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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일영웅” 김좌진장군 생가 복원/홍성 행산2천5백평 말끔히 단장

    ◎사당 세워 성역화… 국민교육장 활용 만주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 3천여명을 궤멸시킨 백야 김좌진장군의 생가가 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생가터에 복원돼 26일 준공됐다. 김장군의 생가는 홍성군이 4억6백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2천5백여평의 부지에 지난해 5월부터 본채·문간채·행랑채·외양간 등은 물론 담장·도로·조경까지 말끔히 단장,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군은 민족의 영웅이며 구국운동의 선구자인 김장군의 생가복원에 이어 사당건립등 성역화사업을 벌여 김장군의 독립정신을 계승할수 있는 국민교육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김장군의 생가는 그동안 돌보는 사람이 없어 허물어져가 충남도에서 지난 89년12월 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하기에 이르렀고 이어 홍성군도 김장군의 애국심과 남아의 기개를 기리기 위해 생가복원에 나섰다. 특히 군은 이 지역성역화사업비로 지난3월 정부에 40억원의 국비지원을 요청내놓고 있다. 이날 생가복원준공식에는 장군의 손자인 김경민·김을동씨등 유족과 이강훈광복회장등 독립유공단체 관계자등 2천여명이 참석했다. 백야 김좌진장군은 1889년 이곳에서 태어나 3세때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 16세때인 1905년에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고향에 돌아와 50여가구의 노비들에게 당시 2천석을 추수하던 전답을 나눠주고 그들을 해방시켜줘 민주개화의 선구적 역할을 다했다. 20세때인 1909년에는 이봉창과 경성고아원을 경영하면서 서울 관철동에 이창양행과 신의주에 염직회사를 설립해 국내외의 연락기관으로 이용하는등 항일운동과 육영사업에 힘을 쏟았다. 29세때인 1918년에는 애국지사 윤치성·신현대등과 광복단을 조직,단장직을 맡은 뒤 중국 길림성으로 가 김동삼·조소앙등 만주지역 독립운동가 39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사관양성소를 설립,보병 1개연대를 양성했다. 김장군은 1920년에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이범석·홍범도장군 등과 같이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군 3천여명을 궤멸시켜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김장군은 1962년 3월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 윤봉길의사 순국기념비/일 형장묘역서 어제 제막

    【도쿄=이창순특파원】 매헌 윤봉길의사 순국기념비가 형장인 일본 이시카와(석천)현 가나자와(김택)시 노다산 묘역에 세워져 21일 제막됐다. 기념비 제막식에는 이강훈 광복회회장,박영석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윤남의 유족대표,정해용 재일거류민단단장 등 2백여명이 참석,의사의 유덕을 기렸다. 기념비는 재일거류민단과 「윤의사 의거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 의해 윤의사가 총살형을 받고 최후를 마친 곳에서 1백m 떨어진 노다산 묘역에 건립됐다.
  • 뜀틀 세계제패 유옥렬/“공중도약 3m 6개국제대회 석권

    ◎고난도 쿠에르보 달인… “연습벌레” 발목부상을 딛고 세계정상임을 다시한번 과시한 유옥렬(20·경희대)은 한국남자체조를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린 「뜀틀의 황제」. 지난해 9월 인디애나폴리스 세계선수권대회 뜀틀서 한국체조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것을 시작으로 이후 5개 국제대회를 석권했다. 1m50㎝ 50㎏의 단구이지만 폭발적인 힘과 유연성,공중으로 3m 이상을 솟구쳐 오르는 탄력을 바탕으로 구사하는 쿠에르보(앞돌려 틀어 몸펴 뒤공중돌기)기술의 난도와 정확도에서 세계최고라는 평가를 받으며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0순위」로 지목되고 있다.그의 점프는 세계정상급선수들을 30㎝이상 웃돌며 체공거리도 50㎝이상 긴 4m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도쿄컵대회서 우승한 이후 마루운동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있고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평행봉서 최근 최고급난도인 「어깨틀어 1백80도 돌며 버티기에 이은 크게 휘둘러 1백80도 돌기」기술을 완벽에 가깝게 구사하는데다 철봉서 「뒤로 3회 돌아 내리기」,마루운동서 「다리벌려 휘돌기」등을 매끄럽게 펼쳐보여 사상 첫 개인종합 메달권진입도 노린다. 수원 세류국민학교 4학년때인 지난 82년 체조에 입문,수원북중을 거쳐 수원농고 2년때인 89년6월 대표선수로 발탁됐다.이듬해인 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는 노메달에 그쳤으나 12월 도쿄컵대회서 일본의 간판스타 이케다니 유키오 등을 제치고 링과 뜀틀서 2개의 금메달을 따내 한국체조의 대들보로 떠올랐다. 새벽6시부터 시작되는 하루 6시간의 공식강훈이외에 선수촌뒷산에서 혼자 산타기와 튜브당기기로 근력을 키우는등 잠자는 시간외에는 훈련에만 몰두해 「연습벌레」로 불린다. 조성동 대표팀코치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후 뜀틀에서는 달인의 경지에 이른듯한 연기를 펼치고있어 바르셀로나올림픽서의 금메달획득도 무난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 백범등 순국선열 17위/영정봉안·합동추모제/효창원 의열사서

    임시정부 의정원 초대의장이었던 석오 이동령선생과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선생 등 순국선열 7위의 영정봉안 및 제14회 합동추모대제전이 13일 하오2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안 의렬사에서 효창공원순국선열추모위원회(위원장 김재홍)주최로 열렸다. 이날 이곳에 처음으로 영정이 봉안된 7인 선열은 백범·석오선생외에 임시정부국무위원을 지낸 차리석·조성환선생과 이봉창·윤봉길·백정기의사 등이다. 이날 추모대제전에는 이강훈광복회장을 비롯,독립유공자들과 유가족,전두환전대통령·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김대중민주당공동대표 등 각계인사와 시민등 4백여명이 참석했다.
  • 임란 「귀무덤영혼」 안식처 찾아

    ◎12만6천여 원혼 일 경도대로변에 방치/4백돌 맞아 22일 사천서 대재열고 합장 임진왜란이 남긴 최대 비극의 하나였던 귀무덤(이총)영혼이 임란발발 4백년만에 고국에서 안식처를 찾게 됐다. 「임란이총호국영령의분합장대재봉행위원회」(위원장 박삼중)는 22일 하오2시 경남 사천군 용현면 선진리 조명군총(지방문화재 80호)에서 대재를 갖고 12만 6천 원혼을 이곳 「머리무덤」에 합장한다. 이로써 일본 교토 방광사 앞 대로변에 4백년 가까이 방치돼 있던 귀무덤 영혼은 임란 발발 4백년,환국 2년만에 긴 방황을 마감하고 고국에서 영면할 수 있게 됐다. 삼중스님이 80년대 후반 일본 교도소 교화사업중 우연히 발견한 이 귀무덤 영혼은 각고의 노력끝에 지난 90년 4월22일 환국했으나 그동안 이렇다 할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부산 동래 자비사에서 임시 머물러왔다. 봉행위는 21일 자비사에서 전도재를 지낸 후 22일 상오8시 부산 사직 실내체육관에서 이운식을 가지며 이날 하오 2시부터는 조멍군총 현지에서 윤길중 전국회의장,이강훈광복회회장,안춘생독립기념관 관장,서돈각학술원 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재를 봉행한다. 특히 이날 대제에는 한일 불교복지협의회 일본측 회장인 가키누마 센싱(폐소선심)등 일본승려 10여명도 참석해 의미를 더욱 깊게 할 것으로 보이며 인간문화재 박송암 스님 등이 범패 등으로 영가천도예술대제를 치러 행사를 한층 빛낼 예정이다. 봉행위는 『지난 2년동안 적지를 찾아오다 거북선의 첫 전승지이자 조명연합군의 최대 피해지 중 하나인 사천 현지에 귀무덤 영혼을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이번 대재 후 합장무덤 일대 20만평을 성역화하고 임진란 종합전시관 등을 건립해 후세들에게 역사교육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귀무덤 영혼이 안장되는 조명군총은 정유재란 때인 15 98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희생자 3만8천명이 묻힌 무덤으로,귀와 코를 전리품으로 뺏긴 이들의 머리가 합장된 이 무덤은 현지에서 「당벙무덤」「댕강무데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윤봉길의사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이 한몸 광복위해”… 일 기념식장 폭탄던져/“상해사변 승리” 들뜬 일군 수뇌부 7명 사상/32년 4월 홍구공원에서 거사… 12월에 총살형/장개석 총통,“중국 1백만대군도 못한 일 조선 한 청년이 해냈다” 격찬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매헌 윤봉길 의사가 선정됐다. 4월의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이 극에 달했던 1932년 4월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상해사변 전승축하식에 폭탄을 던져 주중 일본군 수뇌부를 강타,조국독립의 계기를 마련했다. 윤의사는 거사 직후 일본헌병에 체포되어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32년 12월19일 가나자와(금택)현에서 총살형으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윤의사의 의거와 생애 사상을 되새겨 본다. 지금으로부터 60년전인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해의 홍구공원에서는 일황 히로히토(유인)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상해사변의 전승기념식이 성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홍구공원 안에는 수많은 일본 거류민단과 장병·학생들이 도열해 있었고 중앙식단위에는 일본의 대륙침략 중심인물인 상해주둔 군사령관 시라가와(백천의측)대장과 해군 함대사령관 노무라(야촌길삼랑) 중장,우에다(식전겸길) 중장 등 군수뇌와 시게미쓰(중광채) 주중공사,무라이(촌정창송) 총영사,거류민단장 가와바타(하단정차) 등 외교관들이 착석해 있었다. 윤의사는 미리 작정했던대로 군중속에 들어가 투척장소와 시간을 맞추어 최후의 의거 준비를 했다. 상오 11시20분 축하식의 1차 행사인 관병식을 끝내고 2차 순서인 축하식으로 들어가 일본 국가가 제창되고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윤의사는 도시락으로 된 자결용 폭탄을 땅에 놓고 어깨에 메고 있던 물통으로 위장된 폭탄의 덮개를 벗겨 오른손에 쥐고 왼손으로 안전핀을 빼낸 뒤 재빨리 앞사람을 헤치고 2m가량 전진,단상위로 힘껏 던졌다. 폭탄이 단상중앙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불꽃이 솟아 식장은 순식간에 피와 살이 튀는 아수라장이 됐다. 억눌리고 짓밟힌 약소민족의 원한과울분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듯한 위력이었다. ○군사령관은 즉사 시라가와 대장은 사망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우에다 중장과 시게미쓰 공사는 다리가 절단되고 무라이 총영사 등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윤의사는 거사후 경비군경에게 체포되어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은 뒤 5월25일 상해주둔 일본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윤의사의 거사성공 소식을 들은 장개석 총통은 『중국군의 1백만 대군도 못하는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윤의사야말로 우리 4억 중국인 누구보다도 위대하다』고 격찬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윤황씨와 김원상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우의,봉길은 별명이며 호는 매헌이다. 윤의사가 태어난 이듬해에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저격하고 그 다음해는 한일합방으로 2천만 민족이 조국을 잃었다. 윤의사는 1918년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다음해 3·1운동이후 학교를 자퇴하고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며 「개벽」잡지등을 읽으며 농촌활동을 통한 민족 계몽운동의 방향을 정립해 나갔다. 1928년에는 부흥원을 설립하고 농촌개혁운동을 펴는 한편 체육회·월진회 등을 조직,농민들의 친목과 생활개선·체력향상 등에 몰두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번지며 원산총파업·용천농민투쟁 등이 일어나자 윤의사는 일제에 항거,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동지들을 규합했다. 1930년 3월6일 윤의사는 『장부가 집을 떠나니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편지를 남기고 사랑하는 처자를 두고 만주로 망명했다. 31년 8월 활동무대를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옮겼다. 보다 큰 인물과 접하면서 무엇인가 나라를 위한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윤의사는 프랑스 조계 안공근 선생의 집 3층에 숙소를 정하고 동포가 경영하는 공장에 취업하는 한편 밤에는 상해영어학교에 다니면서 영어를 익혔다. ○김구선생 찾아가 그해 겨울부터 임시정부의 김구선생을 찾아가 독립운동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을 맹세했다. 1932년 1월8일 일본 도쿄에서 이봉창 의사가 일본왕을 폭살하려다 실패하자 일본과 중국의 독립운동가들은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김구선생은 무력에 의한 의열투쟁을 계속할 조선인 청년들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열혈청년들이 김구선생 휘하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구선생과 윤봉길 의사는 무장투쟁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던중 『4월29일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행사를 일본군의 상해점령 기념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거행할 예정이며 일본 거류민은 도시락과 수통을 지참하고 행사에 참가하라』는 일본신문의 보도를 읽고 기념식에 참석할 일본군의 수뇌부를 일거에 괴멸시킬 방법을 논의했다. 거사를 위한 치밀한 준비가 진행되었다. 야채행상을 가장한 윤의사는 여러차례 행사장을 사전 답사하고 지형·지물을 익혔다. 4월26일 윤의사는 이 의거가 개인적인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사의 대변이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고 잠자는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김구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나는 붉은 충성심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들을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윤의사는 비장한 선서를 하고 조국광복을 위한 살신성인의 길에 올랐다. 일본거류민으로 위장한 윤의사는 기념식장에 들어가 예정된 작전시간에 일본제국주의의 심장부인 군수뇌부에 폭탄을 터뜨려 2천만 조선민족의 울분을 풀어주었다. 일본헌병에 붙잡힌 윤의사는 『나의 각오는 철권을 가지고 적을 즉시 타도함이다. 죽어 관에 들어가면 쓸모없다』고 말해 거사의 성공을 즐거워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상해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윤의사는 일본상해 주둔사단의 모국기지인 가나자와(금택)현으로 옮겨져 12월19일 상오 7시27분 총살형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효창공원에 안장 윤의사의 유해는 46년 5월 순국 14년만에 가나자와에서 봉환,효창공원 묘소에 안장됐다. 윤의사의 생가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는 광현당이 복원되어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윤의사는 22년 배용순씨(88세 별세)와 결혼,종과 담 두 아들을두었으나 담은 두살때 영양실조로 죽고 종은 농수산부에서 근무하다 퇴직,원호사업을 하다 80년대 후반 어머니 배씨보다 먼저 별세했다. 윤의사의 동생 남의씨(76)는 현재 예산에 살고 있다. 정부에서는 윤의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광복군 창설 중국지원의 계기로/이강훈 광복회회장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일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겼을때 우리 민족은 수많은 의병을 일으켜 나라찾기에 목숨을 바치는 지사와 선열들을 배출했다. 당시 선각자들은 나라를 찾기 위한 일념으로 사랑하는 부모·형제·처자를 남겨두고 험난한 형극의 길로 뛰어 들었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문맹퇴치와 농촌개혁을 통한 민족 부흥운동을 주도하다 중국으로 망명 일본군국주의 군 수뇌부에 철퇴를 가해 한국인의 기개를 세계만방에 과시했다. 윤의사의 상해 의거는 민족항쟁의 금자탑을 쌓을 수 있게 되었으며 약소민족의원한을 풀어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윤의사의 쾌거가 알려지자 당시 4억 중국인들은 한국사람들만 보면 『당신들 조선인들은 훌륭한 민족』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윤의사의 의거를 계기로 증오의 눈으로 우리를 대하던 중국인들은 신뢰의 우정으로 변하게 되었다. 중국 국민당정부는 33년 낙양군관학교에 한국청년을 위한 한청반을 설치해주고 40년에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창설을 적극 지원해주었다. 윤의사가 생존해 있다면 올해 84세인데 25세로 순국영령이 되어 자손만대의 사표가 되어 있다. 필자는 윤의사의 뜻을 받들려면 거사도 실패하고 무엇하나 남긴 것 없이 살고 있어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짧은 일생동안 모든 것을 구국의 제단에 바친 윤의사의 성스러운 위업을 거울삼아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의 지름길로 매진해야 한다. 윤의사 의거 60주년을 맞이하면서 국내외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조국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이같은 조국이 있게 해준 윤의사의 명복을 빌면서 새로운 각오로 선열의 순국정신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성결한의혈만이 역사의 앞날을 눈부시게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전국서 3·1절 기념행사/추모제등 잇따라

    제73회 3·1절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서울을 비롯, 전국 각 직할시·도에서 개최됐다. 이날 정오에는 이강훈광복회장등 광복회원들이 서울 흑석동 국립묘지 현충탑및 애국지사 묘역을 참배했으며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은 종로 보신각종을 33회 타종했다. 전국 각지역에서는 시·도단위의 기념식외에 3·1운동 사적지별로 희생자 추모제등 별도의 기념행사가 열렸으며 각 지방별로 관내 독립유공자및 유족에 대한 위문행사가 실시됐다.
  • 청소년 오케스트라 2개 창단

    ◎세화예술재단,「진달래」「개나리」동시에 만들어/50∼60명으로 구성… 5월초에 첫연주회/“조기합주교육”·“준비미흡” 두가지 시각 10대 전반의 청소년으로 구성된 2개의 오케스트라가 같은 재단안에 동시에 창단됐다. 세화예술재단(이사장 이원숙·정트리오의 어머니)은 중학생을 중심으로 한 2개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오는 5월10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창단연주회를 갖는다. 진달래오케스트라와 개나리오케스트라로 이름붙여진 이 2개의 악단은 통칭 서울주니어오케스트라로 불리게 되며 각각 50∼6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단측은 이미 지난 22일까지 바이올리니스트 김의명씨(한양대교수)등에게 의뢰해 오디션을 마친 상태로 곧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다. 단원은 국민학교 5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로 선발되었으며 모두 현악주자이다. 재단측은 그러나 주니어오케스트라는 현악곡만 연주하지는 않으며 관악주자가 필요할 경우 서울 페스티벌오케스트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이 악단의 지휘는 부천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인 임헌정씨(서울대교수)와 서울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악장인 김강훈씨등 2명의 내국인과 지난 1월9일 정명훈씨의 추천으로 페스터벌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지휘한 휴 맥과이어외에 현재 교섭중인 또 한사람의 외국인이 맡게 된다. 재단측은 이 악단이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전체 연습을 가지며 평일에는 각 파트별 연습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이사장은 『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운영해 본 결과 단원들이 교향악단주자로서의 경험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교향악단주자에게 필요한 앙상블훈련도 대학생이 되면 이미 늦어버린다는 것을 절감해 이 악단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세화예술재단은 이 악단을 창단함에 따라 지난해 7월 정명훈씨의 지휘로 창단된 서울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사실상 3개의 오케스트라와 2백명이 넘는 청소년단원을 거느리게 됐다. 음악인들은 서울주니어오케스트라의 창단을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시적이 아닌 상설단체로 우리나라 연주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점으로 지적되는 합주능력을 어려서부터 키울 수 있는데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정명훈씨의 지도를 받을 수 있고 역시 세계적인 연주자들인 경화·명화씨와의 협연과 내년 1월로 예정하고 있는 해외연주등을 통해 큰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평가되고 있다.이런 점은 음악계와 참여한 개인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오케스트라와는 달리 「또 하나의 교육기관」의 역할을 할 이 악단의 창설이 재단측의 확고한 의지와 충실한 준비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에게 등을 떠밀려 이루어진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데 대해 우려하는 음악인들도 많다. 또 세화재단이 「정트리오의 명성」이외에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살림을 정상적으로 꾸려갈 재정을 확보하고 있느냐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일부 인사들은 『재단은 기금을 확보해 문화사업에 돈을 쓰는 곳이지 문화사업자체를 통해 기금을 모으는 곳은 아니지 않느냐』는 주장까지 하고 있는 형편이다. 뜻있는 음악인들은 이 악단 창단을 계기로 음악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것은포기해도 좋다는 「음악만능주의」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적어도 10대전반의 청소년에게는 음악보다는 교육적인 측면을 앞세워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 납북 민족지도자/15위 합동추모식

    납북독립유공민족지도자 추모제전위원회(위원장 이강훈광복회장)는 20일 하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내 현충관에서 박준규국회의장과 정원식국무총리등 각계인사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유공 납북인사 15인에 대한 합동추모식을 가졌다. 이날 후손과 유해가 없어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만 안치된 납북인사는 김규식 안재홍 정인보 조소앙 박렬 유동설 오화영 조완구 윤기섭 김붕준 명제세 원세훈 최동오 엄항섭 정광호선생등 15명이다.
  • 김규식씨등 납북 인사 15명/20일 합동추모식

    납북독립유공민족지도자 추모제전위원회(위원장 이강훈광복회장)는 오는 20일 하오 2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내 현충관에서 김규식 안재홍 정인보 조소앙 박렬 유동열 엄항섭 최동오 명제세 윤기섭 오화영 조완구 김붕준 원세훈 정광호선생등 납북인사 15인에 대한 합동추모식을 갖는다.
  • 각계 인사 3천명 참석/독립기념관서 기념식

    제46주년 광복절기념식이 노태우대통령과 박준규국회의장,김덕주대법원장,조규광헌법재판소장,이강훈광복회회장,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및 이산가족대표등 각계인사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5일 상오10시 충남 천안군 목천면 독립기념관에서 거행됐다. 이날 기념식은 순국선열과 전몰 호국용사에 대한 묵념,기념사·축시낭송의 순으로 진행됐다. 기념식이 끝난뒤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앞에서 「통일염원의 탑」기공식이 열렸고 기공식후에는 참석인사 전원이 겨레의 집 뒤뜰에서 경축연을 가졌다. 한편 이날 상오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는 독립유공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정종행사가 열렸으며 대학로와 석촌호수주변 서울놀이마당에서는 농악·판소리·풍물놀이등 다채로운 경축 문화예술축제가 열렸다.
  • 남북한 「원로회담」 제의/각계 32인 시국선언

    ◎도덕성 회복·민족 대화합 촉구 김수환추기경·한경직목사·서의현조계종총무원장등 종교계지도자와 민부기전대법원장·이강훈광복회장등 정계·사회원로 31명은 7일 낮12시 서울 종로2가 파고다공원에서 도덕성회복과 민족대화합을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원로들은 선언문을 통해 『겨레와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크게 우려하는 우리 각계 원로들은 도덕의 파탄과 민족의 분열로 야기된 역사적 위기를 더이상 방관할 수 없어 우리 생애 마지막 우국충정의 심지를 돋워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고 밝혔다. 원로들은 이에앞서 이날 상오10시부터 서울 종로구 내자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원로회의상설사무국」의 설치와 북한에 남북원로회담을 제의할 것을 결의,오는 8월13일 재미교포 예술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는 이병호아시아태평양변호사협회회장을 통해 북한측에 이를 정식제의하기로 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고흥문 전국회부의장 ▲구상 시인 ▲김경수 성균관장 ▲김상만 동아일보회장 ▲김수환 추기경 ▲김용식 전외무부장관 ▲김정렬 전국무총리 ▲민관식 전국회부의장 ▲민복기 전대법원장 ▲박충훈 전대통령권한대행 ▲방일영 조선일보회장 ▲서돈각 전학술원장 ▲서의현 불교총무원장 ▲손인실 전YWCA부회장 ▲안호상 전문교부장관 ▲엄요섭 기독교산업사회연구소장 ▲오익제 천도교교령 ▲원흥균 전세종대총장 ▲유달영 적십자중앙위원 ▲유창순 전경련회장 ▲윤석중 예술원원로회원 ▲윤천주 전서울대총장 ▲윤치영 전국회의장 ▲이강훈 광복회회장 ▲이병호 변호사 ▲이숭녕 학술원회원 ▲이충환 민주화합추진위원 ▲이형근 전육군참모총장 ▲전예용 민족중흥회장 ▲최규남 전문교부장관 ▲최태섭 한국유리회장 ▲한경직 목사
  • 어제 3·1절 72돌/독립유공자 54명에 훈장 수여

    3·1절 제72주년 기념식이 1일 상오 서울을 비롯 전국 각시도에서 독립유공자 유족·선행시민 등 각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서울에서는 이날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박준규 국회의장 김덕주 대법원장 등 3부요인과 이강훈 광복회장 등 광복회원,3·1운동 희생자유족 등 각계인사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고 한정도 정훈모씨 등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중 희생된 독립유공자 54명에게 건국훈장 애국장 및 애족장이 수여됐다. 이날 정오엔 서울 종로2가 보신각 종이 33번 타종됐다. 타종행사에는 이강훈 광복회장·서상교 광복회이사·이태영 33인 유족대표·이해원 서울시장이 참석했다. 한편 서울 파고다공원에는 해마다 열리던 3·1운동 희생자에 대한 추모식이 열리지 않았음에도 어린이와 중고생을 동반한 가족단위의 입장객이 몰려 3·1정신을 기렸다.
  • 3·1절 「파고다 추모제」/광복회,올해부터 중단

    ◎유족회선 반발,강행키로 대한광복회(회장 이강훈)는 28일 매년 3월1일 파고다공원에서 실시해오던 「3·1운동 희생자추모제」를 올해부터 치르지 않기로 했다. 광복회는 이와함께 지금까지 광복회 주관으로 실시해오던 추모제를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해 매년 을사조약 체결일이자 임시정부에서 선열추모제날로 정한 11월17일에 성대히 치러주고 구서대문형무소자리에 선열추모비를 건립해 줄 것 등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그러나 33인 유족회 권혁방회장은 『광복회가 정부의 경비지원이 끊겨 3·1절 추모제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내년부터는 유족회 자체적으로 파고다공원에서 추모제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 시세차익 10억 챙겨… 증시사상 최대/진흥신용금고주 시세조작 수법

    ◎2백55차례나 통정·가장매매 일삼아/“증자한다” 헛소문 퍼뜨려 투자자 유인 증권사 간부직원 4명이 증권브로커 1명과 짜고 특정종목의 주가를 조작,1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6일 증권감독원은 동서증권 본점 인수부 과장 옥치형씨(37·전 서울 코스모스지점 차장) 등 3개 증권사 직원 4명이 증권브로커 강훈구씨(47)와 서로 짜고 「진흥상호신용금고」 주식의 시세를 조종한 불공정거래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5일 브로커 강씨를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구속했었다. 감독원은 이들의 시세조종 혐의에 대한 중간발표를 통해 시세차익이 1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증권사 직원 4명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불공정 거래는 89년 2월말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에 걸쳤으며 시세조종을 위한 거래규모는 1백90억원에 이르렀다. 이들이 챙긴 부당이득 규모는 추정단계에서도 증시사상 가장 큰 것이며 증권거래법이 금지하고 있는 통정매매·가장매매·임의매매·자기매매 등 온갖 위법수단을 동원했다. 특히 4명이나 되는 증권사 직원이 연루,불법거래를 주도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 옥과장 외에 연루된 증권사 직원들은 동서증권 서울 코스모스지점 대리 김진국(31),쌍용증권 서울 저동지점 차장 손창모(37),대한증권 본점 영업부 차장 서종덕(37)씨 등이다. 감독원 조사에 의하면 옥과장과 증권사 객장에 상주하는 브로커 강씨가 이번 조작 사건을 주도했다. 이 두사람은 상장기업인 진흥상호신용금고의 자본금(55억원·상장주식수 1백10만주)이 적은데다 85년 상장이후 증자를 실시하지 않았고 당시 상호신용금고 업종으로서는 유일하게 공개됐다는 점에 착안,주가 조작대상으로 택하고 친구지간인 다른 증권사 직원들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89년 2월22일부터 해당주식을 무더기로 사들이기 시작했고 동시에 진흥상호신용금고가 유무상증자를 실시할 것이란 헛소문을 퍼뜨렸다. 이들은 집중매수와 함께 시세를 높이기 위해 불법적으로 ▲매매물량과 가격을 서로 주고받는 통정매매와 ▲거래가 활황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가장매매(32회)를 일삼았다. 또 다른 투자자들의 매매를 유인하기 위해 ▲개장 첫시세를 의도적으로 높게 형성시켰고(94회) ▲하루종일 계속적으로 주문을 내며 주가를 끌어올렸으며(체증식 상승형성매매·21회) ▲종가를 높게 체결시켰고(고가매매·7회) ▲최고시세를 형성시키는 매매(65회) 등 무려 2백55회에 걸쳐 주가를 조작해왔다. 이들이 택한 진흥상호 주식은 89년 1년동안 1백8만주가 거래되었는데 2월이후 이들의 매수량은 이 주식 전체거래량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이들의 조직적인 조작에 의해 진흥 주식은 2월말에 2만1천원대였으나 3월초순 2만8천원까지 올랐고 3월말 3만3천원을 기록,한달여만에 60%가 급등했다(연중 최고가 4월3일 3만5천원,연평균가 2만7천6백원). 시세가 오르자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것은 상투적인 수법,브로커 강씨는 자신에게 주식관리를 맡긴 초보투자자 김모씨(40) 등을 「최근 오름세로 보아 사두는게 좋겠다」고 속여 매수하게 하는 사기행각을 벌였다. 시세조종 초기의 매수·매도 추이를 보면 2월22일부터 3월31일까지 21만4천주를 사들였고 3월21일부터 매도에 나서 10일간 8만주를 팔았다. 연말까지 30만주 이상을 사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필요한 자금은 임의매매 방식으로 조달했다. 4명의 증권사 직원들이 관리하고 있는 고객의 계좌(24개)주식 1백94만주를 제멋대로 사고 판 것이다. 이와 함께 이들은 증권사 직원에게는 금지된 자기매매도 했을 가능성도 크다. 이름을 빌려 계좌를 개설한 뒤 본인의 자금과 계산으로 주식거래를 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추측이다. 이 사건은 브로커 강씨가 지난해 2월 사기죄 등으로 고발된 뒤 표면화 되었으나 도주해버려 수사가 중단되었었다. 강씨는 1년뒤인 이달 2일 붙잡혔다.
  • 조훈현 패왕,14연패/장수영 8단 3연승으로 물리쳐

    ◎서울신문사 주최 26기 패왕전 조훈현 9단이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패왕전에서 14연패의 대기록을 세웠다. 조9단은 24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6기 패왕전 도전 5번기 제3국에서 도전자인 장수영 8단에게 백을 쥐고 1백60수만에 불계승,종합전적 3승으로 타이틀을 지켰다. 지난 77년 조9단(당시 7단)은 김인 9단(당시 8단)에게 패왕전에 도전,3승1패의 전적으로 타이틀을 따낸 뒤 그동안 서봉수 9단(4차례) 강훈 7단(3차례) 김인 9단 등의 집요한 도전을 뿌리치고 14년 동안 패왕타이틀을 지켰다. 특히 최근에는 양재호 7단,이창호 4단,오규철 4단 등 최정예신예들의 거센도전을 받았으나 모두 3대 0 스트레이트로 물리치는 등 패왕전에 강한 애착을 보여왔다.
  • 어제 순국선열 추모제

    순국선열유족회(회장 이종갑)는 17일 상오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관에서 이강훈 광복회 회장과 광복회원ㆍ시민 등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71회 순국선열추모 대제전을 가졌다. 이날 추모제전에서는 1906년 전북 순창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순국한 최산흥선생 등 올해 건국훈장이 추서된 무후선열 10인의 봉안식이 올려졌다.
  • 납북 독립유공자 사망일 확인요청/광복회,정부에 건의

    광복회(회장 이강훈)는 27일 광복후 북한에 있던 조만식선생과 6ㆍ25당시 납북된 조소앙선생 등 35명의 재북독립유공자에 대한 사망일자와 묘소소재지 등을 북한적십자사를 통해 확인해줄 것을 국토통일원과 대한적십자사에 건의했다.
  • 45돌 광복절 기념식

    제45주년 광복절 기념행사가 15일 상오 충남 목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박준규국회의장,이일규대법원장,민자당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 및 국무위원,이강훈광복회회장 및 광복회원,이산가족,주한외교사절 등 각계인사 3천8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정부는 이날 기념식에서 독립운동에 공이 많은 고 최동오선생(상해 임정 국무위원)과 고 윤동주시인등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는등 독립유공자 6백13명을 포상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겨레의 집 뒤뜰에서 각계 초청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기념연회가 베풀어졌으며 제7전시관 앞에서는 북한개방을 촉구하는 1천만명의 서명부를 진열하는 행사를 가졌다.
  • 정ㆍ재계 4백여 조문객 줄이어/윤 전대통령 빈소 이모저모

    ◎99칸 전통 한옥 곳곳엔 조등도 서울 안국동 자택에 차려진 윤보선전대통령의 빈소에는 노태우대통령과 박준규국회의장,강영훈국문총리,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평민당의 김대중총재 등이 보낸 대형 조화 1백50여개가 놓여있는 가운데 19일 정ㆍ재계인사와 친인척 등 4백여명이 조문을 다녀갔다. 유족들은 이날 상오 자택 정문 앞마당과 사랑채 앞마당에 각각 안내대와 대형천막 2개를 세우고 하오부터 줄을 이은 조문객들을 맞았다. 고인의 병실을 지켰던 조종호비서실장(70)은 『3개월전부터 전혀 말을 하지못해 특별한 유언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가끔씩 고통을 견디지 못해 소리를 지르곤 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고인이 생전에 큰아들 상구씨(43) 등 가족들 『내가 죽거던 사회와 국민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단히 치러달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밝혔다. 빈소가 마련된 고인의 안국동 자택은 서울시 지방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전통양식의 99칸 한옥으로 고인의 두 아들내외와 비서진 등 20여명이 함께 살아왔다. 윤전대통령의 집안은 장수집안으로 사촌인 윤일선 전 서울대총장이 현재 95세,삼촌인 윤치영 전 공화당의장이 93세이며 어머니 이범숙여사도 92세까지 수를 누렸었다. 고인은 생전에 술과 담배를 일체 삼갔고 규칙적인 식사에 짜거나 맵지않은 식단으로 식사를 하는 등 절제있는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빈소에는 이재형전국회의장,김재광국회부의장,이강훈광복회회장,고건서울시장,강원용방송위원장,민관식전문교부장관,서정화의원 등이 조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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