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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첫 출항 르포

    ◎금강산에 瑞雪… 민족화합 소망 싣고/수백개 오색풍선 띄워/한·사연 안은채 승선/제수용품 들고 가기도 18일 오후 5시44분쯤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 부둣가에 정박해 있던 현대금강호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부웅’하는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려나오자 수백개의 오색풍선이 날아오르고 수십발의 폭죽이 터지며 동해항의 하늘을 밝혔다. 부둣가에 나와 있던 3,000여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금강호의 불 켜진 창마다,갑판 층층마다에서 탑승자들은 손을 흔들며 환송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어 황혼의 어스름을 뚫고 2만8,000여t의 육중한 선체는 미끄러지듯 동해항을 빠져나갔다. 시민들은 금강호가 바다 저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금강호는 그렇게 떠나갔다. 배 안에는 승객만 탄 것이 아니었다. 금강호의 첫 출항으로 민족 화합의 다리가 놓이길 바라는 이산가족의 꿈과 온 국민의 소망이 실려 있었다. 관광객들에게는 이날 하루는 너무도 길었다. 부둣가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서성대는 노인들을 쉽게 볼수 있었다. 이들은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전날밤 금강산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서설(瑞雪)이 아니겠느냐”며 좋아했다. 설레임이 가득한 눈들. 하지만 모두들 나름대로의 한(恨)과 사연을 담고 있었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金昇龍할아버지(70)는 “금강산에 올라 고향을 향해 절을 하겠다. 그리고 못난 불효자를 용서해달라고 부모님께 사죄하겠다”며 눈물을 떨궜다. 이어 “5남매의 장남으로 홀로 월남한 뒤 50년을 하루같이 남몰래 눈물을 흘려왔다”면서 “이 한을 품고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토록 고향을 그리다 숨진 남편과 함께 갈 수 있었더라면…”. 평북 희천에서 남편과 함께 월남한 金華洽할머니(71)는 “외아들과 함께 고향땅을 밟게 돼 기쁘다”면서도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權萬希씨(70)는 과일과 술을 마련하고 제수용품을 준비했다. 지방도 정성스레 써놓았다. 생가가 강원도 고성군 해금강리에 있어 고향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부인 魚善龍씨(65)는“남편이 관광 신청을 한 뒤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 같았다”고 전했다. 금강호가 떠난 뒤에도 삼삼오오 터미널안 TV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방송사 헬기가 보내오는 금강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공식 첫 출항 전날 이모저모

    ◎“월남 50년만에 북한땅 간다” 흥분/100발의 폭죽속 전야제 성황/갑작스런 한파에 포기자 생겨 금강산 관광선 첫 공식 출항을 하루 앞둔 17일 현대금강호 승무원들은 출항 준비에 여념이 없었으며 관광객들은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었다. ●현대금강호 승무원들은 16일 저녁 외출과 휴식 등으로 시험운항의 피로를 씻은 뒤 17일 오전부터 배에서 먹고 쓸 음식 및 물품을 싣고 객실을 정리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梁在元 선장(40)은 “첫 출항을 위한 준비는 시험운항을 통해 이미 완벽하게 끝났다”면서 “고객을 편안하게 모시기 위한 객실 서비스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관광객들은 분단 반세기 만에 열린 뱃길을 통해 금강산에 가는 역사적 순간의 주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高在鳴씨(67·강원도 춘천시 근화동)는 “월남한 지 50년 만에 다시 북한땅을 밟는다는 생각을 하면 그동안 기다렸던 세월이 아깝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관광객 중에는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 때문에 막판에 금강산관광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고있다. 고향인 평북 선천에 부모와 아들을 남기고 온 金동선씨(76·경기도 평택시)는 “혹시 가족의 안부를 들을 수 있을까 금강산행을 손꼽아 기다려 왔지만 다리가 불편한 데다 날씨마저 추워 내년 봄에 가기로 했다”며 아쉬워했다. 황해도 개성이 고향인 延정숙씨(80·여)도 추운 날씨에 방한복을 입고 산을 오를 자신이 없어 다음으로 연기했다. ●금강산관광이 지역경제 회생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동해시는 관광선 출항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들뜬 분위기였다. 관광선 취항이 결정된 직후부터 금강산사업지원단을 구성,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동해시 洪璟杓 부시장(59)은 “동해시가 세계적 관광도시로 주목받게 됐다”면서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홍보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현대측은 출항 하루 전인 17일 동해항 여객터미널 옆에 대형 무대를 설치,전야제 행사를 가졌다. 전야제에는 가수 조용필 김건모 윤복희 태사자 NRG 현철 설운도,성악가 최현수 김원정,재즈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어린 나이에 흥부가를 완창(完唱)해국악계를 놀라게 했던 국악신동 유태평양군 등이 출연했다. 100발의 폭죽이 터져 분위기를 고조시킨 데 이어 금강호가 불을 밝히는 것으로 행사는 끝났다. ◎통화 어떤 경로/평양­인텔샛­도쿄 거쳐 서울로 “아범아,여기는 금강산이란다” 금강산 관광객은 18일부터 금강호에서 국제전화를 통해 어렵게나마 국내 가족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 현대그룹은 북한측과의 실무협상을 통해 선실 내에 국제전화용 전용회선 4개를 확보,공중전화를 설치한다.배에 인공위성을 통해 무선 통화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이 있지만 북한측의 불허로 무용지물 상태다. 통화는 일반 국제전화(082)와 비슷한 경로를 거쳐 이뤄진다. 이미 가설된 평양과 금강산 온정리 사이의 전화케이블을 이용한다.평양에서는 위성 인텔샛을 통해 일본 동경으로 연결된다. 여기에다 현대 기술진은 북한측의 협조를 얻어 온정리에서 장전항까지 7㎞에 걸쳐 케이블을 연결했다.그러나 부두에 정박한 금강호에까지 케이블을 연결할 수 없는 실정.따라서 장전항 인근에 특별히 전파를 쏠 송신장치(SR장비)를 설치했다. 현대는 당초 6회선을 확보했으나 두 회선은 현대 공사진과 합영사의 전용회선이어서 금강호가 사용할 수 있는 회선은 4개에 그친다.금강호에는 이를 이용한 카드식 공중전화 4대가 설치된다. 목소리가 금강호에서 장전항∼온정리∼평양∼위성∼일본 동경을 거쳐 즉시 서울(또는 지방)로 생생히 전달된다. 보도진의 기사전송과 육성 생방송도 마찬가지다. 전화요금은 비싼 편이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걸때는 1분 통화에 무려 3.79달러로 이를 환산하면 4,927원이나 된다. 반대로 한국에서 북한으로 걸때는 1분에 1,428원이 든다. ◎관광 성사까지/본지 첫 보도… 3차례 위기 끝에 결실 금강산 관광의 꽃을 피우기 위해 현대그룹 鄭夢憲 회장은 9개월간 산고의 아픔을 겪었는지 모른다.鄭周永 명예회장에게는 지난 89년 이후 9년여만에 성사시킨 필생의 사업이다. 금강산 관광은 대한매일이 지난 5월 중순 보도한 ‘올 가을 금강산 유람선 뜬다’는 제하의 상자기사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지난 89년 1월 鄭 명예회장이 처음 북한을 방문할 당시 움을 틔운 금강산관광은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경색으로 인해 잊혀져 왔다.그러던 참에 鄭회장이 올 2월14일 극비리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북한측 아태평화위 고위관계자를 만나고서부터 금강산관광의 줄기가 잡혔다.북한이 지난해 연말 은근히 현대측에 사업의 재개를 타진해 온 터였다.3월에는 북한과의 화물열차 공동생산이 이뤄졌고,4월에는 金潤圭 현대건설 부사장의 북한 방문이 이뤄졌다.마침내 鄭 명예회장의 북한 방문이 6월16일 이뤄졌다.그것도 금세기 마지막 장관이 된 소떼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첫 시련이 찾아왔다.鄭 명예회장 귀환 하루 전날인 6월22일 동해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견됐다.한달 가까이 현대와 북한의 고위급 접촉 루트가 끊기면서 간간이 베이징에서 실무접촉만이 이어졌다.현대 고위인사는 이 기간을 “아무 것도 못하고 허송세월한 셈”이라고 술회했다. 두번째 위기는 9월25일 첫 출항을 지키지 못한 데서 찾아왔다.요란하게내 걸었던 약속이 결국 ‘잠수정 정국’에 밀려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31일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건이 터졌다.일부 정치권 등 보수층에서 “북한에 준 돈이 미사일되어 돌아온다”며 강력히 반발하며 반대운동에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0일 북한 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鄭 명예회장과 鄭회장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 내렸다. ◎보장각서 어떻게/신변안전 걱정 안해도 된다/북서 “보장” 담화 발표/세칙 재협상 장애 안돼 금강산유람선 첫 출항을 하루 앞둔 17일 정부 당국은 적이 안도하는 분위기였다.금강산 관광선 1호인 ‘현대금강호’가 2박3일간의 금강산 관광 시험운항을 무사히 끝냈기 때문이다. 정부로선 그동안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현대­북한간 신변안전 보장 협의 결과가 미흡하다고 본 것이다.북한 백학림 사회안전상의 ‘신변안전보장각서’ 만으로는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가졌던 셈이다. 그러나 시험운항 ‘성공’ 이후 일단 유람선관광사업의 전도에 파란불이 켜진 것으로 보고 있다.북측 인사들의 ‘자세’에서 관광사업에 적극적인 의지가 읽혀졌다는 것이다.북한측 사업주체인 아태평화위측도 14일 “우리 관계기관들은 금강산을 참관하는 남조선 동포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신변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요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다만 몇가지 작은 불씨는 남아 있다.북측이 제시한 금강산 관광세칙도 그하나다.현대와 북한은 지난주초부터 관광객에 대한 벌금부과,촬영금지 등 관광세칙에 관한 재협상을 해왔다. 그러나 재협상 결과가 결정적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통일부 黃河守 교류협력국장은 “첫 출항일까지 세칙을 합의하지 못한다면 적용할 세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양측이 세칙에 합의할 때까지 관광객들은 북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세칙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북측의 관광객 ‘선별’ 소지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그러나 정부측은 북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측의 지난 8월 ‘보장서’를 근거로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보장서는 “관광객의 직장·직위를 문제 삼아 관광과 관련,입·출북을 허용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동해시청 沈圭彦씨/“대민행정 지원 아끼지 않을 것”/터미널 도우미 배치/관광객 불편 최소화 “실향민과 남북관계는 물론 동해안지역 경제를 위해 금강산 관광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동해시청 금강산관광지원사업소 沈圭彦 소장(43)은 지난 16일 2박3일간의 금강산관광선 시험운항에서 돌아온 뒤 18일의 첫 출항에 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해시는 동해항이 금강산관광선 출항지로 선정된 지 4일만인 지난 8월1일 지원사업단을 구성했다.금강산 관광에 관련된 대민·행정 지원 등을 총괄하기 위해서다. 동해시는 지금까지 건축허가에서부터 선상에서의 영업허가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허가신청을 낸 당일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할 정도였다. 沈소장이 시험운항에 참가한 것도 관광객의 불편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생각에서다.沈소장은 출국 절차에 불편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여행 터미널에 도우미 2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숙박시설도 대대적으로 정비키로 했다.배가 밤에 떠나 아침에 도착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동해시에서 묵지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빡빡한 일정에 쉽게 피로를 느끼는 노인들이 출항 하루 전에 동해시를 찾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직접 다녀와보니 출항 당일 동해에 도착해 교육을 받고 오랜 시간 배를 탄 뒤 다음날 새벽 산행을 한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강호 등에서 선식(船食)으로 사용되는 동해안 해산물의 납품 과정도 살폈다.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지역 특산품 개발도 구상중이다.금강산관광객을 동해안 관광지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중이다. 沈소장은 “금강산 관광이 성공하는 지름길은 관광객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라면서 “조금도 불편이 없는 여행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모색/丁世鉉 통일부 차관 밝혀

    ◎북 백두산·칠보산도 관광개방 가능성 丁世鉉 통일부 차관은 13일 “정부는 금강산관광을 추진해 나가면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 설치 가능성을 꾸준히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丁차관은 이날 오전 서울 타워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 ‘정경분리정책과 금강산관광사업 평가 및 대책’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금강산관광으로 남북간 접촉이 자연스레 이뤄지면 판문점보다 금강산 지역에 이산가족면회소가 먼저 설치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나 “금강산관광을 계기로 금강산에 이산가족면회소를 설치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북측 반대로 아직은 현실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丁차관은 이어 “현대가 추진중인 금강산관광사업으로 북한이 성과를 얻으면 백두산이나 칠보산도 관광지로 개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崔壽永 민족통일연구원 북한경제사회연구실장은 ‘정경분리정책과 남북경협활성화방안’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북한에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지속적으로 촉구하되 경협의 확대·발전을 위해 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를 대신한 남북경협대표부 설치를 제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통일외교통상위/금강산 사업 문제점 추궁(國監 하이라이트)

    ◎金正日에 150돈 金鶴 선물/‘現代 신판 조공행렬’ 공박 6일 통일외교통상위의 통일부 국정감사장은 금강산관광·개발 문제를 둘러싼 설전으로 시종 열기를 내뿜었다. 현대건설 鄭夢憲 회장,金潤圭 사장이 증인·참고인으로 나서면서 전운이 감돌았다. 금강산사업과 관련,현대의 절차상 위법문제,관광비용 과다와 북한 군비 전용 가능성,신변안전 협상에 대한 통일부의 감독 소홀이 주타깃이었다. 李世基 의원(한나라당)은 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이 재방북시 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 준 선물목록을 추궁,鄭회장으로부터 “金에게 150돈짜리 금학(金鶴)을,金容淳에게 50돈짜리 금열쇠를 줬다”는 답변을 들었다. 李의원은 이를 ‘신판 조공행렬’이란 자극적 용어로 공박했다. 그러자 ‘현대가(家)’ 鄭夢準 의원(무소속)이 “반말 하지 맙시다”라며 맞받았다. 李榮一(국민회의)·金守漢 의원(한나라당)은 북한이 현대에 내민 ‘금강산 관광시행세칙’을 문제삼았다. 李의원은 “관광객이 금강산에서 방귀만 뀌어도 환경범죄에 걸릴 수 있게 됐다”고 공격했다. 이에 鄭회장은 “18일 유람선 첫 출항 전까지 금강산관광시행세칙을 재협상할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李信範 의원(한나라당)은 “金正日에 대해 ‘장군’ 호칭을 붙여 안보의식을 흐리게 했다”며 대북 포용정책의 상징인 금강산사업 추진과정을 비판,鄭회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 金德龍 의원(한나라당)도 “햇볕론이 신축성없는 고정 불변의 목표가 돼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이 아니라 국민의 안보의식만 벗기고 있다”며 “‘제3의 길’인 강온병행전술을 구사하라”고 가세했다. 그러나 康仁德 장관은 “안보와 교류협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실사구시적 정책”이라며 대북 포용정책을 옹호했다.
  • 鄭周永 회장 金正日 위원장 면담록/“장군­명예회장선생” 호칭

    ◎사업지원 요청에 즉석 확답/“거동 불편하셔 직접 왔다”/金正日,연장자에 ‘깍듯이’ 98년 10월 30일 밤 9시55분.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행이 머물고 있는 ‘백화원 초대소’가 갑자기 술렁거렸다.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방문한다는 전갈이 왔다. 밤 10시15분쯤 鄭명예회장 鄭夢憲 회장 金永柱 회장 鄭熙永 여사 金潤圭 사장 李益治 사장 禹時彦 이사 등 일행은 초대소 입구로 향했다. 金容淳 조선 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을 대동하고 기다리고 있던 金위원장은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일행과 악수를 나눴다. 金위원장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에 명예회장 선생께서 연로하시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직접왔다”고 말했다. 金위원장은 중앙 소파에 앉고 鄭명예회장은 오른쪽에,鄭夢憲회장은 왼쪽에 앉았다. 金위원장은 鄭명예회장을 ‘명예회장 선생’으로,鄭명예회장은 金위원장을 ‘장군’으로 호칭했다. 金위원장은 “5대 창업자 중 유일하게 살아계신 명예회장 선생을 만나게 돼 영광입니다. 명예회장 선생이 황소같은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민족이 모두 잘되도록 해나갑시다”고 말했다. 金위원장은 鄭명예회장에게 한국 최고 기업인에 대한 존경과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표시했으며,목소리는 놀랄 만큼 우렁차고 컸다. 金국방위원장은 金아태위원장에게 “금강산 관광이 기대보다 늦어집니다”라며 鄭명예회장을 의식하듯 말했다. 이에 金아태위원장은 “예정보다 늦었지만 곧 실현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金위원장은 “금강산관광사업은 현대가 모든 것을 맡아 적극적으로 해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鄭명예회장은 금강산관광개발사업에 관한한 북측과의 조율 차원의 일은 모두 끝났다고 확신했다. 앞으로 남은 일은 사업 시행뿐이라고 생각한 鄭명예회장은 “금강산에 호텔을 짓겠습니다. 또 온정리에는 온천을 개발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화제는 유전개발로 옮겨갔다. 鄭명예회장이 “석유가 많이 묻혀 있다는데 남한까지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金위원장은 “공화국에서 석유가 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다른 데와 할 필요없이 현대하고 하면 되지요. 그렇게 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鄭夢憲 회장이 나섰다. “장군님,관광사업뿐 아니라 서해안에 공단사업도 하려고 합니다. 경제특구가 좋을 것 같은데 도와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鄭회장은 “남북 경제교류에 도움이 되고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며 8대 경협사업을 간단히 설명했다. 金국방위원장은 “잘되도록 하십시오”라고 金아태위원장에게 당부했다. 면담이 끝난 뒤 양측은 초대소 입구에 걸려 있는 대형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金국방위원장은 “나이가 많으신 분이 중간에 서셔야 합니다”라며 鄭명예회장을 중간에 세우고 자신은 鄭명예회장의 오른쪽에,鄭夢憲 회장은 왼쪽에 세웠다. 金위원장의 제안에 鄭명예회장은 당황하는 듯했으나 뿌듯함을 느꼈다. 밤 11시10분쯤. 金위원장은 “언제 또 오실겁니까. 길을 터놨으니 자주 오십시오“라고 말했다. 鄭명예회장은 “석유를 주시면 언제든지 오겠습니다.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라는 말로 이별사를 대신했다.
  • 단풍/찬란한 가을의 속삭임

    ◎전국 주요산 화려한 색동옷 이달중순 절정/소요산­수도권 인접 당일 나들이코스로 적격/무릉계곡­호암소서 용추폭포 4㎞ 절경 손짓/월악산­‘제2금강’ 망폭대·와룡대·팔랑소 유명/가야산­단풍비친 자수정같은 계곡 일품/지리산­붉은산… 빠알간 물… ‘홍조띤 그대얼굴’ 붉고 노랗게 물든 가을 단풍이 등산객을 유혹하는 계절이 다가왔다.설악산 오대산 치악산 등을 비롯한 전국 주요 산마다 다음주 이후부터 화려하게 색동옷을 차려입고 등산객을 손짓할 전망이다.온 산이 붉게 타오르는 절정을 보려면 이달 중순이 지나야 하지만 강원도 산간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산정에는 이미 단풍이 곱게 물들어 내려오고 있다.설악산 외설악 비선대와 천불동 계곡,내설악 백담사와 내장산의 일주문 코스 등이 단연 첫 손에 꼽히지만 동두천 소요산 등도 단풍색으로는 뒤지지 않는다. △소요산=동두천에서 동북쪽으로 5㎞쯤 떨어져 있다.수도권에서 가까와 당일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주차장과 산책로 등이 잘 갖춰져 있어 가족단위 단풍놀이에 안성마춤이다.자재암∼일주문∼중·상 백운대∼나한대∼의상대로 이어지는 등산코스를 걷는데 대략 2시간30분정도 걸린다.일주문 이후부터 비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무릉계곡=강원도 동해 두타산과 청옥산의 단풍을 즐길 수 있다.호암소로부터 4㎞ 상류인 용추폭포까지의 계곡을 말한다.무릉반석에서 삼화사,학소대,옥류동,선녀탕을 거쳐 쌍폭,용추폭포까지 전 지역의 경관이 빼어나다. △월악산 송계계곡=국립공원 월악산에 있는 계곡이다.이달 중순쯤 단풍이 절정에 이른다.용이 승천했다는 와룡대를 비롯해 신라시대 8공주가 목욕재계하고 국운융성을 빌었다는 팔랑소,금강산에 못지 않다고 해서 제2금강이라는 망폭대와 월광폭포,자연대가 유명하다. △가야산 홍류동계곡=경남 합천과 거창군을 둘러싼 국립공원으로 해인사입구의 계곡이다.붉게 타오르는 가을단풍이 맑게 비치기 때문에 홍류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주위에 우거진 노송과 단풍이 절묘하게 어울린다.신라말 학자 최치원의 시가 새겨진 치원대와 그가 바둑을 두었다는 농산정이 있다. △지리산 피아골=전남구례,경남 함양·산청군 등에 두루 걸쳐 있는 국립공원.워낙 크고 방대해 10여차례 이상 찾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을 정도다.17일쯤이 절정.피아골 단풍은 지리산 10경중 하나로 3홍(紅)이 유명하다.온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山紅)이고 맑은 물이 단풍에 붉게 비쳐 수홍(水紅)이며 사람들마저 단풍에 물든다 해서 인홍(人紅)이다.연곡사에서 2㎞쯤 오르는 계곡이다. 그밖에 서울 도봉산유원지 코스도 쉽게 단풍을 즐길 수 있으며 경기도 가평군 운악산 현등사 계곡,충북 단양군 소백산 남천계곡,충남 논산 대둔산 수락계곡 등도 단풍으로 이름이 높다. ◎가을산행 주의할점/비옷·여벌옷 준비하고 단풍산행을 즐기려면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날씨가 변덕스럽고 해가 일찍 지기 때문이다.전문산악인들이 권하는 몇가지 산행요령을 소개한다. 당일치기 산행은 소요시간이 5∼6시간을 넘지않도록 코스를 잡고 오후 5시 이전에 끝낼 수 있도록 아침 일찍 출발하는게 좋다.1박2일의 산행일 때는 추워지기 전인 오후 4시 이전에는 야영준비를 마쳐야 한다.또 헤드랜턴이나 플래시를 갖춰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갑작스런 비 등으로 옷이 젖지 않도록 방수비옷과 여벌 옷,양말을 준비하고 배낭 방수커버를 갖고 가야 한다.가을은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한낮에는 덥지만 해만 기울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얇은 털모자와 장갑을 준비하면 긴요하게 쓸 수 있다.
  • 금강산도 食後景? 保後景?/장원 녹색연합 사무총장(굄돌)

    민족의 영산,민족의 성산,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계획대로라면 올 연말까지 적어도 5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금강산을 밟아 보게 될 것이다. 이산가족의 아픔과,금강산 구경이 평생 소원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그럼에도 걱정스러운 것은 그 정도의 숫자로도 수억년에 걸쳐 빚어졌을 금강산 절경을 순식간에 파괴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하면 금강산개발 건은 남북한이 함께 환경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고,통일의 물꼬도 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한반도 전체를 평화적이고 경제적인 생태공동체로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강산을 어떻게 개발하는 것이 좋을까.무엇보다 금강산 개발에 범민족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각계각층의 다양한 의사개진과 참여가 필요하다.민족의 영산인 금강산이 기업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식 개발의 삽날 앞에 파헤쳐져서도 안되며,새정부의 소위 ‘햇볕론’에 의해 정치적으로 변색되어서도 안된다.또한 보전지역과 개발지역으로 엄격히구분하여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종(種)다양성 보전지를 보호하고,필요하다면 관광객들을 위한 각종 오락이나 편의시설을 금강산이 아닌 인접도시에 두는 등의 배려를 할 수도 있다. 금강산의 생태와 문화,전설에 관한 사전조사도 필수적이다.현재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그 보호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다.관광객의 안전은 물론이고 금강산의 전설 하나,돌 하나,풀 한 포기도 모두 안전해야 한다.이를 위해서 금강산의 친환경적 개발을 위한 위원회와 생태조사단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금강산에 갈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그러나 금강산은 이제 식후경(食後景)이 아니라,환경부터 살리는 보후경(保後景)이어야 한다.
  • 금강산관광 반대?/임수경 통일운동가(굄돌)

    벌써 9년 전의 오랜 기억이지만 금강산의 수려한 절경은 잊을 수가 없다.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만물상,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있는 팔담,바다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해금강.금강산은 어느 하나도 놓치기 아까운 자연의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안내원은 직업상 매일 금강산에 오르지만 그때마다 모습이 다르다며 다양한 비경을 소개했다.그래서 금강산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나 보다. 한해에 50만명의 남쪽 사람들이 금강산에 오른다는 것은 이러한 비경만을 감상하는 단순한 관광 차원이 아닐 것이다.아무리 북한과의 교류,왕래가 다양해졌다 해도 방북 신청서는 아무에게나 허가되지 않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하루 1,000명 이상이 북한 땅을 밟고,북한 사람들과 얼굴을 대하는 일은 분단 50년사에 실로 획기적인 사건이다.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여러가지 사건,사고를 남북한이 서로 해결해 나가면서 대화의 장이 펼쳐진다면 바로 그것이 통일의 길을 열어가는첫걸음이 될 것이다. 물론 금강산 관광에는 부작용도 따른다.최근 북한의 여러가지 대남 위협요소,많은 비용과 경제난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심지어 ‘금강산관광 중단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모임’까지 만들어 시내 한복판에서 결의대회를 갖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반대 이유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겠지만 역으로,그렇게 우려되는 사안들을 북한에 직접 제기하고 함께 논의하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지금처럼 남북 대화가 단절돼 대결과 갈등으로 지속되는 시점에서는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이것이 입법기관의 구성원이며 유권자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나서서,극우적 논리로 장외집회까지 가지며 반대할 일인지는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 남북한 名山 함께 가꾼다

    ◎공원간 결연… 시설투자·인터넷 공동 홍보/엄대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이달 방북 추진 이르면 이달중 국립공원관리공단 嚴大羽 이사장(51) 일행 6명이 남북한간 국립공원 교류협력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 嚴이사장은 10일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평양에서 북한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강순 참사관과 산림과학원(우리나라 산림청에 해당) 당국자들을 만나 남북한 명산의 자연자원을 보호하고 이를 전세계에 홍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논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공단측은 이번 방북을 통해 북측에 공원 경영기법과 편의시설센터 운용기술 등을 이전해 주는 한편 시설투자도 계획하고 있다.또 남북한 명산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북측과 인터넷 공동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측은 이와 함께 남북한 명산의 생태보전을 위한 모니터링 교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嚴이사장 일행은 최근 북한으로부터 초청장을 받고 통일부에 방북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통일부로부터 嚴이사장 일행의 방북신청에 대한 의견개진 요청을 받았다”면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제출한 대북사업계획서의 내용과 사업비 조달방안 등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嚴이사장은 이들과의 회동에서 ▲금강산에 이동화장실 100개 지원 ▲지리산­백두산 등 남북한 국립공원간 자매결연 ▲남북한 국립공원 공동 사진첩 제작 ▲금강산 솔잎혹파리 방제를 위한 농약과 기술 제공 등에 관해 집중 논의했다.
  • 금강산 비디오 촬영 못한다/관광객 수칙

    ◎북 허용장소서 카메라 단체촬영만 가능/정치적 발언 금물… 흙·돌·나무 못가져와 금강산에서 캠코더를 이용한 촬영은 허용되지 않는다.대신 카메라로 북한측이 개방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 금강산 일대의 흙과 돌,나무 등을 가져올 수도 없다. 9일 현대그룹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현대측에 금강산 관광객이 지켜야 할 관광수칙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만물상,구룡폭포,삼일포,해금강 등 북한이 개방하는 관광코스에서 단체로 카메라 촬영이 가능하다.그러나 관광행렬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촬영할 수는 없다.또한 버스로 이동시에도 촬영행위가 금지된다.캠코더는 유람선 선상에서만 소지가 허용되고 촬영도 가능하다. 금강산 여행시 도시락 등 음식을 휴대할 수도 없다.음료나 과자류는 괜찮으며 옷가지를 가져가도 된다. 특히 관광객들은 북한체제를 찬양하거나 비판하는 등의 정치적 발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 관광길에 필요한 필름,담배 등의 용품은 유람선의 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실향민들 ‘금강산契’ 열기

    ◎군민회 중심 조직… 1∼2년뒤 고향방문 실현/여행 대출·보험 등장… 금강산 관련 책 불티/하루 1백통 문의… “1차에 보내달라” 호소 꿈의 금강산 관광이 현실로 다가온 가운데 실향민들 사이에서 ‘금강산계(契)’ 바람이 불고 있다. 오는 25일 1,400여명의 관광객을 실은 금강산 관광선의 첫 출항을 앞두고 실향민들은 “죽기 전에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향민들은 군민회를 중심으로 관광계를 조직하고 적금을 붓는 등 꿈에 부풀어 있다. 평남 순천군민회는 읍·면 단위로 계를 만들어 1∼2년 뒤 군민회 소속 실향민들이 단체로 금강산에 간다는 목표 아래 다달이 5만∼10만원을 거두기로 했다. 순천군 선소면 실향민들은 외국여행을 위해 조직했던 계모임을 금강산 관광계로 바꾸었다. 강원도 통천군민회 영동지회 회원들도 마을금고를 이용, 관광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순천읍장 劉亨穆씨(65)는 “실향민들이 고향 방문의 꿈에 부풀어 계조직이나 적금 가입에 적극적”이라면서 “그러나 130여만원의 비용은 더인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북 길주가 고향인 馬郁씨(72)는 “북한 방문을 기다리며 평생 동안 적금을 들었다”면서 “소학교 동창들과 함께 금강산에 간다는 게 현실로 이루어져 마음이 설렌다”고 기뻐했다. 금강산 관련 상품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금강산 가이드’‘금강산 연구’‘금강산 이야기’‘금강산의 사계’ 등 10여종의 화보와 관련 서적을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코오롱스포츠는 금강산 외금강 봉우리 이름을 딴 등산 재킷 ‘집선봉’을 내놓았으며 성호실업은 ‘비로봉’이란 이름의 등산화를 팔고 있다. 또 등산용품 제조업체인 에델바이스는 금강산 관광기념으로 등산화와 재킷,모자 등을 30∼70% 특별 할인판매하고 있고 금강산 등산용 지도가 새겨진 대형 등산용 스카프도 판매키로 했다. 현대화재해상보험은 금강산 관광 비용을 당장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100만∼300만원을 대출해 주는 ‘금강산 효도관광 대출’상품과 ‘금강산 여행 보험’을 시판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을 모집하는 ‘현대 드림투어’에 걸려온 문의전화는 지난 6월 이후 하루 100여통씩 모두 1만통이 넘었다. 드림투어 관계자는 “1차 관광단에 고향이 북한인 연로한 부모님을 꼭 포함시켜 달라는 등의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측은 전국 66개 대리점 계약이 끝나는 이번 주말부터 접수를 시작,우선 60세 이상의 실향민을 대상으로 컴퓨터 추첨을 통해 관광단을 선정할 방침이다.
  • 민간차원 南北 교류 봇물/北韓방문 7월까지 670명…작년의 2배

    민간차원의 남북 교류 움직임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우리측 인사의 방북은 지난 6개월 동안 분단 이후 어느 때보다 활성화됐다. 새정부 출범 이후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방북자 수는 7월말 기준 670여명을 웃돌아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지난 6월말 현재 124건 843명이었던 민간인 방북 신청은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방북자의 직업도 다양해졌다. 기업인,종교인,언론인은 물론 작가,시민운동 관계자와 예술인 등에 이르기까지 방북 희망자들의 층도 두터워지는 추세다. 이는 총론에서 볼 때 일견 바람직한 현상이다. 어차피 새정부는 남북교류 활성화로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유도하는 전략 목표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경협과 인적 교류의 확대가 단기적으로 남북간 긴장을 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 여건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셈이다. 그러나 방북 경쟁이 과열상을 보이면서 상당한 부작용도 노출되고 있다. 특히 북한측이 이 과정을 악용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북한이 방북 당사자들에게 뒷돈을 요구하고 있는 일이 대표적이다. 남북 화해와 신뢰회복 차원에서 가능한 민간 교류를 늘리려는 우리의 선의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모방송사의 경우 올들어 방북 기획취재 추진 과정에서 북한측 ‘중개인’으로부터 30만 달러를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방북 기사의 뉴스가치가 떨어지면서 과거 200만달러 수준보다 적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올들어 남한 언론사의 방북 취재는 건수로 5건,연인원으로 3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북측이 건별로 뒷돈을 요구했다는 뒷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주민간 접촉면이 확대되면 장기적으로는 북한 사회의 긍적적 변화가 촉진될 것이라는게 대체적 시각이다. 한 당국자는 “북한당국이 금강산 주변에 ‘울타리’를 친다고 해도 관광객들이 금강산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알게 모르게 외부사조가 흘러 들어가게 마련”이라고 귀띔했다.
  • 금강산 관광 어떻게 하나…/66개 지정여행사 통해 신청

    ◎실향민 우선… 원적증명 내야/여권 불필요… 공중전화 이용 가능 금강산을 관광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일까. 관광객이 유념해야 할 사항을 알아본다. ■관광 신청은=코오롱관광 등 66개 여행사에 신청하면 된다. 소정양식 1부와 정부에 낼 북한관광신청서 1부를 쓰면 된다. 비용은 130만원 정도. 여권이나 북한 방문비자는 필요없다. 비자발급 절차는 현대가 북한측에 통보한 명단을 북한측이 확인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가족과 여행할 경우 성인은 각각 신청서를 쓰고 어린이는 보호자의 신청서에 동반가족으로 표시하면 된다. 정원 초과시 실향민이 우대되며 이북5도청 발급 원적증명서를 내야 한다. ■출입국 절차=관광 신청자와 여행객이 동일인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출입심사’만 실시된다. 세관이 휴대품에 대해 통관검사를 하나 반출입 물품에 대해 과세하지는 않는다. 총기류 등 반출입 금지품목을 휴대해서는 안된다. ■준비품은=4일 밤을 선상에서 보내고 3일 낮동안 산행 및 관광을 하기 때문에 안전관리가 중요하다. 멀미약 등 비상약과 옷가지,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돌산인 만물상 등에 오르기 위해서는 운동화가 필요하다. 필름 등 관광에 필요한 물품은 관광선의 쇼핑센터에서 구입할 수 있으나 기본적인 소요품은 준비하는 게 좋다. ■관광지에서의 유의사항은=북한 체제,金日成,金正日,주체사상 등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물이다. 당국과 현대그룹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소양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사진 촬영은=일반적인 관광과 같은 수준의 사진촬영이 허용되며 간단한 망원경도 사용할 수 있다. 전문적인 사진촬영이나 군사보호지역에 대한 촬영 및 관찰은 금지된다. 일반 카메라 및 캠코더 소지는 가능하다. ■전화 사용은=남쪽 가족들과의 통화는 관광선내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이용해 첫 출항때부터 가능하다. 이후 3∼4개월이면 관광지 내에도 공중전화가 설치된다. 편지 왕래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관광지에서 북측 친지에게 편지를 띄우는 것도 당장은 불가능하다. ■환전 등=금강산에서는 달러를 사용해야 한다. 1인당 달러 소지 한도는 1만달러. 관광선 내 수영장 노래방 식당 게임룸 쇼핑장 등의 시설 이용은 원화로도 가능하다. 관광선내에 면세점도 설치된다. 팁 수수는 북한에선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다. 정리표시로 담배 등 간단한 선물을 전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금강산 관광 年 50만”/현대상선 사업설명회

    ◎유람선 8척 투입… 이번주 말부터 모집 금강산 관광에는 앞으로 모두 8대의 관광선이 연중무휴로 투입돼 연간 50만명이 관광할 수 있게 된다. 1차 관광객 모집은 연장자를 우선으로 이번 주말부터 시작된다. 유람선은 다음달 25일 첫 출항하며,두번째 관광선은 같은달 29일에,10월5일 이후에는 이틀에 한번씩 금강산 관광이 실시된다. 현대상선 尹英宇 부사장은 25일 열린 ‘금강산 관광사업 설명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尹부사장은 “현재 확보된 2척의 관광선과 도입예정인 2척 외에도 모두 8척까지 관광선을 늘릴 계획”이라며 “이렇게 되면 연간 총 50만명 가량이 금강산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객 모집은 “이번 주말이나 다음주중 모객광고를 낼 예정”이라며 “경로우대 원칙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尹부사장은 또 “크루즈 관광선의 객실은 11개 등급으로 나뉘며 식사도 뷔페 등 다양하게 제공된다”며 “요금 역시 객실등급에 따라 다양하게 매겨지며 내주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첫 출항부터 비자없이금강산 관광이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출발항을 장차 동해항에서 속초항으로 옮기는 문제와 관련,“관광객에게 편리하고 더 준비가 잘된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간접적으로 이전방침을 시인했다.
  • 부산∼금강산 열차 타고…/동해선 신설 추진/2012년 개통 목표

    바닷길을 통한 금강산관광이 눈앞에 다가온 가운데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육로로 금강산까지 연결되는 동해선철도가 부설된다. 또 서울 등 수도권에서 설악산과 금강산에 쉽게 갈 수 있도록 서울∼강릉간 복선철도도 새로 놓는다. 철도청은 3일 동해안을 따라 포항과 속초를 잇는 동해선을 신설키로 하고 타당성조사를 이미 마쳤으며 기본설계비를 내년도 예산에 반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타당성 조사에서 현재 철도가 없는 포항∼삼척간 172㎞와 강릉∼속초간 56.7㎞는 단선으로 신설하고 이미 철도가 놓여있는 삼척∼강릉간 57.5㎞는 복선화하는 것이 경제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총사업비는 2조6,512억원으로 추산됐고 오는 2012년까지 전 노선 개통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따라 6·25이후 끊겨있는 원산∼속초간 외금강선이 북한과 합의로 복원되면 부산과 포항을 잇는 기존 동해남부선,신설되는 동해선,외금강선을 이용한 금강산 여행길이 활짝 열릴 전망이다. 철도청은 또 횡성,평창,오대산을 경유하는 원주∼강릉간(120㎞) 복선전철 신설을 위해 올해 노반과 건물 기본설계를 끝내기로 했다. 중앙선의 단선구간인 용문∼원주(44.1㎞)도 복선화하는 실시설계가 연내 이뤄진다. 모두 2조3,000억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되는 원주∼강릉간 복선전철은 빠르면 2003년 완공된다. 개통되면 서울∼강릉간 열차운행시간이 지금보다 최고 5시간 정도 줄어든다. 철도청 관계자는 “동해선 등이 개통되고 북쪽의 철도가 복구되면 기차를 타고 손쉽게 금강산관광을 할 수 있게될 것”이라며 “남·북당국의 의지와 재정여건이 금강산 철길 개통의 최대 관건”이라고 말했다.
  • 철조망 너머 금강산이‘오라’손짓(휴전선 해빙의 시대 오는가:下)

    ◎鄭周永씨 訪北후 통일전망대 관광객 북적/명파리 주민들도 “北行 뱃길 열린다” 부푼꿈 그리운 금강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은 더욱 가까이 보였다. 꿈속에서나 갈 수 있었던 세계적인 절경 금강산.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 자연예술의 극치인 아름다운 금강산을 현실세계에서도 갈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금강산을 향한 유람선이 오는 가을 속초를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이 최근 북한을 방문,금강산개발에 합의한 후 현대그룹은 9월에 유람선을 띄우겠다고 밝혔다. 북한으로 떠나는 유람선은 한국관광객 뿐만이 아니라 남북 해빙의 염원도 함께 태우고 떠날 것이다. 유람선의 고동소리는 남북 화해의 새시대를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모두 바라고 있다. ○남북 화해 새시대 바라 24일 하오 기자가 찾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동해안 절벽위의 통일전망대에는 북녘땅의 금강산을 보기 위해 몰려든 방문객들로 북적댔다. 이들은 이미 금강산을 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늘이 맑게 개지못해 실망스런 표정들이었지만 망원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는 이들의 눈길에는 애절함이 배어 있었다. 우뚝 솟은 비로봉을 경계로 펼쳐진 외금강 신금강 해금강 내금강의 아름다운 자태에 지그시 눈을 감는 모습도 보였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금강산에 대한 화답인 듯 했다. 통일전망대에서 해안쪽으로 내려오다 인근에 사는 촌로를 만났다. 명파리에 사는 李씨(76)라고만 소개한 그는 “광복 당시 양양에서 금강산 자락을 거쳐 원산으로 가는 동해 북부선 기차가 지나 다니던 터널을 보기 위해 왔다”며 “죽기 전에 철길이 다시 복원돼 기차로 금강산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회에 젖었다. 그가 안내하는 터널은 6·25의 상흔을 간직한 채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터널입구 벽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조국’이라는 글자가 분단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철로 흔적 조차 없어 양양쪽으로는 아예 철로의 흔적조차 찾아 보기 어려웠다. 방문객들마다 녹슨 철로라도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는 게 안내장교의 얘기였다. 李씨에게 이곳을 자주 찾느냐고 묻자 “최근까지는 거의 찾은 적이 없었다”며 “그러나 鄭周永씨의 방북으로 늙은이의 마음이 동요된 탓인지 요즘은 가끔 들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명파리 주민들의 마음은 지금 콩밭에 가있을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명파리 마을은 동해안 38선에서 북으로 84㎞지점인 통일전망대 바로 밑에 위치한 140여가구의 자그마한 동네. 대부분이 이곳에서만 살아왔으며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까지는 금강산을 내집 드나들 듯 했다. 금강산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 것도 이유가 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李씨의 말대로 들뜬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도로 옆쪽으로 쭉 늘어선 음식점이나 상점 등의 간판이름이 눈에 쏙 들어왔다. 평양,함흥,금수강산,원산 등 북한지명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96년 명파리 마을이 민통선 지역에서 해제된 뒤부터 생긴 변화중의 하나라고 귀뜀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주민들은 “금강산은 마을 노인들의 옛 휴식처였다”고 남북 해빙 움직임을 반겼다. 동네 노인정을 금강산자락 밑으로 옮겨야 되지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鄭周永씨가 부풀린 기대감 탓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소 부정적 생각을 가진 주민들도 있었다. ‘그리 쉽게 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李성찬씨(65)는 “북한이 그동안 한 짓을 보면 언제 마음이 변할 지 모르겠다”며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며 못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李씨는 명파리 사람들이 원하는 ‘금강산구경’이 뭐겠느냐고 되물었다. “명파리 사람들은 매일 매일 분단의 아픔을 삼키며 삽니다. 한 때의 급류타기가 아니라 모두가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신뢰의 분위기가 더 중요합니다” ○마을노인들 옛 휴식처 그는 “鄭周永씨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잠수정이 발견된 것을 보면 남북화해에 대해 아직은 섣불리 착각에 빠져 들 때가 아닌 것 같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철조망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금강산이 꿈에만 그리는 ‘금단의 땅’은 아닐 것”이라며 “鄭周永씨의 방북이 대립과 갈등으로 지속돼온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로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6·25가 터진지 어언 48년. 홍안의 나이는 반세기의 나이테를 더했지만 아직도 어릴 적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명파리의 노인들에게 금강산은 ‘마음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녹슨 철길이 다시 놓이고,속초항에서 출발하는 금강산 관광유람선의 고동이 울리는 그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 ‘명파리 마을’사람들. 분단을 아픔을 뒤로 한 채 이들의 마음은 벌써 금강산에 가 있는 듯 하다.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탁 상흔도 그대로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 상흔도 그대로/배봉리주민 朴在奉씨 “금강산 구경요. 그 좋죠. 조만간 갈 수 있다니까 아마도 내가 제일 먼저 갈 겁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배봉리에 사는 朴在奉씨(83)는 금강산 얘기가 나오자 어린애처럼 즐거워 했다. 한평생을 여기서 살아왔기에 금강산에대한 일화는 몇날이 걸려도 얘기를 다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朴씨가 사는 배봉리는 통일전망대 아래의 명파리와 불과 1㎞ 남짓 떨어진 곳으로 6·25 당시 동네 개천가 앞의 철교와 터널이 북한군의 폭격으로 폐허화됐던 곳. 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신 담배를 빨아들인 뒤 말문을 연 그는 “비로봉 구룡폭포 내금강 외금강 등 금강산은 안 가본 데가 없다”며 “못가는 안타까움보다는 가로막힌 현실이 더 한스러울 따름”이라고 분단의 아픔을 토로했다. “보통학교 시절 금강산을 가기 위해 친구들을 많이 꼬드겼어요. 인근 사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삼일포역에서 내린 뒤 걸어서 온정리로 들어갔지요. 한두어시간 걸렸나요. 그리고는 원정탕에 들러 몸을 깨끗이 씻지요. 명산에 들어갈 때는 몸을 단정히 해야 하거든요”이어 “금강산에서 친구들과 날밤을 새기가 일쑤였다”며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마다 들르던 단골집이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금강산에 발길을 끊게된 것은 8·15광복과 함께이곳이 공산당에 접수되면서부터. 감시가 워낙 심해 놀러 다닐 분위기가 안됐다. 그러다 6·25를 맞으면서 금강산은 추억속으로 들어갔다. 일제시대 동네앞 철교를 놓을 당시 잡부로 공사일을 한 적이 있는데 6·25때는 북한이 양양으로 가는 이 철교를 부수기 위해 폭격을 한 현장도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옛 친구들이 모두 저승으로 가 금강산을 다시 찾는데도 혼자 밖에 갈 수 없게 됐다”며 “한평생 이곳을 지킨 노인네로서 느끼는 점은 부서진 철교가 다시 복원될 때 분단의 역사는 진정 그칠 수 있다는 확신뿐”이라며 총총히 발걸음을 돌렸다.
  • 그리운 금강산/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신라시대 문장가 崔致遠은 금강산 구룡폭포를 보고 “천길 흰 비단필이 내리 드리운 듯 하고/만섬 진주알이 쏟아지는 듯 하여라”고 읊었다. 고려 공민왕 때 정승 李齊賢은 금강산 깎아 지른 절벽앞에서 “차가운 바람은 바위서리에 풍기고/골짜기에 담긴 물은 깊고 푸르구나/지팡이에 의지하여 벼랑을 바라보니/나는 듯한 처마는 구름을 탄 듯 하구나”고 감탄했다. 조선조의 松江 鄭澈은 “행장을 다 떨치고 석경에 막대 짚어/백천동 곁에두고 만폭동 들어가니/은같은 무지개 옥같은 용의 초리/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들을 제는 우뢰러니 보니난 눈이로다/금강대 맨 윗층에 선학이 새끼치니/춘풍 옥저소리에 첫잠을 깨돗던지”(관동별곡)라고 금강산 만폭동과 금강대를 노래했다. 그밖에 金時習 成俔 南孝溫 李珥 金天澤 金壽長 朴孝寬 楊士彦 朴世堂 朴齊家 朴趾源 김삿갓등 수많은 선비들이 금강산에 관한 글을 남겼다. 조선조까지 금강산을 노래한 시들을 모은 책에 오른 이름만도 3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묘사한 금강산은 “산위에 산이 있으니하늘에서 땅이 나왔나/물가에 물이 흐르니 물가운데 하늘이로다…”(楊士彦)고 “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바위바위마다 둘러서 있고 /물물 산산 가는 곳마다 신구하구나…”(김삿갓)싶다. 또 “일만송이 연꽃이 피어/이슬에 씻은 얼굴을 드러낸 것 같고/일천자루 창을 꽂아/서리 어린 날끝을 세운 것 같다”(朴世堂). 조선조 이후에는 崔南善의 ‘금강예찬’,李光洙의 ‘금강산유기’,李殷相의 ‘금강행’,鄭飛石의 ‘산정무한’등이 금강산송(頌)으로 전한다. 그러나 금강산을 내 마음속에 각인시킨 것은 선인들의 이런 절창(絶唱)이 아니라 서지(書誌)학자 남애(南涯) 安春根이다. 지난 80년대 말 설악산에서 열린 출판관련 세미나를 마치고 찾아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그는 해금강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통일전망대에서 보이는 해금강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절경(絶景)을 떠올리기에는 너무 멀었지만 한 실향민의 눈물은 그 가물가물한 풍경을 체험속의 공간으로 끌어 들였다. 지난 93년 타계한 安春根은 고성군 외금강면에 있는 고향 남애리의 이름을 따 호를 지을만큼 고향을 그리워해 유고(遺稿) 수필집으로 ‘언제 고향에 갈 수 있을까’을 남겼는데 드디어 올 가을부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수 있을 듯 싶다. 금강산을 찾는 유람선이 단순한 관광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뱃길이 훤히 뚫리고 육로(陸路)까지 열려서 통일의 날도 앞당겨 오기를 바란다.
  • 東아시아 최대 관광단지 추진/北의 개발계획

    ◎카지노 갖춰 외국인 300만명 유치 목표 북한은 폐쇄정책으로 외국관광객의 자유로운 입국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금강산지역을 카지노까지 갖춘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관광단지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자연명소를 잘 관리하고 개방하면 외화난은 물론 경제난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금강산개발을 통해 1단계 50만명,2단계 1백만명,3단계 3백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지난 94년부터 본격적인 개발 준비사업을 추진해 왔다. 북한은 우선 금강산에 대한 접근권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반시설의 확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내외국인 관광객유치와 수송을 위해 평양∼원산∼고성구간(286㎞) 고속화도로를 연장 개통한데 이어 지난해 원산∼고성구간 철도노선을 개통했다.최근에는 금강산 관광을 위한 관광루트 개발도 완료했다.금강산권역 일주도로(116㎞),내외금강 횡단도로(45㎞)를 비롯,금강산구역내 21개 루트(총연장 216㎞)를 개통했다.일주루트와 횡단루트를 제외한 루트는 도보여행(4∼8시간 소요)을 하는 산악 등반루트가 있다. 이처럼 북한은 도로,철도망 확충에 힘써 왔으나 관광객들이 머무는데 필요한 숙박 및 위락시설 개발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관광객들이 오래 머물수있는 여건은 못된다.이는 이 지역이 남침전진기지가 있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인데다 외국인들의 투자유치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부족한 교통망으로 원산을 금강산의 관문으로 여기고 있다.즉 원산에서 모든 관광객이 금강산으로 출발하고 관광이 끝난 뒤 출국할 때에도 원산을 경유,평양으로 떠나도록 하고 있다.
  • 朴宗和 교수 평양방문기:上

    ◎작음 만남이 신뢰구축 첫 걸음/4㎞ 무지개동굴 수작업 열악한 기술 대변/훼손 흔적 거의없는 금강산 커다란 기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단이 지난 5월26일부터 6월2일까지 조선기독교연맹의 초청을 받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번 평양방문에서 경험한 것은 그동안 남북교회간에 축척된 긴밀한 상호간의 ‘신뢰성 구축’이 방문기간 내내 남북쌍방을 감싸며 흐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항도착에서부터 평양을 떠날 때까지 귀빈접대를 받으며 귀빈숙소인 ‘서재동 초대소’에 머물며 스케줄대로 움직였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과 ‘통일 전선탑’을 관람했다. 국립도서관에 해당하는 ‘인민대학습당’을 방문하여 시설과 운영을 돌아보았다. 안내인이 세계최대의 도서관을 목표로 3,000만권의 장서를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고 있다는 설명을 했으나 웅장한 시설에 비해 서적이나 소프트웨어는 아직 미흡함을 느끼게 했다.‘개선문’과 ‘주체사상탑’도 관람했다. ‘미술박물관’을 찾았는데 고조선의 고인돌과 고구려 동명왕릉을 재생해 놓은 것에서부터 한민족역사의 유물들을 보면서 설명과 해석이 주체사상적 냄새를 풍긴 것 말고는 정치적·이념적 선전물이 아닌 민족역사의 동질성을 확인해 주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50년 분단의 현실에서 이질화 현상 극복을 위한 방안 중에 남북상호간의 역사유물 교환이나 교환전시 등을 통하여 역사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 민족화해의 중요한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평양산원’도 방문했다. 평양산원은 현지의 여건과 형편으로 보아 출중한 것 같았다. 엄청난 자금을 들여 최신 시설과 고가 기계를 설치한 서울의 병원시설과 비교할 처지는 되지 못했다. 2박 3일의 ‘금강산 유람’은 퍽 인상깊었다. 평양에서 원산까지 135㎞의 시멘트 고속도로를 달려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거쳐 고성군에 위치한 호수인‘삼일포’를 경유하여 금강산에 당도했다. 금강산의 수려함과 빼어난 장관은 굳이 글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금강산의 자연환경은 거의 훼손되거나 오염의 피해에 시달린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커다란 바윗돌에 군데군데 새겨진 선전문구 말고는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금강산 개발이 자연친화적으로 이루어지고 부족한 관광시설들을 새로 만들어 관광객 유치를 통한 북한 경제의 활성화가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원산 약 20㎞ 전방에 있었던 4㎞에 달하는 무지개동굴(터널) 작업현장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사람의 손과 발이 주축이고 거의가 수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동굴공사는,열악한 경제사정이나 기술환경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그것도 후방 군부대가 동원되고 또 과거 목탄차라고 불리던 트럭을 덤프 트럭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평양으로 되돌아올 때는 강원도 북부와 평안남도를 이어주는 공사중인 신설 도로로 우회하였다.공사 현장은 역시 마찬가지 모습이었다.구슬땀 흘려 일하는 남녀노소 인부들의 얼굴이나 표정은 바로 통일 이전이라도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양질 노동력과 결부되어 민족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하라는 간절한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
  • ‘아침이슬’ 양희은(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

    ◎“나는 가수일뿐… 결코 운동권 못돼”/암울한 독재정권 아래 서정적 노래 통해 정신적 탈출구 제시 했을뿐/‘늙은 군인의 노래’ 부르고 78년 쓸쓸히 노래판 떠나 70년대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아침이슬’의 통기타 가수 楊姬銀씨.독재정권의 잇단 금지곡 딱지로 70년대를 ‘금지인생’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이제 아픈 세월을 딛고 우리 앞에 다시 우뚝섰다.세월은 흘렀지만 그때 그 시절 그 노래들은 어두운 시절의 기억과 함께 더욱 강한 행명력으로 살아난다. “긴 밤 지새우고/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아침이슬처럼/내 맘에설움이/알알이 맺힐때/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1994년 8월,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밤.서울 동숭동 음악전문 공연장 ‘라이브’­.20년의 시공을 초월한 ‘청년가수’ 楊姬銀(46)의 열창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30∼40대의 관객들은 70년대 어두운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리며 숙연한 분위기에 빠져 들었다.가수생활 23년을 결산하는 첫 개인무대였던 이 자리에서는 ‘아침이슬’ 등 70년대의사연 많은 시대곡들이 이어졌다.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침묵은 한계에 달했고,급기야는 모두 목이 터져라고 함께 불렀다. 71년 서강대 사학과 1년 재학중 ‘아침이슬’로 데뷔한 뒤 70년대 청년문화의 대명사로 자리매김돼 온 통기타 가수 양희은.가난했던 어린시절과 사랑의 상처,연속되는 금지곡 행진,한창 나이의 투병생활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독재정권의 서슬퍼런 압제의 칼날 아래서 젊은이들에게 노래를 통해 정신적인 탈출구를 제시했던 그녀는 한때는 ‘운동권 가수’로 인식되기도 했다.그러나 楊씨는 자신이 결코 운동권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암울한 시절 시대상황이 노래까지 어둡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지금은 가정주부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매일 하오 2∼4시 SBS 라디오방송(2시의 친구 楊姬銀입니다) 진행도 맡고 있고 연말로 예정된 콘서트 준비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그러나 문득 문득 떠오르는 20대의 아팠던 추억,즉 자신이 불렀던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여야만 했던 힘겨운 70년대를 결코 지울 수가 없다.양씨의 ‘금지 인생’은 그 유명한 ‘아침이슬’로부터 시작됐다.金敏基씨가 작사·작곡한 곡을 받아 71년 발표,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가 같은 타이틀의 앨범에 수록된 ‘엄마 엄마’‘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그날’과 함께 74년 어느날 느닷없이 방송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72년 새음반 ‘서울로 가는 길’에 실린 ‘작은 연못’‘백구’‘서울로 가는 길’‘새벽길’ 등 10곡도 이때 모두 금지곡 딱지를 받았다.그 외에도 78년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늙은 군인의 노래’ 등 부른 노래중 금지곡만 30여곡에 이른다. 이 노래들이 해금된 것은 지난 84년.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레퍼터리들이지만 오히려 이 노래들에 실린 무게는 더해만 갔다.대학생들의 시위현장에서,소외된 노동현장에서,젊은이들의 술자리에서….노래를 방송이 원천봉쇄하면 음반도 막히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은 이들 금지곡들을 용케 찾아서 불렀다. 楊씨는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이렇게 말한다. “한마디로 우스꽝스런 해프닝의 연속이지요.‘가사퇴폐’‘시의부적합’‘허무주의 조장’이란 명분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늙은 군인의 노래’만 하더라도 국방부장관이 금지를 명령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꼬투리를 잡아 금지곡 판정을 당했을 정도니까요” 노래가 금지곡으로 묶이고 나니 가수의 생활도 곤궁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요주의 인물’로 낙인받은 뒤 본격적으로 도청에 시달렸고 하루 종일 따라붙는 감시의 눈도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아침이슬 발표 후부터 계속해온 방송도 순탄치만은 않았다.방송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정보부 요원들에게 잡혀 빵집에서 추궁받던 일은 지금도 진저리가 쳐진다고 회고했다.그중에서도 가장 견딜 수 없던 일은 71년부터 계속 맡아오던 방송활동의 중단이었다. “77년 당시 6년째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우리들’을 진행하고 있었어요.요원들이 항상 뒤따르던 시절이지요.어느날 느닷없이 사장으로부터 ‘당분간 쉬라’‘네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을땐 눈물이 핑 돌더군요”.그때부터 방송출연 교섭이 뚝 끊겼다.결정적으로 노래판을 떠나게 된 것은 78년 MBC TV ‘토토즐 사건’이었다.어렵게 출연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프로그램에서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평생을 군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한 직업군인의 나라사랑을 순수하게 담은 노래였는데 국방부장관이 ‘군 사기 저하’를 이유로 봉쇄하더군요.레코드사 사장이 불려가고 전국 매장에 깔려있는 음반을 모두 수거해 파기시킨뒤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지요” 이후 83년 ‘하얀목련’이 나올 때까지 일체의 노래활동을 중단해야 했다.87년에는 결혼했고 남편과 함께 훌쩍 미국행을 결행,지난 93년 돌아올 때까지 드문드문 고국을 드나들며 서정성 짙은 맑은 노래를 모은 음반도 몇 집을 냈다.자신의 노래·방송 인생을 자전적으로 풀어낸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는 책도 펴냈다. 처음부터 줄곧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아 왔다는 楊씨.그는 자신이 받았던 팬들로부터의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시 노래를시작했다고 말한다.“20대엔 밝은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철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노래는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요즘 신세대들이 흔히 부르는 노래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모자란 느낌입니다.노래는 서정성이 담겨야 합니다.70년대의 금지곡들도 저에겐 모두 서정이었지요”. ◎사연들/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냐고/퇴폐·허무·時宜 부적절 우스꽝스런 해프닝 연속/“네 잘못 아니다” 듣고 눈물/‘붉은태양’이 북측 인사라니… “태양은 묘지위에/붉게 떠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나의 시련일지라 /나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 이 노래에서 문제가 된 것은 ‘태양은 묘지위에/붉게 떠오르고’부분.붉은 태양이 북쪽의 인사를 암시한다는 억지해석이 금지곡으로 이어졌다.그러나 금지곡 이후 들불처럼 번져 지금까지도 애송되고 있는 걸작이다. “나 태어나/이 강산에/군인이 되어/꽃 피고/눈 내리길/어언 삼십년/무엇을 하였느냐/무엇을 바라느냐/나 죽어/이 강산에/묻히면 그만이지/아 다시 못올/흘러간 내 청춘/푸른옷에 실려간/꽃다운 이 내 청춘.” 평생을 군인으로 살다 전역하게 된 실제 인물의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이 노래 는 금지곡으로 결정된뒤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개사돼 투쟁가로 변질된 대표적인 노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이유아닌 이유로 금지됐다면 ‘작은 연못’은 당시 대립되는 두 세력들을 빗댔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사라진 노래들이다. “너의 침묵에/메마른 나의 입술/차가운 네 눈길에/얼어붙은 내발자욱/돌아서는 나에게/사랑한단 말 대신에/안녕 안녕 목메인 그한마디/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깊은 산 오솔길옆/자그마한 연못엔/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먼 옛날 이 연못엔/예쁜 붕어 두마리/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깊은산 작은 연못…” 이들 역시 금지 이유와는 달리 서정적인 분위기가 농후하다.◎그의 길 ▲52년 서울 출생. ▲70년 경기여고 졸업. ▲71년 서강대 사학과 입학. ▲71년 ‘아침이슬’ 발표. ▲72년 앨범 ‘서울로 가는 길’ 발표. ▲74년 ‘아침이슬’‘서울로 가는 길’ 금지. ▲77년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우리들’ 진행 도중하차. ▲78년 MBC TV‘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출연뒤 ‘늙은 군인의 노래’금지. ▲84년 ‘하얀목련’으로 대한민국 가사대상 수상. ▲87년 결혼,도미. ▲93년 귀국. ▲94년 첫 개인 콘서트. ▲현재 SBS 라디오 ‘2시의 친구 양희은입니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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