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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외유 단골’ 지방의회, 시간 없다며 2시간 청렴교육 안 받아

    [단독] ‘외유 단골’ 지방의회, 시간 없다며 2시간 청렴교육 안 받아

    청탁금지법상 年 2시간 이상 의무 위반 ‘갑질연수’ 예천 등 문제된 곳 참여 전무 권익위, 지방의회 맞춤 청렴연수 운영출범 7개월을 넘긴 민선 7기 지방의회 3곳 중 2곳이 청렴교육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의원들의 갑질과 폭행 사건이 잇따라 터지는 가운데 청렴교육 실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청렴운동본부가 전국 243개 광역·기초의회를 대상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2018년 7월 임기 시작 이후 2019년 1월까지 총 150곳(61.7%)이 청탁금지법 및 지방의회 행동강령 등 청렴교육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광역의회는 총 17곳 중 11곳(64.7%)이 교육을 한 데 비해 기초의회는 226곳 중 82곳만 실시해 63.7%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경남·충북·부산·인천의 기초의회가 실시율 50%를 넘었으며 울산·대구·광주 등이 20%를 밑돌아 저조했다. 특히 최근 기초의원의 갑질과 폭력 사태로 문제가 된 지역은 청렴교육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군의원 두 명이 북미 연수 중 현지 가이드 폭행과 여성 접대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경북 예천군은 2017년 이후 한 번도 교육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시의원이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연수를 다녀온 사실이 최근 밝혀진 경기 과천시도 교육 실적이 없었다. 구의원이 어린이집 원장을 겸직해 문제가 된 부산 진구와 남구도 교육을 하지 않았다. 동장을 폭행한 혐의로 구의원이 검찰로 넘겨진 서울 강북구와 구의원들끼리 몸싸움을 벌여 고소전으로 번진 송파구·동작구도 교육 실적이 없었다. 지방의회들은 교육을 하지 않은 이유로 “지역 행사와 회기 일정으로 바빴다”고 해명했다. 한 기초의회 관계자는 “새 임기 시작과 업무파악으로 교육 일정을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육 일정을 잡기 위해서는 의원들이 시간을 서로 조율해야 하지만 다른 일정에 청렴교육이 후순위로 밀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1월 의장의 외유성 연수로 물의를 빚은 대전의 한 기초의회의 경우 행동강령 등 청렴교육은 받지 않았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해외 연수는 가면서도 2시간을 못내 교육을 받지 않는 것은 핑계”라고 지적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직자들은 매년 1회 2시간 이상 청탁금지법 교육을 포함한 청렴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3월 25일 개정된 지방의회 행동강령 시행을 앞두고 있어 교육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된 강령은 지방의원들의 직무 관련 활동 제한과 겸직 금지·사적 이해관계 신고를 더 강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높아진 사회의 도덕성 요구에 지방의회는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 청렴교육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면서 “의회가 자율적으로 시행하지 못한다면 외부 전문가나 시민이 참여하는 중립적 기구를 통해 평가와 감시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4일 올해 지방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청렴연수과정을 매월 2회 이상 운영한다고 밝혔다. 우선 5일 경기도 김포시·안양시의회 의원들은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청렴연수원을 방문해 연수를 받는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현장 행정] 매월 네 번째 수요일 플라스틱 없는 마포

    [현장 행정] 매월 네 번째 수요일 플라스틱 없는 마포

    홍대 거리서 1회용 안 쓰기 결의문 낭독 공공기관 텀블러 사용 등 솔선수범 외식업 협회·유통업계와 협약 체결도“우리 마포구는 매월 네 번째 수요일을 1회용 플라스틱 없는 날로 선포합니다!” 유동균 서울 마포구청장은 지난 27일 홍대 걷고싶은거리 인근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선포식엔 환경 및 여성단체, 자원봉사자, 지역주민 등 500여명이 참가했다. 참여 단체들은 1회용 플라스틱 안 쓰기, 장바구니 및 텀블러 생활화 등 ‘실천 다짐 결의문’을 낭독하며 플라스틱 없는 마포 만들기에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유 구청장은 “1회용 플라스틱은 참 편리하지만 편리함 뒤에 폐기물이 됐을 땐 우리 후손들과 환경에 긴 고통을 남긴다”면서 “‘1회용 플라스틱 없는 마포’를 함께 만들기 위해 작은 실천에 함께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마포구는 서울시와 보조를 맞춰 플라스틱 없는 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앞서 서울시는 2022년까지 시내 플라스틱 전체 사용량의 50%를 감축하고 재활용률 7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며 플라스틱 프리 도시를 선언한 바 있다. 마포구에도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배달·포장 음식이 늘어나고 상권이 발달한 지역에는 커피 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이 많아짐에 따라 1회용품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마포구에서 배출된 혼합재활용품은 연간 2만 709t, 플라스틱은 2172t으로 전년 대비 각각 8.3%, 1.1% 증가했다. 혼합재활용품은 폐형광등, 건전지, 유리, 스티로폼 등을 포함한다. 이에 따라 마포구는 1회용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종합계획을 수립해 세부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구는 우선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해 1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모든 직원이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부서 내 종이컵 등의 일회용품 구매 금지, 우산 빗물 제거기 설치 등 행동 강령을 실시 중이다. 또 민간기업과 구민들을 대상으로 자발적인 사용 억제를 촉구하기 위해 관내 대형유통업계, 외식업협회와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협약 체결, 장바구니 이용 독려, 전통시장·상점가와 함께 결의대회 개최 등 각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규모 점포, 외식업협회 등 관내 19개 업소·협회와 ‘1회용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유 구청장은 “모든 주민은 깨끗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면서 “이번 선포식을 통한 ‘1회용 플라스틱 없는 마포’가 정착돼 환경 보호와 폐기물 감량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신간] 국내 주요 재난·안전 사고 정리

    [신간] 국내 주요 재난·안전 사고 정리

    언론에 비친 재난·안전 사고현장과 안전수칙(김종욱 지음, 청미디어 펴냄) 책은 지난 70여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주요 재난·안전 사고사례를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총정리했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 발생했던 사회재난, 화재 참사, 자연·산업재해 등을 연도별로 주요 개론과 함께 신문 기사 및 사진 자료를 담아 완성했다. 이 책은 행정안전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유형별 안전사고 대처법과 행동요령을 수록하고, 그 외 응급처치 방법도 담았다. 부록으로 미국, 일본 등 해외 자연재해 사례와 UN 세계재난위험감소회의 행동원칙 ‘센다이 재난위험경감 강령’을 실어 지구 자연재난 문제도 다뤘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광복하오리다” 조소앙 선생의 생생한 육성

    “광복하오리다” 조소앙 선생의 생생한 육성

    “우리 조국을 광복하오리다.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되면 나의 몸을 불에 태워 죽여주시오.” 해방 후 처음 거행된 1946년 3·1절 기념식에서 완전한 자주독립의 꿈을 목놓아 설파했던 파주 출생 조소앙(1887~1958) 선생의 육성이 디지털 복원돼 27일 후손에 의해 공개됐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조소앙 선생 손자인 조인래(57)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 위원장이 보관해오던 LP를 작사가 김순곤씨 도움으로 복원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생생한 육성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소앙은 정치·경제·교육의 균형을 통해 개인·민족·국가 간 평등을 이루는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창시하고, 이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제정 당시 국가 이념으로 삼았다. 조소앙은 1946년 3월 1일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27회 3·1절 기념식에서 해방의 기쁨에도 미군정 체제하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이 기념식 이후로 3·1절은 국가 경축일로 지정됐다. 조소앙은 기념사에서 “나 조소앙은 여러분께 맹세합니다. 우리나라를 독립국으로 하오리다. 우리 동포로 하여금 자유민이 되게 하오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시정부 외무부장을 맡았던 조소앙은 “모스코에서 상해에서 남경·파리·사천·광동·광서에서 삼일절을 맞을 때마다 결심하기를 명년(내년)에는 한성에서 이날을 맞이하자 하였다”며 “지금은 소원 성취는 하였다마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오랜 시간 동안의 어려움을 밝히기도 했다. 이 LP는 당시 행사를 준비했던 경성방송국에서 증정품으로 제작한 것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현장 행정] 서대문형무소의 슬픈 수형기록, 기억하리

    [현장 행정] 서대문형무소의 슬픈 수형기록, 기억하리

    “2010년 구청장에 오른 직후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민주축제를 개최하는 등 역사를 기리는 데 꾸준히 힘썼죠. 하지만 여전히 독립지사들이 정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잊혀지기 일쑤라고 해요. 이들의 정신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이어 가야 우리의 미래도 평화로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은 지난 19일 독립문 옆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개막식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대문구가 문화재청과 손잡고 이날부터 오는 4월 21일까지 형무소 10옥사와 12옥사에서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항일독립유산을 국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에서는 3·1운동 당시 사용됐던 다양한 태극기와 유관순(1902∼1920) 열사의 훈장을 비롯해 임시정부 성립 축하문, 애국공채,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치러진 일왕 생일 행사 때 터트린 윤봉길(1908~1932) 의사 폭탄, 건국강령초안 등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규채(1888∼1947) 지사와 김구(1876~1949) 선생의 독립운동 일대기도 별도로 전시됐다. 당시 3·1운동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애국선열 1014명의 수형기록카드도 공개됐다. 이날 독립유공자 후손 20여명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던 문 구청장이 10옥사에 마련된 수형기록카드를 보며 “3·1운동 무렵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만 3000여명에 이르는데, 이 중 관련 죄목으로 수감된 1014명을 추려내 기록을 분석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참석자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기록카드 속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서대문구는 지난 25일 이들의 수형 기록을 엮어 1300여쪽짜리 자료집을 펴냈다. 3·1운동 수감자만을 대상으로 단독 자료집을 발간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황해도 수안군 등 이북지역 출신 수감자 230명의 기록을 포함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지역 3·1운동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이 밖에도 서대문구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부터 매월 셋째 주 화요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강의실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2019 이달의 독립운동가 교양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오는 6월까지는 3·1독립선언기념탑 진입로 양쪽에 독립지사의 족적을 새기는 ‘풋프린팅 메모리얼 로드-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공간 조성도 추진할 예정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에도 추모 공간이 마련된다. 문 구청장은 “우리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한편 자료를 발굴·분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향후 3·1운동이 갖는 평화시위의 의미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게 목표”라며 입을 앙다물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씨줄날줄] 약산 김원봉/이두걸 논설위원

    [씨줄날줄] 약산 김원봉/이두걸 논설위원

    조승우와 이병헌. 한국 영화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배우들이다. 이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동일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이 바로 그다. 조승우는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내가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라는 대사로 짧지만 굵은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이병헌은 이듬해 ‘밀정’에서 강인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약산을 보여 준다. ‘암살’은 최동훈, ‘밀정’은 김지운 등 한국 영화계의 거장들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문화계가 바라보는 약산은 이미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거인이다. 오는 5월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TV 드라마도 방영된다. 김원봉은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義烈團)과 따로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의열’은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는 뜻이다. 1919년 11월 결성한 의열단은 조선총독부와 일본 군부, 친일파 등을 주적으로 삼고 폭력 투쟁을 전개한다. 이들의 행동강령은 1922년 단재(丹齋) 신채호가 저술한 ‘조선혁명선언’에 집약돼 있다. 단재는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고,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라고 설파한다. 종로·부산·밀양경찰서 및 총독부 폭파 사건, 일본 도쿄 황궁 니주바시교 폭파 사건 등이 의열단의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약산은 이후 조선의용대 대장,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냈다. 그를 빼놓고는 1920년대 이후 독립운동사가 설명되지 않는다. 일제는 백범 김구 선생보다 두 배 많은 100만원의 현상금을 그의 목에 걸 정도였다. 해방 뒤에는 좌우합작을 추진하다가 1948년 북으로 넘어갔다. 여운형과 김구가 암살되고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이 본격화된 이후였다. 친일파 고등경찰 노덕술에게 고문을 받은 게 월북의 계기라는 분석도 있다. 북에서는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을 지냈지만 1958년 옌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남과 북 모두 김원봉이라는 이름을 지우려 한 까닭이다. 2015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페이스북에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남겼다. 국가 중심 보훈혁신위원회도 최근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권고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현행 서훈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 다만 “독립운동에 대한 최종적 평가 기준은 1945년 8월 15일 시점”이라는 혁신위의 권고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일생을 민족해방에 바친 신산(辛酸)했던 그의 삶을, 해방 이후의 행적을 이유로 부인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 부산시교육청, 25일 4급이상 간부 등 청렴연수 실시

    부산시교육청은 오는 25일 오후 1시30분 부산교육연구정보원 대강당에서 유치원 원장과 초·중·고·특수학교 교장, 4급 이상 간부 등 700여명을 대상으로 청렴연수를 실시한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연수는 학교장과 고위공직자들의 청렴 리더십을 향상시켜 배려하고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시교육청은 이를 통해 부산교육의 청렴도를 전국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이날 연수에서는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 전문강사인 박연정 연정에듀테인먼트 대표가 ‘공정한 조직문화를 이끄는 기준점’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다. 박 대표는 학교현장의 갑질 등 부패행위를 근절하고자 지난해 하반기 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을 사례중심으로 설명한다. 또 시교육청 이일권 감사관이 ‘2019년 부산교육청 청렴정책 추진 방향’을 안내한다. 이일권 감사관은 “이번 연수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민주적이고 공정한 학교문화를 정착시켜 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하자… 임정, 마침내 日에 선전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하자… 임정, 마침내 日에 선전포고

    4부. 광복의 여명 : 충칭 시기 ② 일본의 패망1910년 한반도를 차지한 일본은 1931년 중국 만주를, 1937년 중국 대륙을 침략하며 제국주의 팽창 야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점령한 뒤 “독일과 중동에서 만나겠다”며 버마(현 미얀마)·인도 전선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지막 정착지인 중국 충칭에서 당·정·군 체제를 갖춘 뒤 ‘전쟁 괴물’이 된 일본의 패망을 기다렸다. 해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찾아왔다.●임정, 1945년 2월 28일 독일에도 선전포고 1937년 7월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영국과 미국은 자신들이 선점한 중국 내 이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했다. 일본에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이후 일본은 제조업 가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41년 12월 미국의 해군기지인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석유금수 조치를 풀어 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시 두 나라 간 군사력 차이를 감안할 때 진주만 공습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미국은 즉각 일본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며 ‘태평양전쟁’(1941~1945)에 나섰다. 이 전쟁은 임정이 바라던 일이기도 했다. 광복군을 양성해 뒀다가 일본이 중국, 미국과의 전쟁에 나서면 이들을 도와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정은 일제가 진주만을 공격한 직후 주석 김구(1876~1949)와 외무부장 조소앙(1887~1958) 명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가 3000만 한인과 정부를 대표해 중국과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와 함께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일본을 격패시키고 동아시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에 민주진영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하한다.” 임정은 독일에 대해서도 선전포고했다. 194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이 회의에 참가하려면 3월 1일 이전에 독일에 선전포고를 해야 해 하루 전인 2월 28일 발표했다.●中 통제받은 광복군, 9개 조항 행동준승 논란 1940년 9월 태어난 광복군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지원하던 또 다른 한인 부대였던 조선의용대 대원 상당수가 1941년 3~5월 본진을 이탈해 화베이 지역으로 떠나자 국민당 정부는 당황했다. 같은 해 11월 중국은 광복군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한국광복군 행동준승’이라는 9개 조항을 전달했다. 중국 중앙군 참모총장의 명령과 통제를 받아 광복군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었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이현희(1937~2010) 전 성신여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이 준승은 광복군이 사실상 중국의 고용군이 된다는 것으로 매우 굴욕적인 군사협정이었다. 중국이 임정을 어떤 존재로 여겼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영토에서 활동하는 외국 군대를 통제하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당시 한인 독립운동 세력이 중국으로부터 충분히 신뢰를 얻을 만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에 어느 정도 간섭이 불가피했다는 반론도 있다. 임정은 중국의 준승 명령에 분개해 청사를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자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이승만(1875~1965)과 협의하기도 했다. 결국 중국은 우리 측의 지속적인 요구로 1944년 8월 광복군 통제권을 임시정부에 돌려줬다.●광복군, 한지성·문응국 등 임팔전투 투입 일본은 1942년 1월 영국의 식민지 버마를 침공했다. 인도에 주둔해 있는 영국군이 즉각 대응에 나섰는데, 이를 버마 전투(1942~1945)라고 한다. 영국군은 영어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광복군은 영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인면전구공작대’를 꾸렸다. 인도와 버마 전선에서 활동하는 공작부대라는 뜻이다. 이들은 1943년 8월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던 인도 캘커타에 도착했다. 한지성(1913~?)과 문응국(1921~1996) 등 9명이었다. 공작대는 영국군에게서 심리전 교육 등을 받고 1944년 초 임팔전선에 투입됐다. 임팔은 인도와 버마의 접경지역으로 열대밀림 산악 지대다. 광복군은 1945년 7월 일본군이 버마에서 완전히 패해 철수할 때까지 1년 넘게 영국군을 도왔다. 1945년 9월 이들은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로 무사히 복귀했다. 한지성의 증언이다. “우리 공작대는 언제고 전투할 수 있도록 무장한 뒤 적(일본군)과 가장 가까운 진지에서 일본어로 방송을 했다. 선전문을 제작해 살포하고 일본군 문건을 번역하며 포로를 심문했다.”광복군은 미군과 함께 한반도 진공 작전도 추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1942~1945)과 함께 한반도와 일본 본토에서 지하공작에 나서는 것이었다. OSS 특수훈련을 받은 광복군 대원을 국내에 잠입시켜 여러 활동에 나서기로 했는데, 이를 ‘독수리 작전’이라고 불렀다. 1945년 4월 OSS 요인들이 충칭의 임정 청사로 찾아와 작전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고 김구는 이를 승인했다. 영화 ‘군함도’(2017)에서 독립운동 인사를 구출하고자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섬(군함도)에 잠입한 박무영(송중기 분)이 광복군 소속 OSS 요원이다.OSS는 같은 해 5월부터 광복군 내 엘리트들을 차출해 군사훈련을 시켰다. 대표적인 이들이 훗날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1920~ 2011)과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장준하(1918~1975)다. 이들은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영해 광복군에 합류했다. 김준엽은 1987년 개헌 당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조문을 삽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장준하는 박정희(1917~1979)의 독재에 반대하다가 1975년 의문사했다. ●승전국 지위 확보·강대국 간섭없이 독립 목표 임정은 미군의 지시로 국내에 진격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8월이 되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히로시마(6일)와 나가사키(9일)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8일에는 소련이 선전포고를 하며 만주국을 점령했다. 당시 일본 측 기록을 보면 일본군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보다 소련 참전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주변의 모든 나라가 적이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은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도 결국 무산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당시 임정은 한반도에 잠입해 2차 세계대전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면 강대국의 간섭 없이 한반도 독립을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일본이 일주일만 늦게 항복해 광복군이 한반도에 참전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광복군이 미군과 공동 작전에 참가했더라도 그 수가 워낙 적어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그래도 임정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일본과의 전쟁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외세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노력했다.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을 무의미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던 1944년. 임정은 좀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새 나라의 밑그림을 그려야 했다. 1943년 ‘카이로선언’(미·영·중이 일본 문제 논의)으로 조선 독립을 보장받은 시기였기에 이를 반영해 헌법을 개정했다. 주석(대통령) 중심제를 기본으로 하되 의원내각제를 가미해 절충적 정부를 구성했다. 교육과 직장, 노약자 부양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파업권도 명시했다. 사회민주주의 형태의 국가다. 이는 1941년 임정이 조선민족혁명당과의 합작을 앞두고 좌우를 아우르기 위해 내놓은 ‘건국강령’의 영향이 컸다. 건국강령을 지은 이가 ‘사민주의자’ 조소앙(1887~1958)이다.●조소앙의 삼균주의, 건국 이념 기초로 작용 일본 메이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19년 3·1운동 뒤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1919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임정을 정식 국가로 승인해 줄 것을 호소했다. 1930년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한독당은 1940년 5월 우파 통합정당의 이름으로 계승돼 임정의 여당이 됐다. 그는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모두 균등해지려면 정치와 경제, 교육의 세 가지 조건이 동등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삼균주의인데, 훗날 건국강령의 이론적 기반이 됐다.●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한국전쟁 때 납북 해방 뒤 김구와 함께 한독당을 이끌었고, 1948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좌파 정당인 사회당을 창당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전국 최고득표율로 당선됐지만 6·25전쟁 때 납북됐다. 만약 임정의 ‘1944년 헌법’대로 해방 정부가 꾸려졌다면 지금쯤 우리는 독일이나 스웨덴을 모델로 한 사민주의 국가에 살고 있을 것이다. 조석곤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948년 제헌헌법은 건국강령의 경제조항을 계승하고 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쳐 이룬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충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의 100년 전 뜨거운 함성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의 100년 전 뜨거운 함성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한다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하략)’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시인인 심훈(1901~1936)은 시 ‘그날이 오면’에서 조국의 광복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노래했다.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심훈처럼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던 선열들의 항일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문화재청이 마련한 특별전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이다. 이번 전시는 19일부터 4월 21일까지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10·12옥사에서 열린다. 1910년 경술국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까지 긴박했던 당시 상황과 선열들의 발자취를 재조명하는 자리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18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매천 황현 선생의 유물,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및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 살아있는 자료들을 통해 항일 독립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전시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총 3부로 구성된다. 도입부에서는 조선말기 우국지사 매천 황현(1855~1910)의 유물이 눈에 띈다.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하는 황현의 결연한 뜻을 담은 칠언절구 4수의 한시 ‘절명시’를 비롯해 황현의 후손들이 100년 넘게 소장해온 또다른 자료 ‘사해형제’(四海兄弟)와 신문 자료를 모아놓은 ‘수택존언’(手澤存焉) 등이 최초로 공개된다. 특히 ‘사해형제’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이 황현의 죽음을 기리며 쓴 애도시 ‘매천선생’(梅泉先生)이 수록돼 있어 눈길을 모은다. 홍영기 순천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한용운이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을 간행한 뒤 전국 유명 사찰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다”면서 “구례 화엄사에 갔을 때 황현의 동생을 만나 이 시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1부 ‘3·1운동, 독립의 꽃을 피우다’에서는 등록문화재 제730호인 ‘일제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를 만나볼 수 있다. 안창호, 윤봉길, 유관순, 김마리아 등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 4857명에 대한 신상카드가 소개된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지역 3·1운동 수감자와 여성 수감자의 활동 상황도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각각 등록문화재 제713호와 제738호로 등록된 이육사의 친필 원고 ‘편복’과 ‘바다의 마음’도 전시된다.2부 ‘대한민국임시정부, 민족의 희망이 되다’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이 소개된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조소앙이 ‘삼균주의’(三均主義)를 바탕으로 독립운동과 건국의 방침 등을 정리한 등록문화재 제740호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과 두터운 천 위에 일본 국왕을 처단할 의지를 맹세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이다. 나라의 광복과 환국의 긴박했던 상황을 조명하는 3부 ‘광복, 환국’에서는 백범 김구가 1949년에 쓴 붓글씨 ‘신기독’(愼其獨·‘홀로 있을 때도 삼가다’는 뜻)과 1945년 11월 초판 발행된 등록문화재 제576호 ‘한중영문중국판 한국애국가 악보’가 공개된다. 다만 문화재청은 유물의 보존 환경을 고려해 복제본을 전시하기로 했다. 전시 개막일인 19일과 3월 1일, 4월 11일에만 유물 원본을 전시한다. 이밖에도 문화재청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22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항일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활용’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열고, 3월 1일부터 31일까지는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에서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가제)을 선보일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병화 김포시 행정국장 “공직자 검증제 6급 승진까지 확대·새달초 평화·관광 업무 총괄기획 TF팀 구성”

    김병화 김포시 행정국장 “공직자 검증제 6급 승진까지 확대·새달초 평화·관광 업무 총괄기획 TF팀 구성”

    경기 김포시 김병화 행정국장이 브리핑룸에서 처음 열린 행정국 정례 브리핑에서 올해 하반기 정례인사 때 공직자 검증제 적용을 6급 승진자까지 확대하겠다고 14일 밝혔다. 김 국장은 “민선7기 출범 직후 단행된 조직개편 당시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오는 9월쯤 중폭 크기로 조직을 개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국장은 “현재 4급 승진자를 대상으로 한 공직자 검증제를 올해부터 6급 승진대상자까지 확대한다”며 “이는 조직의 허리부터 리더십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평가”라고 말했다. 김포시는 민선7기 출범 직후 공정인사의 한 방안으로 4급 승진대상자의 적격성을 심사하는 고위공직자 검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김 국장은 “행정국은 김포시 공직자에 대한 인사와 김포시 살림, 교육과 평화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한 후 “민선7기 최대 핵심인 공정인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언론인 여러분이 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언론인 브리핑을 통해 시정 방향과 현안에 대해 전달하는 소통의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에서는 시 청사 이전 계획을 비롯해 인구 50만명 시대 대책, 평화교류사업, 빅데이터 활용계획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시 청사 이전 계획에 대해 김 국장은 “1988년 인구 12만명 때 지어진 현 청사는 사무공간과 주차공간이 너무 부족한 상황으로 이전보다는 확장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전쟁 전까지 김포에서 가장 융성했던 마근포·조강포·강령포 등 3대포구에 규모있는 포구문화 관광거리를 조성하면 어떠냐는 제안에 대해 김 국장은 “중앙정부에서 접경지역 전체 개발계획 지원사업으로 김포시에 포구공원개발사업비 100억원이 배정됐다. 한강하구에서 전류리나 봉성리 포구는 현재도 이용하고 있어 우선 이곳을 사업지로 정했다”고 말하고, “우리 시가 갖고 있는 평화관련 사업으로 강령포·조강포·마근포일대에 전체 평화특구를 조성하는 방안을 평화생태 기본계획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포구주변에 이북체험마을과 한옥마을 조성 등 옛날 포구마을을 복원해 파주의 헤이리마을처럼 만드는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평화교류사업과 관련해서는 “남북정상회담 1주년인 오는 4월 27일을 기념하기 위해 유도까지 항행하는 행사를 포함해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며 “3월 초까지 평화와 관광관련 업무 총괄기획 TF팀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정례 언론인 브리핑은 김포시가 지난 1월 시 청사 3층에 언론인 브리핑룸을 개소한 후 언론과의 소통을 위해 마련된 행사다. 매주 한 차례 이날 행정국을 시작으로 국·소별 진행된다. 국별 언론인 브리핑 및 티타임은 오는 20일 복지국에 이어 27일 교통국, 3월 6일 환경국, 13일 경제국, 20일 도시국 순으로 열릴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한강 물류의 중심… 포구의 낭만 품고 ‘뱃놀이 김포’ 뜬다

    한강 물류의 중심… 포구의 낭만 품고 ‘뱃놀이 김포’ 뜬다

    “마근포구는 한강하구에서 가장 깊은 물속과 넓은 수변을 끼고 있어 수심이 깊은 곳에서 배들이 정박했다가 밀물 때 서울 마포나루로 다녔죠.” 경기 김포시 하성면 마근포 주민 김석태(80) 어르신은 12일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어 “6·25전쟁 이전 우리 마을엔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고 어선을 많게는 두세 척이나 보유한 집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면사무소 소재지인 마을엔 소방서가 있었고, 도정공장 1개와 하성면 전 지역 쌀을 수매하던 공출창고 2개가 있어 쌀을 싣고 서울과 인천 등지로 실어 날랐다”고 덧붙였다. 김포문화재단으로부터 협조를 얻어 주민들과 동행해 포구를 둘러봤다.김포시 지명은 고어 ‘ᄀᆞᆷ포’에서 유래했다. 같은 계열인 감(甘), 검(檢, 儉, 劒, 黔)은 ‘거룩하다’는 뜻을 담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구려 옛 땅 ‘검포’(黔浦)로 기록돼 있다. ’검’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검과 같은 의미의 고대어로 신성한 마을을 가리킨다. 757년 통일신라 경덕왕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최초로 김포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재단이 옛 포구에 대한 종합학술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대 이후 김포엔 30여개 포구와 나루가 존재했다. 섶골나루를 비롯해 감암나루와 운영나루, 갑곶나루, 원머루나루, 신덕포나루, 대명나루, 전류리포구, 조강포, 강령포 등 크고 작은 나루와 포구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 ‘경기’ 편에는 ‘한강이 서쪽으로 흘러 서해에 이르는 물길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에서 조강(祖江)이 시작된다. 강화를 만나는 지점에서 황해도로 흐르는 서쪽 유로와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남쪽 유로인 염하 두 갈래로 나뉜다. 조강 서쪽 유로는 해서·관서지방 선박들이 주로 이용했고, 염하는 삼남 지방을 오가던 선박들이 이용했다. 포구별 인구와 어업인구, 배 수량까지 기록된 ‘한국수산지’(1908~1911)엔 당시 김포에서 가장 큰 포구 마을은 80가구를 웃돌았던 조강포와 강령포·마근포였다. 김석태 어르신은 “농사보다는 고기잡이로 제법 돈을 벌었다. 고기잡이 배가 한 번 나갔다 오면 뱃사람들이 곧장 주막으로 가다 보니 기생집이 4개나 될 만큼 당시 마근포 마을 경제가 컸다”고 말했다. 봄철이면 어선이 출항할 때마다 포구 앞 당산에서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노제를 지냈다. 현재 그 자리에는 군부대 초소가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포구 앞에선 뱀장어와 장어가 엄청 많이 잡혔다. 특히 비바람이 거세질 가을 무렵엔 만선을 이뤄 냄새가 마을에 진동할 정도였다. 아울러 마을엔 화재나 재난 때 긴급히 대피하라고 울리는 큰 비상 종이 있었다. 전종한(사회과학교육) 경인교대 교수에 따르면 20세기 초 포구별 토지소유 양상을 조사한 결과 염하 연안의 거점 포구들에 비해 조강 연안 거점 포구들에서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부재지주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재지주 거주지를 보면 조강포·마근포엔 서울, 강령포엔 개성 소유주 비율이 높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서로 네트워크를 이뤘다. 김석태 어르신은 “당시 전태종씨라는 사람이 포구 쪽 토지를 5~6필지나 사들여 주택을 지었고, 서울 밤섬에 산다는 성산만씨는 전답 등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부재지주들은 주로 대지 필지를 갖고 있어 포구 주변 대지를 중심으로 포구 관련 시설들을 지배했다. 김포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3대 포구 중 마근포는 우리말 ‘막은 개’(개펄)라는 뜻으로 ‘막은’의 음을 따 ‘마근포’(麻斤浦)라고 불렀다. 원래 마근포 주변 마을에 물길을 따라 자리한 여러 포구들이 1919년 지도에는 금포리, 마조리로 표기되고 농경지로 간척됐다. 마근포는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가거나 강 건너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정곶리 사이를 왕래하던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김석태 어르신은 “김해 김씨 집성촌인 마근포구 일대엔 20가구가 모여 살았다. 이젠 농지로 변해 주택지 뒤 야산에 있던 대나무숲만 일부 흔적을 보일 뿐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당시 목선으로 직접 고기잡이를 다녔던 이 마을 김선구(81) 어르신은 “포구 마을에는 생선공판장이 있어 웅어나 숭어, 조기, 황복, 새우 등을 잡아 팔았다”며 “특히 여름철엔 별미인 깨나리 생선을 뼈째 발라 회로 즐겨 먹었다”고 전했다. ‘깨나리’는 세어라고도 불리며 가늘고 작은 물고기로 웅어와 매우 닮았다. 당시 김포 일대에 포구 관련 정박시설이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변 갯벌 등에 배를 댔다. 강령포에는 토담집 형태의 당집이 있어서 제사 도구를 보관했고 정월 초순 당제를 지냈다. 강령포 앞에 ‘노구여’라는 여(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가 있는데 이 역시 제사와 관련된 지명이다. 이 여로 인해 배가 자주 좌초돼 뱃사람들은 구리나 놋쇠로 만든 솥에 새로 밥을 지어 산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솥을 ‘노구솥’, 밥을 ‘노구메’라고 불렀다. 포구 근처에는 어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한 토빙고와 새우젓 창고도 마련됐다. 고촌 섶골나루 근처에는 새우젓독을 만드는 가마도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배들은 물때를 맞추는 데 실패하거나 기상이 악화되면 며칠씩 옴짝달싹하지도 못했다. 여행객들은 숙식을 해결할 곳이 필요했는데 조선 중기까지는 원(院)이라고 일컬어지는 관영 숙박시설이 그 기능을 도맡았다. 대표적인 게 조강포에 자리했던 조강원이다. 그러나 관에서 설치한 원 기능이 점차 빛을 상실하고 시장유통에 따른 상인과 보부상들의 대거 활동으로 주막이 번창했다. 조선지지 자료에는 1919년 김포 포구와 관련된 주막 이름이 등장한다. 당시 통진군에는 원모루주막, 산성주막, 강령포주막, 조강가리주막, 조강리주막, 후평주막, 마근포주막, 전류리주막, 봉성리주막, 바삭바위주막, 조강거리주막 등이 있었다. 광복을 앞뒤로 한 시기까지 주막은 성업을 이뤘다.김포시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포구의 장점과 역사를 재조명하고 과거 정취를 살린 체험·관광자원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하성면 전류리 54-4와 봉성리 640-4 부지 1만 2500㎡에 포구공원과 물길 산책로를 조성한다. 국비 100억원을 투입해 2020년 착공, 2025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왕룡 전 김포시의원은 “한반도 물류·관광·문화 중심지라는 인문학적 고찰이 필요하고, 한강하구의 물류 기능과 역사성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포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행안부 지원방안은 근시안적 관광 볼거리 이벤트 성격으로 예산 나눠 먹기 개발로 이어질까 염려된다”며 “한강하구 일대에서 강화 따로, 파주 파로, 김포 따로가 아니라 조강권 남북 공동체 복원이라는 종합적 관점에서 함께 머리와 어깨를 맞대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김포는 30여개 포구와 나루터 있던 신성한 포구마을… “한반도 물길 물류 중심지였다”

    김포는 30여개 포구와 나루터 있던 신성한 포구마을… “한반도 물길 물류 중심지였다”

    “마근포구는 한강하구에서 가장 깊은 물속과 넓은 수변을 끼고 있어 수심이 깊은 곳에서 배들이 정박했다가 밀물 때 서울 마포나루로 다녔죠.” 경기 김포시 하성면 마근포 주민 김석태(80) 어르신은 12일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어 “6·25전쟁 이전 우리 마을엔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고 어선을 많게는 두세 척이나 보유한 집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면사무소 소재지인 마을엔 소방서가 있었고, 도정공장 1개와 하성면 전 지역 쌀을 수매하던 공출창고 2개가 있어 쌀을 싣고 서울과 인천 등지로 실어 날랐다”고 덧붙였다. 김포문화재단으로부터 협조를 얻어 주민들과 동행해 포구를 둘러봤다. 김포시 지명은 고어 ‘ᄀᆞᆷ’ 포에서 유래했다. 지명이 생긴 지 1262년 됐다. 같은 계열인 감(甘), 검(檢, 儉, 劒, 黔)은 ‘거룩하다’는 뜻을 담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구려 옛 땅 ‘검포’(黔浦)로 기록돼 있다. ’검’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검과 같은 의미의 고대어로 신성한 마을을 가리킨다. 757년 통일신라 경덕왕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최초로 김포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재단이 옛 포구에 대한 종합학술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대 이후 김포엔 30여개 포구와 나루가 존재했다. 섶골나루를 비롯해 감암나루와 운영나루, 갑곶나루, 원머루나루, 신덕포나루, 대명나루, 전류리포구, 조강포, 강령포 등 크고 작은 나루와 포구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 ‘경기’ 편에는 ‘한강이 서쪽으로 흘러 서해에 이르는 물길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에서 조강(祖江)이 시작된다. 강화를 만나는 지점에서 황해도로 흐르는 서쪽 유로와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남쪽 유로인 염하 두 갈래로 나뉜다. 조강 서쪽 유로는 해서·관서지방 선박들이 주로 이용했고, 염하는 삼남 지방을 오가던 선박들이 이용했다. 포구별 인구와 어업인구, 배 수량까지 기록된 ‘한국수산지’(1908~1911)엔 당시 김포에서 가장 큰 포구 마을은 80가구를 웃돌았던 조강포와 강령포·마근포였다. 김석태 어르신은 “농사보다는 고기잡이로 제법 돈을 벌었다. 고기잡이 배가 한 번 나갔다 오면 뱃사람들이 곧장 주막으로 가다 보니 기생집이 4개나 될 만큼 당시 마근포 마을 경제가 컸다”고 말했다. 봄철이면 어선이 출항할 때마다 포구 앞 당산에서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노제를 지냈다. 현재 그 자리에는 군부대 초소가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포구 앞에선 뱀장어와 장어가 엄청 많이 잡혔다. 특히 비바람이 거세질 가을 무렵엔 만선을 이뤄 냄새가 마을에 진동할 정도였다. 아울러 마을엔 화재나 재난 때 긴급히 대피하라고 울리는 큰 비상 종이 있었다. 전종한(사회과학교육) 경인교대 교수에 따르면 20세기 초 포구별 토지소유 양상을 조사한 결과 염하 연안의 거점 포구들에 비해 조강 연안 거점 포구들에서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부재지주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재지주 거주지를 보면 조강포·마근포엔 서울, 강령포엔 개성 소유주 비율이 높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서로 네트워크를 이뤘다. 김석태 어르신은 “당시 전태종씨라는 사람이 포구 쪽 토지를 5~6필지나 사들여 주택을 지었고, 서울 밤섬에 산다는 성산만씨는 전답 등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부재지주들은 주로 대지 필지를 갖고 있어 포구 주변 대지를 중심으로 포구 관련 시설들을 지배했다. 김포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3대 포구 중 마근포는 우리말 ‘막은 개’(개펄)라는 뜻으로 ‘막은’의 음을 따 ‘마근포’(麻斤浦)라고 불렀다. 원래 마근포 주변 마을에 물길을 따라 자리한 여러 포구들이 1919년 지도에는 금포리, 마조리로 표기되고 농경지로 간척됐다. 마근포는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가거나 강 건너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면 정곶리 사이를 왕래하던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김석태 어르신은 “김해 김씨 집성촌인 마근포구 일대엔 20가구가 모여 살았다. 이젠 농지로 변해 주택지 뒤 야산에 있던 대나무숲만 일부 흔적을 보일 뿐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당시 목선으로 직접 고기잡이를 다녔던 이 마을 김선구(81) 어르신은 “포구 마을에는 생선공판장이 있어 웅어나 숭어, 조기, 황복, 새우 등을 잡아 팔았다”며 “특히 여름철엔 별미인 깨나리 생선을 뼈째 발라 회로 즐겨 먹었다”고 전했다. ‘깨나리’는 세어라고도 불리며 가늘고 작은 물고기로 웅어와 매우 닮았다. 당시 김포 일대에 포구 관련 정박시설이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변 갯벌 등에 배를 댔다. 강령포에는 토담집 형태의 당집이 있어서 제사 도구를 보관했고 정월 초순 당제를 지냈다. 강령포 앞에 ‘노구여’라는 여(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가 있는데 이 역시 제사와 관련된 지명이다. 이 여로 인해 배가 자주 좌초돼 뱃사람들은 구리나 놋쇠로 만든 솥에 새로 밥을 지어 산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솥을 ‘노구솥’, 밥을 ‘노구메’라고 불렀다. 포구 근처에는 어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한 토빙고와 새우젓 창고도 마련됐다. 고촌 섶골나루 근처에는 새우젓독을 만드는 가마도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배들은 물때를 맞추는 데 실패하거나 기상이 악화되면 며칠씩 옴짝달싹하지도 못했다. 여행객들은 숙식을 해결할 곳이 필요했는데 조선 중기까지는 원(院)이라고 일컬어지는 관영 숙박시설이 그 기능을 도맡았다. 대표적인 게 조강포에 자리했던 조강원이다. 그러나 관에서 설치한 원 기능이 점차 빛을 상실하고 시장유통에 따른 상인과 보부상들의 대거 활동으로 주막이 번창했다. 조선지지 자료에는 1919년 김포 포구와 관련된 주막 이름이 등장한다. 당시 통진군에는 원모루주막, 산성주막, 강령포주막, 조강가리주막, 조강리주막, 후평주막, 마근포주막, 전류리주막, 봉성리주막, 바삭바위주막, 조강거리주막 등이 있었다. 광복을 앞뒤로 한 시기까지 주막은 성업을 이뤘다. 김포시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포구의 장점과 역사를 재조명하고 과거 정취를 살린 체험·관광자원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하성면 전류리 54-4와 봉성리 640-4 부지 1만 2500㎡에 포구공원과 물길 산책로를 조성한다. 국비 100억원을 투입해 2020년 착공, 2025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왕룡 전 김포시의원은 “한반도 물류·관광·문화 중심지라는 인문학적 고찰이 필요하고, 한강하구의 물류 기능과 역사성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포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행안부 지원방안은 근시안적 관광 볼거리 이벤트 성격으로 예산 나눠 먹기 개발로 이어질까 염려된다”며 “한강하구 일대에서 강화 따로, 파주 파로, 김포 따로가 아니라 조강권 남북 공동체 복원이라는 종합적 관점에서 함께 머리와 어깨를 맞대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대구시교육청, 100만원 이상 금품 수수땐 공직 원천 배제

    대구시교육청은 100만원 이상 금품 등을 수수한 공직자는 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공무원 행동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였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무원이 민원인의 인가·허가 신청에 대해 접수를 부당하게 지연·거부하거나, 직무관련 공무원 등에게 직무의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요구를 하고, 자신이 소속된 기관의 의무 또는 부담을 부당하게 전가하거나 비용·인력을 부담하도록 하는 행위가 금지 된다. 또 감독기관 소속 공무원이 피감기관에 법령에 근거가 없거나 예산의 목적·용도에 부합하지 않는 금품 등을 요구하는 행위, 정상적인 관행을 벗어난 예우·의전을 요구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아울러, 공직자가 의례적인 금품 등을 수동적으로 수수한 경우에도 100만원 이상이면 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임, 파면)되도록 징계양정기준을 강화하였다. 강은희 교육감은“새로 도입된 규정들이 공직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며 “앞으로 행동강령 이행실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등으로 교육공동체 전반에 청렴한 공직문화가 정착되어 시민에게 신뢰받는 대구교육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동 개정안은 2월 11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쳐 2월 중 시행할 계획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안양시, 비리 가담 내부신고자 자진 신고하면 책임 면책·감경

    경기도 안양시는 내부고발 공무원의 신분보호를 명문화 한 공무원행동강령 규칙을 다음달 공포할 예정이라고 22일 밝혔다. 공직사회에서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나 비리, 부정·부패를 신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조직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공무원행동강령은 부패방지법에 근거해 대통령령으로 제정, 법적 구속력을 갖춘 공무원 윤리규범을 말한다. 이번 공포되는 규칙은 내부 신고자가 부당한 업무지시로 비리에 가담했더라도 한 달 이내 감사관실에 자진 신고하며 신분상 책임 면책 또는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존에는 처벌을 피할 수 없었으나 이번 규칙에 개선책이 마련됐다. 상의하달 업무지시가 많은 문제점을 고려해 위법한 지시를 차단해 실무자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또 면책심의를 담당하는 면책심의위원회를 감사관과 내부위원 3명, 외부전문가 4명으로 구성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했다. 외부인은 변호사, 회계사, 노무사, 기술사 등 각 1명씩이다. 특히 일반인의 법 감정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시민 2명으로 구성된 청렴시민감사관이 면책심의 전 과정을 참관하면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고발자 명칭도 ‘내부신고자’로 바꿔 거부감을 없앴다. 아울러 내부신고자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되면 감사관이 직접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내부신고 제도가 활성화 돼 잘못된 관행과 위법·부당한 행위가 사라지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자정 능력 없는 체육계… 빙상연맹부터 해체하고 쇄신하라”

    “자정 능력 없는 체육계… 빙상연맹부터 해체하고 쇄신하라”

     “파문 이후 열흘이 지났는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등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점이 너무도 명백하다. 해서 빙상연맹을 해체하는 등 강력한 쇄신 의지를 안팎에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심석희(22·한국체대)의 용기있는 고백 이후 열흘 넘게 흘렀지만 정부나 대한체육회 대응에 여러 한계가 보인다며 18일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마주한 전문가 3인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 임병선 선임기자가 사회를 본 좌담에서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 성문정 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위원이 아프게 지적한 내용들을 간추린다. 사회체육계의 현재 상황 보면서 힘들고 곤혹스러울 것 같다. 어떻게 보는지.  성문정한번 휘몰아치는 폭풍인 것 같다. 그동안 보면 6개월 정도 떠들썩하다가 흐지부지되곤 했다. 그 과정에 정부가 이슈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독립적인 기구나 역할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자신들의 권한이 축소된다고 느낀다. 당사자인 체육회는 면피하고 적당히 몇 사람 문책하면 잊는 일이 되풀이됐다. 정부 대책을 보면 지극히 단편적이고 왜 우리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느냐는 본질을 보지 못한다.  최동호과거와 다른 조짐이 있긴 하다. 젊은빙상인연대란 선수 출신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이어지고 있다. 언론에서도 자극적, 선정적으로 다루는 문제가 반복되지만 이참에 바꾸자고 목소리를 낸다.  함은주이번에 못 바꾸면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부문별로 연대의 노력이 커지는 등 각오도 커졌고 의지도 결연해졌다. 이번에는 바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성문정체육회나 정부의 개선안 보면 자정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체육계가 여전히 내부적으로 문제를 풀고자 한다. 피해자만 떠나는 구조가 됐다.  지난 11일 안민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윤리센터안 역시 제3의 기관일 뿐, 실질적 조사 권한이 없고 교육·홍보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최소한 사법경찰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가해자 강제소환권도 없다. 인지했는데도 조사를 안하면 법적으로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공약이라고 윤리센터만 던져놓았다고 볼 수 있다.  최동호 지난해 초부터 문체부에서 설문조사도 해 나도 사법 조사권을 부여하라고 촉구했는데 빠져 있다니 실망스럽다.  체육회 자정 능력 절대로 없다. 스포츠에는 적절하지 않은 말일 수 있지만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 스포츠 권력의 교체가 필요하다.  함은주윤리센터를 요구했던 것은 외부 사람이 들어와서 통제, 관리하고 지켜볼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기존에 어떻게 운영되고 있었길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인지, 한국 체육이 지향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논의하고 만들자는 것이었지, 이렇게 서둘러 만들자는 취지가 아니었다.  미국의 세이프 스포츠가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 비슷하다. 미국올림픽위원회(USOC)의 권한을 위임받아 상담과 법률 지원 연결 뿐만 아니라 신고 접수, 교육하는 기관이다.  최동호자꾸 기구만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지금 인권센터와 선수위원회에 제대로 된 사람 앉히면 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빙상연맹 해체시켜라. 선수 선발 등록 등은 체육회에서 할 수 있으니 이런 의지와 강력한 시그널 보내야 한다.  국위 선양 붙잡고 여태까지 먹고산 분들은 메달만 따면 정부도 용인했기 때문에 군림할 수 있었다. 엘리트 스포츠 붙잡고 평생을 살아온 분이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까 버릴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 보며 절망했다. 이런 인물들이 남아있는 한 체육계는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함은주메달을 포기하고라도 바꾸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동안 체육회가 메달만을 위해 매진했다는 것을 스스로 고해한 셈이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에게 어느 동료 교수가 얘기했다더라. ‘네 말대로 해 다음 올림픽에서 20~30위로 떨어지면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정 교수는 ‘월드컵 본선 진출 못해도 의연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대꾸했다더라.  최동호70~80년을 이어온 주류 세력은 교묘하게 반격한다. 자신들 입지가 흔들리면 한국 스포츠의 위기라고 증폭시킨다. 평창동계올림픽이나 리우올림픽 때도 목표에 미달했다며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줄어서 위기라고 한다.  시민사회가 이런 논리를 깨야 한다. 앞의 그 교수가 얘기한 책임, 아무일도 아니고 망하는 것도 아니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도 그 논리에 젖어 선수들을 운동 기계로 보고, 국위 선양의 관점에 익숙해 있다. 참여하거나 즐기는 게 아니라 박수 보내고 환호하다 국제무대에서 조금 처지면 실망하고 질타하는 식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본선 못 가도 상관 없으니 애들 데려다 때리고 공부 안 시키는 것 고쳐도 좋아, 이렇게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함은주그 출발은 남의 일이 아닌, 스포츠를 내 일처럼 인식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최동호심석희와 스포츠 미투를 넘어 정말 판을 바꾸려면 다른 얘기를 해야 한다. 빙상연맹 해체다. 문제를 일으킨 게 한두 번도 아니다. 다시 출발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동계올림픽 등 아무런 문제 없다, 연맹 해체가 뭐 그리 큰일인가, 문제 없다, 다시 논의해보자는 것이다.  사회스포츠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얘기인 것 같다.  최동호국가주의 대 개인주의 프레임, 엘리트 대 생활체육 프레임 만들고 싶다. 국민들도 국가주의 프로파간다에 세뇌돼 있으니 화두나 논란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책임있는 분들이 빙상연맹 해체하겠다고 나서야 한다.  성문정빙상연맹 해체해도 선수 피해 갈 일 없다. 지금 결단할 때가 오긴 했다. 체육단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가 무기력하고 의지 없다고 보인다. 국민들이 체육회에 맡기면 안된다는 것 뻔히 알면서도 월드컵과 올림픽 때만 되면 미치고 거기에 묻혀 그냥 놔둔다.  모든 특혜 누리며 밥만 먹으며 그거 하라고 하고, 그것밖에 못하나 질책하는 시스템이 과연 선진형이냐? 예전 사회주의 국가도 이러지 않았다.  국가대표 훈련일이 260일인데 그걸 어떻게 채우겠느냐. 진천선수촌은 세계 최고급으로 갖췄는데 리우와 평창 성적은 뒤로 갔다. 예전에는 대표팀에서 배운 것들을 소속팀에 돌아가 전수하곤 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저변이 다 무너진다. 정부가 앞장서 그렇게 하고 있다.  체육회 권력을 민주적 지향점을 지닌 인사들, 가치를 길게 보는 사람으로 채워야 하는데 정부가 그렇지 못하게 만든다. 예산 분배도 종목 단체에 직접 권한을 줬다가 조윤선 전 장관 때 원위치했다. 종목단체가 스스로 살림할 수 있는 능력 갖춰야 하는데 체육회가 다 해주고 보호막 쳐준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문제 터졌을 때 기자 질의에 답하는 형식을 통해 빙상연맹 해체하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또 훈련 일수 조정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반발 터져나오고 논의를 통해 수렴하고 혁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도권을 이미 정부가 빼앗겼다고 본다.  최동호전적으로 동의한다. 체육계 자정과 미래 설계 능력 없다. 정부가 자꾸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정부가 앞장서 올림픽과 월드컵 성적 걱정한다. 언론도 이를 부채질한다.  성문정체육계 안팎이 모두 무르다. 관료들은 유독 체육계와 체육회에 밀린다. 체육회 출입 기자들도 혜택을 누리니 강하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두가 방관할 뿐이다.  함은주늘 인식하며 고민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체육계 혁신의 어려운 점은 내부인이 나서지 않으면 사회 다른 부문으로부터 동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선수들이나 학부모들이 나서야 하는데 그걸 어렵게 만드는 여건이 분명히 있다. 심석희의 폭로 이전에 테니스 김은희씨가 있었고, 신유용씨가 지난해부터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제야 힘을 받게 됐다. 이런 점들이 고민스럽다.  함은주내부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외부에서 압박해줄 필요 있다. 지금 진행되는 사건들이 합리적으로 해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체조협회 임원 사건 때 피해자와 가해자 진술만으로 다퉜다. 내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다. 그러면 또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성문정맞는 말씀이다. 인지 신고 의무화를 도입할 필요 있다. 1차 가해자에 준하는 처벌할 필요가 있다. 외국엔 코치 윤리 강령이 있는데 대한체육회 규정을 살펴보니 국가대표 관리 지침에 남자가 여자숙소 들어가지 말라는 것, 딱 하나 있더라. 외국은 밀실에서의 일대일 만남, 훈련 외에 사적 면담 못하게 못박아 서명하도록 한다.  지도자 윤리강령 만들어놓고 계약 때 준수사항 서명하게 하고 처벌하게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안 지켰을 때 해촉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회이런저런 제도는 많이 갖춰져 있지만 엉성하다는 얘기인가.  성문정그렇다. 대한체육회를 정부가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정부는 정보도 많고 상황 판단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한다. 그래서 방조한다고 얘기한다. 얼마 전 문체부 간부가 체육회가 국가올림픽위원회(NOC) 기능도 함께 갖고 있어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변명했는데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체육회가 그런 얘기를 꺼내면 문체부가 한국올림픽위원회(KOC)와 분리하자고 치고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정부가 개입하면 안되고, 재정 지원 4000억원 받는 건 땡큐고, 그때마다 다른 얘기를 하는데 그것을 정부가 얼버무린다.  사회체육회가 두 개의 모자를 편한 대로 고쳐 쓰는데 정부가 그걸 비호하니 더 나쁘다는 얘기인 것 같다.  성문정맞다. 과거에는 올림픽 메달만 따면 잘했다고 넘어갔지만 지금은 나쁜 집단, 시스템 문제 있다고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노력했다고 하겠지만 본질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사건 터지니 개입 못하겠다고, 방관자를 자처하고 있다.  함은주우리가 성명서 발표한 것 있다. 궤변이라고. 평창 분산 개최 얘기할 때 IOC에 서한 보냈고, 평창에서 만났고, IOC 본부 가서 직접 담당관 만났다. 이 상황은 결코 정치적이지 않다. 체육회가 잘못해 자초한 일인데 그런 이유를 들이댄다면 가당찮은 일이다.  최동호문체부 간부의 진의는 따로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성문정그렇다. 쿠웨이트가 과거 문제 된 것은 NOC 위원장과 위원들을 정부가 선임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진의는 어떨지 몰라도, 별도로 가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얘기했어야 했다. 그 점이 아쉽다는 얘기다.  최동호동의한다. 불경스러운 일, 감히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책임있는 공직자라면 격랑 속에서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회이제 정리를 해보자. 정부는 의지 없고, 대한체육회는 기득권만 지키려 하고, 시민단체 뒷심 없고, 언론은 방관자라면 이 난국을 어떻게 누가 수습하는가.  최동호이기흥 회장 개인의 퇴장이 아니라 기득권의 퇴장이다. 아마 그가 물러난다면 엘리트 스포츠의 폐해를 국민들도 철저히 반성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 빙상연맹 해체해도 문제 없다, 큰일 아니다는 것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4년 뒤 이런 비슷한 일이 터졌을 때 조금 더 나아간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문정문체부가 국정 철학 기조만 따르면 된다. 정부의 법인 등록 권한만 활용해도 된다. 법인이 목적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해산시킬 수 있다. 체육회 관리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 누가 너무하다고 얘기하겠느냐.  함은주규정 잘 갖춰졌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운영자의 의지 만으로도 제재 가능하다. 성(젠더) 감수성 있는 이들이 권한을 행사했으면 그런 가해자들 발 못 붙였을 것이다. 여론의 압박이 있고, 그 영향을 받아 운영하는 사람이 의지를 보이니까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  사회체육회 내부적으로는 어떤가요.  최동호저희는 이기흥 대책회의라고 이름 붙였는데 인권의식은 없는데 정치적 감각은 탁월하다. 여성인권진흥원에 전화해 도와달라고 하고, 체육회장을 지낸 원로에게 매달리고, 최근에 시도협회 지도자들 시켜서 결의대회 열게 하는데 그게 또 언론에 먹히니 문제다.  함은주선수촌 여성 부촌장 내정 소문도 젠더 감수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증명된다. 신유용씨가 처음 폭로했던 지난해 아무것도 안한 분이, 그런 문제가 제기된 걸 모를 리 없는 분이 부촌장으로 임명된다니 얼마나 웃긴가. 그걸 보고 어떤 선수가 인권이 보호받겠구나 생각하겠는가 말이다.  사회오늘 말씀들이 체육계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되는 데 힘이 됐으면 합니다.  정리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태양광 발전 비리 한전직원 무더기 적발

    차명으로 태양광발전소를 분양받고, 발전소를 짓는 과정에서 공사대금을 후려치는 방법으로 뇌물을 받은 한국전력 직원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전주지방검찰청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한전 지사장급 고위 간부 A(60)씨 등 4명을 구속기소하고 9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공사대금을 깎아준 공사업체 대표 B(64)씨는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다른 1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한전 직원은 2013∼2017년 아내와 자녀 등 가족 명의로 태양광발전소를 분양받아 보유하고, 공사 과정에서 대금 1000만∼1억원을 할인받아 사실상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한전 취업규칙 및 행동강령에 따르면 회사의 허가 없이 자기사업을 운영할 수 없음에도 해당 직원들은 직위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태양광발전소의 수익성과 안전성을 확신한 이들은 내부 정보 등을 이용해서 빠르게 발전소를 분양받을 수 있었다. 특히 전력공급을 담당한 한 한전 직원은 공사업체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전기사업허가를 얻고 한전과 전력수급계약을 맺는 과정에 도움을 줬다. 공사업체 대표 B씨는 한전 직원들로부터 각종 편의를 받는 대신 공사대금을 적게 받아 사실상 뇌물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한 간부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부하 직원에게 ‘네 업무 실수인 것처럼 진술하라’고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태양광발전소를 차명으로 보유했으나,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한전 직원 30명에 대해선 기소하지 않는 대신 한전에 비위 사실을 통보했다. 조사 결과 검찰 수사에 적발된 한전 직원이 보유한 태양광발전소는 120기가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그동안 태양광발전소와 관련해 각종 인허가권을 쥔 한전 직원들과 사업에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는 공사업체 간에 ‘갑을관계’가 유지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태양광발전소는 수익이 안정적이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된다”며 “가족 명의로 태양광발전소를 보유하면 쉽게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현직 법원장이 기업으로부터 ‘야구·영화표’ 수수 의혹

    현직 법원장이 기업으로부터 ‘야구·영화표’ 수수 의혹

    현직 법원장이 기업에서 부적절한 금품·편의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법원행정처가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기정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이 2016년 법원도서관장으로 있으면서 금품을 받았다는 법관징계청구요구서가 접수돼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 사실을 파악 중이다. 김 원장은 그해 6월 SK 와이번스 홈구장인 인천 문학경기장 스카이박스에서 직원들과 함께 야구를 관람했다. 김 원장은 관람권 16장을 받아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과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으로 알려졌다. 스카이 박스 16인석은 현재 시가로 90만 원 상당이다. 또 김 원장은 그해 9월 직원 30~40명과 함께 1박 2일로 캠프를 다녀왔다. 이들이 간 글램핑장은 커피체인점 이디야가 운영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 영화 <판도라>와 <더 킹> VIP 시사회 티켓도 공짜로 받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이 같은 의혹은 당시 법원도서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한 직원이 법관징계청구요구서를 내면서 알려졌다. 해당 직원은 현재 법원에 근무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김 법원장은 “법령상 문제가 없는지 검토를 거쳤다”면서 “기관장으로서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해명했다. 또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없어 법령상 문제가 없고, 일부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서부지법 관계자는 “현행 법령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이며 특히 커피체인점 상품권 관련 의혹은 명백히 없었던 일로 징계 요청자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가성을 떠나 기업으로부터 금품과 편의를 받은 것 자체만으로도 고위 법관으로서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법관윤리강령 제3조는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공익침해·공무원부패·갑질행위 신고하세요’...경기도 공익제보 창구 운용

    ‘공익침해·공무원부패·갑질행위 신고하세요’...경기도 공익제보 창구 운용

    경기도가 14일 도 홈페이지에 공익제보 전담신고 창구 ‘경기도 공익제보 핫라인-공정경기 2580(hotline.gg.go.kr)’을 개설해 운영에 들어갔다. 공익제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 이익 등 284개 법률 위반 행위를 신고하는 ‘공익신고’와 공직자나 공공기관 부패행위 등을 신고하는 ‘부패신고’, ‘경기도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신고’, ‘갑질 행위 신고’를 말한다. 신고 사항이 있으면 해당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고 내용을 남기거나 우편(경기도청 감사관) 또는 팩스(031-8008-2789)로 신고하면 된다. 제보 관련 상담 전화(031-8008-2580)도 운용한다. 접수 내용은 감사관이 실시간으로 확인해 직접 조사 후 처리한다. 도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와 보상도 강화했다. 제보자 보호를 위해 비실명대리신고제를 운용한다. 신분 노출 우려로 제보를 주저하는 사람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반부패·환경 등 6개 분야별 17명의 변호사가 대리신고를 전담한다. 보상금은 상한액을 두지 않고 공익제보로 인한 도 재정 수입의 30%를 지급한다. 예컨대 공익제보로 인한 환수금 등으로 10억원의 재정 수입이 발생했을 경우 제보자는 3억원을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다. 재정수익은 발생하지 않지만, 손실을 막아 공익에 기여한 경우에는 도 공익제보지원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최대 2억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한다. 최인수 경기도 감사관은 “이번 조치는 민선 7기 경기도가 추진 중인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만들기’의 일환으로 사회 전반적인 견제 역할을 도민에게 맡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정치·경제·교육 균등이 기초…모두가 평등한 사회 꿈꾸다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정치·경제·교육 균등이 기초…모두가 평등한 사회 꿈꾸다

    “우리나라는 우리 민족이 반만년래로 공동한 언문과 국토와 주권과 경제와 문화를 가지고 공동한 민족정기를 길러온 우리끼리로서 형성하고 단결한 고정적 집단의 최고 조직임.”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사상가인 조소앙(본명 조용은·1887~1958)이 작성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등록문화재 제740호)의 첫 구절이다. 우리나라 헌법의 뿌리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은 대한민국이 단일한 언어와 국토, 주권, 경제, 문화를 가진 민족국가임을 명시한 것을 시작으로 광복 후 임시정부가 건설할 민족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건설 계획을 담았다. 임시정부 수립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광복 직후까지 주요 지도자로 활동한 조소앙은 광복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한국전쟁 때 납북됐다. 국한문을 섞어서 적은 건국강령 초안은 가로 27.1㎝, 세로 36.9㎝ 크기의 원고지 10장 분량이다. 민족국가 건설의 당위성과 원칙을 밝힌 총강(總綱), 독립운동의 과제와 방법을 명시한 복국(復國), 건국 단계에서 실행할 구체적인 정책을 언급한 건국(建國) 등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조소앙이 창안한 ‘삼균주의’(三均主義)가 기반이 됐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균등사회를 건설해 국민 전체가 평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이상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천명하고 있다. 조소앙이 기초한 건국강령은 1941년 11월 28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원안대로 통과됐고, 1948년 제헌헌법의 기본적이 바탕이 됐다. 조소앙이 직접 붓으로 작성한 이 문서는 여러 군데 줄을 긋거나 지우고 다시 고쳐 쓴 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가 얼마나 고심하며 글을 작성했는지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종이 바깥 부분에 일부 손상이 있지만 내용은 손상 없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조소앙의 손자이자 조소앙기념사업회 위원장인 조인래씨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와 설계 이후 해야 할 일들을 담은 건국강령은 ‘헌법의 꽃’과도 마찬가지”라고 자평했다. 그는 이어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혁명을 이룰 때도 그랬듯이 지난날 우리가 외쳤던 가장 뜨거운 단어가 ‘국민주권’과 ‘민주공화국’이 아니겠나”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신과 열망이 담긴 이 문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1964년 지은 서울 옛 공군사관학교 교회, 문화재 된다

    1964년 지은 서울 옛 공군사관학교 교회, 문화재 된다

    1964년 건립된 ‘서울 구 공군사관학교 교회’가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2일 건축가 최창규가 설계한 동작구 보라매공원 내 ‘서울 구 공군사관학교 교회’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현재 전시 공간인 동작아트갤러리로 쓰이고 있는 이 교회는 삼각형의 외관과 수직성을 강조한 내부 공간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당시 일반적인 교회 건축 형식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건축 기법이 사용됐다. 공군사관학교(충북 청주)의 옛터인 보라매공원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흔적으로 역사적 가치도 인정받았다. 더불어 문화재청은 제헌헌법의 뿌리이자 기초로 평가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과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은 독립운동가 조소앙(본명 조용은·1887∼1958)이 삼균주의(三均主義)에 입각해 독립운동과 건국 방침을 국한문 혼용으로 적은 친필 문서다. 조소앙이 주창한 삼균주의는 개인·민족·국가 간 균등과 정치·경제·교육 균등을 통해 이상 사회를 건설하자는 이론이다. 건국강령은 1941년 11월 28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일부 수정을 거쳐 통과됐다. 임시정부가 광복 이후 어떠한 국가를 세우려 했는지 알려 주는 유물이자 조소앙이 고심하며 고친 흔적이 남아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6년에 건립한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은 등록문화재 제741호가 됐다. 학교 내 중심이 되는 건물로, 고대 그리스식 기둥과 삼각형 박공벽을 사용한 서양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한국적 요소인 태극과 무궁화 문양을 가미한 점이 특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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