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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최우량기업 DMS사 이종문 회장(세계속의 한국인:3)

    ◎“빌 게이츠에 버금”/미 컴퓨터업계의 실력자/그래픽 관련제품 시장점유율 1위/93∼94년 연속 「올해의 기업인」 선정/「동양예술박물관」 건립에 120억원 쾌척 “화제”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파크 안에 있는 「동양예술박물관」에 자랑스럽게 새겨진 한국인의 이름 이종문. 미국의 유일한 아시아예술 전용 박물관인 이곳 중앙 현관 머리에 이종문 아시아예술문화센터라는 이름이 새로 새겨졌다.샌프란시스코 사람들에게는 「드 영」박물관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박물관에서 지난 10월19일 있었던 명명식은 자랑스런 한 한국교민의 오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그 꿈의 실현은 부와 명예의 단순한 「아메리칸 드림」의 차원을 넘어 한민족의 문화사랑과 민족정신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편의 「인간 드라마」이다. 그의 이름을 딴 예술센터가 만들어진 것은 그가 이 박물관에 1천5백만달러(약 1백20억원)라는 거액을 기부한 데 따른 것이다.미국인들도 놀라게한 이종문(67).그는 실리콘밸리의 최우량기업으로 꼽히는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시스템」사(DMS)의 창업자이자 회장이었다. ○한인 문화사랑 정신 과시 1천5백만달러란 금액은 문화예술 관련 기부금으로는 가히 천문학적인 돈이다.게다가 그돈은 순전히 그의 개인재산 가운데서 나온 것이다.말이 쉽지 사재를 1천5백만달러씩이나 선뜻 내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특히 현금으로 단돈 1백달러를 손에 쥐기가 쉽지 않은 미국사회에서 볼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 박물관의 한국과 큐레이터 백금자씨는 『이회장의 기부금은 앞으로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한국미술전공자들이 얼마든지 학위논문을 쓸 수 있고,결국 미국내 각 박물관에서 한국관에 관심을 갖는 엄청난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의 기부금 쾌척은 한인교포사회 뿐 아니라 미국사회에도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킨 하나의 사건이었다. 미국의 컴퓨터업계에서 그는 컴퓨터계의 제왕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못지 않은 저명인사다. 그는 93,94년 연속 북캘리포니아의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됐을 만큼 실리콘밸리를 주도하는 하이테크 기업인이다.이 상은 미국 경영자협회를 비롯,CBS방송,하이테크산업을 전문으로 다루는 경제잡지 「잉크(Inc.)」,나스닥(NASDAQ)주식시장등 5개 기관에서 공동으로 평가해 주어지는 것인만큼 상당한 권위가 있다.이회장이 82년 창업해 이끌어온 DMS는 93,94년 「잉크」지에 의해 미국의 비상장기업 500개사 가운데 최고속으로 성장하는 기업 17,18위로 각각 평가되기도 했다. DMS는 컴퓨터의 그래픽기능을 향상시켜주는 그래픽액셀러레이터 관련 제품을 주로 생산,이 분야에서 선두였던 캐나다의 ATI사를 제치고 93년 하반기부터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특히 DMS의 멀티미디어 관련 소프트웨어는 호환성이 60%정도인 일반제품에 비해 무려 98%를 웃돌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95가 공식 스펙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고속성장 17위기업 평가 한국종합기술금융 실리콘밸리지사장 박태완씨(44)는 『DMS는 지난 4월 주식을 공개하기 전까지만해도 벤처캐피틀회사들이 가장 탐냈던 기업이지만 외부의 투자를 거부할만큼 자기자본력이 막강하다』고 전하고 있다. DMS의 영업담당 책임자인 김용태씨는 『91년10월 이후 은행빚이 단 1센트도 없는 부채율 제로의 회사』라고 자랑한다.더욱 놀라운 것은 94년말 현재 종업원 1백85명의 1인당 매출 1백10만달러에 이익율이 9.5∼10%나 된다는 사실이다.부실채권율은 0.5%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하이테크산업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이처럼 탄탄한 첨단기업이 한국인 이회장의 손으로 실리콘밸리에 뿌리내린 것은 한국교민의 자랑이 아닐수 없다. 그는 60년대말까지만해도 국내에서 알아주던 기업인이었다.제약회사 종근당의 창업주인 이종근씨의 친동생.69년까지 종근당의 전무로 일하며 오늘날의 종근당이 있게한 기반을 닦은 인물이 바로 이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종근당 이종근씨의 동생 제약회사에 관여하기 전에는 한국도서관학의 기초를 잡기도했다.국내에선 처음으로 도서관법안과 정기간행물 색인을 만들었는가 하면 십진분류법을 소개하기도 했다.국내에서 남부러울 게 없던 그는 70년 홀연 미국이민길에 올랐다. 『종근당에서 형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 3공화국에서 정부에 들어와 일하라고 귀찮게해 건너왔지.난 군인들이 정권잡는 것을 강도짓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건 정말 싫었어』라고 그는 이민 배경을 설명한다. 미국에 온 그는 5년쯤은 골프용품을 비롯한 각종 운동기구를 일본으로 내다 파는 일로 먹고 살았다.76년 갓 보급되기 시작하는 컴퓨터의 부속용품으로 무역품목을 바꾸어 다시 5년여를 수출업으로 지냈다.그러다가 애플과 IBM의 운용시스템이 다른 것에 착안,호환기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동차는 크라이슬러 제품이든,포드 것이든 운전하는 사람이 다 움직일 수 있는데 왜 컴퓨터는 안되느냐는 의문으로 제품마다 다른 오퍼레이팅 시스템에 다리를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지』.알아보니 그것은 30만달러의 연구비로 6개월이면 가능한 작업이었다.82년 그는 자본금 10만달러로 마침내 전자산업에 직접 뛰어들어 DMS의 전신 「다이아몬드 컴퓨터시스템」을 설립했다. 큰 어려움없이 하드웨어를 만들어냈다.그러나 소프트웨어건 하드웨어건 애플사가 걸어놓은 특허의 종류가 무려 40가지에 달해 그 거미줄같은 특허망을 빠져나가는데 무려 6년을소비했다.라이프사이클이 엄청나게 짧은 컴퓨터업계에서 6년이란 세월을 허비했으니 대실패는 당연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타사제품들의 호환성이 60%에 그치는 데 착안,이를 높이면 승산이 있다고 보고 6년세월을 더 매달렸던 것. 그 사이 여기저기서 불러모았던 기술자들은 모두 떠나갔다.85년초 단 한명 남았던 기술자 허형회씨(44·현 DMS기술담당이사)마저 떠나려할 판이었다.『그 친구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내가 무릎을 꿇고 빌었어.네가 가면 난 죽는다고 말이야』 결국 그는 호환성이 무려 98.2%에 이르는 컴퓨터보드 「트랙스타」를 개발했다.세계최초의 IBM­애플 호환기판이었다.85년말 녹스빌에서 열린 컴덱스에 내놓자 「텐디(TANDY)」사와 납품계약을 하게됐고,87년에는 IBM과 공급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러한 성공 뒤에는 6년여동안 3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을만큼 처절한 실패와 고립무원의 절박한 아픔이 있었다.그러한 고난의 날들을 극복한 값진 경험이 결국은 90년대에 DMS를 고속성장기업으로 달리게한 촉매가 됐다. 지난 4월 그는 회사를 상장했다.앞으로 4년동안 회사를 계속 성장시키면 3천6백만달러를 손에 쥐게하겠다는 계약으로 미국인 전문경영인을 사장으로 앉히고 자신은 경영일선에 물러났다. 주당 17달러에 상장된 DMS의 주가는 요즘 평균 27∼2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잡급직까지 나눠받은 주식으로 DMS는 실리콘밸리의 어느 회사보다도 사원들의 업무만족도가 높은 회사로 소문나 있다. ○세차례 자살기도 아픔도 『종업원들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방법은 주식공개 밖에 없었어.주변에선 어떻게 일으킨 회사인데 경영권을 포기하느냐고 말렸지만 죽을 고비에서 회사가 살아난 것은 천운으로 돌릴 수밖에 없어.하늘이 도와준 회사가 어떻게 내 것이야.난 한번도 「마이 컴패니(나의 회사)」라는 말을 쓴 적이 없지.그저 나를 거쳐서 어디론가 흘러가는게 기업이지』라고 그는 말한다. ○벤처캐피틀 회사도 설립 그는 DMS의 종업원 가운데 단 한명도 혈연을 끌어들인 적이 없음을 자부하고 있다.혈연을 끌어들이면 잡음이 들리게 되고,결국 직원들이 부담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자신의 기업이라는 식으로 소유개념을 갖는 것은 『돈 가진자들의 더러운 욕심』이라고 잘라 말한다. 고희를 바라보는 그는 DMS에서는 손을 뗀 상태이지만 다시 새로운 벤처캐피틀사업을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전자사업은 아주 익사이팅해.스포츠게임과 같지.그 사업체들 가운데서 유망한 것들을 골라내 투자하는 일을 할 거야』 그는 돈을 쓰기 위해서 더 벌어야한다고 했다. 『한국인은 세계 어디에서 살든 수천년이 지나도 제 음식과 제 말을 버리지 않는 유일한 민족이야.이민생활을 하면서 우리 민족성과 우리 문화의 정신을 후세들에게 전하는데 내 돈을 다 쓸거야』.그의 이름과 기업정신은 이종문아시아예술문화센터로 이름이 바뀐 이 박물관의 소중한 예술품들과 함께 영원히 빛날 것이다. □이종문 회장 신상메모 ▲1928년 8월1일 서울출생 ▲중앙대 법대졸 ▲미8군 극동사령부보좌관(53년) ▲국비유학생으로 도미(58년) 조지 피바디대학에서 도서관학,데이터경영학 전공 ▲고려대 경영대학원 연구과정 수료(59년) ▲국립중앙도서관사서관(60∼62년) ▲연세대,성균관대 강사(63년) ▲종근당제약 전무이사(67∼69년) ▲한국사이클연맹회장(68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중소기업연구과정수료(76년) ▲다이아몬드컴퓨터시스템사 설립(82년) ▲산호제이한인회 이사장(92년) ▲실리콘밸리한인상공회의소 이사장 및 샌프란시스코동양예술박물관 커미셔너(현재) ▲국민훈장 목련장(93년) ▲벤처캐피틀회사 AMVEX설립(95년)
  • 괴산 고성리 목장승(한국인의 얼굴:55)

    ◎긴 코에 이빨 듬성… 시골할아버지 모습/머리엔 갓… 눈썹은 붓으로 그려/천하대장군·지하장군 한쌍… 음력정월 장군제 올려 우리는 키가 큰 사람을 일러 과장하기를 「장승만 하다」고 말한다.그렇듯 장승은 키가 크다.기둥형 나무를 사람 모습으로 깎아 만든 나무인형(목우)이 장승이다.이를 목장승이라 하는데,돌을 쪼아 만든 석장승도 있다. 목장승은 장생이라는 이름으로 15세기말 기록인 「태평한화골계전」에 처음 나온다.「군수가 길가에 세운 장승을 보고 사람으로 착각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장생이 사람모습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대목이다.이 장생이 17세기이후부터는 장승으로 표기되었다.장승을 말하는 장생의 생자에는 나무 목이 들었다.그러고 보면 장승이 발생한 시기부터 나무로 장승을 만든 것이 분명해진다. 조선시대 내내 이어진 목장승은 오늘날까지도 더러 찾아볼 수 있다.충북 괴산군 청천면 고성리에서 만난 장승은 사람얼굴을 한 인면장승이었다.마을 사람들은 장승이라 하지 않고 장군으로 불렀다.오른쪽 천하대장군과 왼쪽 지하장군이 한 쌍을 이루었다.바깥 세상과 큰 거래가 없고 인적마저 드문 외진 마을인지라 마을 어귀의 장군이 사람만큼이나 반가웠다. 그런데 말이 장군이지 무섭지 않은 얼굴을 했다.무척이나 긴 인중,듬성듬성한 이빨에서 우러난 장군의 인상은 모나지 않은 성격의 촌 할아버지다.응석꾸러기 손주를 두었을 법도 한 나이인데,손주가 꺼들어 볼 수염은 없다.다만 눈썹은 코끝에서부터 붓을 대어 그려넣었다.돋을새김의 동그란 눈은 튀어나왔고 얼굴의 3분의 2를 차지한 코가 유별나게 길다.그래서 얼굴은 온통 코치레를 한 느낌이다. 천하대장군은 갓모양의 모자를 썼다.관모를 제대로 갖춘 천하대장군은 옆에 있는 지하장군과 함께 한 해에 한차례씩 대접을 받는다.음력 정월 열나흘이면 마을 사람들이 산신제에 이어 장군제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제사를 모신지가 3백년이 넘고 보면 장군제는 꽤나 오래되었다.제삿날에 비는 기원내용은 대개 농사의 대풍과 마을의 평안,무병,복 들기,잡신과 악살 막이 등이다. 이들 두장군을 모시는 장군제는 철저한공동체신앙이다.제주로 제관과 축관을 뽑는데,제삿날 10일전에 생기복덕한 사람을 반드시 가려서 선출했다.상을 당한 사람,상가와 접촉한 사람은 제주로 뽑지않는 불문율이 있다.제물은 고기를 전혀 올리지 않는 소제로 치렀다.이에 따라 삼색과일과 북어·메·탕·과가 제물로 올랐다.그 경비는 한 집에서 3천원씩 4만5천∼5만원이 든다고 했다. 이 고성리 장승인 두 장군 말고도 마을 어귀에는 다른 공동체신앙 대상이 더 있다.선돌과 돌탑·신목이다.그러니까 장군은 복합형태를 한 신앙대상물인 것이다.장군은 나무인지라 3년마다 드는 윤달이 있는 해에 새로 세운다.마을 아무 산에서 나무를 베어 만들지만,새가 둥지를 튼 나무는 제외시키는 금기사항도 있다.
  • 신용장 수출동향 예측기능 “퇴색”/실적호조 불구 내도액 감소

    ◎연불 등 결제수단 다양화로 수출신용장(LC) 내도액이 6개월∼1년후의 수출동향을 알아보는 선행지표로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11월의 수출은 1백15억4천3백만달러로 작년 11월보다 25.1%가 늘었다.그러나 수출호조에도 불구하고 수출신용장 내도액은 작년 같은기간에 비해 6.8%가 줄어들었다.내년의 수출전선에 어두운 그림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그러나 통산부 관리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수출규모가 확대되고 국내업체와 한국상품의 해외진출기반이 강화됨에 따라 신용장으로 수출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장은 수입업자의 거래은행이 수출대금의 지급을 보증하는 증서로 초창기인 60∼70년대 우리나라의 수출은 대부분 신용장 방식으로 이뤄졌다.갓 수출전선에 나선 업체로서는 신용장의 주문물량만큼 물건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수출이 1천억달러를 넘어서 세계 12대 교역국으로 성장한 지금은 수출대금 결제수단이 다양해진데다 그동안의 교역으로 고정거래처와는 무신용장 방식의 신용거래를해도 별다른 문제점이 없기 때문이다.
  • 국내 인사 축하메시지(서울신문 50돌 특집)

    ◎“통일의 길 밝히는 등불 되라” □초일류국가 도약의 견인차로/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 서울신문의 창간 50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헌정수립 이후 현대사의 어려운 고비를 넘어오면서 언론문화 창달과 민주질서 확립에 끊임없이 노력해온 서울신문의 정론필봉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돌이켜보면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불법 남침으로 인한 한국전쟁과 경제적 어려움등을 이겨내기 위해 숱한 가시밭길을 헤쳐왔습니다.반세기에 걸친 대내외적 도전들에 슬기롭게 대처해온 국민의 역량으로 눈부신 경제발전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유엔가입 4년만에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할 정도로 국력을 키워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선진권 진입을 눈앞에 바라보게 되었습니다.이처럼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궈내는 과정에서 서울신문을 비롯한 언론매체들이 끼친 영향력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세기를 마감하고 2천년대를 바라보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다가오는 새시대에는 겨레의 숙원인 통일과업 성취는 물론 정신문화를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에 꽃피워 경제력이나 생활의 질 면에서 세계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명제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넘어야할 장애물과 극복해야할 시련은 산적해 있다고 봅니다.이를 극복함에 있어 우리 언론계에 지워진 사명은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하다고 하겠으며,그 가운데서도 활자매체인 신문의 역할과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인생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한 공자의 말씀처럼 오늘 창간 50돌을 맞는 서울신문이야말로 그동안 쌓아온 원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나라의 내일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특히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소망하는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성 회복과 민주 복지국가 건설에 보다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서울신문이 특정한 정파나 계층의 이익을 떠나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정론을 펴는 고품질의 신문으로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더욱분발,정진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다시 한번 서울신문의 창간 50돌을 축하합니다. □독자 입장서 필요한 정보 제공/이영섭 전 대법원장 한 나라가 진정한 민주화가 이룩되려면 첫째로 사법권이 독립되어야 하고 둘째로 언론이 창달되어야 한다.이것이 오랫동안 문화국민들 사이에서 내려온 정설이다. 서울신문이 창간 50주년을 맞는다 하니 감회가 깊다.이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수없이 넘고 꺾어온 쓰라린 탄압과 저항을 용케도 물리치고 오늘의 꿋꿋한 지위를 차지한 것을 생각하면 오직 감격이 앞설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은 정말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여 주기 바란다.어떠한 외세에 대해서도 꿋꿋하게 항쟁할줄 아는 슬기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고,국민을 선도하고 국민을 감읍하게 하는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언론이 부패해서는 안된다.어떠한 유혹에도 의연하게 대처할줄 알아야 한다.신문이 쉬는 날은 허전한 삭막감 속에서 그 날을 보낸다.왜냐하면 신문이 주는 청신하고 달콤한 생명수가 끊기기 때문이다. 신문은 지면이 많다고 하여 반드시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지면은 적더라도 내용이 알차고 사회의 목탁이 될만한 기사를 많이 실어주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면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신문들이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이러한 피나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름대로의 노력과 근면이 필요하겠지만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기사를 많이 실어주어야 될 것이다. 언론이 숨을 죽이면 국민들은 생기를 잃는다.춘추의 필봉으로써 사회의 부정을 척결하고 국민을 선도할 때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언론이야말로 독재화로 가기쉬운 나라의 물줄기를 민주화의 방향으로 잡아줄 것이요,장한 민주화행렬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서운신문은 이번 창간 50주년을 계기로 하여 한층 분발하여 종전보다 몇곱 더 언론 본래의 사명에 충실하기를 빈다. 진심으로 뜨거운 축하의 말씀을 드리면서 몇마디 고언을 빠뜨리고 싶지않다. □서울신문만의 목소리 담아야/이광재 경희대 교수·언론학 지금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이다.세계화·개방화로 경쟁력이 중요시 되는 지구촌 시대이다.따라서 변화의 진행방향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신문계에서의 큰 변화는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경쟁의 바람이다.과거의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무한경쟁이다.새롭게 등장한 케이블 TV와 지역 민방,방송시간이 연장된 지상파 방송은 물론 비디오와 같은 영상물 그리고 신문·잡지 등과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되었다. 이러한 다매체·다채널 시대에 있어서 신문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첫째는 신문환경 변화에 걸맞은 경영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경영의 효율화와 질 높은 신문제작을 위해서 구성원들의 창의력과 추진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조직을 재정비해야 한다.위인설관 형식의 필요없는 자리는 없애고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과 같은 구태의연한 편집국 체제도 경쟁력 있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그리고 다각경영체제를 구축하여 경영의 합리화를 꾀해야 한다. 둘째는 질 높은 뉴스 생산에 주력해야 한다.질 높은 뉴스란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진실된 것을 의미한다.노 전대통령 비자금 취재 보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재벌이 경영하는 신문들이 불신을 받는 주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재벌관련 기사를 취급할때 편향적인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기자와 제작진이 필요하다.인력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전문기자도 새로 채용하고 기존 인력에도 대대적인 재충전을 해야 한다. 셋째는 색깔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제 목소리를 내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서울신문은 서울신문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신문을 구독하는 이유는 습관적인 구독도 많지만 중요한 요인은 자기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 신문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넷째는 신문 제작의 방향을 「신문인의 입장」으로부터 「독자의 입장」으로 바꿔야 한다.신문인들은 국민(독자)의 알 권리를내세우면서 취재와 제작에 임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독자들이 선택할 매체와 신문이 많고 또 신문 기사 가운데서도 읽어야 할 기사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독자들이 읽기 쉽게 제작되지 않으면 독자들을 잃게 된다.한글전용,가로쓰기,활자 키우기,컬러 인쇄,기사 색인,새로운 뉴스 발굴에 각 신문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판단된다. 지금은 신문은 춘추전국시대이다.과거의 신문들이 갖고 있던 영향력이 감소되고 있는 시대이다.신문끼리는 물론 새로운 매체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따라서 과거의 권위주의 신문의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색깔이 불분명한 신문들은 오래 지탱할 수가 없게 된 시대이다. 끝으로 서울신문의 창간 50주년을 축하하며,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스포츠 진흥 지속적 성원 기대/김운용 대한체육회장 서울신문이 창간 반세기를 맞이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광복과 함께 창간된 서울신문은 늘 빠르고 정확한 보도로 언론의 정도를 걸어 왔습니다.50년동안 서울신문은 정부와 국민 가운데에 서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격동하는 현대사의 흐름을 명확히 분석하며 나아갈 바를 제시하여 주었습니다. 광복과 유엔창설 50주년을 맞는 올해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결과 이제는 세계의 중심을 향하는 비전있는 국가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우리 체육계는 실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스포츠 선진국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해방후 단 한개라도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 국민의 바람이었던 그때와 동·하계 올림픽 5연속 세계 10위권 진입,태권도 20 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86·88 양대회의 성공적인 개최,각종 국제종합대회의 줄이은 한국유치와 굵직한 국제스포츠 회의개최 등 세계스포츠의 강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신문은 50년동안 한국스포츠의 영광과 좌절의 순간에 항상 함께 있으면서한국스포츠의 오늘이 있기까지 기여한 바 매우 큽니다. 60년대부터 70년대초까지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올해의 체육인상」을 만들어 체육인들의 사기를 높인 것을 비롯,사이클 야구 농구 배구 등 각 종목의 대회를 주관,한국 스포츠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특히 체육전문 일간지인 스포츠서울을 창간,체육 발전을 위해 선봉에 서서 체육입국을 향한 걸음을 재촉해주었습니다. 창간 50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정론으로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하며 세계화에 앞장서는 신문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착한 마음 옳은 사회 이끌어야/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무의미하게 되어가는 사회다.그러나 나는 여전히 착하게,옳게,아름답게 사는 사회를 원한다. 낯가림이라는 말이 있다.아이가 태어나서 엄마의 얼굴 가림을 하게 되면 낯가림을 완료했다고 한다. 무엇을 가릴 때에 반드시 관여되는 것이 있다.가림의 「대상」과 가림을 하는 「당사자」다.엄마의 얼굴이 「대상」이고 아이가 「당사자」가 된다. 가림의완료를 위해 대상과 당사자는 많은 반복적 접촉을 해야한다.그래야만 아이의 마음 속에 엄마의 얼굴 생김새가 각인된다.각인된 후에는 눈을 감아도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인간 마음 속에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대상이 각인되어 있다.하늘 땅 바다 강이 각인되어 있다.대상이 없는 각인은 없다. 착한 마음,옳은 마음,아름다운 마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갓 태어난 아이의 마음이 태어나자마자 착한 마음일 수 없다.착한 마음 역시 인간 마음 속에 어떤 형식으로이든 각인될 기회를 가질 때 생긴다.베토벤 음악이 없는데 인간 마음 안에 베토벤 음악을 가릴 마음이 생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그냥 산다」와 「잘 산다」라는 말이 있다.먹고 입고 자고 배설하면서,그냥 살아가는 것을 「그냥 산다」라는 말과 상관시킨다면 「잘 산다」는 말은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와 상관될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 전부가 잘 살았으면 싶다. 잘 살려면 물질적 풍요로움으로만은 안된다.마음의 풍요로움을 얻어야 한다.마음의 풍요로움은 착한·옳은·아름다운 마음이 있을 때 얻어진다.그러한 마음은 그러한 마음을 가능케하는 「가림의 대상」이 우리 주변에 상존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주변에 상존하고 있는 서울신문이 우리의 마음을 착한·옳은·아름다운 마음일 수 있게 하는,「가림의 대상」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착함·옳음·아름다움과 상반되는,어떠한 것을 낳게 하는 기사도 싣지 않는 신문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뜻도 된다.
  • LA 코리아타운(세계속 한인촌 탐방:1)

    ◎67년 10여명서 출발… 40만명의 「나성구」로.1만5천업소 성업… 한때 한·흑 갈등도 극복 90여년의 길지 않은 한국 이민사지만 이제 한국인은 지구촌 구석구석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세계 곳곳의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한인촌을 몇회에 나누어 소개한다. 「함흥냉면」「숯불구이」「흑염소탕」「만물상」「방아간」「기미 주근깨 없앱니다」….서울거리의 간판이 아니다.로스앤젤레스(LA)코리아타운에서 만날 수 있는 낯익은 한글 간판들이다. 코리아타운에 들어서면 이때문에 누구나 마치 서울 동대문부근 어느 한 곳에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이 곳에서는 보신탕만 빼고 뭐든지 서울에서와 똑같이 먹고 사며 지낼 수 있다.1년 365일 영어한마디 사용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도 있다. 흔히 일컫는 LA는 행정구역상으로 하나의 카운티안에 인구 360만명의 LA시를 비롯,고작 152명의 주민뿐인 버넌시티에 이르기까지 모두 88개의 시티(City)로 구성돼 있다.인근 오렌지카운티를 포함할때 대략 40만명의 한국인이 넓은 의미의 LA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그러나 불법체류자를 합하면 50만명이 넘는 것으로 LA총영사관측은 추정하고 있다. ○곳곳에 한글 간판 미국 이민국 연감에 따르면 93∼94회계연도에 미국에 들어온 비이민 한국인방문객의 수가 39만9천명.이 가운데 27.9%인 12만4천9백44명이 LA를 통해 미국에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결국 한해 평균 60만명이상의 한국인이 LA지역에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니 「서울시 나성구」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미주지역 한인사회에서 필수책자인 「한인업소 주소록」을 토대로 한 자료는 LA지역이 얼마나 한국화돼 있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하와이와 알래스카를 포함한 미 서부지역의 한국인업소 1만8천4백72개가운데 무려 82.7%인 1만5천1백60개 업소가 LA인근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이민가정과 유학생,상사주재원 할 것없이 LA지역에 생활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인들의 「정신적인 서울」이 바로 「코리아타운」이다.한인주민만 10여만명,업소가 2천5백개나 몰려 있는 곳이다. LA국제공항에서 북동쪽으로 20여㎞거리에 위치한 「코리아타운」은 서울로 치면 종로거리처럼 LA의 각급 행정기관과 비즈니스센터가 몰려 있는 다운타운에 바짝 붙어 있다.세계영화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는 코리아타운에서 승용차로 10분남짓 거리다.미국 서부 최대의 도시라는 LA에서도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67년 LA에 정착,교민1세의 원조로서 「김방아 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김명한옹(91)은 『내가 지금의 코리아타운에서 남쪽으로 10블록 떨어진 제퍼슨가에 처음 방앗간을 차렸을 때만해도 한국사람은 10명정도 밖에 살지 않았었다』고 기억하고 있다.그럴진대 이민사가 길지 않은 한인들이 어떻게 이 노른자위 땅에 「작은 한국」을 세우게 됐을까. 60년대말부터 LA다운타운 인근지역은 사실상 슬럼화돼가고 있었다.남부지역에서 올라온 흑인들과 국경을 넘어온 히스패닉(라틴계 중남미인)들이 LA남부지역부터 자리잡기 시작,서서히 다운타운쪽으로 인구이동을 했다고 한다.결국 기존의 백인들이 하나둘 중심가를 떠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 갓 이민길에 오른 한인들은 고국에서 가져온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었다.외환관리법이 엄하던 시절이라 많이 가져올 수도 없었다.그러다보니 생활기반을 잡기에는 백인들이 나가버려 땅값이 곤두박질치고 있던 다운타운 인근지역이 안성맞춤이었다.70년무렵부터 이민자와 유학생들이 찾아들기 시작,당시 1스퀘어피트(약 0.1㎡)당 4달러씩 하던 지금의 올림픽대로를 중심으로 하나둘 한인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동쪽으로 「버몬트」,서쪽으로 「웨스턴애브뉴」,남쪽으로 「올림픽대로」,북쪽으로 「8가(가)」에 이르는 반경 5㎞정도의 구획을 대략적인 경계로 코리아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72년12월.9명의 한인상인들이 「코리아타운번영회」(현 코리아타운교민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이 지역의 상가에 한글간판달기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다.그러나 당시만해도 한인상점의 수가 20개도 채 되지 않아 한인들을 상대로 한 한글간판달기작업은 금세 끝나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미국인들이 주인인 업소들을 찾아다니면서 한글로 간판을 달아야 한국사람들이 당신네 가게가 뭘 파는지 알고 돈을 쓸 것아니냐고 설득,두달동안 61개 업소에 한글간판을 달아주었다』고 초대 번영회장 김진형씨(63·코리아타운한인회 명예회장)는 회고한다. ○영어학원도 등장 「문방구」「이발소」「식품점」같은 한글간판들이 거리에 나붙자 자연스럽게 한인타운이 이뤄지기 시작한 셈이다.교포라면 너도나도 코리아타운에 상점을 빌렸다.웃돈을 얹어주면서 세를 얻어내는 한인들에 밀려 백인들의 상가는 순식간에 빠져나갔다.교민수가 3만명을 넘어서면서 한국종합의료원이 들어섰고,영어학원까지 생겨 74년9월10일에는 첫 코리안퍼레이드행사까지 펼치게 됐다. 70년대 초에 이어 다시 붐을 이룬 79∼81년 무렵의 이민인구를 흡수하면서 한인상가가 급격히 팽창,81년8월 캘리포니아주정부가 「코리아타운」경계구역을 지정하고 그 명칭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82년2월에는 이 지역을 지나는 산타모니카 프리웨이 상에 「코리아타운」 안내표지판이 부착됐다.행정구역상의 명칭은 아니지만 미국 땅위에서 공식적으로는 유일한 한국인 밀집지역으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그러나 「코리아타운」은 90년대들어 불어닥친 캘리포니아지역의 불경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최근 수년간 최악의 분위기에 빠져있는 모습이다.특히 92년 4.29 흑인폭동으로 2천여개의 한인업소가 피해를 당한데다 지난해 노스리지 지진으로 외래관광객마저 격감,만나는 한인들마다 『장사가 안된다』고 울상이다. 잇따라 폭동과 지진이후 한인들마저 「코리아타운」에서 주거지를 옮겨 남쪽의 오렌지카운티나 학군과 주거환경이 좋은 LA동부의 외곽지역으로 이동,새로운 한인촌을 형성하기 시작함으로써 「코리아타운」의 경제력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80년대 최대 호황 대로변의 상가 뒤안에 밀집된 낡은 싸구려 임대아파트들은 구매력이 약한 노인층과 흑인 빈민층,히스패닉들의 거처로 변해 어느덧 LA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가운데 하나로 소문나있을 정도다.최근에는 한국에서 건너온 조직폭력배들이 기존의 갱들과 세력다툼을 벌이느라 총질을 해대기 일쑤이고 돈많은 조기유학생들이 흥청망청거리는 유흥행각을 펼쳐 한인사회의 골칫거리가 된지 오래다. 주류잡화상인 리커스토어상인들의 모임인 가주한미식품상협회 윤희륜회장(53·LA한인회이사)은 『코리아타운이 너무 넓어져 관리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상징적인 건물양식을 만들어 코리아타운의 역사는 지키되 한인들도 보다 폭넓게 각지로 분산,발전해나갈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LA코리아타운은 4반세기의 역사를 쌓는 시점에서 변신의 새 단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김진형 코리아타운한인회 명예회장/한인동포사회 정신적 고향/“22년째 코리안 페스티벌에 보람” 『코리아타운은 미국이민사회의 정신적인 고향입니다』 코리아타운 형성을 처음 제안했던 코리아타운한인회 김진형 명예회장(63)은 「코리아타운」의 산 증인이다.관광공사 일본지사에 근무를 마치고 71년 유학생비자로 LA에 발을 디뎠다가 그대로 눌러앉게 됐다는 김회장은 이듬해 한인상인 8명을 발기인으로 규합,「코리아타운 번영회」란 단체를 만들고 현재의 코리아타운 조성작업을 벌인 산파역. 탁월한 서예솜씨를 지닌 김회장은 한글간판달기 운동으로 코리아타운 형성작업에 착수하면서 직접 간판글씨를 써주는등 초기 LA한인타운 건립에 주도적인 몫을 맡았었다. 『LA를 비롯한 남가주 경기는 코리아타운에서 맨먼저 느낄수 있지요.한인봉제업체들을 거친 의류가 백인을 비롯한 미국인들에게 팔리고 그렇게 해서 들어온 달러는 바로 코리아타운에서 쓰여지니까요』 지난 10월까지 22회째 이어져 내려온 LA코리안페스티벌의 창시자이기도한 김회장은 『코리아타운이 제 모습을 갖추면서 미국 주류사회에서 한인들의 위상도 높아진 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LA시정부의 경찰청이 관할하는 인허가심사커미셔너를 맡고 있기도한 김회장은 코리아타운이 최근 침체돼 있는게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한다.그는 『범죄퇴치와 난립해 있는 한인단체들의 단합,그리고 차이나타운이나 리틀도쿄처럼 재개발을 거쳐 보다 현대적인 상가건물을 새로 지어야한다』고 코리아타운의 방향을 제시했다. 『고국의 동포들이 코리아타운을 이민자들의 거리라고만 여기지 말고 이웃동네처럼 성원과 관심을 보내주셔야 이곳 LA이민사회가 함께 성장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 「청학동 훈장」이 본 오늘의 세태

    ◎이정석씨,에세이집 「세상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 펴내/여유라곤 없는 도시문명의 야멸참 꼬집어/유교선 남존여비 아닌 역할 분담을 가르쳐/“움겨쥔 주먹·옹골찬 눈빛 풀고 서로 다독이자” 제의 전직 대통령이 수천억원의 뇌물을 챙기고,멀쩡한 백화점이 눈깜짝할 새 무너지는 혼탁한 세상에 샘물 같이 맑은 이야기들을 담은 에세이집이 나왔다. 지리산 청학동 훈장 이정석씨(42)가 최근 펴낸 「세상 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가 그것(가리온 출판).이씨는 전남 낙안읍성에서 태어나 전국을 돌며 한학을 공부한 뒤 청학동으로부터 초청받아 1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세상과의 만남이 웃음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갓쓰고 한복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른이건 아이건 웃기부터 한다는 것.심지어는 정신병자나 간첩일지 모른다는 신고 때문에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전통의복을 입었다고 해서 놀림거리가 되는 세태에 대해 이씨는 분개하지 않는다.다만 『세인소아 아소세­세상 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고 혼자 읊을 뿐이다. 문명의 이기도 그가 보기에 결코 이롭지만은 않다.서울에서 전철을 처음 타던 때의 일.일행이 모두 내리고 자신의 차례가 되자 전철 문이 닫혔다.「갓쓴 체면에 경망스럽게 내릴 수 없었던」그는 기계적인 야멸참에 당혹감과 섭섭함을 느꼈다.사람이 평상걸음으로 내릴 여유를 주지 않는 문명의 이기,인간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그것은 끝내 크나큰 봉변을 안겨주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청학동 훈장님」이 마냥 고리타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남녀관계에 대한 사고가 대표적이랄 수 있다.그는 『남존여비는 사이비 전통』이라고 단정한다.비록 조선시대 유교 원리가 잘못 이해되고 사용돼 남자를 더 귀하게 여겼지만,선현들의 바른 가르침과는 다르다는 것.남녀는 상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역할을 분담한 것이라고 강조 한다. 섹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그는 『섹스는 아름답고 신성한 것이며,삶의 소중한 보석』이라고 말한다.옛날에도섹스를 단순히 애낳기 위한 행위로 보는 선비와,그 즐거움을 적극 만끽하는 선비 가운데 후자를 더 도가 높게 쳤다는 것이다.그러나 「소중한 보석은 함부로 다루지 않듯 섹스도 함부로 대하면 복이 화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훈장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움켜진 주먹을 풀고,옹골찬 눈빛도 풀자』고 제의 한다.그리고 『우선 나를 사랑하고 때로는 다독거리고 덮어주고 그래서 오천년 살아온 그 멋따라 살자』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갓쓰고 한복입은 채 기업체·대학·사회단체들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올바른 도리를 일깨우고 있다.
  • 「라쇼몽」(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인간성 회복” 호소한 「철학 영화」/일본 영화의 존재 세계에 드높인 작품 구로자와 아키라(흑택명)감독의 「라쇼몽(나생문)」은 일본영화가 아직 세계무대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일약 일본영화의 존재를 세계에 드높인 작품이다.영화 「랴쇼몽」은 일본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쿠다가와 류노스케(개천용지개)의 동명 단편소설과 그의 또다른 소설인 「덤불속」을 각색하여 만든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불신」과 「인간신뢰」라고 하는 두 명제를 테마로 강간살인사건을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다.이야기는 일본 평안시대 말기의 황폐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한 무사와 그의 아내가 숲속을 지나던 중 처는 도적에게 강간을 당하고 무사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다.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살인사건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증언하는 도적,무사의 처,그리고 무당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무사의 증언을 중심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불신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이들은 각자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놓일 수있는 증언을 한다.도적은 사랑을 얻기 위한 정당한 대결을 통한 살인이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무사의 처는 자신의 정조를 보호해주지 못한 남편의 무능력에 대한 증오의 형태로,남편은 정조를 지키지 못한 자기 아내에 대한 증오를 진술한다.결국 세사람은 각자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이기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우리는 이 사건의 증언을 지켜보던 나무꾼·승려·그리고 하인의 대화를 통해 인간이 지녀야 할 하나밖에 없는 인간진실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의 의미로 둘러싸인 세사람의 상극적인 구조는 자기존재를 건 싸움이고 자기보존적인 충동이 에고이즘의 형태로 나타난 갈등은 인간불신,회의사상을 나타내고 있다.극한상황에 놓인 인간,절망의 늪에서도 인생을 사랑하고 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나무꾼·승려·하인의 모습은 인간진실의 불가해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커다란 감명을 준다.황폐한 사회에 버려진 갓난 아이,그 아이의 옷을 벗겨가는 하인의 무뢰함,그러나 극한상황에서도 인간적 진실성을 잃지 않는나무꾼의 행동은 인간신뢰와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우리집엔 여섯명의 아이들이 있어! 여섯을 기르거나 일곱을 기르거나 기르는 것은 마찬가지야』 아이를 껴안고 출발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다운 인간상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1950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의 철학을 전달하고 있다.
  • 「북경대 한국학연구센터」 세미나 중계

    북경대 한국학연구센터(소장 양통방 교수)는 19·20일 이틀동안 중앙도서관에서 「한국의 전통문화 국제학술연구토론회」를 가졌다.한국국제교류재단등이 후원한 이번 세미나에는 김준엽 사회과학원원장(전고대총장),김정배 고대교수등 국내학자,조중병 천진남개대교수 등 중국학자,이등영 인도쿄외국어대학 교수 등 일본학자와 재미학자등 4개국에서 66명의 학자가 참가,한국의 철학·종교·역사·언어 등 3개분과에 걸쳐 이틀동안 토론했다. 이들중 조교수와 서대숙교수의 발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한국정치사상과 민족의식/서대연 하와이대 교수 한국민족의 고유사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반만년 역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에도 불구,선뜻 대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한국문명이 고유사상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오는 역사발전 방식보다는 외래문명·사조를 수용·개선하는 방식을 위주로 발전해 왔다는 경향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불교·유교·기독교 및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신문명등 한민족의 지배적 사상들도 모두 외래사상이다. 「대한민국」이란 공화국도 한국국민들이 정치혁명을 통한 건립이라기 보다는 외국세력의 점령과 해방등 부단한 이민족 개입을 통해 형성됐다는 설명이 더욱 비중을 갖는다.현재 한반도의 남북한은 각기 독자적인 외래 정치사상을 신봉하면서 대립해 있다. 역사적으로 고려 및 이조시대는 한국역사에서 외래사상의 가장 왕성한 토착기로 이해될 수 있다.한국의 오랜 역사동안 수없는 이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강한 민족의식을 유지해왔다는데 이견이 없지만 한국의 민족의식을 담은 독특한 정치사상을 발전시켜왔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이다. 조선말 신문명을 수용할 때나 일본의 강점이후 독립운동을 벌일 때에도 한국의 지도자들은 명확한 사상적 제시에는 실패했었다.3·1운동 역시 내재적인 사상적 지도를 받았다기보다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라는 외래사상에 더 힘입은 바가 크다.이조말기 대한제국이 성립되는 시기와 과정에 있어서 강렬한 민족의식과 선각자들의 활동은 과소 평가될 수 없다.그러나 그들은 한국정치사상과 가치관정립에는 소홀했다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사상적 특질은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서 이상향을 건설해야 한다는 하늘과 인간이 동일시 되는 천인합일적인 현세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19세기말 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이러한 한민족의 사상의 정화다.불교는 한국역사에 찬란한 영향을 끼쳤지만 불교사상의 기본축인 평등사상은 한국문화전통에서 하나의 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한국의 정치학자들도 한국민족의 의식을 체계화하지는 못했다.한국의 민주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도 한국민족에게는 외래사상이다.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 양쪽 모두가 다 수용하고 긍정할 수 있는 한국민족의 정치사상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시대의 한국지도자들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통문화와 현대화/조중병 중국 남개대 교수 80년대초 일본의 학견화자씨는 근대화및 전통문화 연구·분석에서 통치계층 중심을 벗어나 농민·어민등 민중의 습관,신앙,우주관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이런 측면에서 한국문화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층층 구조를 지닌 다차원의 체계라고 정의된다.종교적으로 한국은 다종교 국가이며 세계 제1의 유교국가면서 동아시아 제1의 기독교국가라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70년대에 3.5∼13%에 불과하던 기독교는 91년 무렵 24.3%로 성장했다.이에대해 미국 하버드대학의 두유명교수는 전형적인 유교국가가 기독교와 결합,새로운 유교윤리를 창조해내고 있다고 말한다.이같은 종교적 변화와 신흥종교의 발흥은 사회적 격변과 전통사회 와해에 따른 충격으로 발생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러나 기독교및 신흥종교의 확산이 산업화의 결과이지 동력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현대화는 유교적 토양 연구를 통해 규명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유교적 특징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교육열과 성취지향적인 사고방식이다.유가의 입신출세적 문화전통은 한국의 소득이 90달러였을때 미국의 2백달러 수준의 교육수준에 이르게 했으며 1백달러를 갓 넘었을땐 3백80달러 수준의 교육정도에 도달하게 했다.쌀재배 문명권의 근면한 노동자세와 이같이 강력한 교육열은 우수한 한국노동력의 기초적인 바탕이며 현대화의 토대였다. 한국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집단주의도 공익 우선의 정치문화와 질서존중사상의 확립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고 경제발전을 주도한 정부및 기업·국민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설정하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유교적 전통 이외에도 근대 들어 함양된 국민의 높은 저항정신과 비판의식은 정부의 권한남용과 탈선을 막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18세기말 조선왕조는 근대화를 지향하는 내적 요소와 맹아를 키우지 못하고 일제의 먹이로 주저앉았다.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한국의 유교적 문화전통은 내용·형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기본성격은 유지하면서 한국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다.다른 곳에서는 파산적일 수 있었던 군사독재가 근대화의 일익을 담당했던 것도 유교적 정치전통에 힘입은 바 크다.이같은 점에서 한국의 현대화는 외부영향에 의한 수동적 발전이라기보다는 한국특색의 돌진·쟁취형 현대화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 김 대통령 「차기 젊은후보」 언급 안팎

    ◎「3김시대」 차단의지 강력 표명/“40∼50대 세대교체”지역할거 극복 노려/「물리적 기준」 구체화… 정치권 논란일 듯 김영삼 대통령이 9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언급한 내용의 핵심은 역시 차기대권 후보의 「세대교체」에 대한 의지표명이다.김대통령은 『놀랄만한 정도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제하고 『여당은 놀랄 정도의 젊은 후보를 내세워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내외신회견을 통해 차기대권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줄곧 「세대교체」를 강조해 왔다.차기 후계자의 덕목과 조건으로 정직성,진실성,도덕성,청렴성,강력한 지도력을 제시했다.이날 회견에서는 여기에다 「국민이 깜짝 놀랄만한 젊은 후보」가 추가됐다.이전까지의 언급이 해석에 따라 대상을 달리할 수 있는 추상적 표현으로 여겨진 반면 「젊은 후보」는 「나이」라는 물리적 기준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여권내 반향이 주목되고 있다.그만큼 이에 대한 정치권의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다만 「젊다」는 기준이 어느 정도의 연령층을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김대통령도 꼬집어 밝히지는 않았다.그러나 통념상 40대 내지 50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일 뿐이다.김대통령은 40대인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국정운영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이미 대권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그리고 「독자영역」 구축에 몰두하고 있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해석이다.이른바 「3김시대」가 차기에도 지속될 가능성에 대해 김대통령은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정치가 달라져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차원에서 아직도 「지역할거주의」에 의지하는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는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언명은 내년 총선의 최대 이슈를 「세대교체」문제로 부각시켜 승부를 걸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지역바람」을 등에 업은 야권 두 김총재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수단은 「정치권의 세대교체」로 여권내에서는 공감대가형성돼 있는 상태다.내년 총선결과에 따라 정국구도가 달라질 것은 불문가지다.김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도 『다음 총선에서 여당이 1백% 과반수를 얻을 것』이라고 총선승리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김대통령이 밝힌 「젊은 후보」는 여권의 이른바 「차세대 주자」들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로도 풀이되고 있다.김대통령은 최근 여권의 일부 중진급 인사들이 「차기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과 관련,『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임기의 절반을 갓 넘긴 시점에서 더군다나 총선을 앞둔 시기에 「차기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왔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회견발언은 묘하게도 김윤환 민자당 대표위원이 차기 후계구도에 관해 언급한 내용과 시점이 비슷해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김대표는 이날 낮 기자들과 오찬을 나누며 『당의 차기대권후보가 당밖에서 올 수도 있고 당내에서 거론되는 인물들이 아닌 40∼50대 인물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김대표의 발언이 김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나온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김대통령의 이날 회견내용과 관련,『김대통령은 차기에는 반드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현 시점에서 여권의 「차기후보」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거듭 강조했다.내년의 총선결과를 비롯,「차기문제」에 대한 정치적 가변성은 무궁무진하다는 설명이다.
  • 「정체성」 좇는 이민삶 조명/김인숙 장편 「먼길」문학동네서 출간

    ◎1년4개월 호주생활 체험 토대로 집필 작가 김인숙씨(32)가 새 장편 「먼 길」을 문학동네에서 냈다.1년4개월간의 호주생활을 막 청산하고 돌아온 작가의 직접 체험이 배어있는 소설이다. 지난 83년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상실의 계절」이 당선돼 등단한 작가는 일탈적 연애풍경을 능란한 심리묘사로 그린 당사자가 갓 스무살의 대학 1학년생이라는 점때문에 유달리 주목의 대상이 됐다.하지만 당시 사회현실에서 글재주가 마냥 축복일수만은 없었던 그는 언제부턴가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80년 서울의 봄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움직임을 점묘한 장편 「79∼80 여름에서 봄까지」,삶의 현장이 곧 연애의 터전이라는 요지의 「긴 밤 짧게 다가온 아침」,가부장적 결혼과 옹졸한 소시민의식을 해부한 단편집 「칼날과 사랑」 등이 그의 주요작품.뒤틀림을 정직하게 공격하면서도 상처를 감싸는 성숙한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의 새 작품 「먼 길」은 젊은 날 고국의 현실에 쓴 맛을 보고 호주로 이민온 세사람의 바다낚시 여행을 중심으로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교직되며 전개된다.낚싯배의 선장인 한림은 70년대 통기타 가수였다가 자신의 앨범 타이틀곡이 금지곡이 되자 가족도 버린채 호주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명우는 한때 운동권이었지만 이젠 이곳 빌딩의 청소부가 돼 마네킹들 사이에서 평정심을 찾는 무력한 모습으로 변했다.한림의 동생 한영 역시 고국의 현실에 환멸을 느껴 이민왔으나 조건좋은 현지회사를 때려치우는 등 방황한다. 비바람 몰아치는 난바다에서 날선 말들로 서로를 공격하며 체념어린 회상에 잠기는 이들은 허깨비같은 무력감을 쉽게 털어버리지 못한다.「우리의 길은 옳았는데 우리의 삶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하지만 한영은 오랜 진통끝에 상처와의 정면대결만이 실마리임을 불쑥 깨닫는다.「지금 필요한 것은 잊는 것이 아니야.상처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온가슴이 문대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라는 소설의 결론은 불명료하고 어설픈대로 우리들에게 정체성 찾기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숙제로 던진다.
  • 일,방위청 간부 동남아 첫 파견/인니 등 3국에

    ◎침략 이미지 벗고 새 군사관계 모색 【도쿄 연합】 일본 정부는 24일부터 방위청 심의관급 간부를 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 등 3개국에 파견,동남아시아국가와 일본간의 새로운 군사관계를 모색한다. 이들 3개국을 차례로 방문할 방위청간부는 지난 7월 갓 신설된 「신뢰양성·군비관리담당」 심의관으로 내달 1일까지의 순방기간중 각국의 국방당국자들과 만나 일본의 방위정책을 설명하고 지역정세등 안전보장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일본의 방위청책을 담당하는 간부가 동남아시아를 순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방위청은 이들 지역에 남아 있는 과거 일본군의 침략 이미지와 일본의 방위정책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 가을철의 건강관리(최선록 건강칼럼:81)

    ◎급성간염 등 잠복기 지나 발병 많아져/미꾸라지·고등어 건강식품으로 제격 해마다 처서가 지나 백로가 가까워지면 아침 저녁으로 제법 써늘한 가을바람이 분다.가을은 다른 계절에 비해 질병발생률이 비교적 낮지만 급성간염을 비롯,유행성출혈열 및 간난아기의 설사병인 가성 콜레라가 대표적인 가을 계절병에 속한다. 사람의 몸은 여름철에 땀을 많이 흘리고 피로가 쌓이며 식욕부진으로 몸이 약해졌기 때문에 가을동안 충분한 영양섭취를 통해 체력을 강화시켜야 추운 겨울철에 잔병을 앓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가을철에 단백질과 지방을 이상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식품으로는 미꾸라지·꽁치·멸치·고등어를 손꼽는다.또 비타민A,B₁,B₂,C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식품은 콩·팥·메밀·율무·감·밤·은행·호도·사과·귤·무잎·갓·배추·표고버섯·송이버섯·땅콩·참깨·김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주 감염되는 급성간염은 여름 휴가중 불결한 식수를 마시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피서지나 풀장에서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잠복기를 거쳐 가을철에 나타난다. 대부분이 B형인 급성감염의 초기증세는 감기 기운이 있고 두통,구토,고열이 나며 몸이 나른할 뿐 아니라 가끔 복통이 있다.또 황달이 생겨 눈알이 노랗게 변하고 소변빛깔이 진하지만 1주일 정도 지나면 서서히 없어진다. 치료는 단백질을 위주로 하는 식사요법이 기본이 된다.간염 치료에 적극 권정되는 식품은 살코기·우유·달걀·조개·생선·콩·논우렁이·율무·모과·구기자·칡뿌리·미나리·쑥을 들 수 있다. 유행성 출혈열은 10월 초순에서 11월말까지 서울·경기·강원 북부지역 주민들에게 많이 발생한다.이 병은 야유회 때 숲과 잔디밭에 주저앉거나 골프장이나 탈곡기 주변의 작업장 및 휴전선 인근지역에 근무중인 군인들에게 감염될 기회가 많다. 농촌지역에 서식하는 등줄쥐나 집쥐의 배설물속에 들어있는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유행성 출혈열은 종합병원에 조기 입원·대증요법을 받으면 치료가 가능하다.최근 국내에서 개발된 이 병 예방주사를 1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하면 거의(약 95%)가 예방할 수 있다. 늦가을에 유행하는 가성콜레라는 생후 6∼24개월 사이의 젖먹이가 자주 걸리는 바이러스성 위장병인데 쌀뜨물 같은 설사를 한다.이 병은 바이러스와 쌀쌀한 날씨에 의해 복합적으로 발병한다.대체로 3∼7일동안 설사를 하고나면 자연히 치유된다.특히 설사가 심한 아기는 탈수증을 예방하기 위해 보리차에 설탕과 소금을 탄 음료수를 1일 5∼6회 정도 계속 마시게 해야한다.
  • 정치인의 나이/황병선 정치부장(서울논단)

    민자당에 불혹을 갓 넘긴 사무총장이 탄생하면서 정치판에서뿐 아니라 너나 할것없이 나이에 대한 관심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43세에 총장이라니.더구나 총선을 반년 남짓 앞둔 시점의 집권당 총장이 그게 보통자린가.난 이미 너무 늙어 버린것은 아닌가』하는 탄식을 자주 듣게 된다.50대의 별로 늙지도 않은 사람들로부터. 유권자 가운데 20∼30대가 60%를 차지하게 된것이 어제 오늘의 일인가.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서울신문사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9%가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또 이들의 61%는 세대교체가 선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정작 물갈이의 표적이 되고있는 정치권의 기류는 다른것 같다.하기야 그래서 「여론」은 선거라는 힘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 게다. 70세(김대중)와 69세(김종필)에 2년반 후의 대권경쟁에 대비,새 정당을 만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두금씨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 무궁한 스태미나에 감탄치 않을 수 없게 된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영삼대통령과 함께 이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방법으로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왔던 「젊은 스타」들이었다. 김종필씨는 35세에 5·16을 주도,중앙정보부장을 맡았고 37세엔 공화당의장,45세에는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87년 61세로 대선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같은 시대 박정희소장은 44세때 대통령에 취임해 18년 집권후 62세에 시해당했으니 5·16은 엄청난 힘으로 세대교체를 강요했던 셈이다.당시 윤보선대통령은 63세,장면총리는 61세였다.더 거슬러 올라가면 48년 취임시 이승만대통령은 73세였고 85세때 4·19로 하야,별세했으며 이시영 부통령은 80세에 취임했었다.이같은 고령은 일제에 오랫동안 투쟁을 해온 지도자들이 정부의 요직을 맡은데서 온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47세에 제1야당 총재에 선출된 김영삼대통령과 함께 야당에서 40대 기수론을 펼쳤던 김대중씨는 『젖비린내 난다(구상류취)』는 선배들의 비난을 뚫고 71년 46세로 신민당 대선후보가 됐었다.그후 굴곡의 세월을 보낸뒤 62,67세에 각각 대권에 재도전했었고 72세가 되는 97년의 「대권 4수」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40대 기수론을 전후한 시기 신민당의 유진산 당수는 65세,김홍일당수는 73세에 각각 취임했었으니 김대중후보는 김영삼총재와 함께 대단한 정치권의 물갈이를 달성했던 셈이다. 이 5·16의 30대 젊은 주역,그리고 야당 40대기수론의 선두주자 중 한사람이 고희의 70에 여전히 대권수업을 하며 이번엔 세대교체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으니 우리 정치사의 아픈 대목이 아닐수 없다. 사회적 정년은 55세에서 65세가 보통이다.몸을 쓰는 직업은 55세,경륜과 두뇌가 요구되는 교수같은 자리는 65세로 돼 있다. 다만 정치에는 정년이 없다.청년의 패기와 장년의 세련미,노년의 완숙한 지혜,이 노·장·청 3박자가 조화를 이뤄 국가를 이끌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에겐 각기 시대적 역할이 주어져 있게 마련이다.이승만 대통령의 건국,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같은 줄기에서 이를 이어받아 세대교체를 이룬 5·6공,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를 각기 그 시대정신이랄 수 있다. 두김씨의 시대적 역할은 60년대와 70년대의 세대교체 촉발과 「투쟁」으로 끝났거나 그렇지 않으면 앞에 제시한 지도자들의 역할을 되풀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역사를 정체시킬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오직 불혹이다 고희다 하며 나이만을 따지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화·전문화 등 다가오는 21세기 한국의 시대정신에 맞는 자질과 사고력을 갖춘 「지도세력」을 찾아내고 키워나가자는 것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세대교체의 핵심일 것이다.
  • BAM철도 시발지/타이셰트(시베리아 대탐방:31)

    ◎마을 간격 수백㎞… 끝없는 삼림지대로/쿠즈바스탄전 연결 철도,지난 65년 건설/9월초까지 휴가시즌… 가족 여행객 많아 시베리아 여행중 관광지마다 졸업여행을 온 단체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중학교만 졸업하면 여학생의 경우는 곧바로 결혼적령기(16∼18세)가 되고 남자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니 졸업여행이다 사은회다 해서 요란하게 기념식을 갖는 것이다. 모스크바를 떠난지 꼭 열흘째 되는 날 현지시간으로 상오10시10분 크라스노야르스크역을 떠났다.모스크바에서 출발한 특급 「러시아2호」를 다시 탔다.다음 행선지는 세계최대의 담수호를 만날 이르쿠츠크.시베리아여행중 최고의 경관을 구경할 구간을 지나게 된다.이르쿠츠크주로 진입하면서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5시간으로 늘어나 마침내 한국과 같은 시간대가 됐다.모스크바와 한국과의 시차는 원래 6시간이지만 러시아전역에서 3월말부터 9월말까지 서머타임을 실시하기 때문에 시차가 지금은 5시간이다. ○차창밖은 초봄 풍경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을 벗어나며 차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본격적인 타이가지대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 이전에 나타난 타이가는 숲이 아주 촘촘했다.반면 이제는 아주 성긴 숲이 계속되고 있다.베료자는 아직 잎을 달지 못해 헐벗은 겨울나무 풍경이다.체료무하도 꽃을 달지 못했고 타이가 침엽수 「리스트니차」는 이제 갓 연푸른 잎을 내밀기 시작했다.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를 벗어나며 차창밖으로는 갓 초봄의 정경이 펼쳐지고 있다.숲의 밀도가 떨어진 타이가 곳곳에 산불흔적이 보이고 철로변 양지쪽의 잔디밭에는 점심휴식시간인듯 철도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초봄의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동시베리아로 접어들며 느끼는 여행의 또다른 맛은 곧은 철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기차는 구릉과 산허리를 이리저리 휘감으며 나아가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서시베리아에서는 그저 막막한 숲,대지만 보며 길이 일직선으로만 나있었다. 차창밖 타이가지대에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시베리아 인구의 80%는 중소,대도시에 모여있다.그래서 철로변에도 인가를 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타이가지대로 들어가면 작은 마을들이 같혹 있지만 마을간 간격이 보통 수백㎞씩 된다.대시베리아철도가 완공되기 전인 18 90년 시베리아횡단여행을 했던 작가 안톤 체호프는 여행기에서 『타이가의 위력과 신비는 그것의 무서운 침묵이 아니라 그 끝을 알고 있는 생명체가 철새들 뿐 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썼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탄 열차는 객실 한칸에 양옆 2층으로 된 4명이 타는 침대차였다.2명씩 타는 최고급보다는 한결 서민적이고 값도 싸다.그런 탓인지 양옆으로 러시아인 이웃들이 많이 탔다.대부분 휴가를 받아 다른 도시의 부모친척을 만나러 가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이었다.러시아에서 휴가철은 보통 5월말부터 시작해 9월초까지 이어진다.직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1개월∼2개월씩의 휴가가 주어진다. ○최고 2개월간 휴가 출발 30분만에 남부 아바칸에서 BAM철도의 출발점인 타이셰트로 연결되는 지선과 만나는 우야르역을 지났다.우야르에서 타이셰트까지는 두 선로가 1백㎞거리를 두고 거의 평행되게 달려가 타이셰트에서 합쳐진다.남쪽의 이 아바칸­타이셰트선은 시베리아철도가 붐비면서 지난 19 65년 건설됐는데 서쪽으로 쿠즈바스탄전과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산업철도다.아바칸에서 서쪽으로 사이아나산맥을 넘어 쿠즈바스까지의 구간은 많은 터널을 지나며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아바칸을 지나고 얼마 안 있으면 칸스크역이 나타난다.「칸강변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인구 10만명 내외의 작은 마을이지만 16 28년 요새로 건설돼 매우 오래된 마을로 유명하다.처음에는 변경수비를 맡은 에니세이 코작이 살았으나 17 17년부터 모스크바∼이르쿠츠크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트랙(길)이 통과하면서 급작히 발달했다.「스파스카야」「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등 유서깊은 교회건물들이 많은데다 섬유·양초·비누 생산지로 꽤 이름높은 곳이다.아울러 이글스트롬·모자렙스키·살라비요프·발렌베르크등 이름난 데카브리스트들이 이르쿠츠크 유형길에 머문 것으로도 유명해진 마을이다. ○바이칼호 부근 도착 이튿날 상오8시30분 마침내 「자(뒷쪽)오제르느이(호수)」지역에 진입했다.드디어 바이칼호수와 연관된 이름이 나타난 것이다.낮12시40분에 클루치역을 지났다.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44 67㎞를 가리켰다.클루치는 「열쇠」라는 뜻으로 크라스노야르스크주가 끝나는 마지막역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마침내 여행을 시작한 뒤 13번째 주인 이르쿠츠크주로 들어섰다.비류사강을 지나며 곧바로 타이쉐트역을 지났고 이어서 기차는 다시 방향을 틀어 이르쿠츠크까지 한동안 남진을 계속한다.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도 훨씬 따뜻해졌다. 옆칸에는 북극해에 연한 튜멘주 영토내 야말­네네츠키 자치구에서 일하는 노동자 일가족이 타고있었다.부부가 8살난 딸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휴가를 맞아 하바로프스크에 사는 노부모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47살이라는 이 건장한 노동자는 북부 혹한지대에 사는 노동자들의 애환과 생활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기다리라고 한 뒤 문을 걸어잠그고는 무려 30분 이상 전가족이 옷치장을 하고난 뒤에야 사진촬영에 응하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지난 77년 콤소몰(청소년동맹)로부터 튜멘북부 건설현장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고 그곳에 간 뒤 도로·철도·공항건설·유전·가스개발등에 참여했는데 점점 더 북쪽으로 올라가 지금은 거의 북극해 바로 밑인 노브이 우렌고이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당시 오지 건설공사장 참여자들은 「까라차예바」라고 불렀는데 모두들 건설영웅 대접을 해주어 우쭐한 기분으로 일했다고 했다.지금도 「시베리아 나트바브카」라고 부르는 오지 특별수당 덕분에 타지역에 비해 월급이 2백50%나 된다.그러나 그동안 힘들게 벌어 저축한 돈이『최근 몇년 사이의 인플레로 제로가 됐다』고 그는 한탄했다. 그곳은 지금도 겨울이면 영하 50도를 밑도는 날이 많다고 했다.반면 한여름에는 영상 40도나 되는 무더위에 모기가 들끓어 일하기가 보통 힘드는 게 아니라고 했다.겨울에는 자고 나면 눈치우는 게 제일 큰 일이고 공기중 증기가 얼어붙어 불과 2∼3m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날이 많다고 한다. 이런 오지에 살면서도 전가족이 구김살 없이 활달하고 친절한 심성을 지키고 있는 게 퍽 인상적이었다.발랴라는이름의 어린딸은 학교에서 배운 푸슈킨의 시를 졸졸 외워보였다.
  • 과학기술의 산실/아카뎀 고로독(시베리아 대탐방:27)

    ◎물리·수학 영재학교는 “세계적 명문”/흐루시초프때 설립…연구원에 특권 부여/정부지원 줄자 우수인력 기업체 등으로/역앞 매점엔 한국산 「도시락 라면」이… 아카뎀 고로독은 지난 57년 흐루시초프 때 시베리아의 학문진흥과 자원탐구를 주목적으로 설립됐다.이곳에 연구단지가 건설되면서 시베리아 일대의 학문연구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켜 노보시비르스크 외에도 이르쿠츠크·크라스노야르스크·톰스크·울란우데·야쿠츠크 등 시베리아 6개 도시에 과학아카데미 지부가 설립됐고 바르나울·케메로보·키실·옴스크·튜멘·치타 등 여타 대도시들에도 연구지부가 세워졌다. ○기초과학 집중 육성 모스크바대학을 졸업한 뒤 이곳 경제연구소에 와서 줄곧 35년을 연구생활에 전념해온 알렉세예비치 박사(63)는 전형적인 아카뎀 고로독 맨.단지내 5층짜리 아늑한 연구원아파트에 살고있는 그는 이곳의 제일 큰 자랑거리로 물리·수학 영재학교를 꼽았다.시베리아 전역에서 국민학교를 마친 11∼12세 우수 아동들을 선발해 물리·수학 등 기초과학을 집중교육시키는데 현재 전체학생수는 3백여명에 9개반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이 영재학교의 졸업생들은 대부분 노보시비르스크대학으로 진학해 정책적으로 시베리아의 각종 연구소·기업체에 진출시킨다. 아카뎀 고로독 1세들은 이제 세상을 떠났다.이들은 대부분 모스크바에서 파견돼온 우수 학자들이었는데 연구단지 한쪽에는 이들의 공동묘역이 있다.알렉세예비치박사는 그 뒤를 이은 2세대다.대부분 시베리아 출신들로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인재들이다.그 3세대가 이제 대학을 갓 마쳤다. 아카뎀 고로독에서만 35년을 살아온 알렉세예비치 박사의 아파트는 한때 이들이 누린 특권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듯 넓고 아늑했다.노모와 부인·두 아들과 함께 사는 그는 두 아들이 태어나며 지급받은 방4칸짜리 아파트에서 살고있다.궁핍하기 그지없는 모스크바 학자들의 사는 모습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모스크바보다 “여유” 그러나 그가 들려주는 3세대 이후 이곳의 전망은 매우 어두운 것이었다.단적인 예로 대학을 졸업하는 우수인재들의 90%가 연구에 종사하지 않고 외국기업체나,아니면 월급을 많이 주는 정부 출연기구에 취직한다고 했다.각연구소에 국가재정지원이 대폭 줄어들어 대우가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다. 알렉세예비치 박사도 자기 월급이 30만루블(우리돈 5만원)인데 부인과 생활하기에 너무 힘겨워 단지내 빈병들을 모아팔아서 생계에 보태쓴다고 했다.그러니 젊은이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을 말릴 수도 없다고 했다.모스크바법대를 나온 그의 큰아들은 박봉이지만 법관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그러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둘째아들은 봉급을 많이 받기 위해 이곳에 진출한 외국 건설회사에 취직해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길을 걷고 있다. 단지내를 함께 걷다가 그의 제자를 만났는데 바딤(27)이라는 이 청년은 대학졸업 뒤 시베리아전역에 연료를 공급하는 정부출연기관에 취직해 월8백달러의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알렉세예비치 박사는 『학문의 앞날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새 환경에 잘 적응하는 젊은이들이 오히려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들 가운데서도 젊은 사람들은 새 직장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아카데미 고로독의 연구원 숙소 아파트들은 전형적인 흐루시초프시대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흥미롭다. 흐루시초프는 당시 집권하자 곧바로 주택보급을 최우선 사업으로 정하고 꼭 성냥갑같이 생긴 5층짜리 서민용 아파트를 대량으로 지었다. 러시아전역에 제일 많이 보급돼 있는 이들 5층짜리 서민아파트는 지금은 나쁜 아파트의 대명사처럼 돼있다.그래서 사람들은 형편없는 아파트를 보면 흐루시초프의 이름에서 따온 「흐루쇼바」로 부른다. 같은 5층짜리면서도 규모가 작고 고딕으로 멋을 약간 부린 건물은 스탈린 때 지어진 것들이다. 「흐루쇼바」만큼이나 멋이 없으면서도 8층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50년대말∼60년대초에 지어진 브레즈네프식이다. 러시아에서도 우리같이 5∼8층짜리 아파트의 로열층은 2∼3층으로 꼽는다. 그래서 새 아파트를 배급받아 입주하는 주민들 중 이 로열층 입주자들은 1백%가 당 간부이거나 고위층과 연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1층과 제일 위층 입주자는 하나같이 힘없고 끈없는 사람들이다. 오나가나 괄시받으며 살아온 이곳의 우리 한인들도 하나같이 1층 아니면 꼭대기층을 배정받았다.그래서 한인들은 이를 「카레이스키 에타쥐(한국인 층)」라고 자조한다. 아카뎀 고로독 외에 노보시비르스크가 자랑하는 것으로 국립오페라·발레극장이 있다. 시베리아 최고의 발레극단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극장은 19 41년 10월부터 2차대전 종전 때까지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 미술관 소장품들을 몽땅 피란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이 점에 대해 이곳 사람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있다. 단순한 극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구조 나빠 불편 아카뎀 고로독을 다녀온 이튿날 3천5백루블(우리돈 6백원)을 주고 표를 사서 「제일 값싼」 발레를 구경했다. 마침 이곳의 국립발레학교 학생들의 졸업발표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앞으로 시베리아 발레를 이끌 젊은 배우들의 기량을 가늠해볼 기회를 가졌다. 모스크바나·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단의 수준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시베리아 한가운데서 그 정도 수준의 발레를 보는 사실 자체가 기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특히 장둥이라는 중국인 남자 유학생의 기량은 압권이었다. 떠나는 날 역앞 매점에 가보니 한국산 즉석 「도시락」라면이 진열돼 있는 것이 처음으로 눈에 띄었다. 마침내 극동지방에서부터 거슬러오는 한국 무역상들의 영향권안에 들어온 것이다.이후 동으로 여행을 계속하면서 라면은 물론이고 초코파이·새우깡·가짜 나이키상표를 붙인 운동화 등 한국산 물건들이 엄청나게 많이 진출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노보시비르스크 뿐 아니라 러시아 전역에서 역사는 승객들에게 보통 불편하게 만들어진 게 아니다. 역사에 들어가서 기차까지 가기 위해선 보통 2∼3번씩 지하도를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데 전부 가파른 계단으로 돼있다. 따라서 짐 가진 승객들은 이렇게 한번 기차를 타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만다.
  • SW업계 「젊은거인」 자서전 냈다/「한글과 컴푸터」 이찬진 사장

    ◎24세때 창업… 4년만에 연매출 150억으로 성장/「한국의 빌 게이츠」별명… 기업 일군 과정 등 술회 「한국의 빌 게이츠」 이찬진씨(「한글과 컴퓨터」사장)가 만 29세의 나이로 자서전을 펴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4세때 한글워드프로세서인 「한글」을 개발,현재 국내 최대의 소프트웨어회사 「한글과 컴퓨터」를 일궈낸 그가 지난 6년반 동안 소프트웨어산업계에서 겪었던 일들을 회고담식으로 풀어쓴 「소프트웨어의 세계로 오라」(김영사)를 낸 것. 『18세때 친구의 책에서 8비트 애플컴퓨터의 사진을 처음 보고 이에 매료됐습니다.흑백 중고 TV로 모니터를 대신한 애플 호환기종 컴퓨터를 대학입학선물로 받은뒤 본격적인 소프트웨어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죠』 이 책에서는 소프트웨어 「한글」을 개발하고 「한글」을 팔아 번돈 5천만원으로 4평의 방을 세내 5명의 직원으로 「한글과 컴퓨터」를 창업,4년만에 직원 2백명,매출액 1백50억원 규모의 회사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회고조의 문체로 기술되어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의 자존심」으로도 불리는 그는 책머리에서 『나중에 정말로 성공했을 때 내가 잘나서 그렇게 된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지난 일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집필동기를 밝히고 있다. 『일찌감치 능력의 한계를 깨달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는 관심과 애정·기대·신뢰 등을 생각해보면 내가 과연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합당한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고 털어놓는 이찬진씨. 그러나 『앞으로 오피스웨어및 홈웨어,인텔리전트홈 사업까지 확장해 20 00년까지 연매출 1천억원을 올리는 세계적인 종합 소프트웨어회사로 「한글과 컴퓨터」를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풀브라이트 전 미의원 한국전때 통일 반대

    【워싱턴 연합】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만들어 수많은 한국학생의 미국 유학을 도왔던 장본인 고 윌리엄 풀브라이트 전미상원의원은 한국전 때 미국이 한반도를 통일시켜서는 안된다는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갓 출판된 그의 전기에서 밝혀졌다.
  • EU 곡물관세 부과/WTO에 협의 요청/미 무역대표부

    【워싱턴 연합】 미국은 갓 발효된 유럽연합(EU)의 수입곡물 관세부과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른 즉각적인 사전 협의를 모색할 것이라고 미 무역대표부가 19일 밝혔다. 이로써 미·EU간에 쌀 등 주요 곡물 수입문제를 놓고 또다시 마찰이 본격화될 조짐이다.미국이 이번에 시비를 건 곡물에는 쌀·밀·보리·호밀·옥수수 및 사탕수수가 포함돼 있다.
  • 우랄의 옛도시­페름시(시베리아 대탐방:21)

    ◎인구 1백만… 우랄 최대의 문화중심지/「러」 3대 발레극장·베르샤긴 미술관이…/실바강 따라 1시간동안 절경 펼쳐/별장 지붕위 “매물” 페인트 표시 눈길끌고 페름시에 도착하면서 여행출발 이후 처음으로 인구 1백만명이 넘는 대도시를 밟아보게 된다.이곳은 프리 우랄 최대의 문화중심지로 혁명전까지 우랄의 행정수도는 에카테린부르크가 아니라 페름이었다.우랄의 공장지대에서 생산된 각종 물품들은 육로로 이곳까지 와서 배로 카마강∼볼가강을 따라 러시아중부의 각 도시로 운반돼 나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발레단(키로프발레단의 새이름),모스크바의 볼쇼이와 함께 러시아 3대 발레극장으로 꼽히는 페름발레단이 이곳에 있다.그러나 너무 추운 환경탓에 우수한 발레리나들이 서쪽도시로 빠져나가 지금은 그 명성이 많이 바랬지만 전유럽에 명성을 날렸던 발레학교는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그리고 20세기초 화가 베르샤긴의 작품 60여점을 소장한 베르샤긴미술관을 자랑한다.특히 이 도시는 카마강변의 언덕위에 건설돼 체코의 프라하 같이 언덕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정경이 일품이다. ○5㎞ 얼음동굴로 유명 페름은 또한 역대 소련 외상들 중 가장 유명했던 몰로토프가 이곳에서 혁명운동을 한 인연으로 40년부터 57년까지 시 이름이 몰로토프였다.러시아 전역에는 유명한 볼셰비키라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을 딴 도시·대학이 5∼6개는 되는 게 보통이다.57년 도시 이름이 페름으로 바뀐 것은 몰로토프가 카가노비치·쉬필로프등과 함께 반흐루시초프 음모에 가담했다가 실각했기 때문이다.카가노비치는 스탈린 때 철도상을 지낸 스탈린의 최고 심복중 한명으로 이름난 킬러.러시아인들은 지금도 그를 가리켜「아이언(철혈) 카가노비치」라고 부른다. 페름역을 출발해 조금 나아가면 실바강이 나오고 강과 철길이 만나는 지점에 쿵구르역이 있다.쿵구르인들은 러시아에서도 손재주가 좋기로 이름난 사람들이다.쿵구르 구두·쿵구르 케이크·쿵구르 악기등 손재주가 필요한 정교한 제품들로 이름난 도시다.1759년까지는 우랄전체자보드(공장)의 행정본부가 있었을 정도로 번창했던 도시였으나 이후 시베리아철도가 건설돼 다른 도시가 커지며 상대적으로 쇄락의 길을 걷고 있다.이곳을 제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쿵구르스키 리제나야 피쉐라(쿵구르 얼음동굴)」라는 지하동굴이다.길이 5㎞가 넘는 동굴안에 60여개의 호수가 서로 연결돼 있는데 항상 영하의 기온으로 얼어 있는 곳이다. ○야생능금꽃 눈부셔 길이 5백㎞의 실바강을 따라 1시간여 동안 그림같은 우랄의 절경이 펼쳐진다.강,강안의 바위,그위의 나무숲….페름주에서 우랄의 중심부에 위치한 스베르들로프스크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역은「코르간」이다.입산신고대란 뜻의 이름인데 숲이 많은 우랄지대라 이런 마을 이름이 유난히 많다. 왼편 차창밖으로 맑게 내리쬐는 5월 햇살아래 폭 1백여m의 실바강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우랄산맥의 정점에 있는 유럽·아시아 분수령에서 발원해 유럽쪽으로 흘러내리는 강이다.시베리아횡단열차구간중 최고로 꼽히는 절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강변에는 잎이 갓 돋아나 연두색을 띤 베료자와 겨울을 지나 검붉게 뻗은 소나무·옐나무들이 같은 비율로 뒤섞여 고도로 세련된 색의 하모니를 연출해내고 있다.강변에 늘어선 별장 지붕에 흰 페인트로 커다랗게 「프로다유(팔겠다는 뜻)」라고 써놓은 글씨가 눈길을 끈다. 기차가 산정을 향해 숨가쁜 행진을 계속해 본격적으로 우랄의 수중으로 들어서자 지금껏 보이지 않던 새로운 수종들이 나타났다.야생능금꽃이 눈꽃을 덧씌운 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1시간여를 달린 뒤 스베르들로프 경계를 넘어 첫번째 역인 샬랴역을 지나갔다.갑자기 잎을 달지 못한 베료자나무들이 나타나 산 곳곳이 민둥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우랄은 아직 봄의 첫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우랄산맥은 서쪽으로는 페름주의 쿵구르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에카테린부르크시 직후 산세가 끝이나며 동서거리의 최장은 2백㎞,남북길이는 2천㎞에 이른다.전체적으로 완만한 산세를 보이지만 북쪽 코미공화국에 있는 최고봉 나로드나야산은 해발 1천8백95m에 이른다. 페름에서 에카테린부르크로 연결되는 현재의 직선노선은 1905년에 건설됐다.그 전에는 1875년에 건설된 북쪽 우회도로가있었을 뿐이다.이 직선노선이 건설되기전 우랄과 모스크바를 잇는 노선은 에카테린부르크에서 남으로 첼리야빈스크를 경유해 서쪽으로 사마라를 거쳐 모스크바로 연결됐다.따라서 시베리아횡단열차노선도 첼리야빈스크에서 동쪽으로 쿠르간∼페트로파블로프스크(카자흐영토)∼옴스크로 이어졌다. 현재 이 북부 카자흐경유 노선은 매우 아름다운 절경을 지나긴 하지만 승객들이 기피하는 노선이다.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양국 국경세관에서 거의 1시간 이상씩 짐검사를 해 승객들을 귀찮게 굴기 때문이다.러시아인들은 노비자이지만 외국승객의 경우 이 노선을 이용하자면 미리 카자흐정부로부터 통과비자를 얻어야한다. ○희귀금속 무진장 매장 마침내 러시아 최대 산업지구 우랄지구로 들어섰다.우랄은 최대 공업지대이면서 메탈·희귀금속의 최대 매장지다.이 금속들을 발달된 기계공업기술로 묶어 아주 밀접한 단일 경제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현재 우랄로 통칭되는 이 산업지대에는 페름주·코미자치공·스베르들로프주·첼리야빈스크주를 비롯해순수농업지대인 쿠르간주·바시코르토스탄주·우드무르티공화국등이 속한다. 우랄의 가장 큰 자랑은 역시 무궁무진한 금속이 매장돼 있다는 것이다.지질학적으로 오래된 산은 완만하지만 희귀석·메탈·알루미늄 등 귀중한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고 반면 지진대로 분류되는 신생 산맥은 산세가 가파르고 아름다운 반면 자원이 매장돼 있지 않다.우랄은 전자의 전형적인 예이다.
  • 새 「OS」 소개 잡지 “봇물”

    ◎「윈도즈 95」 발표 대비 통합완성형 한글코드 분석/배우·농구선수 동영상 담은 CD롬부록 볼거리 「윈도즈95」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서점가에는 새 OS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담은 컴퓨터잡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는 다가올 윈도즈95시대를 대비하는 프로그래머들을 위해 「윈도우즈95를 쫓아라」,GNU개발방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번 OS에 첨가되는 통합완성형 한글코드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분석이 실려있다. 특별부록으로는 윈도즈95의 기능과 활용법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윈도우즈95 교육비디오」를 한글판으로 제공해 눈길을 끈다. 「윈도우세계」는 7월호 특집으로 「최적의 윈도우95,시스템은 이런 것」이라는 시스템별 벤치마크테스트(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지 객관적으로 시험하는 일)를 주요기사로 다뤘다. 또 그동안 바이러스침투의 사각지대였던 윈도즈응용프로그램을 위한 백신프로그램들을 망라,이용자들이 적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이밖에 인터넷 초보자를 갓 벗어난 이용자를위한 고급지침도 실려있으며 요즘 유행하고 있는 17인치 고해상도 모니터에 대한 자세한 안내기사도 돋보인다. 본격 CD롬잡지의 지평을 연 「네오마인드」도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2장의 CD롬에 프로그레시브락밴드의 역사,배우 강리나,농구선수 김현준,연극인 박정자씨의 동영상을 담았으며 새로 나온 음반·비디오 등을 소리와 함께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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