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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블로그] ‘형제복지원 특별법’ 또 물 건너가나

    형제복지원 사건을 아십니까. 1975년 7월부터 1987년 6월까지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인권유린이 자행된 사건을 말합니다. 전두환 정권은 ‘내무부훈령 410호’를 근거로 떠돌이와 앵벌이, 거지,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을 이 복지원에 감금했고 폭행과 강제노역이 일상이 됐습니다. 그 결과 500여명이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국가적 폭력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1987년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28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횡령죄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 6월의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을 뿐, 피해자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이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해 진상 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은 지난해 7월 23일 ‘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진상 규명을 통해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실질적인 보상을 하는 게 핵심입니다. 지난 7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고, 법안이 필요하다는 것까진 공감대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현재 안행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된 채 다음달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내년 2월에 임시 국회가 예정돼 있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법안 통과에 적극적일지는 미지수입니다. 1984년 당시 9살 때 감금돼 4년간 고초를 겪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39) 대표는 9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강기윤 새누리당 안행위 간사를 50여분 동안 면담했습니다. 법안 통과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지 못하면 단식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각오였습니다. 한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법의 취지만 설명하고 나온 것 같아 아쉽다”고 했습니다. 오는 12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한씨가 수능이 끝나고도 단식 농성이 아닌 입시 준비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난민 품은 메르켈 혹독한 가을

    난민 품은 메르켈 혹독한 가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난민 문제로 곤경에 빠졌다. 중도 실용주의 입장을 견지해 온 메르켈 총리가 관용적 난민 정책에 반대하는 우파를 달래기 위해 난민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제안을 승인한 데 대해 그동안 메르켈 총리의 정책을 지지해 왔던 좌파가 비판에 나선 것이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사회민주당(SPD)의 당수이자 부총리인 지그마어 가브리엘은 메르켈 총리가 승인한 송환구역 설치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고 로이터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송환구역은 독일 남부의 오스트리아 국경 지역에 설치되며 이곳에서 독일로 온 난민의 국적을 조사해 발칸반도 등 “안전한 국가”에서 온 난민은 돌려보내고 중동 등 “위험한 국가”에서 온 난민은 수용하게 된다. 가브리엘 부총리는 “발칸반도 국가에서 오는 난민은 극소수”라며 “송환구역 설치는 독일로 유입되는 난민의 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SPD를 비롯한 좌파는 송환구역을 “강제수용소”라고 부르며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반면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연합(CDU) 내 보수파와 CDU의 자매당인 기독사회연합(CSU)은 난민 유입을 억제해야 한다며 지난 몇 달 간 송환구역 설치를 주장해 왔다. 독일 마셜펀드의 정치평론가 한스 쿤드나니는 “메르켈 총리는 좌우 균형을 맞추며 모든 이슈에 중도적 실용주의 입장을 견지해 10여년간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매우 논란이 많은 방식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고 평가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독일, 나치시절 강제수용소에 난민 배치 논란

    독일, 나치시절 강제수용소에 난민 배치 논란

    대규모로 유입되는 난민들의 거처 마련이 시급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독일에서 일부 난민을 나치시절의 강제 수용 시설에서 지내도록 한 사실이 알려지며 일각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의 1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현재 거처를 구하지 못한 20여명의 난민들이 2차 세계대전 기간 포로들을 가두었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막사 건물에서 수 개월째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헨발트 수용소는 1937년 처음 설립돼 전쟁 기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온 포로 25만 여명을 수용했던 독일 최대 수용소 중 하나다. 수용자들은 온갖 생체실험의 희생자가 되는가 하면 휴식시간 없이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이곳에서 처형된 포로의 수만 약 5만6000명에 달한다. 현재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은 노역자들이 머물던 건물이 아니라 막사로 사용됐던 건물이지만 일부에서는 끔찍한 역사를 가진 시설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해당 결정을 내린 크리스티앙 한케 독일 베를린시 미테 지구장은 “임시방편이었고 다른 방도가 없었다”며 “이 건물에는 (난민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많다”고 말했다. 난민지위가 정식 인정될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 예정인 이주민들 또한 당국의 결정에 불만이 없다는 분위기다. 아브두라함 마사는 이곳이 수용 및 처형 시설이었다는 점에 개의치 않는다면서 “내게는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난민 또한 “다른 사람들은 이마저도 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감사한다는 태도를 내비쳤다. 독일은 올해 말까지 약 8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 미르켈 총리는 난민 행렬의 규모가 “숨막힐 정도”라고 표현하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향후 독일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지방세 체납 80억… 강원 골프장 ‘빨간불’

    지방세 체납 80억… 강원 골프장 ‘빨간불’

    지방세 수입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지면서 강원도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유치해 온 골프장들이 수십억원의 지방세를 체납하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고 강원도가 4일 밝혔다. 현재 강원지역에는 59곳의 골프장이 운영 중이다. 건설 중인 곳도 9곳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강원도에 내야 할 취·등록세와 일선 시·군에 내야 할 재산세를 체납한 곳은 10여곳이다. 지방세 납부 기한인 지난달 말까지 80억원 이상이 체납됐다고 한다. 10억원 이상의 고액 체납 골프장은 4곳으로, 최대 40억원을 체납한 골프장도 있다. 골프장들의 체납액은 강원지역 전체 체납액(1034억원)의 7.7%에 해당한다.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 횡성군은 골프장이 많이 들어서서 어려움이 크다. 지난달 말까지 둔내, 우천, 서원면 지역 5곳의 골프장 가운데 2곳의 지방세 체납액이 68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횡성지역 전체 체납액 102억 1300만원의 66.65%를 차지해 지방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우천면 C골프장은 지난달 부과된 주택과 건물분 재산세를 포함해 모두 41건에 42억 5300만여원, 서원면 O골프장은 신탁회사 체납액 포함 8건에 25억 5400여만원을 체납 중이다. 다음달 토지분에 대한 재산세 부과를 앞두고 체납액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군은 법원에 채권신고를 했지만 회생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체납액 후순위인 군이 언제 체납액을 회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원지역 골프장들의 세금 체납이 발생한 시점은 2011년부터다. 정부가 골프장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지자체가 세수 증대 등을 이유로 골프장 사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부터다. 강원지역에는 2008년 34곳이던 골프장이 현재 59곳이다. 불과 7년 사이에 73%가 늘었다. 현재 건설 중인 골프장까지 포함해 앞으로 68개의 골프장이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영난에 빠지고 회원들의 입회보증금 반환 요구에 시달리게 되는 골프장도 나온다. 토지 강제수용, 공사 중 부도, 환경 훼손, 주민 간 갈등과 반목 등 또 다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지자체들은 지방세 체납 골프장을 대상으로 재산압류 조치 등을 취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영업 부진 탓에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미영 도 회계과 세정계 담당은 “경기는 어려운데 골프장 수는 갈수록 늘어나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며 “그래도 태백지역 대규모 골프장이 최근 매각 결정되면서 10억원 이상의 우선 변제가 기대되는 등 골프장 체납액을 징수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안네 프랑크, 공식 사망일보다 한달 일찍 사망”

    “안네 프랑크, 공식 사망일보다 한달 일찍 사망”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정확한 사망일이 기존에 알려졌던 것보다 한달 가량 빨랐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박물관 ‘안네 프랑크의 집’은 안네의 사망 70주년을 맞아 “안네를 비롯한 언니 마고는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2월에 사망했을 것”이라고 31일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안네 프랑크와 언니 마고가 당시 공포에 휩싸였던 생활상을 추적하고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 조사를 통해 이뤄졌다. 나치로부터 자신을 숨기면서 쓴 일기 즉 ‘안네의 일기’로 널리 알려진 안네 프랑크는 언니와 함께 처음에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에 있다가 1994년 11월 독일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로 이용됐는데 당시 적십자사는 이들 자매의 죽음을 1995년 3월 1일부터 31일 동안으로 기록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 당국은 3월 31일을 공식 사망일로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강제수용소에 있던 생존자 4인은 안네와 마고가 1월 말쯤부터 티푸스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네덜란드 국립 공중보건환경연구소(RIVM)는 티푸스 환자는 증상이 나오기 시작한지 12일 전후에 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박물관 측은 “두 사람이 3월 말까지 생존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명품 매장이 즐비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북동쪽으로 지하철로 20분만 가면 가난한 거리가 나타난다. 파리 19, 20구의 빈민가다. 이곳은 연초에 파리 연쇄 테러를 저지른 이민 2세대인 쿠아치 형제가 살았던 곳으로 여전히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방치돼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던 파리 19, 20구는 이슬람교도들과 유대인, 흑인 등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다. 현재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벨빌’로 불린다. 이 벨빌 비송거리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칠층’에 아랍인 소년 고아 모모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유대인 로자 아줌마가 함께 살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경계인들로 아랍인과 유대인, 어린아이와 늙은이, 고아와 창녀, 이주 노동자와 성소수자 등이다. 이들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한 공간에 살고 있다. 작가는 이들을 극단적인 상황에 던져 놓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 사랑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 그에 대해 등장인물들은 인종, 나이, 성별을 초월한 사랑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경계인에 대한 에밀 아자르의 애정은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인 작가 자신의 삶과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공쿠르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며 외교관이었으며 영화감독이었다. 그럼에도 여러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존재 방식으로 프랑스 문단의 편견을 한껏 조롱한 작가는 권총 자살 후에야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임을 밝힌다. 작가는 책 ‘인간의 문제’에 실린 장 다니엘과의 대담에서 “내 소설의 진정한 관심사는 인간의 존엄성이며 인간의 권리”라며 “인간적 여지는 내 책의 근본적인 조건”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년 시절 어머니와 단둘이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해 성장한 로맹 가리에게 소외, 인권, 소수자, 불평등, 편견 등 인간이 처한 사회적 구속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화두였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열네 살 모모와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로자 아줌마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모모는 자신을 돌보던 로자 아줌마가 뇌혈증을 앓자 거꾸로 로자 아줌마를 돌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살고, 병들고, 늙고, 죽어 가는 삶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모모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지혜를 주는 하밀 할아버지, 전직 복서였지만 지금은 여장 남자로 몸을 파는 롤라 아줌마, 비송거리의 유대인과 아랍인, 흑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카츠 선생님 등은 고아라도, 창녀라도, 성소수자라도, 종교와 인종, 세대가 다르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준다. 누구도 서로를 비난하지 않으며 외롭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기꺼이 보살핀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이들의 경계선은 해체돼 고아고 창녀고 이방인이 아니라 어느새 사랑할 줄 아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존엄한 인간’으로 남는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삶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모모는 훔친 푸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나는 녀석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 주고 싶어졌다”며 “남에게 줘 버리기까지” 한다. 그 대가로 받은 돈을 하수구에 처넣고는 오히려 행복해한다. “엄마가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여자라 해도 무조건 사랑했을 것”이고 “영웅 같은 것보다 그냥 아빠가 있어서 엄마를 잘 돌봐주는 뚜쟁이기를” 소망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아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 줄 것이다”라며 소외받는 이들의 편에서 생각할 줄 안다.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무슨 약속이라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늙었다 해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니까”라며 세상의 편견에 물들지 않는다. 늙고 병든 로자 아줌마를 보며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라며 우리의 마음이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늙고 추하고 다시는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없었기에 이때처럼 로자 아줌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죽음에 임박해 냄새가 나는 로자 아줌마에 대해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러면서 모모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하는 로자 아줌마를 위해 기꺼이 옆을 지킨다. 하밀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이라고 번역된 프랑스어 원제목(La vie devant soi)이 ‘여생’, 즉 ‘앞으로 남은 생’임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읽힌다. 그래서 로자 아줌마가 죽은 후 이웃에게 구조된 모모는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며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애정을 보인다. 이 책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렸지만 삶을 살아내는 문제를 결코 음울하게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극한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힘든 상황일수록 일상의 밑바닥에 고여 있는 초라한 삶에 침을 뱉을지라도 더 힘껏 생을 끌어안아야 하고, 그것이 사랑임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아련한 슬픔에 희망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밀 할아버지의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라는 말은 고통, 희망, 미움, 사랑 등이 섞여 있는 게 온전한 삶의 모습임을 역설하는 셈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 국가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34개 회원국 중에서 32위다.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지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돈과 지위로 인간 존엄을 해치는 사건이 회자되고 있고 세계 곳곳은 테러와 전쟁으로 어수선하다. 이럴 때일수록 간절히 필요한 게 ‘사람과 삶에 대한 무한하고 깊은 애정’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낭만일까. 누군가가 지금 힘들어한다면 이 책에서 펼쳐 놓은 생의 적나라한 모습을 마주하길 바란다. 모모의 독백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모모가 깨달은 삶의 의미와 진실에서 용기를 얻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책, 삶의 부박함에 받은 상처를 치유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의 맨 앞장에는 이런 제사가 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쳐버린 거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의 참맛은 그런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걸.’” 그리고 책은 이렇게 끝난다.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 신운선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이번 주부터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을 테마로 월요일에 격주로 게재됩니다.
  • 수용소는 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수용소는 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인류/로베르 앙텔름 지음/고재정 옮김/그린비/465쪽/1만 9500원 인류(人類·mankind). 생물학적으로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 이르는 말이다. 인류의 명명 아래 어떠한 다른 차별과 구분은 없다. 현실은 다르다. 인류의 이름으로 인류를 착취하고, 군림하며, 인간 이하의 삶을 강제한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평등과 존엄이라는 명제가 오랜 이상(理想)일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으로 남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가 여전히 숙고되는 이유다. ‘인류’는 전후 프랑스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제2차 세계대전의 ‘수용소 문학’ 중 가장 중요한 기록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고전이다. 로베르 앙텔름은 알제리 전쟁 반대, 68혁명에 참가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아왔으며 모리스 블랑쇼, 자크 데리다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다. 그는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다 1944년 6월 체포됐다. 독일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간더스하임을 거쳐 다하우 강제수용소로 옮겨진 뒤 1945년 4월 미군에 의해 해방되면서 풀려났다. 앙텔름은 그곳에서 겪은 인간 이하의 비참한 삶과 고통스러운 기억을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때로는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성찰과 사유로 풀어낸다. 독일 강제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며 오로지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했던 열 달의 시간이다. 그의 기록은 간더스하임으로 이송되는 시간에서 시작된다. 머리말에서 밝혔듯 그곳에는 가스실도, 시체 소각장도 없었다. 대신 ‘어둠, 지표의 절대적 부재, 고독, 끊이지 않는 억압, 점진적 소멸’ 등이 있었고 노역, 구타, 추위, 굶주림 등의 공포는 거대하지 않고 일상이 됐기에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인간다움의 지점은 삶에서,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13일 동안 갇힌 채 내달리는 열차에서 “내가 죽을 자리를 내 달라”는 말을 남기며 앉은 채 죽어 가는 사람을 보면서 앙텔름은 삶에 대한 예의보다 죽음에 대한 예의가 사라질 때 인간의 존엄성이 더 심각하게 훼손됨을 직시한다. 또한 수용소 철망 바깥에서 무심히 자신들을 바라보며 키득거리던 평범한 독일 처녀들, 농부들의 모습 속에서도 절망을 느낀다.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해 가져야 하는 책무에 대한 지적이다. 책은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인 ‘어머니들’을 표지로 썼다. 서로 어깨를 보듬으며 웅크린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 속 사람다움을 결코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앙텔름이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300명의 생존자와 후손, 70년 후 ‘아우슈비츠’를 걷다

    300명의 생존자와 후손, 70년 후 ‘아우슈비츠’를 걷다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약 300여 명의 사람들이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모여 을씨년스럽게 흐르는 조명 아래, 눈 덮힌 길을 마치 순례하듯 걸었다. 정확히 70년 전인 지난 1945년 1월 27일 '이곳'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들 300여 명은 제2차 세계대전 도중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와 그들의 후손들이다. 무려 70년의 세월이 흘러 생존자 대다수가 90세가 넘는 고령이 됐지만 이들의 기억 속에 홀로코스트는 마치 어제 벌어진 일인듯 생생하다. 생존자 로만 켄트(85)는 "우리의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면서 "세계인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잔악한 행위와 자유를 위한 전쟁을 기억해달라" 며 눈물을 흘렸다. 아우슈비츠에서 부모와 4명의 오빠와 동생을 잃은 로즈 쉰들러(85) 역시 눈물을 흘리며 "과거 아우슈비츠에 오자마자 가족들과 헤어져 이별의 시간도 갖지 못했다" 면서 "가족들의 무덤조차 없어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 유일한 추모 방법" 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던 독일 후손들의 뼈저린 반성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이날 독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독일인의 도덕적 의무" 라고 강조했으며 전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나치의 만행을 잊지않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 이라며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편 기념행사가 열린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 학살수용소로 악명을 떨쳤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 중 100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학살됐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300명의 ‘아우슈비츠 생존자’ 70년 후 ‘지옥’을 걷다

    300명의 ‘아우슈비츠 생존자’ 70년 후 ‘지옥’을 걷다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약 300여 명의 사람들이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모여 을씨년스럽게 흐르는 조명 아래, 눈 덮힌 길을 마치 순례하듯 걸었다. 정확히 70년 전인 지난 1945년 1월 27일 '이곳'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들 300여 명은 제2차 세계대전 도중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와 그들의 후손들이다. 무려 70년의 세월이 흘러 생존자 대다수가 90세가 넘는 고령이 됐지만 이들의 기억 속에 홀로코스트는 마치 어제 벌어진 일인듯 생생하다. 생존자 로만 켄트(85)는 "우리의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면서 "세계인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잔악한 행위와 자유를 위한 전쟁을 기억해달라" 며 눈물을 흘렸다. 아우슈비츠에서 부모와 4명의 오빠와 동생을 잃은 로즈 쉰들러(85) 역시 눈물을 흘리며 "과거 아우슈비츠에 오자마자 가족들과 헤어져 이별의 시간도 갖지 못했다" 면서 "가족들의 무덤조차 없어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 유일한 추모 방법" 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던 독일 후손들의 뼈저린 반성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이날 독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독일인의 도덕적 의무" 라고 강조했으며 전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나치의 만행을 잊지않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 이라며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편 기념행사가 열린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 학살수용소로 악명을 떨쳤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 중 100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학살됐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70년만에 생명의 은인 만난 유태인의 첫 마디

    70년만에 생명의 은인 만난 유태인의 첫 마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에서 눈물을 자아내는 두 노인의 감동적인 만남이 있었다. 한 노인은 거동조차 힘든 또다른 노인에게 거수 경례로 예의를 표했고 엎드려서 그의 발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당신을 사랑한다. 너무나 당신을 사랑한다"(I love you, I love you so much)  이들의 인연은 무려 70년 전인 지난 1945년 4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슈아 카프만(87·사진 속 왼쪽)은 뮌헨 인근에 위치한 나치 독일의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수감돼 있었다. 이곳은 나치가 독일에 최초로 개설한 강제수용소로 유태인 출신이었던 카프만은 사실상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였던 셈. 매일매일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던 카프만에게 빛이 되준 사람이 바로 또다른 주인공 다니엘 길레스피(89·사진 속 오른쪽)다. 당시 그는 미군 제42보병사단 기관총 사수로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점령하며 카프만에게 처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카프만은 "전세가 불리해진 나치가 강제수용소의 사람들을 학살하고 떠났다" 면서 "변소로 만든 야외 웅덩이 속에 몇몇 사람과 숨어 있었는데 이때 미군들이 수용소에 들어왔으며 길레스피가 처음 본 군인이었다"고 회상했다. 카프만은 아마도 생명의 은인인 그의 얼굴을 평생 잊지 못했을 터.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뻔 했던 이들의 인연은 무려 70년이 지나서 다시 이루어졌다. 독일의 한 다큐 프로그램 취재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가 확인된 것. 만나자마자 서로를 얼싸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 두 노인은 70년의 삶을 함께 돌아왔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진 카프만은 이후 이스라엘에서 군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이민와 정착했다. 길레스피 역시 무사히 제대한 이후 8명의 자식을 둔 대가족을 이뤘으며 세일즈맨으로도 성공했다. 놀라운 사실은 두 사람이 자동차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거리에서 살고있었다는 점이다. 카프만은 "내 생애 마지막 숙제를 한 기분" 이라면서 "길레스피를 보니 과거 나치에게 가족 대부분을 잃었던 악몽같은 기억이 떠오른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마 우리 두 사람은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홀로코스트로 얽힌 미군과 유태인 70년 만에 만나다

    홀로코스트로 얽힌 미군과 유태인 70년 만에 만나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에서 눈물을 자아내는 두 노인의 감동적인 만남이 있었다. 한 노인은 거동조차 힘든 또다른 노인에게 거수 경례로 예의를 표했고 엎드려서 그의 발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당신을 사랑한다. 너무나 당신을 사랑한다"(I love you, I love you so much)  이들의 인연은 무려 70년 전인 지난 1945년 4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슈아 카프만(87·사진 속 왼쪽)은 뮌헨 인근에 위치한 나치 독일의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수감돼 있었다. 이곳은 나치가 독일에 최초로 개설한 강제수용소로 유태인 출신이었던 카프만은 사실상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였던 셈. 매일매일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던 카프만에게 빛이 되준 사람이 바로 또다른 주인공 다니엘 길레스피(89·사진 속 오른쪽)다. 당시 그는 미군 제42보병사단 기관총 사수로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점령하며 카프만에게 처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카프만은 "전세가 불리해진 나치가 강제수용소의 사람들을 학살하고 떠났다" 면서 "변소로 만든 야외 웅덩이 속에 몇몇 사람과 숨어 있었는데 이때 미군들이 수용소에 들어왔으며 길레스피가 처음 본 군인이었다"고 회상했다. 카프만은 아마도 생명의 은인인 그의 얼굴을 평생 잊지 못했을 터.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뻔 했던 이들의 인연은 무려 70년이 지나서 다시 이루어졌다. 독일의 한 다큐 프로그램 취재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가 확인된 것. 만나자마자 서로를 얼싸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 두 노인은 70년의 삶을 함께 돌아왔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진 카프만은 이후 이스라엘에서 군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이민와 정착했다. 길레스피 역시 무사히 제대한 이후 8명의 자식을 둔 대가족을 이뤘으며 세일즈맨으로도 성공했다. 놀라운 사실은 두 사람이 자동차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거리에서 살고있었다는 점이다. 카프만은 "내 생애 마지막 숙제를 한 기분" 이라면서 "길레스피를 보니 과거 나치에게 가족 대부분을 잃었던 악몽같은 기억이 떠오른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마 우리 두 사람은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사설] 北 국제고립 피하려면 남북회담 호응하라

    북한이 국제고립을 탈피하려는, 분주한 외교적 발걸음을 선보였다. 리수용 외무상이 엊그제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친서까지 전달했다. 며칠 사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극렬한 대남 비방을 쏟아부어 온 것과는 사뭇 대비되는 행보다.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개선은 뒷전으로 미룬 채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미망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길 바란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친서다. 북측은 이에 대해 반 총장의 친서에 대한 답신으로 의미를 한정했으나, 앞으로 반 총장의 방북과 외교적 고립에서 탈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당국이 이번 유엔 총회에 15년 만에 외무상을 보내 북핵과 북한주민 인권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피력한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엊그제 김정은이 제1위원장으로 있는 국방위원회를 내세워 “현대판 사대매국노를 매장해 버리겠다”는 등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공세를 이어가고 있음은 뭘 말하나. 박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북한 인권과 북핵 해결을 촉구한 데 따른 조건반사적 비방이지만, 최근 국제사회에 내비친 자신들의 변화 제스처가 전술적 차원에 불과함을 방증한다. 즉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에는 종전보다 공세적으로 대응하면서 핵·경제 병진노선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개혁·개방의 대도를 버리고 샛길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할 방도는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3차에 이르는 핵실험과 수차례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유엔의 제재를 부르며 외교적·경제적 고립을 자초한 전력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국가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보다 핵 개발 의지를 접고 주민 인권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남측이 내민 손길을 뿌리친 채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 무망한 일이다. 지난 몇 달간 북한 합영투자위원장 출신의 이 외무상이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을 돌며 외자 유치에 나섰지만 대체 무슨 성과를 얻었는가. 동족인 남한만큼 북한에 투자할 ‘큰손’은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까닭에 북한은 우리 측이 제안한 고위급 회담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 진정으로 남한의 투자를 유치해 ‘인민 생활을 개선’할 생각이라면 남북대화를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혹여 남한 내 친북세력 일각의 공허한 부추김에 휘둘려 5·24 대북 제재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고위급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 정부도 북이 대화의 장에 나올 여지를 줘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려는 적극성을 보이길 당부한다. 대화 테이블에서 북이 내심 바라는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포함해 남북 간 모든 현안을 패키지로 논의할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견지하란 주문이다. 차제에 우리와 미·일 등이 참여하는 다자간 북한인권고위급회의에 북한도 참여시키는 시도가 전략적으로 유익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북한이 강제수용소 해체를 수용하면 인도적 지원 확대와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카드의 유용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의류브랜드 ‘자라’, 나치 수용소 떠올리는 아동복 판매 중단

    의류브랜드 ‘자라’, 나치 수용소 떠올리는 아동복 판매 중단

    스페인 패션 브랜드 자라(Zara)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입던 옷을 연상시키는 아동복 판매를 중단했다고 AFP통신이 27일 보도했다. 이 옷은 흰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가 있으며 가슴에 유대교를 상징하는 ‘다윗의 별’과 비슷한 육각 모양의 별이 붙어 있다. 이 아동복은 자라 웹사이트에서 판매됐으나 소비자들의 반발이 빗발치자 자라는 이날 판매를 중단했다. 자라 대변인은 “원래 별은 미국 서부 보안관 배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면서 “이 디자인이 나치 강제수용소복과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라는 이 주제가 얼마나 예민한 줄 알고 있다”면서 “소비자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자라는 앞서 2007년에도 나치 상징 문양이 새겨진 가방을 팔아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자라는 당시 가방 제조업자가 동의 없이 문양을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자민당, 국경 인근 낙도 강제수용 입법 추진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국경 근처 무인도의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에 의한 토지 강제 수용을 가능하게 하는 ‘무인국경 낙도관리 추진법안’을 내년 정기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산케이신문이 17일 보도했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염두에 두고 외국인에 의한 낙도 매입을 방지하고 해양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신문에 따르면 법안은 국경에 인접한 낙도 주변 해역에서 일본의 주권 침해로 이어질지 모르는 행위가 벌어질 경우 민간 소유지를 토지수용법 규정에 준해 국가가 필요에 따라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2012년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할 때 이러한 강제 수용 규정이 사실상 없어 외국 자본에 매수될 가능성이 있었던 점을 고려한 것이다. 또 법안에는 무인도에 일본 영토임을 표시하는 표지와 등대를 설치하고 기상관측시설 등 공공시설을 정비하는 규정도 명기될 방침이다. 국유지는 국가가 정기적으로 순찰하고 자연환경 보전 활동에 대한 지원을 할 방침이다. 민간 소유 토지의 경우 국가가 지자체와 연계해 소유자나 토지의 사용 실태에 관한 조사도 할 방침이다. 일본 내에서 국경 근처의 무인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2010년 센카쿠 열도 앞바다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충돌한 사건을 계기로 높아졌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찍퇴’ 칼바람 흉흉한 금융권

    ‘찍퇴’ 칼바람 흉흉한 금융권

    교보생명은 지난 10일 희망퇴직 접수를 마감했다. 전체 직원(4700여명)의 11%에 달하는 감원 목표치(500명)를 채우지 못했다. 사측은 ‘찍퇴’(찍어서 퇴직) 직원을 대상으로 긴급 설득에 나섰다.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주겠다”며 사측은 이들의 퇴근까지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서장들은 찍퇴 대상자들과 많게는 10여 차례 개인 면담을 하며 퇴사를 강요했다. 일부 관리자는 집까지 찾아가 “네가 관둬야 후배들이 살고 내가 산다”고 설득했다. 이를 거부한 직원에게는 “상황이 다 끝났으니 어디 한번 잘 견뎌 보라”며 악담을 퍼부었다고 노조 측은 전했다. 금융권에서 수천명이 옷을 벗은 ‘명퇴’(명예퇴직)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이른바 강제 퇴직인 찍퇴의 공포는 여전히 금융권을 짓누르고 있다. 명퇴자 목표치에 미달한 금융사들은 ‘명퇴 거부자’들을 부진자 교육과 무연고 인사 발령 등으로 협박하고 있다. 명퇴를 빨리 신청하는 사람에게는 수백만원 상당의 여행상품권을 주는 황당한 ‘퇴직 마케팅’까지 써 가며 직원들을 두 번 울리는 회사도 있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이달 초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찍퇴 직원 10여명을 연고가 없는 지방으로 보내는 인사 발령을 냈다. 또 부진자 교육을 실시한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부진자 교육은 업무 성과 하위 15% 직원과 장기 승진 누락자가 대상이다. 교육 기간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한번 들어가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 농협에 인수된 우리투자증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측은 지난달 21일 희망퇴직 접수 마감을 하루 앞두고 아웃도어세일즈(ODS) 조직을 긴급 신설했다. 찍퇴 직원이 희망퇴직을 하지 않을 때에 대비한 ‘강제수용소’와 같은 곳이다. 이곳은 ‘책상이나 전화기도 없이 밖에서 줄곧 돌며 영업해야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사측은 1964년(만 50세) 이전 출생자를 중심으로 60여명을 추려 ODS로 발령을 냈다. 김석민(50·가명)씨는 “ODS에서 교육 과제를 많이 주는 데다 지방에서 온 사람도 많아 생활이 엉망”이라고 호소했다. 한국씨티은행은 3일 이내에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20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주는 퇴직 마케팅에 나서 논란이 됐다. 노조는 직원들에게 사측 면담을 거부하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사측은 면담을 안 하면 인사 조치와 징계를 한다고 맞불을 놨다. 조성길 노조 정책홍보국장은 “회사가 퇴직 절차를 무슨 상품을 파는 마케팅처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생명의 窓] 인간마인드의 회복/서광 스님·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생명의 窓] 인간마인드의 회복/서광 스님·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않는 한 누구나 육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세계를 돌면서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을 윤회하면서 괴로움을 겪는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순간순간 육도를 오가며 윤회한다. 분노와 공격성에 의해 지배를 받는 지옥마인드, 신경증적 욕구와 갈망으로 들끓는 아귀마인드, 성욕과 무지로 뒤덮인 축생마인드, 질투심과 편집증에 몰입된 아수라마인드, 욕망의 충족이나 에고기능의 일시적 멈춤으로 인해서 황홀감에 빠진 천상마인드, 실존적 물음 또는 생명의 존귀함, 평화, 삶의 의미, 윤리 등을 고민하는 인간마인드를 끊임없이 윤회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들 가운데 몸은 인간이지만 정신세계는 성욕과 탐욕이 주를 이루는 축생의 마음이 지배적이라서 좀처럼 인간마인드에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동성추행, 심지어 딸을 추행하는 친부의 경우가 축생의 세계의 대표적 예다. 세월호 사건 바로 직전 우리들을 공분케 했던 울산이나 칠곡의 계모 사건은 공격성과 분노가 핵심감정인 지옥의 정신세계에 몰입된 전형적 예다. 그렇다면 온 국민을 슬픔, 분노를 넘어서 좌절, 절망하다 못해 무기력과 무감각함으로 몰아넣은 세월호 사건을 유발한 사람들의 주된 핵심감정은 무엇일까. 그건 아귀마인드다. 신경증적 욕구로 인해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갈망만 할 줄 아는 정신세계다. 물론 세월호의 비극은 육도의 어느 한 정신세계만의 결과는 아니다. 문제는 이 사건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람들의 정신세계에는 인간적 가치나 존재의미,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유발하는 인간마인드가 치명적으로 결핍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인간마인드에 주로 머무르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으로는 너무나 인간 같지 않은 이들의 정신세계와 행위들을 이해는커녕, 상상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놀라움과 분노를 넘어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나아가 그들의 문제해결 방식과 반응행동들은 인간마인드의 사람들을 더 큰 절망과 아픔, 무기력증으로 유도한다. 그들의 마인드는 온 세상이 그저 쟁취하느냐, 못하느냐의 이분법적 욕망으로 채워져 있을 뿐,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알지도 못한다. 상대 입장에서 사고하는 능력이 부재돼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힘과 소유의 논리에 의한 승복이 있을 뿐이다. 2차 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강제수용소에서조차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두 부류의 사람들을 경험했다고 증언했다. 요즘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가…”라는 반응으로 경악하게 만드는 끊임없는 사건·사고들을 접하면서 무력감을 넘어 그 출구를 찾는 일조차 힘겹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럴 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의 정신세계를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에서도 보듯이 아직도 주변에는 이웃의 고통을 공감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자비로운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세월호 사건의 교훈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면서 정치, 교육, 경제 등 다양한 사회조직과 기능에 사용할 것인지를 화두로 삼고 고민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어떤 방식으로 인간마인드의 교육과 회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고 실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 평양 아파트 붕괴 관련자 최소 5명 숙청

    평양 고층 아파트 붕괴 사고와 관련된 북한 인민군 간부와 기술자 등 최소 5명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숙청됐다고 도쿄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파트 건설 공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한 인민군 7총국장은 해임과 동시에 강제수용소행 처분을 받았고, 설계와 시공을 담당한 기술자 4명은 총살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사망자 수가 500명에 달한다는 정보가 평양에 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건설 관계자가 시멘트 등의 자재를 빼돌렸으며 배낭 1개 분량의 시멘트가 암시장에서 2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취재에 응한 북한 관계자는 건물 1층에 군의 건설 지휘부가 있었기에 일부 지휘부 구성원이 다른 주민들과 함께 사망했다고 말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모닝 브리핑] 강제수용 조사 ‘인신보호관제’ 도입

    정신병원과 장애인 시설 같은 수용시설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수용됐는지를 조사하는 ‘인신보호관제’가 도입된다. 정부는 8일 서울청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인신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인신보호관제를 통해 수용시설에 들어가 있는 피수용자가 불법적으로 수용된 것인지와 수용시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제청구’ 관련 정보를 고지받았는지 등을 조사하게 된다. 대상시설은 당사자 의사에 반한 채 강제수용이 가능한 곳으로 정신병원, 장애인시설, 노인 요양원 등이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박대통령 독일 방문] “獨 용기있는 행동으로 과거사 청산” 메르켈, 역사왜곡 日에 뼈있는 충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6일(현지시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 만찬에서 한 ‘독일이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과거사를 청산했다’는 발언이 일본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로 평가된다. 한·일 양국의 과거사 갈등을 잘 이해하고 있는 메르켈 총리의 이 발언은 침략 전쟁의 과거사를 미화하며 우경화 행보를 하는 일본을 상대하는 박 대통령의 입장에 공감을 표시하는 동시에 일본에 대한 ‘용기 있는 충고’로 이해된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연방총리 청사에서 열린 만찬 도중 “과거 잘못을 저지른 독일이 다른 나라에 무엇이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과거사를 청산할 수 있었다”며 “앞을 바라보며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박 대통령이 “독일이 철저한 과거사 인정과 반성을 통해 역내 주변국들의 신뢰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독일 통일을 이뤘을 뿐 아니라 유럽연합(EU)의 핵심 국가로 부상했다”며 “이런 독일의 노력은 동북아 3국(한·중·일) 모두에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전대미문의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2차대전 패전국 정상인 메르켈 총리 스스로도 철저한 반성을 통해 확고하게 이뤄진 과거사 청산이 현재의 경제적 번영과 유럽 통합을 이룬 원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셈이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역대 정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과거사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해 8월 현직 총리로는 다하우 나치 강제수용소 추모관을 처음으로 참배했고 2009년 6월에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독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를 찾아 헌화한 바 있다. 베를린·드레스덴(독일)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통일독일에서 배운다] 과감한 일자리 개혁·안정된 국정운영으로 ‘統獨 대박’

    [통일독일에서 배운다] 과감한 일자리 개혁·안정된 국정운영으로 ‘統獨 대박’

    “(크림 합병에 대해)주민 투표도, 푸틴의 승인도 모두 불법이며 러시아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날린 일갈이다. 1990년 통일을 계기로 독일은 달라졌다. 3억 인구의 유럽연합(EU)을 대표하는 강한 독일이 됐다. 경제 대국을 넘어 정치대국에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무역흑자만 1989억 유로로 전년보다 4.9% 증가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확실한 과거 청산과 안정된 국정, 탄탄한 경제 등 통일 이후 독일은 세계 모범 국가로 자리 잡았다. 비슷한 처지의 한국이 눈여겨보아야 할 살아있는 유산이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미래다. ●2003년 시간선택제 확대 ‘하르츠 개혁’ 성공 통일 이후 10년간 경기침체에 빠져 ‘유럽의 환자’로 불리는 상황이 되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SPD) 정부는 2003년 ‘하르츠 개혁’을 추진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파견근로 등에 대한 차별 금지와 복지 개선이 주요 내용이었다. 특히 상황에 따라 근로시간대를 고를 수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기혼 여성의 취업률을 크게 높였다. 현재 독일의 15∼64세 여성 가운데 71.5%가 경제활동에 참가할 정도다. 연합군의 폭격에 만신창이가 됐던 구 동독지역의 도시 드레스덴은 통일 후 대규모 돈을 투자해 첨단과학기술 산업을 유치하면서 과학비즈니스의 대표도시가 됐다. 과감한 개혁과 투자로 2004년 64.3%였던 고용률은 지난해 말 76.7%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올해 6.8%로 통일 이후 최저 수준이다. ●빌리 브란트, 유대인 위령탑에 무릎 꿇고 사죄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이곳을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세계 언론은 “그날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가했다. 독일은 이처럼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참회를 위해 노력해왔다. 199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50주년을 맞아 이날을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날로 지정했다. 나치에 끌려가 노역을 한 개개인에게 국가가 배상하는 기관도 발족했다. 나치 전범에 대한 공소시효도 없앴다. 고상두 연세대 유럽정치학 교수는 “독일은 실정법상 문제와 화합 차원에서 가해자의 사법적 처리보다는 피해자 고통분담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과거진상위원회를 운영하고 백서 발간, 공청회 등을 통해 배상과 명예회복에 힘썼다. 통일 한국이 북한 인권문제 해결 시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1992년 이후 총리 3명뿐… 성공적 정치 개혁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경기침체에 빠진 이탈리아와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차이를 정치에서 찾았다. 1992년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14번의 정권교체가 있었던 반면 독일에서는 총리가 3명에 그쳤다. 총리를 중심으로 국정 운영에 힘을 모아 성공적인 개혁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찬반양론이 존재하지만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배분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나 연정 등도 도움이 됐다. 이렇듯 안정된 국정운영은 독일이 정치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메르켈 총리는 푸틴과 협상을 통해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진상조사기구 설치를 이끌어내는 등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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