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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 장성 10명 ‘北 발사체’ 소식에도 계속 골프 쳐

    북한이 첫 번째 ‘단거리 발사체’를 쏜 지난 4일, 주말 골프를 치던 일부 군 장성들이 발사 소식이 전해진 이후에도 계속 골프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실이 육군 인사사령부에서 받은 ‘긴급 요구자료답변서’에 따르면, 지난 4일 육·해·공군 3군 통합기지인 충남 계룡대에 있는 골프장을 이용한 장성은 총 16명이었다. 이 중 6명은 북한의 발사체 발사 소식이 전해진 오전 9시 이후 골프를 중단하고 서둘러 복귀했지만, 10명은 골프를 중단하지 않았다. 또 이날 영관급 이용자 133명 중에 운동 중지 후 복귀한 영관급은 단 6명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현역 군인 195명을 포함해 총 326명이 계룡대 골프장을 이용했다. 북한은 이날 오전 9시 6분부터 10시 55분까지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에서 단거리 발사체와 240㎜, 300㎜ 대구경 방사포를 쏘며 화력타격 훈련을 벌였다.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 이후 약 17개월 만에 북한이 발사체를 쏘면서 국방부 및 합동참모본부는 비상 대응에 나섰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군에 대해 기강해이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하 의원은 “왜 10명이나 되는 장군들은 계속 골프를 치고 있었는지 군은 국민께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위기조치 상황에 따라 작전기관 인원들은 예외 없이 복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계속 골프를 친 장성들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김학의 구속영장 발부 “도주 우려”…‘별장 성접대 의혹’ 6년 만에 신병 확보

    김학의 구속영장 발부 “도주 우려”…‘별장 성접대 의혹’ 6년 만에 신병 확보

    건설업자 등에게 뇌물과 성접대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김학의(63) 전 법무부 차관이 구속됐다. 2013년 3월 ‘별장 성접대 의혹’ 불거지고 김학의 전 차관이 임명 엿새 만에 자진 사퇴한 지 6년 만에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의 신병을 확보한 것이다. 이로써 검찰 수사도 중대한 고비를 넘고 탄력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6일 오전 10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김학의 전 차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주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이나 도망 염려 등과 같은 구속 사유도 인정된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대기 중이던 김학의 전 차관은 곧바로 수감됐다. 앞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은 지난 13일 건설업자 윤중천(58)씨로부터 1억 3000만원 상당의 금품과 100차례가 넘는 성접대를 받고, 사업가 최모씨로부터 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를 적용해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뇌물은 대부분 2008년 이전에 건네졌지만 검찰은 그 액수가 1억원이 넘는 것으로 보고 공소시효가 15년인 특가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06~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서 3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비롯해 1억 3000여만원 상당의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학의 전 차관은 검사장으로 승진한 2007년 “승진을 도와준 인사에게 성의 표시를 하라”면서 윤중천씨가 건넨 500만원을 받았고, 그 밖에도 ‘명절 떡값’ 등의 명목으로 현금 20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2008년 초에도 윤중천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에 걸려 있던 감정가 1000만원짜리 서양화 1점을 가져간 정황도 파악됐다. 또 성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윤중천씨가 여성 이모씨에게 받을 상가보증금 1억원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경우에는 김학의 전 차관이 돈을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서 검찰은 이 혐의에 제3자 뇌물죄를 적용했다.윤중천씨와 보증금 분쟁을 겪은 여성 이씨는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 들어가 김학의 전 차관을 모시라’는 윤중천씨의 지시를 받았고, 2006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매주 2~3차례 김학의 전 차관이 오피스텔로 찾아왔다고 주장한 여성이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와 동영상 촬영이 일어났다면서 2014년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를 특수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이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이 윤중천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부분도 ‘액수가 특정되지 않은 뇌물’로 적시했다. 윤중천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씨 등 여성 6명 이상이 성접대를 하도록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성접대 장소를 원주 별장, 속초 골프장 내 숙소, 역삼동 오피스텔 등으로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07~2011년 사업가 최모씨로부터 3000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있다. 검찰은 최씨가 김학의 전 차관에게 차명 휴대전화를 제공하고, 용돈과 생활비 등을 대주며 일종의 ‘스폰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에선 김학의 전 차관이 끝까지 ‘모르쇠’ 또는 혐의를 부인하는 전략을 유지한 것이 패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학의 전 차관은 검찰 조사 내내 “윤중천을 모른다”며 혐의를 부인하다가 구속심사에선 “윤중천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검찰 내에서 윤중천이 안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가 돌아 조심했다”는 등 윤중천씨와 친분이 두텁지 않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뇌물수수·성접대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오랜 지인인 사업가 최씨에게 차명 휴대전화와 용돈·생활비 등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선 ‘별건 수사’라는 주장을 폈다.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해선 공소시효 때문에 검찰이 무리하게 구성한 것으로, 법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3월 22일 해외 출국을 시도하다가 긴급출국 금지를 당한 점을 들며 도주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학의 전 차관 측이 과거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 이씨와 사업가 최씨 등에게 접근해 입단속·회유를 한 정황 등을 토대로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펼쳤다. 김학의 전 차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과 경찰에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면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나흘 뒤 출국을 시도했다가 법무부로부터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로부터 일주일 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이 발족됐다.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의 구속영장에 뇌물 혐의만 포함하고, 사건이 재조명받게 된 가장 큰 계기인 ‘별장 성접대 사건’과 관련한 성범죄 혐의는 제외했다. 공소시효가 만료와 증거 부족이라는 난제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김학의 전 차관이 구속되면서 2013·2014년 있었던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의 특수강간 혐의를 두 차례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게다가 뇌물수수 의혹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 꾸려진 수사단은 김학의 전 차관과의 골프 약속 등을 적어놓은 윤중천씨의 수첩과 통화·문자 내역 등 2013년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이 확보했던 기록을 토대로 뇌물 의혹 수사를 벌였다. 현재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은 6년 전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학의 전 차관의 신병을 확보하게 된 검찰은 구속영장에 범죄 혐의로 적시하지 않은 성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검찰과거사위가 수사 의뢰한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2013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등의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 내용을 정리해 이달 안으로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김학의, 영장실질심사 출석…이르면 오늘 밤 구속 여부 결정

    김학의, 영장실질심사 출석…이르면 오늘 밤 구속 여부 결정

    총 1억 6000만원대 뇌물수수·성 접대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구속 여부가 이르면 16일 밤 결정된다.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김 전 차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어 구속수사의 필요성에 대해 판단한다. 이날 오전 10시쯤 법원에 도착한 김 전 차관은 “윤중천씨와 정말 모르는 사이인가?”, “다른 사업가에게서도 금품을 수수한 적 있나” 등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들어갔다. 앞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은 13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해 김 전 차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두 차례 소환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데다 심야 출국을 시도한 적도 있어 구속수사 방침을 정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건설업자 윤씨에게서 1억 3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검사장으로 승진한 2007년 ‘승진 청탁용’으로 윤씨에게서 500만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명절 떡값’으로 2000만원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초에는 윤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에 걸려있던 박모 화백의 감정가 1000만원짜리 서양화 한 점을 가져간 사실 또한 파악됐다. 그뿐만 아니라 사업가 최모 씨에게서 3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최씨를 여러 차례 불러 조사한 끝에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김 전 차관에게 회사 법인카드를 건네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게 하고, 차명 휴대전화를 제공하거나 생활비 등을 대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윤씨가 뇌물을 건넨 시점보다 상대적으로 최근인 최씨의 뇌물 공여 의혹으로 인해 검찰은 제한된 공소시효를 늘릴 수 있게 됐다. 이밖에 김 전 차관은 윤씨와 이모씨 간 보증금 분쟁에 개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윤씨는 지난 2008년 2월 ‘명품판매점 보증금 1억원을 돌려주지 않는다’며 이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하자, 김 전 차관이 고소 취하를 종용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김 전 차관과 윤씨에게서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여성이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성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날까 염려해 이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보고 ‘제3자 뇌물죄’를 적용했다. 다만, 성폭행 혐의는 이번 구속영장 범죄 사실에서 제외됐다. 대신 성 접대를 뇌물로 간주해 포함시켰다. 김 전 차관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강원 원주시 별장에서 윤씨가 불러들인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것을 성 접대로 판단한 셈이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성폭행 혐의에 대해 계속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김학의 오늘 구속영장 심사…‘별장 성접대’ 이후 6년 만에 구속 갈림길

    김학의 오늘 구속영장 심사…‘별장 성접대’ 이후 6년 만에 구속 갈림길

    김학의(63) 전 법무부 차관이 ‘별장 성접대 의혹’이 일어난 지 6년 만에 구속 기로에 섰다. 그러나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과거 수사 부실 의혹 속에서 출발한 검찰의 세 번째 수사가 타격을 받게 된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김학의 전 차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어 구속 수사의 필요성 여부를 심리한다. 앞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해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뇌물은 대부분 2008년 이전에 건네졌지만 검찰은 그 액수가 1억원이 넘는 것으로 보고 공소시효가 15년인 특가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06~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58)씨에게 3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비롯해 1억 3000여만원 상당의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학의 전 차관은 검사장으로 승진한 2007년 “승진을 도와준 인사에게 성의 표시를 하라”면서 윤중천씨가 건넨 500만원을 받았고, 그 밖에도 ‘명절 떡값’ 등의 명목으로 현금 20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2008년 초에도 윤중천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에 걸려 있던 감정가 1000만원짜리 서양화 1점을 가져간 정황도 파악됐다. 또 성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윤중천씨가 여성 이모씨에게 받을 상가보증금 1억원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경우에는 김학의 전 차관이 돈을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서 검찰은 이 혐의에 제3자 뇌물죄를 적용했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김학의 전 차관의 구속 여부를 가를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중천씨와 보증금 분쟁을 겪은 여성 이씨는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 들어가 김학의 전 차관을 모시라’는 윤중천씨의 지시를 받았고, 2006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매주 2~3차례 김학의 전 차관이 오피스텔로 찾아왔다고 주장한 여성이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와 동영상 촬영이 일어났다면서 2014년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를 특수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이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이 윤중천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부분도 ‘액수가 특정되지 않은 뇌물’로 적시했다. 윤중천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씨 등 여성 6명 이상이 성접대를 하도록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성접대 장소를 원주 별장, 속초 골프장 내 숙소, 역삼동 오피스텔 등으로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07~2011년 사업가 최모씨로부터 3000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있다. 검찰은 최씨가 김학의 전 차관에게 차명 휴대전화를 제공하고, 용돈과 생활비 등을 대주며 일종의 ‘스폰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김학의 전 차관은 “윤중천씨를 모른다”면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다만 사업가 최씨만큼은 알고 지낸 점 정도만 인정했다고 전해졌다. 구속심사 때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이 2005년 말쯤부터 윤중천씨와 알고 지냈다는 다수의 진술과 정황이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방침이다. 또 지난 3월 태국 방콕으로 출국하려다 좌절된 시도를 근거로 ‘도주 우려’에 대해서도 강조할 방침이다. 김학의 전 차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과 경찰에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면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나흘 뒤 출국을 시도했다가 법무부로부터 긴급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로부터 일주일 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이 발족됐다.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의 구속영장에 뇌물 혐의만 포함하고, 사건이 재조명받게 된 가장 큰 계기인 ‘별장 성접대 사건’과 관련한 성범죄 혐의는 제외했다. 공소시효가 만료와 증거 부족이라는 난제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성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일단 김학의 전 차관의 신병을 확보한 뒤 조사를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화웨이, 산불피해 주민에 1억원 전달

    화웨이는 지난 4월 강원도 일대에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1억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고 15일 밝혔다. 화웨이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후원금을 기탁했으며 후원금은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된 강원도 고성군, 속초시, 강릉시 등 산불 피해 이재민들을 위한 피해 복구 지원에 쓰일 예정이다. 멍샤오윈 한국화웨이 대표는 “갑작스러운 재해로 상심했을 주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며, 삶의 터전 복구에 성금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창신동의 재발견’ 편이 지난 11일 창신 1·2·3동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울타리의 삶’ 한울삶에서 투어를 시작했다.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 뒤 이움피움 봉제역사관에서 ‘봉제의 모든 것’을 관람했다. 가수 김광석이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살았던 집에는 부친 김수영씨의 국가유공자 명패와 김광석의 창신동 시절을 기리는 바닥 동판이 붙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요화’ 배정자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비석이 남아 있는 대한불교 원효종 총본산 안양암~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1956년에 지어진 석조 고딕양식의 전형 동신교회~순댓국집으로 변한 화가 박수근의 화실 겸 집터~한때 ‘연예인아파트’로 주가를 올렸던 동대문아파트를 2시간 30분 동안 돌았다. 어린 시절을 창신동에서 보낸 고교 역사교사 출신 엄태호 해설사가 창신동 설화를 깊고 차분하게 들려줬다.동대문이 곧 창신동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대문은 동대문 안쪽 마을이 아니라 동대문 밖 마을을 일컫는다. 길 이름도 동대문 안은 종로고, 문밖은 왕산로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은 길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에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와 새문안(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운종가(종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종로의 시전, 서소문 밖 칠패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인 배오개(이현)시장과 이 전통을 이은 광장시장도 성 안에 있었다. 현재의 동대문시장은 동대문 바깥 창신동을 주 무대로 한 신흥 시장이다. 본래 동대문 밖 10리(성저십리)는 서울을 지키는 훈련도감 소속 하급 군인과 가족의 거주지였기에 이들이 재배하는 야채류가 상거래의 중심 물품이었다. 1905년 설립된 광장시장이 최고의 포목상가로 발돋움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창신동 지역의 공간과 취급품목의 변화를 가져왔다.창신동은 도성의 동쪽에서 도성 안으로 진입하는 문밖 동네였다. 성저(城底)란 성 밖 10리에 이르는 지역이지만 경기도가 아니라 서울의 행정구역 안에 포함되는 특수한 행정구역을 이른다. 서울의 좌청룡(左靑龍) 낙산을 따라 형성된 유서 깊은 동네다. 도성~강원도~함경도를 오가는 길목이어서 고려시대 서울이 남경(南京)일 때부터 번성했다. 창신동은 조선시대 인창방의 ‘창’자와 숭신방의 ‘신’자를 따 1914년 일제강점기 때 급조된 지명이다. 이웃 숭인동 또한 숭신방의 ‘숭’자와 인창방의 ‘인’자를 따서 만들었다. 창신동은 인창방이고, 숭인동은 숭신방인데 교묘하게 순서만 바꿔치기했을 뿐이다. 민족정기를 훼손시키려고 장난질을 했지만 지명의 원상회복은 요원하다. 행정구역상 동대문구 창신동이었다가 1975년 종로구에 편입됐다. 낙산 아래에는 종로구 이화동과 동숭동, 성북구 보문동과 삼선동, 동대문구 신설동 등 3개 구청 관할지역이 맞물려 있다.창신동은 예로부터 ‘돌산’ 낙산의 기운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 찾아든 권세가의 별서가 들어선 한가로운 지역이었다. 창신초등학교 남쪽 창신1동 82번지쯤에는 동지(東池)라고 불린 사대문 밖 4개 연못 중 하나가 있어서 정자동이라고 불렸다. 사색붕당이 각축하던 시절 동지의 연꽃이 많이 피면 동인이 득세하고, 천연동 서지 연꽃이 많이 피면 서인이 득세한다고 해 양당이 서로 연꽃을 뭉개거나 연못을 메우던 시절도 있었다. 창신1동 128 창신초등학교는 불교계가 도심포교를 위해 지은 원흥사의 옛 터다. 조계사로 옮겨가기 전까지 조선불교의 총본산이었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 부근에 있던 청룡정은 한량들의 활터였다. 창신동 202번지에는 실학자 이수광이 ‘비를 피하면서 청렴하게 살고자’한 비우당이 있다. 창신3동 7번지에는 단종비 정순왕후의 일화가 깃든 자지동천 우물이 있어서 이웃 숭인동의 동망봉, 정업사지, 여인시장과 어울려 순애보를 이루고 있다. 창신2동 옛 궁골 어림은 봉숭아와 앵두 등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많아서 홍숫골 또는 홍수동(紅樹洞)이라고 불렸다.낙산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여서 무속신앙의 대상이 됐다. 창신3동 서일국제경영고등학교 근방 당고개(당현) 바로 위 큰 바위에는 마을의 수호신 낙산신령을 모시는 도당(都堂)이 있었다. 조선 말 점술가 200여호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총독부건물 신축용 돌을 떼어가는 바람에 미아리고개로 옮겨 갔다고 한다. 창신동은 2개 사립대학교와 최초의 민간 여학교 창립의 터이기도 했다. 창신초등학교가 있는 원흥사지에는 동국대의 전신 명진학교가 처음 자리잡았고, 1932년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한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이 창신동에서 학교를 키웠다. 이후 1938년 흑석동에 교사를 신축해 중앙대로 발전시켰다. 창신1동 225번지 현재의 종로구민회관 일대는 1933년 설립된 최초의 민간 설립 여학교 동덕여중고가 방배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교사였다. 1898년 개설된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간 전차가 창신동을 지나가면서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이 틈입했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 귀국동포, 사대문 안 철거민까지 몰리면서 도심 인접 달동네로 변모했다. 일제강점기 성벽 아래 토막촌이 해방 이후 판잣집과 도시형 한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1916년부터 8년 동안 낙산 돌산에서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서울시청) 신축용 석재 채취가 본격화되면서 창신동은 피폐해졌다. 채석장 낙석사고가 빈번했고, 강도와 살인 사건은 물론 화재가 자주 발생해 치안위험지대의 오명을 뒤집어썼다.어쩌다가 창신동에 ‘봉제 DNA’가 깃들게 됐을까. 1958년부터 청계천 상류가 복개되면서 1961년 평화시장이 설립된 게 결정타였다. 동대문의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주거지대화한 것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평화시장 일대 의류생산 공장들이 대거 창신동으로 이전하면서 동대문 의류산업의 배후지대가 형성됐다. 공장과 주거지, 소비시장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특이한 공간이 자리잡은 것이다. 무허가 판잣집이 도시형 한옥으로 바뀌고, 채석장 자리에 창신시영아파트 3동이 세워졌다. 1964년부터 1969년 사이에 동대문스케이트장과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상가아파트, 낙산시민아파트가 차례로 건립되면서 면모를 일신했다. 1971년 동대문종합시장, 동화시장이 설립되고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봉제노동력이 주거지로 쏟아지고, 주거지 내 봉제공장이 확산됐으며 창신동에 봉제인력시장이 생긴 것도 역할을 했다. 이처럼 창신동은 1960~70년대 서울의 도시산업화 과정에서 봉제공장 지대화했다. 동양 최대 규모의 패션산업이 동대문 일대에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배후지대인 창신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동대문을 밝히는 보석은 골목골목에 숨어 있다. 동대문시장의 원단이 오토바이에 실려 창신동에 도착하면 옷의 본을 만드는 패턴작업장에서 재단·재봉을 거쳐 안감·주머니·단추를 다는 ‘마도메’, 다림질·포장 등 완성과정의 ‘시아게’를 마치면 옷이 완성된다. 3000여개의 작은 공장들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인 양 움직인다. 의류의 기획과 생산, 유통과 판매가 원스톱으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최신 유행의 옷 한 벌이 하루 안에 뚝딱 탄생하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 완제품은 오토바이를 타고 의류쇼핑의 메카 동대문시장으로 옮겨져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이 옷에는 ‘메이드 인 창신동’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옷의 고향이 창신동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세방이의순재단, 강원도 산불피해 이재민에게 생활필수품 구호 물품 전달

    세방이의순재단, 강원도 산불피해 이재민에게 생활필수품 구호 물품 전달

    세방이의순재단이 지난 14일에 강원도 강릉과 동해 산불피해 이재민 전체를 대상으로 다양한 생활필수품 구호 물품을 강원도 강릉시와 동해시에 각각 전달했다. 지원 물품에는 다가오는 여름에 맞춰 반팔 티셔츠, 손선풍기, 수건 등 다양한 생활필수품으로 구성해 이재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강릉시와 동해시의 산불피해는 속초와 고성에 비해 그 피해가 크지 않아 비교적 관심이 적은 지역이지만, 해당 지역 또한 산불피해 이재민이 많이 발생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다. 특히 이번 산불피해 이재민 지원에 세방이의순재단은 물품 지원을 진행했고, 항만·물류 운송 사업을 하고 있는 세방(주)이 운송을 지원해 순조로운 구호 물품 전달이 이뤄졌다. 또한,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아동센터를 보유한 속초와 고성 지역에는 지역아동센터 프로그램비를 지원해 지역 아동들이 더욱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세방그룹 측은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이재민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지원을 하게 됐다”며, “앞으로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세방그룹과 재단이 함께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세방그룹 창업주 이의순 명예회장이 2007년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세방이의순 재단은 저소득 아동, 청소년, 노인, 사회복지시설 등 소외계층에 대한 다양한 복지증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 사업으로는 전국 각지의 지역아동센터 환경을 개선해주는 ‘희망스위치온’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2018년에는 107호점을 오픈했다. 이 밖에도 저소득층 아동 장학금, 독거노인 생필품 지원, 사랑의 연탄 배달, 긴급 의료 지원 등의 다양한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포체험 나선 20대, 상점 건물엔 남녀 시신이…‘식겁’

    공포체험 나선 20대, 상점 건물엔 남녀 시신이…‘식겁’

    공포체험을 하던 중 사망한 지 상당히 지난 듯한 시신을 발견한 일이 또 발생했다. 이 시신은 각각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인 것으로 추정되고, 주변에 유서도 있는 점으로 미뤄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 오전 4시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 인기를 끄는 ‘공포체험’을 하기 위해 20대 5명이 강원도 삼척 해안도로 인근에 있는 한 건물을 찾았다. 이 건물은 5층 규모로, 일부 업소는 문을 닫은 지 한참 지났고 몇몇 업소만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이들은 허술하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 영업장이 없는 3층으로 올라가면서 역겨운 냄새를 맞닥뜨렸다.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문을 연 순간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신을 마주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삼척경찰서에 따르면 시신은 경상도에 연고가 있는 49세 남성과 29세 여성으로, 실내 창문 등을 테이프로 밀봉한 채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나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 주변에는 가족에게 남긴 유서도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은 없어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은 시신을 발견한 이들 20대가 흉가 체험을 소재로 하는 유튜버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들도 경찰 조사에서 “유튜브에 올라온 체험을 하려고 갔는데 진짜 주검을 볼 줄은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공포 관련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들이 영상을 찍기 위해 찾은 건물에서 실제 시신을 발견한 일이 여러차례 있었다. 지난 4월에는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는 1인 미디어 활동가(BJ)가 공포체험 생중계를 하러 경북 울주군 상북면에 있는 폐쇄 온천숙박업소 건물 3층 객실에 들어갔다가 시신을 발견했다. 백골 상태로 발견된 50대 시신 옆에는 신분증, 날짜(2014년 12월 2일), 짧은 문장이 적힌 메모가 나왔다. 이보다 두달 전에도 30대 유튜버가 흉가 체험을 하러 광주 서구의 한 요양병원을 찾았다가 60대 남성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희망의 전화 129,생명의 전화 1588-9191,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자체 ‘2기 혁신도시’ 사활건 유치전

    지자체 ‘2기 혁신도시’ 사활건 유치전

    춘천, 의료·의약 분야 경쟁력 자신감 원주, 관광·보건·에너지 시너지 기대 강릉, 해양바이오·신소재 등 강점 부각 충남 내포신도시… 충북 접근성 강조수도권 공공기관 이전을 포함한 제2혁신도시 유치를 놓고 자치단체 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14일 강원도와 충남북도 등에 따르면 정부가 500개 공기업 및 기관을 지방이전하고 제2혁신도시에 대한 정부용역 결과가 내년 총선을 앞둔 연말이나 내년 초쯤 나올 예정이다. 경제가 낙후된 강원도는 여러 도시의 유치전이 활발하다. 춘천시는 도·시의원들과 함께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제2혁신도시 유치를 위한 범시민운동기구를 제안하는 등 공기업 유치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춘천시는 의료·의약, 바이오 및 농업 분야, 대학 중심의 국공립연구소, 코레일 관련 물류 유관기관 등에서의 경쟁력을 주장하며 공기업 유치 당위성을 강조한다. 강릉시는 지역 대학과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과학산업단지의 해양바이오, 천연물, 3D프린터를 비롯해 옥계비철금속단지의 신소재 산업 기반 인프라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KTX 개통으로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좋고, 동계올림픽 이후 건강·웰빙·교육·문화·레저도시로 자리잡는 장점도 홍보한다. 이미 혁신도시가 조성된 원주시 역시 관광과 보건, 에너지 분야 등 기존 이전 기관들과 시너지효과를 확대할 방침을 내세워 제2혁신도시도 원주시에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혁신도시 기능을 확대할지, 다른 지역을 추가 지정할지 정부 방침이 결정되지 않아 확대 쪽에 기대를 건다. 강원도 관계자는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부 정책도 지역 여론에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혁신도시 유치를 놓고 지역 이기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갈등이 예상되는 만큼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국토 균형발전에 맞춰 공기업들이 이전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남도는 도청이 있는 내포신도시(홍성·예산)를 혁신도시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지난해 7월 취임 후 혁신도시 지정을 위해 국회 토론회 개최, 중앙부처 방문 등이 있을 때마다 “연기군에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가 건설된다는 이유로 충남은 혁신도시 지정에서 제외돼 손해를 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지사는 특히 자신이 국회의원이던 지난해 1월 발의한 혁신도시법 개정안 통과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개정안은 ‘전국 광역시·도에 하나 이상 혁신도시를 지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서유덕 주무관은 “혁신도시 지정 활동은 2015년부터 추진됐으나 양 지사 취임 이후 본격화됐다”며 “혁신도시법 개정안이 이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폐기되기 때문에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했다. 충남도는 ‘내포신도시를 환황해권 중심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기대를 건다. 또 대전시와 함께 혁신도시 지정 촉구 10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충북도는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강조하며 지역산업 육성을 위해 공기업을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공공기관 추가 이전이 진행되면 진천군과 음성군에 걸친 기존 충북 혁신도시 내 여유 부지에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홍성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정부, 강원산불 피해복구 377억원 예비비 지출 의결

    정부는 강원도 산불 피해 지역의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377억 6700만원의 예비비를 지출하기로 했다. 정부는 14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 내용을 포함해 법률안 1건,대통령령안 21건,일반안건 3건 등을 의결했다. 피해 복구 지원 예산은 지난달 6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강원도 5개 시군의 각종 재난폐기물 처리와 전소된 관광·체육시설 복구에 사용될 예정이다. 정부는 또 환경오염시설의 통합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일정 수준 이상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사업자가 배출부과금을 내야 하는 대기오염물질 대상에 질소산화물을 추가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업자가 질소산화물 배출량 자료를 허위로 제출할 경우, 해당 사업장에서 대기오염물질을 최대로 배출한 양에 20%를 가산해 배출부과금을 부과할 수 있다. 정부는 식품접객영업자가 청소년에게 주류를 팔았더라도 신분증 위·변조로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협박 등으로 청소년임을 확인하지 못한 사정이 인정돼 불기소 처분이나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행정처분을 면제해주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시행령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아울러 저소득 미혼모와 자녀의 의료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한부모가족지원법 시행령도 개정했다. 기존에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에 따라 지급되지 않던 의료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가가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개발제한구역에 설치하는 시설의 건축 연면적 상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발제한구역법 시행령도 처리됐다. 이 시행령에서는 개발제한구역 내 소규모 실내 생활체육시설의 연면적 상한은 1500㎡에서 3000㎡로, 도서관의 연면적 상한은 1000㎡에서 2000㎡로 각각 늘렸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성 접대 포함 뇌물수수 혐의’ 김학의, 16일 구속 여부 결정

    ‘성 접대 포함 뇌물수수 혐의’ 김학의, 16일 구속 여부 결정

    총 1억 6000만원대 뇌물수수·성 접대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구속 여부가 이르면 16일 밤 결정된다.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오는 16일 오전 10시 30분 김 전 차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어 구속수사의 필요성에 대해 판단한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은 13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해 김 전 차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달 1일 수사단이 꾸려진 지 42일 만이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앞서 두 차례 소환 조사에서 “윤중천씨를 알지 못한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함에 따라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고 구속수사 방침을 정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건설업자 윤씨에게서 1억 3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검사장으로 승진한 2007년 ‘승진 청탁용’으로 윤씨에게서 500만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명절 떡값’으로 2000만원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초에는 윤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에 걸려있던 박모 화백의 감정가 1000만원짜리 서양화 한 점을 가져간 사실 또한 파악됐다. 그뿐만 아니라 사업가 최모 씨에게서 3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최씨를 여러 차례 불러 조사한 끝에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김 전 차관에게 회사 법인카드를 건네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게 하고, 차명 휴대전화를 제공하거나 생활비 등을 대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윤씨가 뇌물을 건넨 시점보다 상대적으로 최근인 최씨의 뇌물 공여 의혹으로 인해 검찰은 제한된 공소시효를 늘릴 수 있게 됐다. 이밖에 김 전 차관은 윤씨와 이모씨 간 보증금 분쟁에 개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윤씨는 지난 2008년 2월 ‘명품판매점 보증금 1억원을 돌려주지 않는다’며 이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하자, 김 전 차관이 고소 취하를 종용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김 전 차관과 윤씨에게서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여성이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성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날까 염려해 이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보고 ‘제3자 뇌물죄’를 적용했다. 다만, 성폭행 혐의는 이번 구속영장 범죄 사실에서 제외됐다. 대신 성 접대를 뇌물로 간주해 포함시켰다. 김 전 차관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강원 원주시 별장에서 윤씨가 불러들인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것을 성 접대로 판단한 셈이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성폭행 혐의에 대해 계속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입대’ 윤지성, 짧아진 머리 포착 ‘잘 다녀올게요~’

    ‘입대’ 윤지성, 짧아진 머리 포착 ‘잘 다녀올게요~’

    워너원 출신 가수 윤지성(28)이 오늘(14일) 입대했다. 14일 오후 윤지성은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7사단 신병교육대대에 입소하기 전 팬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윤지성은 이곳에서 일정 기간 동안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현역병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한다. 워너원 멤버 가운데 처음으로 입대하는 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윤지성은 지난 2017년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를 통해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으로 데뷔했다. 이후 지난 2월 솔로 앨범 ‘어사이드(Aside)’와 스페셜 앨범 ‘디어 다이어리(Dear diary)’를 발매하는 등 활동을 이어왔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길섶에서] 오백나한의 얼굴/이순녀 논설위원

    반달 모양의 눈매, 양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술, 동글동글 복스러운 두 뺨. 보는 이의 표정도 덩달아 환하게 만드는 마법의 미소다. 그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있는 또 다른 얼굴에는 고뇌의 그늘이 짙다. 무슨 상념이 저리 깊을까, 한참을 바라본다. 차가운 돌에 새긴 표정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온기가 느껴지니 희한한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의 주인공들 얘기다. 나한(羅漢)은 불교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뜻한다. 2001년 강원도 영월의 창령사 터에서 발견된 나한상 300여점 중 88점이 처음 서울 나들이를 했다. 폐사된 절터에 묻혔다가 500여년 만에 극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가 신비롭다. 마치 땅속에 있는 듯 어두운 불빛 아래 각자 개성 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한상을 보자니 삼라만상의 희노애락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와 가장 닮은 얼굴을 찾으며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다 조선 승려 편양언기의 시구에 눈길이 멎었다. “구름이 달리지 하늘이 움직이는가/배가 갈 뿐 언덕은 가지 않는 것을/본래는 아무것도 없는 것/어디메서 기쁨과 슬픔 이는가.” coral@seoul.co.kr
  • 뜬금없는 ‘이승만·박정희 국부론’… 71년 정쟁 ‘우율 문묘종사’ 닮았다

    뜬금없는 ‘이승만·박정희 국부론’… 71년 정쟁 ‘우율 문묘종사’ 닮았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8일 뜬금없이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론’을 다시 꺼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와 선진화의 아버지가 그것이다. 국부론이 성립하려면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절이 돼야 하고 상하이임시정부의 법통은 부정돼야 한다. 상하이임시정부 법통론을 두고, 그가 북한 정권 수립을 옹호하려는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제기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화는 이른바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관변 학자들이 나서서 ‘8월 15일은 건국절’이라고 주장했다. 건국절이 된다면, 이승만은 자연스럽게 건국의 아버지가 된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 역사를 아예 정부가 관장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끝내려 했다.‘국부화’는 이들에게 찍힌 친일과 독재의 낙인을 한 방에 지울 수 있는 수단이었다. ‘대한민국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이 나라의 정통성의 원천으로 공인받는 것으로 그 후예들은 이 나라의 적통이 된다. 역사적 정통성은 현실 정치에서 집권의 정당성으로 이어진다. 이들을 거부하면 체제 부정 세력이 된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모 인사가 제기하고 가짜 보수집단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민주화의 아버지 이승만’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들은 한국 현대정치의 흑역사를 열어 놓은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1952년 5월 25일 계엄령 선포부터 같은 해 7월 7일 제1차 개정헌법 공포까지 이어진 정치적 소요)을 한국 최초의 민주화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건국, 산업화는 물론이고 민주화까지 혈통 속으로 끌어들여 ‘한국판 백두혈통’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부화’ 논란은 조선의 문묘종사 정쟁에 연원을 두고 있다. 조선 중기 등장한 붕당은 제각각 자파의 영수를 문묘에 종사하기 위해 대를 이어 가며 정쟁을 벌였다. 문묘에 종사된다는 것은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법통을 승계했음을 공인받는 것이다. 집권의 정당성은 이념적 정통성 위에서 가능하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화는 대한민국 역사의 문묘 맨 윗자리에 그 위패를 안치하려는 것이니, 조선의 문묘종사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 운운’하는 것이 조선의 ‘현인’ 논란보다 훨씬 더 유치하고 구리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인조 13년(1635년) 성균관(지금의 국립서울대학교에 해당한다)에 난리가 났다. 유생들이 수업 거부, 동맹휴학, 제적, 자퇴, 가투까지 벌였다. 시위대가 대궐 앞까지 진출했으니 왕조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난리였다. 5월 11일, 송시형을 소두(상소의 대표자)로 하여 유생 270여명이 서인의 종장인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문묘에 종사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이른바 ‘우율 문묘종사 상소’다. 그러자 남인 유생 57명이 채진후를 소두로 하여 맞섰다. 농성장인 동학(관립 4부학당 중 하나. 지금의 동대문 옆 옛 이화여대부속병원 자리에 있었다)으로 가면서 지름길인 지금의 대학로를 놔두고 굳이 창덕궁 앞으로 돌아갔다. 대궐 앞 시위를 위해서였다. 인조는 우율 문묘종사를 거부했다. 그러자 인조반정의 공신들이 들고일어났다. 12일 영의정 윤방, 우의정 김상용이 중신 회의에서 우율 문묘종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3일엔 송시형이 다시 상소를 올렸고 오윤겸, 조익 등 대신들이 두둔했다. 점입가경이었다. 서인은 채진후 등 남인계 유생 6명에게 정거(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벌) 처분을 내렸고 남인계 유생 50여명은 수업 거부에 해당하는 권당에 들어갔다. 조정에서는 이조판서 최명길이 성균관 관련 직책인 대제학과 지성균관사의 사표를 걸고 3명에 대한 정거를 주장했다. 지방에서도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 전라도, 충청도의 서인 유생들이 릴레이 상소를 했다. 인조는 불쾌했다. 최명길이 낸 대제학, 지성균관사 사표를 수리했다. 지방 유생들의 상소에는 “유생의 본분이나 지킬 일이지 알지도 못하는 일을 거론해 남의 비웃음을 사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우율 문묘종사 청원이 시작된 것은 인조반정 직후였다. 반정에 성공하고 불과 13일 만인 1623년 3월 27일, 서인 유순익이 율곡 이이의 문묘종사를 청원했다. 이에 민성징, 이민구, 유백증 등 반정공신들이 인조에게 윤허를 청했다. 인조는 점잖게 거부했다. ‘중차대한 문제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인조는 문묘종사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었다. 42년의 논란 끝에 광해군 초 결말이 난 5현 문묘종사의 전말을 지켜봤고 이언적과 이황의 위폐를 문묘에서 빼는 문제(회퇴변척)를 놓고 벌인 북인과 남인의 정쟁도 지켜봤다. 서인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을 장악한 것도 모자라 학문과 이데올로기의 정통성까지 독점해 항구적인 집권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 아닌가. 재위 기간 내내 상소는 계속됐지만 인조는 외면했다. 정쟁이 다시 불붙은 것은 효종 즉위년이었다. 서인은 왕이 어리숙할 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1650년 1월 성균관 유생 홍위 등 수백 명이 문묘종사를 청원하는 상소를 했다. 긴장한 남인 유생들은 2월 경상도 진사 유직을 소두로 900여명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영남의 거의 모든 읍이 참가했다. 그러자 성균관의 서인 유생들은 유직에게 삭적과 부황의 처벌을 내렸다. 유생 명부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고 그의 이름을 쓴 종이를 큰 북에 붙이고 북을 치며 장안을 도는 처벌이었다. 흉악범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과 같은 조처였다. 남인 유생들은 공관으로 맞섰다. 일종의 동맹휴업이었다. “과거를 보기 위해 구차스럽게 반궁에 남아 있을 수 없다.” 서인 유생도 염치가 없었던지 공관을 했다. 효종은 속이 끓었지만, 자신의 즉위를 기념해 치르는 증광시가 무산될 수 있어 걱정이었다. 영의정 이경여와 우의정 조익이 부황 처벌만 면제하는 수습책을 냈다. 그러나 서인 유생들은 막무가내였다. ‘선현을 모욕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철회할 수 없다.’ 효종은 역정을 냈다. “너희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그러자 서인 유생들은 “‘불학무도한 놈’이 어떻게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느냐”며 다시 수업을 거부했다. 손을 든 것은 효종이었다. 7월 3일 ‘군왕으로서 거친 말을 한 것은 잘못’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훗날 소론의 영수가 되는 박세채 등이 우율 문묘종사 청원과 함께 부황 처벌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효종이 상소의 수용을 거부하자 이번엔 승정원에서 치받았다. ‘유생의 상소에 답하지 않는 것은 선비를 대우하는 바른 도리가 아닙니다.’ 효종은 다시 사과를 해야 했다. ‘유생들에게 불평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 내 자신이 매우 부끄럽다.’ 성균관 공관 사태는 이것으로 일단락됐다. 6년 뒤 서인의 두 영수가 직접 소두로 나섰다. 송준길은 1657년 10월, 송시열은 이듬해 12월에 우율 문묘 종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효종은 거부했다. 서인의 의도와 집요함에 넌더리가 났다. 현종이 즉위하자 서인들은 다시 공세에 들어갔다. 즉위년(1659년) 관학 유생 윤항 등이 5차례 상소를 올렸고 부제학 유계 등 대간들도 차자를 올렸다. 효종 3년엔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충청도, 전라도 유생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상소했다. 현종 역시 거부했다. 우율 문묘종사 정쟁은, 당쟁을 왕권 강화에 이용한 숙종 때에야 끝났다. 경신환국(1680년·숙종 6년)으로 남인을 남김없이 쓸어버린 뒤 숙종은 서인의 요구에 따라 1682년 우율 종사를 윤허했다. 처음 청원이 있고 59년 만이었다. 숙종은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을 통해 서인을 숙청한 뒤 남인의 주장에 따라 우율의 위패를 문묘에서 철거(철향)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을 숙청한 뒤 위패를 복향했다. 무려 71년 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이와 성혼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문적 정치적 궤적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서인의 권력 기반은 확고부동해졌다. 서인의 노론 소론 분당 이후엔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등 노론의 종장이 차례로 문묘에 종사됐다. 조선은 노론의 천하가 되었다. 조선이 불가역적인 쇠락의 길을 걷던 조선 말(고종 20년)에는 김집의 문묘 종사가 이루어졌다. 참으로 집요했다. 그 집요함은 지금 ‘대한민국 아버지’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부고]

    ●정상희(기업은행 돈암동지점 부지점장)씨 부친상 임성식(유진투자증권 인사팀장)씨 장인상 12일 건국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30분 (02)2030-7900 ●송민석(경기북부지방경찰청 정보관)씨 장인상 13일 양주 광적 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031)876-4448 ●이은주(강원도민일보 서울본부 부장)씨 모친상 박진수(강원도민일보 전략국 부국장)씨 장모상 13일 순천의료원 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7시 20분 010-7174-3937
  • 임금 1조 더 드는데… 버스비 동결한다면 지자체 지원·노선폐지뿐

    임금 1조 더 드는데… 버스비 동결한다면 지자체 지원·노선폐지뿐

    15일 전국 13개 지방자치단체에서 263개 버스 회사가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각각의 주체가 여론전을 펴면서 사실과 주장이 뒤섞이고 있다. 버스 파업의 원인과 대응,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한 버스기사들의 임금 변화 등을 중심으로 주요 사안의 사실관계를 정리해 봤다. -15일 버스파업이 주 52시간 때문이다? “일정 부분 그렇다. 15일 파업을 예고했던 13개 지역 버스노조 중 200여곳은 준공영제·1일2교대제가 시행돼 주 52시간제 도입의 영향이 적다. 나머지 업체도 300인 미만으로 내년부터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주 52시간제로 급여가 줄면서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가 커졌다는 점에서 영향을 미쳤다. 또 주당 근무시간이 평균 50시간인 일부 지자체는 실제 근무시간이 주 52시간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주 52시간제 도입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버스기사 급여 수준이 너무 낮다? “지역에 따라 다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버스기사(월평균 근로시간 214.5시간)의 평균 임금은 404만원이었다. 부산(227.5시간)은 401만원, 대구(216.3시간) 356만원, 인천(221시간) 335만원, 광주(209.2시간) 335만원, 대전(216시간) 390만원, 울산(234시간) 402만원 등이었다. 반면 경기도(262시간)는 345만원, 강원도(275.6시간)도 305만원을 받아 다른 곳에 비해 근무시간에 대비 임금이 낮았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 버스기사 월급이 100만원 준다? “임금은 줄지만 100만원까지는 아니다. 버스 노동자의 전체 평균 임금은 346만원으로 기본급이 49%, 연장근로·초과근무수당 32%, 상여 19%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동차노련은 주 52시간 시행 땐 초과근무수당 등이 줄면서 월 60만~100만원의 임금 감소가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정부의 근로지원금(월 최대 40만원)이 주어지므로 최종적으로는 대략 20만~60만원이 줄게 된다.” -주 52시간제로 버스기사가 부족하다? “아니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국토교통부 추산으로 내년까지 대략 전국에 7100명이 필요하다. 정부는 버스 운전기사 양성을 지원하고 있는데 올해 5월 기준 1만 2000명이 신규로 버스운전면허를 땄다. 때문에 버스기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전기사들이 처우가 좋은 서울 등 대도시를 선호해 지방은 수급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전국 버스 준공영제 도입에 1조원이 든다? “아니다.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라 예상되는 인건비를 준공영제 도입에 따른 비용으로 오해한 것이다. 참고로 한국교통연구원은 신규 버스기사 인건비 추산액 7300억원, 기존 버스기사의 임금보전에 27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버스요금 인상 이외에 답이 없다? “일정 부분 그렇다. 당장 임금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한 인력 충원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이 없다. 현재 버스 관련 업무는 광역급행버스(M버스)를 제외하고 지자체 위임사무로 돼 있어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도 어렵다. 이는 이번에 정부가 M버스에 대한 지원 확대와 교통취약지역 주민의 교통권 확보를 명분으로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한 이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재정 부담이 늘 수 있다. 장기적으로 고용 인원을 늘리기 위해선 단계적인 준공영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 국토부와 지자체, 사업자, 노조, 전문가 등의 공통 의견이다.” -경기도 버스요금은 서울과 연동돼야 한다? “그렇다. 현재 서울과 인천, 경기도는 통합요금제를 운영하면서, 환승 횟수에 따라 각 요금을 나눠 갖는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1450원을 내고 버스를 탄 승객이 서울에서 1회 환승한 경우 경기도 버스가 740원, 서울 버스가 710원을 갖게 된다. 때문에 경기도가 요금을 올리면 서울시는 가만히 있어도 덕을 보게 된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서울·경기·인천 중 어느 한 지자체만 버스요금을 인상한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파업 대응은 지자체가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는 맞다. 버스가 지자체 위임 사무이기 때문에 1차적으로 지자체들이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파업이 주 52시간제의 영향 때문이라는 점에서 국토부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도 적극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버스 파업은 국토부의 안일안 대응 때문이다? “일부만 맞다. 먼저 국토부가 교통 관련 주관 부처라는 측면에서 책임이 크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수석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토부 책임론을 제기한 이유다. 하지만 이번 파업은 주 52시간제 도입이 직간접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1년 전 여당이 주 52시간 적용 특례 업종에서 버스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당시 버스업계와 국토부는 유예 기간이 1~2년 더 필요하다고 했는데, 여당이 밀어붙인 측면이 있다. 또 시내버스와 일반 광역버스가 지자체 위임 사무라는 측면에서 국토부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세종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부고] 이은주(강원도민일보 서울본부 부장)씨 모친상

    △조소례씨 별세, 이은주(강원도민일보 서울본부 부장)씨 모친상·박진수(강원도민일보 전략국 부국장)씨 장모상 = 13일, 전남 순천의료원 장례식장 9호실, 발인 15일 오전 7시 20분, 장지 순천 매곡동 선영. 010-7174-3937
  • ‘별장 성접대 의혹’ 김학의 구속영장 청구…억대 뇌물수수 혐의

    ‘별장 성접대 의혹’ 김학의 구속영장 청구…억대 뇌물수수 혐의

    뇌물수수와 별장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63)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검찰이 13일 1억 6000만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달 1일 검찰이 별도 수사단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한 지 42일 만이다. 과거 부실수사 의혹, 별장 성접대 동영상 의혹 등 국민의 비판 여론이 뜨거운 가운데 ‘모르쇠’로 일관하는 김 전 차관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은 이날 오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해 김 전 차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13년 3월 이른바 ‘별장 성접대 의혹’이 불거지면서 김 전 차관이 자진 사퇴한 이후 검찰은 2차례 무혐의 처분을 거쳐 6년여 만에 신병확보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 12일 2차 소환 조사에서 김 전 차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6시간 동안 건설업자 윤중천(58)씨 등에게서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정황과 성범죄 의혹을 추궁했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은 지난 9일 첫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윤중천(58)을 알지 못한다”고 잡아뗀 뒤 “윤중천을 모르니 별장에 같이 간 적도, 돈을 받은 적도 없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 속에 나오는 남성도 내가 아니다”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차관은 금품거래 의혹이 제기된 또다른 사업가 최모씨도 전혀 모르는 인물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최근 두 차례 소환 조사에서 “윤씨를 알지 못한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함에 따라 증거인멸 등 우려가 있다고 보고 구속수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수사단은 당초 윤씨 등 금품공여자들과 김 전 차관을 대질신문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이 두번째 조사에서도 이들과 관계 자체를 완강히 부인함에 따라 대질의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성접대 의혹에 대한 검·경 수사에서도 윤씨를 모른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해왔다.검찰은 그러나 윤씨와 최씨가 내놓은 진술, 김 전 차관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과거 동선분석과 계좌추적 결과 등을 토대로 김 전 차관에게 1억원 이상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차관은 2007∼2008년쯤 건설업자 윤씨에게서 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것을 비롯해 1억 3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검사장으로 승진한 2007년 “승진을 도와준 인사에게 성의표시를 하라”는 명목으로 윤씨가 건넨 500만원을 받았고 이밖에도 명절 떡값 등으로 모두 2000만원 안팎의 현금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초에는 윤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에 걸려있던 박모 화백의 감정가 1000만원짜리 서양화 한 점을 가져간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검찰은 또 김 전 차관이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이모씨와 윤씨 사이의 보증금 분쟁에 개입해 이씨가 1억원의 이득을 얻었다고 보고 김 전 차관에게 제3자뇌물 혐의를 적용했다. 윤씨는 2007년 이씨에게 명품판매점 보증금으로 1억원을 줬다가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윤씨는 2008년 2월 이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가 취하했다. 윤씨는 검찰에서 “김 전 차관이 이씨에게 받을 돈을 포기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윤씨로부터 수차례 성접대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뇌물수수 혐의에 포함했다. 다만 이씨에 대한 특수강간 등 성범죄 혐의는 구속영장에서 제외됐다. 김 전 차관은 사업가 최모씨에게서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최씨가 2006년쯤부터 김 전 차관에게 차명 휴대전화를 제공하고 용돈과 생활비 등을 대주며 일종의 ‘스폰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최씨가 제공한 뇌물이 3000만원을 넘고 2009년 5월 이후까지 금품거래가 이어진 사실을 확인해 공소시효가 10년인 특가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검찰은 윤씨와 최씨가 특정한 형사 사건을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였던 김 전 차관에게 향후 청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금품을 건넸다고 보고 대가성·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뇌물수수와 성범죄 정황을 다시 추궁할 방침이다. 이씨가 제출한 정신과 진료기록 등을 토대로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강간치상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등 돌린 가족·학교, 출산 뒤엔 생활고… “이 굴레 대물림 두려워”

    등 돌린 가족·학교, 출산 뒤엔 생활고… “이 굴레 대물림 두려워”

    편견·가난과 싸우는 청소년 부모 심층조사 그림자 가족. 복지 현장에서 청소년 부모가 꾸린 가정을 부르는 표현이다. 어린 산모(24세 이하)가 한 해 낳는 아기는 통계상으로만 1만 4600명(2018년 기준)이나 되지만 주변에선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싸늘한 사회적 시선을 피해 숨어 지내는 가족이 많아서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부모 가정을 취재하기 위해 4~5월 서울, 여수, 부산, 광주, 강릉 등 전국을 돌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와 협업해 진행한 취재에서 100개 가정을 상대로 서면 또는 대면, 전화 인터뷰 등을 병행하며 심층 조사했다. 평균 19.3세에 출산한 100개 가정엔 각기 다른 사연이 있었지만 임신과 출산, 양육 때 겪는 공통적 패턴도 확인됐다. ▲임신과 동시에 주변의 지지가 끊기면서 산모는 홀로 고립됐고 ▲출산 후엔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으며 ▲가난과 편견의 굴레 속에 갇힌 자신의 삶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분투했다. 김지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박사는 “어린 나이에 출산을 택한 부모들은 무책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책임감이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어린 부모 스스로의 노력에 사회적 지원이 더해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청소년 부모 가정도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할 수 있다.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어린 부모들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 미래로 시점을 나눠 엮었다. 주위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사례자들의 요청으로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했다.# 과거 청소년 부모 대부분은 임신을 자각한 순간을 ‘악몽’으로 기억한다. 이성 간 교제 시기가 과거보다 빨라진 상황에서 성적 호기심 또는 상대방의 강압적 분위기 유도 탓에 성관계했다가 덜컥 아이가 생겼다는 사연이 많았다. 지난해 교육부 등의 ‘청소년 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는 중·고교생 비율은 5.7%였다. 해당 연령(13~18세)의 주민등록인구가 309만 6947명이니 성관계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7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른 임신 경험을 극소수의 이야기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조사에 응한 청소년 부모 중 41%는 ‘피임에 실패해 임신했다’고 답했다. 또, 67%는 ‘임신사실을 알았을 때 두렵고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아이를 낳아야 할까’, ‘부모나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학교는 다닐 수 있을까’ 등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청춘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채웠다고 했다. 태아를 품은 청소년들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었지만 주변의 지지는 기대할 수 없었다. 가족마저 우군이 돼 주지 않았다. 응답자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가족들의 태도를 1(부정)부터 10(긍정) 사이로 평가해 달라’고 했더니 평균 3.61점이 나왔다. 특히 청소년 부모 중에는 위기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 많았다. 응답자의 32%는 “부모로부터 가정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58%는 가출 경험이 있었다. 서울에서 만난 정유정(24)씨도 아버지에게 수시로 맞고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둔 18살에 아들 정우(6)를 몰래 낳았을 때 부모는 정씨 모자가 지내던 모자원에 찾아와 “아이를 포기하라”며 행패를 부렸다. 하지만 유정씨는 아들을 입양 보낼 수 없었다. 지옥 같던 현실에서 탈출구를 열어 줄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유미숙 한국미혼모네트워크 사례관리팀장은 “청소년 부모 중에는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따뜻한 ‘진짜 가족’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교나 친구도 울타리가 돼 주지 못했다. 임신 당시 33%만 학교를 다녔다고 응답했다. 학업을 중단한 이유로는 ‘출산과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해서’, ‘자녀 양육을 위해 복학하지 못해 자퇴 처리됨’, ‘임신으로 스스로 자퇴’ 등을 꼽았다. 학교에선 어린 부모의 임신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게 되더라도 돕기보다는 자퇴를 권유하거나 퇴학 처리했다. 강원도에서 만난 강예원(25)씨는 “출산을 결심했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이 아기 아빠에게 ‘학교에서 나가라’고 했다”면서 “이후 실업계 학교로 복학해 졸업장은 땄지만 크게 상처받았다”고 털어놨다. 친구들 사이에선 “죽은 것 아니냐”, “남자를 어떻게 만났기에 그러느냐”는 등의 소문이 돌기도 했다.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이들이 출산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만든 존엄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유정씨는 “초음파 검사 때 들은 아기 심장 소리를 잊기 어려웠다”면서 “마치 ‘나 여기 살아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현재 초등학생부터 영유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자식을 키우는 응답자들이 꼽는 현재의 가장 큰 어려움은 ‘돈 문제’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부모들에게도 육아 비용은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이다. 수입이 적거나 고정 수입이 없는 청소년 부모들에겐 더 큰 어려움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커질수록 돈 앞에 더 좌절한다. 정민아(25)씨 부부는 딸에게 미안할 뿐이다. 올해 6살 된 아이는 “친구들처럼 태권도 학원이랑 발레 학원을 가고 싶다”고 조른다. 하지만 들어주기 어렵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남편 이지훈(24)씨의 한 달 벌이가 100만원대 후반 수준인데다 민아씨는 셋째를 임신해 일할 수 없다. 민아씨는 “아이가 유튜브를 보면서 태권도 동작을 따라 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생활고 탓에 아이와 생이별한 청소년 부모도 많았다. 전남 여수에서 만난 김이은(22)씨는 돈을 벌기 위해 아이와 떨어져 산다. 원래 집은 인천이지만 여수 펜션에서 일자리를 잡았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평일에는 두 살배기 아이를 친정 근처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긴다. 아이의 얼굴을 온종일 볼 수 있는 건 한 달에 한 번뿐이다. 이은씨는 “입양을 보내기 싫은 게 과도한 욕심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출산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 밖으로 쫓겨난 청소년 부모들은 “그 흔한 학사 학위도 없어 구직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뒤늦게 학교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8살 딸을 혼자 키우는 홍예슬(25)씨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을 구하지 못하면 생활고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어린 부모들은 아이에게 떳떳하고 싶어서(67%) 또는 예슬씨처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65%) 중단된 학업을 이어 가고자 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힘든 이들은 주로 ‘취업을 위한 기술교육을 받고 싶다’(27%)고 말했다. 문제는 뒤늦게 공부하려면 또 돈이 든다는 점이다. 예슬씨는 “학교에서 국가 근로로 일하면 1시간에 8350원씩, 매달 20만~40만원 정도를 번다”면서 “기초수급 등과 합하면 한 달에 100만원 정도를 손에 쥐는데, 교재 비용과 공과금, 교통비, 식비로 쓰면 저축하는 돈은 한 푼도 없다”고 토로했다. 유미숙 팀장은 “현금 지원이 어렵다면 이들의 건강권과 관련된 지원이라도 부족하지 않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부모의 책임감은 다른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층조사에 응답한 어린 부모 중 48%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양육포기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부산에서 만난 김수연(17)양은 앳된 얼굴 때문에 두 살 난 딸의 언니로 오해받는다. 그럴 때마다 “제가 얘 엄마예요”라고 당당히 말한다.자신이 엄마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계기는 뜻밖에도 출산 후 감행한 가출이었다. 돈 문제로 다투는 집안 어른들의 모습에 지친 수연양은 산후조리도 못한 채 딸을 친정에 두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갓난 딸아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수연양은 “입양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딸이 너무 예뻐 떨어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 미래 청소년 부모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불행이 아이까지 덮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미래라도 준비하려면 다른 부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대학원생인 박은경(23)씨는 5년째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아들의 존재를 알리지 못했다. 미혼모에게 쏟아지는 질타를 겪을 만큼 겪었기 때문에 따가운 시선이 아들에게까지 향할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은경씨는 “주변 사람들이 ‘이혼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는 연애하고 싶지 않다’거나 ‘사랑받지 못한 애는 티가 난다’고 얘기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면서 “내 아이에게 이런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가난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미래다.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딸(3)을 키우는 이민정(21)씨는 안정적인 새 직장을 구하려고 자격증을 10여개나 땄지만 취업이 쉽지 않다. 민정씨는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면서 “지금 사는 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다”고 했다. 5살 난 아들을 둔 엄마 이지혜(24)씨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을 여유가 없다”면서 “대우가 열악해도 채용해 주는 회사가 있으면 감지덕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부모 자립지원 단체인 킹메이커 배보은 대표는 “‘어린데 어떻게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느냐’는 등 대안 없이 비난하는 것은 어린 부모들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들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자신들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가야불교, 삼국유사 오역에 승자 중심의 역사로 외면당해… 고대문화 북방전래설 극복할 수 있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가야불교, 삼국유사 오역에 승자 중심의 역사로 외면당해… 고대문화 북방전래설 극복할 수 있죠”

    ‘법맥’ 화두 삼은 도명 스님이 말하는 ‘가야 불교’“불교가 가야시대인 서기 48년에 처음 들어왔다는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일연(1206~1289) 스님이 쓴 삼국유사(국보 306호)에 기록으로 남아 있고, 파사석탑(婆娑石塔)이라는 증거물이 있으며 김해 일대를 비롯한 남해안의 지명과 사찰에는 가야불교를 방증할 설화와 민담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부 사찰에는 그 흔적들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전해옵니다. 물론 설화를 역사로 둔갑시킨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이들도 불교의 남방 전래설, 즉 가야불교를 부정하는 학자들 역시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교 차원을 넘어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지평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재조명이 절실합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국사 일부를 다시 써야 한다. 한국에서 불교를 가장 먼저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로, 중국으로부터 들어왔으며, 소수림왕 2년인 372년이라 게 학계 정설이다. 백제는 이보다 12년 뒤인 침류왕 원년(384년), 신라는 눌지왕 41년(457년)에 전래됐다는 것도 삼국유사 기록을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이보다 300여년 앞선 48년 가야에 불교가 전파됐다는 것도 삼국유사에 나오지만 외면받고 있다. 500여년간 존속했던 가야의 존재가 최근 재조명되는 가운데 가야불교는 더더욱 숨겨진 ‘다빈치 코드’로 다가온다.韓불교 고구려, 372년 첫 전래 ···학계 정설가야시대인 48년, 허황후와 함께 불교 전래기존보다 324년 빨라… 삼국유사 기록 근거 가야 불교라는 화두와 씨름하는 가야불교연구소 소장 도명 스님(여여정사 주지)은 “가야불교의 전래시기나 고구려, 백제, 신라의 불교 전래 시기는 모두 같은 책인 삼국유사에 나옵니다. 그런데 학계는 고구려 등 다른 나라 기록은 인정하면서 유독 가야의 불교 수용 기록은 받아들이지 않는 모순을 보입니다”고 일갈했다. 방황 생활을 오래 했던 그는 1998년 정여 큰스님을 은사로 범어사에 출가했다. 지난 7일 경남 김해에 있는 도심 속 포교원인 여여정사로 찾아가 가야불교에 대해 들었다. 그는 “대륙의 중국 선종에서 이어져 온 한국 조계종의 법맥은 법맥의 문제이고, 해양의 불교 전래는 역사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며 한국 불교계 역시 불교 역사 연구차원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둔 절집은 분주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제3권 제4 탑상(塔像)금관성 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 금관(김해)에 있는 호계사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고을이 금관국으로 있을 때, 세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후 이름 황옥이 동한 건무 24년 갑신에 서역의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金官虎溪寺婆娑石塔者 昔此邑爲金官國時 世祖首露王之妃 許皇后名黃玉 以東漢建武二十四年甲申 自西域阿踰陁 國所載來)중략탑은 4면으로 모가 나고 5층인데, 그 조각이 매우 기이하다. 둘에는 약간 붉은 반점 무늬를 띠고 있고, 그 질은 매우 연하여 이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塔方四面五層 其彫鏤甚奇 石微赤斑色 其質良脆 非此方類也)하략 - 가야불교, 배척하는 이들 역시 삼국유사를 인용하지 않나. “이는 잘못된 해석 탓입니다. ‘그때는 해동에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아직 없었다. 상교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 사람들이 믿어 복종하지 않았고, 그래서 가락국본기(일연 스님이 인용한 원전,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에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없다. 제8대 절지왕 2년 임진년(서기 452년)에 이르러 그곳에 절을 세웠다.(然于時海東 未有創寺 奉法之事 蓋像敎未至 而土人不信伏 故本記無創寺之文 逮第八代? 知王二年壬辰 置寺於其地)’ 입니다. 그런데 불교와 불교 역사에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삼국유사를 번역하면서 상교(像敎)를 뭉퉁그려 불교로 오역한 것입니다. 여기서 상교는 상법시대의 불교(부처님 열반 후 1000~2000년)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가람을 짓는 등 외형 불교인 상법시대가 오지 않은 무불상 시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찰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 이전 최치원이 쓴 봉암사 지증화상적조탑비(국보 315호)에는 ‘비바사(毘婆沙·초기 불교라는 의미)가 먼저 오고 마하연(摩訶衍·대승불교라는 뜻)이 뒤에 들어왔다’는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가야불교 인정 못받은 것은 삼국유사 오역 탓삼국유사 ‘像敎’ 상법시대 의미… 불교는 오역상법시대, 불상·가람 조성 안해… 흔적 남지 않아상법시대 초기 불교, 대승불교보다 먼저 들어와신라말 최치원 ‘지증화상적조탑비’서 기록 남겨”- 가야시대 불상, 왜 남아있지 않나. “가야시대의 불상이 현재 전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고구려·백제·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의 유물은 문헌에서만 전해질뿐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 가야시대에 들어온 불교는 인도와 스리랑카 등에서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혼재하던 시기여서 어떤 성향의 불교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가야에 불교를 전해준 아요디아 왕국이 ‘무불상 시대’ 즉 불상도, 사찰도 조성하지 않은 시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외며, 탑과 부처님 발자국(불족)을 남기던 시대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불상이 전해진 것은 훨씬 뒤의 일입니다. 가야불교는 금관가야 초창기 왕과 귀족들에겐 전래됐지만 일반 백성이 수용하는 데는 신라에서 보듯 토착신앙과의 갈등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가야불교가 공인된 것은 왕후사 창건인 452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 파사석탑, 정말 물 건너온 것 맞나. “가야불교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좌입니다.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스님은 파사석탑에 대해 ‘4각형의 5층 석탑이며, 붉은색을 미세하게 띠었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마 직접 보신듯합니다. 석탑의 재질이 이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고 일연 스님이 서술하였습니다. 이에 김해시 차원에서 지질학자 박맹언 부경대 교수에 의뢰해 2017년 분석한 결과 재질 학명이 ‘탄산염 각력암’이라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는 없는 돌이고, 강원도 정선, 양양, 영월에서 나지만 이 파사석탑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습니다. 파사석탑의 돌은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파사석탑, 인도 전래 가야불교의 강력한 증좌일연 스님 직접 본듯 구체 묘사… 현재와 달라석탑 재질 분석 결과 한국서 생산되는 돌 아냐”- 현재의 파사석탑, 일연 스님의 묘사와 너무 다르다. “일연 스님은 5층이고, 4면으로 모가 났다고 했는데 현재는 둥글넓적한 돌 몇 개를 쌓은 것처럼 보이지요. 그것이 이 탑의 재질이 물러 세월에 의해 많이 마모됐을 겁니다. 이 탑의 다른 이름이 바닷바람을 제압했다는 진풍탑(鎭風塔)입니다. 이런 연유로 과거 뱃사람들이 바다에 나가기 전에 이 돌을 가져가면 풍랑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돌을 조금씩 떼어갔다고 전합니다. 파사석탑의 가치를 더 일찍 알아보고 보존했더라면 원래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훼손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현재 6층으로 보이지만 제일 위의 돌은 탑두였을 겁니다. 제일 아래층에 있는 가장 큰 돌을 보면 돌을 파서 조각한 흔적들이 역력하게 보입니다.” - 파사석탑이 현재 허황옥 무덤 옆에 있다. “파사석탑은 조선시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옵니다. 단지 삼국유사와 같은 호계사가 아니라 호계변(邊) 즉 호계라는 계천의 가에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1873년 절이 폐사되자 김해부사 정현석이 허황후릉 근처로 옮겼다고 합니다. 현대에 들어 이를 영구보존하기 위해 1993년 5월 현재의 자리에 옮기고 비각을 세웠습니다. 이를 보면 호계사에 있던 파사석탑이 허황후릉까지 이전한 과정은 잘 전해지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허황옥에 대해 ‘허왕후’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왕조시대에 살았던 일연 스님은 분명히 ‘허황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구가 더 필요한 대목입니다.” “일명 진풍탑…선원들 고기잡이갈 때 탑 떼어가석탑 원형 훼손 가속화 … 조각 흔적도 역력해석탑, 배 균형잡기?… 해체해보니 사리공도 발견사리는 사라져… 누구 사리함일지 관심도 증폭”- 파사석탑의 용도는. “허황옥 일행이 바다를 건너올 때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한 벨로스터가 아니냐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단지 배의 균형만을 잡기 위해서라면 탑을 실을 것이 아니라 모래나 다른 물건으로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파사석탑이 같이 온 것은 이유는 종교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파사석탑을 해체한 결과 그 가운데 사리함을 보관하는 사리공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게 누구의 사리를 담고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지금 사리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또 탑신을 고정하기 위한 지지대를 받친 구멍도 발견됐습니다.” “가야불교 사라진 이유?… 패자의 역사는 말살패전국 역사 조작못해… 사실만 남았을 것 추정” - 그런데 왜 가야불교, 역사에서 사라졌나. “500년간 존속한 가야가 재조명되는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하물며 멸망한 나라의 종교와 문화는 꼭꼭 파묻히는 법이지요. 정복자 입장에서는 부흥운동, 즉 반란이라도 일어날까 싶어서 철저히 말살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문헌적으로 보면 일연 스님은 가야역사를 가락국기를 모본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삼국유사가 기록되기 이전에 이미 가야불교가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승자의 역사 기록은 조작이나 과장이 가능할 수 있지만 약자, 패전국의 역사는 조작될 수 없잖아요. 정확한 사실만 남아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몇 줄 안 되는 가야의 기록이 더욱 중요하고 정확하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면에서 김부식(1075~1151)이 삼국사기(국보 322-1호)에서 가야사를 배제한 것은 아쉽습니다.”- 허황후의 오빠 장유 화상은 삼국유사에 안 나온다. “장유 화상(長遊和尙)이 허황후의 오빠이며, 허황옥과 같이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이야기는 장유 화상의 부도탑에 나옵니다. 현존하는 이 부도탑은 고려말 또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합니다. 후대에 이 사리탑을 다시 만들 때,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으니 넣어 쓴 것이지, 없다면 망한 왕조에 몸담은 해외 출신 승려 이야기를 지어 넣었겠습니까. 그리고 남해안에는 장유 화상과 관련된 연기(緣起) 사찰이 많습니다. 수로왕의 일곱 왕자와 장유 화상이 성불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지리산 반야봉 칠불사 등이 대표적이죠.” - 연기 사찰의 특징은. “연기사찰들은 대체로 서쪽으로 바라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인도를 향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족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밀양시 삼랑진에 있는 부은사, 김해 무척산에 있는 모은암, 김해 봉하산에 있는 자암처럼 가족중심적입니다. 또 여기 김해에서부터 경남 하동군 칠불사에 이르기까지 연기 사찰이 이어집니다. 이는 당시 장유 화상 일행이 지나가면서 묵었거나 수행한 곳이 나중에 사찰로 조성됐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지금 이런 절에 가보면 당시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2000여년 동안 전란 등으로 소실되어 다시 짓고, 불교의 시대흐름에 의해 전파된 원형의 불교와 인도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그래도 일부 사찰에서는 요니와 링가로 가야불교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습니다.” “인도 전래설 뒷받침 연기 사찰… 인도쪽 바라봐부은사, 모은암, 자암처럼 가족 중심적인도 특징일부 사찰 남근석·여근석인 요니·링가 흔적도 전해허황옥 초야 치른 흥국사 미륵전에 거대 남근석도”- 사찰에 어떻게 요니와 링가, 그것은 음양이 아닌가. “김해 지역의 오래된 사찰인 장유사, 부은사, 모은암, 해은사 등에서는 요니와 링가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경내에 맷돌 모양의 석물이 그것이지요. 힌두교 남신인 시바 신과 그의 아내이자 여신 삭티의 상징인 요니와 링가는 어찌 보면 남근석과 여근석과 같은 음양의 조화를 의미합니다. 사찰에서의 요니와 링가는 불교에 영향을 준 힌두교의 요소여서 사실 초기 불교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바는 나중에 불교에 수용되어 대자재천(大自在天)으로도 등장합니다. 실제로 허황옥이 초야를 치러 부부의 연을 맺은 장소에 세워진 흥국사(과거 이름은 명월사) 미륵전에는 거대한 남근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흥국사는 수로왕이 창건했다고 전합니다만…. 밀양 부은사에 있는 요니는 파사석탑과 같은 재질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아직 분석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부 요니는 자녀를 원하는 이들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합니다.”- 아유타국이 정말 인도를 가리킬까. “허황옥은 자신을 아유타국 공주라고 했는데, 범어 Ayodhya의 음역으로 봅니다. 아요디야는 인도 여러 지역에 나오는 이름이지만, 쿠샨 왕조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인도 중부로 추정됩니다. 수로왕릉의 무덤인 납릉 정문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신어 문양이 나옵니다. 탑 위로는 코끼리의 코 부분이 보이는데, 탑이나 코끼리 코를 후대에서 약간 잘못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물고기는 아요디아 지방에선 신앙의 상징이라 합니다. 수로왕릉의 숭선전비(崇善殿碑) 윗부분인 비두에 조각된 태양 문양은 수로왕릉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유타국의 불교문화와 흡사한 것으로, 태양 왕조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신어가 있는 납릉정문이나 태양 문양의 비석은 고대의 것이 아닌 조선시대에 새로 만든 것입니다만 훼손되고 마모된 문양들을 새로운 묘비를 조성하면서 되살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엄격한 유교가 지배하던 시절, 없는 것을 만들어 넣은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문양을 다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공주는 불법을 전파하러 온 것이 아닐지 몰라도, 문화의 전파자로서는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가야불교의 의미?… 남·북방 문화 융복합 과정 재조명가야 500년 존속 … 서로 인정하는 화쟁사상 곱씹어야”- 가야불교가 현대에 주는 의미는. “가야불교는 한국에 불교 전래를 300년가량 앞당긴다는 의미, 한반도 최초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특히 우리 문화가 오로지 북방에서 중국에서 전래했다는 사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연 스님도 안 써도 그만이었을 허황후 이야기를 남긴 것은 문화적 중화사상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인의 유전자를 분석해보면 북방계 뿐아니라 남방계도 많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좀 더 해양문화를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고, 이들 문화는 융복합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합니다. 가야가 500년 이상 존속했던 것도 서로를 인정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 화쟁(和諍)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다문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한 번쯤 곱씹어 봤으면 합니다.” 글·사진 김해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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