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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훈표 노숙인 대책 희망의 인문학 10년만에 다시 연다

    오세훈표 노숙인 대책 희망의 인문학 10년만에 다시 연다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작했던 노숙인 지원사업 ‘희망의 인문학’이 10년 만에 부활한다.  희망의 인문학은 노숙인 등 소외계층이 자기 성찰을 통해 삶의 의지를 다지고 자존감을 세울 수 있도록 인문학 중심의 강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약 6000명의 노숙인과 저소득층이 참여했다.   이 사업은 2013년 보건복지부 노숙인 지원 정책에 인문학 사업이 포함되면서 중단됐다가 올해 노숙인 지원사업이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면서 서울시가 다시 시작하게 됐다. 서울시는 다음 달 14일까지 사업에 참여할 노숙인 시설과 대학 등 전문 교육기관을 모집해 4월 중 수행기관을 최종 선정한다고 31일 밝혔다.   시는 노숙인 시설에서 기본 교육을 진행하고, 이 교육을 수료한 노숙인은 대학 등 전문 교육기관에서 심화 과정을 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기본과정은 5월 초부터 시설별로 개강하고, 심화 과정은 대학교의 여름방학을 이용해 7월 초부터 시작한다. 우수 수료자에게는 보조강사 참여나 공공일자리 같은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립을 위한 동기 부여를 강화한다.
  • “어르신 스마트폰 사용법 알려 드려요”… 서울시 ‘어디나지원단’ 어르신 강사 활동 개시

    “어르신 스마트폰 사용법 알려 드려요”… 서울시 ‘어디나지원단’ 어르신 강사 활동 개시

    어르신이 또래 어르신에게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가르치는 ‘어디나지원단’이 다음 달 1일부터 활동을 시작한다고 서울시가 31일 밝혔다. ‘어디나지원단’은 ‘어르신 디지털 나들이 지원단’의 줄임말로, 서울디지털재단이 2019년부터 이어 온 디지털 격차 해소 교육 사업이다.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에서 일했던 강사 등 다양한 활동 경력을 지닌 어르신 100명이 서울 시내 복지관, 도서관 등 50여 곳에서 어르신들에게 강의할 예정이다. 만 55세 이상 ‘어르신 강사’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한다. 문자 보내기 등 스마트폰 기본 사용법부터 카카오톡 프로필 편집하기,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사진 보내기 등 카카오톡 활용법, 블루투스와 와이파이 설정법 등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 현재 복지관, 도서관 등 사전에 지정된 교육장에서 교육했다면, 다음 달에는 ‘어디나 콜센터’를 통해 직접 교육을 신청한 어르신들에게 별도의 장소에서 교육할 예정이다. 콜센터 번호와 교육 장소 등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달 이후 서울디지털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할 예정이다. 한편, 서울디지털재단은 이날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어디나지원단’ 교육의 시작을 알리는 ‘어디나지원단 킥오프데이’를 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어디나지원단 100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했다. 오 시장은 ‘미니 스마트 토크’에서 어르신 강사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강요식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은 “어디나지원단의 일대일 맞춤 교육은 어르신들이 겪는 디지털 생활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서울시 어르신 모두가 디지털 서비스를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충북교육청 성비위 재발 확실히 막는다

    충북교육청 성비위 재발 확실히 막는다

    충북도교육청이 교육계의 성비위 사건 재발을 막기위해 대책을 강화한다. 도교육청은 ‘충북도교육청 성희롱·성폭력 사안처리 지원단’을 신설했다고 31일 밝혔다. 내부위원과 외부위원 16명로 구성된 지원단은 성비위 사건 발생시 초기상담을 전담한다. 신속한 조사·처리와 피해자 보호도 지원한다. 내부위원은 성비위 사건 내용에 따라 구성된다. 관련자가 교사일 경우 인사팀, 학생은 생활교육팀, 일반직은 총무팀 등이 내부위원으로 참여한다. 외부위원은 변호사, 상담가, 전문강사 등으로 구성된다. 충북교육청은 성비위자의 행정처분과 징계 시 피해자에게 결과 통보를 의무화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성비위 교직원의 재발방지를 위해 성인지감수성 향상 특별교육 이수와 함께 올해부터 사회봉사 이수(10시간~20시간)를 추가했다. 피해 교직원 긴급 치료 지원, 학교폭력(성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과 전담치료병원도 확대 운영한다. 본청 간부, 교장, 교감, 행정실장에게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성비위 기관과 합동 컨설팅도 진행한다. 도교육청은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과 대응 기반 강화를 위해 이달초 성인식 개선팀을 2명에서 4명으로 증원했다. 성인식 개선팀은 지난해 구성됐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성비위 발생시 도교육청 담당부서가 조기 개입해 처리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더욱 강화하겠다”며 “예방·대응·치유·회복의 올바른 학교 성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황인식 서초구청장 예비후보, ‘서초를 친환경과 일자리가 어우러진 도시로 만들 것’

    황인식 서초구청장 예비후보, ‘서초를 친환경과 일자리가 어우러진 도시로 만들 것’

    황인식(57) 전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장이 서울 서초구청장 출마를 선언했다. 황인식 에비 후보는 대변인과 행정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서울시의 대표적인 행정, 기획 전문가로 꼽힌다. 황인식 예비후보(국민의힘)는 30일 그는 이날 ‘서초구가 키운 행정전문가 황인식, 서초구청장 출마 선언’이라는 입장문을 내고 “서초구에서 11년간 근무하면서 구민이 행복한 서초를 만들기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서초구의 진면목을 잘 아는 행정전문가임을 자부하면서 공직과 행정의 고향인 서초를 위하여 돌아온 연어의 심정으로 6.1.지방선거에 서초구청장으로 출마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황 후보는 “서초구를 친환경 산업 발굴과 일자리 창출 활성화를 추진하는 생산적인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예비후보가 제시한 캐치프레이즈는 ‘힘차게 재도약하는 서초’다. 문화·예술 자원을 관광 인프라와 연계하는 ‘문화 관광도시’, 육아 복지·저출산 대책을 강화하는 ‘따뜻한 복지도시’도 목표로 내놨다. 황 예비후보의 핵심 공약은 경부 간선도로 입체화사업, 정보사 이전 부지 개발, 국회단지·성뒤마을·헌인마을 친환경 명품 주거단지 조성 등 13개다. 서초형 복합복지타운을 건립하고 반포종합운동장 복합체육시설을 세우는 방안도 담았다. 황 후보는 서초구에서 행정지원국장과 기획경영국장, 생활복지국장 등으로 11년간 일 했고 서울시에서는 대변인을 역임한 뒤 1급인 한강사업본부장으로 일하다 구청장 출마를 위해 공직생활을 접었다. 이번 대통령선거 때에는 윤석열 대통령후보 정책본부 자치분권특위 정책실장으로서 선거를 도왔다.
  • 헌옷으로 해녀조끼를?… 서귀포 ‘반지롱 노지스토어’ 떴다

    헌옷으로 해녀조끼를?… 서귀포 ‘반지롱 노지스토어’ 떴다

    서귀포시가 주민 주도의 친환경 업사이클링 프로그램 ‘반지롱 노지스토어’ 를 운영해 빛을 발하고 있다. 29일 서귀포시에 따르면 지속 가능한 문화도시를 조성하고 ESG(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Environmental·Social and Governance) 실천을 위해 아웃도어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와 함께 주민 주도의 친환경 업사이클링 프로그램 ‘반지롱 노지스토어’를 추진한다. 지저분한 것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제주사투리 ‘반지롱’에서 따온 이 프로그램은 서귀포시 문화도시 문화협력 사업이다. 2021년부터 마을 자생단체 주도로 추진하는 친환경 재생사업인 셈이다. 예래동 새마을부녀회 주도로 일상 속에서 버리기는 아까운데, 잘 입지 않는 옷을 리폼해서 새로운 옷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강정아 문화도시조성TF팀장은 “예래동 새마을부녀회는 지난해말에는 자신들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패션쇼 ‘이추룩 멋진 날’이란 결과 전시회까지 열 정도로 열의와 자긍심이 대단하다”며 “이번 코오롱과 협력하는 업사이클링을 위해 새로운 기계까지 구입하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코로롱과의 프로젝트는 잊혀져가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해녀들의 의복문화를 새롭게 알리고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여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부녀회원 7명과 전문강사 3명으로 이뤄진 부녀회는 이번엔 코오롱에서 제안한 해녀조끼인 연철조끼를 만든다. 연철조끼란 해녀들이 물질 할 때 바닷속에 쉽게 잠기도록 하기 위해 입는 옷으로 납덩어리를 벨트처럼 넣어 만든다. 1인당 1~2벌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1월 제주시 탑동에 오픈한 코오롱스포츠 솟솟리버스 제주점은 업사이클링 상품을 전시 판매하는 곳. 매장이 미술관처럼 운영되고 폐자원을 활용한 친환경 제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어 관심이 높다.마침 친환경 프로젝트와 커뮤니티 공간이 되길 바라는 시점에서 서귀포시의 콜라보 제안이 들어와 흔쾌히 받아들이게 됐다. 김영혜 솟솟리버스 액티비스트는 “해녀라는 중요한 국가유산에 대해 고민하던 중 해녀복을 오마주해서 조끼를 만들어 놓은 상황”이라며 “이번 콜라보 기회에 진짜 오리지널 버전 해녀복과 오마주한 해녀복을 함께 전시하면 뜻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부녀회는 오는 4월 한달간 디자인 개발과 원단 교육을 받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제품 만들기에 들어간다. 오는 7~8월에는 플리스와 바람막이가 동시에 가능한 양면조끼 시제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코오롱스포츠 솟솟리버스 제주점에선 해녀복 제품 전시는 물론 판매 수익금 기부 등 다양한 기획을 구상, 반지롱 노지스토어 프로그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러시아, 우크라 해방이 목적’...中대학서 이어지는 수상한 강좌 왜?

    ‘러시아, 우크라 해방이 목적’...中대학서 이어지는 수상한 강좌 왜?

    중국 유수의 대학들이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친러시아적 시각의 정치 사상 교육에 나서 논란이다. 중국 다수의 지역 대학들이 재학생들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두고 우크라이나의 정치 부패와 이를 해방시키기 위한 러시아의 출병이라는 내용의 강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강의는 재학생 전원에게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강요됐다.  미국 매체 자유아시아방송은 최근 중국 공산당 산시성 교육위원회가 이 지역 대학 강사들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골자로 다루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라는 교육 지침을 내렸으며, 해당 정치 사상 강의의 내용은 친러시아적 시각이 담기도록 유도했다고 29일 보도했다.  같은 날 산둥성, 섬서성, 저장성 등 다수의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교육 지침이 하달됐으며, 산둥성이 발부한 교육 지침에는 이번 사태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실제로 지난 25일 중국 공산당 섬서성 교직원 위원회와 성 교육청은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주제의 정치 사상 온라인 강좌를 섬서성 사범대학교 마르크스주의 학과 강의동에서 진행했다. 해당 강좌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올바른 인식 유도’라는 부제가 붙었다.  또, 산둥성 교육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세’라는 주제의 수업 준비에 관한 통지문을 해당 지역 대학에 발송, 지역 대학 재학생들의 사상을 친러시아적 입장에서 지도하라는 교육 지침을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공유된 영상 속에는 ‘러시아가 왜 우크라이나에 출병했는지’를 묻는 강좌에서 산둥성의 모 대학 강사가 “첫 번째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인 부패가 심각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경제 역시 피폐해졌기 때문”이라고 답변하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됐다. 이 강사는 이어 “러시아의 군사 출병의 두 번째 이유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속적인 동쪽으로의 확장 정책으로 인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민족 분단 상황 때문”이라면서 “NATO는 러시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으며,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나치에게 선동돼 러시아 주민 1만 4천 명을 학살했다. 이 모든 비극의 주요 원인은 미국에게 있다”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저장성의 명문대로 알려진 저장대 마르크스주의 학과는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우크라이나 정세 문제의 인식과 지도’라는 제목으로 한 생방송 강좌를 진행했다.  또, 저장재경대학 마르크스주의 학과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 대학 소속 뤼여우즈 교수가 진행한 ‘우크라이나 사태의 현주소’에 대한 강좌 내용을 공개했다.  이 대학 측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으며, 이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입장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사태를 통해 시진핑 국가 주석의 외교 사상을 학생들이 올바르게 지도받아야 한다는 사관을 거듭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같은 시기 헤이룽장성 교육청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다룬 강좌를 진행, 이 성에 소속된 대학 강사 약 1만 명이 해당 온라인 강좌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 시즈오카 대학 양하이잉 교수는 “중국의 이 같은 관행은 공산당의 정치적 입장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시적인 행동”이라면서 “이는 14억 명의 중국인은 오직 한 가지 관점만 가질 수 있다. 이는 대만과 홍콩, 네이멍구, 신장, 티베트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고 해석했다.  중국 당국의 교육 정책의 최종적인 목표가 서방의 사상이 중국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는데 있다는 풀이인 것.  양하이잉 교수는 이어 “중국 정부는 청소년 사상 교육을 매우 중시해오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런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탓에 청년으로 성장한 이후의 중국인 상당수는 기본적인 가치관과 개인 고유의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경우 공산당은 이들을 다루기 훨씬 수월해진다”고 비판했다.
  • 강남, 오늘·내일 ‘MZ세대 취업’ 온라인 특강

    강남, 오늘·내일 ‘MZ세대 취업’ 온라인 특강

    서울 강남구가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를 위한 온라인 맞춤형 취업 특강(포스터)을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특강은 취업·재취업을 원하는 2030세대를 대상으로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진행된다. 29일부터 30일까지 아모레퍼시픽과 SK이노베이션, 외국계 기업인 나이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현직자가 강사로 나선다. 특강 내용은 ▲청년 취업의 새로운 트렌드 ▲기업이 선호하는 합격자 면접 요령 ▲자기소개서·이력서 작성법 등이다. 또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구체적인 취업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강남구 일자리정책과 또는 큐리아서티 프로젝트로 문의하면 된다. 앞서 구는 온라인 모의면접, 인공지능(AI) 면접 체험, 온라인청년취업아카데미 등 청년 구직자를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또 기업과 구직자의 매칭을 돕기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메타버스 취업박람회’를 개최해 눈길을 끌었다.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MZ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트렌디한 취업 노하우를 제공하는 이번 온라인 특강에 가급적 많은 청년이 참여해 양질의 취업 정보를 얻어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 도봉, 장애인 비대면 운동 재활프로그램 운영

    도봉, 장애인 비대면 운동 재활프로그램 운영

    코로나19 장기화로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이 고립되고, 건강 문제가 증가하는 가운데 서울 도봉구가 장애인을 위한 온라인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28일 밝혔다. 집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홈트 재활 운동프로그램’은 지난해 참가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장애 수준별로 기초반, 심화반으로 나눠 운영한다. 반별로 20명씩 주 2회 12주 과정이다. 전문 강사와 함께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심화반은 지난해 비대면 홈트 프로그램 이수자를 대상으로 오는 6월까지, 기초반은 신규 참가자를 모집해 다음달부터 7월까지 진행한다. 기초반에서는 기초 체력과 근력 증진, 관절 구축 예방법을 배울 수 있다. 구 등록장애인 가운데 스마트폰 등 기기로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경우에 신청 가능하다. 다음달 15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구 보건소 5층 재활사업실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신청할 수 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자칫 정서·사회적 고립감에 빠질 수 있는 지역 장애인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씨랜드 참사’ 유족들 “참사 현장 옆에 대형 카페…분통”

    ‘씨랜드 참사’ 유족들 “참사 현장 옆에 대형 카페…분통”

    ‘씨랜드 참사’ 옆 들어선 카페‘씨랜드’ 부지는 주차장으로주인은 씨랜드 대표유족 “어떤 땅인지 아냐” 분노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경기 화성의 한 카페가 화제다. 이 카페가 ‘핫플(핫플레이스)’로 떠오르자, ‘사연을 알면 절대 갈 수 없다’는 네티즌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카페는 과거 ‘씨랜드 수련원 참사’ 부지 옆이었으며, 카페 대표가 당시 씨랜드 대표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최근 방영된 MBC ‘실화탐사대’에서 ‘씨랜드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주차장이 돼 버린 참사 현장을 보고 분개했다. 1000평이 넘는 규모의 이 카페는 지난 1999년 6월 19명의 유치원생과 4명의 교사 목숨을 앗아간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가 있었던 바로 옆에 위치했다. 불이 났던 현장은 현재 카페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방송에 따르면 해당 카페의 운영자는 씨랜드 수련원 원장 A씨로 알려졌다. A씨는 출소 후 카페를 개업한 것으로 전해졌다. 식물원 카페 2층이 불법 건축물인 점을 지적하자 A씨 딸은 “그래서 안쓰고 있지 않냐. 시에게 작업 명령 안 나왔는데 왜 (철거하냐)”며 반발했다. 또 A씨 아내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되레 유가족을 비난하기도 했다.유족들 “그 땅을 밟고 있는 거 아니냐. 말이 안 되지 않냐” 유족들은 주차장이 돼버린 참사 현장 모습을 보고선 분통을 터트렸다. B씨는 “정말 미친 거 같다. 불쾌하다”며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 와서 그냥 그 땅을 밟고 있는 거 아니냐. 말이 안 되지 않냐”고 했다. 또다른 유족 C씨 역시 “다시는 용서할 수가 없다”며 “(씨랜드에서) 좀 멀리 떨어진 데서 하던가. 진짜 용서가 안 된다”며 눈물을 보였다. 씨랜드 참사로 6살 딸을 잃은 이상학씨는 지갑에 품고 다니는 딸 세라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지갑에 23년째 가지고 다닌다. 잊혀지지 않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처음 가는 캠프라 즐거워 잠도 제대로 안자고 내일이면 친구들하고 선생님하고 캠핑 간다고 (좋아했다)”며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강아지 인형에 머리띠를 둘러주고 엄마, 아빠 잘 돌봐달라고 하고 떠났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 2020년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 풀숲으로 변해있었다면서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하지만 인근에는 현재 카페가 들어섰고 참사 현장은 공터로 남았다. 한편 씨랜드 참사는 지난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군에 위치한 ‘놀이동산 씨랜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자고 있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 당했던 사건이다. 당시 현장에는 총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명이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콘크리트로 만든 1층 위에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객실을 만들었다. 당시 불길이 크게 번진 이유도 화재에 취약한 불법 건축 탓이었다.
  • ‘하트시그널’ 한의사 김도균 결혼…신부보니

    ‘하트시그널’ 한의사 김도균 결혼…신부보니

    ‘하트시그널2’에 출연했던 한의사 김도균이 미모의 요가강사와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방영된 채널A ‘하트시그널2’에 출연한 김도균은 26일 서울 모처에서 비연예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김도균은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한 뒤 한 한의원의 대표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채널A 예능 ‘프렌즈’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 탄소중립시대, 환경교육 전문가되세요

    탄소중립시대, 환경교육 전문가되세요

    2050년 탄소제로 시대를 앞두고 탄소중립 실천을 이끌어 나갈 전문가 양성 과정이 열렸다. 환경부, 국가환경교육센터는 오는 29일부터 2주 동안 환경교육사 자격 취득 및 인턴제 실습과정 참여자를 모집한다고 28일 밝혔다. 환경교육사는 2015년에 도입된 제도로 환경교육 과정을 기획, 진행, 분석, 평가하는 국가전문자격으로 자격취득자는 교육 및 체험시설에서 환경교육 관련 운영자나 강사로 활동할 수 있다. 이번 과정은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실습과정은 기존 환경교육사 취득자들도 신청이 가능하다. 오는 4월 중순 청년, 저소득층 등 취업 취약계층을 우선으로 지원 대상자 15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자격취득 교육과정 지원은 4월 말부터 시작되고, 실습과정은 8월부터 연계 운영된다. 기존 환경교육사 취득자는 5월부터 실습과정 근무를 시작한다. 실습과정 참여자는 환경교육 기관과 단체에서 실무경험을 익힐 수 있으며 환경부는 이들이 환경교육 전문가로서 직무수행 역량을 키우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실습과정 근무기관을 청소년수련시설, 평생교육시설 등으로 확대하고 실습과정 참여자와 기관 요구에 맞게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자세한 내용은 환경교육포털 누리집(www.keep.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하남시청소년수련관 ‘발달장애 청소년 농구단’ 창단

    하남시청소년수련관 ‘발달장애 청소년 농구단’ 창단

    경기 하남시청소년수련관은 스포츠를 통한 발달장애 청소년의 사회활동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발달장애 청소년 농구단’(이하 농구단)을 창단한다고 26일 밝혔다. 청소년수련관에서는 지난해 장애인부모회 하남시지부와 장애·비장애 청소년이 함께 참여하는 “하하(하나된 하남 청소년)리그 농구대회”를 개최 후 참여 청소년들의 높은 만족도와 장애 인식 개선에 대한 긍정적 효과 등을 고려해 ‘하남시 발달장애 청소년 농구단’ 창단을 결정했다. 청소년수련관은 농구단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업무협약 기관인 ‘한기범희망나눔재단&한기범농구교실’의 선수 출신 전문 강사진을 담당 코치와 보조코치로 배정했고, 종합스포츠몰 기업인 ‘데카트론 코리아’와 농구단 활동을 위한 훈련 물품 후원 등에 대한 협의를 완료했다. 또한, 지난 22일 청소년수련관, 하남시청, 하남시장애인복지관, 하남시장애인체육회, 성광학교의 당당 실무자 간 관내 유관기관 협의 회의를 진행하여 농구단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운영 모델을 위한 각 기관별 역할 구분 및 상호보완적 업무 연계 등에 대해 논의했다. 농구단은 수련관과 유관기관 간 다자간 업무협약식을 시작으로 참여자 모집, 연간 정기 강습(훈련), 대회 참여 및 장애·비장애청소년 통합 농구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발달장애 청소년들에겐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한 관심 및 긍정적 인식을 확산해 나갈 예정이다. 조재영 관장은 “농구단 창단을 통해 장애청소년 생활스포츠 문화가 확산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안정적 운영을 지원해 나가겠다”고밝혔다. 참여자 모집 안내는 4월 중 장애인부모회 하남시지부 등 장애인 협회(단체), 관내 중·고등학교 공문 발송, 수련관을 비롯한 유관기관 홈페이지로 안내 예정이다.
  • 광명시의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비 공직선거법 교육 실시

    광명시의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비 공직선거법 교육 실시

    광명시의회(의장 박성민)가 25일 시의원과 의회사무국 직원 등을 대상으로 공직선거법 교육을 실시했다. 이번 교육은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대비해 올바른 공직선거법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됐다. 교육은 박인혜 광명시 선거관리위원회 선거담당관이 강사로 나서 기부행위 제한과 선거 관련 제한사항 등 공직선거법 주요 내용에 대해 교육했다. 광명시의회 의장은 “이번 교육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선거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없도록 해야 한다”며 “투명하고 깨끗한 선거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은평 ‘문해력 끌어올리기’ 대작전

    은평 ‘문해력 끌어올리기’ 대작전

    서울 은평구가 비문해·저학력 성인을 위한 ‘문해교육 지원사업 프로그램 공모’를 25일부터 29일까지 시행한다. 23일 구에 따르면 이번 공모는 비대면이 사회적 흐름이 되면서 스마트 기기와 키오스크 사용법 같은 디지털 분야의 수요를 반영해 기초문해, 생활문해, 디지털리터러시 등 3개 분야로 진행된다. 대상은 학교 등 공공기관 및 비영리 평생교육시설, 비영리 법인과 민간단체, 협동조합 등이며 기관·단체당 1개 분야 1개 프로그램만 신청할 수 있다. 구는 선정된 프로그램별로 강사비, 교재비 등 500만원 내외의 사업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공모프로그램 운영 시간은 최소 50시간이다. 학습 최소 인원은 10명 이상이다. 다만 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의 경우는 10명 내외로 가능하다. 신청을 희망하는 기관이나 단체는 오는 29일까지 구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신청서를 작성해 구청 시민교육과로 방문 접수하면 된다.
  • ‘사랑의 일기 30주년’… 인추협, 98개 학교에 사랑의 일기장 전달

    ‘사랑의 일기 30주년’… 인추협, 98개 학교에 사랑의 일기장 전달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의 ‘사랑의 일기’ 캠페인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인추협은 23일 전국 98개 학교, 1만 5000여명의 학생에게 일기장을 배부하며 1992년 시작한 캠페인을 올해도 이어 간다고 밝혔다. 사랑의 일기는 ‘반성하는 아이는 비뚤어지지 않는다’는 신념에 힘입어 전국 초·중·고교 학생의 일기쓰기를 독려해 온 캠페인이다. 인추협은 학생들의 일기쓰기 지원을 위해 일기장을 배포하는 한편 강사 양성 과정을 운영해 일기쓰는 법 교육에 힘써왔다. 지난 30년 동안 전국의 학생들이 써내려 간 일기, 일기쓰기를 교과 과정에 편입시킨 물류고등학교 사례, 초·중등 학생 대상 일기쓰기 지도법 등을 이수해야 강사가 될 수 있다.30년 전 경제발전이 빠르게 진행된 동안 각박해진 인성을 회복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캠페인은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어 왔다. 이를테면 세월호 사태 이후로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기장에 담도록 했고 요즘에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마음을 일기를 통해 기르도록 도왔다. 다만 가훈, 가족신문 만들기 같은 활동을 장려하는 일은 30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와 사랑의 일기 캠페인의 또 다른 전통을 이뤘다. 올해 인추협이 새롭게 주목한 주제는 ‘부모의 역할’이다. 그래서 사랑의 일기장과 함께 ‘부모 역할 의식 규범’을 배포했는데 ▲자녀의 인사하는 습관을 키워 주기 위해 꼭 인사를 받도록 합시다 ▲자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인내심을 가집시다 ▲자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격려합시다 ▲자녀들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고진광 인추협 이사장은 “한글을 깨치면서 무엇인가 기록하는 훈련으로 가장 먼저 배우는 글의 형식이 일기쓰기인데 꾸준히 하는 습관으로 만드는 작업이 예전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매일 지겨운 숙제로 메워야 하는 일기가 아니라 성실하게 보낸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습관을 체득할 기회가 우리 아이들에게 제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서울교육청, 506억원 추경… 4월 이후 신속항원검사키트 확보

    서울교육청, 506억원 추경… 4월 이후 신속항원검사키트 확보

    서울시교육청이 4월 이후 학교 신속항원검사 키트 확보와 유치원 교육결손 해소 등을 위해 예한을 투입한다. 서울시교육청은 506억 3000만 원 규모의 올해 첫 추가경정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추경은 ▲신속항원검사 키트 구입 등 긴급 방역 지원 ▲유치원 학급운영비 증액 및 수업지원 강사 배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마을결합형 교육회복 프로그램 및 원격수업, 긴급 돌봄 지원을 위해 편성된다. 오미크론 확산세가 멈추지 않자 서울시교육청은 400억원을 긴급히 편성, 4월 이후의 신속항원검사 키트 구입에 나선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유아의 교육결손을 해소하기 위해 사립유치원 학급운영비에 40억 5000만원을 편성하며, 공립유치원 수업 지원 강사 인건비에 40억 8000만원 등 총 81억원을 증액 편성한다. 인상된 학급운영비는 내실 있는 놀이 중심 교육과정 운영, 원격교육 환경 조성, 에듀파인 전담 인력 인건비 등에 사용된다. 이 밖에도 마을과 협력해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마을결합형 교육회복’ 사업에 자치구별 1억원씩, 총 25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 정보·융합·외국어 분야 차별화된 영재교육한다

    정보·융합·외국어 분야 차별화된 영재교육한다

    대구대 글로벌브릿지연구소가 최근 영재교육원 교육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대면·비대면 방식으로 구성된 입학식을 개최했다. 글로벌브릿지연구소는 지난 2014년 경상북도교육청으로부터 지정돼 대학 영재교육원의 인가를 받은 연구소로서 글로벌브릿지 영재교육원을 통해 영재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영재교육원은 올해 102명의 교육생을 대상으로 기초·심화학습의 정보 2개 과정, 융합 3개 과정 및 초·중등 외국어 2개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영재교육원은 오는 26일부터 원격교육과 함께 주로 대면 교육으로 구성된 120시간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이미순 대구대 글로벌브릿지연구소장은 “정보·융합·외국어 분야에서 권위 있는 책임교수와 교사로 강사진을 구성하고, 경북지역 영재의 교육적 요구에 부합되는 맞춤식 개별화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 임창정, 다섯아들 키우는 18세차 부인 공개

    임창정, 다섯아들 키우는 18세차 부인 공개

    가수 임창정(49)이 18세 연하 서하얀(31)씨와 결혼생활을 공개한다. 21일 SBS ‘동상이몽 시즌2-너는 내 운명’은 방송 말미 임창정·서하얀 부부 합류를 예고했다. 임창정은 “아내 키가 176㎝니까 (나와) 5.9㎝ 차이 난다”며 “열여덟 살 차이”라고 밝혔다. 서씨는 “생각보다 남편 키가 너무 작다. 세대 차이도 난다”며 “만난 지 몇 개월 지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소개해 당황스러웠다”고 귀띔했다. 임창정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배고파”라고 했다. 서씨는 바로 요리를 했고, 임창정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 다섯 가지다. 창정이 정식”이라며 자랑했다. 서씨는 다섯 아들과 남편까지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면 임창정은 침대에서 핸드폰을 하며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서씨가 “막내 등원 준비 좀 해줘”라고 하자, 임창정은 “내가? 뭘 어떻게? 얘 세수 안 했는데? 세수해야 해?”라며 당황했다. 화장실에서 막내 양치질을 가르쳤고, 아이가 입안의 물을 다른 곳에 뱉자 “어디다가 뱉어”라며 답답해 했다. 임창정은 2017년 요가강사 서씨와 재혼했다. 다음해와 2019년 두 아들을 얻었다. 2006년 프로골퍼 출신 김모씨와 결혼했지만, 7년 여만인 2013년 갈라섰다. 슬하에 세 아들을 뒀다.
  •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아르헨 대통령과 회동…“리튬 광산 개발 협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아르헨 대통령과 회동…“리튬 광산 개발 협력”

    포스코그룹의 아르헨티나 리륨 광산 개발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2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에서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회동, 포스코그룹과 아르헨티나 정부간의 이차전지소재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고 포스코그룹이 22일 밝혔다. 이 자리에는 아르헨티나 연방정부 쿨파스 생산부 장관, 아빌라 광업 차관 등도 참석했다. 이날 만남은 아르헨티나 현지 리튬 공장 착공식을 앞두고 이뤄졌다. 최 회장이 그룹 핵심사업의 성공적 진행을 위해 지원한 아르헨티나 정부에 감사의 의미를 전달하고 향후 사업협력 강화 의지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아르헨티나 정부도 포스코그룹의 현지 리륨 사업 전반에 대한 인프라 및 인허가 등 포괄적 지원을 약속했다고 포스코그룹이 설명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2018년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를 인수, 3년여간의 현지 생산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 및 데모플랜트 검증을 마치고 23일 상용화 공장 착공식을 앞두고 있다. 최 회장은 “포스코그룹은 아시아 철강사 중 최초로 탄소중립 2050을 선언하고, 이차전지 소재와 리튬/니켈, 수소 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철강을 넘어 친환경 미래소재 대표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며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소재인 리튬은 포스코그룹의 미래 성장을 견인할 핵심 사업 분야로, 아르헨티나 정부 차원의 협력이 필수적이다”고 밝혔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포스코그룹이 아르헨티나 염호에 선제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리튬을 직접 생산해줘서 감사하다”며 “포스코그룹의 리튬 사업이 조속히 성과를 내고, 사업 규모도 확장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인프라 및 인허가 등 모든 것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포스코그룹은 이날 아르헨티나 정부와 향후 리튬 공장 증설 및 양극재 생산 협력까지 추진한다는 사업확대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그룹은 아르헨티나에서 리튬 생산을 늘리고, 이를 통해 양극재까지 현지에서 생산하며 이차전지소재 밸류체인을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최 회장은 이차전지소재사업 뿐만 아니라 수소사업, 식량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요청하였으며, 이에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아르헨티나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발전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보유해 그린수소 사업에 매우 유리한 국가다. 또한 세계 최대 대두 수출국이자 밀/옥수수 등 곡물의 주요 수출국으로 식량사업 협력에도 적합한 파트너로 평가되고 있다. 이어 최 회장은 민간외교 차원에서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지지도 부탁했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리튬 매장량 기준 세계 4위, 생산량 기준으로는 3위에 해당되는 국가로, 최근 전 세계가 리튬 원료 확보를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어 아르헨티나와의 전략적 협력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리튬 자원의 인수/탐사 후, 배터리용 수산화리튬 생산설비 건설과 운영까지 전 과정을 추진하는 것은 포스코그룹이 최초라고 그룹 측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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