파였던 아베 전 총리와 달리 아시아 외교와 분배를 중요시하는 온건파인 제 색깔을 서서히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민당 간부는 마이니치신문에 “앞으로 기시다 총리의 기시다파,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모테기파, 아소 다로 전 총리(당 부총재)의 아소파 등 3개 파벌이 정권 운용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파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과 기시다파인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과 아베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무계파이지만 아베 전 총리의 입김으로 임명된 다카이치 사나에 정무조사회장은 교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기시다 총리가 파벌에 속하지 않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를 부총리 겸 재무상으로 기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전 총리라는 구심점을 잃어버린 아베파는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마쓰노 관방장관, 하기우다 경제산업상, 시모무라 하쿠분 전 정조회장 등이 있지만 무게감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정계를 은퇴한 지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아베파를 이끌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핵무기·탄도미사일 제한, 소련과 ‘해빙 외교’ 성과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핵무기·탄도미사일 제한, 소련과 ‘해빙 외교’ 성과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美 과제는 對소련 관계 개선·중동 평화·中 체제 수용… 칠레 좌익정권 전복 ‘피노체트 쿠데타’ 사주도닉슨은 케네디와 마찬가지로 백악관이 대외정책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닉슨이 윌리엄 로저스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이유는 그가 외교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안보보좌관이 된 헨리 키신저는 국무부를 배제하고 닉슨과 함께 미국 외교를 이끌어 갔다. 1973년 9월 로저스가 사임한 후 국무장관이 된 키신저는 안보보좌관을 겸직했고, 워터게이트로 인해 닉슨이 궁지에 몰리자 키신저는 미국 외교를 홀로 움직였다. 닉슨이 사임한 후 대통령직을 계승한 포드 대통령도 외교는 키신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75년 가을 포드 대통령이 개각을 할 때 키신저는 안보보좌관 자리를 내어놓았지만 미국 외교 사령탑은 여전히 키신저였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키신저는 열다섯 살 때 나치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자랐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육군 84사단 소속으로 유럽 전선에 참전한 키신저는 독일어 능력을 활용해 정보부서에서 일했다. 전쟁이 끝난 후 참전용사 장학금으로 하버드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나폴레옹 몰락 후 유럽 재편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하버드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면서 정계 인사들과 교류했다. 대통령의 꿈을 갖고 있던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는 키신저를 외교자문으로 활용하고 재정적 후원을 했다. ●닮은 데 많은 닉슨과 키신저 닉슨과 키신저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두 사람은 케네디로 대표되는 기득권 진보(establishment liberals)를 태생적으로 싫어했다. 역경을 극복하면서 성장한 두 사람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등 공통점이 많았으나 두 사람은 서로를 불신하고 견제했다. 닉슨은 키신저가 언론 앞에 나서서 외교적 성과를 자랑하는 것을 경계했다. 키신저는 닉슨이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미친 사람이라고 주변에 말했다. 닉슨은 자신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인물을 참모로 기용한 데 비해 키신저는 로런스 이글버거, 알렉산더 헤이그 등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서 기용했다는 점이 달랐다. 닉슨과 키신저는 베트남전쟁 종식, 소련과의 관계 개선 그리고 중동 평화 정착을 자신들의 과제로 생각했다. 닉슨은 또한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를 국제체제 밖에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외로운 정책결정자라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비밀을 특히 강조했다. 1969년 7월 닉슨은 달에 최초로 착륙하고 항공모함 호넷함으로 귀환한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을 만난 후 괌에 도착해 아시아 국가들은 자체적으로 자국 방위를 책임져야 하며 미국은 단지 후원을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그런 다음 닉슨은 사이공을 방문해 티우 대통령과 환담을 하고 필리핀, 파키스탄 등을 거쳐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도착했다. 부쿠레슈티 시민들은 동유럽 국가를 처음으로 방문한 미국 대통령을 열렬하게 환영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과 가진 회담에서 닉슨은 미국이 중국과 관계 개선을 할 의향이 있음을 중국에 전해 줄 것을 부탁했다.●핵전쟁 공포 벗어나기 위한 노력 미국은 소련에 대한 핵 우위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소련이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고 신형 SS9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배치하자 미국은 위협을 느꼈다. 닉슨은 미국이 핵 우위를 유지하면서도 핵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닉슨은 존슨 대통령이 서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상원이 조속히 비준해 줄 것을 촉구했다. 미국, 영국, 소련이 비준을 마침에 따라 NPT는 1970년 3월 효력을 발휘했다. 닉슨은 존슨 행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미사일 방어체계(ABM)도 지지했다. 소련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ABM의 효용성을 두고 논란이 많았는데, 한 개의 미사일에서 여러 개의 탄두를 발사할 수 있는 다핵탄두미사일(MIRV)이 개발됨에 따라 ABM의 효율성은 도전을 받게 됐다. 닉슨은 핵무기를 감축하고 ABM 설치를 제한하기로 한 존슨 대통령과 코시긴 소련 총리 간의 합의를 지지했다. 1969년 11월 헬싱키 회의로 시작된 수년간의 협상 끝에 닉슨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72년 5월 2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전략핵무기감축조약(SALT I)과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를 제한하기 위한 조약(ABM 조약)에 서명했다. 끝이 없어 보이던 핵무기 경쟁에 제동이 걸렸으니 해빙(detente) 외교를 추진한 닉슨이 거둔 값진 성과였다. ●격동하는 국제 정세 : 중동, 독일, 칠레 존슨 대통령이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후 미국은 아랍 국가들과 불편한 관계가 돼 버렸다. 아랍 국가 중 오직 요르단만이 미국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닉슨은 유대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국 유대인들이 민주당을 지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닉슨은 중동 평화를 위해선 이스라엘이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0년 9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단원들이 민간 항공기 여러 대를 납치해서 요르단에 착륙시킨 후 구금 중인 테러 용의자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해 중동에 긴장이 감돌았다.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미 중앙정보부(CIA)와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자국 내에서 활동 중인 팔레스타인 민병대와 시리아 군대를 공격하자 시리아 군대가 개입했다. 중동 전체에 전운이 감돌았으나 요르단 군대가 시리아 군대를 격퇴시키는 데 성공해 위기는 가라앉았다. 1969년 가을 독일에선 빌리 브란트(1913~1992)가 이끄는 사민당 정권이 들어섰다. 브란트는 동방정책(Ostpolitiks)을 내걸고 1970년 8월에는 모스크바를, 12월에는 바르샤바를 방문해 소련 및 폴란드와 각각 조약을 체결했다. 닉슨과 키신저는 물론이고 로저스 국무장관도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심각한 실책이라고 생각했다. 서독은 닉슨 행정부의 뜻을 무시하고 1972년 12월 동독과 기본조약을 체결해 동서 화해의 물길을 텄다. 1970년 들어 칠레의 정치적 상황이 미국의 우려를 자아냈다. 미국은 CIA를 통해 칠레에 우익 정권이 들어서도록 해 왔으나 그것이 한계에 달해 그해 9월 4일 대선에선 공산주의자인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무부는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도 미국 국익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닉슨과 키신저의 생각은 달랐다. 닉슨과 키신저는 중남미의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소련과 쿠바가 지원하는 공산세력이 중남미에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키신저는 칠레의 군부를 움직여 쿠데타를 일으키라고 CIA에 지시했다.아옌데 대통령 취임을 막기 위한 쿠데타의 최대 장애물은 육군 사령관 르네 슈나이더(1913~1970) 장군이었다. 그는 군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훌륭한 군인이었다. CIA는 아옌데에게 반대하는 장성들로 하여금 슈나이더를 납치토록 했다. 두 차례 실패 끝에 이들은 슈나이더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총격을 당한 슈나이더는 며칠 후 사망했다. 슈나이더의 사망은 칠레 국민들이 아옌데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아옌데는 칠레에서 구리를 생산하는 미국 광업회사와 칠레에서 통신사업을 하던 미국 통신회사의 자산을 국유화했다.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 장군이 이끄는 쿠데타가 발생했다. 대통령궁에서 포위된 아옌데는 총을 들고 항거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키신저와 CIA가 사주해서 일으킨 쿠데타였다. 소련과 중국을 향해선 화해의 손짓을 하면서 칠레의 좌익 정권은 용납하지 못했던 닉슨과 키신저의 현실 외교는 오늘날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중앙대 명예교수
  • [박홍환 칼럼] ‘중국통’ 없는 중국 외교/평화연구소장

    [박홍환 칼럼] ‘중국통’ 없는 중국 외교/평화연구소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 1월 30일 ‘사드 추가 배치’ 여섯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예상했던 대로 반향은 컸다.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시험발사에 ‘도발’이라는 표현을 극구 자제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차별성은 지지 진영 내에서 ‘선제타격’ 발언과 마찬가지로 크게 부각됐다. 반면 반대 진영에서는 “외교를 알고 하는 소리냐”라거나 “자폭행위나 다름없는 외교 망언이다”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한 달 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를 한중 수교 30년래 최고 악재라고 평가한 뒤 “사드 추가 배치와 같은 민감한 문제로 두 나라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잘 관리했으면 한다”고 중국의 입장을 완곡하게 전달한 바 있다. 윤 당선인이 이끄는 한국의 새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 같은 양국 관계 훼손 악재를 선택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로도 읽혔다. 며칠 전 윤 당선인 측 인사 한 명을 우연한 기회에 만났는데 아무래도 그가 한 얘기가 의미심장했다. 인수위를 비롯해 새 정부의 외교정책을 입안할 사람들 중에 이른바 ‘중국통’이라 할 만한 인사가 한 명도 없어 스스로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는 “취임 후에는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지만 중국통 부재에 따른 미국, 일본 편향 외교 노선에 대한 걱정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사드 발언 등의 표계산 역시 치밀하게 분석됐던 것은 아닐까 싶다. 한국인의 70%가 중국이 한국에 안보와 경제적으로 위협이 된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 아닌가. 편향 징후는 이미 엿보이기 시작했다.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단장을 맡은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이 지금 일본을 방문하고 있다. 취임 전 일종의 특사 격인 대표단을 일본에 파견한 것은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이후 14년 만이다. 윤 당선인은 이달 초에는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박진 국민의힘 의원을 단장으로 한 한미 정책협의대표단을 미국에 보내 과거 정부에서 다소 소원해졌던 한미동맹 복원 및 발전 방안 등을 미국 조야 인사들과 논의토록 했다.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에는 일본통뿐 아니라 미국통까지 참여해 새 정부가 한미일 3자 협력 방안 창출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대중외교 부재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당선인 간 관례를 깬 전화통화 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 북한발 한반도 위기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타파해 나가야 하는데 대중외교 부재는 그 첫 단추부터 잘못 꿰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 당선인이 실용을 중시한다면 북한 문제에서만큼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이 쥐(북한 핵·미사일) 퇴치를 위한 외교정책에 신경을 집중해야만 한다. 그러자면 중국통과 대중외교 역시 불가피하게 필요한 것이다. 사대(事大)하자는 게 아니다. 과거 정권의 한 실세 정치인 출신 주중대사는 임기 내 중국 지방정부만 맴돌았다. 개각설이 나올 때마다 귀국을 위한 ‘자가발전’에 열을 올렸다. 얼마나 중국 내 정보에 취약했는지 김정일 방중 사실조차 중국 변방의 한 소도시에서 사후에 보고받았을 정도다. 방중 기미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지난 10년간 논공행상식 실세 정치인들을 줄줄이 주중대사로 발탁했지만 30년 한중 관계는 최악 언저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초대 주중대사로 적진에 있던 공화당 소속 인사를 전격적으로 발탁했다. 오로지 중국통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적을 잘 아는 인사를 보내 의중을 떠보자는 속내도 있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은 주중대사만큼은 그야말로 심사숙고해 적임자를 선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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