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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랄의 시작(시베리아 대탐방:20)

    ◎하루 넘게 달려도 평원과 숲의 행진이…/지역주민의 절반이 우그리언 혈통/열차내 용수,중간역서 새 물로 교환/달리는 화물열차 1백량엔 석탄이 가득가득 늦은 아침을 들기 위해 글라조프역에 내려 먹을 것을 샀다.갓 구워낸 빵,오이,토마토,삶은 감자,그리고 가장 인기품목으로 찐만두의 일종인데 상할 것을 우려해 속을 고기 대신 감자로 채워넣은 「피로시키」라는 것이 있다.잠깐씩 플랫폼에 내려 신선한 공기를 쐬며 먹을 것을 구하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여행중 빼놓을 수 없는 재미중 하나이다. 우드무르치족은 아주 옛날부터 이 지역에서 살았는데 타타르의 지배를 받다가 1558년 러시아에 점령당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옛이름은 보티야키였으며 1920년 자치주 지위를 얻었다가 36년 스탈린 때 우드무르티공화국으로 승격됐다.지금은 자치기운이 드높아 자체 국기,언어,대통령까지 뽑아놓고있다.현재 러시아전역에 모두 71만명의 우드무르티인들이 있으며 이중 50만명이 이 공화국에 살고 있다. ○핀­우그리어 민족 많아 이들 우르무르티인들은 핀­우그리 어족으로 핀어와 매우 흡사한 언어를 사용하고있다.프리 우랄지역에는 이 핀­우그리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특히 많은 것이 특색이다.옛소련 지역에서는 에스토니아를 비롯해 몰도바,마리아,북쪽의 한티­만시족,카렐리아,코미족들이 이 핀­우그리어족에 해당한다.같은 발트3국이면서도 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랩란트어족으로 에스토니아와 전혀 다른 언어구조를 갖고있다. 옛소련지역에는 이 핀­우그리어족 외에도 크게 슬라브어족과 터키어족등 3대 어족이 살고있는데 슬라브어족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인이 있고 터키어족에는 카자흐,키르기즈,우즈벡등 중앙아시아인 대부분이 해당된다. 모스크바도 사실은 9세기에 러시아인들이 점령하기 전까지 핀­우그리인들의 땅이었다.당시 러시아인들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으며 8,9세기에 걸쳐 북동으로 계속 영토를 확장시켜 나갔었다.9세기에 모스크바를 점령한 러시아인들은 11 47년 모스크바를 도시로 정식 출범시켰다.그래서 오는 97년은 모스크바시 건설 8백50주년이 되는 해이다.금년 2차대전 승전 50주년식에 이어 또 한바탕 요란한 잔치가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글라조프역에서는 우랄산맥에 위치한 스베르들로프스크주 제2의 도시 니즈니타길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가 반대편 선로에 정차해있었다.우랄산 보석이름인 「말라히트」라는 열차이름이 우랄의 분위기를 한껏 전해준다.글라조프를 출발해 남부 이조프스크시로 연결되는 교차점을 지나 곧바로 쳅차강을 넘으면서 기차는 페름주로 들어갔다.쳅차강은 불과 폭10m의 작은 강이었다.페름주부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2시간으로 늘어났다. ○열차비품 승객에 팔아 남자 승무원이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쇠로 만든 유리잔 받침대를 사라고 한다.「티탄」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차이(다)나 커피를 타마시는데 꼭 필요한 물건이어서 3만 루블을 주고 2개를 샀다.사고 보니까 받침대는 여기저기 우그러져있고 함께 산 유리잔은 온통 금간 투성이다.승객들에게 나누어주어 쓰게 한 다음 내릴 때 회수토록 돼있는 물건을 이렇게 팔아치우는 것이다.승무원들의이런 크고 작은 비행은 여행 내내 지겹도록 계속됐다.어쨌든 이렇게 안면을 튼 덕분에 모스크바에서 가지고 간 전기솥으로 승무원방에서 편법으로 라면까지 끓여먹을 수 있는 특혜를 받기도 했다. 상오 10시 15분 페름주의 첫역 바라둘리노에 도착하면서 마침내 프리(pre) 우랄이 시작됐다.페름 역시 「먼 땅」이라는 뜻의 핀­우그리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페름과 스베르들로프주등 우랄 일대에 사는 주민들 절반은 우그리언 혈통이 섞여있다고 한다.플랫폼에 오가는 사람들 얼굴을 보니 일리가 있는 말같기도 하다.스베르들로프주 출신인 옐친 대통령의 얼굴에도 우그리언의 얼굴형태가 남아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페름 도착 전 「크라스노 캄스크」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역을 지났다.「카마강변의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이다.주민 6만명 미만의 소읍이지만 러시아화폐용지를 찍어내는 유명한 셀룰로스 콤비나트가 있는 마을이고 거기다 매년 러시아씨름인 삼보 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반대편 선로에 화물열차가 지나가는데 매달고 가는 화차수를 세어보니 1백개가 넘는다.모두 석탄을 가득 싣고있다. 러시아의 최대 산업지대,우랄의 위력을 알려주는 전초같이 느껴졌다.아울러 우랄로 접근하며 스위스 못지 않은 절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만 하루 넘게 계속되던 평원,숲의 행진이 마침내 끝이 나고 있었다.시베리아철도여행의 참맛은 관광을 위해 굳이 중간에 내릴 필요가 없다는 데도 있다.여행 내내 자석처럼 차창에 붙어앉아 철로변을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천풍경,나무,그리고 사람들을 보고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조금 과장한다면 단지 샤워를 하고 제대로 된 더운 음식을 먹기 위해 중간도시에 내려 호텔신세를 질 필요가 있을 뿐이다. 현지시간 낮 2시20분 페름역에 도착했다.페름시로 진입하며 철길위에서 내려다본 카마강은 한때 이름높던 푸른 강물이 아니라 다소 흙탕물이다.교각이 8개에 철교길이 1㎞가 넘는 큰강이다. ○푸른 카마강은 흙탕물 페름역에서는 35분간이라는 비교적 장시간 정차를 하는데 열차내의 물을 교환하기 때문이다.식당칸이나 화장실에서 쓰는 물을 비롯해 열차내모든 물을 기차밖으로 쏟아내고 대신 카마강에서 길어올린 신선한 새물을 기차에 가득 채워넣는 것이다.플랫폼을 따라 설치돼있는 쇠파이프에 두개의 구멍이 달려있는데 그곳에 고무 호스를 끼워서 한쪽으로는 물을 뽑아내고 다른 한쪽으로는 새물을 채워넣는다. 이 시간을 이용해 잠시 역사 바깥으로 나가보았다.모스크바도 마찬가지이지만 러시아의 철도역은 역개찰구에서 표검사를 하지 않는다.대신 객차마다 배치된 승무원이 승객의 타고내리는 것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 여행중 모든 사항을 책임지도록 돼있다.그래서 역사를 드나드는 것은 자유다.역사에는 러시아의 공통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술취해 긴나무의자에 쓰러져 자는 노인,그옆에 쪼그리고 앉은 손녀인듯한 여자아이등,3층짜리의 제법 규모있는 역사이지만 내부는 완전 슬럼,쓰레기 천지였다.
  • 홍은3동 주부봉사단(산하 파수꾼)

    ◎생활속 환경운동… 「한강살리기」 앞장/회원 50여며에 골목·하천 오물청소 등 맹렬활동/폐품 수거·판매로 경로잔치까지… 주민 큰 호응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주변을 깨끗이 지키고 오염된 한강물을 한방울이라도 맑은 물로 만들겠다』며 주부들이 발벗고 나섰다. 장본인은 서울 서대문구 홍은3동 주부환경봉사단협의회(회장 김태임·49).이들 50여명의 회원은 지난 4월1일과 8일 마을주변인 백련사 및 홍제천·논골등지에서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환경캠페인을 벌인데 이어 지난 5월22일에는 한강고수부지에서 「한강물 맑기」 오물수거작업을 펼쳤다. 재활용폐기물을 모아 자금을 만들어 경로잔치와 불우이웃돕기등 보람 있는 봉사활동도 함께 벌이고 있는 홍은3동 주부환경봉사단이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환경감시단체로 동참한 것은 지난해 6월.이때부터 마을 청결과 한강물 살리기에 열성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6월21일 한강고수부지 이촌지구에서 주부를 대상으로 화학세제 덜쓰기 캠페인을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매월 21일은 한강변 오물수거및 시민계도활동을 어김없이 해왔으며 이 운동을 앞으로도 계속해나가기로 다짐했다.또 매주 토요일에는 마을주변 청결의 날로 정해 주택가와 백련사주변의 골목길 청소를 실시하고 있다. 김태임 회장이 이곳 서강아파트로 이주해온 것은 지난 90년.그녀는 주민을 위해 무엇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아파트의 65세이상 노인 35명을 대상으로 경로모임을 가지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적은 돈이나마 자금이 필요했다.생각끝에 아파트의 쓰레기를 분리수거해 기금을 조성키로 했다.91년부터 폐휴지를 모아 판 돈으로 노인를 도운 것.그러자 일부 할머니와 반장이 동참해오면서 폐품재활용에 호응하는 주민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던 93년3월 주부환경봉사단협의회를 발족했고 회장으로 추대됐으며 회원이 50여명으로 불어나면서 제법 보람있는 환경캠페인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봉사단은 이로 인해 93년4월 우유팩수집경진대회에서 5백만장을 모아 단체장려상을 받았고 지난해 6월에는 김회장 혼자서만 2천만장을 수집,개인장려상을 받았다.이밖에도 재생비누만들기,거리의 껌떼기작업등 활동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공해를 없애는 일은 바로 자식을 사랑하는 지름길』이라는 이들 주부는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에 참여한 이후 시간을 쪼개 환경활동에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다.
  • 뺑소니차 피해자의 하소연 들으며(박갑천 칼럼)

    어느 자리에서 뺑소니차에 치인 피해자가족의 억울하고 가슴아픈 사연을 듣는다.날벼락 맞아 사람 다치고 애옥한 처지에 치료비 대야하며 하소연할 곳도 없는 딱한 사정.가끔 길거리에서 볼수 있는 『목격자를 찾습니다』의 경우이다.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10명중 6명이 사고현장을 보고도 못본체한다는 것이었는데 더구나 뒤늦게 나타나 주겠는가.그래도 피해자가족은 그런 광고에 한줄기 희망을 거는 듯하다. 뺑소니차는 지난해 1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진다.차량이 늘어남에 따라 그 건수도 불어난다.그런데 문제는 검거율.10건중 6건은 안 잡히는 형편이다.절반도 못 잡으니까 안 잡히면 그만이지 하고 괘다리적게 줄행랑 쳐 버린다.오라가라 귀찮아 신고율도 낮고 보니 분하고 서러운 피해자는 늘어날 밖에 없다.하지만 달아나도 어느땐가 잡히고 만다 할때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한비자」(내저설상)에 사형을 가해도 도둑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해놓은 대목이 있다.­옛날 형(형:초)나라 남쪽 여수라는 강에서 사금이 많이 났다.사람들은 이를 몰래 채취해간다.그러자 나라에서는 금령을 내린다.잡히는 자는 저자거리에서 고책(기둥에 묶어 찔러죽이는 형벌)에 처하여 효수(목을 베어 높은데 매다는것)한다고 했으나 사금 훔치는 사람은 많아져 형을 받고 죽은 시체가 강물을 막을 정도였다. 이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없겠건만 사금 훔치는 자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한비자」는 말한다.『그건 범인이 모두 잡힌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어떤 사람에게 천하를 다주는 대신 너를 죽이겠다고 하면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세상을 가지려들지는 않을 것이다.세상을 다 갖는 것은 큰 이익이지만 그에 응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말에 틀림이 없다.뺑소니차만의 문제는 아니다.강도·절도에 사기·횡령·수뢰…,하다못해 몹쓸 전화질에서부터 각종 선거사범에 이르기까지가 다 그렇다.반드시 법망에 걸려들고 그옭을 받는다고 할 때도 그럴 수 있겠는가.하지만 안 잡힐 수도 있고 잡혀도 빠져나갈 수까지 있는것이 세상사.반사회적인일들은 역시 끊이지 않게 되어있다. 사회현상으로서의 불행은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른다.그걸 생각하면서 모르쇠로 도리머리만 쳐선 안 된다.잡히는 율 높이는데 다같이 참여해야 옳다.당국 또한 더덜뭇해서는 안 되며 고발인에게 불이익이 덜 돌아가게 마음써야 할 것이다.
  • 「순수문학」 외길 걸은 문단거인/타계한 김동리 선생의 문학과 생애

    ◎생명·인간성 탐구 중시… 문학의 도구화 반대/한국적 샤머니즘 담은 「무녀도」·「황토기」 남겨 17일 타계한 김동리(본명 김시종)씨는 한국 현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들을 남긴 우리 문단의 거목이었다. 작가로서의 그는 60여년의 작품활동을 통해 1백여편에 이르는 중·단편소설을 남긴 빼어난 글쟁이였다.이른바 「순수주의」를 지향한 그의 소설들은 해방이후 우리 문학의 큰 줄기로 이어져 내렸다.뿐만 아니라 그는 참여주의 논객들과의 지속적인 논쟁을 통해 이같은 자신의 문학관을 적극 옹호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김동리씨가 처음 문단에 나온 것은 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시 「백로」를 통해서였다.그러나 35년 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36년 동아일보에 「산화」 등 두편의 소설이 잇따라 당선되면서 그의 재능은 산문쪽으로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문학적 지향은 30년대말 발표된 「무녀도」와 「황토기」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기독교신자인 아들과 갈등을 빚는 무당,가공할 힘을 지닌 장사의 사연을 다룬 이 단편들엔 한국적 샤머니즘과 신화의 세계에 대한 지은이의 본능적인 이끌림이 나타나 있다. 이무렵 그는 자신의 창작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평론작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문학의 사회·역사의식 회복을 촉구한 임화·유진오의 글에 맞서 「순수이의」(39년)「신세대의 정신」(40년) 등의 평론을 발표한것.이런 글에서 그는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개성적인 삶의 탐구여야 한다』며 정치나 이념에 종속되지 않는 순수문학이야말로 문학의 본령이라는 주장을 폈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이같은 순수문학 옹호는 그후 그의 창작에 일관되게 깔리는 철학적 기조가 된다.해방공간의 좌­우 논쟁,70년대말 순수­참여 논쟁 등을 거치면서 그는 문학의 도구화에 반대하고 생명과 인간성 탐구를 문학 고유의 역할로 여기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다.이때문에 리얼리즘 문학이 성했던 80년대엔 삶의 현실이나 인간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문단 한켠의 거센 비난에 맞닥뜨리기도 했다.그러나 그와 이념적으로 대척되는 지점에 놓인 시인 고은씨조차도『동리문학은 한국소설의 원점』이라고 평할 정도로 그의 탁월한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다. 그는 한국문인협회장·예술원회장·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학장등을 거치면서 이념과 사상을 떠난 특유의 포용력으로 이른바 「김동리 사단」을 거느리는 문화예술계의 대부로 군림하기도 했다.장용학·손창섭·박경리·이범선·최일남·한말숙·정을병·이문구·서영은·문순태씨등이 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고 천승세·김원일·송상옥·유현종·오정희씨등이 서라벌예대 제자들이다. 문학과 삶의 동반자였던 부인 손소희씨가 작고한지 얼마 안된 지난 87년 30세 연하의 문단 제자 서영은씨(52)와 결혼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나 90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념의 시대가 지나가고 90년대에 접어들어 동리문학의 짙은 문학성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그의 단편 대표선집이 나오고 연구논문들이 책으로 묶이는 가운데 민음사에서는 「김동리 문학전집」을 7월부터 2∼3차에 걸쳐 펴낼 예정이다.여기에는 장편「사반의 십자가」「을화」를 포함한 그의 모든 소설들과 문학평론,에세이들이 수록된다.한국 토속정서에서 인간의 보편적 구원문제로 확대돼온 그의 문학적 지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이 책이 유작이 되는 셈이다. □연보 ▲1934년 조선일보 시 「백로」,35년 중앙일보 단편 「화랑의 후예」,36년 동아일보 단편 「산화」 각각 신춘문예당선. ▲36년 「무녀도」,39년 「황토기」,41년 「소년」발표후 8·15까지 침묵. ▲1946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초대회장,「윤회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소설분과위원장,장편 「해방」. ▲1950년 문교부 예술위원,서울시 문화위원,「인간동의」 ▲1954년 예술원회원,「마리아의 회태」. ▲1955년 「흥남철수」「밀다원시대」「실존무」. ▲1957년 장편 「사반의 십자가」 ▲1961년 문인협회 부이사장 「등신불」. ▲1966년 「까치소리」「송추에서」「백설가」. ▲1967년 3·1문화상 수상,대표작선집 전 5권 간행.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중편「극락조」. ▲1971년 장편 「아도」. ▲1973년 중앙대 예술대학장 장편「삼국기」 수필집「사색과 인생」 ▲1974년 장편 「이곳에 던져지다」. ▲1978년 장편 「을화」 수필집 「취미와 인생」. ▲1981년 예술원회장. ▲1983년 5·16민족 문화상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예술원 원로 회원.시집 「패랭이꽃」. ▲1987년 장편 「자유의 역사」(59년 신문 연재작). ▲1990년 소설가 협회장.7월 30일 뇌졸증으로 쓰러짐. ◎한국문학의 영원한 큰별이시여…/고 김동리 선생 영전에/한승원 작가 이세상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고 선생님 혼자서만 아시는 그 깸없는 무상한 오랜 잠 주무시더니,그 잠 깨시기 바쁘게 선생님 어디로 떠나가시려 합니까.간밤 검은 구름장들 지붕머리 짓누른채 궂은비 흩뿌리고,그 습한 어둠속에서 허리 꼬며 강물 슬프게 앓아대고,북한산 지빠귀 한 마리 제 잠 설치게 하더니,신새벽의 푸른 빛살 속에서 선생님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고무줄처럼 잡아당기기도 하고 보석처럼 단단하게 앙금지게 해놓기도 하고,몇 천억겁을 찰나로 오그라들게 하기도 하고 그 찰나를 다시그 몇 만억겁으로 늘어나게 하기도 하는 혼자서만 아는 시간을 주무르고 노시다가 그 시간을 서리서리 호주머니에 넣으시고 가시는 거기가 어디입니까. 영화도 많았고 욕됨도 많았던 이 땅,이곳에서의 머무름은 얼마만한 잠시였습니까.이제 가시는 그곳은 「달」속의 달이와 「무녀도」의 을화가 있는 곳입니까.「황토기」와 「등신불」속의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입니까. 30년 저쪽의 어느 늦은 가을날,저희들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뚝섬으로 소풍을 갔을 적에,저는 폭음을 하고 취한 척하고는 선생님께 건주정을 하였고,호래자식인 저를 유도하는 한 친구가 못됐다면서 모래밭에 내리 꽂았었습니다.이튿날 얼굴에 반창고 붙이고 찾아간 저에게 싱긋 웃으시며 어깨를 두들겨주시던 선생님의 그 인자스러운 동안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속된 저로서는 지루하게만 느껴진 그 깸없는 신비한 잠을 주섬주섬 사려담고 문득 떠나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제 가슴을 쓰라리게 하지만,저는 결코 슬퍼 울지 않습니다.이 밤,저는 북한산 위의 별들을 보고 있습니다.지금 선생님께서 이르게 되는 그곳은 선생님께서 신비롭게 형성해놓은 세계일터입니다.제가 쳐다보는 별처럼 떠있는 비가시적인 커다란 시공. 우리들의 우주안에서는 가는 것은 없고 오는 것만 있습니다.헤어지는 것은 헤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사실은 긴긴 강의 하구에 잇닿은 바다에서 다시 만나 어우러지게 됩니다.그것을 굳게 믿는 저는 별로 오래지 않은 시간안의 즐거운 회후가 예정되어 있음도 믿습니다.선생님 그곳에 먼저 가셔서 큰 예술학과 하나 마련해놓고 계십시오. 저 선생님의 그 학교에 또 입학하겠습니다.선생님,명명한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 급류타기/계곡 누비며 스릴·스피드 “만끽”

    ◎4∼8인용 고무보트 타고 모험·협동심 키워/6월말∼8월 적기… 한탄강·내린천 등 명소로 6∼8명이 탄 고무보트가 빨라지는 물살을 타고 협곡 사이를 누빈다.급류에 휩싸이면 보트는 요동을 치고 돌출된 바위에 부딪혀 중심을 잃고 그자리를 맴돌기도 하며 때로는 뒤집힌다.사람들은 눈을 감거나 비명을 터뜨린다. 한차례 격랑을 넘어 한숨 돌릴 때면 상큼한 공기와 맑은 햇살속에 협곡의 비경이 펼쳐져 있다. 대자연속에서 스릴과 스피드를 만끽할 수 있는 「수상레포츠의 꽃」 래프팅(급류타기·뗏목타기)이 본격 시즌을 맞았다. 한탄강·내린천 등 래프팅 명소에는 성급한 래프터들이 몰리고 있으나 적기는 장마철이 시작되는 6월말∼8월.래프팅의 짜릿한 묘미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강물이 불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급류타기는 무동력 고무보트를 타고 4∼8명이 팀워크를 이뤄 난관을 뚫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모험심과 혐동심을 기르는 레포츠.목적지까지 급류를 타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여럿이 호흡을 맞춰야 하고 힘의 조화가 요구된다.힘껏 노를 저어야 하기 때문에 운동량도 많다. 한탄강,영월 동·서강,내린천,홍천강 등 10여곳이 급류타기에 알맞은 장소다.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한탄강상류 순담계곡에서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 근홍교에 이르는 13㎞구간이 대표적인 래프팅코스로 2시간 남짓 소요된다.30∼40m 깊이의 협곡은 수직절벽과 기암괴석이 많아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케할 정도로 주변경관이 빼어나다. 급류타기는 원시시대에 뗏목을 타고 수렵이나 이동을 하던 데서 유래됐다.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보트는 2차대전의 부산물인 군용 고무보트에서 나왔으며 60년대 말 미국여행사들이 여행자들을 많이 실어 나르기 위해 대형 고무보트를 이용하면서 세계적으로 붐이 일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80년대 초 도입된 뒤 90년대 들어 전문레저업체와 대학 동아리등을 중심으로 래프팅인구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급류타기 가이드 이순호씨(32)는 『고무보트는 30인승까지 있으나 동호인들이 즐기기에는 6∼8인승이 적당하며 구명조끼와 헬멧착용이 필수』라면서 『비가 오거나 기온이 떨어질 경우에 대비해 갈아입을 긴소매옷과 장갑·운동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무보트는 90만∼1백50만원선으로 비싼 편이어서 레저이벤트사에서 빌려 이용하는 것이 좋다.비회원이 이용할 경우 장비대여·점심식사·교통비를 포함해 4만원정도 든다.한국레저이벤트협회(02­722­8811),코니언(02­723­7237),점보클럽(02­543­4330).
  • 서울시장 출마 「빅3」 3작가 밀착취재

    ◎민자 정원식/「컴퓨터 황소」… 경륜·안정감 돋보여/“서울 면모일신” 공약은 듣기만해도 흐뭇 열전 16일의 본격적인 지자제선거전 그 첫날의 막이 올랐다.정원식 후보의 정당연설회장이라는 마포구 홍익대근처의 철도부지 공터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유세장에 가는 길은 예외없이 교통체증으로 짜증이 난다.유세 때문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시달리는 서울의 교통지옥 때문이다.수돗물은 위험해서 마시지 못한다고 성분도,청결도도 알 수 없는 생수 한사발을 먹고 나선 배가 더부룩하고 초여름의 더위에 달구어진 매연바람이 숨을 막는다. 『정말 서울은 사람 살 곳이 못돼』길을 나서면 한두번은 내뱉는 말이다.민선시장이 들어서면 마음놓고 수돗물도 마시고 확 뚫린 길을 시원하게 달리고 맑은 공기 마시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서울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그 속시원한 해결책은 가지고 있을까.그 기대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권자가 유세장으로 몰려가는 것일 게다. 첫날이어서 그럴까.아침 10시가 넘었는데도 청중은 2백∼3백명이 그것도 노인·부녀자만 연단 밑에 모여 있다.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전문운동원이 마이크를 잡고 정원식후보가 왜 서울시장에 당선되어야 하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열시반부터 열겠다면 광역후보·기초단체후보는 적어도 30분 전에는 와 있어야 하고 자원봉사를 맡았다는 인기연예인도 30분 전쯤에는 도착하여 춤추고 노래는 못할망정 유세장분위기를 띄워야 하는데 그들마저 30분,1시간 지각이다. 길이 막혀 지각을 했으면 바로 그 교통난을 이렇게 해소하겠다고 말문을 열었으면 좋겠는데 누구 하나 사과 한마디 없다.시간이 흐르면서 청중의 숫자도 불어나 2천여명이 되었다.비로소 유세장다운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땡볕에 앉아 있는 청중은 깔판을 빼내어 고깔모자를 만들어 쓰고 맨바닥에 앉아 연사들의 유세를 경청하는 열의를 보였다. 『정원식 정원식』연호소리와 함께 정 후보가 황소 같은 육중한 몸을 연단 위에 나타냈다.노익장의 전총리는 그의 별명인 컴퓨터 황소답게 특유의 미소를 띠며 청중의 환호에 두팔을 높이 들었다. 교육자이며 인격자인 동시에 누구보다 노련한 정치력과 행정력·운영능력을 갖춘 새서울 건설의 구원자는 정원식뿐이니 합심하여 밀어주자는 전원일기 김회장,최영한(최불암)의원의 열변이 터져나오자 다시한번 정원식 연호소리가 메아리졌다. 이어서 마포구청장후보의 연설이 계속되며 한표를 부탁했고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나서서 기초단체장후보들의 인사소개가 이어졌다.역시 하이라이트는 정원식후보의 연설이었다.돈은 막고 입은 연다는 이번 선거의 특색답게 말의 성찬이 이루어졌다. 교통난 해소,맑은 물 먹기,쾌적한 환경조성,서울시 빚청산,통일조국의 수도 서울로 면목을 일신하겠다는 정 후보의 공약은 시장만 되면 틀림없이 실현될 것만같이 호소력 있게 들려온다.말만 들어도 흐뭇하고 기분좋다.강물이 흐르지도 않는데 다리를 놔주겠다고 공약을 하는 사람이 정치가라 하지만 누가 되든 이번만은 부디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유세장을 뒤로 했다.아무튼 유세가 끝나도 교통비다,점심값이다 하며 돈봉투 안돌아다니는 것만 보아도 이번 선거는 유사이래 깨끗한 선거가 되는구나 싶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민주 조순/사려깊고 겸손… 신선한 연설 인상적/난마처럼 얽힌 서울시문제 해결사 될듯 가끔 내가 일하는 치과에서 『전에는 얼음도 깨물어 먹고 병마개도 이빨로 따곤 했는데 요즘은 이가 시리고 흔들린다』고 하는 환자를 만난다.그런 환자에게 내가 말한다.『이로는 얼음을 깨물어 먹거나 병을 따서는 안됩니다』 나는 오늘하루 조순 후보와 동행했다.그러면서 우리는 혹시 병마개를 이빨로 따고 얼음을 깨물어 먹는 시장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오늘 조순 후보는 현대미술관에서 박수근 회고전을 보았다.그리고 경인미술관에서 유홍준 교수,김초혜 시인,소설가 윤정모씨,화가 김정헌씨등과 함께 문화예술인 모임을 가졌다.그리고 명동유세와 신림동유세에 참석했다.조순 후보의 첫나들이가 미술관과 인사동에서 시작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특히 신림동에서 그의 연설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언제나 조용하기만 하던 조순후보의 변화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우리는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승리해야겠습니다』『서울시장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무능하고 오만하며 비전 없이 표류하는 집권층에게 단호한 각성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집권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온 그의 신중한 태도에 비추어볼 때 그의 말은 참으로 신선했다. 나는 솔직히 지금 서울이 안고 있는 심각한 위기에 대해 후보들이 얼마만큼 느끼고 있을까 궁금했다.누가 이 위기의 도시에서 시민을 구할 것인가. 나는 시민이 조순 후보는 사람은 좋은데 추진력이 좀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강력한 시장이라….우리 속담에 「싸우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지난 시절 군사문화의 잔재로서 소위 「빨리빨리」「후다닥 밀어붙이기」논리에 너나 할 것 없이 빠져 있지는 않은가.무언가 화끈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불도저식 시장을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바로 이런 우리의 요구위에서 성수대교는 만들어졌으며 가스관이 폭발했다.나는 그런 전지전능한 시장은 있을 수도 없고 바라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우리 국민이송수관이 몇개이며 그 예산이 어림잡아 얼마이고 하는 퀴즈문제에 집착하거나 서울의 문제를 단번에 고칠 수 있다는 쾌도난마식 공약에 현혹된다면 우리는 계속 위기의 서울을 만들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는 말했다.우리 사회가 잘못된 추진력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그는 또 말했다.야당을 택하지 않고 야당후보를 밀어주지 않고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서울시장만으로 서울시를 훌륭하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이라고.그는 미술관에서 「치원여민」이라는 휘호를 써주었다.「시민과 더불어 멀리 도달한다」는 말이라 했다.옳은 말이다.시장은 시민의 자발성을 끌어내 그들과 함께 문제해결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우리가 급하다고 해 이빨로 병마개를 따는 식의 강력한 시장을 원한다면 우리는 성수대교식 서울을 갖게 되리라. 조순,그는 사려깊고 결단력을 갖춘 사람이다.그는 소신있지만 독단적이지 않은 사람이다.그의 이런 민주적인 사고와 태도야말로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서울시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풀어가리라.그는 능력있지만겸손하며,그는 냉철하지만 온유하다. 오늘 내가 그를 보고 느낀 점이다.무엇보다도 그는 시민에게 배우고 시민을 두려워하는 서울시장이 될 것이다. ◎무소속 박찬종/소탈·친근미 넘쳐… 시민후보 실감/악수 유세 인기… 시민들 자원봉사 자청 D­15.6·27선거를 15일 앞둔 12일 아침7시50분.서울시민후보를 자처하는 무소속 박찬종후보는 제1한강교 중지도에서 이틀째의 공식선거운동을 시작했다.이번 서울시장선거 이슈의 하나로 떠오른 교통체증에 그의 이동차량 갤로퍼(서울2 서7582)가 발목이 잡혀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은 시각이었다. 이원등 상사의 동상이 마주한 자리에 멀티 큐브차량을 배경으로 선 박찬종 서울시민후보는 노량진쪽에서 강북으로 입성하는 출근차량을 향한 손인사를 시작했다. 8시50분,박찬종 서울시민후보는 선거유세 사상 유례가 없던 첫 손인사유세를 끝내고,1㎞ 서쪽에 자리잡은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이동,9시5분부터 흔듦에서 만남으로 변형된 악수유세를 시작하였다.상인들의 요구로 의자에 올라서 핸드폰을 이용한 10분 정도의 즉석연설이 끝나자,비린내가 발린 손을 앞치마에 급히 문지른 한 아낙이 안겨들듯이 손을 잡으며 귀밑으로 다가들어 뭔가 나즉하게 속삭였다.박후보의 손짓에 참모 하나가 다가가는 동안 조기를 파는 김상기씨(36)가 외상장부를 내밀어 사인을 받았다.「김상기씨 감사합니다.박찬종 1995년 6월12일」 9시40분,악수유세를 마친 박 후보가 아침식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들어간 곳은 수산시장 지하실 수산회관.1인분에 4천원인 우럭매운탕을 시키고 수행기자들과 노면담화식의 기자회견이 벌어졌다. 누군가 아낙이 귀에 속삭인 내용을 물었다.지원금을 보내고 싶으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것.박 후보측에 답지한 현재의 지원금은 약 1억원 안팎.법정선거자금 14억2천여만원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신문 5단통광고 2회 광고비에 해당하는 1억원으로 임대한 멀티큐브차량으로 박찬종 서울시민후보로서의 이미지선거,정책차별화선거로 지역할거주의를 앞세운 3김의 선거전략을 극복할 의지를 확실히 했다. 식사가 끝난 시각은 10시45분.자리에서 일어나는 박후보의허리띠가 없었다.서둘러 새벽에 나오다 저지른 실수였다.제1한강대교를 지나면서 그가 허리띠를 매지 않은 사실을 발견한 유권자는 몇이나 될까. 10여만원의 식사비용은 그를 지지하는 30대의 시민이 지불했다. 한시간을 민자당사 앞에 자리잡은 대변인실에서 휴식을 취한 박후보는 12시20분 여의도백화점 앞 용달트럭에 마련한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서울이 통일한국의 수도,모스크바와 북경·도쿄를 잇는 동북아의 축 서울,세계의 중심도시 서울로 만들겠다.태어난 곳은 동서남북 다 다른 곳이지만 여러분이 서울이 고향이라고 대답하는 서울로 만들겠다』점심식사를 위하여 나온 직장인들이 삽시에 몰려들었고,주위 건물난간에 무수이 많은 직장인이 나와 손을 흔들어 지지를 표명했다. 점심은 여의도백화점 지하실에 있는 설렁탕집이었다.유세를 취재나온 뉴욕 타임스의 앤드류기자와 즉석인터뷰가 이루어졌다. 박 후보는 4시쯤에 영등포시장앞 연흥극장 근처 육교 위에서 양쪽을 지나는 행인을 상대로,4시40분부터 영등포시장을 돌며 상인을 상대로 유세했다.이어 7시부터 노량진역 소광장에서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르는 유세 최대의 장비 멀티큐브차량을 배경으로 천여명의 퇴근시민을 상대로 연설했다.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으로 6월27일을 지역할거주의와 패권주의를 종식시키는 위대한 시민명예혁명의 날로 만듭시다!』 박찬종 후보가 서울시민후보인지,6월27일이 위대한 시민명예혁명의 날이 될지는 서울시민이 결정할 것이다.
  • 설거지를 하면 안된다/신경호 화가·전남대교수(굄돌)

    연두 비늘 번득이며 달 그림자 당신 모습으로 잠기는 맑은 강변에 살고 싶다.꼭 대숲 바람이 아니라도 좋다….그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은 수도꼭지를 틀고 설거지하는때,한밤중이다.아들녀석의 도시락 통을 씻으며 밥풀 한 알 허투루 남기지 않았음에 안심한다.아무렴 낟알 하나가 일년 농사고 말고! 가끔이긴 하여도 내가 이 한밤 완벽하게 홀로 되어 소리죽여 설거지를 하면서 평소에 맨 정신으로 하지 못하였던 말…당신을 사랑한단 말이야,아들아 나는 너를 믿고 있어 등등은 조용조용 수돗물에 씻겨나간다.대개 새벽 두세시 쯤,그리고 나는 내 일에 골몰한다.이렇게 그렁저렁 산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기도 하다가 문득 내가 가르친다고 하는 일과 학생들,그들과 함께 떠내려보낸 나의 30대·40대가 아득하다. 정말이지 이러고 말 인생이었나 싶은 허무의 늪,벌써 창에는 시퍼런 새벽이 가득차고 짧고 얕은 수면 사이사이 꿈에 젖는다.번잡한 하루는 헤아릴수 없고 또 저녁 또 밤이면 이윽고 피곤한 허물을 벗듯 설거지를 한다.입버릇처럼 하는 말,너희가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아야지,그런 강의 뒤 적막한 연구실에 깊숙이 묻혀서 또 다시 홀로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가 자문하고 있노라면 무연히 쓸쓸한 낙조에 걸리는 자화상에 남루한 달이 뜬다.달작지근한 조각달.조청만큼 달디단 피로를 맑게 헹구고 싶은 나날이 강물로 흐르고,이제는 물감을 풀어야지 싶다.굳은 붓을 빨고 명징한 그릇에 말씀을 담고 싶다.하얗게 육탈되어 가슴에 새겨내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뼈,그 뼈의 눈물만 그리고 싶다. 세상은 아시는가 몰라.각시 잠든 고요한 밤 조심조심 그릇 부시는 그 반짝이는 정갈한 질서 소망하는 이들의 손금에만 흐르는 햇빛나는 강물,아시는가 몰라.
  • 국교생 「살신효심」/아버지 구하려다 아들도 함께 익사

    【충주=김동진 기자】 6일 하오 6시 쯤 충북 충주시 단월동 단월강에서 다슬기를 잡던 이명환씨(41·충주시 연수동 삼정아파트 104동 506호)가 3m 깊이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아들 종환군(12·충주 남한강국교 5학년)이 발견,구하러 들어갔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 사고가 난 곳은 홍수 때마다 바닥이 파여 수심이 깊은 데다 수년전에 골재채취를 하고 마무리작업을 하지 않아 익사 사고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경찰은 숨진 이씨가 사고 직전 술을 마셨다는 일행의 말에 따라 술에 취해 다슬기를 잡으러 들어 갔다 웅덩이에 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 고압가스관 한강물속 노출/서울 잠실수중보/토사유실로 바닥서 떠올라

    ◎시,“긴급보수후 가스관 이설” 잠실수중보의 수문(가동보)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유속으로 잠실대교 교각보호용 우물통의 콘크리트가 크게 훼손되고 바닥에 묻혀있는 직경 6백㎜의 고압가스관이 물속에 떠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병렬 서울시장은 1일 『잠실수중보의 가동보 2백m상류 잠실대교의 강북에서 9번째 교각보호용 우물통이 세굴현상으로 모두 떨어져 나갔고 토사가 유실돼 강바닥에 묻혔던 고압가스관 40여m가 물속에 떠있어 가스관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이에 따라 보수공사를 실시했으나 항구적인 안전을 위해 잠실수중보 강남쪽에 추가 설치키로 한 가동보(2백m)공사를 중단하고 한국가스공사와 협의,이 곳을 통과하는 가스관을 수중보 하류 1㎞지점으로 옮기기로 했다.
  • 도시하천 마르고 썩어간다/YMCA 서울 우이천등 4곳 생태환경조사

    ◎무분별 복개로 햇빛막아 오염 심화/하천 정비는 자연생태 그대로 해야 도시의 내들이 물흐름이 없는 건천으로 변해가고 있다.또 토양은 수분이 없이 메마르고 부식된 오수로 생물이 서식할 수 없는 죽은 하천이 되고 있다. 서울 YMCA는 9일 정부가 도시개발을 하면서 무차별로 하천을 복개하고 도로를 포장하는가 하면 하수종말처리장을 설치하는 등 자연쐬태계의 환경적 측면을 고려치 않은 하천정비로 시민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의 시정을 촉구했다. 수도권지역을 대상으로 환경감사에 나선 서울 YMCA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북한산을 등지고 내가 많은 서울도봉구를 표본지역으로 선정,우이천 도봉천 방학천 중랑천등 4개 하천을 대상으로 자연생태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었다. 이 조사에서 도봉천과 방학천은 이미 완전한 건천으로 변해 있었고 우이천도 건천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봉천과 방학천은 복한산 계곡의 음식점 및 가정집의 하수관이 설치되지 않아 계곡의 맑은물과 생활하수가 분류되지 않고 함께 섞여흐르며 심한 악취가 났고 하수관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물은 모두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냇물은 말라 버렸다.그런 반면 도봉천의 상류는 물고기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었다. 우이천의 경우 분류하수관이 설치돼 생활오수는 유입되지 않으나 냇물이 흐르면서 지하로 스며들어 내바닦은 모래와 자갈만 드러내고 있다.이들 지천인 대동천 가오천 화계천은 복개로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며 물에 태양에너지의 전달이 차단돼 생태계를 파괴 하므로 심하게 썩어 죽은 하천으로 변해 있었다. 이로 인해 전체 도봉구 하천의 맑은물은 한강으로 흐르는 중랑천에 한방울도 유입되지 않아 결국 한강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또 이들 하천변의 토양이 사막화 돼가고 있다.지하에 스며들어 기름진 땅을 보존하는 빗물이 수분을 차단하는 콘크리트 포장과 보도블록등으로 인해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장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도시화 이전의 자연상태에서는 빗물의 50%가 지하로 스며들며 40%는 증발,10%가 지표수로 흐르는데 이곳은 32%만이 지하에 스며들어 지하수 고갈상태를 빚고 있다. 이밖에도 하천정비를 하면서 굴곡의 하천을 직선으로 만들어 폭우가 오면 범람의 위험이 커 홍수피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 전국 대도시 하천의 대부분이 이같은 중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한 YMCA는 하천정비에 생태적 고려가 전혀 없었고 기능을 살리는 배려도 외면되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자연생태적 측면에서 지하수가 많이 흡수되게 하고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자연 그대로의 하천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무면허 운전 20대 조사중 한강 투신

    15일 상오 11시15분쯤 서울 노량진경찰서 남한강파출소에서 무면허운전으로 조사를 받던 전수정(23·무직·은평구 수색동)씨가 분실물을 찾겠다고 경찰관 2명과 함께 파출소를 나와 근처 한강대교 위를 걷다가 갑자기 10여m 아래 강물위로 뛰어내려 실종됐다. 경찰은 그러나 한강에 투신한 전씨의 몸이 떠오르지 않은 점을 중시,전씨가 그대로 달아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 「군사」의 용산이 문화의 중심지로(박갑천 칼럼)

    『맑은밤 텅빈강에 온갖소리(만뢰) 고요한데/발(렴)을 반만걷고 흰달빛 맞이하네/보랏빛연기 흩어지니 하늘은 넓기만하고/얼음같은 달은 반쯤떠서 금떡(금병)같구려/빈마음 함께 밝아 더욱 맑고 깨끗하나니/밤늦도록 학과 더불어 흰털 휘날리는듯/강가 어디선가 날라리(철적)소리 들려오누나/맑은흥(청흥) 유유히 강굽이 따라 퍼져나가네』(한문원문은 생략) 경도십영의 제천완월(제천정에서 달을 감상함)에서 강희맹이 읊은 시.제천정은 용산구 한남동 한강가에 있던 정자로서 왕가의 별장으로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용산.양화나루 동쪽언덕의 산세가 용이 서린 형국이라서 용두산이라 했고 용산이란 이름은 거기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토박이이름은 미리뫼였을까.용산은 군사시설과 관계를 지니면서 내려온다.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려면서부터 그랬다.황현의 「매천야록」에도 그게 보인다.『왜인들이 숭례문(남대문)에서 한강에 이르는 구역을 제멋대로 금긋고서 군용지라는 푯말을 세워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그일대 3백여만평은1905년 일본군이 내부대신 이지용과 교섭하여 강제로 수용해버렸다.용산동1가에서 5가에 이르는 언저리로서 사격장등이 세워지면서 군사기지화한다.그건 광복후로도 이어진다.미군부대가 들어서서 넓은 지역을 차지해버렸으니 말이다.자연히 우리의 국방부등 군사관계 청사들 또한 이곳에 들어앉았다.용산3동의 경우 민가는 1백50채뿐이었을 정도로.이젠 그 군사시설들이 물러난다. 조선초기의 청백리 청파 기건이 살았대서 붙은 이름이라는 청파동을 안고 있는 용산.바로 옆까지 들어온 한강물이 철썩이는 「푸른언덕」은 아름다웠던 것이리라.그 청파동보다 남쪽에 있는 이태원주변에 대해서는 「용재총화」가 이렇게 묘사한다.『그곳으로는 맑은 물이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절의 동쪽에는 큰 소나무들이 동네에 가득하다.성안에 사는 부녀자들이 피륙을 빨고 바래기 위해서 모여든다』 군사시설 물러가는 용산땅은 문화의 터전으로 모습을 바꾼다.얼마전 김영삼대통령은 이 용산일대가 2000년대 서울의 문화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도 있다.고려 숙종때 최사추가 「도읍후보지」로 보고드렸다는 곳이 용산일대.시대가 흘러 문화의 도읍지로 되나보다.
  • 답답한 고지식이 그리운 세상이다(박갑천 칼럼)

    미생지신이란 말이 있다.지나치게 고지식한 경우를 이르면서 쓰인다.「사기」(소진열전)에 나오는데 변설의 대가 소진이 연나라왕의 의심을 풀기위해 빗대면서 했던 말이다. 미생이란 사람은 어떤 여자와 다리밑에서 만나기로 했다.기다렸건만 여자는 오지않고 빗줄기 따라 강물만 불어올랐다.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그자리에 붙박이로 서있다가 물에 잠겨 죽어버린다.변통 모르는 사람의 본보기라 할만하다.물이 차오르면 다리위나 다리가 보이는 곳으로 피했어야 될일 아닌가.하건만 약속한 「다리밑」을 지키다가 죽었다.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신의의 어리석음이었다고나 할까. 그건 바보같은 고지식이라 치자.하지만 거기까지 이르지않은 고지식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수많은 사례중 「공사견문록」이나 「기문총화」등에 보이는 안탄대란 사람의 경우를 보자. 그의 딸이 입궁하여 중종의 후궁이 된다.딸은 왕자를 낳는다.그는 왕자의 외조부라는 말이 듣기싫어 두문불출한다.딸의 둘째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아들이 선조임금이 되었는데도 자세에 변함은 없었다.공이 늙어서 눈이 멀자 선조가 갖옷을 내렸으나 사양하다가 아내가 개가죽옷이라 하자 부드럽다며 입었다.왕의 외증조부라 하여 자세하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겠지만 이는 지나친 근신이었다고 하겠다. 사람이 고지식하다는 것은 원리원칙에만 얽매임을 뜻한다.용서가 없다.잘못되고 그른 것이면 누가 뭐래도 괘괘뗀다.맑고 밝으며 올바른 것은 좋으나 인간미가 덜하다 싶어진다.스스로도 살아나가기에 팍팍하다.물론 미생같이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하지만 그런 고지식 가운데는 자신이 걸어놓은 최면술에서 헤어나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긴 할 것이다. 그렇긴해도 날고 뛰고 되술래잡고 생청붙이고 다미씌우고 비나리치고 뽐내고 게정거리고…가 하도많은 세상이라서 오롯한 골동품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고지식이기도 하다.많이들 고지식해져야 하는 세태 아닌가 하는 마음이다.『제어버이가 교통위반해도 딱지를 뗄 사람』이라는 비아냥을 받아온 고지식꾼 찰스 행어경관.그가 그 고지식으로 해서 미연방건물 폭파사건의 용의자를 검거했대서 고지식그것이 화제로 된다. 대구 가스폭발사건을 보면서도 고지식을 생각한다.재주 안 부리고 고지식하게 일을 했던들 이런 불상사가 어찌 났겠는가.
  • 익사위기 학생구출/50대 강물서 실종

    【광주=최치봉기자】30일 하오 1시 30분 쯤 광주시 서구 벽진동 극락강변에서 실지렁이 채취 작업을 하던 황용도씨(52·남구 주월동 591의 11)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광주 치평중 1학년 정원섭군(14)을 구한 뒤 실종됐다.
  • 보따리장사/북한에 싸구려 물건팔아 짭짤한 재미(두만강7백리:10)

    ◎북한에 싸구려 물건팔아 짭짤한 재미/세관검사 허술한 고성리엔 장사꾼 득실/“저질품 거래해 동포간 불신 조장” 우려도/김일성 사후 단속… 거래 주춤 두만강이 발원하는 상류지역 화룡시 숭선진 진소재지 고성리촌은 크고 작은 2척의 군함형국을 한 산 아래 자리잡은 오붓한 마을이다.옛날에는 두만강물이 그 군함산 밑을 지나갔다고 한다.그러고 보면 군함이 물살을 가르고 떠가는 모습을 했을 것이다. 이 마을의 노인들은 큰 군함산은 남쪽을 향하고 작은 군함산은 뱃머리를 북쪽에 두었다고 생각한다.그런데 묘하게도 그 형국이 요새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남으로 향한 큰 군함산이 조선(북한)으로 들어가는 대신 작은 군함산은 조선에서 소량의 짐을 싣고 북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다시 말하면 오늘날 북한에서 연변 땅으로 들여올 물건이 없다는 것인데 중국의 조선족 장사꾼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두만강유역 답사길에서 실제 군함산 아래 고성리촌에 몰려든 조선족 장사꾼 무리들을 만났다.고성리촌에 장사꾼들이 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그것은 바로 해관(세관)보다 휴대물품 제한 수량이 느슨한 변방검사잠(국경검사소)이 고성리촌에 있기 때문이다.두만강유역에 자리한 연변의 4개 지역에 해관이 있지만 휴대품 검사가 아주 까다로워 변방검사잠에 장사꾼들이 몰리게 마련인 것이다. ○양강도 거래통로 폐쇄 연변에서 두만강을 건너려면 4개의 해관이나 2개의 검사잠을 거쳐야 한다.화룡시 숭선진 고성리촌 검사잠 말고도 화룡시 덕화진에도 검사잠이 있으나 강건너 북한 땅 수산에서 김일성 사망 이후 시장을 닫아버려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요즘 한창 흥청대는 고성리촌 변방검사잠은 북한 양강도 대홍단군 삼장리로 건너는 통로다.그래서 숭선진 행정부 각부서에 근무하는 인구까지 통틀어 3백명도 안되는 고성리촌의 국유여관과 개체(개인)여관은 늘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고성리촌에서 만난 김철석(51)씨는 화룡시내에 사는 사람인데 화가 머리털 끝가지 치민 말투로 투덜거렸다.두만강 국경을 넘어갈 조선족들이 하도 많아 출국걸음이 늦어지자 옛 시절을 들추어내면서 불평을쏟아놓았다. 『도대체 국경이 뭐란 말입네까.예전에 여권이래 없이도 마음대로 왔다갔다 했시요.고성리와 강건너 삼장사람들 한데 모여 이 군함산 아래서 운동회도 했댔수다.노동자가 몇 백원씩 타서 목돈 쥐어보려고 만여원어치 물건을 사 놓았는데 이 꼴이 뭡네까.되돌아갈 처지도 안되니끼리 이렇게 기다립네다.이거 원,하는 이틀도 아니고…』 중국연변의 남평·백금·도문·훈춘 등과 조선의 삼장·무산·회령·종성·경원 등은 예전부터 두나라 사람들이 상품을 거래하던 시장이었다.광복초기까지도 중국의 쌀이 아니면 두만강연안 조선 사람들이 굶는다고 했고 조선의 소금과 옷감이 없다면 중국 사람들은 염분 결핍으로 털 난 벌거숭이가 된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그만큼 두만강 양안의 경제거래는 밀접했다.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에서는 계란을 팔아도 종성 장거리로 갔다고 한다.오늘도 마찬가지이다.중국의 경공업품과 양식이 나가고 대신 명태,낙지 따위 해산물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연변 사람들의 식탁에 물고기 반찬이 푼푼이 오르지 못할 것이다.북한땅을 찾아 재미를 본 조선족들은 한국바람이 불어도 좀처럼 뜸해지지 않는다.작은 밑천 가지고 돈맛을 보기가 쉽고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고도 왕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마음먹은대로 제때 국경을 못 넘는 것이 불평이라면 큰 불평이다.여관에서 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빽만 있으면 풀린다』는 소리도 서슴없이 해댔다.그러면서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속 사정 뒤에는 모두가 목돈을 움켜 쥐겠다는 욕심이 깔려있다. 내가 숭선향에서 3일동안을 묵는 사이에 어느 한 사람은 배갈과 맥주만 1백 상자를 싣고 건너갔다.한번 장사비용이 제일 많은 사람이 17만원,제일적은 사람이 1만원이었다.보통 두세집 물건을 실으면 트럭 한대 적재함이 넘쳤다.그들이 가진 물건은 대개 연변의 싸구려였다. 옷가지들은 20원좌우의 도매품이고 담배는 「장백」「박쥐」표는 고급이고 보통 한갑에 60전씩 하는 「해란강」과 「길성」이 많다.배갈도 화룡의 「대고량」이고 고급스럽다는 것이 연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BC」표 맥주였다.북한으로 가는 짐은 한때 천인호를 타고 한국에 갔다가 천진항에 내리는 보따리 장사꾼들의 짐만큼이나 컸다. ○북한산물품 크게 줄어 『보통 열다섯배,잘 받으면 스무배가 더 떨어지디요.길성표 담배 한갑이 조선돈 15원,입쌀 1㎏이 40원(중국에서 입쌀 1㎏이 2원)입네다.중국돈 1만원만 갖고 가도 조선돈 20만원을 만들디요.변방잠에 찔러주고 길에 널고 하는 돈까지 떼고도 남는 떼돈벌인데 누가 안하겠습네까.올 때면 해산물을 구입하는데,1㎏ 명태값이 4백원이니까 중국돈 20원입네다.중국에서 도매로 35원 이상이디요.중국에서 4백원씩 하는 생복같은 것은 조선돈으로 4천원 좌우에 살수 있습네다.해삼은 3천원인데 중국에서는 도매가격이 인민폐로 3백50원에서 일전도 곯지 않고 팔디요.2월부터 4월까지는 명태,4∼5월은 해삼,8월은 낙지철로 칩네다』 장사꾼들의 말을 들어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북한을 상대로한 한 장사는 손쉽게 돈을 버는 지름길이기도 하다.지금 중국 조선족 장사꾼들은 큰 군함산에 싸구려를 무겁게 만재해 싣고 갔다가 작은 군함산에 값진 해산물을 살짝 얹어 싣고돌아오나 예전에는 이와 반대였다.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의 김창균(60·조선 함북도 유선군 성북리 태생)씨의 50년대 장사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회령에 가서 학교를 다닐때 일입네다.토요일이면 두만강을 건너 집에 와서 주말을 보냈디요.한번은 용정에 갔다가 한감에 12원씩하는 샤떼천 두감을 끊었댔습네다.월요일 새벽에 강을 건너가서 하숙집 아주머니한테 맡겼는데,아주머니가 청진에 가 팔아서 돈을 줍데다.그 돈으로 한달 숙비를 내고도 헝가리 신발 열켤레와 손목시계까지 사 찼지 않았갔시요.그때 헝가리 신발 한켤레가 중국에서 12원씩인가 기랬어요』 ○손쉽게 돈버는 지름길 장사꾼들이 북한으로 갖고 가는 물건은 중국의 싸구려 폐품이다.양말따위는 한두번 신고나면 실밥이 나고 몇번 빨고 나면 판나서 버려야 한다. 옷도 매 한가지다.지금은 좀 품질이 좋은 것으로 휴대한다고는 하나 별 차이가 없다.그러한 저질품을 고가로 팔아 목돈을 쥐고 어깨를 잔뜩 살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언짢다.한두마리 지렁이가온 늪의 물을 흐린다고 돈에 눈이 어두운 얼간이들의 놀음은 동포간의 불신을 심어주고 있다.가슴 아픈 일이다.
  • 풍토병/5∼10년주기 극산병 번져 수백명 희생(두만강 7백리:9)

    ◎1904년 화룡현 일대 1백여명 참변/여우우는 새벽엔 으례 사람 죽어나가/오염된 두만강물 타고 북한쪽 전염병도 확산 화룡에서 숭선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차안은 떠들썩했다.술잔을 얼근히 걸친 한 50대 남자는 유난히 큰 소리를 쳤다.그 취객에 입에서 콜레라라는 말이 연신 튀어나왔다. ○한국서 약품지원 제의 『맨 처음에는 감기인줄 알았지 뭡네까.열이 나고 메스꺼워 토역질도 하고….그래서리 주사를 맞고 약도 먹었지만 차도를 안보이더라 이 말입네다.그제야 쥐병(출혈열)이라는 예감이 들어 병원을 찾았디요.웬걸,병원에서 검사를 하더니 다짜고짜 격리시키고 중앙에 보고를 한다 뭣을 한다 난리를 칩데다.알고보니 호열자(콜레라)였는데,숭선에만 환자가 셋이라고 기래요』 숭선행 버스에서 주어들은 이야기는 함경도에 돈다던 콜레라가 두만강을 건넜다는 것이다.그리고 북한에 콜레라가 너무 심해서 한국이 약품지원을 제의했다는 말까지 나왔다.또 두만강물은 병을 옮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북한땅 대홍단군 전분공장이 감자썩은 물을 마구 흘려버리고 무선철광이 쏟아붓는 폐수도 합류한 두만강물을 더 이상 마실수 없다고 열을 올렸다. 연변의 화룡지역은 역사이래로 지방풍토병이 유행하여 재난이 심했다.그것은 극산병,또는 지방성 심근병이라고 했다는 것이다.청나라 기록에는 「누런물을 토하는 병이 유행했다」는 내용이 보인다.19 04년 화룡현 와룡호 한 곳에서만도 개척민 1백명이 죽어나갔다.그래서 이 일대를 「시체골」이라 했고 타령조 노래까지 구전될 정도였다. 밤에 여우가 캥캥 울어대는 날 새벽에는 으레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했다.여자들이 더 많이 목숨을 잃었다.부동골에서는 한해 겨울을 났더니 젊은 아낙들이 40여명이나 죽었다는 것이다.배가 아프다고 물을 토해내다가는 밤을 넘기지 못하기가 일쑤였다.매일 밤마다 여우가 울어대고 사람이 죽어나가자 성한 사람들도 실성거렸다.성황당을 찾아 치성을 올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병을 잡지는 못했다. ○손톱부터 죽어가는 병 극산병은 5∼10년 주기로 고봉으로 닥쳐 무려 천여명씩의 목숨을 앗아갔다.19 44년 오늘의 화룡시 덕화진 고산촌 우복동 60여호 2백여명 중 1백8명이 세상을 떴다.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인 19 57년 전후에는 극산병과 함께 천연두와 홍진이 겹쳐 찾아왔다.화룡시 숭선진 고성리촌 김봉용(72)노인이 회고하는 극산병은 무서운 병임에 틀림 없었다. 『내 옥석에 있을때 일입네다.소문을 듣고 가보니 금방 시집을 온 새각시가 배를 붙들고 죽는다고 고아대고 있었다.남편은 먼데,나가 안오고 시부모들과 같이 있는데 노인들은 어쩔바를 모르고 우왕좌왕 합데다.그때 침깨나 놓는 의원이라구는 시만 상촌에 한분이 있어서 달려가서 모셔왔디요.의원은 극산병이라면서 속수무책으로 앉아만 있습데다.환자는 애고대고 죽는다고 광기를 쓰는데 이거 야단이 아닙네까.손톱이 하나씩 색이 죽는데 바른 손이 끝나니 왼 손으로넘어 가더라 이겁네다.명색이 의원인데 보고만 있을수 있냐고 하니 한다는 소리가 엉뚱하기라니….듣자니 극산병은 하신에서 온다는데 젊은 아낙을 벗겨 볼수도 없지 않느냐고 대듭데다.물에 빠진 사람 짚오리도 잡는다고 하신을 보이고도 완쾌된다면 대수냐고 내가 주동해서 아낙을 짓누르고 다짜고짜 치마를 들추고 반쓰(팬티)를 벗겨 내렸디요.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하신을 벌려보니 음질속에 좁쌀알만큼씩한 것이 잔뜩 돋아 있습데다.의원이 침으로 마구 쪼았디요.달거리 때처럼 피가 흘러나옵데다.소랭이(대야)를 대고 피를 받았디요.사람이 죽은듯 늘어지기를 한 시간쯤이 지났나….환자가 물을 찾습데다.한 바가지 물을 들이키더니만 언제 앓았더냐 싶게 일어나 앉는 걸 봤디요.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여자들은 배만 아프다하면 속곳들을 훌렁 벗었디요.내 평생 마누라말고 다른 여자 살을 섞은 적은 없어도 웬간한 바람쟁이보다는 여자 하신 구경은 더 했수다』 ○미역훔쳐 삶아 먹어 극산병은 여지껏 병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토질이 문제라는 사람도 있고 가난이 근원이라는 말도 들린다.지방마다 치료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그러다가 1957년께 극산병이 돌 때에는 인민공사시절이었는데 귀동냥으로 병의 원인을 대강 알게되었다.극산병은 수토병으로 혈액순환이 안되면 죽게된다는설명을 현의사로부터 전해 들었던 것이다. 화룡시 덕화진 남평촌 두만강에서 사는 조선족들의 생각으로는 미역이 혈액순환에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그러나 인민공사시절이라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판국에 미역을 어디서 구하랴.궁리 끝에 한밤중 두만강을 건너 북한땅 함북 무산의 수산사업소를 쳐들어갔다.죽는 사람들 살리고 보자는 일념에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수산사업소에서는 조선족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쌀여섯되와 미역 몇잎을 얻어왔다. 그리고 나서는 간덩이들이 부어 감옥소 갈 작정을 하고 무산에 가서 창고를 털었다.수레에 싣고 와서 집집에 나누어 주었다.마을 전체가 한군데서 해먹고 사는 집체식당 때라 집에서 음식을 해먹으면 경을 치는 시절이었지만 그날 만큼은 집집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북한에서 수산물을 몰래 가져오다 변방부대(국경수비대)에 들켰다.마침 부대연장(중대장)이 조선족이어서 『내가 눈감아 줄테니 위에서 물어오면 딱 잡아 떼라』고 일러주었다. 아니나 다를까,밀수조사를 나왔다.이경화 구장도 모르쇠를 댔다.그래서 그해 겨울을 그럭저럭 무사히 보낼 수 있었고 캥캥대던 여우 울음소리도 뜸해졌다.해산물이 명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쥐처럼 먹고 소처럼 일했던 당시 조선족들에게 해산물은 명약 구실을 했을 것이다.당시 여우가 울어대던 시절에 유행했다는 타령 한가락을 떠올리면서 수성진에 다시 콜레라가 돈다는 사실이 끝내 못마땅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극산병 열이 걸리면 아홉이 숨 지나니 주검은 산과 들에 쌓이고 일가 식솔 영 이별한다네 황폐한 옥토 풀이 무성하고 가난한 농사꾼 애간장 다 타네 한 많은 우리 살림 언제 펴날고 따사로운 해볕 쪼일 그 날을 고대하네』
  • 고분자 에이즈칠료제 개발/부산대,독성 크게 줄이고 증식 억제

    【부산=김정한 기자】 에이즈바이러스의 증식을 크게 억제하는 고분자에이즈치료제가 개발됐다. 부산대 공대 고분자공학과 조원제(57)교수팀은 17일 기존의 에이즈치료제인 AZT보다 인체에 대한 독성을 크게 줄이고 에이즈바이러스의 증식을 감소시킬 수 있는 고분자에이즈치료제(PMAZT)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4년간의 연구끝에 개발된 고분자에이즈치료제는 인체내의 면역증강물질인 인터페론 분비를 촉진시키는 고분자 공중합체(공중합체)에 연구실에서 자체합성한 AZT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킨 것이다. 조 박사는 국립보건원의 실험결과 기존의 AZT는 1백ppm의 농도에서 최대 증식억제효과(83%)를 보인 반면 그보다 높은 농도에서는 오히려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등 효과가 반감했으나 고분자치료제는 10배의 농도인 1천㎛에서 완전증식억제효과를 보였을 뿐아니라 인체에 대한 독성도 AZT보다 20분의1이하로 떨어지는등 약효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치료제가 임상실험단계를 거쳐 제품화되면 환자의 면역기능을 크게 강화하고 고분자물질과결합돼 인체안에서 적절한 양만큼 분비되므로 기존치료제의 부작용을 훨씬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학점 따지 못했다”전문대생 투신자살

    15일 하오 6시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 302 한강대교 남쪽 강물에서 서대성씨(28·K전문대 2년·노원구 월계동)가 변사체로 떠내려오는 것을 이모씨(28)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서씨가 지난해 11월 학점을 따지 못해 한 학기를 더 수강해야 하는 문제로 고민하다 가출했다는 가족들의 말과 외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투신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 녹색댐(외언내언)

    태양계에서 물이 있는 혹성은 아직 지구뿐이다.물리학자들은 지구를 물의 혹성이라 부르기도 한다.지구물의 97%는 해수이고 담수는 3%라고 계량했다.그리고 담수량의 70%가 남북극 얼음이라는 것도 계산해냈다.생명체가 쓸수있는 담수량은 지구상 물의 약 0.8%다.담수는 대기권이 기체와 액체간 상호순환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각 지역 담수량은 그곳 강수량이 결정한다. 우리나라에 내리는 연평균 강수량은 1천2백76㎜.산술적으로 계산된 지표수자원 총량은 연간 1천2백67억㎥라고 한다.이 지표수량중 27%가 대기로 증발되고 55%가 지표에 흐르며 지하로 스며드는 양은 총 강수량의 18%인 2백28억㎥라고 한다. 우리국토 65%를 차지하는 산림지가 있어 이만한 수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산림에 내린 비는 잎새와 나무뿌리 이끼와 풀 토양을 거쳐 정화되고 토양에 있는 칼시움 마그네시움 같은 미네랄과 합성되어 좋은 물로 서서히 골짜기에 방출되어 샘물·호소와 하천 강물을 이루는 것이다. 산림학자들이 숲을 「녹색의 댐」이라 부르는 이유도 숲의 이 담수 정화기능 때문이다.우리숲의 맑은물 생산기능을 돈으로 평가한 것이 92년 가격기준 7조9천3백억원이다.대기보전 휴양 임산부산물 기능등을 합산하면 국민 1인당 연간 63만여원의 혜택을 보는 것으로 산림청은 산출해 내기도 했다. 우리숲이 매년 여의도면적(90만평)의 26배 만큼 사라지고 있는 것도 문제인데 그 주범이 골프장이라는 통계는 한심하다.최근 5년간 훼손된 산림전체의 34%가 골프장 설립 때문이라고 한다.더구나 국유림을 산림청이 골프장에 임대했다는 것은 기막히는 일이다. 국유림은 전국민 공유재산이다.국유림만이라도 자연 그대로 유장하게 보전되어야 할 것이다.
  • 연극연출가 임영웅(이세기의 인물탐구:71)

    ◎56년 「환절기」로 입신… 「완벽 무대」추구/작자의도 밀도있게 접근… 깊이있는 연기 도출/「고도를 기다리며」 초연땐 하루 19시간 맹연습/집팔아 지은 산울림소극장 개관 10돌 맞아 기념공연 막 올려 마른나무 한그루가 텅빈 공간에 물음표처럼 서있는 무대,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이 공허한 대지위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란 무엇인가.신인가 죽음인가 행복인가.고도는 그 무엇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일 수도 있다.시간과 공간이 단절된 상황속에서 이 연극은 언제나 시작되고 끝나면서 또 어디서나 생길수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69년 12월,한국일보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됐을 때 그것이 베케트의 난해한 부조리극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객은 이미 긴장되어 있었다.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연출가 임영웅은 관념과 현학이 넘치는 난삽의 「고도」를 시감의 템포로 도해시켰고 객석은 시종 웃음을 터뜨리며 서구 연극의 새로운사조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수 있었다.이후 「고도」는 「손색없는 명작」으로 정착되어 89년 프랑스 아비뇽과 다음해 고도의 본고장인 더블린 연극페스티벌에서 「한국의 고도는 과연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호평을 받았다.이보다 앞서 88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왔던 세계적인 극평가 마틴 애슬린(미스탠퍼드대 교수)은 「베케트의 희극성과 비극성이 섬광처럼 교차된 마지막 장면은 특히 작가의 의도에 밀도있게 접근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진작부터 세계무대의 진출과 입신을 예고해 주었다. ○속물근성 찾을 수 없어 널리 알려지다시피 임영웅의 연출에선 잡다한 상업성이나 분칠한듯한 속물근성은 찾아볼수 없다.관객을 의식한 연희성과 상투적인 작위성은 배제된다.부조리극이든 블랙 코미디든 혹은 뮤지컬이나 관념적인 추상언어라 할지라도 인간 심리의 바닥없는 심연에 끈질기게 파고들어 캄캄한 내부에 도사린 모순과 갈등을 명징하게 그려낸다.예를들어 77년 화사한 비애가 전신에 스며드는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이나 87년 「영국 애인」등은지금도 잊을수없는 정미한 무대로 기억된다. 그에게선 예술가 특유의 동심과 기벽과 기행은 찾아볼 수 없다.번뜩이는 재치나 직감력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만약 그런 의외성과 파격을 지녔다 하더라도 「보수적인 체질속에 숨겨진 진보적 감각」은 그의 탄탄한 자존심의 틀에 갇혀 쉽사리 노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가 임영웅을 떠올릴 때마다 프랑스 연극계의 거장이며 「황소의 뿔」로 불리는 장 루이바로를 연상케 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것 같다.바로가 그의 부인이자 연극 동반자인 마들렌 르노와 그들의 소극장을 세워 레퍼토리 극단으로 활동한 것처럼 그도 그의 부인인 오징자 교수(서울여대 불문과)와 함께 소극장운동의 전범으로 존재하면서 오교수는 극단 산울림의 희곡번역과 기획등에 참여하고 있다.그리고 연극을 「인간에 의한 공간예술」로 승화시킨 점과 비록 작은 일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 섬세한 감지,한번 결심한 것은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황소고집등은 바로와 비슷한 노선을 그려나가고 있다.연극의 문제는 무엇보다 「얼음덩어리와도 같은 객석의 침묵」을 깨뜨리는 일이며 결국 얼음을 녹여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그의 연극을 보면 관객은 원로 여석기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인사가 아닌 진심의 경의」와 진정한 감동으로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그의 연극행로는 물흐르는듯 순조롭진 않았다. ○음악가부친 재능 이어 휘문고시절 동랑 유치진의 「사육신」연출을 계기로 연극연출을 지망하게 되었고 56년 극단 신협의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임희재작)로 연출데뷔,박진 이해랑에 이은 국립극단 연출을 거쳐 「정서적인 플롯과 사실적인 언어가 거부된」 오태석의 「환절기」를 「오서독스하면서도 감각적인 논리성」으로 형상화하여 연출가로서의 극명한 위치를 다졌다. 그의 예술적 재능은 음악가였던 부친 임태식씨와 음악계의 원로 지휘자인 숙부 임원식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할수 있다.13살에 부친을 잃은 창백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조모와 숙부의 따뜻한 보호아래 그는 음악 문학 연극에 접할수 있었고 동랑 유치진 이해랑과의 만남이 실질적인 연극의 촉진제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리 비극적인 작품이라도 그는 작품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별빛 희망과 인간미의 향기를 절차탁마로 가꾸어낸다.그런만큼 탐구정신과 선별의 명철로 작품분석에 침몰하여 자신이 완전히 이를 소화해야만 비로소 배역을 정하고 스태프를 구성한다. 연습때는 연기자의 동선 하나 조명의 밝기,음향의 정확성에 주도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로잰듯 확실하고 투명해야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완벽주의는 결벽과 맞먹게 마련이어서 그의 연출노트는 개칠한 흔적없이 추가사항들을 빈틈없이 정리해 놓고 있다.「고도」초연때의 하루 19시간의 연습 강행군으로 「사자」란 별명이 따르기도 했으나 그의 속마음은 만년소년에다 청담을 잃지 않는 순수성이 두드러진다.혹독한 연습과 훈련에 의해 수많은 배우들이 그의 연극을 거쳤고 관객이 그의 연극에 안심하는 것처럼 그들도 극단 산울림 출연을 자랑삼고 있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은 언제나 어두운 곡절과 고뇌가 감춰진다.연극이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이 될수 없다는 실망과회의에 빠져 그는 한때 연극을 포기하고 방송 프로듀서로 돌아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쩌면 「마지막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쥬라기의 사람들」(이강백작)로 82년 대한민국 연극제에 참가,연출상 수상기념으로 2개월간의 해외연수길에서 그는 연극은 세계 어디서나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귀국길에 오르자 남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소극장을 짓는다는 참으로 엉뚱한 결단을 내려 주위를 놀라게했다.집을 팔고 빚을 얻어 누구라도 감히 꿈꿀수 없는 소극장 신축을 서둘렀고 85년 3월 숱한 수난끝에 탄생된 것이 지금의 홍대앞 산울림소극장이다.1년여 이상 극장을 짓느라고 가뜩이나 과로로 균형을 잃은 몸이 더욱이나 기울어진 자세가 되자 그와 절친한 평론가 유민영은 「걸어다니는 피사의 사탑」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실제로 움직이는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여 묘한 「시니컬 포퍼먼스」가 느껴진다. ○연극상 수상만 43차례 이제 극단 창단 25주년과 소극장 개관 10주년을 맞은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피와 땀과 노력의 결정인그의 아지트에서 10년을 하루같이 앙코르 공연을 제외한 26편의 신작공연과 43차례의 연극상 수상,4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으나 남보기완 달리 극장운영에 따른 고충속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그때도 그를 격려하듯 동랑연극상이 주어졌고 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다시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운듯 「죽을때까지 연극을 하겠다」고 재삼재사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개관 10주년기념공연으로 지난 16일부터 윤석화의 일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작)를 필두로 극단 산울림의 신작 창작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이고 맨 마지막에 명편 「고도」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비튜겐슈타인의 말처럼 그는 수많은 남의 인생을 연출하고 있지만 자기자신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의 인생은 결국 연극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고도」란 무엇인가.그가 살고있는 현재이며 또는 불확실성의 미래이고 영원한 의문부호일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25년간 고도와의 외로운 투쟁끝에 「임영웅식 연극」을 성취한그로서는 아마도 고도가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연보 ▲1934년 서울출생 ▲1948년 휘문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졸업 ▲1956년 극단 신협 ‘세일즈맨의 죽음’(아더밀러)조연출겸 무대감독, ‘꽃잎을 먹고사는 기관차’(임희재작)데뷔연출 ▲1958년부터 세계일보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1963년 동아방송 드라마프로듀서 ▲1966년 예그린악단 뮤지컬연출 ‘살짜기 옵서예’등 ▲1968년 국립극단연출 ‘환절기’등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초연 연출 ▲1970년 극단 산울림 창단 ▲1973년 한국방송공사 입사 ▲1985년 산울림 소극장 신축개관 ▲1989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고도를 기다리며’초청참가 ▲1990년 더블린 연극페스티벌 참가 ▲1991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회장 ▲1992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및 특별상(69·72·86·95년),서울신문 문화대상및 연출상(70년),서울연극제 최우수연출상(82·85년),한국 연극영화 예술상 특별상(85년),대한민국연극제 대상(82·85년),김수근문화상(86년),동아연극상 연출상(86년),서울시 문화상(87년),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87년),이해랑연극상(92년),동랑연극상(94년)등 ‘전쟁이 끝났을 때’‘환상살인’‘인종자의 손’‘덤웨이터’‘위기의 여자’‘홍당무’‘코뿔소’‘꽃피는 체리‘‘블랙 코미디‘‘마리테레츠는 말이 없다’‘밤으로의 긴여로’‘여우와 포도’‘하늘만큼 먼나라’ 뮤지컬 ‘배비장전’‘꽃님이’‘대춘향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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