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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아름답구나, 폭우의 상처도 품고 흐르니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아름답구나, 폭우의 상처도 품고 흐르니

    미호천이란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요. 아마 올여름에 부쩍 많이 들은 이름일 겁니다. 미호천은 충북 청주와 진천 등의 주민들에게 젖줄 같은 강입니다. 삶의 터전이자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이지요. 올여름 미호천은 폭우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탓에 지금은 물가의 생명들이 누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곧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겁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 왔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잠시 볼품없는 몰골이라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지요. ‘아름다운 강’ 미호천 일대를 돌아봤습니다. 상처 입은 강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너른 품을 사람에게 벌리고 있었습니다.미호천(美湖川)은 이름 그대로 크고 작은 모래톱과 여울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하천이다. 나라 안 대부분의 하천이 준설, 모래 채취, ‘녹차 라테’ 따위에 시달리지만, 미호천에선 그런 구간을 찾기 어렵다. 사람의 간섭이 적었다는 뜻이다. ‘삽질’과 개발이 능사인 시대에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수질 오염의 소지는 여전하다. 하천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설과 도시가 곳곳에 웅크리고 있어서다.●미호천, 마이산~금강 90㎞ 흐르는 하천 충북 음성의 마이산에서 시작된 미호천은 세종시에서 금강과 합류될 때까지 약 90㎞ 정도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강의 원형을 곳곳에 펼쳐 놓는다. 이리 굽고 저리 휘는 동안 모래톱과 여울이 번갈아 나오고, 크고 작은 버드나무는 둑방을 따라 흐드러졌다. 이 강물에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가 산다. 1984년 미호천에서 처음 발견된 한국 고유의 어류다. 미호천에 많다고 해서 미호종개란 이름을 얻었지만 서식지 파괴와 수질오염으로 개체수가 급감해 절멸 위기에 놓였다. 우리 산하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황새 복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도 바로 이 강의 상류 지역이다. 강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독특하기로는 ‘포플러 장학금’이 가장 앞줄에 설 듯하다. 옛 청원군(현 청주시 청원구)에서 운용했던 ‘포플러 장학금’은 가난했던 1960년대 1만 4000그루의 포플러를 강외면 궁평리 미호천 둔치에 식재한 뒤 이를 목재로 팔아 조성했다. 당시 2000여명 정도가 이 장학금의 혜택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기리는 포플러 장학금 기념관이 옥화자연휴양림 안에 조성돼 있다. 미호천은 청주에서 세종시에 이르는 구간에서 강폭을 한껏 넓힌다. 증평의 보강천, 청주 무심천 등 여러 지류와 합쳐진 결과다. 한데 강폭과는 달리 웅숭깊은 풍경은 상류 쪽에 많다. 특히 진천군과 청주 오창읍 등의 구간에 빼어난 풍경을 빚어 놨다. 다만 강의 진면목을 살피기는 쉽지 않다. 접근로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주변에 조성된 걷기 길이나 몇몇 관광지 등을 돌아보는 게 고작이지만, 이마저도 빼어나다. ●농다리 천년 이어온 비결은 지네 닮은꼴 모양 미호천 주변 볼거리 가운데 ‘전국구’ 관광지를 꼽으라면 단연 진천 농다리(충북유형문화재 28호)다. 국내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고려 초에 축조됐으니 연혁이 천 년을 넘나든다. 미호천 상류의 농다리는 편마암의 일종인 자줏빛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길이가 얼추 94m에 달한다. 모양은 지네를 닮았다. 거대한 지네가 몸을 살짝 굽혀 물살을 가로지르는 형상이다. 현지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같은 유연한 형태 덕에 미호천의 물살을 견디며 천 년을 이어 왔다고 설명했다. 농다리는 조성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딱히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만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다. 일반적으로는 고려 개국공신인 임희 장군이 처음 조성했고, 고려 고종 때 무인 임연이 개보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천군 태수를 지낸 신라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고구려에 전승을 거둔 것을 기념해 놓았다는 설도 있다. 오래된 다리일수록 이리저리 얽힌 사연도 많기 마련이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다리 일부가 소실된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당시 교각 5칸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올여름 청주와 미호천 등을 할퀸 물난리 때는 교각 일부와 상판 세 개가 유실됐다. 후대가 이를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농다리는 현재 통행이 금지된 상태다. 유실된 부분의 보수 작업을 거쳐 이르면 9월쯤 다시 출입이 허용될 전망이다. 농다리 너머에 정자와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정자에 앉아 굽이치는 미호천과 물 위로 놓여진 ‘검은 지네’를 보는 맛이 각별하다. 전망대 뒤로는 산책로가 놓였다. 이른바 ‘초롱길’의 하나로 초평저수지까지 연결돼 있다. 초평지는 미호천의 지류를 막아 축조했다. ‘미호저수지’라고도 불린다. 산책로 끝자락의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초평지 풍경이 빼어나다.●김유신 탄생지 진천… 계양마을에 생가 복원 진천은 흥무대왕 김유신의 탄생지다. 신라 진평왕 17년(595)에 만노군(신라 때 진천군의 이름) 태수를 지내던 김서현과 만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천 일대에 그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몇 곳 있다. 미호천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사 공부 삼아 찾아볼 만하다. 김유신 생가는 상계리 계양마을에 복원돼 있다. 김유신 탄생지 뒤편은 길상산이다. 산 정상 어름에 그의 태실지가 있다. 김유신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길상사는 탄생지에서 뚝 떨어진 벽암리 도당산 아래 있다. 초평지에서 좀더 아래로 내려가면 충북학생수련원이다. 이 일대에도 ‘인증샷’ 찍을 만한 곳이 많다. 이 앞을 흐르는 미호천의 다른 이름은 은여울이다. 은탄(銀灘)리는 이를 한문으로 쓴 행정 명칭이다. 이름만큼 맑고 고운 여울이 흘러간다. 팔결다리 주변엔 자전거 도로와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팔결다리는 청주와 옛 청원군 오창읍을 연결하는 다리다. 현재의 팔결교는 왕복 6차로의 도로를 이고 있는 큰 다리지만 옛 ‘팔결교’는 그보다 상류 쪽에 소박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1970년대 옛 팔결다리는 청주와 오창 주민들이 즐겨 찾는 피서지였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시절 주민들은 물이 깨끗하고 모래사장이 너른 팔결다리 인근에서 천렵이나 물놀이를 즐기며 여름을 보냈다. 요즘도 천렵을 즐기는 이들은 종종 눈에 띄지만 수영을 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미호천이 청주에서 흘러온 무심천과 합류되는 곳이 까치내다. 미호천의 여러 물줄기 가운데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곳이다. 강가엔 버드나무가 많다. 시골에서 살았던 이라면 누구나 버드나무 잔가지로 만든 버들피리의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터다. 청주 일대에선 이를 ‘호드기’라 부른다. 매끈한 가지를 골라 자르고, 껍질을 비틀어 줄기와 분리시킨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자르면 버들피리 완성이다. 겨우 삘릴리 소리나 낼 정도지만 둑방길 걸으며 추억을 소환하기에 이만한 도구가 없지 싶다. ●연인들 인생샷 남기는 까치내 정북동 토성 까치내를 따라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문암생태공원 등 주변에 돌아볼 만한 곳도 있다. 까치내 위쪽엔 정북동 토성이 있다. 미호천변의 평지에 축조된 사각형의 토성이다. 삼국시대 초기인 2~3세기쯤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이 약간 긴 방형의 형태로 전체 길이는 675m 정도다. 정북동 토성은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촬영지다. 해거름에 펼쳐지는 서정적인 풍경을 담기 위해서다. 최근엔 청주 등지의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코스로 급부상 중이다. 초록빛 성터를 도란도란 걷거나 성벽 위의 소나무 한 그루를 배경 삼아 ‘인생 샷’을 남기기도 한다. angler@seoul.co.kr■여행수첩 →가는 길:농다리와 초평저수지 등 미호천 상류를 먼저 보겠다면 중부고속도로 진천 나들목, 정북동 토성은 오창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빠르다. 까치내, 문암생태공원 쪽은 서청주 나들목이 다소 낫다.→맛집:공원당(255-3894)은 메밀국수(위)로 50년 넘게 명성을 이어 온 집이다. 중앙공원 옆에 있다. 남주동 해장국(256-8575)과 서문 해장국(224-5999)은 해장국으로 쌍벽을 이루는 집이다. 청주 사람들은 예부터 고추장 삼겹살을 즐겨 먹었다. 백로식당(273-0713)이 이름났다. 서문시장 안쪽에 삼겹살 거리(아래)도 조성돼 있다. 옛 방식대로 구워 내는 ‘시오야키’(삼겹살 소금구이)를 맛볼 수 있다. 진천 초평지 쪽에 붕어찜 집들이 몰려 있다. 송애집(532-6228), 배를 타고 들어가는 쥐꼬리명당(532-6647) 등이 알려졌다.
  • 아름답구나, 폭우의 상처도 품고 흐르니

    미호천(美湖川)은 이름 그대로 크고 작은 모래톱과 여울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하천이다. 나라 안 대부분의 하천이 준설, 모래 채취, ‘녹차 라테’ 따위에 시달리지만, 미호천에선 그런 구간을 찾기 어렵다. 사람의 간섭이 적었다는 뜻이다. ‘삽질’과 개발이 능사인 시대에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수질 오염의 소지는 여전하다. 하천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설과 도시가 곳곳에 웅크리고 있어서다.●미호천, 마이산~금강 90㎞ 흐르는 하천충북 음성의 마이산에서 시작된 미호천은 세종시에서 금강과 합류될 때까지 약 90㎞ 정도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강의 원형을 곳곳에 펼쳐 놓는다. 이리 굽고 저리 휘는 동안 모래톱과 여울이 번갈아 나오고, 크고 작은 버드나무는 둑방을 따라 흐드러졌다. 이 강물에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가 산다. 1984년 미호천에서 처음 발견된 한국 고유의 어류다. 미호천에 많다고 해서 미호종개란 이름을 얻었지만 서식지 파괴와 수질오염으로 개체수가 급감해 절멸 위기에 놓였다. 우리 산하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황새 복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도 바로 이 강의 상류 지역이다.강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독특하기로는 ‘포플러 장학금’이 가장 앞줄에 설 듯하다. 옛 청원군(현 청주시 청원구)에서 운용했던 ‘포플러 장학금’은 가난했던 1960년대 1만 4000그루의 포플러를 강외면 궁평리 미호천 둔치에 식재한 뒤 이를 목재로 팔아 조성했다. 당시 2000여명 정도가 이 장학금의 혜택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기리는 포플러 장학금 기념관이 옥화자연휴양림 안에 조성돼 있다.미호천은 청주에서 세종시에 이르는 구간에서 강폭을 한껏 넓힌다. 증평의 보강천, 청주 무심천 등 여러 지류와 합쳐진 결과다. 한데 강폭과는 달리 웅숭깊은 풍경은 상류 쪽에 많다. 특히 진천군과 청주 오창읍 등의 구간에 빼어난 풍경을 빚어 놨다. 다만 강의 진면목을 살피기는 쉽지 않다. 접근로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주변에 조성된 걷기 길이나 몇몇 관광지 등을 돌아보는 게 고작이지만, 이마저도 빼어나다.●농다리 천년 이어온 비결은 지네 닮은꼴 모양미호천 주변 볼거리 가운데 ‘전국구’ 관광지를 꼽으라면 단연 진천 농다리(충북유형문화재 28호)다. 국내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고려 초에 축조됐으니 연혁이 천 년을 넘나든다. 미호천 상류의 농다리는 편마암의 일종인 자줏빛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길이가 얼추 94m에 달한다. 모양은 지네를 닮았다. 거대한 지네가 몸을 살짝 굽혀 물살을 가로지르는 형상이다. 현지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같은 유연한 형태 덕에 미호천의 물살을 견디며 천 년을 이어 왔다고 설명했다.농다리는 조성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딱히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만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다. 일반적으로는 고려 개국공신인 임희 장군이 처음 조성했고, 고려 고종 때 무인 임연이 개보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천군 태수를 지낸 신라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고구려에 전승을 거둔 것을 기념해 놓았다는 설도 있다.오래된 다리일수록 이리저리 얽힌 사연도 많기 마련이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다리 일부가 소실된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당시 교각 5칸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올여름 청주와 미호천 등을 할퀸 물난리 때는 교각 일부와 상판 세 개가 유실됐다. 후대가 이를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농다리는 현재 통행이 금지된 상태다. 유실된 부분의 보수 작업을 거쳐 이르면 9월쯤 다시 출입이 허용될 전망이다.농다리 너머에 정자와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정자에 앉아 굽이치는 미호천과 물 위로 놓여진 ‘검은 지네’를 보는 맛이 각별하다. 전망대 뒤로는 산책로가 놓였다. 이른바 ‘초롱길’의 하나로 초평저수지까지 연결돼 있다. 초평지는 미호천의 지류를 막아 축조했다. ‘미호저수지’라고도 불린다. 산책로 끝자락의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초평지 풍경이 빼어나다.●김유신 탄생지 진천… 계양마을에 생가 복원진천은 흥무대왕 김유신의 탄생지다. 신라 진평왕 17년(595)에 만노군(신라 때 진천군의 이름) 태수를 지내던 김서현과 만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천 일대에 그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몇 곳 있다. 미호천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사 공부 삼아 찾아볼 만하다. 김유신 생가는 상계리 계양마을에 복원돼 있다. 김유신 탄생지 뒤편은 길상산이다. 산 정상 어름에 그의 태실지가 있다. 김유신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길상사는 탄생지에서 뚝 떨어진 벽암리 도당산 아래 있다.초평지에서 좀더 아래로 내려가면 충북학생수련원이다. 이 일대에도 ‘인증샷’ 찍을 만한 곳이 많다. 이 앞을 흐르는 미호천의 다른 이름은 은여울이다. 은탄(銀灘)리는 이를 한문으로 쓴 행정 명칭이다. 이름만큼 맑고 고운 여울이 흘러간다.팔결다리 주변엔 자전거 도로와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팔결다리는 청주와 옛 청원군 오창읍을 연결하는 다리다. 현재의 팔결교는 왕복 6차로의 도로를 이고 있는 큰 다리지만 옛 ‘팔결교’는 그보다 상류 쪽에 소박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1970년대 옛 팔결다리는 청주와 오창 주민들이 즐겨 찾는 피서지였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시절 주민들은 물이 깨끗하고 모래사장이 너른 팔결다리 인근에서 천렵이나 물놀이를 즐기며 여름을 보냈다. 요즘도 천렵을 즐기는 이들은 종종 눈에 띄지만 수영을 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미호천이 청주에서 흘러온 무심천과 합류되는 곳이 까치내다. 미호천의 여러 물줄기 가운데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곳이다. 강가엔 버드나무가 많다. 시골에서 살았던 이라면 누구나 버드나무 잔가지로 만든 버들피리의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터다. 청주 일대에선 이를 ‘호드기’라 부른다. 매끈한 가지를 골라 자르고, 껍질을 비틀어 줄기와 분리시킨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자르면 버들피리 완성이다. 겨우 삘릴리 소리나 낼 정도지만 둑방길 걸으며 추억을 소환하기에 이만한 도구가 없지 싶다.●연인들 인생샷 남기는 까치내 정북동 토성 까치내를 따라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문암생태공원 등 주변에 돌아볼 만한 곳도 있다. 까치내 위쪽엔 정북동 토성이 있다. 미호천변의 평지에 축조된 사각형의 토성이다. 삼국시대 초기인 2~3세기쯤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이 약간 긴 방형의 형태로 전체 길이는 675m 정도다. 정북동 토성은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촬영지다. 해거름에 펼쳐지는 서정적인 풍경을 담기 위해서다. 최근엔 청주 등지의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코스로 급부상 중이다. 초록빛 성터를 도란도란 걷거나 성벽 위의 소나무 한 그루를 배경 삼아 ‘인생 샷’을 남기기도 한다. angler@seoul.co.kr미호천이란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요. 아마 올여름에 부쩍 많이 들은 이름일 겁니다. 미호천은 충북 청주와 진천 등의 주민들에게 젖줄 같은 강입니다. 삶의 터전이자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이지요. 올여름 미호천은 폭우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탓에 지금은 물가의 생명들이 누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곧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겁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 왔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잠시 볼품없는 몰골이라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지요. ‘아름다운 강’ 미호천 일대를 돌아봤습니다. 상처 입은 강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너른 품을 사람에게 벌리고 있었습니다.천 년을 넘나드는 세월을 이어 온 진천 농다리(왼쪽). 미호천이 품은 풍경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여행지다. 오른쪽은 김유신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길상사다.
  • 출근길 ‘교통지옥’ 피해 수영으로 출근하는 男

    출근길 ‘교통지옥’ 피해 수영으로 출근하는 男

    매일 아침마다 자신의 노트북까지 챙겨 수영으로 출근하는 남성의 일상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독일 뮌헨에 사는 남성 벤자민 데이비드(40)는 매일 아침 뮌헨을 가로지르는 이자르 강을 2㎞가량 헤엄쳐 출근한다. 출근 준비물은 방수주머니. 이 주머니 안에는 각종 옷가지와 노트북 등 전자기기 등이 빼곡하게 담겨져 있고, 안에 물품을 넣은 뒤 입구에 있는 끈을 조이면 저절로 부풀어서 마치 튜브나 해난구조용 부표처럼 몸이 뜨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름에는 매일, 겨울에는 온도에 따라 가끔 ‘수영 출근’을 실시하는데, 겨울에 수영 출근을 할 때에는 반드시 잠수복을 착용하며, 강바닥에 있을 유리조각 등에 다치지 않기 위해 고무 샌들을 꼭 신는다. 데이비드가 수영 출근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년 전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꽉 막히고 시끄러운 도로에서 출근 시간을 버텨야 하는 것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낀 그는 어느 날 집 앞을 흐르는 이자르 강을 본 뒤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평소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30분이 넘게 걸리지만, 데이비드의 경우 강물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이동하면 15~20분 안에 회사 앞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는 “강에서 수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아침마다 강의 상태와 온도 등을 반드시 체크하고 있다. 또 수영을 하기 전 스트레칭 등 준비운동을 철저히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영을 하며 여유롭게 출근해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동료들은 꽉 막힌 도로에서 한숨을 내쉬며 출근한다”면서 자신의 이색적인 일상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편 이자르 강은 평소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수영을 하기에 큰 문제가 없으며, 현재까지 데이비드를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이 강을 건너 출근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김포 조강 생태·물길 남북공동조사… 한반도 해빙 물꼬 틀 것”

    [자치단체장 25시] “김포 조강 생태·물길 남북공동조사… 한반도 해빙 물꼬 틀 것”

    ‘김포’라 불린 지 올해로 1260년을 맞은 김포시는 한강신도시와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2035년 인구 67만명을 예상하며 경기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유영록 김포시장은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포는 155마일 휴전선 중 비무장지대(DMZ)가 없는 유일한 지역”이라며 “김포 조강(한강하구) 일대에서 남북 공동 생태조사를 추진해 해빙 물꼬를 트겠다”고 말했다. 1953년 체결된 남북 정전협정에 따라 김포 북단 조강은 남북 선박항해가 가능하고 휴전선이 없는 유일한 구역이다. 유 시장은 민선 6기의 남은 과제로 김포 지하철 완전 개통, 북부권종합발전계획 수립, 풍무역세권 개발, 한강시네폴리스 조성 등을 꼽았다. 유 시장은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고쳐 매듯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해현경장(解弦更張)의 자세로 더욱 현장행정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김포시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준비하는 ‘평화문화1번지’로 성장을 꿈꾸고 있다는데. -70주년인 2015년 광복절에 김포시는 대내외적으로 평화문화도시를 선언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대화가 끊긴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도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다.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말라리아 퇴치 관련 의약품을 지원하고 북한 어린이 구호활동 답사를 추진 중이었는데 이마저 중단됐다. 김포는 6·25전쟁 후 정전협정상 강화 교동까지 중립지대로 지정된 한반도의 유일무이한 곳이다. 중립지대인 월곶면 보구곶리 1번지에 ‘평화의 소’(1997년 홍수로 북한에서 남쪽으로 떠내려와 죽기 직전 한국에서 구조된 북한의 황소)로 유명해진 유도 섬이 있다. 이곳을 ‘평화의 섬’이라고 부른다.●공동생태조사 유네스코본부서 돕겠다고 약속 →얼어붙은 남북 간 물꼬를 열 수 있는 복안이 있나. -한강 하구 중립지대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강 생태·물길조사를 남북한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방안이다. 최근 유럽출장에서 유네스코본부를 방문해 유도에서 남북 생태학자나 지리학자, 식물학자들이 함께 참여해 생태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유네스코본부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통해 정식으로 본부에 제안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유네스코는 비정치적이고 비군사적인 국제기구다. 끊어진 남북관계 물꼬를 트는 데 유네스코를 활용하면 상당히 실효적이라고 본다. 마침 유네스코본부에 한국 출신 직원이 있다. 사무총장을 보좌하는 아태지역 최고책임자로 한국담당자 노희창씨가 있다. 북한담당자에 북한인 출신도 있다. 지난달 27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김광호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공동생태조사 사업에 협조를 당부했다. 김 총장도 흔쾌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강과 임진강·염하강이 만나는 조강은 남북분단 이전까지 경제활동이 왕성했던 곳이다. 향후 구상이 있다면. -조강은 한강하구의 원이름으로,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부터 강화교동도 옆 말도까지를 말한다. 조강은 분단 전 서울을 오가는 최대 수로교통 길목이었다. 1953년 정전협상 이후에 조강 대신 ‘한강하구’라는 명칭을 썼다. 조강 일대는 지금이라도 남북한 합의만 있으면 배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간조 시에는 퇴적층이 많이 쌓여 걸어서도 다닐 수 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평양을 방문해 발표한 ‘10·4 선언’ 때 현 서주석 국방부차관이 청와대 평화안보수석으로 재직했다. 그때 서부평화협력지대와 관련해 남북한 간 합의한 사항이 있다. 새 정부 들어서기 전 서 차관을 초청해 제주포럼에서 세미나를 가진 적 있다. 국내대표로 서 차관이 서해평화협력지대 관련 주제발표를 하고 이스라엘 하이파대학의 글렌 세겔 교수가 이스라엘·요르단의 분쟁지대인 홍해문제를 발표했다. 국내외 사례를 모델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추진해 조강평화문화특구 조성을 계획 중이다.→한강하구에 대한 남북공동 생태 물길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우선 한강물길부터 복원해야 한다. 분단 이후 남북한이 중립지대 안에서 생태조사나 물길조사를 한번도 못했다. 더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강 신곡수중보까지 막아버렸다. 정부와 협의되면 신곡수중보는 4대강 사업보다 먼저 철거할 예정이다. 한강에 가보면 신곡수중보 위에 각종 오염물질이 쌓여 있고 기온이 올라가면 녹조현상까지 발생하고 있어 심각하다. 예전엔 모래사장이 많았는데 수중보 설치 이후 생태계 변화로 모두 사라졌다. 산남습지나 장안습지도 사실 신곡수중보 설치로 인해 만들어졌다. 재난 안전 차원에서 이들 습지도 조사해봐야 한다.●도시철도 공정률 78%… 빚 없이 운영 가능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로 경기 북부 접경지역 규제 완화 공약안을 발표했다. 시의 북부권 종합발전 계획은. -현재 북부권종합발전계획 연구용역을 추진 중으로 중간보고회까지 진행한 상태다. 최근 5개 읍·면을 한국공동자치연구원과 함께 순회하며 주민의견을 들었다. 전문가 자문위원 10명을 위촉해 오는 10월 말까지 최종 용역보고서를 마련할 예정이다. 북부권에 중복 규제가 많은데 이러한 규제들을 풀 방안을 모색 중이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을 시작으로, 하성면 양택리 일대까지 환경이 잘 보존된 곳이 있다. 이곳을 관광문화벨트로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김포 도시철도 ‘골드라인’이 시운전 중이다. 내년 11월 개통 예정인데 차질은 없나. -골드라인은 지난달 공정률이 78%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최신식 차량 6량을 들여와 한강 차량기지에서 마산역 3.07km 구간 정거장 3곳을 시운전을 시작했다. 연말엔 23.67km, 정거장 10개소 전 구간에서 시운전할 계획이다. 일부에서 의정부전철처럼 파산 걱정을 하는데 안심해라. 우리 시는 지하철 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채가 전혀 없다. 민간투자방식인 의정부와 전액 재정사업인 김포시와는 근본적으로 사업방식이 다르다. 총사업비 1조 5000억원 중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조 2000억원을, 김포시가 3000억원을 6년 동안 부담하는 구조다. 내년에 150억원가량 완납하면 빚 없이 지하철을 운행할 수 있다. 또 노선을 국도 48호선으로 직선화시켜 이동시간이 빠르다. 양촌역에서 김포공항역까지 모두 9개 구간을 23분대로 달린다. 강남까지는 59분대에 도착할 수 있다.●대학 유치는 서울·수도권 소재 3곳과 협의 →거물대리 일대 주택가 부근에 주물공장이 난립해 오염물질 배출로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그 지역은 1970년부터 공장들이 개별 입주해 주민들의 오염 피해가 크다. 시에서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해 오염업체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해 폐쇄명령 등 강력한 단속을 펼치고 있다. 별도로 국토교통부와 공동으로 거물대리 일대 60만평 종합발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공장들을 한 군데로 이전하고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공동주택사업을 국토부에 건의했다. 이번 사업은 지자체로서는 전국에서 처음 추진하는 사례다. LH와 협의해 국토부에 사업계획을 공식 접수했다. 이후 국토부에서 3차례나 현장을 방문했다. 이 일대를 산단과 주거단지, 녹지공간으로 재정비하는 획기적인 사업계획 수립을 오는 10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무산된 4년제 대학교 유치 문제 등 풍무역세권 개발사업은 어떻게 돼 가나. -지난번 국민대와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해 대학 유치를 진행한 바 있다. 2만 7000평 부지 무상 제공에 건축비 100억원을 지원하는 조건이었다. 그 당시 국민대 측에서 대학부지 외에 대학건물까지 무상제공해 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시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라 수용하기 어려웠다. 이후 다시 서울 소재 대학을 포함해 수도권 대학 3곳과 유치를 협의 중이다. 지난번 무산 사례를 경험 삼아 올해 안에 투명하게 공모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신중히 진행해 대학 유치를 확정한 후 공개할 예정이다. ●교육청 11월 이전… 시청은 옮길 계획 없어 →현 시청사를 지은 지 30년 됐다. 이전할 계획인가. -이전할 생각이 없다. 경찰서와 세무서는 장기동신도시로 이전했고 교육청은 오는 11월 이전할 예정이다. 시청까지 떠나면 원도심이 휑해지면서 슬럼화할 것이다. 시민들도 혈세를 들여 신청사를 짓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시청 바로 앞 공설운동장 부지 93%가 시청 땅이다. 현 청사가 비좁으면 훗날 별도청사를 이곳에 마련할 수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물 불어난 계곡에 ‘감동의 인간띠’ 등장…전원 무사

    물 불어난 계곡에 ‘감동의 인간띠’ 등장…전원 무사

    계곡을 찾았다가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고립됐던 사람들이 서로와 서로를 잇는 ‘인간띠’를 통해 안전하게 현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공개됐다. 미국 폭스뉴스 등 현지 언론의 6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유타주 남서부에 있는 자이언국립공원은 갑자기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나면서 관광객들이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관광객 중에는 나이가 든 노인부터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 등이 포함돼 있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물살이 급해진 탓에 얕은 물 조차 건너기를 두려워하는 관광객까지 발생한 상황이었다. 이때 몇몇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인간띠는 거센 물살을 건너던 사람들이 발을 헛딛고 강 하류로 휩쓸려 내려가는 것을 방지해줄 뿐만 아니라, 강을 건너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나 노인들에게는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 주기도 했다. 당시 손에 손을 아 인간띠를 만든 한 남성은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면서 나와 내 사촌, 동생 등은 손으로 인간 띠를 만들고 사람들을 도왔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다른 관광객들도 나와 함께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에게는 매우 값진 경험이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돼 매우 기뻤다”고 덧붙였다. 해당 영상은 당시 인간띠를 만들었던 남성 중 한 명이 촬영해 SNS에 올리면서 따뜻한 감동을 선사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나태주의 풀꽃 편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태주의 풀꽃 편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며칠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문학 강연 여행을 다녀왔다. 7박 9일. 주로 문인들을 만났다. 덩치 큰 나라, 힘센 나라로 이민 가서 떠나온 나라, 어머니 나라의 말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고 그들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번번이 애절한 마음이다. 그들의 모국어 실력은 떠날 때 수준 그대로 멈춰져 있고 문학단체 운영은 부침이 심해 불안했다. 그러자고 모국어로 글을 쓰고 문학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서로 바라만 보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짠한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주로 한국의 시를 이야기하면서 왜 오늘날 우리들이 불행하며 이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시와 시인이 맡아야 할 몫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했다. 오늘날 한국의 시와 문단은 깨어진 거울과 같다. 하지만 깨어졌으므로 옥석이 가려졌고 그러므로 새로운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나름 논지였다. 머무는 동안 두고 온 풀꽃문학관이 궁금했고 내 손으로 가꾸던 식물들이 궁금했다. 비가 많이 내렸고 비가 그친 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는 뉴스였다. 꽃들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그것은 노심초사. 사람이 이렇다. 이곳에 있으면 저쪽이 걱정스럽고 그쪽에 있으면 또 이쪽이 걱정이 된다. 하지만 혼자서 궁금해하고 걱정을 했을 뿐 돌아온 자리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 또한 여전하기만 했다. 돌아온 날이 토요일 저녁이라서 집에서 쉬고 다음날 아침 일찍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고 곧장 대천에서 열린 문학 모임에 참여한 뒤 오후 시간에야 겨우 풀꽃문학관을 찾았다. 휴일이면 문학관에는 나를 보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피곤하지만 그들을 맞아 이야기도 나누고 책에 사인도 해주어야 한다. 방문객 가운데 동화를 쓰는 젊은이 다섯 명이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언제든 좋은 말을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감정을 갖는다. 왜 우리는 글을 쓰는가. 누구를 위한 글쓰기인가. 젊은 방문객들은 답을 바로 대지 못했다. 풍금이 있는 방으로 가 풍금 반주에 맞추어 동요 몇 곡을 들려주었다. 왜 내가 피곤하다면서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었을까요. 이번에도 쉽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몇 차례 말이 오간 끝에 대답이 나왔다. 네, 선생님 자신을 위해서 오르간 연주를 한 것입니다. 그러하다. 나는 가끔 나를 위해 오르간 연주를 한다. 몸은 비록 피곤하지만 오르간 연주를 하다 보면 육신의 피로감이 풀리고 마음까지 평온해짐을 번번이 느끼곤 한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위안이고 감동이며 그 자체 치유이고 마음의 희열이다. 이제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산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모든 생명체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 뿐이고 애쓸 따름이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을 위해 한다고 그러면 피곤한 느낌이 들고 짜증이 나고 불행감마저 들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나의 인생을 산다 그럴 때 책임감도 생길 것이고 새로운 소망도 싹틀 것이다. 젊은 방문자들이 떠난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꽃들을 만나러 나갔다. 열흘 만에 만나는 꽃들이다. 허지만 꽃들의 세상도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이파리가 조금 시든 녀석들은 그렇다 치고 많이는 키가 자라 있었다. 의젓한 모습. 나만 혼자 괜한 걱정을 한 것이다. 오히려 한여름날의 진객 벌개미취들이 연보랏빛 꽃송이들을 가득 피워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하다.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내가 걱정해서 일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걱정을 해도 좋겠지. 하지만 세상에 걱정으로 해결된 문제는 없다. 미국에서 잠시 만나고 온 문인들의 일도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들의 문제는 오로지 그들의 문제일 뿐. 그들도 그들의 인생을 살며 그들 자신을 위해 글을 쓰다 보면 점점 좋아지고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달라지는 모습, 흐르는 강물 위에 우리들 유한한 인생이 있다.
  • [이슈&이슈] 팔당호 20대 식당사장 왜 삶을 포기했나

    [이슈&이슈] 팔당호 20대 식당사장 왜 삶을 포기했나

    1년 새 무허 음식점 13명 구속주민들 “재산권 규제 개선해야”… 당국 “현지주민과 협의해 규제”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과 양평군 양서면은 북한강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다. 두 지역은 똑같이 서울·경기·인천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인 북한강과 접했지만 생활환경은 ‘하늘과 땅 차이’다.강 동쪽인 양서면에는 음식점은 물론 모텔, 병·의원, 아파트 등 주민편의 시설이 많지만 서쪽인 조안면에는 목욕탕, 병·의원, 미용실은커녕 편의점 한 곳 없다. 1975년 팔당댐과 가까운 북한강 일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이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때 비교적 번화가였던 양수리 도심은 2가지 규제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개발행위가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수질오염총량관리제’를 지켜야 한다. 오염총량관리제는 하천 구간별로 목표수질을 정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오염물질의 배출총량을 허용치 이하로 관리하는 제도다. 이 규제를 근거로 조안면에서는 최근 1년 동안 음식점 100여곳 중 80여곳이 무허가로 영업하다 13명이 구속됐다. 나머지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벌금형을 받았다. 아직도 5명은 구속돼 있다. 해마다 단속이 이뤄지고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번에는 강도가 셌다. 지난달 말 결혼을 앞둔 조안면의 26살 청년이 전기 끊긴 자신의 식당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청년은 무허가 음식점을 운영하다 65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상태였다. 2년 전 소매점(조리하지 않은 음식을 파는 점포) 허가를 받은 그는 아버지와 막국수 집을 운영하다 남양주시의 고발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뒤 식당 문을 닫았다. 축구 유망주였던 그는 부상으로 꿈을 접고 아버지 권유로 막국수 뽑는 기술을 배워 식당 문을 연 것이었다. 하지만 그 꿈마저도 2년 만에 다시 접어야 했기에 그의 충격은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6일 “가을에 결혼을 앞둔 아들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자 막노동을 전전하다 한 달 전쯤 카드빚을 내 식당 앞에서 소시지와 핫도그를 파는 포장마차를 개업했으나 그마저 합동단속에 적발돼 며칠 만에 중단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일반음식점 허가를 정식으로 받지 못해 무허가 영업을 해 오다 최근 1년 동안 구속되거나 벌금형을 맞은 같은 마을 주민 80여명도 이 청년과 같은 처지다. 정길호 조안면 진중1리 이장은 10년 전부터 운길산역 앞에서 소매점 허가만 받은 상태에서 장어 집을 불법으로 해 오다 이번에 2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매년 벌금형이 커지자 올 상반기엔 식당을 아예 양평군으로 옮겼다. 다른 식당 15곳도 강 건너 양평군으로 이전했다. 그는 “우리 마을과 접한 북한강물은 팔당댐에서 발전용수로 쓰이고, 광주 경안천 남한강에서 흘러오는 물 쪽에 취수장이 있다”며 “40여년 전 만들어진 중첩 규제를 이젠 손질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상수원 보호를 위한 조안면 등에 대한 규제는 1974년 팔당댐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됐다. 주민들은 “그동안 하수종말처리장 건설 등 많은 변화가 있어 이제는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는 규제를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도권 식수원 보호를 위해 오염원을 배출하는 식당 등을 허가해 줘서는 안 된다”는 조안면 밖 사람들의 입장이 더 강하다. 팔당호를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인구는 2500만명이지만 조안면 주민은 4400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조안면 주민들은 “배출허용총량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음식점 허가 등이 가능한데,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한 음식점 주인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과 그린벨트 규제로 특별한 기술이 없는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생계수단은 나들이객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 영업 이외에는 없다”면서 “자체 하수처리시설은 물론 곳곳에 하수종말처리장이 있어 설거지 물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갈 일이 없는데, 우리를 상수원 오염의 주범으로 오인한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환경부 측은 “매년 오염총량제를 만들고 각종 규제를 도입할 때 상수원보호구역 내 현지 주민들과 수없이 협의를 거쳤다”면서 “오염총량제 기본계획수립과 시행계획수립 권한은 경기도와 남양주시 등 지자체에 있는 만큼 주민들의 바람을 수렴해 환경부에 요구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中시장, 공무원들과 강물에 입수한 사연은?

    오염된 강이 깨끗하게 정화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 시장이 몸소 물속으로 뛰어들어 화제가 되고있다. 최근 중국 영자매체 상하이스트는 허난성(河南省) 융청시(永城市) 리중화 시장의 특별한 시정활동을 전했다. 이 지역에는 시내를 관통하는 강이 흐른다. 우리의 한강처럼 시민들의 젓줄이었던 이 강은 그러나 산업화 과정에서 오염돼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 애물단지가 됐다. 리 시장이 6명의 공무원을 이끌고 강 속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 1일. 오염됐던 강이 다시 깨끗하게 정화됐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리 시장은 "행정을 통해 오염됐던 강이 다시 깨끗해졌다"면서 "이제 시민 누구나 우리처럼 수영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리 시장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많은 시민들은 "평소 친환경 정책을 펴온 리 시장 덕에 강이 깨끗해졌다"고 반기면서도 일부에서는 "강물도 마실 수 있을만큼 깨끗하다고 자랑하지는 말라"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붉게 탄 소양강, 격렬한 내린천… 여름이 흐른다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붉게 탄 소양강, 격렬한 내린천… 여름이 흐른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읊조렸을 대중가요 ‘소양강 처녀’의 첫 구절입니다. 그럼 그 소양강에 황혼이 질 때면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 본 적 있으신지요. 열여덟 딸기 같은 소양강 처녀를 애끓게 했던 그 풍경 말입니다. 저물녘에 강원 인제군 남면 일대의 소양강 상류를 찾으면 그 장면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가을보다 더 서정적이고 겨울보다 더 가슴 시린 풍경이 펼쳐집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내린천에서 격렬하게 래프팅을 즐기고, 비밀스러운 동아실 계곡의 가마소로 숨어들 수 있는 건 이 여름 인제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요. 여기에 목마를 타고 떠난 시인 박인환의 발자취를 좇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집니다.소양강 하면 대개는 춘천을 먼저 떠올린다. 소양호와 소양댐이 춘천에 속해 있어 그렇다. 한데 춘천 쪽의 소양강은 품이 넓다. 외경스러워 선뜻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보다 폭이 작은, 그러니까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소양강을 만나려면 좀더 상류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 거기가 인제 남면 일대다. 소양강은 인제 북쪽 무산에서 발원한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린 북천과 방천 등의 지류를 끌어안고, ‘인제의 두물머리’ 합강정에서 내린천까지 품은 뒤에야 비로소 강의 모습을 갖춘다. 합강정에서 제 이름을 얻은 소양강은 인제와 양구를 적시고 춘천으로 흘러든다. 바로 이 구간, 그러니까 합강정에서 춘천에 이르기 전까지 구간에서 소양강은 유장하게 흐르는 강의 모습을 유감없이 펼쳐 낸다. 여름의 소양강 주변은 초록빛 초원이다. 초여름에 강변을 푸르게 물들였던 청보리는 베어졌지만, 그 자리에 키 낮은 잡초들이 자라 또 한번 초록으로 일렁거린다. 신남 배터 주변은 언제 가도 한갓진 풍경을 내어 준다. 특히 저물녘 풍경이 일품이다. 한낮을 달궜던 해가 산자락 너머로 모습을 감출 때면 하늘도, 강물도 붉게 탄다. 때마침 고기잡이배라도 한 척 지나가면 그야말로 선경이 따로 없다.주변에 소양강 둘레길도 조성됐다. 빼어난 강변 풍경을 갈무리하고 있는 길이다. 인제 읍내에서 시작해 인제 38대교 일대까지 걷는다. 현재 3구간까지 조성된 상태다. 외지인이 전 구간을 걷기는 사실 쉽지 않다. 둘레길 2코스 출발점인 38대교나 살구미교, 둘레길 들머리인 남북리의 자유수호희생자위령탑 공원 등 일부 구간을 택해 걸어 볼 만하다. 신남 배터를 지나 인제 38대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남전리 가는 길을 만난다. 저 유명한 원대리 자작나무숲도 이 길을 따라간다. 원래 남전리는 일반 여행객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던 오지였다. 남전과 원대, 내린천을 잇는 포장도로가 놓이면서 이제 첩첩 오지의 느낌도 많이 사라졌다. 반장동 고개를 넘어 작은 마을을 하나 지나면 오른쪽으로 이정표를 잔뜩 매단 교통 표지판과 만난다. 이 길이 바로 동아실 계곡으로 드는 길이다. 동아실은 남전리 초입에 있는 마을 중 하나다. 오래전엔 복숭아나무가 마을을 뒤덮을 정도로 많았다 해서 ‘도화실’이라 불렸다고 한다. 한때 화전민이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애써 민가를 찾아야 할 만큼 띄엄띄엄이다. 초입부터 펼쳐지는 계곡은 제법 그늘이 깊다. 장마철 뒤끝이라 그런지 계곡물의 양도 풍성하다. 기암절벽 아래로 크고 작은 소와 폭포가 연이어 펼쳐진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폭포와 만난다. 가마소 폭포다. 폭포 주변의 소가 가마솥과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폭은 크지 않지만, 기암이 곧추서 있고 주변의 나무들이 짙은 숲 그늘을 만들어 퍽 웅숭깊은 자태다. 턱거리 폭포라고도 불린다. 동아실 계곡을 오르느라 숨이 턱까지 찰 때쯤 만난다는 뜻인 듯하다. 여름이면 폭포 주변은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동아실 계곡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사실 이맘때뿐이지 싶다. 대개 폭포 주변마다 피서객의 출입을 막는 금줄이 쳐 있기 마련인데, 가마소엔 없다. 주변에 매점 등 피서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들도 전혀 없다. 여느 폭포에 견줘 한결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동아실 계곡과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사실 같은 산의 다른 사면이다. 원대리가 동북쪽, 동아실 계곡이 서남쪽이다. 두 곳을 묶어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코스다.인제 하면 역시 내린천이다. 특히 이맘때면 래프팅을 빼놓을 수 없다. 소와 급류가 번갈아 펼쳐져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원대리에서 밤골 쉼터까지 약 8㎞ 구간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인제 읍내의 합강교 근처에선 번지점프 등 아슬아슬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홍천에서 인제로 접어드는 내린천을 따로 미산계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산계곡은 미산마을을 지나 10㎞ 가까이 이어진다. 이 일대에서도 리버버깅, 래프팅 등 수상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인제는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다. 그 흔적이 여태 곳곳에 남아 있다. 리빙스턴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장교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안내판에 따르면 1951년 6월 리빙스턴 소위(중령이라는 견해도 많다)의 부대가 인북천을 건너다 적의 공격으로 많은 병력이 목숨을 잃었다. 자신도 중상을 입은 리빙스턴 소위는 미국으로 후송된 뒤 부인에게 다리를 지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따라 1957년 다리가 놓여졌다. 당시 교량 전체가 붉은빛을 띠어 ‘붉은 다리’라 불리기도 했다. 인제 38대교 주변에도 몇몇 기념물과 공원이 조성돼 있다. 다리 아래쪽의 38선 휴게소에서 저무는 해를 보며 커피 한잔 마시는 재미도 쏠쏠하다.인제는 30세의 나이로 요절한 ‘모던 보이’ 박인환(1926~1956)의 고향이다. 해방 전후의 격동기에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동하며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의 시를 남겼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을 노래하던 시인의 흔적이 인제 읍내 박인환 문학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꼭 둘러보길 권한다. 입장료는 없다. 문학관 앞마당에 서면 박인환의 동상이 객을 맞는다. 시상을 떠올리는 듯, 코트를 입은 시인은 넥타이를 휘날리며 만년필을 꼭 쥔 모습이다. 작품명은 ‘시인의 품’.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2011년 조성됐다. 문학관은 박인환의 생가터에 조성됐다. 안으로 들어서면 박인환이 활동했던 해방 전후의 서울 종로와 명동거리가 펼쳐진다. 박인환이 스무 살 무렵 종로에 세운 서점 ‘마리서사’, 시인들이 모여 모더니즘 시를 논했던 선술집 ‘유명옥’, ‘봉선화 다방’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문학관 옆은 인제산촌민속박물관이다. 인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역시 무료입장이다. 문학관 뒤편으로 ‘박인환의 거리’가 이어진다. 그의 시가 새겨진 공공미술작품과 조형물들이 늘어서 있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와 44번 국도로 갈아타고 곧장 간다. 38선 휴게소와 신남 배터 주변의 소양강 풍경이 곱다. 동아실 계곡은 38선 휴게소를 지나 남전리 방향으로 우회전해 원대리 자작나무숲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맛집:내린천 일대에 맛집이 많다. 피아시 매운탕(462-3334)은 잡어 매운탕이 맛있다. 양념이 강하지 않아 약한 불로 끓여 가며 먹어야 맛있다. 미산막국수(463-0539)는 상호처럼 막국수를 내는 집이다. 부린촌(463-8055)은 능이백숙으로 이름났다. →잘 곳:부린촌(463-8055), 미산마을(463-9036) 등에 펜션 등 숙박단지가 조성돼 있다. 미산마을의 경우 리버버깅 등 다양한 레포츠 체험 장비가 준비돼 있다. 일반 숙박업소는 인제읍에 몰려 있다.
  • [이호준의 시간여행] 모깃불과 별이 있는 풍경

    [이호준의 시간여행] 모깃불과 별이 있는 풍경

    서산마루에 걸렸던 해가 이울고 나면, 아버지는 안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 옆에 마른 풀이나 보릿짚을 놓고 불을 피웠다. 마른 풀에 불땀이 일면 그 위에 덜 마른 쑥대를 올리는 게 다음 순서였다. 금세 소담스러운 연기가 솟아오르고 쌉싸름하면서 구수한 쑥 향기가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렇게 모깃불을 피워 놓으면 극성맞은 모기도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모깃불이 피워지면 멍석 위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낮이 긴 여름에는 저녁을 일찍 먹기 때문에 그 시간쯤이면 출출해지고는 했다.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가 텃밭에서 따다 우물에 띄워 놓았던 참외를 내올 차례였다. 때로는 수박이 나오고, 옥수수나 감자가 나오기도 했다. 형은 먹을 게 있어도 기어이 감자 몇 알을 모깃불에 던져 넣고는 했다. 껍질이 까맣게 탄 감자를 후후 불어 가며 벗겨 먹는 재미 때문이었다. 먹물처럼 짙어진 어둠은 산과 들과 집의 경계를 쓱쓱 지워 나갔다. 뒤란 대숲이 서걱거리며 바람과 밀회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그악스럽게 울어 대던 매미가 잠들면, 세상이라는 무대는 풀벌레의 차지가 되었다. 밤새조차 제 노래를 멈추고 풀벌레의 화음에 귀를 기울였다. 누가 지휘를 하는 걸까. 한낮을 묵묵하게 건너 자신의 시간에 닻을 내린 풀벌레들의 합창은 달콤했다. 모깃불 위에 쑥대를 올리던 아버지가 고단한 하루를 뉘일 때쯤이면 밤이 이슥해져 있었다. 별이나 달이 없는 날은 눈앞의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했다. 모깃불만 발갛게 반짝거렸다. 가끔 반딧불이의 여린 불빛이 허공에 선을 그었다 지우고는 했다. 맑은 날은 하늘에서 달이 내려와 물그릇에 몸을 적셨다. 눈을 들어 보면 하나둘 싹을 틔우던 별들이 꽃밭의 여름꽃들처럼 활짝 피어 있었다. 별 하나가 주먹만큼이나 커 보이던 시절이었다. 까치발을 딛고 팔을 뻗으면 딸 수 있을 것처럼 가까웠다. 그런 밤에는 은하수가 강물처럼 굽이굽이 흘렀다. 할머니는 무릎을 베고 누운 손자에게 부채를 부쳐 주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늦은 밤 서낭당고개를 넘던 당숙이 도깨비를 만나 씨름하던 이야기, 아침 일찍 고샅길을 지나며 흘끔거리더라는 여우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무섭고도 재미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들은 내 안에 들어와 작은 씨앗이 되었다. 어느 날 발아해서 조금씩 자라더니 문장이 되고 시가 되었다. 모처럼 돌아본 1960~70년대 시골의 여름 풍경이다. 모기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모깃불이나 모기장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어둠을 밀어내기 위한 도구도 등잔불이 고작이었다. 별이 그리 크고 밝고 많았던 것은 다른 불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기가 세상을 밝히고 낮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별도 달도 제 빛을 잃어버렸다. 모기향이니 스프레이니 화학제품이 등장하면서 모깃불도 하나둘 꺼져 갔다. 화학 성분이 강해지는 만큼 모기들도 독해졌다. 가끔 생각해 본다. 혹시 별들이 빛을 잃고 모깃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삭막해지기 시작한 건 아닐까. 별을 잃는 것은 꿈을 잃는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삭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끔은 불빛을 피해 도시를 떠나 볼 일이다. 어두운 시골집 마당에 모깃불 피워 놓고 별꽃이 활짝 핀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이다. 먼 길을 걸어 고향에 도착한 나그네가 맞는 안도의 밤이 거기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 세월호 유가족에 수상레저?…‘예은아빠’ 유경근씨 “치유 아닌 잔혹센터”

    세월호 유가족에 수상레저?…‘예은아빠’ 유경근씨 “치유 아닌 잔혹센터”

    세월호 참사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해 경기도 안산에 마련된 정신건강 심리지원 시설 ‘온마음센터’가 세월호 유가족을 대상으로 수상레저 프로그램을 기획해 논란이 일고 있다.세월호 피해자 가족 ‘예은 아빠’ 유경근씨는 지난 31일 페이스북에 온마음센터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온마음센터는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에게 “무더운 여름, 가족과 함께 북한강변의 시원한 자연바람을 맞으며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수상레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에 유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수상레저를요? 진심입니까?”라고 답장을 보냈다. 유씨는 “온마음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할 시간도, 마음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테지만, 수상레저? 지금도 물만 쳐다보면 물 속에 잠긴 예은이가 보여 뛰어들고 싶은데 수상레저를? 강물이니까 괜찮다는 건가? 맞서서 이겨내 보라는 건가? 아니면 물 먹고 정신차리라는 깊은 뜻? 온마음센터는 치유센터가 아니라 잔혹센터인 건가?”라는 글을 적었다. 이같은 논란에 온마음센터는 1일 위키트리에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과정에서 문장과 단어 선택이 부주의했다”면서 “작년에 만족도가 높아 올해도 기획하게 됐다. 세월호 유가족이 800여명인데 가족마다 욕구와 의견이 다르다. 물놀이 안 가냐고 먼저 묻는 가족도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유가족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더욱 다양한 의견을 고려하며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레밍의 집단 자살, 무개념 아닌 생존 위한 선택

    레밍의 집단 자살, 무개념 아닌 생존 위한 선택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프란스 드 발 지음/이충호 옮김/세종서적/488쪽/1만 9500원레밍(나그네쥐)은 흔히 ‘무개념의 동물’ 정도로 인식된다.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리더의 행동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집단자살까지 감행하는 ‘동물계의 이단아’다. 심지어 후손을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리는 동물로 의인화되기도 한다. 최근의 학계 견해는 다르다. 주기적으로 개체수가 폭증하는 레밍에 대한 식물의 방어 기제, 좀더 풍성하고 싱싱한 먹이를 찾으려는 본능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해 벌어지는 현상이란 것이 정설로 인식되는 추세다. 죽음의 사신 악어가 강물 속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풀을 찾아 강물로 뛰어드는 누떼의 집단이동이 필연이듯, 레밍의 행태 역시 그와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왜 레밍은 ‘개념 없는 설치류’ 정도로 인식될까. 새 책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이런 현상을 인간 중심의 인식 태도에서 비롯된 오류라 규정한다. 자연계의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데도 의인화의 색안경을 끼고 보니 본질과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오만을 꼬집고 협력과 유머, 정의, 이타심, 합리성, 감정 등 ‘인간적’이라고 여겼던 가치들을 동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물 인지’란 말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성립되지 않는, 모순된 단어의 조합으로 여겨졌다. 동물은 인지할 수 없고, 인지할 수 있는 건 인간뿐이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논리가 엄존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저자는 많은 동물이 공통적으로 인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유인원이나 돌고래는 높은 지능 때문에 부각된 것일 뿐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이라면 조류나 파충류, 어류 등 어떤 동물에게서도 해당 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발현되는 형태가 다를 뿐이다. 예컨대 인간이 어둠 속을 걸을 때 방향 설정을 위해 안테나 같은 박쥐의 귀가 필요하지 않듯, 계산 능력이 필요 없는 다람쥐에게 열까지 숫자를 셀 수 있냐고 묻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다. 저자는 이처럼 영장류뿐만 아니라 문어, 말벌, 까마귀, 돌고래 등 광범위한 종을 다루면서 동물들이 일상적으로 지능을 사용하고 있다는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우리나라에 빗대 요약하면 이렇다. 레밍은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충북도 의원들의 유럽행 역시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동물이 인간과 다른 행동을 했다 해서 그 의도를 폄하할 근거는 없다. 그럴 권리도 없고.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 문 대통령, 고 김군자 할머니 애도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 문 대통령, 고 김군자 할머니 애도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89세로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를 애도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할머니는 16세에 납치당해 중국에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난을 겪었고, 그 후 일본의 전쟁범죄를 증언하고 기부를 통해 남을 돕는 일에 평생 헌신했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였다. 지난 2015년 12월 31일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를 뵀을 때 ‘피해자는 우리’라고 말했던 그 모습을 기억한다. 이제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평안하시라”며 김군자 할머니의 명복을 빌었다.김군자 할머니는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생활하다가 17살의 나이로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동원됐다. 몇 번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구타를 당해 왼쪽 고막이 터져 할머니는 평생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함경북도 성진으로 가 두만강을 넘었다. 당시 함께 강을 넘던 친구 1명은 강물에 떠내려가 죽는 것을 지켜봤다. 그렇게 죽을 고비 끝에 고향에 돌아와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생활했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1998년 나눔의 집으로 오기까지 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할머니는 지난 2007년 2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이 주체한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 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머니는 배상을 받으면 사회에 기부할 계획이었다. 할머니는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 재단에 1억원, 나눔의 집에 1000만원, 한 천주교 단체에 1억 5000만원 등을 기부한 바 있다. 또 매주 수요 집회에 나가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37명뿐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노환으로 별세…생존자 이제 37명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노환으로 별세…생존자 이제 37명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23일 오전 8시 4분 나눔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다.나눔의 집에 따르면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생활하다가 17살의 나이로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동원됐다. 몇 번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구타를 당해 왼쪽 고막이 터져 할머니는 평생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지난 2007년 2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이 주체한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 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함경북도 성진으로 가 두만강을 넘었다. 당시 함께 강을 넘던 친구 1명은 강물에 떠내려가 죽는 것을 지켜봤다. 그렇게 죽을 고비 끝에 고향에 돌아와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생활했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1998년 나눔의 집으로 오기까지 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머니는 배상을 받으면 사회에 기부할 계획이었다. 할머니는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 재단에 1억원, 나눔의 집에 1000만원, 한 천주교 단체에 1억 5000만원 등을 기부한 바 있다. 또 매주 수요 집회에 나가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구촌 이상기온 몸살] 美 48도 폭염, 日 545㎜ 폭우, 아르헨 폭설… 열받은 지구의 분노

    [지구촌 이상기온 몸살] 美 48도 폭염, 日 545㎜ 폭우, 아르헨 폭설… 열받은 지구의 분노

    문화유산 요세미티 공원까지 위협 올 6월 기온 역대 세번째로 높아 FT “온난화 재앙 아시아 덮칠 것 2100년, 기온 8도·강수량 50%↑ 쌀수확 절반 줄고 관광·어업 타격” 올여름 지구가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펄펄 끓는 고온으로 북반구 곳곳에 산불이 나는가 하면, 집중 호우가 홍수를 일으키고 있다. 남반구는 이례적인 폭설과 한파를 겪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폭염과 폭우, 이상기온은 앞으로 일상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AP통신 등은 19일 오후 8시(현지시간)까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일대의 산불로 194㎢가 소실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16일 발생한 이번 산불은 고온건조한 기후에 강풍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유명 여행지 요세미티 국립공원 남서쪽 인근까지 번졌다. 주 정부는 18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민 5000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지난달 20일 48.3도로 미국 내 도시지역 관측 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던 애리조나주는 폭염에 이어 폭우 피해까지 겪었다. 지난 16일에는 폭우로 지역 내 국유림에서 강물이 불어나 어린이 5명을 포함한 9명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캐나다에서도 산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정부는 19일 대형 산불로 발령한 비상사태를 2주간 연장하기로 했다. BC주 산불은 지난 6일 처음 발생해 한때 내륙 지역 240곳까지 번졌다. 지금까지 총 3500㎢의 임야가 소실됐고 4만 5000여명이 대피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유럽 남부, 중부 역시 산불 피해가 극심하다. 이탈리아 로마, 나폴리 등 1000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 17일 로마 서남부 관문인 오스티아 해안가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로마 도심 주변까지 번져 대피 소동이 빚어졌다. 지난달 중부 지역에서의 대형 산불로 64명이 사망하고 250명이 다친 포르투갈에서는 중·북부 지역 산간을 중심으로 또 한 차례 산불이 일어 3000여명의 소방대원을 투입했다. 프랑스 남부 니스 주변과 코르시카 섬 등에서도 낮 최고 기온이 38도에 이르는 무더위에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산불이 이어졌다. 크로아티아에서는 관광도시 스플리트 일대 12곳에서 산불이 나 45㎢의 임야가 소실됐고 몬테네그로 루스티카 반도에서는 산불로 100여명이 대피했다. 중국은 곳곳에서 집중호우와 폭염으로 난리다. 후난성에서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초까지 이어진 폭우로 83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12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5만 3000채의 가옥이 파손됐다. 동북 곡창지대인 헤이룽장성에는 18~19일 장대비가 쏟아졌다. 헤이룽장성 하얼빈, 무단장, 지시, 솽야산, 이춘, 치타이허, 허강, 쑤이화 등 8개 시의 논밭이 침수돼 5만 2800여명이 피해를 입었다. 농작물 피해 면적이 2000㎢에 달하는 등 경제적 손실이 6766만 위안(약 112억 6000만원)에 육박했다. 지린성에서는 13일부터 내린 비로 18명이 숨지고 63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중국 중앙기상대는 21일까지 베이징과 허베이성 동북부, 네이멍구 동부 지역 등 화북 지방과 남부 윈난성 등지에 많은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반면 20일 후베이 서부, 후난 북부, 장쑤 남부, 장시 동부, 저장, 푸젠 중북부, 충칭 북부, 안후이 동부 등 중국 동부와 중부 지방은 낮 최고기온이 37~39도에 달했다. 일부 지역은 40도를 넘었다. 최근 일본 남서부 규슈 지역에서는 기록적 폭우로 18명이 사망했다. NHK 등 현지 언론은 지난 9일 이번 폭우로 18명이 숨지고 30여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호우 피해가 가장 컸던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의 24시간 강수량이 545.5㎜로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4일 아시아개발은행(ABD)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의 공동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지구온난화로 아시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2100년까지 아시아 대부분 지역의 강수량이 지금보다 50% 늘어 홍수 피해가 증가하고, 중국 북서부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타지키스탄 등의 평균 기온은 2100년까지 섭씨 8도가량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또 동남아 국가의 쌀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서태평양의 산호초가 폐사해 어업과 관광산업이 타격을 입는 등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뒤따를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은 올해 6월이 역대 세 번째로 뜨거운 6월이었다고 밝혔다. NOAA에 따르면 지난달 평균 기온은 20세기 6월 평균 기온보다 0.82도 높았다. 역대 가장 더운 6월은 2016년도로 20세기 평균보다 0.92도 높았다. 2015년 6월은 0.89도 높아 2위에 올랐다. 한스 요하임 셸누버 포츠담연구소장은 “21세기 말까지 파리기후변화협약이 핵심 목표로 삼는 1.5도 상승을 달성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반구에는 이례적인 폭설과 한파가 닥쳤다. 지난 18일 아르헨티나 관광도시 바릴로체는 관측 사상 최저인 영하 25도를 기록했고 주요 도로와 공항이 마비됐다. 지난 15일에는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칠레 산티아고에 40㎝의 눈이 쌓여 30만 가구에 전기가 끊기는 등 정전 대란이 일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서울포토] 청주 휩쓴 ‘물폭탄’…흙 속에 파묻힌 채 모습 드러낸 굴삭기

    [서울포토] 청주 휩쓴 ‘물폭탄’…흙 속에 파묻힌 채 모습 드러낸 굴삭기

    16일 충북 청주시 지방하천인 석남천 서청주교 옆 제방이 불어난 강물에 무너진 탓에 주차돼 있던 굴삭기가 흙 속에 파묻힌 채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 시간당 최고 90mm의 물폭탄이 쏟아지는 등 290mm의 폭우가 내린 청주는 1995년 8월 이후 22년만에 홍수 피해를 입었다. 청주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말빛 발견] ‘긴가민가’와 ‘오렌지’/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긴가민가’와 ‘오렌지’/이경우 어문팀장

    ‘긴가민가’는 고유어들을 닮았다. 고유어들이 주는 느낌, 형태 같은 것들과 다르지 않다. 살갑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를 활용한 ‘그런가’와 관계가 있는 듯하고, ‘그런’과도 상관있을 것 같다. ‘민가’는 운율을 맞추기 위한 것쯤으로 여겨진다. 아쉽게도 ‘긴가민가’는 이런 말들과 관련이 없다. 일찍이 한국어 속으로 들어온 ‘긴가민가’는 애초 ‘기연가미연가’(其然-未然-)로 쓰였다. 한자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줄여서 ‘기연미연’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다 ‘긴가민가’가 됐고, 이전의 형태는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한국어라는 강물 속에서 흐르다 보면 이렇게 된다. 깎이고 닳고 하면서 주변의 고유어들과 닮아 간다. ‘긴가민가’는 고유어들과 무척 같아졌다. ‘오렌지’도 ‘긴가민가’처럼 한국어 단어 목록에 들어 있다. 그렇지만 형태도 느낌도 다르다. 한눈에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영어 ‘아린지’와 닮은 구석이 많아 보인다. 그래도 ‘긴가민가’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어와 닮아 가려 했다. 한국어 화자들이 발음하기 편하게 ‘오렌지’가 됐다. 외래어를 적는 원칙도 그렇다. 현지음에 가깝게지만, 한국어 화자들의 입맛에 맞게 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 원칙이 된다. 그렇더라도 ‘오렌지’ 같은 외래어들은 외로운 섬들처럼 떠 있다.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한성백제 설화 한줄 물길이 열어준 역사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한성백제 설화 한줄 물길이 열어준 역사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7차 탐사가 지난 8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과 광진구 광장동을 잇는 한강 남북 양안 일대에서 이뤄졌다. 천호동 강동역 2번 출구에서 출발한 일행은 해공 신익희 동상~강풀 만화거리~동명대장간~노옥당약업사~천호공원~서거정 시비~도미부인상~광진교 8번가~광나루터~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둘러봤다. 폭우주의보 속에 일행은 비옷과 장화 등으로 완전무장했지만 운 좋게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강변투어를 즐겼다.세계에서 세 곳밖에 없다는 다리 아래 돌출형 발코니 쉼터 ‘광진교 리버뷰8번가’ 유리바닥에서 강 위를 걷는 기분은 아찔했다. 이맘때면 물파랑의 절정을 이루는 한강물은 이날은 황토색이었지만 광진교 양쪽으로 강동대교와 천호대교, 올림픽대교, 잠실철교 등 다리들이 펼치는 환영 열병식은 대단했다. 한강 한가운데 서서 강북쪽 아차산과 강남쪽 롯데월드타워를 번갈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차량 통행은 뜸했고 다리를 건널 수 있도록 보행자용 신호등이 설치돼 있었다. 이날 코스의 서울미래유산은 동명대장간, 노옥당약업사, 강변테크노마트, 잠실철교, 천호대교, 구의취수장(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등 모두 6개.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공사 중이어서 코스를 광진교로 변경했다. 조선시대 광나루는 한강의 나루 중에서 가장 크고 넓었다. 배를 타고 건너던 광장동에서 천호동 구간 나루터에, 근대기 한강에서 두 번째로 놓인 게 광진교였다. 광나루와 그를 이어받은 광진교에 깃든 땅의 내력이 만만찮다. 나룻배가 오가던 곳에 차와 사람이 오가는 사연은 뭘까. 광나루가 마포·서빙고·동작·노량진과 더불어 조선 5대 나루로 꼽히고 삼전도와 송파나루가 강 건너 광나루의 명맥을 이어받아 번성한 데는 연유가 있다.광나루를 중심으로 생성된 한강 양안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강남과 조선의 흔적만 생각할 뿐 2000년 전 이곳에 살던 원주민 한성백제와 신라, 고구려를 잊고 있다. 투어단이 걸은 강동구 성내동과 천호동이 한성백제의 도성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성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함락된 뒤, 1925년 대홍수 때 암사동 선사유적지 및 풍납토성과 더불어 땅위로 드러날 때까지 망각의 강 너머로 사라졌다. 백제의 시조 온조는 삼국사기 속의 한 줄 이야깃거리에 불과했다. 현재의 강동구와 송파구에 해당하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석촌동 고분군은 한성백제의 도성이었다. 발굴을 해 보니 풍납토성은 3겹의 방어시설인 환호(還濠)로 둘러싸여 있었다. 풍납토성은 지금은 4만 명이 사는 아파트단지로 둔갑했다. 몽촌토성은 운 좋게 올림픽공원이 되어 보존됐다. 일제강점기에도 293기가 남아 있던 석촌동 고분군은 돌무덤 사이로 길이 나고 건물이 들어서 지금은 6기만 남았다. 풍납토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아파트단지 지하 4m 아래에서 숨쉬고 있다. 3세기 후반에 연인원 100만 명을 동원해서 지은 이 토성은 너비 40m, 높이 12m, 길이 3500m의 엄청난 규모였다. 백제의 왕도라는 정체성은 찾을 길 없으나 성내동(城內洞), 성내천(城內川)이라는 지명이 한때 성안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할 뿐이다. 조선시대 서울의 공식명칭인 한성(漢城)은 백제의 수도 한성 또는 한산(漢山)이 기원이다. 한성이나 한산의 ‘한’은 ‘크다’(大)는 뜻이다. 한강은 큰 강이요, 북한산은 산 이름이 아니라 한산 북쪽이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고래로 큰 것을 한(漢), 한(韓), 칸(汗)이라고 불렀다. ‘삼한’(三韓)에서 따온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도 마찬가지이다.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북성(대성)이고 몽촌토성은 남성(왕성)이었으며 석촌고분은 왕실 묘역이었다. 3곳을 포함한 도성 전체가 위례성 즉 큰 성이라는 것이 최근 학계의 연구 성과이다. 700년 백제사에서 공주와 부여의 시대는 185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한성백제이다. 서울의 역사는 곧 백제의 역사요, 서울은 조선 사대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성백제 시기 지금의 강동구 천호동, 성내동, 암사동과 송파구 풍납동, 석촌동 일대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천호동은 굽은다리, 풍납동은 바람드리, 몽촌토성은 곰말, 암사동은 바위절이라는 오래된 땅이름을 품고 있다.아차산(285m)은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 3국이 한강유역 패권을 놓고 겨룬 쟁패지였다. 백제·고구려·신라 순으로 패권을 쥔 한강의 방어선이다. 한성백제시대를 끝낸 고구려군은 아차산 봉우리마다 보루를 축조했다. 아차산 3보루와 4보루, 시루봉 보루, 용마산2보루, 홍련봉 1·2보루, 구의동 보루가 5~6세기 고구려군의 주둔지였다. 590년 고구려 온달 장군이 아내 평강공주의 배웅을 받으며 신라에 빼앗긴 한강 땅을 찾으러 전투에 나섰다가 전사한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 아차산은 높진 않지만 남으로는 한강이남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으로는 의정부, 동쪽으로는 왕숙천까지 조망할 수 있는 경계의 요충지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조선 최고의 진경산수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광진’을 보면 광나루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아차산과 워커힐호텔이 자리잡은 광나루 북쪽 언덕의 번화한 풍경이 나온다. 모래가 펼쳐진 강변은 경사가 완만하고 물살의 흐름이 수영하기에 좋아 강수욕의 명소로 꼽혔다. 아차산 주변과 광나루 근처는 말을 기르는 목장이자 왕의 사냥터였다. 마장동, 면목동, 자양동 같은 말과 관련된 지명이 전해지고 왕년에 뚝섬에 경마장이 들어선 것도 이 같은 땅의 내력 때문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전통방식 고수 대장간·가업 잇는 한약재 판매점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전통방식 고수 대장간·가업 잇는 한약재 판매점

    천호동 터줏대감 동명대장간 구의취수장 예술창작지 변신 서울팔방 남동촌에는 잠실철교 등 7개의 서울미래유산이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북 양안에 포진해 있다. 천호대교는 1976년 낡은 광진교를 대체할 목적으로 지은 서울 동부의 관문 교량이다. 광진구 구의동과 송파구 신천동을 잇는 잠실철교는 1979년 지하철2호선과 자동차가 동시에 통행토록 설계된 서울 최초의 교량이다. 강변테크노마트는 1998년 오픈한 한국 벤처기업의 요람이다. 완공 당시 전체 면적 기준 단일 건물로 국내 최대 규모였다. 강동구 암사2동에 위치한 한국점자도서관은 1969년 설립한 국내 최초의 점자도서관이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전자도서관 서비스를 최초로 제공했다.투어단은 이날 동명대장간과 노옥당약업사, 구의취수장 등 3곳을 방문해 장인을 만나고, 미래유산 현장을 둘러봤다. 강동구 천호동 556-5 로데오거리 근처 동명대장간은 1930년대 말에 개업, 80여년 동안 3대에 걸쳐 영업 중인 재래식 대장간. 1956년부터 같은 장소에서 운영되고 있는 천호동의 터줏대감 격이다. 창업주 강태봉(2002년 작고)씨에 이어 강영기씨가 대를 이었고 2006년부터는 3대 강단호씨가 업을 이어 운영 중이다. 대장장이로 일가를 이뤘다. 전통 방식대로 호미나 낫, 괭이 등을 만들고 있지만 수요가 줄어 공구점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강동구 천중로 16길 46 노옥당약업사는 1975년 개업, 2대째 가업을 잇는 한약재 판매점이다. 2012년 창업주 손기수씨가 사망한 뒤 아들 손광식씨가 이어받았다.광진구 아차산로 710 구의취수장은 1976년부터 30년 넘게 하루 100만t의 한강물을 끌어들여 정수장으로 공급한 서울의 식수원 공급처. 2011년 강북취수장의 신설로 운영 중단 및 폐쇄가 결정됐다. 연면적 5000㎡에 6개 동으로 건립된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은 1970년대 산업건축물의 발전상을 원형 그대로 보여 준다. 공간 재활용 방안 연구에 따라 거리예술의 창작기지로 변신했다. 2015년 국내 최초, 유일의 거리예술에 서커스를 접목한 베이스캠프로 문을 열었다. 광나루의 전통을 잇는 거리예술과 서커스의 부활이 기대된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폭우’ 日 규슈 사망자 18명으로 늘어

    ‘폭우’ 日 규슈 사망자 18명으로 늘어

    기록적 폭우가 일본 남서부 규슈지역을 강타한 가운데 9일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에서 자위대원들이 강물이 범람한 강을 따라 걸으면서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까지 모두 18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실종됐다. 아사쿠라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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