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강호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상암동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제주도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생산성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499
  • 경찰 기지로 음독 20대 구조/휴대폰 신호로 위치알아내(조약돌)

    ○…사무실 문을 잠그고 음독자살을 기도한 20대가 휴대폰 소리로 위치를 알아낸 경찰의 기지로 목숨을 건졌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강호균 경장(37) 등 2명은 관내 순찰중이던 8일 상오 10시30분쯤 金모씨(27·무직·서울 은평구 역촌동)가 “자살하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갔다는 가족들의 신고를 받고 金씨가 평소 자주 드나들었다는 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음악동호회 사무실로 긴급 출동,신경안정제를 과다복용한 채 신음하고 있는 金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경찰은 구조당시 사무실 문이 잠겨 있어 金씨가 안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자 가족들로부터 알아낸 金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휴대폰 신호음을 확인한 뒤 철문을 뜯고 들어가 金씨를 무사히 구조했다.
  • 한국 세계 아마바둑 첫 우승/金燦佑 7단 JAL배 8전승

    【도쿄=姜錫珍 특파원】 한국의 金燦佑 선수(26,7단)가 세계 아마추어 바둑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출전 사상 처음으로 우승의 쾌거를 이룩했다. 金 7단은 5일 도쿄 일본기원 회관에서 벌어진 제20회 JAL배 세계 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 마지막날 8번째 대국에서 중국의 강호 자오웬동(趙文東) 7단을 81수 만에 불계승으로 누르고 8전 전승을 기록,우승했다. 金선수는 앞서 7번째 대국에서 홍콩의 왕이순 6단에 역시 불계승을 거뒀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 대회에서 그동안 제6회 때 劉昌赫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4차례에 걸쳐 2위에 입상한 적은 있으나 우승은 처음이다.
  • 16회 교정대상/朴甲敦 교위 대상 영예/서울신문사·KBS 선정

    ◎본상 金相吉 교위 등 17명 확정/내일 프레스센터서 시상식 서울신문사가 한국방송공사 및 법무부와 공동으로 제정한 제16회 교정대상수상자 17명이 20일 확정됐다. 영예의 대상은 30년 9개월동안 수용자 교화와 취업 알선 등에 헌신한 공주교도소 박갑돈 교위(51)에게 돌아갔다. 본상은 목포교도소 김상길 교위(55) 등 8명,특별상은 안동교도소 임세호 교위(48) 등 8명이 차지했다. 대상 수상자는 상금 3백만원과 부상,본상은 상금 2백만원과 부상,특별상은 상금 1백만원을 받는다. 시상식은 22일 상오 11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시상식에는 차일석 서울신문사 사장,박상천 법무부 장관,박권상 한국방송공사 사장과 수상자 부부 31명,교정기관장 47명 등이 참석한다. ◇대상 박갑돈 ◇본상 ▲면려상 김상길 ▲성실상 민찬수(46·춘천교도소 교사) ▲창의상 정형호(46·대전소년분류심사원 주사) ▲교화상 김재영(45·순천교도소 교회사) ▲박애상 장세문(56·안동교도소 종교위원·안동 풍산교회 목사) ▲자비상 김태현(60·목포교도소 종교위원·목포 보현정사 주지)▲자애상 김정수(56·영등포구치소 종교위원·사회교정사목위원회 신부)▲공로상 윤시병(61·군산교도소 교화위원·신안염직 대표이사) ◇특별상 ▲면려상 임세호(48·안동교도소 교위)▲성실상 강호철(42··대전교도소 교사) ▲창의상 정승윤(42·제주교도소 교사) ▲교화상 김기대(50·진주교도소 교위) ▲박애상 김신웅(58·청송제2보호감호소 종교위원·진보가축병원 원장) ▲자비상 정영목(50·김천소년교도소 종교위원·김천 정심자 주지) ▲자애상 이태순(57·경주교도소 종교위원·경주 성동천주교회 신자) ▲공로상 김성열(58·천안소년교도소 교화위원·천안 향토사연구소 소장)
  • 咸寧殿 화재(秘錄 南柯夢:9)

    ◎“섣달 그믐 궁내 火變” 정환덕 御前예언 적중/한달전 아뢴내용 맞아떨어지자 高宗이 1주일뒤 至密로 불러 “정해진 운수 알았나,우연인가.나라·황실 지탱할 방안도 아는가” 민선시대의 정치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선거의 결과가 궁금하다.그래서 과거 3공시대에는 세검정의 점쟁이 집에 정계의 거물들이 몰려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점쟁이 가운데는 1천금의 복채를 놓아야 보아준다는 대무(大巫)가 있고,단 몇푼으로 쉽게 점쳐주는 소무(小巫)들이 있다.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장래에 대한 불안이 심하고 그럴수록 대무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20세기의 문이 열리던 1900년처럼 불안한 때도 없었다.그래서 그런지 고종은 적지 않은 대무들을 궁궐안에 들여 몰래 점을 쳤다.고종에게 불려갔던 대무는 한둘이 아니었는데,그중의 하나가 충주 사는 성강호(成康鎬)였다.성강호가 돌아가신 명성황후의 귀신을 불러들일 수 있다 하여 고종이 끌어들인 것이다. ○高宗,몰래 무당 불러 점쳐 어전에 불려나온 성강호는 갑자기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땅에 내려앉았다.그런 다음 “지금 죽은 명성황후의 혼령이 이 의자에 와 앉으셨습니다”라고 하니 고종은 의자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다.성강호는 한술 더 떠서 “그렇게 요란을 떠시면 귀신이 놀라 떠나버리실 것입니다.조용히 하십시요”라고 했다.그래서 고종은 울지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는 것이다.강원도 통천(通川)에 사는 또 하나의 사기꾼 김원동(金元同)이란 자는 요술병 하나를 갖고 서울에 왔다.그리고는 고종에게 불려가서 어린 영친왕(엄비의 소생)의 병이 언제 나을 것인가를 정확히 알아맞히었다.그래서 고종의총애를 받았다가 강원도 금화(金化)군수로 발령받고 앞의 성강호도 벼슬이협판(協判·차관급)에 이르렀다고 하니 대한제국의 인사행정이 얼마나 엉터리였는가를 알 수 있다. 정환덕은 정통 역술가로서 성강호나 김원동 같은 사기꾼과는 달랐다.그래서 조선왕조의 운명을 알아맞혔을 뿐 아니라 덕수궁 함녕전에 불이 난다는것도 알아맞혀 고종을 놀라게 했다. “11월 28일 하오 3시 금마문(金馬門=함녕전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밖에서 등대(等待=대령)하고 있었는데,성상께서 옥체가 편안하지 않으시다 하여 물러났다.이튿날 궁내부에서 입궐하라는 어명이 계시다 하여 즉시 입대(入對)하였는데 물러나오면서 아뢰기를 ‘근자에 궁안에 불이 날 화변(火變)의 염려가 있사오니 각별히 조심하셔서 예방하셔야 될 줄로 압니다’고 하였다.성상께서는 깜짝 놀라는 빛을 지으면서 ‘어느날 어느 시각에 불이 날 것같은가’고 물으셨다.‘다음달 12월에 일어날 것입니다’고 하자 다시 ‘12월 며칠인가’고 하셨다.‘그믐쯤에 날 것입니다’고 아뢰자 ‘그러면 어느 방위에서 일어날것인가’하고 또 물으셨다.‘함녕전 바로 남문(南門)입니다’고하자‘이 불이 정전까지 침범하겠는가’ 재차 물으셨다.대답하기를 ‘거의 침범할 것입니다.그러나 군졸로 하여금 잘 지키게 하시면 불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압니다’고하자 이번엔 ‘어떻게 하면 잘 지킬 수 있는가’고 물으셨다.‘군졸 수 백명으로 하여금 매일밤 궁중과 궁 밖을 돌게 하여 근처의 인가를 조심시키시면 됩니다’하고 아뢰었다.” 도대체 국왕이라는 사람이 이토록 낯낯이 역술가에게 묻고 일을 처리하였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하겠는데,아무튼 정환덕의 예언은 적중하여 이해 12월 그믐날에 덕수궁 가까운 민가에서 불이 나고 말았다.불은 청국인이 경영하던 석물공장에서 일어나 수십채로 옮겨붙었다. “12월 그믐날이 되자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싸락눈까지 부슬부슬 내렸다.하늘과 땅이 어두컴컴하여 마치 암흑 속에 있는 것 같았다.초저녁이 지난 후에 갑자기 한바탕 광풍이 불더니 나무가 부러지고 집이 쓰러졌다.얼마후 함녕전의 정문 밖 청국인이 경영하는 석물공장에서 불이 나 수십채에 연소하더니 불길이 맹렬한 기세로 함녕전 정문을 범하였다.성 안팎의 백성들이 힘을 다하여 불길을 잡으려 했으나 날씨는 춥고 바람이 매서워 진화할수가 없었다.화염은 점점 정전(正殿)으로 육박하였다.이때 진고개(泥峴·충무로 입구)의 일본 소방대가 달려와서 소방기계 수십대로 근근이 불을 꺼 함녕전은 우뚝하게 홀로 남았다.불행중 다행이었다.” 정환덕이 한달 전 함녕전에 불이 날 것이라 예언한바 있었는데 고종은 까맣게 이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앞날 미리 맞히는 귀신” “이날 밤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와서 함녕전의 안전을 축하하였고,머리털이 그을리고 이마에 화상을 입은 군졸이 셀 수 없이 많았다.이 때를 당하여 전화과장 이규찬이 엎드려 ‘정환덕이 앞날을 미리 알아맞히는 것은 귀신과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고 아뢰었다.상께서 ‘정환덕이 누군가’ 말씀하시자 이규찬은 ‘지난 11월 29일 현릉참봉에 임명하신 그 정환덕입니다.당시 12월 그믐날 반드시 화변이 있을 것이라 아뢴 일이 있는데 폐하께서 잊어버리셨습니까’하고 옛일을 떠올렸다.상께서 다시 ‘짐(朕)이 근래에 골치아픈 일이 많다 보니 벌써 잊어버렸다.그러나 이 사람은 어찌해서 들어와 나를대하지 않는가’ 하심에 ‘소명이 없으셔서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고 아뢰었다.” 신하가 입궐하여 임금을 만나뵙고 자문에 응하는 것을 입대(入對)라 했다.임금의 부르심을 받고 입대하는 것을 소대(召對),문무관이 차례로 입대하는것을 윤대(輪對),중신이나 대신이단독 입대하는 것을 독대(獨對)라 했다.요즘 김대통령은 아무하고도 독대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원래 독대란 이처럼 궁궐에서 쓰던 말이다. “이규찬이 와서 정월 초이렛날 입대하라는 명을 전하는지라 이날 함께 대궐에 나아가 함녕전 뒤뜰에서 대령하였다.이윽고 내시 강석호가 칙령을 받들고 나와 급히 대령하라 하여 따라 들어가니 이곳이 곧 함녕전의 지밀(至密)인 침소였다.지밀은 상감 3부자께서 취침하시는 방이다.엄비 이외에는 비록상궁과 나인이라도 마음대로 무상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밀’이라고 한다.이날은 눈이 한시간동안 내려 장안천지가 배꽃이 만발한 듯한 이화세계(梨花世界)로 변하였다.이윽고 황상폐하가 서쪽 온돌방에서 용상(龍床)으로 내려와 좌정하신 뒤 ‘너는 앞날을 아는 똑똑함이 있으니 그 계산에 정한 수가 있어서 그런가.아니면 우연히 맞아서 그런것인가.만약 정한 수가 있다면 오늘날 천시(天時)가 불리하고 이웃나라와의 외교도 잘 안되고 사람들이 모두 종묘사직의 안위와 나라의 존망을 알지 못하고 있다.임금이 된나도 아득하게 알지 못하고 앉아있으니,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그 방안을 물어보고 싶다’고 하교하셨다.엎드려 아뢰기를 ‘무릇 수는 성의(誠意)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천하만사가 한갓‘성(誠)’이라는 한 글자 뿐입니다.그래서 이르기를 ‘성심이면 금석도 뚫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조용히 시변(時變)을 살피시고 천심(天心)을 추측하시면 국운이 장차 밝은 태양처럼 될 것이니,소신의 구구한 좁은 견해는 반드시 준거하여 믿으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간절히 말씀드립니다’라고 하였다.”
  • 한나라 기행/시바 료타로 지음(화제의 책)

    ◎일 작가 시바 료타로 학국기행문 일본의 ‘국민작가’이자 논객인 시바 료타로(사마원태랑,1923∼1996)가 한국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 ‘일본의 국사’로 불리는 그는 왜인과 조선반도의 관계를 추적,일본인의 원형과 그 문화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핀다.시바는 “왜는 중국이나 조선왕조의 체제원리인 유교의 바깥에 있는 민족”이라고 규정한다. 도쿄의 토박이인 에돗코(강호っ자)의 기질을 흔히 ‘맑게 갠 5월 날씨’에 비유하는 데,중세 말기의 왜의 기질이 바로 그렇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바의 여정은 가야의 옛 터전인 김해 땅에서 출발해 오미(근강)에 있는 도래 백제인의 잊혀진 무덤을 찾는 것으로 끝난다.뚜렷한 목적지 없이 우왕좌왕하는 것 같지만 그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끊임없이 대비시키면서 한민족과 왜,그리고 항왜인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용의주도하게 풀어간다.시바 료타로의 본명은 후쿠다 사다이치(복전정일).그는 후쿠다라는 일본 성씨를 버리고 중국 성씨인 시바(사마)를 택했다.또한 왜구가 자기네 조상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가 친한적 인물인 것은 아니다. 역사를 천착해가는 그의 중도적 사관은 오히려 보수적인 일본의 시각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시바는 그의 문학의 주요 모티프로 늘 역사를 끌어들인다.중화민족을 자부하는 한족이 북적 혹은 동이라고 깔보는 몽골족,만주족,조선족,일본족 등이 그 대상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의 작품에는 일본에 대한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애정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동북아 3국의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반드시 엄정한 것만은 아니다.박이엽 옮김 학고재 9천500원.
  • 소수민족 허저족(흑룡강 7천리:22)

    ◎중 정부 “희귀 종족 보호” 산아제한 없애/45년 300여명서 95년엔 4,275명으로/‘고향’ 동강시만 821명… 민속박물관도 여기는 삼강평원,흑룡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동강이다.중국 역사는 동강을 이렇게 적고 있다.주나라 때는 동강이 숙진부,당나라 때는 하북도 흑수부,요나라에서는 동경도 오국부,명나라에 이르러 삼성부도관할구에 속했다는 것이다.1906년 이곳에 임강주가 서고 3년 후엔 임강부로 개칭,또 4년 후에는 임강현이 됐다.동강으로 이름이 고착되기는 그 다음해인 1914년이고 현에서 시로 승급한 때는 겨우 10년 전인 1987년이다. 오랜 옛적에는 성곽이었던 이 곳을 허저족들의 말로는 라하쑤쑤(나합소소),페허라는 뜻으로 불렀다. 1654년 조선 지원군이 러시아군을 일망타진한 곳이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떠올라 당장이라도 합수목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 했다.하지만 아침 9시에 가목사를 떠나 270㎞ 겨울길을 달려서 동강에 도착한 때는 지난해 12월4일 하오 4시,벌써 겨울 짧은 해가 서산에 지고 어둠이 자리를 펴고 있었다. 가로등이 널따란 아스팔트 길을 밝히고 도로 양켠에 늘어선 고층 건물들에는 전기불이 밝혀졌다.옛날엔 페허였을지 몰라도 오늘의 동강시는 발전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우리는 동강호텔로 곧장 갔다. 동강시 민족사무위원회의 우립군(35) 주임과 오채운(42) 부주임이 호텔에서 우리를 맞았다.가목사시 민족사무위원회에서 이미 전화가 있었으므로 그들은 점심에 도착할 줄 알고 식사를 같이 하려고 그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이다.식당에서 그들과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았다. 우·오 두 사람은 모두 허저족(혁철족)이었다.중국 사책에서는 허저족을‘허진(혁진)’ ‘허지쓰리(혁길사륵)’ ‘허지리(혁길륵)’ 등으로 표기했는데 그 뜻은 동방,하류라는 것이다. ○선조는 북해지방서 어렵 바로 흑룡강 하류에 사는 동방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허저족으로 사책에 처음 기재된 것은 ‘청성조실록’인데 “강희 2년 3월 임진(1663년 5월1일)에 4성 쿠리하(고리합) 등에 명하여 수달피를 바치도록 했는데 허저 등국은 영고탑에서 수납했다”고 씌어 있다.허저족으로 고정되기시작한 것은 민국 23년(1934년) 능순성이라는 사람이 ‘송화강 하류의 허저족’이라는 책을 펴낸 때부터다. “우리 선조들은 원래 북해지방 바이칼호 부근에서 어렵으로 살았답니다.어렵장 쟁탈 전쟁에서 쫓겨 흑룡강,송화강,우수리강 유역으로 옮겨온 연대는 똑똑히 알 수 없습니다마는 서북방에서 온 통구스(통고사)인임엔 틀림이 없답니다” 1976년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허저족을 위한 일을 해온 오채운 여사의 말이었다. 현재 동강시 오기진의 만족들이 1990년 인구조사때 허저족으로 등기하고 허저족자치촌을 만든 사실이 이를 입증하기도 한다.‘효종실록’에 기재된 변급의 견문기에도 “흑룡강 하류에 또 어피달자가 있다.북경에 귀순했다”고 돼있다. 이튿날 동강시에 있는 허저족 민속박물관을 참관했다.흑룡강변 공원 옆에 세워진 박물관 건물은 영국인들의 세관이었다고 한다.청조 말년에 동강이 중국 북방의 중요한 무역항구로 되면서 1907년에 라하쑤쑤분관이 섰다.그러나 청조는 영국·미국·독일·러시아·일본·프랑스 등 11개 국가와체결한 불평등한 ‘신축조약’에 따라 해 관세 등을 배상금으로 외국인한테 주었다.1910년 영국인들은 바로 중국식과 서양식이 반반씩 섞인 벽돌건물을 지었던 것이다. ○항일전투서 40명 희생 인적이 끊긴 박물관은 썰렁했다.모두 네 개의 칸으로 된 박물관은 허저족들의 복장(짐승가죽과 물고기 가죽으로 만들었다),생산공구(활,작살,그물 등)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중국에서 제일 인구가 적은 민족이랍니다.18세기 초 강희 말년에 1만2천여명(2천398호)이었는데 1856년에는 5천16명,1911년에는 3천400여명이었습니다.그런데 20년 후인 1930년에는 겨우 1천200명뿐이었고 광복이 되던 해에는 300명밖에 안 남았었지요.우리 민족은 멸망의 변두리에 이른 것이랍니다” 오채운 여사가 말했다. “동강,부금지구에서 우리 민족이 항일에 나선 용사들은 50여명입니다.칠성강 전투에서 40여명이 희생되고 나머지 분들은 러시아로 해서 신강으로 이전해서 항일을 계속했답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허저족은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향수,인구가 급성장했는데 1995년 당시 4천275명이 되었다.한족은 무조건 아이 하나,만족을 제외한 모든 소수민족은 아이 둘까지 허용되어 있지만 허저족은 둘 이상도 허용된다. “정부에서는 허저족에 대한 특별한 우대정책을 주고 있습니다.동강시구역 내에 사는 허저족은 821명입니다.일년에 한 번씩 운동대회를 할 때면 국가에서 자금을 대지요.올해 여름 운동대회때 시 민족사무위원회,시 정부,향 정부에서 각각 10만원씩 30만원을 대주었습니다” ○조선족은 ‘대우’ 못받아 12만 인구를 가진 동강시 관할구역 내에 사는 조선족은 922명,허저족보다도 많지만 소수민족 대우를 그들처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동강진병원 원장 박광일(44)씨는 말한다. “동강은 허저족의 고향입니다.우리 조선족들이 연변자치주의 수도 연길을 수도처럼 생각하듯이 허저족들도 동강시의 동강진을 수도처럼 여긴답니다.민속박물관도 여기에 있습니다.용정에 조선족 민속박물관이 섰다더군요.허저족 민속박물관을 볼 때마다 용정에 가서 우리 민족의 박물관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이곳에 사는 우리들은 민족을 모르고 산답니다” 흑룡강성 내에 거주하는 조선족이 45만,그런데 조선족 민속박물관이 아직 없는 실정이다.내년에 가목사시에 박물관이 서는데 두칸을 내서 허저족과 조선족의 민속을 전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 치치하얼시 백두산여관(흑룡강 7천리:16)

    ◎조선족 2,000여명의 ‘사랑방’ 역할/주인 30대 조선족 부부/“91년 한국에 건거가 막노동/4년동안 알뜰히 60만원 벌어 귀국/2층짜리 식당 딸린 여관 인수했디요” 치치하얼시에서 대전그룹에 대한 취재를 마치자 나는 하루 숙박료가 150원씩 하는 눈강호텔에서 싸구려 백두산여관으로 짐을 옮겼다.전날 대전그룹에서 노래방 초대를 받아가던 중 보았던 곳이다. 백두산은 아리랑과 같이 자고로 우리민족의 상징이다.중국의 어디를 가든 백두산이라는 간판이 붙은 상점이나 식당,여관을 들어가면 주인은 조선족이다.시내중심인 건화구에 위치한 백두산여관은 2층 건물인데 1층은 식당이고 식당안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에 여관방이 설치되어있다. 온돌방 하나 침대방 여덟인데 방 하나의 숙박료는 60원.나는 하루 15원씩하는 4인 침대방에 들었다.정갈하고 아담하게 꾸려진 방이 마음에 들었다.지난 3월 개업했는데 침대가 비는 날이 없이 고객이 든다고 한다.손님은 거의가 조선족이며 고급방은 한국인이 장기투숙하고 있다. 주인은 이인걸(39)씨,김영란(38)씨 부부.남편은 여관을 부인은 식당을 책임지고 있다.이씨의 할아버지 이희철의 고향은 평북 선천군 용천면인데 부친 응찬이 한 살때 중국으로 이사왔다고 한다.증조부가 선천에서 군수를 한 집안이라 지주였으나 30년대 할아버지가 지하 항일운동으로 가산을 탕진했다.경찰의 요시찰 인물이 되자 만주로 도주해서 독립운동을 하다 40년 일본군에 체포돼 사망했다.그의 무덤은 하얼빈 열사능원에 있다. ○고급방은 한국인 장기투숙 아들 응찬은 26살의 청상과부 어머니손에 자라 광복을 맞고 북경에서 군관학교를 졸업,조선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와 84년 제대할 때까지 군에 복무했다. 아버지의 근무지가 목단강이어서 소학교나마 조선학교를 다닌 이인걸씨는 76년 한족중학교를 나와 철도국직원으로 들어가 근무했다.91년 9월에는 부부가 함께 한국에 갔다. “약 석달동안 막일을 하다가 풍전호텔에서도 일하게 됐습니다.삼성건설에서 부부가 함께 일했는데 일년에 15만원씩 벌었습니다.60만원을 챙겨갖고 94년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가서 큰 돈을만지던 사람들이 중국으로 돌아오면 일손이 잡히지 않듯이 그도 철도국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월급이래야 서울에서 2일간의 수입이어서 사표를 내고 반년을 집에서 놀았다.수입은 없고 돈만 축냈다. 군인아버지한테서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이씨는 95년 봄에 사업을 하기위해 천진,북경,위해,청도등 전국을 돌아다녔다.96년에는 북경에서 한국인이 차린 회사에 들어가 10달동안 일했으나 월급은 한푼도 받지 못햇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사업경험을 쌓았다.2년동안 가족을 떠나 객지에서 얻은 결론은 치치하얼에 돌아가 무언가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이 건물은 면적이 364㎡입니다.60만원에 사서 장식하는데 10만원을 투자해서 여관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흑룡강성에 있는 조선족 기업중 연간 생산량이 1백만원 이상 되는 기업은 200개,1천만원 이상되는 기업은 20개이다.석산린의 창녕그룹,최수진의 성 민족경제기술개발총회사 같은 거물급의 뒤를 이어 오성학의 대전그룹,김인한의 하얼빈쌍령급수설비기술개발유한회사,임홍덕의 대경풍화기업그룹,박성공의 하얼빈유전펌프공장,이승남의 동각구제통신설비유한회사,강관변의 대경시개발구물자회사노광석의 할빈동북계량기,강호규의 오상시천국그룹 등 기업체와 소형개체공상호와 중소형기업체가 많다.할빈과 같이 치치하얼시의 150개 조선족 업체중에서 90%,가목사시 794개 조선업체중 764개,목단강시 3천907개중 90%가 소형개체공상호이다업종은 음식·오락·서비스업이 85%,의류소매업체가 10%라고 한다. 치치하얼시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2천여명.시장경제에 남보다 앞서 뛰어들어 현재 식당업종의 30%가 조선족차지이다.부근의 농촌에서도 조선족들이 시내에 들어와 가라오케와 노래방을 경영하고 있다. ○10만원 들여 장식… 3월 개업 대개 이런 업종은 김치장사가 커서 탈바꿈한 것이다.백두산여관은 이인걸씨가 한국에서 뭉치돈을 마련해서 투자한것이므로 조선족의 식당 여관업종에서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인걸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아산 이씨입니다.한국에 있을때 버스를 타고 아산에 가서 아산 이씨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그 집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그 집 아들과 함께 서울에 있는 종친회에 갔습니다.종친회장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그 뒤로는 종친회때마다 중국대표로 참석하고 할아버지 이름을 찾아 가평의 종중산에 가서 제도 올렸습니다” 종친을 위하는 일자체가 결국은 민족을 위하는 일이 된다. “중국에 사는 아산 이씨대표가 가 조상의 이름에 먹칠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백두산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조선족이다.조선족들은 한족들보다 월급을 100원 이상 주어야 한다.그런데도 그는 앞으로도 조선족만 쓰겠다고 다짐했다.민족을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종업원 모두 조선족 채용 백두산여관같은 조선족 기업과 경제발전은 농촌의 인력에게 취업기회를 마련해주고 민족의식을 일깨워준다. 가목사시 조선족 기업취업인원수는 3천970명,전 조선족 인구의 31.7%이며 목단강시에는 1만1천410명이나 된다. “한국에 가보니 경제성장의 혜택을 본사람은 기회를 잘 포착한 사람들이었습니디.지금도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데요.한국에서 땀흘려 번 돈을 보람있게 써야합니다” 그는 조선족들의 한탕주의를 경계했다.
  • 대낮 세든집에 불/수능시험 앞둔 3수생 어머니 구하려다 숨져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이틀 앞둔 삼수생이 집에 불이나자 어머니를 구하려고 불속에 뛰어들었다 숨졌다. 17일 상오 11시20분쯤 대구시 중구 남산1동 601 강호준씨(48·상업)집 2층에서 불이 나 세들어사는 김명일씨(50·운수업)의 장남 봉철군(20)이 불에 타 숨졌다. 불을 처음 본 옆집 정경숙씨(51·여)는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옆집 2층에서 불길이 치솟았으며 봉철군이 ‘엄마가 방안에 있다’고 외치는 누나의 소리를 듣자마자 집안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봉철군의 어머니 김모씨(47)는 불이 날 당시 자신이 운영하는 인근 분식점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남북회담사무국장 문무홍씨/통일정책실장 김형기씨/통일원 인사

    ◎정보분석실장 정대규씨/통일교육원장 양영식씨 정부는 31일 통일원 남북회담사무국장에 문무홍 통일정책실장,통일정책실장에 김형기 청와대 비서관,정보분석실장에 정대규 남북회담사무국 상근위원,통일교육원장에 양영식 남북회담사무국 상근위원을 각각 전보 발령했다. 또 남북회담사무국 상근위원에는 이호 정보분석실장과 강호양 공보관을 각각 승진 발령했다.
  • 비자금 공방 고함·삿대질 난무/국회법사위 국정감사 현장중계

    ◎‘오익제 의혹’ ‘DJ 불가론’ 거론에 육탄저지도/“조속수사” “수사불가” 강력대치… 정회 잇따라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는 17일 국회 법사위의 법무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파문을 놓고 정회가 속출하는 등 격전을 벌였다.특히 신한국당이 이날 제기한 김대중 총재의 ‘오익제 의혹’ 및 ‘DJ불가론’에 대해서는 비자금 파문보다 뜨거운 격론이 이어졌다. 국감이 시작되자마자 국민회의는 의혹이 제기된 김총재의 친·인척 40여명을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제안했으나 논란끝에 표결에서 신한국당의 반대로 부결됐다.이어 신한국당의원들은 김총재를 줄곳 ‘부정축재사범’‘범인’‘피의자’이라고 지칭한데 대해서도 국민회의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이날도 신한국당에서는 안상수·이사철·정형근·홍준표 의원이 주로 나섰고,국민회의는 조찬형·조순형·박상천·조홍규 의원 등 전 의원을 동원했다. 신한국당 정형근 의원은 김총재의 ‘중간평가유보 대가 2백억원 수수설’과 관련,“김총재는 지난 89년 1월9일 밤 11시부터 새벽3시 사이에 박철언씨로 부터 그의 운전기사가 운반해 온 2백억원을 받았다”고 폭로했다.이어 “사상이 불투명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면서 “김총재는 월북한 오익제씨와 수차례에 걸쳐 단둘이 만났으며,96년 2월에 중앙당 2차후원금으로 1천만원을 받는 등 돈을 받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박상천 의원은 “오씨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날수 있는 평통상임위원으로,우리당은 그가 평통에 임명될 때 공안기관의 사상조사 결과를 믿었기 때문에 영입했던 것”이라면서 “우리는 정부가 공인한 ‘Q(품질보증)마크’를 믿고 상품을 썼을뿐”이라고 역공을 가했다.또 “김총재와 오씨가 단둘이 여러차례 만났다는 정의원의 주장은 현재 북한에 있는 오씨를 직접 조사하지 않으면 나올수 없는 것”이라면서 ‘음해성 허위정보’라고 주장했다. 조순형 의원은 이어 “김포출입국관리소장은 지난번 국감에서 ‘오씨는 안기부통보사항이어서 안기부에 통보했으나 별이상이 없다고 해서 출국시켰다’고 답변했다가 번복했다”면서이 증언의 사실여부를 밝히는 것은 물론 증인선서를 하고도 답변을 번복한 출입국관리소장을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비자금수사와 관련,신한국당은 검찰이 신중한 입장을 보임에 따라 김종구 법무부장관에게 이미 제출된 고발장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도록 지시할 것을 강도높게 촉구했다. 안상수 의원은 “검찰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정치를 하느냐”고 공박한뒤 “수사를 회피하는 것은 검찰총장의 직무유기이며,소신없는 총장에 검찰을 맡길 수는 없다”면서 검찰총장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홍준표 의원은 “검찰의 명제는 ‘신중’도 있지만 ‘신속’도 있다”고 전제하고 “야당총재는 치외법권지대에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검찰의 의무는 사람을 보지 말고 증거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조순형 의원은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선거를 앞두면 특정정파에 이익이나 손해를 줄 수 있는 사건에는 관여를 안하는 관행이 정착되어 있다”면서 “신한국당이 수사를 압박하는 것은 검찰에 관권선거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조홍규·조찬형 의원은 “김총재의 처남 이상호씨가 11개 계좌에 35억6천만원을 관리했다고 신한국당이 주장했는데,이씨 계좌의 총잔액은 4백60만원에 불과하다”면서 이씨의 예금통장 10개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이에 신한국당 송훈석 의원은 “김총재의 처남인 이강호씨의 경우 불과 한두달 사이에 같은 은행 10개 계좌에 3천만원씩을 입금했다”면서 ‘김총재의 비자금이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 스리랑카 도심 폭탄테러/한국인 2명 부상

    【콜롬보 AP AFP 연합】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중심가에서 15일 3차에 걸친 폭탄테러와 테러범들과 군경 간의 총격전으로 최소한 17명이 사망하고 외국관광객 수십명을 포함해 100여명이 부상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부상을 입은 외국관광객 가운데는 LG전선의 이강호 이사와 정차홍씨(개인무역업) 등 2명의 한국인이 들어 있으나 부상 정도는 심하지 않다고 외무부가 밝혔다. 현재 콜롬보시에는 70여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다. 폭탄폭발로 갈라다리호텔 볼룸과 인근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일부가 파손됐다.
  • DJ 비자금 파문­신한국 추가폭로 내용

    ◎“92년 대선전 5개 기업서 115억 수수”/이형택씨 동창이름 도용 6억 입금/처남 이씨 계좌에 하루 4억 넣기도 신한국당이 10일 폭로한 ‘DJ 비자금 파일’은 재벌기업으로부터 수수한 비자금 내역과 친인척을 동원한 비자금 관리 실태에 초점이 맞춰졌다.강삼재 사무총장과 이사철 대변인이 잇따라 나서 공격수 역할을 맡았다. 다음은 발표요지. ▷재벌 등 기업관련 비자금 내역◁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91년5월부터 93년5월까지 2년동안 10개 기업으로부터 모두 1백34억7천만원을 제공받았다.동아건설은 92년 11월 62억5천만원을 당좌수표로 발행,김대중 총재에게 제공했다.삼성그룹은 92년2월에 10억원,92년3월에 14억원 등 모두 24억원을 김총재에게 제공했다.이자금은 전액 경수투자금융에서 인출된 것이다. 대우그룹은 40억원의 불법실명전환을 도와준 일 말고 92년8월 중순쯤 20억원을 제공했다.(주)한창은 93년5월말쯤 차남 김홍업씨 등에게 5억원을 제공했다. 벽산개발은 92년 10월27일 4억원을 김총재에게 제공했다.이돈은 대선홍보자금으로 쓰였다고 한다. 김현철사건에 관련된 이성호씨의 부친 이건 회장이 운영하는 (주)대호건설은 91년 5월 평민당에 2억2천만원을 제공했다.최근 부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로그룹에서는 91년 7월 5억원을 김총재에게 제공했다. 이밖에도 91년 6월 풍성전기가 5억원,92년 11월 동현건설이 5억원,대동건설이 2억원을 각각 김총재에게 제공했다. 이상의 금액은 김총재가 재벌기업으로부터 받은 돈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금융가에서는 지금까지 4번째 대선을 치르고 있는 김총재의 비자금 총액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친인척 비자금 관리실태 ◁ 김총재의 처조카인 이형택씨의 고교동창 이의돈씨(원자력병원 산부인과 과장)명의로 동화은행 종로5가 지점 등 13개 계좌에 6억8천4백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93년 1월5일 3천2백만원이 입금됐고 그뒤 2천1백만원,2천2백만원 등이 분산 입금됐다. 이의돈씨는 은행지점장인 이형택씨의 실적을 올려주기 위해 아내를 통해 5백만원을 넣은 통장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사실과 차이가 있다.이의돈씨 계좌가 왜 13개나 되고 6억원이 넘는 돈이 입금됐는지는 둘 사이에서 해명돼야 할 문제다.만약 이의돈씨 해명이 사실이라면 이형택씨가 친구 이름을 도명,계좌를 관리한 것이다. 이형택씨의 부친으로 김총재의 처남인 이강호씨는 나이가 83세로 무직이다.그런데 90년 12월부터 96년 2월2일까지 이강호씨 명의의 32개 계좌에 입금액 기준으로 37억8천7백만원이 입금됐다.특히 실명제 실시 이후인 94년 11월24일 하룻동안 이강호씨 명의의 13개 계좌에 4억원이 입금됐다.동화은행 남역삼지점 7개 계좌 2억2천만원,서역삼지점 6개 계좌 1억8천만원이다.
  • “김대중 총재 기업서 134억 받았다”/신한국 이사철 대변인

    ◎91∼93년 동아건설 등 10개사서 신한국당은 10일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조성의혹과 관련,“김총재는 92년 11월 동아건설로 부터 62억5천만원을 받는등 지난 91년부터 93년 5월까지 10개 기업으로 부터 모두 1백34억7천만원의 비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강삼재 사무총장은 김총재의 큰처남인 이강호씨의 계좌에 37억8천7백만원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다. 또 김인영 의원은 이날 국회 재경위 국감에서 김총재의 작은처남인 이상호씨의 계좌에 35억6천7백만원,이형택씨의 고교동창인 이의돈씨의 계좌에 6억8천4백만원이 각각 분산입금됐다고 주장했다. 이사철 대변인은 이날 하오 ‘김대중 총재의 재벌기업으로 부터 비자금 수수내역’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김총재는 ▲삼성그룹으로부터 92년 2월 10억원,92년 3월에 14억원 등 총 24억원 ▲대우그룹으로부터 40억원 불법실명전환 말고 92년 8월중순 20억원을 제공받았고 김총재의 차남 김홍업씨는 한창으로 부터 93년 5월말 5억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대변인은 또 91년2월 평민당은 김현철씨 사건에 관련된 이성호씨의 부친 이건 회장이 운영하는 대호건설로부터 2억2천만원을 제공받았고,김총재는 ▲92년 10월 벽산개발로부터 4억원 ▲91년 7월 진로그룹으로부터 5억원 ▲91년 6월 풍성전기로부터 5억원 ▲92년 11월 동현건설로부터 5억원 ▲대동건설로부터 2억원을 각각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대변인은 “김총재는 재벌로부터는 한푼의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해왔으나 재벌기업으로 부터 무차별적으로 비자금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전모가 드러나면 천문학적 액수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신한국당은 검찰에 자료제출과 함께 고발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11일중으로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검찰수사를 공식 촉구키로 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는 이날 발표한 신한국당의 재벌기업으로부터의 수수내역 명단을 ‘괴문서’로 규정하고 폭로극 중단을 요구했다. 국민회의는 또 신한국당이 제기한 비자금 의혹관련 자료 작성 등에 모기관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공식제기하고 국회 정보위 등에서 이 기관의 책임을 철저히추궁키로 했다. 김대중 총재는 “신한국당이 주장한 기업체 명단에는 그런 기업체가 있는지 이름조차 모르는 기업도 있다”며 “완벽한 조작이자 파렴치한 행동”이라고 말했다고 정동영 대변인이 전했다. 조세형 총재대행도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6일밤 11시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신한국당 강삼재 총장과 모기관 책임자가 만나 조작극에 대한 마지막 손질과 조정을 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국회 정보위 등을 통해 엄정하게 추궁,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아건설과 삼성은 이날 신한국당의 발표내용을 부인했다.
  • DJ 비자금 파문­신한국 강공 배경

    ◎“퇴로는 없다” 사생결단 총력전/강 총장 정치생명 걸고 승부수… 추가 폭로 준비/여론 양비론으로 흘러 큰 부담… 검찰수사 압박 신한국당이 10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거액 비자금의혹을 겨냥해 ‘연발탄’을 날렸다. 상오에는 강삼재 사무총장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김총재의 처남인 이강호씨(83) 등 친인척을 통한 비자금 관리내역을 밝힌데 이어 하오에는 이사철 대변인이 비자금 파문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재벌기업의 자금제공설까지 공개했다.재계순위 1위인 삼성그룹이 24억원,4위인 대우그룹이 20억원을 제공한 것을 비롯,10개 그룹이 1백34억7천만원을 김총재에게 건넸다는 것이다.이중 동아건설은 무려 62억5천만원이나 제공했으며 30대 재벌에 속하는 기업만도 삼성,대우,동아,진로 등 4개나 된다.당초 재벌기업 관련부분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당내 재계통을 중심으로 신중함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그러나 이 보다는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김총재의 실체를 벗기는게 중요하다고 판단,공개를 결정했다는 것이 이대변인의 설명이다.그는 “김총재는 재벌로부터는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상기시키고 “김총재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보다 나을게 없는 부패한 두 얼굴의 위선자”라고 비난했다.이번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면서 “금융가에선 김총재의 비자금 총액이 전·노씨의 비자금을 능가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이 이처럼 예민한 대목인 재벌의 정치자금 제공문제까지 들고 나온데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특히 강총장은 정치생명까지 위태로울수 있다.따라서 일부의 ‘호흡조절’주장에도 불구,강공드라이브를 걸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읽혀진다.비자금 폭로이후 여론이 양비론으로 흐르고 있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김총재를 부패와 거짓의 상징으로 각인시킬때 이런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연장선상에서 신한국당은 김총재 친인척의 비리와 또다른 비자금 의혹등을 추가 폭로할 것으로 관측된다.11일에는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총력대응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문제는 검찰의 수사착수 여부다.전·노씨 및 김현철씨와의 형평성에 맞춰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신한국당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적절한 시점을 택해 뒷켠으로 비켜설 것으로 점쳐진다.
  • 여 폭로내용 허구성 부각 총력/국민회의 움직임

    ◎처남의 거액운용설 등에 냉소적 반응/자민련과 공조 비자금 국정조사 요구 국민회의는 10일 신한국당의 잇따른 폭로전에 대해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의 기자회견과 대변인단의 공식·비공식 성명·논평,개별의원의 성명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폭로내용의 허구성을 부각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한편으로는 박상천 총무가 자민련 이정무 총무와 공조를 이루어 ‘정치지도자 비밀자금에 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등 장내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신한국당이 김대중 총재의 큰처남인 이강호씨의 거액 운용설과 돈을 주었다는 대기업의 명단을 발표한데 대해 흥분하기 보다는 냉소적이었다. 박지원 총재특보는 “이씨는 한국증권과 한신증권사장을 지냈으며,68년부터 70년까지는 증권협회장을 맡기도 했다”면서 “필동집을 팔아 큰 돈을 움직이기도 했다”고 ‘재력가’임을 부각시켰다.그러면서 “신한국당 주장대로라면 이회창씨 처남 돈도 이회창씨 돈이라는 말이냐”라고 반문한 뒤 “앞으로 한국에서 정치는 고아나 독신자만 해야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정동영 대변인은 신한국당이 발표한 기업명단을 ‘괴문서’로 규정하고 “판세가 지지율 3위에 고착되어 있고 추악한 저질 폭로뒤에도 변동이 없자 초조한 나머지 벼랑끝에서 정치적 불장난을 감행한 것”으로 평가절하했다. 한 당직자는 농반진반으로 “신한국당이 내보인 액수를 다 합쳐도 우리가 92년 대선에서 선관위에 보고한 370억에 한참 못미친다”면서 “그 액수는 맞춰주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박홍엽 부대변인은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국민적 동정을 사고 야당에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 위해 자작테러극으로 벌일 우려가 있다”면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 “김정일 승계후도 북 변화 없을것”/김 대통령 밝혀

    김영삼 대통령은 8일 북한이 김정일의 당총비서 승계를 공식 발표한 것과 관련,“근본적으로 북한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제78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 참석을 위해 창원으로 내려오던중 김정일의 총비서직 승계발표를 반기문 청와대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뒤 경남도청에서 지역인사 3백여명과 만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북한의 여러 어려운 상황을 감안,안보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통일원 강호양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우리는 북한이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며 “북한이 화해협력의 세계사적 흐름에 합류하여 안정적 변화를 이루고,우리와 함께 평화통일의 큰길을 열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대종상 영화축제 15작품 본선 진출

    27일 개막하는 제35회 대종상영화축제에서 ‘지독한 사랑’(이명세 감독,씨네2000 제작) 등 15 작품이 본선에 진출해 20 부문의 상을 놓고 다투게 됐다.심사위원단(위원장 최하원)은 19∼25일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예심을 갖고 출품작 36편 가운데 후보작을 골랐다. 주요 부문 후보자(작)은. ◇최우수작품상=비트(우노필름) 아버지(서울광연) 접속(명필름) 지독한 사랑(씨네2000) 초록 물고기(이스트필름·시네마서비스) ◇감독상=박철수(산부인과) 이명세(지독한 사랑) 임권택(창) 장길수(아버지) 정지영(블랙잭) ◇여우주연상=강수연(지독한 사랑) 신은경(창) 심혜진(초록 물고기·마리아와 여인숙) 최진실(고스트 맘마) ◇남우주연상=김승우(고스트 맘마) 박근형(아버지) 정우성(비트) 최민수(블랙잭) 한석규(초록 물고기) ◇조연여우상=박상아(고스트 맘마) 방은희(넘버 3) 정경순(창) 조주미(지독한 사랑) 추상미(접속) ◇조연남우상=문성근(초록 물고기) 송강호(넘버 3) 유오성(비트) 임창정(비트) 최민식(넘버 3) ◇신인여우상=박상아(고스트 맘마)이혜은(코르셋) 전도연(접속) ◇신인남우상=송강호(넘버 3) 임창정(초록 물고기) 박신양(유리) ◇신인감독상=김성수(비트) 유상욱(피아노맨) 이창동(초록 물고기) 장윤현(접속) 한지승(고스트 맘마) ◇각본상=송능한(넘버 3) 여혜영(고스트 맘마) 이금주(마리아와 여인숙) 이명세(지독한 사랑) 이창동(초록 물고기) ◇촬영상=김형구(비트) 서정민(피아노맨) 정광석(지독한 사랑) 정일성(아버지) 유영길(초록 물고기) ◇음악상=남택상(피아노맨) 송병준(지독한 사랑) 이동준(초록 물고기) ◇기획상=고동훈(아버지) 김복근(지독한 사랑) 심재명(접속) 이태원(창) 황경성(고스트 맘마).
  • 원대시인 조맹부의 호주(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22·끝)

    ◎호·소의 고장… 세계최초 비단생산지/동산·연못·정자… 연화장원림 한폭의 산수화/50년대 반체제시인 심택의도 이곳서 출생 송나라때,중국 남방에는 ‘소호숙하면 천하족’이란 말이 있었다.소주와 호주의 곡식이 익으면 천하의 먹거리가 넉넉해진다는 뜻이다. 호주가 항주·가흥과 함께 ‘황금삼각’으로 불리는 까닭은 그 땅의 비옥함 말고도 문물의 흥성을 뜻했다.호주는 태호의 남쪽 언덕인데다 고을안에 많은 호소를 거느리고 있다.이러한 지형 지질때문에 양잠과 종다가 성행했다.호주박물관은 호주가 세계 최초의 비단 생산지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원림 가꾸기에 좋았다.호주 시내에 현존하는 연화장과 남심의 소련장같은 원림이 많아서 남송때는 그 수가 소주의 그것을 능가했다고 한다. ○당시인 장지화의 사도 이곳서 이 고장의 산수와 풍속을 알리는 절창이 있다.그것은 당나라 중엽의 시인 장지화(750∼810)가 귀양살이 끝내고 그의 아호 ‘연파조도’처럼 연파를 타고 낚시하느라 태호 일대를 떠돌다가 어느날 호주,바로 서새산앞에서 이 사를 쓰고부터다. 서새산전백로비 도화유수어어비 청야립,녹엽의 사풍세우불행귀 어가자 (서새산 산전엔 훨훨 백로,/복사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가 살찐다./파란 대삿갓에 녹색 도롱이 쓰고/산들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줄 모른다.) 이 글도 옛날 우리나라 서당방 어디서고 애송하던 명편이다.호소가 많고 물고기가 흔한 호주의 지리적 특성을 잘 표현했는데 푸른 산에 백로 날고 복사꽃 수면위에 뛰어오른 쏘가리,그 정경에 알맞은 강태공의 흥취가 감칠맛 나게 어우러져 있다.물론 호주시에서 서쪽으로 5㎞인 남호주정거장을 지나 다시 서쪽 반양호 옆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동산이 서새산이다. 또 하나의 과객으로 만당때 호주를 떠돌며 호주를 고향삼은 자가 있다.소주 출생의 시인이요 수필가인 육구몽이다.그는 그의 아호 ‘강호산인’처럼 태호와 호주를 유랑했다.그는 벼슬을 얻지 못한 채 ‘전사부’·‘야묘비’·‘뇌사경’ 등 전원의 일취나 농부의 곤경을 파헤친 풍자 산문을 썼는데 도리어 그것으로 문단적 지위를 확보했다.그중 농가의어려움과 경작 방법을 논한 ‘뇌사경’은 호주에서 완성한 작품으로 칭송을 받았다. 오직 원대의 시인이요,원대 4대화가의 하나인 조맹부(1254∼1322)가 온전한 호주 출생으로 그 고향에다 많은 자취를 남겼다. 그는 시·서·화 삼절에 능통했으며 그 세가지를 하나로 융합한 보기 드문 대사였다.비록 송나라 종실의 귀족이면서 몽고 원나라 벼슬을 함으로써 굴절의 비판을 받았지만 시·서·화에 있어 한위성당의 전통적인 고풍을 계승,광박하고 중후한 풍모를 보여주었다.산수와 전원을 묘사하고 가송한 시를 ‘송설재문집’에 남겼는데 특히 화경에 어울리도록 덧붙인 화제시의 섬세한 필치는 중국 시가사상 일품으로 꼽힌다. 호주의 자랑은 호주시 남쪽에 위치한 112묘의 연화장 공원이다.작은 동산 서너개에 작은 연못 서너개를 짜깁기한 원림이다.남송때 일군 공원,적어도 700년 이상을 헤아리는 역사가 묻었다.작은 다리에 오밀조밀한 바위,꽃 한송이처럼 뾰죽한 정자에 시원하게 사방을 끌어안는 누각들이 여럿 돌올 하여 전형적인 남방의 원림임에 틀림없다. ○시·서·화 3절 능통한 대사 그것은 차라리 조맹부의 야외 기념관이었다.필자가 좋아하는 조맹부의 ‘쌍송평원도’나 ‘작화추색도’의 한 대목을 그대로 닮고 있을 뿐 아니라 거기의 인공적인 시설물들이 조맹부를 기리는 것들로 연결되어 있다.연화장 정문을 들어서 왼편을 보면 북경 북해에 있는 구룡벽을 방불하게 하는 작은 벽이 있다.바로 ‘오흥부비랑’이다.조맹부가 자기 고향 오흥(호주의 옛이름)을 찬미한 글과 진필을 조각한 것이다. 이 공원의 한복판,호수위에 떠있는 커다란 누각,조맹부의 아호를 따서 ‘송설재’라 이름하였는데 역시 연화장의 안방격이다.다시 동쪽으로 다리를 건너고 호수를 따라 그 끝에 다다르면 파도같은 다리위에 추녀같은 정각이 서 있다.그 정각에는 달랑 두 글자의 현판이 있다.참으로 표일하고 맥동하는 글씨로 ‘경홍’,놀란 기러기를 뜻했다.푸드렁 소리가 나면서 아득한 하늘이 눈까풀에 가득했다.역시 송설의 글씨였다. 조맹부의 예술이 살아있는 연화장은 따로 그 아우를 두고 있다.바로 ‘소련장’으로 불리는 작은 원림이 호주시 동쪽 34㎞지점인 남심에 있다. 남심은 지금 강소성의 주장·주가각·동리 등과 함께 보존형태가 가장 양호한 명대 촌락이다.이 고장 출신으로 50년대의 반체제 시인이었던 심택의와 함께 남심의 운하·석교·골목들을 누빌때,필자는 적어도 300년 이상의 풍우를 견딘 마을이 이토록 온전할 수 있을까 했다.더구나 폭풍같았던 문화혁명때도 무사했다는 말을 듣고,이국의 나그네마저 안도의 탄성을 질렀다. ○남심의 소련장원림도 장관 남심의 심장은 소련장,그것은 1920년,이 고장의 부호였던 유승간이 20묘의 땅에 30만냥의 은전을 들여 가업이란 이름의 도서관을 받드는 원림이다.굽이굽이 오솔길에 석순들이 참치한 가산,그리고 작은 정각에 작은 다리들,역시 남방의 원림,다른 것은 60만권의 장서에 선본도 판각하는 도서관을 그 심장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 사명대사 기념회 학술회의 김영작 교수 발표 요지

    ◎사명당 임란때 대일외교 큰 업적/전쟁후 원한관계서 평화·선린 전환 주역 사명대사는 흔히 임진왜란때 의병을 규합해 왜군에 맞선 구국의 인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전후 조선과 일본의 선린관계 회복에 몸을 바친 탁월한 외교가로서의 역할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사명당기념사업회가 18일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서 ‘사명당의 생애와 사상의 조명’이란 주제로 마련한 학술회의에서 국민대 김영작 교수(정치외교학)는 사명당의 외교적 역할과 그 의의를 부각시켜 관심을 모았다.다음은 김교수의 ‘사명대사의 대일교섭에 관한 일고찰’이란 주제발표문의 요지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승의병을 조직,항왜투쟁을 전개했을뿐 아니라 네차례나 왜장 가토오 기요마사(가등청정)의 진중에 들어가 적정을 탐정하고 외교담판을 전개했다.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뒤 조선과 일본 양국이 소원한 관계에 있던 1605년 조정의 명을 받아 대마도에 파견된 것을 기회로 일본 본토로 들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와 담판을 통해 포로쇄환 및 양국의 국교 정상화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일교섭에 관한 학구적인 분석이 전무한 상태이다. ○대일교섭 분석 전무 사명대사의 특이한 활동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그리고 임란후 그가 전개한 대일외교 담판이다.그는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전개된 이른바 ‘강화교섭’의 실상과 조건을 파악하고 적장 가토오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와(소서항장)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켜 적진을 분열시킴으로써 ‘조선영토의 일본에의 할양’과 ‘조선의 일본에의 복속’을 전제로 추진된 명·일간 강화교섭을 저지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또 일본의 새 지배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회견을 가져 7년여에 걸친 침략전쟁으로 인한 두나라 사이의 감정을 풀고 신의와 평등에 기초한 국교 정상화의 초석을 마련했다.그 과정에서 3천명에 가까운 포로송환도 주선했다. ○국교정상화 디딤돌 그러면 임진왜란의 수원을 청산하고 한·일 두나라의 국교를 정상화한 외교적 공헌은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의를 지니나.임진왜란은 오랜 양국간의 친선관계를 원한관계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었다.사명대사의 도일과 이에야스의 강화합의는 두나라의 수원을 풀고 선린·외교관계를 회복하는 첫 계기가 됐다.이를 계기로 조선정부가 1607년의 제1차 회답 및 쇄환사(제1차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케 되며 2년후에는 정식 통상조약이 체결됐다.그후 1811년까지 12차례의 통신사가 파견되고 200년이 넘는 기간에 조·일 양국의 선린우호관계가 지속되는 것이다.도쿠가와 바쿠후(덕천막부)시대 일본·조선간 260년에 걸친 친선 우호관계의 상징으로 12차례에 걸친 통신사의 교류를 흔히 거론한다.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이러한 친선관계의 첫 계기는 1605년 사명대사 일행의 도일이었으며 그것이야말로 규모는 작았지만 일본과 조선사이의 제1차 통신사라 할 수 있다. ○제1차 통신사 역할 임진왜란을 가운데 놓고보면 한·일 관계는 임란이전 선린우호의 시대와 임란의 침략·피침의 전쟁시대,그리고 임란후 조선과 에도(강호)막부와의 선린우호시대의 전개라는 구분이 가능하다.그런 의미에서 사명대사는 ‘침략과 저항의 전쟁시대’를 다시 ‘평화적 선린우호시대’로 전환시켜 놓은 역사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정리=김성호 기자〉
  • 태극궁사(외언내언)

    중국 조나라때 기창이라는 사람은 술이 가득 담긴 술잔을 팔뚝에 올려놓고 활시위를 당겨도 잔속의 술이 미동도 하지 않는 비전의 궁술을 터득했다.화살 100대를 속사해도 마치 한 대의 화살처럼 과녁으로부터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묘기가 그것이다.그러나 그의 스승이 보이지 않는 화살을 메기고 활시위를 만월처럼 당겨 고공의 매를 쏘아 떨어뜨리자 그의 기예는 한낱 어린애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이른바 화살없이 표적을 쏘아 떨어뜨리는 ‘불사지사의 경지다. 양궁은 끝없는 정신의 수양이라는 측면에서 도와 정신적인 스포츠에 비유된다.한국양궁의 계속되는 세계제패는 그동안 세계양궁인들의 끊없는 연구과제였고 전문가들은 한국선수들의 체형과 신체리듬,한국적인 감정의 진폭이 침묵과 감각의 경기인 양궁에 두각을 나타낼수 있었다고 분석한다.그동안 한국양궁의 독주를 막기 위해 국제양궁연맹(FIFA)은 수시로 경기방식을 변경하는가하면 신흥강호인 미국 이탈리아 호주등의 전력 급상승으로 한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는듯 한 것도 사실이다.지난해 애틀란타 올림픽에선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미국세에 밀려 고전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대회에서 한국은 어느나라도 따라올수 없는 전력과 저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한 국가가 4개의 전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면서 세계무대를 평정한 것은 ‘양궁왕국’임을 입증하는 쾌거가 아닐수 없다.79년 첫출전이후 최고성적이라는 위업달성에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을 통틀어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다른 때와는 다른 뜻깊은 감회를 안겨준다.더구나 반짝했다가 사라지던 종래 한국남자양궁의 풍토를 불식시키는 이례적 성과를 빚어내기도 했다. 등록선수는 일본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불과 2천명의 소수정예지만 강인한 정신력집중에 중점을 둔 과학적인 훈련방식의 승리로 점쳐진다.정상에 오르기도 어렵지만 정상을 지키기란 더욱 어렵다. 이번 쾌거는 정치 경제적으로 해결해야할 난제들이 많은 가운데 들려온 낭보라서 한층 청량감이 더하다.강건한 기상 흔들리지 말고 ‘불사지사’에 이른다는 각오로 양궁왕국을 지켜주길 바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