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설이 내 詩가 되었다”
시와 소설은 문학이란 울타리 안에 한 집을 차리고 있지만, 노래와 이야기라는 본질의 차이는 생각 외로 크다. 그러나 장르 구분과는 별개로 사람의 일은 경계가 없는 모양이다. 문인들은 장르를 떠나 서로 사귀고, 서로 건네는 환담 속에서 무한한 영감을 얻는다.
문학계간지 ‘시인세계’ 겨울호가 마련한 기획특집 ‘내 시 속에 들어온 소설’은 시인과 소설가의 교류 속에서 피어난 작품들을 소개한다. 정진규, 천양희, 이건청, 김광규, 김혜순, 이재무, 문인수, 나희덕, 조용미, 박형준, 김언, 김경주, 이근화, 최금진 등 14명의 시인들은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자신의 작품들과 함께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전한다.
소설가 이청준과 시인 정진규의 인연은 각별하다. 정진규의 시 ‘눈물’은 치매에 걸린 이청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쓴 작품. 여기서 시인은 ‘아들인 자신의 이름도 까맣게 잊은 채 손님 오셨구마 우리 집엔 빈 방도 많으니께 편히 쉬었다 가시오 잉 하시더라는 것이었는데’라고 노래했다.
소설가 이청준은 이 시를 다시 자신의 소설 ‘축제’에 인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갔다. 정진규는 “소설 ‘축제’와 시 ‘눈물’이 들어가 있는 시집 ‘알詩’를 지금도 나란히 서가에 꽂아두고 있다.”고 전하기도 한다.
천양희 시인도 자신의 시 ‘산행’이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수많은 소설들을 읽고 감동했지만, 내 속에 우물 하나 품는 것, 그것이 시의 마음으로 무장하는 것이라고 일러준 소설은 처음이었다.”고 고백한다. 시인들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는 데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없다. 시인 김언은 자신의 시 ‘아름다운 문장’이 일본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사요나라, 갱들이여’에서 받은 인상을 옮긴 것이라고 했고, 시인 조용미는 시 ‘종생기’가 1930년대 이상의 소설 ‘종생기’의 오마주임을 밝힌다.
한편 시인들의 마음을 가장 많이 뒤흔들어 놓은 작가는 카프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건청, 김광규, 박형준 등 복수의 시인들이 카프카 소설에서 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전한다.
시 ‘정직한 시인’을 쓴 이건청 시인은 카프카의 소설 ‘굶는 광대’를 통해 “세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를 얻었다.”고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