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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帝징용 40만명 명단 공개

    일제 치하에서 일본으로 강제연행된 조선인 피해자 40여만명의 명단과 관련기록이 공개됐다.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는 1일 “일본내 총련계 단체인 ‘조선인강제련행 진상조사단’으로부터 홋카이도(北海道)를 비롯해 일본 각지로 끌려간 조선인 강제 징용·징병자 40만 2032명의 명단 등을 건네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말기 강제연행된 중국인들이 장시간 노동과 학대에 반발,폭동을 일으켰다가 수백명이 살해된 ‘하나오카(花岡) 사건’ 발생지인 일본 아키타(秋田)현 하나오카 광산에는 조선인 766명도 강제징용됐다. 1945년 8월24일 조선인 징용자와 가족 등 수천명을 싣고현해탄을 건너다 침몰한 일본 군함 ‘우키시마(浮島丸)호사건’ 사망자는 410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해 일본 정부가 발표했던 544명보다 적지만 진상조사단이 지난 30년간 일본 전역과 미국 문서기록보관소등에서 발굴해낸 자료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 정부의 발표자료에는 없는 부분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강제련행진상조사단’은 1945년 나가사키(長崎)와 히로시마(廣島)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한 조선인 강제징용 사망자도 각각 2261명,576명이라고 밝혔다.학도병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2339명이고 위안부 여성은 184명으로 기록돼있다. 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 사무국장은 “진상조사단이 총련계 기구라는 이유로 국내 입국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면서 “명단 확인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계당국은 이들의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씨줄날줄] 아시아 여성기금

    일본이 종군위안부 출신 여성들에 대한 배상금 지급 요구를 피하기 위해 만든 위안부 기금 즉 ‘아시아여성기금’의 한국내 사업 기간이 연장된다고 한다.1995년 창설된 아시아여성기금은 10일로 기한이 만료됐지만 그동안 한국내사업이 여의치 않아 사업기한을 연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시아여성기금이 언제까지,어떤 내용으로 사업을 연장시킬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하지만 그동안180여명(일본측 주장,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등록된숫자는 203명)에 달하는 할머니들 가운데 기금으로부터 1인당 위로금 500만엔을 받은 분들이 수십명이나 된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는 예상을 넘는 느낌이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측은 1997년 7명의 할머니가 500만엔(당시 환율로 3,150만원 상당)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그 이상은 기금측이 공개하지 않아 모른다고 말한다.다만 1999년부터 금지돼 왔던 기금 관계자의 입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풀리면서 슬금슬금 들어와 위로금 지급 사업을 벌이고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다고 전한다.여하튼 기금은 지금까지 한국을 비롯,타이완 필리핀 네덜란드 등 4개국에서 사업을 전개했다.네덜란드와 필리핀은 지난해 사업이 완료됐고 타이완은 올해 5월 사업 기한이 완료된다. 기금측은 자세한 설명을 피하고 있으나 모두 266명에 대한 사업이완료됐다고 한다. 아시아여성기금은 창설부터 성격이 모호하면서도 분명했다.모호한 것은 돈의 성격이었다.일본이 내놓은 돈은 ‘쓰구나이(つぐない) 깅(金)’이라는 것이다.우리 말로는 정확하게 해당되는 말이 없다.굳이 풀어서 설명하자면 법적으로는 배상 또는 보상에 해당되지 않으면서도 도덕적 귀책사유가 있으므로 성의 표시를 한다는 위로금 정도에 해당된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일본 외상이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했으면서도 끝내국가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기금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시간이 흐르면 위로금 수령 할머니들도 늘어나고,또 할머니들도 많이 돌아가시고,그러면 책임은 희석될 것이라는 ‘풍화작용’을 기대할지 모른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일본은 제대로 사죄하고 배상할 기회를 잃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기금 활동의 연장은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닌 것 같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 日 마이니치신문 ‘브뤼셀회담’ 사설 요약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11일자 사설을 통해 일·EU간의 협력강화를 위한 최근 브뤼셀 회담이 일본 외교의 폐쇄성을탈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설내용을 소개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EU의 베르호프스타트 의장,프로디 위원장은 8일 브뤼셀에서 회담을 갖고 일본과 유럽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행동계획 ‘공동 미래구축’을 발표했다. 일본과 유럽간에는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에 상호 관여하는 행동도 취하기 시작했다.EU는 5월,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다.미사일 발사실험을 2003년까지 계속 동결하기로 한 약속을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이끌어 내고 외교관계도 수립했다.일본이 납치문제를 꺼내면 북한은 전전(戰前)의 종군위안부나 강제연행 보상 등을 촉구하는 비난의 장이 되기쉽지만 EU에 대해서는 북한은 인권대화도 시작하고 있다.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진전되지 않는 가운데 EU에 기대되는 역할은 크다. 일본과 EU 경제는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한다.민주주의와시장경제라는 가치도 오랜 기간 공유해 왔다.고이즈미 총리도 벨기에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일본외교의 축은 일·미관계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EU와의 관계는점점 중요해진다.협력·제휴관계를 심화시키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협의는 그 자세에 의문을 품게 한다.협의는 EU가 강하게 연내 개최를 희망해 일본이 간신히 응했다고 한다. 테러 문제로 영국은 블레어 수상이 중동을 순방했지만,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방문을 연기했다.확실히 자위대 파견에는 적극적이지만 외교에서는 소극적이었다. 일본은 EU와 관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미,대중 관계에서저하되는 존재감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담당하는 계기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싶다.
  • 강제 연행 음주측정 수치 행정법원 “증거능력 있다”

    경찰에 강제 연행된 상태에서 측정한 음주수치도 증거능력이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박해식(朴海植)판사는 2일 “긴급체포 등을 고지받지 못한 상황에서 측정된 음주수치는증거능력이 없는 만큼 그 수치를 근거로 한 운전면허 취소는 부당하다”며 박모씨(51)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자동차 운전면허취소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박 판사는 판결문에서 “원고의 주장처럼 원고가 강제연행 등 불법적인 체포상태에서 음주 수치를 측정당했다고하더라도 그 수치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증거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박씨는 지난해 7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자신의 집 근처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접촉사고를 내 경찰로부터 음주측정을 위한 파출소 동행을 요구받았으나 이를거부,경찰에 연행됐다. 박씨는 경찰이 혈중 알코올 농도 0.157%인 음주측정 결과를 근거로 운전면허 취소처분을 내리자 소송을 냈다. 조태성기자 cho1904@
  • 1인시위 강제연행 손배訴

    참여연대는 16일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제지하고 연행한데대해 국가를 상대로 3,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참여연대는 소장에서 “집시법상 1인 시위는 사전신고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시위자를 연행해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 최한수 간사는 지난 6월26일 국무회의 회의록 작성과 공개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려다 경찰에 강제 연행됐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2001 길섶에서/ 移動權

    거주·이전의 자유는 집회·결사·언론·출판의 자유,직업선택의 자유,신앙의 자유 등과 더불어 근대 시민사회가 획득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다.봉건체제건 절대왕조건 전근대적인 사회에서는 일반 백성의 삶이 공간적으로 제한받아왔다.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자유,그 당연한 권리를얻는 데도 인류는 수천년의 세월을 바쳐온 것이다. 물론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제14조에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거주·이전의 자유는 이동의 자유를 전제로 하는데 그 이동의 권리를 달라고,버스를 탈 권리를 달라고 최근 장애인들이 절규하고 있다.반응이 없자,지난 29일에는 급기야 버스를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이에 공권력은 경찰을 동원해이들을 강제연행했다.이동권(移動權)은 기본권 운운하기에도 낯간지러울 만큼 인간에게 가장 기초적인 자유권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은 이마저 보장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고도 우리사회가 인권을 말할 수 있는가? 이 시대의자화상이 진정 부끄럽다. 이용원 논설위원
  • 日법원, 징용韓人 귀환선 침몰 손배 판결

    일본 교토(京都)지방법원은 23일 해방 직후 징용·징병자를 태우고 한국으로 귀국하던 구일본해군 수송선 ‘우키시마마루(浮島丸)’ 침몰사건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생존자 15명에게 300만엔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일본법원이 우키시마사건에 대해 배상판결을 내린 것은이번이 처음이다. 교토 지법은 그러나 유족측이 손해배상과 함께 제기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 청구는 기각했다. 법원은 판결에서 “강제연행한 한국인들을 본국에 안전하게 보내 줄 의무를 일본 정부가 게을리 한 점이 인정된다”면서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측은 판결후 기자회견을 갖고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점은 의미있다”고 말했다. 지난 45년 8월 24일 한국인 징병·징용자 등을 태우고 한국으로 향하던 우키시마마루는 교토(京都) 마이쓰루(舞鶴)만에서 폭발,침몰했다. 폭발 원인에 대해 일본 정부는 미군이 설치해 놓은 기뢰(機雷)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으나 동승한 일본인이 고의로 폭파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논란을 빚었다. 사고 수송선의 희생자 숫자에서도 일본 정부는 조선인 3,735명과 일본인 255명이 승선,조선인 524명,일본인 25명이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한국측 유족들은 승선자 7,500여명에 사망자는 5,000여명에 이른다고 반박했다. 한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판결 직후 “향후 조치에 대해 관계 성청과 긴밀히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밝혀 항소할 뜻을 시사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정부, 日특사·정상회담 거부

    정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강행에 따른 유감의 표시로 일본 정부가 특사파견을 추진하더라도 일본측이 양국간 관계개선을 위한 책임있는 조치를 선행하지 않는 한 이를 수용하지않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오는 10월 상하이(上海)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기간동안 한·일 정상회담개최를 거부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 정부에 대해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극일(克日)’에 대한 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김중권(金重權) 대표는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경축사 독회에 참석한 뒤 “경축사는 민주주의, 인권,경제,남북화해협력과 함께 극일을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고 “일본이 아시아를 경시 또는 무시하는 일을 벌이는것은 우리 국력이 약한 점도 있는 만큼 앞으로 우리가 국력을 길러 일본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극일의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56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갖는다. 이에 앞서 최성홍(崔成泓) 외교부차관도 14일 오후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 주한 일본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고이즈미 총리가 주변 피해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A급전범자가 합사된 신사를 참배한 사실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최상룡(崔相龍) 주일대사도 이날 일본 외무성을 방문,노가미 요시지(野上義二) 외무성 사무차관을 만나 “고이즈미 총리가 전쟁 범죄인이 합 사돼 있는 야스쿠니를 참배한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편 광복절을 하루 앞둔 이날 전국 곳곳에서는 고이즈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에 항의하는 시민과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일제강제연행 한국생존자협회 등 시민단체들의 규탄 시위가 잇따랐다. 44개 시민·종교단체로 구성된 통일연대(공동대표 吳鍾烈) 회원 1,000여명은 오후 서울 종로 2가에서 규탄집회를갖고 일본대사관 앞까지 1㎞를 행진한 뒤 “고이즈미일본총리가 A급 전범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향을 피운 것은 아시아 인류에 대한 도전이며 침략 야욕을 드러낸 것”이라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58개 부산지역 시민단체회원 2,000여명도 오전 10시 부산역 광장에 모여 신사참배규탄 및 역사교과서 왜곡저지 범시민궐기대회를 가졌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박찬구 기자 ckpark@
  • 8·15특집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日·獨 두패전국 다른모습

    1985년 상반된 두 사건이 있었다.독일(당시 서독)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거 대통령은 5월 2차대전 40주년 기념연설에서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눈을 감는다”며과거청산 노력을 재천명했다.8월 같은 2차대전 패전국인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총리는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공식참배,주변국의 거센 항의를받았다. ‘기억’과 ‘망각’.독일과 일본이 걷고 있는 각기 다른길이다. 두 나라의 판이한 전후 처리 자세는 21세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은 철저히 ‘기억’하고 ‘책임’을 져야만 독일의‘미래’가 보장됨을 알고 있다.지난해 7월 독일이 미국이스라엘 폴란드 체코 등과 서명한 ‘나치시대 강제노역배상에 관한 국제협정’제목은 ‘회고,책임,미래’다.세계각지에 흩어진 150만 강제노역 생존자들에게 100억 마르크(약 6조5,000억원)규모의 배상금이 곧 지급된다. 2차대전 종결 후 지금까지 독일 정부가 지불한 배상액은600억달러.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유대인뿐 아니라 점령한주변국들에 대해 현재까지 철저한 보상을 해오고 있다. 독일정부와 기업,시민사회가 적극 동참한 결과. 다임러 크라이슬러,지멘스 등 독일을 대표하는 35개 기업들은 배상금기부를 통해 나치시대에 자신들이 저질렀던 유대인 강제노역등 반인륜 행위에 대한 책임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지난 3월 일본 도쿄 지방재판소는 한국인40명이 제기한 강제연행 피해보상 소송을 기각했다. 해외거주 피폭자들이 제기한 “일본 국내 피폭자와 동등한 대우을 해달라”는 요구도 “검토중”,“가능하면 연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센 군대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당연히 정부차원의 보상은 제로다. 1970년 12월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92년 사망)는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독일은 국민들에게 나치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리는데주력한다. ‘집단범죄’에 대한 철저한 반성.나치 독일과 같이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때 이를 저지할 국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교육목표다.프랑스 폴란드 등 이웃 나라와 ‘역사편찬위원회’를 구성해서 만드는 역사 교과서에는 나치 만행을 상세히 기술한다. 홀로코스트 등 집단주의 부산물에 대한 역사 부정은 범죄로 취급된다.정치인 등 공인이 나치시대 향수를 거론하면사임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 반면 일본은 어떤가.정부는 침략을 미화한 왜곡 역사교과서를 용인하고 이웃국가의 항의를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한다.국민들의 우경화 움직임은 오히려 정부가 나서 부추긴다.관동대학살,난징대학살은 모른 체하며 원폭 피해자라는것만 강조한다. 패전 후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독일과 일본.독일은 통일을이룩한 뒤 거침없이 유럽 통합을 주도해왔다. 주변국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위업들이다.일본도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독일에서 교훈을 얻어야한다. 김수정기자 crystal@
  • 8·15특집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남은 과제들

    ◆한국인 유해 봉환 ‘반세기未濟’.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지금재일 한국인들은 이주 100년을 맞건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양국간 대표적인 미해결 과제들을 짚어본다. ■한인 징용 유해봉환= 태평양 전쟁에 끌려가 희생된 한국인 유해 봉환이 첫번째다.강제연행 희생자는 20만명으로어림된다.그중 상당수는 일본 곳곳에 흩어져 있어 실태파악조차 돼 있지 않다. 그나마 도쿄 시내 사찰인 유텐지(祐天寺)에 이름과 당시주소 정도는 파악돼 있는 한반도 출신 징용 희생자 1,136위가 모셔져 있을 뿐이다.이 가운데 431위는 북한 출신이다.지난 71년 후생성에 있던 이들 유골은 유텐지로 옮겨져관리되고 있다. 한·일 정부는 89년 5월 봉환에 합의했으나 선(先)배상,후(後)봉환을 요구하는 관련단체의 반대에 부딪쳐 봉환하지 못하고 있다.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들 유골만이라도하루빨리 봉환해 망향의 동산에 안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문제는 실태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나머지 대다수유골이다. 최소한 5만명의 무연고 유골이 일본 각지의 사찰등에 안치돼 있는 것으로 일본 시민단체들은 추정하고있다. 이들 유골의 발굴과 신원확인,봉환은 양국 정부가 과거사정리라는 차원에서 적극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과제다. ■야스쿠니 신사 합사 한국인 명부 삭제= 246만명의 위패가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에는 2만 1,181명의 한국인 징용자 등이 명부에 올라 있다.한국 정부는 징용자 유족들의청원이 접수되는대로 위패 명부에서 이들을 삭제해 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가 종교법인이어서 일본 정부가 한국측 요청을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역사 교과서= 역사 교과서 문제도 근원적 처방이 요구된다.우익 진영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 교과서의 일선 중학교 채택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드러나 안도하고 있으나 내년에는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심의가 기다리고있어 ‘산 넘어 산’이다. 98년 한 ·일 공동파트너십 조인 때 양국 역사학자 등이참가하는 한·일 문화교류회의를 열어 공동의 역사인식 만들기에 나섰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 새로 만들어진 ‘한·일 역사가회의’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결국 양국간에 가장 민감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전후한 근·현대사 부분에서 공통의 역사인식을 도출해 이런 인식을바탕으로 교과서를 만드는 제도를 만들지 않고서는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재일교포의 참정권= 영주하는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우리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국회에 제출돼 심의 중이나 일본 정계 보수세력의 반대로 암초에 걸려있는 상태다. 일본인과 똑같이 일하고 세금을 내고 살아가는 외국인들에게 지방선거 참정권만이라도 줘야 한다는 게 한국측 논리다.그러나 자민당 내에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줄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아 결국 법안 제출 2년 가까이 되고 있지만 원점을 맴돌고 있다. 일본 여당은 그 대신 일본 국적취득을 완화하는 법률개정안을 추진중이나 “일본 동화정책”이라며 조선 총련 등이맹반대하고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위안부 아닌 군사적 성노예”

    일본 우익집단이 만든 문제의 역사교과서가 역사를 왜곡,은폐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종군위안부 문제다.이들은 종군위안부는 군인을 상대로 매춘행위를한 데 불과하다는 식으로 일본군대에 의한 강제연행이나성노예화를 부정하려 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위안부 관련 서적 2권이 국내에 번역출간돼 눈길을 끈다.이 책들은 우익들의 주장과는 달리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강하게요구하고 있을 뿐더러 용어 또한 ‘위안부’가 아닌 ‘성노예’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황의 군대와 성노예(미네기시 겐타로 지음,박옥순 옮김,도서출판 당대,8,000원)= 저자는 일본서적에서 간행하는역사교과서의 집필자로 현재 도쿄도립대 교수이다.지난 1997년판 중학교 교과서 개정작업때 종군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 싣자고 발의하여 이를 역사교과서에 실리게 한 주인공이다.이 과정에서 그는 우익사관의 역사학자들로부터 ‘자학사관’에 빠져있다며 맹렬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로서는종군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파고드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그는 종군위안소와 위안부실태를 관련자료를 뒤져 찾아내 실증적이고도 사실적으로이 책을 준비했다. 이로써 이 책은 일본내에서도 종군위안부 문제의 ‘죄과’를 명확하게 밝힌 ‘실상연구의 종합적성과’로 불린다. 한편 저자는 종군위안소는 매춘부를 데려오는 민간업자에게 편의제공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군대가 종군위안부 조달및 이용을 위해 적극적으로 설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어 일본군이 종군위안소를 설치한 목적이 ▲군의사기진작과 군기유지 ▲성병 만연 예방 ▲강간 방지 등이라고 주장하고는 ‘강간 방지’ 역시 인권보호 차원보다는현지인들의 반감을 감안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결국 군부가 조직적으로 관리한 종군위안소에서의 강간은 일본 정부와 군부에 의한 ‘관리강간’이었기에 종군위안부는 ‘군사적 성노예’였다고 규정했다.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이다(도츠카 에츠로 지음,박홍규 엮어 옮김,소나무,9,500원)= 위 책의 저자가 역사학자였다면 이 책의저자는 일본인 국제인권변호사로,그가 10년간 유엔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에 매달려온 활동기록이다. 우선 그는 ‘정신대’는 물론 ‘위안부’라는 용어도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왜냐하면 ‘위안’받는 주체가 일본군이기에 ‘위안부’라는 용어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들의 상황을 설명해 주기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가 지난 92년 IED(국제교육개발)를 대표해유엔 인권위원회에 ‘성노예(Sexual Slavery)’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용어는 국제적으로 정착됐다. 그는 일본내 다른 지식인들처럼 ‘국민기금’으로 성노예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국제법에 따라 처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조국을 준열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일본정부와 언론, 학계,그리고 시민을 상대로 법적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거나 국제법을 어긴 국가에대한 최후의 압력수단으로 저자는 국제여론 환기 밖에는없다고 보았으며 이를 위해 NGO활동을 전개해 나갔다.국제법률가위원회(ICJ)의 조사와 보고서,국제적명성의 여성전문가인 쿠마라스와미의 보고서와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유엔 인권소위원회의 대일 권고 등이 그 성과라고 할수 있다.그러나 현재 성노예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직도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성노예 할머니와 정대협 관계자들이 주축이 돼 ‘수요집회’을 벌이고 있다. 저자,편역자는 이 책의 인세를 모두 성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또 출판사는편집,표지디자인 등 모든 편집작업을 자원봉사했다.한일양국의 따뜻한 마음을 모아 낸 책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日시인들 역사교과서 왜곡 비판

    일본 지식인들이 제주 ‘한·일 시인대회’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계간문예 ‘다층’과 일본의 ‘서사 청수사(書肆靑樹社)‘ 공동 주최로 20∼23일 제주대에서 열린 ‘한·일 시인대회’에서 호사카 유지(保坂祐二)교수(세종대 일어일문과)는“일본이 역사교과서를 끊임없이 왜곡하는 이유는 천황중심의 황국사상 때문이며 과거 잘못을 시인하면 결국 천황제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왜곡을 굽히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 아시아 침략을 합리화시킨 황국주의 논리 자체를 한번도 본격적이고 완벽하게 비판하지 않아 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황국사관에 입각한 현재의 교과서 왜곡문제는일본패전 당시부터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줄곧 내포해왔다”고 말했다. 또 일본 현대시인회 상임이사인 마루치 마모루(丸地 守)치요다학원(千代田學院)교수는 “일본정부가 과거 일본의괴로운 부채인 식민지 정책,한국인 강제연행,종군위안부 문제,역사인식 문제 등을 단지 망각과 삭제로 해결하려 하는데대해 비분강개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일본은 진지하게 예의를 갖춰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해결될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일본 ‘H씨상’ 심사위원인 시인 시바타 산키치(柴田 三吉)씨는 ‘한·일 시인 우호를 위한 다짐의 말’에서 “한·일간의 여러 문제들은 대부분 전쟁 책임을 애매하게 회피해 온 일본에 원인이 있으며 일본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제대로 사죄하고 보상문제도 성실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말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외세지배·전쟁·분단…한국인 ‘恨’의 20세기

    ■20세기 한국의 야만/ 도서출판 일빛. 원로사학자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세기말인 지난해말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20세기를 ‘한(恨)의 세기’로 규정한 바 있다.그리고 ‘한’의 요체로 외세 지배와 분단을 꼽았다. 도서출판 일빛이 펴낸 ‘20세기 한국의 야만’은 부제 ‘평화와 인권의 21세기를 위하여’에서 보듯 지난 20세기가대다수 민중들에게 ‘한의 한 세기’였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돌이켜보면 지난 20세기는 인류의 물질문명이 극에달했던 시대이면서도 극단적인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다.폭력과 전쟁,대량 학살과 고문 등으로 얼룩진 유례없는 ‘폭력의 한 세기’이기도 했다.과학기술은 인류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일면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의 무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세기에는 크고 작은 전쟁과 혁명이 지구촌에서 끊이지 않았다.이 과정에서 폭력은 전쟁과 혁명의 동반자였다.한나 아렌트는 “전쟁과 혁명의 공통분는 폭력”이라며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로 규정한 바 있다. 20세기의 한국도 ‘폭력의 세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전반부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고난의 역사’를 감수해야 했으며,후반부 반세기는 이념갈등과 냉전의 와중에서 다시 그같은 역사를 되풀이 해야만 했다.실로가혹한 한 세기였다. 이 책은 제국주의·분단·전쟁·독재·자본의 폭력과 야만의 역사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서 1960년대 초까지를 다루고 있다.크게 나눠 제1부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제2부는 ‘분단·전쟁·독재의 야만’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는 총7편의 글이 실려있다.지수걸(공주대 교수)은일제시대 대표적 악법인 치안유지법과 고등경찰제도가 독립운동가들과 식민지 조선인들을 탄압한 실태를,이정은(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3·1의거 당시 일제의 조선인 탄압실태를 살폈다.또 홍진희(역사를 생각하는 모임 회장·미림여고 교사)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실태를,김민영(군산대 교수)은 일제말기 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의 실태및 전후보상 문제를 다뤘다.강정숙(정신대연구소 연구원)은일본군 성노예(정신대)문제를 여성운동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이밖에 정순훈(배재대 교수)은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위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최일출(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은 한국인 원폭피해 문제를 다루면서 피폭자들의 인권회복과 과오 재발방지 차원에서 전후보상 문제를 제기하였다. 제2부는 전후 1945년∼60년까지 국가형성과 6·25전쟁기,그리고 전후 반공이데올로기 체제 아래서 자행된 폭력과 학살문제를 다뤘다.강창일(제주4·3연구소장·배재대 교수)은 미 군정기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인 ‘제주4·3사건’을,허만호(경북대 교수)는 6·25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문제를각각 국가폭력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또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는 ‘노근리사건’을 통해 한국전 당시 미국범죄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김동심(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교육위원)은 해방후 미군이 이 땅에 진주한 이후 오늘까지의 미군범죄 55년사를 망라,미군이 이 땅에 남긴 고통과 상처와 한의 실체적 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있다. 이밖에정태영(건국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판 매카시즘 광란과 그 대표적인 희생 사례로 ‘조봉암사건’을 다루었으며,오유석(성공회대 연구교수)은 ‘피의 화요일’로 상징되는 이승만 정권의 ‘백색테러’의 야만성에 촛점을 맞췄다.학술전문서가 아닌,대중교양서로 만든 이 책은 각 사건의 전반적 개요,실상,의미 등을 소개하면서 독자의 추가적인 지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참고문헌도 곁들였다.1만3,800원. 정운현기자 jwh59@
  • 日 전후보상 네트워크 대표 아리미쓰 켄

    “오는 8월 북한내 위안부·징용·피폭자 등 2차대전 피해자들을 일본으로 초청,도쿄 등 일본 4개 도시를 돌며 집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지난 3월 15∼22일 방북해 2차대전 피해자들의 전후보상문제를 협의한 아리미쓰 켄(有光健·50)일본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는 10일 오후 서울 낙원동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방북성과 설명회 겸 남북한,일본내의 피해자단체 및 시민단체간의 연대모색을 위해 9일 방한한 그는 “작년 10월 북일수교협상이 중단된 후 일본인으로서는 첫 방북했으며, 북측이대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쓰지야 고겐(土屋公獻) 전 일본변호사연합회장 등 12명과함께 평양을 찾았던 그는 또 “북한내 위안부·징용·피폭자들을 직접 면담하고 북한측 피해자단체인 종군위안부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종태위·대표 홍연옥)관계자들과도 보상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종태위가 한국측 피해자들과도 교류,연대를 희망했다”고 밝히고 “지난 4월 일본내양심세력을중심으로 가칭 ‘전후보상실현! 일본-남북코리아 네트워크’를 이미 발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민주당·공산당 등 일본내 야3당이 중심이돼 ‘전시성적(戰時性的) 강제피해자문제 해결촉진법안’을지난 3월하순 참의원에 제출해놓은 상태”라면서 “위안부문제와 관련,의회가 정부에 ‘사죄’를 촉구하는 취지의 입법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무부·여성부 등 정부관계자,이부영·이미경·김원웅 의원 등과의 면담에 이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신대연구소,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관련단체를 방문,3국간 연대를 모색할 계획이다. 일본 전후보상네크워크는 93년부터 위안부·강제연행 소송,전후보상 문제 등을 다룬 기관지 ‘전후보상실현!FAX속보’를 매주 발행해오고 있는데 주요 독자는 변호사,국회의원,언론인,시민단체 관계자들로 일본내 200여 곳에 배포되고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日교과서 검정통과’ 양측 회견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역사 왜곡 교과서에 대해 일본 문부성이 수정을 요구한 부분은 대부분 단순한 기술 실수를 고치라는 개선의견이었다고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도쿄대 교수가 13일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문부성의 검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내용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며 이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채택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후지오카 교수는 이날 일본 외국특파원협회가 ‘새 교과서…모임’과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 관계자들을 초청해 가진 기자회견에서 “검정에서 137군데에 걸쳐많은 수정이 이뤄진 것처럼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다음은 후지오카 교수와 다쿠보 다다에(田久保忠衛) 교린(杏林)대학 교수의 발언 및 시민단체 대표들의 반박 내용. ■후지오카 교수 문부성의 검정 의견은 대부분 단순한 기술 미스 등에 관한 것이었다.일본군이 전쟁중 주민들을 살육했다는 주장은 잘 따져보면 전시 선전에 불과한 것이다. 외국이 일본 교과서에 대해 간섭한다면일본도 그들의 교과서에 대해 간섭할 권리가 있다. 군장병을 위한 유곽(위안소를 지칭)은 어느 나라 군대에도 있었다.문제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연행된 사실이 있느냐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다쿠보 교수 전후 일본 교과서에는 애국심이 쓰여 있지않다.애국심이 교과서에 언급되지 않으면 국가는 분해될것이다.중학교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것은적절하지 않다.위안부 문제는 성숙한 단계에서 천천히 가르치는 게 좋다.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 대표인 이시야마 히사오(石山久南) 역사교육자협의회 사무국장은 “‘새 교과서…모임’측이 펴낸 교과서는 수정됐다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바뀐 것이 하나도 없으며 일본 어린이들이이 교과서로 교육받는다면 다른 나라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사학자인 하마바야시 마사오(濱林正夫)는 “‘새 교과서…모임’의 교과서는 현행 평화헌법을 부정하고 전쟁 전의 헌법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등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시민단체대표들은 이어 “‘새 교과서…모임’의 교과서가 일선 교육현장에서 채택되지 않도록 노력해 일본 국민중에도 양식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균미기자 kmkim@
  • 역사왜곡 日교과서 검정통과 파장/ 신용하교수가 본 ‘우익교과서’

    일본 극우파들이 채택운동 전국조직을 만들어놓고 모리정권이 이번에 검정통과시킨 후쇼사(扶桑社·새역사교과서를만드는 모임편)의 2002년도용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한국관련 부문을 재침략 책동에 맞추어 다시 날조 왜곡한 것이 큰문제이다. 우선 고대사부터 보면,일본은 야요이시대부터 7세기 야마토 정권의 고대국가 수립 때까지 한반도 국가들의 선진 문명·기술·지식 전수와 한자와 기술자의 파견까지 간청,한민족 국가들이 이에 응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어 일본 고대국가와 문화의 기초를 만들었다.이것이 역사적 진실이어서,20년 전 한국 대통령 방일 때에 일본왕은 ‘귀국이 특히 5∼6세기에 우리 일본에 준 원조에 깊은 감사의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는 요지의 환영사를 한 바도 있다. 그런데 1890년대∼1900년대 초기에 걸쳐 일본 황국사관 주창자들은 하야시(林泰輔)를 선두로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한국침략 식민지 강점을 준비 지원하기 위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날조해내었다.야마토 정권이 4∼6세기에 한반도 가라 지방을 식민지화하여 ‘임나일본부’라는 총독부를두고 직할식민지로 통치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1910년 일본의 한국점령은 ‘침략’이 아니라 고대의 성취를 ‘복구’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완전한 날조였다. 1982년 일본교과서 왜곡사건 때 다수 교과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이 아니라고 뺐고,일부는 수록했었다.이에 분개한 한국 국민과 정부의 규탄으로 결국 모든 일본 교과서는 ‘임나일본부설’은 뺐고,전문가들이 황국사관의 지나간한 주장으로 검토하기로 낙착되었다. 이번 문제의 일본교과서는 이를 다시 부활시켜 교과서에넣고,나아가서 고구려·백제·신라가 야마토 정권에 조공을했다고 기술하였다. 수정을 요구받고는 백제·신라가 야마토 정권에 조공을 했고,고구려는 유사하게 접근했다고 고쳐썼다.완전히 역사 날조인 것이다.야마토 정권의 간청에 응해서 스승·학자·기술자·선진 문명을 보내어 가르쳐준 ‘은혜’를 ‘조공’을 했다고 배은망덕하여 날조하고,직할식민지까지 두어 통치했다고 21세기의 일본 중학생들(미래 전국민)에게 교육하겠다니,또 재침략 정신과 의지를 배양하려획책하는 것이다. 다음 근대사 부분에서 일본은 ‘정한론’ 실행의 단계로‘불평등 조약’(치외법권 등)에 의한 ‘개항’을 강요하기 위해 ‘운양호 사건’을 조작했다.강화도 조약은 일본 군함 5척의 함포사격 소리를 들어가며 일본이 작성해 온 ‘불평등 조약’문에 서명해준 것에 불과했다.개항후 일본은 단계적 침투와 침략을 감행하여 1910년 결국 ‘정한’의 목적을 달성해서 한국을 식민지로 병탄 강점하였다.1982년 일본교과서 사건 때, 일본 교과서들은 이 침략사실들은 대체로인정기술하고 한반도 ‘진출’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이에격분한 한국 국민의 규탄으로 ‘진출’을 ‘침략’이나 그에 준하는 용어로 수정했었다. 이번 2002년도용 문제의 일본 역사교과서는 아예 일본이개항후 한국의 군제개혁을 도와주는 등 원조했다고 날조했다.갑오개혁 때에 잘 증명된 바와 같이 일제가 가장 방해했던 것이 조선의 근대적 군제개혁과 자주국방능력의 증강이었다.또한 이번 교과서는 한국 병탄은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권익’을 지키기 위해 국제열강의 동의 아래 합법적으로 수행된 병합이라고 한국식민지화 강점을 정당화했다.한반도는 일본을 향해 뻗은 흉기(팔뚝)와 같은 것이어서 일본이 점령해야 일본이 안전하다는 것이다.도대체 이런 엉터리침략논리가 어디 있는가. 열본 열도가 한국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방해하는 흉기와 같은 곳이니 폭파하여 없애버리려고 점령해야 한다면 일본 국민과 세계 인류가 납득하겠는가. 일본을 침략 강점하는 것이 한국과 중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납득하겠는가.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요할때부터, 강박에 의한 조약은 국제법상 모두 무효라고 이미1906년부터 국제법학계는 이를 무효 선언했고,1927년 미국국제법학회,1960년의 유엔 국제법위원회가 강박에 의한 무효화의 대표적 사례로 일제의 한국침략 조약을 들었다.일제는 한국을 불법 강점하기 위해 한국을 침략했으며,청·일전쟁,러·일전쟁까지 도발해가면서 한국을 불법 강점한 것이었다. 이번 문제의 교과서는 일제의 36년간 식민지통치가 철도·관개시설 등 한국을‘개발’시켜 주었다고 하여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개발’ ‘근대화’ ‘시혜’의 논리로 정당화하였다.한국인·애국자들 수만명의 체포·투옥·학살,관동대지진 때의 수천명 재일한국인 학살,한국인 기본권 완전박탈, 식량·자원·광물약탈, 산업발흥 저지·탄압,한국어말살,한글 말살,성명 말살(창씨개명),한국민족문화유산 파괴, 민족문화 말살, 강제공출,강제연행,강제징병,종군위안부… 등 한국민족 말살정책과 수탈정책을 어느것 하나도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 식민지 강점과 정책이 스스로 발전과 근대화할 능력이 없는 조선사람에게 ‘개발’ ‘근대화’ ‘혜택’을 준 것이니 일본이 한국 강점과 식민지 정책은 잘된 정책이라고 일본 중학생들에게 교육하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도된 역사의 가치관으로 교육받은 일본 중학생들이자라면서 한국 재침략을 고취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문제의 교과서는 또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소위 15년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영·불·미의 지배하에 있는아시아 민족들에 대한 ‘해방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정지시를 받고는 ‘해방전쟁’의 용어는 빼고 해방을 위한 ‘용기’ ‘계기’를 준 전쟁이라고 긍정적으로 기술하였다.‘난징(南京)대학살’은 사실이 아니며 오직 패전했기때문에 도쿄(전범)재판에서 (강요당해)인정했을 뿐이라고,‘난징 학살 사건’의 실재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현재 난징에는 일본군의 대학살 전시관이 있고 무수한 증거물이 전시되어 있다.문제의 교과서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용어인 ‘대동아전쟁’ ‘대동아공영권’의 용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면서 이것이 아시아 공동번영을 목적으로한 훌륭한 정책이었다고 시사하였다.실제로는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의 ‘아시아점령책’이었고 침략정책이었기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독립운동세력은 영 ·불 ·미 세력에대항하다가 다시 일본 침략군에 맞서 이중의 더 무거운 침략에 대항,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종전후 해방·독립하게된 것이 진실이다.이 때문에 일본은 모든 침략 점령지역에대해 전후 배상하게 된 것이었다. 이번 문제의 교과서는 광복 전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국정교과서 내용을 부활시키고 황국사관을 부활시킨 것이다.이 문제 교과서 검정통과 때문에 82년에 한국·중국·동남아 각국 국민들이 투쟁하여 고친 7종의 교과서까지 ‘침략’용어를 빼고,‘종군위안부’,한국민족말살정책을 빼는 등 개악되어 버렸다.이런 교과서로 의무교육인 일본 중학생(미래일본국민)이 교육받으면,일본인들은 한국과 모든 아시아 민족들을 깔보고 재침략을 죄의식 없이 시도하게 되어 있다. 한국 국민과 정부,북한은 물론 중국·동남아 각국 등과 연대하여 82년도 이상으로 대사 소환은 물론이요 모든 가능한방법을 동원, 단호하게 강력 대응하여 조국과 아시아 및 세계 평화와 진실을 지켜야 할 것이다. 신용하 서울대교수·사회사상사
  • 15개 역사학술단체 ‘日교과서 문제‘심포지엄

    15개 역사학 관련단체가 19일 공동개최한 ‘일본의 역사교 과서 문제와 네오내셔널리즘’심포지엄에서는 하종문 한신 대 일본학과교수 등 4명이 주제발표를 했다.그 내용을 요 약했다. ◆김유경 경북대 사학과 교수. 흔히 유럽의 역사교과서는 자유발행제로 편찬,배급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편찬후 교육당국에게 심사받고 인가가 난 뒤에야 배포할 수 있다.이러한 절차에 대해 독 일의 역사학자·역사교사들은 더러 문제제기를 통해 나름 대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독일은 두차례에 걸친 세 계대전의 패배로 전쟁책임자라는 멍에를 쓰고 있다.1945년 후 독일 역사교육의 기본방향은 ‘부정적인 과거의 극복 ’인데 단순히 ‘만행과 과오의 시인’과 반성적인 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독일이 유럽공동체의 정상적인 성 원으로 복귀한다는 의미로 국민교육체계의 재정비와 개혁 을 수반한 것이다. 우선 자국의 역사를 유럽사의 문맥에서 서술했으며,과거 의 ‘만행과 과오’는 독일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럽인 모두가 기억해야 할 사안이자,미래를 위한 ‘공통 의 체험’으로 서술했다.독일은 백마디 말보다 역사교과서 를 통해 과거사를 진정 참회하고 사죄하고 있음을 보여주 었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정재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2002학년도 중학생용으로 문부성의 검정을 받고 있는 역 사교과서는 모두 8종.그런데 이 교과서들이 모두 일본의 아시아침략을 ‘진출’로 표현하거나 ‘종군위안부’등 식 민지배와 관련된 내용을 대폭 삭감하거나 은폐,왜곡해 인 근 국가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교과서가 가장 문제가 되고 있다.이 ‘모임’은 지난 96년 12월 교수·언론인·작가·기업인 등 78명이 주동이 돼 만든 단체로 회장은 니시오 전기통신대학 교수.이들은 중 학교 검정교과서에 실린 ‘종군위안부’항목의 삭제를 요 구하는 등 기존 교과서 제작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또 산케이신문을 통해 수년간 자신들의 황국(皇國)사관을 홍보한 후 자체적으로 역사교과서를 집필,교과서 시장진출 을 노리고 있다.이들은 일본역사가 세계 4대 문명권 이상 으로 유구할 뿐더러 태초부터 최고국가였다고 주장하는 등 역사서술에서 객관성을 잃고 있다. ◆이찬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 일본 문부성은 거의 대부분의 교과서에 대해 지난해부터 검정을 실시하였으며,3∼4월에 최종합격 여부를 판가름한 다.현재 일본 문부성에 제출된 검정심의본 7종 가운데 교 과서 채택률이 높은 3대 출판사가 만든 역사교과서를 대상 으로 한국관련 서술내용의 문제점,변화과정 등을 살핀다. 일본 중학교에서 40.4%나 채택하는 도쿄서적의 ‘새로운 사회’교과서는 일부 항목에서 변화를 가져오다가 다시 과 거로 회귀하고 있다.재일한국인 문제,한국의 경제성장 등 에서 바람직한 변화를 보여왔으나 검정심의본에서는 독립 운동·종군위안부·의병전쟁 관련내용을 삭제했다.오사카 서적의 ‘중학사회’교과서는 여러 항목에서 변화를 보인 다.청동기시대 편년을 서기전 10세기로 정확하게 기술하였 으며,‘안중근 의거’를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정당하게 평가했다.그러나 종군위안부 관련내용은 현행교과서보다 후퇴했다. 교이쿠출판의 ‘중학사회’는 여러 주제에서 바람직한 변 화를 보인다.조선인 강제연행·강제노동 실태를 구체적이 고 정확하게 묘사했다.특히 일본정부가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사실도 추가했으며,다른 교과서와 달 리 고려시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언급했다.종군위안부 문제는 다소 후퇴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 . 9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역사인식,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논의가 열기를 더해갔다.82년,86년의 ‘패배’로 절치부심 하던 우파 정치가들에게 90년대 들어 불거진 ‘일본군 위 안부’문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자민당의 야스쿠니신사 관계 3단체는 총회를 열어 “도쿄 재판에 오염된 역사관을 바로 세우고,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자”며 ‘역사·검토위원회’를 설립했다.패전 50주 년이 가까워지면서 역사인식의 이슈는 더욱 열기를 더했다. 사회당의 무라야마 총리가 진두지휘에 나서 분투했지만 95 년 6월 중의원을 통과한 ‘부전(不戰)결의’는 식민지 지 배와 침략전쟁의 사죄를 살짝 비켜간 어정쩡한 문구로 메 워졌다. 한편 95년 1월 ‘자유주의사관 연구회’를 창립,대표를 맡은 후지오카 도쿄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세계의 군대가 위안부와 같은 제도를 갖고 있건만 일본 인만 음란하다고 한 것은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문 부대신에게 ‘정정신청 권고’를 전달했다. 자학사관은 바로 이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것이다.자유주의 사관과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활동은 근본적으 로 일본의 우경화·군국주의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
  • 친일연구 ‘민족문제硏’ 창립 10돌

    친일파 문제 전문연구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한상범·동국대 교수)가 지난 27일로 창립10주년을 맞았다.1989년 작고한 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林鍾國)선생의 유지를 받들어91년 문을 연 이 연구소는 그동안 적잖은 연구성과와 함께사회 여론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소는 창립 10주년을 맞아 신임소장 영입과 신규사업 추진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지난해 하반기후 공석이던 소장직에 한상범교수를 영입해 새 소장이 1일 취임한다.신임 한소장은 법학자로는 드물게 역사·인권 문제는 물론 일제잔재 청산에 남다른 열정과 학문적 업적을 쌓아와 민족문제연구소장으로는 최적임자로 평가된다. 연구소가 금년에 추진하는 핵심사업은 크게 두 가지.첫째는 ‘통일시대 민족문화재단’설립으로,창립 10주년 기념행사일인 1일 설립발기인대회를 가진다.발기인으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등 지식인 400여명이 참여하며,연구소측은 금년광복절에 정식 재단법인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연구소와 별도기관으로 설립될 이 재단은 ▲남북공동 과거사청산작업 ▲근현대사 자료발굴,재평가 ▲통일대비 역사교육교재 개발 ▲해외동포사 공동조사·연구 등을 주요사업으로추진할 계획이다.이와 관련,연구소측은 “남북교류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통일을 대비해 민족동질성 회복이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또 하나 주력사업은 연구소가 수년간 추진해 온 ‘친일인명사전’발간이다.그동안 재정문제로 큰 진척을 보지 못했으나 오는 5월 분야별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8월에는 편찬위원회를 발족해 사전 편찬사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현재 연구소측은 국내외의 관련자료·증언 수집을 거의 마무리해 편찬작업의 토대는 마련된 상태다.‘친일인명사전’편찬작업은연구소 출범 때부터 숙원사업으로 추진해 왔는데 사전이 발간되며 한차례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이밖에 연구소는 국내외 단체들과 연대해 ‘일제하 강제연행 진상규명’‘해외 과거청산 연구프로젝트’등의 사업을추진하고 있으며,자체 연구사업으로는 ‘일제침략 자료총서’발간,‘일제시대 관료사전’발간 등도 진행하고 있다. 그간연구소는 친일문제 인식확산,관련서적 출간작업 못지않게 일제잔재 청산 및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주목할만한활동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만주국 관리를 지낸 최규하 전대통령의 원주 생가복원 저지(99.4.)를 비롯해 이화여대의‘김활란상’제정저지(99.5.),하남시의 친일문인 모윤숙시비건립 저지(99.9.),화성군의 홍난파기념사업 반대(2000.10.),서울 문래동 박정희흉상 철거(2000.11)등이 99년이후 대표적인 활동이다.4·19교수단 데모 참여부터 참여지식인으로 활동해 온 한소장은 “민족문제는 올바른 역사인식과 함께 그에 응당한 행동이 뒤따라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3.1절 TV ‘특집다큐’ 다채

    ‘3.1절을 다큐멘터리와 함께’공중파 방송사들이 공들여 만든 특집 다큐멘터리가 3월1일안방에 ‘뜻깊은’ 휴일을 선사할 예정이다. 먼저 KBS는 물량공세를 편다.1TV를 통해 오전11시 ‘무주촌사람들’,오후10시 ‘망명객 서재필,세번의 귀향’을 준비한다.27일부터 이어져온 ‘백만인의 한’도 밤 12시10분 마무리격인 4·5부를 내보낸다. ‘망명객…’은 중용을 터득한 진정한 독립투사에서 친미외교론자까지 평가가 엇갈리는 서재필에 대한 집중해부.갑신정변 실패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젊은날,‘독립신문’ 활약상,조선독립 지원과 그로 인한 파산,해방정국 이승만과의 세겨루기,말년의 쓸쓸한 미국행까지 일생을 파노라마로 펼친다. 한·미·일 3국을 뒤져낸 방대한 자료가 완성도를 높인다. ‘무주촌…’은 중국 지림(吉林)성의 또다른 조선족자치주무주촌 취재기.전라북도 무주에서 일제에 등떼밀려 강제이주해온 주민들은 갖은 고초를 뚫고 60년 이상을 우리말과 전통,맛을 지켜오고 있다.북도촌 남도촌 등과 함께 중국속의 전라도 인심을 일궈오고 있는 이들에 KBS전주방송총국이 카메라를 들이댔다.한편 ‘…한’은 마에다 켄지라는 일본감독이 한국인 강제연행,종군위안부 실상을 기록했다 해서 화제가된 5부작 필름.28일 밤12시 ‘종군위안부들’에 이어 3월1일 밤12시10분 ‘천황과 마쓰시로’‘원폭피해자들’ 편을 만날 수 있다. MBC가 오후5시50분 마련한 ‘하이난섬의 대학살-땅속에 묻은 진실’은 일제에 학살된 조상들의 원혼을 위무하는 기획.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연행돼 중국 해남도에서 일본군에 학살된 1,000여명 조선보국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목격자인 주민들 입을 통해 이곳이 ‘조선촌 천인갱’으로까지 불리게된 끔찍한 목격담을 듣고 당시 일본해군 16경비대 사령관을인터뷰,일본군의 잔학상을 파헤친다. 이에 비해 SBS는 한결 소프트한 특집을 내건다.98년 최초의육사 여생도로 입학한 강유미씨를 취재한 ‘새끼사자 길들이기’(오전11시).‘역할모델’도 없는 최초의 여생도로 고된훈련과 선배들의 기합에 눈물짓던 강씨는 어느덧 3학년이 돼 초창기 자신의 처지였던 예비생도들을 이끌고 있다.강씨의일상을 들여다보며 젊은이들에 이어내리고 있는 3.1절 기상을 되새긴다. 손정숙기자 jssohn@
  • 日교과서 한반도 ‘침략’삭제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이 문부과학성에 검정을 신청한 역사교과서 대부분이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했다는 기술을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 교과서…모임’의 반대진영에 있는 ‘어린이와 교과서전국네트 21’측이 25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검정을 신청한 7개사 가운데 6개사의 교과서에 97년에는 수록됐던 ‘침략’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A사는 ‘일본은 조선침략을 더욱 강화했다’는 부분을 삭제한 것은 물론 ‘중국 전면침략과 전시체제’라는 제목도 ‘일·중전쟁의 확대와 국민생활’이라고 수정하는 등 5군데에서 침략이라는 부분이 사라졌다. B사도 97년 교과서에 ‘일본의 침략에 대항해 조선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싸웠다’고 기술한 의병전쟁 부분을 삭제했다. C사는 ‘동남아시아 침략’을 ‘전쟁의 확대’로,D사는 ‘일본의 중국침략’을 ‘2차세계대전과 일본’으로,E사는 ‘근대 일본과 중국·조선 침략’이라는 제목을 삭제했다.F사는 ‘일본의 만주 침략’을 ‘만주사변과 국제연맹 탈퇴’로수정, 이번에 검정을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개의 교과서는 ‘간토(關東)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이라는 부분에서 ‘조선인 학살’ 부분을 없앴다. 이밖에 일부 교과서에는 ‘조선의 의병’이라고 소개한 사진을 빼거나,‘조선인 강제연행’이라는 칼럼을 삭제하기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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