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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美 정치회담 개최

    북·미 베를린회담 타결에 따라 페리보고서가 빠르면 이번주 안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또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해제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결정하는 북·미 정치회담이 유엔총회 폐막 직후 미국에서 개최되는 등 북·미 관계가 급진전될 전망이다. 정치회담을 위해 북한은 강석주(姜錫柱)외무성 제1부상의 미국 방문을 사실상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당국자는 13일 “북·미 회담에서 평양의 미사일 발사유예를 얻어냄으로써 페리조정관이 의회에 설득력있게 대북권고안을 보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베를린 회담은 사실상 페리구상에 대한 북한측의 수용을 최종 확인한 것이었다”면서 “앞으로 세부적인 협상이 진행될 것이며 무엇보다 정치협상이 비중있게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협상에선 북한에 대한 제재해제의 유형과 시기 등이 확정되고 북한의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가입,미사일 및 관련기술의 수출 중단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수행,뉴질랜드를 방문중인 홍순영(洪淳瑛)외교부 장관도 베를린 회담에 따른 우리 정부의 역할에 대해 “페리제안에 내포된 한·미·일 3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이익조치를 취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함께 오클랜드에 머물고 있는 샌디 버거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베를린 협상타결은 미사일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 북한의 모라토리엄을 이끌어내기위한 첫 단계였다”면서 “북한의 완전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추가 제재완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한편 페리조정관 임명뒤 10개월만에 빛을 보게 될 페리보고서는 북한과 서방의 관계개선 및 이를 촉진시킬 수 있는 대북지원 등 긍정적 측면을 많이 담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이에앞서 북·미는 12일 베를린 회담에서 북측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 대신 대북한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석우·오일만기자 swlee@
  • 北·美고위급회담 타결-후속조치 내용과 시기

    베를린회담 타결 이후 북·미간의 ‘비공개 합의이행’에 관심이 모아지고있다.미국이 북한에 약속한 대북 경제제재 해제·완화 조치와 관계개선을 어떤 형식으로 가시화시키느냐는 문제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은 미국이 약속사항 이행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향후 전략을 수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북한은 베를린회담에서“지난 93년 제네바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강력한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체적인 합의문을 발표하지 못한 것도 북한의 선(先) 경제제재 완화 요구를 미국이 사실상 수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페리구상’을 기초로 한 포괄적 북·미 협상도 단기 내에 끝날 성격이 아니다.양국간 신뢰를 구축으로 ‘마라톤회담’의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북한 달래기’ 측면에서도 미측은 조만간 가시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적지않다. 합의이행의 신호탄은 내주로 예상되는 ‘페리보고서’의 미 의회 보고로 보인다.베를린 협상 보고도 자연스레 겸하면서 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특히 강경 매파설득도 병행할 것이란 관측이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조치는 ▲북한에 대한 소규모 직접투자 및 교역 허용 ▲대북 송금 규모 확대 등이 예상된다. 지난 50년간 북한에 족쇄를 채웠던 적성국 교역법에서 북한을 제외시키는조치도 가시권에 있다.북한으로선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적대국’이란 꼬리표를 떼면서 대외적 이미지 제고를 노리는 양수겸장이다. 미국 내 북한 자산동결 해제도 행정부 명령으로 가능한 조치다.금액은 현재 1,400만달러에 불과해 미 의회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일부 전문가들은 대북 경제제재 해제 1호로 거론하고 있다. 교역방식도 북한과의 교역·투자를 개별 항목별로 허가하는 ‘포지티브시스템’에서 일부 제한품목을 두는 ‘네거티브방식’으로 전환된다.사실상의 대북 투자·교역이 모두 허용되는 상징적인 조치다. 북한은 ‘확실하게 땅이 굳어진’ 것을 확인한 뒤 정치·외교 협상에 나설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외교 실세인 강석주(姜錫柱)외교부 제1부상의 방미여부가 그 시금석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北·美고위급회담 타결-洪淳瑛외교 일문일답

    [오클랜드 양승현특파원] 뉴질랜드 오크랜드를 방문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홍순영(洪淳瑛)외교부장관은 13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미 베를린회담 결과에 대해 “북한 미사일이 상당기간 발사되지 않을 것으로 이해하고 또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베를린회담의 (공동발표문 외의) 구체적인 합의내용은. 큰 틀의 합의가 있었으나 합의문 이상은 발표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안다.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의 제안을 북한이 수용한 것인가. 큰 틀에서 시간과 절차를 갖고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그러나 아직 페리보고서 전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이 상당기간 발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면 되는가. 그렇게 이해하고 기대하고 있다. 구체적인 합의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세부조건에 대한 이견 때문인가. 절차와 내용에 대해 더 협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 논평에 명시한 ‘우리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베를린회담에서 북한은 미사일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방향으로,미국은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서로 노력하기로 했다.미국의 제재 완화는 북한에 이익을 제공하는 것인데 페리 조정관의 제안이 내포하고있는 대로 한·미·일 3국이 할 수 있는 이익을 주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북·미회담이 하루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그런 노력을 하겠다는 뜻이다. 북·미회담이 영향을 줘서 남북대화가 이뤄져 신뢰구축과 위협 제거를 위해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게 된다면 그것도 우리 몫이다. 큰 틀에서 보면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전진적으로 검토해서 취한다는뜻이다. 페리보고서는 언제 발표되나. 우리도 미 의회에 대한 보고서 제출과 비슷한 시기에 설명할 필요가 있기때문에 시기를 미국측과 협의중이다. 강석주(姜錫柱)북한 외교부 제1부부상이 미국을 방문하는가.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yangbak@
  • 고위급회담 중간 점검

    11일 베를린 회담 종료를 앞두고 북한과 미국은 막바지 협상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북·미는 7,8일 이틀간 미 대사관과 북한 이익대표부를 오가며 협상을 시도했고 9일은 하루를 쉬면서 본국의 훈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언이다.북측은 정권수립 기념일(9·9절)을 맞아 현지에서 리셉션을 여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까지 회담 양상은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유예와 미측의 대북경제제재 완화 및 식량지원이라는 ‘빅딜안’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특히대북 경제제재 완화 방안을 놓고 양측의 줄다리기가 예상대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북측은 경제적 실익은 물론 국제적 이미지 제고를 겨냥,테러국들에 적용되는 ‘대적성국 제재’의 완화를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돌발변수’로 떠올랐던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아직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전언이다.회담 자체를 깨기보다는 최대한의 실익을 얻겠다는 북한측의 협상전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하지만회담 막판에 북측이 고지 선점을 위해 NLL문제를 전격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눈여겨 볼 대목은 북·미 회담과 ‘페리 구상’의 연계다.미측은 이번 베를린 회담에서 북측의 미사일 ‘발사 문제’를 해결하고 향후 협상에서 미사일 연구·개발 문제로 확대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이른바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제시한 ‘포괄적 대북접근 구상’의 실현 여부다. 이와 관련,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의 방미 가능성이 초미의 관심사다.외교부 당국자는 “강 부상이 방미를 수락할 경우 이는 페리 조정관과의 본격적 회담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북·미 관계의 급진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일이 선호하는 ‘포괄적 타결’보다 사안 하나 하나를 이슈화시키는 ‘분리 해결’에 무게를 두고 있다.따라서 이번 회담도 ‘완만한 진전’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오일만기자 oilman@
  • 김계관 “NLL문제도 거론”/오늘 북.미 베를린회담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 정부는 7일 베를린에서 개막되는 북한 미사일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추가발사 보류를 명문화할 방침인 것으로 6일 알려졌다. 미국은 또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지난 5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제시했던 포괄적인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 94년 북미제네바 핵합의 당시 교섭을 맡았던 강석주(姜錫柱) 북한 외무성 제1 부상의조기 방미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전향적으로 대응할 경우 미국에 있는 북한 자산의 동결해제를 비롯,경제 제재의 일부 완화,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한 교섭추진 등에도나설 예정이다. 한편 지난 5일 회담 참가를 위해 베를린에 도착한 북한의 김계관(金桂寬)외무성 부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문제도 거론할 것이라고 밝히고쌍방 관심사는 모두 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측의 수석대표인 김 부상과 미국측 수석대표인 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는 7일 첫날 회담을 미 대사관 분관에서 가진 뒤 11일까지 미 대사관과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에서 번갈아 회담을 연다. hay@
  • 北·美 관계개선 협상 이달중 착수 가능성

    [도쿄 연합] 북한 지도부는 9월말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을 미국에 파견해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과 회담토록 한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마이니치(每日)가 한반도 정세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31일 보도했다. 이 회담이 실현되면 북·미 관계개선에 대해 구체적인 토의가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북한측은 지난 5월 북한을 방문한 페리 조정관이 대미정책 실무책임자인 강 제1부상의 방미를 요청한데 대해 “지금 당장에는 갈 수 없다”는 반응을보인 바 있다. 신문은 “강부상이 미국을 방문해 긍정적인 회답을 얻어낼 경우 페리 조정관이 제시할 포괄적 접근정책에 따라 북한측은 미사일 협의 재개와 동시에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개시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 北외무성副相 오성철 추가임명

    북한의 오성철 전(前)공보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외무성 부상(차관급)에오른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북한 중앙방송은 29일 오성철을 외무성 부상으로 호칭했다. 이에 따라 북한 외무성은 백남순외무상,강석주제1부상 밑에 궁석웅,김계관,박길연,박동춘,오성철,이인규,최수헌 부상 체제로 파악됐다. 구본영기자
  • 페리-姜錫柱 핫라인 개설될까

    ‘페리 방북’ 이후 북-미 간 후속 협상채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한미 양국은 새로운 채널의 구축과 기존 채널의 활용을 놓고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현재 북-미간 대화채널은 크게 4가지.미국무부 에반스 리비어 한국과장-북유엔대표부 이근 차석대사의 ‘뉴욕채널’과 찰스 카트먼 특사 -김계관 북외무성부상의 금창리 협상라인,4자회담 채널,미사일 회담라인 등이다. 하지만 포괄적 접근구상과 관련,새로운 협상채널이 구성돼야 한다는 것이정부의 인식이다.이와 관련,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페리-강석주 핫라인’개설 여부다. 페리 방북 당시 북한측 카운터 파트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으로 확인됐다.페리조정관은 북한의 ‘외교실세’로 알려진 강 제1부상과 3일동안 회담을갖고 깊숙한 곳까지 논의했다.이들이 가장 유력한 북-미간 ‘협상팀장’이지만 페리 조정관은 고령(71)과 강단(스탠포드대)복귀를 이유로 고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실현 자체는 아직 불투명하다. 반면 북한측은 포괄협상보다는 사안별 협상을 선호하고 있다.최근 페리 조정관에게 “기존 관계(채널)를 유지,존중하겠다”는 입장을 통보,단일 채널구축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다.
  • 韓·美·日 ‘북-미 협상팀’ 구성 가능성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방북은 시종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속에서 이뤄졌다.남한 배제 속에서 미국과의 ‘직거래’를 고집하는 북한의‘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면서 3국간 협조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페리 방북 직후인 29일 한·미·일 고위정책협의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3국의 포괄적 접근구상에 대한 북한의 반응 등 3박4일 간의방북 성과를 설명하고 향후 대북 정책을 협의하기 위함이다.이 때문에 앞으로도 한·미·일 3국의 공조체제가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대북 포괄적 접근구상이 북한 지도부에 전달된 만큼 대북 권고안 실현을 위한 ‘북-미 협상팀’이 가동될 가능성이 높다.미국측의 페리 조정관과북한의 ‘외교실세’로 불리는 강석주(姜錫柱)외무성1부상(차관)이 협상대표로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북한은 한·미·일 3국이 제시하는 ‘포괄적 접근’보다는 ‘사안별 협상’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치밀한 손익계산을 바탕으로 체제유지와 ‘실익챙기기’를 병행할 것이란 관측이다.숱한 진통과 지리한 ‘줄다리기’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따라서 3국은 효율적 대처를 겨냥해 대북 협의기구의 2원화 방안을 검토중이다.장·차관급의 3국 고위협의와 차관보급의 실무협의로 나누는 방안이다. 고위급 협의는 당분간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과 윌리엄 페리 조정관이참여할 예정이며 일본측 대표는 아직 미정이다.분기별로 열리는 차관보급 협의엔 외교통상부 장재룡(張在龍)차관보와 웬디 셔먼 미국무장관고문,가토 료조(加藤良三) 일본 외무성총합정책국장이 참여할 예정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北 외교전략 수정?

    북한 외무성이 최근 부상(차관급)을 10명에서 6명으로 줄이고 해외공관을감축하는 구조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6명의 부상은 궁석웅,김계관,박길연,박동춘,이인규,최수헌이다. 이들은 백남순외무상과 강석주제1부상의 지휘아래 30여개에 이르는 지역국과 기능국을 5개 정도씩 분담해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기존의 외무부상 가운데 최우진은 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전보됐고,고령인 김재숙은 은퇴했으며,김창규·이원국 부상은 각각 실무에서 물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해 해외공관을 30% 가량 줄여 ‘거점공관’ 중심체제로 재편하기도 했다.북한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회의에서 정무원 외교부를 내각 외무성으로 개편하면서 구조조정 방향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정부 관계자는 “부상을 줄인 것은 북한의 전략변화를 실증하는 지표”라며 “현재 외무성의 하부조직과 해외공관의 재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궁석웅부상은 중동·아프리카를,김계관부상은 북미지역을,박길연부상은 중남미지역을,박동춘부상은아시아를 각각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규부상은 독립국가연합(CIS) 가맹국들과의 외교관계를,최수헌부상은 유엔 산하 각 국제기구 및 서유럽과의 외교문제를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李度運
  • 혁명원로 대거 퇴역 ‘세대교체’/北 서열 변화

    ◎홍성남·최태복 등 김정일인맥 급부상/군부실세 조명록 인민무력부장 유력 이번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80대 고령의 혁명원로들이 대거 한직으로 물러섰다.부주석 李種玉 朴成哲 金英柱가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데다 2∼4위였던 주석단 서열도 4∼6위로 밀려나 사실상 은퇴한 셈이다. 대신 金正日은 자신의 인맥으로 분류돼오던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대표적인 예가 洪成南(74) 내각총리.김일성종합대와 체코 프라하 공대출신의 테크노크라트인 洪총리는 권력구조의 부침이 심했던 7·80년대에도 정무원 부총리와 국가계획위원장에 수차례 임명될만큼 업무추진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발탁된 崔泰福(68)도 70년대 초 金正日의 후계자부상 과정에서 유일사상체계 확립에 앞장서면서 김정일 인맥의 일원이 됐다. 대외적인 국가수반 역할을 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기용된 金永南(70)은 우리에게 외교부장으로 친숙한 인물로 외교관 외길을 걸어온 비동맹외교의 대가다.94년 북미핵협상 대표였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에게 뒤처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번에 주석단 서열 2위를 차지,金正日 시대의 실세로 떠올랐음을 증명했다. 온건 개방파 延亨默(67)자강도 책임비서도 김정일의 신임을 얻고 있어 당인사에서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또 桂應泰(73),金基南(72),金國泰(74),金容淳(64)등 당 비서 4인방과 金正日의 매제인 張成澤(52)도 앞으로의 행로가 관심거리인 실세집단이다. 군부에 신경을 써온 金正日의 인사행태는 이번에도 어김없었다.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앉은 趙明祿(68)군 총정치국장은 군내인맥의 대표격.러시아 공군대학에 유학한 공군출신으로 해방전 어린 金正日을 업고 다닐 정도로 깊은 인연을 맺었다.인민무력부장으로도 유력시된다.
  • 평양 아파트서 돼지 등 사육/북 주민들의 생활상

    ◎주민들 쌀 구입위해 공장기계 밀매/기름도 모자라 장작으로 취사·난방 식량난 속에 북한 주민들은 처절할 정도의 생활고를 겪고 있다.심지어 아파트 화장실에서 돼지를 기르기도 한다. 지난 6일 귀순한 FAO(유엔식량농업기구)주재 북한대표부 3등서기관 김동수씨(38)는 18일 기자회견에서 “농민들은 국영농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실질적 도움이 되는 텃밭관리와 가축사육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여기에서 나오는 곡물과 가축을 구역마다 1개씩 운영되는 농민시장에 내다팔고 있다는 것이다. 쌀을 구하기 위해 공장의 기계를 떼어 파는 일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방보다 식량사정이 낫다는 평양시민들조차 최근들어 집에서 가축을 기르고 있다. 김씨의 부인 심명숙씨(38)는 “평양에서도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아파트 욕조나 베란다에서 토끼와 닭 등 가축을 기르는 가정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면서 “방이 2∼3개인 아파트에서는 아예 방 하나를 가축 사육장으로 사용하고 화장실에서 돼지를 키우는 가정도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아파트에 사는 한 인민반장은 화장실에서 돼지를 키워 지난 해 명절때 도살해 내다 판 적이 있다고 심씨는 전했다. 유류난으로 자동차 운행이 제한돼 걷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도 도보로 15분 가량인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에도 수돗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주민들이 직접 물을 길어다 쓰는 형편이다.때문에 한번 사용한 물을 세탁용이나 화장실용으로 재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에서도 취사와 난방에 나무를 사용한다.이에 따라 땔나무는 농민시장에서 새로운 인기상품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잦은 정전으로 야간에는 등잔불을 켜는 일이 잦지만 촛불의 사용은 제한돼 있다고 한다. 심씨는 “아파트에서는 온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겨울내내 목욕을 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허다하다”면서 “실제로 지난해 12월 방북한 FAO주재 북한대표부 김흥림 대표는 15일 동안 머물면서 목욕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본회담 어떻게/“수석대표 차관급… 분과위별 실무협상”

    ◎2차회담부터 4국 번갈아 개최 가능성 오는 12월9일 제네바에서 열릴 4자회담 제1차 본회담은 6·25이후 44년만에 정전체제의 서명국 또는 당사자들이 모이게 되는 장이다. 본회담 수석대표는 지난 예비회담에서 장관급으로 일단 합의했으나,차관급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따라서 이기주 외무차관,스탠리 로스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당가선 중국 외교부부부장 등과 북한에서는 김용순 노동당대남비서또는 강석주외교부 부부장이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미·중의 외무장관은 워낙 바쁘고 북측은 김영남 외교부장이 남한 장관과 대면하기를 꺼린다는 전언이다. 본회담은 각국 대표의 기조연설에 이어 분과별 실무협의를 가져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분과위원회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으나 긴장완화,신뢰구축,경협,대북식량문제 등으로 나뉠수 있다.본회담 장소는 2차회담부터는 한반도내 또는 4개국을 돌며 열릴 전망도 크다. 그러나 여전히 의제와 대북식량지원이 문제로 남아있다.이번에 ‘한반도평화체제구축과 긴장완화를 위한 제반문제’라는 단일의제를합의했으나 북한은 본회담이 시작되면서 다시 미북평화협정을 세부의제로 들고 나올수 있다. 또 북한의 긴장완화조치에 따라 식량을 지원한다는 한·미와 달리 북측은 일단 식량지원을 보장해야 한다는 묵은 주장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 김정일 총비서 승계후 북 체제 전망

    ◎측근·근 등 친위실세 전진배치 예상/김일성노선 답습하며 당기능 복원 시킬듯/체제유지 위한 군사통치에 계속 의존 전망 지난 8일 당총비서에 추대된 김정일은 당창건 52돌인 10일 당총비서의 자격으로 당정군 수뇌부를 대동하고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부터 방문했다.9일 열린 당창건기념행사엔 참석치 않고 김일성참배를 시작으로 공식활동에 들어간 김정일의 이같은 행보는 앞으로의 김정일의 통치방식 뿐아니라 정책노선과 관련,시사하는 바가 많다.우선 김정일은 한동안 정책변화 없이 그동안 무력화됐던 당의 체제정비와 보강을 통해 당 기능을 복원하면서 체제유지를 위해 군사통치에 계속 의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이와함께 당정군의 핵심요직에 친인척과 군 실세,당 5인방등 측근 친위 실세들을 대거 전전배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선 김정일은 정책면에서 당분간은 김일성의 노선을 답습하리라는 것이 정부당국이나 북한문제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시각이다.북한 중앙방송이 김정일의 총비서추대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일성의 위업과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빛나게 완성하려는 확고한 신념과 드팀없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고 북한문제전문가들도 현재 북한 내외의 상황으로 보아 당분간은 김정일이 정책에 어떤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최고 실권자로 당총비서에 추대됐기 때문에 그동안 군부에 눌려있던 당의 기능이 복원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이를 위해 체제정비와 함께 자리가 빈 정치국원이나 당비서·당조직지도부장 등 요직에 심복을 배치하리라는 전망이다.그러나 체제유지를 위해 당의 기능을 복원한다 해도 군사통치는 중단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군사통치가 계속되리라는 징후는 김정일의 총비서추대가 당중앙위원회 뿐 아니라 당중앙군사위의 공동명의로 이뤄진데서 찾아볼 수 있다. 총비서 승계후 김정일의 행보에서 주목되는 것은 당정군 요직의 개편이다.인민무력부장이 공석인데다 총리직도 강성산이 지병으로 집무를 할 수 없어 홍성남부총리가 대행하고 있는 등 중요한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이다.김정일은 체제붕괴를 우려해 개방·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기존정책노선을 답습하면서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측근이나 심복들을 전면에 포진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선 친인척과 당에서는 김정일의 매제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장성택이 요직을 맡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김정일의 누이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장은 김정일이 “믿을 사람은 너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에서는 총정치국장인 차수 조명록과 총참모장인 차수 김영춘이 정치국원 반열에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이들 외에 호위사령관인 원수 이을설이 있으나 이는 원로예우을 받고 인민무력부장엔 조명록이 발탁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정무원쪽에서는 총리대리인 홍성남 부총리와 외교부 제1부부장인 강석주 등이 중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현재 총리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개방정책 추진을 위해 김달현 전 부총리가 컴백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당분간 현체제로 나갈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북한의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다음달까지나 연내로 원로들은 예우직으로 물러나고 젊은층 위주로 새로운 진용이 짜여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김정일은 국가주석직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직도 곧 승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북 지원식량 군량미 전용”/방북 미 의원단

    ◎미 민간단체 직접배급 추진 미국의회 하원 정보위원회는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식량 가운데 일부가 군량미로 전용되는 등 식량분배의 문제점을 들어 다음주내 북한에서 활동중인 비정부기구(NGO)가 직접 북한주민에게 식량을 배급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상정하기로 했다.〈관련기사 3면〉 2박3일간의 방북일정을 마치고 방한중인 포터 고스 등 미 하원 정보위원 7명은 13일 미 공보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에서 활동중인 NGO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원식량 가운데 일부가 군량미와 지도자층용으로 전용됐다”면서 “이는 북한정부가 식량을 모아 지방으로 배급하는 방사형의 식량배급체계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1부부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4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대규모 식량지원을 요구했으며 1백만여t이 부족하다고 했다”면서 “북한은 4자회담을 통해 궁극적으로 미국의 대북제재완화를 희망하며 미국이 이를 위해 사회주의체제의 변화를 연계해서는 절대 안될 것이라고 전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들은 미군유해발굴작업을 위해 지난 60년대 북한으로 망명한 미군 4명과 면담할 것을 요청했으며 북한측은 “추진을 고려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북한은 김일성사망 당시 조문을 하지않은 한국의 현정부와는 대화할 뜻이 없으며 12월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남북대화재개가 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 북 한국대선후 대화 모색/방북 미 의원단 밝혀

    북한은 한국과 당분간 대화를 갖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오는 12월 대통령선거후 한국과 대화를 모색하려 하고 있다고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미 하원 정보위원회 포터 고스 위원장 등 방북의원단이 12일 밝혔다. 북한 방문기간 동안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 등과 회담한 고스 위원장 등은 이날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한국을 상대로 대화를 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했다”면서 “북한 지도부는 민족이 함께 모여 한반도 미래가 걸린 문제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한국과 협상할 용의가 있는듯 보였으며 1국2제도 등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고스 위원장은 또 북한이 4자회담 전에 식량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북한의 지원식량 원조 배분이 너무 비밀에 싸여 있다고 지적하면서 식량배분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미국은 추가 원조를 유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방북 미 하원의원단 오늘 내한

    미국하원 포터 고스(공화·플로리다) 정보위원장 등 정보위 소속 의원 7명이 2박3일간의 방북일정을 마친뒤 12일 하오 서울을 방문한다. 고스 위원장을 비롯,빌 맥컬럼,찰스 베스,짐 기본스,낸시 펠로시,제인 하먼,샌포드 비숍의원등 7명과 보좌관 6명,군관계자 4명등으로 구성된 이들 일행은 방한기간동안 유종하 외무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과 틸럴리 주한미군사령관 등과 면담하고 15일 출국할 예정이다. 이들은 이에앞서 지난 9일 군용기편으로 방북,북한 관리들과 만나 식량사정을 파악하고 미사일협상,미군유해송환,상호연락사무소 개설문제등 미북간 현안들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 중앙방송은 이들이 10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 강석주와 만나 담화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 “북 4자회담 참석 설득”/레이니­샘 넌

    ◎유 외무에 방북결과 설명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와 샘 넌 전 미 상원 군사위원장은 22일 지난 20일부터 2박3일간 북한방문중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4자회담에서 핫라인 설치나 미·북 또는 남북한간 군의사소통기구 설치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레이니일행은 이날 서울에 도착,유종하 외무장관을 예방한뒤 주한미공보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방문결과를 설명하고 북한을 4자회담에 참석하도록 설득한 내용들을 전했다. 이들은 “북한은 여전히 식량지원,미국의 대북제재완화,테러국지정 해제 등이 4자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으며 현재의 기근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식량 1백만t정도가 부족하다고 밝혔다”면서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어난 포격사건을 거론하며 미·북간 장성급 대화창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고 말했다. 한편 레이니 일행은 북한방문중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이찬복 판문점대표부 대표 등을 만나 현안들을 논의했으며 김정일은 만나지 못했다고밝혔다.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Ⅳ

    ◎외세개입 없을땐 100% 적화통일 가능/나진·선봉에 남한기업 투자 원치 않아 ▷북한 대외관계◁ ○외교정책·전략 소·동구붕괴 이후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은 ‘체제고수’라는 기본목표하에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대국(주변4각)들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이들을 이용해 나가는 전략임. 외교정책 결정은 소·동구 붕괴이전에는 ①외교부 수립 ②당 국제부 심사 ③김정일 비준 ④외교부 하달순이었으나 90년대 들어 김정일이 직접 관장한 이후부터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음. 외교정책 주도인물로는 김영남·강석주 등을 들수 있는데 외교부가 주관한 대미 핵협상이후 강석주가 김영남을 제치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신임을 받고 있음. 북한지도층은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경제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일·북 관계에 진전이 없자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 되어야 함을 깨달았음.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간섭을 견제하면서 대미관계 개선을 통해 일본을 따라오게 하고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기 위한 것임. 김정일을 UN을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부속기구로 보고 있으며 대 UN외교활동 중점을 주한미군 철수와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원획득에 두고 있음. ○해외 주체사상연구소 70.10 김일성과 단독 면담하여 주체철학 확립사업을 승인받고 4년간에 걸친 집필활동을 통하여 김일성 명의로 주체사상을 집대성 하였음. 최근까지 주체사상 연구소 활동을 위해 연간 100∼120만불의 예산을 사용해 왔음. 주체사상의 세계전파를 위해 78.4 동경에서 주체사상 국제연구소르 창설(초대 이사장 야스이 카오루,현재는 이노우에 슈하치)하고 매년 자금을 지원해 왔으나 최근에는 북한의 자금난으로 2년전부터 조총련에서 지원하고 있음. 현재 지역별 주체사상연구소는 인도,불란서,페루,나이제리아에 있으며 동 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아주 주체사상연구소(인도)에 매년 3∼4만불,중남미 지역 1만불,불란서에 5천불 정도 지원한 바 있음. 해외주재 북한대사가 주체사상 전파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으며 일부지역에는 전담요원이 파견된 바도 있으나 이들 조직의 활동보고를 받거나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음. ○주요국과의 관계 김정일의 대미접근 의도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평화적」이라는 대외명분도 세우려는 것으로서 중국의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데 대해 골탕을 먹이고 남한을 고립시키는 등 여러책략을 기본고리로 미국과 상대하려는 것임. 김정일은 미국을 타도대상인 적인 동시에 이용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미국과의 수교가 상당기간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수교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제기되고 북한의 남한 고립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임. 북한이 미국과 미사일 관련 협의에 수표하더라도 종잇장에 불과할 것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을 것임. 내부적으로 ‘미·북 핵합의’를 “신출귀몰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승리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 모두 이를 믿고 있는 실정임. 김정일이 “일본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취함으로써 일본을 끌어 당기라”고 지시한바 있으며,대일관계 개선 목적은단지 사죄와 보상금을 얻어내는데 있음. 일본과의 수교회담은 처음에는 일본과 직접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차츰 미국의 승인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대미관계 개선에 우선을 두고 있음. 일·북 수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며 1백억불정도의 보상만 받을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수교할 것임.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북한은 미국과의 접근을 원치않는 중국을 자극하여 보다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임. 북한은 한·중 수교이후부터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며 외교적 사안을 전혀 통보하지 않는 등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북한은 소련붕괴이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도 벗어나려 하고 있기때문에 중국측에서 김정일을 수차 방중 초청해도 거절하고 있음. 북한은 남쪽을 무력으로 통일시키는데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을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음. 러시아가 한국의 자본과 러시아 기술을 이용하여 북한의 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할 경우 북한은 설비는 받아들일 것이나 남쪽인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임. 북한은 대만에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만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음. 북한은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비하여 보위부 반탐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작년 여름 총영사관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홍콩을 방문하였다고 함. 91년경 김일성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줄때 뿐이며 자본주의 국가나 남조선에서도 받아먹고 있어 ‘밑빠진 독에 불붓기’”라면서 “이제부터는 동남아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언급하였음. 김정일도 21세기를 태평양 시대라고 보고 동남아를 중요시하면서 필리핀·호주 등과의 수교를 추진하고 있음. 김일성은 91년경 교시를 통해 동남아 다음으로 브라질,페루 등 중남미 국가 야당과의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이들국가의 여당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 ○조총련의 대북송금 실태 김정일은 조총련의 송금을 최대의 명줄(중요자금원)로 간주하고 있으나 80년대에는 송금액이 6억달러 정도였으나 지금은 정확한 액수를 알수 없으며 빠찡코,부동산 등의 수입이 감소하여 많이 줄어들고 있음.또한 북한은 조총련에 교육비 명목으로 선전차원에서 자금을 보내기는 하지만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번 일본 지진시 북한이 위로금을 보냈을때 ‘황’이 “뭐 그렇게 많이 보내느냐”고 하자 통전부 간부가 “보내면 몇배로 되돌아온다”고 대답한 바 있음. 지난 91∼92년도에 수교교섭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1백억불 이상 받아낼 계획이었음. 김일성 생존시에 배상금을 쓰는 문제에 대해 조금 논의를 했는데 경제부문이 아닌 다른부분에 쓰려는 것으로 들은바 있음. ▷대남 및 남북관계◁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 과거 김일성은 대남혁명전략으로 남한내 이른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킨 다음 연방제로 통일하는 평화적 방법과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방법을 병행하였음. 김정일은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에 비해 경제력은 열세이나 일본 등 외부간섭이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극심한 식량난에도 아랑곳없이 군사력 강화는 물론 무력통일을 위한 사전 기반조성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철수·남한 내부와해 및 지하당조직 공작을 추진하고 있음. 특히 최근에는 남한과 해외의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별도 공작기구를 설립하는 등 군관련 공작에 주력하고 있음. ○연방제통일전략(합작통일전략)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①남한은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고 ②무력으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며 현재 ‘남한정세가 정치적 문제·학생데모 등으로 혁명의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결정한데 따른 것이며 남북관계에서 온건파가 발붙일 자리는 없음. 북한의 연방제 통일전략은 외국 등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남한내에 혼란을 일으키고 인민 봉기에 의한 정권을 수립한 후 합작하겠다는 것으로 속임수에 불과함. 김정일은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지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식권력승계를 하더라도 대남정책에는 변화가 있을수 없고 있지도 않을 것임. ○대남정책 입안 및 집행절차 대남 공작사업은 대남사업을 전담하는 당 소속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작전부·조사부와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각각 자체계획을 수립,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집행하고 있음. 공작부서간 상호 업무협조는 김정일의 직접적인 통제아래 이루어지므로 김정일 이외에 어느 누구의 지휘나 협의·조정없이 자체적으로 수행함. ○남북대화 북한은 남북대화를 ‘적과의 전쟁’으로 간주하여 모든 전략을 김정일의 결재하에 추진하고 있음. 남북대화 전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수립하며 동 전략에 따라 조평통·정무원 등 관계자로 구성된 회담대표단이 이를 수행함. 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했던 것은 남한을 안심시키고 국제적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의도였으며 당시 연형묵 총리는 로봇에 불과했음. 94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김일성이 서울을 방문할 경우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며. 회담목적은 연방제통일과 남북 경제교류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었음. 4자회담은 잘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쌀을 준다면 나올 수는 있겠으나 딴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끌 것임. 북한이 ‘3+1’회담을 주장한 이유는 중국의 조선문제에 대한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임. 북한 고위인사 대부분중 대미협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미협상이 김정일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4자회담 참석에는 반대하고 있음. 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 강영섭은 통일전선부 사람들이 작성해주는 것을 읽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며,북한에는 종교를 믿으면 곧바로 통제구역으로 쫓겨남. 민간급 접촉은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남한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해 재야단체 등을 반정부 투쟁에 끌어들이려는 유인술책임. 또한 당국간 대화 거부입장을 정당화 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국내 일부단체의 대북접촉을 부추겨 통일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경제지원 등도 얻어내 보려는 속셈임. 남북경협은 대외경제위 산하 ‘대외경제협력 추진위’가 주관하고 있으며 동 기구는 크게 나진·선봉투자,금강산 개발,남한 기업인 접촉 등 3가지 업무를 담당함.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와같이 비단섬을 경제특구나 관광특구로 개발하려고 하는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1일관광을 시키는 정도일 것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봄. 북한이 나진·선봉지역을 개방한 것은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모면해 보기 위한 것으로 남한기업의 투자는 원하고 있지 않으며 남한기업인에게는 경영권을 절대로 주지 않을 것임.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Ⅰ

    ◎산소 없애 생물 죽이는 ‘기화폭탄’개발 소문/남측 정정혼란때가 전쟁도발 최적기/김정일 전쟁명령 지휘체계 대폭 축소/‘전쟁나면 미국도 사정권’ 승리 장담 ▷북한의 전쟁준비 동향◁ (1)전쟁준비 관련사항 ○김정일의 전쟁관 및 전쟁의지 김정일은 군대가 많고 수십년간 전쟁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군을 겁내지 않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이 50% 밖에 독립시키지 못했다면서 자기대에는 무조건 무력통일시키겠다고 하며 “통일조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욕을 가지고 있음. 북한은 전쟁을 6개월 이상 끌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하고 있음.북한 특수부대원들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 북측지역에 침투할 것으로 위장한 후 한국군이 먼저 도발했다면서 서울에 5∼6분동안 포를 쏘아 잿가루로 만든 다음 미군이 증원되기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고 미국이 개입하려 할 경우 동경 등 몇개 일본도시를 미사일로 타격하여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개입을 저지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음 김정일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70년대초부터 모든 부서는 전쟁준비에 주력하도록 해왔으며 특히 91.12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에는 전쟁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음.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은 수시로 “조국통일의 주력은 군대다.믿을 것은 군대뿐이다.모든 힘을 다해 군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수시 하달하는 등 오직 전쟁준비에 광분해 왔음. 김정일을 포함한 지휘부는 전쟁시 승리를 100% 확신하고 있으며 일반주민들은 남한군을 「허재비」(허수아비)로 인식하고 있음. 김정일은 “북한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이 망하게 되면 세계와 함께 자폭하겠다”고 극언하였음. 북한의 김정일 및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경제력 등은 남한이 월등하나 군사력은 북한이 우세하여 외부간섭(미국)만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한편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 62.10 쿠바사태시 김일성은 “형님 지갑돈은 내 지갑돈만 못하다.항상 내지갑에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준비를 시작,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정책을 추진해왔음. 김정일은 64년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후 국방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지휘하였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군사분야에 관여해 왔음. 북한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생산은 100% 자체 해결하고 있고 전투헬기·미사일·방사포도 대대적으로 생산하고 있음. 63년 김일성을 수행,평강지구(5군단 사령부)를 방문했는데 갱도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고 대포출입이 가능케 되어있는 등 완전 지하요새화가 되어 있었음. 산업분야의 전기공급이 아무리 부족해도 지하군사시설에 사용되는 전력은 절대로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없음. 평양근교 지하 군사시설의 경우 조명·급수·환기장치 등이 완비되어 있음. 92년 창군 60주년 군사퍼레이드시에 본 모든 장비는 자행식이었으며,군내에서는 남한을 3번 “잿가루”로 만들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함. 북한의 특수전 부대들은 부대별로 남한내 미사일기지·공항 등 주요 전략시설에 대한 타격목표를 선정해놓고 있으며 유사시 항공육전대(공수부대)나 쾌속정으로 들어가서 타격하도록 되어있음. 중앙당 간부를 비롯,전 주민들은 군대에 ‘헌납미’를 바치는 등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중앙당에서 군에 대한 간부들의 지원실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활동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음. ○전쟁 도발 시기 과거 북한이 도발의 호기라고 보았던 시기는 ‘4·19’라고 생각하였으나 소련과 중국이 반대했으며 또한 전쟁복구 건설이 겨우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내려오지 못했으며 지금은 대선문제로 상당히 노리고 있을 것임. 한편 전쟁위기가 높았던 시기는 푸에블로호 사건(68.1)·EC­121 격추사건(69.4)·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8)때로서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킨채 “들어오면 하겠다”는 분위기여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였음.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정정이 더 혼란상태에 빠지는 때가 도발의 최적시기가 될 것이며 남한내 지하조직을 이용,혼란을 조성하는 한편 미국의 군사력이 여타 분쟁지역으로 쏠릴때 도발할 것으로 예상함. 김정일을 비롯한 지도부는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민심도 불안해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믿을 것은 무력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이외에는 출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 ○전쟁지휘 체계 및 군사전략 전쟁지휘체계는 종래 ‘김일성→인민무력부장→총정치국장→총참모장’체계로 되어 있었으나 김일성 사망이후에는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김정일→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바로 지시가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 등 김정일의 독단적 명령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음. 북한은 전쟁 발발시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별도의 전쟁지휘기구가 필요없음.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전략전’전략에 입각,십수만명의 특수부대원을 사전에 투입시켜 미사일 기지·비행장 등 주요시설을 타격하는데 이어 기동전을 통해 남한전역을 장악한다는것임. 특히 김일성 사후 미사일·방사포 등 화력을 통해 단시간내 서울을 비롯한 전략지대를 타격·파괴시킨후 협상을 추진한다는 전법을 세워두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2년전에 최고사령부 ‘작전조’와 함께 남침 시나리오를 작성하였으며,동 시나리오를 본 군 지휘관들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하였으나 김일성이 인민생활부터 먼저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한다면서 유보하였음. 전쟁이전 단계에서는 우선 남한을 미·일·중·러 등 큰 나라와 이간시켜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군철수를 유도하는 것임. 김일성,“미군만 철수하면 제주도를 떼어주어도 좋다”고 언급 미국이 개입할 경우에는 ‘인간어뢰’와 항공기에 의한 자살특공대 등으로 미항공모함을 몇척 까부셔 미국여론이 조선전쟁 참여를 반대토록 유도하며 또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하여 미국이 물러서도록 유도할 것임. 북한은 동맹조약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북침시에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줄 것으로 믿고있음. ○김정일의 군부장악정도 김정일은 최고사령관(91.2)과 국방위원장(93.4)에 취임,명실공히 군통수권을 장악한 이후 대규모 장성진급 및 3선 감시체계(지휘·정치·보위부) 등을 통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였음. 총참모장조차 김정일의 지시사항만 수행하고 있으며 사소한 반대의견이나 제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군을 장악하고 있고,조명록(총정치국장),김영춘(총참모장),원응희(보위사령관) 등이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음.조명록 총정치국장은 공군사령관을 하다가 김정일이 마음이 곱다고 해서 군 정치책임자로 발탁하였음.김영춘 총참모장은 정치적인 감각이 없으며 전략을 쓸만한 인물이 못됨.오극렬 작전부장은 무력부내에 기반을 갖고 있고 머리가 명석하며 김일성이 총참모장직에서 해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당작전부장으로 재기용했음. (2)군사력 증강 관련사항 ○무기개발·생산 및 기술도입 실태 북한의 잠수함 건조는 러시아가 해체한 잠수함에서 회수한 강판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부품은 외국에서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전자부품 및 장비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있음. 김정일은 중국의 무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무기 또는 무기개발기술을 도입하고 있지않으며 소련의 신형무기를 얘기해도 “그런 것은 다 낡은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설명서를 보지도 않음. 북한은 무기개발을 위해 필요한 외국기술자 초청은 인민무력부가 외교부를 통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음. ○군수부문 우대정책 지속 67년 제4기 15차 당 전원회의시 경제·국방 병진정책을 제시한 이후 군수부문 우대정책을 지속 실시하고 있음.동 희의에서 주변국가들의 정세를 분석한후 무력통일을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음. 김정일의 군수공장 우대 실태를 보면. 각 공장·기업소는 민수에는 일체공급하지 못하더라도 군수부문에는 계획대로 최우선 공급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군사재판에 회부토록 하였음.군수공장은 정무원과 별도로 당중앙위 군수공업부(비서 전병호)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모든 민수공장에도 군수생산 직장(부서)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대한 검열도 군대가 하고 있음.군수생산계획 집행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당중앙위 군사위원,정치국 상무위원,도당 책임비서,공장·기업소 당비서 및 지배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총화회의’를 개최하여 실적 부진자는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문책하고 있음. ○전쟁물자 비축 군수동원총국에서 전쟁물자 비축을 총괄하며 동 총국은 행정적으로 호위총국과 같은 독자적인 기구로서 정치위원이 중장으로 편제되어 있는 등 중요시되는 기관임. 전쟁물자의 수입은 2경제위원회가 외화벌이를 해서 조달하며 정무원 등 다른 부서에서는 관여하지 못함. (3)핵·생화학·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핵개발 문제 김일성은 64년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장수가 바지벗고 칼차는 격”이라고 말했던 점으로 보아 당시만 해도 핵무기를 가지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음. 84∼85년경 당시 주평양 소련대사가 황장엽에게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말들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서 NPT가입을 종용한데 대해.황장엽은 “그런게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대응한후 이를 김부자에게 보고하자 김부자로부터 “묵살하라”는 지시를 받은바 있음. 김영남 외교부장은 85·12 NPT에 가입하고 핵안전협정을 체결(92·4)했으나 군수담당 관계자들은 “NPT 가읍으로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면서 김영남을 비판한 바 있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비록 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IAEA 특별 사찰 문제가 제기되었을때 NPT를 탈퇴(93·3)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듬. ○미·북 핵합의 관련동향 미·북 핵협상시 모든 전략은 김정일이 강석주를 통해 직접 지시했으며 여타기관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음. 북한이 화력발전소 대신 경수로 지원을 요청한 것은 화력발전소는 완공후 유류 등 원료공급 능력이 없는 반면 경수로는 연료인 우라늄이 대량 매장되너 있기 때문이었을 것임. 경수로 건설 관련 남측인력의 대규모 방북시 신포인근을 철저히 통제,북한주민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할 것임. ○핵관련 북한내 동향 및 기타사항 91·12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한동기는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과시하고 남한 내부의 핵관련 정책분열을 조장키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음. 85·12 NPT 가입은 구 소련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85·12 구 소련과 440MW 경수로 4기 공급협력협정 체결).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한 것과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94·10)등은 모두 시간을 벌기위한 전략에서 추진되었고 그 결과 북한은 경수로 건설,매년 50만톤 중유 획득 등의 이득을 보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음. 일부 고위층 간부들은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 이후 핵사찰 문제로 인해 대북한 국제정세가 긴장하게 돌아가자 자승자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음. ○화생방무기·미사일 개발실태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화학무기 금지협약’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며 상층부에서는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시기하고 있음.북한은 남침시 미국의 개입을 방지하고자 화학무기가 장착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할 것임. 항간에는 포에 장착하여 발사하면 부근의 산소가 없어져 모든 것이 죽는다는 폭탄(기화폭탄 추정)이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있음. (4)대남 군사태도 ○대한국·주한미군 인식 북한권력 핵심층과 군 간부들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4위 수준이며,화학무기는 세계적 수준으로 약점이 없는 부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국군의 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미군만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고 믿고 있음. 남한의 함정·항공기 움직임을 적시에 식별·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남한 국방비가 북한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수도권에 대한 5∼6분 정도의 포공격으로도 잿가루가 된다고 믿고 있음.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땅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미국은 결코 후방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북한 특공대가 남한과 같이 미국에도 임의의 신간에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주민들에게선전하고 있음. 미국이 침공할 경우 인적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함정·항공기 등을 몸으로 직접 막게되면 미국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걸프전은 전쟁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과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함. 91년 걸프전 이듬해 김정일은 미국 무기의 약점을 분석하고 이를 격파하는 영화를 제작,군내 작전국등 지휘부 간부에게 시청케 함으로써 미군도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 교육을 실시하였음. 미순양함 1척을 자폭해서라도 폭파시키면 미국내에 반전여론이 만연되어 한국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만으로도 남한인민들을 전쟁공포로 떨게 만들수 있다고 믿고 있음. ○팀 스피리트훈련 인식 북한 당·정 간부들은 T/S훈련의 목적이 ①훈련을 진행하다 북한의 방어태세가 허술할 경우 북침하거나 ②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여 북한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 동 훈련기간중 전군의 군사장비들이 상시 기동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유류난 속에서도 막대한 유류소모가 불가피하고 군 병력의 경제건설 활동도 중잔됨으로써 북한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상당함. 특히 93·3 T/S 훈련을 핵사찰 문제로 인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최고조의 긴장태세를 유지하였는바 김정일은 집무실 지하에 설치된 작전상황실에서 집무를 하였고 중앙당은 각과별로 1명씩 당중앙위원회에서 비상근무를 하였으며 모든 차량을 징발하여 대기시키고 군대를 갱도에 투입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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