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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일 아침에] 금강산 유감/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이른 아침 조계사 마당에 ‘금강산 신계사’라는 글씨가 선명한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다. 해질 무렵 안국동 사거리에 ‘개성공단’이라는 노선표를 크게 써붙인 대형버스가 지나간다. 신계사 복원이라는 역사적 큰 짐을 지고 있는 조계종의 소임자들은 금강산을 ‘마실 가듯’ 오가고 있다. 개성공단 버스 역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현대아산 직원들의 출퇴근용 정기편이라고 한다. 냉전시대 금강산은 ‘이상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그것을 현실 속에서 찾아낸 것은 비무장지대(DMZ)의 금강산 끝자락에 간신히 얹혀 있는 건봉사였다. 거기도 마음놓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출입허가절차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사미시절에 DMZ 밖 간성읍내에 있는 건봉사 포교당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다. 그곳 현판은 ‘금강산 건봉사 포교당’이었다. 이것이 현실에서 내가 처음 만난 금강산이었다. 그 뒤 건봉사 부도탑의 ‘부처님 치아사리’의 도굴범이 검거되면서 매스컴을 탔고, 이후 이 절이 유명해지면서 출입이 좀 쉬워져 가 본 그곳의 금강산은 ‘다이아몬드 산’이 아니라 여느 평범한 산과 다를 바 없었다. 절집에서는 ‘금강산에서 발심(發心)하고 묘향산에서 수행하며 지리산에서 보임(保任)한다.’라는 말이 있다. 금강산에 가면 누구든지 출가할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묘향산에 가서 열심히 정진한 후 지리산으로 가서 그 공부를 마지막으로 푹 익히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었던 것이다. 엿장수 차림으로 전국으로 떠돌던 이 찬형 거사(뒷날 종정과 송광사 방장을 지낸 효봉선사;1888∼1966)가 석두선사라는 도인을 만난 곳이 금강산이다. 대뜸 처음 만나 “어떻게 왔느냐.”고 하니 “이렇게 왔다.”고 하면서 엿판을 안은 채 방안을 한바퀴 빙 돌아보이는 선문답 끝에 ‘10년 공부한 수행자보다 낫다.’는 칭찬과 함께 출가를 허락받게 된다. 물론 두 분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이차돈의 순교지인 경주 천경림의 흥륜사를 복원한 혜해(慧海) 스님이 금강산으로 출가한, 생존하고 있는 유일의 노비구니이시다. 연세가 팔순을 훨씬 넘겼으니 또다른 살아 있는 현대사인 셈이다. ‘돌아다니는 것(만행)이 직업’인 승려이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금강산을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올여름에 지인이 시월초 사흘간의 연휴에 금강산 여행을 신청하려고 하니 여권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지금 신청해야 그 때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관광’으로 가게 된 것이다. 날짜가 가까워짐에 따라 만산홍엽의 풍악산을 생각하면서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구월 어느 날이었다.“죄송합니다. 금강산 입산인원을 반으로 줄이는 바람에 공식업무가 아닌 순수한 관광객은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할 수 없죠. 다음에 흰눈이나 보러 갑시다.”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야만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알고 보니 그 회사의 오너와 경영자 간의 불협화음이 급기야 정치적으로 비화되어 북쪽에서 관광인원을 반으로 축소하라는 통보로 이어져, 그 화가 나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그 두 양반은 뉴스화면과 공식행사장의 먼발치에서 몇 번 본 게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계획해 놓은 일이 가을에 무산되는 걸 보니 새삼 세상의 모든 일이 서로 서로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연기(緣起·관계성)의 법칙’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북쪽의 국제적 정치적 협상력의 탁월함이야 이미 정평이 나있지만 비경제적인 논리를 앞세운 경제 협상술은 그렇게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적 시각 내지는 인기주의로 풀어가려는 방식은 남과 북이 21세기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울산공단은 꼭 가봐야 하는 ‘근대화의 현장’이었다. 그 때 받은 그 기업의 ‘통 큰 이미지’는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나에게 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라건대 이번 갈등이 모두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잘 해결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이 아침이다. 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 [종교플러스] 새달 28일 개성영통사 낙성법회

    불교천태종은 조선불교도연맹과 함께 다음달 28일 개성 영통사에서 낙성법회 및 남북불교학술회의를 개최한다.천태종 사회부장 김무원 스님은 최근 금강산에서 조선불교도연맹 정서정 서기장을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무원 스님은 “우리측에서 일단 200명이 방북하기로 했으나 방북인원을 350명까지 늘려달라고 북측에 제안한 만큼 인원조정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 남북 강원도 금강산서 하나된다

    분단된 남북 강원도가 28일부터 이틀 동안 금강산에서 ‘민속문화축전’을 펼친다. 27일 강원도는 소년소녀가장 및 부·모자 가정, 환경미화원, 수로원, 모범운전사 등 도내 각계각층의 대표단 200여명이 금강산을 찾아 북측 대표단 130여명과 함께 남북 민속공연과 경기를 펼친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번 민속문화축전은 분단 60년 세월 동안 변화된 지방 민속·문화의 동질성 회복 계기를 마련한다는 데 의미를 갖고 있다. 축전 첫날인 28일에는 금강산 현대문화회관에서 개막식을 갖고 곧바로 민속공연을 펼친다. 남측 강원도는 사물놀이, 민요 메들리, 민속무용 등을, 북측에서는 독창 및 중창 민요와 북춤 등을 선보이게 된다. 민속경기는 29일 오전 금강산 해수욕장에서 씨름, 널뛰기, 활쏘기, 줄다리기를 중심으로 이뤄진다.경기는 남북선수간의 대결이 아닌 참가선수를 남과 북이 반반씩 나눠 남북 혼성팀을 구성해 화합을 다진다. 현지를 직접 찾는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이번 민속축전을 통해 남북 강원도가 상호 신뢰와 이해를 돕고 사회·문화분야로 교류를 다양화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분단의 상징으로 인식돼 온 남북 강원도가 통일1번지의 선도적 역할 수행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강원도는 지난 2000년 12월 김진선 강원도지사의 평양방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년 동안 연어방류 및 부화장 건설, 금강산 솔잎혹파리와 잣나무 넓적잎벌 방제사업 등 남북교류협력사업을 꾸준히 이끌어 왔다.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현대 대북사업 ‘새틀’

    북측이 금강산관광을 축소한 데 이어 롯데관광에 개성관광 사업을 제의하는 등 대북사업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16년간 1조 5000억원을 쏟아 부으며 대북사업을 주도해 온 현대그룹이 앞으로 대북사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북사업이 기로에 서 있다.”는 현정은 회장의 발언에서 현대가 대북사업의 새 틀을 짜고 있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그동안 남북평화사업 성격이 짙었던 현대의 대북사업은 최근 북측과의 관계 악화로 이미 ‘머니게임’으로 바뀌고 말았다. ●北, 현 회장 입장발표에 불만 표시 최근 북측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1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한 북측인사는 현정은 회장이 전날 발표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금강산관광 중단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 퇴진을 빌미로 금강산관광을 축소하면서 현대를 압박한 북측은 롯데관광에도 개성관광 사업 참여를 제의했다. 현대측에 개성관광 대가로 1인당 150달러를 요구한 북측은 롯데에는 이보다 많은 200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관광사업을 경쟁체제로 전환하면서 관광 대가를 올려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현대아산이 지난 2000년 북측에 5억달러를 내고 ▲주요 명승지 관광사업 ▲철도 연결 ▲통신 ▲전력 공급 ▲금강산댐 수자원 이용 ▲임진강댐 ▲통천비행장 등 ‘7대 사업 독점권’을 따낸 바 있어 개성관광이 실제 복수사업자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롯데측도 “수익성이 있는지 따져보고 있다.”고 밝혀 북측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남아 있다. ●현대,“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는다” 현대그룹은 최근 북측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정공법’을 구사하고 있다. 금강산사업 대가로만 북측에 9억 4200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그동안의 ‘퍼주기’에서 비즈니스 관점으로 대북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현 회장은 “(북측의 요구에 굴복해 얻는) 비굴한 이익보다는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현대아산은 최근 한화콘도 등을 운영하는 한화국토개발측에 금강산·개성관광 공동투자를 제의했다. 현대아산으로서는 이미 금강산에 콘도 건립을 추진 중인 한화개발을 개성관광에 끌어들여 투자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한화측은 레저사업 노하우를 살려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현대측은 또 교직원공제회에도 투자를 제의한 상태며 앞으로도 관광·레저업체와 유통업체 등에 대북사업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입점업체들에 공간을 대여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백화점처럼 대북사업을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대북사업의 성격상 수익성만 앞세울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사업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김 부회장 퇴진을 계기로 이른바 ‘김윤규식’ 대북사업을 접고 철저한 비즈니스로 대북사업을 끌고 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만에 하나 북측이 현대측의 방침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대북사업을 중단할 수도 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볼 때 대북사업은 크게 매력이 없다. 현 회장은 이미 “대북사업이 기로에 서 있지만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속내를 밝혔다. 바꿔 말해 북측이나 국내 여론이 결정해주면 대북사업을 털고 갈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남북관광공동체 조항원 대표는 “지금까지 현대의 대북사업은 김윤규 부회장의 비리·전횡 의혹에서 나타났듯이 투명하지 못했다.”면서 “앞으로는 개인의 판단이나 사적 인연 등에 의존하지 말고 시스템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99회째 하우스콘서트 여는 작곡가 박창수씨

    99회째 하우스콘서트 여는 작곡가 박창수씨

    웬만하면 정장을 입고 가야 하는 클래식 연주회를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본다면 어떨까. 엎드리면 코가 닿을 곳에서 연주자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린다면 더욱 좋고. 더군다나 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와 와인을 기울이며 말을 틀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클래식 공연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2002년 국내에서 처음 시작된 ‘하우스 콘서트’가 어느새 99번째 공연을 갖게 됐다. 공연일자도 마침 9월9일이다. 하우스 콘서트를 꾸리는 음악가 박창수(41)씨를 만나봤다. 박씨가 하우스 콘서트를 구상한 것은 서울예고에 재학중이던 1980년대 초반. 친구 집에서 악기를 연습하는 일이 많았던 박씨는 아담한 집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너무나 좋았다. 격식있는 무대보다는 집처럼 소박한 곳에서 공연을 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상상해 봤다. 그로부터 20여년 뒤. 박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낡은 자택을 개조해 1층은 주방·침실로 쓰고 2층의 벽을 터서 30여평의 콘서트 공간을 만들었다. 소년시절의 꿈이 이뤄졌다. 한달에 두어번씩 공연을 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관객만 평균 30∼40명이나 된다. 하우스 콘서트의 큰 특징은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뿐 아니라 의자까지도 없앴다는 점. 관객들은 마룻바닥 자신이 앉고 싶은 곳에 방석을 깔고 앉아 몸으로 음악을 느낀다. “관객들이 가까이 있다 보니까 연주자의 표정, 땀방울, 손떨림까지도 보입니다. 작은 공간에서 악기 소리가 몸을 타고 울리면서 음악을 오감(五感)으로 느끼게 되지요. 어떤 의미에서 연주자들은 관객들과 달리 큰 무대에 설 때보다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단골 관객인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그동안 다녀간 관객 2000여명에게 공연일정을 이메일로 보내주고, 공연일에는 관객들을 안내하곤 한다. 하우스 콘서트는 동네에서도 유명해져 인근의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경호원을 대동하고 갑자기 나타나 모두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그동안 하우스 콘서트장에서 선보인 장르를 추려보니 절반은 클래식이고 절반은 프리뮤직(즉흥음악), 재즈, 국악, 무용, 마임 등이었다. 아마추어 뮤지션도 간간이 참여했다.160인치 스크린에 단편영화를 상영하거나 음악에 대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박씨의 집은 문화를 전방위적으로 체험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지난해 타계한 북과 드럼의 대가 김대환씨가 세상을 뜨기 전 이곳에서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피아니스트 임미정씨는 북한 작곡가의 곡을 연주해 이 집을 찾은 탈북자들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기타리스트인 이병우씨, 가수 강산에씨, 중국 전통악기인 구젱의 권위자인 펭시아 주, 프리뮤직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인 하라다 요리유키 등이 이곳을 다녀갔다. 하우스 콘서트가 처음부터 순항을 한 것은 아니었다. 국내에서 개념이 생소했던 당시 연주자들로부터 공연요청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의미에서 저명한 음악인인데도 연주를 흔쾌히 승낙한 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넷 연주자 볼프강 스트라이(독일)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단다. 그렇다고 하우스 콘서트가 유명한 사람들에게 공연비를 더 얹어주는 것도 아니다. 관람비 2만원 가운데 반은 연주자에게, 반은 뒤풀이에 필요한 와인·치즈·과자를 사는 데 사용된다. 연주비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관객이 많을수록 연주자 연주비도 많아 진다. 하우스 콘서트에서는 관객의 수가 적더라도 정말로 공연을 보고 싶어서 오는 자발적인 관객들만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주하는 사람들도 관객들의 반응에 다시 감동을 받곤 한다. 연주가 끝난 뒤 이어지는 뒤풀이도 볼거리다. 와인과 치즈를 먹으면서 연주자와 함께 어울리면서 연주자와 관객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공연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그룹으로 카이스트 공학도 음악동호회인 ‘뮤지카´를 꼽았다. 보통 오후 5시쯤 와서 리허설을 하기 일쑤지만 이들은 대전에서 오전 9시부터 오겠다고 성화였다. 매일 야간작업을 하느라 오후에 일어나는 박씨도 두손을 들었다.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프로도 본받아야 한다고 일침한다. 박씨는 스스로 삐딱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한다.6살때 피아노를 배우기 전 스스로 작곡을 시작했다. 이후 어머니를 졸라 피아노를 집에 들여놓고 혼자서 공부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이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무언가에 길들여지기를 원치 않았다. 서울예대 졸업이후 명문대 작곡과에 수석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틀에 짜여진 작곡보다는 퍼포먼스의 길을 택했다.1987년 행위예술협회의 발기위원으로 참여했고, 여기서 동반자인 김영희(이화여대 한국무용 교수·김영희무트댄스 예술감독)씨도 만났다. 이들 부부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즉흥공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집에서 나오는 길. 현관 입구에서 송아지만한 개가 개집에서 중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나와서 꼬리를 흔든다. 개 ‘레트’는 하루에 1시간 이상씩 텔레비전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개주인 박씨는 역시 즉흥 문화연출가답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오는 23일의 100번째 하우스 콘서트는 어떻게 꾸며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그의 홈페이지는 http:///free-piano.com(개설예정). ■ 프로필 ▲64년 서울생 ▲80년 서울예고 입학 ▲83년 서울대 입학 ▲86년 퍼포먼스 활동 시작, 이후 ‘호흡 시리즈´ ‘레퀴엠 시리즈´ 등을 독일·일본 등 17개국서 공연 ▲87년 한국행위예술협회 발기인으로 참여, 협회 사무국장 ▲99년 프리뮤직(즉흥음악) 본격적으로 시작 ▲2002년 7월 국내 최초로 하우스콘서트 시작 ▲2005년 9월23일 하우스콘서트 100회(예정)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박은영의 DVD레서피] 애간장 녹이는 자작극

    함경도 실향민들의 미각을 사로잡는 동태순대는 쫀득한 육질과 만두소 같은 속이 어우러진 별미음식이다. 뼈와 내장을 제거한 생태에 돼지고기, 두부, 김치, 된장 등을 버무린 소를 넣고 짱짱하게 얼렸다가 찌거나 끓이면 담백하면서도 칼칼하다. 신기하게도 음식의 맛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옛날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떠올리다 보면 그 시절도 함께 떠오르니 맛이 지닌 기억의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간 큰 가족’은 통일이 소원인 아버지를 위한 한 가족의 ‘통일 자작극’이다. 통일이 안 되면 유산 50억이 통일부로 ‘올인’될 상황이라 남북단일탁구를 연출하고 평양교예단의 공중그네도 두말 않고 타야 하는 점입가경의 상황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돈이 문제였지만 나중에는 평양 가는 버스표가 있다고 믿는 아버지의 간절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게 문제가 된다. 이와는 반대로 ‘굿바이 레닌’은 심장 약한 어머니를 위해 통일을 숨기고 분단 뉴스를 전하는 아들의 눈물겨운 ‘분단 자작극’이다. 어머니가 늘 먹던 동독 피클을 공수하기 위해 온 상점을 헤매고 서독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빈집을 뒤지는 아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통일과 분단이라는 다른 소재에도 두 영화는 원작과 리메이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닮았다. 함경도 별미만큼이나 강한 향수와 애틋함이 배어 있다.●간 큰 가족 분단 이후 최초로 금강산에서 촬영된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이 DVD는 흥미롭다. 영화에서 미처 담지 못한 금강산 촬영분량이 부가영상에 수록되었는데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광이다. 제작 당시부터 비교됐던 ‘굿바이 레닌’에 대한 감독과 프로듀서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이 밖에 몇 해 전 제작 중단된 조명남 감독의 뮤지컬 영화 ‘미스터 레이디’의 프리뷰가 첨가된 것이 특이하다. DVD 안에 있는 엽서로 9월 30일까지 응모하면 5명을 추첨을 통해 2인 금강산 여행권을 증정한다고 하니 한번 도전해 봐도 좋겠다.●굿바이 레닌 ‘간 큰 가족’의 시나리오가 1997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당선작이라고는 해도, 상당부분 ‘굿바이 레닌’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희화화 대신 뚝심 있는 독일식 유머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코카콜라도 원래는 동독제라는 뉴스를 내보내면서 물신화된 미국식 자본주의를 살짝 뒤트는 것도 유쾌하다. 지난 6월 2디스크로 재출시되었는데, 화질과 사운드, 부가영상 모두 기대 이상이다. 조용한 소품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드라마가 줄 수 있는 시청각적 매력을 확인할 수 있으며,40분가량의 삭제장면을 비롯한 다양한 부가영상도 알차다.DVD칼럼니스트·mlue@naver.com
  • [클릭 이슈] 이산 1세대의 소원

    [클릭 이슈] 이산 1세대의 소원

    ‘여보 영옥 엄마, 아니 순임이. 이렇게 현실이 아닌 꿈의 공간을 빌려 편지를 띄우는 못난 남편을 용서하오. 지난 55년간 의지가 약해질까 꽁꽁 잠가뒀던 심중(心中)을 이젠 하릴없이 개봉해야 할 것 같소.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져 지팡이로도 거동하기 힘든 형편이라오. 이러다 끝내 당신한테 아무런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갈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나를 몰아세우는 구려. 오늘 여기 서울 하늘엔 오랜만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랐소. 계란 노른자처럼 명징(明澄)한 달빛이 실내등을 밀어내는 밤이면 당신이 더욱 사무친다오. 기억나나요?당신의 옥수(玉手)를 잡고 거닐던 그 논둑길, 사람들 눈을 피해 당신의 숨결을 오로지할 수 있었던 그 갈대숲, 그리고 당신의 머리카락에서 풍겨나던 그 동백기름 냄새…. 여보, 그때 내가 서울의 외삼촌 댁에만 내려오지 않았어도 우리한테 이런 생이별은 없었을 텐데 하는 회한은 수십년째 내 애간장을 혹사시키고 있소. 그래도 이 후진 목숨을 마침내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오직 당신과 영옥이를 만나겠다는 일념에서라오. 전쟁이 끝나고 북으로 더이상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곳에서 맘씨 좋은 여자를 만났고 아들 둘을 낳았소. 고맙게도 이들이 나더러 한을 풀어야 한다면서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해줬다오. 벌써 5년 전의 일이오.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곧 당신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몇날 밤을 설쳤는지 모른다오. 만나면 무슨 얘기부터 할까, 당신의 곱던 얼굴은 어떻게 변했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영옥이도 장성해서 아이들 낳고 잘 살고 있을까…. 그런데 내 기대의 본질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소. 상봉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이산가족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지. 지난 5년간 상봉신청자 12만명 중 불과 1000여명이 컴퓨터 추첨을 통해 상봉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내 차례는 언제나 돌아올지…. 단순계산으로 하면 앞으로도 500년은 더 건강을 조섭(調攝)해야 한다는 얘기니 이 어이없음을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이쪽에서는 화상상봉이니, 면회소 건설이니 하는 방법으로 상봉을 ‘제도화’한다고 바람을 집어넣는데, 이 또한 썩 미덥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오. 지난달 31일 금강산에서 면회소 착공식이 성대하게 열렸지만,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적극성을 갖지 않는다면 이런 하드웨어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런대로 순항하던 금강산 관광마저 느닷없이 축소되는 실정이니 어찌 맘을 놓을 수 있겠냐 말이오. 제발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주고받는 협상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되는데….“비싼 돈을 들여 면회소를 지어놔도 북한이 이를 또다른 협상카드로 쓰려든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만큼, 매달 일정 수의 규모가 상봉토록 하는 명실상부한 정례화를 약속해야 한다.”는 중앙대 제성호 교수의 조언을 모두가 유의했으면 하는 바람이오. 남북정상회담도 좋고 경협도 좋지만, 이산가족 문제만큼 촌각을 다투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당국자들은 신경이나 쓰는지…. 이산가족들이 다 죽고 없어진 다음에 면회소가 생기면 뭣하고, 제도화가 되면 뭣하겠소. 통일부 통계를 보면, 매일 평균 10명의 이산가족이 사망하고 있고 연간으론 3000∼4000명이 유명을 달리한다고 하니, 이보다 더 잔인한 안타까움이 어디에 있겠소. 달나라까지 사람이 가는 대명천지에 지척의 핏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하니. 이런 원초적인 휴머니즘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권력들이 아무리 거창하게 통일을 얘기하고 인권을 운운한들 무슨 감동이 있겠소. 여보, 내가 너무 흥분했나 보구려. 성내면 결국 내 건강만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안 된다오. 순임이, 이제 나는 큰 욕심을 버렸소. 금강산이든 화상상봉이든 당신 얼굴 보지 못해도 일 없으니 그저 생사만이라도 알고 눈을 감았으면 족하겠소. 그래도 꿈속에서나마 이렇게 당신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 나는 영영 이 몽상에서 깨지 말았으면 좋겠소.’100% 픽션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 글이 실제 이산가족들의 애절함을 반영하는 정도는 1%도 안 될 것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고려 500년 도읍지였던 개성은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까탈스럽고 번거로운 CIQ(출입관리시설) 검문을 거쳐야 하고, 때로는 이미 짜여진 일정에 따라 북측의 통제를 받으며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여행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여정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분단 55년 만에 문을 연 개성 관광길. 금강산에 이어 두번째 북한 관광길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손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개성 시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다소 낡아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는 화분으로 한껏 멋을 냈고, 그 사이로 시민들이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한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교복 입은 아이들, 한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가는 여인들…. 풍경 하나하나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사진촬영을 통제해 가슴에만 담아온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개성. 하루로는 진정 아쉬움이 컸던 개성 당일관광으로 안내한다. 개성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이것은 조심하세요 개성 관광은 북측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만큼 지켜야 할 주의사항들이 적지 않다. 어길 경우 위반금을 물어야 하며, 심할 경우 북측에 억류돼 조사를 받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마찬가지로 버스로 이동할 때와 북측 CIQ 및 군사시설에 대한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북측의 정치, 경제, 사상 등 서로 자극할 수 있는 대화는 자제하고, 검문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소지물품을 간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 신분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개성관광증은 남과 북이 합의한 개성출입 여권 및 비자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낙서를 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휴대품에는 제한 규정이 있는데 ▲10배율 이상의 쌍안경 및 망원경 ▲초점거리가 160㎜ 이상인 카메라 렌즈나 이를 탑재한 카메라 ▲광학 24배줌 이상 캠코더 ▲휴대전화(PDA포함) 등 통신기기 ▲휴대용 TV와 라디오,MP3, 기타 남측 신문 및 인쇄물 등 관광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물품 등을 휴대해서는 안 된다. 휴대전화는 안내 직원에게 맡긴 뒤 남측 귀환시 반환받을 수 있다. 관광 중에 통용되는 화폐는 미국 달러이며, 기념품은 1인당 300달러까지만 면세가 적용된다. 북측 의약품과 뱀술, 영정술, 우황청심환과 북한 사상 관련 각종 출판물은 남측 반입이 되지 않는다. 북측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북한군들은 남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손총질’이라 해서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관광지 내에서는 되도록 흡연을 삼가고, 관광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정해진 경계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 개성 37mile 당일치기 여행 벽은 무너지고… ‘개성 시내의 모습은 어떨까. 선죽교, 박연폭포의 경치가 아름답다던데’ 설렘 속에 시범관광단을 실은 버스가 서울 경복궁을 출발했다. 개성까지의 거리는 약 50㎞. 승용차로 달리면 1시간 남짓한 거리다. 개성은 38선 이남에 있는 북한 땅으로 한국전쟁 전까지 남한에 속했던 지역이다. 자유로를 따라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인 곳은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통일대교. 민족의 통일 염원을 담은 다리지만 차량 통제를 위해 겹겹이 막아놓은 바리케이드가 먼저 분단 현실을 실감케 한다. ‘남북왕래차량외 진입금지’라고 쓰인 표지판이 가로막힌 도라산역 남측 CIQ(출입관리시설). 버스에서 내려 CIQ에서 간단한 짐검사와 법무부 출입국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출경수속을 마쳤다. 출경 수속은 일찍 끝났지만 정해진 시간에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8시 정각에 버스가 다시 남측 CIQ를 출발했다. 군사분계선 주변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 평온해 보였지만 도로를 제외한 주변 모두가 지뢰밭이라고 한다. 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철길이 나란히 달린다. 오른쪽 창밖으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널리 알려진 낡은 열차가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마침내 북한땅.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으로 넘어가자 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버스를 응시하는 북한 군인의 모습에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간다. 군복을 차려입은 인민군 장교가 버스에 올라 눈으로 인원체크를 하는 것으로 북측 CIQ 입경 수속이 시작됐다. 버스 앞에서 눈으로 인원을 세는 사이 버스에는 잠시 적막감이 흐른다. 그 시선은 마치 이곳부터는 ‘북한’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이어 인민군 장교가 ‘개성 관광증’에 찍힌 일련 번호에 따라 호명하는 순으로 버스에서 내린 뒤 몸검사와 짐검사가 시작됐다. 인민군과 세관, 개성총국에서 함께 관리하는 CIQ에서는 가방을 열어 일일이 모든 것을 체크한다.CIQ 멀리 평화롭게 보이는 기정동 마을이 한적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카메라는 몇 ㎜입네까?”라며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위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여행의 재미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CIQ 뒤편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평양 아리랑 총회사 소속 직원들이 술과 기념품을 판매한다. 판매원 김윤화(21)씨는 “시내에 들어가면 술 한병에 여기보다 다섯달라(5달러) 이상 비싸요.”라며 권한다. 실제 개성인삼주가 이곳에서는 8달러지만 박연폭포 앞에서는 14달러를 줘야 한다. 1시간이면 달려올 거리를 3시간 만에 버스가 개성 시내로 향한다. 버스에는 20대 후반의 문광철(관광총회사 소속)씨와 조성(개성시 소속)씨 등 2명의 안내원이 동승했다. 이동중에 시내나 북한 주민 등의 사진 촬영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일행 중 한명이 “시내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라고 묻자 문씨는 “그러면 아주 불쾌한 관광이 됩네다.”라며 농담으로 응수한다. 개성으로 가는 길은 정비가 끝나지 않아 덜컹거린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 드디어 개성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중심가에는 20층은 족히 돼 보이는 아파트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낡았지만 베란다는 갖가지 화분들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주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제갈길을 재촉했다. 아파트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멀리 아파트 창문으로는 빠꼼히 버스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를 걸어보고픈 충동이 밀려 왔다. 언젠가는 마음놓고 걸어볼 날이 오겠지…. 버스는 고려 박물관(고려 성균관)에 도착했다.992년 창설된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후신으로 1308년 성균관으로 개칭됐으며, 조선시대 설립된 성균관과 구분하기 위해 고려 성균관으로 불린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1610년 재건한 것으로 입구에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박물관은 4개의 전시관과 야외전시관이 있는데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등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유물과 현화사 7층탑, 현화사비 흥국사 석탑 등 북측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입구에는 북측 화가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안내원들의 맛깔스러운 설명이 이어진다.“고려 유물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많이 약탈했습네다. 이제 북·남이 힘을 합쳐 다시 찾아와야지요.” 송도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이옥한(40) 해설원은 유물 설명중 ‘개성 깍쟁이’의 유래에 대해 “‘깍쟁이’라는 말은 ‘가게 쟁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셈이 밝아서 그런 게 아니라 상업이 번창해 가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려 박물관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선죽교에 도착했다.919년 고려 태조가 개성내 하천축조의 일환으로 건립한 돌다리지만 고려 충신 정몽주가 피살당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다리의 길이는 6.67m, 너비는 2.54m. 원래는 난간이 없었으나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난간을 둘러 보호하고 옆에다 돌다리도 하나 더 놓았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로 화려함은 없지만 정갈한 느낌이다. 안내원 한명이 다리 한편에 있는 옅은 붉은색 얼룩을 가리켰다. 그는 “이게 정몽주 선생의 피”라며 “그래서 선지교였던 이곳이 선죽교라 불리게 됐다.”는 재미있는 설명을 곁들였다. 선죽교 옆에는 정몽주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이 여러개 서 있다. 당초 일정이 개성민속여관에서 정몽주 생가인 ‘숭양서원’으로 바뀌었다. 개성민속여관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여관으로 꾸민 것으로 현재 외국인 관광객들이 묵고 있어 관람이 어렵다는 것.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7월11일 붉은기, 선죽동, 제2인민반’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북측 안내원에게 “학교 간판이냐.”고 묻자 “번지인데 이 집은 특별한 날을 기리기 위해 날짜를 적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주 영정 등이 모셔져 있는 사원에서는 개성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사원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사원 앞에 있는 간이 상점에 들르자 북한 음료가 눈에 띈다. 코카콜라와 비슷한 검은색 음료는 ‘코코아 탄산단물’이며, 환타와 같은 음료는 ‘모란봉 레몬 탄산 단물’이란다. 가격은 1달러. 냉장고에서 꺼낸 코코아 탄산단물은 달착지근한 맛이 그런대로 갈증을 풀어준다. 숭양서원을 나와 개성백화점, 김일성 동상 등을 지나 개성 남대문 로터리를 돌아 다시 선죽교 인근에 있는 자남산 여관에 마련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또다른 식사 장소로는 통일관과 영통식당, 민속여관내 식당 등이 있다.2층 식당에서는 한상 가득 개성식 식사가 차려져 나왔다. 반찬으로는 개성 약밥과 떡합석, 삼색나물, 닭고기 장과, 돼지고기 편찜, 오이소박이 등이 맛깔스럽게 차려졌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우메기’. 종업원 김영실씨는 “찹쌀 70%에 멥쌀 30%로 만들었는데 기름에 튀긴 뒤 떡 위에 우묵우묵 칼자국을 내서 ‘우메기’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김치는 왜 안 나오느냐고 묻자 “개성은 보쌈김치가 유명한데 그건 겨울에 오셔야 합네다.”라고 덧붙인다. 식사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비슷하지만 11첩 반상기와 단고기(개고기) 정식 등이 나오기도 한다. 개성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박연폭포로 가는 길은 제주도 오름을 연상시킬 만큼 널찍한 초원이 반긴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주변은 나무가 많지 않은 구릉들로, 푸른 초원이 덮여 있어 절로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1992년 김일성 80회 생일에 완공된 이 고속도로는 북한 최초의 아스팔트 4차선 도로다. 평양까지는 160㎞로 승용차로 1시간30분 걸린다고 한다. 도로 주변에서는 옥수수 밭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농부들이 노란 옥수수를 수확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감시원이 있어) 멋진 경치를 눈으로만 담아와야 했다. 200m 남짓한 숲길을 오르자 박연폭포가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 붓는다.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이 북쪽 계곡을 따라 흐르다 못을 만들고 그 아래 37m 높이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폭포 위에는 박연이라는 연못이 있고, 폭포 아래 직경 40m의 고모담이란 바위 연못이 있다. 박연폭포는 화강암벽의 순수 자연폭포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한반도의 ‘3대 폭포’로 꼽힌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와 함께 인근 소나무, 화강암벽이 자연스레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폭포수 아래 동쪽 언덕에는 법사정이라는 정자가, 서쪽에는 용바위라는 둥근 바위가 각각 절묘한 미색을 자랑한다. 자남산 여관 서점에서 산 ‘개성관광안내 책자’에 따르면 ‘옛날 퉁소를 잘부는 박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곳 물가에서 퉁소를 부는 그에게 끌리어 물 밖에 나온 용왕의 딸이 박진사를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같이 살았다고 하여 ‘박연’이라고 한다. 그 아래 고모담은 박진사의 어미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 통곡하다가 물에 떨어져 ‘어미담’ 또는 ‘고모담’이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 박연폭포 위 대흥산성에 오르면 위에서 박연폭포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흙길이지만 진흙과 모래가 섞여 있는 마사토로 질지 않다. 1시간 남짓 박연폭포를 돌아본 뒤 짧은 개성 관광이 마무리됐다. 버스에 오르라는 안내원들의 재촉에 “여행이 수박 겉핥기 식이다. 너무 짧다.”며 곳곳에서는 아쉬움 섞인 푸념들이 들려 왔다. 박연폭포에서 내려가는 길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왔다. 반세기 만에 찾은 남측 손님들의 아쉬움을 아는지 하늘에서는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졌다. ■ 꼭보자 베스트3 개성은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인 고려의 500년 도읍지였던 만큼 고려 건국시조인 왕건왕릉과 고려 31대 공민왕릉, 고려민속박물관, 선죽교, 영통사 등 고려 유적지가 주류를 이룬다. - 왕건왕릉(북한 사적 제53호) 개성에서 북서쪽으로 6㎞ 떨어진 해선리의 만수산 자락에 있는 왕건왕릉과 신혜왕후 무덤은 왕건의 뜻에 따라 검소하게 만들어졌다. 왕릉은 1994년 새롭게 단장됐다. 3단 축조의 웅장한 무덤과 그 앞에 문무관의 석인상, 호랑이와 양을 비롯한 석조군상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능문과 제당도 갖춰져 있다. 무덤안을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으며, 능앞에 넓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최근 왕릉에서 청동의 왕건조각상이 출토돼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등신대의 인물조각상으로 연구가치가 높다. - 공민왕릉(북한 국보급문화재 제39호) 개성에서 서쪽으로 9.8㎞ 떨어진 개풍군 해선리 봉명산 문선봉 아래에 있는 무덤은 쌍분으로 왼편이 고려 31대 공민왕의 현릉이고, 오른편이 부인 노국공주의 정릉이다. 이 무덤은 남한에서 주로 보는 왕릉과 달리 3개의 층단으로 구성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봉분의 높이는 6.5m. 각 봉분에는 12각의 병풍석을 돌리고 12지신상과 연꽃무늬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공민왕은 1365년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애통한 나머지 9년 동안 자신이 직접 주관, 방대한 조영사업을 벌였다. 이 왕릉에는 고려시대 수학, 천문, 지리, 건축, 예술 등 총체적인 역량이 집대성돼 있다. - 영통사(북한 보물급 문화재 35~38호) 1027년(현종 18년) 창건되었다. 고려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어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행차해 분향하였으며, 인연이 있는 왕들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진영각이 있었다. 대각국사 의천도 이곳에서 교관을 배웠으며, 입적한 후에는 그의 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언제 폐사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문화재로는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36호인 영통사대각국사비, 제37호인 영통사 당간지주, 제35호인 영통사동삼층석탑, 제38호인 영통사서삼층석탑, 국보급문화재 제37호인 영통사오층탑이 있고 보광원, 중각원 등이 있다. ■ 3가지 코스 중 고르세요 개성관광은 ‘고려반’‘박연반’‘왕릉반’ 등 3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1개 코스를 택하게 돼 있다. 고려반은 오전 개성시내관광(고려박물관, 선죽교, 개성민속여관), 오후 박연폭포를 참관하는 코스이며, 박연반은 오전 박연폭포, 오후 개성시내 관광을 하는 것. 왕릉반은 공민왕릉과 왕건릉을 참관한 뒤 오후에 개성시내관광을 하는 것이다. 관광은 대략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쯤 모두 끝나게 되며, 돌아오는 길에 개성공단 시범단지를 견학한다. 관광 중 세부적인 해설은 북측의 전문 해설원들이 맡게 되며, 점심식사는 개성시내에 있는 자남산호텔식당이나 영통식당, 통일관, 민속여관내 민속식당 등에서 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아산에 따르면 본 관광 시기와 요금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3차례 실시된 시범관광의 경우 관광요금 17만 4000원과 식대 2만 1000원을 포함해 19만 5000원인데 본 관광 요금이 이보다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 개성관광에 대한 문의 및 예약은 현대아산 (02) 3669-3000.
  •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31일 착공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이 31일 오전 금강산에서 열린다. 착공식에는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및 장재언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 등 남북한 당국자들과 마침 상봉을 위해 금강산에 와있는 남북의 이산가족 534명이 참석한다. 이산상봉 제도화를 지향하는 면회소가 세워질 위치는 강원도 금강산 온정리 조포마을 앞구역이다.1만 5000평의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12층 의 건물이 세워지는데, 연면적 6000평 규모다. 면회소동의 1∼2층은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행사장과 회의실, 편의시설이 들어선다.3∼4층에는 호텔구조의 객실 78실(2인1실 76개, 스위트룸 2개)이 설치되고,5∼12층은 콘도미니엄구조의 128실(가족실 126개, 스위트룸 2개)이 마련된다. 결국 3∼12층까지 총 객실 206실로, 최대 1000명 수용이 가능하다. 정부 관계자는 “금강산 면회소의 완공기간은 20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해,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오는 2007년 4월 완공될 전망이다.금강산 공동취재단·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금강산서도 ‘옥류관 냉면’ 맛본다

    9월1일부터 금강산에서도 평양 ‘옥류관’ 냉면을 즐길 수 있다. 현대아산은 31일 금강패밀리비치호텔(가족호텔),9월1일 온정각 동관과 평양 옥류관 금강산 분점 등 새로운 명소를 개관한다고 30일 밝혔다. 금강산 옥류관은 평양 옥류관에서 파견된 요리사와 접대원들이 금강산에 상주하며 옥류관의 맛과 멋을 그대로 재현한다.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 900평 규모로 한번에 460여명이 이용할 수 있다. 물냉면은 12달러, 쟁반냉면은 15달러로 녹두지짐과 김치가 무료로 제공된다. 소고기 자연송이볶음, 흑돼지 삼겹불고기, 타조불고기, 오리불고기, 소꼬리곰탕 등은 8∼15달러다.연건평 2228평에 96실 규모인 가족호텔은 5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금강산 해수욕장과 가깝고 내년 가을 개장 예정인 금강산 골프장(18홀)이 바로 뒤에 있다. 기존 온정각휴게소 맞은 편에 들어서는 온정각 동관은 2층 연면적 1300평 규모로 푸드코트와 커피숍을 갖추고 있다. 향후 대형 면세점과, 하이트광장도 문 열 예정이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현정은 회장 금강산 체류 대북사업 어떻게 풀까

    현정은 회장 금강산 체류 대북사업 어떻게 풀까

    대북사업 ‘홀로서기’에 나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윤규 부회장 사퇴에 이은 북측의 반발이라는 의외의 암초를 만나게 됐다.31일부터 금강산에 머물 예정인 현 회장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현대그룹에 따르면 현 회장은 31일 금강산 현지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 가족호텔 개관식과 9월1일 옥류관 개관식에 참석한다.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등도 동행한다. 현 회장은 이번 방북기간 공식 행사외에 북측과 별도의 자리를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11차 이산가족 2진 상봉

    제11차 남북이산가족 2차 상봉이 29일 금강산에서 이뤄졌다. 남측 이산가족 430명은 이날 오후 금강산 온정각 휴게소에서 북측 가족 100명과 단체상봉 행사를 갖고 만찬을 함께 했다. 이번 상봉에서는 남측 상봉단의 최고령자인 홍재희(95) 할머니가 북측의 아들 채수웅(71)씨와 만났고, 북측 최고령자인 이영(80) 할아버지는 승주(72)씨 등 남측의 동생 5명과 상봉했다. 상봉단은 30일 개별 상봉과 공동 중식, 삼일포 참관을 한 뒤 31일 작별 상봉을 하고 귀환한다. 한편 31일에는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이 금강산에서 남북 공동으로 개최된다.금강산 공동취재단 김상연기자carlos@seoul.co.kr
  • “널 또 버리고 가나”

    “널 또 버리고 가나”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단 99명과 가족 등 140여명은 28일 금강산에서 눈물과 통곡 속에 상봉을 마치고 기약없는 작별을 했다.50년의 상봉을 하기에는 이산가족에게 2박 3일이란 일정은 너무 짧았고,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11시간 남짓이었다. 상봉을 마치고 돌아오던 이산가족들은 북측이 사진취재단의 북측지역 사진촬영을 문제삼는 바람에 1시간동안 귀환이 지연되기도 했다. 북측 가족 100명을 만날 남측의 2차 상봉단 430명은 이날 속초에 도착했으며,29일부터 2박3일 동안의 상봉을 갖는다. ●이산의 아픔을 절감케 한 짧은 만남 이날 작별 상봉장이 마련된 금강산 호텔 2층에는 긴 이별 끝에 가졌던 꿈같은 시간을 뒤로 하고 남과 북으로 갈라서야 하는 이산 가족들이 곳곳에서 오열을 터뜨려 장내는 눈물바다를 이뤘다. 김성규(82)씨가 들어서자마자 막내 여동생 정옥(64)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울음부터 터뜨렸다. 아무 말도 못한 채 오빠의 팔을 붙잡고 계속 눈물을 떨구는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김씨는 “열심히 살아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작별상봉이 끝났음을 알리는 순간, 상봉장 곳곳에선 통곡이 터져 나왔다. 김기심(86)씨는 딸 최희순(63)씨가 어릴 적 어머니가 불러주던 노래라며 동요 ‘만남’을 부르며 달래자 “딸을 버리고 가는 엄마가 무슨 엄마냐.”며 통곡했다. 남쪽 가족들이 먼저 차에 오른 뒤 북쪽 가족들은 호텔 앞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이산가족들은 차창을 열고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빠, 나 가요.”,“또 만나요.”,“건강하세요.” 등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인사말을 건넸다. 북쪽 형 일웅(74)씨를 만난 김치웅(65)씨는 붉어진 눈으로 “괜히 왔어. 마음만 더 아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성인(83)씨의 북쪽 막내 여동생 덕연(73)씨는 자기를 부르는 언니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버스에 접근하지 말라.’는 북쪽 안내원의 제지로 끝내 손 한번 붙잡지 못했다. 북측이 이날 금강산 작별상봉을 마치고 귀환하다 북측 출입사무소(CIQ)를 촬영한 남측 공동취재단의 한 사진기자에게 ‘사죄문’ 작성과 벌금을 요구했다. 해당기자를 사무실로 데려가 경위를 조사했으며, 해당 기자가 유감 입장을 담은 문건과 미화 500달러의 벌금을 내고 일단락됐다. 이 때문에 남측 이산가족들은 버스에 탄 채 1시간여 동안 기다리는 불편을 겪었다. ●“혹시 도청기 설치된 것은 아닌지…”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상봉 이틀째인 27일 오후 금강산 삼일포를 둘러봤다. 이산가족들은 나들이 내내 손을 꼭 잡거나 어깨를 정겹게 두른 채 호수 주변을 거닐었으며 사진과 비디오도 연달아 찍었다. 최근 남한의 ‘도청 정국’ 탓인지 남한에서 올라온 이산가족들이 개별상봉을 앞두고 “방에 혹시 도청기가 설치되지 않았느냐.”고 잇따라 문의하면서 도청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서울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11차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시작

    제1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6일 금강산에서 시작됐다.31일까지 남측 99가족과 북측 100가족이 각각 북과 남의 이산가족을 만난다. 당초 남측도 100가족이었으나, 전날 1명이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안타깝게 불참하게 됐다. 이날 상봉에서는 특히 남측 오현웅(62)씨가 국군포로 출신으로 이미 사망한 형 현원씨의 부인 홍재화(69)씨와 아들 영철(39)씨를 만났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선죽교 55년전 그대론데… ” 실향민 탄식

    금강산에 이어 개성 관광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개성, 개풍, 장단 출신 실향민 250여명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김종민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 관계자, 내외신 기자 70여명 등 500명으로 구성된 1차 개성시범관광단이 26일 당일일정으로 개성을 관광하고 돌아왔다. 개성시범관광단은 26일 오전 6시 버스 15대에 나눠타고 서울 경복궁 주차장을 출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로 이동해 수속을 마친뒤 8시쯤 군사분계선을 통과했다. ●주택·아파트 창가마다 꽃병 내걸어 북측 출입절차를 마치고 개성땅에 발을 내디딘 시간은 서울을 출발한지 3시간만인 오전 9시였다. 버스에서 내려 거리를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눈앞에서 개성시민들이 사는 모습을 보게 된 실향민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기와를 얹은 ‘땅집(단층집)’이나 20층짜리 아파트까지 남루한 행색이었지만 창문마다 꽃병을 내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범관광단은 고려박물관, 성균관, 선죽교, 숭양서원, 개성에서 북으로 약 24㎞ 떨어진 박연폭포 등 유적지와 개성공업지구를 둘러봤다. 공민왕릉, 왕건왕릉, 영통사 등 다른 유적지는 2,3차 관광단에 공개될 예정이다. 100세를 눈앞에 두고도 고향이 개성시 운학동 473번지라고 또렷하게 기억하는 송한덕(97)옹은 “이렇게 가까운 고향을 여태 다녀오지 못한게 안타깝기만 하다.”면서 “죽기전에 고향을 땅을 밟게 돼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라며 기뻐했다. 정몽주의 충절이 스며있는 선죽교에서는 윤정덕(71)씨가 빛바랜 사진으로 추억을 더듬었다.1950년 3월1일 선배, 친구와 선죽교에 놀러와서 찍은 사진속의 선죽교는 55년이 지나도록 그대로였다. 윤씨는 “서울과 미국에 살고 있는 사진속의 선배, 친구와 함께 다시 선죽교를 와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남산여관, 민속여관, 통일관, 영통식당 등 현지식당의 점심 메뉴는 녹두지짐, 두부전, 깻잎조림, 계란 스크램블, 오이소박이, 닭고기조림, 단고기찜, 잡채 등 갖가지 반찬에 콩나물국이 곁들여졌다. 개성약밥과 우메기(찹쌀떡의 일종), 각종 송편도 즐길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50년전 개성음식 맛이 많이 남아있다.”며 만족해했다. ●박연폭포 창 한바탕에 현회장 ‘덩실´ ‘송도삼절’로 유명한 박연폭포는 마침 전날 내린 비로 37m높이에서 장쾌한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홍성덕(60·여) 광주시립국극단장이 황진이가 지은 ‘박연폭포’를 한바탕 불러제치자 현정은 회장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등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다. 꿈같은 개성관광은 오후 4시쯤 끝났다. 관광단이 오후 5시30분 군사분계선을 넘어 입경수속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20분. 개성에 여동생이 살고 있다는 김영두(81)·영휘(76)씨 형제는 “관광도 좋지만 바로앞에 동생을 두고도 수소문도 못해보고 돌아가 너무 아쉽다.”며 자꾸 뒤를 돌아봤다. 갑자기 무릎이 아파 휠체어를 타고 개성관광을 ‘강행’한 임환기(78)씨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개성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납북자 생사확인 합의 실패

    남북은 23∼25일 금강산에서 열린 제6차 적십자회담에서 전쟁시기 이후 납북자의 생사 및 주소확인 작업을 놓고 의견이 엇갈려 합의문 도출에 실패했다. 양측은 대신 개최 사실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채택하고 회담을 마무리했다. 적십자회담에서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하기는 2001년 1월 제3차 회담 이후 4년 7개월 만이다. 남북은 이날 공동보도문에서 회담 개최 사실을 명기한 뒤 “쌍방은 적지 않은 부분에서 의견 접근을 이뤘으며 일부 문제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한다.”고 밝혔다. 남북은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대면상봉 행사를 올해 안에 1차례, 화상상봉은 2∼3차례 더 개최한다는 데 의견 접근을 이뤘으며, 생사확인이 이뤄졌거나 이미 상봉한 2만여명의 남측 가족이 북측 가족과 서신교환을 한다는 원칙에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합의문 도출에 실패함에 따라 향후 논의 과제로 남게 됐다.금강산 공동취재단·김상연기자carlos@seoul.co.kr
  • 386세대 포크뮤지션 총출동

    윤도현밴드, 강산에, 안치환과 자유, 동물원, 유리상자. 지난 1980∼90년대 한국 포크음악의 흐름을 이끌며 386세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포크 뮤지션들이 한 무대에 오른다. 새달 10일 오후 7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포크페스티벌 ‘축제’공연을 통해서다.‘축제’는 지난해 9월 1만 5000여명을 동원해 시즌 최고의 티켓 판매를 기록, 화제가 됐던 공연. 올해로 2회째다. 초대된 가수는 2002 월드컵 이후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른 윤도현밴드,‘넌 할 수 있어’‘라구요’의 강산에, 민중가요에 대중성을 불어넣은 안치환과 자유,‘시청앞 지하철 역에서’‘혜화동’ 등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80년대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동물원, 감미로운 선율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유리상자 등 다섯팀이다. CBS와 키위 마케팅 회사인 ㈜제스프리 인터내셔널이 공동 주최하는 올해 페스티벌은 티켓판매금 전액이 농어촌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된다. 또 청바지 차림의 관객들에게는 선착순 2000명에게 티셔츠와 키위세트를 선물로 증정한다. 공연의 홈페이지(www.festival2005.co.kr)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02-2650-7481∼3.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남북적십자회담 “화상상봉 연내 3~4번 더”

    남북은 24일 금강산에서 제6차 적십자회담 이틀째 회의를 갖고 이산가족 화상상봉을 올해 안에 3∼4차례 실시한다는 데 의견 접근을 이뤘다. 그러나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서는 대상과 주소확인 방법 등을 놓고 입장이 엇갈려 진통을 겪었다. 오전과 오후 3차례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대표접촉에서 남측은 화상상봉에 참여하는 이산가족의 규모 확대와 함께 상봉 정례화(월 1회)를 제안했다. 북측도 화상상봉을 지속적으로 실시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정례화 추진에 대해서는 계속 협의하자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화상상봉에 참여하는 이산가족 규모는 시범실시한 8·15 화상상봉(남 20명, 북 20명) 때보다 확대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생사 및 주소 확인 작업과 관련, 북측은 논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과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특수 이산가족 형태로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포함시켰던 관례대로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는 전쟁시기뿐만 아니라 전후 납북자까지 생사확인 대상에 올릴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지만 북측은 전후까지 논의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한 남측은 생사확인이 이뤄진 이산가족이나 이미 상봉을 한 가족을 중심으로 매달 서신 교환을 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북측은 화상상봉 시스템을 통해 서신교환을 하자며 수정 제의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6·25 행불자 생사 北, 의제로 첫 제시

    북한이 또 한번의 전격적인 태도변화를 보일까. 23일 금강산에서 사흘간 일정으로 개막된 제6차 남북 적십자회담이 주목받고 있다. 중단된지 1년9개월여만에 재개된 이번 회담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뭔가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남북간 ‘뜨거운 감자’인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에 대해 북측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론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일부 납북자 가족이 보통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비공식적으로’ 상봉의 기쁨을 나눈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북측이 우리측 현충원을 전격 참배하고 국회를 방문하는 등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전향적 자세변화를 잇따라 선보임에 따라,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에서도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첫날 회담 분위기도 긍정적이다. 북측은 이날 전체회의 기조발언을 통해 전쟁시기 행방불명자 생사확인을 의제로 제시함에 따라 국군포로 등의 논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와 함께 금강산 면회소 건설 추진, 화상상봉,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등을 의제로 내미는 등 남측과 거의 일치된 ‘코드’를 형성했다. 남측 회담 관계자는 “양측이 공히 의제로 제시한 ‘전쟁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자’에는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도 포함된다는 것에 상호 인식하고 있는 상태”라며 “양측이 상당부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북한 적십자사가 1972년 홍어잡이 도중 납북된 어선 ‘오대양 61호’ 선장 박두남(당시 38세)씨의 사망 사실을 최근 대한적십자사에 통보해온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이에 따라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납북자 490여명 가운데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11명이 남쪽 가족과 재회를 했으며, 박씨를 포함해 사망자가 10명, 생사확인 불가능으로 통보된 납북자가 31명인 것으로 각각 집계됐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개성시범관광 26일부터 3차례

    금강산에 이어 개성도 남측 일반인들이 관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현대아산은 개성 시범관광을 오는 26일과 9월 2일,7일 등 3차례에 걸쳐 실시하기로 18일 북측과 전격 합의했다고 밝혔다. 개성관광은 지난 달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면담에서 결정됐지만 이후 관광비용 등의 문제로 난항을 겪어왔다. 관광인원은 한차례에 500명씩 1500명으로 일반인도 가능하며 비용은 아직 미정이지만 1인당 20만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시범관광단은 출발일 아침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 집결해 버스를 타고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로 이동, 출국 수속후 경의선 육로를 통해 개성으로 들어간다. 옛 왕궁터인 만월대와 선죽교, 성균관, 왕건·공민왕릉 등 개성시내의 주요 유적지를 둘러본 뒤 1시간 거리의 박연폭포까지 구경하고 당일 저녁 돌아오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개성시내를 통과하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지 설명을 북측 해설원들이 직접 맡고 점심도 개성시내 식당에서 먹어 금강산보다 북측의 문화를 직접 체험할 기회도 많다. 개성은 자유로를 이용하면 70㎞에 불과해 통관심사까지 포함해 서울에서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지난 2000년 8월 개성을 공단으로 개발하기로 북측과 합의한 현대아산은 2003년 2월 고 정몽헌 회장 일행이 최초로 경의선 육로를 통해 개성 답사를 실시했고 지난 해 12월에는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이 생산되는 등 꾸준한 성과를 내왔다. 현대아산은 시범관광을 진행한 뒤 특별한 문제점이 없으면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본관광을 추진할 계획이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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