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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가 오래 사랑받고 이야기 풀어내는 코끼리 됐으면”

    “필리가 오래 사랑받고 이야기 풀어내는 코끼리 됐으면”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코끼리 ‘필리’는 아직 순수함과 잔망스러움이 남아 있는 ‘애어른´이다. 고향은 ‘아로마호프 왕국’이고,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건 지난해 4월 무렵. 얼마 전에는 한국 입성 1주년 기념 돌잔치도 성대하게 치렀다. 4월 1일 만우절에 태어나 엉뚱한 상상을 좋아하는 유쾌한 성격으로, 취미는 디제잉이다. 이래봬도 아이큐 401로 어엿한 ‘동물 멘사’ 회원이기도 하다.지난해 4월 출시한 하이트진로의 발포주 ‘필라이트’가 국내 최초로 발포주시장의 포문을 열며 화려하게 안착한 것은 필리라는 코끼리 캐릭터 덕분이다. 출시 1년 3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3억캔(1캔 355㎖)을 돌파하는 등 돌풍을 이어 나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필라이트 후레쉬’를 추가로 내놓기도 했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코끼리맥주’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필리가 필라이트를 알리는 데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후문이다. 필리는 이형민(44) 마케팅실 부장 등 직원 7명이 고심 끝에 만든 ‘토종 캐릭터’다. 필리의 탄생과 성장을 담당한 이 부장은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사무실에서 “기존 맥주 대비 가성비를 높인 발포주라는 생소한 주류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제품인 만큼, 개발 초기 단계부터 광고비를 줄이기 위해 빅모델을 활용하는 대신 친근한 캐릭터를 활용하는 마케팅 방안을 고심했다”고 소개했다. 육지에서 가장 무거운 동물인 코끼리가 꼬리에 매단 풍선으로 둥실 떠오를 만큼 가벼운 가격을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성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업계 특성상 주류 브랜드가 의인화한 동물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국내 맥주 관련 브랜드 중 이렇게 자체개발한 동물 캐릭터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필리가 유일하다. 이 부장은 “필리를 친숙한 이미지로 만들면서도 자칫 아동용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털어놨다. 너무 귀여운 아기 코끼리로 만들면 미성년자는 구매할 수 없는 주류의 성격에 부적합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실사에 가깝게 만들면 선호도가 떨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지난해 처음 공개한 TV광고 장면 중 사람 손에 쏙 잡히는 필리의 물컹한 촉감을 징그럽게 여기는 반응이 포착돼 광고를 온에어한 뒤에도 수차례 미세한 조정 작업을 거쳐야 했다. 최근에는 웹툰 작가 ‘전구별’과 손잡고 약 2주 간격으로 ‘인스타툰’(SNS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정사각형 포맷으로 제작된 웹툰)을 연재하는 등 콘텐츠 확대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동물 복지와 관련한 분야 등 필리의 성격과 맞는 사회공헌 캠페인도 검토 중이다. “이미 모든 분야에서 진정성이 필수 요소인 시대가 됐어요. 억지로 제품을 강요하는 식의 홍보는 통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하지요. 필리가 오래오래 소비자들의 귀여움을 받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코끼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안희정 1심 무죄] “위력 판결” 여성계 ‘발칵’… “미투 피해자 지키자” 대규모 시위 예고

    [안희정 1심 무죄] “위력 판결” 여성계 ‘발칵’… “미투 피해자 지키자” 대규모 시위 예고

    포털뉴스엔 김씨 폭로 비난 댓글 폭주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여성계에서는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번 판결을 “‘위계’를 이해 못 한 사법부의 소극적 판단”이라고 규정한 여성계는 ‘미투 운동’의 위축을 막기 위해 항의 집회를 이어 갈 계획이다. 피해자 김지은(33)씨는 이날 변호인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권력형 성폭력이 정당하게 심판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약자가 힘에 겨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세상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아 진실을 밝혀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초석이 되도록 힘을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재판 직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판결은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자를 보좌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성폭력을 겪더라도 침묵하라고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희정 공동대책위’와 시민 200여명은 이날 저녁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긴급 집회를 열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이 판결이 또 하나의 위력일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헛기침만으로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권력이 남용되는 게 문제인데도, 재판부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람처럼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사법부는 은밀하고 악랄하게 진행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여성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이 재판 때문에 미투 운동과 여성 집회가 위축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시민들은 게시글을 통해 “이런 사회라서 우리가 그토록 주말에 나가 외쳤던 것”, “그렇게 시끄러웠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등의 의견을 내놨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이끌고 있는 인터넷 카페 ‘불편한 용기’는 5차 시위를 예고했다. 이 카페는 “집회를 신고할 때 함께 제출할 질서유지인 명단을 작성해 달라”고 공지해 5차 시위를 조만간 신고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여성 누리꾼 사이에서는 “5차 시위는 더 과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관련 소식을 전한 포털 뉴스의 댓글에는 “불륜일 뿐 성폭행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는 당연한 결과”라는 주장이 더 많았다. 김씨의 폭로 자체를 비난하거나 미투를 포함한 페미니즘 운동을 거칠게 헐뜯는 댓글도 범람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씨줄날줄] 왼손잡이/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왼손잡이/이두걸 논설위원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난 왼손잡이야!”남성 듀오 패닉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다. ‘혁명의 시대’가 가고 ‘문화의 시대’가 도래한 당시 패닉은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 영원히 가겠다”(달팽이)며 당대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왼손잡이’에 담겨 있다. 이 곡을 작사 작곡한 이적은 억압받는 성 소수자의 삶을 왼손잡이에 빗대 노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날것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잇속만 챙긴 살진 손가락들과 권위들에 정확히 손가락을 겨눈 것”(김윤하 음악평론가)이라는 비평은 노랫말만큼이나 적확하다. 이 곡이 담긴 패닉 1집이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건 이들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징표다. 어제는 ‘국제 왼손잡이의 날’이었다. 인류의 10% 안팎이 왼손잡이로 추정된다. 왼손잡이가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야구다.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등이 대표적인 왼손잡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대왕, 뉴턴,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인류 역사의 ‘거인’들도 여기에 속한다. 폴 매카트니와 지미 헨드릭스 등 팝 음악의 거장들도 왼손으로 기타를 쳤다. 왼손잡이일수록 오른손잡이보다 좌뇌와 우뇌를 균형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왼손잡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부드러운 소수자’였다. 영어에서 왼쪽(Left)은 ‘버려졌다’는 뜻인 반면 오른쪽(Right)은 ‘옳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말의 ‘바른손’은 오른손의 다른 말인 반면, 왼손은 ‘비뚤어지다’는 뜻의 ‘외다’에서 따왔다. 중견 소설가 이순원씨의 작품 ‘19세’ 속 주인공 ‘정수’는 우수한 성적임에도 하루빨리 독립하기 위해 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하지만 정수는 도중에 학교를 그만둔다. 왼손잡이였던 그가 오른손잡이용 주판을 능숙하게 다루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순원씨는 몇 해 전 한 칼럼에서 “왼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들보다 수명이 5년쯤 짧다. 오른손잡이 위주의 세상에서 왼손잡이는 일상 자체가 스트레스고 순간의 일들 모두가 해결 없는 차별”이라고 썼다. 효용성의 명목으로 왼손잡이들에게 ‘다름’을 ‘틀림’이라고 강요한 건 아닌지,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라테스처럼 자신만의 잣대로 그들의 머리와 다리를 자른 게 아닌지 ‘오른손잡이’들은 모두 반성할 일이다. douziri@seoul.co.kr
  • 오른손만 옳은 손인가… 왼손잡이 ‘차별의 일상’

    오른손만 옳은 손인가… 왼손잡이 ‘차별의 일상’

    지하철 개찰구에 가전 조작 버튼까지 오른손 위주 디자인… 왼손 전용 비싸 억지로 교정하다 아이 우울증 겪기도왼손잡이인 주부 이소영(36)씨는 최근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오면서 무심결에 왼편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댔다. 오른편 단말기에 태그해야 하는데 착각한 것이다. 이씨는 왼쪽 개찰구로 돌아 나가려고 했으나 입구 전용이어서 나가지 못했다. 이씨는 역무실 직원에게 “왼손잡이인데 순간 착각했다”고 사정을 설명한 뒤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13일 ‘세계 왼손잡이의 날’을 맞아 서울신문이 왼손잡이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를 모아 본 결과 각종 시설물에서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오른손잡이 위주로 설계된 까닭이다. 지하철 개찰구뿐만 아니라 버스카드 단말기를 비롯해 TV·컴퓨터 모니터의 음량 조절 버튼도 오른쪽에 달려 있어 왼손잡이들을 불편하게 했다. 가위, 각종 용도에 따른 장갑, 악기 등은 왼손잡이 전용 제품이 등장했지만 시중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고 가격도 비싸다는 게 왼손잡이들의 공통된 불만이었다. 주부 이민아(40)씨는 “이어폰도 대부분 오른쪽에 조작 버튼이 달려 있다”면서 “조작을 편하게 하려고 이어폰을 반대로 끼면 귀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취업준비생인 조영민(27)씨는 “지갑형 휴대전화 케이스가 모두 오른쪽으로 열게 돼 있어 항상 두 손을 써야 한다”면서 “한 손으로 케이스를 여닫을 수 있는 오른손잡이가 부럽다”고 했다. 왼손잡이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회적 시선도 불편하다. 직장인 강하윤(25·여)씨는 “회식 자리에서 ‘어 왼손잡이였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대성(39)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왼손잡이는 천재’라는 말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듣는다”면서 “나쁜 말은 아니지만 인제 그만 듣고 싶다”고 했다. 왼손잡이에 대한 부모의 그릇된 인식 때문에 왼손잡이인 자녀는 자존감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유치원 교사 박수정(26·여)씨는 “일부 부모들은 왼손잡이 자녀를 교정시켜 달라고 요구한다”면서 “억지로 오른손을 쓰는 이런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밥을 먹을 때 항상 또래 친구들보다 뒤처져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교수는 “오른손으로 쓰도록 강요받은 왼손잡이 아이 중에 눈을 깜빡거리거나 코를 씰룩거리는 틱 장애가 온 아이도 있었다”고 말했다. 강미희 광주보건대 교수는 “왼손잡이 학생들이 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도록 부모와 교사가 먼저 차별 없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100초 인터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위해 미국 자전거 횡단 나선 청년들

    [100초 인터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위해 미국 자전거 횡단 나선 청년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세상 밖으로 나오셨던 용기가 지금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 것 같아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미대륙 자전거 횡단에 나선 청년들이 있다. ‘3A(트리플 에이) 프로젝트’ 4기 멤버 백현재(25·백석대), 이호준(22·인천대)씨가 그 주인공이다. 80일 동안 미대륙 6600km를 달리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는 두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질문지를 보내고, 현지에서 두 사람이 직접 영상을 찍어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트리플 에이 프로젝트는 2015년 독도경비대 출신의 한 청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4년째 이어지고 있다. 트리플 에이는 ‘Admit’(2차 대전 당시 식민지 여성들에게 성노예 역할을 강요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Apologize’(일본 정부는 심각한 인권 유린 범죄에 대해 진정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Accompany’(위안부 할머니들의 혼과 마음을 안고 동행한다)라는 세 영어 단어의 머릿자를 딴 프로젝트다.백씨와 이씨가 도전에 나선 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과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다. 백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소녀상 지킴이’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가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성을 느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3일 LA 산타모니카에서 출정식을 한 두 사람은 앨버커키, 오클라호마시티,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시카고를 지나 현재 피츠버그와 워싱턴DC를 향하고 있다. 최종목적지인 뉴욕을 향해 쉼 없이 페달을 밟고 있는 그들은 벌써 목표 여정의 절반 이상을 달렸다. 그 사이 많은 사람을 만났고,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폭넓은 이야기를 나눴다. 두 번의 수요집회도 열었다. 현지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이씨는 “지금까지 LA와 시카고에서 수요집회를 마쳤다.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뉴욕에서의 수요집회가 더 계획돼 있다. 잘 마무리하고, 웃으며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 뜻 깊은 과정에서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그들의 육체를 지치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씨는 “한번은 애리조나를 지나면서 고속도로 경찰에게 연락해 도움을 받았다. 더위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놀러 온 것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러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텨 냈다. 그 마음이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달려올 수 있게 한 것 같다”고 전했다. 미대륙 횡단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두 사람은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의 단순한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씨는 “위안부 문제가 여성인권 문제로 다뤄질 때, 더욱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여성인권 문제를 진정성 있게 알릴 수 있는 제삼국인 미국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 과정에 두 사람은 특별한 동지를 만났다. 시카고에서 만난 현지인 한 명이 이들과 뜻을 함께해 뉴욕까지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안토니오 나바로(Antonio Navarro)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우연히 한 자전거 커뮤니티에서 두 사람의 사연을 접했고, 곧 합류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안토니오는 “뉴욕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고, 사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성인권 문제라는 점과 이들과 함께라면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동참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1991년 8월 14일은 당시 67세였던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다. 국내 피해자의 첫 증언이었다. 그리고 27년 세월이 흘렀다. 이에 백씨는 “현재 국내 생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스물일곱 분이다. 그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많이 기억하면 좋겠다. 남은 기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각오를 전했다. 이들은 현재 시카고를 지나 피츠버그,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뉴욕으로 향하는 여정 한가운데에 있다. 이 길을 자동차나 오토바이로 횡단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를 탈 때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단다. 이렇게 대한민국 청년 백현재씨와 이호준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위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열린세상] 관행을 끝내야 할 때다/양중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열린세상] 관행을 끝내야 할 때다/양중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이 법은 사업자의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조 내용이다. 이 법은 제35조 제1항에 ‘이 법에 의한 사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하에 공정거래위원회를 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공정위를 둔 목적이 바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조다.그런데 그간 공정위의 행태는 설치 목적과 전혀 맞지 않았다. 먼저 공정위라는 공적인 조직을 통해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 구성원들이 과도한 힘의 집중을 이용해 부당하게 취업 알선이라는 공동불법행위를 저질렀다. 불공정한 취업 거래를 통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취업 경쟁을 방해했다. 그 결과 창의적인 기업 활동이 저해돼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었다.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제1조와 정확히 반대되는 행태다. 결과는 참담했다. 전직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줄줄이 구속됐다. 또 다른 간부들에 대한 소환도 예상된다고 한다. 피의 사실도 ‘공정’(公正)이라는 간판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4급 이상 퇴직 간부들의 재취업을 반강제적으로 대기업에 떠맡겼다. 고시 출신은 2억 5000만원, 비고시 출신은 1억 5000만원이라는 연봉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기본 2년의 취업 기간에 1년 더 연장할지 여부를 자체적으로 정했다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이 정도면 취업 알선이 아닌 취업 강요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필자가 지적하려는 것은 이런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조직인 운영지원과를 동원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쉬쉬하면서 취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직 전체가 동원돼 당연하다는 듯 이뤄진 일이라는 뜻이다. 이런 일은 통상 관행(慣行)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다 아는 것처럼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을 그대로 한 것이라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보니 무엇이 잘못인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도덕관념이 마비된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관행은 공정위에만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조직이건 어떤 일에 대해 으레 그렇게 하는 방식이 있다. 누구나 용인할 뿐만 아니라 아무도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그게 일하기도 쉽고, 조직이나 개인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들은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년 동안 해오던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문제의식이 점점 사라져 결국에는 한 줌의 거리낌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누군가 잘못됐다고 느끼더라도 일부러 외면해 버리게 된다. 실제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수사기관에 소환되는 많은 사람들이 관행이라는 변명을 들이댄다. 예전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하지만 관행은 내부의 부정과 비리를 은폐하는 이름이나 다름없다. 관행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문제가 드러난다. 그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누가 보아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다. 일반인의 도덕관념도 변했다. 예전 같으면 그러려니 했던 것이 더이상 그렇지 않게 됐다. 구조적인 부정과 비리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관행을 바꾸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렵다. 많은 경우 무엇이 잘못인지 인식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나 조직의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꾸지 않으면 개인도, 조직도 살아남기 어렵다. 조직뿐만 아니라 개인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것만이 조직이 사는 길이고, 개인도 사는 길이다. 바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느 조직이건 법률이나 정관에 조직의 존재 목적이나 작동 방향이 규정돼 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해서만 작동하는 규범이 아니다. 외부를 향하기 전에 조직 내부에서 자주 되새겨야 하는 규범이다. 그것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관행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가장 쉬운 길이다. 이제 관행을 끝내야 할 때다.
  • ‘가혹행위’ 5일 만에 숨진 신병…22년 만에 보훈 대상 인정

    ‘가혹행위’ 5일 만에 숨진 신병…22년 만에 보훈 대상 인정

    군대 내 가혹행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병에 대해 22년 만에 보훈보상 대상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유진현)는 사망한 군인인 이모씨의 부모가 서울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낸 보훈보상대상자요건 비해당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씨는 1996년 2월 공군에 입대해 훈련을 마친 뒤 그해 4월 한 비행단의 헌병대대로 배치됐지만 소대에 전입한 지 닷새 만에 경계근무를 서다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해 목숨을 끊었다. 이씨의 사망 직후 15명의 동료 및 선임병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지만,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진술이 나오지 않았고 타살의 혐의점도 발견되지 않아 단순히 자살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이 났다. 이씨의 부모는 2012년과 2013년 “아들이 구타를 당하던 중 배에 충격을 받아 사망했다”며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다가 모두 거절됐고, 2014년 8월 국방부 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에 이씨의 사망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당시 기록들과 부대 동료 9명에 대한 진술을 새롭게 들으며 재조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조사에 응한 동료들은 당시 선임병들이 전입한 신병에게 근무 수칙 외에도 150~200명의 지휘관·참모들의 차량번호 및 관등성명, 소대병사 기수표, 초소 전화번호 등을 A4 용지 4~5장에 깨알같이 적어 사흘 안에 외우도록 강요했다고 진술했다. 그 사이 생활관 또는 경계근무 중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암기상태를 점검하고 질책을 해 전입한 신병은 휴식시간은 물론 심야에도 화장실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암기를 해야했다고 전했다. 또 이씨가 고참들이 전입 신병들을 집합시켜 신병의 바로 윗기수 고참들에게 머리박기 등 질책을 하는 가혹행위를 선보이기도 했다. 1996년 이씨의 사망 직후 조사 당시 “평소 내무반에서 구타나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다”면서 이씨가 성격 탓에 소대에 잘 적응을 못해서 사망하게 됐다고 진술한 김모 상병이 사실은 후임병들을 괴롭히기로 유명한 선임병이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김 상병은 이씨가 사망하기 전 사흘간 계속 같은 근무조에 편성됐고, 이씨의 사망을 최초로 발견하기도 했다. 조사본부의 재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이씨의 사망이 순직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이씨의 부모는 이 결정 이후 서울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 대상자 등록 신청을 다시 했지만 여전히 인정이 안 되자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씨의 사망이 군 복무와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씨는 심한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부담 등 정서적 불안 요소가 가중되면서 자유로운 의사가 제한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방부 중앙전공사상 심사위원회의 심사는 국가유공자 제도나 보훈보상대상자 제도와 구별되지만,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데도 중요한 판단자료가 된다”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위원회의 판단은 가급적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한국 승무원은 왜 짧은 치마 입고 무릎을 굽혀야만 하나요”

    “한국 승무원은 왜 짧은 치마 입고 무릎을 굽혀야만 하나요”

    첫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낸 소설가 박민정“승무원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바뀌었으면”2009년 만 스물 넷의 나이로 등단한 소설가 박민정(33)은 현재 한국 문단에서 뜨거운 작가로 꼽힌다.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그는 뚜렷한 문제 의식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폭력을 날카롭게 조망하는 ‘신중한 관찰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발표한 첫 장편 ‘미스 플라이트’(민음사)에서 한국의 몰상식한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찰력은 한층 치밀해졌다.작품의 주인공인 항공사 5년차 승무원 유나는 기내 탑승객의 습관적인 성희롱과 물리적 폭력, 회사의 부당한 압박에 내몰린다. 그러다 조종사 노조 간부인 유부남 부기장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로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몰리면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전직 공군 대령 출신으로, 방산 비리 사건에 연루돼 불명예 전역한 유나의 아버지 정근, 과거 정근의 개인 운전병이자 유나와 같은 항공사의 부기장이 된 영훈의 이야기가 또 다른 축으로 등장한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박 작가는 “처음 소설을 집필할 때 객실 승무원과 조종사의 위치와 관계를 이야기로 풀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면서 “두 인물 간의 인연이 끈질기고 집요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사회의 부당하고 불편한 부분이 개입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나 친척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도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됐다. “승무원은 사실 안전 요원이잖아요. 구난 상황에서 승객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대피시키려면 굉장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고요.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승무원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용모단정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손님들 앞에서 무릎을 굽혀야만 하는 시스템은 폭력적이지 않나요. 머리도 꽉 묶은 탓에 여자 승무원 대부분 탈모에 시달린다고 하더라고요. 유나가 수영을 배우는 에피소드를 책 속에서 언급한 것도 예쁜 얼굴보다 건강한 신체가 승무원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짚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승무원 개인에게 면세품 판매 실적을 강요하고, 같은 팀원의 생활을 감시하게 하는 ‘엑스맨 제도’ 등 항공사의 ‘갑질’ 행태를 보고 있자면 최근 세간을 시끄럽게 한 국내 대표 항공사 오너 일가의 추태가 자연스럽게 겹친다. “항공사 문제는 예전부터 있어왔는데 신기하게 제가 이 책을 낼 즈음 관련 문제들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저는 문제의 근본부터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해 이슈들이 가시화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이런 계기들을 통해 승무원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와 고정관념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 간의 갈등을 통해 한국의 다양한 초상을 그려온 작가는 앞으로도 가족 서사가 담긴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저는 가족 이야기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앞으로 쓸 소설들도 가족 이야기가 많고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끼리 몰래 가족의 비밀을 이야기하시면 저는 가까이에서 다 들었어요(웃음). 그러다 7살때쯤 저희 가족의 큰 비밀을 알게 됐죠. 나중에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그때 저희 가족이 겪은 문제나 가족 안에서 형성된 권력 관계들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족 생활이 사회 생활의 축소판인 거죠. 이때 제가 겪은 경험도 곧 소설에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학창 시절 자신의 진로를 소설가로 정한 이후 그 어떤 길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박 작가는 앞으로 세상에 내놓을 ‘엄청난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엄청난 것들이 많아요(웃음). 재산은 많은데 이 재산을 제가 잘 엮어야 좋은 이야기가 되겠죠. 지면이 주어진다면 제가 그동안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계속 발표하고 싶어요. 다만 제가 의식이 날카롭지 않은 상태에서 지면만 확보하고 있다면 무척 위험한 일이죠. 잘못되거나 비겁한 이야기를 쓰는 순간 저 스스로 그만 쓰도록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염결한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일상적으로 쓰는 행복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잃지 않는 작가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미국 정부내에서 트럼프가 가장 만만?…北, 트럼프에 ‘올인’하며 美매파 비난

    미국 정부내에서 트럼프가 가장 만만?…北, 트럼프에 ‘올인’하며 美매파 비난

    북한이 선(先)핵포기 조치를 강요하는 미국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접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을 미국 정부내 다른 인사들보다 설득하기 쉬운 인물로 여기는 정황이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 북한과의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 같이 전통적 동맹을 무시하고 친(親)러시아 성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다소 유연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의’를 적절히 활용하면 대북 제재 완화와 같은 ‘통근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북한 지도부의 인식이 엿보인다. 北 관리들 협상 교착상태에서 폼페이오에게 “트럼프에게 전화해 보는게 어떠냐?” 로이터 통신은 9일(현지시간)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해 북한측과 협상하던 도중 교착상태에 빠지자 북한 관리들이 그에게 “밖으로 나가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보는게 어떠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북한은 이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일부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역행해 터무니없이 우리를 걸고 들면서 국제적인 대조선 제재압박 소동에 혈안이 돼 날뛰고 있다”면서 “조·미(북·미) 사이에 존재하는 불신의 두터운 장벽을 허물고 신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에 미국은 국제적인 대조선 제재압박을 고취하는 것으로 대답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조·미 수뇌분들의 뜻을 받들어 조·미 사이에 신뢰를 쌓아가면서 조·미 수뇌회담 공동성명을 단계적으로 성실히 이행해나가려는 우리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미국에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북한 외무성의 이같은 담화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여러 인터뷰를 통해 대북 제재의 엄격한 이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며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실행에 나서라고 강조한 이후 나왔다. 이는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강요하는 볼턴 보좌관 등 매파 인사들의 간섭을 비난하며 최종 결정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북·미 대화에 정통한 미국 관리들은 로이터 통신에 북한이 비핵화 시간표와 핵탄두 보유 규모 공개에 관해 동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탄두 숫자를 30∼60개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미국이 북한에 6∼8개월 이내에 핵탄두의 60∼70%를 이양하고 미국 또는 제3국이 이를 확보해 제거한다는 내용의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했지만 북한이 이를 수락하지 않고 불쾌해 했다고 전했다. 전통적 동맹을 무시한 트럼프, 북한에 대해서는 “핵프로그램 폐기에 진전”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 행정부내에서 가장 북·미 협상의 성과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재계 인사들에게 “북한이 핵프로그램 폐기에 진전을 보이고 있다”면서 “북한이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자신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사항을 잘 지키고 있다”고 볼턴 보좌관과는 다르게 말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인 나토를 비난하고,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에 대해서는 ‘저자세 외교’를 보였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북한의 우선적인 핵포기 조치에 집착하지 않는 미국 정부내에서 가장 유연한 인사로 여길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1∼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선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충분히 분담하지 않는다고 힐난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향해선 독일이 러시아의 가스 도입을 위해 추진하는 파이프라인 사업을 언급하며 독일이 러시아의 포로가 됐다고 모욕해 논란을 빚었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는 자신감 없는 듯한 태도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따져 묻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공동선언 서명을 거부하고, 주최국인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에게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반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평소 “매우 영리하고 훌륭하고, 좋은 협상가”라고 추켜세우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였고, 북한으로서는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호의’를 역이용하면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내포됐다. 美외교안보 당국은 대북제재 유지 하지만 북한의 이같은 시각은 김정은 유일영도체계에 매몰된 국가의 입장에서 미국 안보정책 결정 메커니즘을 과소평가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서 공동선언 서명을 거부한 것과 달리 나토정상회의에서 결국 러시아를 압박하는 공동 선언문 채택에 동의한 것은 미국 국가안보 관료들의 물밑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결국 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케도니아의 나토 가입을 승인했으며 공동의 군사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한국 정부가 1년 가까이 미뤘던 800만 달러(약 90억 4400만원) 대북 지원을 집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느냐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질문에 “성급히 제재를 완화하면 비핵화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며 “외교의 문을 연 건 압박이며, 압박이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보장할 것”이라고 대북 제재를 유지할 것임을 천명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들의 최고 지도자와 마찬가지라고 보고 현재 국면에서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측면에 기대를 걸고 있다”면서도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시간이 짧으며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 모습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꼼꼼하게 김 위원장과의 회담 준비를 했는지는 의문이 들 정도”라며 양자간 신뢰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우버, 뉴욕서 ‘브레이크’… 1년간 신규 등록 못한다

    美도시 중 처음으로 차량공유 규제 미국 내에서 처음으로 뉴욕시가 우버, 리프트 등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의 신규 등록을 제한하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뉴욕 시의회는 8일(현지시간) 시내의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1년 동안 새로운 차량 공유 등록을 제한하는 조례를 의결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몇주 내에 이 법안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 시의회가 차량 공유 규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차량 공유 업체들의 난립으로 교통 혼잡이 가중되는 데다 택시 등 관련 업계 운전자들의 근로 여건이 급격히 악화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이라비 데사이 뉴욕택시근로자동맹 사무총장은 “우버나 리프트 같은 업체들이 전 세계에서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하고 삶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선례를 만들었다”며 새 조례 도입을 반겼다. 반면 우버 등 차량 공유 업체들은 “차량 공유 서비스를 억지로 막을 경우 오히려 서비스 가격을 올릴 수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미국 내 최대 도시인 뉴욕의 수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나던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한해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우버와 리프트는 뉴욕 내 차량 공유 서비스 시장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왔다. 2015년 2만 5000대에 불과하던 뉴욕시의 공유 서비스 차량은 현재 8만대가 넘는다. 공유 서비스 차량들이 경쟁적으로 이용 요금을 인하하면서 뉴욕의 전통적인 택시인 옐로캡 운전자들은 큰 타격을 받았고 파산도 속출했다. 100만 달러(약 11억 1700만원)를 호가하던 옐로캡의 영업면허증 가격은 20만 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에는 옐로캡 기사와 공유 서비스 차량 기사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WSJ은 우버가 하반기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만큼 뉴욕시의 이번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수원도시공사, 갑질 피해신고 지원센터 운영

    수원도시공사, 갑질 피해신고 지원센터 운영

    수원도시공사는 공공기관 갑질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공사 내에 ‘갑질 피해신고 지원센터’를 설치해 9일 운영에 들어갔다. 갑질 피해신고 지원센터는 공사 감사팀장을 센터장으로,감찰조사반과 업무지원반 등 2개 반으로 구성됐다. 업무 처리 시 위법·부당한 요구,금품 향응 요구 및 수수행위,특혜 요구,불리한 계약조건 강요 등 공사가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갑질 사례를 신고받아 관리한다. 또 상급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폭언과 인격 모독 행위,부당한 업무지시 등 공사 직원 사이의 갑질 피해사례도 접수해 처리하게 된다. 수원도시공사는 “‘갑질 피해신고 지원센터’ 운영은 물론 ‘갑질 근절 종합대책’을 수립했다”면서 “사전예방에서 피해자 보호지원까지 6개 분야 27개 과제를 추진해 정부의 공공분야 갑질 근절 대책과 함께 민간분야 갑질 근절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갑질 피해를 본 시민이나 부당한 처우 등을 받은 공사 직원은 누구나 익명으로 수원도시공사 갑질 피해신고 지원센터(031-240-2812)에 신고하면 된다. 공사는 센터에 신고한 내용이 갑질 행위로 판명 나면 당사자를 엄벌 조치할 예정이다. 이부영 수원도시공사 사장은 “갑질 직원 적발 시 진상조사를 통해 무관용 원칙의 징계 등 엄중한 인사조치를 할 계획”이라며“갑질 없고 부정부패 없는 청렴한 조직문화를 조성해 시민에게 더욱 신뢰받는 공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협상’ 손예진 “단발머리 변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협상’ 손예진 “단발머리 변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협상’ 손예진이 영화 속 역할을 위해 단발머리를 소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9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는 영화 ‘협상’(감독 이종석)‘ 제작보고회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연출을 맡은 이종석 감독과 배우 손예진, 현빈이 자리했다. 손예진은 “이번 작품을 위해 단발머리도 감행한 것으로 안다”는 말에 “영화 ’협상‘을 찍고 바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촬영을 해야 했던 상황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손예진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멜로 영화여서 머리카락이 길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하지만 ’협상‘을 생각하면 협상가로서, 경찰로서 변신된 모습을 보여 드리기에 외형적인 변화 없이 긴 머리로 하는 것은 도저히 아닌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님이 자르라고도 하지 않았고, 어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조금이라도 변신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내가 과감히 잘라 버렸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화 ’협상‘은 태국에서 사상 최악의 인질극이 발생하고, 제한시간 내 인질범 민태구를 멈추기 위해 위기 협상가 하채윤이 일생일대의 협상을 시작하는 범죄 오락 영화다. 오는 9월 개봉.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김재욱 박세미 해명 “악랄 집안 만들어..악마의 편집” ‘이상한나라’ 하차

    김재욱 박세미 해명 “악랄 집안 만들어..악마의 편집” ‘이상한나라’ 하차

    개그맨 김재욱과 부인 박세미가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보여진 모습들에 대해 해명하며 하차를 알렸다. 8일 김재욱은 자신의 SNS에 “우리집만 악랄한 집안을 만든다. 촬영을 그만두었기에 이러는 건지”라면서 “유하게 만들어줘도 내가 ‘묵묵부답 고구마’ 남편이 되진 않았을 텐데. 제작진과 어색해지는 방송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김재욱은 “저는 아버지 말을 잘 듣는 편이 아니고 부모에게서 독립했다. 어머니는 바쁘셔서 우리집에 1년에 한 번도 잘 안 오신다. 전화도 잘 안 하신다”라고 방송에서 비춰져 논란이 된 모습들에 대해 해명했다. 이어 “비혼장려 프로그램, 암 유발 프로그램 등 얘기 참 많이 들었다”면서 “스트레스 받은 분들 죄송하다. 방송 고르는 눈이 아직 부족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함께 출연한 김재욱의 부인 박세미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방송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박세미는 “방송을 방송으로만 봐달라. 아기가 어려서 촬영은 집에서밖에 이뤄질 수 없어서 어머님이 집에 방문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은 “제사도 잘 참석 안하고, 1년에 한번 초대해 식사대접도 못하는 불량 며느리”라고 털어놨다. 앞서 박세미와 김재욱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출연하면서 시아버지로부터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강요받는가 하면, 만삭의 몸으로 시댁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 등모습을 보여서 ‘시월드’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을 들었다. 박세미는 방송을 통해서 남편 김재욱의 무심한 면만 강조되었다는 점을 해명하면서 “날 챙겨주는 부분, 온 가족이 날 도와주는 부분, 다 빼고 편집해 우리 시부모님은 날 안 챙겨주시는 분이 됐다”면서 “이는 악마의 편집. 그게 바로 편집의 힘이다. 연예인 데뷔? 생각도 없고 연예인 와이프 하겠다”고 밝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울광장]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이두걸 논설위원

    [서울광장]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이두걸 논설위원

    지난 주말부터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단어는 ‘삼성 투자 구걸’이다. 지난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간의 만남에 앞서 김 부총리가 삼성 측에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요청했고, 이에 대해 청와대가 반대 입장을 내놨다는 게 요지다. 청와대와 김 부총리는 모두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구걸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일부 비서진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우려가 나온 건 ‘팩트’에 가까워 보인다. 그게 아니면 청와대가 나서서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의견을 나눴다”고 해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삼성의 ‘통 큰 투자’는 쌍수를 들고 반길 만하다. 그러나 이 정도면 청와대가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거나 김 부총리가 대통령 대신 재벌에 손을 벌리는 ‘악역’을 떠맡은 것처럼 보인다. 삼성의 결단을 이끌어 낸 주체는 김 부총리가 아닌 문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뇌물공여 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앞둔 이 부회장은 지난달 9일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 신공장에서 문 대통령의 손에 이끌려 사실상 ‘복권’됐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필수적이다. 그래야 기업이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든다. 정부는 발 벗고 나서 기업의 애로를 듣고 대못도 뽑아야 한다. 미국과 일본 등 각국 지도자들이 기업인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그에 맞춰 기업은 돈이 되면 투자를 하고, 돈이 안 되면 투자를 못 한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의 외국인 지분 보유 비율은 모두 50% 안팎인 상황에서 손해가 날 사업에 투자를 한다면 주주에 대한 배임의 소지가 있다. 헤지펀드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직접 기업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친기업 정책을 펼쳤던 2012~2015년 대기업 투자가 110조원대에서 정체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이 투자를 하도록 강요하고 읍소하는 순간 정부는 기업에 코가 꿰인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아닌가.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걷었다가 정권이 뒤바뀐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삼성만 하더라도 삼성전자 지분 매각, 반도체 공장 정보 공개 등 다양한 현안이 걸려 있다. 6일 간담회에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이 참석한 건 의미심장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의 중심에 있는 기업이다. 삼성 측이 김 부총리에게 바이오시밀러(복제약)의 약가를 높이거나 자유로운 가격 결정 권한을 달라며 규제완화를 요구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내 약가는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업체의 협상으로 결정된다. 바이오시밀러를 주로 만드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입장에서는 바이오시밀러 가격이 오르면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 제약계에서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항암제인 허셉틴 하나만 가격이 올라도 연간 200억원 정도의 건보 재정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규제완화의 대가가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소득주도성장론과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J노믹스’의 3대 축이 흔들린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수출 일변도였던 우리 경제의 틀을 수출과 내수의 동반성장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내수는 소비 성향이 강한 서민 중산층의 소득이 느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서의 전제는 공정경제를 통해 재벌과 중소기업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혁신 기업들의 창업과 성장으로 혁신성장의 동력을 삼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경제가 어렵다고 대기업에 손을 벌리는 건 성과 조급증에 빠져 과거의 성장 모델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성장의 성과가 온 사회에 퍼진다는 낙수효과(트리클다운)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중소 상공인과 서민들의 피눈물이 더해져야 할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부터 재계와 갈등을 지속했다. 2003년 6월 서울 시내의 한 삼계탕 전문점에서 대기업 총수들과 오찬을 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노 전 대통령은 투자와 고용 확대를 부탁했고, 총수들은 투자 계획을 내놨다. 불과 6개월 만에 개혁 대신 성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도 옮겨 갔다. 이후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15년 전의 비판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douzirl@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대법원장 출신 의병장 허위… 日헌병사령관도 존경한 기개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대법원장 출신 의병장 허위… 日헌병사령관도 존경한 기개

    1908년 10월 21일 정오. 허위 선생은 경성감옥의 교수대에 올라갔다. 안색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고 태도는 당당했다. 왜승(倭僧)이 불경을 읽으며 명복을 빌어 주려 했다. 그러자 선생은 “충의(忠義)의 귀신은 스스로 마땅히 하늘로 올라갈 것이요, 혹 지옥으로 떨어진 대도 어찌 너희의 도움을 받아 복을 얻겠느냐”고 꾸짖었다. 검사가 시신을 거둘 친족이 있느냐고 물었다. 선생은 “죽은 뒤의 염시(斂屍)를 어찌 괘념하겠느냐. 옥중에서 썩어 문드러져도 좋으니 속히 형을 집행하라”고 일갈했다. 털끝만큼의 흔들림도 없었다. 곧 사형이 집행됐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내고 전국 의병을 총지휘해 서울 진격을 노렸던 13도 창의군 대장 허위의 최후였다. 나이 53세였다.대한매일신보는 ‘天日無光’(천일무광·하늘의 태양이 빛을 잃었다)이라며 선생의 죽음을 애도했다. 왕산은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였다. 선생은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國恥民辱 乃至於此 不死何爲 父葬未成 國權未復 不忠不孝 死何瞑目(국치민욕 내지어차 불사하위 부장미성 국권미복 불충불효 사하명목·국치민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이하리오.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으니 불충불효한 몸이 죽은들 어찌 눈을 감으리오.)” 죄수들과 도성(都城) 안팎의 백성이 통곡했다. 시신을 수습한 사람은 제자 박상진이었다. 박상진은 하얀 천으로 시신을 감싸 안고 나와 금오산 아래에 묻고 장례를 치렀다. 상주인 장남 허학을 비롯한 유족들은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있어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회유하는 이완용에게 “넌 죽일 것” 호통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을사늑약 직후 의병을 일으켰던 선생은 일제가 정미 7조약 체결을 강요하고 군대를 해산하자 세 번째로 의병을 일으켰다. 선생에게 거사 밀명을 내린 사람은 고종이었다. 강제로 퇴위당하기 직전인 1907년 4월 ‘거의’(擧義)라는 두 글자가 쓰인 의대조(衣帶詔·옷 속에 넣어 비밀리에 전하는 임금의 편지)가 선생에게 전달됐다. 을미의병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이인영도 다시 뛰어들었다. 이인영은 전국에 격문을 띄워 1907년 12월 각도의 의병부대를 경기도 양주에 집결토록 했다. 경기도에서 거병한 허위도 의병들을 이끌고 동참했다. 의병 총수가 1만명을 헤아렸다. 이인영을 총대장, 허위를 군사장으로 하는 연합의병대(13도창의대진소)가 결성됐다. 1908년 1월 연합의병대는 서울진공작전을 개시했다. 그러나 화승총에 짚신을 신은 의병은 애초에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군(日軍)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더욱이 서울 진공 계획을 알아챈 일제는 동대문에 기관총을 설치하는 등 방어망을 펼치고 있었다. 선생은 선발대 격인 감사병(敢死兵) 300명을 지휘해 선두에 서서 서울로 진격했다. 동대문 밖 30리 지점에서 일본군과 마주쳤다. 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일본군의 강력한 공격을 받아 패퇴하고 말았다. 이인영이 이끄는 본대도 뒤이어 1월 28일 동대문 밖에 도착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이인영에게 부친의 부음이 날아든 것이다. 이인영은 후사를 허위에게 맡기고 급히 경북 문경으로 돌아갔다. 서울진공작전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의병들은 부대별로 흩어져 유격전에 들어갔다. 선생은 주로 임진강 유역에서 일본군의 진지를 습격하고 관공서를 덮쳐 친일파들을 처단했다. 선생의 의병들이 수많은 전과를 올리자 이완용은 사람을 보내어 관찰사, 내부대신 직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그러나 선생은 “너(이완용)는 반드시 죽일 것이로되 심부름 온 놈이야 죽여서 뭐하겠느냐”고 크게 꾸짖어 돌려보냈다. 1908년 6월 11일 아침 오오타 기요마쓰 등 일본 헌병 수십 명이 영평군(지금의 포천) 서면 유동에 있던 선생의 은신처를 덮쳤다. 헌병들이 의병 한 사람을 붙잡아 회유와 협박을 해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 선생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체포에 응했다. 13년 의병투쟁은 그렇게 끝났다. 선생은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찌하랴. 지금 내가 죽을 곳을 얻었으니 너희 형제간이 와서 보도록 하라.” 선생은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군 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의 심문을 받았다. 선생은 아카시에게 “일본이 한국의 보호를 부르짖는 것은 입뿐이요, 실상은 속으로 한국을 멸할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적은 힘으로나마 의병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아카시가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것이 마치 병자 몸뚱이를 주무르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마침내는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자 선생은 책상 위의 연필을 가리키며 “이 연필은 붉은 빛깔이지만 내면은 남색이지 않은가. 귀국이 한국을 대하는 것도 껍질과 내면이 크게 다름은 다툴 것도 없이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아카시는 선생의 강직한 성품과 늠름한 태도에 감복하여 ‘국사’(國士)라고 칭하며 선생에게 존경을 표했다. 또 선생의 목숨을 구하려고 데라우치 통감에게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재판에서 일본 재판관이 “의병을 일으키게 한 것은 누구이며 대장은 누구냐”고 물었다. 선생은 웃으면서 “의병이 일어나게 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이며 대장은 바로 나다”라고 대답했다. “왜냐”고 묻자 “이토가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면 의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토가 아니고 누구겠느냐”고 반문했다.선생은 1855년(철종 6년) 경북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7세 때 “달은 대장이 되고 별들은 군사가 되어 따른다”(月爲大將軍 星爲萬兵隨·월위대장군 성위만병수)라는 글을 지을 만큼 한학에 능통했다. 관직에 나선 것은 44세의 늦은 나이였지만, 평리원 재판장(지금의 대법원장 격), 의정부 참찬, 칙임 비서원승 등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선생의 본관과 고향은 김해다. 임은동에는 낙동강 물길을 따라 김해에서 서울을 오가며 무역을 하던 허위의 증조부 허돈이 1807년에 정착했다고 한다. 임은동은 박정희 생가가 있는 상모동과 붙어 있다. 드넓던 평야는 구미산업공단으로 바뀌었고 공단 아래쪽 허씨 일가가 모여 살던 마을은 빌라와 주택이 들어서 고가(古家)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1962년 건국훈장 추서… 서울시 ‘왕산로’ 명명 다행히 생가터는 남아 있었다. 선생의 장손 허경성(91·둘째아들 허영의 장남)씨가 자신은 전세를 살면서도 큰돈을 대출받아 1990㎡의 터를 사들여 2005년 구미시에 기부했다. 생가 건물은 자료가 없어 복원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왕산허위선생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생가 건너 쪽 야산에는 선생의 묘소와 유허비가 있고 그 바로 옆에 2009년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이 세워졌다. 김교홍 기념관장은 “선생의 집안은 논 3000마지기(60만평)를 팔아 군자금으로 쓰는 등 의병투쟁과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다”고 말했다. 묘소 옆에 위패를 모실 사당 경인사(敬仁祠)가 조성되고 있지만, 예산 편성이 미뤄져 공사가 답보 상태다. 기념관 아래에 선생의 호를 딴 왕산초등학교가 있다. 선생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서울시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청량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가로를 ‘왕산로’라고 명명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이모가 남긴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반세기 전 한 가족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뒤로 드문드문 들어선 새하얀 양옥 주택, 젊은 부부와 두 어린 아이가 함빡 웃는다. 1970년대 초 울산의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 사택이다. 막내의 가슴에는 유공유치원 이름표가 달랑거린다.울산에 정유공장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단지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사택 단지나 사원 아파트가 함께 조성되었다. 서구에서 온 엔지니어들은 공장과 함께 사택과 클럽을 조성하고, 유치원과 볼링장, 실내 수영장도 운영했다. 도심의 사원 아파트에는 무료 셔틀버스가 시간마다 운행되었다. 사택이라고 하면 탄광촌이나 철도 관사 등이 쉽게 떠오르지만, 노동자들의 살림집으로 회사에서 공급하는 주택(社宅)도 있다. 앞서 소개한 옥타비아 힐의 아버지가 추종했던 200년 전 영국 사람 로버트 오언(초상화·1771~1858)은 대개 공상적 사회주의자이자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전에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들의 주거를 기업의 주된 과제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최초의 실험을 한 인물이다.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계곡 골짜기의 뉴 래나크에서 말이다. “오언은 그전에 맨체스터에 있었어요. 같은 산업혁명 상황이라고 해도, 맨체스터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후에 엥겔스(1820~1895)가 나쁜 주거 환경을 묘사해서 보고서를 낸 곳이죠. 소셜리스트라는 말로 워낙 알려졌지만, 오언은 도시를 만드는 것, 타운 플래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에요. 도시 계획 자체가 오언에게는 자신의 사회적 이념을 적용한 것입니다. 오언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면 그 사람이 처한 환경 문제로 들어가서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오언은 웨일스 대장장이의 아들로, 9살 때 런던으로 상경해 포목점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면 방적 산업이 폭발적으로 커지던 맨체스터로 옮겼고, 20대 초에는 작은 공장을 인수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맨체스터에서 철학과 문학 클럽을 드나들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도 키워 나갔다. 20대 말인 1800년엔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산골로 들어가 뉴 래나크 면 방적 공장을 인수했다. 당시 발명된 리처드 아크라이트(1732~1792)의 수방적기를 도입해 데이비드 데일(1739~1806)이라는 기업가가 차린 공장이었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의 여러 공장이나 탄광이 그렇듯, 수력을 기계 동력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낙차가 큰 물 근처에 공장을 두어야 했고, 클라이드 강의 수려한 계곡이 바로 그랬다. “맨체스터에서 왜 래나크로 갔을까. 맨체스터에서 스스로 일하면서 노동자들 현실을 봤겠죠. 산업 혁명에 따른 문제를 풀지 못할 문제라고 보느냐, 아니면 풀 수 있느냐, 거기에서 두 길이 나뉘는 거예요.” 오언이 래나크로 간 것은 사랑에 빠져서였다. 데이비드 데일의 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출신의 격차가 컸다. 장인의 환심을 사려고 기업의 주주가 된 것이다. 공장을 인수하고 보니, 운영이 문제였다. 인근 주민들은 전통적인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공장에 출퇴근을 할 생각이 없었고, 기술자들은 먼 도시에 살았다. 공장에는 교회 구빈원에서 노동력이랍시고 보낸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과 일에 별 의욕이 없는 떠돌이 임시 노동자들뿐이었다. 돈만 생기면 술 마시고 뻗어 버리는 노동자들을 구타하거나, 적게 먹는 아이들을 초과 노동시키면서 영국은 위대한 산업화를 이루어 내는 중이었다. 몸집이 작고 손가락이 가는 아이들은 거대한 방적기 아래를 드나들며 실오라기를 줍고 실을 잇는 데 동원되었다.오언은 맨체스터 생활을 접고 뉴 래나크로 이사를 갔다. 그는 뉴 래나크에서 일하려고 먼 곳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반듯한 집과 더 많은 월급을 먼저 주기로 했다. 공장 곁에 사택을 조성해 한 가족이 한집에서 살게 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지 않아도 되었고, 노동자들은 출퇴근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일이 줄어도 월급을 주고, 하루에 8시간만 노동하게 했다. 마을 안에 매점을 조성해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도록 했는데, 월급은 적게 주면서 공산품은 턱없이 비싸게 팔아 두 배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식민지에서나 모국에서나 제국의 기업가들이 꾀한 기본 모델이었다. 1817년에 오언은 뉴 래나크에 노동자 자녀와 고아들을 위해서 영국 최초로 초등학교를 두었다. 오언의 경영 방식은 해마다 더 높은 수익률로 되돌아왔지만, 다른 주주들은 노동자를 위하느라 기업주의 이익을 줄인다며 투자에 훼방을 놓았다. 오언은 1813년에 반대자들의 주식을 몽땅 사 버렸다. 이후 10여 년간 이 산골 공장 마을은 유럽 곳곳의 정치가, 왕족의 방문 행차를 맞았다. 방문객들은 청결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에 만족한 활기찬 노동자들이 사업성을 높이고 수익 목표를 달성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한번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목도하고 대단히 놀랐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고 소개한 글이 1817년에 발표한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이다. “오언의 상상도는 뉴 래나크를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글로 썼는데, 나중에 그림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거죠.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엄청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도시가 그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그걸 직접 해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아닌가. 가난한 노동자에게 베풀어야겠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달라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찾은 거지요. 물론 이상 도시 계획은 그전에 르네상스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언이 다른 점은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산업, 기계 시대에 먹고사는 문제하고 연결한 거죠. 그리고 권력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해 냈어요.” 오언은 실업의 원인을 기업주들의 잘못된 수익 목표에 두었다. 나폴레옹 전쟁(1804~1813)을 거치면서 영국의 공장은 기계화되어 엄청난 공산품을 생산했지만 전쟁이 끝나고서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아 결국 불황이 닥쳤다. 그러자 기업주들은 노동자부터 대량 해고해 버렸다. 경기에 따라 해고되고 취업되는 노동자들은 결코 기술을 쌓거나 기계를 이기지 못한다. 오언의 대안은 인구 1000명 안팎의 작은 일자리 공동체를 많이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언론에 실리면서 환영과 함께 맹렬한 비난도 받았는데, 먹고살 만한 노동자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아서 결과적으로는 실업 빈민 수가 더 급증할 것이라는 위협이었다.아무리 수익성으로 증명해 보여도 기업주들의 욕심이 멈추지 않는 데 질린 오언은 1925년에 큰 이익을 본 뉴 래나크를 매각했다. 그 돈으로 한 건축가와 함께 만든 도면과 모형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워싱턴 하원에서 모형을 전시하고, 마침내 인디애나주의 개신교 정착촌 뉴 하모니에서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어중이떠중이 몰려든 사기꾼과 알코올 중독자들은 월급만 받고 일하려 들지 않았다. 뉴 래나크에서 25년 동안 모은 재산을 2년 만에 날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오언에게 공상가라느니, 협동주의 운동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하원에서 발표한 오언의 개념도는 이렇다. 네 방향의 반듯한 도로와 텃밭에 둘러싸인 블록이 있다. 블록 한가운데에는 공공시설과 어린이집, 각급 학교, 공동 부엌, 강당, 클럽, 도서관과 종교 시설이 들어간다. 야외는 녹지로 조성되어 운동과 여가 장소로 이용된다. 블록의 세 변에는 노동자를 포함한 4인 가족마다 방 4개짜리 주택들이 계획된다. 나머지 한 변은 독신자와 고아 숙소, 먼 곳에서 놀러 온 친지나 가족들을 위한 손님방, 교사나 의사의 관사, 공동 창고가 들어선다. 한쪽 도로 건너편에는 이들이 노동할 공장이나 회사가, 반대쪽 건너편에는 입주민들에게 식량으로 공급될 논밭과 과수원이 배치된다. 공장과 주거, 곧 사택 단지 사이에는 키 큰 나무를 심어 적절히 분리한다. “그 그림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공상적이었는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현실적인 거죠. 오언은 미봉책으로 조금조금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새로 만들어서 해결해 보자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이런 내용을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잘 몰랐어요.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말을 언제부터 쓸 수가 있었느냐고요.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서로 얘기를 못했잖아요.” 오언의 계획은 이후 여러 추종자들을 거쳐 20세기 미국과 일본, 수많은 근대 국가에서 실현되었다. 그를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가르쳤던 우리의 학교도 바로 그렇게 조성된 사택 단지나 아파트 안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오언은 공상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뉴 래나크라는 공장에서, 동시대 현실에서 직접 마주친 문제를 해결해 보았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갔을 뿐이다. “우리가 196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에 도시 주택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도 어떻게 보면 피상적이에요. 서구 사례에서 대응하기 쉬운 짝을 찾아서 사지선다형처럼 고르려고 한 거지 문제의 본질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요. 결과물로 나온 도시의 모양은 비슷한데, 근본적인 해결이 나오지는 않아요.”사택 살던 아이들이 그렇듯 이모네 가족도 이모부의 전근에 따라 몇 년 후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들의 주소는 사택이 아니라 강남의 아파트가 되었다. 오언의 개념도가 착실하게 실현된 200년 후 대한민국의 귀결은 협동조합이나 화폐 없는 공동체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서 월급보다 더 큰 재미를 보았다.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오언을 따른다며 사택을 짓고 특정 종교나 생활 방식을 강요하려 든 기업주도 역사상 많았다. 강점기 일제 관료의 사택은 문화재가 될지언정, 우리 노동자의 공단 사택과 클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됐다. 주택 청약권이 아니라 노동자가 이사하지 않고 일터 가까이에 거주할 권리, 회사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를 따질 수는 없었을까. 새벽 5시부터 30도를 오가는 날, 아득하게 펼쳐진 아파트 숲 사이를 매일 1시간 넘게 땀 흘리며 출근해야 하는 신도시 노동자들은 벌써 피곤하다.
  • 미성년자 누드사진 유포하며 성희롱 일삼은 한양대 남학생

    미성년자 누드사진 유포하며 성희롱 일삼은 한양대 남학생

    한 한양대 남학생이 과거 교제하던 미성년자에게 나체 사진을 수차례 강요해 받아낸 뒤 사진을 유포하고, 이를 빌미로 성희롱과 협박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한양대 반성폭력·반성차별 모임 ‘월담’은 5일 입장문을 통해 ‘한양대 남학생의 미성년자 누드사진 유포 사건’ 내용을 공개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한양대 남학생 A씨는 2016년 당시 고교생이었던 B씨와 교제하는 동안 “아무에게도 안 보여주고 나만 보겠다”면서 나체 사진을 보낼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B씨가 이를 못 이겨 사진을 몇 장 보내면 A씨는 칭찬하면서 같은 요구를 반복했다. 월담은 “A씨의 무리한 요구로 인한 행위는 B씨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A씨는 사진을 받아낸 직후 B씨에게 교제를 끝내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A씨는 B씨에게 수시로 연락해 성관계를 요구했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언행을 했다는 것이 월담의 설명이다. 월담은 또 A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B씨의 사진을 유포했다면서 “B씨가 A씨의 보복이 두려워 아무 일 없던 듯 지내려 노력하던 때에도 A씨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는 받을 수 없었고, 결국 A씨는 지금까지 자신의 가해를 책임지는 행동도, B씨의 피해 회복을 위한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인권센터는 지난 5월 A씨를 불러 대면 상담을 했고, 인권심의위원회는 A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월담은 “A씨가 인권센터 대면 상담에서 B씨의 나체 사진을 지인에게 보여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B씨와 주고받은 메시지 일부만 공개해 사안을 쌍방의 다툼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6월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에 피해자 법률 지원을 요청한 월담은 “형사고소를 위해서는 증거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행법 및 사법체계의 한계 속에서 결국 저희는 형사고소를 위해 피해 호소인(B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복구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느꼈다”고 밝혔다. 이에 월담은 A씨와 B씨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전체를 복구해 증거를 확보한 뒤 경찰에 신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카카오톡 메시지 복구 비용(30만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A씨의 징계위원회는 오는 14일 열릴 예정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아이eye]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김백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기자단

    [아이eye]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김백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기자단

    제가 살고 있는 경북 포항시 구룡포는 어촌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학원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교육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학원이 없다 보니 온라인 학습, 찾아오는 학습지, 유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학습지 7개를 합니다. 하루에 적게는 4시간, 많게는 8시간까지 매달립니다.구룡포 아동자치회 친구들, 학교 친구들과 사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친구들은 “이번 여름방학에는 하루라도 마음껏 노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좋은 사교육 환경을 위해 전학이나 유학을 간 친구들은 “학교 숙제만 할 수 있으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동자치회 그룹 토의 때 전국 초등학생 10명 중 8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5학년이 22명인데 사교육을 하지 않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시간은 평균 6.7시간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삶에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른들이 억지로 시켜서 할 수 없이 배우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고 강요만 하기 때문에, 그러면 그럴수록 공부가 싫어집니다. “공부를 해야 더 나은 사람이 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너 커서 뭐가 될래? 공부나 해”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른들도 하루 8시간씩 일하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들에게 왜 공부를 강요하는 거죠? 우리들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나요?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을 준 적이 있나요?” 어린이 스스로 꿈을 가질 시간과 기회도 주지 않고, 어른 마음대로 꿈을 결정해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사교육 받으러 다니는 시간에 제 꿈에 대해 고민하고 싶습니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꿈을 키워 나가고 싶습니다. 꿈을 좇아가는 게 아니라 꿈을 찾아가는 아이들이 많아지도록 응원해줬으면 합니다. 어른들이 사교육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 꿈을 찾아가는 시간에 아낌없이 투자해주면 좋겠습니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비양심 대결’ 아닙니다… 강제에 대한 거부죠”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비양심 대결’ 아닙니다… 강제에 대한 거부죠”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병역법 제5조 1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당한 이유 없이 입영을 거부하는 이들을 형사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 1항은 합헌이지만,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한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두지 않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제19조)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한 해 500여명에 달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감옥행이 아닌 대체복무를 해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는 내년 12월 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대체복무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병역거부로 수감 생활을 한 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돕는 데 앞장서 온 임재성(39) 변호사와 이용석(39)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를 만났다.→병역거부를 하게 된 동기는. -임:학교 다닐 때부터 거창한 평화주의 의식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거부 계기는 2004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다. 당시 한국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그때 ‘명분 없는 전쟁도 적법한 절차를 통해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사회적으로도 파병의 정당성 논란이 뜨거웠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망설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군인이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부 자체도 중요한 운동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어떤 분들은 어릴 때 크게 다쳤거나 학대를 당했다든가 하는 특별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 군에 가는 것은 (이라크 파병 같은 걸) 내가 지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점점 깊어지게 했던 것 같다. -이:저도 이라크 파병 이슈가 불거지면서 병역거부 생각을 굳힌 것 같다. 그에 앞서 오태양씨가 처음으로 종교적 이유가 아닌 평화주의 신념에 의해 병역거부 선언을 하는 걸 보며 ‘(병역을)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란 생각을 했다. 솔직히 군대에 가기 싫은 마음이 있었지만, 군대에 갈 이유를 도저히 찾기 어려웠다.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 있다고 걱정했지만, 부모님도 특별히 입영을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요즘은 세월호 참사나 용산 철거민 참사를 계기로 국가와 국민 생명에 대해 고민하고 병역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이란 단어 사용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있는데. -임: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는 금방 느낌이 오지만 양심의 자유는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의 자유는 헌법 19조에 따른 권리로 법률상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양심의 자유는 양심에 반하는 외부의 강제를 거부하는 자유다. 외국과 달리 우린 그동안 양심에 따른 거부 경험이 없었다. 법률에 있음에도 그동안 한국 사회에선 활용되지 않았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한국 사회가 최초로 경험하는 대중적 권리일 수도 있다. -이:‘그러면 군대 가는 사람은 양심이 없는 거냐’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국회의원 등 책임 있는 사람들이 ‘양심 대 비양심’ 구도로 몰고 간다. 이들은 헌재가 표현을 잘못 쓰고 있다고까지 비난한다. 하지만 군대는 자기 양심에 따라 거부할 수도 있고, 자진 입대할 수도 있다고 본다. 강철민이란 병역거부자는 “지금은 양심에 따라 거부하지만, 외적이 쳐들어오면 자진 입대하겠다”며 선택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임:병역거부자들이 꼭 양심이란 용어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신념의 자유로 바꿔도 되지만 양심의 자유가 헌법상 권리이기에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2000년대 이후 법원과 정부 등이 양심을 사회적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헌재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법 조항에 대해 ‘양심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한 것은 병역법이 처음이다. 1991년 언론사의 명예훼손 기사에 대해 사죄 광고를 내도록 한 법률 조항이 양심의 자유 침해라며 위헌 판단을 내린 적이 있지만, 그것은 언론매체가 대상이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 →도입될 대체복무 기간과 복무영역, 복무강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임:얼마 전 전쟁없는세상 등 5개 시민단체가 논의해 시민사회안을 제출했다. 복무기간은 현역의 1.5배 이하면 현역과 대체복무가 공존할 만한 의미를 충족한다고 본다. 일부 정치인이나 단체에선 현역의 2~3배까지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대체복무라기보다는 처벌이나 징벌에 가깝다. -이:대체복무 도입은 국방이나 안보의 개념을 확장하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꼭 총을 들고 철책선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재난구호나 사회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국민 안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중증환자나 치매환자 간병, 의무소방대원 근무 등이 대표적이다. 합숙 유무는 업무나 복무기관 성격에 따라 정하면 된다. -임:힘들고 어렵게 만들어야 기피 수단이 안 된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너무 징벌적으로 설계하면 대체복무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 형평성을 고려해 설계한 뒤 연 1000명 정도 쿼터를 두고 한시적으로 운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지원자가 넘쳐 문제가 크면 그때 복무 기간이나 강도를 조정하면 된다. →양심적 병역거부 입증이 쉽지 않을 텐데. -임: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부분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하지만 저와 이용석 활동가처럼 종교 이외의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도 꾸준하다. 종교인의 경우 대부분 종교활동을 꾸준히 해 왔기 때문에 입증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반면에 다른 거부자들은 자신이 가진 신념을 입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른 여러 나라들도 이 문제로 도입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결국 적극적 심사의 한계를 깨닫고 소극적 심사로 방식을 바꿨다. 독일도 처음엔 고난도의 논리 게임을 도입해 심사했는데 고학력자나 머리 좋은 사람이 주로 선정되고, 하위 계층은 탈락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내면 경험이나 신념을 언어화하는 능력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중엔 엽서만 보내면 됐다. 대신 복무 기간을 길게 해 불이익을 줬다. 우리도 대체복무위원회를 구성해 심사할 텐데 이런 점을 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미국에서도 베트남전 발발 후 고학력자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많이 나섰다. 반면 하위 계층은 전쟁에 반대하면서도 그대로 입영했다가 수많은 살상을 겪고 탈영했고, 처벌받은 병사가 많았다. 병역거부 신청제도 자체를 몰랐고, 관련 정보나 네트워크 접근이 어려웠다. 우리 사회에서도 카투사 입대나 각종 병역 특례의 경우 서울의 4년제 대학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만큼 정보나 네트워크 접근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평화단체 ‘전쟁없는 세상’은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 사회 곳곳서 비폭력 운동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는 병역법에 대해 여러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리다가 이번에 불합치 판단을 한 것은 국가 안보와 병역, 양심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그동안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한 캠페인을 펼쳤고, 그 중심에 ‘전쟁없는세상’이 있다. 전쟁없는세상은 평화주의자와 반군사주의자로 구성된 단체다. 2003년 병역거부자들과 그 후원인들의 모임에서 출발했다.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란 신념 아래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특히 병역거부권의 제도적 인정을 위한 촉구, 병역거부자 상담 및 수감자 지원, 병역거부권 실현을 위한 각종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저항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 전쟁을 영속화하는 전쟁산업에 주목하는 무기 감시 캠페인, 비폭력·평화운동 정보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비폭력 프로그램 운영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용석 상근 활동가는 “전쟁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문제를 발생시킬 뿐”이라며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우리 일상과 사회구조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단독]“과로사 기준 못미쳐도 인과성 상당하면 산재 인정” 판결 뒤집혀

    [단독]“과로사 기준 못미쳐도 인과성 상당하면 산재 인정” 판결 뒤집혀

    실직 우려 등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면 업무시간이 정부가 정한 기준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법 행정5부(부장 배광국)는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줄 수 없다고 처분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노동자의 유족이 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고인은 7년 동안 택지개발, 전원주택 건축 및 분양 업무를 맡았으나,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분양이 거의 전무해지면서 실적 부진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한 때 공황장애 판정을 받기도 했다. 그런 중에 회사로부터 권고 사직 통보를 받았다. 그로부터 약 2주 뒤에 고인은 회식 자리에서 동료 직원들에게 권고 사직에 대한 부당함을 토로했고, 이후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후 고인은 사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검안 결과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거나 타살의 흔적은 없었다. 유족은 고인이 과로와 업무상 스트레스로 사망했다면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했다. 공단은 지급을 거부했다. 부검이 실시되지 않아 고인의 사망 원인이 확인되지 않았고,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규정한 과로사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고용노동부 고시는 ‘발병 전 24시간 내에 업무와 관련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가 있는 경우’, ‘발병 전 1주일 이내 업무의 양·시간이 평상시보다 30% 이상 많아진 경우’ 등을 업무와 사망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보고 있었다. 1심 재판부도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근로자의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면서 “근로자의 사인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는 업무에 기인한 사망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고인의 흡연 습관이 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고, 공단이 주장한 것과 같이 고인의 노동시간이 정부가 정한 과로사 인정 기준의 업무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모두 뒤집었다. 재판부는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사망 당시의 상황에 관한 정보나 과거의 치료 경력 등을 고려하면 사망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면서 “여러 의사들의 소견 등을 종합했을 때 고인은 급성 심근경색증 등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돌연사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또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업무시간에 관한 기준은 예시적 규정으로 볼 수 있다”면서 “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업무 수행을 둘러싼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이 사직을 권고받은 것과 고인의 사망 추정일 사이에는 약 보름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 있으나 이 기간이 경과했다고 충분히 안정됐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의사들의 소견 등을 종합했을 때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당시 의사들은 “권고 사직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심혈관 질환의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되어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법률사무소 인정의 오빛나라 변호사는 “그동안 과로사에 관한 판례 경향을 보면 (개정 전) 정부가 정한 과로사 인정 기준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참작했고, 회사로부터 권고 사직 통보를 받았더라도 근무시간, 업무량, 업무 변화 등 업무 부담이 객관적으로 과중하지 않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웠다”면서 “퇴직 강요나 해고는 일생 중 드물게 경험하는 강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이런 스트레스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부검을 하지 않았더라도 제반 사정들을 종합해 사망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고 보았고, 업무상 스트레스의 ‘양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질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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