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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軍,위안부 조직적 강제 연행”

    ◎前 고위지휘관 등 자필진술서 공개/日 정부상대 손배소송에 영향 클듯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제가 군주둔지에 위안소를 설치,한반도와 중국 등지에서 부녀자들을 유괴해 위안부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옛 일본군 고위 지휘관의 증언이 밝혀져 종군위안부가 일제의 조직적 범죄였음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과되고 있다고 일본 교도(共同)통신이 4일 보도했다. 이번에 밝혀진 자료는 지난 56년 중국의 일본인 전범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45명의 군인과 만주국 괴뢰정부 관료들의 자필진술서로,그동안 중국인 연구가들에 의해 일부 인용된 적은 있지만 종합된 형태로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특히 옛 일본군 고위지휘관이 위안소 설치 및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증언이 처음 밝혀짐에 따라,현재 일본 법원에서 계류중인 한국인 등 종군위안부들의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 사진가 아라이 도시오(新井利男·56)가 중국 푸순(撫順)전범관리소에서 찾아낸 진술서에 따르면 관동군 제117사단장이었던 스즈키 히라쿠(鈴木啓久)중장은 “연대장 시절인 41년 부관에게 위안소 설치를 명령,중국인과 조선인 부녀자 20명을 유괴해 위안부로 강제 종사시켰다”고 증언했다.그는 또 다른 2곳에도 위안소 설치를 명령했으며,위안부를 구하기 위해 중국과 조선인 여성 약 140명을 유괴했다고 진술했다. 또 사사 신노스케(佐佐眞之助) 중장은 “후베이(湖北)성에 위안소가 이전부터 설치돼 운영돼왔으나 침략전쟁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던 중국인 부녀자 10여명이 강제수용돼 천업(賤業)에 종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미­일 ‘과거사 청산’ 큰 차

    ◎2차 대전때 해고·연행 일본인/미,대통령 사죄편지·보상키로 【도쿄 연합】 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중 중남미지역에서 연행해 미국내 수용소에 수용했던 일본인 2천200명에 대해서도 인권침해와 인종차별 사실을 인정, 사죄와 보상을 실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1일 미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신문은 미국이 중남미에서 자행한 일본인 강제연행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사에 남긴 오점이라고 지적하면서 미 정부가 과거 청산을 위해 수용자의 국적을 불문,사죄와 보상을 하기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 정부는 태평양전쟁중 강제수용한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해서는 88년 조지 부시 정권 당시 미 시민자유법에 의거,8만1천명을 대상으로 대통령의 사죄와 1인당 2만달러의 보상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중남미에서 강제연행한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미 정부는 개전 후인 1942년부터 페루 등 중남미 13개국에 이민해 살고 있던 일본인 가운데 2천64명을 국방대책의 명목으로 미국에 강제연행,텍사스주 크리스탈시티의 일본인 수용소에 수용했었다. 한편 미 법무부는 지난 27일 전시중 미국내 광산과 철도 등에서 해고당한 일본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사죄편지와 함께 1인당 2만달러씩을 보상키로 했다고 밝혔었다.
  • 일제 1944년 조선인 28만 징용/각의 자료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제의 조선인 강제징용이 절정에 달했던 1944년도 일본 도·도·부·현별 연행예정자 수를 표시한 당시 각의 결정 첨부자료가 밝혀져 일제의 강제연행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 학자들로 구성된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최근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44년 12월28일자 경찰관 증원 등에 관한 ‘내무부 내 임시직원 등 설치 외 5칙령 개정의 건’이라는 제목의 각의결정 첨부자료 가운데 포함돼 있다. 일제의 연도별 강제연행수를 밝힌 자료로는 전후에 작성된 ‘미국전략폭격조사단보고서’가 있는데,이 보고서도 44년도 연행자수를 28만304명으로 적고 있어 이번에 밝혀진 연행예정자 수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 일 자민 ‘교과서소위’ 설치/위안부문제 등 삭제 추진

    【도쿄 연합】 일본 자민당은 고교 역사교과서 등에 ‘종군위안부’를 비롯한 일제의 역사적 과오가 기술돼 있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교과서문제 소위’를 설치키로 했다. 25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24일 열린 문교위원회와 문교제도조사회 합동회의에서 이같은 방침을 확인,26일 발족되는 당 교육개혁실시본부의 하부기관으로 교과서 소위를 설치키로 했다. 이날 합동회의에서는 자민당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모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중·고교 교과서에서 ‘종군’,‘강제연행’ 등의 기술은 삭제돼야 한다는 발언이 잇따랐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들은 특히 “전쟁당시 종군간호부,종군기자는 군속으로 존재했으나 종군위안부는 없었다”,“군이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는 어떤 조사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강변했다.
  • 일 법원 “한국인 징용 위법” 첫 인정/나가사키지법

    ◎“청구권 없다” 손배소는 기각 【도쿄 연합】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됐다 원폭피해를 입은 한국인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삼릉)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일법원이 2일 “징용은 위법이지만 청구권은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나가사키(장기) 지방법원은 이날 한국인 김순길씨(75·부산)가 낸 1천만엔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에서 “국가의 징용은 위법이지만 국가배상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구헌법하에서는 국가가 위법행위를 저질렀더라도 배상 책임이 없다”며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이 일제의 강제연행을 둘러싼 소송에 대해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이번 판결에 불복,항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일,강제징용 한인 임금 지급/신일본제철사

    ◎소송유족 11명에 2천만엔 일본의 신일본제철사가 2차대전중 강제 징용됐다가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사망한 한국인 유족 11명이 제기한 미지불 임금 지급 청구소송과 관련,2천여만엔(1억5천만원 상당)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고 일본 NHK방송이 21일 보도했다. 2차대전후 일본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강제연행에 따른 피해를 다투는 재판이 여러 곳에서 진행돼 왔지만 기업이 미지불 임금 지불에 합의,재판이 끝맺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재판은 지난 42년부터 45년에 걸쳐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에 있는 당시 일본제철에 강제연행돼 노동하던 한국인들 유족이 ‘미군 함포사격등으로 가족이 사망한 것은 강제연행 때문’이라면서 일본 국가와 신일본제철(신일철)을 상대로 모두 2억엔의 미지불 임금을 지불할 것과 유골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95년 9월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한데 따른 것이다. 이 재판에서 신일철측은 ‘당시의 회사와 다른 회사로 법적 책임은 없다’라고 주장해 왔지만 재판과는 별도로 원고측과 2천만엔에 합의했으며 원고측은기업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다. 신일철은 일본제철이 몇개의 법인으로 분리됐다가 다시 합병한 것으로 사실상 일본제철의 후신이다.이번 지불에 대해 신일철측은 “어디까지나 인도적인 입장에서 위령을 위해 지불키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 일 침략역사 교과서기술 규제 완화/일‘역사교과서 검정 판결’의미

    ◎양심있는 학자의 32녀 끈질긴 투쟁 결실/종군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실 왜곡 여전 일본의 과거사 기술에 대한 문부성의 검정제도를 둘러싸고 32년간 계속된 ‘교과서 소송’이 29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재판부는 교과서 검정이 합헌이라고 인정했지만 양심있는 역사학자의 끈질긴 투쟁은 검정제도와 역사교육에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교과서 소송의 역사는 지난 65년 6월부터 시작됐다.이에나가 사부로(가영삼랑·83) 당시 도쿄교육대 교수가 그의 고교 역사교과서 ‘신일본사’내용이 문부성에 의해 변경·삭제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그것이 1차소송이다.그는 66년 그의 교과서가 문부성에 의해 불합격 판정을 받자 67년 제2차 소송을 제기했다.그는 1,2심에서 부분적으로 원고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3심에서는 모두 패소했다. 최고 재판소가 이날 최종판결을 내린 3차 소송은 84년1월 제기됐다.이에 나가 전 교수가 과거 일제가 저지른 ‘침략’전쟁을 문부성이 ‘무력진출’로 기술할 것을 요구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문부성의 이러한 요구는 당시 한국·중국 등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한·일간 교과서 파동’으로 바화됐었다. 재판부는 3차소송 최종심에서 731부대 기술과 관련,“731부대가 생체실험을 하고 다수의 중국인 등을 살해했다는 내용은 검정당시 학계에서 정설화됐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문부성이 731부대 기술의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는 합헌이라고 인정했다.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에 관한 교과서기술을 정부가 검정하는 행위는 합헌으로 최종 판정난 것이다.그러나 이에나가 전 교수의 ‘교과서 소송’은 검정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문부성은 검정제도를 크게 개편했다.문부성은 지난 77년 일방통행식 규제에서 벗어나 교과서 저자의 반론권을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다.교과서 합격여부 판정권한도 문부성에서 문부장관 자문기관인 ‘교과서 검정 조사심의회’로 넘어갔다. 교과서에는 ‘침략’이라는 표현도 사용되게 됐고 내년도에 사용될 10종류의 모든 고교교과서에는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도 실린다. 그러나 일본교과서는 여전히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문부성이 지난 6월 발표한 고교교과서 검정결과에 따르면 종군위안부 숫자,강제연행 문제,전후보상 등에 관한 기술이 여전히 삭제·수정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보수·우익세력들은 한발 더나아가 전쟁범죄를 교과서에 싣는 것은 ‘자학사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그들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그러한 움직임은 최근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양심있는 역사학자의 끈질긴 노력으로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가 바뀌었지만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일본 현실이다.
  • “위안소 경영 일인 유죄 판결”/1937년 일 대법판례 발견

    ◎“위안부 연행은 국외유괴” 【도쿄 연합】 일본군 위안부로 고용시킬 목적으로 일본인 여성을 해외로 데려간 일본인 위안소 경영자들이 당시 형법의 ‘국외이송,국외유괴죄’ 위반으로 1937년 일본 대심원(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고 도쿄의 조선신보가 21일 보도했다. 이같은 사실은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최근 오사카 부립 도서관의 ‘대심원 형사판례집’에서 확인한 것으로 ‘위안부’연행은 일본 국내법상으로도 범죄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외이송유괴 피고사건’으로 취급된 이 판례에 따르면 중국상해에서 군인을 상대로 매춘을 강요하고 있던 일본인 업자들은 1932년 상해사변으로 늘어난 해군군인을 위해 ‘해군지정 위안소’의 명칭하에 영업 확장을 계획했다. 이들은 이를 위해 매춘을 숨기고 여급 등으로 고용하도록 속여 여성들을 이송할 것을 모의,나가사키에서 15명의 일본여성을 상해로 보냈으나 국외이송,유괴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위안부로 연행된 여성들의 경우 대부분 감언이설에 속아끌려간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이 판례에 따르면 이같은 행위도 ‘국외이송죄’에 해당하는 범죄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 일 731부대 세균전 대본영서 결정/당시 사령관 진중일기서 확인

    ◎피해 중국인 108명 첫 손배소 【도쿄 외신 종합】 중일전쟁중이던 1942년 구 일본군이 중국대륙에 세균과 독가스를 살포,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작전에 731부대가 관련됐다는 사실이 당시 주력부대였던 제13군사령관 사와다 시게루(택전무) 중장의 진중일기에 기록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교도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이같은 일기내용이 알려짐에 따라 11일 일본정부를 상대로 10억엔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중국인 피해자및 유족 대표들은 “사와다 일기를 통해 이시이 시로(석정사랑) 731부대장의 진두지휘로 세균전이 실시됐음이 재차 입증됐다”며 추후 증거자료로 제출할 것임을 밝혔다. 후지모토 오사무(등본치) 시즈오카(정강)대학 명예교수가 사와다 사령관의 유족들의 허가를 얻어 방위청 방위연구소 전사실에 보관중인 일기를 열람한 바에 따르면 일기에는 “현지 군사령관이 반대의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대본영에서 결정했다”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중일전쟁중 731부대 등이 자행한 세균전 희생자의 유족 및 생존자 108명은 11일 1인당 1천만엔의 피해보상을 일본정부에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 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전후보상문제와 관련,세균전을 둘러싼 소송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노무자 강제연행,남경학살 등에 이어 일본의 또다른 전쟁책임문제가 법정에서 다뤄지게 됐다.
  • “패망전 일인 위안부업자 국외유괴죄로 유죄판결”

    ◎위안부 존재 증명 30년대 판례 발견 일본이 패망하기 전 종군위안부로 삼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여성을 속여서 중국 상해로 데려간 일본인 위안부 업자가 국외이송 목적의 유괴를 금지한 일본 구형법 226조 ‘국외 이송,국외유괴죄’로 1937년 일본 대심원(대법원에 해당)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6일 보도했다. 이 판결은 재일동포와 일본인 학자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이 오사카 부립도서관의 ‘대심원형사판례집’에서 확인한 것이다. 일본의 구형법은 일본이 강제로 합병한 한반도에도 적용되고 있었으며 이 판결은 당시 여성들을 속여서 일본군 주둔지로 데려가 위안부로 삼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조선인 징용희생자 73명 확인/일 도치기현 조사단

    ◎광산·군수공장서 강제노역/1살미만 유아 22명 포함 【도쿄 연합】 태평양전쟁중 일본 도치기현의 광산이나 군수공장 등에 강제연행된 조선인 노동자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는 도치기현 조선인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은 5일 현내 아시오(족미)광산에서 사망한 조선인수가 모두 73명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이들 사망자의 성명과 생년월일·본적지·사망원인 등이 적힌 명부를 작성,발표했는데 사인은 주로 폐렴이나 장티푸스,낙반사고에 의한 압사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들 73명의 사망자 가운데는 1살 미만의 유아도 22명이나 포함돼 있다.
  • “독방에 가둔뒤 가혹행위”/일 나포 귀국선장 문답

    ◎조사중 고함치며 영해침범 인정 강요/강제연행 거부에 집단구타·가스총 쏴 지난달 15일 동해상에서 조업 도중 일본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직선기선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나포됐던 제302수덕호 선장 안형렬씨(37)와 제58덕용호 선장 안광욱씨(43)가 억류 22일만인 7일 하오 일본 히로시마발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귀국했다. 수덕호 선장 안씨는 기자회견에서 “해상보안청 요원들에 의해 강제 연행돼 산케이 구치소로 옮겨져 18일간 독방에 갇혀 조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함께 억류됐다가 지난 4일 경남 통영항을 통해 귀환했던 두 선박의 선원 18명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인들의 가혹행위를 폭로했다. 다음은 이들과의 일문일답을 종합한 것이다. ­나포 당시 상황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본 가다시리미 등대 북서쪽 15마일 공해상에서 장어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가스총과 곤봉으로 무장한 일본 해안보안청 소속 관계자 5∼6명이 배로 들어와 “영해침범으로 연행한다”고 말했다. ­가혹행위가 있었는가. ▲연행되기를 거부하자 보안청 관계자들이 선원들을 구타했다.특히 수덕호 선원 김홍철씨는 선장 안씨에게 수갑을 채우려는 해상보안청 요원들에게 항의하다 곤봉과 발 주먹 등으로 집단구타를 당한뒤 수갑에 채워져 연행됐다가 한참 후에야 병원으로 옮겨졌다.가스총까지 쏘았다.조사과정에서 고함을 지르고 손가락으로 몸을 찌르며 일본의 ‘신영해’ 침범사실을 인정할 것을 강요했다. ­어디에서 무슨 조사를 받았나. ▲일본 야마구치현 산케이 구치소로 끌려가 18일간 각각 독방에 갇혀 조사를 받았다. ­왜 침범사실을 인정했는가.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채 아침부터 하오 5시까지 계속되는 강압적 조사와 독방 감금 등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협조하지 않으면 2개월이상 조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포후 배 안에서의 생활은. ▲일본측은 선원 모두를 배안에 감금한 채 일일이 주민등록증 만한 크기의 이름표를 달게 한 뒤 하루 2∼3번,많게는 4번이나 점호를 했다. 또 19일간 억류된 덕용호의 경우는 식수만 한차례 공급해줘 식량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앞으로의 대응은. ▲폭행 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측을 고소할 생각이다.65년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은 연안기점 12해리를 인정했으며 어느 일방이 직선기선을 적용할 경우 상대국과 협의해야 하는데도 일본은 이를 무시했으니 부당하다.끝까지 싸울 것이다.
  • 일,위안부 연행 “군개입” 삭제/문부성 지침

    ◎교과서에 “배상완료” 명기토록 【도쿄 연합】 일본 문부성은 내년 봄부터 사용되는 고교 교과서 검정에서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을 시사하는 기술 등은 고쳐 쓰도록 요구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문부성은 이번 고교 교과서 검정에서 ▲군에 의한 「종군위안부」강제연행을 명시하거나 ▲확인자료가 없는 사망자수에 대한 기술은 다시 쓰도록 검정의견을 제시했다. 이에따라 「구일본군은 중국,조선등 일본이 침략한 지역의 여성 다수를 강제연행」이라는 기술의 경우 군이 직접 관여했다는 오해를 주지 않도록 하라는 검정의견에 따라 「구일본군」이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문부성의 이같은 검정 의견은 지난해 중학교 교과서 검정때 제시한 것보다 2개항목이 더 늘어난 것으로,위안부동원에 대한 군(당시에는 국가)의 직접 관여 등을 부정하고 있는 국내 일각의 주장을 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부성은 지난해 중학교 교과서 검정시에는 『여자정신대와 위안부는 구별토록 한다』,『인원은 명시하지 않는다』는 2개항목의 검정기준만을 제시했었다. 이와함께 문부성은 이번 검정에서 전후보상과 관련한 개인보상 문제에 대해서는『국가간 배상은 해결이 끝났다』는 정부견해를 병기하도록 요구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 “교과서 위안부 기술 삭제”/일 이바라키현 의회

    ◎총리·문부상에 의견서 【도쿄 연합】 일본 이바라키현 의회는 19일 금년부터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군대위안부 기술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채택해 총리와 문부상에게 제출키로 결정했다. 문부성에 따르면 이 문제와 관련해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의회가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일본언론들이 전했다. 의견서는 『종군위안부와 강제연행에 대한 기술은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국가가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고 심신의 발달과정에 있는 중학생에게 이를 가르치는 것은 교육적인 배려를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인 신진당과 민주당,공산당(계 7명)은 반대했다.
  • 한국인 강제연행한 일 기업상대 손배소/일 법원 “시효 만료”기각

    【도쿄 연합】 도쿄지방법원은 26일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인 김경석씨(72·강원도 춘천시)가 당시의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사죄 및 보상소송을 사실상 전면 기각했다. 법원은 김씨가 일제식민지 시절 자신을 일본으로 연행,강제노역에 혹사시킨 일본강관(NKK)에 사죄와 보상(1천만엔)을 요구한데 대해 민법상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수 있는 시효의 만료를 이유로 이같이 판결했다. 김씨의 이번 소송은 한국등 일제 식민지 피해자들의 전후보상문제와 관련,국가의 비호 아래 강제연행을 자행한 당시 기업의 전쟁책임을 묻는 첫 재판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어 왔다.
  • 교과서 위안부기술 삭제 추진/일 자민 소장의원들 정부에 요청키로

    【도쿄 연합】 일본 자민당내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은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교과서 기술 삭제등을 정부에 정식 요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교도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이 모임은 위안부 강제연행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하는 사실은 없다는 전제하에 ▲93년 8월 위안부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당시 관방장관의 담화 철회 ▲중학교 교과서의 위안부 기술 삭제 등을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총리와 고스기 다카시(소삼융)문부상에게 요구키로 했다는 것이다.모임은 또 인접국가들이 관련된 근·현대 역사 사실의 취급시에는 필요한 배려를 하도록 한 현행 교과서 검정기준의 삭제와 수정도 아울러 요구키로 했다.
  • 일제 강제징용 재일교포 노인/인권 구제신청 오늘 제출

    【도쿄 연합】 일제(일제)에 강제연행돼 광산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재일교포 정운모씨(75·치바시 거주)가 일본정부와 광산회사를 상대로 공식사죄와 배상금 지급을 요청하는 인권구제 신청을 일본 변호사협회에 9일 제출할 예정이다. 일제시대 강제로 연행된 당사자가 인권구제를 신청하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 42년2월 도치기현 아시오 구리광산으로 연행된 정씨는 44년3월까지 매일 열두시간 이상 갱내에서 선로부설작업을 벌였으며 휴일도 없었고 보수도 형식에 그쳤다고 밝혔다. 일본정부는 90년8월 한반도 강제연행자의 약 10%인 7만1천명의 명단을 확인하고 개인 이름을 공표하지 않았으나 정씨는 민간단체의 활동으로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인권구제 신청이 가능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 위안부할머니 돕기 전화(사설)

    전화 3·1절을 맞아 일제 강점시기 일본군 위안부를 지낸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이 전개된다.서울신문사와 서울방송(SBS)이 공동으로 3월1일 밤 10시55분부터 다음날 새벽 0시55분까지 위안부할머니를 위한 특별생방송과 전화모금을 실시하고 한겨레신문사와 「강제연행당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연대」가 3월1일 하오4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모금공연을 연다. 위안부할머니를 위한 모금운동은 단순한 자선행위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올해초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몇몇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위로금」 지급을 강행하여 말썽을 빚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일본은 우리가 요구한 국가차원의 배상과 사과를 거부하고 「국민기금」이라는 수상쩍은 민간단체를 내세워 생활이 어려운 할머니들을 매수하는 야비한 수작으로 또다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현재 생존한 위안부할머니 158명에게는 우리 정부가생활비보조금(50만원)을 지급하고 있지만 위안부생활에서 얻은 지병과 노령에다 가족과도 단절된 관계로 대부분 생활고를 겪고 있는 형편이다.이 문제해결을 위해 시민연대가 지난해 모금활동을 시작했으나 그 실적이 미미하다. 서울신문사와 SBS가 공동주최하는 모금에 참여하려면 SBS의 생방송 「증언 158인의 일본군 위안부」가 진행되는 동안 서울신문의 텔섹 5678(02­700­5678)과 삐삐콜(02­700­5679)로 전화만 걸면 된다.한 전화번호로 한통화만 가능하고 전화요금 2천원이 기부금이 되는 것이다. 이 전화 한통화는 생활고속에서 치유하기 어려운 한을 안고 살아온 위안부할머니들에게 그동안의 무관심을 사과하는 의미도 지닐수 있다.역사의 상처가 아물도록 많은 국민이 모금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기대한다.
  • 일 중학교 교과서 「정신대」기술/문부상 “삭제할 뜻 없다” 강조

    일본 고스기 다카시(소삼융) 문부상은 21일 『중학교교과서에 전 종군위안부 기술이 들어간 것은 지난 93년 정부 보고에 바탕한 것으로 삭제할 뜻이 없다』고 강조했다. 고스기 문부상은 올해부터 중학교 교과서에서 등장하는 위안부 기술 삭제운동을 벌이고 있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간부들이 위안부 기술을 없애줄 것을 요청한데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중학생도 위안부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면서 위안부 기술을 삭제하거나 정정을 교과서 회사측에 권고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모임의 후지오카 노부가쓰(등강신승·도쿄대),니시오 간지(서미간이·전기통신대)교수와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 등 7명은 이날 고스기 문부상에게 ▲전쟁당시 「종군위안부」라는 말이 없었으며 ▲위안부 강제연행에 군이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없다면서 교과서 기술을 정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 일 문부상/“교과서 위안부 기술 당연”/고스기,참의원 답변

    ◎자민의 정정·삭제요청 거부 【도쿄 연합】 일본 우익단체들이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삭제하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고스기 다카시(소삼융) 문부상은 11일 『전문가들로 구성된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심의회의 검토 결과에 바탕한 것으로 타당하다』고 밝혔다. 고스기 문부상은 또 『지난 93년 8월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에서도 종군위안부에 관해 상세히 보고되어 있다』면서 『교과서 발행자에 대한 정정권고나 삭제요청을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고스기 문부상은 이날 국회 참의원에서 자민당 우익성향의 이타가키 다다시 의원이 『93년 정부조사에서도 강제연행이라는(결정적인)자료는 없으며 교과서는 일본을 나쁘게 기록하고 있는 만큼 문부상은 기술의 정정이나 삭제를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한데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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