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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특사 방중] 남북관계 대화국면 바뀌나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을 계기로 꽉 막힌 남북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 총정치국장이 23일 류윈산(劉云山)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나 “관련국들과 대화에 나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최 총정치국장은 이번 한반도 위기국면을 주도한 북한 김정은 체제의 주요 인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그의 언급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북한이 그동안 펼쳐온 위기 고조 상황을 대화를 축으로 하는 외교협상의 국면으로 방향 전환을 꾀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 총정치국장이 이날 밝힌 관련국이 어떤 나라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중국을 비롯해 미국과 한국, 일본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을 지칭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특사 파견을 통해 중국에 대화 의지를 전달하고 다음 달 7~8일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화국면으로 전환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룡해 특사의 언급을 보면 현재의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대화로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개성공단 잠정폐쇄 등으로 냉랭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남한에 대해서도 대화 재개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최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특사로 파견한 것과 때를 맞춰 우리 측 민간단체에 6·15공동선언 13주년 행사를 남북이 함께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한·중·일 3국과의 관계 회복에 동시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미·중, 한·중 정상회담이 연달아 열리는 6월을 분수령 삼아 7·27정전협정 60주년 이전에 대북 압박 국면을 단번에 전환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북·중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이 한반도 긴장국면 전환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중국에 보여 주려는 사전 정지작업 성격으로도 읽힌다. 북한의 반관반민 단체인 6·15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는 지난 22일 민간단체인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에 팩스를 보내 “6·15공동선언 13돌 행사를 개성 또는 금강산에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행사 장소로 개성과 금강산을 지목한 것은 남북 간 최대 현안인 이 문제부터 풀 의사가 있음을 내비치기 위한 것이란 관측도 있다. 통일부는 북한의 진정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우리 정부를 배제하고 민간단체에 먼저 이런 제안을 했다는 점에서 통민봉관(通民封官)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일본과의 관계 개선 이후 자신감을 얻은 북한이 남한 당국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점차 대남 의존도를 줄여 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파독근로자기념관장 권이종

    [김문이 만난 사람] 파독근로자기념관장 권이종

    인간의 삶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태어난 그 자체도 경이롭고, 소리 내어 울고 웃는 것도 그렇다. 때로는 슬프고, 처절하게 고생하고,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는 희로애락이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온몸으로 역경을 이기며 살아 왔다. 이 강산에서 태어나 저 강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 와서 인생의 숙제를 비로소 풀어 내며 살아간다. 막장 광부에서 교수가 되기까지 참으로 굴곡진 삶이다. 눈을 감으면 그 시절이 절로 떠올라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파독근로자기념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 권광수 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연합회장 등 30여명이 참석해 기념관 개관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방 장관은 “(파독 근로자의) 피와 땀과 외화가 우리나라 산업·경제 발전에 씨앗이 돼 이렇게 잘살고 행복한 오늘날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파독 근로자 기념관 건립은 파독 근로자들의 눈물겨운 역사와 의미를 다음 세대에까지 생생히 전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가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이 독일에 파견된 지 꼭 50년이 돼 이래저래 의미가 깊은 자리였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자 맨 처음 눈길을 끄는 글귀가 보인다. ‘당시 파독 광부의 선발 조건은 20~35세 남성이며 1년 이상 탄광 경력이 있는 자였으나 실제 경력은 거의 없다. 대학 재학생, 국회의원 비서관 등 고학력자와 그 외 여러 분야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꿈을 이루기 위해 독일행을 지원했다.’ 파독근로자기념관 권이종(73) 관장도 그런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막장 광부로 독일에 갔다가 현지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고 귀국 후 한국교원대 교수와 한국청소년개발원장 등을 지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막장 광부에서 교수가 돼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기념관 개관식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오전 권 관장과 파독근로자기념관에서 만났다. 전시실에 진열된 자료들을 설명해 주면서 당시를 회상하는 눈빛이 자못 진지하다. 아울러 기념관 개관이 얼마나 뜻깊은지를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사단법인 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연합회 상근 부회장을 맡아 2008년 연합회 창립 당시부터 준비했던 숙원 사업 중 가장 큰 일인 기념관을 이번에야 건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여 기념관 개관까지의 과정부터 먼저 물었다. “따지고 보면 독일 광부 시절 때부터 숙제였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꼭 기념관을 만들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후배들에게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독일 정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독록 규정했으나 몰래 사진을 찍고 고생했던 하루하루를 깨알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모았고, 또 유물을 가진 많은 분들의 협조로 이번에 개관을 하게 됐지요. 특히 주한 독일대사관의 적극적인 도움도 있었습니다. 독일 정부에서 관련 자료를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파독 50주년, 한·독 수교 130년에 맞춰 기념관이 들어서게 된 셈이지요.” 전시실에는 20대 초반의 권 관장이 50년 전 독일에서 남긴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막장에서 써 내려간 일기, 가족이 보낸 편지, 동료와 찍은 사진과 함께 향수에 젖을 때면 반복해서 들었다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음반도 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이러한 자료들을 훑어보며 회상에 잠긴다. 특히 얼마 전 세상을 뜬 김태우 전 연합회장의 사진과 이야기는 살뜰히 더 챙긴다. 파독 광부는 모두 2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미국과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약 2000명,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이 4000여명, 나머지는 한국에 살고 있다고 권 관장은 설명한다. 앞으로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파독 광부 출신이거나 2세, 그리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념관을 찾아 우의를 다지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치원 아이들이나 초·중등 학생들의 견학 장소로 활용하고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이들을 위한 숙소와 쉼터까지 만들 계획이다. 권 관장과 연합회에서는 기념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600페이지가 넘는 파독 광부 45년사를 만들어 기증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더니 파독 광부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1964년 12월이었습니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저희 광부들을 초청했지요.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독일 정부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온 광부들을 외교관 신분으로 해줄 것을 요청했고 육 여사는 이역만리에서 고생한다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광부들도 애국가를 부르며 모두 울었지요. 저는 그날 이후 애국가 대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부르며 향수를 달랬습니다.” 권 관장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민간인 대표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이때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떠올라 감개무량해져 역시 애국가를 부르지 못했다. 광부에서 교수가 된 자신의 인생역정도 그 순간 봇물처럼 한꺼번에 머릿속에 밀어닥쳤다. 파독 광부의 역사를 잠시 되짚어 보면 이렇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60년대 초. 마땅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인력을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정부는 독일 측과 광부 파견을 타진한 결과 1963년 첫 파독을 성사시켰다. 제1차 광부협정으로 1963년 12월 21일부터 1966년 7월 30일까지 2419명이 건너갔고 1967년부터 1969년 사이에는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제2차 협정으로 1970년 2월부터 재개됐다. 이들이 흘린 땀은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초석이 됐다. 권 관장은 1940년 전라북도 장수 오지인 초장 마을에서 태어났다. 현재 이 마을 입구에는 ‘권이종 박사가 태어난 곳’이라는 기념석이 세워져 있다. 어릴 적 꿈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장작을 만들어 파는 일, 그리고 신문 배달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때로는 닭 서리, 수박 서리, 버스 무임승차 등도 하며 가난을 이겨 내려 발버둥을 쳤다. 196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 군에 입대했다. 3년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기다리는 것은 가난한 농사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친척의 권유로 서울로 와 을지로 입구 건축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한양대 공대생이 “권형, 나하고 독일에 갈 생각 없소”라면서 당시 5급 공무원 월급(3600원)의 10배나 되는 고액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이렇게 해서 1964년 10월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에 도착한 권 관장 일행은 4주간의 독일어 교육과 3개월간의 현장 실습을 받은 뒤 메르크슈타인 지역 아돌프 탄광에 배속받았다. 이때부터 ‘파독 광부’라는 낯선 호칭으로 지하 1000여m까지 파고들어가 석탄을 캐는 막장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고 또한 자신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일단 갱도에 한 번 들어가면 작업이 끝날 때까지 나올 수 없었고 식사는 과일 한두 개와 딱딱한 독일 빵이 전부였지요. 이런 곳에서 ‘코드넘버 1622’의 이름으로 석탄 가루 묻은 빵을 씹으며 3년을 지냈어요. 지하 갱도에서 일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맑은 공기와 밝은 햇빛의 진정한 고마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독일의 아침 인사는 ‘구텐 모르겐’(Guten Morgen)이다. 하지만 광산촌 지하 갱도에서의 아침 인사는 따로 있다. 각종 사고로 언제 어떻게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할지 모르기 때문에 행운을 가지고 올라오라는 뜻으로 낮이건 밤이건 항상 ‘글뤼크 아우프’(Gluck Auf)라는 인사를 한다고 권 관장은 말했다. 그만큼 하루하루가 불안한 날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권 관장은 파독 한국 광부들은 ‘동백 아가씨’, ‘비 내리는 고모령’, ‘꿈에 본 내 고향’ 등을 부르며 시름을 달래다가 스스로 ‘광부의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고 회상했다. ‘이역 땅 머나먼 길 떠나오던 그날에, 희망도 부풀었고 눈물짓던 그날에, 지친 몸 부여안고 베갯머리 적시며, 눈물도 말랐더냐 한숨 서러워~.’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귀국을 며칠 앞두고 양어머니나 다름없이 친하게 지내던 로즈 마리 부인의 적극적인 권유로 독일에 남아 공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헨공대 교원대학에 진학한 그가 어릴 적 꿈인 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도 이때였다. 이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6년 만에 귀국길에 올라 오늘에 이르렀다. 유학 시절 만난 한국인 여학생과 결혼해 슬하에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광부에서 교수까지 됐으니 내가 가장 출세한 놈이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권이종 관장은 194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전주 신흥고를 졸업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1964년 독일로 건너가 메르크슈타인 아돌프 광산에서 3년간 일했다. 그 후 독일 아헨공대 교원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최초로 한국 학교를 설립하는 등 청소년 운동에 힘을 쏟기도 했다. 독일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후에도 청소년 운동과 교육 발전에 많은 활동을 했다. 문화관광부 청소년정책자문위원, 한국청소년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 대통령자문기구 청소년보호위원, 서울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소장 등을 지냈다. 현재 한국교원대 명예교수와 한국파독근로자기념관 관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국가발전과 사회교육’, ‘청소년지도의 실제’, ‘유럽 주요국 교육제도’, ‘맴도는 아이, 방황하는 부모’, ‘청소년의 두 얼굴’, ‘청소년학개론’, ‘파독광부 백서’, ‘독일에서 흘린 눈물’, ‘막장 광부 교수가 되다’ 등이 있다.
  • 南 123개기업 입주…9000억 투자

    개성공단은 2004년 12월 첫 생산품이 출하된 이후 한반도 화해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에도 남북 경제협력의 마지노선으로 유지됐다. 공단 가동 초반에 255명에 불과했던 북측 근로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5만 3448명으로 209배가 늘었고, 누적생산량은 지난 1월까지 20억 1703만 달러를 기록했다. 북한 근로자들에게 간식으로 지급되는 초코파이와 신라면은 북한 전역의 장마당으로 퍼지며 개혁·개방의 아이콘이 됐다. 개성공단 사업은 2000년 현대아산과 북측 간 ‘공업지구개발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된 지 3년 만인 2003년 6월 첫 삽을 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북측으로부터 50년간 토지 사용권을 확보하고, 총 3단계에 걸쳐 66.1㎢(2000만평)를 개발하기로 했다. 현재는 1단계 100만평 규모의 기반 공사가 종료된 가운데 섬유, 기계·금속, 전기·전자 업종을 중심으로 남측 중소기업 123개사가 입주해 있다. 남측 자본은 기반시설과 생산 설비 등에 총 9000여억원이 투자됐다. 남북관계 경색에도 개성공단은 성장해 왔다. 북측 근로자 1인당 월평균 134달러(약 15만원)의 저렴한 인건비는 중소기업들에 새로운 활로가 됐다. 북한도 개성공단을 통해 연간 8000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확보했다. 개성공단이 첫 가동된 후 지난해 7월까지 북측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임금 누적 총액(사회보험료 포함)은 2억 4570만 달러에 이른다.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개성공단을 방문한 남측 인원은 82만여명으로 집계된다. 남북은 개성공단 내 자산에 대해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를 통해 투자자산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북측이 금강산에 투자된 남측 자산을 몰수·압류한 전례가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북측이 향후 개성공단의 우리 측 자산을 동결하거나 몰수하는 조치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제기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5집 낸 클래지콰이·블루스의 모든 것

    5집 낸 클래지콰이·블루스의 모든 것

    음악성으로 똘똘 뭉친 음악인들을 초대해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는 오랜만에 음반을 낸 클래지콰이와 감성에 충실한 블루스를 선사하는 음악인들을 만난다. 4일 밤 12시 5분에 방송되는 ‘공감’에서 클래지콰이는 지난 2월 3년 6개월 만에 낸 5집 음반 ‘블레스드’에 수록된 다양한 음악을 선사할 예정이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가사와 세련된 사운드로 한국 일렉트로닉팝의 새 장을 연 클래지콰이는 2002년에 데뷔해 정규 음반 4장과 기획 음반 4장을 냈다. 지난 10년간 하우스, 라운지, 애시드재즈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 그룹이다. 클래지콰이는 이번 음반에 밝고 경쾌한 하우스 비트와 달콤한 노랫말을 접목한 음악을 담고 잔잔한 어쿠스틱팝부터 강렬한 록 사운드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리듬과 구성으로 무장했다. 타이틀곡 ‘스위트 네임’을 비롯해 3월의 신부가 된 보컬 호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연상되는 ‘러브 레시피’, 알렉스의 시원한 보컬이 매력적인 ‘꽃잎 같은 먼지가’, 라틴 리듬과 팝의 멜로디를 가미한 ‘사랑도 간다’, 어쿠스틱 사운드가 매력적인 이별 노래 ‘여전히’까지 풍성한 만찬이다. 이번 음반을 두고 “사랑으로 충만한 앨범”이라고 소개한 클래지콰이는 5집에 수록된 달콤한 러브송을 비롯해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던 히트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새벽 1시에 이어지는 방송에서는 ‘그야말로 블루스, 더욱더 블루스’를 주제로 블루스의 모든 것을 선사한다. 깜악귀, 김대중, 박형곤, CR태규, 림지훈, 하헌진×김간지, 강산에, 강허달림, 로다운30, 김마스타, 김태춘, 조이엄 등 음악인 12팀은 지난해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 ‘블루스 더, 블루스’를 내기도 했다. 고전적인 1930년대 미국 컨트리 블루스부터 한국식 정서를 담은 포크 블루스, 독특한 카바레풍 블루스까지 각 팀의 다양한 해석이 담긴 음반에서는 블루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느낄 수 있다. “블루스는 언제나 새롭다. 블루스는 멀지 않고 언제나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말하는 깜악귀는 블루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무대를 선사한다. 깜악귀, 김대중, 박형곤, CR태규 등 일명 ‘블루스 사방신’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음악을 뒷받침하는 음악인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오르가니스트 림지훈만의 독특한 블루스와 하헌진×김간지의 특별 무대가 준비돼 있다. 그저 과거의 장르로 남거나 기성곡을 재해석하는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음악 장르로서 블루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금강산관광 중단 피해액 수십억… 북핵실험 소식에 눈물만”

    “금강산관광 중단 피해액 수십억… 북핵실험 소식에 눈물만”

    “아들놈이 전화로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말하는데 너무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2001년부터 북한 금강산 관광특구에 15억원을 투자한 레포츠라인 대표 김희주(왼쪽·51)씨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소식에 다시 한번 절망했다. 금강산 현지에서 4륜바이크와 자전거 등을 대여하는 사업을 하던 그는 2008년 7월 우리나라 관광객 박왕자씨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문을 닫았다. 그날 이후 4년 넘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은 상태다. 김씨의 손해는 30억원에 이른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푼돈이라도 벌 생각에 경기 파주 출판단지에서 교정 업무를 본다는 김씨는 13일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오늘까지 경희대에 입학한 막내딸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정말 막막하다”면서 “큰아들도 대학생인데, 애들 공부시키려고 장기 매매까지도 알아봤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새 정부의 대북 기조는 대화와 소통이라고 해 한껏 기대를 했는데 찬물을 뿌리듯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하니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어제 북한 핵실험 뉴스를 접하고서 쓰러질 뻔했어요. 북한 당국은 물론이고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하는 정부도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금강산코퍼레이션 대표인 이종흥(오른쪽·53)씨도 2007년 5월 금강산 관광지구에 20억원을 투자했다. 호텔과 골프장에 납품할 맥주공장을 가동했고, 귀금속과 초콜릿, 허브, 생활용품을 파는 매장을 5개나 운영했지만 13개월 만에 중단됐다. 피해액은 현재 38억원까지 불어난 상황이다. 그는 원래 잘 나가던 ‘삼성맨’이었다.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퇴직하기 전인 49세에 삼성그룹 계열사의 상무까지 지냈다. 이씨는 “한때 직원 11명을 거느렸지만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화장품부터 소변검사기까지 안 팔아 본 것이 없다”면서 “지금은 상조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특구에 진출한 중소업체는 40여개, 투자금은 1330억원에 이른다. 금강산지구기업협의회 최요식(62) 회장은 “과거 금강산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지금 대부분 대리기사, 택시기사, 막노동 등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면서 “남북관계가 꼬이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들이 느끼는 충격은 상상도 못하는데 정초부터 다시 좌절에 빠졌다”고 전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갈등과 분열 넘어 국민행복시대 열자”

    새해 계사년(癸巳年)을 1주일 앞둔 25일 각 종교 수장들이 일제히 신년사를 발표,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행복을 기원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새해 나라 안팎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국민들이 슬기롭게 대처하기를 당부했다. 각 종교 수장들은 특히 경제사정이 어려운 시기, 새 대통령 취임을 맞아 화합과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종교계가 국민 통합과 일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불교, 개신교, 민족종교 증산도 수장들의 신년사·법어를 요약한다. 말이 여위면 털이 길다… 참 ‘나’를 찾자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비었음이나 신령(神靈)하고. 공(空)함이나 묘(妙)함이라. 일단광명(一段光明)이 생불(生佛)의 요긴한 기틀이요, 확철시방(廓徹十方)이 범성(凡聖)의 주처(住處)로다. 계사년 새 아침에 온 국민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고, 우리 강산에 무궁화가 만발하소서. 인생을 빈한하게 사는 것은 지혜가 짧기 때문이요, 말이 여위면 털이 길다. 우리 모두 일상생활 속에 ‘부모에게서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하고 오매불망 간절히 의심하고 또 의심할지어다. 한국교회 공공성 회복 원년으로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힌 갈등과 분열의 골이 메워지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갈등과 분열의 골을 메우는 정의와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올해가 한국교회 공공성 회복의 원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종교, 문화, 사회적 배타성의 한계를 넘어서 평화를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도구로 다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과 기도가 절실할 때입니다. 이 거룩한 길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한국교회와 사회 위에 소망의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음지에서 고통 받는자 회복되길 ●홍재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지난 2012년은 시련과 고난과 은혜와 영광이 교차되는 한 해였음을 우리 모두가 고백합니다. 금년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제18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입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새해에도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부흥과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국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일로매진하겠습니다. 2013년 한 해는 사회의 음지에서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회복되고, 국민 행복시대가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생의 나눔 실천하는 불자되자 ●진각종 통리원장 혜정 정사 새해를 맞아 세우는 우리들의 서원은 비움과 채움, 그리고 나눔으로 성취되어야 합니다. 올 한 해도 세계 경제와 정치는 어렵고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 또한 어렵고 힘들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부처님과 같이 탐진치(貪瞋痴)를 비우고 지비용(智悲勇)을 채우며 상생(相生)의 나눔을 실천하는 불자가 되어 공감하는 불교의 미래를 밝혀 나아가야 합니다. 참된 신행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이 바로 복과 지혜 가득한 행복임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행복한 사회·부강한 나라 되도록 ●태고종 총무원장 인공 스님 모두가 행복해지고 국가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루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한 해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한층 더 노력한다면 세계질서를 만들어 가는 지도적 위치에 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내면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용기와 열정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 부강한 나라가 되도록 미래를 가꾸어 나아갑시다. 아프고 외로운이들과 함께하자 ●천태종 총무원장 도정 스님 2013년은 어느 해보다 많은 변화가 기대되는 중요한 해입니다. 새 지도자를 맞은 우리나라는 의식의 변화와 사회구조의 혁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모든 종교인들이 자세를 더 낮추어 겸허하고, 더 먼 길을 달려가 아픈 이를 보듬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 외로운 이들과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일체가 둘이 아님을 사무쳐 알고 만물이 내 몸에 계합(契合)해 있음을 절실히 이해하면, 장삼이사(張三李四)가 한솥밥을 먹고 토끼와 범이 한굴에 머물게 됩니다. 분열과 대립을 넘어 화합과 상생의 세상을 가꾸어 갑시다. 뿌리를 찾고 역사 바로 세워야 ●안경전 증산도 종도사 지금은 사람과 만물이 뿌리의 기운을 모아 각기 소망하는 열매를 맺는 ‘천지의 가을 문턱’에 들어서는 때입니다. 아무리 원대한 내일을 꿈꾼다 해도 뿌리로부터의 이탈은 곧 죽음이요 소멸입니다. 그것은 한 민족이나 한 나라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희망찬 내일을 기대할수록, 내 뿌리를 돌아보고 내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계사년 새해, 모든 이가 뿌리를 찾아 근본으로 돌아가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마음으로 나의 꿈과 세상의 평화를 이루어 모두가 상생(相生)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8)대구 종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28)대구 종로

    조선 시대 도성에는 종루가 있었다. 종루에서 나오는 종소리로 도성의 문을 여닫았다. 종소리는 시계가 보급되기 전, 사람들이 시간을 인식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종소리가 들리는 만큼을 도성의 중심으로 여겼다. 서울의 중심에 종루가 있었다면 대구에도 읍성 남쪽에 종루가 있었다. 그 앞을 지나는 길은 서울이든 대구든 종로로 불린다.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종루는 소리를 잃었지만 종로는 도시의 중심을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1904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종로는 중심 통로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어갔다. 이 사업을 계기로 일본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대구에 진출했고 이들은 대구역 인근 북성로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일제는 자국민을 위해 신작로를 뚫었다. 경상감영 앞을 동서로 지나는 거리를 만들어 여기에 관청과 금융기관 등을 속속 입주시키며 종로의 세를 조금씩 빼앗아 갔다. 대신 종로에는 요정들이 들어와 대구의 밤 문화를 지배했다. 종로와 수동, 상서동 일대만 요정이 50개를 넘었고 수백명의 기생들이 드나들어 1960년대 후반까지도 불야성을 이뤘다. 종로는 화교들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1905년부터 화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방 직후 화교들의 경제활동이 크게 번창하면서 종로 일대의 부지를 매입하여 특색 있는 건물을 지었다. 당시 대구 화교의 지도자였던 모문금, 연보주 같은 이들의 역할이 컸다. 화교협회, 화교 소학교와 중학교, 화교성당, 화교교회, 그리고 1920년대에 문을 연 지역 최고의 청요릿집 군방각 같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들 건물은 중국인 기술자들이 평양에서 구워온 붉은 벽돌과 금강산에서 베어온 나무로 지었다고 한다. 1950년 5000명이 넘기도 했던 대구 화교들은 이후 정부의 외국인등록제, 외국인 토지소유금지법 등 여러 규제로 타이완, 미국 등지로 터전을 옮겨 지금은 950여명에 그치고 있다. 화교들에 이어 종로 상권을 장악한 것은 가구상들이었다. 목공소와 농방 등 소규모 점포 5~6개가 들어서면서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한 가구거리의 면모는 1950년대 후반 ‘가구사’란 간판들이 잇따라 내걸리면서 일반인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10여년 동안 꾸준히 가구점이 늘어 1970년대 초에는 만경관 네거리~염매시장 입구거리에 50개가 넘는 가구점, 공예사가 있었다. 가구상들이 번성하자 철물점과 금고상 등 관련 업종까지 함께 모여들었다. 그러나 전국적인 유통망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대형 가구기업들이 밀고 내려오자 가구상들도 결국 종로의 주인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빈 건물이 방치되다 쇠락의 길로 내 몰렸다. 더구나 인근 동성로에 인파가 몰리고 대중교통전용지구사업으로 차량마저 접근하기 힘들면서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이에 관할 구청인 중구청이 5년전 도심재창조란 주제로 ‘걷고 싶은 거리, 테마가 있는 거리’사업을 펼쳤다. 박동신 중구청 전략경영실장은 “종로는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데다 쉼터나 벤치도 조성되지 않아 사람보다는 차가 우선인 거리였다. 또 전통거리로서의 특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쌈지공원과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건물 곳곳에 종로의 역사를 소개하는 벽화를 그렸다. 거리 양쪽에는 청사초롱을 매달아 전통미를 살렸다. 종로 인근이 소설 ‘마당 깊은 집’의 실제 배경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소설 속 상황을 상상할 수 있도록 주인공 길남이와 길남이 엄마를 형상화한 입체 조형물 2개를 설치했다. 마당 깊은 집 내용과 1950년대 대구의 모습을 담아 시대적 문화를 엿보는 스토리공간인 스토리보드를 설치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종로에는 차, 다기, 천연염색, 골동품 등을 취급하는 40여개의 점포가 성업 중이다. 곳곳에 작고 실험적인 갤러리나 공방 등도 함께해 전통거리라는 명성을 되찾고 있다. 박 실장은 “차와 다기 전문점에 이어 천연염색, 골동품, 전통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데다 이를 전시하는 갤러리들이 최근 생겨나고 있는 것도 새로운 종로의 모습이다.”며 “현대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염매시장 떡집들도 종로로 옮겨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과 동아쇼핑 등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종로 인근에는 원룸촌도 활발히 형성되고 있다. 또 일부 젊은 층들도 동성로에서 종로로 발길을 돌리면서 이들을 겨냥한 식당들도 들어서고 있다. 이 곳에서 식당을 하는 한 주인은 “젊은 층과 주위의 유통업·금융업 등에 종사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고 있다.”며 “저녁 늦게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식당들이 많다.”고 밝혔다. 최병헌 종로상가번영회 회장은 “종로가 먹거리 골목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종로 발전을 위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환한 미소와 친절로 정성을 다할 것이다. 회원 간의 단합과 정보교류로 삶의 터전인 종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의 문화도 여전히 살아있다. 화교학교와 영생덕 만두집, 복해반점, 경희반점 등은 아직도 남아 과거 이 일대를 장악했던 화교들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화교협회가 종로에서 화교문화축제를 7년전부터 매년 열고 있다. 종로는 앞으로가 더 주목된다. 종로 일대를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려는 계획이 국토해양부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데다 지속적으로 종로를 특색 있는 전통거리로 만들어 가겠다는 중구청의 각오 덕분이다. 매월 전통차, 천연염색, 한복 등 테마별로 축제를 열어 대구의 멋과 역사 문화를 소개함으로써 대구를 대표하는 거리로 만드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때마침 이곳 상인들도 전통문화거리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박 실장은 “아름다운 종로로 꾸미는 운동을 펼치겠다. 상가 앞 화분 내놓기 운동 등도 실천하고 자체 축제도 성사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29회에는 울산 중구 외솔큰길을 소개합니다.
  • [연극리뷰] 삼국유사 네 번째 시리즈 ‘멸’

    [연극리뷰] 삼국유사 네 번째 시리즈 ‘멸’

    세 개 면이 너덧 칸짜리 계단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무대. 요상한 음악과 랩이 흐르더니 남녀가 또는 남남이 뒤엉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한다. 노골적이다. 거친 총성 후 이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경애왕 머리에 김부가 총구를 겨눈다. 야비한 웃음으로 포장한 김부는 사촌형 경애왕에게 마지막 한 발을 날렸다. 왕위를 찬탈한 김부는 경애왕이 견훤에게 능욕을 당하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김부는 집권 후 쓰러지는 신라를 일으키고자 고군분투하지만, 경애왕의 죽음을 안 후백제의 위협과 고려의 압박, 열패감에 휩싸이며 끝없이 나락으로 빠져든다. 김부는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으로 고려에 나라를 넘겨 준다. 국립극단이 내놓은 삼국유사 프로젝트 중 네 번째 작품 ‘멸’(滅)은 삼국유사 2권, ‘기이 2편’에 있는 김부대왕을 무대에 올렸다. 신예 작가 김태형은 원전에 상상력을 첨가하고 비틀었다. 경순왕 김부, 마의태자 김일, 죽방왕후, 고려 낙랑공주 등 등장 인물은 역사 기술 그대로지만, 성격이나 의상, 배경은 현대적이다.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죽방왕후는 남편에 대한 환멸과 증오에 휩싸여 아들 김일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위험한 선택을 하는 인물로 그렸다. 마의태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신라를 만들고자 했다. 희망이 깨지자 금강산에 들어가 일생을 보냈다고 알려졌지만, 왕위를 노리던 동생 김굉에게 살해당했다. 머리에 꽃을 꽂고 “나 미친 년 같죠?”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낙랑은 신라를 쉽게 접수하기 위해 자신을 김부에게 내줄 정도로 목표가 확실하다. 현대적인 옷을 입은 신라 멸망의 이야기는 처음엔 다소 어색하다. 극 초반에 나오는 교합제는 너무 적나라하고, 김일에게 연정을 가진 낙랑의 모습은 다소 부자연스럽다. 남자 배우들 귓불에 반짝이는 커다란 귀고리, 긴 코트에 목도리를 두른 정장 차림이 눈에 익기 시작하면 서서히 극의 목표점이 보인다. 결국 정치는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좌우되는 마피아의 법칙과 다르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세상에 영원한 게 딱 하나 있지. 그게 뭔 줄 아니?” 역사는 대의(大義)가 아닌 개인의 욕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김부의 대사에서 현 정치 상황이 투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연출가 박상현은 “정치적 의도도 없고 현실에 딱 들어맞는다고도 할 수 없지만, 시각에 따라서는 (현실 정치의) 비유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절하고 간사하면서 비겁한 김부를 연기한 정보석은 “(음흉한 권력자로 알려진) 리처드 3세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틀이 생긴 뒤에는 그 모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면서 “연극 자체가 시대를 규정하지 않아 권력을 좇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자유로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연기는 TV 드라마를 보는 듯 자연스럽다. 공연은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18일까지 계속된다. 1만~3만원. 1688-5966.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새 음반] ‘인디’와 ‘블루스’가 만났을 때…

    [새 음반] ‘인디’와 ‘블루스’가 만났을 때…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유난히 소외된 ‘블루스’가 ‘홍대 앞’으로 상징되는 인디 가수들에게서 다시 태어났다. 블루스는 국내에선 ‘팝’ ‘일렉트로닉’ ‘힙합’에 비해 그 위상이 크게 떨어지지만 대중음악의 원산지인 영국과 미국에선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국내에선 1980년대 신촌블루스 등이 블루스의 명맥을 이어 왔을 뿐이다. 최근 인디 음악을 중심으로 블루스를 추구하는 이들이 다시 조금씩 늘어나면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한국적 블루스의 흐름을 발 빠르게 만들어 가는 가수들이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블루스 더, Blues’ 앨범은 이전에 없었던 독특한 음색을 근사하게 들려준다. 강허달림, 김대중, 김마스터, 로다운30, 하헌진 등 블루스 가수들과 강산에, 림지훈, 조이엄 등 블루스 정서를 체득한 이들이 함께 참여했다. 블루스의 형식인 12마디에 맞춰 앨범에도 12곡을 담았다. 기타 한 대와 하모니카로 연주하는 고전적인 블루스부터 1950년대 시카고 스타일의 블루스, 록 블루스와 한국적 블루스까지 이 앨범에는 거의 모든 블루스가 망라돼 있다. 한꺼풀 더 벗겨 보면 하위 블루스 음악이 추구해 온 특유의 정서까지 읽게 된다. 블루스는 흑인 음악이고 그들의 역사와 정서에 기반한 음악이지만 한국적 ‘결’까지 느낀다면 이 음반 덕분이다. 붕가붕가레코드.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그의 노래엔 어머니가 있고 술 마시다 지친 ‘돌싱’ 친구가 있고 우리네 삶의 사연들이 담겨 있네

    그의 노래엔 어머니가 있고 술 마시다 지친 ‘돌싱’ 친구가 있고 우리네 삶의 사연들이 담겨 있네

    “아바이 밥 잡쉈어? / 피가 되고 살이 되고 / 노래 되고 시가 되고 / 이야기 되고 안주 되고 / 내가 되고 니가 되고 /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명태·2002년) 기타를 둘러메고 툭툭 내뱉는 가사와 게슴츠레 감긴 두 눈은 영락없이 10여년 전 모습 그대로다. 양옆을 깔끔하게 다듬은 머리카락과 야윈 듯 앙상한 몸매만 다를 뿐…. 국방색 점퍼에 후드티, 파란색 스니커스와 형형색색 수면양말까지, ‘자유인’ 강산에(49)는 여전히 어지러웠다. 지난 17일 밤, 퀴퀴한 냄새만 맴돌던 서울 서교동 지하 연습실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즉석에서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무딘 함경도 사투리가 랩처럼 리듬을 타는가 싶더니 “영걸이 왔니 강산에는 어찌 아이 왔니~.” 하는 대목에선 목이 메는 듯 목소리가 잠겼다. “지난 밤 과음해서 그렇다.”고 눙쳤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 듯했다. 영걸은 ‘영웅호걸’서 따온 강산에의 본명.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쉰 즈음에 6인조 인디밴드인 ‘밴드 강산에’와 홍대 앞 소무대를 누비고 있다. 밴드 강산에는 10~16년씩 함께 음악을 해온 친구들이다. 강산에는 “2001년 이후 음악적 슬럼프를 겪었는데 이젠 살짝 즐긴다고 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통기타 하나로 작곡… “삐딱이 기질은 여전” 지금도 작곡할 때 그 흔한 ‘콩나물’(음표)을 쓰지 않고, 통기타와 녹음기, 메모장에 의존해 곡을 만든다. 개성 없는 음향기기가 싫어 여지껏 노래방에 단 한번도 가지 않았고, 연예계의 구습에 질려 ‘김C’ 외에는 이렇다할 연예인 친구도 없다. 1997년 한 대학교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장에선 무례한 청춘에 격앙돼 노래하다 38만엔(약 529만원)짜리 마틴 기타를 부숴버리기도 했다. 그의 가정사가 궁금했다. 3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한의사였다고 한다. 지금처럼 정식 면허를 가진 한의사는 아니었지만, 한약방을 운영하며 쏠쏠하게 돈을 벌었다. 한 살된 형을 안고 흥남부두에서 피란선을 타고 내려온 24살 연하의 어머니는 그렇게 거제도에서 아버지를 만났고, 손위 누나와 강산에를 낳았다. 말년에 알코올 중독이 심했던 아버지는 누나를 무릎에 앉힌 흑백사진 속 모습으로만 기억에 남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단돈 1만 8000원을 들고 부산으로 간 강산에 가족의 삶은 팍팍했다. 철공소에 다니던 형과 보험 외판원 어머니…. 어머니는 이제 87세의 볼품없는 할머니가 돼 요양원에서 남은 삶을 살고 계시다. 강산에의 눈에 잠시 이슬이 맺혔다. “절절하다. 어떻게 해드리고 싶은데…미치는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가 꼽은 가장 ‘맛있는’ 노래는 다름아닌 데뷔곡 ‘…라구요’(1992년). ‘눈보라 휘날리는 / 바람찬 흥남부두 / 가보지는 못했지만~’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어머니를 그리며 쓴 사모곡이다. 대학(경희대 한의학과 82학번)을 그만두고 경기도의 한 카페에서 통기타를 두드리며, 장발에 피어싱까지 해도 모두 감싸주던 어머니다. 1992년 데뷔 전 일본에 머물며 그런 어머니가 들려준 삶에 곡을 붙여 불렀다. ●‘…라구요’는 피란살이 어머니의 삶 담은 곡 그렇게 노래마다 사연이 있고 삶이 담겼다. 밤새 술마시고 실려간 ‘돌싱’ 친구 집에서 대낮까지 널부러져 잠자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만든 곡이 ‘떡 됐슴다’(2011년)이다. ‘태극기’(1996년)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터진 뒤 버스를 타고 서울시청 앞을 지나다 마주한 초라한 태극기를 보고 구상했다. 그렇게 나온 가사가 ‘절대로 삼풍(三風)은 또 불지 않았으면…절대로 태우(太雨)는 또 오지 않았으면’이다. “삐딱이 기질을 드러낸 것뿐인데 사회는 거창하게 해석하는 분위기였죠. 국경일마다 태극기 들고 이 노래를 부르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그는 “예전 음주 운전 사고로 신문에 기사가 실렸는데 사람들은 ‘태극기를 부른 강산에가 일제 스포츠카를 타더라’, ‘알고보니 마누라도 일본사람이더라’는 식으로만 얘기하더군요. 노래는 노래고, 개인은 개인일 뿐인데요.”라고 잘라 말했다. 갑자기 두 살 어린 일본인 아내 ‘다카하시 미에코’와의 연애담이 궁금해졌다. 강산에는 “1987년쯤 백수시절 우연히 만났는데, 아내가 먼저 프러포즈했다.”면서 “1991년 혼인신고하고 이듬해 가수로 데뷔했다.”고 말했다. 강산에는 아내에게 ‘나비’라는 한국이름을 선물했고, ‘나비’는 강산에에게 ‘넌 할 수 있어’ ‘연어’ ‘우리는’ ‘더 이상 더는’ 등의 노랫말을 선사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사는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다. ●공연이 사회 분노 증폭시키는 도구 돼선 안돼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음유시인으로 변신한 강산에는 최근 “공연이 분노를 증폭시키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면서 “정치집회에선 더 이상 노래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에서 노래를 부른 뒤 야당 사람들이 몰려와 구호를 외치는데, 고귀한 그분의 뜻을 기리는 게 아니라 분노를 자극하더군요. 일본의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로큰롤 가수인 이마와노 기요시로의 추모공연에서 느꼈던 고요나 평화의 참맛과는 달랐습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은 오는 12월 5일 파리에서 첫 ‘K록’ 공연을 펼친다. 주프랑스 문화원이 주관하는 이번 공연에서 지인들은 강산에를 한국의 ‘밥 딜런’으로 프랑스에 소개할 예정이다. 공연을 기획한 설치미술가 이서(37)씨는 “한국어로 부르되 주요 곡들은 번안해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라며 “한국에도 강산에와 같은 가수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산에에게 음악은 앞으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켜줄 ‘희망’인 셈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자본가 타도” 외쳤던 마오쩌둥…딸은 재벌을 사위로

    “자본가 타도” 외쳤던 마오쩌둥…딸은 재벌을 사위로

    농민, 노동자들과 함께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중국 ‘건국의 아버지’ 마오쩌둥(毛澤東)이 아이러니하게도 억만장자를 외손녀 사위로 맞았다. 관영 신화통신은 14일 마오쩌둥과 그의 세 번째 부인인 허쯔전(賀子珍)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 리민(李敏·76)의 딸인 쿵둥메이(孔東梅·40)가 억만장자 재벌인 천둥성(陳東升·55) 타이캉(泰康)생명보험 회장과 결혼했다고 보도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인터넷포털 인민망도 ‘마오쩌둥의 외손녀가 누구랑 결혼했다고?’라는 제목으로 같은 소식을 전했다. 이 밖에 대부분의 지방 유력지들과 인터넷포털도 리민이 딸과 천둥성을 대동한 채 국경절 연휴기간인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5일까지 장시(江西)성 징강산(井岡山) 등 공산혁명 성지를 둘러봤고, 이때 천둥성은 자신을 “징강산의 사위”라고 불렀다며 ‘쿵·천 커플’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 앞서 홍콩 언론들은 지난 12일 천둥성이 우한(武漢)대 동창이던 전 부인 루양(陸昻)과 지난해 이혼했으며 지난 15년간 불륜 관계였던 쿵둥메이와 베이징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보도한 바 있다. 15살 연하인 쿵둥메이는 1996년 베이징항공항천대를 졸업한 뒤 타이캉생명 창업에 동참했다가 천 회장과 알게 돼 연인 사이로 발전했으며 둘 사이에는 이미 3명의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쿵둥메이는 현재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다산쯔(大山子) 798예술특구에 베이징둥룬쥐샹수우(北京東潤菊香書屋)를 창업해 ‘홍색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국화 꽃향이 나는 서재란 뜻의 ‘쥐샹수우’는 마오쩌둥이 생전에 사용하던 서재의 이름이다. 마오는 국민당군에 패해 징강산에서 전열을 재정비하던 1928년 비서인 허쯔전을 세 번째 부인으로 맞이해 슬하에 6명의 자녀를 뒀으나 내전 등에서 모두 죽고 리민만 남았다. 첫번째 부인 뤄이슈(羅一秀)와의 사이에는 자식을 남기지 않았다. 두번째 부인 양카이후이(楊開慧)와의 사이에서 아들 셋을 뒀으나 모두 죽었고, 장손인 마오신위(毛新宇)가 인민해방군 장성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번째 부인 장칭(江靑)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 리너(李訥)는 베이징시 부서기 등을 역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올 첫 訪北 공동행사 남북 불교도 합동법회

    남북한 불교도가 지난 13일 북한 금강산에서 남북 통일을 기원하는 합동 법회를 열었다. 올해 방북을 통해 열린 남북 공동 행사는 이날 법회가 처음이다. 대한불교 조계종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와 조선불교도련맹(조불련) 중앙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금강산 신계사에서 신계사 복원 5주년 기념 합동 법회를 봉행했다. 법회에는 남측에서 지홍 스님 등 19명이 참석했으며 이 중에는 70년 전 신계사 법당 앞에서 결혼식을 했던 서울 불광사 신도 장인자(90) 보살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북측에선 리규룡 서기장과 차금철 부장, 신계사 진각 스님 등 22명이 참석했다. 조국 통일을 기원하는 다섯 번의 범종 타종으로 시작된 법회에서 조불련 리규룡 서기장은 인사말을 통해 “북남 불자들이 노력하면 신계사가 민족 통일의 참다운 도장으로 다시 화하는 시기가 오고야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추본 본부장인 지홍 스님은 봉행사에서 “금강산 관광 중단과 함께 신계사에서 남북 불자들의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 소리가 끊기게 돼 안타깝다.”면서 “남북 불교도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민족의 성지이자 통일의 상징인 금강산을 보전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계승해 남북 사이의 전쟁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공동 발원문도 채택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현장 행정] 1230여명의 마포 ‘재민’아 사랑해

    [현장 행정] 1230여명의 마포 ‘재민’아 사랑해

    “재민이가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세요.” 20일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앞 광장에는 마포구에 사는 어린이 ‘재민이’를 위한 기부 행사 ‘2012 재민아 사랑해, 희망나눔 페스티벌’이 열렸다. 삼삼오오 친구·가족들과 페스티벌 행사장을 찾은 주민들은 행사장에 마련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며 작은 정성을 모아 기부했고, 일부 주민들은 아예 재능 기부자로 나서 행사장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모두 이웃에 사는 재민이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자라며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재민이는 마포구에 사는 저소득가정 아이들에 대한 애칭이다. ‘재민이’라는 친숙한 이름처럼 저소득층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웃이라는 뜻에서 상징적으로 지은 이름이다. 마포구의 재민이는 지역 내 총 1236가구에서 살고 있다. 이 페스티벌은 저소득층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재민이의 자립을 돕기 위한 행사다. 행사를 통해 모금된 기부금은 전액 ‘희망플러스·꿈나래통장’ 사업 재원으로 사용돼, 재민이네 가족이 차곡차곡 저축한 종잣돈의 이자로 쓰인다. 곽영순 복지행정과장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규모인 1억 2000만원을 목표액으로 설정했는데 무리 없이 이를 달성했다.”고 귀띔했다. 행사 준비·진행도 모두 재능 기부로 이뤄졌다. 마포구사회복지협의회 직원들과 주민들은 함께 야외카페와 각종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또 일부 주민들은 성악 공연, 악기 연주 등 평소 갈고닦은 솜씨를 무대에서 뽐내기도 했다. 소주 ‘참이슬’ 등 글씨로 유명한 캘리그라퍼 강병인씨는 자신의 작품을 경매에 내놓았고, 가수 이승철, 강산에 밴드, 크라잉넛 등은 홍대 카페와의 인연으로 행사 무대에 올랐다. 곽 과장은 “밋밋하게 모금만 하는 것보다 기부자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나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지난해 이를 처음 시작했다.”며 “문화예술과 기부문화를 접목한 이 행사를 통해 나눔 문화를 계속 확산해갈 것”이라고 전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99세 노작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채색하다

    99세 노작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채색하다

    “거, 왜 나이 얘기를 꺼내 가지고…. 전 나이 생각 안 합니다. 여기 모두가 죽을 사람들이고, 산다는 건 곧 죽음 속에서 산다는 얘기지요. 모두가 만나는 게 죽음인데 때 되면 간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투는 어눌하고 발음은 샌다. 그런데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는 와중에 흘리는 싱긋 웃음은 해맑다. 9월 16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강남에서 한국 추상의 1세대, 기하추상의 대부로 꼽히는 한묵(작은 사진) 작가의 회고전이 열린다. ●시대별 작품 40점·미공개작 4점 전시 작가는 1914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아홉으로 최고령 생존 작가다. 그런데 1961년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겠다며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아직 거기서 산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자주 이름이 들먹여지는 작가는 아니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데다 스스로도 작품에 진전이 없다 싶으면 애써 전시를 하지도 않았으니 더 그랬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작업해 왔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낸 도록이 첫 도록이란다. 한국 개인전도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 ‘오늘의 작가전’ 이후 처음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만주로 이주한 작가는 그 곳에서 미술을 배우고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공부를 이어 나갔다. 광복과 함께 금강산에 머물다 분단으로 북한에 남았다가 1·4 후퇴 때 월남해 중고등학교 미술교사를 거쳐 홍익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야말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 낸 것이다. 이제 홍익대 교수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꾸려졌을 때 작가는 홀연히 그림을 제대로 그리겠노라며 프랑스행을 택했다. 프랑스 공부를 통해 이전 한국에서 하던 구상 같은 추상을 버리고 완전한 기하추상의 작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 작품 40여점과 미공개작 4점을 전시해 뒀는데 작가의 변화상이 읽힌다. 초기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비참한 상황을 그려냈다면, 프랑스로 건너간 뒤엔 3차원적 공간을 2차원 캔버스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들, 3차원에다 시간까지 끌어들여 만들어낸 작품들로 차츰차츰 변화해 왔다. ●한국전쟁 후 모습·광주민주화운동 참사 그려 아무리 추상이라 해도 한국 현대사를 겪은 상흔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1958년 잡지 ‘신태양’ 표지 그림으로 그린 ‘흰 그림’은 발표 당시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해서 크게 화제가 된 작품이다. 1987년작 ‘동방의 별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담은 작품이다. 부인 이충석(81)씨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르몽드 신문에 그 참상이 전해졌는데 그 뒤로 한 1년 정도는 붓을 못 잡을 정도로 괴로워했다.”면서 “그들의 눈동자를 위로하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작가와 이중섭(1916~1956)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유학 시절, 금강산 시절, 서울 시절을 모두 함께했을 뿐 아니라 이중섭의 마지막을 수습한 이가 바로 작가다. 그런데 이중섭 얘기만 나오면 작가는 입을 잘 열지 않는다. 생전에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고 거의 굶어 죽다시피 한 그가 안타까워 그러는 것이다. 부인에 따르면 지난해 이중섭 장례식 때 쓰였던 방명록을 우연히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건네줬더니 너무 속상해하며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고 했다. 그 비통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싫다는 것이다. 부인조차 “이중섭에 대한 얘기는 아픔이 너무 커서인지 절대 안 하려고 해서 나도 별로 들은 바가 없다.”고 전할 정도다. 기자의 질문에도 작가는 회갑 때 이중섭을 기리며 지었다는 ‘친구가 날아간 동녘하늘을 바라보며’라는 시만 보여줄 뿐이었다. (02)519-08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내년부터 금강산 관광 재개하고 싶어”

    “내년부터 금강산 관광 재개하고 싶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내년부터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내비쳤다. ●“내년 10주기 행사는 금강산서 가졌으면” 현 회장은 3일 오전 경기 하남시 창우동의 현대그룹 선영을 찾아 남편인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9주기 행사를 가진 직후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내년) 10주기 행사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재개해 금강산에서 진행하고 싶다.”면서 “(관광 재개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 현대그룹 측이 구체적인 실행 작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추모식에는 현대 임직원 200여명이 현 회장과 함께했다. 현 회장 일행은 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 묘소에 먼저 참배한 뒤 정 전 회장의 묘역을 방문했다. 같은 시간 정 전 회장의 추모행사를 열기 위해 방북한 장경작 현대아산 사장은 정 전 회장의 추모비가 있는 금강산에서 다른 임직원 13명과 함께 별도의 추모식을 가졌다. 장 사장 일행은 회사 소유 시설물을 돌아본 뒤 이날 오후 동해선 남북출입국 사무소를 통해 귀환했다. ●“북측 관계자들에 조속 재개 필요성 전달” 장 사장은 “북측 관계자들에게 조속한 금강산 관광재개의 필요성을 전달했다.”면서 “북측은 금강산 현지에서 안내만 해줬고 정몽헌 전 회장 추모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 사장 일행이 만난 북측 관계자들은 금강산 현지에 근무하는 사람들로 관광재개에 대한 결정권을 갖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아산의 방북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뒤 첫 사례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 때문에 향후 금강산 사업 재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현 회장은 이에 대해 “(금강산 방북 허가 과정에서) 정부에서 따로 받은 메시지 같은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北 김정은, 어린 아내 출산 후에도 일 시키며…

    北 김정은, 어린 아내 출산 후에도 일 시키며…

    북한이 2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으로 전격 공개한 리설주가 지난 2005년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26일 국회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리설주가 지난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대회에 응원단으로 참석한 것을 공식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리설주는 1989년생으로 지난 2009년 김 제1위원장과 결혼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장성택이 중매한 것이 아니냐는 설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으며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평양 금성 제2중학교를 나와 중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북한이 리설주의 존재를 공개한 이유가 김 제1위원장의 안정적인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에는 자녀가 1명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지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대회에 북한은 선수단을 포함해 총 124명을 파견했고, 리설주라는 여성은 청년학생협력단 단원 100명 가운데 포함돼 있었다. 당시 이 소녀는 남측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성학원 소속 17살(만 16세) 리설주로 자신을 소개하고 국가 예술극단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 리설주가 지난 2003년 3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청소년적십자 우정의 나무심기’ 행사에 참석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물사진분석 전문가인 조용진 한남대 객원교수는 “북한이 25일 공식 발표한 리설주의 사진과 예술단 공연 사진, 그리고 2003년 금강산에서 찍은 사진을 비교하면 모두 동일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리설주가 김 제1위원장과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도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의 ‘음악 정치’에 따른 것으로 분석한다. 리설주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올 1월까지 은하수관현악단에서 활동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지난해 1월 평양에서 열린 신년 경축음악회에서 북한 가곡 ‘병사의 발자욱’을 불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주연급 가수로 일했던 ‘은하수관현악단’은 100여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등지에서 유학한 엘리트 연주자와 가수로 구성돼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망 전인 지난해 7월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한 뒤 “모든 예술단체들이 따라 배워야 할 본보기”라고 극찬하기도 했으며 김정은을 대동하고 수차례 이 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이는 김 제1위원장과 리설주의 접촉이 쉽게 이뤄질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서 음악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고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주민들을 결속시키는 정치수단”이라며 “북한 고위층과 음악인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 은하수악단에서 독창을 한 가수 리설주는 서로 얼굴 윤곽도 다르고, 치아 모양과 턱살에서 차이점이 많다.”며 리설주가 은하수악단 출신 가수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또 “조선중앙통신 중문사이트를 보면 김정은 부인 리설주(李雪主)와 가수 리설주(李雪珠)의 한자표기가 다르다.”고 했다. 한편 국가정보원은 이날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리영호 군 총참모장의 해임은 김정은이 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인 것으로 보고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2005년 16세의 리설주, 南에 왔었다

    2005년 16세의 리설주, 南에 왔었다

    북한이 2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으로 전격 공개한 리설주가 지난 2005년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26일 국회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리설주가 지난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대회에 응원단으로 참석한 것을 공식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리설주는 1989년생으로 지난 2009년 김 제1위원장과 결혼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장성택이 중매한 것이 아니냐는 설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으며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평양 금성 제2중학교를 나와 중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북한이 리설주의 존재를 공개한 이유가 김 제1위원장의 안정적인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에는 자녀가 1명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지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대회에 북한은 선수단을 포함해 총 124명을 파견했고, 리설주라는 여성은 청년학생협력단 단원 100명 가운데 포함돼 있었다. 당시 이 소녀는 남측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성학원 소속 17살(만 16세) 리설주로 자신을 소개하고 국가 예술극단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 리설주가 지난 2003년 3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청소년적십자 우정의 나무심기’ 행사에 참석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물사진분석 전문가인 조용진 한남대 객원교수는 “북한이 25일 공식 발표한 리설주의 사진과 예술단 공연 사진, 그리고 2003년 금강산에서 찍은 사진을 비교하면 모두 동일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리설주가 김 제1위원장과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도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의 ‘음악 정치’에 따른 것으로 분석한다. 리설주는 지난해 1월 평양에서 열린 신년 경축음악회에서 북한 가곡 ‘병사의 발자욱’을 불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주연급 가수로 일했던 ‘은하수관현악단’은 100여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등지에서 유학한 엘리트 연주자와 가수로 구성돼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망 전인 지난해 7월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한 뒤 “모든 예술단체들이 따라 배워야 할 본보기”라고 극찬하기도 했으며 김정은을 대동하고 수차례 이 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이는 김 제1위원장과 리설주의 접촉이 쉽게 이뤄질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서 음악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고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주민들을 결속시키는 정치수단”이라며 “북한 고위층과 음악인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 은하수악단에서 독창을 한 가수 리설주는 서로 얼굴 윤곽도 다르고, 치아 모양과 턱살에서 차이점이 많다.”며 리설주가 은하수악단 출신 가수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또 “조선중앙통신 중문사이트를 보면 김정은 부인 리설주(李雪主)와 가수 리설주(李雪珠)의 한자표기가 다르다.”고 했다. 한편 국가정보원은 이날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리영호 군 총참모장의 해임은 김정은이 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인 것으로 보고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정선이가 제안하는 정선 여행 네 가지-정선이, 정선 가다

    정선이가 제안하는 정선 여행 네 가지-정선이, 정선 가다

    정선이가 제안하는 정선 여행 네 가지 정선이, 정선 가다 짙은 초록으로 탈바꿈 중인 나무 이파리가 눈을 깨우고, 주렁주렁 하얗게 매달린 아카시아 꽃 향기가 달콤하게 코를 간질인다. 정선의 시간과 계절의 향기는 일상의 감성을 자극해 정선을 찾는 이들에게 봄꽃처럼 환하고 봄나물처럼 푸근한 미소를 짓게 한다. ‘정선’이라는 이름의 코레일 승무원 이정선씨에게는 미소와 함께하는 정선 여행 길이 더욱 친근하고 특별하다. 웃고 있는 정선씨, 말해 줘요. 정선에서는 무얼 해야 하나요?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이진경 사진 Photographer 우경선 1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코레일 승무원 이정선씨와 함게한 정선여행 2 정선 여행의 상징 중 하나인 레일바이크. 성수기에는 예약을 하고 가는 편이 안전하다 3 정선의 새로운 명소인 스카이워크 4 스카이워크에 서면 한반도 지형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01 신나게~ 아찔하게 즐겨요 페달을 밟아 철길을 달리다 레일바이크 아우라지를 거쳐 구절리까지 달리던 열차는 2004년부터 구절리를 찾지 않았다. 2002년 태풍 루사의 피해를 받고 복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열차를 타는 이도, 내리는 이도 없는 역사驛舍와 버려진 철길. 열차와 함께했던 기억이 옛 일로 추억되던 2005년, 아우라지에서 구절리를 잇는 7.2km의 철로에는 이름마저 생소했던 레일바이크가 열차를 대신해 달리기 시작했다. 레일바이크. 이름 그대로 철로Rail를 달리는 자전거Bike다. 동력으로 철로를 달리는 열차와는 달리 레일바이크는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철로를 달린다. 2인용, 4인용으로 이뤄진 정선 레일바이크에는 두 사람이 밟을 수 있는 페달이 각각 마련돼 있다. 순전히 다리 힘으로만 7.2km 구간을 달려야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구절리에서 아우라지까지는 적당한 내리막이 이어져 힘쓸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시속 15~20km의 질주에 쾌감이 든다. 구절리 역에서 출발한 레일바이크는 고즈넉한 농촌 마을과 기암절벽이 늘어선 송천의 물줄기를 따라 아우라지까지 달린다. 어두운 터널을 달리는 짜릿한 기분은 덤으로 얻는 재미다. 바람을 맞으며 레일바이크를 타는 기분에 취해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우라지에서 구절리로 향하는 풍경열차는 놓친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라 배려한다. 풍경열차는 레일바이크를 탄 이라면 누구든 공짜로 탈 수 있다. 그 밖에 구절리 여치의 꿈, 아우라지 어름치 유혹은 쉬어갈 만한 카페다. 못 쓰게 된 기차를 개조해 만든 구절리 기차 펜션과 캡슐 하우스에서는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기에 좋다. 찾아가기 정선읍에서 임계·동해 방면 42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구절리로 가는 410번 지방도로 좌회전. 진부IC에서는 59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42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운행시간 오전 8시40분, 오전 10시30분, 오후 1시, 오후 2시50분, 오후 4시30분 이용요금 2인승 2만2,000원, 4인승 3만2,000원 전화 033-563-8787 홈페이지 www.railbike.co.kr 정선 하늘 길을 걷다 스카이워크 멀쩡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오금이 저리다. 병방산의 천길 낭떠러지를 유리 바닥 아래에 두니 평생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고소공포증이 실감된다. 발 아래로 준 단 한 번의 눈길에 턱 하니 숨이 막혀 저 너머로 굽이치는 절경은 눈에 담기가 어렵다. 귤암리 사람들이 정선읍으로 가기 위해 넘어 다녔다는 병방산. 정선읍으로 향하는 길은 고개를 넘고 넘는 고된 길이었다. 삶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했던 길 위, 병방산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지형의 절경은 그들에게는 걸어온 길에 대한 보상과 같았다.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고되게 넘어야 했던 삶의 길은 길이 닦이며 전망대로 탈바꿈했다. 지금처럼 편하지는 않았지만 조양강이 휘감아 도는 한반도 지형을 보기 위해 병방산을 찾는 이들이 꽤 됐다. 이런 병방산에 스카이워크가 생겼다. 하늘을 걷는 듯, 전망대는 바닥은 물론 사방을 유리로 둘렀다. 유리로 만들어진 전망대인 스카이워크가 들어선 곳은 깎아지른 절벽 위다. 그것도 병사 하나만 지켜도 천군만마가 접근하기 힘들다는 절벽 중의 절벽, 병방치兵防峙의 절벽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라면 애초에 접근하지 말 것이며, 심약한 이라면 저 너머 풍경에 시선을 두는 게 현명하다. 발 아래 절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순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스카이워크에서도 담담하게 걸을 자신이 있다면 짚와이어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북실리 병방산 스카이워크에서 광하리 생태체험학습장까지 길이 1.1km의 짚와이어가 마련돼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120km. 시속 70~120km로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 찾아가기 정선읍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정선군선거관리위원회가 있는 미소빌, 현대아파트 삼거리로 간다. 정선예비군훈련장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병방치 전망대 표지판이 있다. 시내에서 10분 가량 걸린다. 02 추억 여행을 떠나요 옛 집에서의 하룻밤 아라리촌 아리랑의 고장으로 알려진 정선.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아우라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아라리촌은 강원도 산간지방의 생활문화를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해 보는 공간이다. 아라리촌에는 옛 양반이 살았던 기와집과 참나무 굴피로 지붕을 덮은 굴피집, 소나무를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이은 너와집, 대마의 껍질을 벗겨낸 줄기로 이엉을 엮은 저릅집, 얇은 판석으로 지은 돌집, 나무로 지은 귀틀집이 자리했다. 한 공간에 옹기종기 옛 집들이 모여 있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당시의 삶을 보는 듯하다. 하루, 단 하룻밤의 시간을 내어 줄 수 있는 이에게 아라리촌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펼쳐 놓기에 한 시간 남짓 아라리촌에 들러 지나친다면 아쉽고 안타깝다. ‘숙박 중’이라는 팻말을 방패로 온전히 나의 옛 집을 얻는 하루에는 평상에서 바라보는 밤하늘, 툇마루에서 맞는 햇살과 바람이 포함된다. 밤에는 완벽한 고요를 즐기며 잠자리를 청하고, 아침에는 담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조잘거림을 들으며 게으름을 부리는 일도 아라리촌의 하룻밤이 주는 행복이다. 찾아가기 정선읍에서 정선제2교를 넘어 화암동굴 방면으로 우회전해 1km 가면 우측에 아라리촌이 자리했다. 이용요금 와가 30만원, 너와집 20만원, 돌집 15만원, 굴피집, 저릅집, 귀틀집 10만원 전화 033-560-2059 홈페이지 www.jsimc.or.kr 1 강원도 산간 지방의 생활문화를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아라리촌 2 폐광촌 폐교를 활용한 추억의 박물관에서는 20~30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3, 4, 5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배경이 되기도 한 타임캡슐공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어린 시절 추억을 찾아 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 폐광촌 폐교의 교실과 복도에 작다면 작게 자리한 추억의 박물관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열광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아이와 함께 박물관을 찾은 엄마 아빠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추억하며 아이들과 교감한다. 추억의 박물관은 입구에서부터 남다르다. 네모반듯한 규격의 입장권을 딱지 조각 하나가 대신한다. 참 잘해야 받을 수 있었던 ‘참 잘했어요’ 스탬프도 딱지 뒤에 찍을 수 있다. 딱지를 받아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추억 여행은 본격 궤도에 진입한다. 각종 삐라에 딱지, 신문, 잡지, 성냥갑, 담뱃갑은 물론 반공 포스터에서 쥐를 잡자던 선전 포스터까지 소소한 옛 물건들이 가득하다. 같은 양은 도시락을 보고도 중년의 아들과 노년의 할머니가 다른 추억을 얘기하는 추억의 박물관은 서로의 추억을 꺼내어 현재를 말하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찾아가기 정선읍에서 남면 방면 59번 국도 이용. 남면에서 자미원 방면으로 직진해 함백로를 따라 고갯길로 15분을 가면 된다. 이정표 참고. 산길 운전에 자신이 없다면 38번 국도와 421번 지방도를 타는 게 좋다. 개관시간 토, 일 오전 10시30분~오후 5시 입장료 1,500원 전화 033-378-7856 홈페이지 www.ararian.com 내일, 오늘을 추억하다 타임캡슐공원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의 새비재에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과 전지현이 타임캡슐을 묻은 소나무가 자리했다. 내일의 만남을 약속하고 오늘 타임캡슐을 묻은 그들처럼 타임캡슐공원에는 어제가 될 오늘을 기념하고, 내일을 약속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1~12월을 상징해 12개로 나뉘어진 공간에는 각 400여 개의 타임캡슐 공간이 마련돼 있다. 4,000여 개가 넘는 타임캡슐 공간은 각기 다른 4,000여 약속과 추억을 담고 짧게는 100일, 길게는 4년 후 개봉될 날을 기다린다. 새비재 꼭대기에 자리한 타임캡슐공원에서는 주변 풍광이 한눈에 조망된다. 공원 산책로에는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더불어 벤치가 마련돼 있어 내달리는 산줄기를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산을 깎아 만든 일대 밭은 8월경이면 잘 익은 배추로 푸르게 덮여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찾아가기 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과 가깝다. 타임캡슐공원은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차를 타고 올라야 한다. 개장시간 하절기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 오전 9시~오후 5시 이용요금 타임캡슐구입 100일 4만원, 1년 5만원, 2년 6만원, 3년 7만원, 타임캡슐대여 1년 1만원, 2년 2만원, 3년 3만원, 4년 4만원 전화 033-375-0121 홈페이지 time.jsimc.or.kr 03 자연을 품고 달려요 정선이 품은 금강산 화암8경 드라이브 금강산에 버금가는 절경을 자랑하는 정선의 소금강 일대. 발길 닿는 곳곳마다 수려한 경치가 펼쳐져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소금강 일대 8개 명승지인 화암약수, 거북바위, 용마소, 화암동굴, 화표주, 소금강, 몰운대, 광대곡은 화암8경으로 지정돼 있다. 이들 중 화암약수와 화암동굴, 몰운대는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화암8경 드라이브의 출발점은 몰운대나 용마소로 정한다. 몰운대에서 출발하면 용마소에서, 용마소에서 출발하면 몰운대에서 드라이브를 마감하게 된다. 제천IC로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소금강으로 향하면 가장 먼저 몰운대와 만난다. 주차장에서 울창한 솔숲을 헤치고 200m 가량 들어가면 평평한 바위가 나오고, 바위 아래에는 아찔한 절벽이 펼쳐진다. 절벽 끝에는 벼락을 맞았다는 소나무가 맑디맑은 동대천의 풍광을 지켜보며 서 있다. 하늘을 향한 소나무가 검은 실루엣으로 모양을 달리하는 석양 무렵이라면 감동은 배가 된다. 몰운沒雲. 구름마저 모습을 감출 정도니 이들의 조화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몰운대를 지나자마자 오른편으로 길을 이으면 광대곡이다. 광대곡은 하늘과 구름과 땅이 맞붙은 신비한 계곡으로 용소폭과 선녀폭포, 바가지소, 골뱅이소 등 12개의 용소를 품었다. 이러한 광대곡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할 터. 드라이브로 화암8경을 둘러본다면 광대곡은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게 현명하다. 강을 따라 길을 이으면 한치계곡과 소금강이 나타난다. 한치계곡은 소금강의 큰 줄기에서 조금 벗어나 찾는 이가 적지만 층이 진 기암절벽과 바위 사이로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이룬 경치 하나만은 오히려 소금강보다 낫다. 화표주를 지나 동면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거대한 병풍바위를 지나면 화암약수다. 철분이 유난히 많은 화암약수는 위장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화암약수에서 나와 이정표를 따라 화암동굴로 향한다. 화암동굴은 1922년부터 1945년까지 금을 캤던 천포광산으로, 당시 국내 5위를 차지했던 금광이다. 지금의 동굴은 금광 굴진 중 발견된 천연 종유굴과 금광 갱도를 개발한 것. 그래서인지 자연미와 인공미의 조화가 돋보인다. 역사의 장, 금맥따라 365, 동화의 나라, 금의 세계, 대자연의 신비로 이뤄진 동굴 전체를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 입구까지 오르면 체력 안배에 도움이 된다. 찾아가기 정선읍에서 출발한다면 59번 국도를 이용한다. 화암동굴 이정표가 잘 돼 있다. 정선의 첫 번째 목적지로 화암8경을 정했다면 중앙고속도로 제천IC를 이용하는 게 낫다. 제천IC에서 영월, 태백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가 고속도로만큼 잘 닦여 있다. 개장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이용요금 화암동굴┃입장료 어른 5,000원, 청소년 3,500원, 어린이 2,000원, 화암동굴 모노레일┃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전화 033-562-7062 홈페이지 www.jsimc.or.kr 내일, 오늘을 추억하다 타임캡슐공원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의 새비재에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과 전지현이 타임캡슐을 묻은 소나무가 자리했다. 내일의 만남을 약속하고 오늘 타임캡슐을 묻은 그들처럼 타임캡슐공원에는 어제가 될 오늘을 기념하고, 내일을 약속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1~12월을 상징해 12개로 나뉘어진 공간에는 각 400여 개의 타임캡슐 공간이 마련돼 있다. 4,000여 개가 넘는 타임캡슐 공간은 각기 다른 4,000여 약속과 추억을 담고 짧게는 100일, 길게는 4년 후 개봉될 날을 기다린다. 새비재 꼭대기에 자리한 타임캡슐공원에서는 주변 풍광이 한눈에 조망된다. 공원 산책로에는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더불어 벤치가 마련돼 있어 내달리는 산줄기를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산을 깎아 만든 일대 밭은 8월경이면 잘 익은 배추로 푸르게 덮여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찾아가기 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과 가깝다. 타임캡슐공원은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차를 타고 올라야 한다. 개장시간 하절기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 오전 9시~오후 5시 이용요금 타임캡슐구입 100일 4만원, 1년 5만원, 2년 6만원, 3년 7만원, 타임캡슐대여 1년 1만원, 2년 2만원, 3년 3만원, 4년 4만원 전화 033-375-0121 홈페이지 time.jsimc.or.kr 1 벼락 맞은 소나무가 인상적인 몰운대 2 화암 8경 중 하나인 ‘화암동굴’ 3 철분이 많아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화암약수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04 정과 인심을 나눠요 5일마다 열리는 잔치 정선5일장 달력 끝자리에 2와 7일 들어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정선 5일장은 1966년부터 이어온 오랜 역사와 전통의 시골 장이다. 정선 하면 떠오르는 곤드레나물, 황기 등 특산물에 더해 취나물, 곰취, 두릅 등 제철을 맞은 산나물이 싱싱한 초록빛을 뽐내며 장을 향기롭게 채운다. 봄이 아니어도 좋다. 오래 두고 식탁에 올릴 수 있도록 정성스레 말려 파는 산나물이 많다. 도시와 비교해 절반에 가까운 착한 가격에 알뜰한 주부들도 기분 좋게 지갑을 연다. 수수부꾸미, 메밀전, 메밀전병, 감자떡, 수리취떡 등. 장에는 정선다운 주전부리가 가득해 천원짜리 한 장으로도 입이 즐겁다. 곤드레밥, 콧등치기, 올챙이 국수, 메밀국죽, 황기 막국수 등 정선 특유의 먹거리는 먹자 골목의 식당에서 5,000원 정도에 즐길 수 있다. 5,000원짜리 된장찌개 백반도 찾아보기 힘든 도심과는 사뭇 다른 넉넉함이다. 멀리서 일부러 찾는 손님들이 많은 정선5일장은 인심이 남다르다. ‘안 살 거면 가슈’ 하며 배짱을 튕기는 상인은 없다. 나물을 파는 상인은 사지도 않을 거면서 꼬치꼬치 캐묻는 도시 처녀에게 산나물 보관법이며 요리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먹자 골목 아주머니는 단 한 번 찾은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고 다음날에도 인사를 건네며 장터의 정과 인심을 나눈다. 살거리, 먹거리에 더해 풍성한 볼거리도 매력적이다. 화암동굴과 화암약수로 향하는 연계버스가 5일장에 맞춰 운행되며, 문화예술회관에서 정선아리랑 창극이 무료로 공연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알차게 이용하고 싶은 이라면 청량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하는 정선5일장 당일 여행 상품을 이용하면 좋다. 정선 장날이 있는 2, 7일에 청량리 역에서 출발하는 상품으로 코레일 관광개발(1544-7755, www.korailtravel.com)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찾아가기 진부IC에서 59번 국도를 따라 오다가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한다. 42·59번 국도를 타고 9km 가량 지나면 정선제2교가 보인다. 건너지 말고 우회전하면 정선5일장이 열리는 읍내다. 1 2, 7이 들어가는 날마다 어김없이 열리는 정선 5일장 2 1천원짜리 한 장으로도 입이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정선에서 정선이를 찾습니다 트래비의 이번 정선여행에 동행한 1990년에 태어난 꽃다운 나이의 이정선씨는 이 땅의 수많은 정선이 중 한 명이다. 학창시절, 어쩌면 흔한 이름이었던 정선.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지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한 학급에 무려 두 명의 정선이가 있었을 정도로 정선이라는 이름이 유행했다 한다. 세기가 바뀌며 작명의 유형도 바뀌었지만 오늘 혹은 내일 새로운 정선이가 태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강원도 정선군에서는 김정선, 박정선, 이정선 등 이 땅의 정선이를 찾고 있다. 끼와 재능을 두루 갖춘 정선이라면 주저 없이 이벤트에 응모할 것. 정선군은 물론 본인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응모 방법은 간단하다. 정선군 홈페이지 ‘정선여행(www.ariaritour.com)’에 접속, 배너로 달린 ‘보고싶다 정선아’를 클릭하면 끝. 간단한 이력과 사진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정선군의 정선이로 활약할 수 있다. 정선이로 선정되면 정선군청에서 소정의 기념품도 제공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하우스콘서트’ 10년… 새달 전국서 울려 퍼진다

    ‘하우스콘서트’ 10년… 새달 전국서 울려 퍼진다

    2002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박창수(48)는 특별한 실험을 시작했다. 서울 연희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을 개조해 ‘하우스콘서트’를 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없었다. 연주자는 관객의 눈빛과 감정을 느끼고, 관객은 연주자와 숨소리까지도 함께 했다. 연주자에게 개런티도 없었다. 관객에게 2만원씩을 걷고 그중 절반을 연주자에게 주는 것도 하우스콘서트의 독특한 시스템. 처음에는 곧 망할 거란 수군거림도 있었지만, 하우스콘서트의 매력은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번졌다. 지금껏 315회의 공연에 130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작은 행복을 맛봤다. 이후 하우스콘서트의 콘셉트를 따라한 수많은 공연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긴 건 물론이다. 하우스콘서트 측이 10주년을 기념, 새달 9일부터 15일까지 전국 21개 도시, 23개 공연장에서 ‘2012 프리, 뮤직 페스티벌’이란 제목으로 동시다발적인 무대를 꾸민다. 클래식과 국악, 대중음악 분야의 58개팀, 158명이 함께한다. 공연 장소를 보면 주최 측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충남 보령·논산·계룡, 충북 진천, 전북 김제·익산, 경남 산청·거제, 경북 안동·영덕, 경기 의정부·하남·광주 등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포커스를 맞췄다. 수도권과 스타급 연주자 중심의 대형무대로 쏠린 공연문화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실마리를 찾겠다는 얘기다. 하우스콘서트의 형식을 접목시켜 관객은 객석이 아닌 공연장 무대에 걸터앉아 연주자와 함께 호흡한다. 100~200명이 선착순으로 입장하기 때문에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김태형(피아노), 박승희(테너), 김민지(첼로), 강태환(알토 색소폰), 강은일(해금), 강산에(가수), 김가온(재즈 피아노), 드니 성호 얀센스(기타), 고상지(반도네온) 등 실력파 아티스트가 함께한다. 구체적 일정은 홈페이지(http://freemusicfestival.net/)를 보면 된다. 무료∼1만원.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금강산 온정각에 北 멋대로 식당 개업”

    북한이 금강산 관광지구 내 우리 기업 소유 시설인 온정각 휴게소를 식당으로 임의 개조해 활용하는 것으로 19일 드러났다.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공개한 동영상을 통해 “지난달 28일 별금강식당 개업식이 진행됐다.”면서 “조선과 중국의 회사들이 금강산에 하나의 봉사 시설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동영상에 따르면 이 식당은 현대아산과 한국관광공사가 공동 소유한 온정각 휴게소로 확인됐다. 1999년 문을 연 온정각은 금강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면세점과 기념품점 등으로 쓰였으나,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영업이 중단됐다. 이어 북한은 우리 정부의 금강산 관광 금지 조치에 반발해 2010년 4월 관광지구 내 남측 자산의 몰수와 동결을 발표했으며, 이듬해에는 금강산특구법을 일방적으로 제정해 임의로 남측 자산을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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