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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해당한 보험가입자/피해액 50% 우선 지급/당국

    ◎대출금상환 연말까지 유예 최근의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보험계약자에게는 추정손해액의 50%가 보험금으로 우선 지급되고 오는 연말까지 보험료 납입과 대출금의 상환이 각각 유예된다. 29일 보험당국이 마련한 「수해 보험가입자에 대한 지원대책」에 따르면 손해보험의 경우 사고를 당한 가입자가 보험금지급을 신청하면 추정손해액의 50%를 가지급금으로 우선 내주고 보험금지급에 필요한 청구서류도 대폭 간소화하도록 했다. 특히 이들에게는 올말까지 보험료의 납입과 대출원리금의 상환을 각각 연기해주고 유예된 보험료와 대출금도 분할 납부하거나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피해를 입은 보험가입자가 약관대출을 신청하면 24시간내에 이를 즉각 지원해 주도록 했다. 한편 이번에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우로 인해 발생한 보험사고는 지난 26일 현재 76건에 추정손해액이 30억2천2백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 태풍,경남해안 스치고 동해로/오늘 하오 소멸

    ◎부산일대 선박·방파제 큰 피해/제주·남해안등 폭풍주의보 해제/기상청 강한 비바람을 몰고 영남내륙지방을 강타할 것으로 우려됐던 제9호 태풍 「캐틀린」은 29일 하오 세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경남남해안을 스쳐 30일 새벽 예상보다는 큰 피해없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이에따라 30일 하오부터는 우리나라 전역이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태풍이 스치고 지나간 제주와 부산·경남남해안지방에서는 인명피해와 함께 선박과 방파제가 부서지는등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랐다. 기상청은 29일 『태풍중심부가 남해안지방에 접근하면서 인접기압배치의 이동으로 진로가 부산남쪽 80㎞지점에서부터 북동쪽으로 급격히 휘어졌다』고 밝히고 『이와함께 중심기압도 9백50mb에서 9백60mb로 올라가는등 세력도 계속 약화돼 시속 35㎞의 빠른 속도로 북동진,30일 상오5시쯤 울릉도 동쪽 1백㎞해상을 지나 온대성저기압으로 바뀌며 소멸되겠다』고 예보했다. 기상청은 이에따라 29일 하오6시를 기해 호남내륙지방과 호남서해안지방의 태풍주의보를 해제한데 이어 하오9시에는 영남내륙지방의 태풍주의보도 해제했다. 또 영남남해안지방및 남해동부전해상의 태풍경보를 폭풍주의보로 대체하고 제주도·전남남해안,서해남부전해상에 발령되고있던 폭풍주의보도 해제했다. 한편 기상청은 『제주도 남쪽해상에 머무르던 장마전선도 태풍에 밀려 북상한 뒤 소멸될 것으로 보여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장마도 사실상 끝나게 되겠다』고 밝혔다.
  • 물난리속 20여곳에 산사태/중부 폭우피해

    ◎용인선 일가족 5명 참변/출수앞둔 농지 25만㏊ 황폐화/터널붕괴·교량잠겨 한때 열차 발묶여 휴일인 21일부터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경기·강원·충북·경북일대를 삽시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곳곳에서 참변이 잇따랐다. 특히 경기도에서는 일가족 5명이 매몰된 용인군 원삼면 죽릉4리를 비롯,20여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흙더미에 깔려 13명이 숨지고 도로와 철도·통신설비 등이 물에 잠겨 교통·통신이 한동안 두절되는 등 피해가 많았다. ▷산사태◁ 21일 폭우로 용인·오산·화성군 등에서 잇따라 산사태가 발생,일가족 5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진 것을 비롯,13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28명이 부상했다. 하오1시30분쯤 용인군 원삼면 죽릉4리 이강학씨(40·이장)집 뒷산에서 산사태가 나면서 흙더미가 이씨집을 덮쳐 집안에 있던 이씨와 승재(13)정재(11)영재(9)등 세아들,이씨의 어머니 안옥희씨(78)등 일가족 5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 또 하오1시45분쯤 오산시 은계동 56의2 차주성씨(56)집과 은계동20의1 정준교씨(32)집 뒷산이 무너져 방안에서 잠자고 있던 차씨의 딸 혜정씨(23)과 정씨집에 놀러왔던 정씨의 매제 성규채씨(35)등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철도피해◁ 이날 하오1시쯤 병점∼오산의 5㎞구간 가운데 상행선 7곳,하행선 4곳 등 모두 11곳이 유실되거나 산사태로 파묻혔다. 병점역부근의 서울기점 51.3㎞지점에서 하행선 20m가량이 산사태로 매몰되고 길이 2백40m의 오산터널 벽일부가 무너졌으며 3백20여m의 둑이 붕괴됐다. 비슷한 시간에 오산터널벽이 무너져 내렸으나 이곳을 지나던 서울발 부산행 제313호 통일호열차가 이를 보고 급정거해 사고를 피했다. 이날 사고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 29편이 운행을 중지,승객 2만여명이 환불을 요구하거나 4∼5시간동안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재산피해◁ 경기도는 이번 비로 2천2백27채의 가옥이 침수되거나 부서져 77억4천6백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또 1천4백83명의 이재민을 냈으며 농경지 25만3천4백80㏊가 침수 또는 유실됐다. ▷군 구조◁ 육군은 집중호우가 내린 21일 하오5시30분부터 7시50분까지 경기도용인군원삼면미리내와 이동면에 UH1H 헬리콥터 2대를 동원,고립된 1백77명의 인명을 구조했다. 육군은 또 22일 상오 충북원성군대소면과 중원군·괴산군 지역에 트럭 21대·중장비 10대·병력 6백90명을 동원,유실된 국도 7m와 건물 7동·비닐하우스 1천9백평을 긴급복구했다.
  • 천재지변 시달리는 아주대륙/폭우·태풍 곳곳서 속출

    ◎중국,태풍·홍수로 3천명 사상/방글라선 강물 범람… 이재민 3백만/화산터진 비도 폭우… 산사태 잇따라 【북경·다카·마닐라·뉴델리 외신 종합 연합】 대홍수로 큰 재난을 겪은 중국이 이번엔 태풍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입는등 아시아 여러나라가 폭우·태풍등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있다.방글라데시의 경우 2주간의 폭우로 22일현재 다카부근의 강물이 범람,낮은 지대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1백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또 인도동부의 아삼주와 필리핀·라오스등에도 열대성 폭우가 집중돼 큰 피해를 입었다. ▲중국=태풍 애미호가 중국 남부해안을 강타,35명의 사망자와 1천3백60명의 부상자를 냈다고 중국 언론들이 20일 보도했다. 광동성에서 발간된 신문들은 태풍을 수반한 폭우로 인해 1만5천여채의 가옥이 파괴됐으며 산두지역에서는 나무들이 꺾어지고 고층건물의 유리창이 떨어져 자동차들 위로 날아다니는 것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광동성 관리들은 현재 산두지역의 전력공급이 완전 중단됐으며 인근 광동시에서도 가로수와 전주들이 넘어지고 논이 침수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번 폭풍으로 지난 2개월간 홍수에 시달려 온 중국 중동부의 재해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공식집계에 의하면 안휘성·강소성·호북성에 집중된 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1천8백여명에 이르고 있다. ▲방글라데시=방글라데시를 휩쓸고 있는 홍수로 인한 사망자수는 21일 현재 1백20명을 넘어섰으며 최소한 1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구호당국 관리들이 21일 말했다. 사망자는 방글라데시의 64개주중 대부분 북부에 위치한 20여개 주에 강물이 범람하면서 급증했으며 절반 가량은 강둑붕괴 후 오염된 식수와 부패한 음식물 섭취로 인한 설사 및 기타 복부질환으로 사망했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다카 기상대는 자무나·브라마푸트라·파드마 등 주요 하천의 수위는 이날부터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또다시 광범한 지역에 강우가 예상되고 있어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했다. ▲인도=동부 아삼주에 열대성 폭우가 몰아쳐 25명이 사망하고 수백개의 마을이 파괴됐으며 40만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필리핀=피나투보 화산주변지역에 내린 폭우로 화산의 암석이 무너져내려 19일 이 지역주민 2만여명이 대피했다.그러나 희생자가 아직 보고된 것은 없다고 관리들이 밝혔다. 목격자들은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1백10㎞ 떨어진 콘셉시온시에서 수백t의 진흙과 바위가 굴러 내려와 7백채의 집들이 파괴되거나 묻혔다고 전했다. ▲라오스=북서부지역에 큰 비가 내려 17명이 사망했다고 관영 라디오방송이 전했다.
  • 「홍수 중국」 태풍 강타/남부 농경지 9백만정보 휩쓸어

    【홍콩 연합】 중국 화동지역(화산동부의 강소·안휘·절강성)을 휩쓴 홍수가 서서히 북쪽으로 물러나고 있으나 두터운 비구름대가 동북지방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근년 최대의 태풍 에미호가 20일 새벽 중국 남부 복건성과 광동 동부지역을 정면으로 강타,이들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고 홍콩신문들이 20일 보도했다. 이들 신문은 시속 1백84㎞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 에미호는 19일밤 대만에 3명의 사망·실종자와 50여채의 가옥파괴 등의 인명·재산피해를 남기고 중국 복건성 남부지역과 광동동부지역에 상륙,이미 산두시에만도 3백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가옥 3백여채를 파괴했으며 9백만정보의 전답을 휩쓸어 농작물의 절반가량에 수확할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한편 북경의 재해대책본부는 비구름대가 북진함에 따라 황하와 양자강의 수위는 낮아지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북진한 비구름대가 산동성과 동북지역에 새로운 홍수를 몰고올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 인니에 지진/1주새 29명 사망

    【자카르타·베오그라드·웰링턴 AP 연합】 인도네시아 남동부 알로르섬을 강타했던 지진의 여진이 계속돼 1주일 동안 사망자가 29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12일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뉴질랜드에서도 잇따라 지진이 발생,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소동을 빚었다. 지난 4일 리히터 지진계로 강도 6.2의 강진으로 24명의 사망자와 1백81명의 부상자 및 막대한 재산피해를 냈던 인도네시아 알로르섬에서 9일과 11일 사이에 여진이 계속되면서 5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가 추가로 발생,사망자가 최소한 29명으로 늘어났다고 쿠팡지방 정부의 한 관리가 밝혔다. 유고슬라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인근에서도 12일 낮 12시45분(이하 현지시간)께리히터 지진계로 강도 4∼5 사이의 지진이 발생,주민들이 황급히 집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 11개 시·도의회 의장단을 내정/민자당

    민자당은 5일 김윤환사무총장주재로 시도지부위원장회의를 열고 호남및 제주를 제외한 11개 시·도의회 의장단을 내정했다. 민자당은 과반수에 미달한 제주도의회 의장단은 6일중 무소속후보자중 영입대상자를 확정한 뒤 결정할 방침이다. ▷의장◁ ▲서울=김찬회(종로2·전산림청장) ▲부산=우병탁(중구1·전지구당위원장) ▲대구=김홍식(중구1·금복주회장) ▲인천=이기상(중동구1·영진공사대표) ▲대전=김석종(동구5·신진건설대표) ▲경기=정한주(안산1·전노동부장관) ▲강원=최경식(동해1·5대민의원) ▲충북=조성훈(청주5·도지부사무국장) ▲충남=이대희(보령3·지구당부위원장) ▲경북=손경호(경주시3·경주상공회의소장) ▲경남=추한식(마산1·시민버스대표) ▷부의장◁ ▲서울=조정순(성동8·국제정구연맹회장)(1석은 야당) ▲부산=강태홍(남구2·전부산시장)·도종이(부산진6·새마을금고이사장) ▲대구=박승국(북구3·전지구당위원장)·조경제(달서2·한의원원장) ▲인천=장순상(북구5·신용금고회장)·이명복(남구6·인천상공회의소부회장) ▲대전=이기웅(중구5·보옥당대표)·이병규(동구1·금강타올대표) ▲경기=우봉제(수원5·선도직물대표)·원기영(의정부1·평통자문위원) ▲강원=박수복(춘천2·대림연탄대표)·정덕중(원주3·관광호텔대표) ▲충북=박상호(보은1·라이온스지구회장)·김연권(충주3·우신기업대표) ▲충남=김고성(연기3·강내건설대표)·김용호(논산3·대호종합건설대표) ▲경북=문대식(구미1·구미상공회의소회장)·김경종(안동군2·상공인쇄소대표) ▲경남=최태용(울산남3·대양유조사대표)·정만규(삼천포1·만구제빙냉동대표)
  • 당시 중대장 이대용씨의 회고:「내가 겪은 6·25」 하

    ◎혹한속 중공군 6개 사단의 포위 돌파/평양서 재편성… 「인해전술」과 싸우며 남하/51년 7월 대대장으로… 금성·금화서 공방전/저격능선 「고지쟁탈」 전투중 미 유학 명령 1950년 10월28일 하오 6시45분.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벌써 어둠이 깔렸다. 제7연대 제1중대는 5대의 트럭에 분승,주둔지인 압록강변을 떠나 초산읍으로 철수했다. 다음날인 29일 새벽 5시쯤 제1대대 수색대를 태운 군용차 한 대가 초산읍에서 다시 남쪽을 향하여 떠났다. 제1대대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하여 북한공산군의 출몰이 염려되는 구용동 남쪽 고개를 수색·점령·확보하기 위해 먼저 떠난 것이다. 그날 아침 6시30분쯤 제7연대 제1대대는 군용트럭을 타고 초산읍을 출발,남쪽으로 내려가 고장에서 연대본부와 합류했다. 이때 중공군은 고장 남쪽에 있는 풍장 일대에서 아군이 남하하는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제2대대와 제3대대는 이들 중공군을 일제히 공격,돌파작전을 개시했다. 우리 공군 전폭기들이 중공군 진지를 강타하면서 제7연대의 돌파작전을 근접지원해주었다. 중공군은 남으로 좀 밀려나는 듯했으나 그들의 두꺼운 포위망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달이 없는 어두운 밤이 됐다. 지형은 폭이 50∼1백50m 가량 되는 좁은 계곡이 길게 남북으로 놓여 있고 계곡 양쪽의 산줄기들은 가파르고 높았다. 이날 밤 12시 정각,중공군은 야간공격을 감행했다. 그들의 야간전투는 혀를 찰 만큼 아주 능숙했다. 얼마 안가서 제7연대의 전방부대가 무너지고,전방에서 흩어진 연대병력은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도로를 따라 북쪽을 향하여 달아나고 있었다. 후방으로 멀리 떨어져서 재편성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방에서는 이미 다른 중공군 부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숨 돌릴 새없이 달려들었다. 재차 흩어져서 다시 더 먼 후방으로 달려가 보아도 그곳에서도 전황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 제7연대는 중공군 제40군예하 1개 사단과의 첫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다. 중공군은 우선 병력면에서도 우리 제7연대의 약 3배나 됐다. 군용트럭 수백 대와 사단포병 야포 6문,대전차포,기타보급품을 버린 채 제7연대는 낭림산맥의 지맥인 유령산맥 깊은 산중으로 이리저리 흩어져 들어갔다. 중공군은 이 분산병력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악착같이 우리 부대를 추격하며 남쪽으로 통하는 길목을 모두 차단하고 있었다. 중공군과의 싸움에 들어가기 전 필자의 지휘하에 있던 병력은 제1중대원 약 1백60명,배속된 중기관총반원 약 10명,귀순 동화된 북한공산군 포로 남녀 약 25명,간호학생 2명,한국청년단원 약 10명 등 모두 2백명이 넘었으며 이 중 여자 등 비무장인원을 제외한 전투가능 인원은 약 1백85명 정도였다. 필자는 이 전투가능병력 중에서 약 60명을 잃은 채 잔여인원을 이끌고 유령산맥으로 들어갔다. 높은 산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곳은 벌써 깊은 겨울이어서 뜯어 먹을 풀조차 없었다. 중공군을 만나면 싸우기도 하고 피해 달아나기도 하면서 남으로 남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포위망을 계속해서 뚫어봐도 눈에 보이는 것은 중공군뿐이고 아군은 도대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중공군과 만나 교전이 이루어질때마다 아군의 병력은 자꾸 줄어만 들었다. 중공군 6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는 데서 우리 제7연대의 인명피해는 엄청났다. 당시 제7연대에는 8명의 영관급 장교가 있었는데 이 중 6명의 손실이 있었다. 부연대장 최영수 중령,제2대대장 김종수 중령,제1대대 부대대장 조현묵 소령,연대정보주임 김재강 소령 등 4명은 포로가 됐고 제3대대장 조한섭 소령은 전사했으며 연대작전주임 조윤재 소령은 무참히 학살당했다. 포위망을 뚫고 용케도 살아나온 사람은 연대장 임부택 대령과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 두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김용배 중령은 그후 전사했다. 더욱이 장병들의 손실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내가 덕천지방 동쪽 송정리에서 대동강을 건너 남중리의 적군과 최후의 교전을 갖고 포위망을 뚫은 뒤 제6사단 사령부에 도착,사단장 장도영 준장에게 신고를 한 것은 그해 11월9일 오후 3시경이었다. 나는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나와 사단장에게 첫번째로 신고식을 갖는 장교가 된 것이다. 군악이 울려 퍼졌다. 군인 20명을 3렬 횡대로 하여 세워놓고 마지막에 서울적십자병원 간호학생 2명을 세웠다. 중대장인 나는 3렬횡대의 6보 앞 중앙에 섰다. 나는 사단장에게 다음과 같이 신고했다. 『경례! 바로! 제7연대 제1중대장,이대용 대위는 적포위망을 돌파하고 사병 20명,민간인 간호학생 2명을 지휘하여 1950년 11월9일 사단사령부에 도착했기에 이에 삼가 신고합니다. 경례! 바로!』 사단장의 위로와 격려사가 있었다. 군예대 여자 가수가 나의 목에 하늘색 머플러를 걸어주었다. 사단사령부에서 할당해주는 민중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서울적십자병원 간호학생 박태숙·정정훈양에게 하사관 1명을 딸려 서울로 떠나 보냈다. 깨끗이 보호하고 온 처녀들이 도중에서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든든한 하사관을 경호원으로 배정,서울까지 가게 한 것이다. 11월22일까지 제7연대장 임부택 대령과 김용배 중령이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왔고 후방에서 신병들과 육군종합학교 출신 신임 소위들이 보충돼 제7연대는 11월25일 재편성을 했다. 병력숫자로는 제7연대가 제대로 모습을 갖춘 셈이었다. 재편성이 끝나기가 바쁘게 제7연대는 덕천 남쪽 북창으로 이동하여 중공군과 대결하게 됐다. 북창과 가창 사이에 있는 미럭고개에서 큰 접전이 벌어졌으나 신병들인 아군이 중공군의 공격을 견뎌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공군의 진격은 계속되었고 우리 제7연대는 평양 상원 서흥 시변리 삭녕 전곡을 거쳐 다시 38선에 배치되었다. 북한공산군이 남침한 1950년도 저물어 갔다. 그해 12월31일 밤이었다. 중공군의 대공세에 밀린 제7연대 제1중대는 동두천 의정부를 거쳐 서울 북방 창동에 배치되었다. 해를 넘겨 1951년 1월6일 경기도 광주를 거쳐 백암리로 가는 도중에 나는 제1대대 부대대장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대대장 대리로 제1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영하의 매서운 바람이 살을 에듯이 불어댔다. 1·4후퇴라고 일컬어지는 설상의 피란민대열이 남으로 남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중공군도 각종 보급품들이 달리고 장티푸스까지 만연하자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이다. 중공군은 양지리 북쪽에서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제7연대는 그동안 중공군과 싸우면서도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엔 대단한 적군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도 별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불패의 군대가 아니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그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약 2개월간 제1대대를 지휘하고 나서 대대장이 새로 부임함에 따라 부대대장 직책을 수행하게 되었다. 용문산지구 전투,춘천지구 전투,구만리지구 전투,풍산리지구 전투,백암리지구 전투를 끝으로 나는 그해 7월9일 제7연대를 떠나 제2사단 제32연대 제1대대장으로 부임했다. 같은 해 10월27일에는 제32연대 제3대대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금화지구 파조봉­이실골 전투,금성지구 전투를 하면서 제32연대 제3대대는 금성 바로 앞산인 424고지까지 1개 소대를 진출시켰다. 여기서 중공군과 매일같이 폭격전과 수색전으로 투덕거리며 한겨울을 보냈다. 미군과 교대하고 금화 쪽으로 빠져나왔다. 제32연대는 제3대대는 금화 동북방에 있는 저격능선에 배치됐고 한국군에도 임시계급제도가 도입되어 일선 보병대대장들에게는 1952년 3월부터 모두 육군중령 계급이 부여됐다. 저격능선은 지형상 항상 긴장상태에서 적과 공방임무를 수행해야 했달. 그러던 중 나는 미 육군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2년여의 전진을 씻고 부산항에서 미국행 군용수송선을 탄 것이 1952년 9월2일이다. 이때의 군복은 카키색 군복이고 모자도 카키색 군모였다. 6·25가 일어났을 때,내가 춘천도서관으로 가던 때의 군복도 카키색 군복,모자도 카키색 군모였다. 카키색 군복으로 맞이한 나의 6·25는 카키색 군복으로 막을 내렸다.
  • 화산재 뒤덮인 마닐라는 암흑도시/비 화산폭발·태풍엄습 현장

    ◎건물·교량 붕괴,1백여 명 매몰/정규방송 중단… 3개 시민 소개 ○…검은 화산재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암흑지대로 돌변,마닐라에서는 일몰 3시간 전인 하오 3시45분경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어둠에 덮였다. ○…피나투보화산의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가 때마침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유나호에 동반한 강우와 뒤섞여 진흙상태로 돌변함으로써 필리핀 곳곳에서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진흙더미의 무게에 못 이겨 건물과 교량이 무너지는 붕괴사태가 속출. 클라크 공군기지 인근의 앙헬리스시에선 쏟아지는 화산재로부터 대피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 있던 한 버스터미널의 지붕이 무너져내려 1백여 명이 흙더미 속에 묻혔다. 또 오롱가포시에서도 역시 버스대합실 천장이 진흙더미의 무게에 못 이겨 무너져내려 1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루손섬에서는 최소한 4개의 교량이 붕괴되기도. ○…마닐라의 라디오방송들은 15일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자연의 분노로부터 신의 구호를 기도하는 긴급방송들을 내보냈다. ○…피나투보화산의 내부압력 증가로 이 화산이 문자 그대로 형체도 안 남을 정도로 폭발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는데 필리핀 민방위당국은 이날 피나투보화산으로부터 반경 40㎞까지(종전 30㎞) 확대된 위험지역내의 주민들에 대피령을 내리는 한편 이들의 소개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 포투나토 데 로라 민방위국장은 이날 산페르난도·앙헬리스·오롱가포 등 3개 도시 시민들의 소개를 위해 2백50대의 트럭과 버스가 3개 도시에 급파됐다고 말했다.
  • 인,최악 폭우… 4백명 사망/파키스탄선 폭염으로 3백여명 희생

    【뉴델리·도쿄·이슬라마바드·홍콩 AP 로이터 연합 특약】 일본,인도,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최근 태풍·홍수·화산폭발·무더위 등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4월말경 태풍이 방글라데시를 강타,15만명 이상이 사망한 이후 인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에서는 홍수와 무더위로 수백명이 사망하고 화산폭발로 30명 이상이 희생된 일본 나가사키(장기)현 운젠다케(운선악) 일대에는 10일 화산이 다시 폭발하고 폭우가 쏟아지며 산사태가 우려돼 이 지역 주민 5백80여 명에 대해 긴급소개령이 내려졌다. 인도에서는 기록적인 무더위와 폭우로 10일까지 2백64명이 사망했고 인도 중부 프라데시주의 싱라울리 탄광이 폭우로 침수돼 1백50여 명의 광부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인도의 PTI통신이 보도했다. 파키스탄 남부의 신드주에서도 섭씨 50도 안팎의 찌는 듯한 더위로 9일 최소한 2백명이 사망,올 들어 지금까지 모두 3백명 이상이 숨졌다고 파키스탄 관리가 밝혔다. 아프가니스탄 북부지방에서도 지난주 폭우가 쏟아져 7백30여 명이 사망하고 7천가구가 피해를 입었다고 관영 아프간통신이 보도했다.
  • 프로야구계 뒤흔든 “히로뽕강타”/장명부·성낙수 구속에 따른 실태

    ◎“경기력 향상·압박감 해소에 좋다” 손대/스타급의 복용사실 드러나면 큰 파문 22일 검찰에 구속된 장명부씨(41) 등 프로야구선수 출신의 히로뽕 상습복용사건은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뤄야 할 스포츠세계에서 경기력의 순간적 향상을 위해 마약류인 히로뽕의 힘까지 빌리고 있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특히 지난달 경찰에 구속된 신경외과원장 신영우씨(44) 등 부유층의 히로뽕 상습복용사건에 이어 발생,우리 사회에 마약이 얼마나 깊숙히 침투해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구속된 장씨는 검찰에서 보류선수로 남아 있던 87년 12월부터 함께 구속된 성낙수씨(34)의 권유로 히로뽕에 손을 댔다고 진술했다. 장씨에 이어 술집에서 알게 된 김 모씨(45) 백 모씨(34) 등과 어울려 김씨의 아파트와 여관 등으로 돌아다니며 히로뽕을 물에 타 마시고 주사기로도 맞아왔다는 것이다. 히로뽕의 효력에 대해 장씨는 검찰에서 『히로뽕을 복용하면 몸이 가뿐해지고 마음이 편안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다소 효과가 있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성씨는 『빙그레 이글스에 있을 때인 지난 86년 4월 히로뽕을 투약하고 삼성 라이언즈와의 야간경기에 나섰다가 패전투수가 돼 히로뽕이 경기력 향상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성씨는 특히 『빙그레 이글스에 있을 때 함께 선수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이민간 박찬씨의 권유로 히로뽕에 손을 대개 시작했다』고 진술,프로야구세계에 히로뽕 복용이 널리 퍼져 있으리라는 의혹마저 낳게 하고 있다. 프로야구계 주변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선수들 사이에 경기력 향상이나 압박감의 해소 등을 핑계로 히로뽕을 복용하는 일이 잦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또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우리나라 프로야구계의 간판스타들인 K모·J모 선수 또한 히로뽕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 때문에 이들이 다른 구단으로 방출됐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어 이들의 히로뽕 복용사실이 밝혀질 경우 프로야구계는 물론 또 한차례 사회전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장씨는 69년 일본 돗도리현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일본프로야구의 명문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난카이 호크스 등에서 투수로 활약하다 국내 프로야구 발족 이듬해인 83년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했다. 장씨는 그해 시즌에서 30승을 올리는 등 맹활약을 했으나 거친 경기 매너와 언사로 코칭스태프와 불화가 잦았으며 그 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86년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된 뒤 재계약을 맺지 못해 보류선수로 남게 되면서 마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는 88년 2월부터는 코치로 변신,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코치로 일했으며 지난해 10월 롯데를 떠난 뒤 최근에는 뚜렷한 활동없이 모 스포츠일간지에 야구관전평을 쓰고 있어 과거 프로야구선수로서의 화려한 명성이 점차 퇴색해가는 인상이 짙었다. 성씨는 76년 경북고가 고교야구를 제패할 때의 주역투수로서 경희대를 거쳐 82년 프로야구 창설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면서 눈길을 끌었으나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86년 1월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한 성씨는 87년 1월까지 1년 동안 선수생활을 한 뒤 프로야구계를 떠났으며 그해 8월부터 모 대학 야구부 코치로 일해왔다. 장씨와 성씨는 쇠퇴기에 있던 시절 빙그레 이글스에서 만나 서로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면서 가까이 지내게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 학생시위 배경은 「민중사고」”

    ◎불지,“반압제·반외세 민족투쟁의 한서 비롯”/미지선 “분신은 민주개혁 방해할지도” 비판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14일 사설을 통해 『한국에서 시위학생의 죽음을 두고 폭발한 여론의 분노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는 정당화하기가 어려울 만큼 한국 국내를 강타했다』고 지적하고 특히 한국내 일부 급진세력의 노태우 대통령 퇴진 요구는 『로스앤젤레스 경찰관의 폭행사건을 두고 부시 대통령에게 하야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는 어처구니 없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저널지는 이날 최근의 한국사태를 다룬 「한국의 열병」이란 사설에서 『한국의 핵심 급진파들은 이 나라가 이미 독재와 결별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를 원치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분신의 가장 슬픈 측면은 이 급진파 순교자들이 자유의 대의를 위해 기여하지 않고 그걸 방해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1987년 한국에서 수십만의 근면한 중산층이 거리에 나와 민주화를 요구했을 때 민주법칙을 구현하기 위한 계획과 시간표를 발표한 사람이 바로 노태우였으며,그는 또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고 상기시키고 『노 대통령이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의 선택을 지켜나가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뉴욕 타임스지도 15일 다시 최근의 한국정부­반정부세력간의 긴장·대치상황을 전하면서 많은 학생·근로자들이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지만 지난 87년에 있었던 정부­반정부 세력간의 충돌 때와는 달리 중산층 및 일반 사무직 근로자들은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런지 노태우 대통령은 최근의 격렬한 시위에도 불구,흔들리지 않고 있는 모습이며 그의 보좌관들도 최근 사태로 정부가 위기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타임스는 그러나 노 대통령 측근들도 한국 학생들 및 반정부세력의 최근 가두시위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로부터 높은 물가,심각한 공해로부터 경제성장의 둔화 등에 이르는 내정에 노 대통령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많은 한국민의 안타까움·불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인하고 있다고 밝히고 노 대통령이 각종 여론 조사에서 매우 저조한 지지율을 얻고 있으며 10% 미만일 때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격화되고 있는 한국 학생시위 배경에는 학생과 지식층의 전통적인 반압제투쟁과 민족적 신비성을 갖는 「민중」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고 프랑스의 르 몽드지가 15일 분석했다. 르 몽드지는 전 정권(5공)에 비해 현저한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현 정권하에서 「극단주의」가 점증하고 있는 이유를 분석하는 가운데 학생시위는 조선시대로부터 5공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나타난 지식층과 학생들의 반압제투쟁 그리고 이같은 상황에서 형성된 민족적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군철수·통일 등에 있어서의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학생들이 87년과 같은 일반의 지지는 얻지 못하고 있지만 과거 반압제 투쟁에서 나타난 결단과 용기 등 부인하기 힘든 정통성을 갖추고 있다고 전제하는 가운데 과거 박정희 정권과 5공 정권의 탄압과 「거짓말」이 오늘날 학생들의 대정부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학생들은 현 정부를 이전정권의 상속자로 간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르 몽드는 학생시위의 역사적 배경으로 또 「외국세력과 특권층」의 압제에서 비롯된 「민중의 한」을 지적하면서 민족적 신비성이 짙은 이 사고를 통해 학생들과 일부 지식인들은 민중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의 뿌리를 탐구해왔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학생시위의 「정열적」 요소는 바로 이같은 민족주의적 신비성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분신」은 이 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보안법 유지,정치범 존재,광주사태 재규명 등 현 정권의 민주화를 피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르 몽드는 덧붙였다. 이 신문은 그러나 급진학생들의 핵심부분은 4천∼5천명에 불과하며 상당수는 지하 마르크스주의 연구서클에 가입돼 있다면서 이들 학생조직에 일부 반체제 및 노조가 가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방글라 또 폭풍/1백18명 사망/산악지방선 지진

    【다카 로이터 UPI 연합】 지난주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태풍으로 최소한 12만5천명이 사망하고 수백만명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폭풍과 홍수가 몰아닥쳐 적어도 1백18명 이상이 사망하고 2천여 명이 부상했다. 시간당 중심속도 1백20㎞의 강풍이 9일 방글라데시 북부 및 동부 6개 지역을 강타,인적 피해와 함께 주택 및 차량이 대파되고 선박들이 전복되는 등 큰 재산피해도 입었다. 한편 11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도 국경 부근 산악지방에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신문들이 보도했으나 피해여부는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 방글라 태풍 사망 20만 추정/10개섬 고립… 3만여명 실종

    ◎해안지역 가옥 90% 파괴/EC,이재민 구호품 긴급 지원 착수 【다카(방글라데시) 외신 종합】 지난달 29일 밤부터 30일에 걸쳐 방글라데시의 연안 도서와 인구가 밀집한 해안지대를 강타한 태풍으로 20여 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 같다고 사이푸르 라만 방글라데시 재무장관이 2일 말했다. 라만 장관은 이날 미국의 CNN 텔레비전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지난 70년 같은 지역에 태풍이 몰아닥쳐 50만명이 사망했던 경험에 비추어 이번 태풍으로 인한 사망자가 적어도 20만명 선에 이를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날 연안 도서로부터 입전된 사망자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올리 아메드 체신장관은 항구도시 치타공에서만 2만5천명이 사망했다고 방글라데시 방송이 밝혔다. 방글라데시 관영 상바드상스타통신은 1일 하오 이 나라 남동해안의 항구도시 치타공 남쪽 1백㎞의 콕스시장 부근의 두 지역에서만도 5만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콕스시 트롤어선조합의 한 관계자는 이들 사망자 외에 1만5천명의 어부와 1천5백척의 선박이 실종됐다고 말했다.2일 현재 방글라데시 해군함정과 그밖의 구조선박들은 외딴 섬들에 도달하려고 모진 애를 쓰고 있으나 아직도 파도가 높아 접근이 용이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일이 10여 개 섬을 휩쓸었으며 구호관리들은 이들 섬에서 2만명이 행방불명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다카 동남 1백60㎞에 있는 길이 16㎞,너비 7㎞의 작은 산드윕섬에서만도 약 5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믿어진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공식집계된 태풍의 인명피해는 4만7천명으로 한 고위관리는 전국 64개 지구 중 16개 지구에서 시체 2천9백77가구가 회수되었으며 그 중 2천6백83구는 해안도시 콕스의 시장에서 회수된 것으로 말했다. 20년래 최악의 태풍이 엄습한 지 이미 36시간여가 지났는데도 방대한 지역이 여전히 연락두절 상태에 있다. 인도에서 청취된 방글라데시 방송은 이번 태풍으로 5만에이커의 농지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군부대는 1백30군데에 진료소를 설치했다고 보도했다. 하델라 지아 방글라데시 총리는 1일 신문에 공개된 원조호소문을통해 일부 지역에서는 가옥의 90%가 도괴되었고 교량과 도로들이 끊기고 곡물과 가축들이 유실되었다면서 피해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해군당국은 2일 이번 태풍으로 인한 금전상의 손실이 1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루프타르 라만 칸 구호담당 국무장관은 수백 구의 익사체들이 해안으로 밀려들어 오고 있으며 방글라데시의 주요 항만이 파괴되고 방대한 면적의 논이 유실돼 내년도 작황까지 위협하고 있으며 피해지역 가축의 70%가 익사했다고 말하고 지난 30일 이후 교통이 두절된 벽지에 식량과 식수를 수송하기 위해 최소한 20대의 헬리콥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유럽공동체(EC)는 태풍으로 부상하거나 가옥을 잃은 수백만 명의 방글라데시 주민들을 돕기 위해 방글라데시에 1천2백만달러상당의 비상식료품 및 의료품을 제공하기로 했다.
  • 외언내언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이기에 태풍이 불거나 홍수가 났다 하면 수천,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몇 천만 명 단위의 이재민이 생기는가. 그것도 연중행사처럼 자주 당하는 재난이라니 궁금하고 믿어지지가 않는 것을 어쩔 수 없다. 70년에 사상 최악의 태풍과 홍수 피해로 50만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아의 방글라데시에 또 다시 20년 만에 최악의 태풍과 해일이 몰아닥쳐 20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다. ◆방글라데시는 88년에도 대홍수로 국토의 5분의4가 수몰당하고 2천3백79명이 사망했으며 4천5백만의 이재민이 발생했었다. 89년에는 두 달 가뭄 끝의 폭우홍수로 1천명 사망,5천명 부상,이재민 10만이었고 90년에도 태풍으로 어민 3천명 이상이 사망,혹은 실종되었다. 한마디로 폭우와 홍수,태풍과 해일이 거듭되는 「천재의 나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4만4천㎢의 면적이면 한반도의 절반보다 조금 넓다. 인구는 1억6백51만(89년). 재난이 났다하면 클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인류문명발상의 하천 가운데 하나인 갠지스강 유역으로 국토의 90%가 평원의 저습지대이며 그 50%가 해발 5m 이하다. 연중 강우량은 1천5백 내지 2천5백㎜로 대부분이 5월에서 9월 사이에 내린다. ◆홍수의 나라일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래도 매년의 대홍수는 좀 이상하다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주장. 옛날엔 대홍수 주기가 50년에 1회꼴이었는데 근래엔 수년에 한 번 혹은 매년의 연례행사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인도·네팔 등 북부 인접국들이 히말라야산림을 마구 벌채,산지가 황폐화해 폭우가 그대로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재라는 것. ◆해안을 강타한 이번 태풍의 경우도 최근의 세계적인 이상기후와 관계가 깊다는 주장이다. 사이클론이란 이름의 이 지역 태풍은 동아시아의 타이푼이나 북미의 허리케인보다 횟수나 강도가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으나 최근에 그것이 역전되는 추세라는 것. 방글라데시의 자연재해도 이제는 인류공동책임의 인재화해 가는 셈이라고나 할까.
  • 섬 10여곳 고립… 이재민 수백만명/방글라 태풍

    ◎구조대 접근 어려워 피해 크게 늘듯 【다카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지난달 29일 밤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태풍의 피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늘어나 1일 밤(한국시각) 현재 집계된 사망자 수가 5만명을 넘어섰다고 관영 BSS통신이 보도했다. BSS통신은 치타공시발 기사로 『비공식 집계로 5망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BSS통신은 구조작업에 참여한 관리들의 말을 인용,고립된 10여 개의 섬에서 2만명이 사망했고 제2의 도시 치타공항과 콕스 바자르시에서 3천명,산드위프섬에서 5천명,쿠투브디아섬에서 2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고 밝혔다. 다카시 태풍재해대책본부측은 현재 벵골항의 수개 섬에서 보고된 실종자 수가 수천명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사망자 수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에 몰아닥친 20년래 최악의 이번 태풍은 지난달 29일 밤 약 9시간 동안 시속 2백33㎞의 강풍과 파고 6m의 해일을 동반,치타공항과 벵골만 일대의 크고 작은 섬들을 강타했었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1일 현재 공식확인된 사망자 수가 4천5백명,실종자 수를 1만여 명으로 발표하고 있다. 당국은 고립된 섬지역을 포함해서 이재민 수가 수백만명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1일 군헬기 등을 동원,마른식품과 의약품을 피해지역으로 긴급공수하고 있다. 한편 침수된 한 섬에서는 2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적십자 관계자는 현지관리의 말을 인용,문제의 섬은 대부분이 아직도 수심 2m로 침수돼 있는 상태로 2백만명의 전체주민 중 2만명 이상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굼 칼레다지아 방글라데시 총리는 1일 『폐해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방글라데시 혼자 힘으로는 감당키 어렵다』며 재해대책에 외국의 도움을 호소했다.
  • 방글라에 태풍… 수천명 사망/실종자 수천명… 이재민 수만명 발생

    【다카 로이터 연합 특약】 20년 만에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최악의 태풍으로 30일 현재 적어도 1천2백여 명이 숨졌다고 방글라데시 정부관리와 국영TV가 전했다. 이것은 지난 29일 밤부터 30일 새벽까지 방글라데시를 휩쓴 이번 태풍의 초기 피해상황이다. 시속 2백35㎞로 지난 70년 50만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던 태풍보다 더욱 강력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태풍은 해안지방에 높이 6m의 파도를 몰고와 1백여 척의 어선에 타고 있던 어민 5백명 이상이 실종됐으며 섬지방의 가옥 중 80% 이상이 파괴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수도 다카에서 반경 2백㎞의 호를 그리는 피해지역의 2천여 부락 주민 7백만명 중 3백만명은 태풍이 몰려오기 직전 대피했으나 대부분 진흙과 짚으로 만든 이들의 가옥들은 강풍과 세찬 물결에 휩쓸려 무너져 버렸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이날 자정 위성중계소의 안테나가 파괴돼 통신이 두절되기 전 치타공의 관리들은 벵골만 일대의 섬들에 수천명의 주민들이 갇혀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전해졌다. 이 태풍은 30일새벽 누그러졌으나 방글라데시 제2의 도시 치타공 공항에는 1m 깊이의 물이 들어 차 항공기운항이 중단됐으며 공항 건물 옥상에는 약 5천명의 이재민들이 구호를 기다리고 있다. 할레다 지아 총리는 이날 최고 경계령을 내리는 한편 의회소집을 사흘간 중단하고 헬리콥터 편으로 피해지역을 방문,인명 및 재산피해를 보고받고 있다.
  • 소 지진 희생자 계속 늘어/그루지야공/1백명 사망·2백50명 부상

    【모스크바 AFP 로이터 AP 연합】 소련 남부 그루지야공화국에서 지난달 29일 리히터지진계로 진도 7 이상을 기록한 강력한 지진이 발생,최소한 1백명이 사망하고 2백50여 명이 부상했으며 건물들이 대파됐다고 소련 관리들이 전했다. 이번 지진은 2만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지난 88년 12월의 소련 아르메니아공화국 대지진 이상의 진도를 기록했으며,그 피해는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다. 소련 중앙지진국은 모스크바 시간으로 29일 낮 12시12분(한국시간 29일 하오 6시12분) 발생한 이날 지진이 리히터지진계로 진도 7.1을 기록했으며 진앙지는 그루지야공화국 제2의 도시 쿠타이시시에서 70㎞,츠힌발리시에서 30㎞ 떨어진 지점이라고 밝혔다. 지진국의 블라디미르 스트라코프 국장은 아르메니아대지진 당시 진도가 6.9였음을 상기시키면서 7.1이라는 진도가 예비측정수치이긴 하지만 『당시보다 더 강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진의 발생시간으로부터 약 5시간 후인 하오 5시44분쯤 다시 2번째 지진이 일어나 그루지야공화국 수도 트빌리시시와쿠타이시시를 강타,창문이 흔들리고 낡은 건물에 사는 주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소란이 벌어졌으나 그 강도는 첫번째 지진보다는 미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소 그루지야공에 강진/진도 7.1/23명 사망… 피해 크게 늘듯

    ◎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 이후 최대 【모스크바 AP 로이터 AFP 연합】 소련 남부 그루지야공화국에서 29일 2만5천여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지난 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 이상의 진도를 기록한 강진이 발생,최소한 23명이 사망했으며 앞으로도 더욱 엄청난 피해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소련 중앙지진국은 29일 낮 12시12분(현지시간) 발생한 이날 지진이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7.1을 기록했으며 진앙지는 그루지야공화국의 제2도시 쿠다이시시에서 70㎞ 떨어진 지점이라고 말하고 아직까지는 피해상황이 접수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루지야공화국 최고회의의 마쿨리 가그니드제 대변인은 AFP통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공화국내 산간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최소한 23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지진국의 블라디미르 스트라코프 국장은 지난 88년 2월 2만5천명 이상의 사망자와 1만8천여 명의 부상자를 발생케 했던 아르메니아 지진 당시 진도가 6.9였다고 상기시키면서 7.1이라는 진도가 예비측정수치이긴 하지만 「당시보다더 강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련 언론들은 지진발생 직후 진도가 6.5라고 보도했으며 미 국가지진센터를 포함한 다른 지진전문가들은 진도가 7.2라고 주장했었다. 그루지야공화국내 치아투라시의 전화국 직원인 발렌티나 마그라드제는 『주민들이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으며 엄청난 파괴가 발생했다』고 말하고 『전신국에 있던 유리가 모두 깨져버렸다』고 말했다. 쿠다이시시의 경찰간부인 샤크로 데카노이드제는 이 도시에서 동쪽으로 75㎞ 가량 떨어진 샤취케레 마을 등 변방 산간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하고 피해조사를 위해 2대의 헬기가 현지로 급파됐다고 밝혔다. 또 쿠다이시시 동쪽 1백80㎞ 지점의 그루지야공화국 수도 트빌리시시의 소아과의 사 마리나 이바노바는 전화 인터뷰에서 『건물들이 모래 위에 지은 것처럼 뒤흔들렸다』고 말하고 『병원에 온 아이들을 데리고 건물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고 지진발생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아프간 정부군,반군에 스커드 공격/3백명 사망·7백명 부상

    【이슬라마바드 로이터 연합】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20일 저녁 회교 반군의 장악지역인 아프간 동북부 아사다바드에 스커드미사일 공격을 감행해 3백여 명이 사망했다고 반군들이 21일 밝혔다. 아프간 반군의 한 대변인은 지난 20일 저녁 소련제 스커드미사일 3기가 쿠나르주 주도인 아사다바드를 강타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이 공격으로 3백여 명이 사망하고 7백여 명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앞서 파키스탄에 소재한 아프간 반군정부의 관영뉴스는 아사다바드에 2발의 로켓탄이 떨어져 5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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