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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대통령 출국인사 요지

    나는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일본과 중국을국빈자격으로 공식 방문합니다. 세계화의 조류속에서 오늘의 국제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나라사이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상호의존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특히 UR이후의 새로운 세계무역질서는 무한경쟁에 접어들고 있습니다.이러한 시대변화속에서 한·중·일 세나라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의 두번째와 세번째 교역국입니다.중국은 우리의 해외투자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입니다.경제의 세계화 추세속에서 산업구조와 그 발전단계가 다른 세나라가 협력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세나라는 상호 보완적인 협력과 제휴를 통해 각기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또 이번 방문에서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세나라가 협조할 방안에관해 깊이 있는 협의를 가질 것입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우리의 직접 문제일뿐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정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IAEA핵사찰을 성실히 받지 않고 남북대화마저 일방적으로 단절하여 한반도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심지어 전쟁불사 등의 극언으로 우리 국민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간의 굳건한 안보협력 체제아래 우리는 저들의 어떠한 도발도 단호히 물리칠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저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저들이 언제라도 자세를 바꾸어 대화에 응해올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둘 것입니다. 나는 이번 순방에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두나라의 협력을 구할 것입니다.한·중·일 세나라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위해 각기 해야할 몫을 가지고 있습니다.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동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매우 긴요한 일임을 두나라 지도자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더이상 지구의 변두리 나라가 아닙니다.문민시대를 열고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은 21세기의 중심국가중의 하나로 떠오르고있습니다.우리앞에 다가온 태평양시대의 새로운 질서형성에 적극 참여하고 기여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자부심과 함께 사명감을 가집시다.개혁과 국제화로 우리의 꿈을 실현합시다.인류공영과 새문명 창조에 기여하는 나라를 만듭시다. ◎일왕 만찬사 귀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서 사람들의 교류는 역사책에 밝혀지기 이전의 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그리고 귀국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달돼 우리의 선조들은 귀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이와 같이 양국이 오랫동안 밀접한 교류를 하던 중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었습니다.본인은 몇년전 이러한 점에 대해 매우 슬픈 마음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도 변치않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전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 국민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기위해 노력하여 왔습니다. 최근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양국민들의 우호협력관계가 여러분야에서 진전되고 재작년 가야문화전을 비롯한 한국문화통신사 사업이나 작년 대전 국제박람회등 양국국민을 잇는 유대가 굳건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한 양국은 우호협력관계를 더욱더 강화시켜 미래에의 길을 개척해가야만 합니다. 「신한국 창조」와 일한 양국관계의 강화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계시는 대통령각하의 금번 방일은 양국장래에 있어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 대통령 답사 나는 우리 두나라가 마음을 열고 내일을 향해 서로 협력하는,진정한 선린우호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귀국을 방문했습니다.양국관계는 금세기초 역사의 거센 바람과 격랑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속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진솔하게 받아들일 때 새로운 한일관계가 열리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우리 두나라 국민이 이러한 자세로 여러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가면 틀림없이 새로운 선린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될 것입니다.우리 두나라는 새로운 세대를 여는 동반자로서 상호협력해 나가야 할 역사적 소명을 띠고 있다고 믿습니다.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의 확고한 의지와 경험은 새로운 아시아,새로운 태평양,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류의 도정에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두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통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아시아속의 한일,세계속의 한일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걸맞는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통해 21세기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대장정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과거사 관련 일본측 주요사과발언 발언자 일시·장소 발 언 내 용 히로히토일왕 84년9월6일 금세기의 한시기기에 있어서 양국 전두환대통령 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방일만찬사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 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아키히토일왕 90년5월24일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 노태우대통령 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 방일만찬사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 의 념을 금할수 없음 가이후총리 90년5월24일 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 노태우대통령 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 방일회담 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 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함 호소카와총리 93월11월6일 과거 우리의 식민지지배시절에 한 경주정상회담 반도의 여러분들에게 예를들어 모 국어교육 기회를 빼앗거나 타국언 러을 강제로 사용케하거나 창씨개 명이란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중 군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등 각 종 문제가 있었음.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일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며 이번기회에 다시한 번 진사드림 아키히토일왕 94년3월24일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김영삼대통령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 방일만찬사 었음.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 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국민과 흔들리지 않은 신뢰와 우정을 쌓기 위해 노력해왔음
  • 대법,“영장없는 보호실유치 위법” 판결/경찰 「임의감금」 진퇴양난

    ◎피의자들 거부사태 잇따라/철창제거 등 대책마련에 부심 현행범이나 긴급구속대상자가 아닌 피의자를 영장없이 경찰서 보호실에 유치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옴에 따라 그동안 관행적으로 피의자를 보호실에 가둬 온 경찰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법원 형사 3부(주심 박만호대법관)는 12일 경찰서 보호실에 가두려는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신현중 피고인(40·전남 C대교수·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대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및 공무집행 방해죄 상고심선고 공판에서 이같이 판시,신씨가 보호실 유치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무집행 방해혐의는 무죄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속영장 없이 피의자를 보호실에 가두는 것은 법정주의에 어긋나는 위법행위로 보호실 유치행위가 경찰관의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따라서 경찰관은 보호실 유치에 항의하는 피의자를 제지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의자가 자해할 위험이 있거나 술에 만취한경우 24시간을 넘지않는 범위안에서 보호실에 유치할 수는 있으나 이 경우 반드시 가족등 연고자에 알려야 하나 사건당시 경찰은 신피고인의 가족 등에게 아무런 통보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신피고인은 91년 12월 술에 취한 자신을 강제연행하려는 사복경찰관을 폭행해 서울 강남경찰서로 연행된 뒤 보호실에 가두려는 경찰관 2명의 얼굴 등을 때려 폭행 및 공무집행 방해혐의로 기소됐다가 2심에서 공무집행 방해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었다 경찰청은 이날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일선경찰서의 형사계내 보호실의 철장을 없애는 방법과 당직 근무자수를 늘리는 방법등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중이다. 일선 경찰서에서는 연행된 피의자들 가운데 일부가 구속영장제시를 요구하며 보호실유치를 거부,경찰이 이들을 조사실에 보호하며 교대로 지키는등 불편을 겪었다. 경찰청은 우선 서울 중부경찰서의 경우처럼 형사계내 보호실의 창살을 낮게 만들어 피의자들이 감금됐다는 인식을 거의 하지않도록 보호실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보호실제도가 법적근거가 없는 편법인만큼 위법시비는 피할수 없는 상황이다. 형법 제124조에는 검찰·경찰등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감금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유치와 관련된 수사관행을 당장 전면적으로 고치는 것은 현실적인 수사 여건을 고려할때 많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당분간 현행범이나 긴급구속대상인 경우만 보호실에 유치하고 나머지 피의자는 가능한한 유치하지 않는등 인권침해 소지를 없앨 수 있도록 점진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일 교과서검정 “변화의 바람”/도쿄=이창순(특파원코너)

    ◎호소카와 등장후 「남경학살」 등 게재 허용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의 등장과 함께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이 더욱 완화되는 움직임이 일고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한국,중국등 아시아주변국가들과 많은 마찰을 빚으며 심각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었다.그 배경은 일본이 자신의 전쟁범죄와 식민통치의 잔학성등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성은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잔학행위를 검정제도를 통해 교과서에 싣지못하도록 했다.이같은 역사왜곡은 원로역사학자 이에나가(가영삼낭)전도쿄교육대학 교수의 오랜 「역사교과서 소송」이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에나가 전교수는 30여년전 일본의 침략전쟁기술등이 문부성 검정에서 통과되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으며 그 소송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이에나가 전교수의 「일본사」고교교과서는 30여년전 3백20개 부분이 검정에서 지적을 받아 불합격 판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올해는 오기나 용어등 대부분사소한 문제만 지적받았으며 그 수도 31개로 줄었다.이에나가 전교수는 올해 교과서에 남경대학살,종군위안부문제,731부대등 과거에 불합격 판정을 받았던 내용을 다시 기술했다.그러나 문부성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일부 수정을 요구했을뿐 대부분 그대로 통과시켰다.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이 완화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증은 최근 적지않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문부성은 종군위안부문제,남경대학살등 「숨기고 싶은」역사적 범죄행위의 교과서 기술을 허용하기 시작했다.아카마쓰 료코 문부상도 『어거지 검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역사교과서 소송,주변국가들의 반발,시대의 변화등 다양한 요소가 그 배경에 있다고 할수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총리와는 다른 비교적 솔직한 역사관을 갖고있는 호소카와총리의 등장도 중요한 계기가 되고있다고 지적된다. 그러나 일본의 과거사 인식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역사적 잔학행위를 솔직히 인정하기 보다는과거에 눈을 감으려는 경향이 여전히 남아있다.그런가운데서도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이 완화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은 아시아국가들과의 미래지향적 우호관계의 출발점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 만취 검사가 연행 시민 폭행/마약복용자로 오인…못밝히자“봐주겠다”

    【인천=김학준기자】 술에 만취한 검사가 마약복용자로 오인돼 검찰에 연행된 시민을 마구 폭행해 늑골을 부러뜨리는 등 중상을 입혀 물의를 빚고 있다. 10일 검찰에 따르면 술에 만취한 인천지검 강력부 안희권검사가 지난 4일 상오1시쯤 인천시 남구 숭의동 K여관에 약혼녀 최모씨(28)와 투숙,잠을 자다 검찰수사관들에 강제연행돼온 김동철씨(37·건축업·인천시 남구 숭의2동)를 마구 때려 머리가 터지고 늑골 1개가 부러지는등 전치6주의 중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안검사는 이날 『히로뽕을 상습복용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는 수사관들에 의해 검찰청 조사실로 연행돼온 김씨가 수갑이 채워져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철제의자와 구둣발로 마구 짓밟아 중상을 입혔으며,김씨는 이날 상오3시쯤 부평경찰서 보호실에 보호조치됐다. 검찰은 상오7시쯤 김씨를 검찰청유치장에 입감한 뒤 재조사를 벌였으나 혐의사실을 밝혀내지 못하자 『봐줄 테니 주위에 마약복용자가 있으면 제보를 해달라』며 이날 하오5시쯤 풀어줬다. 안검사는 『다른 마약사범을 조사하고 나와보니 김씨가 있어 홧김에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 「솔직한 사과」의 반작용/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한,미래를 향한 새로운 관계」.요미우리(독매)신문이 7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한일정상회담 관련기사의 제목이다. 일본언론들은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총리의 경주정상회담이 미래를 향한 한일간 새로운 협력관계 기반구축의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면서 이틀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양국간에 진정한 협력관계가 정착되려면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일 두 나라에 있어 과거사문제는 풀기 어려운 숙제임이 분명하다.그러나 호소카와총리는 이번 방한을 통해 과거 어느 총리보다도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에 대해 솔직히 사죄했다.NHK방송이 중계한 7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과거사를 사죄하는 그의 표정에는 진실성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호소카와총리의 진실성을 일본 전체의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다.우익·보수계의 산케이(산경)신문은 『내각책임제인 일본의 경우 총리가 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보도,호소카와의 전쟁사죄 발언이 일본 전체의 뜻을 응집한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더욱이 일본 외무성은 호소카와총리 사죄발언의 대목을 부분적으로 빠뜨리거나 수정한채 일본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가 기자들의 추후 확인 요구에 따라 정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외무성은 종군위안부 등 과거사 반성부문에서 핵심인 「가해자로서」라는 표현을 빠뜨렸으며 「노동자의 강제연행」이라는 발언을 「징용」으로 바꾸어 설명했다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은 전했다. 일본 외무성은 물론 「고의는 아니다」고 밝혔다.그러나 아직도 과거사 반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우익·보수세력이 적지 않게 포진하고 있는게 오늘의 일본이다. 지금 한일양국에서는 불행했던 과거사의 벽을 넘으려는 노력이 함께 기울여지고 있다.그리고 그 앞장을 양국 정상이 서고 있다.그러나 외무성조차 호소카와총리의 「사죄」를 원문대로 전하지 못하는게 일본의 분위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일본이 진정 한국을 21세기의 동반자로 여긴다면 올바른 역사인식의 선상에서 새로 출발해야 한다.**
  • 「공인」의 반세기(외언내언)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강제연행한 「종군위안부」 이른바 「정신대」의 기록이 내년에 개편되는 일본 교과서에 수록된다.엄연한 역사적 진실이 공인되기까지 50년이 걸렸다. 나이어린 처녀들을 강제로 전선으로 끌고가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로 삼은 종군위안부는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만행이요 죄상이다.그러나 일본정부는 종군위안부의 실체를 은폐해오다가 근년에야 일부분 인정하는 입장을 보여왔지만 여전히 『정부나 군과 관련이 없는 민간의 소행』이라는등 책임회피에 급급했다.뒤늦게 진상을 조사한답시고 지난 7월에는 증인청취단을 한국에 보내 피해자를 만나는등 소란을 떨기도 했다. 관련된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고 아직도 살아 있는 피해자들의 한맺힌 절규를 더이상 외면할 수 없었으리라.일본의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의 56.8%가 「정신대」의 존재를 알고 있고 이중 63%가 이들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여준다. 내년 역사교과서에서 반세기의 통제가 풀렸다고는 하나 문부성의 검정은 그렇게 유연하지만은 않다.한 교과서에서 『조선인중 10만명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종군위안부로 연행되어…』란 대목을 『숫자는 확실치 않으니 지우라』고 지시했다.또 『17∼18세의 처녀들을 종군위안부로』라는 기술도 나이는 쓰지 못하게 삭제했다. 지난 6일 방한한 일본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총리는 김영삼대통령과의 단독정상회담에서 창씨개명·징용·종군위안부 등 과거 식민지통치에 대해 강도높은 사과를 했다.이와 관련해서 한 수행원은 『내년도 교과서에 종군위안부문제가 기술될 것』이라고 밝혔다.또 『앞으로 교과서는 일본의 과거행위,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 등에 대한 솔직한 내용을 포함시키겠다』고 덧붙였다.불행하고 어두웠던 과거라 하더라도 다음 세대에게 정확이 알려주는 일이 우리세대의 의무다.내년도 일본 교과서가 과연 과거의 진정한 반성위에 바탕하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 일,「과거사」 솔직히 사과/한일정상회담

    ◎신경협기구·하트라인 설치 합의/“창씨개명·위안부­노동자 강제연행/「참을 수 없는 고통 강요」 반성… 진사”/김 대통령/“과거에만 집착 않고 동반관계 구축” 【경주=김영만·이도운기자】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총리는 6일하오 경주 힐튼호텔에서 양국 신정부 출범후 첫 정상회담을 갖고 두나라 개혁정책과 한반도 정세,한일관계등 공동관심사에 관해 광범위하게 논의했다.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2시간25분간의 단독정상회담과 10분간의 확대정상회담이 시종 우호적이고 격의없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자리에서 호소카와 총리는 과거사문제와 관련,『과거 우리의 식민지지배시절에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예를들어 모국어 교육기회를 빼앗거나 타국언어를 강제로 사용케하거나 창씨개명이란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종군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등 각종 문제가 있었다』고 전제,『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일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진사드린다』고 사과했다.일본총리의 이같은 사과발언은 그동안 일본 지도자들이 표명한 과거사 관련 발언들중 가장 강도가 센 사과발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에대해 『과거란 결코 잊어서는 안되지만 이것에만 집착해서도 않될 것』이라고 밝히고 『과거사문제를 이해와 협조차원에서 조기매듭함으로써 양국관계를 포괄적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기위해 긴밀히 협력코자한다』고 밝혀 과거사가 더이상 한일간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제문제와 관련,두정상은 무역역조시정과 과학기술이전,대한투자확대를 추진키로 한 한일 경제인포럼보고서가 실행되고 양국간 균형경제협력을 위해 정부간 「한일 신경제협력기구」를 구성하자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김대통령은 일본의 한국상품에 대한 관세·비관세장벽의 완화와 일본 건설시장에의 한국기업 참여배려를 요청했으며 이에대해 호소카와 총리는 이같은 수입규제를 인정하면서 수입규제의 대폭완화를 이미 지시하고 또한 건설시장규제도 능동적으로 풀어나가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양국정상은 한반도를 포함한 아·태지역에 심각한 위협인 동시에 핵 비확산에대한 중대한 도전이므로 조속히 해결되어야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두정상은 인적문화교류와 관련,각분야에서의 인적교류,특히 청소년 교류를 확대키로 했으며 호소카와 총리는 일본이 한국 유학생을 비약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미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이 사할린교포들의 영주귀국 문제가 일본정부의 주도적 책임하에 해결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힌데 대해 호소카와 총리는 일시귀국 사업을 계속하되 영주귀국 희망자의 염원이 이루어지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두나라 정상은 청와대와 일본 총리관저간에 핫라인을 설치키로 합의하고 호소카와 총리의 방일요청에대해 김대통령은 내년중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호소카와총리는 당초 헬기편으로 경주로 직행할 예정이었으나 일기불순으로 육로로 오는 바람에 당초 예정보다 55분 늦은 하오4시10분께 숙소인 힐튼호텔에 도착했다. 이날 단독정상회담은 양측 아주국장과 통역만을 배석시킨채 당초 예정대로 하오 4시30분 시작됐으나 회의는 7시까지 계속됐다.이어 우리측에서 홍순영외무차관·공로명주일대사·박재윤청와대 경제·정종욱외교안보·이경재공보수석및 외무부 유병우아주국장·신각수동북아1과장등이,일본측에서 이시하라 노부오(석원신웅)관방부부장관·후쿠다 히로시(복전박)외무심의관·이케다 다바시(지전유)아주국장·마키다 후니히코총리비서관·누마타 사다아키 보도심의관·나카무라 시게루(중촌자)북동아1과장등이 배석한 확대정상회담은 20분쯤 진행됐다. 김대통령은 이날 저녁 호소카와총리내외를 위해 양측 공식수행원등 30여명이 참석하는 환영만찬을 가졌으며 7일 아침에는 양국정상내외가 함께 조찬을 갖고 두나라 정상간의 우의를 다질 예정이다. 양국정상은 이어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경주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한뒤 부부동반으로 경주산책및 관광에 나설 예정이다. 호소카와총리는 경주관광이 끝난뒤 숙소로 김대통령을 예방하고 작별인사를 한뒤 이날낮 한외무장관과 최의전장의 환송을 받으며 이한한다.
  • 일총리 사과발언전문

    양국간의 과거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여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자자손손 전해 나가는 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로서 장래에 대한 가장 큰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본인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언급해 왔으며 이에 대해 일본내에는 아직은 일부 반발도 있으나 저 자신은 진실을 말하고 이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양국간의 진정한 우호관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인은 이러한 인식이 모든 관계의 전제가 된다는 것을 일본인이 모두 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과거 우리의 식민지 지배시절에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예를 들어 모국어 교육의 기회를 빼앗거나 타국언어를 강제로 사용케하거나 창씨개명이라는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종군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 등 각종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가해자로서 우리가 한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진사드리는 바입니다.
  • 수사기관 임의동행 최소화/검찰/긴급구속장제 적극 활용키로

    마구잡이식 「임의동행」이 사라진다. 최근 법원이 적법절차를 무시한 임의동행을 하지 못하도록 판결을 내린데 이어 대검찰청도 이를 시정토록 일선 검찰에 강력히 지시,임의동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서울지검 형사6부 최성창검사는 20일 무고혐의로 수배됐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 피의자 이재석씨(42·성남시 중원구 은행1동)를 강제연행하는 대신 긴급구속장을 발부,조사한뒤 다시 판사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이씨를 구속수감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정상적으로 유통시킨 어음을 어음소지자가 변조했다며 허위고소한 혐의로 최검사에 의해 지명수배 됐었다. 그동안 검찰과 경찰·안기부 등 수사기관은 적법절차를 거의 무시한채 피의자및 참고인들을 마구 연행,48시간 동안 조사를 벌인뒤 이 기간을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고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해 위법성 시비가 초래돼 왔었다. 검찰은 이처럼 긴급구속제도를 폭넓게 활용하되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임의동행을 할 경우에는 사법경찰관들로 하여금 ▲피동행자의 동의여부▲동행장소 ▲혐의사실고지여부 ▲변호인선임권고지여부 ▲가족 및 변호사와의 통화 등 연락권 보장여부를 기록한 「임의동행일지」를 작성토록 해 인권침해소지를 없애기로 했다.
  • 「위안부급모」 일제 광고 첫 발견

    【도쿄 연합】 2차대전 말기인 지난 44년 조선총독부가 실권을 쥐고 서울에서 발행하고 있던 「매일신보」에 「군위안부급모」 광고가 나온 사실이 밝혀졌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18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군대 위안부등 일제시대 강제연행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 나고야시의 시민단체 「아이치(애지)현 조선인 강제연행 역사조사반」이 이 광고를 발견했다면서 한반도로부터 군대 위안부를 직접 모집한 자료가 발견된 것은 지극히 희귀한 일로 연행·동원등 실상을 파악하는데 단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 대마도 아리랑제(일본속의 한국문화:2)

    ◎통신사기념 매년8월 첫주 열려/일행 5백여명 탄 선단 이즈하라외항 도착/정사 선두로 중심가 행진… 구경꾼 연도 메워 통신사일행을 태운 배는 늘 새벽에 부산항을 떠난다.순풍에 돛을 달면 편안하게 그날 오후 4시경에 대마도에 도착하지만 역풍과 격랑을 맞나게 되면 밤늦게 악포 앞바다에 이르러 헤매게 된다.그리고 모두 배멀미에 시달려 일어나지 못하고 뻗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악포에서 몇날을 묵은 뒤 대마도의 행정수도 이즈하라(엄원)로 떠난다.배는 대마도의 서해안(즉 일본측 해안)을 따라가게 되는데 이 항로 또한 만만치 않아서 2∼3일만에야 겨우 목적지에 닿게 된다.이즈하라는 당시 대마도주 슈우케(종가)가 사는 성하정(읍)이어서 부중이라 불렀었고 1천호이상의 민가가 몰려 있는 번화가였다.지금도 대마도의 총인구 4만5천명 가운데 1만5천여명이 살고 있는 섬 제일의 고을이다. 특히 이즈하라에는 우리나라 통신사와 인연이 깊은 유물·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통신사일행이 묵은 숙소 서산사라든지 도주의 저택 김석성,그리고 옛 부두,어선강(오후네가와)등이 눈길을 끈다.어선강이라는 옛 부두는 지금의 이즈하라항구로 흘러들어오는 작은 냇물의 하구를 인공으로 넓혀서 만든 도주전용의 선착장인데 네개의 석축선착장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가 갔을 때 마침 밀물이라 항구에는 바닷물이 가득 차 있었으나 물이 빠지면 바닥이 드러난다는 것이며 이 경우 배들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당시 통신사일행이 5백명에 이르렀으므로 정사와 부사를 태운 세척의 배만 이 좁은 항구에 들어왔을 뿐 나머지 배들은 외항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수십척의 통신사 선단이 이곳에 도착하면 잠자듯 조용했던 이 섬은 흥분하기 시작한다.도착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듣고 나온 인파가 연도를 가득 메운 가운데 통신사의 행렬이 약 3㎞에 달하는 부중중심가를 뚫고 가게 되니 절해의 고도 대마도로서는 일대 소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근 대마도에서는 그날의 열기를 기념하는 아리랑제를 매월 8월 첫주에 거행하고 있는데 단순한 한국관광객유치작전으로만 볼 수 없다. 통신사의 부중도착실황을 자세히 묘사한 기록으로 종사관 이경직의 「임상록」(1617년,광해군9년)이 있다.종사관은 정사와 부사 다음의 벼슬이다. 『7월9일(부산을 떠난 지 5일만)신시(저녁 네시경) 부중포에 당도하였다.정사(오윤겸)이하 4백28명이 모두 관대를 갖추어 위의를 성대하게 벌여 국서를 받들고 행진하였다.대오를 갖춘 위인들이 앞을 인도하는 가운데 부중에 들어서니 구경꾼들이 연도에 담치듯 하였고 남녀가 뒤섞여 시끌법석하였다. 섬안은 지세가 비좁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고 민가가 많아 대강 1천여호가 되는듯 보였다.앞바다에는 큰 배 10여척,작은배 60여척이 대어 있었다.선착장에서 신사의 숙소까지 7·8이(약3㎞)가량 떨어져 있는데 좌우의 여염에는 누각이 많았고 소위 양반집 정원에는 송죽이 심어져 있었다.이는 대개 정결에 힘쓰는 이 나라 풍속 때문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이즈하라거리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돌담을 높이 쌓은 소위 양반집이다.대마도에서는 무가의 저택이라 하는데 아래는 굵은 돌을 쌓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돌을 쌓은 것이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집 돌담과 흡사하다.이곳 사람들은 돌담을 높이 쌓은 이유를 혹은 방화벽이라느니 혹은 통신사가 지나가면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다느니 설명하고 있으나 통신사기록을 종합해보면 이곳 주택들이 모두 목조건물이라 동네마다 돌담으로 칸을 막아 불길을 막고 출입구를 만들어 이문으로 삼았던 것 같다. 이경직이 대마도를 방문한 1617년만 하더라도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년이 채 못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풍신수길의 침략군 앞잡이를 한 대마도주에 대한 감정이 대단하였고 아무리 후한 대접을 한다 하더라도 마음속에는 늘 원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그래서 이경직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볼 때마다 또 올빼미 같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뱀이 앞에 나타난 것같이 섬뜻하여 고통스럽기만 하다』 임진왜란 때 그들에게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였고 일본땅으로 끌려간 사람이 30만으로 추산되었다.바로 이 대마도에도 수많은 동포들이 끌려와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할 리없었고 밥먹는 것이 모래를 씹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일본으로 보내는 사절단을 통신사라 이름하지 않고 회답·쇄환사라 했다.7월10일 정사 오윤겸은 대마도로 종의성에게 『이번 행차는 오로지 우리나라 사람을 쇄환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한다.그러나 종의성은 음흉하게도 이렇게 변명하고 있다.첫째 임란때 끌려온 조선인들은 이미 장가들고 시집을 가거나 자손을 본 사람까지 있으니 그들을 강제로 귀국시킬 수 없고,둘째로 관백(일본의 실력자 덕천)으로 하여금 전국에 쇄환령을 내리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끌고 간 조선인의 대다수는 젊은 처녀와 10세전후의 어린 소년들이었다.그러니 근 20년이 지난 오늘 그 대다수가 결혼하고 자식을 두었다는 것이다.거기다 이들을 쇄환해가는 데 돈까지 요구하니 기막힌 이야기였다.침략행위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지는 못할망정 강제연행한 조선인의 송환까지도 거부한 일본의 교활하고 파렴치한 행동은 이미 3백년 전에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먼 나라가 된 원인은 바로 이러한 일본지도자들의 무책임한 정책 때문이란 사실을 스스로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 “「정신대」 발표 반성 부족”/일 단체들 잇단 성명

    【도쿄 연합】 사회당의 전후보상특별대책위원회(위원장 토정다하자)등 일본 공·사 성격의 전쟁단체들은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 등을 인정한 정부보고서의 내용에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정부가 범한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도 곁들였다. 도이위원장은 4일 저녁 정부보고서 발표에 따른 회견을 통해 정부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했다 ▲사죄와 반성의 기분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평가할 만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러나 정부가 범한 전쟁에 대한 반성이 전혀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 학자·변호사들로 구성된 「일본의 전쟁책임자료센터」(대표 황정신일순하대대교수)는 5일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가 ▲위안부의 징집이 강제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위안부문제를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경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인식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애매했던 정부의 입장을 크게 전환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하고 유엔과 협력,전후처리특별위를 국회내에 설치하자고 제의했다. 한국 종군위안부 희생자들이 제출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원고측 변호인으로 있는 자료센터의 다카기 겐이치(고목건일)변호사는 『너무나 남의 일같은 표현으로 일관,정부와 군이 일체가 돼 전쟁범죄를 범한 것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는 단어가 없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연행과 위안소의 생활에서 강제성을 인정한 것은 이 문제가 전쟁범죄라는 것을 정부가 내외에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재판의 조기해결과 연결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반세기만에 자인한 「과거잘못」/일의 종군위안부 강제성 시인 안팎

    ◎양국과거사 전향해결 가능성 높아져/일인 역사의식 변화여부 과제로 남아 일본정부가 4일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인정함에 따라 제2차대전을 전후,수많은 한국여성들이 강제로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비인간적 고통을 당했음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됐다. 일본은 그동안 최악의 전쟁범죄인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피해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강제연행을 부인해왔다.지난해 7월에 발표한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1차보고서에서는 입증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았다.이같은 일본이 4일 강제연행사실을 인정한 것은 당사자와 한국정부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종군위안부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판단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후 『종군위안부문제의 진상규명이 중요하며 보상은 필요없다』고 밝히고 이들의 생활대책을 마련하자 보다 적극적으로 종군위안부문제 해결에 나섰다.일본정부는 전종군위안부들에 대한 증언청취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 제2차보고서에서 『일본군과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들이 감언을 하거나 공포감을 주는 등의 형태로 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종군위안부를 모집했다』는 표현으로 강제성을 인정했다.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연행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과거의 잘못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과거사문제에 대한 전향적 자세로 일단 평가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일본주재 한국대사관측은 한국으로서는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는 하기 어려우나 ▲강제성 인정 ▲전체실상 규명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등의 한국측 기본입장이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는데 반세기나 걸렸으며 표현에도 애매한 면이 있고 아직도 한국출신 종군위안부의 전체 숫자가 밝혀지지 않는 등 미흡한 부분은 남아 있다.2차보고서는 위안소가 광범위한 지역에 설치됐었으며 수많은 종군위안부가 존재했다고만 밝히고 있다.일본정부는 전체 규모를 파악할 만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일부 연구가들은 종군위안부 규모가 20만명에 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종군위안부문제는 지금까지 한·일간의 최대 현안이었으며 양국은 조기해결을 희망해왔다.일본주재 한국대사관 관리는 이와관련,일본이 강제연행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종군위안부문제는 일단락됐다고 지적하고 앞으로는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정부가 새 정부출범 하루전에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자신의 한국방문때 큰 이슈가 됐던 종군위안부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의 강력한 의지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한다. 일본의 새 연립정부지도자들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후보와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 등은 일본의 과거침략사문제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사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이에따라 양국간의 과거사문제는 보다 전향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강제로 끌려가 참혹한 고통을 당한 종군위안부들의 한은 비참한 역사의 상흔으로 잔존할 수밖에 없으며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도 과제로 남게 됐다.
  • 일,강제연행 공식 인정/미야자와 정부

    ◎“일군이 직접간여… 사과·반성”/“총인원 자료 미비로 추정 곤란”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정부는 4일 구일본군이 2차대전 당시 군대내 위안소 설치에 관여했으며 특히 한국에서의 종군위안부 모집및 이송,관리에는 총체적으로 강제성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일정부 대변인인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이날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하여」라는 발표문을 통해 『위안부의 출신지에 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한반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당시 한반도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위안부의 모집,이송·관리등도 감언·강압에 의하는등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고 말했다. 고노 장관은 또 『조사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되어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한 것으로 인정됐다』면서 『위안소는 당시 군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경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 구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견된 자료중에는 위안부의 총수를 나타내는 것이 없고 또한 이를 추측하여 인정할만한 충분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위안부 총수를 추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고노 장관은 설명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이 기회에 위안부의 출신지 여하를 불문하고 소위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사죄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내각의 해산을 하루 앞두고 조사결과를 발표한 고노장관은 또 그러한 마음을 일본이 어떻게 나타낼수 있을까에 관해서 사계 권위자들의 의견등도 들어가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고노 장관은 이와함께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나가고자 한다』면서 『역사연구,역사교육을 통해 이같은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고 다짐했다.
  • 일,정신대 강제연행 시인/최종보고서 빠르면 오늘 발표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정부는 한국인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하는 최종보고서를 빠르면 4일 발표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독매)신문이 3일 보도했다. 최종보고서는 「전시하에 한국인들이 구일본군에 의해 전반적으로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인 분위기에서 위안부로 연행되었음이 판명되었다」는 등의 표현으로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있으나 강제연행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고 이신문은 전했다.
  • 정신대 강제동원 인정/일 정부,새달 조사보고서 발표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정부는 내달중 한국인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일부 인정하는 내용의 조사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요미우리(독매)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확대외무장관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무토가분(무등가문)일본외상은 오는 27일 현지에서 한·일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현안이 되고 있는 한국인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일본 정부가 한국인 종군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최종적인 보고서를 8월중 발표할 계획임을 한승주 외무장관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 한진구씨 2차 소환 불응/검찰,강제 구인키로/정보사 테러수사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20일 민간인 테러단을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난 당시 정보사 3처장 한진구씨(53·남성대 골프장 대표)가 이날 하오 2시까지 출두할 것을 요구한 2차 소환에도 불응함에따라 강제구인키로 했다. 검찰관계자는 『한씨가 자진출두하지 않을것으로 보고 법원으로부터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거나 긴급구속장을 발부해 한씨를 강제연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한씨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대로 오는 22일쯤 당시 정보사령관이었던 이진삼씨(56·전체육청소년부장관)를 소환,조사한 뒤 2명 모두 폭력교사 혐의로 사법처리키로 했다.
  • 「12·12」주도 34명 고소/정승화씨 등 22명/반란·항명혐의로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등 12·12사태당시 신군부세력에 군지휘권을 박탈당했던 육군수뇌부지휘관과 참모 22명은 19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등 사태를 주도했던 34명을 반란및 항명등 혐의로 대검에 고소했다. 정씨등은 소장에서 『12·12는 정권찬탈을 목적으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등이 하나회와 수도권 반란진압부대,군내후원세력등을 동원해 일으킨 군사반란으로 헌법기관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 등을 강제연행·구금하고 군통수권자인 최규하전대통령을 협박,국권을 찬탈했다』고 주장했다. 12·12사법처리추진위원회는 고소장 제출에 앞서 고소인22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하오 2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국민성명을 발표,사태를 예방하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당시 주모자들에 대한 엄정한 사법적 심판을 촉구했다.
  • 대학생부친,경찰고소/“변호사경·가족접견 방해”

    김도춘순경을 발로 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배병성군의 아버지 배명옥씨는 1일 『경찰관들이 아들을 영장없이 강제연행한뒤 5일동안 구금하고 변호사와 가족의 면회를 거부했다』며 서울동부경찰서소속 경찰관 4명을 불법체포및 감금,타인의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 일제에 징용뒤 미 포로수용소 생활/한인 3천명 명단발견

    【도쿄 연합】 2차대전중 태평양전쟁에 일본의 군인및 군속으로 끌려갔다가 미군의 포로가 되었던 한국인 3천명의 명단이 새로 발견돼 일제의 강제연행 실태를 조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명단은 재일 동포 송영근씨(76·교토시 북구)가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가로 20㎝·세로 40㎝크기의 종이 31쪽에 걸쳐 송씨를 비롯한 한국인 포로 3천명의 이름과 주소가 지역별로 분류되어 있다. 일제 패망직후 하와이 수용소에 수감된 한국인 포로들은 고향에 돌아가면 서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수용소를 드나들던 미국인 선교사의 지원으로 명단을 인쇄,나눠 가진 것이라고 송씨는 설명했다. 송씨는 1943년 태평양의 데니안 섬으로 징용돼 비행장 건설 공사를 하던중 미군의 상륙으로 일본군 병사들은 대부분 「옥쇄」하고 일부만 생존,미군의 포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일본 후생성은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은 약 24만명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명단 파악과정에서 누락된 사람이 많아 이 포로명단은 일제의 강제 연행 실태를 규명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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