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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술이 술술] 도덕경/노자

    도가 사상은 유가와 함께 중국 사상의 커다란 두 흐름으로 동아시아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이 책을 지은 ‘노자’가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노자에 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에 실려 있다. 이름은 이이. 주나라의 장서실에서 관리로 일하다가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은퇴를 결심, 서쪽의 관문을 지날 때 관문의 경비 책임자인 윤희라는 사람의 간절한 요청으로 5000자로 된 도덕에 관한 책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사마천은 노자에 대해 초나라 사람 노래자나 주나라 역사학자 담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이고 있으며, 나이도 160세나 200세라는 소문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대체로 ‘도덕경’을 어느 한 개인의 저작이 아니라, 기원전 350년에서 200년경 사이에 여러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본다. 81개 장으로 구성된 각 장은 대부분 짤막한 운문체 문장으로 돼 있다. 제1장부터 37장까지를 상편,38장부터 81장까지를 하편으로 나눈다.“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상편을 ‘도경’이라고 하며,“최상의 덕은 스스로 덕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 때문에 덕이 있는 것이다.”로 시작하는 하편을 ‘덕경’이라고도 한다. 상편은 도론, 곧 도와 관련된 형이상학적 문제를, 하편은 덕론, 곧 인간 사회의 윤리에 관한 문제를 주로 다룬다. 문장은 시처럼 운율이 있으면서도 내용이 깊어,‘문약의풍’ 곧 “문장이 간결하고 뜻은 깊다.”는 평을 받아왔다. 때문에 도가는 물론 유가와 불교 사상가들도 ‘도덕경’을 탐독하고 연구해 왔으며,1788년 라틴어로 된 번역본이 나온 뒤 영어 번역본만 해도 44종에 이를 정도로 서양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도’와 ‘무위자연’으로 표현된다. 노자의 도는 공자의 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자가 말하는 ‘도’는 인간 생활에서의 도리와 도덕이다. 하지만 노자의 ‘도’는 만물을 생성, 변화, 발전, 소멸시키는 궁극적 형이상학적 실체를 말한다. 그것은 만물의 배후에서 만물을 낳고 기르고 보살펴 주며, 인간의 감각 기능을 초월해 있으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만물을 기르면서 군림하지 않고 대립 속에서 대립을 초월한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은 우리가 흔히 쓰는 ‘자연’과는 다른 뜻이다.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근본 원리인 ‘도’의 상태와 성질을 나타낸다. 곧 ‘저절로 그러하다.’,‘본래 그러하다.’의 뜻이다. 따라서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 일도 작위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일을 스스로 다 해내는 ‘도’의 섭리를 본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위적 분별에서 비롯된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가치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마치 산에서 갓 베어 낸 통나무처럼 순박한 인간 본연의 상태를 회복하고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다. 또한 노자는 ‘무’의 효용을 강조한다. 그릇이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내부에 빈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들지만 그 속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방으로서의 용도를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것이 유익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의 구실 때문이다. 이것은 유는 무에 의지하여 무를 기다려서 비로소 유일 수 있다는 말이다. ‘도덕경’의 내용은 현대 과학문명의 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풍족해졌지만 자기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잃은 채 심각한 존재의 위기를 낳고 있다. 경쟁 속에서 인간 관계는 더욱 적대적으로 바뀌어 가고, 자연과의 대립은 인간 자체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을 낳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인간의 문명과 지혜를 상대화시켜 비판하며 인간 본연의 순박함의 회복을 강조하는 노자의 사상은 현대 문명을 좀더 근원적인 시각에서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또한 인간이 문명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 www.unidream.co.kr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3 -관련 교과:도덕, 국사, 윤리와 사상, 전통 윤리 -함께 읽어볼 고전 및 원전:논어(공자), 장자(장주), 맹자(맹자), 동양철학에세이(김교빈 외), 동양철학은 물질문명의 대안인가(〃) -기출 논제:서울대 2005학년도 논술 예시문제 ■ 생각해보기 -노자가 말하는 ‘도(道)’의 뜻을 정리하고, 유가 사상과 비교해보자. -다음의 말에 대한 생각을 써보자.“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만인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Love & Wedding] 임광욱·시정인

    [Love & Wedding] 임광욱·시정인

    광욱이를 처음 본 것은 1998년 5월, 훈련소를 마치고 갓 부대 배치를 받아 군기가 잔뜩 들어있는 신병의 모습이었다. 여대생이 웬 부대인가 하겠지만, 당시 학교를 휴학하고 미군부대에서 일(교회 피아노 반주)을 하던 나는 수많은 카투사들의 입대와 제대를 지켜보았고, 광욱이도 처음에는 ‘군복이 꽤 잘 어울리는 조금 잘 생긴’ 신병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광욱이에겐 미안하지만) 그리 뛰어나지도 않은 영어 실력으로 국적과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사무실의 모든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버리는 긍정적인 태도와 성실함에 끌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안 보면 자꾸 생각나고,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 해 10월 말, 광욱이의 생일을 앞두고 짝사랑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에 (용감하게도!) 생일 카드에 감정을 고백했지만, 이런 고백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그는 몹시 당황스러워했고 이후 둘 사이는 오히려 서먹해지고 말았다.(그날 나는 오랫동안 내가 왜 그렇게 무모했을까 땅을 치며 후회했다!) 비록 둘의 관계는 서먹해졌지만 어찌됐건 얼굴을 계속 봐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속으로도 끊임없이 친구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몇 개월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던 어느 날, 전화 통화 중 ‘친구처럼 지내니 너를 다시 보게 된다.’라는 광욱이의 말에 몇 달 동안 꾹꾹 눌러서 거의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은 예전보다 더 굳어졌고 그렇게 사랑은 시작되었다. 광욱이를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난 7년간의 시간은 감사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한동대에서 함께 공부하며 미래의 꿈을 다듬어 갔던 소중한 추억을 주었고, 무엇보다 서로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 결과 지금 광욱이는 기자로, 나는 홍보인으로 서로가 꿈꿔오던 자리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을 2주 앞둔 지금, 바쁜 회사 일 때문에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마음만 급해 짜증도 많이 내고, 화도 곧잘 내지만 늘 너그럽게 받아주는 광욱이에게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그리고 그동안 정말 멋진 남자친구가 되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도 멋진(?) 아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싶다.
  • [녹색공간]어머니, 나 그리고 딸/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시골 개울에 콘크리트가 덮이고 미꾸라지가 사라져가는 오늘의 모습이 애처롭다.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내 글에 교육학을 전공한 딸애로 하여금 소감을 적어보게 한 적이 있다. 기껏해야 일년에 한두 번 나를 따라 시골 본가에 가본 적이 있는 딸이 제법 시골 풍경에 대한 공감을 늘어놓았다. “언젠가 내가 발을 빠뜨렸던 시골집 앞의 내에서 할머니는 대바구니로 미꾸라지를 잡으셨다. 할머니 다리에는 거머리가 붙곤 했는데 징그럽기도 하고 거머리쯤이야 하시는 대범한 할머니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미꾸라지를 충분히 잡고 나면 바구니에 미꾸라지를 넣고 소금을 넣고 호박잎으로 박박 문지르셨다. 꽤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끓인 추어탕을 먹으면서 나는 미꾸라지가 참 안되었다고 생각했다.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도 도랑물을 흐린다고 욕까지 먹으니. 잘 차려진 식탁에서 고스란히 준비되어 나오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고, 모든 음식에 추억을 담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꾸라지에 대한 동정이나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미꾸라지가 없는 도랑 때문에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는 추어탕을 맛볼 수 없는 것은 섭섭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섭섭하다. 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기껏 ‘추어탕을 맛볼 수 없는 것은 섭섭하다.’로 끝낼 수밖에 없는 딸애의 마음이 내게는 부족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섭섭한 마음은 내게서 비롯된 것이다. 내 다른 글에 달아준 대글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딸애의 정황을 읽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아빠의 고향 시골은 서울과 멀어서 가기 힘들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텔레비전은 잘 나오지 않고, 그래서 심심하고, 화장실 가기 매우 귀찮은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빠의 글에서 나는 부대자루로 썰매 타던 잔디 언덕과 낡은 수레 끌고 사촌들과 내달리던 비탈길과 그곳에 있던 나의 어린 시절들이 기억났다. 여름에 아빠는 소꼬리 털을 대나무 끝에 묶어 만든 고리로 매미를 잡아주시기도 했고, 겨울에는 벼가 잘려나간 넓은 논에서 얼음 땡을 치며 뛰어놀기도 했다. 논 사이 도랑에서 할머니는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해주셨던 기억도 난다. 개구리가 폴짝 뛰는 바람에 깜짝 놀란 나는 도랑에 다리 한 쪽이 빠진 적도 있다. 언제부턴가 냇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바짝 마른 내를 본 다음에는 애써 그 곳까지 나가지 않는다. 이번 겨울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아빠와 달리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10번을 훨씬 넘게 이사를 했다. 대체로 기억나지 않는 편이고 몇몇 장면이 기억난다 해도 어디가 어디였는지 잘 모른다.‘고향’은 그저 ‘태어난 곳’이 되어서 ‘부산’이라고 했다가 태어나자마자 갓 올라온 ‘서울’이라고 했다가 마음대로 바꾸며 별로 개의치 않아 하기도 한다. 많은 소설가와 시인의 작품에서 제목이 되는 ‘고향’. 고향은 대체로 마음을 의지할 만한 곳을 상징한다. 나뿐 아니라 많은 요즘 애들은 고향이 없거나 애매할 것이다. 그러나 옛날 사람이라 해도 도시도 아닌, 완전한 시골도 아닌 상태로 변해버린 고향이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고향과 틈을 벌려갈수록 옛 소설과 시에 나타났던 정서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간이 기술의 발전으로 정복 영역을 넓혀갈수록 차지하는 정서의 영역은 축소된다니 참 안된 일이기는 하다.” 내 어머니는 아들과 손녀 사이에 놓인 거리를 읽으실 기회조차 없고, 딸애는 아빠가 섭섭하다는 표현에 섭섭한지도 모른다. 설혹 들었다 해도 까닭을 이해하기에는 삶의 거리가 있다. 이런 거리를 줄여놓자면 어찌해야 할까? 이 사회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숙제의 한 모습이다. 오늘 녹색도랑을 허물고 회색 콘크리트를 깔려고 하는 이 누구인가?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가? 그와 나 사이에 놓인 거리는 얼마인가? 지속가능한 사회는 그 거리를 줄이는 일을 차분히 찾아갈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 터인데 앞에 놓인 길이 멀기만 하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유행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가이드의 깃발을 쫓아 다니는 패키지 여행은 구시대 유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내맘대로’ 자유롭게 떠나는 선진국형 개별자유여행(FIT)이 새로운 추세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어디를 가보았다는 ‘점찍기식’ 여행에서 벗어나 나만의 여행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유럽의 관문인 프랑스를 FIT로 직접 다녀왔다. 쪽빛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초록빛 계곡과 드넓은 초원을 따라 파리에서 노르망디, 루아르, 꼬뜨 다쥐르, 프로방스까지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렌터카와 지하철, 버스, 프랑스 철도와 연안 여객선, 조그만 지방 철도에도 올랐다. 여행도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멋진 풍경을 만났다. 에펠탑이나 니스해변 등 여행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명소들보다 프랑스의 푸른 자연속에 숨겨진 비경들이 더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줬다. 그렇다고 패키지 여행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크게 어렵지도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전정신과 철저한 준비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기자가 다녀온 10박 11일간의 프랑스 여행을 소개한다. ■ 도움말 MK유럽, 레일유럽, 프랑스관광청 프랑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여행, 이렇게만 하면 준비가 반이다 준비에 많은 시행착오가 뒤따랐지만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준비에 노력한 만큼 편하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시간이기도 했다. 출발 한달전.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항공과 숙박, 이동수단 등의 순으로 여행의 골격을 잡았다. 항공편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에어프랑스 홈페이지에서 특가 상품을 찾아냈다.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는 니스행 항공권으로 항공료 79만 9000원에 파리 스톱오버(경유지에서 24시간 이상 체류하는 것) 비용 10만원, 세금 10만 9000원 등 모두 100만 8000원. 정상 가격(130만∼180만원대)보다 많이 쌌다. 일본이나 두바이 등을 경유하는 60만∼80만원대 항공편도 있었지만 편하고 빠른 직항편을 택했다. 숙박은 유럽지역 호텔 예약 전문업체인 MK유럽(02-719-0461)을 통해 일정에 맞는 주요 도시에 호텔을 정했다. 인터넷에 숙박예약 사이트가 많지만 MK유럽은 국내 여행사 등에 호텔을 공급하는 다국적 호텔 체인업체로 훨씬 저렴하다. 숙박은 특급부터 일반 호텔까지 다양하며, 숙박비는 문의해 경비에 맞추면 된다. 교통수단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 등 단거리 이동은 현지에서 해결하면 되지만 철도나 렌터카 등은 국내에서 예약하는 것이 편하고 저렴하다. 유럽 지역의 철도는 레일유럽 한국사무소가 있는데 개인 예약은 받지 않으며, 서울항공(755-1144)과 걸리버(2170-6500),RTS(722-4033)에서 대행한다. 렌터카는 허츠나 에이비스, 알라모 등의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개별 여행인 만큼 휴대전화 로밍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통신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분당 발신은 1000∼2000원, 수신은 400∼500원이다. 여행자 보험은 출국직전 공항에서 가입하면 된다. 비용은 보상액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사망 1억원, 상해치료 2000만원, 질병치료 1000만원, 휴대품 분실 40만원의 경우 10일에 1만 5000∼2만원선이다. 여행 준비물로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자기가 가볼 곳에 대한 여행정보를 미리 찾아 준비하고, 프랑스 여행서적 2권 정도를 지참하면 좋다. 특히 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지는 불어 안내서밖에 없는 만큼 불어 사전도 지참하면 요긴하다. 이 정도만 준비하면 여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기타 현지 여행 정보는 기사의 <ⓘ>를 참고하면 된다. ◆ DAY1 몽마르트르, 야경에 취하다 ●설렘과 걱정, 파리에서의 첫날밤 ‘잠시후 샤를르 드골공항(CDG) 도착하겠습니다.’현지 시간 오후 6시40분(국내 시간 새벽 1시40분). 파리 도착을 알리는 대한항공 KE 901편 기장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파리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그저 파랗기만 하다. 오후 1시55분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12시간을 날아왔지만 파리는 한낮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쬔다.‘뭘 해야하나?’ 첫 숙박지를 찾는 것조차도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목적지는 파리시내 북쪽에 위치한 ‘포레스트 힐 라 빌레트’(Forest Hill La Villette). 시내 지도를 펴고 한동한 고민한 끝에 고속전철(RER)과 지하철을 타는 것이 찾기 쉬울 듯싶어 공항 RER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RER 티켓(8.75유로)과 지하철표를 10묶음 단위로 할인 판매하는 ‘카르네’(carnet)를 구입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함께 탈 수 있는 티켓 1장은 1.30유로지만 카르네는 10유로. <ⓘ-1> 처음 타본 RER는 후텁지근했는데 무엇보다 내릴 역에 대한 안내방송이 없어 당혹스러웠다.RER는 20분만에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했고, 지하철 2,7호선으로 갈아타고 ‘포르트 드 라 빌레트’(Porte de la Villette)역 에 내렸다. 지하철 역시 안내방송이 없어 역구내의 간판을 보면서 내릴 곳을 가늠해야 했다. 지하철 문도 우리와 달리 수동식으로 내릴때 녹색버튼을 누르거나 손잡이를 손으로 돌려서 열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텔 프런트에 ‘호텔 바우처’(호텔 예약서)를 보여주고 방을 얻은 뒤 짐을 풀었다. 별 3개인 호텔 숙박료는 조식을 포함,1박에 210유로. <ⓘ-2> ●젊음이 가득한 몽마르트르 언덕 밤 9시.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가기위해 과감히 방을 나섰다. 지하철 7,2호선을 타고 앙베르(Anvers)역에 내려 사크레쾨르 사원이 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순백의 성당 잔디에는 늦은 시간에도 많은 인파로 붐볐고, 언덕위의 노천 식당 테라스는 활기가 넘쳤다. 배가 고파왔다. 성당 아래 ‘레테 앙 팡트 두스’(L´ete en Pente Douce)라는 작고 예쁜 식당을 찾았다. 식사는 ‘오늘의 요리’로 치즈와 토마토, 돼지고기 등을 넣은 샐러드 ‘살라드 뒤 뮐레’(11유로)로 양이 무척 많다. 팁은 식탁에 놓고 나오면 된다. <ⓘ-3> 순백색 조명을 밝힌 성당을 올라가자 야경을 감상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남녀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했지만 너무 자주 보여(?) 금방 익숙해 졌다. 이어 성당을 끼고 오른쪽길로 올라가면 몽마르트르 언덕이 나타나는데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10여명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밤 12시 호텔로 돌아와 파리의 첫날밤을 지냈다. 한국 시간으로 치면 아침 7시로 밤을 꼴딱 세운 셈이다. <ⓘ-4> ◆ DAY2 센강은 좌우를 나누지 않는다 ●쪽빛 하늘을 따라 도심을 걷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물빛이 창밖에서 쏟아진다. 그 빛에 놀라 잠을 깬 것은 오전 5시. 시차 탓에 빨리 일어난 것이다. 호텔에서 간단히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은 뒤 본격적인 시내 관광에 나섰다. 오전 8시. 지하철을 타고 파리의 중심인 시테(Cit)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했다.<ⓘ-5> 시테역에 내리자 고딕 건축의 최고 걸작인 대성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에는 파리 중심석이 새겨져 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비취는 성당 내부는 장엄함과 엄숙함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이어 걸어서 파리의 중심을 흐르는 센(Seine)강을 건넜다. 강폭은 넓지 않았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파리 3·4대학(소르본대학)을 거쳐 뤽상부르 공원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앙리 4세의 왕비가 세운 공원으로 넓이가 25만㎡에 이른다.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깎아놓은 나무과 넓은 잔디밭. 잔디에 누워 하늘을 봤다. 구름 한점없는 하늘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죽은자들의 세계 카타콩브 찌는 듯한 더위는 시원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지하묘지 카타콩브(Catacombes·입장료 5유로). 사전 지식이 없이 들어간 지하묘지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주택가 한복판에 만들어진 지하묘지로 800m에 이르는 동굴안에 인골 600만기가 안장돼 있다. 낮 12시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관광객이 거의 없다. 나선형 계단을 땅속으로 내려가자 어두컴컴한 동굴안에서 서늘함이 밀려왔다. 기온은 11∼12도. 밖의 날씨와 비교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다 못해 춥다. 가로 1.5m, 높이 3m의 동굴을 따라 100m쯤 걸어들어가자 유골이 동굴 양 옆으로 빼곡하게 쌓여 있다. 출구까지는 45분이 걸린다. 밖으로 나와 인근에 있는 ‘와자’(Wadja)라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식당이다. 매일 바뀌는 오늘의 메뉴는 전채요리와 메인요리, 디저트 세 가지로 구성된다. 전채요리는 꽃양배추 샐러드, 메인요리는 생선과 쇠고기, 디저트는 과일프루츠나 치즈빵 중에 고르면 된다. 발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다. 가격도 14유로로 비교적 저렴하다. 몽파르나스 묘지는 철학자 사르트르와 시인 보들레르, 소설가 모파상 등 저명인 100여명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공원처럼 편안한 곳이다.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집을 찾아 지하철을 타고 7호선 퐁마리(Pont Marie) 역에 갔다. 역에서 나와 퐁마리 다리를 건너 첫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보이는 ‘베르티용’(Berthillon)이라는 집이다. 유사한 아이스크림 집이 많아 헷갈리기 쉽지만 간판에 ‘31번’이라고 쓰인 집이 원조다. 가격은 1컵짜리가 2유로,2컵짜리가 3.5유로다. <ⓘ-6> 휴식도 여행의 일부. 오후 8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7> ⓘnformation center ⓘ-1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RER와 버스, 택시 등 다양하다.15∼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에어프랑스 버스의 경우 편도 11.50유로 정도이며, 택시는 도심까지 40∼50유로(야간 20% 할증)다. 환율은 1유로에 1240원 정도. ⓘ-2 이는 공시 가격으로 국내에서 예약하면 훨씬 저렴하다. 호텔 숙박료는 대도시와 지방,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방 도시의 별 1∼2개짜리 호텔이 40∼80유로다. 별 3개 이상은 100∼300유로 선이다. ⓘ-3 팁은 음식값이나 택시요금의 10% 정도지만 식당에서는 통상적으로 2∼3유로 정도면 된다. ⓘ-4 항공권은 에어프랑스 티켓을 끊었지만 왕복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인천∼파리행은 오전 10시25분, 오후 1시55분 두차례 있는데 오전은 에어프랑스, 오후는 대한항공이 운항된다. 두 항공사가 코드셰어(좌석공유)를 해 두 곳 중 저렴한 항공사에서 티켓을 끊으면 된다. 돌아오는 항공편은 오후 1시15분,9시50분에 있다. 에어프랑스 티켓으로도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 ⓘ-5 지하철은 14호선까지 있으며, 운행은 오전 5시30분부터 자정넘어(0시30분)까지 운행한다.1·3·5일권인 파리비지트 패스(www.parisvisite.co.kr) 등 다양한 할인 티켓 제도가 있지만 하루에 티켓이 2∼3장 정도면 충분한 만큼 카르네가 간편하다. ⓘ-6 프랑스 거리는 집 주소만 알면 지도 한장만 들고도 어디든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잘 정비돼 있다. 지도에 표시된 도로 번호를 따라 가면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 ⓘ-7 프랑스 전원은 220V로 우리나라와 같다. 자기전 카메라와 캠코더 등을 충전하면 된다. ◆ DAY3 전원 드라이브, 느림을 즐기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과 개선문 전날 너무 일찍 잠을 청한 탓에 눈을 떠보니 새벽 2시. 잠이 오지 않아 오후부터 시작될 렌터카 여행을 준비했다. 책을 펴고 오를리(Orly) 공항에서 노르망디 지역의 수도원 몽생미셸로 가는 길을 연구했다. 전날 5유로 주고 구입한 미슐랭(Michelin) 프랑스 전도를 펴고 고민하는 사이 어느 덧 날이 밝았다. 오전 일정은 에펠탑과 개선문. 식상하리만치 유명한 파리의 상징물이지만 빼놓을 수는 없었다. 오전 8시 에펠탑을 향했다. 에펠탑은 6호선 트로카데로(Trocadero)역과 비르아캥(Bir-Hakeim)역에서 내리면 갈 수 있다. 샤이요(Chaillot) 궁전도 구경하면서 내려갈 겸 트로카데로 역에서 내렸다. 멀리 샹드 마르스 공원과 에펠탑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1898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에펠탑은 높이 320m로 3개 층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이어 샤를르 드골 에투알(Charles de Gaulle Etoile)역에서 내려 개선문을 본 뒤 콩코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넓은 도로를 따라 유명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다. 오를리 공항을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센강을 따라 앵발리데(Invalides) 옆에 있는 에어프랑스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센강 유람선을 타는 바토뮤슈 승선장에는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유람선 관광에 나섰다. 센강과 어우러진 에펠탑의 풍경이 장관이다. 퐁데 앵발리드 다리와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앵발리드 공원을 지나자 정류장이 나타났다. 도보로 30분. 오를리행 버스는 30분마다 1대씩 있는데 1인당 8유로다. 차비는 기사에게 내면 된다. 시내 교통이 막혀 공항까지 40분쯤 걸렸다. ●렌터카를 몰고 시골 풍경속으로 오를리 웨스트 공항 허츠 렌터카 데스크에서 한국에서 예약한 바우처와 함께 국제면허증, 신용카드를 내밀자 손쉽게 수속을 끝냈다. 직원은 프랑스내 호텔 주소를 물은 뒤 “한번도 안 탄 새차를 빌려 주겠다.”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수속을 마친 뒤 터미널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렌터카는 이제 막 출고된 소형 벤츠. 타코미터(운행기록장치)에 36㎞라고 찍힌 갓 출고된 차량이었다.<ⓘ-8> 오후 1시30분. 무작정 공항을 빠져 나왔다. 낯선 곳에서의 운전, 낯선 차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왔다.‘괜히 빌렸다.’는 후회도 들었다. 렌터카 직원이 “공항을 나가 5분쯤 파리 시내쪽으로 가다가 ‘베르사이유’(Bersailles) 방향의 표지판이 보이면 그 길로 진입하라.”고 알려줬지만 긴장한 탓에 진입로를 놓쳤다.10여분쯤 헤매다 결국 차를 세운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겨우겨우 고속도로에 오를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편도 3차로의 차선중 모든 차가 가장자리의 차선을 이용한다는 것. 추월할때만 1·2차선을 이용했다.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130㎞, 비가 올 때는 110㎞. 차들은 운전경력 15년인 나도 별로 내본적이 없는 170∼190㎞의 속도로 말그대로 쌩쌩 달린다.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지자 주변 경치가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벌판에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그림속의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긴장이 풀리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샤르트르 지방을 지나 고속 휴게소로 들어갔다.<ⓘ-9> 낯선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달린지 3시간. 국내에서 좋아하는 음악 CD 등을 가져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로 1시간쯤 달리자 오후 5시30분 몽생미셸에 도착했다. 널찍한 갯벌 사이로 난 긴 도로를 달리자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는 웅장한 수도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도원 앞 주차장(주차료 4유로)에 차를 세운 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성 내부 관람은 6시까지로 아쉽게도 입장이 마감됐다. 그렇지만 성안 마을 등은 돌아볼 수 있었다. 성안은 17세기의 마을 모습 그대로다. 고풍스러운 호텔, 식당, 매점, 기념품 가게 등이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과거의 마을이다. 레스토랑 호텔인 ‘메르 풀라르’ 맞은편에 있는 유명한 비스킷 가게에 들러 버터와 우유가 듬뿍 들어간 ‘칼레트’ (9유로) 한상자를 샀다. 오후 8시쯤 성을 나와 숙소를 잡기로 했다. 다른 지역의 숙소는 서울에서 미리 예약을 했으나 이 지역은 렌터카 일정이 늦게 결정되는 바람에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 몽생미셸에서 10분쯤 거리에 있는 성밖 마을에는 호텔들이 많았다. 그러나 차로 1시간을 달려 항구도시 생말로(St.Malo)에 도착했다. ●시골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 밤 9시. 생말로는 젊음의 활기가 넘쳤다. 해변에는 수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제트스키, 보트 등이 거친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숙소는 유스호스텔의 일종인 상트로 바트릭 바탕고 ‘오베르주 쥐네스’(Auberge de jeunesse). 건물이 아담하고 예쁜데다 해변 근처에 있어 인기가 높은 숙소다.2인실을 빌려 짐을 풀었다.(숙박료는 조식 포함 1인당 16.5유로). 방은 깨끗하고 넓었다. 직원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올 초부터 한국 배낭여행객들이 조금씩 찾고 있다.”며 2유로인 침대 커버를 무료로 건네줬다. 짐을 풀고 인근 ‘엘 파티오’(El Patio)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했다. 작은 피자와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자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 달아났다. 특히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는 두고두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음식값은 10유로. ⓘnformation center ⓘ-8 렌터카는 국내 대행업체에 전화로 예약하면 이메일로 바우처를 보내주는데 인쇄해서 가져가면 된다. 비용은 24∼27일(3박 4일) 72시간 빌리는데 89.59유로이며, 세금 등을 포함해 143유로 정도가 든다. 예약시 오토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국제면허증은 각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면 당일 발급해 준다. 인지대 5000원. ⓘ-9 휴게소는 우리나라 비슷하다. 주유소를 거쳐 들어가면 대형 슈퍼마켓과 화장실, 레스토랑이 있다. 톨게이트도 우리나라 체계와 비슷해 입구에서 표를 뽑은 뒤 나갈 때 돈을 지불한다. ⓘ-10 프랑스의 운전에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은 ‘선진입차 우선’인 교차로. 우리나라와 같은 사거리에는 대부분 로터리가 있는데 왼쪽에 진입한 차가 없으면 들어갈 수 있다. ⓘ-11 고성 투어버스는 투르역 광장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하는 투어 차량이 있다. 반나절(5∼6시간), 하루코스(9시간) 등이 있는데 20∼40유로다. 입장료와 점심값은 별도다. ◆ DAY4 투르, 동화나라로 가는 길 ●생말로에서 투르까지 안개 낀 ‘그랑베 섬’(Rocheur du Grand Be)과 해안선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해변은 이른 아침부터 조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지는 해변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를 몰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좁은 도로를 따라 가자 프랑스 최대의 항구답게 수백여척의 요트가 정박해 있고, 영국 등지로 떠나는 대형 여객선도 기적을 울리며 사람들을 불렀다. 오전 10시. 간단하게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루아르(Loire) 고성지역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속도로보다는 시골 국도를 달리고 싶은 마음에 국도를 따라 떠났다. 내리던 빗줄기도 점차 줄어든다.<ⓘ-10> 시골길은 무척 한적했다. 스쳐지나가는 하나하나의 풍경이 그림이다. 그래서 프랑스에 고흐, 고갱, 마티스 등 유명 화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스쳤다. 대형 지도를 따라 가다 보니 수차례 길을 잃었지만 그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냥 주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라발, 앙제시내를 거쳐 지나갔다. 기름이 거의 바닥이 가까워 온다. 주유도 하고 잠시 쉴 겸 다시 고속도로에 들렀다. 얼마쯤 달리자 휴게소다. 주유소는 셀프 주유다. 노랑, 파랑, 빨강 라벨의 주유기가 있어 어느 것을 넣어야 하나 잠시 고민. 근처에 있는 “주유원에게 어느 것을 넣어야 하느냐”고 묻자 ‘쉬페르 프르미에르’(Super Premiere)라고 쓰인 노란색 주유기를 가리켰다. 처음으로 직접 해보는 주유. 차의 주유기를 열고 넣자 45ℓ나 들어간다. 기름이 가득차면 저절로 멈춰 주유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기름값은 50유로로 따져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계산은 주유한 후에 중앙에 있는 계산원에게 가서 주유기 번호를 불러주면 된다. 투르로 향하는 길은 영화속에서나 봤음직한 전원 풍경 그대로다. 경치에 취해 차를 대놓고 쉬어가기를 여러번. 사나흘을 머물러도 좋을 듯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의 만남 오후 4시 ‘프랑스의 정원’으로 불리는 루아르 계곡에 접어들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1020㎞의 루아르 강을 따라 르네상스 시대의 왕후, 귀족들의 수많은 성이 흩어져 있다. 프랑스 전역에 약 5000개의 성이 있는데 이중 쉬농소·앙부아즈·랑제·앙제·블루아·쇼몽·슈베르니성 등 80여개가 이 곳에 있다.<ⓘ-11> 첫 목적지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무대가 된 위세(Uss)성. 투르시내에서 28㎞떨어진 곳으로 1485년에 건축됐다. 동화속의 성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첨탑이 주변 경치와 어울려 아름답다. 너무 조용해 정말 공주가 잠만 잘 수밖에 없었을 것처럼 고요하다. 사진은 성 앞에 있는 작은 강 뒤에서 찍는 것이 예쁘다. 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인근에 있는 아제 르 리도(Azay-le-Rideau)성으로 향했다. 성보다는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휴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점심은 인근의 ‘라망드’라는 식당에 들어가 오믈렛(8유로)으로 간단히 때웠다. 이어 빌랑드리(Villandry) 성으로 향했다.16세기 건축물로 르와르 고성중 가장 마지막에 곳.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 쉽지 않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성 관광’ 안내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성이다. 각종 야채가 있는 정원, 장식정원, 분수정원 등 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내부와 정원 관광은 8유로. 오후 7시. 투르 시내에 예약한 ‘홀리데이 인 호텔’에 들어갔다. 기차역 앞에 있어 찾기 쉬웠다. 주차장에 들어가려면 먼저 호텔 체크인을 한 뒤 가로막을 통과할 수 있는 비밀 번호를 받아야 하며, 주차료 7유로를 내야 한다. 식사는 역 앞에 있는 ‘로데옹’(L´odeon)이란 식당.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민물고기 요리를 파는 곳으로 가격은 15∼20유로. ◆ DAY5 작은 마을에 들러 고흐를 기리다 ●투르에서의 한적한 휴일 프랑스의 주말은 어떨까. 시민들의 휴일 생활을 엿보려 일요일마다 시청앞에 장이 서는 벼룩시장을 찾았다. 100여개의 노점에는 집에서 쓰던 소품이며, 책, 그림, 찻잔, 액자, 음악판과 CD 등 없는 것이 없다. 쓰던 물건이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예쁜 액자 하나를 사려고 물어보자 30유로. 새것에 비해 결코 싸지 않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몽콩투르(Moncontour) 포도주 동굴 저장 지역이 나왔다. 파리로 향하던 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이 곳의 경치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다.‘포도밭 산책로’라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보니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포도밭과 대형 저장고가 보였다. 마을 전체가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인근에 있는 ‘뱅 드 부브라이’라는 곳에는 바위산에 동굴을 뚫고 집을 지은 이색적인 마을. 바위산 위에 지은 돌탑과 그 아래 마을, 호텔 등 모두가 돌산과 연결돼 마을이 형성돼 있다. 렌트카로의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시내 북쪽에 있는 조그만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리 외곽도로의 교통 체증 탓에 5시가 넘어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1890년 7월 고흐가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곳. 비록 이곳에서 고흐가 산 시간은 두달 남짓하지만 이 곳을 무대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고흐가 자취했던 ‘라부(Ravoux)의 숙소’(입장료 5유로) 등 골목 구석구석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고흐의 자취를 더듬어 갈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안내판이 나온다. 그림을 그린 방향을 어림잡아 가늠해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마을과 계단, 오베르 교회, 까마귀 들판 등을 그림의 소재를 돌아본 뒤 산중턱에 있는 고흐의 묘지를 찾았다. 동생과 나란히 묻혀 있는 묘지는 담쟁이 덩굴로 둘러싸여 있지만 다른 묘지들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오후 8시. 오를리 공항 근처 홀리데이 인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DAY6 니스 해변, 푸른 바다에 마음을 적시다 ●렌터카 여행을 마치고 렌터카를 반납한 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남프랑스의 니스(Nice)로 향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공항터미널로 향했다. 렌트카 반납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오전 11시 공항으로 출발했지만 반납은 열쇠를 건네 주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12> 비행기는 오후 3시. 공항 방침상 짐을 보관해 주는 장소나 라커가 따로 없기 때문에 출발 시간까지 무작정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가 1시간30분이나 연착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3∼4시간 걸리는 떼제베(TGV)를 이용하는 것는 건데 아쉬움이 든다. ●가슴을 열어주는 니스해변 오후 6시 ‘리비에라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은 니스에 도착했다. 국제 영화제로 유명한 칸느와 함께 지중해를 바라보는 꼬뜨다쥐르 지방의 중심도시.4번홀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선 버스’(요금 4유로)에 올랐다. 니스 해변을 따라 가는 버스에서 보는 풍광이 눈을 사로잡는다. 공항에서 해변까지는 약 6㎞.20분 정도 걸린다. 리비에라(Nice Riviera) 호텔에 짐을 푼 뒤 곧바로 해변으로 향했다.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들고 싶을 정도로 푸르다. 그 속에서 흘러가는 여유로운 시간. 호텔에서 마세나광장에서 해변으로 가면 활모양으로 뻗은 해안을 따라 화려한 호텔들이 즐비하다.<ⓘ-13> 프롬나드데장글레(영국인의 산책로)는 해안을 따라 3.5㎞에 걸쳐 계속되는데 해변은 형형색색의 파라솔과 데크체어로 채워져 있다. 밤 9시가 넘도록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긴다. 볼거리도 많다. 마세나 광장 등지에서는 음악공연과 길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길거리에 동상처럼 서있는 각종 캐릭터 모형은 실제 사람으로 관광객들이 돈을 넣으면 슬쩍 움직인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약간 높은 바위산이 보이는데 이곳이 빠끄 드 샤또라고 불리는 ‘성터공원’이다. 해안선과 옛항구 등 니스의 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전망대 엘리베이터(편도 0.7유로)가 있다. 맛집은 마세나 광장 인근에 있는 지중해 요리 전문점 방돔(Le Vendome)에서는 원조 홍합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9유로. ◆ DAY7 칙칙폭폭, 지중해를 끼고 달리다 ●기차를 타고 지중해를 따라 기차를 타고 지중해의 쪽빛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것만큼 시원한 것이 있을까. 맑게 갠 하늘, 검푸른 지중해의 먼 바다, 수영복 차림으로 바닷가를 거니는 연인들…. 니스에서 칸, 툴롱, 마르세유, 아를, 아비뇽을 거쳐 계속되는 철로변의 풍경은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굳이 어느 도시에 내리지 않아도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광만 보아도 가슴이 시원하다. 이렇게 기차 여행이 시작됐다. 호텔에 큰 짐을 맡긴 뒤 니스빌 역으로 갔다. 한국에서 끊어온 3일짜리 프랑스철도 자유 티켓으로 첫 목적지인 아를(Arles)로 향했다. 시간표는 각 역마다 비치돼 있다. 직접 가는 편도 있지만 대부분 마르세유(Marseille)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오전 9시 니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가는 길은 영화의 도시 칸 등을 지나가는데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마르세유엔 11시26분, 아를에는 오후 1시51분에 도착했다. 기차는 영화에서 보는 왜건형 칸막이방. 한 방에 6명이 마주보고 앉아서 간다. ●작지만 예쁜도시 아를과 아비뇽 론강(Le Rhone)을 끼고 있는 아를은 작지만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의 유적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아를 역에서 걸어서 라마르틴 광장을 거쳐 내려가면 카발르리몬, 원형투기장, 고대극장, 생트로핌 교회, 반고흐 카페, 반고흐 다리 등 볼거리가 많다.3세기 초엽 만든 생트로핌 교회는 로마네스크 미술의 견본으로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장소다. 반 고흐가 요양을 했다는 아를 요양원에서는 이젤을 펴놓고 예쁜 정원을 그림에 담는 화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반고흐 다리는 시내에서 직접 가는 버스가 없다. 바리올(Barriol)행 1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20분 정도를 걸어야 볼 수 있다. <ⓘ-14> 오후 6시 아를 역으로 돌아와 인근 도시 아비뇽(Avignon)으로 향했다. 기차로 17분.14세기 교황청이 이 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세계 교회의 중심지가 됐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교황청 광장 주변 카페들이 예쁜데 로셰 데 돔 공원에서 바라본 론강의 경치가 압권이다. 공원에서는 ‘생베네제’ 다리가 보이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멜로디인 ‘아비뇽 다리위에서’라는 동요의 무대가 된 곳이다.12세기 지어졌으나 17세기 홍수로 소실돼 지금은 반쪽만 남아있다. <ⓘ-15> ◆ DAY8 섬섬옥수, If I were a bird ●하늘 빛을 담은 프리울섬 마르세유 항구에 있는 어시장은 어촌 마을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갓 잡아 올린 정어리와 도미 등 각종 생선을 판매하는 어부들과 아침 찬거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BC 600년전 그리스인들이 세운 항구도시다. 마르세유에서는 한번쯤 여객선을 타고 인근섬 여행을 떠나도 좋다. 아침 일찍 항구의 ‘벨주부두’에 있는 마르세유 여객선 터미널(www.answeb.net/gacm)을 찾았다. 이 곳에서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가 됐던 ‘이프섬’(Ile D´If)으로 가는 배가 떠난다. 왕복 10유로. 오전 9시부터 1시간 단위로 배가 출발하는데 만선이면 시간에 관계없이 출발한다. 이프섬은 배로 10여분 남짓 걸린다. 여객선의 종착지는 이프섬에서 10분쯤 더 떨어진 ‘프리울 섬’으로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이다.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은 사막을 연상케 한다. 섬에 내려 순회 코끼리 열차(왕복 3.5유로)에 올랐다. 차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30분쯤 걸리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황홀하게 만든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해수욕장이 있는데 쪽빛 물빛 그자체다. 가는길에 있는 해수욕장은 2∼3일쯤 푹 쉬다가고 싶게 만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전 11시30분 배를 타고 서둘러 섬을 나왔다. 기차를 놓쳐 바로 직후 있는 테제베를 예약했다. 일반 철도는 그냥 타도 되지만 테제베는 예약이 필요하며, 따로 수수로(1.5유로)를 내야한다. 그래도 프랑스 대표 철도인 테제베를 타본다는 기대감에 표를 끊었다. 그러나 니스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50분. 일반열차가 2시간10분 걸리는 것에 비해 이 구간에서만은 시속 300㎞이상으로 달린다는 테제베가 오히려 일반 고속열차보다 느리다. 자리도 일반열차에 비해 불편하다. ⓘnformation center ⓘ-12 렌터카 반납시 우리나라와 달리 꼼꼼하게 체크하거나 묻는 일이 없다. 기름이 부족하거나 렌트 시간을 초과하면 미리 100유로 정도 임치해 놓은 돈에서 제하고 돌려준다. ⓘ-13 공항 등 프랑스의 공공장소에서는 노인과 장애인, 임산부, 유아 등에 대한 우대가 특별하다. 줄을 서지 않고 우선적인 서비스를 받는다. ⓘ-14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분명한데 남프랑스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덥지만 건조해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온난하다. ⓘ-15 프랑스 철도 예약을 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여행 계획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철도 패스중 적합한 것을 골라야 한다. 패스를 이용하는 국가 수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이다. 유럽 전지역을 돌아다니려면 유레일 패스가 유리하지만 프랑스 등 특정 국가만을 여행하려면 프랑스 패스를, 프랑스와 인근 국가 3∼5개국을 이용하려면 유레일 셀렉트 패스를, 프랑스와 이탈리아 2국가만 여행하려면 프랑스-이탈리아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저렴하다. 프랑스 철도패스는 1등석 성인이 299달러이며,2명 이상 여행할 경우 세이버 티켓을 끊으면 15%정도 저렴하다. 나머지 패스의 경우 1개국을 추가할 때마다 7만∼10만원정도 요금이 올라간다. 특히 철도패스에는 센강 유람선, 박물관 할인 등 보너스 할인 혜택이 있으므로 꼼꼼하게 살펴보면 좋다. 모든 패스로는 해당국가 테제베와 일반 철도 모두를 탈 수 있는데 테제베를 타려면 반드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며, 예약비로 1.5∼8유로 정도를 내야 한다. 일반 철도는 예약없이 기차역에 나가 오는 기차를 그냥 타면 되는데 3일권의 경우 한달동안 3일을 탑승 횟수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 ◆ DAY9 포도주·풍경, 프로방스의 유혹 ●프로방스 철도에 몸을 싣고 아침 일찍 ‘살레야 광장’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과일, 야채 판매상과 꽃시장,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서민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니스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중심부에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 전문점 등이 즐비하다. 생필품은 물론 고급 브랜드부터 저가 브랜드까지 다양한 품목을 갖췄다.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없는 프랑스 전통 치즈와 포도주, 과자 등 각종 먹을거리를 맛봐도 좋다. 낮 12시 호텔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코드다쥐르 지방의 웅대한 산악풍경을 볼 수 있는 프로방스 철도(www.trainprovence.com)에 올라보기로 했다. 철도역은 니스역에서 북쪽으로 약 400m,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하루 4차례 정도 기차가 운행한다.<ⓘ-16> 철로가 단선이라 교행이 어려운데다 철로가 오래돼 수리를 자주해 역에 도착하면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기차는 두칸짜리 아담한 기차지만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기차다. 기차역에서 프랑스철도 티켓을 보여주면 50% 할인해 준다. 디뉴까지는 150㎞로 3시간10분이 걸리는데 시간이 없어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앙트르보(Entrevaux)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17세기 요새마을 앙트로보 앙트로보까지는 크고 작은 13개의 기차역을 지나는데 1평 남짓한 간이역도 많다. 기차는 바르강 계곡을 따라 달리는데 깎아지른 듯 세워진 바위산과 계곡, 산허리에 매달린 자그마한 마을 등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차창밖으로 매력적인 마을이 즐비하다. 이날도 철로에 이상이 생겼다. 오래된 철로라서 수리중이라는 차장의 말에 따라 중간에 내려 2∼3개 역을 버스로 갈아타고 갔다. 바위산 단면들은 지층이 지리책에 나온 사진처럼 그대로 보아도 멋있다.2시간 걸려 도착한 앙트르보는 17세기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바위산 정상에 있는 요새도시가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다. 성을 휘감고 올라가는 길이 이채롭다. 그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고성문이다. 강에는 마을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고성을 들어가는 길에 입장료를 따로 받는 사람이 없어 입장료 자판기에 돈을 넣고 3유로짜리 코인 티켓을 끊은 뒤 회전문에 넣으면 들어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그렇지만 건너보이는 마을 전경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쁘다. 정상에는 각종 방과 감시탑, 감옥 등 전형적인 성이다.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DAY10 마지막 시간은 마티스와 함께 ●니스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이제 막 적응이 됐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후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오전에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 미술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마티스 미술관까지는 17번 버스(1.20유로)를 탔다. 가는 길에 검표원들이 버스를 가로 막고 표검사를 했다.<ⓘ-17> 마티스 미술관(입장료 4유로)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인근 시미에 지구에 있는 로마시대의 투기장과 원형극장, 목욕탕 등 유적들이 더 볼만하다. 이어 걸어서 20분정도 떨어진 샤갈미술관(입장료 4.5 유로)에는 구약성서 이야기를 묘사한 17장의 연작 유화 등 450점이 전시돼 있다. 오후 2시 공항으로 출발, 아쉬웠던 여행이 끝났다.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탔는데 편도 요금은 25유로.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프랑스. 일상에 찌들어 쫓기듯 살아온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nformation center ⓘ-16 기차는 니스에서 알프스 온천마을인 디뉴(Digne)까지 운행한다. 니스에서 오전 06:42,09:00,12:43,17:00에 출발하고, 디뉴에서는 07:00,10:33,13:58,17:25분에 출발한다. ⓘ-17 버스 티켓을 기사에게 구입하면 꼭 버스에 비치된 개찰기(콩포스테·Composter)에 표를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 표에 시간이 찍히고 이후 표가 1시간 정도 유효한데 만일 이를 하지 않고 있다가 검표원에게 걸리면 ‘무임승차’에 해당하는 벌금을 문다. 무임승차하다 걸리면 30배의 벌금을 물게 된다. ⓘ-18 관광지와 호텔 주변은 소매치기 등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구급차(19), 소방서(18), 주 프랑스대사관(01.47.53.01.01), 한국관광공사(01.45.38.71.23), 대한항공(01.42.97.30.80)으로 연락하면 된다.
  • 북악서 영그는 초록빛 사랑…

    북악서 영그는 초록빛 사랑…

    흔히 사랑의 유통기한이 짧게는 18개월, 길게는 30개월이라고 요즘 세태를 꼬집곤 합니다. 아베크족은 사랑을 오롯이 간직하고, 부부들은 사랑의 불을 지피기 위해 처음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가보면 어떨까요. 서울 한복판에 멋진 ‘웰빙 데이트코스’가 생겼답니다. 바로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지요. 요즘 세대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1970년대만 해도 갓 백년가약을 맺은 새내기 부부들에게 신혼여행지로 인기 짱이었답니다.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였지요. 하지만 승용차들이 번잡스레 오가는 차도만 휑하니 뚫려, 걸어가며 얘기꽃을 피운다는 건 그림의 떡이었지요.1968년 이래 쭉 그랬답니다. 37년 만인 이제야 열린 공간으로 시민 품안에 돌아왔답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군사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둘러쳐졌던 철조망 덕분(?)에 잘 보존된 자연경관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철제 울타리 6.5㎞도 걷어냈지요. 대신 동물이 이동하는 통로를 만들었답니다. 다람쥐가 재롱을 부리는 모습이 기대를 한껏 부풀립니다. 울창한 숲속에 지천으로 핀 이름 모를 꽃과 새의 지저귐을 감상해 보세요. 정상에 닿으면 팔각정이 나타나더군요. 커피 한잔을 사이에 놓고 일몰에 취해 시나브로 깊어진 사랑을 확인해 보세요. 손을 맞잡고 내려가는 길목에선 황홀한 서울의 야경이 마음을 휘어잡을 테지요. 산책로는 성북구민회관에서 시작해 성가정 입양원∼정릉 골프장∼종로구 경계까지 3.5㎞에 이르며 너비 1∼1.5m로 들어섰답니다. 급경사에는 나무 보행계단을 설치해 부모님을 모시고 모처럼 가족끼리 화목을 다지기에 딱입니다. 치톤피드 향을 음미하며 시원한 피서를 하기에도 괜찮을 듯하군요. 글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아이들의 헝그리 정신 또 일낼 겁니다”

    |딜리(동티모르) 홍희경특파원|“안녕하세요. 우리 한국 가요.” 동티모르에서 만난 이 나라 유소년 축구팀이 기자에게 서툰 한국말로 던진 인사말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을 좋아한다는 이들은 여권에 새겨진 한국 비자를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달 초 한국에서 열리는 ㈜대교배 초등교 축구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수도 딜리의 공항에 나온 이들의 얼굴에는 이 나라 유일의 스포츠이자 희망의 상징이기도 한 축구 대회에서 꼭 우승컵을 거머쥐겠다는 의지가 읽힌다.●“대교배 축구대회서 꼭 우승할 것” 이들을 인솔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김신환(47) 감독도 감회어린 표정이긴 마찬가지다. 지금은 출국장에서 구스마오 대통령의 환송을 받는 동티모르의 영웅이 되었지만 출발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김 감독은 실업축구 시절인 1981년부터 88년까지 현대자동차 선수로 활약했다. 은퇴 후 개인사업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2002년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갓 독립한 동티모르를 갔던 그는 제2의 축구인생을 찾아냈다. 그러나 동티모르 사람들은 축구를 사랑하는 어린이를 이용해 기회를 잡으려는 사기꾼 정도로 취급했다.●“영양실조 아이들 위해 영양제 구하러다녀” 그해 김 감독은 어른들을 설득해 아이들을 모았다. 처음 20여명이던 아이들은 금세 200여명으로 불어났다.그러나 5개월쯤 지나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쓰러졌다. 영양상태가 나빴던 것이다.김 감독은 국제 구호단체를 돌며 비타민과 영양제를 구했다.운동장에서 쓰러지는 아이들이 사라진 것은 지금도 김 김독의 자랑이다.●“작년 우승땐 카퍼레이드 영광” 어른들이 김 감독에게 신뢰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일본 히로시마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둔 때부터다. 동티모르에 귀국하자 기자회견과 카퍼레이드가 이어졌고, 수도인 딜리의 스타디움은 그들의 전용 운동장이 됐다.김 감독도 유명세에 시달렸다. 그는 “동티모르에서는 이제 술집에도 잘 못 갑니다.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보더군요.”라며 웃었다.지방에서도 사람들은 아이를 축구팀에 넣어달라며 김 감독을 찾는다. 프로 선수가 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이 나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축구팀을 지원할 수 있는 학부모는 없다. 축구팀의 경비는 기부에 의존하거나 사재를 터는 수밖에 없다.4년이 넘게 그가 축구팀에 들인 돈은 6000여만원. 김 감독은 아이들의 축구사랑과 근성 때문에 축구를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가끔 꿀밤을 주거나 화를 내고 어려운 훈련을 해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아이들의 태도에 놀랐다.”면서 “예전 한국의 헝그리 정신을 이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나라에서 나를 좋아해줘서 신이 난다.”면서 “아이들이 귓속말로 ‘집에 있는 아빠보다 운동장의 ‘아빠’가 더 좋아요.’라고 하면 그 기분을 표현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 그는 아이들 못지않은 필승의 열기가 느껴진다.saloo@seoul.co.kr
  • 월가 추억속 회사이름 부활

    ‘헤이든 스톤, 쿤 로엡, 키들러…’ 한때 뉴욕 월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추문과 합병으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던 이들 회사의 이름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이 27일 보도했다. 이들의 옛 명성을 등에 업고 어떻게든 사업을 성공시켜 보려는 소규모 회사들이나 신생 회사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의 이름만 빌린 것일 뿐 예전의 회사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회사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예를 들어 헤이든 스톤은 한때 월가의 거대한 주식중개회사였으나 지금은 피츠버그의 작은 재정 서비스 회사다. 쿤 로엡은 1867년 설립된 회사로 1977년 합병된 뒤,7년간 이름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 회사 초기 경영자의 후예들이 운영하는 사설 투자회사의 이름으로 쿤 로엡이 돌아왔다. 사뮤엘 헤이스 하버드대 교수는 “오랫동안 훌륭한 성과를 낸 기업의 이름은 영구하다.”면서 “투자 은행의 경우 이름은 사람들이 회사에 대해 생각하는 전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명했던 기업명도 가치있는 기업의 이름으로 사용돼야만 한다며, 갓 창업한 회사가 명망있는 이름만으로 모든 사람을 속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투자 은행만이 월가 회사들의 이름을 원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름 중개업까지 생겨났다. 채프먼은 2001년 키들러라는 이름을 사서 펀드 운영회사의 이름으로 다시 쓰려 했으나 실패했다. 키들러를 합병한 스위스 투자은행인 UBS AG가 회사명 팔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특색있는 수영장 베스트5

    특색있는 수영장 베스트5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삼복 더위에 아이들과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지만 생각나는 곳은 수영장뿐. 그렇다면 수영장도 컨셉트에 맞춰 골라가는 것이 센스다. 온천과 수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 찜질방과 수영장이 결합된 곳,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곳 등 수영장도 각양각색이다.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기 전, 나들이 컨셉트를 생각하며 수영장을 정해보자. 알찬 휴식이 될 것이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찜질방은 겨울에만 간다고? 그건 찜질방을 제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다. 요즘은 찜질방도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 마치 리조트를 연상케 할 정도다. 실내수영장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곳도 많아 가족단위 나들이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물장난하고 어른들은 땀 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이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격 아닌가. (1) 튜브 가지고 찜질방으로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으로 가다 보면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아스클 리조트(031-955-5055)를 만날 수 있다. 아스클을 보통 찜질방으로 생각하면 오산. 입구의 풍경부터 다르다.‘아니 찜질방에 웬 튜브를 갖고 오나?’는 생각으로 들어서면, 그 다음은 신발장 번호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신발장 번호가 2000번까지 이어진다! 수영장은 아스클의 중심에 있다. 유아들을 위한 풀, 물이 흐르는 유수풀, 성인풀 등 모두 3개. 몸을 데울 수 있는 조그만 탕도 별도로 있다. “준이가 오빠니까 동생하고 놀아. 그리고 아빠 찾으려면 이벤트 홀이나 불한증막으로 와. 잘 놀고 있어.”라며 아빠 엄마는 돌아선다.“오래간만에 둘만의 시간이네.”한증막에서 낮은 목소리로 아내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들이 많이 눈에 띈다. 머리를 타고 가슴까지 흐르는 땀. 일주일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1시간이 지나도 녀석들이 오지 않는다. 첨벙첨벙 물속에서 노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자 이제 나가자.”라는 부모의 성화에 더 놀겠다고 버티는 아이, 아예 누워서 우는 아이도 있다. 부모와 아이들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흔치않은 곳이다. 또 주말마다 이벤트홀에서는 노래자랑과 가족대항 림보게임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피트니스센터, 게임방, 노래방,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카페,DVD에 홈시어터 시스템까지 설치된 모임방 등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있는 복합 공간이다. 수영장과 찜질방을 이용하는데는 성인 1만원, 소인 8000원. 또 평일 오전 10시까지는 조조할인 요금을 적용해 50%까지 저렴해진다.www.ascle.co.kr (2) 월드컵 경기장의 스포랜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내 쇼핑몰에는 4000여평 규모의 찜질방과 스포츠센터를 갖춘 스포랜드가 있다.2000평의 찜질방에는 4개의 남녀공용 찜질방과 PC방, 영화관, 헬스장 등이 있다. 또 스포츠센터에는 최신 설비의 정수기능을 갖춘 7레인 25m 규격의 수영장과 워터 슬라이더와 버블배스 등 놀이시설을 갖춘 유아용 풀 등이 있다. 월드컵 쇼핑몰에 있어 주말에는 주차하기가 좀 힘들다. 때문에 서둘러 아침 일찍 가는 것이 좋다. 토요일 12시부터 오후 2시,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 어른 8000원, 아이 6000원.(02-302-7002) (3) 목동 청학스포츠랜드 원래는 오래된 실내수영장이었는데 리모델링을 해 수영장 가장자리에 찜질방을 마련해 놓았다. 찜질방에서 수영장을 가기 위해 올라가거나 내려갈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바로 물에 뛰어 들면 된다. 황토, 자수정, 소금 등 테마 찜질방과 눈이 내리는 얼음방이 있으며 대리석으로 만든 휴게실을 갖추고 있다. 수영장은 25m레인을 4개나 갖추고 있고 물도 첨단 오존 필터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아쉬운 것은 아이들 전용 수영장이 없다는 점. 연중무휴이며 24시간 운영한다. 어른 8000원.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다.(02-2643-3581) 이밖에 김포 황토옥천탕(031-989-8925,www.hwangtook.com).시흥 귀빈사우나(031-491-0832)는 야외에 수영장을 갖추고 있어 가족끼리 하루를 보내기에 좋다. (4) 노릇노릇 삼겹살이 익어가는 아이들의 천국 80년대 부모님 손을 잡고 야외 수영장을 갈 때면 휴대용 버너와 삼겹살은 필수품이었다. 물 속에서 한참을 놀고 돌아와 막 지어낸 따끈따끈한 밥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을 얹어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정말 꿀맛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야외수영장에서 취사는 물론,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까지 금지되면서 이런 일은 추억으로 남게 됐다. 수영장에서 음식을 사먹으면 돈도 돈이지만 맛도 없고 불결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주는 옛 추억을 고스란히 되살려주는 서울 근교의 가볼 만한 수영장들을 찾아보았다. 서울에서 가장 큰 야외수영장을 꼽으라면 태릉에 있는 워터캐슬(02-971-0743)을 들 수 있다. 워터캐슬은 1만 5000여 평의 규모로 소나무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단순한 수영장이 아니라 물의나라, 숲의나라, 꽃의나라 등 세 가지 테마로 꾸며진 테마파크다. 수 십년된 소나무들이 즐비한 숲이 잘 가꾸어져 있어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나무 그늘에 돗자리만 펴면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숲의나라에서는 그늘막이나 텐트 등을 설치하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아이들과 함께 놀러왔다는 주부 민성신(38·서울 종로)씨는 “일단 소나무 숲이 마음에 들고 이렇게 밥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니 너무 좋다.”며 “옛날 생각도 새록새록 난다.”고 감탄한다. 이렇듯 이곳은 수영도 하고 온가족이 함께 음식도 해먹으면서 여름나들이 기분을 한껏 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어린이 놀이터, 미니 동물농장, 야생화체험장도 있어 아이들의 자연학습에도 그만이다. 워터 슬라이더와 오픈형 하이 슬라이더에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으며 200 여개의 무료 선탠베드, 냉·온수 샤워시설, 파우더 룸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1만원에 3∼4인용 텐트를 대여해준다. 어른 주중 7000원 주말 9000원. 태릉의 육군사관학교와 서울여대를 지나서 있다.www.easterncastle.co.kr (5) 수영장에서 야영을 경기도 광주에 있는 금원농원(031-762-3702)은 좀 특별한 수영장이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수영장은 전국에 이곳밖에 없다. 수영장 바로 옆 2000여 평의 소나무 숲에서 돗자리를 펴고 삼림욕을 즐길 수 있으며 취사도 가능하다. 화장실, 음수대, 샤워실 등이 갖춰져 있다. 매점도 있지만 아이스박스에 먹을거리를 준비해 가는 더 좋다. 10만여평의 농원에 운동장, 어린이 놀이터, 자연학습장, 산책로, 사슴목장 등을 갖추고 있어 복잡한 피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입장료는 어른 8000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자는 데는 1만원이 든다. 중부고속도로 경안IC에서 빠져 팔당댐 방향으로 20여분쯤 가거나, 미사리에서 팔당대교를 건너지 말고 새로 난 길로 계속 직진하면 된다. 이밖에 서울에서 가까운 고양시 풍동에 있는 YMCA 일산수영장(031-901-2796)은 지정된 취사지역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위쪽에 골프연습장이 있어 연습장 그물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수영장 수심이 낮아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게 장점. 일산 백마역 부근 애니골에 위치하고 있다. 어른 8000원, 어린이 5000원. 경기도 여주군 장흥면 일대에 있는 야외수영장들은 모두 취사가 가능하다. 장흥유원지 안에 있는 로얄 수영장(031-826-5471)과 오뚜기 수영장(855-2022)의 경우 수영장 바로 옆에 쳐져 있는 천막에서 취사가 가능하다. 유아풀이나 간단한 미끄럼틀 등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있어 가족나들이로 제격이다. 수원 팔달구 원천유원지내에 있는 파도수영장(031-214-8866)은 최신식 워터파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파도풀, 유수풀, 워터슬라이더 등을 갖추고 있고 주변에서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다. 경부선 신갈IC에서 나와 수원시내로 가는 길에 원천유원지 푯말이 보인다. ■ 여름날 하루라도 머물고 싶은 스파캐슬 친절한 스파캐슬씨에게 저멀리 서해안 파도가 헐떡이고 있었소. 수덕사 초입 기념품가게 아낙도 부채질에 그만 짜증나 정자에 누워 잠들었소. 예당저수지, 그 물결도 연신 혀를 내밀며 그늘로 잦아들고 있었소.45번 그 좁은 포도 위로 작열하는 태양… 에어컨 빵빵 틀어놓아도 아무 소용없는 차안, 그냥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리는 땀… 아! 누가 피서 가자고 말하였소? 오후 3시. 서울서 쉬엄쉬엄 2시간거리에 있는 충남 예산 덕산 스파캐슬로 가는 길… 바깥풍경은 그야말로 불친절한 더위로 헉헉대고 있었소. 갓 개장을 한 탓에 해미IC에서부터 당신이 친절하게 붙여놓은 이정표에 사실 어느 한사람 대놓고 말하진 않았어도 ‘친절한 스파캐슬씨’에게 속으로 매우 고마워하고 있었소. 특히 우리 식구는 덕산온천은 처음이라 낯설었소. 땡볕에 말은 아꼈지만 그 임시표지판은 참으로 초행길을 부드럽게 안내해줬소. 서둘러 개장한 탓에 곳곳이 공사중인 어수선한 분위기가 미안했던 당신인지라 땀으로 범벅된 우리를 해맑은 미소로 맞이하며 짐을 풀도록 도와주었소. 너무 더워 짐을 풀자마자 우린 실내스파로 향했소. 천천향(天泉香)으로 명명된 테마별 스파시설은 여독을 풀어주기에 충분했소. 평균 온도 49도를 유지하는 온천수는 약알칼리성 수소탄산나트륨형 단순천으로, 게르마늄이 함유된 온천공 2개를 보유하고 있다해서 그런지 부모님과 함께 못온 것이 못내 아쉬웠소. 특히 부인병, 피부병, 류머티즘, 세포재생 촉진, 피부미용 등에 좋다는 말에 더더욱 가슴을 쳤소. 천장에 수놓은 별자리들을 보며 수치료 전문 시스템을 갖춘 바데 풀을 중심으로 유러피언 스파를 비롯한 풋 스파와 키디 풀, 유스 풀 등 각종 이벤트탕에서 몸을 풀고 있노라니 정말 잘 왔다 싶었소. 중앙에 달린 대형스크린에서 방송되는 콘서트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덤이었소. 막힌 공간을 싫어하는 탓에 다 이용해보진 않았으나 산소방, 황토숯방 등 테마찜질방 사랑채도 달려있어 피로와 스트레스 풀기엔 제격인 듯싶었소. 주변 편의시설로 카페테리아는 물론이고 릴랙스뮤직룸, 수치료 상담실,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든 등은 여느 곳과 비교할 만한 듯했소. 그리고 9월에 개장할 노천스파나 워터레이, 써니레이, 워터슬라이드, 토렌트 리버 등은 온가족이 사시사철 즐길수 있는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생각들었소. 더욱이 숙소에서 그 현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고 유쾌한 일이었소. 600년 역사의 덕산 온천의 새 명소로 떠오를 덕산 스파캐슬씨. 인근에 추사고택, 수덕사, 예당 저수지는 식후 산책겸 아이들의 체험학습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볼거리라 생각했소. 참, 또 하나. 9월 노천스파 개장 이전에 방문하면 스파 이용권(일일 48,000원)을 일반인들에 30% 할인 해 준다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이들에겐 더더욱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소. 여느때면 휴가를 바다로 갔다 해수욕하는 지, 더위를 먹는 건지 모를 정도로 짜증만 났었겠지만, 올 여름은 정말이지 살갗도 안태우고 제대로 피서를 즐긴 듯 하오. 여름엔 만사가 귀찮아지는 내 체질엔 덕산 스파캐슬씨가 찰떡궁합인 듯 싶었소. 몸도 가뿐하니 그동안 내 몸을 떠돌던 일상의 무게도 눈 씻은 듯 사라진 듯 싶소. 아이들도 돌아오는 길에 언제 다시 가냐며 보채기까지 했소. 허허... 1박만 하고 돌아오는 길이 못내 아쉬웠지만 당신이 희망했던, 생애 단 하루라도 머물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소. 그렇소. 우린 어느새 스파캐슬(www.spacastle.com)씨에 푹 빠져 버린 것이오. 그 뽀송뽀송한 하루... 정말 잊지 못하게 쿨~했소. 다음에 갈땐 스파캐슬씨를 세놓고 놀 것이라오. 그럼 이만 총총.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가 (2)-농심 등 형제기업들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가 (2)-농심 등 형제기업들

    “형님, 새로운 사업으로 라면을 해볼라카는데 형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1960년대 초 젊은 춘호씨는 조심스럽게 큰형(신격호)의 기색을 살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라면이라 캤나. 그거 누가 사서 묵을 끼라고 만들라카는데. 치아라마.” 형의 조언을 잔뜩 기대하고 일본땅을 찾았던 춘호씨는 머쓱해져 돌아나와야 했다. “그래. 형이 안된다고 하는 사업을 내가 반드시 성공시켜 보이겠다.” 라면으로 2조원대의 중견그룹을 일군 농심 신춘호(75) 회장은 ‘철학을 가진 장이는 행복하다.’라는 제목의 자서전(비매품)에서 라면사업의 시작을 이렇듯 생생하게 되짚었다.“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였던 큰형이 반대하자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는 회고도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신 회장은 당초 시계공장을 차리려고 마련해 두었던 서울 영등포구 신대방동 370번지 지금의 농심사옥 부지에 라면 뽑는 기계를 들여놓았다. 롯데공업사라는 간판도 내걸었다. 자본금은 단돈 500만원이었다. 그가 큰형과 둘째형(신철호)의 그늘을 벗어나 창업가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1965년 9월18일의 일이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누가 밥 놔두고 사먹겠느냐.”고 했던 라면은 소고기라면, 너구리, 안성탕면, 신라면 등 숱한 히트상품을 탄생시키며 그룹 매출액을 지난해 2조 8620억원으로 끌어올렸다. 물론 새우깡 등 스낵시장 매출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달에는 미국에 라면공장을 세우기까지 했다. 올해로 창립 40년을 맞는 농심-78년 사명 변경-은 이제 롯데가(家)에서 맏형 사업체 다음으로 튼실한 기업군을 이루고 있다. 혼맥은 10형제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신 회장,“장이가 돼라” 신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장이’를 강조한다. 스스로도 자신을 “라면장이” “스낵장이”라고 부른다. 실속없는 겉치레를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언뜻 봐서는 대기업 총수라기 보다는 영낙없는 촌로(村老)다. 지방공장을 둘러볼 때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된다.”며 웬만해서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한번은 새벽녘에 경기도 안양공장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길래 살짝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느새 직원이 뛰쳐나와 “아저씨,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돼요.”하며 제지했다. 신 회장은 할 수 없이 “내가 회장입니다.”하고 신분을 밝혀야 했다. 임직원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그를 오랫동안 보좌한 한 임원은 “역발상의 대가”라고 말한다.“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도 반드시 한번씩 뒤틀어 보신다. 젊은 사람들도 그분의 창의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새우깡’이다.1971년 당시 세 살짜리 어린 딸이 ‘아리랑’을 ‘아리깡’으로 잘못 발음하는 것을 듣고 신 회장은 “이거다.”며 무릎을 쳤다. 말문이 갓 트인 어린아이들조차 쉽게 발음하는 ‘깡’을 과자 이름으로 착안한 것. 새우깡, 고구마깡, 감자깡, 이른바 깡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회의 도중에 갑자기 “교남동 도가니탕 맛이 좋으니 그런 맛이 나는 라면을 개발해 보라.”고 지시해 소고기라면을 탄생시킨 것이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롯데쥬스가 키스보다 좋아’라는 ‘야한’ 광고 문구를 선보인 것도 그의 기발함을 보여주는 예다. 언론에 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큰형과 매우 닮은 점이다. ●실질적 가장 역할-“신라면 개발때는 성씨 팔아먹는다.” 힐난도 10남매의 다섯째인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간 큰형과 몸이 약한 둘째형을 대신해 집안의 실질적 가장 역할을 했다고 훗날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몇년전 아버지(신진수)의 유해가 증발했을 때, 도굴범에게서 되찾아온 유해를 모셔간 사람도 신 회장이었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적고 있다. “어릴 때부터 무슨 벼슬같은 것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못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서 머리 싸매고 하는 일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이 있으면 손으로 만져보고 입으로 맛을 봐서 좋으면 직접 한번 만들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신라면을 처음 개발했을 때의 일이다. 실무자들은 ‘매울 辛’을 라면 이름으로 염두에 두고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오너의 성씨를 함부로 상품화했다가 ‘불경죄’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아주 좋다.”며 흔쾌히 수용했다. 막상 제품이 나오자 이번엔 문중에서 난리가 났다.“라면장사 하려고 성까지 팔아먹는다.”는 힐난이었다. 그러나 신 회장은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한번 옳다고 믿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가 그였다. 당시 식품위생법상 라면봉지에 한글(신)보다 한자(辛)를 더 크게 쓸 수 없게 되자 부당한 규제라며 끝까지 싸워 법개정(88년)을 끌어냈을 정도다. ●경영에 참여하는 2세들 신 회장은 두 살 아래의-원래 신 회장은 1930년생이지만 호적에는 1932년생으로 2년 늦게 올라갔다-고향처녀(김낙양)와 결혼했다. 같은 경남 울주군 출신이지만 면(面)이 달라 서로 일면식은 없었다고 한다. 김 여사는 다소 깐깐하다는 평이다.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막내딸을 제외하고는 4남매가 모두 그룹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딸 현주(50)씨는 광고회사인 농심기획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 전업주부에서 10년전쯤 출근을 시작했다. 큰아들 동원(47)씨는 그룹의 중추인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쌍둥이 둘째아들 동윤(47)씨는 포장재를 납품하는 율촌화학의 사장이다. 율촌은 신 회장의 호다. 셋째아들 동익(45)씨는 할인점 메가마트(옛 농심가)와 골프장 일동레이크를 운영하는 농심개발의 부회장이다. 신 회장은 그룹의 큰 방향이나 핵심전략만 직접 챙긴다. 나머지는 자식들에게 맡기고, 사냥이나 골프 등 여가를 즐긴다. 골프는 핸디 7의 싱글 실력이다. 일주일에 네번 라운딩을 나가는 주사파(週四派)다. 그만큼 건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밑바닥에서 기업을 일군 창업총수들이 으레 그렇듯 실질적으로는 일을 놓지 못한다. 한 아들이 웃으면서 전하는 얘기다.“말씀으로는 너네가 다 알아서 하라고 하시면서도 소소한 것까지 꼼꼼히 챙기신다. 골프를 치시다가도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곤 하신다.” ●1·2세 매주 월요 점심회동 신 회장은 매주 월요일마다 그룹 구내식당에서 2세들과 점심을 함께 한다.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4남매가 정규 멤버다. 밥값은 물론 아버지가 낸다. 그룹 전략회의겸 가족 친목모임인 셈이다. 이화여대 서양미술학과를 나온 큰딸만 빼고는 4남매가 모두 고려대 동문이다. 동원씨는 화학공학과, 동윤씨는 산업공학과, 동익씨는 경영학과, 윤경씨는 심리학과다. 신 회장은 동아대 법학과를 나왔다. 아버지를 닮아 세 아들 모두 운동을 잘한다. 큰아들 동원씨는 어렸을 때 축구선수로도 활약했다. 5남매가 모두 서울 한남동의 신 회장 자택 주위에 모여 살아 ‘농심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바로 옆은 잘 알려진 대로 ‘삼성 타운’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녀가 새로 이사를 오면서 이웃사촌이 됐다. 한때 공사 소음 등을 둘러싸고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깨끗이 화해했다. ●쌍둥이 형제에 얽힌 일화 동원씨와 동윤씨는 일란성 쌍둥이다.10분 차이로 태어났다. 대학 1학년때, 동윤씨가 태권도 승단 시험을 봐야하는데 마침 대학시험과 날짜가 겹쳤다. 형인 동원씨가 대신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동원씨의 학과 조교가 시험감독으로 들어왔다. 시험지의 이름이 틀린 것을 보고 조교는 “너, 화공과 신동원 아니야?” 하고 의심했다. 동원씨는 내심 당황했지만 “신동원은 내 쌍둥이 형이다. 나는 동생 동윤이다.”라고 뚝 잡아뗐다. 쌍둥이라는데 어쩔 것인가. 조교의 의심은 더이상 뻗어가지 못했다. 임원들은 쌍둥이 형제의 느낌이 달라 알아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성격도 다소 다르다. 한 임원은 “동원 부회장은 큰 방향만 맞으면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맡기는 스타일이다. 반면 동윤 사장은 매우 꼼꼼하고 세심하다.”고 전했다. ●조양상선·동부·태평양…화려한 혼맥 신 회장의 5남매는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집안에, 모두 중매로 결혼했다. 큰딸 현주씨는 79년 박남규(작고) 조양상선 회장의 넷째아들 재준(53)씨와 결혼했다. 재준씨는 한때 조양상선그룹 부회장을 지냈으나 그룹 부도 이후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조양상선은 김치열 전 내무·법무장관과도 사돈사이다. 김 전 장관은 다시 효성·동방유량 등과 사돈을 맺고 있어 혼맥 고리가 끝이 없다. 낯가림이 심한 현주씨와 달리 박 부회장은 “술 좋아하고 풍채 좋고 성격도 좋다.”는 게 공통된 평이다. 딸만 둘을 두었다. 큰딸 혜성(24)씨는 일본 성심여대를 나와 와세다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어머니가 설립한 그룹 계열사 ‘쓰리에스포유’(시설관리전문)의 등기이사이기도 하다. 역시 쓰리에스포유의 주주인 둘째딸 혜정(20)씨는 가을학기부터 미국 대학에 입학한다. ●송복 교수가 맏며느리 중매 큰아들 동원씨는 연세대 영어영문과를 나온 민선영(43)씨와 결혼했다. 선영씨는 민철호 전 동양창업투자 사장의 큰딸이다. 친구 사이인 율촌화학 한규상 부회장과 연세대 송복 교수가 각자 아끼는 총각처녀를 소개시킨 것이 인연이 됐다. 맞선은 86년 5월초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이뤄졌다. 동원씨가 훗날 사석에서 털어놓은 얘기다.“커피를 시켰는데 그 사람 앞쪽에 있던 설탕과 크림통을 내쪽으로 먼저 밀어주는 것을 보고 이정도면 됐다 싶었다.” 그주 주말 볼링장으로 맞선본 아가씨를 불러낸 그는 혜화동 집앞까지 바래다준다는 핑계 아래 붙잡고 있다가 새벽 3∼4시쯤에야 집으로 들여보냈다. 은근히 걱정이 돼 전화를 걸었다가 예비 장인어른에게 엄청나게 혼났다고 한다. 이때부터 당사자들보다 집안에서 더 서둘러 선본 지 3주만에 약혼하고 두달반만에 결혼(86년 5월26일)했다. 중·고등학생인 두 딸(수정·수현)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초등학생인 외아들(상열)은 올 가을에 미국으로 유학간다. ●사돈통해 정계·언론계와도 연결 둘째아들 동윤씨는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진만 민족중흥회장의 딸 희선(44)씨와 결혼했다. 희선씨의 큰오빠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둘째오빠는 김택기 전 국회의원이다. 김 회장은 삼양사의, 김 의원은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의 사위이기도 하다. 농심은 동부를 통해 삼양사는 물론 정계 인맥과도 맞닿아 있는 셈이다. 사조산업과도 다리 건너 사돈 사이다. 희선씨는 이화여대 음대를 나왔다. 성격이 매우 적극적이다. 셋째아들 동익씨는 노창희 전 영국 대사의 조카인 재경(41)씨와 결혼했다. 노홍희 전 신명전기 사장의 큰딸이다. 큰동서(민선영)의 연대 영문학과 후배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다. ‘아리깡’ 일화의 주인공인 막내딸 윤경(37)씨는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의 둘째아들 경배(42)씨와 결혼했다. 경배씨는 ㈜태평양 사장이다. 성격이 수더분해 처남들이 좋아한다. 경배씨의 형인 영배(태평양그룹 회장)씨는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의 사위여서 농심은 또다시 언론계와도 연결된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보란듯이 세도가를 골라 사돈을 맺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을 펄쩍 뛴다.“혼사가 화려하다보니 남들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집안을 따져 결혼한 줄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부모님이 옛날분들이다보니 연애결혼을 싫어하셔서 평범하게 선을 봤을 뿐이다. 정략적으로 집안을 따져 결혼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한진·KCC…형제들의 혼맥도 화려 신 회장의 둘째형인 철호(작고)씨는 유난히 법조인과 사돈을 많이 맺었다.8명의 사위 며느리 가운데 법조인이 4명이나 된다. 큰딸 혜경(58)씨는 서울고등법원장과 공적자금관리위원을 지낸 조용완(60) 변호사와 결혼했다. 법무법인 송백 소속이다. 셋째딸 미진(47)씨와 넷째딸 혜승(41)씨의 남편도 장대규(48)·정경언 변호사다. 정 변호사는 터키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큰아들 동림(43)씨의 부인은 정승원(41) 서울가정법원 판사이다. 철호씨는 1960년대초 동생인 춘호씨와 함께 서울 갈월동에서 껌 공장을 함께 운영하기도 했으나 경영방식에서 이견을 보여 각자 사업체를 차렸다. 10남매의 일곱째인 신선호(72) 일본 산사스㈜ 사장은 큰형을 도와 롯데에 몸담던 시절, 롯데리아를 일군 주역이다. 지금은 일본에서 면발 제조업체인 산사스를 독자 경영하고 있다. 심정섭 전 민국일보 편집국장의 큰딸 정자씨와 결혼해 2남2녀를 두었다. 큰아들 동우(40)씨가 산사스 전무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딸 유나(41)씨는 이호진(43) 태광산업 회장과 결혼했다. 10남매의 아홉째인 신준호(64) 롯데햄·우유 부회장은 한순용 전 한대산업 회장의 딸 일랑(58)씨와 결혼했다.‘프라이드 사건’ 등으로 적잖이 속을 끓였던 큰아들 동학씨가 얼마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서 추락사하는 바람에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둘째아들 동환씨는 대선주조 집안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여동생 동화면세점 경영 여자형제들 가운데는 경숙(72)·정숙(68)·정희(59)씨의 혼사가 눈에 띈다. 경숙씨는 박성황(작고) 한일향료 사장과 결혼해 1남1녀를 두었다. 다산(多産)인 롯데가에서는 단촐한 자식 농사다. 딸 기(51)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김영대(59)씨와, 국민대 교수인 아들 기택(47)씨는 정일영 전 국민대 총장의 딸 형은(45)씨와 결혼했다. 정숙씨는 NK(남경)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최두열 전 치안국장의 동생인 최현열 전 남경그룹 회장이 남편이다.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사위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 큰딸 은영(43)씨는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3남 수호(51·한진해운 부회장)씨와, 둘째딸 은정(42)씨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동생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의 둘째아들 몽익(43·KCC 부사장)씨와, 셋째딸 은진(37)씨는 동갑내기인 김유진 재원테크 사장과 각각 결혼했다. 맏이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스물네살이나 차이나는 막내 정희씨는 여자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 활동을 하고 있다. 동화면세점 사장이다. 남편은 경제관료 출신의 김기병(57) 롯데관광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의 형은 김기형 전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정통 관료 집안이다. 롯데관광은 이름만 같을 뿐, 롯데그룹과는 무관하다. 동화면세점도 이곳 계열사다. 큰아들 한성(35)씨가 동화면세점 상무이다. 둘째아들 한준(33)씨는 롯데관광 이사로, 미혼이다. hyun@seoul.co.kr ■ ‘농심 맏형’ 신동원 부회장 롯데가는 형제간에 크고 작은 송사를 치렀다. 물론 지금이야 모두 ‘옛날 얘기’가 됐지만 생채기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을 의식, 젊은 2세들이 주축이 돼 모임을 만들었다. 집안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영산 신씨 초당공파 28대손 모임’이다. 몇년전 이 모임을 앞장서 만든 이가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다.‘동(東)’자 돌림들이 주된 멤버다.27대손인 ‘호(浩)’자 돌림들이 아직 거리가 있는 것과 달리,28대손들은 수시로 뭉치며 허물없이 지낸다. 이들은 “영산 신씨는 경상도에서 남신북권(南辛北權)이라 불릴 만큼 명문가였다.”며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신 부회장은 모임을 결성하면서 초대 총무를 쌍둥이 동생(신동윤)에게 맡겼다. 그만큼 집안일에 적극적이다. 지금은 사촌동생인 우탁(신격호 회장의 셋째동생인 신경애 여사의 외아들) 휴네시스 사장이 총무를 맡고 있다. 얼마전 사촌형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신격호 회장의 아들)도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한다. 신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서도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때인 77년,“놀면 뭐하느냐.”는 아버지(신춘호)의 한마디에 대신공장(대방동 옛 자동차학원 자리)에서 호되게 신입사원 교육을 미리 받았다.79년 12월에 농심 평사원으로 입사, 이듬해 3월부터 정식 출근을 시작했다. 경영을 맡고부터는 매년 봄 전국 5개 생산공장을 돌아본다.10년 가까이 계속해온 연례행사다. 순례가 끝나면 ‘올해의 공장’을 뽑아 상을 준다. 그러다보니 서로 경쟁이 붙어 자체 혁신 활동이 치열하다. 일본 도요타의 가이젠(개선)을 능가한다는 게 자체 평가다. 이어 가을에는 전국 영업지점을 돈다. 직원들과 폭탄주도 곧잘 한다. 그가 즐겨 제조하는 방식은 ‘회오리주’.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빨리 띄울 수 있어서다.90년대 중반, 그룹내의 생산·영업·관리 등 전산정보 시스템을 한꺼번에 뜯어고쳐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에게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끌어내기도 했다.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추진력이 강하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미리 본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는 배우 이영애의 ‘허기’를 완벽하게 달래준 스릴러극이 됐다. 순백의 정적인 이미지에 갇혀 있던 이영애에게 숨구멍을 터준 영화는, 배우 자신에게나 관객에게나 전복의 묘미를 안겨준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봄날은 간다’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이영애의 영화’로 괄호치고 출발한 스릴러에서 그녀는 13년 반을 복역하고 갓 출소한 유괴살인범 이금자 역이다. 복역 이후 주인공의 동선을 쫓는 한편으로 카메라는 그녀의 복역생활을 복기하느라 여념없다. 그녀가 교도소에서 ‘친절한 금자씨’란 별명으로 통하기까지 동료죄수들을 얼마나 희생적으로 보살폈는지를 돌이키는 데 공을 들이며 영화는 자연스럽게 관객을 금자씨 편으로 포섭한다. 스릴러물임에도 관객에게 비밀이 거의 없다는 데서 오히려 독특한 감상을 던지는 영화다. 스무살에 살인용의자로 몰려 억울하게 수감된 주인공이 치밀한 복수극을 준비해 왔다는 사실을 한겹두겹 노출시키는 대담한 능청에 “역시, 박찬욱”이란 탄성이 터져나온다. 교도소에 갇힌 13년을 오로지 출감 뒤의 한판 복수극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았던 이중인격의 캐릭터를 이영애가 연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시종 신선한 화학반응을 자아내는 감상포인트. 그녀가 태연자약하게 수위높은 대사를 날리는 대목들에선 긴장과 이완이 동시에 손잡고 코믹스릴러의 기묘한 분위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쓰리, 몬스터’ 등 극도의 긴장으로 일관했던 전작들에 비하면 감독은 최대한 어깨 힘을 빼보려 노력한 듯싶다. 감독의 실험적 시도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절제된 대사로 시각을 집중공략하는 한편으로 금자의 심리와 주변상황을 친절히(?) 해설해 주는 성우의 내레이션, 이따금씩 끼어들어 복수극에 야릇한 팬터지를 입히는 만화적 화면 등은 낯설 만큼 새롭다. 조금은 들뜬 분위기에서 여러 실험을 즐기던 영화는 그러나 결국 ‘박찬욱표’로 되돌아온다. 자신의 핏덩이 아이를 볼모로 살인누명을 씌웠던 유괴범 백 선생(최민식)을 포박한 금자가, 백 선생에게서 아이를 잃었던 부모들로 하여금 손수 그를 응징케 만드는 결말 시퀀스는 ‘날생’의 하드보일드 살인극 자체다. ‘박찬욱 감독이라서 만들 수 있는 영화’임에는 여러모로 틀림없다. 그러나 예민한 관객이라면 ‘불친절한 박 감독’을 발견할 여지 또한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감독이 관객보다 배우를 훨씬 많이 배려했다는 인상을 남기는 몇몇 대목들이 무엇보다 개운찮다. 예컨대 금자가 자신을 연모하는 20세(13년전 금자가 살인누명을 썼던 나이) 빵집 청년에게 잠자리를 허락하는 장면. 죄를 뒤집어쓴 금자가 감방에서 썩은 세월의 무게를 역설하는 비감한 장면일 수 있건만, 섹스신 흉내조차 내지 않고 카메라는 황망히 다음 장면으로 건너뛴다. 극의 핵심에 손상을 주진 않더라도 ‘금자의 일인극’이나 다름없는 영화의 질감을 일궈내는 데는 결정적 흠집으로 꼬집힐 만하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1517~1578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토정은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으로 손꼽힌다. 놀랍게도 ‘정감록’가운데는 토정이 지었다는 ‘토정가장결’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더욱이 이 예언서는 여러 대 동안 비밀리에 전해졌다고 하므로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토정가장결’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실상 우리가 잘 모르는 토정 이지함의 비극적인 생애를 알아보자, 이 기회에 그가 후세에 남겼다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그리고 ‘정감록’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좋겠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1517~1578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토정은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으로 손꼽힌다. 놀랍게도 ‘정감록’가운데는 토정이 지었다는 ‘토정가장결’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더욱이 이 예언서는 여러 대 동안 비밀리에 전해졌다고 하므로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토정가장결’에 무슨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친숙한 이름이긴 하지만 실상 우리가 잘 모르는 토정 이지함의 비극적인 생애를 알아보자, 이 기회에 그가 후세에 남겼다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그리고 ‘정감록’의 관계를 정리해보면 좋겠다. ●토정은 대단한 기인(奇人) ‘조선왕조실록’엔 토정의 풍모를 전해주는 몇 가지 기록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지함을 토정이라 불렀다. 이지함이 거처하던 곳이 토정(土亭)이었기 때문이다. 토정은 일찍이 한양의 마포 항구(麻浦港口)에 흙을 쌓아 언덕처럼 만들어 놓고 그 아래 굴을 팠으며 위에는 정자를 지었다. 그런데 큰물이 졌을 때도 토정이 만든 흙 언덕은 언제나 그대로였다(실록, 선조 수정 11년 7월1일 경술). 토정은 여느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어 보이는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다. 특히 발이 무척 컸다고 한다. 토정의 얼굴은 둥글고 검은 편이었고 눈빛이 강렬했다. 목소리는 우렁차고 맑아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토정은 보통 선비들과는 차림새도 확연히 달랐다. 그는 짚신을 신고 죽립(竹笠)을 쓴 채 걸어 다녔다고 한다. 초립(草笠)에 나막신을 신은 구부정한 모습이었다는 진술도 있다. 그 당시 선비들은 당연히 조랑말이라도 타고 다녀야 되는 줄로 알았고, 항시 의관을 정제했다. 고급스러운 말총으로 꾸민 큰 갓을 쓰고 가죽신을 착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토정은 이런 풍습을 도외시했으므로, 그가 길거리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비웃기 마련이었다. 담화를 나눌 때도 토정은 수수께끼나 농담을 즐겼고,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다(실록, 선조 수정 6년 5월1일 경진). 한마디로, 토정은 격식을 초월했다. 혼례를 치른 다음 날에도 의외의 행동으로 가족과 친지들을 놀라게 했다. 모처럼 새로 지은 도포를 입고 외출한 토정은 어느 다리 밑을 지나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세 명의 거지아이를 만났다. 토정은 입고 있던 새 도포를 벗어 세 폭으로 찢어서 그 아이들에게 입혀주었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종일 바깥에서 일을 보았다. 토정은 이처럼 호방한 성격이었다. 도인의 면모를 보인 적도 많았다. 그는 열흘 정도는 굶어도 거뜬했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냉수 한 모금 마시는 일이 없었다. 요즘의 건강상식에 크게 어긋난 행동이었다. 토정은 간혹 천리 길을 걸어 어딘가를 바람처럼 다녀오기도 하였다. 배를 타고 방랑하기를 좋아해 제주도를 여러 번 찾았다는데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거센 날을 용케 피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간혹 여행 중에 기생들이 별의별 수단을 다 써 유혹했으나 한 번도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토정은 정욕마저 완전히 끊어버린 이를테면 속세의 신선이었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설화도 그래서일까. 토정에겐 앞일을 내다보는 예지 능력이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장인에게 화가 닥칠 것을 미리 알았다 한다. 명종 초년의 일이다. 하루는 토정이 그 부친에게,“아내의 가문에 불길한 기운이 있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가 미칠 것입니다.” 라고 아뢴 뒤 식구들을 이끌고 서둘러 한양을 떠났다. 바로 그 다음 날, 토정의 장인은 사화에 연루돼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까지 용했을까 하는 일말의 의문이 없지 않다. 어쨌거나 ‘실록’은 토정의 예언 능력을 무척 칭찬한다. 한 번 사람을 만나보면 그 성품은 물론, 앞날의 길흉까지 환히 알아 맞혔다 한다. 토정은 이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오래 전에 사태를 예언했다는 구비설화가 남아 있다. 만년에 그는 조선 팔도를 두루 유람했다고 한다. 당연히 천하명산 금강산에도 들렀다. 하루는 날이 기울자 토정은 지친 몸을 이끌고 암벽 위에 서 있는 초라한 암자를 찾아갔다. 워낙 피곤해서 제대로 자리를 펴고 누울 겨를도 없이 방안에 들어가 한 쪽 벽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들었다. 조금 있다가 꿈속에 스님 두 분이 나타났다. 그들은 병풍과 자리를 깔며 부산을 떨었다. 토정은 스님들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여러 산의 산신령들이 모여 장차 다가올 난리를 의논할 거라는 답변이었다. 과연 전국 명산의 산신령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회의를 열었다. 여러 주장이 난무했다. 그러자 금강산 산신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왜놈들이 동방예의지국 조선을 침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최선을 다해 놈들을 물리치자고 주장했다. 놀란 토정은 퍼뜩 깨어났다. 조금 전 기대어 잠을 청했던 암자는 오간 데 없었다. 암벽 위엔 한 그루 늙은 소나무만 외롭게 서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토정은 왜란이 일어날 줄을 짐작했다. 이것은 한낱 설화다. 토정을 뛰어난 예언가로 간주하게 된 후대의 민중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가 있다. 역사 속에서 믿고 따를 만한 인물을 재발견하는 것이 민중들로선 익숙한 일이었다. 그들은 본래 토정이 특이한 선비인 줄 알고 있었으므로, 이런 설화를 덧붙여 민중의 스승으로 이상화했다고 풀이된다. 왜란에 관해선 또 다른 이야기가 토정의 문집에 실려 있다. 일찍이 그는 상중(喪中)에 있던 제자 조헌(趙憲)을 조문하였다. 그날 혜성(彗星)이 밤하늘에 뻗쳐 조헌이 그 조짐을 물었고, 토정은 이 혜성이 천하에 큰 난리가 일어날 조짐이라며 그때에 대비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한다(실록, 영조 30년 11월27일 임인). 스승의 말을 가슴에 새긴 조헌은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돼 금산에서 북상하던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문집의 기록은 사제간의 문답을 확대 해석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토정이란 인물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일상적인 일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국가의 장래를 염려했던 것이다. 토정은 다분히 도가적(道家的)이었지만 본질적으론 유가(儒家)의 선비였다. ●사화에 얽혀 불우했던 토정 사실 토정은 국가경영에 관심이 컸다. 평상시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내가 일백 리 되는 고을을 맡아 다스리게 되면 가난한 백성을 모두 부자로 만들고 야박한 풍속을 돈독하게 바꿀 것이다.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아 나라의 평안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토정은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명종5년(1549년) 토정이 33세 되던 해에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토정의 장인이 역모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당했고, 연좌법에 걸린 토정은 벼슬길이 막혔다. 설상가상으로 죽마고우(竹馬故友) 안명세(安名世)마저 필화를 입고 죽었다. 사관(史官)으로 이름이 높았던 안명세는 명종 연간 을사사화(1545년)에 관련해 윤원형과 이기 등 소윤(小尹)이 윤임 등 대윤(大尹)을 모함해 몰살했다고 적었다. 윤원형 일파는 몰래 사초를 들여다보았고, 자기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안명세를 제거한 것이다. 이후 토정은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기인(奇人)으로 처세하게 됐다. 지지난 호에 소개한 정렴은 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의 아들이라 스스로 세상을 피했던 데 비해, 토정은 억울하게도 세상에 용납되지 못해 기벽(奇癖)을 갖게 됐다고 해야 맞다. 어찌 보면 세상을 원망하고 자포자기하기가 참 쉬웠을 텐데, 토정은 절망하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및 의학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고, 조헌과 이산보를 비롯해 여러 제자를 키웠다. 조정이 토정에게 벼슬길을 열어준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을사사화의 주도세력이 조정에서 물러난 선조 초년이었는데, 그 사이 토정은 이미 늙어버렸다. 그는 60이 가까운 나이에 사실상 초임이나 다름없는 아산군수 자리에서 세상을 떴다. 평생 닦아온 선비의 웅지를 펼칠 겨를도 없었다. 토정이 남긴 글은 뒷날 ‘토정유고’(2권1책)로 정리됐다. 이와는 별도로 민간에서는 ‘토정비결’과 ‘토정가장결’, 주역(周易)에 관한 ‘월영도’, 풍수지리를 다룬 ‘농아집’ 등을 토정의 저술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실상 ‘토정유고’에는 위에 언급한 어떤 책자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만일 실증주의의 입장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토정비결’이나 ‘토정가장결’ 등은 토정의 저술이 될 수 없다.‘토정유고’외에는 이지함의 저술로 단정할 만한 결정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모두 후대의 위작으로 볼 것인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토정비결의 매력 물론 어느 쪽도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다른 책은 몰라도 ‘토정비결’만은 토정의 붓끝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토정은 의학과 점에 능통했기 때문에 그를 찾아와 운수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반의 그런 요구가 많아지자 토정은 아예 한 권의 책을 지어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되기를 도모했을 법도 하다. ‘토정비결’은 주역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주역과는 다르다. 주역의 기본 괘는 48개인데 비해 ‘토정비결’은 32개다. 괘를 짓는 방법도 달라 이른바 사주 가운데 시(時)를 뺀 년(年), 월(月), 일(日)을 사용할 뿐이다. 조선시대 민간에는 시계가 없어 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편의를 도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토정비결’은 주역을 이용하면서도 조선의 특성을 십분 고려했다. 그러다 보니 점괘의 총수도 주역과는 다르게 됐다. 주역에는 총 424개의 괘가 있으나 ‘토정비결’은 총 144개뿐이다. 훨씬 간편하다고 말할 수 있다. 토정 이지함처럼 기발하고 독창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토정비결’은 열두 달의 운수를 시구(詩句)로 적어 놓았다.“동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관재수가 있으니 혀끝을 조심하라.”는 식이다. 간단명료한 글귀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점괘다. 각 항목마다 길흉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돼 있어 낙관도 실망도 하기 어렵게 돼 있다. 결과적으로,‘토정비결’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며, 일마다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 처리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토정비결’은 운수를 판별하는 데 중점이 있다기보다 일반 민중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토정비결’은 단순히 점을 봐주고 금품을 요구하는 직업적인 점쟁이의 저술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 눈엔 그것이 점을 통해 점을 치는 사람들이 점에만 의존하지 않게 유도하는 기능이 숨겨진 반점술서(反占術書)로 보인다. 토정 이지함과 같이 점에 능통하면서도, 본질적으론 유가(儒家)의 철학을 신봉한 큰선비가 남겼을 법한 저술이다. ●그럼 ‘토정가장결’은? 정리하면, 토정은 살아생전에 이미 기인, 도사 그리고 큰선비로 세상에 유명했다. 더욱이 후세에는 ‘토정비결’과 같은 명저의 지은이로 민중에게 더욱 친숙한 이름이 됐다. 그가 만일 무수한 개인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면, 나라의 운수인들 모를 까닭이 있었겠느냐는 의견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맴돌았음이 틀림없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토정이 남긴 예언서가 어디선가 발견돼야만 했다. 이것이 조선후기 ‘토정가장결’이 탄생한 문화적 배경이다. 분명한 사실은 ‘토정가장결’에 앞서 ‘정감록’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가 망하고 진인 정씨가 새 나라를 세운다는 ‘정감록’의 예언을 참작해 ‘토정가장결’이 쓰였다.“내 비록 재주 없으되 우러러보고 굽어 살피며 수년 간 별의 숫자로 헤아려 보니 한양이 50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토정가장결’은 이런 식으로 조선왕조의 멸망을 점쳤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수년 간 별의 숫자로 헤아려” 본 결과, 조선왕조의 운수를 짐작하게 됐다고 했다. 천문에 중점을 두고 예언을 했다는 점이 ‘토정가장결’의 특징이다.‘감결’을 비롯해 다른 예언서들이 풍수지리에 의존해 국운을 점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참고로, 천문 점의 전문가들은 서북지방에 많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천문지식은 중국 사람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토정가장결’에 보이는 두 번째 특징은 압록강 이북의 요동이 중시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잠시 비결을 인용하겠다.“장류수(계사) 운은 푸른 옷과 흰 옷이 서쪽, 남쪽에서 침략한다. 이때 전읍(奠 , 즉 鄭姓 眞人)이 바다 섬의 군사를 이끌고 방성, 두성의 장수와 함께 갑오년 섣달 즉시 금강을 건너면 다시 천운이 커질 것이다.(중략) 곽 장군이 요동 군사를 이끌고 방씨, 두씨 장수와 함께 왜적 및 서남 오랑캐를 무찌르며,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돕는다. 정씨를 편들고 이씨를 공격하면 이씨는 제주로 들어갈 것이니 4,5년간의 운수에 지나지 않는다.” 요약하면, 계사년에 외침이 있는데 만일 그 때 요동의 곽 장군이 나서서 정씨를 도우면 동아시아의 정치질서가 재편된다고 했다. 곽 장군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인데, 곽 장군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 상정되었다. 늦어도 19세기 후반엔 고구려의 옛 땅이던 만주가 가난에 쫓겨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간 상당수 민중들의 손길로 개발되고 있었다.‘토정가장결’에 등장하는 곽 장군은 아마도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인물로 해석된다. 달리 말해, 간도에 진출한 빈농들이 이상적인 지도자로 여겼을 법한 가상인물이다. 셋째,‘토정가장결’은 난세의 피란지로 전혀 새로운 장소를 거론했다.“만약 요동 간방으로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반드시 삼척부 대소궁기를 향하여 부지런히 힘을 기울여 곡식을 쌓을 일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정감록’은 주로 삼남 지방에 십승지 또는 길지를 설정해두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상도의 풍기, 충청도 공주 및 전라도 운봉이었다.‘토정가장결’은 이를 정면에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요동과 삼척이란 뜻밖의 장소를 최고의 길지로 내세운다. 확실히 새로운 변화였다. 여기서 나는 ‘토정가장결’이 출현한 시기를 좀더 정확하게 짐작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간도로의 ‘불법이민’이 본격화된 19세기 후반에 이 예언서가 창작된 것은 아닐까. 참고로, 삼척이 길지로 대두된 이유를 헤아려 보겠다. 토정에 관한 구전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한때 토정은 삼척에 머문 적이 있었다는데 거기서 스님 행색으로 위장한 왜놈 첩자를 붙들었다. 이 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은 토정이 살던 삼척에는 아예 얼씬도 못했다는 설화가 있다. 신기하게도 구전설화는 예언서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 모양이다. 물론 거꾸로 됐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토정은 정치적으로 무척 불우한 재사였다. 그래서 그는 기인이자 도사가 되기도 했고,‘토정비결’ 같은 책을 지어 고난 받는 민중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토정은 민중의 스승으로 자리매김돼 ‘토정가장결’의 저자로도 둔갑됐다.‘토정가장결’은 ‘정감록’의 논리를 존중하면서도 19세기 후반의 변화된 사회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알 자는 알리라.” (푸른역사연구소장)
  • 여고동창생 미나·주연 “유럽서 2승”

    “이제 우리는 유럽으로 간다.” 한달 새 미여자프로골프(LPGA)시즌 2승을 합작한 ‘여고 동창생’이 무대를 유럽으로 옮겨 나란히 시즌 2승에 도전한다. 무대는 20일 밤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마스터스골프장(파72·6192야드)에서 개막하는 에비앙마스터스대회(총상금 250만달러). 메이저대회는 아니지만 상금 규모에선 US여자오픈(310만달러)에 이어 LPGA 두번째다. 대회측은 지난해부터 올시즌 지난 10일 현재까지 LPGA와 유럽여자골프(LET)에서 한 차례 이상 우승한 챔피언들을 비롯한 ‘거물’ 78명에게만 출전권을 부여했다. 컷오프가 없는 데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의 전초전이기 때문에 경쟁은 더없이 치열할 전망. 모두 10명이 출전하는 한국선수들 가운데 BMO캐나디언오픈에서 감격의 투어 첫 승을 올린 이미나(사진 왼쪽·24)와 US여자오픈의 ‘여왕’ 김주연(오른쪽·24·KTF)의 각오는 남다르다. 루키 시즌인 올해 세 차례의 ‘톱10’을 모두 2번의 준우승과 마수걸이 첫 승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이미나는 본격적인 신인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올해 33명의 신인 가운데 ‘0순위’는 고교를 갓 졸업한 폴라 크리머(19·미국). 그동안 루키 포인트 839점으로 독주 중이었다. 하지만 이미나가 캐나디언오픈 우승으로 포인트를 451점까지 끌어올려 판도 변화를 예고했다. 이미나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해 역전의 발판을 놓겠다는 다짐이다. 이미나와 청주 상당고 동기생인 김주연도 시즌 2승에 욕심을 내는 건 마찬가지.US여자오픈 우승 이후 출전한 2개 대회에서 공동30위 안팎의 신통치 않은 성적을 냈다.‘운좋게 우승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또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한편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2주간의 휴식을 마치고 시즌 7번째 우승 사냥을 위해 에비앙에 모습을 드러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삶속의 차 (1)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삶속의 차 (1)

    필자와 차(茶)의 인연은 벌써 35년 가까워 진다. 참으로 비릿하고도 아련한 생의 출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초의스님과 차는 마치 벼락치듯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먼 생의 출구에서부터 윤회의 물결과 인연의 흔적들이 내 생(生) 내면에 깊이 잠재했었던 것 같다. 갓 출가를 한 필자는 선방수좌들이 공부하는 남해 용문사에서 공부를 했다. 초 겨울 추위가 절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원주스님을 감기에 들게 했다. 당시 남해는 남해대교가 없던 시골이어서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마땅한 약이 없어 고민을 하는 나에게 한 보살이 넌지시 ‘민간담방약’을 일러줬다.“지난 겨울 안거때 보니까 스님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후원 찬장에 있는 무슨 풀을 달여 마시고 몸이 낫는 것을 봤습니다.” ●처음 대한 이상한 풀잎의 약효 나는 급히 찬장을 뒤졌다. 보살의 말처럼 찬장 깊숙한 곳에 대나무가 그려진 푸른 통에 푸르스름하게 말린 아주 작은 풀잎들이 반통 넘게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질그릇 약탕기를 꺼내고 숯불을 지펴 그 풀잎을 전부 쏟아붓고 부채로 부쳐 달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 푹 삶은 그 풀잎국물은 농익다 못해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녹색이었다. 냄새를 맡아 보니 쓴 냄새가 코를 독하게 찌르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소중한 약은 약인 모양이다. 이렇게 독하게 쓴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내가 제대로 골라 달인 게 분명하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뻐했다. 정성스럽게 체에 걸러보니 사발로 반쯤됐다. 나는 좋은 감기몸살약이라며 원주스님에게 드렸다. 단숨에 약사발을 마신 원주스님은 얼굴을 찡그리며 ‘도대체 무슨 약이기에 이렇게 소태보다 쓴가.’라고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일을 자초지종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원주스님은 갑자기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여보게 행자 그 차가 얼마나 귀한 차인 줄 아는가. 큰 스님 공부하시는데 가끔식 드리려고 소중하게 보관해온 것인데. 그걸 전부 다 달이면 어쩌란 말인가. 자네는 차도 모르나.” 도대체 매미 날개 같기도 하고, 감나무잎을 말려놓은 것 같기도 했던 ‘이상한 풀잎’들이 차인지 그 무엇인지 알기나 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쓸 만한 차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웠던 시절 한약으로 고았으니 얼마나 쓰고 어이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나의 차 생활의 첫 경험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뉘라서 차 한잔의 깊은 맛을 헤아릴 수 있으랴. 잡것이 한번 스치면 차의 오롯한 진성(眞性)을 잃나니….”하며 한국의 다성 초의스님이 ‘동다송´에서 노래한 이시가 내 삶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차는 이렇게 마치 천둥번개처럼 삶을 통째로 관통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차는 곧 우리의 정신문화 대변 우리의 삶속에 차(tea)는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내재적 가치이며 문화이며 시간이기도 하다. 차는 약용, 음식, 기호음료, 수행의 매체로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왜 차를 마셔야 하는가를 잘 모르고 살고 있다. 차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왜 차를 마셔야 하는가를 모르고 마시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고서’(古書)에서는 “차를 마실 때 사람을 가려 마시고 아무 때나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차는 곧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시대의 삶에 대해 나는 가만히 한번 묻고 싶다. 우리곁을 지키던 맑은 달, 칠흑같은 어둠을 밝히던 반짝이는 별, 깊은 호흡으로 온 육신을 상쾌하게 하던 맑은 공기는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며,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던 삶의 도리는 실종된 지 오래다.‘금전’의 논리와 욕망의 극대화는 인간을 철저하게 자본의 노예로 귀속시켜버린다. 생명이니 환경이니 사랑이니 하는 전통적인 삶의 명제들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오로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밖에 없다. 우리시대에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문화와 문화사이, 조직과 조직사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생존’논리에서 빚어지는 스트레스다. 현대인의 만병의 원인은 바로 ‘스트레스’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도한 긴장과 흥분, 마라토너처럼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여유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시대에 차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고, 조직과 조직의 긴장을 풀어주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삶에 촌각의 여유를 붙들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차인 것이다. 초의스님은 영혼을 일깨우는 인간의 찻 자리에 대해 일갈했다.“밝은 달 촛불이 되고 또 벗이 되니/흰 구름 자리되고 또 병풍이 되어주네/솔 솔 솔 찻물 끓는 소리 시원하고 고요하니/맑고 찬 기운 뼈에 스며 영혼을 일깨우네/오직 흰 구름 밝은 달 두 벗을 삼으니/도인의 찻 자리 이보다 빼어날 소냐.” 가만히 감상해 보라 참으로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이 우리마음에 자리를 잡으며 ‘하얀 도라지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텃밭에 톡톡 빗방울을 튀겨내며 서있는 도라지꽃, 사무실 책상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능수버들처럼 휘어진 풍란을 보며 차를 한잔 마실 수 있는 삶의 여유가 바로 ‘삶의 찻자리요, 도인의 찻자리’인 것이다. ●차의 미덕은 어디서 오는가 그렇다면 차의 미덕은 어디에 있는가. 명나라 도륭은 ‘고반여사´(考槃餘事)에서 “차는 행실이 바르고 덕을 닦은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음료다. 백석의 맑은 샘물을 길어 끓이는 절차를 법도에 맞게 하여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이 한결같이 계속하여 그 법식을 완전히 익히고 깊이 음미하여 정신이 융회하고 심취해서 제호나 감로에 비교할 만한 참다운 맛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서 다도를 휼륭하게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모처럼 좋은 차를 마시면서 그 사람 됨됨이가 미흡하다면 마치 좋은 샘물을 퍼서 잡초에 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이보다 더 큰죄가 없을 것이다. 차의 멋을 모르고 꿀꺽 단숨에 마셔 맛의 분간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상 속될 수가 없다.”고 했다. 차는 육우의 ‘다경´에서도 나와 있듯이 하늘아래 그 귀함을 손꼽을 수 있을 만큼 신령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뜬 구름처럼 하늘위에서 노니는 신비스러움이 아니다. 여기에서 ‘신령’이라 함은 인간의 영혼을 맑고 담백하게 일깨우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는 인간을 위한 것이고, 현존하는 필요충분한 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차는 또 적요(寂寥)한 것이다. 적요라는 것은 고요하고 그윽한 평안한 경지에 있다는 뜻이다. 디지털시대 우리문화는 이른바 ‘들뜸’의 문화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참을 줄도 기다릴 줄도 모른다.‘원 스톱 문화’시대에 자신의 뜻과 목적을 관철시킬 일방통행의 ‘들뜸’의 문화를 차분하게 가라앉힐 또 하나의 정적인 작용인 것이다. 우리가 ‘차’를 단순히 ‘차’라 부르지 않고 ‘다도’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차를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을 ‘차’요 ‘다도’라고 하는 것이다. 산과 들을 달리며 활과 검을 쓰며 심신을 단련했던 신라의 화랑들도 차를 통해 문과 무의 품격있는 조화를 이루었으며, 고려시대 스님들과 문인들도 “한잔의 차는 곧 참선의 시작. 차의 맛은 선의 맛”이라며 차를 진리의 정신세계를 고양시키는 ‘도의 동반자’로 봤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도 “차를 끓여마시는 것이 바로 도의 본체를 체득하는 것이다.”며 차의 진리적 가치를 극찬하고 있다. ●삶과 문화 바꿀 새로운 인연으로 차는 또 그 과학적 효능에 있어서 이 시대의 삶과 또 다른 동반자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도륭은 ‘고반여사´에서 “진짜 좋은 차는 갈증을 없애고, 음식을 소화시키며 가래를 제거하고 잠이 들게 하며, 소변이 잘 나오고, 눈을 맑게하여 머리가 좋아지게 한다. 식사가 끝날 때마다 차로 입안을 가시면 기름기가 말끔히 제거되며 뱃속이 저절로 개운해진다. 이(齒)사이에 낀 것도 차로 씻어내면 다 삭아 줄어들어서 모르는 동안 없어지기 때문에 번거롭게 이를 쑤실 필요가 없다. 이에는 쓴 것이 좋기 때문에 자연히 이가 튼튼해져서 충과 독이 저절로 없어진다.”고 적고 있다. 차는 또 모든 음식 가운데 으뜸이다. 단순한 으뜸이 아니라 희(喜)로(怒)애(哀)락(樂)애(愛)오(惡) 등 인간의 모든 성정을 통칭해 으뜸이라는 것이다. 초의스님은 ‘동다송´에서 “모든 음식 가운데 차만이 홀로 육정의 으뜸이다.”고 격찬한다. 진나라의 뛰어난 문장가였던 장맹양도 “정식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하고 갖은 요리는 그 맛이 절묘하고 뛰어나네. 향기로운 차는 육정의 으뜸이어서 넘치는 맛이 천하에 퍼진다.”고 품평하고 있다. 신농은 또 ‘식경´에서 “차를 오래마시면 사람이 힘이 있고 뜻을 즐겁게 한다.”고 적고 있다. 음식중의 으뜸인 차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하루 하루의 삶을 즐겁게 하는 약리적인 작용을 한다. 차는 만병지약(萬病之藥)이라는 말이 있다. 차가 실생활에서 약용으로 식용으로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수천년을 이어온 차의 강물은 여전히 깊고 멀다. 우리시대 문화코드로 새롭게 복원되고 있는 차는 우리시대의 삶과 문화를 바꾸는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오늘 우리가 차를 마시고 차를 생각하고 차를 곁에 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여연스님은 ▲ 1970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 1971년 해인사에서 혜암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82년 인도 다람살라 티베트 문헌도서관 수학, 스리랑카 게라니야대학 동양문화연구소에서 근본불교와 팔리어 연구 ▲ 1984년 불교잡지 ‘해인’ 창간 편집주간 ▲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사무처장 ▲ 11·12대 조계종 종회의원, 불교신문 논설위원·주간,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역임 ▲ 현재 해남 대흥사 일지암 주석, 사단법인 일지암초의차문화연구원 이사장
  • 달밤에 산행 박종구 본부장

    달밤에 산행 박종구 본부장

    15일은 서울시 교통방송 박종구(朴鍾九·59) 본부장이 취임한지 6개월이 되는 날이다. 그는 지난 3월 케이블TV인 ‘TV서울’을 개국한 데 이어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라디오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다.2년 6개월의 남은 임기 동안 ‘언제 어디서나’ 서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산 타며 프로진행 체크·일과 구상 박 본부장은 동네에서 ‘달밤에 산행하는 아저씨’로 유명하다. 매일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집 근처 청계산에 오른다. 특히 교통방송 본부장이 된 뒤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주로 교통방송 프로그램을 꼼꼼히 체크하며 때로는 경쟁사의 프로그램을 듣기도 한다. “남들이 자는 고요한 새벽에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라디오 듣는 맛 아세요.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전날 일과 그날 할 일을 정리하게 됩니다. 건강도 가꾸고 일도 챙기고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잖아요.” 박 본부장은 직원들에게는 분기별로 영어 시험을 치르게 하는 등 ‘공부벌레’가 되기를 주문하고 있다. 개방형 직위인 교통방송 본부장 공개 채용에서 고시를 치르는 마음가짐으로 40쪽 분량의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합격했기 때문이다. “제가 시험을 보고 본부장이 돼서 그런지 직원들에게 공부를 하도록 요구하게 됩니다. 연못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다른 물고기들도 덩달아 활기차게 움직이는 ‘메기론’처럼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잖아요.” ●2003년 경찰 치안감 퇴직 경남 산청이 고향인 박 본부장은 2003년 경찰 치안감으로 퇴직할 때까지 30여년간 경찰 생활을 했다. 특히 2002년 서울경찰청 교통부장으로 일할 당시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교통사고 사망자를 평소 7∼8명에서 2∼3명으로 줄이는 데 한몫을 했다. 그런 그가 서울시 교통방송을 담당하게 된 것은 서울에 대한 독특한 기억 때문이다. “1964년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삼양동에 살았죠. 당시 논·밭이었던 곳이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변했더군요. 판잣집이 몰려 있던 청계천도 이젠 문화공간으로 복원됐고요.‘상전벽해’가 따로 없어요.” 박 본부장은 교통방송에서 서울에 대한 이런 기억들을 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 이야기로 담고 싶어한다. 실제로 라디오 개편에서 서울을 특화시키기 위해 ‘오승룡의 서울이야기’ ‘책읽는 서울’ 등을 신설했다. 기존 프로그램에도 ‘집중탐구 서울’ ‘서울길 기초공부’ ‘클릭, 수도권 핫뉴스’ 등의 코너를 보완했다. ●DMB 통해 교통상황 등 실시간 제공 현재 박 본부장의 관심은 갓 태어난 ‘TV서울’을 살찌우는데 쏠려있다.32개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 가운데 6개만 확보된 상태다. 다시말해 서울시 전역에서 TV서울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 본부장은 일단은 지켜봐달라고 말한다. “떡도 맛있으면 먹게 되죠. 방송도 콘텐츠가 풍부하면 자연스럽게 SO도 따라붙게 될 것으로 자신합니다. 특히 TV서울은 전국 최초로 시정을 전하는 지방채널인데다 교통쪽에도 특화돼 있지 않습니까.” TV서울은 뉴스 특화 채널인 미국의 CNN이 24시간 자막방송으로 세계 각지의 뉴스를 내보내듯 TV서울도 방송시간 내내 자막방송으로 서울 전역의 교통상황을 내보낸다.‘올림픽 대로 한남대교∼영동대교 정체’ 등의 방식이다.11월부터는 ‘DMB(디지털미디어방송)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라디오에서 영어교통방송·‘Hi Seoul’‘I Love Seoul’ 등의 외국어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TV서울에서도 주한 외국인을 위한 정보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DMB를 추진해 라디오와 TV뿐만 아니라 노트북과 휴대전화로 언제, 어디서나 교통방송의 실시간 정보를 만날 수 있는 ‘유비쿼터스’를 실현하겠습니다. 국제 도시·문화 도시 서울을 널리 알리는 것도 이런 것을 통해서니까요.”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스포츠 포커스] 박주영 신드롬 ‘축구 사랑’ 키웠다

    [스포츠 포커스] 박주영 신드롬 ‘축구 사랑’ 키웠다

    프로축구 K-리그 전기리그가 지난 10일 부산의 우승으로 막을 내리고 45일간의 달콤한 휴식에 들어갔다. 당초 최약체로 꼽힌 부산과 인천이 나란히 1·2위에 오르며 ‘개미군단의 반란’을 주도했고, 지난해 통합챔피언 ‘레알 수원’은 하위권(9위)으로 추락했다. 절대강자도, 절대약자도 없는 프로축구의 판도 변화는 축구를 한층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축구팬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이거나 안방과 술집 TV앞에서 환호케 한 것은 이제 갓 스무살의 박주영(20·FC서울)이었다.‘축구 천재’라 불리며 23년 프로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든 박주영은 과거 큰 체격에 힘과 스피드, 체력만을 강조하던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플레이 스타일을 180도 바꿨다. 좁은 공간에서 군더더기없는 간결한 동작으로 수비수 2∼3명을 가볍게 제치는 드리블과 볼의 흐름을 살려놓으며 감각적으로 날리는 슈팅 등 박주영의 축구는 ‘미학’에 가까웠고 축구팬들은 그의 몸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박주영 신드롬’에 열광했다. 실제 5경기 연속골,2회 해트트릭, 전기리그 득점선두 등 개인 성적도 놀라웠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 편에서는 ‘박주영 아닌 다른 구단, 다른 선수들은 모두 들러리냐.’는 볼멘 소리도 있었다. 특히 언론매체 등에서 박주영이 골만 넣으면 승리팀도, 더 큰 수훈선수도 모두 뒷전으로 제쳐둔 채 보도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그러나 박주영으로 인해 올시즌 ‘축구의 파이’는 더욱 커졌다. 소속팀 FC서울은 물론 나머지 팀들도 박주영만 왔다하면 모조리 올시즌 최다관중 기록을 갈아치웠다. FC서울은 지난 10일 상암월드컵경기장 포항과의 경기에서 4만 8375명이 입장, 프로축구 역대 한경기 최다관중 및 최단경기(12경기) 30만 관중 돌파 기록을 세웠다.‘전통의 야구도시’인 부산에서조차 지난 6일 FC서울과의 경기때 3만 3000명이 입장, 올시즌 최다관중 기록을 세웠고, 광주도 지난 4월27일 FC서울과의 경기에서 2만 1307명이 입장했다. 이밖에 울산 문수경기장, 인천 문학경기장, 성남종합운동장, 광양경기장 등도 FC서울과 경기만 가지면 ‘관중 신기록’이었다.‘전국구 스타’인 셈이다. 물론 박주영 외에도 K­리그 인기의 밑거름은 곳곳에 있었다. 3년째 부산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안 포터필드(영국) 감독이 ‘영국식 포백’을 부산축구에 접목시키며 7승4무1패로 팀을 우승시킨 점과 브라질 출신 포항 파리야스 감독이 선보인 화끈한 공격 축구 역시 ‘A매치가 아닌 축구’도 재미있다는 점을 축구팬들에게 알려줬다. 또한 J리그 감독 출신인 장외룡 감독이 ‘큰형 카리스마’로 이끄는 인천 역시 부산, 인천과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까지 치열한 우승 다툼을 벌여 팬들의 관심을 고조시킨 일등공신이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열린세상] 여성의 원형이 사라진다/이경자 소설가

    얼마 전 밤 아홉시 뉴스에서 이런 것을 봤다. 아주 날씬해 보이는 젊은 여성이 다이어트 전문업소에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날씬한데 왜 살을 빼려느냐고 물으니까 아직 자신의 목표치가 안 됐다고 말했다. 자신은 배우 누구와 같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말라 보이는 또 다른 여성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 여성은 거의 광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날씬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살을 빼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날씬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날씬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 여성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공포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왜 여성은 날씬해지려고 할까. 지금 이십대로서 살을 빼려고 하는 여성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몸은 ‘바비인형’의 몸이다. 바비인형은 이십대 여성들이 어린 시절 즐겨 데리고 놀아주던 인형이다. 노랗거나 검붉은 색깔의 머리털에 살집이 없다. 작은 얼굴에 눈은 크고 코는 높다. 다리는 가늘고 길며 가슴은 다른 데 비해 큰 편이다. 어린 소녀는 그 인형에게 헝겊 옷을 입히고 머리핀을 꽂아주고 작은 이불 속에 눕혀서 의사놀이도 하고 엄마놀이도 하였을 것이다. 소녀는 우유로 길러지고 거버 이유식으로 젖을 떼고 서양 만화영화를 보며 상상력과 꿈을 키웠으며 바비인형을 사랑했을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소녀는 외제 화장품 광고의 늘씬한 서양 모델이 익숙할 것이고 명품 옷을 선전하는 배우나 전문 모델의 체형을 선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화장품이나 명품 옷을 선전하는 모델은 사람으로서의 그가 아니라 옷과 구두와 화장품을 돋보이게 하는 판촉 역할에 초점이 맞춰진 사람들이다. 그 사람의 몸매나 표정이나 얼굴은 구매력을 불러일으키기 가장 좋은 모습으로 연출된다. 조명이 사람을 어떻게 달리 보이도록 하는지, 사진을 찍어보면 안다. 아무리 화장을 잘해도 조명이 받쳐주지 않으면 돋보일 수가 없다. 영상과 사진은 거의 조명의 마술이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비인형 세대는 그렇게 연출된 상업주의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기도 전에 상업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광고’에 마취된다. 광고의 누구처럼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장사꾼들은 마약판매상들처럼 광고를 바꿔가며 구매력을 확대 재생산시킨다. 그래서 광고주들은 그 시대 가장 잘 나가는 배우를 즉각적으로 광고모델에 쓴다. 상품판매와 흥행의 공생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이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여성이 여성인 것은 아이를 낳는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 골반과 젖가슴이 풍성하게 발육한다. 아이집인 자궁을 받쳐주는 골반과 갓 태어난 생명에게 평생 살아가는 동안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할 내성(耐性)을 길러주는 신비한 초유(初乳)를 흘려보내는 젖가슴은 그 가치가 우주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성이 여성인 것은 바로 이 기능 때문이다. 사람을 낳을 수 있는 힘. 여성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바로 출산의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아름답고 보기 좋은 여성의 몸은 여성의 본질적인 가치와 생물로서의 기능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는 몸, 질이 좋은 젖을 많이 낼 수 있는 몸이다. 아이를 잘 낳으려면 자궁이 튼튼해야 하고 자궁이 성장하는 시기에 여성은 건강해야 한다. 자궁이 성장하는 시기에 건강한 여성의 몸.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몸일 것이다. 천하의 미인이라고 하는 양귀비는 오동통한 외모를 가졌다. 얼굴도 ‘복스러운’ 모양으로 살이 붙었다. 요즘 태어나는 유아에게 유난히 잘 나타나는 질병들은 기실 태아가 겪어내는 자궁 속에서의 총체적 영양 부족이거나 자궁 자체의 환경이 생명에 좋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사람의 몸은 정신과 육신으로 되어 있으며 몸은 정신의 집이거나 옷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자기 원형을 거부하거나 비하하는 극단적인 현상이 이 시대 다이어트 광풍이 아닐까. 여성이 여성 자신을 버리려고 할 때, 여성의 몸이 더 이상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는 몸이 되거나 아이를 낳기에 부적절한 몸이 되어 갈 때,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슬프고 우울하다. 이경자 소설가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줄기세포와 생명윤리(상)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줄기세포와 생명윤리(상)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내놓자 생명윤리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황 교수는 줄기세포 배양에 반대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와 지난 달 15일 만났다.‘생명윤리’를 주제로 한 학계와 종교계의 첫 만남이다. 정 주교는 황 교수에게 “배아줄기세포 활용보다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게 윤리·도덕적으로 낫다는 점을 유념해 달라.”고 말했다. 수정은 인간 생명의 시작인데 배아 파괴는 인간 파괴이며, 황 교수의 줄기세포를 인간배아로 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게 천주교측의 논리다. 그러나 황 교수는 “난치환자로부터 얻은 피부세포를 체세포 핵이식이라는 기술로 유도한 줄기세포는 수정의 과정을 일절 거치지 않았고 착상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정 주교에게 설명했다.●줄기세포란 무엇? 세포는 생물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다. 세포 기관 중 유전정보를 가진 중요한 기관이 핵이다. 핵에는 염색체가 있는데 염색체에는 유전정보를 가진 DNA가 들어 있다. 미토콘드리아라도 DNA를 가지고 있다. 세포는 체세포와 생식세포로 나눌 수 있다. 체세포는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이고 정자와 난자가 생식세포다. 줄기세포(Stem Cell)는 간이나 심장 등 장기를 형성하기 직전 단계의 세포다. 커다란 나무줄기가 잔가지를 뻗어내듯이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세포라는 뜻에서 줄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수정란이 되는데 14일이 안된 배아기의 줄기세포를 배아줄기세포라고 한다. 이는 모든 신체 장기로 분화해 성장하는 ‘만능세포’다.1개의 세포에서 210종의 인체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뼈와 간·혈액 등 장기의 세포로 분화되기 직전의 원시세포는 성체줄기세포라 한다. 제대혈(탯줄 혈액)이나 어른의 골수와 혈액, 태반에 들어있다.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이미 성장한 조직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윤리논쟁을 피할 수 있다. ●생식세포 복제, 체세포 복제 생식세포 복제란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수정란의 분할과정에 있는 난세포(할구)를 공여핵세포로 이용하는 복제방법이다. 현재 있는 생명체를 복제하는 것은 아니고 태어날 생명체를 복제하는 것이다. 수정란이 8세포로 분열하였을 때 세포를 감싸고 있는 막을 단백질 분해 효소로 녹여서 세포를 각각 분리한다. 분리된 세포를 핵을 제거한 다른 난자에 넣는 핵치환을 한다. 이렇게 해서 8개의 새 수정란을 얻어 염색체가 동일한 8개의 생물을 복제할 수 있다. 체세포 복제는 생식세포인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피부 등 다른 체세포의 핵을 분리한 뒤 난자에 넣어 배양하는 방법으로 유전정보가 똑같은 생물로 복제할 수 있다.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킨 것이 이 방법이다. 체세포 복제 수정란을 배반포기 단계(보통 4∼5일)까지 배양, 세포덩어리를 떼어내 배아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복제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하면 인간이 복제된다. 과학자들은 인간복제는 물론 허용해서는 안되지만 배아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치료용 인간 체세포복제(배아복제)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제부터 인간인가 수정란은 두배수씩 세포분열을 해 둘, 넷, 여덟개로 세포가 늘어난다. 한번 더 분열을 해 16할구 세포가 되면 딸기 모양이 된다. 이때가 14일쯤 되는 시점으로 이후 각각의 세포는 구체적인 신체기관으로 성장하게 된다. 즉,14일이 안된 배아기의 만능세포가 줄기세포이어서 14일이 인간 개체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기준시점이 된다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과학자들이 14일 이전 단계의 세포들을 조작해 원하는 장기로 발육시켜 치료에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수정란은 수정된 즉시 한 영혼을 가진 생명으로서 태아로 간주한다.‘인간이 될 것은 이미 인간’이라는 논리다. 이것이 생명윤리 논쟁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복제와 줄기세포 연구과정 동물의 태아를 이용한 복제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902년 스위스의 스페만은 도롱뇽의 수정란이 두개의 세포로 분리되는 순간 갓난 아기의 머리카락으로 갈라놓아 유전적으로 똑같은 두 도롱뇽으로 길러냈다.50년 뒤인 1952년 미국의 브릭스와 킹이 개구리 수정난의 핵을 제거하고 개구리 태아에서 추출한 핵을 넣어 올챙이로 성장시켰다.1962년 영국의 거든은 개구리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다른 올챙이 창자 세포의 핵을 이식해 다수의 복제 개구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포유류가 아닌 동물에서 체세포복제에 성공한 첫 사례다. 포유류에서는 성공하지 못하다가 미세 조작 기술을 이용한 배아 세포의 분리, 핵 제거 및 치환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생식세포 복제가 가능해졌다. 수정란을 나눠 배양해 대리모의 자궁을 빌려 복제 동물을 출산하는 기술은 생쥐(1981년), 면양(1986년), 토끼(1988년), 소와 돼지(1989년) 등에서 성공했다. 1996년 7월 5일, 영국의 윌머트와 캠벨이 체세포 유전자를 이용해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다. 세계 최초의 생식세포가 아닌 체세포를 이용한 포유동물 복제다. 윌머트 박사는 6년생 암 양의 유방 세포에서 핵을 꺼내 다른 양의 미 수정란에 있는 핵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넣었다. 이를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해 태어난 게 돌리다. 하지만 난자를 제공한 양과 체세포를 제공한 양이 달라 각기 다른 미토콘드리아 DNA가 혼합돼 엄밀한 의미의 ‘완전 복제’로 볼 수 없다. 이후 미국에서는 생쥐를, 일본과 뉴질랜드에서는 소를 복제했다. 우리나라 황우석 교수도 1999년 세계 5번째로 복제 송아지 영롱이를 탄생시켰다. 황 교수는 2002년에는 형질전환 복제돼지를 국내 최초로 탄생시켰고 2003년에는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다. 인간의 배아복제가 시도된 것은 1993년이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홀 교수팀은 17개의 배자를 인공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48개로 복제해 냈다.1998년 세계 최초로 위스콘신대 톰슨 박사팀이 인공수정을 하고 남은 배아에서, 존스홉킨스대의 기어하트 교수팀이 유산된 태아의 성체세포에서 각각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해 냈다. ●황우석 교수의 잇단 개가 2000년 8월 9일 황 교수는 한국인 남성에게서 채취한 체세포로 복제실험을 해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하는데 성공, 세계 15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황 교수는 2004년 2월 세계 최초로 수정되지 않은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여성의 난자 주변에 붙어 있는 난구(卵丘)세포 핵을 옮겨 심는 방법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미토콘드리아 DNA까지 동일한 완전복제다. 2005년 5월에는 척수신경 마비, 당뇨병, 면역 결핍 등의 질환이 있는 환자 11명에게서 피부세포를 떼어내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어떤 여성이 제공한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환자들의 피부세포 핵을 넣어 환자의 세포를 복제한 것이다. 언젠가 이렇게 만들어진 줄기세포를 당뇨병, 파킨슨씨병, 알츠하이머병 등을 앓고 있는 환자의 손상된 조직에 이식,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10년간 생선회 논문만 31편 부경대 조영제 교수

    10년간 생선회 논문만 31편 부경대 조영제 교수

    “갓 잡은 활어회와 저온에서 숙성시킨 생선회 중 어느 것이 육질이 더 쫄깃합니까?”(횟집 창업을 준비 중인 50대),“비올 때 생선회를 먹어도 됩니까?”(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40대 횟집 여주인)“저온에서 숙성시킨 생선회(일명 싱싱회)가 육질이 더 단단해서 씹히는 맛이 좋습니다. 비올 때 생선회를 먹어도 됩니다.”(부경대 수산과학대학 식품공학과 조영제 교수)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인 5일 오후 부산 남구 대연동 부경대 수산과학대학관 생선회 전문가 과정 강의실. 무스를 바른 20대 청년과 머리가 희끗희끗한 40∼50대 중년층, 횟집 여주인 등 40여명의 수강생들은 조 교수의 입이 열릴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진지한 모습으로 수업을 경청했다. 조 교수가 생선회와 관련된 잘못된 상식을 하나하나 집어나가자 수강생들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화답한다. ●평생교육원서 ‘회전문가 과정´ 강의 세 시간의 강의가 끝날 때쯤 되자 조 교수는 “생선회에 대해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다. 여러분들이 이같이 잘못 알려진 상식을 바로잡고 생선회 식문화의 첨병이 돼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생선회 식(食)문화’ 확립에 앞장서고 있는 조 교수는 ‘생선회 박사’로 더욱 유명하다. 얼마 전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에 들어간 캠퍼스이지만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매일 연구실에 나오고 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생선회 전문가 과정’이 며칠 전에 개강돼 강의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자연산 활어와 양식 활어를 수족관에 넣어 놓았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연구하다 보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습니다.” 올바른 생선회 식문화 보급을 위해 5년 전인 지난 2000년 개설된 생선회 전문가 과정은 생선회 관련 업종 종사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수료생만도 500명이 넘는다.‘생선회 전문가 과정’은 부산지역의 웬만한 횟집 및 일식집의 사장과 주방장들은 다 거쳐갔다. 부산을 비롯, 울산, 경남, 대구는 물론 멀리 대전과 강원 등지에서도 강의를 들으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어·고등어는 두껍게 복어·넙치는 얇게 조 교수는 생선회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에서부터 생선회의 물리적·화학적 특성, 생선회의 맛 향상법 등 요리사들이 꼭 알아야 할 실무용 이론과생선 육질에 따라 써는 방법을 달리하는 기술적인 분야 등에 대해 강의를 한다. 그는 “육질이 부드러운 방어·고등어 등의 고기는 두껍게 썰고, 복어나 넙치처럼 육질이 단단한 생선은 ‘나비가 날아가듯’ 얇게 썰어야 제맛이 난다.”고 귀띔했다.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조 교수는 초등학교 때 꽤나 공부를 잘한 학생이었다. 그는 마산의 명문인 마산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수산대학(현 부경대)을 선택하게 된다. 국립인 수산대학은 학비가 비교적 저렴할 뿐 아니라 당시 원양어업 등 수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의 지원이 잇따르는 등 인기가 매우 높았다. 전공으로 식품공학을 선택한 조 교수는 모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일본 홋카이도대학으로 유학,1985년 생선회의 근육단백질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에 돌아와 모교 강단에 섰다. 원래 수산가공식품 분야의 연구를 하던 그는 생선회에 대한 국내 연구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생선회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90년 저온 숙성한 생선회의 육질이 더 쫄깃하고 맛있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갓 잡아서 회를 쳤을 때보다 잡은 후 5∼10시간 뒤가 가장 쫄깃하고 섭씨 0∼5도에서 저온 저장하면 육질이 더 좋아졌다는 것. 또 영하 12도 용액에 생선을 담가두면 비브리오 패혈증균 등 살균은 물론 육질도 향상되는 점 등도 밝혀냈다. 이같은 결과가 매스컴에 보도되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10여년 뒤 그는 생선회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권위자로 우뚝 서게 된다. 그동안 생선회와 관련한 연구 논문이 31편에 달한다. 또 박사 3명과 석사 8명이 조 교수의 지도 아래 생선회 관련 학위를 받았다. 교수는 이후 ‘즉살(卽殺) 활어의 저온저장에 의한 육질향상’ ‘전기자극을 이용한 생선회 육질향상’ ‘냉각해수를 이용한 활어의 대량수송법’ ‘생선회 육질향상기’ 등의 기술을 개발, 모두 특허를 취득했다. 그는 생선회 육질 연구에 그치지 않고 생선회를 잡아 저온 저장해 일정한 시간 뒤에 먹는 선어회를 순수 우리말인 ‘싱싱회’로 이름 짓고 싱싱회 보급 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는 “활어회와 비교할 때 싱싱회가 육질의 단단함이 뛰어나며, 혀로 느끼는 맛도 10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2003년 1월에는 올바른 생선회 문화 보급을 위해 사단법인 한국생선회협회를 설립했다. 생선회협회에는 이 대학 연구과정을 수료한 횟집 주인들이 참여하고 있고 그는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외식산업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생선회이지만 변변한 정규 교육기관 하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우리말 용어 보급·표준화 작업 조 교수는 또 일본어가 판을 치는 생선 용어에 대한 정리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생선회 관련 일본말 16개를 우리 말로 고친 포스터 3000장을 만들어 부산과 경남지역 횟집 등에 배포했으며, 생선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비브리오 패혈증을 3군 법정전염병에서 제외시키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현재 육류는 1인분이 g단위로 계량화돼 있지만 생선회는 그렇지 않다.”면서 “생선회 1인분과 양념장 등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표준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생선회의 식문화 발전 등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4월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생선회 100배 즐기기’ ‘생선회가 웰빙이다’ 등이 있다. 조 교수는 “일본이 초밥을 세계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우리 생선회도 국제화 및 브랜드화해서 세계 각국에 널리 보급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9)

    사연 : 매일「직장술」마시는 남편의「외박불연락」 친애하는 Q여사, 이런 말씀 물으면 어리석은 여인이라고 하실까요? 그렇지만 바가지장이 여편네가 되기보다 Q여사의 현답을 듣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여인이 되겠습니다. 저는 세 살, 한 살의 남매를 키우는 30세 주부입니다. 남편은 모반관반민업체의 주사입니다. 아마 소위 자리가 좋은 데인 모양이에요. 술 산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의 반만 응해도 매일 밤이 된다는 거예요. 술 마시는 것까지는 저도 이해해요(물론 건강은 걱정되지만). 그러나 철야로 술을 마시고 게다가 전화연락조차 없습니다. 걱정이 되어서 못 살겠습니다. 그렇다고 바가지를 긁어댈 수는 없고 그것이 별 효과도 없을 것 같아요. 저의 양처(良妻)로서의 관록을 유지하면서 남편의「외박불연락」습관을 고치는 법은 없을까요? <서울 제동 준이 엄마> 의견 : 꾀병 공세와 시위를, 애교 있는 보복책도 이제 갓 서른인데 그렇게 현명한 처신을 하시는 것을 보면 준이 아빠가 얼마나 행복한 남편인가 알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착하디 착한 아내에게는 가끔 싫증을 느끼는 것이 남편들의 고약한 버릇이랍니다. 종종 애교 있는 바가지도 긁고 떼도 써 보는 아내여서 자기가 가부장적인 권위로 군림할 수 있었으면 하는 심리는 준이 아빠에게 없을까요? 요다음 외박하시거든 한 번 시위를 해 보세요. 밤새도록 걱정이 되어 잠을 못잤더니 병이 났다고「링게르」라도 맞는 시늉을 하는 꾀병 정책. 외박한 다음 다음날쯤 이쪽도 아무 말없이 친정으로 가버리는 보복 정책 등. 그러나 물론 남편이 굴복하고 마는 형식이 되게끔 일을 끌어가지는 말고 단지『나도 화낼 줄 아는 사람인 줄 아시죠?』정도의 상냥한 정책이어야 된다는 것은 아시겠죠? <Q>
  • XTM 올빼미영화제 13일부터

    케이블 영화오락채널 XTM이 여름을 맞아 시청자를 위해 열대야를 잊게 하는 특별 이벤트를 마련했다. 최신 영화를 밤새도록 감상할 수 있는 ‘올빼미영화제’를 다음 큐브와 함께 연다.오는 13일부터 5주 동안 매주 수요일 부산(13일) 대구(20일) 광주(27일) 대전(8월3일) 서울(8월10일)을 돌며 2150명의 시청자를 ‘영화의 밤’으로 초대한다.마다가스카, 시티 오브 갓, 여고괴담4(부산 CGV서면), 로봇, 사랑은 타이밍, 아일랜드(대구 아카데미 시네마), 더 로드, 루시아, 친절한 금자씨(CGV광주), 가발, 로코코 소녀, 버터플라이(CGV대전), 썬데이서울, 오픈 워터, 찰리와 초콜릿 공장(서울 CGV강변·상암) 등 15편이 준비됐다.XTM홈페이지(www.xtmtv.com) 등을 통해 신청하면 추첨을 통해 선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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