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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년을 보내며/지난해 실패만 한것은 아니다(사설)

    1991년은 끝난다. 우울하고 답답한 1년이었다.활력넘치고 빛나던 70년대나 착실하게 안정적이었던 80년대의 체험이 다소 들뜬 체질을 만들어온 우리에게 이 긴 불황과,단서를 찾을 길없는 혼미는 견디기에 부담스런 한해였다. 정치적으로 지난 한해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의정은 의정대로 기대를 밑도는 실망만 보여주었고 행정 또한 표나게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무엇보다도 사회적인 불안요인은 심각한 지경을 만들었다.민생치안이 허망하게 구멍뚫려 있어서 국민학교주변도 주택가도 안전하지 못했고 여전히 인신을 볼모로 하거나 해치며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이 별로 줄지 못했고 갖가지 범죄가 창궐했다.특히 범죄의 질이 지능화되고 신종범죄수단이 개발되기도 했다.그 중에도 지난해에는 범죄적 연고가 없는 불특정의 대상을 상대로 「분풀이식」 폭행이나 잔혹한 범행을 하는 범죄가 늘어났었다. 사회가 타락해가고 도덕적으로 무너지는 속도도 91년에는 좀더 심했던 해였다고 할 수 있다.뇌물로 인한 함정에 빠진 계층이 사회전반을 휘몰고가는 현상을 보였다.국회의원의 뇌물외유를 비롯하여 직위가 상당한 고위공직자가 줄줄이 연루된 증수회 비이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마침내 그 이전의 어떤 비이보다도 우리를 강타한 것은 예술교육기관에 종사하는 대학교수들의 입시불정사건이다.국회의원이나 관이에 대한 뇌물 파동은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도 예가 있을수 있지만 명문대학의 권위있는 대학교수가 자기대학 학생을 거액으로 거래하며 입시부정을 해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일이다. 우리를 가장 암울하게 만드는 현실은 어둡고 긴 터널을 헤어나지 못하는 경제현실이다.물가는 물가대로 불안하고 제조업에서 수출에 이르기까지 생산은 가라앉고 증권시장은 주저앉았다.개방압력은 굶주린 맹수처럼 대문앞에서 으르렁거리는데 수출마인드는 살아나지 않고 근로의욕은 상실되어간다.과잉으로 불어닥친 민주화욕구와 분수없는 자신감이 남긴 후유증으로 집단이기주의와 사려없는 과소비기질이 사회를 조금씩 더 혼란시킨 결과,이제는 좌절과 실의가 팽배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일일이 열거하노라면 이렇게 어둡고 대책이 없는 한해였지만,그렇다고 1991년이 그렇게 한심하고 대책없는 한해였지만은 않다.곰곰이 돌이켜보면 이해처럼 우리에게 중요하고 성과가 많았던 해도 드물다. 국내정치가 불신의 계절병을 면치못했다고는 하지만 민주화라고 하는 거대한 개혁의 물결을 헤치고 탄생한 정부가 그런대로 합의의 정치를 도출해가며 위태한 고비들을 넘기는 슬기도 발휘했고 무엇보다도 지자제의 첫걸음을 힘있게 내디뎠다. 특히 유엔회원국이라는 건국이래의 소망과업을 이루어 북방외교와 함께 우리의 위상을 세계질서안에 전향적이고 확고하게 편입시킨 공은 한민족 유사이래 획기적인 일이었다. 끝이 안보이는 터널속같은 경제사정의 암울한 현실도 「자각」이라고 하는 전기를 마련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아직은 다 탕진되지 않은 자신감과 의욕이 국민적 공감대를 가지고 재점화될 분위기를 무르익히고 있다. 지난 한두해에 걸친 우리의 침체와 혼미는 따지고 보면 충분히 예측되어온 위기이고 불안이다.단순히 사회발전론에 입각한 이론을 근거로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다.성장의 빛이 남긴 그림자이고 민주화 열병이후에 오는 예후증상이다. 사회라는 유기체는 생략이나 설명안되는 지름길을 가지 못한다. 1991년은 건너뛰거나 회피해갈 수 없는 우리의 도정을 적나라하게 우리 앞에 펼쳐보인 영광과 시련의 「실체」를 한눈으로 부감해보게 하는 해였다. 발전의 신화를 창출하는 시대에는 앙분되고 고조된 열기를 추진력의 원동으로 삼기도 한다.그 꿈꾸듯 열에 떠서 보내는 시대로부터 차디찬 현실의 세계로 들어서는 현실의 시대가 우리의 9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응석으로 프리미엄을 요구할 시기가 아니고 내부적으로도 의타심이나 요행을 쫓을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뿌린 만큼 거두고 온당하게 노력하는 사람만이 온당하게 거둬들일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진입된 것이다. 그러기 위한 도정으로서 1991년은 소임을 하지 못한 것은 별로 없는 해이기도 하다.정신없이 터져나온 온갖 비이도 어제 오늘 새로 심어진 악덕의 결과이기 보다는 해묵혀가며 자라온 전시대 해악의 타성적인 확대인 경우가 더 많다.이제 더는 지하나 그늘에 숨어서 계속해갈 수가 없기 때문에 추하고 흉한 「진상」을 들키게 된 것들이 더욱 많다. 예술교수들의 불정이 노정될때의 모습은 특히 시사한 것이 많다.더는 부정을 덮어두지 않기 위해서 어떤 초월적인 의지가 연출해놓은 드라마 같은 절묘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묵은해가 물러가는 저녁 땅거미질녘같은 지금 우리가 해보아야할 반성과 성찰은 다가오는 해를 맞기 위한 맑고 곧은 정신의 회복이다.92년은 우리민족의 결정적인 운명을 개척해야 할 절박하고 중대한 시기이다.통일의 기틀을 위해 직접 초석을 놓아야 하고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을 보조를 가다듬어야 할 해다.그와 함께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기여해야 할 사명과 직분을 공유해야 할 해이다.자학과 좌절로 낭비할 시간도 없고 유예할 수 있는 여분도 없는 시기다. 남에게 핑계대고,정치에 떠넘기고 계층간에 서로서로 떠넘기며 책임을 모면하려다가는 공멸할 수밖에 없는 매우 절박한 시기이다.1991년을떠나보내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그것을 확실히 인식하는 일이다.그것만이 1991년을 의미있게 살리는 길이다.
  • 동장군 주말 강타… 전국 영하로/서울 오늘아침 영하5도

    ◎주요도로 빙판길… “출근비상” 전국적으로 비와 눈이 사흘째 내린 뒤인 28일부터 수은주가 곤두박질,29일에는 중부지방의 아침기온이 영하10도 이하로 떨어지는 한파가 닥쳐올 전망이다. 기상청은 27일 『우리나라 남북으로 걸쳐 전국적으로 눈과 비를 내린 기압골이 빠져나가는 27일 밤부터 찬대륙성고기압의 영향권에 들게되면서 한파가 몰아닥쳐 28일 아침 서울 영하5도,춘천 영하7도,수원 영하6도,전주 영하5도등 전국 대부분지방의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가겠다』고 예보했다. 29일에는 기온이 더욱 떨어져 서울 영하9도,춘천 영하13도,광주 영하7도,제주 영하1도등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하는 강추위가 2∼3일 이어지겠다고 기상청은 내다봤다. 기상청은 이와함께 기온이 떨어지면서 눈과 비가 얼어 도로가 미끄러워질 우려가 크므로 출퇴근길 차량 운행에 유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평균 적설량이 1m이상의 많은 눈이 내린 영동산간지방에 대설경보가 계속 발효중이다.또 영동해안에는 대설주의보가,동해전해상은 폭풍경보가,그리고 서·남해 해상에는 폭풍주의보가 발효중이다. 【춘천=정호성기자】 강원도 전역에 27일에도 폭설이 계속 내려 도내 주요도로의 교통이 3일째 두절되고 산간마을이 고립돼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이날 하오5시 현재 교통이 두절된 구간은 속초시∼인제군 북면 용대리를 잇는 미시령과 동해시∼정선군 임계면간 백봉령을 비롯,6개 국도및 지방도이며 주문진∼진부간 진고개는 교통이 통제되고 있다. 또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은 8t이상의 대형 트럭에 대해 한계령과 진부령등 고갯길 도로에서는 월동장구를 갖추지 않은 차량에 대해 각각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한편 영동지역에 대설경보가 계속 발효중인 가운데 이날 상오6시30분 영서지역에도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 화산폭발·태풍… 수십만 인명피해(대변환 지구촌’91:5.끝)

    91년 한햇동안 지구촌 인류가 겪은 각종 자연재해의 참화는 엄청났다.세계 도처에서 화산·지진·태풍·폭우·한파·폭염 등 천재지변이 잇따라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대환란의 7년」의 서막이 시작된게 아니냐는 우려를 고조시켰다. 6월들어 1주일사이에 필리핀·일본·인도 등지에서 일제히 발생한 화산폭발은 인류에게 「휴화산 부활」의 공포를 안겨줬다. 6백년간의 잠에서 깨어난 필리핀의 피나투보화산은 수십차례나 폭발,인근 3개성을 화산재로 완전히 뒤덮으며 수도 마닐라국제공항을 일시폐쇄시켰고 미국의 아시아전략거점인 클라크공군기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일본 운젠(운선)화산도 2백년만에 분화를 재개,39명의 인명을 앗으면서 전일본열도를 화산과 지진의 공포속으로 몰아넣었다. 중국에서는 1세기만의 최대폭우가 대륙을 휩쓸어 사망자 2천여명,수재민수 1억1천4백만명,경제손실 수십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재앙을 초래,야심찬 경제부흥계획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런가하면 방글라데시는 연안도서와 인구밀집 해안지대를 강타한 태풍으로무려 22만5천명이 사망하고 수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5억달러의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이와함께 필리핀에서는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휘몰아쳐 사망·실종 7천명,이재민 70만명 발생등 화산피해의 상처위에 수마까지 겹쳐졌다. 그외에 환태평양화산대지역의 잇따른 강진,서유럽의 기록적 한파,칠레 아타카타사막의 난데없는 폭우,파키스탄의 섭씨50도가 넘는 폭염등 기상이변이 속출했다. 91년은 인간이 자연앞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다시한번 확인해준 한해였다.
  • 모스크바 식량 폭동/인근 도시도

    ◎상점마다 쟁탈전… 폭력사태 속출/아사자 발생… 시민들 항의 시위 【모스크바 AFP 타스 연합】 소련을 강타하고 있는 심각한 식량난이 6일 급기야 수도 모스크바 등지에서 서서히 폭동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같은 상황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대통령과 가브릴 포포프 모스크바 시장 등 지도자들이 식량 부족으로 소련이 「사회적 폭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거듭 경고한데 뒤이은 것이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수은주가 최저 영하 12도까지 내려가는 쌀쌀한 날씨속에 빵·버터·달걀및 야채등 기초 식품을 구하기 위해 상점에 모여 들었으나 대부분 장바구니를 채우지 못하자 분노,시당국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또한 그나마 물건이 조금 쌓여 있는 것으로 전해진 일부 상점의 경우 장사진을 이루는 가운데 서로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치고 받는 폭력 사태가 빈발하고 있다. 한 시민은 당국에 대해 『지옥에나 가라』고 저주하면서 『집에서 배를 주린채 기다리는 아이와 노모를 어떡하란 말이냐』고 절규했다. 야채를 구하기 위해 나왔다는 중년 부인도 『오렌지 한 부대가 무려 12.6루블이나 한다』고 푸념하면서 『그나마도 두달전 맛본 게 마지막』이라고 한숨을 토했다.소련인의 평균 월급이 2백30루블 내외임을 감안할 때 이는 엄청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보수 논조의 소비에츠카야 로시아지는 이날 모스크바 등지의 식량난이 「폭발점」에 이르렀음을 거듭 경고하면서 볼가강 인근 볼로그다에서 급기야 『2명이 아사했음』을 전하는등 식량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한편 모스크바시 노조 연맹 등은 러시아공화국이 모스크바의 식량 파국 타개를 위해 긴급 지원을 제공하도록 촉구하면서 보리스 옐친 공화국대통령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4개공 지도자에/“긴급 지원” 전문/고르바초프 【모스크바 AF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6일 우크라이나 벨로루스(구백러시아) 카자흐 몰도바등 4개 공화국지도자들에게 긴급전문을 보내 모스크바에서 사회불안이 폭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보낼 식량을 확보하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줄 것을 호소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모스크바에 고기·버터·석유·설탕이 단 며칠분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이같은 상황은 민주개혁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과 심각한 정치·사회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이 통신은 전했다.
  • 모스크바 식량공급 사실상 중단/시 관리들

    ◎고르비·옐친에 긴급조치 요청/“2주내 최악의 위기” 예상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모스크바는 사실상 식량공급이 중단된 상태이며 시민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배회하고 있다고 소련일간지가 5일 보도했다.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는 이날 『앞으로 10일내지 15일안에 심각한 식량재앙이 모스크바를 강타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하고 시관리들이 고르바초프 연방대통령및 보리스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에게 『모스크바에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의 한 시민은 『빵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생필품을 사려고 해도 3시간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 비 태풍… 사망·실종 7천명으로/이재민 12만… 사상자 늘듯

    ◎3m넘는 수마… 도시 완전히 잠겨/익사자 시신·트럭 뒤엉켜 떠다녀 【오르모크(필리핀)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지난 5일 필리핀 중부지대를 강타하면서 7년만에 최악의 홍수를 야기한 열대성 태풍 셀마의 피해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 7일 현재 3천4백명이 사망하고 3천5백명 이상이 실종됐으며 이재민도 최소한 1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레이테섬의 해안도시 오르모크에서만도 폭풍으로 인해 범람하기 시작한 다나오 저수지가 붕괴되면서 3m 높이의 물결이 마을을 뒤덮어 13만명의 주민가운데 2천명의 사망자가 확인되고 1천명 이상이 실종됐다. ○…가장 피해가 심한 오르모크에서는 시가지가 4m가 넘는 물에 잠겨있으며 어린이들을 포함한 무수한 익사자들의 시체가 가족들의 시체 및 가재도구 차량들과 함께 곳곳에 떠다니고 있으며 상어떼가 몰려와 시신을 뜯어먹고 있다고. 구조요원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희생자들을 트럭에 실어 공동매장하고 있으며 오르모크공동묘지 입구에는 악취를 풍기는 트럭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고.○…생존자들은 야채등 재고식량에 진흙이 뒤섞여 음식과 식수 부족으로 고생. 필리핀정부는 유엔에 인도적 차원의 긴급원조를 요청. ○…이번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레이테섬의 동부해안도시인 오르모크에서는 시신을 위한 관이 부족해 파괴된 나무판자 등을 이용,관을 만들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구조작업에 나선 적십자의 한관계자는 『시체가 없는 거리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자동차와 트럭들은 마치 장난감처럼 물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 필리핀 중·동부 태풍 강타/3천여명 사망·실종

    ◎수재민 20만… 사망자 늘어날듯 【마닐라 AFP 연합】 폭우를 동반한 열대성 태풍 「셀마」호가 5일 필리핀 중부와 동부 일대를 강타하면서 큰 홍수가 발생,3천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으며 20만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고 재해대책본부가 6일 밝혔다. 필리핀 국제적십자사 대변인도 현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필리핀 중부의 레이테섬과 네그로스섬 일대및 동부의 오로모크시 등을 강타한 이번 폭풍우로 인한 사망자수는 2천명이상으로 늘어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필리핀 재해대책본부는 레이테 섬에서만 1백5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5만여명이 집을 잃었다고 밝혔으나 통신두절로 희생자 파악및 구호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최근 귀국한 고마르코스 필리핀 전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여사는 이번 폭풍우로 인해 자신의 고향인 레이테 방문을 연기했다. 이번 태풍 「셀마」호는 중심부 최대 풍속이 시속 55㎞의 열대성 저기압으로 위력이 약화되면서 6일 하오 5시(한국시간) 남중국해로 빠져나가 현재 북동쪽으로 매시 28㎞의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 인 강진 5백명 사망/진도 6.1/가옥 수천채 파괴

    【뉴델리·러크나우(인도) AFP 로이터 연합】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6.1을 기록한 강진이 20일 새벽 2시53분(한국시간 상오6시23분)인도 북부를 강타해 최소한 5백명이 숨지고 3천명이 부상했으며 가옥 수천채가 파괴됐다고 언론 보도들이 전했다. PTI통신은 히말라야 산기슥에 위치한 우타르 프라데시주에서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6.1의 강진이 발생,55초동안 진동이 계속되는 바람에 가옥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주민 5백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UNI 통신은 관리들의 말을 인용,지진 피해가 가장 극심한 우타르 카시 구역에서만 2백명 이상이 숨졌다고 보도했다.관리들은 특히 뉴델리에서 3백㎞ 떨어진 우타르카시 지역을 비롯한 북부 고원지대 전역에 걸쳐 많은 인명피해를 냈으며 사망자수는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 한국 선원 8명 실종/일서 태풍피항중 화물선 전복

    【도쿄 AP 로이터 연합】 최대 풍속이 시속 2백12㎞인 태풍 미어리얼이 일본 남서부를 강타한 27일 하오 10명의 선원을 태운 한국 화물선 2백90t급 진영 제7호가 정박해있던 규슈(구주) 후쿠오카(복강)항에서 전복,선원중 2명은 구조되고 8명이 실종됐다고 일본연안경비대가 밝혔다. 이에따라 일본연안경비대가 즉시 실종자 수색작업에 나섰으나 선원들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있다.한편 일본 경찰청의 한 관리는 이날 태풍에 따른 폭우가 규슈(구주) 나가사키(장기)현 일대를 엄습,산사태와 홍수가 발생했으며 또한 규슈 일대의 육상,해상,항공 교통을 마비시키는 바람에 전력 공급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 김영남 “마르크스주의 포기”의 저변

    ◎「소련 쇼크」 떨치려는 대 서방 유화책/주체사상 통한 사회주의 고수 여전/사유제 허용 없인 지도이념 변화 없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포괄적이고 과학적인 해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를 피했다』고 밝힌 김영남 북한외교부장의 발언은 이른바 「러시아 쇼크」이후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북한의 「입장정리」가 일단 끝났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영남은 14일자 영국의 군사전문 주간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와 가진 회견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정부의 유용한 도구로서 사실상 포기됐다』고 밝히고 『마르크스주의가 현재의 일상 현실,특히 유럽과 근본적으로 다른 북한에는 그대로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란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북한전문가들은 소련에서의 공산주의몰락이라는 충격파에 강타당한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북한이 겨우 정신을 수습,이른바 주체사상을 근간으로한 「사회주의 고수」로 최종 행로를 결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소련의 공산주의 포기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주체사상을 강조하면서 마르크스주의 포기를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60년대말 이른바 주체사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소련·중국과 다른 「우리식 사회주의」를 외칠 때부터 이미 마르크스주의를 북한의 현실에 맞게 수정했음을 지적,사유재산제부활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했다는 그들의 주장은 믿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북한이 최근들어 급변하는 세계정세 와류속에서 체제의 변신을 시도하는 것같은 몸짓을 자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실제로는 『주체사상을 부각시킴으로써 대내결속을 다지고 소련의 공산주의 포기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취해 보이는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 대목에 대해선 정규섭박사(민족통일연구원)도 견해를 같이 했다.정박사는 소련정변 이후 의지할 곳이 없어진 북한이 미국및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열의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김영남의 마르크스주의 포기발언 역시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나온 대서방 유화책의 하나라고 말했다. 강인덕소장(극동문제연구소) 역시 『북한이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북한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이념인 ▲사유재산제 불용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했다는 김영남의 발언은 『신빙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강소장은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우리식 사회주의」란 것도 그 사상의 뿌리는 마르크스주의에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의 개혁이 경제분야에선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마르크스주의 포기 같은 근본적인 체제개혁은 현재의 김일성체제하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김영남의 발언은 소련공산당의 붕괴가 북한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북한사회를 이끌고 나갈 지도이념 역시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공산주의 종식에 대한 외부사조 유입을 북한주민들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궁여지책에서 나온 대서방 언론플레이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 태풍 영·호남 강타

    ◎경주 사상최고 6백90㎜ 호우/72명 사망·실종… 재산피해 1백억 넘어/글래디스 오늘 새벽 소멸… 부산도 폭우 4백39㎜ 제12호 태풍 글래디스가 23일 하오 우리나라 남해안에 상륙,곳곳에서 인명피해와 호우·해일피해를 낸 뒤 온대성 저기압으로 변해 서해안으로 빠져나갔다. C급 태풍이었던 글래디스는 이날 하오5시30분쯤 여수반도에 상륙하면서 중심기압이 9백90mb까지 약화된뒤 24일 상오2시쯤 태풍의 위력을 완전히 상실한 저기압으로 변해 군산앞바다쪽으로 빠져나가 소멸했다. 이날 글래디스의 영향으로 영·호남 강원 제주 등지에서 사망 42명,실종 30명,부상 49명 등 큰 인명피해가 났으며 2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또 가옥 2천6백여채가 파손 또는 침수되고 농경지침수 2만4천여㏊등 재산피해를 냈으며 곳곳에서 산사태와 도로유실,침수사태를 빚어 1백억원이상의 재산피해를 냈다. 부산지방에서는 이날 하오10시현재 4백39㎜의 집중호우가 내려 이 지역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이후 하루최고 강우량을 기록했다.이밖에 울산에선 4백5.2㎜,포항 3백12.5㎜,울진 2백68.1㎜,충무 2백14.6㎜,대관령은 2백20㎜등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22일부터 모두 4백∼6백㎜의 많은 비가 내렸다. 특히 경북 동해안 일대에 쏟아진 폭우는 경주시 불국동의 6백90㎜를 비롯,경주군 양북면 6백㎜,천북면 5백78㎜등 지난 1907년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서울과 경기지방엔 11∼17㎜의 적은 양의 비가 내려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기상청은 이날밤 글래디스가 소멸돼감에 따라 제주일원과 경남남해안·남해전해상에 내려졌던 태풍경보등을 폭풍주의보로 대체하거나 해제했다. 충청남부지방등에 80∼1백50㎜의 비를 뿌리면서 발령됐던 태풍주의보와 호우주의보등도 모두 해제됐다. 당초 동북쪽으로 돌아가던 글래디스는 23일 상오2시쯤 일본의 규슈 서쪽 1백20㎞ 해상에 이르자 동쪽에서 강력하게 확장하는 고기압세력에 막혀 진로를 북서쪽으로 바꾸면서 우리나라쪽으로 북상,뜻밖의 피해를 냈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이에따라 태풍피해방지체제로 긴급전환,직원 30여명 모두가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다. 이와함께 서울 경기 충북지역을 제외한 전국의 해안과 산·계곡등에 긴급비상대피령을 발동했으며 해당시·도공무원 6천3백여명들도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다. 또 전국의 수방단 1백여만명은 댐수위의 조절및 수산어로시설,상습침수지역에 대한 점검과 순찰을 대폭 강화하는등 철야근무를 했다. 한편 23일 하오8시쯤부터 빗방울이 가늘어지면서 부산을 비롯,경남북지역에선 민방위대와 수방기동대등을 동원,밤새 응급복구작업을 벌이면서 옹벽붕괴 예상지역등 재해위험지구에 대한 예찰활동을 폈다. 또 육·해군장병들도 중장비등을 피해 현장에 투입해 이재민 구조작업과 함께 응급복구작업을 도왔다.
  • 태풍,경남해안 스치고 동해로/오늘 하오 소멸

    ◎부산일대 선박·방파제 큰 피해/제주·남해안등 폭풍주의보 해제/기상청 강한 비바람을 몰고 영남내륙지방을 강타할 것으로 우려됐던 제9호 태풍 「캐틀린」은 29일 하오 세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경남남해안을 스쳐 30일 새벽 예상보다는 큰 피해없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이에따라 30일 하오부터는 우리나라 전역이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태풍이 스치고 지나간 제주와 부산·경남남해안지방에서는 인명피해와 함께 선박과 방파제가 부서지는등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랐다. 기상청은 29일 『태풍중심부가 남해안지방에 접근하면서 인접기압배치의 이동으로 진로가 부산남쪽 80㎞지점에서부터 북동쪽으로 급격히 휘어졌다』고 밝히고 『이와함께 중심기압도 9백50mb에서 9백60mb로 올라가는등 세력도 계속 약화돼 시속 35㎞의 빠른 속도로 북동진,30일 상오5시쯤 울릉도 동쪽 1백㎞해상을 지나 온대성저기압으로 바뀌며 소멸되겠다』고 예보했다. 기상청은 이에따라 29일 하오6시를 기해 호남내륙지방과 호남서해안지방의 태풍주의보를 해제한데 이어 하오9시에는 영남내륙지방의 태풍주의보도 해제했다. 또 영남남해안지방및 남해동부전해상의 태풍경보를 폭풍주의보로 대체하고 제주도·전남남해안,서해남부전해상에 발령되고있던 폭풍주의보도 해제했다. 한편 기상청은 『제주도 남쪽해상에 머무르던 장마전선도 태풍에 밀려 북상한 뒤 소멸될 것으로 보여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장마도 사실상 끝나게 되겠다』고 밝혔다.
  • 수해당한 보험가입자/피해액 50% 우선 지급/당국

    ◎대출금상환 연말까지 유예 최근의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보험계약자에게는 추정손해액의 50%가 보험금으로 우선 지급되고 오는 연말까지 보험료 납입과 대출금의 상환이 각각 유예된다. 29일 보험당국이 마련한 「수해 보험가입자에 대한 지원대책」에 따르면 손해보험의 경우 사고를 당한 가입자가 보험금지급을 신청하면 추정손해액의 50%를 가지급금으로 우선 내주고 보험금지급에 필요한 청구서류도 대폭 간소화하도록 했다. 특히 이들에게는 올말까지 보험료의 납입과 대출원리금의 상환을 각각 연기해주고 유예된 보험료와 대출금도 분할 납부하거나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피해를 입은 보험가입자가 약관대출을 신청하면 24시간내에 이를 즉각 지원해 주도록 했다. 한편 이번에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우로 인해 발생한 보험사고는 지난 26일 현재 76건에 추정손해액이 30억2천2백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 물난리속 20여곳에 산사태/중부 폭우피해

    ◎용인선 일가족 5명 참변/출수앞둔 농지 25만㏊ 황폐화/터널붕괴·교량잠겨 한때 열차 발묶여 휴일인 21일부터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경기·강원·충북·경북일대를 삽시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곳곳에서 참변이 잇따랐다. 특히 경기도에서는 일가족 5명이 매몰된 용인군 원삼면 죽릉4리를 비롯,20여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흙더미에 깔려 13명이 숨지고 도로와 철도·통신설비 등이 물에 잠겨 교통·통신이 한동안 두절되는 등 피해가 많았다. ▷산사태◁ 21일 폭우로 용인·오산·화성군 등에서 잇따라 산사태가 발생,일가족 5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진 것을 비롯,13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28명이 부상했다. 하오1시30분쯤 용인군 원삼면 죽릉4리 이강학씨(40·이장)집 뒷산에서 산사태가 나면서 흙더미가 이씨집을 덮쳐 집안에 있던 이씨와 승재(13)정재(11)영재(9)등 세아들,이씨의 어머니 안옥희씨(78)등 일가족 5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 또 하오1시45분쯤 오산시 은계동 56의2 차주성씨(56)집과 은계동20의1 정준교씨(32)집 뒷산이 무너져 방안에서 잠자고 있던 차씨의 딸 혜정씨(23)과 정씨집에 놀러왔던 정씨의 매제 성규채씨(35)등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철도피해◁ 이날 하오1시쯤 병점∼오산의 5㎞구간 가운데 상행선 7곳,하행선 4곳 등 모두 11곳이 유실되거나 산사태로 파묻혔다. 병점역부근의 서울기점 51.3㎞지점에서 하행선 20m가량이 산사태로 매몰되고 길이 2백40m의 오산터널 벽일부가 무너졌으며 3백20여m의 둑이 붕괴됐다. 비슷한 시간에 오산터널벽이 무너져 내렸으나 이곳을 지나던 서울발 부산행 제313호 통일호열차가 이를 보고 급정거해 사고를 피했다. 이날 사고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 29편이 운행을 중지,승객 2만여명이 환불을 요구하거나 4∼5시간동안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재산피해◁ 경기도는 이번 비로 2천2백27채의 가옥이 침수되거나 부서져 77억4천6백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또 1천4백83명의 이재민을 냈으며 농경지 25만3천4백80㏊가 침수 또는 유실됐다. ▷군 구조◁ 육군은 집중호우가 내린 21일 하오5시30분부터 7시50분까지 경기도용인군원삼면미리내와 이동면에 UH1H 헬리콥터 2대를 동원,고립된 1백77명의 인명을 구조했다. 육군은 또 22일 상오 충북원성군대소면과 중원군·괴산군 지역에 트럭 21대·중장비 10대·병력 6백90명을 동원,유실된 국도 7m와 건물 7동·비닐하우스 1천9백평을 긴급복구했다.
  • 천재지변 시달리는 아주대륙/폭우·태풍 곳곳서 속출

    ◎중국,태풍·홍수로 3천명 사상/방글라선 강물 범람… 이재민 3백만/화산터진 비도 폭우… 산사태 잇따라 【북경·다카·마닐라·뉴델리 외신 종합 연합】 대홍수로 큰 재난을 겪은 중국이 이번엔 태풍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입는등 아시아 여러나라가 폭우·태풍등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있다.방글라데시의 경우 2주간의 폭우로 22일현재 다카부근의 강물이 범람,낮은 지대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1백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또 인도동부의 아삼주와 필리핀·라오스등에도 열대성 폭우가 집중돼 큰 피해를 입었다. ▲중국=태풍 애미호가 중국 남부해안을 강타,35명의 사망자와 1천3백60명의 부상자를 냈다고 중국 언론들이 20일 보도했다. 광동성에서 발간된 신문들은 태풍을 수반한 폭우로 인해 1만5천여채의 가옥이 파괴됐으며 산두지역에서는 나무들이 꺾어지고 고층건물의 유리창이 떨어져 자동차들 위로 날아다니는 것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광동성 관리들은 현재 산두지역의 전력공급이 완전 중단됐으며 인근 광동시에서도 가로수와 전주들이 넘어지고 논이 침수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번 폭풍으로 지난 2개월간 홍수에 시달려 온 중국 중동부의 재해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공식집계에 의하면 안휘성·강소성·호북성에 집중된 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1천8백여명에 이르고 있다. ▲방글라데시=방글라데시를 휩쓸고 있는 홍수로 인한 사망자수는 21일 현재 1백20명을 넘어섰으며 최소한 1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구호당국 관리들이 21일 말했다. 사망자는 방글라데시의 64개주중 대부분 북부에 위치한 20여개 주에 강물이 범람하면서 급증했으며 절반 가량은 강둑붕괴 후 오염된 식수와 부패한 음식물 섭취로 인한 설사 및 기타 복부질환으로 사망했다고 관리들은 말했다. 다카 기상대는 자무나·브라마푸트라·파드마 등 주요 하천의 수위는 이날부터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또다시 광범한 지역에 강우가 예상되고 있어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했다. ▲인도=동부 아삼주에 열대성 폭우가 몰아쳐 25명이 사망하고 수백개의 마을이 파괴됐으며 40만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필리핀=피나투보 화산주변지역에 내린 폭우로 화산의 암석이 무너져내려 19일 이 지역주민 2만여명이 대피했다.그러나 희생자가 아직 보고된 것은 없다고 관리들이 밝혔다. 목격자들은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1백10㎞ 떨어진 콘셉시온시에서 수백t의 진흙과 바위가 굴러 내려와 7백채의 집들이 파괴되거나 묻혔다고 전했다. ▲라오스=북서부지역에 큰 비가 내려 17명이 사망했다고 관영 라디오방송이 전했다.
  • 「홍수 중국」 태풍 강타/남부 농경지 9백만정보 휩쓸어

    【홍콩 연합】 중국 화동지역(화산동부의 강소·안휘·절강성)을 휩쓴 홍수가 서서히 북쪽으로 물러나고 있으나 두터운 비구름대가 동북지방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근년 최대의 태풍 에미호가 20일 새벽 중국 남부 복건성과 광동 동부지역을 정면으로 강타,이들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고 홍콩신문들이 20일 보도했다. 이들 신문은 시속 1백84㎞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 에미호는 19일밤 대만에 3명의 사망·실종자와 50여채의 가옥파괴 등의 인명·재산피해를 남기고 중국 복건성 남부지역과 광동동부지역에 상륙,이미 산두시에만도 3백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가옥 3백여채를 파괴했으며 9백만정보의 전답을 휩쓸어 농작물의 절반가량에 수확할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한편 북경의 재해대책본부는 비구름대가 북진함에 따라 황하와 양자강의 수위는 낮아지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북진한 비구름대가 산동성과 동북지역에 새로운 홍수를 몰고올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 인니에 지진/1주새 29명 사망

    【자카르타·베오그라드·웰링턴 AP 연합】 인도네시아 남동부 알로르섬을 강타했던 지진의 여진이 계속돼 1주일 동안 사망자가 29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12일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뉴질랜드에서도 잇따라 지진이 발생,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소동을 빚었다. 지난 4일 리히터 지진계로 강도 6.2의 강진으로 24명의 사망자와 1백81명의 부상자 및 막대한 재산피해를 냈던 인도네시아 알로르섬에서 9일과 11일 사이에 여진이 계속되면서 5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가 추가로 발생,사망자가 최소한 29명으로 늘어났다고 쿠팡지방 정부의 한 관리가 밝혔다. 유고슬라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인근에서도 12일 낮 12시45분(이하 현지시간)께리히터 지진계로 강도 4∼5 사이의 지진이 발생,주민들이 황급히 집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 11개 시·도의회 의장단을 내정/민자당

    민자당은 5일 김윤환사무총장주재로 시도지부위원장회의를 열고 호남및 제주를 제외한 11개 시·도의회 의장단을 내정했다. 민자당은 과반수에 미달한 제주도의회 의장단은 6일중 무소속후보자중 영입대상자를 확정한 뒤 결정할 방침이다. ▷의장◁ ▲서울=김찬회(종로2·전산림청장) ▲부산=우병탁(중구1·전지구당위원장) ▲대구=김홍식(중구1·금복주회장) ▲인천=이기상(중동구1·영진공사대표) ▲대전=김석종(동구5·신진건설대표) ▲경기=정한주(안산1·전노동부장관) ▲강원=최경식(동해1·5대민의원) ▲충북=조성훈(청주5·도지부사무국장) ▲충남=이대희(보령3·지구당부위원장) ▲경북=손경호(경주시3·경주상공회의소장) ▲경남=추한식(마산1·시민버스대표) ▷부의장◁ ▲서울=조정순(성동8·국제정구연맹회장)(1석은 야당) ▲부산=강태홍(남구2·전부산시장)·도종이(부산진6·새마을금고이사장) ▲대구=박승국(북구3·전지구당위원장)·조경제(달서2·한의원원장) ▲인천=장순상(북구5·신용금고회장)·이명복(남구6·인천상공회의소부회장) ▲대전=이기웅(중구5·보옥당대표)·이병규(동구1·금강타올대표) ▲경기=우봉제(수원5·선도직물대표)·원기영(의정부1·평통자문위원) ▲강원=박수복(춘천2·대림연탄대표)·정덕중(원주3·관광호텔대표) ▲충북=박상호(보은1·라이온스지구회장)·김연권(충주3·우신기업대표) ▲충남=김고성(연기3·강내건설대표)·김용호(논산3·대호종합건설대표) ▲경북=문대식(구미1·구미상공회의소회장)·김경종(안동군2·상공인쇄소대표) ▲경남=최태용(울산남3·대양유조사대표)·정만규(삼천포1·만구제빙냉동대표)
  • 당시 중대장 이대용씨의 회고:「내가 겪은 6·25」 하

    ◎혹한속 중공군 6개 사단의 포위 돌파/평양서 재편성… 「인해전술」과 싸우며 남하/51년 7월 대대장으로… 금성·금화서 공방전/저격능선 「고지쟁탈」 전투중 미 유학 명령 1950년 10월28일 하오 6시45분.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벌써 어둠이 깔렸다. 제7연대 제1중대는 5대의 트럭에 분승,주둔지인 압록강변을 떠나 초산읍으로 철수했다. 다음날인 29일 새벽 5시쯤 제1대대 수색대를 태운 군용차 한 대가 초산읍에서 다시 남쪽을 향하여 떠났다. 제1대대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하여 북한공산군의 출몰이 염려되는 구용동 남쪽 고개를 수색·점령·확보하기 위해 먼저 떠난 것이다. 그날 아침 6시30분쯤 제7연대 제1대대는 군용트럭을 타고 초산읍을 출발,남쪽으로 내려가 고장에서 연대본부와 합류했다. 이때 중공군은 고장 남쪽에 있는 풍장 일대에서 아군이 남하하는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제2대대와 제3대대는 이들 중공군을 일제히 공격,돌파작전을 개시했다. 우리 공군 전폭기들이 중공군 진지를 강타하면서 제7연대의 돌파작전을 근접지원해주었다. 중공군은 남으로 좀 밀려나는 듯했으나 그들의 두꺼운 포위망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달이 없는 어두운 밤이 됐다. 지형은 폭이 50∼1백50m 가량 되는 좁은 계곡이 길게 남북으로 놓여 있고 계곡 양쪽의 산줄기들은 가파르고 높았다. 이날 밤 12시 정각,중공군은 야간공격을 감행했다. 그들의 야간전투는 혀를 찰 만큼 아주 능숙했다. 얼마 안가서 제7연대의 전방부대가 무너지고,전방에서 흩어진 연대병력은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도로를 따라 북쪽을 향하여 달아나고 있었다. 후방으로 멀리 떨어져서 재편성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방에서는 이미 다른 중공군 부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숨 돌릴 새없이 달려들었다. 재차 흩어져서 다시 더 먼 후방으로 달려가 보아도 그곳에서도 전황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 제7연대는 중공군 제40군예하 1개 사단과의 첫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다. 중공군은 우선 병력면에서도 우리 제7연대의 약 3배나 됐다. 군용트럭 수백 대와 사단포병 야포 6문,대전차포,기타보급품을 버린 채 제7연대는 낭림산맥의 지맥인 유령산맥 깊은 산중으로 이리저리 흩어져 들어갔다. 중공군은 이 분산병력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악착같이 우리 부대를 추격하며 남쪽으로 통하는 길목을 모두 차단하고 있었다. 중공군과의 싸움에 들어가기 전 필자의 지휘하에 있던 병력은 제1중대원 약 1백60명,배속된 중기관총반원 약 10명,귀순 동화된 북한공산군 포로 남녀 약 25명,간호학생 2명,한국청년단원 약 10명 등 모두 2백명이 넘었으며 이 중 여자 등 비무장인원을 제외한 전투가능 인원은 약 1백85명 정도였다. 필자는 이 전투가능병력 중에서 약 60명을 잃은 채 잔여인원을 이끌고 유령산맥으로 들어갔다. 높은 산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곳은 벌써 깊은 겨울이어서 뜯어 먹을 풀조차 없었다. 중공군을 만나면 싸우기도 하고 피해 달아나기도 하면서 남으로 남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포위망을 계속해서 뚫어봐도 눈에 보이는 것은 중공군뿐이고 아군은 도대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중공군과 만나 교전이 이루어질때마다 아군의 병력은 자꾸 줄어만 들었다. 중공군 6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는 데서 우리 제7연대의 인명피해는 엄청났다. 당시 제7연대에는 8명의 영관급 장교가 있었는데 이 중 6명의 손실이 있었다. 부연대장 최영수 중령,제2대대장 김종수 중령,제1대대 부대대장 조현묵 소령,연대정보주임 김재강 소령 등 4명은 포로가 됐고 제3대대장 조한섭 소령은 전사했으며 연대작전주임 조윤재 소령은 무참히 학살당했다. 포위망을 뚫고 용케도 살아나온 사람은 연대장 임부택 대령과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 두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김용배 중령은 그후 전사했다. 더욱이 장병들의 손실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내가 덕천지방 동쪽 송정리에서 대동강을 건너 남중리의 적군과 최후의 교전을 갖고 포위망을 뚫은 뒤 제6사단 사령부에 도착,사단장 장도영 준장에게 신고를 한 것은 그해 11월9일 오후 3시경이었다. 나는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나와 사단장에게 첫번째로 신고식을 갖는 장교가 된 것이다. 군악이 울려 퍼졌다. 군인 20명을 3렬 횡대로 하여 세워놓고 마지막에 서울적십자병원 간호학생 2명을 세웠다. 중대장인 나는 3렬횡대의 6보 앞 중앙에 섰다. 나는 사단장에게 다음과 같이 신고했다. 『경례! 바로! 제7연대 제1중대장,이대용 대위는 적포위망을 돌파하고 사병 20명,민간인 간호학생 2명을 지휘하여 1950년 11월9일 사단사령부에 도착했기에 이에 삼가 신고합니다. 경례! 바로!』 사단장의 위로와 격려사가 있었다. 군예대 여자 가수가 나의 목에 하늘색 머플러를 걸어주었다. 사단사령부에서 할당해주는 민중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서울적십자병원 간호학생 박태숙·정정훈양에게 하사관 1명을 딸려 서울로 떠나 보냈다. 깨끗이 보호하고 온 처녀들이 도중에서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든든한 하사관을 경호원으로 배정,서울까지 가게 한 것이다. 11월22일까지 제7연대장 임부택 대령과 김용배 중령이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왔고 후방에서 신병들과 육군종합학교 출신 신임 소위들이 보충돼 제7연대는 11월25일 재편성을 했다. 병력숫자로는 제7연대가 제대로 모습을 갖춘 셈이었다. 재편성이 끝나기가 바쁘게 제7연대는 덕천 남쪽 북창으로 이동하여 중공군과 대결하게 됐다. 북창과 가창 사이에 있는 미럭고개에서 큰 접전이 벌어졌으나 신병들인 아군이 중공군의 공격을 견뎌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공군의 진격은 계속되었고 우리 제7연대는 평양 상원 서흥 시변리 삭녕 전곡을 거쳐 다시 38선에 배치되었다. 북한공산군이 남침한 1950년도 저물어 갔다. 그해 12월31일 밤이었다. 중공군의 대공세에 밀린 제7연대 제1중대는 동두천 의정부를 거쳐 서울 북방 창동에 배치되었다. 해를 넘겨 1951년 1월6일 경기도 광주를 거쳐 백암리로 가는 도중에 나는 제1대대 부대대장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대대장 대리로 제1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영하의 매서운 바람이 살을 에듯이 불어댔다. 1·4후퇴라고 일컬어지는 설상의 피란민대열이 남으로 남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중공군도 각종 보급품들이 달리고 장티푸스까지 만연하자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이다. 중공군은 양지리 북쪽에서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제7연대는 그동안 중공군과 싸우면서도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엔 대단한 적군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도 별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불패의 군대가 아니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그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약 2개월간 제1대대를 지휘하고 나서 대대장이 새로 부임함에 따라 부대대장 직책을 수행하게 되었다. 용문산지구 전투,춘천지구 전투,구만리지구 전투,풍산리지구 전투,백암리지구 전투를 끝으로 나는 그해 7월9일 제7연대를 떠나 제2사단 제32연대 제1대대장으로 부임했다. 같은 해 10월27일에는 제32연대 제3대대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금화지구 파조봉­이실골 전투,금성지구 전투를 하면서 제32연대 제3대대는 금성 바로 앞산인 424고지까지 1개 소대를 진출시켰다. 여기서 중공군과 매일같이 폭격전과 수색전으로 투덕거리며 한겨울을 보냈다. 미군과 교대하고 금화 쪽으로 빠져나왔다. 제32연대는 제3대대는 금화 동북방에 있는 저격능선에 배치됐고 한국군에도 임시계급제도가 도입되어 일선 보병대대장들에게는 1952년 3월부터 모두 육군중령 계급이 부여됐다. 저격능선은 지형상 항상 긴장상태에서 적과 공방임무를 수행해야 했달. 그러던 중 나는 미 육군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2년여의 전진을 씻고 부산항에서 미국행 군용수송선을 탄 것이 1952년 9월2일이다. 이때의 군복은 카키색 군복이고 모자도 카키색 군모였다. 6·25가 일어났을 때,내가 춘천도서관으로 가던 때의 군복도 카키색 군복,모자도 카키색 군모였다. 카키색 군복으로 맞이한 나의 6·25는 카키색 군복으로 막을 내렸다.
  • 화산재 뒤덮인 마닐라는 암흑도시/비 화산폭발·태풍엄습 현장

    ◎건물·교량 붕괴,1백여 명 매몰/정규방송 중단… 3개 시민 소개 ○…검은 화산재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암흑지대로 돌변,마닐라에서는 일몰 3시간 전인 하오 3시45분경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어둠에 덮였다. ○…피나투보화산의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가 때마침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유나호에 동반한 강우와 뒤섞여 진흙상태로 돌변함으로써 필리핀 곳곳에서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진흙더미의 무게에 못 이겨 건물과 교량이 무너지는 붕괴사태가 속출. 클라크 공군기지 인근의 앙헬리스시에선 쏟아지는 화산재로부터 대피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 있던 한 버스터미널의 지붕이 무너져내려 1백여 명이 흙더미 속에 묻혔다. 또 오롱가포시에서도 역시 버스대합실 천장이 진흙더미의 무게에 못 이겨 무너져내려 1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루손섬에서는 최소한 4개의 교량이 붕괴되기도. ○…마닐라의 라디오방송들은 15일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자연의 분노로부터 신의 구호를 기도하는 긴급방송들을 내보냈다. ○…피나투보화산의 내부압력 증가로 이 화산이 문자 그대로 형체도 안 남을 정도로 폭발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는데 필리핀 민방위당국은 이날 피나투보화산으로부터 반경 40㎞까지(종전 30㎞) 확대된 위험지역내의 주민들에 대피령을 내리는 한편 이들의 소개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 포투나토 데 로라 민방위국장은 이날 산페르난도·앙헬리스·오롱가포 등 3개 도시 시민들의 소개를 위해 2백50대의 트럭과 버스가 3개 도시에 급파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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