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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대통령 “日 역사인식 중요… 아베 담화 기회 살려야”

    朴대통령 “日 역사인식 중요… 아베 담화 기회 살려야”

    박근혜 대통령은 1일 한·일 관계와 관련, “일본 정부가 그간 한·일 우호 관계를 지탱해 온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 등 일본 역대 정부의 역사인식을 종전 70주년인 올해 명확히 밝히는 것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8·15 담화(아베 담화) 등의 기회를 잘 살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이홍구 전 총리와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 등 한국과 일본의 정·관·재계 원로들로 구성된 ‘한·일 현인(賢人)회의’ 인사들을 접견하며 “최근 양국 간 외교, 국방, 경제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다양한 레벨의 대화 노력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에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이제 52분만 생존해 계신다”면서 “이분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일본 측의 용기 있는 결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과거사 문제와 안보·경제 등 다른 현안을 분리하는 ‘대일 투트랙 외교’ 기조가 힘을 얻는 가운데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한·일 정상회담 등 최고위급 교류는 과거사 문제와 사실상 연계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모리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의 말씀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현인회의는 박 대통령 예방에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오찬을 함께하며 한·일 외교장관 회담 필요성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징용)시설이 포함한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日 “세계유산 등재 타협안 논의하자”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일본이 빠른 시일 내에 2차 협의를 갖자는 제의를 해 왔다. 최근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시기를 한정하지 말고 전체 역사를 함께 담으라고 권고한 데 따른 반응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28일 “1차 협의 당시 일본이 정부에 타협 방안을 논의하자고 밝혔다”며 “빠른 시일 내에 서울에서 2차 협의를 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22일 도쿄에서 최종문 외교부 유네스코 협력대표와 신미 준 일본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이 첫 협의를 갖고 양측의 입장을 교환했다. 정부는 일본의 유네스코 유산 등재와 관련해 등재냐 아니냐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역사를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등재결정문’에 강제노동을 명시하거나 관련 내용을 적시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일본은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등재를 추진하면서 1850년부터 1910년으로 시기를 한정했다. 그러나 ICOMOS는 전체 역사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해 1940년대에 집중됐던 조선인 강제노동도 포함돼야 한다는 정부 입장에 힘을 실어 줬다. 이 때문인지 정부는 나가사키현에 자리한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에 포함된 제3드라이독과 자이언트 크레인, 목형장(木型場), 야하타 제철소 등 7곳은 아예 유네스코 등재 목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제 강제노역 현장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를 막기 위해 유네스코 위원국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장핑(張平)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과 푸잉(傅瑩) 전인대 외사위 주임은 2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나경원(새누리당) 위원장 및 신경민(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만나 일제 강제노역시설의 문화유산 등재를 저지하기 위해 “다른 위원국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 위원장은 회담이 끝난 뒤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국은 우리보다 입장이 더 완고했다”면서 “한국은 굳이 (등재를) 한다면 징용 사실을 기록하라는 입장인데, 중국은 아예 등재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장핑 부위원장은 일본 측 행보에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중국 외교부 소속 한 참사관은 “전폭적으로 한국 입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한 23개 시설 중 3개 시설에는 중국인도 수용됐었다. 한국과 중국의 문제 제기를 의식한 일본 집권 자민당은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자국 정부의 분발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8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자민당 외교부회 등이 채택한 결의안은 일본 8개 현에 있는 ‘메이지(明治) 일본 산업혁명유산’ 23건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되도록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외교전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세계유산을 등재할 때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함께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사설] 日, 과거사 미화 유산등재 불가여론 수용해야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해 한·일 간 양자 협의가 오늘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이번 협의는 일본 측의 일방적 등재 추진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 정부는 주변국 고통의 역사를 외면한 채 단순히 산업혁명 시설로 미화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역사 왜곡이며 인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한다는 세계유산협약의 기본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일본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 언론들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유네스코에 권고했으며 문화유산 중 ICOMOS가 권고했다가 최종 단계에서 뒤집힌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6월 말 독일에서 열리는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이뤄지지만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인 하시마 탄광이나 미케 탄광 등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 정도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으로서는 산업혁명 유산 23곳이 근대 일본의 초석을 닦은 혼이 담겨 있는지 몰라도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착취와 수탈을 당한 우리로서는 고통스런 역사의 기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픈 과거사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 역시 “식민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며 강한 불만을 쏟아 놓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산업혁명 유산 23곳 중 7개 시설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 가운데 94명이 숨지고 5명은 행방불명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한을 외면하고 근대화 산업시설만 강조하는 것은 전형적인 과거사 왜곡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들도 과거사 미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다. 최근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고 일본 발전의 이면에 있었던 희생과 비극도 연구해 전달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실 그대로 보여 주고 올바른 사실을 후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책임이다. 메이지 산업 유산의 밑바닥에 강제 징용과 수탈의 고통스런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가해자 일본이 먼저 주변국들의 고통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동북아 전체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존 공영의 길로 나서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朴대통령 “日징용시설 세계유산 등재 반대”

    朴대통령 “日징용시설 세계유산 등재 반대”

    박근혜(얼굴) 대통령은 20일 방한 중인 이리나 게오르기에바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일본이 한국인 강제징용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에 대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유감스럽게도 일본이 일부 시설에서 비인도적인 강제노동이 자행된 역사는 외면한 채 ‘규슈·야마구치 및 인근 지역 메이지 혁명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는 것은 모든 인민을 위해야 한다는 세계유산협약의 정신에 어긋난다”며 “세계유산은 국가 간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화해·우호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국가 간 불필요한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보코바 총장은 “한국과 일본은 세계유산위원회의 회원국 일원으로 (본인은) 한·일 양자 간 대화를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면서 “세계유산위원회 위원장에게 대통령님의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보코바 만난 윤병세 “日 세계유산 등재 우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9일 방한 중인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만나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한이 서린 문화유산에 대해 일본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것과 관련해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윤 장관은 인천 송도 오크우드 호텔에서 가진 면담에서 “하시마 해저탄광 등 조선인 강제징용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유네스코 헌장 및 세계문화유산 협약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보코바 사무총장은 “세계유산 제도가 유네스코 회원국들의 통합에 기여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 자체를 막진 못하더라도 조선인의 강제징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방향으로 내용이 수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오는 22일 도쿄에서 이 문제를 놓고 양자협의를 할 계획이다. 정부는 보코바 사무총장이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않지만 정부 입장을 국제사회에 밝힐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등재 최종 결정권을 가진 세계유산위원회 21개 회원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설명에 나선 상황이다. 일본 역시 지난 8일 내각부, 외무성, 문부과학성 등의 정무관과 부대신 6명을 10개국에 파견했으며 17일에는 나카야마 야스히데 일본 외무 부대신이 위원회의 부의장국인 자메이카로 향하는 등 한·일 간 외교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일본이 신청한 23개 근대산업시설에 대해 ‘등재 권고’ 결정을 내렸다. 최종 등재 여부는 6월 28일부터 7월 8일까지 독일 본에서 열리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외국인 노동자는 허드렛일만… 日 이민정책은 없다

    일본 인구가 현재 1억 2700만여명에서 2060년 8700만여명으로 감소할 전망이지만, 일본에서 이민 정책 논의는 많이 부족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일손 부족을 보충하고자 일본 정부가 도입한 외국 인력 인턴제를 놓고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조사연구소의 히사시 야마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국가에서 이민자 유입은 필수적인 선택”이라면서 “공개적으로 이민 정책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급격한 고령화로 노인 간병 인력에 추가 투입해야 할 70만명 중 30만명이 부족해 ‘숙련 이민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장기적 이민 정책을 고민하기보다 인턴제를 통해 당장 필요한 인력을 땜질식으로 보충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 청년들이 인턴제를 통해 일본에 가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노인 간병, 편의점 계산원, 건설 일용직, 농장 근로 등뿐이다. 일본 정부는 “인턴제를 통해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 고국으로 돌아간 뒤 자활할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실제 외국 인턴 16만 7000여명 중 대부분은 단순 반복 작업에 소모되기 일쑤다. 그나마 노인 간병인의 경우 자격증을 따면 일본에서 장기 체류가 가능하지만, 일본 전문용어를 익혀 시험에 통과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WSJ는 전했다. 인구 대비 이민자 비중이 1~2% 수준인 일본이 이민자 유입에 시큰둥한 이유는 이민자 비중이 10%대에 이르는 유럽 국가들을 보며 부작용부터 걱정해서다. 인턴제만으로 일본 내 노동 인력 부족 문제를 개선하기는 어렵다고 이 신문은 경고했다. 당장 숙련된 간병 인력이 부족해 노인 50만명이 정부 지원 요양 시설 입주를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미 국무부가 발간한 ‘2014년 인신매매 보고서’는 인턴들이 강제노동에 노출될 가능성을 제기, 일본의 인권침해 위험도를 3개 등급 중 2등급으로 평가하며 굴욕을 안겨 주기도 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국제법은 약소국 학문… 외교 논리 제시할 것”

    “국제법은 약소국 학문… 외교 논리 제시할 것”

    “독도 문제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요란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만 그게 능사가 아닙니다. 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단 한 구절이라도 한국의 입장에서 적절히 인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절실합니다. 이제서야 첫걸음을 뗐습니다.” 지난 29일 만난 이장희(64)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힘이 약한 나라일수록 외교적 논의 과정에서 국제법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며 말문을 뗐다. 세계국제법협회 한국지부는 최근 ‘한국 국제법연감’ 창간호를 펴냈다. 2013년 내용을 담은 영문본으로 뒤늦게 나온 셈이다. 국제법원인 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국제법연감’은 각종 국제분쟁과 갈등을 둘러싸고 자국의 논리와 입장을 법적·논리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해놓은 간행물이다. 여러 나라가 자국의 입장과 행위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이 1956년부터 일본 국제법연감을 매년 발간하고 있고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여러 나라가 자국의 입장을 담은 국제법연감을 펴내고 있는 것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 교수는 “한국과 같은 약소국일수록 통상 무역을 중시하고, 큰 나라 사이에서 국가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만큼 통상외교, 안보외교가 중요하다”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 사이에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균형외교를 해야 하는 만큼 국제법연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듯 뒤늦게 나온 2013년분 국제법연감은 주로 일본과의 관계에서 불거졌던 국제 분쟁 및 갈등을 주로 담고 있다. 독도 문제는 물론,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 피해 배상을 둘러싼 다툼,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문제, 일본 아베 정부의 ‘집단 자위권’ 개념의 문제점 등을 다뤘다. 여기에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치앙의 자국 인도를 원한 일본과의 법리 논쟁도 더했다. 그는 “예컨대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는 너무 소극적으로 대하며 조용한 외교를 취한 반면, 국민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하곤 했다”면서 “정부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 발간한 국제법연감을 통해 외교적 논리와 국제법적 법리를 일관되고도 지속적으로 제시해 세계 각 나라 주요 인사들이 한국의 논리와 증거를 인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6월쯤 나오게 될 2014년분 ‘한국 국제법연감 2호’에는 더욱 뜨거운 이슈들이 집결된다. 아직 편집위가 꾸려지지는 않았지만 한·일관계 속 갈등만이 아닌, 한·중 문제, 한·미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며 확장된다. 주한미군의 소파(SOFA)협정, 반발에 부닥친 한·미·일군사정보교류협정을 대체한 한·미·일 정보공유 양해각서(MOU),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방어체제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한국의 갈등 등이 담길 예정이다. 이는 한국이 국제 외교적으로 미국에 일방적으로 치우칠 수도 없고, 중국에 새로 의탁할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힘겹고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지만 냉철한 균형외교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결정’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고민이 많다. “세계헌법재판기관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에는 국제법상 상당한 오피니언 리더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자유권 침해 국가로 규정한다’거나 ‘정당해산 절차가 인권규약이나 관련 5대 기준 등에 맞지 않다’는 조치만 나와도 한국의 국가 이미지에는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시민적 가치야말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강점이었는데 이번 헌재 판결은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으며 국제적 흐름에서도 탈냉전의 시대를 역행하고 체제의 성숙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경직된 결정이었다”면서 “향후 2015년 연감을 낼 때 심도 있게 다뤄야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법은 약소국의 학문”이라고 규정한 이 교수는 국제적 분쟁 사안에 대해 가능한 한 정부의 입장에서 국제법연감 편집 방향을 고민하지만, 전쟁과 갈등을 부추기거나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주의에도 강력히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인권위, 장애인 가혹행위 인강재단 또 다른 산하 장애인시설 추가 인권침해 확인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이 운영하는 경기 연천의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성추행과 강제노동 등 인권침해가 반복적으로 이뤄진 사실<서울신문 6월 10일자 9면>이 확인됐다. 이곳은 장애인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국고보조금을 유용해 파문을 일으킨 서울 도봉구 인강원을 운영하는 인강재단의 또 다른 시설이다. 13일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 5월 장애인 단체들의 진정서를 받아 조사한 결과 2012년부터 동성 간 성추행이 수시로 일어났고, 시설 측은 이를 알고도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시설 원장에게 장애인 간 성추행을 방치하고 장애인을 체벌한 교사를 징계하고,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전문 치유 프로그램을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도봉구청장에게 행정처분 등 시정조치를 마련하고 앞으로 인권 관련 항목도 점검할 것을 권고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노예 같은 중노동·폭행… 인권 사각 내몰린 농축산 이주노동자

    노예 같은 중노동·폭행… 인권 사각 내몰린 농축산 이주노동자

    “원래 매주 토요일이 휴일이었지만 과일·채소 수확이 몰리는 4~6월에는 매일 오전 3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어요. 당시 사장님은 제가 토요일에 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캄보디아 출신 35세 여성 A씨) “한번은 일할 때 허리가 아파서 관리자에게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계속 일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허리를 숙이고 배추를 캐기 시작했는데 잘못해서 배추 다섯 포기의 뿌리를 상하게 했어요. 관리자가 멱살을 잡더군요. 본능적으로 밀쳐 냈더니 관리자가 때렸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과 함께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했습니다.”(캄보디아 출신 25세 남성 B씨) 지난해 말 현재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25만여명 중 8%(1만 9700여명)가 농·축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가운데 이들이 장시간·저임금 노동은 물론 심각한 인권유린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제앰네스티와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20일 발표한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 보고서에 따르면 면담에 응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평균 하루 10시간, 한 달에 28일 이상 격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고용주와 작성한 근로계약서상 노동시간보다 평균 월 50시간을 더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3명은 연장근로 수당을 전혀 받지 못했고, 연차휴가도 없었다. 보고서는 국제앰네스티가 지난해 2월부터 지난 4월까지 안산·천안 등 10곳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28명을 면담해 작성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인권 실태가 드러난 바 있다. 월평균 근무시간은 283.7시간에 이르고, 월평균 휴일은 2.1일에 불과했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임금은 월평균 127만 2602원(남성 131만 8579원, 여성 117만 7995원)으로 최저임금(137만 8782원)에 미치지 못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법적인 한계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가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모든 이주노동자는 국내 노동법을 적용받지만,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주 40시간) 규정 적용 대상에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제외돼 있다는 것이다. 직장도 쉽게 옮길 수 없다. 이직하려면 ‘사업장 변경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기존 고용주의 서명을 받아야만 한다.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아시아·태평양 이주인권조사관은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있어 고용주가 악용하면 이주노동자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며 “고용허가제로 고용된 이주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 진정을 제기할 창구를 마련하고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비정상회담 장위안, 부산국제영화제 장이모 감독-장혜문 인증샷 ‘미모가 헉’

    비정상회담 장위안, 부산국제영화제 장이모 감독-장혜문 인증샷 ‘미모가 헉’

    ‘부산국제영화제 장이모 감독, 장혜문, 장위안 인증샷 공개’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중국 출신 방송인 장위안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중국의 거장 장이모 감독을 만났다. 장위안은 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5일의 마중’ 중국 감독님 장이모 선생님이랑 여배우 장혜문 씨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셨다. 장이모 장혜문 장위안. 쌈장(3명의 장 씨)이네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는 장이모 감독과 장혜문, 장위안이 나란히 서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5일의 마중’은 정치적인 신념으로 인해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된 남편 루옌스(진도명)를 기억상실에 걸린 채 기다리는 아내 펑완위(공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공리와 장이모 감독이 7년 만에 호흡을 맞춰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으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네티즌들은 “장위안, 부산국제영화제 장이모 감독 만났구나. 멋지다”, “장위안, 부산국제영화제 장이모 감독과 인증샷 부럽다”, “부산국제영화제 장이모 감독 옆에 있는 배우 장혜문, 처음 봤는데 정말 예쁘네”, “부산국제영화제 장이모 감독, ‘5일의 마중’ 완전 기대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장위안 인스타그램(장위안 부산국제영화제 장이모 감독 인증샷 공개)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오늘 69주년 광복절] “한·일 정상회담 개최 필요… 과거사-외교문제 분리 대응을”

    [오늘 69주년 광복절] “한·일 정상회담 개최 필요… 과거사-외교문제 분리 대응을”

    한반도는 2015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내년은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벼락같이 왔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해방과 한반도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지 70주년이 되는 역사적 시점이다.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국교 정상화로 관계 복원의 반세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양국 간 과거사 문제와 이를 둘러싼 갈등은 청산되지 않고 있다. 70년 전만 해도 세계의 전략적 중심선에서 비켜나 있던 한반도는 이제 글로벌 경제의 주요 축이자 동북아 각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전략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신문은 14일 광복 69주년을 앞두고 서희외교포럼(대표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과 공동으로 ‘한반도 해방과 분단 그리고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주제의 좌담을 마련했다. 장 대표,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 여인곤 통일연구원 명예연구위원,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최동주 숙명여대 교수 등 참석자들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과 시정 조치는 최근까지도 전 세계에서 확인되고 있는 ‘인류의 시대정신’의 발로로 봐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추구하는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는 결코 시대정신이 될 수 없으며,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해서는 과거사와 외교 문제의 분리 대응을 주문했고, 양국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이 컸다. 좌담에서는 한반도 분단의 일차적 책임은 김일성 주석에게 있으며, 향후 그에게 6·25 전쟁 피해뿐 아니라 통일을 지체시킨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정권 교체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는 우리의 ‘시계추 대북 정책’이 안정적인 남북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도 제기됐다. →아베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의 악화 문제는 무엇인가. -도시환 위원(도 위원):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 현재 진행형의 과거사 문제는 일본의 불법적인 강점에 의한 식민주의 범죄로 반인도적 범죄 행위다. 국제사회의 철학이 인권 등 인류보편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고, 2001년 서구 노예제도와 식민지 지배의 반인도적 범죄를 인정한 더반선언에 이어 아주 최근인 지난해 6월과 9월에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각각 식민통치를 사죄하고 배상을 하는 등 역사적 과오에 대한 시정 조치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이 됐다. -최동주 교수(최 교수): 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노동기구(ILO)의 의제로 제시됐다는 건 중요한 문제다. 위안부를 강제 노동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일본은 1932년 11월 강제노동협약을 비준했고, 1944년 11월까지 효력이 유지됐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ILO에서 의제로 논의해야 하지만 일본 정부의 강력한 로비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ILO에서 위안부 문제를 의제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우리 스스로가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아베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강화되고 있다. -도 위원: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을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침탈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카이로 선언(1943년)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을 통해 독도는 일본의 행정적 지배 범위에서 제외됐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건 한반도에 대한 점령지 권리 즉,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한국의 독립을 부인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신복룡 교수(신 교수): 독도는 일본 국익에 치명적이지 않다. 절박하지도 않으면서 ‘정치적 제스처’만 하고 있다. 한 일본 학자는 “한국은 독도가 한국 영토를 입증하는 일본 측 자료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도 일본 영토임을 입증하는 한국 측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말이 사실이라는 데 있다. 독도 문제는 한·일 양국 학계 간의 전쟁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과 한반도 분단에 대한 우리 안의 인식 차이도 커 우려된다. -도 위원: 식민지근대화론의 핵심은 일제강점기의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고, 해방 이후 산업화의 토대가 됐다는 주장이다. 매우 자의적 해석으로 조선 후기의 위기도 과장했을 뿐 아니라 식민 체제에서 우리 경제는 대단히 불평등했다. 생산수단은 소수 일본인이 장악했고, 조선인의 인적 자본 형상은 제한적이었다. -여인곤 위원(여 위원): 한반도의 학교 설립과 신문 창간, 전기·전차·철도 개통, 항만 건설 등 한국의 근대화는 일제의 식민 지배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서양의 투자나 자생적으로 시작됐다. 일제가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등 철도를 부설하고 항만 등을 건설한 건 한국의 근대화가 아니라 식량과 자원 수탈, 그리고 만주와 중국 침략의 교두보 확보 차원이었다. -신 교수: 한국사학사의 기본적인 함정은 망국에 대한 자기 성찰과 회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망국의 일차적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만 식민지근대화론의 경우 그 용어 자체가 잘못됐다. 친일 사학이 아닌 바에야 식민지 시대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말하는 학자는 없다. 다만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여 위원: 해방 후 한반도의 38선 분할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목적으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제안하고, 소련 스탈린이 동의해 획정된 미·소 양국의 합작품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분단의 책임은 김일성 주석과 소련에 있다. -최 교수: 38선은 미국 입장에서 소련의 일본 군정 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 본토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소련군 진격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다. 결국 38선이 한반도를 지리적, 이념적으로 둘로 나누고 전쟁의 불씨가 된 것으로 평가한다. -신 교수: 김일성 주석은 무력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오판하고 개전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오판으로 300만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통일은 70년이 지나도록 미뤄지는 어리석은 결과마저 초래됐다. 나는 김 주석에게 6·25전쟁의 일차적 책임뿐 아니라 분단과 통일을 지체시킨 책임도 크게 물어야 한다고 본다. →남북관계와 북핵, 한·일 갈등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여 위원: 북핵 위기가 20년이 됐지만 해결 전망이 매우 어둡다. 박근혜 정부가 북핵 폐기를 목표로 하되 우선 차선책으로 북핵 개발부터 동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과 및 핵 동결과 우리의 5·24 대북 조치 해제를 패키지로 다뤄야 한다. -장철균 대표: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권 교체 때마다 대북 정책이 좌우로 흔들리는 ‘시계추 현상’과 이로 인한 ‘안보 공회전’이 반복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북 정책은 정권에 상관없이 일관적이어야 한다. -도 위원: 아베 총리가 지난해 ‘침략의 정의’를 부정한 데 이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건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군국주의 부활의 궤적으로 봐야 한다. 아베 총리의 의도를 경계하며 주시해야 한다. -신 교수: 일본의 우경화는 시대정신이 아니다.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오히려 오랜 경제 침체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우경화가 발현되는 측면으로 이해하고, 지혜롭게 대일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최 교수: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대일 외교를 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정상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 위원: 현재와 같은 과거사와 외교 문제를 연계하는 방식으로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갈 수가 없다. 두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해서는 자위대의 개입 조건과 범위를 반드시 우리 정부가 미국과도 미리 협의해야 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소련판 ‘홀로코스트’ 죽음의 공포 겪은 사람들

    소련판 ‘홀로코스트’ 죽음의 공포 겪은 사람들

    돌아온 희생자들/스티븐 F 코언 지음/김윤경 옮김/글항아리/276쪽/1만 5000원 ‘홀로코스트’하면 대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간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스탈린이 소비에트 연방에서 펼친 공포정치로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의 수는 히틀러의 손에 희생된 유대인 수를 웃돈다. 소비에트와 포스트소비에트 전문가인 스티브 F 코언 미국 뉴욕대 교수가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호소력 있게 풀어낸 책 ‘돌아온 희생자들’이 출간됐다. 책에 따르면 1929년부터 1953년까지 24년간 스탈린 치하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는 1200만명에서 2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스탈린의 테러는 1929~1933년, 소련의 1억 2500만 농민을 집단화하기 위해 농촌에 무자비한 수단을 동원하면서 시작됐다. 1936~1939년 무렵은 스탈린의 피비린내 나는 탄압이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에 이어 사실상 소비에트의 모든 도시에서 자행된 일명 대공포(The Great Terror)시대였다. 많은 희생자가 ‘트로이카’로 알려진 3인 위원회로부터 즉결 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거나 고문을 받다 죽음에 이르는 등 체포 초기 단계와 투옥 뒤 심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희생자 수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을 때는 대부분이 뒤통수에 총을 맞고 기존의 묘지에 묻히거나 화장되었다. 하지만 희생자 규모가 점점 더 커지면서 전국 각지에 대량 학살지와 무덤이 늘어갔다. 지금도 그 장소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감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강제노동수용소인 굴라크(Gulag)에 보내졌다. 굴라크에서 죽은 희생자들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굴라크는 당시 그곳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수용소 군도’라고 이름 붙여지면서 그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스탈린 테러의 표적은 정적으로 간주된 소비에트 체제의 고위계층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의 사람들로 확대됐다. 레닌과 뜻을 같이했던 옛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스탈린 자신이 기용한 정치가와 젊은 하급 공산당원, 사제들도 숙청 대상이었다. 당과 국가, 군대를 위해 일하던 고위층들이 쓸려나가면서 이들을 보조하던 비서관과 운전사, 가정부까지 희생되었고, 유명한 작가와 공연가, 과학자를 포함해 농민과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에 널리 퍼진 표현대로 ‘끌려갔다’. 끌려간 사람들이 당한 고문은 실로 다양했고 정치 경찰이 거짓 자백과 무고한 사람들의 이름을 얻어내기 위해 극단적인 고문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스탈린 사후 새 지도자가 된 흐루쇼프가 그를 맹비난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만행을 폭로해 그의 영향력은 끝난 듯했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개혁이 실패하고 옛 영화에 대한 향수가 강렬해지면서 스탈린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평가는 지금 러시아에서 양분돼 있다. 스탈린 시대 희생자들의 귀환은 양측의 격렬한 논쟁 속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열린세상] 인권농업을 바란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인권농업을 바란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세계은행의 최근 통계를 보면 2013년 세계 이주노동자가 본국에 송금한 총액 5420억 달러 가운데 약 75%에 해당하는 4040억 달러가 개발도상국으로 보내졌다. 세계 이주노동력의 대부분이 개도국 출신이고 이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노동소득을 모국으로 송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송금액이 개도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또 이들은 거주국에서 그 나라 노동력이 외면하는 일자리, 소위 힘들고 더럽고 위험스러운 일자리에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은 거주국 경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임모칼리. 전국 겨울 토마토의 90% 정도를 공급하는 이 지역을 미국 겨울 토마토의 수도라고 부른다. 생산은 주로 멕시코 등에서 넘어온 이주노동자들이 담당한다. 한때 이 지역 노동자의 노동 여건은 최고 선진국 미국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다. 임금착취, 강제노동, 폭력 등 많은 인권침해가 자행됐다. 1990년대 초부터 노동자연맹이 조직돼 있었으나 농장주들의 횡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노동자연맹은 2001년 새로운 시도로서 ‘공정식품운동’을 전개했다. 운동의 요지는 이러하다. 우선 부당노동행위 금지, 농민들의 불만제기와 해결절차 마련, 농장별 건강안전위원회 설치 등 농민 권익보장과 관련된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담은 공정식품 강령을 만들었다. 그 후 농장주들에게는 강령 실천을 약속하는 서명을 요구하고, 지역산 토마토를 구매하는 유통 혹은 식품업체에는 여기에 서명하는 농장의 토마토만을 구매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제3자로 구성된 공정식품위원회를 설치하고 농장주들의 강령 실천 여부를 감시하도록 했다. 그리고 노동자연맹은 이 강령을 농민들에게 교육시킴으로써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를 알도록 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공정식품운동은 농민 인권을 보장하는 강령을 중심으로 농민, 농장주, 토마토 구매업자 간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토마토 구매업자들의 동의와 참여를 얻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노동자연맹은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다양한 시민운동과 설득 활동을 수년에 걸쳐 전개했다. 그 결과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는 대규모 유통 혹은 식품 업체가 차례로 참가하기 시작했다. 맥도날드, 버거킹, 타코벨, 피자헛, 케이에프씨, 서브웨이 등 대형 식품업체와 홀푸드, 트레이더조 델몬트 등 대형 유통업체가 참여한 것이다. 최대 성공은 금년 초 연간 미국 전체 신선 토마토의 20%를 취급하는 월마트를 가입시킨 것이다. 점점 농장주들도 서명을 주저할 수 없게 됐다.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판로가 완전히 막히는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플로리다 토마토 산업의 인권농업은 실현된 것이다. 구매업자들은 참여 농장에 장려금까지 지불하고 있다. 1파운드당 1센트의 장려금을 가격에 더하여 추가 지불하고 이를 농민들에게 전달되도록 하고 있다. 2011년 1월부터 현재까지 약 1400만 달러가 장려금 형태로 농민들에게 지급됐다. 현재 미국 각종 언론은 이 운동을 ‘위대한 인권승리 이야기’, ‘최선의 노동 감시제도’ 등으로 칭송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도국 이주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노동력 고령화가 문제되고 있는 농축산업 현장에는 약 2만여명이 현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임금착취, 강제노동, 폭행, 열악한 주거환경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나타나고 있다. 해외 노동자를 고용할 정도면 자급형 생계농가는 아닐 것이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상업농일 것이다. 노동력 부족 해소를 통한 상업농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 이주노동자를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산업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사람보다 더 앞설 수는 없다. 인권을 무시하고 생산된 먹거리는 더 이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아니라는 것이 미국 공정식품운동의 교훈이다. 정부와 생산자가 함께 노력해 외부로부터 특단의 충격조치가 가해지기 전에 인권농업이 이뤄지길 바란다.
  • 나치 협력 佛 국영철도회사 69년만에 희생자 보상 논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에 부역했던 프랑스 기업이 전후 69년 만에 희생자들에게 보상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미국 국무부 젠 사키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미국과 프랑스 정부가 나치의 강제노동수용소 등에 유대인을 수송한 프랑스 국영철도(SNCF)와 희생자들에게 보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고 AP·AFP 등이 전했다. ” 미국과 프랑스는 10일 이에 관한 3차 협상 회담을 진행한다. 사키 대변인은 “우리의 공동 목표는 가능하면 빨리 결론을 내는 것”이라며 “보상 논의를 손상시킬 수 있는 행위들을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논의는 SNCF가 메릴랜드 주가 추진하는 사업비 22억 달러의 경전철(길이 25㎞) 사업 참가를 추진하자 주의회가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 먼저 보상하지 않으면 입찰 참가를 막겠다는 법안을 최근 제출하면서 불거졌다. AFP통신은 이날 메릴랜드주 의회 소식통을 인용해 이런 내용의 법률이 표결에 부쳐지지 않았다면서 이에 따라 SNCF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SNCF에 보상을 요구해 온 ‘홀로코스트 철도 정의 연합’은 “법안이 투표에 부쳐지지 않아 유감”이라면서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때까지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SNCF는 프랑스에 친나치 비시 정권이 들어선 1942∼44년 유대인 7만 6000여명을 화물기차에 실어 나치의 강제노동수용소와 집단 처형 장소로 보냈다. 이 중 3000여명만 살아남았다. 이에 대해 SNCF는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에서는 철도 운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보상 책임도 SNCF가 아니라 프랑스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내러티브 리포트] ‘염전노예’ 사건 그 이후… 지적장애 박씨는 왜 제 발로 염전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나

    [내러티브 리포트] ‘염전노예’ 사건 그 이후… 지적장애 박씨는 왜 제 발로 염전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나

    지난달 한 노모가 장애인 아들이 보낸 편지를 들고 서울 구로경찰서를 찾아와 수사를 의뢰하면서 ‘염전 노예’ 사건이 알려진 지 40여일이 흘렀다. 이후 전남청 도서인권보호특별수사대가 전남 신안군 신의도에 상주하면서 조사한 결과 체불·폭행·강제노동 등을 당한 염부(염전 인부) 가운데 탈출 의사를 밝힌 30여명이 구조됐다. 이 가운데 2006년 염전 인권유린 사건이 터지면서 구출됐던 지적장애 3급 박모(42)씨가 지난달 같은 염전에서 또 발견됐다. 그는 8년 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6개월 만에 제 발로 다시 염전에 돌아갔다고 했다. 자활의지는 충만했지만 어떤 정책적 도움이나 사회적 관심도 받지 못했기에 염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박씨의 지난 15년을 내러티브 리포트 형태로 재구성했다. 2000년 3월, 박씨(당시 28세)는 서울 영등포 역 근처에서 낯선 남자를 만났다. 허기진 박씨에게 따뜻한 국밥을 사주며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16세에 집을 나와 1999년 첫 직장이던 신발공장이 망한 뒤 노숙생활을 전전했던 그가 모처럼 맞닥뜨린 호의였다. “시켜만 주면 일을 잘할 자신이 있었어….”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는 일자리는 흔치 않았기에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았다. 그저 돈을 벌어 공장에 다닐 때처럼 주말이면 놀러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었다. 목포여객터미널에서 두 시간 배를 타고 신의도에 도착한 뒤에야 그곳이 염전이란 사실을 알았다. 주인집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그래도 박씨는 주인을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담배나 과자값을 꼬박꼬박 챙겨줬고 11월 염전 철이 끝나면 서울이나 목포에 다녀오라고 용돈도 줬다. 애당초 박씨에게는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인 ‘임금’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던 셈이다. 염전 철인 4~10월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떠 13~14시간을 일했고 11~3월에는 주인집 농사일과 소금 옮기는 일을 했다. 주인이 쥐어 준 돈은 과자·담배값 정도. 통장이 있기는 했지만 주인이 관리했기 때문에 얼마를 받았고, 얼마를 더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일이 고되고 주말에도 쉴 수 없다는 게 힘들었다. 몇몇 염부들이 몰래 도망갔다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탈출을 꿈꾸지는 않았다. 어차피 서울에 가더라도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박씨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염부 생활 7년째이던 2006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신의도 염부들의 노예 같은 삶을 다루면서 경찰이 탐문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임금 체불이나 폭행, 강제 노동을 당한 염부들을 구조했다. 염전 주인은 3년간 밀린 임금을 박씨에게 물어줬다. 박씨는 생전 처음 목돈을 쥐었다. 18년 만에 대구에 사는 이복 누나도 찾았다. 부모는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박씨의 사연을 소개한 방송사에서 연락하자 누나는 “데리고 와라. 같이 살겠다”고 했다. 일자리도 구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은 녹록지 않았다. 2006년 6월 누나 집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어 미장일을 시작했지만 허리를 다쳐 4개월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데다 몸도 성하지 않으니 불러 주는 곳이 없었다.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나나 당시 그를 발견한 수사팀이 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게 해 줬거나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제공하는 교육훈련을 받도록 했다면 다른 희망을 찾을 수 있었을 터.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지적장애 등급을 신청하라는 얘기를 해 주지 않았다. 2007년 1월, 박씨는 염전을 나온 지 6개월 만에 제 발로 지긋지긋한 섬으로 돌아갔다. “나도 밥은 먹고 살아야지…. 그래서 염전 주인한테 내가 전화했어.” 이복 누나도 말없이 그를 보냈다. 그렇게 8년을 또 염부로 지냈다. 휴대전화도 있었고 염전 철이 끝난 11월에는 용돈 50만원을 가지고 나와 서울, 목포를 돌아다녔지만, 경찰이나 장애인단체에 연락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칫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염전 주인의 임금 체불은 여전했지만 서울이나 목포에서 굶거나 노숙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었다. 현재 박씨는 신의도에서 나와 목포의 한 노숙인 시설에 머물고 있다. 전남장애인인권센터의 도움으로 최근 병원에 가서 장애 진단도 받았다. 이제 신청만 하면 지적장애 3급을 받는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도 품게 됐다. “대구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닐 정도로 기본적인 것은 배웠어…. 시켜만 주면 일은 잘할 수 있어”라는 그의 말은 어눌했지만, 확신이 느껴졌다. “26년 전에 다녔던 공장과 비슷한 곳에서 일하고 싶어. 토요일에는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것도 먹고 야구장에도 갈 거야”라고도 했다. 박씨는 염전 주인이 지난 8년간 체불한 임금 가운데 3년치만 받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염전 주인이 박씨를 8년이나 노예처럼 부렸더라도 임금 청구 시효가 지나지 않은 3년치만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박씨처럼 장애가 있을 경우에는 농촌 일용직 근로자 평균 급여에서 일률적으로 노동상실률 50%를 뺀 금액만 받을 수 있다. 나머지 5년치의 임금을 받으려면 3년 안에 소송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박씨는 3000만원 정도의 돈이 생기면 당장 서울로 갈 생각이다. 그는 “법원에 가는 것보다 그냥 빨리 일하고 싶어”라며 해맑게 웃었다. 목포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뉴스 플러스] ‘술값 덤터기’ 씌워 새우잡이배 팔아넘겨

    직업소개소 직원의 꼬임에 넘어가 술집 향응을 즐기다 빚더미를 떠안고 새우잡이 배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남성 3명이 경찰에 구조됐다. 4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3시쯤 전남 신안군 임자면의 한 선착장에서 새우잡이 어선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A(50)씨 등 40~50대 남성 3명을 구조했다. 이들은 지난 1월부터 2월 사이 각각 목포의 직업소개소를 통해 임자도의 새우잡이(일명 닻배) 배 업주에게 팔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조사 결과 직업을 구하기 위해 목포에서 대기하던 이들에게 직업소개소 업주 윤모(63)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2~3차례 향응을 제공해 개인당 1300만원에서 1700만원의 채무를 지게 했다. 윤씨는 이들이 술에 취한 틈을 타 차용증을 작성하게 하고 이를 근거로 새우잡이 업주에게 팔아넘겼다.
  • [사설] 북 인권실태 개선 위한 국제적 노력 강화해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어제 북한의 척박한 인권 실상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북한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본문 21쪽과 부속서 321쪽으로 구성된 이 보고서는 지난해 3월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맞춰 1년 가까이 북한의 인권 실태 전반을 조사한 끝에 작성된 종합보고서다. 호주 대법관 출신의 마이클 커비 위원장을 중심으로 20명의 다국적 조사인력들이 80여명의 탈북자들을 면담하거나 청문회를 갖는 방식으로 북한 주민들의 투옥·구금 실태와 고문 여부 등 북한 정권의 인권탄압 전반을 조사해 작성했다. COI 보고서에 담긴 북녘은 한마디로 ‘정치적 학살’이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인권 실종의 땅이다. 고문과 투옥은 물론 성폭행과 강제낙태, 강제이주, 강제노동, 심지어 살인과 노예화 등이 정권 차원에서 자행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고발했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인권 탄압이 북한의 3대 세습정권과 직결돼 있음을 보고서가 언급한 점이다. 북한 인권 탄압의 책임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위시한 북한 지도부에 묻고 있는 것이다. COI는 이에 따라 유엔 차원에서 김정은을 비롯한 인권탄압 가해자 명단을 작성해 영구보존하는 한편 다음 달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 정례회의에 보고서를 공식 제출한 뒤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권고하기로 했다. 아울러 중국 등이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비, 나치 전범들을 사법처리한 국제특별재판소(Ad Hoc Tribunal)에도 회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COI의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기실 그동안 탈북자들의 전해온 북한 인권의 실상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평양의 선택된 소수의 인민을 제외한 북한 주민 대다수가 얼마나 열악한 인권 환경에서 허덕이는지, 매일매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꽃제비’들이 얼마나 많으며, 정치범 수용소에선 얼마나 잔혹한 인권탄압이 자행되고 있는지 우리는 그동안 숱한 증언과 목격담을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남북 관계의 악화 등을 핑계 삼아 정부 차원에서건 민간 차원에서건 북한 인권의 실상을 직시하지 못했다. 애써 외면하거나 침묵했다. COI 보고서의 의미는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에 앞장서야 할 우리로선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여야는 국회에 계류된 북한인권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더 이상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입법을 미루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도 남북관계 개선 노력과 별개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의연하게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 [씨줄날줄] 현대판 염전노예/문소영 논설위원

    소금은 인간의 필수품이지만 바닷물을 장작불로 농축시켜 소금을 쪄내는 일은 너무나 고됐다. 그래서 3세기 신라시대에는 전쟁포로 등의 노예계급이나 비슷한 처지의 신분층에서 소금을 생산하도록 했고, 염노(鹽奴)라 불렀다. 이런 염노가 민주사회인 현대에도 존재하다니 놀랍다. 순자의 성악설과 맹자의 성선설 중에서 인간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굳게 믿는 사람들은 이윤을 추구하려고 타인을 착취하는 사람들 탓에 그 믿음이 흔들릴 것이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지난 6일 하루에 5시간도 못 자고 19시간의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상습폭행을 당하고 월급은 한 푼도 못 받은 채로 수년 동안 일해온 장애인 성인 남자 2명을 구출했다고 밝혔다. 전남 신안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여를 막 달려간 곳은 외딴섬으로, 염전이었다. 한겨울 바닷바람이 몰아치는데 여름용 감색 운동복 차림에 발뒤꿈치가 구멍 난 양말을 신은 남자는 경찰서에서 나왔다는 말을 듣고 “진짜 경찰인가”하면서 긴가민가했다고 한다. 40세의 김모씨는 시각장애 5급으로, 카드 돌려막기로 큰 빛이 생기자 부모에게 빚을 지울 수 없다는 생각에 우체국 경비일을 그만두고 2000년에 가출했다. 서울 영등포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김씨는 2012년 “먹여주고 재워주고 담배도 주는 좋은 곳을 소개하겠다”는 말을 믿고 목포로 내려갔다. 거기서 단돈 100만원에 염전주인에게 팔렸다. 염전에는 48살의 지적장애인인 채씨가 2008년 몸값 30만원에 팔려와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하기에 2만㎡(6000여평)나 되는 염전은 너무 넓었다. 이들은 세 차례나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구타당했다. 김씨는 지난 1월 읍내에 이발하러 왔다가 우체국에서 서울 어머니에게 몰래 편지를 부쳤다. 소금 구매업자로 가장하라는 김씨의 조언을 따른 경찰이 섬 곳곳을 수소문한 끝에 지난달 24일 이 두 남자를 발견·구출했다. 이 섬엔 800가구 2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으나 ‘현대판 염전노예’인 두 장애인에게는 가혹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둘이 탈출하면 염전주인에게 신고했고 가혹한 노동과 매질에 침묵했다. 만약 섬주민들이 비인권적 상황을 일찍 신고했더라면, 염전 노예생활이 최대 5년까지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신매매로 새우잡이 배에 올라탔거나 이번 ‘염전노예’처럼 외딴 섬 인권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어업현장들에 대한 감시와 단속의 손길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또 ‘따뜻한’ 이웃들의 세심한 눈길도 중요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英서 현대판 노예사건…여성3명 납치 30년간 학대

    英서 현대판 노예사건…여성3명 납치 30년간 학대

    영국 런던에서 여성 3명이 30년 감금생활 끝에 구출된 ‘현대판 노예’ 사건이 발생했다. 런던경찰청은 런던 남부의 한 가정집에서 30년간 노예 생활을 해온 여성 3명을 구출하고, 이들을 납치·감금한 혐의로 60대 남성 1명과 여성 1명을 체포했다고 2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말레이시아 국적의 69세 여성과 57세 아일랜드 여성, 30세 영국 여성 등으로 장기간의 감금 생활로 심각한 정신적 손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해 여성으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은 자선 운동 단체의 제보로 구출 작전을 벌였으며, 피해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 여성들은 혈연관계는 없으며 30세 여성은 평생을 노예 상태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경찰은 체포된 용의자에 대해서는 납치와 감금, 강제노동 등 중대 범죄 혐의로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 중 아일랜드 국적 여성이 강요된 결혼 피해를 고발하는 TV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제작에 참여한 자선단체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정치범 수용소 6곳 중 2곳 폐쇄·해체

    北 정치범 수용소 6곳 중 2곳 폐쇄·해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6곳 가운데 2곳이 폐쇄 또는 해체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미국 비정부기구(NGO)인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27일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평안남도 개천(14호)과 북창(18호), 함경남도 요덕(15호), 함경북도 화성(16호)과 회령(22호), 청진(25호) 등 외부에 알려진 수용소 6곳 가운데 이른바 ‘22호 관리소’를 폐쇄하고 ‘18호 관리소’는 사실상 해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22호 관리소는 지난해 5월까지 수감자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일반시설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HRNK는 지난해 10월 22호 관리소가 그해 6월 폐쇄됐다는 일부 보도에 이의를 제기하며 수용소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번 보고서에서는 감시 초소가 사라진 사진을 제시하며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옛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굴라그)를 본떠 1958년 관리소 체제로 처음 문을 열었던 대동강 남쪽 18호 관리소도 2006년 사실상 해체됐으며 개천시 동림리 지역에 일부 시설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이곳 수감자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석방되거나 사회에 복귀함으로써 북한의 전체 수용소 체제가 궁극적으로 밟아야 할 ‘좋은 선례’라고 보고서는 소개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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