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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시대-인수위 어떻게] “인수위서 정치인 가급적 배제”

    [이명박 시대-인수위 어떻게] “인수위서 정치인 가급적 배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본격적인 인선에 착수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수위 구성을 통해 이 당선자의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과 차기 정부의 청사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가 5년간 행사할 크고 작은 인사 가운데 첫 단추를 꿰는 의미여서 더욱 그러하다. 이 당선자는 인수위 구성과 관련,20일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실무적 인수위원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서울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며 “(인수위는)실무자형으로 하겠고 정치인들은 4월 총선 때문에 가급적 배제하겠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새 정부의 이름은 ‘실용정부’로 정하기로 알려진 가운데 인수위부터 실용적인 실무형 인수위를 꾸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도 “전문성 있고 간소하고 실효적인 인수위 구성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앞으로의 정치 일정을 고려해 4월 총선 출마 예정자와 현역 국회의원은 원칙적으로 인수위에서 빠질 전망이다. 이 당선자측 한 인사는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은 인수위에서 빠진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인사라면 의원이라도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인수위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위원장 1명, 부위원장 1명과 인수위원 24명 이내로 구성된다. 우선 관심사는 이 당선자 국정운영 방향의 첫 가늠자가 될 인수위원장 인선에 있다. 이와 관련, 이 당선자의 한 측근은 “오늘 내일 중 인수위원장을 포함해 인수위 인선을 위한 본격적인 검토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정권교체의 상징성을 위해 인수위원장은 정치인이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아 압승을 이끌어 낸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5선 중진이자 이 당선자의 친구인 김덕룡 의원,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이 거론된다. 이에 대해 한 핵심 측근은 “인수위원장이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위원장 역시 일하는 사람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정치인 기용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 측근은 “인수위원장 임명과 인수위 구성은 다음주 초쯤이면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선대위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을 맡은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이 물망에 오른다. 하지만 ‘탈(脫)여의도’를 강조해 온 이 당선자가 의외의 외부 인사를 발탁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난 97년 국민의 정부 출범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인수위원장을 맡은 것과 2002년 참여정부에서 임채정 국회의장이 인수위원장을 맡은 ‘정치형 인수위’와는 확연히 다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인수위원으로는 이 당선자의 ‘정책 트리오’인 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과 류우익 국제정책연구원(GSI) 원장, 백용호 바른정책연구원(BPI) 원장과 이 당선자측의 정책기획팀장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 등 학계 인사 다수가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4월 총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서울시 출신 실무진과 안국포럼 실무자들도 상당수 인수위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수위 사무실이 들어설 장소로 ▲여의도 국회도서관 뒤 신축건물 ▲삼청동 금융연수원과 효자동의 별도 건물 ▲서울 상암동 신축 민간건물 등이 검토되고 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이명박 시대-막후 주역들] “연결 안된 곳 없다”…인맥 거미줄 네트워크

    ■ 정치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승리에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들은 몇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 시절 데려온 서울시청팀과 범서울시청팀, 안국포럼팀, 의원그룹 등으로 구별된다. 우선 당내 기반이 거의 없었던 이 당선자를 도와 경선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은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친형 이상득 현 국회부의장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영남 출신으로 당내 신망이 높은 박 위원장의 지지 선언으로 당내 세력화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친형인 이 부의장은 이 당선자를 대신해 당협위원장과 국회의원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과 함께 한국갤럽 전 회장인 최시중 상임고문을 꼽을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로서의 경력과 정치권의 폭넓은 인맥을 통해 이 당선자에게 수시로 자문을 해왔다. 최 상임고문은 이 당선자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힌다. 이들 외에 5선의 김덕룡 의원과 이재오 의원은 이 당선자와 함께 ‘6인 회의’를 이끌며 본선에서 최고 사령탑 역할을 해왔다. 김 의원은 경선 막판에 당선자 지지선언을 해 막판 세쏠림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이재오 의원은 당내 갈등으로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지만 대선 레이스 초반부터 이 당선자측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자임하며 전장의 장수로 나서 이 당선자가 당내 기반을 마련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이방호 의원은 ‘수협의장’이란 전국 단위의 선거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고, 권철현 의원은 단식 농성으로 옛 주군인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사퇴를 주장하며 지원 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당내 경선 때부터 이 후보를 위해 뛰었던 박형준 주호영 정종복 진수희 차명진 의원 등도 공이 컸다. 박 의원은 경선 때부터 대변인을 맡으며 기획·전략도 함께 맡으며 ‘1인 다역’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주 의원은 불교 인맥의 마당발로 이 당선자의 종교색을 희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정 의원은 사무 1부총장으로서 종합상황실장을 맡으며 핵심역할을 해왔다. 특히 ‘리베로’로 통한 정두언 의원은 최측근으로 불리며 기획·전략 등을 담당했고 경선 후 대선준비팀장을 맡으며 사실상 선대위를 꾸리기도 했다. 서울시청팀의 역할도 컸다. 이춘식, 정태근, 박영준, 조해진, 강승규, 윤상진씨 등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당선자와 동고동락해 왔다. 핵심 측근인 김백준 전 서울지하철공사 감사, 경선 캠프 살림살이를 맡았던 백성운 전 경기도 부지사, 외교통인 박대원 전 서울시 국제관계 대사, 탤런트 유인촌씨 등 범서울시청팀의 역할도 컸다.‘집사’로 통하는 김 전 감사는 이 당선자와 현대그룹시절부터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왔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에서 물러나 만든 안국포럼은 선대위에서도 핵심 실무진을 형성하며 이 당선자 곁에서 보좌했다. 오랜 당 사무처 경험에 이어 국회도서관장을 지낸 배용수 공보단장과 신재민 메시지 팀장, 권택기 스케줄팀장 등이 그들이다. 특히 권 팀장의 경우 젊은 전략가로서 이 당선자가 삼고초려해 영입한 인재다. 이밖에도 이 당선자가 국회의원 때부터 호흡을 맞춰 온 김희중 비서관과 이진영, 김윤경 비서, 그림자 수행을 맡아온 임재현씨도 이 당선자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 왔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학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정치·외교·안보·복지 등 전분야에 걸쳐 ‘실용주의’에 입각한 교수진의 도움을 받았다. 류우익 서울대 교수와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가 주축이다. 두 교수는 이 당선자의 싱크탱크를 이끈다. 류 교수는 국제정책연구원(GSI) 원장, 백 교수는 바른정책연구원(BPI) 원장이다. 차기 국정 운영의 포인트인 경제 분야는 곽승준 고려대 교수가 정책기획팀장을 맡아 활약했다. 강명헌 단국대 교수, 박진근 연세대 교수, 이만우 고려대 교수 등이 각각 기업지배·외환정책·재정분야 등을 담당하며 구체적인 내용을 다듬었다. 이 당선자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서는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 정동양 교원대 교수 등이 도왔다. 김우상 연세대 교수, 남주홍 경기대 교수가 ‘한·미동맹’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 남성욱 고려대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 등이 ‘비핵개방 3000’의 내용을 맡았다.‘신한반도 구상’에는 현인택 고려대 교수가 참여했다. 복지 정책의 틀은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잡았다. 김성이 복지분야 공동선대위원장은 사회복지사들과 이 당선자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대학입시 3단계 자율화’,‘고교다양화300’ 등으로 관심을 끌었던 교육 공약은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가 이주호 의원과 함께 보조를 맞춰 입안했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관계 이명박 당선자의 관가 인맥은 외교안보 부처와 경제부처, 법조계, 서울시 출신 등으로 총망라돼 있다. 경제부처 인맥으로 분류되는 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은 이 당선자의 관가 인맥의 대표주자로 볼 수 있다. 이 당선자와 소망교회를 같이 다닌 인연으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에 중용되면서 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이 당선자의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로, 한나라당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일찌감치 이 당선자를 도왔다. 재무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사공일 특위 고문과 이용만 전 재무장관, 강만수 전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청장도 전공을 살려 각종 경제 관련 자문을 했다. 유종하 전 외교부장관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외교·안보분야를 총괄하는 등 1인 2역을 맡아 맹활약을 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이종구 전 국방장관과 선준영 전 외교부 차관이 도왔다. 법조계에서는 이 당선자의 후원회장을 지낸 송정호 전 법무장관을 필두로 김상희 전 법무차관, 이종찬 전 서울 고검장이 있다. 이들은 검찰의 BBK 수사가 진행될 때 검찰 수사 기류를 읽고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등 ‘방패’역할을 맡았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쌓아올린 서울시 인맥은 관가 인맥의 핵심축을 이룬다. 원세훈(행시 14회) 전 행정1부시장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원 전 부시장은 인사·재정 등을 총괄하며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이는 서울시 정무 부시장 출신인 정두언 의원이 한나라당 등 정치권과의 조율에 치중한 점과 대비된다. 이 당선자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는 행정2부시장을 지낸 장석효 특위공동위원장 주도로 세부계획이 마련됐다. 장 위원장은 부시장 재직 당시 청계천 복원사업을 진두 지휘했다. 제타룡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이 당선자와 함께 버스중앙차로제 등 대중교통 정책을 입안한 인물로, 최근까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지내다 이 당선자의 곁을 다시 찾았다. 김경운·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재계 재계·금융계 출신으로는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과 지승림 알티캐스트 사장이 일찌감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선거진영에서 함께 뛰었다. 황 전 회장은 경제살리기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지 사장은 미디어홍보분과 간사다. 공교롭게 두사람 모두 삼성 출신이다. 황 전 회장은 삼성증권 사장, 지 사장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기획홍보팀장을 각각 지냈다. 황 전 회장은 우리금융 재직 시절, 자산을 72조원이나 늘렸다. 외환은행(73조원)과 맞먹는 규모다. 별명이 ‘검투사’이다.‘토종은행론’을 주창해 금·산분리 정책에 변화가 올지 주목된다. 지 사장은 기획통으로 꼽힌다. 선거 막판에 이 당선자를 지지하고 나선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눈에 띈다. 진 전 장관은 삼성전자 사장을 지냈다.SK텔레콤 상무 출신의 서종렬 비즈탤런트 대표(경제살리기특위 전문위원)도 당선자의 선거캠프 동지다. 고려대 교우회장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과 이내흔 현대통신 회장,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노치용 현대증권 부사장 등도 이 당선자와 가깝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풀리지 않는 쟁점들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풀리지 않는 쟁점들

    한국 경제와 사회를 뿌리째 흔든 외환위기는 만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만약’이라는 전제를 달고 숱한 가설과 회고록들이 난무한다. 정확한 원인과 실체적 진실 규명 노력은 간 데 없고 네 탓 공방만 남아 있다. 당시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풀리지 않고 있는 쟁점들을 짚어 본다. 인터뷰에 응한 관계자들 대부분은 익명을 요구했다. ●불안한 조짐, 잘못된 상황인식 경상수지 적자가 1994년 45억달러에서 96년 237억달러로 확대되자 당시 모 연구기관장은 청와대를 찾았다. 환율인상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를 건의했다. 하지만 역효과만 냈다. 당시 보고서에 관여한 연구원은 “청와대는 환율을 올리기보다 환율을 내려서라도 기업을 정신차리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면박을 줬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환율 890원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물가관리에 치중하고 있었다. 97년 9월 말 재정경제원 모 과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장관실 문을 두드렸다.“큰일 났습니다. 한국물에 대한 해외에서의 인식이 최악입니다. 이대로 가면 위험합니다.”국제시장 점검차 뉴욕을 다녀온 직후였다. 이때까지도 설마하는 분위기에 편승, 위기를 덮으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9월 홍콩에서 열린 투자로드쇼에서 “한국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던 한 연구기관장은 나중에 잘못된 홍보였다고 인정했다. 정부의 요청에 따라 나선 게 대외신인도를 악화시켰다고 전했다. ●불신당한 재정경제원, 금융개혁 논의에서 배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어떻게 재경원이 금융개혁을 추진하나.”97년 1월 청와대는 민간인 등으로 금융개혁위원회를 구성, 금융감독 개편과 한국은행법 개정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재경원은 발표 하루전까지 낌새도 못차렸다. 한 관계자는 “이석채 경제수석이 재무부가 장악한 재경원에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낸 결과”라고 전했다. 금개위의 과제 100개 가운데 재경원이 받아들인 부분도 15개 남짓뿐이었다. 그것도 김인호 경제수석으로 교체된 뒤의 일이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처음부터 재경원과 협의했다면 금융개혁을 놓고 갈등을 빚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원 역시 중앙은행 독립을 놓고 한은과 정면충돌했다. 강만수 재경원 차관은 회고록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재경원이 자금경색을 풀려고 국고 여유자금 1조원을 방출하자 한은은 통화안정증권으로 바로 흡수한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정책이 잘될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 ●위기 부채질 부도유예협약, 오락가락 환율정책 기아자동차가 97년 10월22일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국내금융기관의 외환차입이 어려워 외환시장은 요동쳤고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당시 사태해결에 나섰던 관계자는 “7월 기아차에 적용한 부도유예협약은 나중에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들고 나와 성공한 ‘워크아웃’ 개념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실패한 것은 ‘국민의 기업’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기아차가 회장직 사퇴와 구조조정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앞서 제일은행과 국민은행을 합병시키려는 묘안도 짜냈지만 해법은 아니었다. 정부의 외환시장 대응책도 오락가락했다. 재경원은 10월28일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주는 것으로 실무진들은 모두 반대했다. 당시 관계자는 “강경식 부총리의 지시가 너무나 강경해서 믿겨지지가 않았다.”고 했다. 한은 일각에서는 금융개혁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정치권 압박수단으로 외환시장 혼란을 이용하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왔다.3일 만에 당국이 시장에 개입했으나 원·달러 환율은 이미 1000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강경식 부총리의 펀더멘털과 경질 배경 “펀더멘털에는 문제가 없다.”는 강 부총리의 주장에 동정론보다 비판론이 앞선다. 동정론의 근간은 “경제 수장이 펀더멘털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관계자들은 “당시 상황은 미시적인 숫자게임이었다. 외환보유고와 환율의 전쟁이다. 당장 거시적으로 풀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강 부총리는 거시적 해법에만 집착했다.”고 말했다.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면 대외신인도가 나아질 것이라는 발상도 불난 집에 지붕을 얹자는 논리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강 부총리의 경질은 예상됐지만 시기와 배경은 의문이다. 윤진식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11월 김영삼 대통령에게 위기상황을 직보한 게 발단이 됐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인호 경제수석은 지금까지로 윤 비서관에게 섭섭함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수석이 왜 상황보고를 안했겠느냐는 것이다. 옛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와 정보기관이 당시 대선을 앞두고 부총리의 전국 순회강연에 아주 불편해했다. 만류해 달라고 직접 전화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강 부총리가 사석에서 “공무원 출신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 강 부총리는 ‘녹색당 총재’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임창열 부총리의 거짓말? 강경식 부총리는 11월19일 “IMF로 갈 수밖에 없다.”고 청와대에 보고한 뒤 바로 경질됐다. 문제는 신임 임창열 부총리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IMF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갈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한 점이다. 강만수 차관은 “이런 발언 때문에 IMF와 미국으로부터 불신을 얻었다.”고 호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서울 강남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 모였던 재경원과 한은 관계자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부총리도 별다른 해명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임 부총리 역시 IMF행을 알았다. 실무진이 모두 보고했다. 다만 취임 첫날 국치로 기록될 IMF행을 자신이 발표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문제는 인수인계나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말한 점이다. 이후 ‘거짓말 논란’으로 번지면서 번복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원격 조종에 무릎꿇은 한국과 IMF 임 부총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 재무부 간부들이 97년 11월 말 IMF와의 협상에 관여했다.”고 말했다. 협상을 맡았던 한 관계자는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부 차관이 당사자”라고 말했다. 그는 “IMF 협상단이 서울에서 립튼 차관을 만난 뒤부터 잘 진행되던 협상이 틀어졌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들의 협정준수 각서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협상 실무진들은 IMF에 ‘사기극’이라고까지 항의했으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임 부총리가 취임 이튿날 일본을 방문, 대장성 장관에게 ‘브리지 론’을 요청하고 있을 때에도 립튼 차관이 도쿄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희생양 찾기와 계백장군 외환위기 특감의 희생양이 돼 공직에서 물러난 한 관계자는 “정책을 사후적인 관점에서 보면 똑같은 사람이 영웅도, 죄인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감사원 관계자는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여론에 밀린 희생양 찾기였음을 시인한 셈이다. 당시 책임공방의 핵심에 있던 재경원 관계자는 ‘계백장군설’을 피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에 진 계백장군을 백제 패망의 주범으로 몰아붙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특감 관계자도 “최고 정책결정권자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직무유기를 물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우물안 개구리 깨달은 뉴욕외채협상 외환위기 회고록을 준비 중인 당시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98년 1월 뉴욕에서 진행된 외채연장 협상에서 채권단을 이렇게 표현했다.“먹잇감을 앞둔 하이에나였다.”협상 전문가나 국제금융전문가가 없던 당시 우리 협상팀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 관계자는 “외채연장이 시급한 상황에서 금리를 내려달라는 말 이외에 만기 구조나 상환 기법 등을 따질 계제가 못 됐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우리가 칼자루를 쥐고 있었는데 협상에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한 관계자는 “한국이 IMF행을 결정했는데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미 국방부와 국무부가 ‘한반도를 셧 다운시키려느냐.’고 재무부를 몰아붙이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국이 외채연장협상에 나섰지만 투자은행들의 전리품 챙기기는 방치했다는 주장이다. ●유동성 위기냐 구조적 한계냐 1998년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뿔(감기)에 걸리는 건 순식간이지만 치료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IMF체제의 후유증이 오래 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외환부족은 경제운영의 결과일 뿐 원인은 구조적 결함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처럼 외부에서 온 게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 반면 외환위기를 수습했던 ‘국민의 정부’ 관계자들은 구조적 문제에 공감하면서도 유동성 관리를 제대로 못한 문민정부 책임을 들춰냈다. 전문가들은 “이벤트성 회고록이나 과거를 들추는 검찰이나 감사원 보고서보다 위기의 본질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체계적인 지침서가 나올 때”라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
  •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당시 경제관료들 지금은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당시 경제관료들 지금은

    10년 전 외환위기에 맞섰던 경제관료들 가운데 일부는 ‘환란의 주범’으로 몰려 불명예 퇴진했으나 상당수는 공기업과 재계·관계·정계 등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Mr. 펀더멘털’로 불렸던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2000년부터 동부그룹 금융보험부문 회장을 거쳐 지금은 그룹 상임고문직을 맡고 있다. 앞서 2002년부터는 세계적인 청소년교육전문비영리기관 ‘JA코리아’의 이사장직도 수행 중이다.1991년 자신이 만든 민간연구소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의 이사장도 17년째 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에도 불구, 취임 첫날 ‘IMF에 안 간다.’는 발언을 한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성체줄기세포 신약개발 전문기업인 알앤엘바이오의 회장으로 있다.‘환란 소방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그는 정치권에 입문,1998년 경기도 지사에 당선됐다. 강 부총리와 함께 경질됐던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김인호경제연구소’의 대표로 있다. 지난 7월까지는 중소기업연구원장직을 수행했다. 97년 IMF 협상과 98년 1월 뉴욕 외채협상을 지휘했던 정덕구 재경원 차관보는 산업자원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동북아연구재단(NEAR) 이사장으로 있다. 베이징인민대 초빙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기환 당시 대외경제협력 특사는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이자 골드만삭스 국제고문직을 맡고 있다. 원봉희 재경원 금융총괄심의관은 법무법인 김&장에서 국제변호사로, 김우석 국제금융국장은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사장, 김규복 금융정책과장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각각 있다. 이명박 캠프에서 ‘경제브레인’ 역할을 하는 인사도 적지 않다. 강만수 재경원 차관은 한나라당 경선 시절부터 이 후보의 경제공약을 책임졌다. 선거대책위원회 일류국가비전위 정책조정실장을 맡고 있으며 이 후보의 서울시장 시절에는 시정개발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윤진식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도 이 후보 캠프에 둥지를 틀었다. 이 후보와는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다. 이종구 재경원 은행과장은 이 후보의 정책특보로 있다. 김진표 은행총괄심의관은 정치에 입문, 교육부총리 등을 지내고 지금은 대통합민주신당 정책위의장으로 있다. 고위 경제관료나 공기업 임원으로 순항한 경우도 많다. 윤증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냈다. 김석동 외화자금과장은 현재 재경부 1차관에, 임영록 자금시장과장은 재경부 2차관을 맡고 있다. 유재한 국민저축과장은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거쳐 주택금융공사 사장으로 옮겼다. 허용석 재경부 차관보와 권태균 경제자유구역 단장은 당시 국제기구팀장과 외채대책팀을 이끌었다. 민간으로 간 사례도 많다. 변양호 재경원 정책조정과장은 2005년 토종자본인 ‘보고펀드’를 설립, 대표를 맡고 있다. 진영욱 국제금융과장은 한화증권 사장을 거쳐 한화화재 부회장으로 있다. 이종갑 자금시장과장은 삼화왕관 사장, 곽상룡 외화자금과 주무서기관은 삼성생명 전무로 변신했다. 외환위기를 경고했던 최공필 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정원에 몸담고 있다. 특별취재팀
  • 李후보 대선공약 가다듬는다

    李후보 대선공약 가다듬는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대선 후보의 공약 가다듬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나라당은 ‘알찬공약, 실천하는 이명박’이라는 슬로건 아래 13일부터 21일까지 모두 18차례에 걸쳐 이 후보의 대선공약을 구체화하는 세미나를 갖는다. 토론회 형식으로 열리는 세미나는 ‘일류국가 비전위원회’(이하 위원회, 위원장·김형오)를 중심으로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 당 정책위의 역량을 총 결집, 대선에 선보일 정책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위원회는 당내 경선과정에서 발표했던 이 후보의 정책을 재점검하고, 미흡한 분야에 대한 새로운 공약개발과 범여권의 정책과 비교 완성도 높은 공약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위원회는 이 후보의 공약뿐 아니라 경선라이벌인 박근혜 전 대표와 홍준표, 원희룡 의원의 공약도 집중 검토해 반영한다. 이는 이 후보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경선과정 당시 이 후보가 내세운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한 수정·보완 작업도 이뤄진다. 위원회 총간사인 이종구 의원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는 폐기나 대폭 수정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가다듬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 밖에 경제와 기업환경, 주택·부동산·SOC, 교육, 통일·외교, 국방안보, 보건복지, 노동, 문화예술, 과학기술, 재정운용, 농업·산업, 환경, 여성가족, 지역 등 사회 전 분야의 대선공약을 집중 검토한다. 위원회는 미래비전과 경제분야를 담당하는 제1공약위원회(위원장 강만수), 교육·환경·복지 등을 담당하는 제2공약위원회(위원장 전재희), 외교·안보·국방을 담당하는 제3공약위원회(위원장 김학송)로 세분화된다. 각 위원회별로 당 소속 상임위 위원들을 배치해 전문가들과 함께 지혜를 짜낸다. 한나라당은 우선 추석연휴 전인 21일까지 1단계 대선 공약안을 마련하고,10월10일에는 비전선포대회를 열어 공식적인 당 공약집을 내놓기로 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한나라 대선후보 이명박] 정책브레인은 누구

    [한나라 대선후보 이명박] 정책브레인은 누구

    이명박 후보는 경선 초반부터 ‘정치’보다는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누누이 천명해 온 만큼 정책브레인들도 풍부하다. 이 후보측 정책라인의 영향력이 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책브레인들의 특징은 서울시장 시절 인연을 맺은 각계 전문가그룹이 중심이라는 점이다. 정책라인의 핵심은 국제정책연구원(GSI)과 바른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단 등이다.GSI는 류우익 서울대 교수, 바른정책연구원은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가 각각 원장을 맡아 정책·공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정책자문위원단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후보와 호흡을 맞췄던 강만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이 이끌고 있다. 재경부 차관 출신인 강 원장은 이 후보의 경제정책 전반을 구체적으로 다듬어 주는 역할을 했다. GSI는 이 전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자문역할을 했던 동아시아연구원이 확대된 정책참모그룹이다. 이곳에는 원장인 류 교수를 포함해 정책실장격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경제학)와 조원철(연세대 토목환경공학부)·이왕재(서울대 의과대)·남성욱(고려대 북한학과)·김휴종(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장)·임채성(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등 6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특히 지리학 전공인 류 원장은 이 후보의 대선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구체화한 주인공으로 “물길이 통하면 인심이 통한다.”는 메시지를 만들어낸 것으로 전해진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양캠프 공약수립 어떻게 하나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양캠프 공약수립 어떻게 하나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의 공약이 차이를 보이는 만큼 공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메커니즘도 다르다. 공약을 만드는 스타일도 판이하다. ●이 캠프 ‘방사형(放射形)’, 박 캠프 ‘직선형’ 캠프의 구성부터 다르다. 이 캠프의 자문그룹이 후보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져 있다면, 박 캠프는 후보를 정점으로 경로가 단일화된 구조다. 이는 공약 작성 스타일의 차이로 이어진다. 이 후보의 공약이 ‘대운하’,‘747’ 등 프로젝트 식이라면, 박 후보의 공약은 ‘줄·푸·세’를 줄기로 잔가지를 뻗듯이 세분화됐다. 두 후보 캠프는 모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에 정책팀을 본격 가동했다. 이 후보의 경우 국제정책연구원(GSI)과 바른정책연구원(BPI)이 양대 외곽 싱크탱크다. 이와 별도로 캠프 내 정책팀은 정책기획위원회와 정책자문위원회로 나뉜다. 윤건영 의원과 강만수 전 재정경제원 차관이 각각의 중심에 있다. 강 전 차관은 ‘747’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다.‘한반도 대운하’는 장석효 전 서울시 부시장이,‘국제과학기업도시’는 민동필 서울대 교수가 주도했다. 이 캠프의 장수만 정책기획단장은 13일 “초기에는 수많은 정책자문단이 있었고 심지어 후보와 ‘직거래’하려던 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일원화됐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 유지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비하면 박 후보 캠프의 자문그룹은 일찌감치 정리된 편이다. 올해 초 만들어진 정책자문회의는 개별 자문그룹별 견해차를 정리하기 위해 각 그룹의 대표가 모여 만들었다. 초기에는 경제 분야에 집중했으나 지금은 모든 분야의 정책을 만들어낸다. 자문회의 내 핵심 멤버들로 ‘정책기획총괄팀’이 구성돼 있고, 유승민·이혜훈 의원, 서강대 김광두 교수, 연세대 김영세 교수, 성균관대 안종범 교수, 이재만 보좌관이 참여한다. 캠프 안에선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을 맡고 있는 유승민 의원이, 캠프 밖에선 ‘서강학파’의 좌장격인 남덕우 전 총리와 김광두 교수가 정책을 조율하는 셈이다. ●이 후보 ‘공격형´, 박 후보 ‘신중형´ 후보의 공약에는 경험과 철학이 깔려 있다. 이 후보는 가난했던 유년기의 경험이 공약 수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캠프의 김영우 정책기획위 정책홍보단장은 “신혼부부에게 주택을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후보가 신혼시절 잦은 이사로 고생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후보는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경험이 ‘신중함’과 ‘꼼꼼함’으로 나타난다. 박 캠프측 김광두 교수는 “후보는 신뢰성을 중시해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은 마다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두 후보는 캠프의 정책팀과 토론할 때도 다른 스타일을 보인다고 한다. 이 후보는 공격적인 질문으로 토론을 주도한다. 캠프 관계자는 “후보가 신랄하게 비판할수록 관심있는 아이디어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박 후보는 주로 듣는 스타일이고, 꼼꼼하게 메모하다 부드럽게 의견을 개진한다. 박 캠프 관계자는 “언론에서 ‘수첩공주’라고들 하는데,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 “시정연 보고, 친 李단체에 유출”

    “시정연 보고, 친 李단체에 유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의 경부운하 관련 보고서가 ‘한반도 대운하연구회’에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 대운하연구회는 친(親) 이명박 성향의 경부운하 연구단체로 알려진 곳이다. ‘한반도 대운하’ 타당성 검토 연구에 대한 선거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19일 “강만수(62) 시정연 전 원장을 18일 소환 조사한 결과, 강씨가 지난해 8월 시정연의 경부운하 타당성 연구보고서를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에 건네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2005년 8월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시정연 원장을 지낸 강씨는 2005년 12월 시정연 연구원 김모 부장을 통해 서울경제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의뢰했고, 서울경제연구원으로부터 13권의 ‘수도권 물류개선을 위한 경부운하 타당성 검토 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를 지난해 8월 건네받아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에 건넸다. 강씨는 경찰에서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가 심포지엄을 한다고 해 보고서를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는 지난해 9월 장석효 전 서울시 행정부시장과 연세대 조원철 교수, 세종대 이상호·배기형 교수 등 대운하에 관심있는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연구단체다. 장 전 부시장이 이 연구회 추진단장을 맡고 있으며, 이 시장은 지난해 11월 이 단체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 장 전 부시장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재직 시절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 행정부시장을 차례로 역임했고, 조 교수 등 연구회에서 활동 중인 교수들의 상당수가 이 전 시장의 정책자문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한반도 대운하연구회 실무자를 금명간 소환, 단체 성격과 목적 또는 시정연 보고서를 어떤 용도로 활용했는지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공직선거법상 시정연 연구원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선거에 관여하더라도 그 자체로 크게 문제 삼기 어렵다.”면서 “따라서 서울시 측에서 지시를 했거나 서울시 공무원이 공모했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시정연 당연직 이사였던 박모 국장 등 전·현직 서울시 공무원 4명은 지난주 경찰 조사에서 “정기 이사회에 참석해 예산 편성과 원장 선임 등 일반 업무계획을 심의했으나 경부운하 관련 연구에 대해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水公본부장이 ‘운하 보고서’ 유출

    언론에 유포된 37쪽짜리 ‘경부운하 재검토 결과 보고서’는 한국수자원공사의 고위 간부가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유출 경위와 목적 등 석연찮은 점이 많아 의문을 낳고 있다. 경부운하 보고서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과는 24일 수자원공사 김상우(55) 기술본부장을 소환 조사해 문건 유출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지난 22일 김 본부장의 사무실과 주거지를 추가 압수수색해 언론사에 유포된 것과 똑같은 문건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경부운하 관련 정부의 태스크포스(TF)의 핵심인 수자원공사 조사기획팀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김 본부장은 지난 5월28일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함께 다니는 결혼정보업체 ‘퍼플스’ 김현중(40) 대표에게 문건을 직접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김 본부장은 대학원생들과의 술자리에서 대운하 얘기를 나누던 중 김 대표가 “평소 운하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료를 입수하고 싶다.”고 부탁해 건네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대표는 6월 초 37쪽 문건을 첫 보도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자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문건을 전달했다. 김 대표는 경찰에서 “기자와는 평소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진술했다.‘퍼플스’는 2001년 설립,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결혼정보업체로 알려졌다. 경찰은 문건을 유출한 김 본부장에게는 수자원공사법의 직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문건을 기자에게 건넨 김 대표는 직무상비밀누설 방조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으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적용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25일 김 본부장 등을 다시 불러 정치적 의도에서 문건을 유출했는지, 대가가 있었는지 집중 추궁하기로 했다. 해당 기자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연구와 관련한 선거법 위반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이번 주에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고위 간부와 연구용역을 수행한 세종대 이모(37) 교수 등 관련자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고 24일 밝혔다. 이 전 시장이 시정연에 직접 연구를 지시했는지와 연구용역 의뢰 시점이 선거법 위반 여부를 가늠할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측의 박형준 대변인은 논평에서 “경찰 수사가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는 각본 수사로 전락하고 있다. 믿을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지난해 3월 시정연 원장으로 경부운하 문제를 검토했던 강만수 이명박 캠프 경선대책위 정책자문위원(전 재경부 차관)은 이날 서울신문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전 시장의 경부운하 문제 검토 지시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원 김병철 서울 유영규 임일영기자 kbchul@seoul.co.kr
  • 한나라 주자들 오늘 광주서 정책토론

    한나라 주자들 오늘 광주서 정책토론

    ‘오늘 밤 누가 웃을까.’ 한나라당 대선주자간 첫 정책토론회의 날이 밝았다. 두 유력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시작이 반’이라며 광주 대회전의 전의(戰意)를 다지고 있다. 토론회를 하루 앞둔 28일은 두 사람 모두 ‘열공(열심히 공부하자)모드’로 보냈다. 외부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고 자택과 캠프, 스튜디오 등지를 오가며 막판 정책 점검과 토론회 예행연습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양측 캠프도 정책자문단을 중심으로 마라톤 전략회의를 갖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캠프 관계자들은 토론회 전략을 묻는 기자들에게 “전략을 미리 말하면 그게 전략이냐.”고 반문하는 등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오후 혜화동 성당을 찾아 김수환 추기경을 잠시 예방한 것 말고는 특별한 대외 일정 없이 ‘마무리 학습’에 집중했다. 자택과 견지동 안국포럼을 오가며 각종 경제공약을 점검하고, 토론회 구상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모처에서 거시경제정책 공약인 ‘대한민국 7·4·7 전략’을 총괄 기획한 강만수 전 재정경제원 차관,‘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 캠프 정책본부장으로 내정된 윤건영 의원 등 핵심 정책자문단을 소집, 토론회 리허설까지 가졌다는 후문이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시장에게 가급적 많은 시간을 주기 위해 일정도 거의 잡지 않았다.”며 “토론에 강한 이 전 시장의 면모를 보여 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 전 대표도 이날 지지를 표명한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등의 기자회견장에 잠시 얼굴을 비친 뒤 삼성동 자택에서 막바지 토론회 준비에 집중했다. 캠프 관계자는 “토론회 준비는 지난 주에 이미 끝난 상태”라며 “구체적 경제 수치를 재확인하고, 예상 질의·응답지를 검토하는 한편 6분간 주어지는 기조발제문의 문구를 다듬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밤샘 작업을 하며 토론회 자료를 정리한 캠프 관계자들도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은 토론회 전략에 대해 “이 전 시장이 회사 경영을 했던 경제 전문가라면, 박 전 대표는 영부인 대리와 야당 대표를 해본 국가경영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시킬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깎아내리지 않고 차분한 화법을 구사하는 박 전 대표가, 시간이 정해진 토론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홍희경 김지훈기자 saloo@seoul.co.kr ■ 경제정책 최대쟁점은 ‘대운하’ 이날 경제정책토론회에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가 최대 쟁점이 될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표는 물론이고 홍준표·원희룡·고진화 의원 등 나머지 주자들은 경부운하와 호남운하를 건설하는 ‘한반도 대운하’의 문제점을 집중 제기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시장측도 환영한다는 자세여서 치열한 ‘창과 방패’의 싸움이 예상된다. 이 전 시장측은 최근 정책자문단을 중심으로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하며 경쟁 후보들의 공세를 무력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예행연습까지 마쳤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표측의 최경환 의원은 “만약 추진이 된다면 단군 이래 최대 역사가 될 텐데, 그런 국책사업에 무턱대고 동의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큰 틀에서 문제가 많은 사업인데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홍 의원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날 출마 기자회견에 이어 이날도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환경 대재앙을 가져올 한반도 대운하는 한국에서는 곤란하다.”고 맹공을 펼쳤다. 원 의원은 “경부 운하는 국론 분열, 환경 파괴, 부동산 투기 등 파생적인 문제점들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곤란하다.”며 “운하 자체의 문제보다는 파생 문제를 중심으로 따질 것은 따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고진화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국토를 파헤치고 생명을 파괴하는 지난 세대의 개발 패러다임 대신 다음 세대까지 현재의 번영을 물려줄 수 있는 생명의 경제를 추진해야 한다.”며 일전을 예고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고건측 “박근혜 지지” 고건은 “NO” 고건 전 총리까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세불리기를 가속화하고 있다.28일에는 고 전 총리의 일부 지지세력들이 박 전 대표 지지를 선언했다. 고 전 총리가 직접 ‘응원 깃발’을 들지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고 전 총리측의 답은 아직은 ‘노(NO)’다. 고 전 총리의 최대 지지세력이던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의 이용휘 회장 등 집행부와 팬클럽 ‘우민회’ 간부 127명은 이날 서울 여의도 박 전 대표 사무실에서 지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동서 단절을 아우를 사람은 박 전 대표밖에 없다.”면서 “고 전 총리가 박 전 대표의 손을 잡아 줘야 국민통합의 대역사가 가능하다.”며 고 전 총리를 향해서도 지지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 한미준 관계자는 “고 전 총리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정치적 확대를 우려해 말을 아끼고 있다.”면서 “평소 화합을 강조했던 분이니 박 전 대표를 지지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은 “전혀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측근은 “둘 다 고 전 총리 불출마 선언 이후 거의 와해된 조직으로 일관된 정체성을 갖고 움직인다기보다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싶은 소수의 개별 행동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는 고 전 총리와 전혀 관계 없다.”고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李·朴 “경선승복 서약서 쓰겠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28일 경선 결과에 대한 승복 서약을 요구한 당 경선관리위원회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 전 시장측은 “경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법적·정치적으로 너무나 당연하며 이 전 시장은 결과에 승복한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다.”면서 “별도의 승복 서약서에 서명하라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측도 서약서를 쓰겠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경선에 승복한다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은 말”이라면서 “공식 제안은 없었지만 경선관리위나 검증위에서 요구하면 면담도 하겠다.”고 덧붙였다. 양측 캠프의 반응은 이날 당 경선관리위의 박관용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선 주자들의 경선 결과 승복과 서약서 작성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당초 경선관리위 산하에 두기로 했던 ‘네거티브방지위원회’는 사안의 성격상 검증위원회 밑에 설치하고, 여론조사전문가위원회는 경선관리위 산하에 두는 쪽으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선관리위는 이날 후보등록을 다음달 11일부터 3일간 중앙당에서 받기로 확정했다. 후보기탁금은 지난 2002년 대선 때보다 5000만원 많은 2억 5000만원으로 정하고, 경선 관련 업무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기로 결정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대선주자 베이스캠프 대해부] (1) 이명박 前서울시장

    [대선주자 베이스캠프 대해부] (1) 이명박 前서울시장

    ‘인사는 만사다.’ 역대 정부의 국정운영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명제는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서울신문은 올 대선 이후 내년에 출범할 새 정부의 인재풀이 될 대선주자들의 베이스캠프를 시리즈로 집중 해부한다. 현재 주요 언론에서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군 중 서울신문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 신년 국민여론조사에서 0.6% 이상의 지지도를 기록한 주자들의 캠프가 대상이다. 즉,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고건 전 국무총리,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등 8명 가운데 실제로 사무실과 조직을 가동 중인 선거캠프부터 차례로 연재한다. 이명박(MB) 전 서울시장의 선거캠프는 원내·외에 걸쳐 방대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그동안 중립지대에 있던 의원들의 상당수가 굴비 엮이듯 무더기로 ‘MB 캠프’로 가세하고 있는 인상이다. 원내에서는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재오 최고위원이 지휘부 역할을 맡고 있다. 정두언 의원이 기획·정무·언론 등을 아우르는 ‘리베로’ 역할을 한다. 또 이윤성 의원을 중심으로 진수희 의원과 ‘손학규 맨’으로 알려졌던 차명진 의원 등이 언론·홍보 라인을 맡고, 안경률·이병석·이군현·정종복·권경석 의원 등이 조직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절대 중립’을 표방했던 소장파 의원의 상당수도 기수를 돌려 이명박 캠프에 속속 합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무캠프는 ‘안국포럼’이 앞에서 끌고, 국제정책연구원(GSI)과 바른정책연구원, 서울시장 시절 정책자문위원단 등이 뒤에서 밀고 있다. 안국팀은 정무·기획·일정·조직·언론·홍보 등을 총괄하며,GSI와 바른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단 등은 정책·공약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안국팀의 조직라인은 이춘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좌장격으로 총괄하고, 박영준 전 서울시 정무보좌역과 당 사무처 출신인 윤상진씨 등이 돕고 있다. 이 전 부시장의 명함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 ‘AF002’라는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사실상 ‘넘버2’라는 얘기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최측근에서 이 전 시장을 보좌해왔다. 안국팀에서도 마찬가지다. 안국팀 보좌진의 명함 뒤편에 새겨졌던 일련번호는 정치적 서열로 인식될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명함에서 사라졌다. 외교 실무를 총괄하는 인물은 현직 외교부 1급인 박대원(59) 서울시 국제관계자문대사다. 주 알제리 대사를 지낸 뒤 2005년 서울시 자문대사로 옮기면서 MB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11월 아베 총리와의 회동을 주선하는 등 외교통으로 뛰고 있다. 정무·기획라인의 핵심은 16대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모임이었던 미래연대 사무국장을 지낸 권택기 정무팀장이다.MB가 삼고초려 끝에 불러들인 그는 박근혜 전 대표 캠프로부터도 지속적인 러브콜을 받았을 만큼 ‘전략 브레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언론·홍보라인은 한국일보 정치부장을 거쳐 조선일보 출판국 부국장을 지낸 신재민 특보와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서울시 공보관을 역임한 강승규 특보가 홍보 기획과 정책을 담당하고, 당 부대변인을 거쳐 전 서울시 정무보좌관을 지낸 조해진 특보와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 출신인 송태영 특보가 일선에서 뛰고 있다. 인터넷과 팬클럽을 총괄하는 핵심인사는 정태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장(82학번)을 지낸 운동권 출신으로 40대 초반에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될 만큼 이 전 시장에게는 강한 신뢰를 얻고 있다. ‘안국팀’과는 별도로 이 전 시장 호인 ‘일송’에서 ‘송’자를 따서 이름 지은 ‘송법회’와 법률자문단도 법률과 관련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송법회는 변호사 조직으로 선거법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자문을 맡고 있으며, 법률자문단은 각종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정책라인의 특징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정치’보다는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누누이 천명해왔다.‘MB 캠프’에서 정책라인의 영향력이 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정책라인의 특징은 서울시장 시절 인연을 맺었던 각계 전문가그룹이 중심이라는 점이다. 정책라인의 핵심은 국제정책연구원(GSI)과 바른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단 등이다.GSI는 류우익 서울대 교수, 바른정책연구원은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가 각각 원장을 맡아 정책·공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정책자문위원단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전 시장과 호흡을 맞췄던 강만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이 이끌고 있다. 재경부 차관 출신인 강 원장은 이 전 시장의 경제정책 전반을 구체적으로 다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GSI는 이 전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자문역할을 했던 동아시아연구원이 확대된 정책참모그룹이다. 이곳에는 원장인 류 교수를 포함해 정책실장격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와 조원철(연세대 토목환경공학부)·이왕재(서울대 의과대)·남성욱(고려대 북한학과)·김휴종(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장)·임채성(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등 6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특히 지리학 전공인 류 원장은 이 전 시장의 대선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구체화한 주인공으로 “물길이 통하면 인심이 통한다.”는 메시지를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정책연구원 역시 방대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참모그룹이다. 원장인 백 교수는 2001년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의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을 맡았을 때부터 위원으로 함께 일했다. 친 이명박 성향의 교수단을 이끌며 정책개발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단국대 경상대학장인 강명헌 교수 등을 포함한 각 분야 전문가 20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나는 이래서 이명박을 민다 우리나라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는 누가 뭐래도 경제다. 둘째는 엉터리 개혁과정에서 나타난 국정운영 미숙이다. 셋째는 친북·반미성향 10여년이 빚은 사회의 지나친 좌편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제를 다시 살려야 하고, 무능한 아마추어 정권을 유능한 프로페셔널 정권으로 바꾸어야 하고, 사회의 지나친 좌편향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대권주자 중에서 이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 바로 이명박이다. 세번째의 경우에 다소 보완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많은 여론조사를 보면 지금 유력한 대권주자 중에 이념적으로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가장 중도에 위치해 있는 사람이 이명박이다. 이 말은 한편 한나라당에서 집토끼뿐 아니라 산토끼까지 잡을 수 있는 사람이 곧 이명박이라는 말도 된다. 물론 이런 이명박에게 순탄한 길만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갖은 음해와 중상모략이 제일 문제다. 그러나 군대문제, 재산문제, 종교문제, 숨겨 놓은 자식문제 등은 모두가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일 뿐이다. 지금 이명박은 다 망가져버린 우리 경제를 다시 살려낼 희망과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다. 그러니 시중에 횡횡하는 별의별 흑색선전에도 끄떡없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해라.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끝내고 3만달러 시대를 열 사람이 누구인가만 생각하자.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 기금유용 ‘개성냄비’ 형사처벌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박준효)는 27일 북한 개성공단 1호 제품인 ‘개성냄비’를 생산하고 있는 ㈜소노코쿠진웨어 김석철 회장과 이 회사의 전신인 리빙아트 강만수 회장을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04년 10월 한국수출입은행에서 대출받은 남북협력기금 30억원 가운데 3억원을 채무 변제 등에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 관계자가 기금 유용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남북협력기금은 용도가 특정돼 있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김 회장은 또 통일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업체 3곳에 개성공단 공장 건물 일부를 사용하게 하는 등 사업 내용을 바꿔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김 회장이 북측 일부 인사들에게 선물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회사돈이 아닌 개인돈이어서 문제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부는 소노코쿠진웨어가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담긴 진정서를 접수하고 자체 조사를 한 뒤 지난 6월 검찰에 김 회장 등을 수사의뢰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檢 ‘개성공단 횡령’ 조사부 배당

    서울중앙지검은 26일 남북경협기금 유용 혐의로 고발된 개성공단 첫 입주업체 소노코쿠진웨어의 김모 회장 사건을 조사부에 배당,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 관계자는 “리빙아트 대표이사 강만수씨 등이 지난 19일 김 회장을 횡령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고, 이후 통일부도 수사의뢰를 해왔다. 관련 사건을 모두 조사부에서 수사키로 했다.”고 말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스포츠 전문 채널로 옮긴 ‘국가대표 캐스터’ 유수호씨

    [스포츠 라운지] 스포츠 전문 채널로 옮긴 ‘국가대표 캐스터’ 유수호씨

    “스포츠 현장이 내 평생 일터였는데 차마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의 별명은 ‘스포츠 중계의 국가대표’다. 지직대는 라디오와 흑백TV 시절부터 그는 온갖 경기가 벌어지는 현장을 쫓아다녔다. 달랑 마이크 하나만 손에 쥐고 스포츠팬들에게 경기장의 환희와 눈물을 전했다. 그가 36년간 입으로 풀어낸 경기는 수십 종목 3000여 경기에 달한다. 지난해 9월 정년으로 공중파 스포츠캐스터 자리에서 물러난 뒤 스포츠전문 채널 KBS스카이의 헤드셋을 다시 머리에 쓴 유수호(59)씨.“중계석이 집 다음으로 소중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동기가 그를 다시 중계석으로 밀어넣었다. ●기자수첩 대신 마이크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유씨의 꿈은 정치부 기자였다. 그러던 그의 인생이 바뀐 건 2학년 때. 선배의 권유에 따라 대학방송국에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목소리는 중·고교 시절 웅변으로 닦았던 터. 졸업 직후인 1969년 곧바로 동양방송(T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한 그는 2년 동안 뉴스, 오락프로그램을 순회한 뒤 고교야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스포츠캐스터의 길로 접어들었다.‘원조 캐스터’로 불리는 박종세 전 해태타이거즈 단장과 이장우, 서기원씨 등이 그의 직속 선배들.“야구중계를 제대로 하려면 일본야구를 알아야 한다.”는 충고에 ‘닛칸스포츠’ 며칠분을 통째로 구해 기사를 달달 외웠다. 이후 배구, 탁구, 배드민턴, 펜싱, 핸드볼 등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대부분 종목을 섭렵했다. 워낙 여러 종목을 중계하다 보니 지난 베이징아시안게임 탁구 중계 도중 ‘강스매싱’을 ‘강스파이크’로 오보(?)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배구중계로 꽃핀 전성기 1979년 남자배구 한·일전은 그의 배구중계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순간.12·12사태와 계엄령선포를 뒤로 하고 첫 국제대회인 아시아남자선수권 중계를 위해 바레인으로 날아간 유씨는 열흘 뒤 일본과의 준결승전을 맡았다. 이전까지 한국이 일본을 이긴 적이 없는 남자배구. 세트스코어 2-1 매치포인트에서 강만수의 마무리 스파이크가 터지자 그는 “드디어 일본배구를 꺾었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승전보를 전했다. 대표팀 감독 출신의 해설자 구연묵씨는 아예 해설도 잊은 채 엉엉 울고만 있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3대 구라’를 아십니까 스포츠캐스터와 해설자의 ‘궁합’은 불문가지다. 그와 ‘찰떡콤비’는 오관영(68)씨다. 배구 전성기 시절 ‘중계=유수호+오관영’의 방정식은 익히 알려진 터.9살의 터울에도 불구하고 사석에선 둘도 없는 술친구로, 중계석에선 입담 경쟁을 벌이던 ‘30년지기’다. 그는 오씨 외에도 정건일 프로듀서, 임건재 아나운서 등을 당시 중계판의 걸출한 ‘재담가’로 세 손가락에 꼽는다.“한 자리에서 만나는 날이면 밤을 새워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유씨는 스포츠캐스터를 꿈꾸는 예비 후배들에게 “현장 분위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밀도있게 건네는 노력과, 특히 해당 종목에 대한 완벽한 지식 등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프로배구 V-리그] 11일 올스타전 삼성·현대전 양상

    [프로배구 V-리그] 11일 올스타전 삼성·현대전 양상

    ‘개봉박두, 그들이 돌아온다.’ ‘삼손’ 이상렬(인창고 교사)의 갈기머리가 네트 위에서 휘날린다.‘꺽다리’ 이종경(경기대 교수)의 백어택과 ‘임꺽정’ 임도헌의 직선타,‘귀공자’ 최천식(인하대 감독)의 오픈스파이크에도 잔뜩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다. 엉덩이는 무거워졌지만 상대 블로킹을 따돌리는 이경석(경기대 감독)의 날렵한(?) 토스워크에 화답하듯 ‘속공의 귀재’ 정의탁(평촌고 감독)이 번개 같은 개인시간차 공격으로 멍군을 부른다. ‘올드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배구 올드스타전’이 오는 11일 서울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에서 프로배구 V-리그 올스타전에 앞서 열린다.2004년 마지막 실업무대에서 팬들에게 첫선을 뵌 지 이번이 세 번째. 비록 15점짜리 1세트로 끝나는 맛보기 경기지만 지난 80∼90년대 코트를 누볐던 스타들의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양팀 사령탑을 맡은 강만수 전 대표팀 감독과 이인 대한배구협회 전무의 녹슬지 않은 머리 싸움도 승부에 관계없는 볼거리다. 흑백 TV 시절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빠뜨리지 않고 전하던 오관영 전 해설위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올드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전망. 한편 본경기인 05∼06시즌 ‘별들의 전쟁’에 나설 남녀 각 26명의 올스타가 8일 확정됐다. 지난해 최종 성적 1,4,5위팀으로 이뤄진 K-STAR팀과 2,3,6위팀을 묶은 V-STAR팀의 대결이지만 이경수 방신봉(이상 LG화재) 등 10명을 빼면 영락없는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라이벌전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직지(直指),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여 한국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저녁을 먹고 나니 하늘에는 두둥실 보름달이 떠있었다. 천강만수에 각기 달이 비쳐도 하늘에 있는 달은 하나일 뿐이다. 서울에서 보던 그 달이었다.‘가로등 아니냐?’는 진반농반에 ‘아니다’라고 하면서 손사래를 치고는 달에다가 손가락질을 한다.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선인들은 지월(指月)이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어리석은 사람을 이렇게 비유하였다.‘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그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놈’이라고. 하지만 그 야무진 녀석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바로 표현하는데, 그걸 직지(直指)라고 했다. 그 직지는 책이름이 되었고 이제 그 책 때문에 이 가을 보름달을 독일 땅에서 바라보게 되었으니 나에겐 또 다른 지월이 된 것이다. 10월 하순 ‘영어직지’를 가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세계도서박람회에 참여했다. 서울대 철학과 조은수 교수의 유려한 영역과 조계종출판사의 깔끔한 장정으로 기름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책을 직접 가지고 가서 행사를 함께한 것은 역사적인 의미와 함께 개인적으로 더없는 기쁨이었다. 사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라는 서지학적 미적 가치에 묻혀 그 내용과 사상은 부수적인 것으로 밀려나버린 현실은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하여 주빈국관 전시장을 돌아보는데 뭔가 눈에 번쩍 띄는 것이 있었다.‘독일어 직지’가 한 쪽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었다. 마침 그 옆을 서성거리고 있는 ‘눈푸른 남자(절집에서는 치열하게 정진하는 이를 ‘눈푸른 수행자’라고 표현한다.)’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책을 발간한 출판사 사장인 기도 켈러씨였다. 그는 동양문화와 종교에 심취되어 이를 서구사회에 알린 것이 벌써 30여년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3년 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성서’보다도 78년 앞서 간행된 ‘직지’를 알게 되었고, 작년에 재독 유학생활 13년째인 김혁숙씨를 만나 번역을 의뢰하여 이번에 ‘독어 직지’라는 결실을 보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지음자(知音者)를 만난 셈이다. 직지의 여행경로는 참으로 멀고도 길다. 한문직지는 고려말에 청주에서 태어나 조선말 강화도에서 군함을 타고 프랑스로 갔다.1972년 그 원본이 공개되었지만 복제판만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하여 태어난 한글직지는 2005년 ‘영어직지’가 되어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오게 된다. 때마침 같은 해에 현지에서 태어난 ‘독어직지’가 ‘영어직지’를 반겨준다. 이제 직지가 유럽까지 제발로 다시 오게 된 것은 아무래도 청주사람들의 공(功)이 제일 큰 것 같다. 그들은 오래 전에 고속도로 어귀에 ‘직지의 고장 청주’라고 하는 큼지막한 입간판을 세웠다. 한 도시가 자기 고장의 이미지 브랜드로 책을 내걸고서 도시의 정체성을 이것에서 찾는 주민들의 선진적 감각은 참으로 놀랍다. 세계최초 금속활자를 주조한 곳인 흥덕사지를 발굴하여 고인쇄박물관을 탄생시켰다. 이는 지자체로서 문화사업의 가장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다. 내친김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 ‘직지 상권 찾기운동 (프랑스에도 하권만 있다.)’을 진행하여 전국민의 관심사로까지 승화시켰다. 얼마나 열성적인지 그 시절 직지활자를 만들고 인쇄출판했던 사람들이 다시 환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그 영향 때문에 나 역시 KTX를 탈 때마다 ‘프랑스 직지’를 생각하곤 한다. 한국의 고속철이 프랑스 테제베(TGV)형으로 결정된 이유 중의 하나가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된 외규장각의 많은 ‘기록문화재 반환 운운’ 때문이었다. 물론 촌극으로 끝났고 직지 역시 돌아오지 못했다. 여전히 금속활자 직지원본은 그 나라 국립도서관 금고 속에서 엄지손가락이 되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한문·한글·영어·독어직지’는 나머지 네 손가락이 되어 각각의 방향에서 지금도 씩씩하게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달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의 달은 모든 물에 두루두루 나타나고 (一月 普現一切水) 모든 물의 달은 하늘의 달 하나가 거둬 들이네(一切水月 一月攝) 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 [뉴스피플] 배구코트로 돌아온 김건태 심판부장

    [뉴스피플] 배구코트로 돌아온 김건태 심판부장

    20년 동안 자로 잰 듯 엄정한 결정으로 오심률 1%도 용납하지 않으며 국내 배구 코트를 지켜온 심판,8년째 국제배구연맹(FIVB)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심판, 어지간한 선수만큼이나 팬들을 몰고다니는 심판. 강만수, 하종화, 김세진, 신진식 등 최고 스타들도 그 앞에서는 깍듯이 머리를 숙인다. ‘코트의 포청천’ 김건태(50) 심판이 백의종군을 위해 코트로 돌아왔다. 지난해까지 심판으로서 최고 권위인 한국배구연맹(KOVO) 심판위원장을 맡아 심판들을 교육시키고 까다로운 경기룰을 숙지시키는 등 배구 프로화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활동하다 스스로를 심판부장으로 ‘강등’시키며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심판위원장이라는 권위도, 세계에서 20여명밖에 되지 않는 ‘FIVB국제심판’의 명예도 훌훌 벗어버린 것이다. 심판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심판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후배들과 함께 현장에서 뒹구는 게 가장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그를 다시 코트로 이끌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판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라는 그의 자부심 역시 대단하다. 실제 모든 심판 관련 기록이 그의 자부심을 뒷받침해준다. 지난 90년부터 국제심판 자격을 얻은 김 부장은 그동안 150여차례 국제 경기의 심판을 맡았고,98년부터는 각종 세계선수권대회, 월드리그 등 결승전 심판을 도맡아왔다. 국제 배구계에서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낮은 한국 스포츠외교력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개인의 빼어난 능력과 성실함으로 얻어낸 값진 성과다. 하지만 지난해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남자배구 결승전 주심으로 배정받았으나 경기 직전 외교력을 앞세운 일본 주심에게 밀려나는 아쉬움도 곱씹어야 했다. 김 부장은 리라공고 2학년 때 선수로서 처음 배구와 인연을 맺었다. 명지대를 거쳐 충주비료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 85년 김순길 원로국제심판의 강력한 추천으로 심판의 길에 들어섰다. 이때부터 그의 무서운 노력은 시작됐다. 엄정한 심판을 보기 위해 비디오 200여개를 보고 꼼꼼히 연구하기 시작했고,‘코트의 판관’으로서 권위를 갖기 위해 항상 양복에 넥타이를 갖춰 입으며, 술, 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 않았다. 주말이면 등산과 조깅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 김 부장은 “이 길에 들어서면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목표를 정했고 남다른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FIVB 심판위원회에 들어가 국제적인 배구행정가로 변신하기 위한 준비와 함께 국내에 자신의 뒤를 이을 후배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다. 그가 코트로 돌아온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선수, 구단, 심판이 모두 한마음으로 노력한다면 떠났던 팬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그의 복귀로 ‘배구 중흥의 청신호’가 켜지길 기대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곧 90회를 맞는 전국체육대회는 몇해 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잔치였다. 줄임말로 ‘체전’이라 부르게 된 언저리에는 ‘체력은 국력’이라던 시절의 개인보다도 국가 명예를 최고로 치던 잔영이 남아 있다. 군화발이 득세할 무렵인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전후로 체육이 도색영화, 성(性)산업과 더불어 3S(Screen·Sports·Sex) 정책으로 국민들을 도취시키기도 했다. 스포츠에 매력이 숨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다 프로스포츠가 인기를 누리는 등 격변기를 맞아 체전은 물론 아마추어 대회는 시들해져만 갔다. 어떤 이들은 전국체전을 두고 ‘그들만의 잔치’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체전은 누구에게든 아련한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고향의 마을 어귀엔 아무개 아들이나 딸이 체전 대표로 뽑혔다느니, 무슨 메달을 땄다느니, 몇등을 했다느니 하는 빨간 글씨가 적힌 큼직한 현수막이 오가는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을지 모른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거대도시 서울에서 전국체전이라고 해봐야 귓전으로 흘려 들을 정도로 더 싸늘해졌다. 하지만 역시 골목 골목에서는 ‘우리 동네 아무개, 우리 학교 아무개가 몇등을 먹었다.’는 식의 입소문이 환영 플래카드와 함께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신화의 도시’로 불리는 울산에서 제86회 전국체전이 펼쳐졌다.1792명이 뛴 서울시 선수단은 총점수로 순위를 가름하는 대회 방식에 따라 경기도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2위로 돌아왔지만 금메달 숫자는 114개로 가장 많이 따왔다. 서울 체육을 보면 한국 스포츠가 보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스타들도 많이 몰린 곳이 바로 서울이다. 인구 1000만이 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스포츠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짝 들여다본다. ■ 장대높이뛰기 1인자 김유석 “내 아버지가 백만장자라 해도 내 삶은 장대 높이뛰기에 걸었다.” 세살 때 엄마 아빠의 손에 이끌려 태평양을 건너갔던 한 꼬마가 어엿한 청년으로 되돌아와 체육계를 들뜨게 만들고 있다. 그 보물단지는 다름아닌 서울시 체육회 소속, 그것도 한국 스포츠에서 황무지라 할 육상 종목에 있다. 지난 8월초 시청에 입단했다. 더욱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이민을 가거나 원정 출산까지 감행하는 게 한국의 요즈음 세태다. ●“날아가는 멋에 살죠.” 김유석(23). 서울시 육상단 선수로 뛰고 있는 그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자연을 이용해 가장 멀리 날아가는 사람으로 불린다. 현재 장대 높이뛰기 최고기록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흔히 버거운 살림살이에 쫓겨 아들 딸에게 책을 쥐어주기는 고사하고 운동으로 ‘계층 상승’을 겨냥하기 쉬운 우리 현실과는 다르다. 최소한 학업과 경제사정을 따지면 아쉬울 게 도무지 없는 편이라 그를 바라보는 체육계의 눈은 ‘기대 반, 부러움 반’이라고 할 만하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고등학교도 미국의 5대 명문 사립재단인 디어필드 아카데미(Deerfield Academy)를 나왔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역시 명문 중에서도 명문인 UPEN(University of Pensylvania)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장대높이뛰기 종목을 육성하는 UCLA를 선택하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고집까지 보였다. 한국 육상을 말하자면 몇몇 굵직굵직한 스타들을 낳은 마라톤 정도가 전부라 하겠기에 더욱 그렇다. 김씨는 전국체전을 다녀온 뒤 약간은 실망스러운 가운데 다음 기회를 벼르며 다시 각오를 되새기고 있다. 올 4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MPSF(Mountain Pacific Sports Federation) 육상대회에서 5m61㎝로 한국 최고기록을 일궈낸 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대회 신기록에 머물고 말았다. 그가 한국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세번째였다.2003년 5월 미국 PAC-10 선수권대회에서 세운 5m55㎝, 지난해 6월 전미 대학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한국기록 5m60㎝를 1㎝,5㎝씩 끌어올렸다. 지난 15일 남자 일반부에 출전,5m36㎝를 뛰어올랐다. 웬만한 이들 같으면 대회신만 해도 기쁘기 이를 데 없는 성적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이 웨이 UCLA 2학년 때인 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돼 줄곧 육상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실력에 못잖게 조국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지금까지 20여년을 이국에서 지내오면서도 단 한번도 국적을 바꿔보지 않은 그의 가족들이다. 세 글자가 뚜렷한 이름도 마찬가지다.3년 전 아버지가 한국을 위해 뛰어야 한다며 대한육상경기연맹에 아들 실력을 봐달라고 연락해온 데서도 알아볼 만하다. 이같은 사실을 보란 듯 증명해주는 사례는 또 있다. 육상연맹 홍순모(46)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2000년 칠레에서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이 때 유석이를 처음 만났지요. 시드니올림픽을 치러낸 나라라는 거드름에 들뜬 오스트레일리아 육상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미개인’ 운운하며 놀려댔지 뭡니까.” 오징어에 고추장, 된장 등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시비를 걸어온 것이란다. 그런데 김씨가 한발짝도 망설이지 않고 나섰다.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그러면 못쓴다며 무례하게 군 점에 대해 사과하는 뜻으로 무릎을 꿇으라고 해 항복(?)을 받아냈다고 홍 이사는 덧붙였다. 고교 때 동급생들 사이에 최고의 실력을 뽐내던 김씨는 한국 국가대표로 나선 2002 대구 유니버시아드와 지난해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에선 뜻밖의 부진을 보였다. 대회참가 직전에 훈련하다가 봉이 부러지는 바람에 손목 부상을 입고도 끈질긴 투혼을 보였다는 대목은 그가 장대 높이뛰기라는 운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디어필드 아카데미 2학년에 올라가면서 뉴잉글랜드 사립고등학교대회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내리 3년간 챔피언이 되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수 아래였던 친구들이 요즈음 들어 (5m)70∼90㎝대까지 기록하는 데 대해 자존심이 상한 상태라고 한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장래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라고 육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머잖아 해내고 만다.” “장대 높이뛰기에서만 경험하는 하늘을 나는 그 기분, 그 환희. 그보다 좋은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요. 저는 장대 높이뛰기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김씨는 고교 동창생이기도 한 형이 의무학점인 스포츠 종목으로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뒤따라 배우다 푹 빠지게 됐다. 형은 하버드를 나와 미국에서 사업가로 주목받고 있는 반면, 성적이 더 뛰어나다던 동생은 아예 직업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운동이냐, 전공을 살리느냐를 놓고 고민에 휩싸였을 때 “네 길을 걸어가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이들도 그의 가족이다. 선수이면서 학생회 임원, 학년 대표를 지낼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선수라 해서 수업이나 과제, 시험에서 예외일 수 없는 환경에서 한치도 모라람이 없는 재목이었다.191㎝ 84㎏의 건장한 한국청년은 외모도 빼어나 영화에 출연하고 모델 제의도 받은 적 있다. “더 좋은 대학교를 마다하고 운동을 한다고 덤볐을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은 삶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운동 선수에게는 UCLA보다 더 좋은 대학은 없다, 좌우명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행복 이상은 없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27일 미국으로 떠났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육상 대회에 차례로 나가며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장대높이뛰기 사절’인 셈이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크라이나의 부브카를 지도한 얼 벨 코치와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마이클 톨리 코치가 그를 주목해 단련시키고 있다는 점은 미래를 밝혀주는 사실이다. 독일인 매니저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한국 출신의 월드스타 탄생을 예감케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핏줄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언젠가 큰 일을 벌일 것이라고 육상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만 되면 모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운 정신과 스포츠맨으로 제1 덕목인 반듯하고 절제할 줄 아는 태도 때문입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땀으로 일군 ‘스포츠 서울’ ‘아우 먼저, 형 먼저’ 하는 쌍둥이 메달리스트에서부터 방망이 든 프로배구 감독의 아들, 야구 감독의 핏줄을 이어받은 다이아몬드 유망주까지…. 수도 서울의 명예를 걸고 땀을 흘린 전국체전 선수단에는 여러가지 사연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마지막 금메달의 주인공도 서울시 여자축구단이었으니 “막판에 웃는 자가 진짜 승자”라는 자부심에 들뜰 만하다. 이들 가운데 레슬링에 출전, 메달을 따낸 쌍둥이 형제가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쌍둥이 아니랄까봐 군에도 나란히 입대한 국군체육부대 김종대·종태(25)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둘은 일란성 쌍둥이로 10분 먼저 태어난 김종대가 형이다. 형제는 중랑중 1학년 때 나란히 레슬링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형은 이듬해 손을 뗐다. 두명 모두 운동을 시킬 수는 없다는 부모님 반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슬링을 잊지 못하던 차에 3학년 때 다시 매트에 올랐다. 이 때 생긴 공백 탓일까. 동생이 그레코로만 1위를 한 반면 형은 자유형 3위로 동메달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몸무게가 55㎏으로 같지만 서로 매트에서 다투는 일만은 피할 수밖에 없어 세부종목만 나눴다. ‘상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국군체육부대에 뽑힌 것만으로도 실력을 알아줄 만한데 당당하게 메달까지 따냈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차세대 황영조로 불리는 육상 꿈나무 전은회(17·배문고)는 남고부 5000m와 10㎞에서 우승해 장거리 유망주로서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전은회는 지난 5월 전국 고교대회 10㎞에서 29분 27초로 황영조(35·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가 강원도 명륜고 시절인 89년 세운 기록 29분 31초를 4초나 앞당겼다. 이어 지난 6월엔 5000m 레이스에서도 허장규(22·삼성전자)가 갖고 있던 고교 최고기록 14분 17초 93을 12초나 앞당긴 14분 05초 44를 기록해 제2의 황영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교부 야구에서 우승한 신일고엔 왕년의 배구스타 아들이 눈길을 끌었다.2학년 강성호(16)군은 아버지 강만수(50) 전 현대캐피탈 감독의 뒤를 이어 중3 때까지 배구를 하다가 야구로 전향(?)한 사례다. 프로야구 LG트윈스 2군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인식(52) 감독의 아들 김준(20·고려대 2년)군도 서울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이밖에 대학부 검도에서는 허동찬(21·성균관대 3년), 동진(19·성균관대 1년) 형제가 5명씩 겨룬 단체전에서 금메달 못지않은 은메달을 따내 ‘칼 솜씨’를 뽐냈다. 서울 대표팀은 신기록도 쏟아냈다. 한국신기록 42개 가운데 5개, 대회신기록 165개 가운데 28개를 낚았으니 체면을 구기지 않은 셈이다. 특히 4관왕에 오른 6명 가운데 수영의 박태환(16·경기고 1년)은 대회 마지막날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아 서울을 빛냈다. 여자축구 결승전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올해의 선수 후보에 뽑힌 ‘여자 박주영’ 박은선(19)을 앞세워 경남대교를 2대0으로 물리쳐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동작구청 씨름단 주현섭(27), 강남구청 체조단 박경아(19)와 최미선(25), 성북구청 펜싱팀 남현희(24) 등 서울시 기초자치단체 선수들이 따낸 메달 28개도 색깔을 떠나 어려운 여건에서 건져낸 것들이어서 박수를 받을 만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바레인 배구대표팀 감독 가는 강만수

    [어떻게 지내세요] 바레인 배구대표팀 감독 가는 강만수

    “바레인행은 라마단이 끝나는 11월초쯤 확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영원한 거포’ 강만수(51). 지난 1970∼80년대 배구 경기장에서 그가 내리꽂는 강스파이크는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시원하게 해주었다.40대 이상의 팬들에겐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4년 전 현대자동차(현 현대캐피탈) 감독을 끝으로 코트를 완전히 떠났다. 은퇴 후에는 프로배구 경기위원과 배구협회의 비치발리볼 이사직을 맡아 비록 배구와 계속 인연을 맺고는 있지만 코트에선 뒷전인 셈. 이러한 까닭에 용인 수지와 성남 분당에서 레스토랑과 도넛대리점 운영에 전념해왔다. 요즘 그는 다시 한번 ‘코트의 신화창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다름아닌 ‘라마단’ 기간이 끝나는 대로 바레인 배구대표팀을 맡기 위한 구체적인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강씨 스스로 마음을 굳힌 상황이어서 바레인행은 시간 문제. 앞서 지난 9월말 바레인 배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팀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전국체전이 끝나던 지난 21일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강씨를 만났다. 근황을 물었더니 “경기위원 자격으로 체전기간 동안 배구경기를 내내 관전했다.”고 대답했다. 관전소감을 묻자 “전체적으로 실력이 향상됐다. 여고팀도 발전을 많이 한 것 같다.”면서 “하지만 아래에서는 열심히 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즉 기성과 프로팀이 적어 안타깝다.”고 했다. 바레인에는 언제 가느냐고 하자 “라마단이 끝나는 대로 협의할 예정이다. 바레인측에서 나를 잊지 않고 불러준 것이 고맙지 않느냐.”면서 “바레인 배구협회는 아마 내년 도하(카타르) 아시안게임을 의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계약조건만 어느 정도 맞으면 한국배구를 위해서라도 바레인 대표팀 감독직을 기꺼이 수락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내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과 우승을 다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냥 웃기만 한다. 이와 관련, 강씨는 지난 80∼82년 10만달러를 받고 아랍에미리트 알자지라클럽 지휘봉을 잡아 최하위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아 중동에서는 인기가 꽤 높은 편. 그의 명성은 한양대 재학 시절 대표팀 주공격수를 맡아 7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에서 우승을 견인하면서였다. 타고난 힘과 신체조건(키 195㎝)으로 12년간 부동의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다.84년 LA올림픽을 끝으로 선수은퇴를 선언했다. 대표팀 출신 OB모임을 갖느냐고 하자 “최종옥 이인 장윤창 김호철씨 등 72년 뮌헨올림픽과 78년 로마선수권대회 당시 선수들과 두달에 한번꼴로 만난다.”고 귀띔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강만수, 바레인 사령탑으로

    왕년의 ‘아시아 최고 거포’ 강만수(50) 전 현대자동차 감독이 바레인으로부터 감독직 요청을 받아 최종 계약만을 남겨 놓았다. 현재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을 맡고 있는 강 전 감독은 28일 “바레인 배구협회로부터 1년간 국가대표팀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최근 받았고 이력서 등 관련 서류를 바레인배구협회에 보낸 상태”라고 밝혔다. 강 전 감독은 “바레인쪽에서 아직 확정 통보는 받지 못했으며 열흘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회가 되면 해외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강 전 감독은 지난 80∼82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자지라클럽의 사령탑을 맡아 당시 최하위팀을 정상으로 올려 놓는 등 중동 지역에서 명성을 쌓은 바 있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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