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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강도 수사 한풀 꺾이나…檢, 돌연 정경심 소환 비공개 방침

    고강도 수사 한풀 꺾이나…檢, 돌연 정경심 소환 비공개 방침

    檢 “건강 우려… 소환 방식 원점 재검토” 文대통령 경고·대규모 촛불 영향 관측 ‘웅동학원 채용비리’ 뒷돈 전달책 구속검찰이 돌연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비공개 소환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검찰은 소환 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검찰 안팎 상황을 고려하면 비공개로 소환할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이은 경고와 대규모 촛불집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일 검찰 관계자는 “정 교수 소환 방식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주 자택 압수수색 이후로 (정 교수의) 건강 상태가 이슈가 되고, 소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수사 진행에 차질이 생기면 수사팀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주만 해도 정 교수의 소환을 통상적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청사 1층 출입문을 통해 출입하고, 포토라인에도 설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검찰청사 1층은 정 교수 출석을 기다리는 취재진 수십명이 매일 대기하고 있다. 검찰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정 교수의 건강 상태와 소환 때 취재진이나 시민과의 물리적 충돌을 우려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검찰을 둘러싼 유·무형의 압박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 측은 소환 일정을 조율하면서 건강 상태를 이유로 일정을 늦춰 달라거나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비공개 소환이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강도 높게 수사하던 검찰이 외부 압박을 받아 수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23일 검찰이 조 장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과도한 먼지털이식 수사’라는 비판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11시간 압수수색’, ‘짜장면 논란’ 등 언론보도가 쏟아지자 검찰이 이례적으로 압수수색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적인 여론은 주말 대규모 촛불집회로 이어졌고 예상보다 많은 인원에 검찰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공개로 진행될 소환 방식을 재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조 장관 일가가 운영하는 사학법인 웅동학원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조 장관 동생 측에게 돈을 전달한 A씨가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구속사유가 인정된다”며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고형곤)는 웅동학원 교사 지원자 부모들로부터 채용을 대가로 수억원을 받아 조 장관 동생인 조모(52)씨에게 전달한 혐의(배임수재 등)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A씨가 구속되면서 금품을 최종적으로 챙긴 것으로 지목된 조씨에 대한 신병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조씨는 가족이 운영하는 웅동학원으로부터 허위공사를 근거로 공사대금 채권을 확보하고 학교법인 관계자들과 위장 소송을 벌였다는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조국 법무부 장관 동생 이틀 연속 소환…검찰, ‘웅동학원 의혹’ 집중 조사

    조국 법무부 장관 동생 이틀 연속 소환…검찰, ‘웅동학원 의혹’ 집중 조사

    검찰, 전날 13시간 넘게 조사 후 이날 오전 재소환 검찰이 조국(54) 법무부 장관 동생 조모(52)씨를 이틀 연속 소환해 웅동학원 관련 의혹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부장 고형곤)는 27일 오전 조씨를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웅동학원에 공사비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경위 등을 물었다. 전날(26일)에 이은 이틀째 고강도 소환조사다. 조씨는 전날 검찰에 처음 소환돼 13시간 넘게 조사를 받고 자정 무렵에 귀가했다. 조씨의 전처 조모(51)씨도 전날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조씨는 전날 귀갓길에서 ‘웅동학원의 위장 소송 의혹이 사실인지’, ‘억울한 부분이 있는지’ 등 취재진의 질문에 “(검찰에서) 다 말씀드렸다”며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조씨를 상대로 웅동학원과 관련한 의혹을 집중적으로 캐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웅동학원은 조 장관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는 이사장으로,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이사로 있는 곳이다. 조 장관도 10년간 이사로 재직했다. 건설업체 고려시티개발을 운영하던 조씨는 조 장관 부친이 이사장을 지낸 웅동학원을 상대로 200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공사대금 채권 소송을 내 지연이자를 포함해 현재 100억원 안팎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웅동학원이 소송 과정에서 변론을 포기하면서 고의로 패소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웅동학원이 1995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동남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35억원의 행방도 수사 대상이다. 당시 웅동학원은 웅동중학교 이전 신축공사비 명목으로 대출을 받았지만 대출금이 공사에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웅동학원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의해 학교 재산을 가압류당했다. 검찰은 이 소송 과정에 조 장관이 관여했지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조 장관 관련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강제수사에 착수하면서 웅동학원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웅동학원 전·현직 이사 등 관계자들을 잇따라 불러 조사했고 지난 21일에는 추가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살인죄 공소시효 없앤 ‘태완이법’ 4년…범인 잡은 미제사건들

    살인죄 공소시효 없앤 ‘태완이법’ 4년…범인 잡은 미제사건들

    ‘태완이법’ 시행으로 10여년 만에 잡힌 살인범들대한민국 대표 미제사건으로 꼽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모(56)씨가 붙잡히면서 역대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2015년 도입된 ‘태완이법’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태완이법은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다. 1999년 6살 김태완군이 대구 골목길에서 괴한에게 황산테러를 당해 숨진 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경찰에 따르면 태완이법이 시행된 뒤 각 지방경찰청에는 장기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편성됐다. 이 팀은 발생한지 5년 이상 지난 살인사건들을 넘겨받아 재수사한다. 과거보다 국내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하면서 진범을 잡는 경우도 늘고 있다. 태완이법 이후 해결된 대표 미제사건들을 소개한다. ●‘첫 장기미제 해결’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 발생: 2001년 2월 4일검거: 2015년 10월미제기간: 14년17세 여고생을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한 진범이 14년 만에 붙잡혔다. 이 사건은 태완이법이 시행된 뒤 경찰이 해결한 첫 사례로 꼽힌다. 피해자는 2001년 2월 4일 전라남도 나주 드들강 유역에서 나체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시신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액을 발견했지만 DNA가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제 사건이 됐다. 이후 2012년 대검찰청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해 DNA 주인이 강도살인으로 복역하고 있는 김씨(42)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다. ‘태완이법’을 계기로 재수사가 이뤄지면서 김씨는 2015년 10월 검찰에 송치됐다. 2016년 8월 광주지검이 김씨를 강간 등 살인죄로 기소했고 이듬해 12월 대법원은 김씨에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첫 유죄확정’ 용인 교수부인 살인사건 발생: 2001년 6월 28일검거: 2016년 8월미제기간: 15년의대 교수 부부의 단독주택에 침입해 부인을 살해한 남성이 15년 만에 붙잡혔다. 진범 김모씨(55)는 2001년 6월 28일 오전 4시쯤 경기도 용인시 A(당시 55세)씨의 단독주택에 공범 B씨와 함께 침입해 A씨의 부인(당시 54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경찰은 형사 27명을 동원한 전담팀을 꾸리고 5000여명을 용의선상에 올려 수사했지만 결국 2008년 2월 9일 미제사건으로 분류됐다. ‘태완이법’이 도입되면서 용의선상에 올랐던 이들을 대상으로 재수사가 진행된 가운데 공범 B씨가 가족에게 범행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진범이 밝혀졌다. B씨는 2016년 8월 경찰 출석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김씨는 입건됐다. 이듬해 11월 대법원이 김씨에 무기징역을 확정하면서 태완이법 시행 이후 첫 유죄확정 사례가 됐다. ●의성 뺑소니 청부살인 사건 발생: 2003년 2월 23일검거: 2016년 5월미제기간: 13년뺑소니 교통사고를 위장해 남편을 청부살해한 아내가 13년 만에 붙잡혔다. 피해자 김모(당시 54세)씨는 2003년 2월 23일 오전 1시 40분쯤 경북 의성군 다인면 한 농촌 지역 도로에서 1t 트럭에 치이는 뺑소니 사고를 당해 숨졌다. 뺑소니사건 공소시효는 10년인 탓에 2013년 수사가 미해결로 종결됐다. 그러나 2015년 “보험금을 노린 뺑소니 교통사건이 있다”는 첩보가 금융감독원에 입수되면서 경북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당시 사건 기록을 재검토했다. 그 결과 이듬해 5월 아내 박모(68)씨가 5억원이 넘는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의 여동생과 지인 최모씨를 시켜 교통사고를 위장해 남편을 청부살해한 것으로 밝혀져 구속됐다. 대구지법은 2016년 11월 박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아산 갱티고개 살인사건 발생: 2002년 4월 18일검거: 2017년 6월미제기간: 15년단골 노래방 주인(당시 46세)을 살해하고 충남 갱티고개에 시신을 유기한 남성 2명이 15년 만에 붙잡혔다. 직장 선후배 사이였던 A(52)씨와 B(42)씨는 2002년 4월 18일 오전 2시 반쯤 충남 아산시 송악면 갱티고개 인근에서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던 노래방 주인에게 금품을 갈취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의 초기 수사 때 이들이 용의선상에서 배제되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태완이법 시행 이후 충남경찰청은 프로파일러 8명 등 미제사건 수사팀을 꾸려 공범 존재와 피해자와 면식범이라는 점을 예측한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토대로 재수사를 벌인 결과, A씨가 2017년 6월 붙잡히고 뒤이어 공범 B씨도 검거됐다. 대전지법은 2017년 말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경찰이 10여년 만에 미제사건 용의자를 검거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무죄가 선고돼 논란을 빚은 경우도 있다. ●‘무기징역→무죄’ 부산 태양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발생: 2002년 5월 21일검거: 2017년 8월미제기간: 15년부산 사상구 괘법동 태양다방 종업원(당시 21세)은 2002년 5월 21일 밤 퇴근길에 납치당해 수십차례 칼에 찔려 숨졌다. 피해자의 시신은 마대자루에 담겨 부산 강서구 바닷가에 유기됐다. 미제로 남은 이 사건은 부산경찰청 장기미제전담팀의 재수사로 2017년 15년 만에 용의자 양모(48)씨가 검거됐다. 이 과정에서 부산청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수배에 나섰고 시민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씨는 1심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살인 증거가 부족하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파기환송했다. 부산고법은 지난 7월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양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흉기 등 직접적인 살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양씨가 (시신이 든 것으로 보이는) 마대자루를 들고 옮겼다”는 동거여성 진술에 왜곡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검찰은 무죄 선고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한편 화성 연쇄살인과 같이 2000년 8월 1일 전에 발생한 살인사건은 ‘태완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태완이법은 법이 발효된 2015년을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았던 살인죄에 대해서만 소급 적용한다. 경찰에 따르면 적용 대상 미제사건은 273건이다. 이에 살인죄 공소시효를 완전히 폐지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9일 오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화성 연쇄 살인 범인 공소시효 무효화! 청원 신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디언 “한국서 몰카 일상, 대통령도 인정”... 文 관련발언 보니

    가디언 “한국서 몰카 일상, 대통령도 인정”... 文 관련발언 보니

    스페인 마드리드 500명 몰카 보도하며“韓 ‘molka’는 일상 일부… 대통령 인정” 文, 2017년부터 3차례 엄중 수사 주문뿐 英독자 “한국 몰카천국?” 왜곡 인식 우려 가디언이 21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몰카’ 사건을 보도하며 한국에 대해 왜곡된 보도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가디언은 이날 스페인 마드리드 지하철에서 500명 이상 여성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53세 콜롬비아인 남성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각국이 이런 범죄에 대응하는 방식을 비교했는데 한국에서는 몰카범죄가 일상이며 대통령도 이를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한국에서는 ‘molka(몰카)’로 알려진 이런 행위가 고질병이 됐으며, 심지어 대통령도 그것을 ‘일상의 일부(a part of daily life)’라고 인정(acknowledged)했을 정도”라고 썼다. 하지만 이런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상 곳곳에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이런 범죄에 대해 강력 대응을 주문했으며, 지금까지 수사·처벌 강도가 낮았다는 건 인정했지만 한국에서 몰카가 일상의 일부라고 인정한 적은 없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몰카 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 대책을 주문했으며, 국무회의에서 종합대책도 내놨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초소형 카메라, 위장형 카메라 등 디지털기기를 사용하는 몰래카메라 범죄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사내 화장실이나 탈의실, 공중화장실, 대중교통 등 일상생활 곳곳에서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어 여성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몰카범죄, 데이트폭력 등은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성 범죄다. 우리 수사당국의 수사 관행이 조금 느슨하고 단속하더라도 처벌이 강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수사기관들이 조금 더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옛날에 살인, 강도, 밀수나 방화 같은 강력 범죄가 있었다면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몰카범죄 등도 중대하다”며 “과거에는 있을 수 있는 범죄로 보거나 관념이 약했기 때문에 처벌의 강도가 낮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미국 등을 보면 가정폭력을 신고하면 곧바로 접근을 금지하고 제대로 피해자를 보호한 뒤 사실이 확인되면 엄하게 처벌한다. 이런 식으로 성차별적 사회를 바꿔나간다”며 “우리도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 사건을 다루는 관점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에도 “여성들의 문제의식은 몰카범죄 및 유포에 대한 처벌이 너무나 가볍고 미온적이라는 것”이라며 “수사가 되면 (가해자의) 직장이라든지 소속 기관에 즉각 통보해 가해를 한 것 이상의 불이익이 가해자에게 반드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준영, 최종훈 등 연예인들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몰래 찍은 성관계 영상을 공유하고 김성준 전 SBS 앵커가 여성 신체부위를 몰래 촬영하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등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 독자들이 한국에서는 몰카가 일상의 일부라고 인식할 수 있는 보도 내용은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가디언은 한국에 관해 “범법자들은 많은 벌금과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지만 인권운동가들은 매년 수천명이 검거됨에도 불구하고 실제 처벌 받는 사례는 거의 없으며 경찰은 여성의 고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면서 “지난해에는 여성 2만명 이상이 엄중한 단속을 요구하며 서울 거리로 나왔다”고도 했다. 한편 가디언에 나온 콜롬비아 출신 남성은 여성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치마 속을 촬영해 ‘업스커트’라 불리는 영상을 제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영상물 중 적어도 283개를 다수의 포르노 사이트에 올렸으며, 영상은 수백만회 이상 노출됐다는 것이 경찰 설명이다. 경찰이 지금까지 확인한 피해자는 555명이며 일부는 미성년자였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 남성은 최소 2018년 여름부터 이 같은 영상을 매일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가 지역 철도역, 슈퍼마켓 인근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자들을 미행한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더 나음 품질 영상을 얻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 남성을 구속했으며 그의 집을 압수수색한 결과 영상 수백개가 저장된 노트북, 하드디스크드라이브 3개를 발견했다. 그가 만든 사이트 가입자는 3519명이었으며, 그가 올린 영상은 각각 100만건 이상 조회됐다. 영국에서 이런 수법의 ‘업스커트’ 영상은 작가 지나 마틴이 음악축제에서 피해를 당한 뒤 이를 불법화하는 캠페인을 하면서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남의 옷 속을 몰래 촬영할 경우 최고 2년 징역형에 처해진다. 스페인에서도 이런 행위를 성학대로 분류하고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민생침해 탈세 대부업자·유흥업소 등 163명 세무조사

    민생침해 탈세 대부업자·유흥업소 등 163명 세무조사

    클럽, SNS로 ‘조각 모음’ 테이블 판매 고금리로 돈 빌려주고 차명계좌 관리국세청이 악의적·지능적 탈세가 의심되는 유흥업소와 불법 대부업자, 고액학원 운영자 등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의 탈세수법은 단순 현금매출 누락 방식이 많았지만 최근엔 지분 쪼개기 등을 통해 명의를 위장하거나 변칙 결제 방식을 사용하는 등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국세청은 민생침해 탈세 혐의자 163명을 추려내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17일 밝혔다. ‘민생침해 탈세자’란 서민을 상대로 불법·탈법적 행위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하면서도 변칙적으로 세금을 탈루하는 사업자를 말한다. 업종별로는 대부업자가 86명으로 가장 많고 유흥업소 종사자 28명, 불법 담배판매업자 21명, 고액학원 운영자 13명, 장례·상조업자 5명 등이다. 유흥업소의 경우 클럽 등에서 MD로 불리는 영업사원이 인터넷 카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조각 모음’으로 테이블을 판매하고 MD 계좌로 돈을 받아 수입을 누락하는 사례가 적발됐다. 조각 모음은 고액의 테이블 비용을 여러 명이 분담할 수 있도록 인터넷으로 모객하는 영업을 말한다. 가격 할인을 미끼로 현금 결제를 유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액 학원에서는 인터넷 강의 수강료가 입금되는 가상결제 시스템에 연결되는 정산계좌를 차명계좌로 만들어 탈세하는 사례가 적발됐다. 영어학원 운영자는 고액의 학원비를 자신의 9살 조카와 지인의 2살 된 자녀 등 미성년자 명의 차명계좌로 받으면서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수법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업자들은 급전이 필요한 기업을 상대로 자금을 고리로 단기 대여하고, 원금과 이자는 직원 명의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하면서 수입 금액을 누락하는 사례가 많았다. 장례업체나 인테리어업자의 경우 가격 할인을 미끼로 현금을 받거나 직원 명의 위장 사업장을 통해 대금을 받다가 적발됐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대상자 본인은 물론 가족 등 관련인의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자금 출처 조사도 병행하는 등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명의 위장이나 조세포탈 혐의가 큰 대형 유흥업소 등에 대해서는 검찰과 협의해 압수·수색영장을 적극 집행하기로 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국방부, 1함대 방문 난색 “사기저하”…한국당 “靑 눈치보기”

    국방부, 1함대 방문 난색 “사기저하”…한국당 “靑 눈치보기”

    자유한국당은 24일 북한 어선이 입항한 강원도 삼척항을 찾아 군 등의 경계 실패를 강하게 질타했다. 한국당은 이날 동해시에 위치한 해군 1함대를 방문하려 했지만 국방부의 거부로 함대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당 ‘북한 선박 입항 은폐조작 진상조사단’ 소속 의원들은 이날 해군 1함대를 찾아 군 당국의 경계 실패를 강도 높게 규탄했다. 한국당은 당초 1함대로부터 정식 브리핑을 받겠다는 입장이었지만 국방부가 장병 사기 저하를 이유로 난색을 보이면서 함대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것으로 대체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백승주 의원에 따르면 한국당 진상조사단은 지난 21일 국방부에 1함대 방문을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23일 팩스를 통해 “한국당 북한 선박 입항 관련 진상조사단 부대 방문의 건이 제한됨을 회신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20일부터 북한 소형목선 상황과 관련해 육군 23사단과 해군 1함대사령부를 대상으로 합동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합동조사를 실시하는 상황에서 한국당의 진상조사단이 현장 확인을 하면 성어기 경계작전 강화 지침에 따라 임무수행 중인 장병들의 군사 대비태세에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사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진행 중인 합동조사와 경계작전 및 장병사기 등을 고려해 차후 국회 국방위원회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방문 요청이 있으면 지원해 드릴 수 있음을 협조 드린다”고 전했다. 한국당은 국방부의 회신에도 불구하고 이날 1함대를 찾았다가 결국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영우 의원은 회견에서 “군은 청와대 눈치를 보고 청와대는 북한 눈치를 보면 대한민국 국토를 지킬 수 있겠느냐”며 “대한민국 국방이 체계적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의원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해양수산부 동해지방해양수산청을 찾아 사건 당시의 해수부가 관리하는 사건 당시의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이 있는지 점검하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와 진상조사단 소속 의원들은 이날 오전 오전 9시 삼척 해양경찰 파출소부터 찾았다. 삼척 파출소는 지난 15일 오전 북한 어선에 대한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곳이다. 나 원내대표는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경계가 뚫린 부분, 은폐가 의심되는 부분, 선원 2명을 북으로 수상하게 북송한 부분 등 의문점이 세 가지”라고 말했다. 김영우 의원은 “이 사건은 국방 게이트”라며 “대국민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사건 당시 초동 대응에 나섰던 경찰 2명을 불러 당시 선원의 행색과 진술, 어선 내 그물 등에서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자세히 물었다. 초동 출동에 나선 오 모 경사는 “이상한 것은 모르겠지만 선내 주변이 좀 깨끗했다”며 “조업을 하다 옷을 갈아입은 것인지 어땠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도읍 의원은 동석한 동해해경 홍보담당관에게 ‘북 어선이 기관 고장으로 표류했다’는 언론 대응 내용을 어느 윗선에서 지시한 것인지 추궁했다.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김성찬 의원은 방파제에서 북한 어선을 탐문하는 경찰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함께 보고는 “흰옷을 입고 주위를 의심스럽게 배회하는 사람이 있는데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파출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삼척항 방파제로 이동해 선박이 접안했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나 원내대표는 “삼척항으로 향하는 바닷길 목에 육군 23사단 감시초소가 있는데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왜 탐지를 하지 못한 것이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파출소 인근 삼척수협에서 이어진 어민과의 간담회에서는 어민들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박수진 수협조합장은 “어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며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혀주는 것이 삼척 어민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북한 목선과 선원들의 사진을 처음으로 찍었던 전모씨는 “그물을 봤을 때 제가 판단하기로는 위장이다”라며 “복장도 일하고 왔던 사람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간담회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현장에 와서 보니 우리 안보에 구멍이 뻥 뚫렸다. 안보 해체를 넘어 모든 것이 은폐 조작된 게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며 “조사단의 조사 이후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광복 위해 죽는 날까지 싸우겠다”… 임정 자금 대고 발해농장 개척

    “광복 위해 죽는 날까지 싸우겠다”… 임정 자금 대고 발해농장 개척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니 유한(遺恨)이 없다. 동포의 고난을 네 고난으로 알고 살아가거라. 가사(家事)든 국사(國事)든 오직 자력(自力)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58세의 백산 안희제를 일제는 9개월 동안이나 악랄하게 고문했다. 피가 눌어붙은 죄수복을 입고 반송장이 돼 풀려난 백산은 장남 상록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몇 시간 후인 1943년 9월 12일 새벽 2시, 백산은 숨을 거두었다.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광복 두 해 전이었다.백산은 1885년 9월 12일 충절의 고장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마을(설뫼마을)에서 태어났다.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의 생가가 지척에 있는 곳이다. 백산의 선조 안기종은 왜병과 싸운 의병장이었다. 입산마을은 낙동강 지류인 유곡천이 마을 앞에 흐르는 비옥한 땅으로 백산의 집안은 700석 부자였다. 안향의 후손인 탐진 안씨가 조선 중기부터 이 마을에 정착했으며 선생의 생가인 ‘백산고가’(白山古家)가 남아 있었다. 부산에서 살고 있는 백산의 장손자 안경하(80)씨를 만나 백산의 일생에 대해 들었다. 안씨의 어머니, 즉 백산의 며느리는 왕산 허위의 형인 방산 허훈 가(家)의 자손과 결혼했다고 한다. 안씨는 “할아버지는 가족이 무슨 일을 하는 줄도 모를 정도로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했다”고 말했다. “새는 한가하여 벽곡(僻谷)을 찾았는데 해는 싫어하여 중천에 떠 두루 비치도다.” 한학에도 뛰어났던 선생이 유년 시절 지은 시다. 백산은 20세에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달이 밝은 날 밤 몰래 구국의 일념으로 상경했다.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1년 후 양정의숙으로 옮겼다. 백산의 조국독립 방략은 무력 저항보다는 실력 양성, 계몽운동이었다. ●발해농장, 실질적인 국외 독립운동기지 1909년 먼저 부산 구포에 구명학교를, 의령에 의신학교를, 입산마을에 창남학교를 세웠다. 그해 9월에는 남형우, 김동삼, 서상일 등과 함께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체인 대동청년단을 결성했다. 26세 때인 1911년부터 3년 동안은 러시아와 만주를 돌아보며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다. “국민을 교육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우리가 가난해서는 어렵습니다. 부산을 일본인 손에 넘겨줘서야 되겠습니까.” 귀국한 백산은 부산으로 가서 이렇게 호소해 1914년 9월 백산상회를 창립했다. 고향 논 2000마지기(40만평, 132만㎡)를 팔아 자금으로 썼다. 백산상회는 곡물, 면포, 해산물을 위탁 판매하는 개인기업이었다. 3년 후 합자회사로 전환, 경남 양산의 대지주 윤현태와 경주 최부자로 유명한 최준 등 영남 자산가들로부터 거액의 협력을 받았다.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이 일 무렵인 1919년 초 백산상회는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대 개편됐다. 주주들의 출자금 대부분은 임정 운영자금으로 보내졌다. 윤현태의 동생 윤현진은 아예 상해로 건너가 임정 재무차장을 맡았다. 백산상회는 국내외 20여 곳에 지점 및 연락사무소를 두었다. 겉만 기업이었지 독립운동 자금원이자 연락조직이었다. 김규식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할 때 백산은 경비를 제공했다. 낌새를 알아차린 일제는 수색, 고문, 장부 검열을 계속했지만 단서를 잡지 못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장부상 결손으로 꾸며 추적을 따돌렸다. 백산은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다. 일본인 여관에 묵었으며 금테 안경을 쓰고 일본식 복장을 했는데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위장술이었다. 그러나 1921년부터 자금난이 심해졌고 주주들 간에 마찰이 생겼다. 경영 부실보다 독립운동 자금 탓이 컸다. 1928년 1월 백산상회는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광복 후 백범 김구가 최준에게 독립운동 자금 장부를 보여주자 최준은 백산의 묘소를 향해 엎드려 통곡했다. 그가 준 돈이 한 푼도 어김없이 임정에 전달됐음을 보았기 때문이다.백산상회를 경영하는 한편으로 백산은 자산가들의 지원을 받아 후학 양성을 위한 기미육영회를 결성했다. 국회의원과 사회부 장관을 지낸 전진한,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북한 조평통 위원장을 지낸 국어학자 이극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신성모 등이 육영회 돈으로 독일, 영국에서 유학했다. 백산의 눈길은 언론으로 향했다. 이미 1920년 4월 동아일보 발기인으로 창간에 참여했었다. 1928년 6월 당시 3대 일간지의 하나로 필화사건을 겪던 중외일보를 인수, 사장으로 취임했다. 임원진 중에는 독립운동가 최윤동, 임유동도 있었다. 백산은 조석간 발행 등 지면 및 경영혁신을 꾀했다. 그러나 일제 통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다 1929년에 26회, 1930년에 31회 신문을 압수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다. 그러는 새 경영은 날로 어려워져 1931년 9월 중외일보는 결국 해산하고 말았다. 조국 땅을 지키며 민중과 더불어 합법적인 조직과 방법으로 독립을 꾀하겠다던 백산의 계획은 뜻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좌절밖에 없었다. 백산은 지인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조국은 감옥이다. 자유 천지에 나가서 활개를 펴고 조국 광복을 기어코 달성하는 데 죽는 날까지 싸워보겠노라.” 백산이 선택한 또 다른 길은 만주였다. 만주 땅을 일궈 빈농의 자립을 돕고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자 했다. 김태원이라는 경제적 협력자를 구했다. 그는 경북 봉화 금광에서 노다지를 캐내 일약 거부가 되어 백산과 가까이 지내던 인물이었다. 만주 목단강성 영안현에 토지를 매입했다. 발해국 고도인 동경성이 있었던 곳이다. 1932년부터 목단강 상류 일부를 석축으로 막고 수로를 내 황량한 땅을 개간했다. 백산은 발해농장으로 이름 짓고 조선에서 실농 300여호를 이주시켰다. 자작농창제(自作農創制)를 고안했다. 농민에게 분배한 토지에서 생산한 곡물의 절반을 받아 다른 농지를 개간하고 수도를 개설하며 토지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해 자작농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1935년까지 농장 직경은 4㎞가 넘었고 수로는 16㎞에 이르렀다. 수차 증자받은 돈은 농장경영 자금 외에는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몰래 보냈다. 백산은 청년기에 귀의했던 대종교에 심취했다. 발해농장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대종교로 정신적 결집을 이루고자 했다. 대종교 총본사를 동경성으로 옮겼다. 대종교 서적을 간행하고 단군전인 천진전을 건립했다. 이를 통해 독립투쟁을 벌이고자 했다. 발해농장은 표면적으로는 농장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외 독립운동기지였다.●백산 장손자 “후손들 할아버지 이름 기억” 농장 규모가 커지고 교세가 나날이 확장되자 위협을 느낀 일제는 백산을 붙잡을 기회만 노렸다. ‘대륙 첩보의 귀신’ 난베가 그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었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켰다. 조선어사전편찬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백산을 체포할 빌미를 잡았다. 일제는 조선어학회 이극로가 대동교 교주 윤세복에게 보낸 ‘널리 펴는 말’을 ‘조선독립선언서’로, 글 가운데 ‘일어서라’를 ‘봉기하자’로 조작했다. 일경은 대종교 간부 21명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했다. 이른바 ‘임오교변’이다. 입산마을에서 치병 중이던 백산은 목단강성 경무청으로 포박되어 끌려갔다. 10명이 숨질 정도로 고문은 악랄했다. 사건 배후에는 밀고자가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숨을 거두기 전 그를 용서하라고 유언했다. 광복 후 후손들은 밀고자를 찾아냈지만, 유언을 따라 응징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안민석 의원과 발해농장에 다녀온 장손자 안씨는 “지금도 개척자의 4~5세가 농장에 살고 있고 후손들은 할아버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장군의 손녀’ 최성주가 말하는 잊혀진 장군 ‘최운산’“99년 전 봉오동전투는 당시 세계 최강이라던 일본 정규군과 싸워 이긴 빛나는 전과입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 특히 홍범도(1868~1943)·김좌진(1889~1930) 같은 영웅이 화승총으로 매복을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독립군이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무기와 군장비를 잘 갖췄기 때문에 이긴 겁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잊혀진 영웅 최운산(崔雲山·1885~1945)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당시 사진사를 동원해 전쟁 현장을 촬영했던 준비된 전쟁이었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이유이지요.”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61) 이사를 최근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신이 장군의 손녀라며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의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에서 익히 배웠던 ‘홍범도·김좌진 장군의 영웅담’과는 결이 달랐다. 기자만 최운산 장군에 대해 모르나 싶었지만 최 이사는 “역사학자조차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기에 지난 22일 서울신문사에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최 이사는 노트북을 들고와 현장에 다녀왔던 사진과 관련 서류들을 보여줬다. 이 봉오동 전투의 총사령관은 그의 형인 최진동(崔振東·1883~1941), 참모장은 최운산이고, 홍범도·김좌진은 그 부대의 연대장이었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봉오동 전투 현장이 수몰됐다고 했지만 실제 전투가 있었던 곳은 봉오저수지를 10km 정도 거슬러 올라간 곳”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는 거의 해마다 전투지를 답사한다고 했다. “봉오동전투 사진사 동원한 준비된 전쟁전투 모습 3장…임정에 보냈다는 기록만”- 봉오동전투 당시 현장을 촬영했다고?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최진동이 국민회에 보낸 공문(‘기안104’)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은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기록을 보면 ‘봉오동전쟁 전황 촬영사진 3매, 상해를 보낼 예정. 별지 전쟁 촬영 사진 3매는 제2남지방의 박준재씨가 전쟁 당시 실시 전황을 보고 촬영한 것이다. 이것은 임시정부로 보내서 석판으로 인쇄하여 세계에 선전하려는 것인데 보신 뒤에 반송하기 바란다.’고 적혀 있습니다. 번역해서 문서로 남아있는 것을 역사자료실에서 찾은 것입니다. 최운산 장군은 당시 종군기자라고 할 수 있는 전문 사진사를 동원해 기록을 남기도록 했던 겁니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했던 거지요.” - 당시 돈이 있다고 무기를 살 수는 없었을 겁니다.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했을까. “최운산 장군이 러시아와 무역거래를 하고 있던 관계로 지속적으로 무기를 구입해 왔습니다. 그러나 뒷거래로 수천명이 무장할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은 소련에 배속됐던 체코 군의 무기로 무장한 겁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소련은 체코군을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귀국시킵니다. 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러시아 대륙을 횡단해 1918년 말에 동쪽 끝에 도착합니다. 체코군은 무기는 필요 없고,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반면 우리 독립군은 대량의 무기 확보가 절실한 상태였습니다. 무기가 있어도 돈이 없었거나, 돈이 있어도 무기를 파는 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요. 하늘의 뜻인지 최운산 장군에게 재력이 있었고, 체코군은 무기보다 현금이 더 필요했지요. 체코군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산 무기로 무장했다고 하니 우리 독립군도 당시로서는 최신의 미국 무기를 갖췄다고 봅니다.” “독립군들, 귀향하는 체코군 무기로 무장독립군들의 무기 구매 대금 출처는 최운산1920년 토지 팔아 5만원 마련… 무기 매입”- 막대한 무기 구입 대금은 어디에서 나왔나. “이 부분이 만주 무장독립운동 연구에서 가장 미진한 부분입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최운산 장군이 지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병 수준의 독립군 통합 부대원들을 훈련하고 무장시키기 위해 1920년 1월 최운산 장군이 석현의 대규모 토지를 5만원에 팔아 그 돈으로 대한북로독군부 부대원 전원을 완전무장시켰습니다. 당시 5만원은 전투기 한대 가격이라 합니다. 최운산 장군의 부인인 김성녀(金性女·1894~1975) 할머니가 1969년 남편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면서 밝힌 장비를 보면 ‘대포 10여문, 기관총 수십정, 수류탄 수천개, 장총 천여정, 권총 수백정, 실탄 수만 발’을 갖췄다고 합니다. 당시 훈련소 격인 사관연성소 병사 1인당 무장 상태를 보면 ‘소총 1정, 실탄 500발, 수류탄 1개, 좁쌀 6되, 짚신 1족이었다’는 일제의 밀정보고서도 있습니다.” - 최운산 장군, 얼마나 부자였나. “간도 제1의 거부였죠. 부를 일군 배경으로 중국이 토지 정리사업을 할 때 엄청난 규모의 황무지를 헐값에 불하받았습니다. 이를 조선 동포들과 함께 개간해 옥토로 바꿔 신한촌(新韓村)을 만들었습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생전에 말씀하시길 ‘우리 땅은 사흘을 둘러봐도 다 못 본다.’고 하셨습니다. 1960년대 우리가 부산에 살 때 봉오동전투에 참전한 부하 한 사람이 국제시장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할머니께 인사와 우리에게 이야기하길 ‘최운산장군의 땅 면적이 이 부산의 6배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콩기름공장·국수공장·주류공장·성냥공장·비누공장·과자공장을 비롯한 다수의 생필품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또 대곡상이자 축산업자로 한 번에 수백 마리의 소를 창춘이나 훈춘으로 몰고 가서 팔았답니다. 이 소떼와 곡물은 러시아 군대 식량으로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게 연결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최재형(1858~1920) 선생이 소고기를 러시아군에 공급했다고 하는데 두 분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겠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오늘날 삼성과 비견 되는 재벌이었지만 40여년에 이르는 무장 독립운동으로 그 막대한 재산을 거의 다 소진했습니다. 말년에 남은 것이라고는 살고 있던 집과 그에 딸린 수남촌 토성리 일대의 땅 뿐이었습니다.” “최운산… 간도 최고의 갑부이자 대지주부산 6배 넓이 땅 소유…무장투쟁에 소진”- 최운산 장군, 정확한 이름은 어떻게 되나. “일본군의 눈을 속이자면 변장이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여러 개를 썼습니다. 어릴 때는 최명길(崔明吉), 장작림 군벌에 있을 땐 중국식의 최풍(崔豊), 간도 제1의 거부로서 경제활동을 할 때는 최만익(崔萬益), 무장투쟁을 할 때는 최문무(崔文武)·최빈(崔斌)·최운산(崔雲山)을 사용했고, 러시아에서 무기를 밀매할 때는 최고려(崔高麗), 중국 장사꾼으로 위장해 첩보활동을 할 때 최복(崔福)을 사용했습니다. 8개의 이름을 가졌지만 모두 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복잡다단한 삶을 사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 장작림 군벌서 군사지식 습득중국군 이직시 자위대 조직…私兵 100여명” - 무법천지 만주에서 대규모 재산 지키자면 자위대가 필수였겠다. “최운산 장군은 청년 시절, 중국 동북3성 지배세력인 장작림(張作霖·1875~1928) 군벌에 들어갔습니다. 전투에서 장작림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어 장작림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습니다. 이때 형 최진동, 동생 최명순과 함께 3형제가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군사 지식과 군조직 운영을 익히며 만주군벌과 혈맹의 관계를 맺은 겁니다. 최운산은 조선인과 중국인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양쪽의 신뢰를 다졌습니다. 그러다가 1912년 최운산 장군이 중국군을 이직하고 마적떼로부터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 명목으로 자위부대 구성하겠다고 했을 때 장작림이 기꺼이 허락해준 겁니다. 그가 사병(私兵)을 모집할 때 1개 중대 이상의 병력이 따라 나왔다 합니다. 100명이 넘는 규모라 처음부터 정규 군대와 같은 편제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몇 명의 중국 사병이 포함된 이 자위부대가 대한민국 국군의 작은 씨앗일지도 모릅니다. 도독부(都督府)의 복장은 중국군과 같은 색깔이어서 잘 구별되지도 않았답니다. 독립군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1915년엔 봉오동 산중턱을 벌목하고 개간해 연병장과 막사를 지어 독립군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이때가 500명이 넘었습니다.” “3·1운동 후 열혈청년들 간도로 몰려 들어6개월 과정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도 창설안무·홍범도 등과 함께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과정은.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수립되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임시정부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운영하던 670명의 자위부대를 대한민국 첫 정식 군대 대한군무도독부(大韓軍務都督府)로 재창설합니다. 그때 중국 지방정부에서 일하고 있던 최진동, 최치홍 두 사람도 대한군무도독부에 합류합니다. 사령관인 부장(府長)에 형인 최진동 장군을 추대했습니다. 자신은 참모장으로 재정 등 군대 운영의 전반을 책임졌지요. 병참을 맡은 겁니다. 동생 최치홍도 참모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최운산 장군은 자신의 소유지인 서대파에 대한북로군정서를 창설합니다. 3·1운동 이후 간도로 들어오는 열혈 청년들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이들을 모두 받아들여 다음해에 6개월 과정의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를 십리평에 설립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북로군정서 무장과 사관연성소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군자금으로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소진하였습니다.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언했습니다. 일본군과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치르려면 대군단을 이루어야 한다는 판단을 한 최운산 장군은 만주의 독립군 모두에게 무기와 식량, 군복 등 군자금 일체를 제공하기로 약조하여 본격적인 대통합을 이뤄냈습니다. 북만주의 대소 독립군부대가 모두 합류했고 최종적으로 안무(1883~1924)의 국민회군,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에 최씨 형제의 군대를 합쳐 독립군 통합부대를 만들었습니다. 명칭은 大韓北路督軍府(대한북로독군부)였고, 통합 서약서에 서명 날짜는 대한민국 2년 즉 1920년 5월 19일이었습니다. 국민회, 신민회, 광복단 등을 비롯한 크고 작은 독립부대가 대한북로독군부 기치로 모였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의 신분으로 전투에 임했던 것입니다.” - 봉오동전투 상황은.“통합을 이룬 대한북로독군부는 두만강을 건너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며 실전 훈련을 쌓아갔습니다. 봉오동을 중심으로 통합부대 대한북로독군부의 세력이 커지고 있었기에 당시 일제는 독립군 토벌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정보전으로 이를 파악한 우리 독립군은 마을 주민을 미리 대피시키고, 연대별로 각 산에 주둔하고 산능선을 따라 참호를 파고 매복했습니다.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봉오동전투 현장에 가면 낙엽이 가득 차있는 참호를 볼 수 있습니다. 1920년 6월 7일 새벽 일본군 1개 연대 이상의 병력이 봉오동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봉오동을 둘러싼 산에서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어서 봉초봉 아래에선 백병전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돌멩이만한 우박이 떨어지고 뿌연 안개가 앞을 가렸던 거죠. 우리 독립군이 짙은 안개와 비,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승세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후퇴하던 일본군이 지원부대 일본군을 독립군으로 오인해 서로 총격전을 가해 더욱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봉오동전투서 적군 500여명 사살…기존보다 많아청산리전투는 봉오동전투 연장… 6일간 교전”- 봉오동 전투 전과는. “전과에서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낸 진정서를 보면 ‘적군 사살이 500여명, 중상자 700여명, 경상자 1000여명입니다. 노획물자는 대포 4정, 기관총 수십 정, 장총 500여정, 탄환 수만 발에 수류탄 다수’라고 기록합니다. 홍범도 일지에도 일본군 사망자가 50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에는 여전히 일본군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경상 100여명으로 축소돼 있습니다. 우리의 피해가 거의 없다고 했지만 독립군도 사망자 수십명과 다수의 부상자를 냈다고 김성녀 할머니가 증언합니다. 총상 환자 치료를 위한 의사가 부족해 애를 태웠고, 용정 제창병원에 의사를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독립군 지도부는 주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줄이고, 더 많은 독립군이 편하게 활동하기 위해 연해주로 이동할 것을 결정합니다. 4000여 명에 이른 독립군들이 부대별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이 그해 10월 21일 청산리에서 따라 잡아 전투를 벌인 게 청산리전투입니다. 청산리전투는 하루 전쟁이 아니라 대한북로독군부의 여러 부대가 6일 동안 치른 전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청산리전투가 별개의 전투가 아니라 봉오동전투의 연장전이라 생각합니다.” “최운산, 6차례 옥고…이름 8개 사용광복 40일 전 평양 장남 집에서 사망”- 최운산 장군, 역할에 비해 많이 잘못 알려졌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이 몇몇의 영웅담 위주로 신화화 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들이 겨우 화승총으로, 청나라 및 러시아에도 이긴 세계 최강의 일본군에 승리했다는 것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학계도 언론도 처음의 잘못된 기록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류의 논문을 낸 역사학자를 직접 만나 물어보면 ‘앞선 논문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역사학계가 정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운산 장군 그 뒤 어떻게 됐나. “연해주에서 자유시참변을 겪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무장독립운동을 계속합니다. 1930년대에도 우수리강전투, 나자구전투, 대황구전투, 도문대안전투, 안산리전투, 대전자령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장남 최봉우(일명 최치영·1922~2001)가 학도병 징집을 피해 고향 봉오동으로 돌아왔다가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장례나 치르라며 내주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최봉우가 평양으로 숨어들자, 아버지 최운산장군이 아들을 보러 왔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 40일 전인 1945년 7월5일 평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최운산장군은 1924년~1926년 3년간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 1939년 일본 경찰서 습격과 군자금 모집, 창씨개명 거부 등으로 10개월간 감옥에 갇힌 것까지 일생동안 모두 6번 옥고를 치렀는데, 매번 심하게 고문을 당해 수레에 실려 나오곤 했습니다. 가족들도 그가 언제 감옥에 갔다 왔는지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유공자 인정 조건 뒷돈 요구에 주먹 날려1977년 서훈…동생 최치홍은 여태 안 돼”- 정부는 최운산 장군의 역할 일찍 인정해줬나. “1961년 1월 최운산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정부로부터 받고 총무처로 아버지 최봉우가 갔더니 담당공무원이 ‘뒷돈’을 요구하더랍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모든 가산을 독립군 무장에 썼는데….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아버지가 그 공무원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그 이후론 독립유공자 선정에 번번히 밀려났습니다. 십수년동안 미운털이 박혔던 게지요. 아버지는 생전에 ‘내가 욱하는 성질을 못 이겨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을 가렸다’며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 후 할머니가 1969년에 진정서를 냈지만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뒤인 1977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셨습니다. 같이 독립운동한 동생 최치홍은 100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김성녀 할머니도 큰 역할을 했다. “저도 할아버지의 삶을 살펴보다보니 할머니의 역할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독립운동가를 내조한 차원을 넘어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남편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위해 낸 진정서를 보면 독립운동을 내조한 정도에서는 알 수 없는 당시 북로독군부의 조직 현황과 봉오동전투의 전과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봉오동전투를 바로 앞두고 최운산 장군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 도착한 중요한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어 직접 산속의 본진으로 올라가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군사들이 없을 때 집으로 쳐들어 온 마적들을 향해 직접 총을 쏘고 일꾼들을 독려해 무장 강도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물론 주민 부녀자들을 동원해 군복제작과 세탁 등 의복을 조달하고 식사를 준비했지만, 한 끼에 3000명분의 식사를 마련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김성녀 할머니에 대해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군의 부인 김성여도 무장독립운동 한 축무장독립운동사, 영웅담서 벗어나야 할 때”-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가 결성됐다. “우리 5남매는 만주 무장독립 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후손들의 주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가들의 연구가 깊어지면 언젠가 역사가 바로 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여태까지 바로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잘 못된 기록이 반복되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희가 직접 일제 문서를 찾고, 봉오동전투와 최운산 장군의 삶을 역사학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반가워하면서 학술적 재조명이 필요한 일이니 기념사업회를 설립하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셋째인 제가 60대입니다. 독립전쟁의 현장을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을 들은 마지막 세대일 것입니다. 우리 남매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고자 뜻이 맞는 분들을 중심으로 2016년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안 자랑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군들이 함께 지켜낸 만주의 무장독립전쟁의 진실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영웅담 위주의 독립운동사를 넘어서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이 봉오동전투 100주년이다. 계획한 행사는. “사실 최운산 장군이 잘 알려진 분이 아니라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5남매가 비용을 갹출해서 학술세미나 개최나 봉오동 답사 등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손주들도 나이가 들어 경제활동에서 물러나 있으니 기념사업회 활동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이 어려워 필요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올해는 당시 독립군이 사용한 무기를 살펴보는 학술세미나를 열고 7월 5일 국립현충원에서 순국 74주기 추도식을 개최합니다. 100주년이 되는 내년엔 봉오동전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행사와 최운산 장군을 연구한 책을 한 권 펴내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열혈사제’ 김남길, 여장하니 이하늬도 울고갈 미모 “남이사~”

    ‘열혈사제’ 김남길, 여장하니 이하늬도 울고갈 미모 “남이사~”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의 김남길이 위장잠입을 위해 여장까지 불사했다. 어제(22일) 방송된 SBS ‘열혈사제’(연출 이명우, 극본 박재범) 11부에서 해일(김남길 분)은 이신부(정동환 분)의 시신이 발견된 영유산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나 입산금지에 야생동물보호구역 인데다 구담구 소유라, 철범(고준 분)쪽이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발목을 붙잡은 것. 이에 해일은 “내가 들어가지 말라고 안 들어갈 사람이냐? 발견돼도 모르게 해야지”라며 큰소리치던 그는 긴 생머리 가발에 화려한 아이 메이크업과 립스틱, 긴 다리를 드러낸 짧은 원피스까지 완벽한 여장을 하고 나타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산에 오는데 그런 신발을 신고 왔냐며 핀잔을 주는 관리인에게 새침하게 “남이사”라고 한마디를 남기고 뒤돌아서는 상황극은 덤. 이어 분열하기 시작하는 구담구 카르텔에서 약점이 많아 제일 털기 쉬운 박의원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은 해일은 그에 대한 암살 계획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함과 동시에 ‘박의원을 구해라’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모자와 복면, 라이더 재킷에 오토바이까지 또 한번 변신을 하고 나타난 해일. 장룡에게 목숨을 잃을뻔한 박의원을 구하고 가까스로 현장을 벗어나려던 찰나,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에게 오히려 범인으로 몰리며 위기에 처했다. 한편 철범의 별장에서 당수를 날리고 도망친 복면강도가 해일이라는 사실을 심증 100%로 확신한 경선(이하늬 분). 박의원을 구하고 달아나는 ‘복면해일’을 다시 한번 만나게 되자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쫓게 되는데. 어제 방송된 21회는 수도권 시청률 16.5%와 전국 시청률 14.6%를, 22회는 수도권 시청률 19.0%와 전국 시청률 17.2%를 기록한 가운데 쫓고 쫓기는 이 추격전이 순간 최고시청률 21%를 찍으며 화제를 모았다. 김남길이 완벽 여장으로 더욱 화제를 모은 SBS ‘열혈사제’는 매주 금,토요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사설] 투기척결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 ‘투기 장관‘ 안 된다

    문재인 정부를 이끌 장관 후보자들이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였다. ‘재개발 딱지’ 투기부터 농지 매입을 위한 농촌 위장전입, 재건축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 ‘꼼수’ 증여까지 마치 부동산 투기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곳에 가까운 지역의 재개발 지분을 매입, 이른바 ‘딱지 투기’ 의심을 받는다.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진 후보자 부인은 2014년 이곳 땅 109㎡를 공시지가의 절반인 10억여원에 샀고, 2년 뒤 재개발 사업이 재개되면서 아파트와 상가 등 26억원 상당의 분양권을 받았다. 용산참사 이후 개발이 무산되는 듯하다가 진 후보자 부인의 매입 뒤 재개돼 값이 폭등했다. 용산이 진 후보자의 지역구라는 점에서 개발 재개 관련 정보를 미리 알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다주택자로 잇단 부동산 투자로 큰 재미를 봤다. 경기도 분당에 집을 보유하면서 2003년 재건축을 앞둔 잠실주공아파트를 3억원에 사들였다. 재건축된 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15억원이다. 최 후보자 부부는 세종시에도 분양 당시보다 웃돈이 6억원 이상 붙은 아파트 분양권을 보유 중이다. 최 후보자는 장관 내정 직전인 지난달 분당의 아파트를 딸 내외에게 증여하고, 본인이 다시 임차했다. 증여세를 덜 내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도 경기 안성의 한 농가에 농지 구입을 위해 위장전입한 의심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여름 8·2대책과 9·13대책 등 초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투기와의 전쟁을 벌여 왔다. 치솟기만 하던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도 지난 연말 이후 안정세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장관 후보자들이 무더기로 부동산 투기 의심을 받는 것은 참으로 고약한 일이다. 곧 열릴 국회 청문회에선 후보들의 투기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 간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투기척결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계속 힘을 받기 위해서라도 의혹의 실체는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투기꾼 장관’이 내각에 들어가서야 되겠는가.
  •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부모 살해사건 꼬리 무는 의문점

    ‘청담동 주식 부자’로 알려진 이희진(33)씨 부모 살해사건 전모가 경찰에 붙잡힌 주범 피의자 김모(34)씨의 진술로 속속 들어나고 있다. 이씨의 동생이 부모가 살해되고 나서 3주 정도가 지나 뒤늦게 실종 신고를 한 이유가 밝혀졌다. 피의자 김씨가 범행 후 이씨의 숨진 어머니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며 대신 행세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의 이 같은 행각이 며칠간 이어지자 이씨 동생은 의심이 들어 직접 부모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현관문 비밀번호가 바뀌어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고 카카오톡도 연락도 끊기자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경찰의 수사가 범행 후 3주 정도가 지나 시작됐다. 또 피의자 김씨가 집에서 빼앗아 간 5억원은 이씨 동생이 사건 당일 차량을 매각한 대금 15억원의 일부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부모는 5억원이 든 돈가방을 전달받아 안양 자택으로 돌아와 현관에서 피의자 김씨 등 4명에게 탈취당했다. 김씨가 이씨 아버지에게 ‘2000만원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 범행했다’고 진술한 범행 동기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경찰은 고가의 차량 매각 대금을 노린 범행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김씨는 범행 당일 중국으로 출국한 A(33)씨 등 공범 3명을 모집하기 위해 지난달 초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경호 인력을 모집한다는 명목으로 글을 올려 이들과 접촉, 사전모의를 거쳐 범행에 착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미리 주변 정리를 모두 마친 뒤 범행 직후 중국으로 달아났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도 많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지 채 24시간도 안돼 주범격인 김씨가 검거된 것은 뜻밖이다. 경찰은 김씨를 지난 17일 경기도 수원의 한 편의점에서 붙잡았다. 2명을 살해하고 3주 정도가 지났는데도 다른 공범처럼 국외로 달아나거나 은밀한 곳에 숨지도 않았다. 아파트에서 범행흔적을 없애고 이씨 아버지 시신을 냉장고에 넣어 평택 창고를 옮기는 등 계획범죄치고는 너무 쉽게 붙잡혔다는 지적이다. 범행 당일 곧바로 국외로 달아난 중국 동포 공범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또 김씨가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면 왜 이씨 아버지 시신만 평택의 창고로 옮겼는지도 의문이다. 경찰은 계획범죄라면 어머니 시신도 은밀한 곳으로 옮겨 써야 했다고 보고 있다. 범행 후 혼자 남은 김씨가 친구 2명을 불러들인 이유도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2명은 또 다른 공범이거나 범행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주변에 CCTV나 행인 등 보는 시선이 많은 대낮에 4명이나 되는 피의자가 한꺼번에 아파트에 침입해 살인을 저지른 것도 일반적인 범행행태에서 벗어난다. 60대 부부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기에는 너무 숫자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희진 씨의 투자 피해자로서 강도를 위장한 보복 범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단순 채무 관계로 인한 범죄, 고액 현금을 노린 강도살인, 그리고 ‘청담동 주식 부자’ 이 씨와의 관련성까지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
  • 극한직업 ‘형사직’… “후배 형사 잡기가 범인 잡기보다 어려워”

    극한직업 ‘형사직’… “후배 형사 잡기가 범인 잡기보다 어려워”

    “현장 형사들이 생각나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렇게 일하는데 잘 못해 줘서 미안하다는 마음도 드네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극장에서 일선 형사들과 함께 영화 ‘극한직업’을 관람한 민갑룡 경찰청장은 “현장 직원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우리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날 오후 민 청장을 비롯한 경찰청 관계자들과 일선 형사 등 290명이 참석한 ‘극한직업’ 특별관람 행사를 진행했다. 현장 형사들의 애환을 듣고 소통하고자 하는 취지다. 1300만 관객을 사로잡은 극한직업 속 주인공은 해체 위기에 놓인 서울 마포경찰서 마약반 형사들이다. 영화 속 마약반 형사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위장 개업을 통한 잠복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 일선에서는 잠복과 추격을 주무기로 하는 외근직 형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후배 형사 잡기가 범인 잡기보다 어렵다’는 자조 섞인 농담은 오래된 이야기가 됐다. 이러한 형사직 기피 현상은 민 청장이 영화를 관람한 뒤 “잘 못해 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이유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2160명을 뽑는 순경 공채 일반 전형에서는 4만 496명이 몰려 18.7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여성의 경우 750명 선발에 1만 2709명이 응시해 16.9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순경 공채의 높은 경쟁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때 순경 공채의 평균 경쟁률은 40대1을 넘기도 했다. 이처럼 경찰을 꿈꾸는 지원자들은 해마다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제복을 입을 수 있다.기동대에서 최소 2년 근무를 하면 누구나 형사를 지망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 되고서 자발적으로 형사를 지망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젊은 경찰관이라면 누구나 형사를 꿈꾼다는 것은 옛말이다. 한때 ‘경찰의 꽃’이라고 불렸던 형사는 최근 푸대접을 받으며 기피 한직으로 밀렸다. 업무 특성상 타 부서에 비해 노동 강도가 세고 승진 또한 더디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경찰 11만 6584명(2017년 기준) 가운데 외근 형사직을 비롯해 경제·지능 등 수사 기능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2만 601명이다. 외근 형사직을 기피하는 배경에는 고된 근무환경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형사로 생활하면서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퇴근은 없다’는 극중 대사를 실제로 자주 하곤 했다”는 김석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 팀장의 말은 이러한 근무환경을 잘 보여 준다. 형사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폐쇄회로(CC)TV와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해 분석하고, 주변인들의 진술을 듣고 현장을 탐문해야 한다. 비번인 날에도 마음 놓고 쉴 수는 없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 2만 3938건이었던 강력범죄는 2017년 2만 6334건으로 증가했다. 강력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CCTV 확보와 분석 등 현장의 업무량은 예전보다 더 늘어나고 있다. 젊은 경찰들은 근무시간이 상대적으로 명확한 지구대나 파출소 근무를 선호한다. 일과 생활의 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업무 강도가 이전보다 강해졌다기보다는 사회 변화의 영향이 크다”며 “4교대 근무로 명확하게 근무시간이 나눠지는 지구대나 파출소를 가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보니 잡무 처리, 잠복, 조사, 추격전을 반복해야 하는 형사의 인기는 예전과 같지 않다. 형사 기피 현상은 승진자의 절반을 시험으로 뽑는 경찰 인사제도도 한몫한다. 시험공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부서에 가는 게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것보다 이득이기 때문이다. 외근 형사가 승진시험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 극한직업에서도 마약반장(류승룡)이 승진을 하지 못해 아내에게 구박받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사철만 되면 일선 경찰서는 형사 모시기에 열을 올린다. 빠지겠다는 팀원은 많은데 자리를 메워 줄 젊은 형사는 드물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강력계 형사는 “‘위험한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까지 하면서 후배들을 설득하기도 한다”며 “경찰학교를 갓 졸업한 순경들이 있는 지구대나 파출소에 수시로 들러 형사의 좋은 점을 말해 주는 등 일찌감치 공을 들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일선 경찰서에서는 강력반 등에 20~30대보다 50대 이상의 형사들이 더 많은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형사직에 신입 경찰들을 억지로 밀어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구의 한 강력계 형사는 “평소 눈여겨봐 뒀던 후배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며 “주먹구구식으로 사명감에 기대 떠나가는 형사를 잡기보다는 ‘일은 힘들고 보상은 없는 곳’이라는 인식이 개선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이나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 간담회를 통해 현장의견을 수렴했다”며 “실태진단과 의견 수렴을 추가로 진행해 올해 중으로는 형사직 근무체계와 보상방안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여기는 남미] 완벽하게 여장한 권총강도, ‘남자 걸음’ 걷다 덜미

    [여기는 남미] 완벽하게 여장한 권총강도, ‘남자 걸음’ 걷다 덜미

    완벽한 여자로 변신해 여자들을 털려던 권총강도가 경찰에 붙잡혔다. 콜롬비아 경찰이 국경도시 쿠쿠타의 한 교회에 여자로 분장하고 침입한 권총강도를 체포했다고 현지 언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교회에선 이날 여성신도들만 참여하는 행사가 열렸다. 남자들이 빠진 교회행사는 범죄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표적이 됐다.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강도는 범행을 구상하다 여자로 변신하기로 했다. 그래서 구입한 게 가발과 선글라스, 스카프, 치마, 스웨터 등이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핸드백까지 준비하고 범행에 사용할 권총은 여기에 숨겼다. 챙긴 탄창은 5개였다. 여자로 분장한 범인은 행사가 열리고 있는 교회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완벽한 여자로 위장해 누구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배어 있는 걸음걸이였다. 하지만 이게 문제였다. 지나치게 당당한 걸음걸이가 왠지 여자의 걸음걸이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저 사람 이상한데?" 이런 생각이 든 일부 신도들은 여자로선 지나치게 큰 키, 넓은 어깨 등을 유심히 살펴보다 '분명 남자 같아'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신도들은 몰래 교회당을 빠져나와 경찰을 불렀다. 출동한 경찰이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범인의 성별은 바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범행을 꾀한 남자는 22세 청년으로 마약제조, 밀매 등으로 징역을 산 전과자였다. 청년은 "여자신도들만 참석하는 교회행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범행이 쉬울 것 같아 한꺼번에 모든 참석자릉 털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사진=몰롬비아 경찰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中무역대표단 도착 날… 美, 화웨이·멍 부회장 전격 기소

    中무역대표단 도착 날… 美, 화웨이·멍 부회장 전격 기소

    지재권 등 핵심 쟁점들 입장차 여전한 듯 “화웨이 공소사실 워싱턴 협상 주요 의제” 中은 S&P 진출 이례적 허용 등 화해 손짓 백악관 “트럼프, 류허 부총리 직접 만날 것”미국과 중국이 30~3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에서 열리는 고위급 무역협상을 앞두고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을 전격 기소하는 등 ‘강공’에 나섰지만, 중국은 대두와 밀 등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에 이어 미 신용평가회사의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등 화해의 손짓을 이어 갔다. 미 법무부는 28일 중국 화웨이와 자회사 2곳, 최고위급 임원을 미국 기업의 첨단 기술을 훔치고 대이란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금융사기를 벌인 혐의로 기소했다. 기소 대상은 중국의 통신장비기업 화웨이와 홍콩의 위장회사인 ‘스카이콤 테크’, 미국 현지 ‘화웨이 디바이스 USA’ 그리고 멍 부회장이다.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을 이틀 앞둔 시점, 특히 류허 중국 부총리 등이 협상을 위해 워싱턴에 막 도착한 상황에서 이뤄진 이번 기소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압박’ 의지로 풀이된다. 이는 미·중이 무역협상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지식재산권 절도 등 화웨이 공소사실이 이번 무역협상의 주요 의제”라면서 “따라서 미국의 화웨이 전격 기소는 지재권 보호와 강제 기술이전 금지뿐 아니라 ‘중국 제조 2025’ 수정 등 미국의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라고 풀이했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가 이번 무역협상의 압박카드로 멍 부회장의 기소를 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 연방검사 출신 넬슨 커닝햄은 미 언론에 “멍 부회장을 놓고 무역협상에서 (중국과) 거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류 부총리를 직접 만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이날 “이번 화웨이 기소는 미·중 간 무역협상과는 전적으로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중국은 화웨이 기소에 반발하면서도 화해의 제스처를 이어 갔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화웨이를 포함한 중국 기업에 대한 무리한 탄압을 중단하고 중국 기업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대할 것을 미국 측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국제 신용평가기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의 중국 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등 시장 개방 확대에 나섰다. 그동안 중국이 민감하게 대했던 국제 신용평가사 진출을 이례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미·중이 이번 고위급 협상에서 지재권 보호 등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도 있다”면서 “트럼프 정부는 연방정부 셧다운 등으로 수세에 몰린 국내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중국은 경제성장률 하락 등 국내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무역협상의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세계무역기구(WTO)는 이날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2500억 달러(약 280조원) 규모의 관세 문제를 다룰 패널을 구성하기로 했다. WTO에 따르면 패널 설치를 결정하는 분쟁해결기구는 회의에서 중국이 미국 관세 부과에 맞서 제기한 소송을 심리하기로 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동료 살해하고 시신 불 태운 환경미화원 무기징역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환경미화원에게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황진구)는 22일 강도살인과 사기, 사체은닉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환경미화원 이모(50)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이씨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강도살인죄는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존귀한 가치인 사람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은 반인륜적인 범죄”라며 “피고인은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피해자를 자신의 채무 지급을 면할 목적으로 살해했고 그 방법도 엽기적이고 잔인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족들은 큰 슬픔을 겪고 온전한 장례식도 치르지 못해 그 고통이 배가 됐는데도 피고인은 피해 복구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지 않고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원심판결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해 재범을 방지하는 한편 피고인이 수감 생활을 통해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2017년 4월 4일 오후 7시쯤 전주시 완산구 자신의 원룸에서 동료 A(당시 58)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이튿날 시신을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장에 버린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는 시신을 대형 비닐봉지 15장으로 겹겹이 감싸 일반 쓰레기로 위장한 뒤 쓰레기 차량으로 수거, 소각장에서 불태웠다. 이씨는 범행은폐를 위해 A씨 자녀들에게 정기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생활비도 송금했다. 이씨는 범행 후 A씨가 허리디스크에 걸린 것처럼 진단서를 첨부해 휴직계를 팩스로 보냈다. 행정기관은 의심 없이 휴직 신청을 받아들였다. 범행은 A씨 아버지가 2017년 12월 “아들과 연락에 닿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전모를 드러냈다. 이씨는 “우발적으로 살해했을 뿐 금전 문제로 심한 갈등을 겪은 사실이 없다”면서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그는 생전 A씨에게 1억 5000만원가량 빚졌으며 범행 직후인 2017년 4월부터 10월까지 A씨 명의로 저축은행 등에서 5300만원을 대출받는 등 3억원가량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남편 청부살해 60대 아내에게 법원 징역 15년 선고

    돈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던 남편을 청부 살해토록 의뢰한 혐의로 기소된 아내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정성호 부장판사)는 15일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된 A(69)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또 A씨 사주를 받고 청부살인을 한 혐의(강도살인)로 기소된 B(45)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가 여러 범행 도구를 준비하고 수차례 흉기로 찌르는 등 잔인한 수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살해 동기,수법 등 모든 면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A씨 역시 범행 과정에서 딸의 희생을 초래하는 등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B씨는 지난해 7월 2일 오후 5시 20분쯤 부산 해운대구의 한 건물 3층 주택에 침입,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A씨 남편(70)을 미리 준비한 흉기와 둔기로 살해한 뒤 귀가한 딸을 흉기로 위협,협박하고 현금을 빼앗는 등 강도로 위장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돈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던 남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B씨에게 빌려준 5000만원을 탕감해주고 사업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살인을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국산 야동은 ‘돈’… 피해자 눈물로 수익 낚는 웹하드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국산 야동은 ‘돈’… 피해자 눈물로 수익 낚는 웹하드

    “불법 국산 야동은 회원 유지를 위한 핵심 상품입니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 웹하드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아요. 해외 상업용 음란물에 비하면 영상수도 많지 않고 다운로드 요금도 건당 100~200원으로 적기 때문이죠. 하지만 새 회원을 끌어오고 또 붙잡아 두려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과적으로 웹하드 업체가 ‘국산 야동’을 충분히 필터링할 수 있지만 슬쩍 눈감는 건 결국 돈 문제입니다.”(웹하드 필터링업체 전직 종사자)누구나 손쉽게 저렴한 비용으로 동영상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웹하드는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다. 2000년대 초 등장한 웹하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눈물을 양분 삼아 황금알을 낳는 비즈니스로 발돋움했다. 웹하드 수익과 ‘국산 야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관관계를 보이는지 분석해 봤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2017년 6월 당시 웹하드 42곳을 대상으로 ‘국산 야동’ 유통 건수를 전수조사한 바 있다. ‘국노’(국산 노모자이크), ‘국NO’, ‘국산’, ‘몰카’, ‘골뱅이’(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은어) 등 5가지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된 게시물 수를 집계했다. 2곳을 뺀 40곳에서 총 116만 1696개의 게시물이 검색됐다. 외국 음란물을 위장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국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나 비동의 유포 음란물이었다. 서울신문은 이 중 신용평가사 등을 통해 재무제표를 확인할 수 있는 웹하드 16곳의 매출과 국산 야동 게시물 수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국산 야동 게시물 수는 매출의 주요 변수였다. 국산 야동 게시물이 1만개 이상 올라간 웹하드 10곳 중 8곳의 매출은 전년에 비해 증가했다. 반면 1만개 이하인 6곳 중에선 1곳만 매출이 증가했고 나머진 모두 떨어졌다. 국산 야동이 많을수록 웹하드 수익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온디스크와 케이디스크 두 웹하드를 운영하는 비엔씨피에선 총 21만 3212개의 국산 야동이 검색됐는데, 2017년 매출이 전년보다 10.2% 늘어난 155억 4500만원을 기록했다. 파일캐스트를 소유한 타이디웹은 8만 2826개가 검색됐고 매출은 65억 3800만원으로 역시 전년 대비 8.0% 증가했다. 신생 웹하드 업체들 역시 국산 야동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2016년 3월 파일콕을 설립한 프리시드는 그해 매출이 600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7년엔 23억 5800만원으로 393배나 뛰었다. 파일콕에선 한사성 조사 당시 5만 6869개의 국산 야동이 검색됐다. 국산 야동을 찾기 어려운 곳은 대부분 매출이 떨어진 것도 흥미롭다. ‘빅파일’을 운영하는 ‘블루트리’는 ‘국산 야동’ 수가 477개에 그쳤는데 2017년 매출이 73억 5000만원으로 16.5%나 떨어졌다. 1437개로 비교적 국산 야동이 적었던 ‘새디스크’의 에이지웍스도 2016년 51억 4400만원이었던 매출이 2017년 34억 6700만원으로 3분의1이나 감소했다. 대다수 웹하드는 우량 기업이라 할 만큼 뛰어난 수익성을 보인다. 분석 대상 웹하드 17곳의 2017년 매출은 총 1632억 6600만원, 영업이익은 331억 3200만원으로 집계됐다. 평균 20.3%의 영업이익률이다. 2017년 기준 국내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 7.2%를 크게 웃돈다. 영업이익률이 20%를 넘어가면 알짜 기업이란 평가를 받는다. 2017년 기준 삼성전자(22.4%)나 네이버(25.25%) 등 일부만 가능했던 기록이다. 일부 웹하드는 깜짝 놀랄 만한 수익을 냈다. 직원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실소유주인 선한아이디(파일노리)는 2016년과 2017년 각각 54.9%, 61.3%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여기어때의 심명섭 위드이노베이션 대표가 소유해 주목받았던 뱅크미디어(애플파일, 예스파일)의 2017년 영업이익률도 35.6%에 달했다. 웹하드가 이렇게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건 불법 영상을 유통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 저작권이 있는 영상의 경우 내려받은 사람이 낸 비용의 70%가량을 저작권자가 가져간다. 나머지 30%를 웹하드와 업로더가 절반씩 나눠 갖는다. 따라서 저작권이 있는 영상에서 웹하드가 실제로 챙기는 수익은 15% 정도이며 서버 운영비나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더 적다. 하지만 저작권자가 없는 무단 복제물이나 디지털성범죄 게시물은 저작권료를 낼 필요가 없다. 수익의 약 30% 정도를 업로더의 몫으로 떼어주고 나면 나머지는 고스란히 웹하드 업체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반 저작권물보다 훨씬 많이 남는다. 일부 웹하드가 불법인 줄 알면서 헤비 업로더의 음란물 등록을 방조하거나 은밀히 독려하는 이유다. 정부가 디지털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일부 웹하드는 온갖 꼼수를 쓰며 몰카나 비동의 유포 음란물을 유통시킨다. 대표적인 게 이중 페이지 운영이다. 공식 페이지와 별도로 비밀 페이지를 만들고, 이곳에선 디지털성범죄 게시물을 필터링하지 않는 것이다. 무료 쿠폰 등으로 신규 회원을 끌어들일 때 비밀 페이지로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신문 취재진이 한 웹하드 무료 쿠폰을 다운받고 신규 회원으로 가입하자 비밀 페이지로 접속됐다. ‘국no’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자 필터링 없이 884개의 게시물이 검색됐다. 같은 시간 공식 페이지에 연결해 똑같이 ‘국no’를 입력하면 ‘금지된 단어’라는 공지가 뜨며 차단됐다. 단속을 피하는 이른바 ‘뒷문 영업’이다. 요즘처럼 강도 높은 단속이 진행될 때 주로 쓰는 수법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심지어 경찰 수사를 받는 와중에도 디지털성범죄 영상을 유포한다. 권미혁(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하드에 삭제를 요구한 20건의 영상이 217건으로 복제돼 돌아다녔다. 총 25개 웹하드에서 유통됐는데 이 중 5곳은 앞서 경찰이 압수수색을 벌인 곳이었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는 “양진호 사건 이후 정부의 감시를 어느 때보다 강화해 많이 정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온갖 꼼수가 난무한다”면서 “사회적 감시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언제든 웹하드는 다시 디지털성범죄의 온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사설] 음주운전 처벌 강화, 정부 고위직 인선부터 솔선수범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음주운전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문 대통령은 그제 청와대에서 가진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지난해 음주운전 사고는 2만건에 가깝고 그로 인한 사망자 수는 432명, 부상자는 3만 3364명에 달한다”면서 “이 통계를 보면 재범률이 45%에 가깝고, 3회 이상의 재범률도 20%”라며 강도 높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의 음주운전 처벌 강화 지시는 지난달 25일 새벽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윤창호(22)씨 친구들이 올린 청원이 계기가 됐다. 청원 시작 10일 만에 약 27만명이 참여했을 정도로 호응이 컸다. 이에 대통령이 많은 현안 가운데 특정 사건에 대해 통계 수치까지 언급하며 강도 높은 대책 마련을 이례적으로 주문했다. 음주운전 사고는 운전자 자신은 물론 동승자, 다른 운전자와 보행자를 죽이는 살인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음주운전 사고에 대해 강한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은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자세로 주목할 만하다.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대책 강화와 함께 정부부터 솔선수범하기 바란다. 문 정부가 1기 내각에 추천한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와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각각 만취 음주운전 경력과 음주운전 고백 등으로 자진 사퇴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은폐 의혹에도 불구하고 장관으로 밀어붙였다. 음주운전 인사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잘 알고 도덕성을 강조하지만 전 정부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예비살인자들을 고위공직 후보자로 내세운 것이다. 고위공직자 인사 배제 기준으로 위장전입, 탈세, 병역면탈 등 기존 다섯 가지에다 성범죄와 음주운전까지 추가했으나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음주운전은 최근 10년 내 2회 이상 음주운전에 적발된 경우에 배제한다는 조건부 배제 기준을 세웠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청와대와 정부가 기간에 상관없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무조건 고위공직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 [서울포토] 헌법재판관 후보자 자질 비판하는 이은재, 장제원 의원

    [서울포토] 헌법재판관 후보자 자질 비판하는 이은재, 장제원 의원

    국회에서 열린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은재 장제원 자유한국당 인사청문위원이 청문회가 열리기전 발언권을 신청하고 있다. 장제원의원은 후보자의 위장전입과 관련하여 강도높은 비판을 하였다. 김명국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황제 납치 프로젝트4] “어진 화가로 위장해 입궁하겠습니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4] “어진 화가로 위장해 입궁하겠습니다.”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최근에야 국내외에 알려진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학계에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4회>그녀는 입술에 술잔을 가져가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과 빌리 두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이미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어요. 우리 임무의 첫 번째 대상은 이토 히로부미가 될 거예요.” 이 때 베델이 잠깐 대화를 끊었다. “여기서 그 문제까지 얘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군요. 우리 셋이 밤새 같이 있으면 분명 일본 끄나풀이 눈치채고 달라붙을 겁니다.” 그러면서 베델은 조선 왕궁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소녀에게 간략히 설명했다. 왕과 무기력한 왕자들은 첩자들에 첩첩히 둘러쌓여 있고 신하들은 말만 할 뿐 실제 조선 독립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세가와(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황제를 궁에 사실상 가둬놨지만 일본에 매수된 비겁한 대신들은 이를 모른 체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여전히 조선에 충성하는 이들은 날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을... 끝으로 베델이 소녀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일본 감시자들 모르게 황제를 만나 망명 의사를 타진할 생각인가요?” 그녀의 대답이 매우 놀라웠다. 마치 첩보원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저는 폐하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서울에 온 것으로 돼 있어요. 이미 베이징에서 연로하신 황후(서태후 1835~1908)의 초상화를 그려 드렸어요. 황후께서는 제 신원을 증명하는 친서를 써 주시고 옥으로 만든 목걸이도 하사하셨어요. 목걸이가 워낙 커 마치 제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기분이 들 정도였죠.“(편집자주: 소설 속 이러한 설정은 실제로 고종과 서태후의 초상화를 그린 네덜란드 출신 미국인 서양화가 휘베르트 보스의 이야기를 차용한 것입니다. 단 소설과 달리 그는 1899년 고종의 초상화를 먼저 완성했습니다. 서태후 초상화는 1906년에 그렸습니다.) 그녀는 트렁크를 열어 추천서 꾸러미를 꺼냈다. 하나는 워싱턴에 있는 ‘거물’이 준 편지였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 있는 미국 대사의 것이었다. 도쿄에 있는 주일영국대사(클로드 맥스웰 맥도널드 1852~1915)의 부인이 써준 것도 있었다. 준비는 완벽했다. ”이게 바로 제가 황제의 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베델과 나는 밤 10시쯤 그 방에서 나왔다. 1층으로 내려가 고종 납치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며 호텔의 단 하나뿐인 당구대에서 게임을 했다. 자정 쯤이었다. 권총 소리가 크게 울리며 한밤의 고요를 깨뜨렸다. 호텔 주인 루이(루이 마르탱)가 사무실에서 ‘페르넷 브랑카’(이탈리아에서 개발된 식후주로 알콜 도수가 35도 이상임)를 마시다 말고 뛰쳐 나왔다. 호텔 뒤쪽에 있던 종업원실에서도 시끄럽게 발소리가 들렸다. 현관을 지키던 호텔 경비원도 연신 쇠막대기를 흔들어대다가 실수로 뭔가를 깨뜨렸다. 우리도 바에서 로비로 나왔다. 머리 위 복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거기 누구 안 계세요? 누구든 제 방으로 와 주시겠어요?“ 소녀의 목소리였다. 베델과 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 뒤 소리쳤다. “강도가 침입한 거면 그놈에게 총을 더 쏘세요.” (편집자주: 당시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치외법권이 설정돼 한국법이나 일본법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현지 법으로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루이와 베델, 나 이렇게 3명은 헐떡거리며 소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소녀는 나이트가운 위로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 쪽에 두손을 모아 작지만 무거운 것(권총)을 감추고 있었다. 그녀는 루이에게 램프를 가져오라고 부탁한 뒤 우리를 방으로 이끌었다. 방에 들어가니 소녀의 트렁크가 활짝 열려 있었다. 푸른빛이 도는 실밥 같은 것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일본인 쿨리(짐꾼)들이 입는 외투의 색깔이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방 한켠에 엎드려 쓰러져 있었다. 베델이 그를 뒤집자 불빛에 모습이 드러났다. 이미 죽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온 얼굴을 덮어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음...” 그녀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벌써 일본의 반격이 시작됐군요...그렇죠?” 5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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