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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화 미덕 가르치는 김치케이크(박갑천 칼럼)

    魚叔權의 에 서로 어울리지않는 풍경을 예로 든 대목이 있다.맑은샘에 발을 씻는것,거문고를 태워서 학(鶴)을 삶는것,소나무 사이에서 길잡이가 외치는것,초헌에 말채찍,짚신에 징,거적문에 쇠돌쩌귀…따위.오늘날이라면 안짱다리(밭장다리)의 미니스커트,갓쓰고(도포입고) 오토바이타기…같은 풍경이 끼일수도 있겠다. 김치와 빵하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부터 온다.피자와 빈대떡,커피와 식혜같이.한데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치와 빵을 섞어만든 김치케이크를 선보였다.프랑스인 주방장이 ‘합격’판정을 내렸다니 코큰 이들 혀끝에도 구뜰했던 모양.호텔측에서는 기네스북 한국협회에 등록을 요청하는 한편 반응을 봐가며 수출도 해볼 요량인 것으로 알려진다. 음식에는 서로 맞는것이 있는가하면 맞지않는 것도 있다.지난날에도 찰떡을 먹으려면서는 동치미국물이 따랐다.동치미국물은 좋은 소화제로 되었던 것이리라.돼지고기에 새우젓이나 메밀국수에 무강즙따위도 그런 관계였다고 할 것이다.물론 상극인 경우도 있다.그 사례를 가정실학의 보감이었던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의 [규합총서]에서 보자.두부를 많이 먹고서 배가 불러 숨이 막힐때 무강즙이나 행인즙 새우젓국은 좋으나 데운술을 마시면 “즉사한다“니 겁이 난다. 거기 쓰여있는 바 어울리지않는 음식의 사례는 많다.몇가지만 더 들어보면 이렇다.“게(蟹)와 감·배·꿀을 함께 먹지말고 조개와 초를 함께 먹지말라.머리털이 생선속에 있는걸 먹으면 죽고 메기와 형개(荊芥)를 함께먹으면 죽는다.소·양·돼지고기를 뽕나무로 삶거나 구워먹으면 뱃속에 벌레가 생긴다” “생·숙지황류는 마늘·파·무를 꺼리고 구기자는 사람젖과 우유를 꺼리며 모든 뿔(角)든 약과 녹용은 소금을 꺼리고 파와 부추는 꿀을 꺼리며…”.그밖에도 상극되는 음식은 많다.김치케이크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라는 느낌으로 서름하다는 것뿐 실제에서는 아주 어울리는 먹을거리인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종족끼리 어울려서 나온 튀기에 미인이나 재사가 많다고 한다.얼핏 이질적인 듯해도 조화로운 동질성이 있다는 뜻이리라.가령 의학만해도 동과 서가 다르지만그 조화로써 치료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철학도 그점이 중요해지는 것이고.그러니 종교 또한 배타적으로 나갈일은 아니다.김치케이크가 그 대목을 가르쳐 주는 양하다.
  • 법조계 전관예우 없애라/이생직 변호사(서울광장)

    ○선민·특권의식도 한몫 지난 몇 년간 변호사 업계는 과다수임료(過多受任料),사건 브로커와의 결탁,전관예우(前官禮遇),불성실변 론 등으로 심각한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문민정부는 변호사 업계의 개혁을 어느 분야보다도 강조하였으나 개혁의 성과는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오히려 의정부 법원과 변호사간의 비리사건으로 인해 변호사 업계가 개혁은 커녕 이 분야에서는 ‘오히려 후퇴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옳다는 의구심 마저 들게 하고 있다. 그러면 이와같은 변호사 업계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나는 이에대한 원인은 한마디로 전관예우의 관행이라고 본다.전관예우라는 좋지 못한 관행이 있으므로 해서 실제 노력보다 많은 수임료를 받게되고,또 소개비를 받으려고 하는 사건브로커가 생겨나게 되며,나아가 변호사가 직접 사건을 수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성실하지 못한 변론을 하게 되는 것이다.모든 문제가 바로 이 전관예우에서 나온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는 것이다.전관예우는 판·검사로 함께 근무한 뒤 개업한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다른 사건보다 유리하게 처리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전관예우의 실태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단순히 잘 봐준다는 우리 국민 특유의 온정주의(溫情主義)만 아니라 법조집단의 우월주의,특권의식,선민의식까지도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전관예우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개선하지 않으면 변호사 업계의 개혁은 아무리 노력해도 불완전한 것일 수 밖에는 없다. 과거 10여년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변호사는 판·검사로 있다가 개업한 사람들이었다.판·검사들은 일반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는 하였지만 ‘영감님’이라고 불리면서 특수한 계층으로 생각되었고 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보통이었다.따라서 이들과 일반인과의 접촉은 상당히 제한된 것이었다.이러한 일반인과의 구분개념은 변호사개업을 한 뒤에도 그대로 남게되어 변호사는 의뢰인들을 일일이 상대하지 않고 통상 사무장(事務長)이라고 불리는 직원으로 하여금 의뢰인들을 관리하도록 했다. ○구조적 병폐 도려내야 변호사를앞세운 사무장들은 변호사 대신 의뢰인을 대면(對面)하면서 자기네 변호사가 사건을 가장 잘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선전하고 이를 의뢰인이 믿게 했으며,특히 형사사건에서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갓 퇴임한 변호사의 경력을 팔면서 변호사의 로비능력을 과장선전 하는 것이 보통이 되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사건 브로커가 생겨나게 마련이고 그들로 인하여 결국 변호사 업계는 불신과 거짓이 판을 치게 되었다.더욱 딱한 것은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등 공무원들까지도 사무장과 연결하여 소개비를 챙기려고 해왔다는 것이다.이렇게 해서 사건에 관련한 업무처리의 공정성을 저해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공무원 사회의 기강마저 흔들리게 된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봐왔다. 따라서 전관예우는 단순히 사건을 담당한 현직 판·검사가 사건을 공정히 처리한다고 하여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위와같은 사건수임과 업무처리에 관련한 구조적 병폐를 없애지 않으면 전관예우라는 미명하의 무리하거나 비도덕적인 사건수임과 그로인한 부조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뿌리깊게 자행되는 전관예우의 병폐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우선 경찰관이나 법원과 검찰청 직원들의 소개비 수령 목적의 사건소개를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이다.또한 변호사법을 좀 더 엄격하게 집행하여 소개비를 주고 받는 변호사와 사건브로커를 확실하게 단죄해야 한다.이를 위한 방안의하나로 사건소개 자체를 변호사회나 소비자단체와 같은 공적인 기관에서 맡아서 처리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불쑥 내놓은 안에 대해 다소 우리사회와는 멀게 느껴지는 방안으로 보일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렇게 되면 사건과 변호사를 연결시키는 합법적인 다리가 생기게 돼 자연스럽게 사건브로커도 없어질 것이고 아는 변호사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서민들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사건수임 양성화 시켜야 또 한가지 방안은 모든 구속피고인들에 대한 국선 변호사 선임제도를 고려하여 봄직 하다.물론 모든 구속피고인들에 대해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데에서 예산문제 등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특히나 비리가 많은 형사변호사 선임을 둘러싼 잡음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는 좋은 제도하고 생각된다. 형사사건을 둘러싼 무리한 수임료나 브로커들의 금전보수를 합친 액수를 따져볼 때 국선변호인을 선임하는데 드는 예산이 그보다 많을 것인지는 두고봄 직하다.전관예우의 피해가 거의 전국민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이를 없앨 수 있는 지혜가 아쉽다.
  • 국군의 발자취(대한민국 50년:15)

    ◎軍 정치적 중립 5·16구데타로 무너져/65년 월남 파병 계기로 환골탈태/軍장비 현대화­전투력 강화 한몫/6·25 직전 10만서 69만 大軍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대한민국 국군의 총병력은 10만5천여명이었다.이 가운데 지상군이 9만6천여명,해군 7천여명,공군 2천명가량이다.참고로 북한 인민군은 총 19만8천명 규모였다. 국군은 6·25를 거치면서 미국의 원조와 지원 아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다.전쟁중에는 최고 80만에 이르기도 했지만 종전 무렵에는 60만 대군으로 자리잡았다.게다가 사회 각 부문의 성장이 더딘 상태에서 군은 미국식 교육·관리제도를 도입,운영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조직이 되었다. ○李承晩의 정치이용 거부 그러나 덩치가 커지긴 했어도 군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벗어나지는 못했다.제1공화국 시절 李承晩 대통령은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보완하고 집권을 연장하는 도구로 군을 이용하려 했다.이에 따라 정치권이 인사에 개입하고 부정선거를 강요했으며,정치자금 조달을 요구하기도 했다. 갓 독립한신생국가에서,4억달러쯤에 이르는 미국의 군사원조와 국가예산의 40%가량을 이용하는 군만큼 재정능력이 풍부한 집단은 없었다.따라서 정치권으로서는 군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자유당 정부 때의 군이 일방적으로 정치에 끌려다닌 것만은 아니다.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생한 ‘부산 정치파동’ 당시 이종찬 장군은 육군훈령을 내려 군의 정치개입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60년 4·19가 일어났을때도 군은 질서유지에만 나섰을뿐 정치적으로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나름대로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던 군의 자세는 5·16군사쿠데타가 터지면서 일시에 무너진다.인사문제를 비롯한 군 내부의 부정부패가 누적되고 정치불안이 야기한 사회혼란이 이어지자 이를 빌미삼아 朴正熙 소장과 일부 영관급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5·16은 朴正熙 집권 18년에 이어 全斗煥·盧泰愚로 연장되는 군사정권 시대의 출발점이 됐다.이 기간 군출신 정치세력은 특유의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일정부분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경제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민주주의 발전은 억압됐고 인권탄압이 공공연히 자행됐다.국민의 군대여야 할 군은 국민에게 사랑받기 보다는 경원의 대상이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특히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은 군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됐다. 한편 대한민국 국군은 월남파병을 거치면서 다시 한번 환골탈태한다.1965년 1월8일 朴正熙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월남에 국군 2천명을 파견하기로 결의했다.다음달 24일 비둘기부대장병 583명이 첫 전투부대로 파병됐다.이에앞서 64년 9월11일에는 의료진과 태권도 사범 164명이 부산항을 떠나 열하룻만에 월남 사이공(현 호지명시)에 도착했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은 1961년 11월 朴正熙 당시 최고회의 의장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사이에서 처음 논의됐다.파병의 명분은 ▲한미 양국은 자유우방으로서 아시아의 집단안보에 공동책임이 있고 ▲월남의 안전은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며 ▲한국으로서는 6·25때 우방 16개국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이제 빚을 되갚아야 한다는것 등이었다. ○8년간 31만2천명 파병 하지만 파병이 쉽게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우리 정부로서는 파병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다 유리하게 얻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한미간의 줄다리기는 월남전 내내 계속됐고,이같은 상황은 65년 5월17일 미국에서 열린 朴正熙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전후의 사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여하튼 65년 6월14일 월남공화국 수상이 우리 정부에 1개 전투사단 지원을 공식요청한 것을 계기로 국군의 월남 참전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그해 10월16일 첫 전투사단인 맹호부대가 부산항을 떠났고 이어 백마부대·백구부대·청룡부대가 속속 파병대열에 합류했다. 1973년 3월23일 마지막 부대가 귀국하기까지 8년동안 대한민국 국군은 모두 31만2천여명을 월남에 파견했다.그땅에서 국군은 대대급 이상 작전만 1천100회를 실행했고,민간지원 사업으로는 3천500여채의 건물을 지어주고 1천700㎞의 길을 닦아주는 노력을 기울였다. 월남파병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종적으로 내리긴 아직 이르지만 국군장비 현대화와 전투력 강화라는 측면에서만 따질 때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아울러 국군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드높이는 데도 한몫을 했다. 최근 국군은 UN평화유지활동(PKO)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93년 7월 소말리아에 공병대대를 파견한 것을 시발로 그동안 앙골라,서부사하라,인도·파키스탄,그루지아 등지의 분쟁지역에서 평화유지군 활동을 벌였으며 이에 따른 국제사회는 그 증거라 할 만하다. 6공화국에서는 헌법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했다.이어 문민정부는 하나회 조직을 정비하는 등 군의 정치개입을 용납하지 않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다.군도 국방백서를 발간,군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군내 민주화를 이루고자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하는 등 국민의 군으로 거듭 태어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지상군 56만,해군 6만7천,공군 6만3천 등 총 69만병력에 이른다.이에 견줘 북한군 규모는 1백14만7천명이다. ◎朴正熙­존슨 대통령 65년 월남 파병 담판/“전투병력 추가 파병 안하면 주한美軍월남으로 빼겠다”/“對韓 경제원조 확대 한국 군장비 현대화 해달라” 65년 5월 미국에서 만난 朴正熙 대통령과 존슨 미국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확인한 뒤 동아시아 안보에 관해 깊이있는 논의를 나누었다.그러나 실질적인 초점은 단연 한국군의 월남 증파 건에 맞춰졌다. 존슨은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한국군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이어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한미상호방위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가를 역설했다.이때는 한국이 전투부대로 비둘기부대 2천명을 파견한 정도였기 때문에 존슨의 치하처럼 월남에서 큰몫을 담당하지 못한 상태였다.존슨의 언사는 결국 한미상호방위에 더욱 관심을 가질테니 한국도 월남에 병력을 더 많이 보내라는 정치적 요구에 다름아니었다.이 자리에서 존슨은,한국이 병력 파견을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월남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암시도 함께 했다. 두 정상은 이 만남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와 한국군 현대화를 추진하는 군사원조를 늘이기로 합의했다.또 주월한국군 유지비용의 인상과 주한미군 유지 약속 등에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다음해 3월7일 브라운 주한 미대사는 국군의 월남 추가파병에 따른 미국측 보상조치를 약속한 14항목의 문서를 한국정부에 전달했다.주요 내용은 ▲추가파병 비용은 미국이 부담 ▲한국 육군 17개 사단과 해병대 1개 사단의 장비 현대화 ▲월남 재건 및 구호사업에 한국업체 참가 ▲미국의 차관·군사원조 계속 및 신규차관 제공 등이다. 이 각서이후 곧바로 국군은 2만여명을 월남으로 보냈고,월남전이 끝날 때까지의 병력 31만여명은 월남전 참전국 가운데 미군에 이은 두번째 규모 였다.또 민간업체의 월남에 대한 수출액 할당도 연 6천만달러로 늘어났으며 건설사업 등에의 참여도 활발해져 우리 사회는 ‘월남특수’를 노렸다.그러나 월남에서 숱한 한국청년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하였다든지,참전용사와 그 자녀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일따위는 월남파병에 따른 손실이기도 하다.
  • 서울대 약학대 吳禹澤 교수(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4)

    ◎통증유발 ‘캡사이신 이온통로’ 첫 발견/“고추 매운맛 성분이 통각신경세포 자극” 밝혀/유전자 이용한 통증치료·강력진통제 길 열어/과기부 ‘창의적 연구진흥과제’ 선정,3년간 12억 지원키로 통증만큼 주관적이고 불규칙해서 실체를 규명하기 어려운 증상도 없다.같은 정도의 통증이라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종류도 가지가지다.흔한 두통에서부터 척추수술을 받은 뒤의 통증,격렬한 운동의 부작용으로 생기는 근육통,오십견 같은 어깨통증,협심증에 수반되는 가슴통증,췌장염·복부암에 나타나는 복통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통증은 심할 경우 고통 뿐 아니라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행동에 커다란 제약을 준다.특히 말기 암환자가 겪는 동통(疼痛)은 죽음의 공포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전문의들은 설명한다. 그런데도 현대의학은 통증의 고통에서 안전하게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통증에 대한 연구는 주로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이뤄져 왔다.예컨데 피부·근육 등의 말초에있는 감각신경은 어떤 것이 있으며,이 감각신경이 척수내의 어떤 신경세포에 전달되는가,그리고 척수내의 신경세포가 뇌의 어느 부위에 통각정보를 전달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주종을 이뤘다.그러나 통증 발생 초기 단계에서 피부나 근육에 있는 통각신경이 어떻게 통증신호를 발생시키는지는 규명되지 않고 있다.인간의 통증을 과학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미 최고전문지 대서 특필 그런데 최근 이러한 의문을 우리의 식탁에 매일 올려져 입맛을 돋우는 고추(Capsicum annuum)가 풀어 주고 있다.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Capsaicin)이란 물질이 체내의 통각신경세포를 흥분시켜 통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약대 吳禹澤 교수(43·통각발현연구단장).지난 96년 세계 최초로 통각신경의 세포막에서 ‘캡사이신 이온통로’를 발견,강력하고 안전한 차세대진통제 개발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주역이다. “통각신경의 세포막에 있는 이온통로는 평소 닫혀 있습니다.그러나 캡사이신 성분이 결합하면 이온통로가 열리면서 세포와 세포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던 나트륨·칼륨 따위의 양이온이 밀려 들어오지요.이 이온들은 양전기를 띠고 있기 때문에 통각신경을 흥분시키며 이 흥분상태가 척수를 통해 뇌로 전달돼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시간이 지나면 통각신경은 세포막에 있는 펌프를 가동해 이온을 다시 바깥쪽으로 내보내게 되므로 통증이 사라지게 되지요” 생물체의 세포막에는 많은 이온통로가 있어 이를 통해 세포 안팎으로 물질을 교환하지만,통증 유발과 관련된 이온통로를 발견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있는 일이다. 吳교수의 이 연구결과는 국제 신경과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신경과학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96년 4월1일자)는 吳교수의 연구성과를 아홉쪽에 걸쳐 대대적으로 소개했다.또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吳교수가 발견한 캡사이신 이온통로의 유전자를 클로닝해 발표했는데,이를 세계적 과학전문지 ‘네이처’(97년 10월 23일자)는 표지기사로 실었다. 과학기술부도 최근 吳교수의 ‘인체내 통증발현(發現)연구사업’을 창의적연구 진흥과제로 선정,올해부터 3년동안 해마다 4억원의 거액을 지원키로 했다.정부가 그의 연구에 거는 기대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짐작케 한다. 吳교수는 지난 83년 미국 오클라호마대학 의대에 유학한 이후 15년동안 통증연구에 매달려 왔다. 주로 협심증 통증신호가 척수와 뇌의 신경회로망에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연구하던 그가 이온통로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지난 94년.중추신경계의 통증연구에 한계를 절실히 느낀 나머지 연구방향을 완전히 돌려 통증연구의 가장 기초분야인 말초신경의 이온통로 규명에 나섰다. 내친 김에 이온통로 연구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시카고의대 金東熙박사를 찾아가 세포내부의 미세전류를 측정하는 이른바 ‘패치 클램프’기술을 배웠다.패치 클램프는 세포내의 미세한 전류흐름을 측정해 이온통로의 개폐여부를 진단하는 이온통로 연구의 핵심기술.독일 과학자 베르트 자크만은 이장치를 고안,91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吳교수는 6개월 남짓 패치 클램프 기술을 익힌 뒤 캡사이신이 열어주는 통각신경세포의 이온통로가 존재할 것이란 가설을 세우고 이를 찾기 위해 연구를 집중했다. “처음에는 金박사가 쓰다 남긴 생쥐 몇 마리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남의 실험실에서 셋방살이하는 주제에 내 연구를 한다는 게 눈치가 보여 金박사가 여행을 떠난 한달 동안 집중적으로 매달렸지요” ○“연구비 지원 3년뒤 보답” 吳교수는 갓 태어난 생쥐에서 떼어내 배양한 통각신경세포에 미세한 전극을 붙이고 캡사이신을 투여하는 실험을 수없이 반복했다.연구를 시작한 지한달이 다 되어갈 무렵 캡사이신을 주면 이온이 세포안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전류가 발생했고,반대로 캡사이신 차단제를 투여하면 이온통로가 닫혔다.캡사이신 이온통로의 가설을 처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여행에서 돌아온 金박사는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1년간의 미국 연구생활을 끝내고 95년 1월 고국에 돌아온 그는 학계의 예상을 뒤엎고 캡사이신의 결합부위가 세포의 바깥쪽이 아닌 안쪽이란 사실을 밝혀냈다.그리고 우리 몸속에는 캡사이신과 비슷한 내인성(內因性) 활성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에 고추성분이 통각신경 세포막의 이온통로를 열어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도 알아냈다.체내 내인성 활성물질의 존재에 관한 연구는 곧‘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에 공표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吳교수의 연구성과에 대해 “통증발현에 필요한 주요 인자(因子)를 찾아냄으로써 유전자를 이용한 통증 치료법 개발을 가능케 해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특히 캡사이신 이온통로는 통각세포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 통로가 열리지 않게 하는 약을 찾아 낸다면 예전보다 훨씬 부작용이적으면서도 효능이 뛰어난 진통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당장은 캡사이신 내인성 활성물질의 생성과 소멸과정을 알아내야 합니다.이 작업이 끝나면 또 다른 통증채널의 존재 여부를규명할 생각이지요. 어쩌면 캡사이신 이온통로는 통증유발 경로의 일부일 수있기 때문입니다” 吳교수는 특별한 신조가 없다.다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 신조라면 신조다.지난 3월에는 세계 신경과학계의 리더들이 참여하는 ‘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의 편집위원으로 뽑히는 영예도 안았다.그는 “경제가 어려운시기에 나라에서 거액의 연구지원금을 받는 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3년뒤에는 이 빚을 연구성과로 되갚겠다”고 말했다. ◎캡사이신 이온통로란/통각신경 끝에 위치… 염증땐 통로여는 물질 분비/척수안 통각신경세포 신경정보 통해 뇌에 전달 통증은 인체 조직이 손상될 때 나타나는 자각증상으로,피부·근육·뼈·내장 등의 말초 통각(痛覺)신경에서 전달되기 시작한다.통각신경이 강한 자극을 받아 전기적으로 흥분하면 이 흥분상태는 통각신경을 타고척수로 이어진다.또 척수안에 들어 있는 각종 통각 관련 신경세포는 통각신경을 따라 전달된 신경정보를 뇌로 전해 준다.통각정보가 뇌에 전해질 때 사람은 비로소 아픔을 느끼게 된다. 진통제란 이같은 과정의 어느곳에선가 통각정보가 전달되지 못하도록 해주는 약제.예컨데 모르핀 같은 마약성 진통제는 통각정보가 척수에서 뇌로 전달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강력한 진통효과를 낸다. 캡사이신 이온통로는 통각신경의 말단에 존재한다.과학자들은 그동안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이 강한 통증을 일으킨다는 점에 착안,캡사이신의 작용에 따라 개폐되는 이온채널이 몸속에 존재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그러나 캡사이신 이온통로가 실체를 드러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전문가들은 캡사이신 이온통로와 염증성 통증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염증이 생기면 캡사이신 이온통로를 열어 주는 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캡사이신 이온통로를 열어 주는 물질의 정체는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캡사인신의 작용으로 이온통로가 열리면 나트륨·칼륨·칼슘 따위의 갖가지 양(陽)이온이 통각세포안으로 들어와 통각세포를 흥분시킨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캡사이신 이온통로의 존재를 처음 구명한 吳禹澤 교수는 캡사이신이 결합하는 부위가 학계의 추정과 달리 세포 안쪽에 존재한다는 점도 밝혀냈다. □禹澤 교수 약력 △78.2 서울대 약학대학 졸업 △82.8 서울대 약학대학원생명약학 석사 △87.10 미국 오클라호마대 의과대학 생리학박사 (학위논문:협심증 관련 통증의 메커니즘 연구) △87.11∼88.10 텍사스주립대 의과대학 갈베스턴 분교 연구원 △88.12 서울대 약학대학 조교수 △93.9.∼95.8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응용연구부장 △94.1∼95.1 시카고의과대학 생리학과 교환교수 △95.1∼96.12 대한약학회 영문지 편집간사 △97.5∼현재 서울대 실험동물사육장 운영위원 △97.5 제7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 수상(캡사이신 이온통로 발견,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97.12∼현재 통각발현연구단장(과학기술부 창의적 연구 진흥과제) △98.3∼현재 ‘뉴로 사이언스 레터’ 편집위원
  • 부부금실/李世基 社賓 논설위원(외언내언)

    이탈리아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빈곤과 유랑과 술로 일생을 보냈다.36세에 임종하면서 “나는 아내만을 믿고 살아왔다.우리부부는 영원한 기쁨을 믿고 있다”고 유언했다.방종한 생활과 폭음으로 평생을 속썩이던 남편이 죽자 그의 아내는 다음날 아침 6층 창문에서 몸을 던졌다. 부부란 참으로 묘한 관계다.서로가 헐뜯고 미워하다가도 사랑하고,이해하다가도 질투한다.그러나 미운정 고운정이 다들어서 악착같이 싸우는 것 같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평생의 동반자로서 마른 일 궂은 일을 함께 하는 동안 용모는 물론 맵고 짠 음식취미와 생활습관까지도 골고루 닮아있다.그래서 ‘남편이 부르면 아내가 따르고 아내가 부르면 남편이 따른다’는 ‘부창부수(夫唱婦隨)’란 말도 있다.결국 ‘미워도 고와도 나만의 아내요,남편’이라는 의미다. IMF한파니 IMF실직 등으로 이혼율이 상승하는 추세와는 달리 ‘가정은 전보다 더 화목해졌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최근 SK생명이 조사한 ‘IMF이후 부부의 애정정도’에서다.응답자중 21%가 ‘부부의 애정이 좋아졌다’,23%가 ‘남편이 가정에 충실해졌다’는 반가운 대답이다.요즘 실직 가장들이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거나 냉대받는다는 말에 비하면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가족은 어려울 때일수록 똘똘 뭉쳐서 용기를 북돋워주고 편들게 마련이다.그런 의미에서 부부의 좋은 금실은 가족전체의 화목이자 가정의 튼튼한 기틀이 된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외출하는 모습은 갓 결혼한 신혼부부 못지않게 싱그럽다.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있는 부부를 보면 ‘그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시간의 깊이는 부부생활의 깊이와 정비례한다’고 한다.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백년해로(百年偕老) 하는 것은 인생에서의 최상의 성공일 것이다. 냉수 한잔도 나눠마시는 따뜻한 가족애와 친밀한 부부애는 IMF한파쯤은 얼마든지 녹여버릴 수 있는 위대한 힘이다.‘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으면서’ 어려운 한 시기를 부드럽게 넘겨야겠다.
  • 앵벌이/李世基 社賓 논설위원(외언내언)

    전쟁직후에는 걸인소년들이 손가락에다 콜타르를 묻혀서 옷을 더럽히겠다고 위협하는 별난 구걸행각이 있었다.거리에 주저앉아 ‘동정’을 구하는 장애아들은 생으로 팔이나 다리를 다치게해서 장애를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었다.버스를 타면 어린아이가 눈먼 부모를 부축해서 올라와 ‘도와달라’고 간청을 하는데 그들의 애조띤 변사조(辯士調)의 대사는 역시 뒤에서 ‘조직’이 움직이고 있음을 사람들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미혼모나 극빈자의 갓난아기들이 돈벌이 도구로 이용된다는 보도는 아연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1백만원 이상에 ‘영아(영兒)’를 사다가 ‘껌팔이’들에게 소개하거나 웃돈을 얹어서 되팔기도 한다는 것이다.사들인 아기를 업고 다니면서 동정심’을 유발시키고 4,5년간 실컷 돈벌이를 하다가 아기가 자라서 5살쯤되면 이번엔 직접 ‘껌팔이’가 되어 거리로 내보내진다.5명에서 8명의 집단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인간의 추악성의끝이 어디쯤인지 짐작되지 않을 정도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도 정이 들면가족의 사랑을 베푸는 것이 인간의 심성이다.자기자신도 어린시절이 있었고 더구나 자식을 두었다면 이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님은 너무나 자명하다.IMF라는 국가적 위기감을 이용해서 사기·악행을 일삼는 몰골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말짜’의 행태다.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생명을 도구화·소품화(小品化)하여 ‘돈’만 벌면된다는 식이라니 그들은 인간이 아니고 어디 다른 지옥에서 온 괴물인지 궁금하기만하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자라나서 또 무엇이 될것인가.조직에서 벗어나 부랑아로 나돌면서 소매치기나 도둑질,사창가로나 빠져들 것이다.갓 태어난 죄없는 생명을 도구로 삼았으니 그들도 그에 해당하는 적정의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악한 업인(業因)에는 악한 과보(果報)가 따른다는 말을 어느 때보다 믿고 싶은 심정이다.어린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이런 악덕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철저하고 치밀하게 폐쇄되어야 한다.인간미마저 말살된다면 누구라도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의미와 용기를 잃게될 것이다.
  • 야생동물 사육(黑龍江 7천리:27)

    ◎밀렵 금지령속 작년 호랑이 7마리 희생/96년 주민의 총기 당국서 모두 압수/곰 사육장 곳곳에… 쓸개즙 빼내 판매/2마리 수입 임업공무원의 6배 이상 임강향 향장은 조선족 김용일(金龍日)이다.김향장은 우리에게 부천촌까지 향정부 두신(杜臣)비서를 안내토록 했다.박촌장네 집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앉았는데 두신이 당서기 도성수(都聖洙·47)를 모시고 왔다. 개털모자 쓰고 검정 왕바신(王八鞋·솜신을 이르는 말)을 신은 도서기는 손에 꿩을 들었다.그는 “마침 잘 오셨습니다.아침에 총을 메고 새밭으로 나갔다가 잡았습니다.올해는 가을에 눈이 와서 녹은뒤 지금까지 눈이 없어서 사냥이 잘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꿩이 많다.눈이 내린 날이면 집마당 닭무리 속에 꿩이 끼어서 모이를 먹는다고 한다.임강평원은 10년 전만 해도 꿩이 참새떼처럼 많았다고 한다.총을 쥐고 나가면 하루에 수십마리는 쉽게 잡혀 마대에 넣어서 실고 왔단다. ○“꿩으로 만든 요리 일품” “갓 이사왔을 때는 꿩사냥이 정말 재미있었지요.눈이 많이 내린 후면 꿩망태를 짊어지고 지팡이 삼아 방망이 하나 들고 나가 밭에서 굶주리고 언 채로 숨어 있는 꿩들을 잡았지요.겨울밤에 등불 밑에서 윷판,화투판을 벌여놓고 놀다가 아낙들은 물을 끓이고 남정들은 마을앞 새밭으로 가 꿩을 잡지요.한 밤중에 꿩고기를 안주해서 따끈따끈 데운 술을 마시는 맛이란 세상 별미랍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술상이 차려졌다.감자에 꿩고기를 넣어 끓인 구수한 꿩탕이 올랐다.천하 일미였다.아침을 먹고 동강을 떠나서 반나절 차를 달렸고 벌써 하오 2시가 지난 때라 별미였다. 도서기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꿩탕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 맛도 좋지만 꿩밥은 진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답니다.꿩밥은 꿩의 내장을 꺼내 버리고 살점을 저며내 콩기름에 볶다가 물을 넣어 끓이지요.얼마간 익었다 싶으면 그 국물에 찹쌀을 얹어서 밥을 짓는 겁니다.밥 뜸을 들이면 고기도 익어서 꿩밥이 되는 겁니다.밥 속의 꿩고기를 간장에 찍어서 한번 먹어보면 평생 그 맛을 잊지 못한답니다” 어떤 때는 새끼곰이 마을앞으로 어슬렁어슬렁 지나가기도 한다.그러나 마을에 들어온 짐승은 안잡는다는 이곳 사람들의 사냥규칙이 있다. 중국에서 사냥금지령을 내리고 총을 몰수한 것은 1996년 1월 26일부터다.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총을 소지하고 대낮에 지프를 타고 보호동물을 잡는 일도 있다.지난해 연변에서는 호랑이사냥 사건이 다섯 번 있었는데 호랑이 7마리가 생명을 잃었다.곰,노루,사슴,멧돼지 사냥은 1천309건이라는 게 연변공안국의 통계이다. 부화촌의 최기선(崔基善)은 야생동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그는 너구리 80마리,곰 7마리를 사육하고 있다.새끼를 사서 번식시키기도 하지만 곰은 함정을 파고 사로 잡은 것을 키운 것이다.92년부터 해마다 5만원 수입을 올렸다는 그는 곰사육기술자로 소문이 났다. ○“뭐든지 잘먹고 잘커요” 가목사시 임업설계원에 근무하는 허태호(許太浩·43)씨는 삼림경찰 출신의 부친 허길(許吉·65)이 퇴직을 하자 아버지를 계승해서 1988년 임업설계원에 배치를 받았다고 한다.그런데 월급 491원에 아내 김옥란(金玉蘭·43)은 직업이 없어서 살림이말이 아니었다.아내가 재봉일을 해서 돈을 조금씩 벌기도 했지만 천정 높은줄 모르고 오르는 물가에 도저히 살림을 영위해 나갈수가 없었다.그래서 생각한 것이 곰사육.허씨는 5년전에 최기선에게 찾아가서 사육기술을 배운뒤 통화로에 가서 불곰새끼 두 마리를 만원을 주고 사왔다고 한다. “잘도 크데요.먹이는 강냉이가루,우유,사과,달걀,설탕,꿀,채소,생선 등 속이고 명태껍질도 준답니다.곰은 1년씩 쉬게 하면서 윤번으로 쓸개를 받습니다.매일 100㏄의 쓸개즙을 받는데 말리면 7g의 가루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쓸개즙은 50g당 80원,가루는 1g당 25원을 받습니다” 허씨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두 마리 곰이 50원어치를 먹고 150원어치의 쓸개즙을 만들어내 순수입이 100원이 넘는다고 했다. 중국에서 곰사육은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허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흑룡강성 임업청(林業廳)에서 발급한 국가의 중점보호 야생동물 사육허가증서(許可證)를 보여주었다. 흑룡강성에서 곰사육에 성공한 사람은 하얼빈시 태평구 민주향 우의촌에사는 강진룡(姜鎭龍·40)씨이다.곰사육을 해온지가 11년,곰 20여 마리가 있다.건조기에 쓸개즙을 넣고 섭씨 60∼65도의 온도에서 40시간을 건조시키면 가루가 된다고 한다.그는 곰쓸개를 상품화해서 ‘흑룡강성 동북양웅장(東北養熊場)’이라는 이름으로 인쇄한 보증서를 고객한테 준다.흑룡강성 약품검험소에서 검사한 결과 각종 웅담 성분이 국가표준에 부합되고 담즙함량이 높다는 등 내용의 글을 보고나면 자연 마음이 동한다. 강씨의 웅담은 허씨의 것보다 값이 20%나 더 비싸다.그의 특기도 허씨처럼 소의 쓸개주머니에 넣어서 포장하는 것이다.소 쓸개주머니의 겉가죽을 벗겨낸 얇은 주머니에 믹서로 간 웅담가루를 넣은 다음 다시 건조기에 넣었다 꺼내면 제법 그럴듯한 곰쓸개가 된다는 것이다. 강씨의 소 쓸개주머니에는 25g의 담즙이 들어있는데 부르는 값이 500원 또는 400원이나 된다.어떤 한국인은 장사를 하려고 100여개씩 사간다고 한다.
  • 대쪽판사/임영숙 논설위원(외언내언)

    중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영어과외를 받았다.지금같으면 큰일날 일이지만 당시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거리낄것 없이 태연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한 학년에 두학급뿐인 작은 시골학교에 부임한 선생님은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특별 보충수업을 실시했다.칠판에 글씨를 쓰시는 선생님 뒤에서 탱자를 던지며 장난치기 좋아하던 아이들 사이에서 담임의 특별지도는 무심히 받아들여졌다.영화 ‘서편제’가 시작되는 소릿재 주막으로 가는 길 옆에 있던 중학교의 울타리는 탱자나무였고 가을이면 그 울타리에 노란 탱자가 주렁주렁 열렸다. 선생님은 물론 과외비를 받지 않았다.부모님이 사 보낸 양과(洋菓)도,집안 채마밭 한 귀퉁이에 자란 들꽃 다발 선물도 불편하게 여기셨다. 법조계 비리(非理) 수사과정에서 ‘대쪽 판사’ 2명이 화제가 됐다 한다.15명의 판사가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의정부 지원에서 2명의 판사가금품과 향응 유혹으로부터 초연해서 뇌물을 건네려던 변호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30여년전의 시골학교 선생님만큼이나 순수한 마음을 가진판사들이 아닌가 싶다.우리 사회가 온통 썩어 문드러진 것 같지만 사실 구석구석 이런 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돈봉투와 선물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거절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는 일이고 자칫하면 더 많은 액수를 원해 거절했다는 엉뚱한 비난을 상대방으로부터 받을 수도 있다.더욱이 금품과 향응 접대가 관행화(慣行化)된 사회에서는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튀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그래서 거절하지 못한 촌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사람도 있고 ‘비교육적인 돈을 교육적으로’ 쓰는 교사도 있다. 교사와 판사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지표(指標)다.그들이 제자리를 지키며 존경과 신뢰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돈봉투나 향응을 거절하기 쉽도록 구체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실제로 촌지수거함을 마련해 성공한 학교도 있다. 최근 광주의 한 소비자 단체가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2%가 아직도 촌지수수(授受)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이런 상황에서 존경받는 스승이나 대쪽 판사가 계속 나오기는 어렵다.받지 않았다고 찬사를 보내기보다 그들에 대한 유혹을 먼저 없애주는 것이 바른 순서가 아닐까.
  • 명성황후 피란 일화(비록 남가몽:4)

    ◎뱃사공에 금반지 빼주고 한강 건너 피신/경기도 광주땅 지나는데 아낙네들 험담/“중전때문에 이 고생… 군졸에 밟혀 죽었다”/두달후 환궁 “아낙네마을 없애 버려라” 1882년 6월의 임오군란으로 민비는 실각하고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됐다. 대원군으로서는 실각한지 8년만의 일이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대원군이 운현궁에서 창덕궁까지 가는데 여덟 사람이 메고 가는 가마(팔인교)를 탔고 앞뒤에는 파초선을 든 하인들이 그를 인도했다.대원군의 공복 등에는 거북 등(구배)이 붙어 있어 사람들은 그가 곱추처럼 보여 아니꼽기만 했다.더욱 가관인 것은 그동안 운현궁 사랑방을 출입하던 문객,즉 가신들을 중앙과 지방의 요직인 각 도 감사(도지사)와 유수(시장) 그리고 군수직에 임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난을 피해 한강을 건너가던 민비는 전혀 다른 처지에 놓여 있었다.그러니 그야말로 절치부심 이를 갈며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중전이 나루터에 서서 급히 사공을 불러 배위에 올라타니 수레바퀴같은 붉은 해는 비웃듯이 솟아 오르고삼각산의 뜬 구름도 즐겁기나 한 듯 뫼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삼국지에 보면 옛날 한나라 환관 십상시의 난에 개똥벌레가 한소제를 북망산천으로 인도하였고 채모 장군이 추격함에 유비가 말을 타고 단계천을 뛰어 건넜다고 하는데,그 쓸쓸한 모습이 옛날이나 지금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드디어 뭍에서 내려 길을 가다가 얼마후 깨끗한 여관에 들어가니 아침밥을 지어 바치는데 한나라 광무황제가 호타하에서 먹던 보리밥처럼 꿀맛과도 같았다.그러나 비록 이같이 배고프고 목마른 가운데서도 단맛을 느끼지 못하였다.도로를 왕래하는 사람이 시끄럽게 자주 서울의 군란소식을 전하여 주었는데 들어보니 곤궁(민비) 전하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지 못하겠고 혹은 서거하였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었다.그 밖에 흉흉한 설은 이루 다말하기 어려웠다. 듣기를 마치고 드디어 수레를 타고 수행원의 보호를 받으며 바로 충주 옛고을로 향하여 편안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잠시 화를 피하였다. 며칠이 지나 잠깐 조보에 발표된 내용을 보니 ‘민중전이 군란의 와중에서 서거하여 백성은 부모를 잃은 것 같이 슬퍼하고 모두 흰옷을 입었고 온 나라는 악기를 일체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생국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명성황후가 여주로 피난할 때 남긴 일화가 많다.한강을 건널때 사공이 민비를 건네줄 수 없다고 버티었다고 한다.한강을 차단하라는 긴급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공의 주장이었다.이에 민비는 즉각 금가락지를 빼어 사공에게 던져 주었고 사공은 뇌물을 받고서야 순순히 배를 저었다는 것이다. ○대원군,시신없이 국상 채비 한강을 건너 충주로 가는 도중에도 괘씸한 일이 일어나 민비의 가슴을 쥐어짰다.경기도 광주땅을 지나가다가 교자꾼들이 가마를 길에 놓고 잠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길가던 아낙네들이 “이렇게 어여쁘신 아가씨가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민비는 재치있게 “서울에서 충주로 피난가는 길이요”라고 대답했다.그러자 아낙네들이 “중전인가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예쁜 아가씨까지고 생하는 구려” 하면서 “중전은 군졸들에게 짓밟혀죽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괘씸한 생각이 들었겠는가.민비는 이들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두달 후 서울로 환궁하자 곧 아낙네들이 사는 마을을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다.또 수행원들이 “한강의 뱃사공은 어떻게 하오리까” 하고 묻자 민비는 “그대로 두라”고 했다 한다.그도 그럴것이 사공이 뇌물을 거절하고 한강을 건네주지 않았던들 민비는 잡혀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에서는 대원군이 민비의 국상을 서둘렀다.시신이 없어 국상을 치를 수 없다는 반대가 강했다.그러나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대원군은 민비의 옷을 시신으로 삼아 염을 한뒤 관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그리고는 장례식부터 치러 민비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장례식부터 치르려 한 대원군의 심사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할 것이다.그래서 그런지 대원군은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청국군에게 납치되어 머나먼 중국땅으로 끌려가고 말았고 민비는 살아 돌아왔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몇 개월이 지났다.고종과 세자는 아득하게 소식을 알지 못하여 마음이 슬프고 애통할 뿐이었다. 이 때에 군란의 소요가 가라앉자 곤궁 전하는 고종에게 소를 올려 ‘신은 죽지 않고 지금 충주 장호원 등지의 민가에서 피란하고 있으며 처분이 어떠하신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고종 부자분은 소를 자세하게 살펴본 뒤에 심신이 황홀하여 꿈결도 같고 술에 취한 것도 같았다.즉시 궁궐로 돌아오라는 뜻을 담은 교를 내려 조처를 취하니 하늘의 해가다시 밝았고 땅의 바람이 일어나 솟아오르는 듯하였다.안으로 3천명의 관료와 밖으로는 800명의 관료가 축하하여 일시에 만세를 부르니 남산과 북악의 초목과 곤충들도 모두 정채가 감돌았다. 우선 급무는 공로가 있는 자에게 시상하는 건이었다.무슨 벼슬로 상을 줄것인가.양주목사 자리이다.양주목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이번에 충주까지 수레를 태워주고 수행하여 보호하는 일을 맡은 홍태윤(홍계훈의 잘못)이었다.” ○한때 ‘육백팔흑’ 유행 임오군란으로 민비가 자취를 감춘 것이 6월이요,돌아온 것이 8월이었으니 불과 두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당시 사람들은 6월에 흰 옷을 입고 울었다가 8월에 검은 갓을 쓰고 살아돌아온 국모를 환영했다 하여 육백팔흑이란 말이 유행했다 한다. 명성황후를 업고 나온 공으로 양주 군수로 발탁된 홍계훈 이외에도 서울에서 충주로 가는데 필요한 여비 500궤미(말을 판 돈이었다)를 댄 조충희는 전남 영광군수로 임명되었다.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북청 물장수 출신의 이용익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과 충주를 왕래하면서 중앙의 정세 변동을 민비에게 보고하였으니 그 뜨거운 충성심과 추종을 불허하는 건각은 역사상 유례없는 것이었다.홍계훈은 뒷날 동학란 토벌대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이용익은 대한제국의 탁지부대신을 맡아 이른바 광무개혁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임오군란은 개항 6년만에 국고가 바닥이 나 군인들이 들고 일어난 대사건으로 조선왕조가 망해가는 첫걸음이었다.그러므로 민비와 대원군 사이의 사전쟁 이상의 것이었다.이 군란으로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서울이 분탕질을 당하고 일본군이 인천항에 상륙하여 열강에 의한 내정간섭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 의회정치의 시련(대한민국 50년:9)

    ◎49년 무장경찰대,국회반민 특위 습격 폭거/친일파 대거 구속되자 이승만 “특위활동 중지” 지시/‘프락치사건’국회부의장 등 15명 무더기 구속 사태도 이승만 한사람의 고집으로 하룻밤새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제로 바뀌기는 했어도 대한민국 의정 50년의 문을 연 제헌국회는 정치의 중심무대였다.1948년 5월31일 개원한 제헌국회는 의회민주주의의 이상을 지향했다.필요한 권한이 주어졌고 의사진행은 민주적이었다.의원들간에 횟수경쟁이 벌어질 만큼 발언도 자유로웠다.이승만 대통령도 국회의 건의나 요구가 있을 때마다 국회에 출석,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주요법안 심의때는 정부의 입장을 직접 설명하는 등 국회를 존중했다. 그러나 이승만이 초대내각 구성에서 원내 최대정파인 한민당을 배제한 것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는 불신과 갈등의 관계로 접어들었다.의정 초기 정부와 국회의 대결은 대부분 국회의 승리로 귀결됐다. ○지방자치법 폐기 일방통고 1948년 8월에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계속된,지방자치제 실시여부를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국회가승리를 거둔 것은 당시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 우위의 정치구도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이때만 해도 정부와 국회의 대결은 권한의 유무나 헌법의 해석 등 입헌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방자치 문제에서의 패배를 고비로 정부는 이 틀을 깨려 들었다.정부는 국회가 폐회하기를 기다려 1948년 5월12일 지방자치법 폐기를 일방통고했다.정부의 재재의 요구가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자치법은 계류중인 상태였으며 따라서 국회의 폐회로 자동폐기됐다는 게 정부측이 내세운 어거지 논리였다.이때부터 이승만 정권은 노골적인 국회탄압에 나섰다.갓 싹을 틔운 의회민주주의에 시련이 시작됐다. 제헌국회때 정부와 국회간 대결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문제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이의 전개와 결말은 이후 대한민국 의정 50년사의 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 잣대로 작용했다.일제하의 친일파 및 민족반역자 처벌문제는 농지개혁과 함께 건국이후 떠오른 최대과제중의 하나였다.국회는 헌법제정과 내각구성을 마친 직후인 1948년 8월5일 이를위한 특별법기초위원회를 설치하고 한달만인 9월7일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통과시켰다.이에 따라 국회내에 특위가 설치되고 법원과 검찰에는 특별재판관,특별검찰관으로 구성된 특별재판부가 구성됐다.특위활동은 이듬해 구체화해 49년 1월8일 친일자본가 박흥식을 필두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속속 체포했다. 반민특위가 활동에 나서자 정부내 친일파세력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저항의 선두에는 행정및 정치적 기반을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승만이 섰다.이승만은 특위활동이 활발해지자 반민법 개정을 요구하는 특별담화 발표(1월10일),체포된 친일경찰 노덕술에 대한 석방요구(1월24일),반민법 개정안 제출(2월15일),반민특위 활동의 중지 및 특경대 해산 지시(4월16일) 등으로 특위를 계속 압박했다. ○“남로당과 연결” 전격 구속 그럼에도 특위가 6월4일 서울시경 사찰과장 최운하,종로서 사찰주임 조응선을 체포하는등 고삐를 늦추지 않자 이틀뒤 무장경찰대가 반민특위를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당시 정부와 국회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국회 프락치사건이다.정부와 국회가 극한대결로 치닫던 5월20일 소장파의원 3명이 국가보아법 위반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이유는 이들이 남로당과 연결되어 국회에서 프락치활동을 했다는 것이었다.이어 8월14일 소장파의 좌장격인 국회부의장 김약수 등 의원 12명이 추가구속됐다. 이같은 국회프락치사건은 반민특위의활동 및 이후 정부와 국회의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사건의 정치적 배경은,당시 수사총책인 검찰총장 권승렬이 국회에서“이사건에 물적 증거라는 것은 없습니다마는…,다소는 있습니다마는…,대개 물적 증거가 박약한…서로 연락해서 논의한 사건은 사람의 말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밖에 없습니다”(49.5.23 국회속기록)고 한 보고에서 유추해 볼 수있다.그때 미국·영국 등 주요 우방은 반민특위 습격과 국회프락치사건을 ‘이승만의 뜻’으로 보았음이 최근 발굴한 자료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어쨌든 국회프락치사건으로 입법부 우위를 떠받쳐온 힘의 원천인 소장파의원들은 몰락하고 소장파가 주도한 반민특위 활동도 마찬가지로 힘을 잃게 됐다.또 이 사건은 정부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친공으로 몰아 제거하는길을 트는 출발점이 됐다.국회는 반민족행위의 공소시효를 단축하는 개정안을 7월6일 이승만의 요구대로 통과시켰고 이로써 반민특위 활동은 사실상 전면중지됐다. 소장파가 제거된 이후 국회는 원내 제1세력인 민국당이 중심이 되어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내각책임제 개헌을 추진했다.하지만 개헌은 1950년 3월14일 국회에서 부결돼,국회의 패배로 결말나고 이를 고비로 국회우위 시대는 종식을 맞았다. ○“행정부 견제” 내각제 추진 제헌국회 2년새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민주정치의 기반인 국회의 행정부종속을 초래,행정부 만능인 권위주의 통치가 이땅에 뿌리내리는 씨앗이 됐다.그결 과 비상계엄령과 백골단 등에 의한 공포분위기 속에 기립표결로 헌법을 바꾼 2대 국회의 발췌개헌,민의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소수점으로 계산한 3대국회의 사사오입개헌 등 파행이 이어지다 끝내 1961년 5·16 군사쿠데타,72년 유신,80년의 군사쿠데타 등 세 차례 헌정중단의 비극으로까지 연결됐다. 제헌국회는 의회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시대적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다양한 정파로 구성됐지만 친일파와 지방자치 문제의 처리에서 보듯 초정파적 단결력으로 정부를 제압하는 힘을 과시했다.사안에 따라 연합과 대립의 관계를 형성,민의의 대변기구로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갈등을 신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던 셈이다.이런 점에서 제헌국회는 의회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소중한 경험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1949년의 일련의 사태는 이러한 가능성을 좌절시킴과 동시에 합법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즉 정치민주화의 폭을 크게 제약했다.반세기 가깝게 우리 정치를 옥죄어온 권위주의 체제는 이때 이미 싹튼 것이다. ◎미 “국회 프락치사건 이승만의 뜻”/미군정 사법부근무 프란켈 보고전문서 확인 이승만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입법부의 독립에 관해 자기중심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인식을 가졌다. 미군정 당시 사법부와 경제협조처(ECA)에 근무한 에른스트 프란켈은 국회프락치사건을주의깊게 관찰한 결과를 에버렛 드럼라이트 주한미대사관 참사관에게 전달했다.국회프락치사건 재판이 한창 진행중인 1950년 3월22일 드럼라이트는 미 국무부에 프란켈의 보고를 전문으로 보냈다. 이 보고에서 프란켈은 재판의 공정성과 관련해 “검사는 고문에 따른 자백에 의존하고 판사들은 변호사가 신청한 증인채택을 거부하는 등 재판이 편향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이어 “재판장은 기소된 의원들이 비록 ‘좋은’일을 했더라도 남로당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불법”이며 특히 “미군철수를 요청하고 국군의 북진통일을 반대한 것은 범죄”로 보았음을 밝혔다. 프란켈은 또 이승만을 “자신의 권위와 지도력을 보장하는 한 국회를 구성한 정당과 개인들이 어떤 주장을 제기해도 수용한 반면 분단에 관련한 문제나 체제기반을 침식하는 정치적 반대활동은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결국 미국은 애초부터 국회프락치사건을 정치적인 것으로 파악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한편 이보다 앞서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발생한지 나흘뒤인 49년 6월10일 영국의 서울총영사 C. 홀트는 어네스트 베빈 외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특위 본부 습격을 지시했다”고 보고했다. 미·영 양국의 주한 외국관들이 본국에 보고한 이같은 내용들은 그동안 일부에서 제기해온 국회프락치사건의 행정부 작위설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 갓난 아기엔 역시 모유가 최고/불황 여파 분유값 올라 부담 가중

    ◎감기·설사 등 잔병 줄어 일거양득/직장여성은 냉동해놨다 먹이기도 임신 7개월째인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임종희씨(30)는 직장에다니는 터라 막연히 모유는 곤란할 거라 여겨왔다.그런 임씨의 느긋함을 대번 날려버린건 불시에 불어닥친 IMF한파.분유값이 엄청 올랐는데다 그나마 품귀라고 먼저 엄마가 된 친구들이 한탄을 늘어놨기 때문.결국 임씨는 생활비도 아낄겸 아기에게도 좋다는 모유를 되는 데까지 먹여보리라 마음을 바꿨다.출산휴가가 끝난뒤 모유를 짜서 냉동시켜 놓고 출근했다는 열성파 선배의 체험담도 도움이 됐다. IMF한파가 아기분유값까지 흔들어놓자 예비엄마나 갓 엄마가 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모유수유가 인기를 얻고 있다.삼성서울병원 이정희 간호이사는 “요즘 모유 먹이겠다는 엄마들이 부쩍 늘었다.아이와 엄마의 건강을 위해 모유수유를 권장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이 받아들인다”고 추세를 전했다. 모유가 아기에게 좋다는 점은 무수한 캠페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하지만 우리나라 모유수유율은 25%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몸매가 나빠진다는 미신,분유광고의 쇄뇌,직업여성의 증가 등등이 걸림돌로 작용해왔다.모유수유의 확산을 위해 유니세프(국제아동기금) 한국위원회는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병원을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지정하고 있고 대한간호사협회에선 ‘모유 건강아 선발대회’까지 열었다.그렇지만 모유수유율이 60∼70%대에 이르는 서구 선진국과의 격차는 좀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대 목동병원 소아과 의사 이근씨는 “포유동물의 젖은 각기 자기 종족에게 가장 잘 맞게끔 특성화돼 있다.사람의 아기는 유당이 많은 엄마젖을 먹어야 감기·설사 등도 없고 알레르기도 줄며 머리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경제 어려움과 맞물려 모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틈을 이용,병원과 단체들도 모유 권장 강도를 높일 계획이다.유니세프는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9개에 이어 올해안에 3개를 추가로 지정한다.각 병원에 앙케이트를 돌려 ▲태어난지 30분내에 모유수유 ▲모자동실제도 등이 얼마나 실천되는지 점검,종합심사를 거쳐 지정한다.서울 차병원은 올 3월부터 그간 운영해오던 모자동실동,모유수유방을 확충하고 모유수유 교육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 대덕연구단지 생명공학연 이경광 박사(세계 최고에 도전한다:7)

    ◎2001년 모유같은 우유 나온다/인체 락토페린­젖소 베타카제인 유전자 융합/젖소 수정란의 핵에 넣어 ‘락토페린 젖소’ 개발/92년 연구 착수… 의약품원료로도 큰 부가가치 창출 서해안 태안반도의 두산개발 안면목장에는 17억원짜리 세계 최고가의 ‘황금젖소’가 자라고 있다.그러나 이 젖소는 생김새가 비슷한 1천200여마리의 무리에 섞여 사는지라 보통 사람의 눈으로 가려내기가 어렵다. 이제 14개월을 갓 넘긴 이 젖소의 이름은 ‘보람’(Bovine with Lactorferrin Assisted Milk)이다. 보람이는 인간의 모유에 들어 있는 락토페린과 면역글로블린,라이소자임이 풍부한 우유를 만들어 내는 형질전환 젖소.엄마젖과 같은 우유를 쏟아 내는 젖소의 원조인 셈이다. 얼마전 미국에서 복제 송아지인 ‘조지와 찰리’가 등장해 화제를 모은 것과 달리 한국에 보람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락토페린은 항균·항바이러스 등의 면역증강작용과 세포증식·철분흡수 작용이 뛰어난 인체 생리활성 단백질.모유 1ℓ에는 같은 분량의 우유보다 14배남짓 많은 1.4g이 들어 있다.‘모유를 먹여야 아기가 건강하다’는 것은 락토페린을 두고 하는 얘기다. ○90년엔 ‘슈퍼생쥐’ 첫 개발 보람이의 경제적 가치가 17억원이나 되는 것은 ‘모유같은 우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보람이의 출현은 모유가 모자라거나 직장생활하는 산모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반가운 소식이다. 대덕연구단지 생명공학연구소 이경광 박사(49·동식물세포공학연구부장).수정란 동결법으로 인체 락토페린 생산용 형질전환 젖소인 보람이를 세계 처음으로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보람이는 96년 11월 세상에 나왔다.공교롭게도 소띠(49년생)인 이박사와 생일(11월22일)이 같다.그리고 이박사는 소의 해인 97년에 보람이가 인체 락토페린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이박사와 소는 이래저래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경북 예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시절 심훈의 ‘상록수’를 읽으며 자랐지요.소꼴을 먹이느라 소와 온종일 살다시피했던 것이 동물발생학을 전공한 계기가 됐습니다” 청년이경광은 가난에 찌든 농촌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에서 건국대 축산대에 들어갔다.석사과정까지 6년간을 줄곧 장학생으로 다닌 그는 일본문부성의 초청으로 북해도대학에서 가축번식학 박사학위를 받고 84년 귀국,동물발생학 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86년부터 89년까지 불과 3년 사이에 △인공적으로 쌍둥이를 만들 수 있는 일란성 쌍자동물 △수정세포의 핵을 대치하는 핵치환 복제동물 △우성·열성 형질이 동시에 나타나는 키메라 동물을 잇따라 개발했다.90년에는 동물발생학에 유전공학적 기법을 과감히 접목,2배 이상 크게 자라는 슈퍼생쥐를 국내 처음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 이박사는 이어 92년 11월 두산기술원 등과 공동으로 G7프로젝트인 ‘인체유용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형질전환동물의 개발’에 착수했다.국내 축산업을 살리려면 가축을 단순 축산물만이 아닌 고가 의약품 생산기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는 먼저 인체 락토페린 유전자를 포함한 유용 생리활성물질 유전자와 이 유전자의 발현을 돕는 소의 베타카제인유전자를 분리·추출,베타카제인/인체락토페린 융합유전자를 만들었다. 94년에는 이 융합유전자가 제대로 발현되는지를 형질전환 생쥐에서 알아본 결과 인체 락토페린 유즙이 성공적으로 분비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어 재조합 유전자를 젖소 수정란의 핵에 집어 넣어 동결시킨 뒤 이를 젖소 대리모에 이식,송아지를 낳게 했다.이렇게 태어난 35마리의 송아지 가운데 1마리가 락토페린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다.바로 보람이었다. ○특허 8건에 논문도 70편 이박사는 보람이와 관련된 8건의 특허를 갖고 있으며 국내외에 발표한 논문만 해도 70편에 이른다. 수컷인 보람이는 앞으로 씨내리 역할을 하는 종우로서 인공수정을 통해 인체 락토페린 생산용 암젖소를 태어나게 하는데 이용된다. 이박사는 넉넉잡아 2001년 중반이면 형질전환 젖소에서 1ℓ당 1g 이상의 인체 락토페린이 든 우유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인체 락토페린 첨가물질의 95년 세계 시장 규모는 1백70억달러. 2000년에는 2백3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보람이는 유아용 특수조제 분유,기능성식품,의약품 원료 분야에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전망이다. 이박사는 동물발생학에 대한 주위의 무지로 연구과정에서 남달리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연구에만 전념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이해시키고 설득하 는작업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84년 해외유치과학자로 생명공학연구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일란성 쌍둥이 개발에 관한 프로젝트를 본 연구부장이 ‘당신을 쪼개 둘로 만들면 좋겠느냐.잘 자라게 하지는 못할 망정 멀쩡한 것을 뭐하러 동강내느냐’며 역정을 내더군요” 80년대 말 슈퍼마우스를 개발중일 때에는 “사람의 유전자를 쥐에 집어 넣었다가 인간의 지능을 가진 쥐가 태어나면 어떡하느냐”는 소리도 들었고 국민의 혈세를 개인 취미생활에 쓰는 넋 나간 사람으로 몰리기도 했다. 이박사는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토대삼아 앞으로 형질전환수정란 은행을 세우는 한편 산양·토끼 따위의 동물에서 혈전치료제나 항암제를 만들어 내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갖고 있다. ‘소 농사’에서는 대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박사지만 그에게도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하나 있다.6년째 한달에 하루밖에 쉬지 않는 일벌레 아빠를 지켜 본 세 자녀가 “과학자는 절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 큰 아들은 “대를 이어 과학자가 되어 달라”는 그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고 문과를 택해 대학에 들어갔다. ◎형질전환 동물이란/유전자 특정동물 염색체 인공이식/원하는 형질일부를 변형시킨 동물 형질전환동물이란 외래 유전자를 재조합해 특정 동물의 염색체상에 인공적으로 끼워 넣어 그 형질의 일부를 변형시킨 동물.인간에게 유용한 유전자를 실험동물이나 가축에 이식해 원하는 동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동물 형질전환기술은 지난 80년 미국의 생명공학자 고든이 처음 개발한 이래 급속한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실험동물은 물론 면양·돼지·소 따위의 가축에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응용되는 곳은 예컨대 슈퍼마우스와 같은 성장동물 개발분야와 동물생체반응기(Animal Bioreactor) 개발분야.동물생체반응기 개발부문은 경제성이 높아 세계적으로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동물생체반응기는 유선조직의 유전자를 재조합해 특정 동물의 염색체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형질을 바꿔 우유와 함께 고부가가치의 생리활성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형질이 유전되기 때문에 고품질의 유용 생리활성물질을 자손 대대로 얻을 수 있다. ‘보람’이도 여성의 젖샘조직에서 모유에만 있는 락토페린 유전자를 뽑아 이를 젖소의 염색체에 이식,모유와 같은 우유를 만들어 내도록 만든 동물.도축장의 젖소에서 채취한 미성숙 난자로 체외수정란을 만든 뒤 수정란 핵에 락토페린 재조합유전자를 집어 넣어 착상 직전의 단계까지 1주일 남짓 체외배양시킨 뒤 이를 대리모에 이식했다.이 과정에서 락토페린 젖소가 태어날확률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세계 과학계를 떠들석하게 했던 복제양 ‘돌리’는 체세포의 핵을 뽑아 낸 뒤 그 자리에 탈핵 난세포를 치환,원래의 양과 똑같은 모습을 만든 것으로 특정 개체의 체세포를 이용해 하나의 동물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약력 △49.11 경북 예천 출생 △77.2 건국대 축산대학 낙농학과 졸업 △84.3 일본 북해도대학 농학박사(가축번식학,학위논문­집토끼 중복임신에 관한 연구) △84.5∼90.2 한국과학기술원 생명공학연구소 선임연구원 △85.9∼85.12 일본 북해도대학 수의학부 객원연구원 △86∼89년 일란성 쌍자동물,키메라동물,핵치환 복제동물 생산 △90.3∼91.2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공학과 겸임교수 △90∼96년 생명공학연구소 책임연구원 △90년 슈퍼생쥐 국내 첫 개발 △91.9∼현재 충남대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96.2∼현재 생명공학연구소 동식물세포공학연구부장 △97.12 형질전환 젖소 ‘보람’ 개발 △한국축산학회 정회원,한국가축번식학회 이사,일본축산학회 정회원
  • 외제 차량 ‘부품 대란’/수입업체 대부분 문닫아 AS 꿈도 못꿔

    ◎환율 올라 펑크 나도 타이어 못 구해 쩔쩔 “사이드미러 없는 외제차는 끈 떨어진 갓이죠” 김모씨(45·오퍼상·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BMW528 승용차는 두달째 왼쪽 사이드미러가 없다.지난해 말 도로변에 주차했다가 깨진 뒤 서울시내 부품상을 모두 뒤졌으나 지금까지 구하지 못했다.차를 판 자동차 수입사는 망해 애프터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모씨(48·사채업·서울 강남구 압구정동)는 올 초 벤츠S320의 사물함 손잡이 고리가 부러졌지만 부품을 구하지 못해 테이프로 고정시켰다.박모씨(35·자영업·서울 강남구 서초동)의 벤츠E320은 3주째 차고에서 쉬고 있다.지난해 말 누군가 타이어를 펑크를 내 갈아끼웠지만 다시 펑크가 난 뒤 타이어를 구하지 못했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서울에 60개에 이르던 수입 자동차상이 환율이 급등한 뒤 4∼5개사만 남고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외제차 부품을 갖고 있는 일부 부품상이나 수입차 업체들은 값이 오를 것을 기대해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의 수입자동차 G대리점의 이모대리(30)는 “외제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IMF 한파 이후 부품을 구하지 못해 품위 유지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군 교육용 만화 나왔다/초대 육군작가 이현세씨 작 ‘까치병장’

    ◎신세대장병 병영생활 적응과정 그려 인기 만화작가 이현세씨가 군 교육용으로 그린 만화 ‘까치병장­오대장성’이 발간됐다. 육군은 3일 초대 육군 만화작가로 위촉된 이씨가 병영생활을 만화로 엮은 까치병장 제1탄 ‘오대장성’편 3만3천부를 발간해 일선 장병들에게 배포했다고 밝혔다.‘오대장성’은 병사의 최고참인 병장을 대장 중장 소장 준장과 함께 일컫는 병영내 속어이다. 모두 160쪽 분량의 이 작품은 주인공인 ‘까치’(오혜성)가 ‘오대장성’가운데 하나인 병장으로 ,‘엄지’가 까치의 애인으로 등장해 까치가 초년병 시절 이민을 떠난 엄지를 그리워하며 탈영직전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고참이 된 뒤 갓 전입온 신병을 참다운 군인으로 이끌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군에서 자체 제작한 만화교재가 신세대들로부터 외면 당해 왔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해 이씨를 초대 육군 만화작가로 위촉해 신세대 취향에 맞는 만화교재를 발간하게 됐다”면서 “5월말까지 장병과 군무원을 상대로 강릉무장간첩 침투사건 등에 대한 만화소재를 공모해 까치병장 2탄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클린턴 재임 최대위기/백악관 섹스스캔들 수사

    ◎‘위증종용 고백 테이프’ 진실성 최대 관심/거짓증언교사 드러나면 ‘제2 닉슨’ 신세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백악관 자원 업무보조원(인턴)과의 성관계의혹 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은 재직이래 최대의 법적 위기에 봉착했다.이번 의혹은 추문의 색갈도 아주 강렬하지만 냉엄한 법적 측면에서 그의 많은 기존 스캔들을 압도해 버린다. 상대방 인턴이 대학을 갓 나온 21살의 젊은 여성이었고,정사가 18개월이나 계속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다고 해서 엄청난 것은 결코 아니다.대통령 재직시에 저질러진 개인정사라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된 것도 아니다.클린턴이 이 여성에게 진실 선서 아래 행해진 법적 진술에서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하도록 했다는 혐의가 이번 의혹의 핵심이고 클린턴 위기의 본질이다.사실이라면 이 여성은 위증죄를 범했고,클린턴은 위증교사의 사법 방해죄를 저지른 것이다.사법 방해 혐의는 워터게이트 스캔들때 당시 닉슨 대통령을 의회탄핵에 내몬 주요 범법행위다. 이 혐의를 다룰 권한을 부여받은 케네스 스타 화이트워터 특별검사는 이 위증교사 여부를 캐기 위해 성관계 의혹을 이잡듯 뒤질 것이다.야당인 공화당이 탄핵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이때까지 ‘스캔들 투성이’의 클린턴을 충성스럽게 옹호하던 최측근들도 처음으로 “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통령은 수치스럽게 워싱턴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만큼 사건이 중대한 것이다. 이어 클린턴 최측근들은 이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이에 관한 수사를 제기한 스타 검사를 차제에 ‘말살시켜’ 버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클린턴 대통령은 성관계와 위증교사 혐의 모두를 전면 부인했다.사실 규명의 초점은 20시간 분의 대화테이프가 진짜냐,테이프에 수록된 문제 인턴의 고백이 진실이냐에 모아진다.특히 이 인턴의 진실성이 최대의 관건이다. 문제의 모니카 르윈스키는 테이프 고백과는 반대로 법적 진술에서 관계를 부인했다.정사가 사실일 경우 이미 한번 위증죄를 범한 셈인 그에게 스타검사는 형사면소 특권을 주고 고백을 유도할 예상이다.테이프 고백을 입증하기 위해 그의 백악관 출입 및 활동상황이 샅샅이 체크될 것이다. 이 혐의도 클린턴의 다른 스캔들과 비슷하게 ‘이쪽 주장,저쪽 주장’ 수준을 끝내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그러나 만약 분명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대통령이나 특별검사 중 한명은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 김홍도 ‘미인화장’의 여인(한국인의 얼굴)

    ◎경대 앞에서 화장하는 여인 그려/엉거주춤 자세 기묘한 행동 묘사 조선시대 풍속화 미인도 가운데 단원 김홍도의 것으로 보이는 작품도 전해오고 있다. 서울대박물관 소장한 이 미인도는 경대 앞에서 화장을 하는 여인을 묘사한 그림이다.왼쪽 윗모서리에 ‘단원이라는 사인글씨가 들어갔으나,도장은 찍지 않았다.그래서 먼저 전자를 앞 세우고 화제를 김홍도 ‘미인화장’으로 달아놓았다. 여인은 다소곳하기 보다는 좀 번잡스럽다.가채머리가 유난히 큰 여인은 숫제좋게 가랑이를 벌리고 앉았다.혼자만의 방이기는 하다.그러나 엉거주춤하고 가랑이 진 앉음새가 사번해 보이거니와,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그 자세로 얼굴을 거울속에 집어넣느라 상체가 왼쪽으로 기우뚱 휘었다.그리고 왼팔을 굽혀 소담한 가채를 떠받들 듯 매만진다.들어 올린 오른팔 역시 한껏 굽혀 손으로 가채끝을 잡았다. 얼굴 화장이 요란하다.호분을 짙게 칠한 여인의 눈초리는 온통 거울에 쏠렸다.얼굴이 본래 곱살했을 여인인데,호분을 두껍게 올리고 나서 눈썹을 갈매기 모양으로그렸다.붉은 입술을 너무 오므라뜨려 토라져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그러나 화장한 얼굴이 마음에 들어 안도하는 표정이다.이미 예고한 방문객의 인기척이 나면 용수철처럼 튀어나갈 채비는 다 차렸다.화장한 사연을 알만하다. 장안의 내노라 꼬리를 치는 기녀이거나 어느 한량의 작은집 소첩일 것이다.속곳 가랑이 한쪽을 드러낸 앉음새하고는 본데가 별로 없는 여인이기는 하나 얼굴이 그만큼 반반하면 남정네들 속깨나 태울만도 하다.오므라뜨린 작은입이나 너무 자그마하게 그려놓은 버선발을 보노라면 여인과 인연을 맺은 한량이 마음을 둔 데를 읽을 수 있다.거드름을 피우고 찾아와서는 막상 체면쯤은 접어 둘 한량은 여인을 또 품을 것이다. 앳되게 보이려고 그랬는지,주홍색 깃과 자죽색 끝동을 단 반회장 노랑색저고리를 입었다.갓 시집 온 각시들이 즐기는 노랑저고리를 입기는 했어도 치마를 추스린 품은 그렇지 않다.치마를 끌어올려 호리춤을 찔끈 동여맨 것이나,왼쪽 치마단을 걷어 올린 것은 여염집 규수의 꼴은 아닌 것이다.그래서 남에게 함부로 보이지 않던 여인들 속살격의 속치마와 단속곳까지 드러냈다. 그렇다고 단속곳이 속옷의 마지막이 아니였던 터라 여인은 방심했는지도 모른다.당시 조선의 여인들이 격식을 갖춘다면 8∼10가지의 속옷을 입었다고 한다. 가장 깊속한 속옷을 다리속곳이다.그리고 속속곳과 바지,고쟁이와 어른바지,단속솟과 속치마를 차례로 입었다.
  • 우리 남편께서는…/김희진 국립국어연 학예연구관(굄돌)

    “남편께서는 워낙 부지런하시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신답니다.뒷동산에 올라 운동을 하신 다음 집에 오셔서는 마당에 있는 그 많은 화초에 일일이 물을 주시고…….” 며칠 전 텔레비전에 나온 그 여인은 30대 초반으로,가정에서도 남편에게 “오늘 저녁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된장국을 끓였습니다.”하고 말할 것 같다.그의 말을 계속 듣고 있노라니,부부는 동급이고 또 시청자 중에는 그 남편보다 연세 높은 분도 많은 만큼 남편을 낮추어 말하도록 설명했을 방송국 관계자들의 난처해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남편에 대해 한껏 높여 공대하여 말하는 것은 갓 결혼한 20대의 젊은 부인들한테서도 볼 수 있다. “그이는 판단력이 좋으시고 창의적이셔서 웃분들의 인정을 받고 계세요.” 등.그런데 문제는 그들 부부만 있을 때에는 남편을 친구 대하듯 “얘,쟤”하며 말을 놓고 못하는 말이 없으면서 남 앞에서는 남편을 최상으로 올려 말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회의 날짜에 대해 협의하고자 몇몇 위원 댁에 전화한 적이 있었다.위원들의 부인들하고는자주 전화도 하고 만난 적도 있는 사이다.그런데도 부인들은 “오늘 약속이 있으셔서 좀 늦으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들어오시면 말씀드릴게요.”대체로 이런 식으로 말하였다.물론 전화하는 상대가 손아랫 사람이거나 누군지 확인 안된 상태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말끝마다 남편을 떠받드니 듣기에도 거북했다. 그러다가 어떤 부인의 응답에 귀가 번쩍 뜨였다.“약속이 있다고 급히 나가면서 한 30분 있다가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돌아오면 전화 드리도록 제가 전할게요.”이 부인의 말이 봄의 들녘 바람처럼 신선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부부는 서로간에는 존대하면서도,그 사이는 무촌이므로 남에게 말할 때에는 자기를 낮추듯 남편도 낮추어 말하는 것이 우리의 예의일 듯싶다.
  • 드러커의 충고­대통령 수칙/김호준 논설주간(정치평론)

    현대경영학의 대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지난 반세기동안 많은 경영인과 고위관리들에게 스승이자 충고자의 역할을 해왔다.올해 89세인 드러커는 특히 사회·경제적 힘에 대한 예리한 이해력과,어떻게 하면 지도자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현실적 통찰력을 겸비한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드러커가 5년전에 쓴 ‘대통령이 지켜야 할 6가지 규칙’은 역대 미국 대통령을 소재로 한 이야기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그는 아무리 무능한 사람이라도 이 6가지 규칙을 준수하는 동안에는 효과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무리 강력한 대통령이라도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드러커가 제시한 수칙 제1조는 아주 단순하다.“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고 자문하는 것이 대통령이 할 첫번째 일이라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이 비록 위험하고 골치아픈 일일지라도 단 하나의 과제를 선택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루먼이 유능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드러커는 말한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대통령에 취임한 트루먼은 전쟁에서 국내문제로 눈을 돌려 전임자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적극 추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그러나 스탈린이 팽창주의로 나오자 즉각 대소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함으로써 장차 자유세계를 이끄는 미국의 리더십 확보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수칙 제2조는 “관심을 여기저기 분산시키지 말고 한 곳에 집중하라”는 것이다.60년대에 존슨 대통령은 월남전쟁과 국내빈곤문제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다가 결국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1981년 인플레이션 진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은 불경기를 이유로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실제로 실업률은 수개월만에 7.5%에서 10%로 뛰어올라 대공황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그럼에도 인플레이션 진정은 실효가 컸다.레이거노믹스로 불린 공급중시의 레이건 경제정책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초를 다졌고 그 결과 레이건은 임기말까지 기분좋게 대중적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수칙 1·2조에 관한한 김대중 당선자는 이미 ‘합격’판정을 받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경제살리기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국가적 최우선 과제로 자리잡은 데다가 김당선자 자신도 당선직후부터 지금까지 오직 경제살리기 하나에 매달려 진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번째 수칙은 “뻔한 것에 승부를 걸지 말라”는 것이다.불발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취임초 클린턴 대통령은 동성연애자의 입대금지를 철폐하는 법안의 통과가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그러나 국민들은 클린턴의 제안을 동성연애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그 결과 클린턴은 갓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으로서는 최악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급락했다. 문제는 뻔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지나고 보면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당시에는 국민과의 인식차이를 깨닫기 어려운 것이 정치적 결단이다.그래서 정치에는 위험이 따르는 것이다.노태우 정부의 중간평가 유보가 “뻔한 것에 내기를 걸지 말라”는 교훈을잘 이용한 사례였다면 김영삼 대통령의 노동법강행처리는 그 반대였다고 하겠다.김대중 당선자의 경우 당면 현안인 정리해고제는 노사정 대합의를 끌어내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자민련과의 약속인 내각제에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승부를 낼 것인지가 주목된다. 네번째,“현명한 대통령은 사소한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존슨과 카터 대통령의 평판이 떨어진 것은 자신이 직접 모든 일을 챙기려 했기 때문이다.현명한 대통령이라면 사소한 것을 꼼꼼히 챙기고 싶은 유혹을 거부해야 한다고 드러커는 충고한다.대신 조율이 잘된 소수의 실무팀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며,그 구성원들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 명백한 관리책임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0명의 각료 가운데 국무장관을 제외한 9명을 모두 테크노크라트로 충원했다.그리고 주요정책 결정은 자신이 하고 다음 일은 각료에게 맡겼다.그 결과 루스벨트는 전례없는 큰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가장 오랫동안 스캔들 없이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이 수칙대로라면 매사를 꼼꼼하게 챙기기로 정평이 난 김당선자의 경우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정부내에 친구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다섯번째 수칙이다. 백악관 사상 가장 사교적인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그의 수많은 친구들 가운데 단 한사람도 정부요직에 앉힌 일이 없다고 한다.링컨의 좌우명이기도 한 이 수칙을 어긴 어떤 대통령도 남은 생애를 후회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고 드러커는 말한다.대통령 주변의 호가호위와 비리,그리고 그 말로를 최근까지도 숱하게 목격해온 우리에게는 이 경고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그러나 오랜 정치생활로 누구보다도 주변인물이 많은 김당선자가 이 수칙을 얼마나 준수할지는 온 국민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정말로 인사가 만사임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여섯번째는 트루먼이 대통령당선자 케네디에게 준 충고,“대통령에 당선됐으면 이제 캠페인은 그만 두라”는 것이다.드러커는 이 수칙에 대해 더 이상 부연설명을 안했지만,뜬 인기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민심의 저류를 읽으며 역사와 승부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IMF “시대 큰 것이 짐된다”/거품 빠진 새 소비문화 정착

    ◎수입 줄어 관리비 등 부담 ‘빡빡’/대형 승용차·아파트 매물 급증/TV·냉장고 등도 소형만 팔려 ‘대형 수난시대’ IMF한파로 가계경제 부담이 늘면서 생활속에서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수입은 줄어든 반면 각종 요금인상 등으로 지출은 크게 뛰어 대형 승용차나 넓은 아파트 등은 곧바로 ‘비효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전제품도 소형제품이 각광을 받고 심지어 여성용 화장품도 작은 포장이 인기를 끈다. 생활속의 거품 제거와 올바른 소비문화의 정착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얼마 전 결혼한 회사원 박모씨(27·여)는 당초 계획했던 1억5천만원짜리 32평형 전세아파트 대신 8천만원짜리 21평형 전세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가전제품도 새로 구입하려 했지만 당분간은 결혼 전에 썼던 것을 쓰기로 하고 절약한 돈을 은행에 넣었다. 대기업 이사 김모씨(53·서울 양천구 목동)는 이 달초 55평짜리 아파트를 내놨다.40평짜리 전셋집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다.집을 살 때 얻은은행빚 이자가 최근 18∼20%로 뛰어 매월 이자부담만도 2백50만원에 이르는데다 난방비를 제외한 관리비만도 월 평균 30만원이 넘어 도저히 IMF시대를 견뎌나갈 수 없다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서울 목동 T부동산중개소의 전모씨(38)는 “최근 한달동안 매물로 나온 아파트 1백여채 가운데 55,58평 등 대형이 2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대형아파트의 시세도 폭락했다.매물은 많은 데 비해 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목동아파트 58평형은 지난 해 이맘 때는 5억∼5억5천만원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4억5천만원에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중·대형은 물론 소형차의 인기가 시들해진 반면 세금,주차료 등에서 혜택을 받는 경차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현대자동차의 경우,경차인 ‘아토스’는 지난 해 12월 처음으로 전차종 판매 1위를 기록했다.2천㏄급 이상 대형차의 판매량은 예년의 2천여대에 크게 못미치는 8백여대에 그쳤다. 중고차시장도 마찬가지다.서울 장안동 중고차시장에서는 97년식 현대 ‘아토스’가 같은 연식의 동사 소형차보다도 1백만원이 비싸다. 중소업체 사장 김모씨(55)는 지난 해 초 5천만원에 구입한 국산 최고급 대형승용차를 처분하려고 중고차시장을 찾았다가 거래가가 1천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발길을 돌렸다. 가전제품도 급속히 소형화 추세로 가고 있다.최근 서울 청계천 7가 중고가전제품 상가에는 주말이면 소형 TV,냉장고,세탁기 등을 구입하려는 실속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대부분 신입사원이나 갓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이지만 예비 신혼부부도 간혹 있다는게 상인들의 말이다. 일부 시민들은 600ℓ 이상 냉장고,45인치 TV 등을 갖고와 중고 소형냉장고나 20인치 TV 등 바꿔가기도 한다.
  • 한국 경제위기 영향/미 한인타운도 불황

    ◎연계사업 많아 애태워 관광산업 가장 큰타격 【뉴욕 AP 연합】 고국 경제가 위기 상황에 처함에 따라 미국내 한인 타운이 심각한 불경기를 겪고 있다. 뉴욕 코리아타운의 한 보석 상점은 금장 시계의 가격을 45%나내렸으나 가게를 찾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30년전에 이민와 보석 상점을 경영하고 있는 피터 유씨는 “장사가 안돼 거의 손을 놓은 지경”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옷,전자제품,가방 등 뉴욕 코리아타운의 업종이 한결같이 장사가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갓 이민온 한국인들은 대부분 사업을 본국과 연계해서 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 경제의 위기로 자금이 회전되지 않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남가주대학의 에드워드 박 교수는 특히 미국 서부 해안 지역의 관광산업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이후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관광산업이 이지역 경제 재건에 크게 기여했으나 이제는 이미 투자한 자금 회수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서부 지역 한국 교민들은 한국인 관광객을상대로 하는 호텔,쇼핑센터,식당 등에 많은 자본을 투자했으나 당분간은 불황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교수는 미국 교민들의 사업 전략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며 한국 교민사회가 한국인 상대 사업에서 탈피해 현지화를 할 수 있는 가의 기로에 서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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