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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캄보디아 도피 사기범/4년만에 강제송환 조사

    경찰청 외사과는 1일 상가분양을 해주겠다고 속여 1백24억원을 가로챈 뒤 캄보디아로 도피했던 전 위너스주식회사 대표 이상호씨(47·서울 송파구 잠실동 89)를 4년만에 강제송환,조사중이다. 이씨는 91년 8월부터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근린상가 7개동을 분양한다는 공고를 낸뒤 분양신청자 350명으로부터 계약금 1백24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또 40억원의 부도수표도 발행했다는 것이다.
  • 독 “유고난민 13만명 강제 추방”/양국 내무장관 합의

    ◎3년내 송환… 세르비아 재탄압 우려 【베를린 연합】 독일은 10일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 난민 13만5천명을 본국으로 강제송환하기로 합의했다. 만프레드 칸터 독일내무장관은 이날 본에서 부카신 요카노비치 유고연방 내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최근 수년 사이 독일로 이주한 유고연방 국적의 난민들을 강제추방하기로 합의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칸터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송환작업이 3년 내에 완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송환 대상자 대부분이 분쟁지역인 유고연방내 코소보주 출신의 알바니아인들이라는 점에서 비인도적 처사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코소보주는 지난 89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에 의해 자치권을 박탈당한 뒤 분쟁이 발생했었다. 독일 인권단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가 새로운 발칸 전쟁을 촉발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밀로세비치 대통령이 과거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모델로 알바니아인들을 차별하기 위한 「아파르트하이트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구속 김하기씨 입북동기·북 행적

    ◎“내책인세 받겠다” 취중 입북 결심/북 요구로 김일성자서전 읽기도 국가안전기획부는 19일 지난달 31일 밀입북했다 16일만에 강제송환된 소설가 김하기씨(38·본명 김영)의 입북동기와 북한에서의 행적 등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씨가 중국 연길시에 도착한 날은 지난달 30일.부산소설가협회가 주최한 「여름소설학교」에 참가한 일행 64명과 동행길이었다.현지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 김완씨(33·중국주재 회사원) 등 2명과 함께 북한식당 「금강원」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중에 입북을 결심하게 됐다. 김씨는 식당 여종업원에게 『내책 「완전한 만남」이 북한에서 출간됐으니 지금 당장 인세를 받으러 가야겠다』며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회령으로 가면 된다』는 종업원의 말을 듣고 김씨는 무작정 택시를 타고 북한과 강하나 사이를 둔 중국의 삼합 강변에 도착했다. 강물이 얕은 곳을 골라 1시간 30분여동안 걸은 끝에 지난달 31일 상오 3시30분쯤 북한의 회령에 도착했다.이후 10여일동안 『평양의 「해외동포 영접부」에서 왔다』는 북한 기관원들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소설 「임꺽정」을 쓴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씨와 「청춘송가」를 쓴 남대현을 만나러 왔다』고 입북동기를 밝혔다.93년 북한으로 송환된 장기수 이인모씨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측의 요구로 김일성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총7권)를 탐독하고 감상문을 쓰기도 했다. 『김주석이 와해직전에 있던 항일유격대를 구한 사실이 가장 감명깊다』『김주석의 영활한 유격투쟁에 감탄했다』『민족해방은 단순히 미국·소련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이날 북한측으로부터 양복과 와이셔츠,구두 등을 선물로 받고 중국으로 강제송환된 김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김씨는 지난 81년 국가보안법 사건에 연루돼 탈영했다가 징역10년을 선고받고 지난 88년 특사로 풀려난 전력이 있다.
  • 러 도피 횡령범 강제 소환 구속

    서울 서부경찰서는 20일 회사공금 11억원을 횡령한 뒤 러시아로 달아난 전 신중앙상호신용금고 대리 임근식씨(38·서울 은평구 증산동)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임씨는 회사공금을 횡령한 뒤 지난 94년 1월24일 러시아 모스크바로 달아나 외국인 등록을 마치고 살아오다 95년 2월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에 의해 소재가 확인돼 지난 4일 한국경찰청의 신병확보 요청을 받은 러시아 인터폴에 붙잡혀 강제송환됐었다.〈강충식 기자〉
  • “미 교도소는 인권사각지대”/국제사면위 보고

    ◎앨라배마 쇠사슬 족쇄… 중노동 강제 동원/애리조나 5개 교도소 여성수인 성학대자행 인권국임을 자임하는 미국의 인권실태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국제사면위가 18일 전세계 1백47개국의 인권현황을 공개한 96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인권의 사각지대로 사형제도,경찰과 교도소의 잔학행위 및 난민 강제송환등이 꼽혔다. 보고서는 『지난해 미국의 16개주에서 56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돼 지난 77년 이 제도가 부활된 후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며 『현재 38개주에서 모두 3천명 이상이 사형선고를 받고 대기중』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집없는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자선단체 관계자들이 경찰에 체포돼 두들겨 맞고 구금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또한 교도소내의 성적 학대에도 언급,『87년부터 지난해까지 애리조나의 5개 교도소에서 수십명의 여성 재소자들이 체계적으로 성적 학대를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고 밝혔다.이 보고서는 이어 『30년 전 사라졌던 쇠사슬로 죄인을 묶던 악습이 앨라배마등에서부활됐으며 죄수들이 쇠사슬에 묶여 바위깨기와 같은 중노동에 동원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난민문제에 대해 보고서는 『미해군기지에 수용돼 있던 아이티 난민 3천9백명을 지난 1월부터 강제송환하기 시작했다』면서 『이것은 국제적인 절차인 망명심사를 거치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워싱턴 연합〉
  • “탈북자 처형 관련자 처벌”/북에 철저수사 촉구/국제사면위

    ◎러 정부에 북한인 망명 허용 요구 【도쿄=강석진 특파원】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는 한국으로 망명하려다 러시아당국에 의해 체포돼 북한당국에 강제송환되던 북한인이 송환현장에서 즉결처형된 사건(본지 5월28일자 보도)에 대한 성명을 최근 발표,북한당국에 대해 사건의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의 처벌을 촉구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또 러시아당국에 대해서는 남은 2명의 북한인에 대해 망명을 허용하거나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촉구했다. 사면위원회는 러시아에 대해 앞으로 북한인들을 심각한 인권침해에 직면할 수 있는 북한으로 강제송환하지 말 것을 아울러 요구했다. 지난 5월말 러시아 연해주 나즈드라첸코주지사는 『위조한국여권으로 한국으로 망명하려던 북한인 3명이 체포됐으며 이들을 국경지역에서 북한측에 인도할때 북한측이 송환받은 1명을 즉결처형했다』면서 『러시아측은 남은 2명을 인도하지 않고 다시 데리고 돌아와 블라디보스토크형무소에 수감했다』고 말한 바 있다.
  • “관리부실”­“음모설” 양동작전/「최승진씨 구속」 국민회의 대응

    ◎“개인범죄에 공당이 들러리” 여론 부담 최승진 전 뉴질랜드대사관행정관이 검찰에 구속된 이후 국민회의의 대응은 두개의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같다.가능한 한 조기 매듭을 시도한다는 방침 아래 최씨의 강제송환후 곧바로 제기했던 「음모설」과 더불어 「외무부의 인사관리 부실」의 고리를 걸어 맞대응을 시도해 나간다는 구상이다.일종의 양동작전이다. 문서 공개 당사자인 권노갑부총재는 12일에도 검찰의 소환에 언제든 응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이 사건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권부의장의 이같은 태도는 「최씨가 문서변조를 시인했다」는 검찰발표에도 불구,국민회의 인권위원장인 이상수변호사와의 면담때 최씨가 혐의사실을 부인한 데 고무된 듯하다.권의원의 한 측근인사가 『최씨가 혐의내용을 부인하고 있어 이미 싸움은 끝난 상태』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기류를 반영하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자칫 여권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고 우려,강공책을 구사하고 있다.이른바 「정부 음모설」과 최씨가 외교문서 전달 당시 공무원신분이었던 점을 들어 외무부의 인사관리 부실에 따른 장관인책론이 그것이다. 공로명 장관의 인책론은 겉으로는 공장관이 러시아 방문때 김영삼대통령의 친서를 옐친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부분을 문제삼았다.하지만 실제로는 최씨사건에 대한 불편한 심기의 표출이라는 풀이다. 음모론도 공세의 한 축이다.최씨가 강제귀국때 『외무부 고위관리가 김대중 총재와 공모한 것으로 시인하면 모든 죄를 덮어주겠다고 회유했다』고 한 발언에 여전히 무게를 싣고 있다. 김총재 스스로도 『정부가 선거부정 문제를 희석시키는 데 최씨사건을 이용하고 있다』며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않고있다.김영진의원 같은이는 『최씨사건 이후 정부가 뉴질랜드산 키위 수입을 중단하고 쇠고기 수입도 절반으로 줄였다』고 전하고 『현재 우리측에 쇠고기와 키위 수입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식의 「거래의혹설」까지 제기하고 있다.심지어 『변조문서라는 정부의 덫에 걸렸다』는 이른바 「함정론」마저 등장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는 공당이 「소영웅주의」에 물든 한 개인의 범죄행위에 놀아났다는 여론의 비판을 희석시키고,나아가 국민회의가 떠안게 될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역공의 성격이 짙다.선거부정,신한국당의 당선자 영입작업과 같이 이 문제로 여권과 정국주도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여보겠다는 기세는 아니다.국민회의가 조기수습으로 가닥을 잡아나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양승현 기자〉
  • 최승진씨 오늘 영장/외교문서 변조/어제 귀국… 긴급 구속

    ◎검찰,권노갑·조승형씨 조사 방침 외무부 전문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특별범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3차장)는 10일 뉴질랜드에서 강제송환된 뉴질랜드주재 한국대사관의 최승진 전 행정관(52)을 공문서변조혐의로 긴급구속하고 변조경위와 공모여부 등을 밤샘조사했다.11일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했다.〈관련기사 4면〉 조만간 국민회의 권노갑의원도 불러 변조사실을 미리 알았는지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권의원은 지난해 지방자치선거 이틀 전인 6월25일 최씨가 보낸 문서를 공개하면서 『외무부가 문서를 변조토록 지시했다』고 주장,공로명 외무부장관에 의해 명예훼손혐의로 고소당했다. 검찰의 관계자는 『관련자료와 방증수사를 통해 최씨의 문서변조혐의를 어느 정도 확인했다』며 『당시의 민주당 관계자들이 최씨의 문서변조에 가담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로부터 문서를 받아 권의원에게 전달한 헌법재판소 조승형재판관도 조사할 방침이다.그러나 이 사건으로 고소당한 국민회의 김대중총재를 조사할지 여부는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최씨를 상대로 당시 권의원이 문서변조를 요청했는지 여부,변조문서를 조승형 재판관을 통해 권의원에게 전달한 경위 등을 추궁했다.당시 뉴질랜드대사 이동익씨(현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등 외무부 관계자도 조사했다. 그러나 최씨는 『전문을 변조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전면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박은호 기자〉
  • 북 해외공관 4중고 직면/국제전략연구소가 분석한 최근의 실태

    ◎망명 신드롬·운영 자금난·주재국 마찰·요원간갈등/외교관 등 망명 잇따르자 “비상”… 특단조치 강구/공관 운영경비도 크게 모자라 5년새 27곳 폐쇄/요원들간 폭력·폭언 난무… 상호감시 등으로 불신 고조 잠비아 주재 외교관 부부와 공직원 망명으로 북한 외교부에 바상이 걸렷을 게 분명하다. 현성일씨의 망명에 대해 북한은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북한 외교부는 해외공관 운영과 관련,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고 있을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외교관망명으로 지난 91년 콩고주재 외교관 고명환씨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인데다 현씨외에 현씨 부인 및 공작원의 집단탈출은 북한 해외공관이 안고 있는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에서 야기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재해외에 주재하는 북한 공관은 이들의 망명사태로 큰 충격을 받은 가운데 연쇄 망명신드롬, 공관 운영에 필요한 외화난, 밀수 등으로 악화되고 있는 주재국과의 마찰, 공관내 요원들의 불협화음 등 4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외교부 수뇌가 문책당할 가능성이 많으며 외교부 진용도 바뀔 공산이 큰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망명 신드롬◁ 북한 당국은 현씨일행 망명이전에도 상호감시는 물론 근무자들이 공관밖으로 나갈 때 단체행동을 하게 하는등 집안단속을 해왔으나 이번 망명사태를 계기로 감시와 단속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언제 어디서 제3,제4의 망명자가 나타날 지 모르기 때문이다.우리 외무부가 외교관을 포함한 북한 특권층의 연쇄 망명에 대비,모종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북한의 해외공관은 이러한 망명신드롬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왜냐하면 아무리 폐쇄적인 북한 외교관 사회라 하더라도 현씨 일행의 망명은 물론 지난 94년의 강성산총리 사위 강명도씨의 탈북,지난해 12월 대성총국 유럽지사장인 최세웅 부부의 탈출등 특권층의 잇따른 망명사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이고 이 영향으로 망명이 잇따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교관을 포함한 북한 특권층의 망명과귀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북한 상층부가 체제에 대한 불안및 회의·경제난등의 이유로 심하게 동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체제의 통제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운영 외화난◁ 북한이 어느정도 심각한 외화난에 처해 있는 지는 북한의 해외공관 운영 실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북한은 공관을 운영할 외화가 크게 부족해 지난 91년부터 해외공관을 잇따라 폐쇄했다.91년 노르웨이와 몰타주재 공관등 9곳의 문을 닫은 데 이어 92년 3곳,93년 2곳,94년 1곳을 폐쇄했으며 지난해에는 무려 12곳을 없앴다.이처럼 공관이 줄줄이 폐쇄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외화부족에 따른 공관운영경비의 조달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현재 1백34개국과 수교하고 있는 북한의 상주대사관·영사관·대표부등 해외공관수는 64개소로 지난 5년동안 무려 27곳이 줄었다.올해도 아프리카와 동구권등 실익이 비교적 적은 지역을 대상으로 6∼8곳의 공관이 문을 닫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우리의 수교국이 1백82개국가,상주 공관이 1백41개소에 이르고 있는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북한의 해외공관 예산은 형편없이 적다.그래서 북한 정부는 공관운영비를 자체조달하도록 채근하고 있으며 공관은 운영비가 턱없이 모자라 만찬등 일상적인 의전행사마저 거의 중단한 상태이다.현씨가 주재했던 잠비아의 경우 공관운영자금 지원이 6개월째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등 근무요원들의 월급도 보잘 것 없다.대사 4백달러,참사관 3백달러,1등서기관 2백80달러,3등서기관은 2백5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그나마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한다.해외근무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본국의 요원들에게 선물상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공관원들은 먹고 입는 것 해결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또 본국정부의 공관운영비 자체조달 지침에 따라 외교활동은 뒷전에 밀어놓고 밀수등으로 돈벌이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불만은 대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재국 마찰◁ 캄보디아등 일부 친북성향의 국가들을 제외하고 북한과 주재국과의 관계는 대부분 좋지 않은 편이다.북한이 외화벌이를위해 밀수를 하거나 마약을 대량으로 유입하는가 하면 달러를 위조하다가 적발당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지난 94년 10월 이집트의 카이로공항당국은 북한 대사관에서 외교파우치를 이용,밀반입하려던 비디오세트·비디오카메라·무선전화기등을 압수했다.이집트 외무부는 북한 대사관에 대해 강한 경고를 했으며 이로 인해 양국관계가 매우 불편해진 상태다.또 93년엔 네팔에서 북한 대사관 직원이 은괴등을 밀수하다 발각됐으며 지난해 요르단 세관은 북한이 외교관 차량을 이용,담배를 몰래 들여오는 것을 적발한 일도 있다.잠비아에서는 코뿔소뿔과 상아를 밀매하다 걸리기도 했다.이뿐 아니다.필로폰등 마약류도 대사관을 통해 밀반입하기 때문에 북한 대사관이 있는 나라에서는 북한 외교관들의 짐이나 외교파우치에 대해서는 감시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특히 몇년전 마카오에서는 달러를 위조하다 적발돼 큰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이런 불법적이고 불미스러운 일들로 주재국과 잦은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요원간 갈등◁ 다른 나라의 공관과 달리 북한공관원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다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공관원들 상호간에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고 상호감시·소환 및 강제송환등으로 불신과 갈등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는 것.지난달 16일 귀순한 현씨의 부인 최수봉여인의 직접적인 망명동기가 대사인 김응상의 폭력 때문이었고 공작원이었던 차성근씨의 경우는 강제송환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귀순 고영환씨가 말하는 공관 생활/“사상적동요 원천봉쇄” TV는 봉인/외부활동땐 2∼3명 단체행동 필수 『북한에서 외교관은 1등 신랑감으로 꼽힙니다.그래서 「평양처녀들은 외교관이라면 애꾸눈이나 절름발이라도 좋아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평양 아가씨들이 외교관을 선호하는 이유는 세가지.출신성분이나 가정환경,자라온 성장과정 등이 깨끗하여 출세가 보장돼 있고,엄격한 신체검사를 거치므로 건강도 안심할 수 있으며,달러를 만질 수 있는데다 아파트배정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평균 50대 1의좁은 문을 뚫고 외교관이 되기도 어렵지만 외국에 나가기도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또 외국에 나간다해도 생활이 편해지거나 살림에 여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구요.명색이 외교관인데 탈출을 막기 위해 여권을 단체로 보관하질 않나 사상적 동요를 막는다는 구실로 대사용외 TV는 모조리 봉인,주재국 TV시청도 맘대로 못합니다』 지난 91년 망명전까지 콩고주재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으로 근무했던 고씨가 전하는 외교관에 대한 단속은 그에 그치지 않는다.외출할 때마다 외출기록부에 등록,대사의 결재를 받아야 하고 외부활동때도 2∼3명이 단체행동을 해야 하며 심지어는 외교관 및 외교관 가족이 부를 노래,불러서는 안될 노래까지 지정된다는 것.『바깥 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 외에 빠져나가기 힘든 새장에 갇혀 사는 신세는 외교관이라 해서 다를게 없다』는게 고씨의 말이다.
  • 이데올로기의 희생양 기구한 삶 오학증씨(압록강 2천리:21)

    ◎북한으로 피신… 강제송환돼 감옥생활 11년/79년 출옥후 개가한 아내 수소문해 재결합/독립군 출신 부친도 반동으로 몰려 개죽음 요령성 단동시 조선족소학교 아파트에서 신경질환으로 만년을 보내고 있는 오학증(64)선생은 기구한 운명을 산 사람이다.그 격변의 대륙에서 조선족 누구인들 정치이데올로기에 휘말려 모진 삶을 살지 않았을까만,그의 인생역정은 남달리 불행했다.그의 일생은 대륙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극의 드라마 그것이었다. 『제 아내와는 두 번을 장가 든 셈이디요.그래서리 아이들도 제대로 못 키우고….이자 나같이 사는 사람들이 다시 없도록 평안한 세상이 돼야 합네다.지난일들을 생각하면 다가 악몽이야요』 한 아내에게 두 번을 장가갔다는 말이 의아스러웠다.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는데,자신이 반우파로 몰려 감옥살이 하는 동안 아내가 살길이 없어서 한족 홀아비한테 개가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그가 1979년 1월 감옥에서 나왔을 때 아내는 이미 남이 되어 있었다.개가한 아내가 사는 곳을 수소문해서 한족영감에게 애걸복걸했다.그렇게 찾아온 아내다.그는 우파누명이 벗겨져 본래의 자리인 소학교로 돌아와 정년을 넘기고 지금은 학교가 내준 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다시 살고 있다. 그는 요령성 환인현 사전자 태생이다.부친은 평북 구성 사람인 오성오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1930년대 독립군 해산과 더불어 관전현 보달원에서 교편을 잡았다.해방이 되자 부친은 교장 자격으로 손수 학교를 꾸리면서 일본 메이지대 출신 전봉천을 초빙해와 같이 일했다.그무렵 팔로군이 보달원에 들이닥쳤다.그리고 나서 이내 미국식 현대무장을 갖춘 국민당 군대가 밀고 들어왔다.부친이 교사로 초빙한 전봉천은 국민당 편에 서서 한국교민회를 조직했다. 『제 부친께서는 장래의 시국을 예견하신 것 같았습네다.국민당에 붙어서 보달원에 출장온 전봉천선생에게 이런 말을 했디요.이 사람아 자중하게.국민당이 기세당당하게 왔디만 조만간 팔로군이 또 올 것이라고….아니나 다를까 1947년이 되면서 국민당이 꺾이고서리 농촌 전체가 공산당 일색이 되고 토지개혁을 착수했디요.나도 당시 아동단에 참가하지 않았겠습네까.팔에 빨간천을 두르고 목창 개지고 보초도 서고…』 ○통화사범학교 진학 오씨네 일가의 비극은 이 때에 닥쳐왔다.공산당은 국민당과 가까운 사이였던 부친의 독립군 경력과 반동 전봉천과의 관계를 문제삼았던 것이다.『아무개가 반동이다.죽이는 것을 동의하는?』라고 물으면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슬 시퍼런 시대였다.부친은 공산당에 체포되어 몽둥이를 맞고 세상을 떴다.마을사람 김희묵은 빈농이었지만 억울하게 죽었다.옷을 깨끗이 차려입고 나온 통에 그를 부농으로 착각한 공산당이 조리질을 돌려 죽여버렸다. 그러한 상황이었으니 오학증선생의 어린시절은 불우할 수밖에 없었다.중학교 입학자격마저 잃었다.철저하게 계급을 따진 공산주의사회는 가갸 뒷다리도 모르는 빈농의 자식들 위주로 신입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그러니 학교 꼴이 말이 아니었다.공산당도 할 수 없이 중학교 시험제를 채택하게 되어 어린 오학증에게도 중학입학의 길이 열렸다.밭에서 가을일을 하다 학교로 달려가 시험을 치러 홍광중학에 들어갔다.한국전쟁이 터져 거의가 지원군으로 나갔지만 나이가 어려 면제를 받고 통화사범학교에 진학했다. 사범학교 졸업이후 첫 부임지는 지금의 단동인 안동시 북광소학교.학교 당조직에서 자신이 중점 육성대상자가 될만큼 열심히 일했다.그러다가 1957년 반우파투쟁이 일어났다.교육정책을 바꾸어 한족과 조선족의 연합교육을 실시하는 바람에 교육의 질이 형편없게 떨어졌다.곧은 성질을 가진 오학증선생은 이를 시정해야 된다고 건의했다.그 건의가 화근이 되어 우파로 낙인찍힌 것은 물론 부친의 청산을 암암리에 보복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라는 모략까지 따라 붙었다. ○당국에서 이혼 강요 그에게 내려진 일종의 형벌은 혹사를 통해 정신을 바로잡게 하는 이른바 노동개조.월급은 취소되고 하루 1원57전을 받는 건축공사장에 끌려다녔다.1957년 1월에 결혼하고 신접살림을 차린 지 다섯달이 안되어서 일이다.비단공장에 들어가기로 되어있던 아내의 일자리도 취소되고 말았다.죽지못해 살기를 4년여 성상,1961년 우파 너울이 벗겨져 교사로 다시 복직되었다.그러나 비극은 끝나지 않고 1966년 문화혁명이 기다리고 있었다.그해가 중반에 접어든 6월22일 출근길에 자신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보았다.그러지 않아도 신경쇠약에 걸려있던 터라 병원진단서를 붙이고 학교를 쉬었다.그런 어느날 학교에 들어온 군대표로부터 중요한 일이 있으니 다음날 학교에 꼭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아무래도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날 관전현으로 올라가 압록강을 건넜다.북한으로 탈출한 것이다. 그가 북한으로 도망친 것을 눈치챈 학교는 이를 당국에 고발했다.곧 북한당국에 연락되어 1주일간 신의주에서 구류를 살았다.그리고나서 중국으로 강제송환된 그는 15년형을 받았다. 『아내가 감옥으로 면회를 왔습데다.아들 둘 하고 세 돌이 난 딸애를 업고 왔디요.철딱서니없는 어린 딸이 제가 먹던 싸구려 과자를 쥐고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는데 고만 눈물이 쏟아집데다.두번째 면회때는 아내가 혼자와서 이혼을 제기하길래 거절했더니 대성통곡을 하고 애들의 앞날을 봐서리 이혼해달라는 것이었디요.그후에 감옥소 소장이 저를 대신해서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 강제 이혼하고 말았수다』 아내 김성란(61)씨도 평북 벽동 사람이다.시집을 가면 죽어도 그 집에서 귀신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터라 도리를 모를 까닭이 없었다.아이가 학교에 가면 새끼반동이라고 따돌리고 당국에서도 이혼을 강요해 별 도리가 없었다.막상 이혼을 하고 났더니 문화혁명 이후의 관행대로 산골로 내몰았다. 열세살과 일곱살짜리 아들.세살짜리 딸과 함께 내팽개쳐진 곳은 한족들만이 우글거리는 봉성현 백기공사산하 지리대대.살길이 아득했다. 그의 아내는 고생으로 살아서인지 나이보다 훨씬 늙었다.남편옆에 앉아 훌쩍훌쩍 울기를 여러차례하고 나서 겨우 말문을 열었다.그 표정은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한 것이었다. ○신경질환으로 고생 『제가 못된 여편네디요.아이들 하고 죽지 못해 한 일이디만….기래도 두 해를 버티다 한족 홀애비 백국영을 만나 재혼했습네다.저녁이면 아이들을 재워놓고 한참씩 울다가는 한족 영감옆에 누어잤디요.그런데 11년만에 무죄석방된 저 양반이 그 산골을 찾아왔디 뭡네까.저는 간염에 걸려 다 죽어가는 터디였디요.저 양반이 하루를 살더라도 복혼하자고 그럽데다.저도 한 마음이었수다.한족 영감도 인생들이 가여웠던지 저를 놔 주었디요』 그들이 재결합한 지도 어언 19년이 되었다.이산부부의 후유증은 아물지 않아 자신은 신경질환을 앓고 큰아들은 뇌종양으로 병신으로 살아가고 있다.대륙의 몇차례 큰 바람은 이들 가족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었는지도 모른다.
  • 해외도피사범 검거 총력/경찰청,인터폴과 공조 강화

    경찰청 외사관리관실은 12일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뒤 해외로 달아나는 범죄자가 해마다 급증세를 보임에 따라 1백76개국 인터폴회원국과 공조수사체제를 강화,이들을 강제송환하는 등 해외도피사범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히 현재 11명에 불과한 인터폴요원을 15명으로 늘려 세계적인 수사망을 갖고 있는 미연방수사국(FBI)과 협조체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경찰은 FBI가 오는 7월 서울에 한국지부를 설치할 계획이어서 그동안 범인송환에 가장 어려움을 겪던 미국과도 공조체제가 이루어져 미국으로 피신한 범죄자 83명을 검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조선족 무역대표단장 자살/부산서 지난 24일

    ◎단원 30여명 입국불허 항의 【북경 연합】 대한무역 진흥공사(KOTRA) 초청으로 지난 23일 부산에서 개막된 신발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갔던 중국무역대표단 단장 김금송씨(59·중국과학 기술위원회 연길시지부장)가 24일 우리나라 관계당국이 대다수 단원에 대해 입국을 불허,중국으로 강제송환조치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부산에서 자살,이곳 조선족사회에 큰 파문을 던져주고 있다. 중국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40여명으로 구성된 이 대표단의 단원은 대부분 조선족으로 무공 대련 무역관측의 주선으로 무공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뒤 북경총영사관으로부터 입국비자를 발급받는등 정식절차를 밟아 24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것으로 26일 전해졌다. 그러나 공항출입국당국 관계자들은 이들 대표단의 입국자격을 심사하면서 『전시회에 온다는 사람들이 가방속에 돈은 없고 약병만 가득한 것으로 보아 도주및 불법체류의 소지가 높다』는 등의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으면서 대표단원 가운데 38명을 입국불허,중국으로 송환조치하고 단장인 김씨를 포함한 4명에 대해서만 입국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단장인 김씨등은 공항당국에 『우리를 거지로 아느냐.초청해놓고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항의를 제기하면서 입국허용을 요구했으나 이같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특히 김씨는 단장으로서 대다수 단원이 중국으로 강제송환된 것을 막지 못한 데 따른 자책감에서 자살했다고 이 소식통들은 전했다.
  • 전쟁포로(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6)

    ◎미­북한,송환방법 싸고 2년간 첨예 대립/이 대통령,반핵포로 2만여명 전격 석방 1951년 7월 8일 개성회담을 시작으로 2년간 지속된 휴전협상에서 가장 큰 쟁점은 포로문제였다.한국전쟁에서 독특한 양상을 표출한 포로문제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까지 비화됐다.그래서 휴전협상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이 포로문제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난항을 거듭했다. 북한은 포로문제를 불리해진 전황정비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또 전쟁 조기 종료를 바란 미국 주축의 유엔은 휴전회담에서 북한측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전세가 아군에 유리하게 전개되면서 한국전쟁을 통일의 기회로 여겼던 이승만 대통령은 처음부터 휴전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특히 포로문제에 있어서 유엔 협상대표들이 북한측의 요구를 수용하자 마침내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 반공포로들을 석방해 버렸다. 그렇다면 한국전에서 포로문제가 복잡하게 꼬였던 이유는 무엇일까.여기에 대한 대답은 유엔군에 생포된 포로의 성분이다.생포된 공산측 포로중에는 북한에 의해 강제 징집된 수많은 남한출신과 함께 장개석의 국부군 출신 중공군이 끼어 있었다.이에따라 휴전회담에서 포로송환문제가 거론되자 이들이 북한과 중공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면서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북·중 송환거부자 급증 미국은 휴전회담이 개막되기 전인 7월에 접어들어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당시 미 육군 심리전감 매클루어 준장은 콜린스 참모총장에게 정전이 될 경우 국부군 출신 포로들을 대만으로 보낼 것을 건의해놓고 있는 상태였다.워싱턴에서는 51년 가을내내 포로문제에 대한 논의가 계속됐다.그러나 자원송환과 강제송환,1대1교환과 전체대 전체 교환,인도주의적인 입장과 제네바협정 준수가 엇갈려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해 10월 판문점에서 협상이 재개됐으나 협상 벽두부터 북한측은 휴전협정 조인즉시 양측의 모든 포로들을 석방하자는 의견을 강력하게 들고 나왔다.그러면서도 북한측이 제시한 포로 숫자도 터무니 없게 축소돼 의혹을 불러일으켰다.유엔군은 공산군 포로 13만2천4백74명(중공군 2만7백명)의 명단을 제출하면서 민간인 수용자로 별도 격리 수용한 3만7천명이 더 있다고 미리 밝혀두었다. 반면 공산측은 한국군 7천1백42명과 유엔군 4천4백17명을 합쳐 고작 1만1천5백59명의 포로숫자를 제시했다.북한측이 한달전 평양방송을 통해 주장한 포로수가 6만5천명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났다.유엔군측은 그 때까지 실종인원을 한국군 8만8천명,미군 1만1천5백명 이상으로 파악해 놓고 있었다. 휴전회담은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한채 51년을 마감했다.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양상이 달라져 양측이 좀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나왔다.19 52년 1월2일 회담에서 유엔군측 대표 R E 리비 미 해군 소장은 자원송환 원칙을 강력히 담은 포로교환을 제안하고 나섰다.공산군측은 이를 즉각 거절했다.이무렵 워싱턴에서는 자원송환의 원칙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종전의 입장을 바꾸었다.반드시 고수해야 한다는 강경론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송환원칙으로 인해 협상이 교착되자 쌍방은 세부적인 사항의 타결을 시도해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는 듯 했다.3월5일 공산측은 전년도 12월18일 교환된 명단에 입각한 송환을 제의하면서 꼬리를 달았다.전선에서 석방했다는 유엔군측 포로 5만여명의 행방을 유엔군이 묻지 않는다면 유엔군이 억류하고 있는 3만7천명은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었다.유엔군측은 이미 명단을 제출한 공산군 포로 13만2천여명에 대한 조사결과 겨우 7만명이 송환을 원한다는 사실을 통고했다. 공산측은 이를 유엔군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맞서 회담은 또 교착상태에 빠졌다.4월28일 유엔군측은 일괄타결안을 제시하고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과 미 트루먼 대통령은 각각 성명을 내놓았다.유엔군측이 제시한 일괄 타결안에는 공산측이 통고한 송환가능 유엔군 포로 1만2천여명을 인정하고 송환을 희망하는 유엔군 억류 공산군 포로 3만여명과 교환한다는 조건이 포함됐다.당시의 분위기를 볼때 상당히 완화된 이 조건은 공산군측에 실리를 넘겨준 것이었다. ○공산포로,소장 인질로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5월7일 거제도 제76포로수용소장 F T 도드 준장이 공산포로들에 의해 피랍되면서 공산측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었다.도드 준장을 인질로 잡은 공산포로들은 포로수용소측에 ▲독가스 및 세균무기 사용,원자탄 실험중지 ▲불법 부당한 인민군과 중공지원군의 자원송환 즉각 중지 ▲수천명의 포로를 재무장시키려는 강제조사 중지▲포로대표단 구성 승인등을 요구했다.도드준장 후임인 새 포로수용소장 C F 콜슨 준장은 포로들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공산측은 콜슨 준장의 회신내용을 들어 유엔군측이 지금까지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학대하고 세균전까지 서슴지 않은 것으로 선전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유엔군측은 10월8일 마침내 최종안을 제출했으나 공산군측이 거부함으로써 협상은 끝이났다.이후 10월14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포로문제를 다시 다루어 휴전문제가 유엔으로 옮겨갔다.유엔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스위스,스웨덴등 4개국으로 포로송환위원회를 구성해 본국송환을 원하는 포로는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그리고 모든 포로가 선택의 권리를 갖고 90일의 시한을 넘기고도 결정하지 못한 비송환자들은 휴전회담에서 위임한 정치회담에 이양하자는 인도의 절충안이 채택됐다.그러나 공산군측은 기본적으로 자원송환을 지지하는 유엔결의안을 수락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런 와중에 1953년 1월 미국에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행정부가 들어서고 3월에는 소련수상 스탈린의 죽음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판문점 연락장교회의를 통해 병상포로교환에 우선 합의했다.이에따라 4월26일 판문점에서 양측의 대표단 전원이 만났으나 회담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미국정부는 5월25일 회담대표자회의를 통해 최종안을 전달했다. 이 최종안은 6월4일 회의에서 약간 수정됐지만 송환을 원하는 포로는 휴전조인후 2개월내에 송환완료하고 잔여포로에 대해서는 그후 90일간의 설득기간을 갖도록 한다는 내용을 일단 도출해냈다.또 30일이내에 송환거부 포로문제를 정치회담에서 처리하되 합의를 보지못한 해당포로는 민간인 신분으로 변경키로 합의했다.민간인이 된 포로들은 뒷날 중립국 송환위원회에 의해 한국도 북한도 아닌 제3국으로향하는 운명이 결정되었다. ○첫 석방계획은 실패 그로부터 14일후인 6월18일 자정 남한에 수용됐던 반공포로 2만6천4백24명이 국군의 도움으로 수용소를 탈출했다.이른바 반공포로 석방으로 불리는 이 한국판 엑서도스는 이승만 대통령이 결정했다.유엔군과 공산군간에 휴전회담이 본격 진행되자 휴전반대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이승만 대통령은 10일 헌병총사령관 원용덕 중장등 군 수뇌들을 불러들였다.이 자리에서 반공포로 석방문제를 검토하고 다음날 정오 이를 시행토록 명령했다.그러나 한국군 병력배치등 준비미흡으로 첫 계획은 실패하고 1주일뒤인 18일 북한행을 거부한 포로들이 미군 경비 수용소를 빠져나와 자유의 품에 안겼던 것이다. ◎미 힉컬슨 작성 문서/미,공산군포로 난동에 시종 곤욕/북·중서 강력 항의… 정전협상 불리/도드 수용소장 피랍사건 상세 기록 미군은 한국전쟁 기간내내 공산군 포로문제로 시달렸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MARA)에서 입수한 문서더미 가운데 국제정치관계철 북한 전쟁포로 관련 시리즈는 이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시리즈는 미 국무성 차관보 힉컬슨이 1952년 2월18일 「한국의 전쟁포로」라는 제목으로 작성해 극동과 간부 엘리손과 존슨에게 발송한 문서로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이 문서시리즈에 따르면 미군측은 공산포로로 인해 지휘체계 상부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등 심한 타격을 받았다. 이 문서가 작성된 당일만 해도 한국인 포로를 조사하기 위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제62동에 진입한 미군병력과 포로들의 충돌로 미군1명과 포로 77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했다.이밖에 미군 38명,포로 1백40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를 빚었다.공산군측은 이사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유엔군측은 「민간인이 관련된 내부사건」으로 일축했지만 결국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엔군과 미군측은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리지웨이 장군이 이 시리즈 4월29일자 전문에서 수용소 상황에 대해 기술한 내용도 이같은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장군은 전문을 통해 『이들 수용소는 잘 조직돼 수용자들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힐 정도의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다스릴 수가 없다.하지만 위험한 폭동이나 유혈사태등의 모험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기술하는 등 포로문제로 고심한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문서 시리즈는 또 52년 5월7일 도드 거제도 제76포로 수용소장의 납치사건도 기록하고 있다.콜슨장군은 도드의 석방을 위해 포로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이 사건으로 5월20일 도드와 콜슨장군이 모두 대령으로 강등하는 과정도 잘 드러내 보였다.
  • 해외도피사범 송환 잇따라/경찰청 1∼8월 집계

    ◎인터폴 협조받아 올해들어 21명/사기범 6명 최다… 119명 추적중 국제조직범죄와 해외도피사범 등의 급증에 따라 지난 5년간 우리 경찰이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협조로 강제송환한 해외도피사범 수도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이 13일 발표한 「외국경찰 교류협력 실태」에 따르면 지난 90년 1명에 불과했던 강제송환인원은 91년 3명,92명 2명,93년 12명,94년 24명으로 크게 늘었으며 올들어 지난 8월까지 21명에 이르렀다. 올해 송환된 해외도피사범들을 국가·지역별로 보면 일본과 아시아가 각각 6명이고 미국 4명,중국 3명,유럽과 중남미가 1명씩이다. 또 범죄유형별로는 사기 6명,강력범 5명,횡령·배임,절도,위·변조 각각 2명 등이다. 경찰이 현재 인터폴에 소재지 파악및 신병인도를 협조요청한 해외도피사범은 중국에 도피중인 소쩍새마을 가짜 승려 정승우(51·일명 일력)씨와 장영자(50)씨의 사위로서 지난 93년 12월 47억원의 부도를 내고 홍콩으로 달아난 탤런트 김주승(34)씨 등 모두 1백19명이다.
  • 리비아/애인 추방/유혈사태뒤 7천명 강제송환

    【살로움(이집트) AFP 로이터 연합】 리비아정부가 7천명에 이르는 이집트인 불법체류 노동자들을 추방했다고 이집트 경찰당국이 10일 밝혔다. 대부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와 북서부 벵가지시에 거주하던 이들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그동안 날품팔이 노무자로 일해왔다고 경찰들은 덧붙였다. 리비아정부의 이번 조치는 지난 6일 벵가지시에서 이슬람 선동가들과 경찰이 충돌해 각각 20명과 10명 가량씩 총 30명이 사망한 이후 취해졌다. 리비아 정부는 또 이슬람 선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으며 특히 리비아 제2의 도시로 최근 반정부 세력의 집결지가 된 벵가지시 지역에 대한 수색작업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소쩍새 마을」 가짜승려 일력/후원금 1백억 착복… 중 도주

    ◎경찰,계좌추적 신병확보나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30일 지난 82년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2리 1320 1천3백여평에 「소쩍새 마을」을 설립,정신질환자나 미혼모,고아,정박아 등 2백여명과 생활하다 수용중인 소녀를 성추행하는 등 비위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14일 중국으로 달아난 가짜 승려 정승우(51·절도 등 전과 8범)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스스로 일력스님으로 행세하며 지난 89년부터 올해초까지 5차례에 걸쳐 TV방송에 출연,『침술 등으로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면서 『독지가들의 후원금을 기다리겠다』고 호소해 불교신자 7만여명으로부터 한 사람에 1만∼10만원씩 모두 1백20억여원의 후원금을 받아 이 가운데 20억여원만 재활촌 운영비로 쓰고 나머지 1백억여원은 비밀구좌에 관리해왔다는 것이다. 경찰조사결과 정씨는 올해초 소녀들을 강제로 성추행한 혐의로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고소를 당한데 이어 지난달 4일 일부 언론에 후원금 착복 등 비위사실이 보도되자 비밀구좌에서 10억원을 인출,중국 연길시로 달아난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에 따라 정씨가 비밀관리해온 1백억여원 가운데 80억∼90억여원은 국내에 가·차명계좌 형태로 입금돼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후원금 창구인 K은행 원주지점등 22개 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계좌추적에 나섰다.경찰은 또 인터폴을 통해 정씨의 소재파악 및 신병인도를 요청,강제송환키로 했다.
  • 후투족난민 13만명 수용소 탈출/자이르의 강제송환에 강력반발

    【고마(자이르)·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자이르내 난민수용소에 있던 르완다 및 부룬디출신 후투족난민 13만여명이 자이르당국의 강제송환을 피해 수용소를 탈출했다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 22일 밝혔다. 유엔과 미국은 비인도주의적 처사라는 입장을 보이며 자이르당국에 난민추방작전의 중지를 촉구했으나 자이르당국은 유엔에 대해 난민수용소를 다른 나라로 옮기라고 촉구,난민추방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등판무관실 관리들은 지난 19일부터 르완다난민 추방작전을 개시한 자이르군이 이날 고마인근 무궁가수용소에 있던 르완다난민들에 대한 본국송환을 재개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적어도 3만여명의 난민들이 캠프를 탈출했다고 말했다. 관리들은 이밖에 우비라인근에 있던 루베리지,루닝고,카구가수용소 등에서도 10만명에 달하는 르완다 및 부룬디난민들이 탈출했다고 전했다. 고마에서는 지난 수주일동안 5만여명의 난민들이 콜레라와 다른 질병 등으로 사망했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2

    ◎전화폐허서 교역 13위 경제강국 건설/부·마사태­10·26사건… 박정권 18년 마감­1979년/「민추협」 발족… 민주화운동 본격 점화­1948년/금융실명제·재산공개 등 대대적 개혁조치­1993년 ▷1971년◁ 2월17일 남한의 한필성,북한의 필화 남매가 국제통화로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4월27일 제7대 대통령선거,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7월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 39명이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8월23일에는 실미도 특수부대원이 서울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10월1일 전국에서 장발족 단속이 시작됐다.12월25일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8월3일 모든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는 이른바 「8·3 조치」가 발표돼 기업들이 자금숨통을 트게 됐다.10월17일 유신이 선포,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강제송환됐다.10월6일 이화여대생들은 쌍쌍파티 중단을 결의했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량 25%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석유파동이 발생,국내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74년◁ 4월17일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됐다.7월13일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육영수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졌다.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1975년◁ 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돼 가결됐다.3월17일 서울 면목동 YH무역 여공 2백여명이 신민당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6년◁ 8월1일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10월24일 박동선이 로비활동을 펼친 것이 미국에서 문제화됐다. ▷1977년◁ 8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송전을 시작했다.9월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11월11일 이리역에서 한국화약의 화약수송열차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8년◁ 1월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납북됐다.4월24일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수매부정에 항의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6월30일 현대아파트 부정분양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7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년◁ 10월7일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됐다.10월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10월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부마사태).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12·12사태). ▷1980년◁ 4월21일 사북광업소 광부 7백여명이 어용노조에 반발해 광산촌을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5월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가 신설됐으며 8월27일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0월13일 삼청교육 실시가 발표됐다. ▷1981년◁ 1월13일 대학졸업 정원제가 도입됐다.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전두환이 초대 총재로 선출됐으며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 피고인 12명의 형량을 확정했으나 김대중은 나중에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됐다.전두환은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2년◁ 3월18일 고신대생 문부식등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3월27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5월7일 대검은 대화산업회장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외국환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1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등이 구속됐다. ▷1983년◁ 1월11일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방한,한일정상회담을 갖고 40억 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3월17일 일본에서 활약중이던 프로기사 조치훈이 기성을 획득,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5월18일 김영삼 신민당총재는 민주화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을 주장하며,자택에서 단식에 들어갔다.6월1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다.10월9일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 발생,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등 17명이 사망했다.11월17일 동아건설은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리비아 1단계 대수로 공사를 32억9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1984년◁ 5월18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발족됐다.22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됐다.9월6일 전대통령은 일본을 공식방문했다.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만찬에서 과거의 한일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9월 북한 적십자가 보내준 수재구호물자를 남한측이 인수했다.미국방송이 의정부에 핵배낭 특수부대가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5월23일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사과 요구 및 반미구호를 외쳐 충격을 주었다.9월20일 남북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각 1백51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1986년◁4월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등 시위가 본격화됐다.7월2일 부천에서 시위중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양을 경찰관이 성고문한 사건이 처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다가 고문사했다.4월8일 김대중·김영삼씨는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13일 전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논의 유보를 발표하고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24일에는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다.6월10일 민정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29일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수용을 밝혔다.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1월14일 문교부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확정 발표했다.2월25일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했다.4월26일 13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그 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났다.9월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돼 10월2일까지 계속됐다.11월부터는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됐다.11월2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백담사로 은둔했다. ▷1989년◁ 3월25일 문익환목사가 방북,김일성과 면담했다.6월30일에는 외국어대 임수경양이 북한에 들어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0∼1년◁ 90년2월9일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민자당이 창당됐다.10월1일 한소양국이 수교했다.91년2월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이 발생,이원배등 의원5명과 청와대비서관,정태수 한보그룹 회장등 8명이 구속됐다.12월18일 노대통령은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으며 같은달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가서명했다. ▷1992년◁ 3월24일 14대 총선이 실시돼 2번째 여소야대가 실현됐다.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95년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8월22일 중국과 수교,주변 4강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2월19일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은 2월25일 취임후 공직자 재산공개,군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실시등 굵직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이회창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6월 율곡사업감사,7월 평화의 댐 감사등 과거비리를 사정했다. ▷1994년◁ 정부의 외교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집중됐다.그 결과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됐다.국내적으로는 구포 열차전복사건,위도 여객선 침몰사건,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아현동 가스폭발사건,성수대교 붕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년◁ 6월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자치선거가 일제히 실시된 결과 수도 서울의 시장에 민주당의 조순후보가 당선되는등 시도지사에 대거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다.4월28일 대구가스폭발에 이어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고가 계속됐다.
  • 외무부 강공에 민주 슬그머니 발뺌/「문서변조」 공방 제2라운드

    ◎“전모 밝혀 명예회복” 최씨 사봅조치 총력­외무부/“외무장관에 변조책임” 주장속 추이 지시­민주 외무부 전문 변조·유출사건은 27일 민주당측에 문서를 제공한 최승진 전 외신관이 고의로 변조,유출한 것으로 사건 윤곽이 드러나면서 외무부가 공세,민주당이 수세로 몰리는 형국으로 반전됐다. 지방선거 투표일인 27일 외무부는 검찰수사 및 자체조사결과 최씨가 변조를 해 민주당에 유출했음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명예회복을 위해 마치 외무부가 공문변조를 공관들에 지시한 양 정치공세를 벌였던 민주당에 대해 사법적으로 강력히 대응키로 했다. 이에 반해 민주당측은 권부총재 등이 최씨에게 현혹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외무부가 직원인 최씨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추궁하는 등 한걸음 물러서는 자세를 보였다.이에 따라 선거후 최씨가 귀국한뒤 이 사건이 사법적으로 어떻게 처리될지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외무부◁ 27일 상오 공로명 장관 주재로 실국장회의를 열어 지방선거이후 외교전문 유출,변조 사건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인지 대책을 논의했다. 공장관은 회의에서 민주당측이 『외무부가 문서변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서 후퇴하는 등 「꼬리를 내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선거결과나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사건 전모를 명확히 밝혀 외무부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며 고삐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외무부는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전문을 변조,유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승진 전 외신관을 뉴질랜드로부터 귀국시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외무부는 이날 회의에서 최씨의 흥분을 가라앉혀 스스로 서울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되,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뉴질랜드 정부와 협의해 강제송환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난뒤 김항경 기획관리실장은 『간부들은 물론 직원 전체가 이 사건이 정치쟁점화하면서 외무부의 명예가 크게 훼손되고 신뢰성도 떨어졌다고 개탄하고 있다』면서 미국,일본,그리스,태국,호주 등 8개 공관직원들이 연명으로 타전해 온 민주당 비난 전문을 공개했다.전문들은 한결같이 민주당의 처사를「울분」「모독」「경악」「터무니없이 날조」 등의 격렬한 표현으로 비난했다. ▷민주당◁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최승진 전 외신관의 변조가능성이 점점 높아지자 『우리가 최외신관에게 놀아난 게 아니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외무부가 변조했다는 지금까지의 주장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파문의 방향을 문서변조의 진위여부에서 외무부장관의 관리책임을 추궁하는 쪽으로 틀기 시작했다.하지만 공로명 외무장관 고발방침은 불변이라는 주장이다.박지원 대변인은 『당명으로 고발할 것인지,권노갑 부총재 명의로 고소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구체적 법률검토가 끝난뒤 공장관 고발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박대변인은 『민자당이 우리가 한발 물러선 것처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권부총재 등도 『최전외신관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을 의심치 않는다』고 검찰의 중간수사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대변인은 『정부 주장대로 최전외신관이 공문서를 변조했다면 그책임은 외무부장관이 져야 할 것』이라고 당초 「외무부가 변조를 지시했다」고 주장하던 당당한 입장에선 크게 후퇴한 「책임론」을 들고나왔다.최씨가 제공한 문서를 공개한 민주당보다 이를 변조,공개하기까지 직원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외무장관의 책임이 더욱 크다는 「퇴로확보용」주장인 셈이다. 박대변인은 또 『만약 최전외신관이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고 공문서위조 전과가 있다면 왜 그런 사람을 암호해독과 국가기밀문서를 다루는 자리에 보임했느냐』며 『최전외신관이 공문서위조 전과가 있건 실제로 공문서를 변조했건 그는 민주당원이 아니라 외무공무원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궁색한 주장을 했다. 설훈 부대변인도 『사건경위야 어찌됐건 외무부직원에 의해 일어난 사건인 만큼 외무부 직원들은 자숙해야 한다』며 외무부를 비난했다.
  • 「공문변조」 최씨 강제소환 추진/외무부

    ◎민주당 「외무부 지시」 주장 사실상 철회 외무부는 27일 상오 공로명 외무부장관 주재로 실·국장회의를 열어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전문을 변조,유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승진 전뉴질랜드 대사관 통신행정관을 빠른 시일안에 송환할 필요가 있다는데 의견을 모으고,이동익 뉴질랜드 대사에게 29일 이전 최씨를 설득,귀국시키도록 지시했다. 외무부는 그러나 최씨가 설득에 응하지 않을 경우,본국에서 고위간부를 보내 설득하거나 뉴질랜드 정부측과의 협조를 통해 강제송환하는 방법도 검토키로 했다. 외무부는 뉴질랜드와 사법공조협정이 없기 때문에 뉴질랜드 정부가 최씨를 미국이나 호주등 우리나라와 사법공조협정을 맺은 제3국이나,우리나라 국적기로 추방케 한뒤 서울로 데려오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편 민주당은 27일 외무부 문서변조시비와 관련,최승진씨가 문서를 변조했더라도 그 책임은 외무부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민주당이 그동안 외무부가 공관에 변조지시를 내렸다는 주장을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받아들여질 수도 있어 주목된다. 박지원 대변인은 그러나 이날 성명을 통해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최외신관의 변조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하고 『여러 정황을 볼 때 최외신관이 문서를 변조했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정부측 주장을 반박했다. 박대변인은 또 『공로명 외무부장관을 고발한다는 당론은 불변』이라면서 『다만 당명으로 고발할 것인지,권노갑 부총재 이름으로 고소할 것인지 우리당의 율사들이 검토중에 있다』고 말했다. ◎최씨부인 오늘 소환/문서전달과정 조사/검찰 외무부 비밀외교문서 변조·유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1부(황성진 부장검사)는 27일 문서를 유출한 전뉴질랜드 대사관 행정관 최승진씨(51)의 부인 오모씨(40)를 28일 하오 소환,문제의 전문을 민주당 권로갑 부총재에게 전달했는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최씨가 권부총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문을 인편으로 보낸다』고 알렸고 외무부에서 지방자치제 관련 전문을33개 해외공관에 보낸지 사흘뒤인 3월26일 오씨가 귀국한 점으로 보아 문제의 전문을 권부총재에게 직접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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