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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전 미래는 서비스 ·환경산업 사회 공헌하는 기업 일굴 것”

    “선전 미래는 서비스 ·환경산업 사회 공헌하는 기업 일굴 것”

    │선전(광둥성) 박홍환특파원│“사회에 공헌하는 훌륭한 기업가를 많이 배출하도록 해야겠다는 것이 바로 덩샤오핑 동지가 당초 가졌던 개혁·개방의 취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1988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인 광둥성 선전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약관을 갓 넘긴 청년은 이제 40대 중반의 어엿한 장년으로 성장했다. 선전 스뤄파(世羅發)포장유한공사 펑정우(彭政武·44) 사장은 선전의 발전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중국 개혁·개방 30년의 산증인이다. 지난 25일 선전 시내 호텔에서 만난 펑 사장은 “개혁·개방을 뒤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미 제조업 육성으로 많은 성공을 거둔 선전은 앞으로는 금융, 서비스, 환경보호 산업 등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처음 왔을 때 수십만명에 불과했던 선전시가 상주인구만 1200만명이 넘는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며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후난(湖南)성 성도 창사(長沙)에 있는 후난대학 전기공학과 졸업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온 펑 사장은 타이완 기업과 일본 히타치의 현지법인 등을 거쳐 18년 만인 2006년 현재의 회사를 창업했다. 삼성과 캐논 등 세계적 기업의 협력회사로 환경친화형 포장재를 생산해 납품한다. ‘중국판 386세대’인 그는 당초 정부 연구기관 등의 공직 진출도 제안 받았지만 개혁·개방 10년째를 맞은 선전의 실상을 알기 위해 주저없이 선전행을 택했다. 그리고 선택은 적중했다. 펑 사장은 지금 의사 부인, 고2 아들과 함께 상대적으로 평온하고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최고 명문인 칭화(淸華)대에서 석사 학위도 취득했다. “우리는 행복한 세대”라고 운을 뗀 펑 사장은 “사회에 좀 더 공헌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생각을 많이 한다.”며 “환경친화형 기업을 창업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그에게 중국 건국 60년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국 인민들의 각성과 강대해진 중국 아닐까요.” stinger@seoul.co.kr
  • “영어·특기적성 교육… 수업료 年600만원선”

    “영어·특기적성 교육… 수업료 年600만원선”

    “공립이 좋을까요. 사립이 좋을까요. 초등학교 선택부터 만만치 않네요.” 서울 홍은동에 사는 박지은(35·여)씨는 요즘 아이를 어느 초등학교에 보낼지 고민이 한창이다. 주변에선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는 “아무래도 사립초등학교 교육프로그램이 훨씬 다양하고 환경도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사립은 학비가 비싸고 가까운 공립학교보다 버리는 시간도 많아진다.”고 했다. 박씨도 양쪽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사립초등학교는 교육과정이 다양해 학부모가 신경을 덜 써도 된다. 그러나 교육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또 스쿨버스가 있다지만 갓 유치원 마친 아이를 멀리까지 보내는 일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11월 초 전국 사립초등학교들이 원서 접수에 들어간다. 초등학교 입학연령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고민도 함께 시작됐다. 공립과 사립 둘 다 장단점이 존재한다. 둘 가운데 어디를 보낼지 고민하는 학부모를 위해 각 사립초등학교의 특징과 교육과정을 소개한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장점 사립초등학교의 장점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특히 영어와 특기적성 교육이 두드러진다. 영어의 경우 공립학교는 원어민 강사가 학교당 1명씩 배치된다. 사립은 학년당 혹은 학급당 1명 이상 배치된다. 영어체험센터, 영어마을 등 학교 자체적으로 영어와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을 따로 조성하기도 한다. 이외에 악기, 창의력 교육 등 특성화 교육도 활발히 이뤄지는 편이다. 현재 사립초등학교 대부분은 영어몰입교육이나 수준별 영어수업을 하고 있다. 특히 서울 강북구의 영훈초는 10년 가까이 전과목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모든 학급에 담임교사와 함께 외국인 교사가 배치돼 몰입수업을 진행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영어몰입수업의 효과가 입증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영훈초에서는 일정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은석초(서울 동대문구)는 한 반을 수준별로 나눠 맞춤식 영어·수학 교육을 실시한다. 경복초(서울 광진구)는 미국 교과서로 수업하는 ‘유학 예비교육반’을 운영하고 있다. 한양초(서울 성동구)는 미국 교환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비교과 영역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홍대부속초(서울 마포구)는 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 세종초(서울 광진구)는 전교생에게 리듬체조를 가르친다. 경기초(서울 서대문구)는 수영과 스키, 악기 한 가지씩을 의무적으로 가르친다. 운현초(서울 종로구)는 창의력 개발에 초점을 맞춰 사고력 지도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동산초(서울 중구)는 1~2학년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다. 부산 혜화초는 영어뿐만 아니라 일어, 중국어까지 가르친다. 강원 동해초는 국제반을 별도로 운영하고 전교생에게 서예와 사자소학 등도 가르친다. 경남 거창 샛별초는 다양한 예체능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통학거리·분위기 등 따져봐야 장점도 분명하지만 단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걸어서 통학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이 위치한 공립학교와 달리 사립은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통학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비용을 따로 내야 한다. 유치원을 갓 마친 아이가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부모 입장에서는 신경 쓰이는 일이다. 매일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하는 불편도 있다. 교육환경이 다양한 만큼 학비도 비싸다. 공립학교는 급식비 이외에 다른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러나 사립의 경우 수업료만 분기별로 150만원 안팎을 내야 한다. 또 특기적성활동이나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추가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주변 아이들과 맞추기 위한 사교육비까지 생각하면 공립보다 비용은 훨씬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공립도 장점이 적지 않다. 다양한 환경의 학생들이 어울려 공부를 하기 때문에 풍부한 대인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리더십과 조직력 키우기에도 좋다. 전문가들은 “어릴 때부터 성적이나 특기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건 장기적으로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반면 공립은 급식이나 청소 등 학부모의 참여를 요구하는 활동이 많아서 맞벌이 부부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역이나 전통, 학교 크기에 따라 교내 분위기에도 많은 차이가 난다.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일부 학교의 경우 신앙교육도 실시한다. 여러가지 변수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도움말:전국 사립초등학교협의회
  • [엄마와 읽는 동화] 둠벙 할아버지/장수명

    [엄마와 읽는 동화] 둠벙 할아버지/장수명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다. “휴, 비는 언제 온담.” 바싹 마른 바닥에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기호가 타박타박 걷는다. “기호, 이제 오니?”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기호를 보자, 우물가로 가시더니 두레박에서 물을 퍼 올린다. “기호, 이리 온. 할애비가 등목 시켜줄 테니.” 할아버지는 기호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말했다. 우물에서 갓 퍼 올린 물은 얼음 같다. “아~, 차차 차가워. 할배.” 기호가 엎드렸던 몸을 발딱 일으켜 세우며 호들갑을 떤다. “원, 녀석도 뭐가 차갑다고 호들갑이누.” 할아버지는 길러 놓은 물을 할아버지 몸에 퍼붓는다. “피, 할아버지 억지로 참는 것 다 안다 뭐.” 기호가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팔딱팔딱 뛰어 툇마루로 재빨리 올라선다. 몹시도 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하지만 어찌나 긴 가뭄을 겪었는지 논바닥은 쩍쩍 갈라지고 제대로 자란 벼도 그다지 없었던 농사는 가을이 되어도 별로 추수할 거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둠벙을 하나 파야겠어.” 할아버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둠벙을 파신다고요?” 작은아버지의 낯빛이 싸늘해졌다.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 되지 싶다. 저기 윗마을에 있는 우리 논에….” 할아버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작은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버지, 그 논에 둠벙을 판다는 게 말이 돼요. 다른 사람들 다 가만있는데 왜 번번이 아버지가 나서요. 지난 번 영식이네가 돌아왔을 때도 문중에서 모두 가만있는데 아버지가 나서서 그 위에 있던 논 한 마지기하고 밭 한마지기 털컥 떼 주더니 이번엔 또 우리 논에 둠벙을 판다고요?” 작은아버지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다 할 참인가 보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목청을 돋우기 시작했다. “그래요. 아버지 땅이니까 아버지 마음대로 하세요. 난 이제 이곳을 떠나서 살 거예요. 더는 농사짓기도 싫고, 이곳도 지긋지긋하고….” 작은아버지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할아버지는 한동안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런 작은아버지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시더니 천천히 몸을 움직여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허참, 쟤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네.” 할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지으며 먼 산으로 눈길을 돌리신다. 몇 날이 지났다. 집안 분위기는 잔뜩 가라앉아 숨조차 마음대로 쉬기 어려울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기호는 늦잠을 잔 탓에 허겁지겁 밥을 먹고 가방을 둘러메고 잰걸음으로 학교로 달려갔다. 일교시가 끝날 무렵이었다. “기호야.” 작은아버지가 학교로 찾아 왔다. “작은아빠, 작은아빠가 웬일이세요?” 기호는 멀뚱멀뚱한 눈빛으로 작은아버지를 올려다 본다. “오늘, 12시 차로 작은아빠는 작은엄마하고 서울 올라가려고 한다.” “서울요?” “넌, 할아버지와 있다가 우리가 자리잡고 연락할 테니까, 그때까지 학교 잘 다니고 할아버지랑 잘 지내도록 해야 한다.” 기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학교에 찾아와서 서울 간다는 작은아버지의 말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작은아빠, 정말 갈 거예요? 정말, 나하고 할아버지만 두고, 서울로 갈 거예요?” “그리 알고 수업 마치고 집으로 곧장 가도록 해라. 알았지.” 작은아버지는 이미 마음을 굳혔나 보다. 기호의 어깨를 몇 번 도닥거리더니 총총히 학교를 빠져나갔다. ‘서울….’ 느닷없이 나타나 서울 간다는 작은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호가 작은 주먹을 움켜잡는다. 기호도 가고 싶던 서울이다. 하지만 작은아버지처럼은 아니다. 기호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읜 기호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를 친부모처럼 따랐는데, 덜컥 기호를 두고 간다니….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가 없는 집은 마치 빈집처럼 휑하기만 했다. 바닥 가장자리 천이 닳고 닳아서 헤져 작은 구멍이 난, 아주 오래된 낡은 배낭을 할아버지는 찾아냈다. 다 먹은 주스병에 물을 담아 배낭에 챙겨 넣고, 반찬 몇 가지며 밥도 챙겨 넣었다. 그리고 허벅지까지 오는 고무장화도 차곡차곡 접어서 배낭에 넣는다. “할아버지 어디 가요?” “그래 기호야, 할아버지 좀 늦게 올지도 모르니까 밥 알아서 챙겨 먹어라.” 헛간에 세워져 있던 삽자루를 자전거 뒤에 싣고 할아버지는 대문을 나선다. “할아버지, 윗마을 가요?” “그래.” 여름 내내 비 한 번 오지 않았던 날씨 탓에 논바닥은 마치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펌프로 물을 뽑아 올렸지만 그것도 한정이 있었다. 듬성듬성 누렇게 말라 다 타버린 나락줄기를 만지던 할아버지 얼굴은 일그러져,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배낭을 벗고, 할아버지는 삽으로 논바닥을 뒤집기 시작했다. 뿌연 흙먼지가 삽을 따라서 하얗게 일어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할아버지 손등으로 올라온 굵은 핏줄 위로 땀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논바닥은 거의 다 뒤집혀져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몇 날이 지나고 몇 달이 흘렀다. 할아버지는 마치 곧장 일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바람 쌩쌩 부는 겨울이 되었는데도 하루도 쉬지 않고 논으로 갔다.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날리는 날이다. “할아버지 이제 그만 쉬었다가, 날씨 풀리는 봄에 해요.” 기호가 할아버지를 말렸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기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어김없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처럼 사람 손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할아버지를 따라 윗마을로 간 기호의 눈은 화등잔처럼 커졌다. 윗마을 논은 움푹 파인 분화구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떠냐! 기호야.” 기호는 말문이 막혔다. 아침 햇살을 받고 선 할아버지의 얼굴이 그처럼 빛나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이제 저 곳에 연도 심고, 고기도 놓아 기르면서 우리 마을 농업용수로도 쓰고, 너희들이 장가를 가서 자식을 낳으면 수생생물들의 생태를 공부할 수도 있는 학습장이 되게도 할 테다.” “할아버지 정말 대단해요! 혼자서 이 넓은 땅을 팠단 말이에요!” 기호는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우며 말했다. “다행히 저 산 가까운 아래쪽에서 물이 샘솟는구나.” 시간이 지나자, 둠벙엔 물이 차기 시작했다. 봄비도 알맞게 내려주었다.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둠벙으로 가서 연도 심고, 수초도 곳곳에 심으셨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할아버지 바람처럼 둠벙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찰랑거리는 잔물결도 만들었고, 그 위로 잠자리도 날아다녔으며, 어느 날부터인가 오리 몇 마리가 날아들어 둠벙 이곳저곳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해를 거듭할수록 둠벙은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얼굴은 점점 야위어 가고 몸도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어디 편찮으신 것 아니에요. 병원에 가 봐요!” “아니다. 내 병은 내가 잘 안다.” 그러고 보니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가 집을 나간 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동안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작은아빠 오시라고 할까요?” “끄응….” 작은아버지라는 말에 할아버지가 돌아누우시며 앓는 소리를 내신다. 할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자 기호는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찾아 뒤적인다. “작은아빠, 저 기호예요. 지금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세요. 빨리 내려오셔야겠어요.” 일요일 아침이었다. 몇 날 동안 대문 앞을 기웃거리던 기호를 보자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게서 며칠 동안 왜 그러누?” 그때였다. “기호야!”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다. 순간 할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귀밑 볼이 불그레해졌다. “창이 왔구나! 어서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작은아버지 손을 덥석 잡아 끈다. “아버지, 죄송해요.” 작은아버지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이제 작은아버지는 서울로 안 간단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둠벙을 가꾸겠단다. 아침부터 온종일 작은아버지는 둠벙으로 가서 일했다. 작은아버지 손길이 닿은 둠벙은 멋지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연꽃도 더 많아졌고, 부들이며 수초들도 더 많이 자라기 시작했다. 게다가 둠벙 가운데를 가로질러 직접 만들어 놓은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는 둠벙을 찾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인기 최고였다. ‘작은 생태학습장 -둠벙 이야기-’ 작은아버지는 둠벙에 팻말을 세웠다. 둠벙 들머리 정자에 걸터앉아 작은아버지의 바쁜 손길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할아버지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부드러웠다. “기호야, 저 둠벙은 네 것이기도 하다.” 기호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 바람이 둠벙 가운데에 우뚝 선 부들을 살랑대며 춤추게 하고 있었다. *둠벙:둠벙은 물웅덩이의 방언으로서 우리 조상들이 가뭄에 대비해 농촌 곳곳에 만들어 놓은 작은 못으로, 한국형 습지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든 중심이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타인에 대한 배려엔 인색하기 그지없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기호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눠주기,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한 귀중함과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있는 어른이다. 하지만 작은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와는 반대로 요즘의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나눠주면서 얻게 되는 행복과 기쁨, 가까운 것에 대한 귀중함과 소중함들을 한번쯤은 되짚어보며 살아가자는 생각에서 기호의 할아버지를 통해 조금은 느리게 살면서 얻게 되는 삶의 기쁨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작가 약력 아동문학평론 ‘해님이 사는 마을’, 아동문예문학상 ‘지훈이와 할아버지’ 당선으로 등단. 제24회 새벗문학상 수상, 동화 ‘호수에 갇힌 달님’. 주요작품: 동화집 ‘내 이름은 아임쏘리’ 그림동화집 ‘도깨비 대장이 된 훈장님’ ‘동백꽃’ 외 다수. 현재 한라산학교 강사, 서귀포신문 동화연재 중, 제민일보 생활칼럼 집필진 활동 중
  • 선민 “일본활동 3년, 이제 국내서 인정받을 때죠”(인터뷰)

    선민 “일본활동 3년, 이제 국내서 인정받을 때죠”(인터뷰)

    무더운 여름의 기운이 걷히고 가을의 길목에 선 요즘, 편안한 목소리가 감성을 자극한다. 한껏 힘을 뺀듯 하지만 부드러운 음색이 주는 감성은 오히려 강력한 힘이 더해져 더욱 설득력있게 들린다. 내공이 느껴지는 묵직한 목소리다. 일본에서 먼저 데뷔한 이색적인 이력을 지닌 여성 보컬리스트 ‘선민’이 국내 무대로 돌아왔다. 3년만의 새 출발, 목소리는 더욱 깊어졌고 국내 첫 활동에 마음가짐도 굳게 다졌다. 지난 2006년 국내에서 음반을 준비하던 선민은 일본의 톱가수 ‘토시노부 쿠보타’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86년 데뷔해 20년 넘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의 국민가수의 선택을 받은 만큼 선민은 데뷔와 동시, 현지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쿠보타는 “훌륭한 목소리를 지닌 최고의 보컬리스트”라며 손을 내밀었고, 선민은 외국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쿠보타와 듀엣곡을 부르는 행운을 거머쥐게 됐다. 영화 ‘일본침몰’의 주제곡 ‘킵 홀딩 유’(Keep Holding You)가 바로 그 노래. 국내에선 신혜성과 불러 많은 주목을 받았던 곡이다. 아름다운 선율에 R&B 특유의 감성어린 목소리를 뽐내던 선민은 노래 속에서 마치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듯 자유롭게 감정을 지휘한다. 누구보다도 좋은 조건에서 일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그였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달리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야 했다. 일본 전역을 돌며 크고 작은 무대에서 라이브 무대를 경험했고, 일본 데뷔를 위한 기초적 준비인 일본어 레슨을 비롯한 언어교육과 보컬, 작사, 작곡 등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통해 발판을 다져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타지에서의 외로움이였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대형 공연장에서 소규모 공연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대에 섰어요. 한국에 대한 그리움에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너무 고마운 시간들이죠. 경험이란 큰 공부를 하고 온 셈이니까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간 당찬 소녀는 어느새 6장의 싱글과 1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현지에서 조금씩 성장해 갔다. 일본 최고 인기 음악프로그램이자 인기 아이돌 듀오 킨키키즈가 진행하는 후지TV ‘신 도모토쿄다이’(新堂本兄弟) 프로그램에서 2년 가까이 고정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다. 2006년 활동 당시 보아, 배용준 등 한류스타들의 인기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보컬 실력과 귀여운 외모는 일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음악PD 등 관계자들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귀국을 앞두고 열린 쫑파티에서는 일본 아이돌 그룹 ‘킨키키즈’의 멤버 도모토 쓰요시로부터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받기도 했다. 새해 첫 날 주위 2백 명에게 손수 카드를 적어 돌릴 정도로 따뜻한 정을 보인 선민의 마음 덕분이였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왔다는 스타들에게 모두 관심을 쏟을 정도로 한류 열풍이 뜨거웠어요. 방송에서 말도 못할 만큼 긴장하기도 했지만 점차 주위 많은 분들의 응원은 큰 힘이 됐죠. 미국 활동으로 타지에서의 어려움을 겪었던 쿠보타 씨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고요.” 선민에겐 잔잔하거나 역동적인 리듬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목소리가 있다. 때론 강하고 여리게 얼굴을 바꾸는 그만의 목소리는 슬픔이나 기쁨, 다양한 감정 속에서 춤을 춘다. 이 같은 분위기는 새 싱글 ‘슈퍼우먼’(Superwoman)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래 하나하나가 사랑을 주제로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단번에 정의할 수 없는 강한 느낌은 그의 목소리가 지닌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떠나간 사랑을 당당하게 대처하는 슈퍼우먼의 가사가 인상적인 이 곡은 따뜻한 느낌의 빈티지 사운드, 세련된 리듬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자극적인 후크송, 댄스 리듬에 길들여진 현 가요계에서 선민의 목소리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3년만의 국내 활동. 선민은 고국 무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항상 한국이 그리웠어요. 일본에서 겪은 크고 작은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어요. 제 목소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신문NTN 박영웅 기자 hero@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뉴스다큐 시선] 병상침대서 바라본 루게릭병 환자

    [뉴스다큐 시선] 병상침대서 바라본 루게릭병 환자

    사람들의 삶과 죽음 사이에는 인생이 있다. 갓 태어난 손자의 울음소리, 저녁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된장찌개 같은 희로애락이 그 속에 녹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2000여명의 인생엔 오로지 고통만 있다. 정신은 멀쩡한데도 온몸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두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환자가 그들이다. 루게릭병 환자의 사투와 사랑을 그린 김명민·하지원 주연의 영화 ‘내사랑 내곁에’가 24일 개봉하면서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루게릭병 환자 2명과 그 가족들을 만나봤다. 글 사진 동영상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침대 #1 나는 침대다. 세로 2m, 가로 1m. 한 사람이 눕기엔 나무랄 데 없다. 내 양옆엔 접이식 난간 두 개가 달려있다. 나는 서울 대조동의 한 단독주택에 놓여 있는 의료용 침대다. 내 주인 황인필(34)씨는 이곳에 8년째 누워 있다. 26살이던 2001년 10월 왼쪽 팔꿈치를 다쳐 병원에 갔다가 느닷없이 루게릭병 선고를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필씨는 큰 제과회사 케이크부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제빵사로 일하면서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연애도 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을 비롯해 3남매의 맏아들로 엄마 생일마다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집에 갖고 오던 속 깊은 아들이기도 했다. 활동적이라 퇴근 후 취미생활로 격투기를 했는데, 운동을 하다 팔꿈치를 다쳐서 52일간 깁스를 한 것뿐이었다. 이상하게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이 저리기 시작했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자기공명영상(MRI)을 본 의사는 “이 병은 젊은 사람한테 오는 게 아닌데…”라며 머리를 내저었다. 인필씨의 어머니 이순자(62)씨는 지금도 이 순간을 회상할 때마다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2002년 3월 말 루게릭병이란 최종 ‘확진결과’가 나왔어요. 그럴 리가 없다고 병원 바닥에 앉아 울었어요. 오진이 확실하단 생각에 다른 병원으로 갔죠. 그해 5월, 다시 한번 루게릭병이란 얘기를 들었어요.” 22일 오전 7시30분. 어머니 이씨가 내게로 다가온다. 내 위에서 인필씨는 눈을 꿈뻑거리며 혀로 “딱, 딱” 소리를 낸다. 그게 인필씨가 엄마를 부르는 방법이다. 처음에 왼쪽 팔에서 시작된 마비는 2004년 왼쪽 다리를 거쳐 2006년 10월부터는 입과 혀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인필씨는 안정된 호흡을 위해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아 그때부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달싹거리는 입술과 눈짓만 보고도 어머니 이씨는 인필씨가 뭘 원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린다. “TV 켜달라고? 이제 밥도 먹어야지.”라며 이씨는 인필씨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어머니 이씨와 간병인은 하루종일 인필씨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후 1시와 저녁 7시 밥 대신 특수 의료용 식품을 줘야 하고, 수시로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에 낀 가래를 빼줘야 한다. 그나마 인필씨는 마비 속도가 더딘 편이다. 2001년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환자들 평균 수명이 2.7년쯤 된다.”고 했다. 3년 뒤면 아들을 영영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어머니 이씨는 그 뒤 한두 달 동안은 밥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고맙게도 인필씨는 8년이나 버텨줬다. 2002년 5월과 2004년 10월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집 근처 재활병원을 다니면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2006년 8월 말에는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처음으로 호흡곤란이 왔다. 그해 9월 재활병원에 아예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10월부터 전신에 마비가 와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2007년 1월엔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았다. 그때부터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생활한다. 나는 안다. 가족들이 없었더라면 인필씨는 내 위에서 이렇게 오래 머무르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3총사 같이 꼭 붙어 다니던 여동생들은 오빠의 발병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 둘 다 시집 안 가고 오빠 옆에 있겠다.”고 선언했다. 쌍둥이인 지연(34)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오빠 병간호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대신해 97살 할머니의 식사와 빨래도 도맡아 했다. 허리가 아픈 아버지(70)와 어머니 대신 집안의 생활비와 오빠 약값을 책임지는 것은 지연씨와 손아래 동생 미연(31)씨의 몫이다. 오후 1시. TV에 나오는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인필씨가 입을 벌려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화장해.” 누워있는 아들 때문에 너무 많이 늙어버린 엄마가 안쓰러웠을까. 인필씨는 가끔 엉뚱한 말을 꺼낸다. 어머니 이씨는 “너 나으면 엄마가 화장하지. 너만 나아 봐, 엄마가 화장만 하겠니.” 나는 이런 장면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본다. 도저히 희망을 말할 수 없는 곳에서 어머니 이씨가 ‘너 나으면’이라고 희망을 얘기하는 장면을. “소원이요? 하나밖에 없죠. 기적이 일어나서, 치료약이 개발돼서 우리 인필이가 일어나는 거죠.” 그때 인필씨가 더듬더듬 입술을 떼었다. “나 너무 아파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루게릭병으로)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내 옆에 있어준 친구 용선이하고 재활병원 홍승표 팀장님 이름도 신문에 실어주면 좋겠어요.” 침대 #2 나는 인천 용현동의 한 아파트에 놓여있는 침대다. 나는 2005년 10월부터 내 주인 부영옥(67·여)씨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어느날 갑자기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독감예방주사를 맞았는데 가래가 끊이지 않고 계속 기침을 하는 등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그래봤자 독감 정도일 거라고 딸 조은희(35)씨는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병원에서는 “오늘 당장 입원하라. 언제 호흡곤란이 올지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거다. 은희씨는 난생 처음 듣는 ‘루게릭병’이 무슨 말인지 몰라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나오는 루게릭병의 전조 증상은, 부씨가 그해 봄부터 보이던 증상과 완전히 똑같았다. 음식을 먹으면 잘 흘렸고 엉뚱한 곳에서 히죽히죽 웃어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대뇌 신경세포가 파괴되고 입과 혀에 마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은희씨는 “내가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마비가 덜 빨리 왔을텐데…”라며 자주 가슴을 친다. 그런 은희씨를 바라보는 게 안쓰럽기 그지 없다. 내 주인 부씨는 나이도 많은 편이고 폐렴도 자주 걸려 마비 속도가 빨랐다. 발병 4개월 만에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신세가 됐다. 2006년 가을에는 전신마비가 왔고 지난해 10월부터는 눈 깜박임도 없었다. 운영하던 제과점을 그만두고 중국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은희씨는 짐도 미처 챙기지 못하고 황망히 귀국해 엄마를 돌보기 시작했다. “넌 시집가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엄마 옆에 있어.”라면서 4자매 중 막내인 은희씨를 끔찍이 예뻐했던 엄마 부씨였다. 1983년부터 운전면허를 따서 자동차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활달한 성격의 엄마가 서서히 온 몸이 마비되어 가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딸 은희씨의 마음은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중국에 가 있던 은희씨를 내내 그리워했다는 엄마 부씨가 간신히 입을 떼 말했다. “몸은 아파도 네가 옆에 있으니 좋다. 어디 가지 마.” 은희씨는 결심했다. 내가 엄마를 끝까지 모시겠다고. 그때부터 4년간 응급실-중환자실-일반병실-퇴원을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1년에 절반은 병원, 절반은 집에 머물렀다. 은희씨는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부씨의 소변을 받아내고 의료용 유동식을 공급한다. 세 끼 식사에 매 시간 혈압, 체온, 소변량 등을 기록용지에 적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40년간 당뇨병을 앓아오던 은희씨의 아버지까지 쓰러졌다. 그래서 은희씨는 속으로 결심했다. 결혼 같은 건 하지 말자고. 어차피 병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지도 않을 거라고. 결심은 그렇게 했지만 혼자 몸으로 부모님 두 분을 보살피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나날이 늘어갔다. 지난해 9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 박동진(40)씨를 만났다. 동진씨는 “첫눈에 반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고 했다.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남들처럼 영화보러 가고 교외로 나들이 나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동진씨가 병원으로 찾아오면 둘이 나가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고 얘기 조금 하다가 은희씨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동진씨는 용기를 내 작은 반지를 준비했다. 근사한 곳에서 프러포즈를 하려 했지만 길이 막혀 두 시간 만에 돌아왔다. 외출하고 두 시간이 지나면 은희씨는 온통 마음이 병원으로 쏠린다. 결국 다음날인 크리스마스날 “우리 같이 살자.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로 은희씨의 마음을 얻어냈다. “혼자 하던 걸 이젠 둘이 하는데 뭐가 힘드냐.”는 말은 이제 은희씨의 입버릇이 됐다. 지난달 7일 어머니 부씨가 호흡곤란으로 인해 급기야 뇌사 상태에 빠졌을 때도 남편이 옆에 없었더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을 터다. 나이가 많아 불임을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4월 임신을 확인했다. 임신 5개월째의 무거운 몸으로 병간호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엄마에게 아기 얼굴을 꼭 보여주리라는 희망으로 은희씨는 하루를 살아낸다. “지금도 제 배에 엄마 손을 갖다 대면 가끔 턱을 부르르 떨면서 반응을 하세요. 희망이 있는 한 불치병은 없대요. 엄마가 눈을 뜰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며 은희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 루게릭병은 온몸 근육 서서히 위축·마비 호흡근 마비로 수년내 사망 루게릭병(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은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되는 질환으로 사지가 서서히 위축·마비되면서 결국 호흡근 마비로 수년 내에 사망에 이르게 되는 질병이다. 1941년 이 병으로 사망한 미국의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 루게릭(Henry Louis Gehrig)의 이름을 따 루게릭병으로 불리게 됐다. 인구 10만명에 1.5~2명에게서 발병하는 루게릭병은 60~80대에서 주로 발병하고 남성이 여성에 비해 1.5배가량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0~3000명의 환자가 있다고 한다. 루게릭병의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신경영양인자 결핍설, 글루타민산 과잉설, 유전설, 환경적 독소의 작용 등 여러 가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따라서 치료제도 아직은 개발돼 있지 않다. 시중에 나와 있는 릴루텍(Riluzole)은 생존 기간을 수개월 정도 연장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삶의 질을 개선하거나 근력을 회복시키는 데는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루게릭병 환자의 수명은 평균 3~4년이지만 10% 정도는 증상이 점차 좋아지는 양성 경과를 보이며 10년 이상 생존하기도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스티븐 호킹 박사는 1963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도 수십 년째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들이 가장 고통받는 것은 간병인 문제다. 간병인 바우처제도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지원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24시간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루게릭병의 특성상 전문적인 간병인이 절실하다. 한국ALS협회 회장인 이광우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병이 생기면 환자를 돌보느라 가정마저 황폐해져 버린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 루게릭 환자들을 위한 전문 요양소 설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도움주실 분 ●황인필 국민은행 024-21-0738-345 ●조은희 하나은행 8479100-36-17407
  • 3살 범죄자?…英 무서운 아이들’ 골머리

    이제 갓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에 범죄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는 ‘무서운 아이들’이 영국에서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반달리즘과 공공질서 혼란 등의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3세 어린이가 대표적인 경우다. 선데이 타임즈 등에 따르면 영국 역사상 최연소 피의자로 기록되게 된 이 어린이는 사유재산을 훼손한 혐의로 지난 7월 스코틀랜드 스트래스클라이드 경찰에 신고됐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경찰이 가정방문을 해 문제의 3세 어린이와 대화를 갖고 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설명했다.”고 밝혀 조사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3세 피의자’는 이 어린이 하나가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중부지방에서도 또 다른 3세 어린이가 반달리즘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세 소년이 ‘무례한 행동’을 해 경찰의 경고-주의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외신 따르면 스코틀랜드에선 올해에만 최소한 10세 미만의 어린이 10명이 각종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영국에선 매년 평균 6000건꼴로 ‘무서운 아이들(10세 미만 어린이)이 저지른 범죄’가 발생했다. 9세 어린이가 성폭행을 하는가 하면 8세 어린이가 폭행으로 피해자를 큰 중상에 빠뜨리는 등 범죄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예비내각 내무장관 크리스 그레일링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이 범죄가 걱정스러운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는 ‘조각난 영국’으로 불리는 사회적 파노라마의 한 부분으로 (영국에)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있다는 걸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2세 英소년, 세계 최연소 성전환자 된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10대 영국 소년이 세계 최연소 성전환자가 될 예정이라고 대중지 더 선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남부에 사는 12세 소년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스스로 여자라고 인식했다. 이 소년은 부모를 설득해 지난 여름방학 동안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는 등 여자가 될 준비를 했다. 곧 호르몬 치료를 시작할 것이며 성전환 수술을 받을 것이라고 소년의 부모는 밝혔다. 이전까지 성전환 수술을 받은 가장 어린 트랜스 젠더는 16세 독일인 킴 페트라스로, 12세 소년이 수술을 받을 경우 최연소 타이틀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자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등교를 거부하는 중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학교 측은 긴급회의를 소집, 소년을 놀리거나 개명하기 전 이름을 부르는 학생들에게 가차 없이 징계를 내리겠다고 공표했으나 이는 또 다른 반발을 낳았다. 다른 학생의 부모들이 ”소년의 커밍아웃에 아이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학교는 아이들을 가해자로 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더 선은 보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나눔 바이러스] “딸이 못 이룬 꿈 후배들이 이뤄주길”

    [나눔 바이러스] “딸이 못 이룬 꿈 후배들이 이뤄주길”

    “딸은 저 세상에 있어도 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내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16일 서울 종로구 상명대학교 본관에선 특별한 장학금 전달식이 열렸다. 이 학교 1992년 졸업생인 정혜영씨의 어머니 이수연(68 오른쪽)씨는 딸의 이름을 딴 장학기금 1억원을 이 대학 계당장학재단에 전달했다. 그러나 주인공 혜영씨는 이미 10년 전 어머니 곁을 떠났다. 88학번으로 상명대에 입학했던 정씨는 미술학과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했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대 유학 준비 중 미술학도의 길 대신 결혼을 택했다. 1995년 결혼과 동시에 박사과정의 남편을 따라 미국 시카고 콜럼버스에 정착했다. 1999년까지 3살짜리 아이, 남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렸던 정씨는 그러나 둘째 출산 직후 성인호흡장애 진단을 받았다. 사지가 마비되는 희귀병에 정씨는 갓 태어난 둘째의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세상을 떴다. 딸을 하루아침에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잃은 이씨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0년을 하루같이 먼저 간 딸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새웠다. 그러던 중 “딸이 다녔던 상명대에 딸의 흔적이라도 남겨보자.”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학금을 내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 딸이 숨진 10주기를 맞아 사재를 털었다. 이씨가 내놓은 장학금은 혜영장학기금으로 명명됐다. 매년 고인의 후배인 미술학과 재학생 1명이 장학금으로 공부하게 된다. 이씨는 “꿈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리운 딸의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모두 혜영이의 다른 이름이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장학금으로 공부한 미대생들이 딸의 못다한 꿈을 대신 이뤄 미술계에 이름을 떨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계당장학재단 윤태수 이사장은 “애틋한 모정을 살릴 수 있도록 형편이 어려운 학생 위주로 선정해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이의정 “암판정 받고 매일 웃었어요”(인터뷰)

    이의정 “암판정 받고 매일 웃었어요”(인터뷰)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은 달라도 확연히 달랐다. 2006년, 뇌질환으로 ‘3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그녀는 3개월은 고사하고 3년을 훌쩍 넘겨 아주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시한부’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쌩쌩’하고 밝았다. 일각에서는 그녀의 암투병이 거짓이 아니었냐는 불순한 추측이 나올 만큼 그녀는 빠르게 쾌유됐으며 씩씩했고 기운이 넘쳤다. 요즘 몸 상태는 어떠냐는 말에 오히려 이의정은 “안 신던 킬힐(kill hill)구두를 신고 뮤직비디오를 찍다가 발목이 삐끗했어요. 그거 말고는 괜찮아요. 보시는 것처럼 말짱해요.”라며 배시시 웃었다. “전 기적이 있다고 믿어요. 제 스스로가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믿는 종교는 없지만 아무래도 제가 할 일이 아직 더 남아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 같아요. 가끔씩은 저 자신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구나…” 암 판정을 받았던 당시 그녀의 나이는 32살. 갓 30대를 넘긴 나이에 죽음의 문턱에 섰다면 그 어떤 이도 의연해 질 수 없었을 터. 하지만 그녀는 결코 낙담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일부러 즐거운 생각만 했어요. 세상에는 별의 별 일들이 많잖아요. 의학적인 부분이 암이 전이되는 걸 막아 줄 테니, 살아야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내가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도 자꾸 인상을 쓰면 몸을 해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더 크게 매일매일 웃었어요. 결국 제 항암치료제는 엔도르핀이 된 셈이죠.(웃음)” 연예계 데뷔한 지 20년이 넘은 이의정은 병마와 싸워 이긴 뒤 ‘연기’라는 주 종목 대신 ‘노래’라는 도전을 택했다. 예전 매니저와의 친분에서 비롯된 앨범작업이지만 대중들에게 본인이 더 이상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물론 제 본업은 배우예요. 그건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수로 무대에 오르고 싶었죠. 이번에는 예전에 했던 이벤트성 가수가 아닌, 제대로 ‘가수 이의정’의 모습을 펼쳐보고 싶어요. 잘 하고 싶으니까 그만큼 연습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안 신던 킬힐(kill hill)구두도 신은 거죠.(웃음)” 노래, 댄스, 의상, 액세서리, 메이크업…이의정은 본인의 능력이 닿을 수 있는 부분이라면 뭐든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도해본다고 했다. 사실 이의정은 활동하면서 유행시킨 아이템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뻗침머리 가발, 반팔패딩, 속눈썹, 원색 의상과 소품 등…이의정이 착용했던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특별하게 주력하는 아이템이 있냐고 묻자 이의정은 “가죽후드를 의상 콘셉트로 잡았아요. 무대 위, 특히 여성분들이 클럽에서 입으면 섹시미가 느껴질 거예요. 단점이라면 더운 거죠.(웃음)”라고 귀띔했다. 많은 연예인들이 직접 미니홈피를 운영하며 지인들, 팬들과 남다른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의정 역시 미니홈피에 애착을 보이며 또 다른 소통을 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병마와 싸우며 불어났던 체중을 운동으로 감량한 후 찍은 비키니 사진을 게재해 이슈가 됐다. 올해는 7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을 올려 또 다시 화제를 일으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의정의 당당한 용기에 축하를 보냈지만 일부 삐딱한 네티즌들은 그녀에게 악플테러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대장부 기질을 가진 그녀에게 그런 일쯤은 일말의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저는 원래 그런 사람들한테 신경 쓰지 않아요. 어차피 그들은 내 세상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저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불쌍해져요. 얼마나 애정결핍이면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은 걸까. 누구에게는 관심 받고 싶어서 격하게 애정 표현하는 거죠. 전 아무렇지 않아요.” 7살 연하의 연인과 3년 넘게 사랑을 키워오고 있는 그녀지만 너무 바빠서 당분간은 결혼계획이 없단다. 다시 얻은 인생인 만큼 더 많은 일에 매달려 뜨겁게,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부터 시작될 그녀의 인생 2막이 앨범타이틀 ‘리인게이징’(REENGAGING)처럼 새롭고 화려하게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美치어리더 “SBS 스타킹 녹화, 꿈만 같았다”

    美치어리더 “SBS 스타킹 녹화, 꿈만 같았다”

    “한국팬들 환호에 감격” 최근 한국을 다녀간 NBA 뉴저지 네츠 치어팀 ‘덩킹 디바스’(Dunking Divas) 멤버가 방한 기간 중 받은 뜨거운 반응을 미국 팬들에게 자랑했다. 특히 한국에서 방송 녹화 중 받은 기립박수를 감동적인 기억으로 꼽았다. 덩킹 디바스는 ‘2009 NBA 아시아 챌린지’ 행사 차 지난 2일 NBA연합팀과 함께 내한해 6일까지 기자회견과 공연, 방송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덩킹 디바스 멤버 멜로디(Melody)는 지난 13일 뉴저지 네츠 홈페이지에 마련된 치어리더 블로그에 “매일 일정표가 꽉 차있었다.”며 방한 기간 중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의 유명 쇼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며 SBS ‘스타킹’ 녹화에 참여한 경험담을 풀어놨다. 그는 스타킹을 “미국의 ‘아메리카 갓 탤런트’와 비슷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멜로디는 “대기실에 앉아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서 내가 한국에서도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이보다 완벽한 상황을 꿈꿀 수 있을까.”라고 감격했다. 그는 “우리 공연은 훌륭했고 게스트로 참석한 한국 스타들은 (공연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녹화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덩크를 보여줄 때는 모든 관객들이 우리 이름을 한명씩 연호했다.”고 뿌듯해했다. 끝으로 멜로디는 블로그를 찾은 팬들에게 “모두 그립기는 하지만 해외에서 네츠팀을 대표하는 지금이 너무 좋다.”고 안부를 전하고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이 기세를 몰아 필리핀에서도 열심히 하겠다.”며 글을 맺었다. 한편 뉴저지 네츠 소속 덩킹 디바스는 NBA 치어팀들 중에서도 수준이 높아 그만큼 입단 경쟁이 치열한 팀으로 유명하다. 총 16명이 활동하지만 올해 ‘NBA 아시아 챌린지’에는 6명만 동행했다. 사진=뉴저지 네츠 홈페이지 캡처(멜로디는 사진 가운데 흑인)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30] 내겐 너무 특별한 가을별미

    [2030] 내겐 너무 특별한 가을별미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전어구이, 향긋한 자연송이, 오동통한 대하찜, 잘 익은 오곡백과 등 각종 별미가 군침을 돌게 하는 가을.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일과 연애가 안 풀려 괴로운 20, 30대도 푸짐한 가을 밥상과 마주하면 잠시나마 시름을 잊는다. 2030이 추억하는 가을 별미를 들어봤다. 박성국 오달란 유대근기자 dallan@seoul.co.kr 직장인 장모(28)씨의 가을 별미는 대한민국 모든 예비역들의 추억이자 악몽인 ‘전투식량’이다. 장씨는 전투식량 중에서도 비빔밥을 잊지 못한다. 제대 이후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인터넷 쇼핑을 통해 ‘전투 비빔밥’을 구입해 먹는다. 전투식량은 군대에서 지급하는 휴대용 식품으로 뜨거운 물만 부으면 한끼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는 간편식이다. 장씨는 “7년 전 군대에 있을 때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진지공사를 위해 산에서 천막을 치고 2주 동안 생활을 했다.”면서 “하루에 한끼는 꼭 전투식량이 나왔는데 그땐 질려서 쳐다보기조차 싫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군대음식이라면 치를 떨었던 장씨는 제대 후 1년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뭔가 하나 빠진 것처럼 싱겁고 입 안에서 겉도는 그 맛이 간절해졌다고 한다. 장씨의 별미는 직장 동료에게도 인기다. 야근 간식으로 컵라면, 피자 대신 전투식량을 챙겨먹기도 한다. 여성동료들은 회색 봉투에 뜨거운 물만 부으면 단 5분 만에 완성되는 비빔밥을 보면서 신기해 한다. 장씨는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전투 비빔밥’이 생각난다.”면서 “밥보다는 추억을 먹는 재미에 해마다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년차 영업사원 박모(30)씨는 입사한 첫해 가을, 부장님이 사준 전어 회무침을 잊지 못한다. 입사 전에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전어였는데 부장님이 팀원들 기를 살려주겠다며 회사 근처 횟집으로 데려가 전어 회무침을 사준 것. 파, 미나리 등 싱싱한 야채와 뼈째 잘게 썬 전어, 칼칼하면서도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회무침을 상추와 깻잎에 싸서 입에 넣은 뒤 소주 한 잔까지 털어넣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박씨는 그날 전어를 먹으면서 자신이 직장인이 됐음을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올 정도로 맛있다고 하지만 백수 시절에는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라 잔뜩 군기가 들어있었던 박씨. 부장님이 어깨를 두드리며 소주를 권하고, 처음이라 낯설고 힘들 텐데 많이 먹고 기운내라며 회무침 접시를 자신의 앞쪽으로 밀어주는 선배들 때문에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고 한다. 박씨는 “그날 밤 팀원들과 둘러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나눠먹었던 전어의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나에게 가을 전어는 ‘정’이란 이름으로 각인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정모(26)씨는 무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면 학교 앞 닭갈비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그는 “일주일에 평균 3번은 찾아가서 점심에는 닭갈비 볶음밥을 먹고 저녁에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 한 접시를 안주삼아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인다.”고 전했다. 정씨의 머릿속에 ‘가을=닭갈비’ 공식이 자리잡게 된 건 풋풋한 연애의 추억 때문이다. 정씨는 6년 전 같은 과 동기였던 여자친구와 춘천 여행을 떠났다. 그는 “5월 축제 때 용기내서 고백해 연애하기 시작했는데 사귄 지 100일을 기념해 처음 둘이서 놀러간 곳이 춘천이었다.”면서 “여자친구 손을 꼭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었다.”며 웃었다. 정씨는 당시 점심을 먹기 위해 춘천교대 앞 닭갈비 골목을 서성이다가 조용한 가게로 들어가 먹었던 닭갈비의 맛보다 연애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이어트 끝에 찾아온 식탐 직장인 박모(32)씨는 8월 달력을 뜯자마자 지난 여름 내내 졸라맸던 허리띠를 풀어볼 생각에 한껏 들떴다. 가을이 제철인 음식들을 찾아 부지런히 인터넷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식가임에도 지난 한철 내내 맛집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은 박씨다. 8월 마지막 토요일에 5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린 그는 웨딩사진과 식장에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100일 동안 몸을 가꿨다. 여자친구와 함께 다이어트 식단을 철저히 지키고 매일 1시간30분씩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했다. 갈수록 탄탄해지는 복근과 등 근육은 만족스러웠지만 식생활은 고역이었다. 소금 안 친 닭가슴살과 소스없는 샐러드와 두부, 오븐에 구운 생선 반토막과 잡곡밥 반 공기가 그동안 먹어온 음식이다. 박씨는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고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에서 손을 떼니 세상 사는 낙이 없었다.”면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었다는 곰이 된 기분이었다.”며 고달팠던 기억을 떠올렸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그는 이제 먹는 행복만 남았다며 즐거워했다. 박씨는 “가을인 만큼 기름진 전어부터 시작할 생각”이라면서 “이번 주말에 인천 소래포구에 가서 전어 회, 구이, 매운탕 등 풀코스 만찬을 즐길 예정”이라고 벌써부터 입맛을 다셨다. 예전엔 서비스 안주로나 내놓던 전어 값이 천정부지로 뛴 게 불만이지만 음식은 제철에 먹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씨는 “두번 결혼할 일은 없으니 다이어트 생각은 접어두고 ‘식신 본능’에 충실하겠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신모(31·여)씨는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 늘었다. 여름 내내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4kg을 감량했지만 가을이 되면서 입맛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걷다가 음식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흐르고 점심을 먹고 이까지 닦은 뒤에도 달콤한 디저트 생각에 지갑을 들고 매점으로 향하기 일쑤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라도 하면 대학시절 도보여행 때 섬진강에서 맛 본 다슬기 수제비 생각이 간절해진다. 대학교 3학년 때 신씨는 혼자서 무작정 도보여행을 떠났다. 남도의 가을 정취에 취해 섬진강 줄기를 거닐던 중 마을 어귀에서 커다란 가마솥에 수제비를 끓여먹던 아주머니들이 가을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신씨에게 “체력도 약한 아가씨가 밥은 챙겨먹고 다니는 거냐. 와서 한 그릇 들고 가라.”며 수제비를 권했다. 섬진강에서 갓 잡은 다슬기로 국물을 우려내 푸른 빛깔이 도는, 생전 처음 맛 보는 수제비였다.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면 다슬기 알맹이를 쏙쏙 빼먹는 맛과 재미는 덤으로 따라 온다.”며 신씨는 다슬기 수제비 예찬론을 늘어놨다. 그는 “속풀이에 최고인 다슬기 국물에 남도 아주머니의 따뜻한 인심까지 더해져 지상 최고의 만찬이었다.”면서 “다슬기는 살도 찌지 않는 다이어트 음식이니 주말에 전문음식점을 찾아가서 배불리 먹어봐야겠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먹어라 올해 유난히 잦은 야근에 시달리고 있는 컨설턴트 장모(34·여)씨는 당분간 주말마다 ‘몸보신 여행’을 하기로 했다. 격무와 더위에 시달린 몸을 호강시킬 겸 골드미스인 친구들과 함께 가을음식 주산지로 1박2일 여행을 나서기로 한 것. 가장 먼저 맛볼 음식은 추어탕이다. 행선지는 전북 남원으로 정했다. 장씨는 “미꾸라지 추(鰍)자가 가을(秋)과 물고기(魚)가 합쳐진 만큼 가을의 대표적 보양식”이라며 추어탕 예찬론을 늘어놨다. 그는 “소설 태백산맥에 보면 가을 추어탕은 여름 개장국만큼 어르신들 보양식으로 쳐준다는 대목도 있다.”고 덧붙였다. 남원을 택한 이유는 원조 남도식 추어탕으로 유명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를 통으로 우려내 맑고 가벼운 서울식 추어탕과 달리 남도식은 크고 통통한 미꾸라지를 갈아 넣고 된장과 들깨가루를 듬뿍 풀어 걸쭉하고 구수한 맛이 특징이다. 산초가루가 들어가 독특한 향미를 낸다. 장씨는 “아삭한 우거지도 아낌없이 들어가서 씹는 맛이 일품”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남원에서 추어탕을 먹고 난 뒤 그 다음 주말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 태안반도에서 ‘대하’를 정복할 요량이다. 큰 전골냄비에 굵은 소금을 자작하게 깔고 그 위에서 대하가 선홍색으로 익어가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장씨는 시장기가 돈다며 입맛을 다셨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쫀득한 살이 입속에서 녹아 사라진다는 대하회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추어탕이나 대하나 모두 단백질 덩어리니까 더위에 축 처진 피부 미용에도 좋을 것 같다.”는 게 장씨와 친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믿는 은행원 유모(28)씨는 9월 말이면 새로 출하된 햅쌀 구매에 바빠진다. 자취생인 탓에 평소 전자레인지로 데워먹는 인스턴트 쌀밥 먹는 게 고작이지만 가을이 되면 최고급 백미를 먹는 호사를 누린다. 막 거둬 도정한 햅쌀은 맛이 워낙 좋기 때문에 밥과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는 게 유씨의 생각이다. 고혈압을 앓고 있는 유씨는 올해엔 한 가지 사치를 더 하기로 했다. 유기농 농산물만 취급하는 생활 협동조합을 통해 송이버섯을 공동구매하기로 한 것. 유씨는 “가을에 향이 정점에 오르는 송이가 성인병이나 당뇨, 고혈압 등에 좋다고 해서 올해는 큰 맘 먹고 15만원짜리 한 박스를 구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은행 근처 서점에 들러 얇은 요리책 한 권도 사두었다. 그는 4년째 교제 중인 여자친구도 집으로 초대해 만찬을 대접할 계획이다. 거창한 음식을 사주기보다 소박하지만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하면 감동을 갑절로 느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윤기가 잘잘 흐르는 흰쌀밥에 송이버섯 전골이면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면서 “건강식으로 원기를 보충해서 남은 2009년도 잘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다.
  • 신예 델 포트로 파란의 스매싱

    지난 6월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결승. ‘신예’ 후안 마틴 델 포트로(21·아르헨티나)는 ‘황제’ 로저 페더러(28·스위스)에게 2-3 역전패를 당했다.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존경하던 황제에게 “꼭 우승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석달 여가 흐른 뒤 둘은 US오픈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결과는 정확하게 반대였다. ●메이저대회 생애 첫 타이틀 세계 6위 델 포트로가 15일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US오픈 남자단식 결승에서 4시간6분의 혈투 끝에 랭킹 1위 페더러를 3-2(3-6 7-6<5> 4-6 7-6<4> 6-2)로 꺾고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갓 스무살을 넘긴 델 포트로는 지금까지 6차례 투어에서 우승했지만, 메이저대회 결승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 프랑스오픈 4강이 역대 최고 성적. 골수팬이 아니라면 이름조차 생소한 선수인 셈. 2006년 성인무대에 뛰어든 델 포트로는 지난해 4개의 투어 타이틀을 휩쓸면서 랭킹 10위권에 진입,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서브는 물론, 키에 걸맞지 않는 순발력과 풋워크를 지녔다. 남미 선수들이 클레이코트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델 포트로는 하드코트에서 4번, 클레이코트에서 2번 우승을 할 만큼 ‘잡식성’을 뽐냈다. 어린 시절 축구에 푹 빠져 아르헨티나 보카주니어스와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열혈 팬이다. 이탈리아 대표팀 미드필더 마우로 카모라네시와는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 상대 전적 6전 전승으로 압도했던 페더러가 가볍게 1세트를 따냈다. 준결승에서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꺾고 올라온 도전자도 만만치 않았다. 2세트에서 2-4로 끌려가던 델 포트로는 끈질긴 추격전을 펼쳐 5-5,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했고 세트를 빼앗았다. 3세트는 4개의 서브 에이스를 앞세운 페더러가 낚았다. 4세트에서도 2-4로 끌려가면서 델 포트로가 벼랑 끝에 몰렸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겁없는 신예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또 한번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했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마지막 세트는 온전히 델 포트로가 압도했다. ●페더러 5세트서 자멸… 6연패 못 이뤄 4세트를 내주면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황제’는 5세트에서만 15개의 실책과 3개의 더블폴트를 저질렀다. 첫 번째 서브 성공률도 델 포트로가 78%에 달한 반면, 페더러는 48%에 머물렀다. 황제답지 않은 플레이로 자멸한 셈.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US오픈 타이틀을 독식하면서 빌 틸든(미국·1920~25년) 이후 84년 만에 대회 6연패를 이루려던 꿈도 접어야 했다. 또 생애 16번째 그랜드슬램 우승도 날아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국민 먹을거리’ 라면 46돌

    ‘국민 먹을거리’ 라면 46돌

    15일은 이 땅에 라면이 처음 나온 날이다. 1963년 9월15일 10원짜리 삼양라면이 탄생했다. 만으로 46세, 중년이다. 갓 태어났을 때의 라면은 지금과는 달랐다. 국물맛은 쇠고기 육수맛이 아닌 닭고기 육수맛에 가까웠고, 겉포장은 내용물이 훤히 보일 정도로 얇았다. 60년대 삼양라면과 농심의 전신 롯데라면·해표라면·대표라면 등 업체들이 비슷한 종류의 라면 10종류 정도를 선보였다. 지금은 카레라면·비빔면·자장라면 등 160종류가 나온다. ●첫 시판땐 옷감인줄 알아 시식회 하지만 끼니를 이어가기 어려웠던 시절부터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까지 여전히 라면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품이라는 속성은 같다. 그래서 불경기에 라면이 더 잘 팔린다든지, 옛날식 라면이 다시 붐을 이루는 등의 현상이 낯설지 않다. ‘향수 마케팅’ 전략이 열에 아홉 번은 통하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1989년 우지 파동으로 생산을 중단했다가 5년 만인 1994년에 다시 생산한 삼양라면이 출시 반년 만에 월 평균 40만박스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한 게 그렇다. 삼양식품이 이번에는 최초 라면의 맛을 그대로 담은 ‘삼양라면 클래식’을 내놓았다. 이 회사는 15일 전국 180개 대형마트에서 19만 6300개를 무료로 증정하는 행사를 연다고 14일 밝혔다. 1960년대에 라면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사람들이 먹는 면이 아니라 옷감인 면의 한 종류인 줄 알았기에 시식회를 열었던 것처럼, 삼양식품 전 직원이 증정 행사에 참여한다. 라면의 시작을 연 회사가 삼양식품이라면, 청년기 체력을 강화시키고 라면을 ‘국민 음식’으로 만든 회사로 농심을 빼놓을 수 없다. 농심 손욱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의 맛을 살린 게 안성탕면이고, 매운탕의 맛을 살린 게 신라면”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닭고기맛보다 쇠고기맛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 1970년대에 ‘소고기면’을 내놓은 회사도 농심이다. 일본 라면을 따라한 라면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춘 ‘2세대 라면’이 등장한 셈이다. 1980년대 농심은 ‘너구리’ ‘안성탕면’ ‘신라면’ 등을 성공시키며 승승장구했다. ●160여 브랜드 치열한 경쟁 2009년 상반기 봉지라면의 시장규모는 6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 점유율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신라면은 1986년 10월 출시해 올해 상반기까지 180억 봉지가 팔렸다. 전 세계 70개국으로 수출되는데, 지난해 신라면의 해외 매출은 9200만달러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 라면 시장의 경쟁은 더 첨예해졌다. 농심 관계자는 “용기면을 포함해 1998년에 국내 라면 시장이 연 1조원대 시장으로 접어들었다.”면서 “제2의 도약을 위해 뛰고 있다.”고 말했다. 튀기지 않은 건면, 둥지냉면과 같은 ‘3세대 라면’이 나온 것도 이 시기이다. 이처럼 라면이 끼니에서부터 기호식품이자 건강식품으로 다양하게 자리매김했다. 현재 라면 시장에서 농심과 삼양 외에도 오뚜기, 한국야쿠르트(팔도라면)가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라면을 바탕으로 한 갖가지 퓨전 음식이 속속 개발되면서 새로운 음식문화도 형성되고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추신수-원더걸스 만남, 美언론도 관심

    추신수-원더걸스 만남, 美언론도 관심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27·클리블랜드)와 아이돌 그룹 원더걸스의 만남이 현지에서 화제가 됐다. 기쁨을 감추지 않은 추신수의 인터뷰로 원더걸스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원더걸스는 지난 6일(현지시간) 추신수가 뛰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홈구장 프로그레시브 필드를 찾아 시구를 하고 공연을 펼쳤다. 구단 측 협조로 팬 사인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가졌다. 추신수에게는 직접 사인한 사진과 CD 등 선물을 건넸다. 클리블랜드 지역신문 ‘클리블랜드닷컴’은 인터넷판으로 원더걸스의 시구와 공연을 보도하면서 “한국 걸그룹 원더걸스의 팬을 자처해 온 추신수가 처음으로 그 멤버들을 만났다.”며 추신수에 초점을 맞춰 전했다. 신문은 원더걸스의 ‘노바디’는 추신수의 응원가로 이미 클리블랜드 팬들 사이엔 잘 알려진 노래라고 설명했다.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추신수는 “원더걸스를 만나려니 경기를 앞둔 것보다 더 긴장됐다.”면서 “그들은 대단했다. 만나고 나니 경기가 쉽게 느껴졌다.”고 벅찬 기쁨을 표현했다. 또 “원더걸스는 내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모두에게 한국인의 힘을 보여달라.’고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MLB.com)도 추신수와 만난 원더걸스를 ‘한국의 스파이스 걸스’라고 표현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MLB.com은 “갓 태어난 추신수의 아들이 처음 듣게 된 노래는 원더걸스가 부르는 ‘노바디’였을 것”이라면서 “후렴구 발음상(nobody nobody but Choo) 추신수를 꼭 집어 응원하는 듯한 분위기”라고 ‘노바디’를 알렸다. 이어 “이 노래를 좋아한다. 내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곡”이라는 추신수의 말을 전했다. 한편 출산휴가로 3경기를 쉬고 출전한 추신수는 이날 미네소타전에서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사진=클리블랜드 홈페이지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스무살 ‘해리포터’의 재산은 무려 332억원

    스무살 ‘해리포터’의 재산은 무려 332억원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의 재산이 332억원? 영화 ‘해리 포터’로 스타덤에 오른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총 자산이 공개됐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스타’는 래드클리프의 소속사가 제공한 정보를 인용해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그의 총 재산은 2700만 달러(약 332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래드클리프의 명의로 산 부동산인 런던과 뉴욕의 집이 포함돼 있다. 집 두 채의 시가는 800만 달러(약 98억 5000만원)상당으로 알려졌다. 소속사가 공개한 2700만 달러는 얼마 전 개봉한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의 수익금을 뺀 금액이어서 실제 그의 통장은 더욱 두둑할 것으로 보인다. 11세 때인 2001년 J.K. 롤링의 소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출연해 단숨에 아역스타 대열에 오른 래드클리프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할리우드의 젊은 부자’ 리스트에 오르기도 할 만큼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저 돈이 아니라 연기를 하는 것”이라며 “돈이라는 것이 매우 유용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지만, 나를 조종하지는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래드클리프의 소속사는 “현재 그의 재산은 모두 부모가 관리하고 있다. 앞으로도 연기에만 매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때 은퇴설이 나돌아 팬들을 당혹케 했던 그는 현재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촬영하는데 여념이 없으며, 이 영화는 2010년에 전 세계에서 개봉한다. 사진=enjoyfrance.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본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본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본 뮤직비디오는?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본 뮤직비디오의 순위가 공개됐다. 온라인 트래킹 집계 회사인 비저블 매저스(Visible Measures)에 따르면 역대 최다클릭수를 기록한 뮤직비디오는 미국 가수 솔자 보이(Soulja Boy)의 데뷔곡 ‘크랭크 댓’(Crank That)으로 집계 됐다. 2007년 10월 발표한 이 곡은 강한 비트의 음악으로 4억 8700만 클릭수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흑진주’ 비욘세가 지난해 발표한 ‘싱글 레이디즈’(Single Ladies) 뮤직비디오가 3억 1400만 클릭수로 2위를 차지했다. 음악전문 매거진인 롤링스톤에서 2008년 최고의 싱글 앨범으로 꼽힌 곡으로, 뮤직비디오 또한 심플함을 강조해 호평을 받았다. 3위는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가 차지했다. 1983년 발표된 이 뮤직비디오는 당시 충격적인 영상과 촬영기법으로 현재까지 ‘베스트 뮤비’로 손꼽힌다. 총 2억 9900만 클릭수를 기록했다. 이밖에도 ‘브리튼스 갓 탤런트’로 스타덤에 오른 수잔 보일의 영상과 힙밥가수 팀 발랜드의 곡 ‘어팔로자이즈’(Apologize)의 뮤직비디오 등이 톱 10에 올랐다. 다음은 유튜브에서 많이 본 뮤직비디오 Top 10(클릭수) ▲1위 솔자 보이의 ‘크랭크 댓’(Crank That)/4억 8700만 ▲2위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즈’(Single Ladies)/3억 1400만 ▲3위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2억 9900만 ▲4위 수잔 보일의 ‘브리튼스 갓 탤런트’ 출연 영상/2억 8600만 ▲5위 머라이어 캐리의 ‘터치 마이 바디’(Touch My Body)/2억 7700만 ▲6위 팀발랜드의 ‘어팔로자이즈’(Apologize)/2억 3600만 ▲7위 에이브릴 라빈의 ‘걸프렌드’(Girlfriend)/2억 2800만 ▲8위 리오나 루이스의 ‘브리딩 러브’(Bleeding Love)/2억 2700만 ▲9위 크리스 브라운의 ‘위드 유’(With You)/2억 600만 ▲10위 앨리샤 키스의 ‘노 원’(No One)/1억 8800만 사진=eurthisnthat.com(솔자 보이)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수잔 보일 11월 ‘데뷔 앨범’ 대박 예감

    수잔 보일 11월 ‘데뷔 앨범’ 대박 예감

    영국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스타 수잔 보일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기 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제 2의 폴 포츠’로 불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일의 데뷔 앨범은 미국 주요온라인쇼핑몰 ‘아마존닷컴’ 음악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보일의 데뷔 앨범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은 오는 11월 23일(현지시간) 발매될 예정이지만 팬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아마존닷컴이 예약주문을 받기 시작한지 3일도 되지 않아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1위에 오른 것. 이미 발매된 휘트니 휴스턴의 7년만의 새 앨범 ‘아이 룩 투 유’(I Look to You), 오는 9일(현지시간) 발매될 비틀즈 앨범들의 판매량을 뛰어넘었다. 팬들은 “앨범 안에 어떤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앨범이 나올 때까지 3개월이나 기다리기 힘들다.”며 잔뜩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제작사 측은 보일의 데뷔 앨범에 대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영국 대중지 더선은 이 앨범이 마돈나의 히트송 ‘율 시’(You‘ll See)를 비롯해 ’크라이 미 어 리버‘(Cry Me A River), 록 밴드 롤링스톤스의 노래 등 폭넓은 장르를 소화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보일은 최근 드레스 6벌을 구입하는 등 몇 주 뒤부터 시작될 앨범 홍보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NBC 투데이쇼 예고편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문설주기자 spirit0104@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초딩’ 비담, 혹시 덕만이 좋아해?

    ‘초딩’ 비담, 혹시 덕만이 좋아해?

    덕만을 사모하는 사람이 또 한명 늘었다. 지난 1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30회에서 비담(김남길 분)은 덕만공주(이요원 분)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근위화랑으로 발탁된 알천(이승효 분)에 이어 비담 역시 덕만 앞에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한 것. 비담은 “지금부터 공주님을 제 주군으로 모시려고 합니다. 적이 되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말하며 온화한 웃음을 지었다. 또 스승 문노(정호빈 분)에게 비담은 “그 아이(덕만)가 공주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주가 그 아이이기 때문에 돕고 싶습니다. 그 아이가 가는 길을 함께 가고 함께 꿈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고 말하며 의지를 확고히 했다. 갓난아이일 때 비정한 어머니 미실(고현정 분)에게 버려져 예의범절과 양심이 부족한 야성적인 비담이 덕만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비담과 덕만은 함께 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훗날 비담은 난을 일으켜 덕만과 신라 황실을 위협하는 인물로 변하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1일 방송된 ‘선덕여왕’ 30회는 전국 시청률 42.1%(TNS미디어코리아 기준)를 기록, 최근 5회 연속 40%를 넘기는 저력을 과시했다. 사진 = MBC ‘선덕여왕’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드림씨어터 멤버 “박찬욱의 올드보이 최고”

    드림씨어터 멤버 “박찬욱의 올드보이 최고”

    “박찬욱 감독 좋아해요.” 유명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드림씨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하나로 한국의 박찬욱 감독을 꼽았다. 포트노이는 ‘아티스트다이렉트닷컴’(ARTdirct.com)과 가진 인터뷰에서 “요즘에 새로운 독립영화들과 외국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정말 빠져들 만한 작품들이 많다.”고 영화팬을 자처했다. 이어 “과거에는 마틴 스코세지와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를 많이 봤고 최근에는 새로운 감독들의 영화를 즐긴다.”면서 좋아하는 감독들을 열거했다. 포트노이는 가장 먼저 “특히 박찬욱은 경외할 만한 감독”이라고 꼽았다. 뒤이어 폭력 미학의 거장 가스파 노에, 쿠엔틴 타란티노 등을 좋아하는 감독으로 들었다. 또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메멘토’ ‘멀홀랜드 드라이브’ ‘시티 오브 갓’ 등과 함께 박찬욱 감독의 2003년 작품 ‘올드보이’를 소개했다. 해외 유명 스타가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는 영화감독으로 꼽은 것이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 타이완 톱스타 정원창 등도 좋아하는 감독으로 박찬욱을 꼽은 바 있다. 한편 드림씨어터는 지난 6월 통산 열 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하고 데뷔 21년차 밴드의 관록을 과시했다. 사진=마이크 포트노이(드림씨어터 홈페이지)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감초연기 조진웅 국가대표급 입담으로 떴다

    감초연기 조진웅 국가대표급 입담으로 떴다

    흥행 뒷심을 과시하며 관객 600만명을 돌파한 영화 ‘국가대표’. 후반부에 스키점프 경기 해설자가 등장한다.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는거죠.”,“아~까불면 안돼요.”,“이젠 까불어도 돼요.” 처음에는 시큰둥하다가 예상치 못한 스키점프 국가대표들의 맹활약에 ‘필’을 받아 국가대표급 입담으로 관객들의 배꼽을 잡게 만든다.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는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철없는 아빠 브루터스 리가 나온다. “오우 마이 갓!” 등 같잖은 영어에 과장되고 어색한 몸짓, 치렁치렁한 머리에 콧수염, 그리고 불량한 옷차림까지. 완전 비호감 캐릭터이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박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푸근한 미소를 머금은다. 스크린에서, 안방에서 명품 조연으로 활약하며 출연작의 인기몰이에 한몫하고 있는 조진웅(33)을 최근 서울 청담동에서 만났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겠다고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덩치가 크고, 외모가 특이하니까 일단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봐요. 그러다가 어, 저놈 어디서 봤는데 하는 시선으로 달라지는 정도죠. 지금 모습과 매치가 잘 안될 텐데 예전 영화를 잘봤다고 말해주는 분들은 너무 고마워요. 더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죠.” ●영화 ‘국가대표’, 드라마 ‘솔약국집’서 눈도장 팍팍 김용화 감독과의 인연으로 우정출연했던 ‘국가대표’는 딱 하루 촬영했다. 그는 “앞선 촬영분을 보고 가슴이 울컥하는 바람에 대본을 팽개치고 애드리브로 신명나고 재미있게 놀다 왔죠.”라면서 “누가 되면 안 된다는 부담도 있었는데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소한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치열함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현장을 보며 잘 될 줄 알았다고. 첫 지상파 드라마 출연작인 ‘솔약국집 아들들’은 나쁜 캐릭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착한 드라마라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힘들 때 서로 북돋워주는 등 출연진 모두가 가족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변희봉, 백일섭, 김용건, 윤미라 선생님 곁에서 많이 배울 수 있어 정말 좋죠. 작가분이 이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 잠시만 착해지라고 했는데 저도 가족을 더 생각하게 되는 등 조금은 더 착해진 것 같아요.” 그는 여섯 살 때 부산시민회관에서 윤복희가 하늘을 날아다니던 뮤지컬 ‘피터팬’을 보고 푹 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터팬이 실제가 아닌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며칠 동안 서럽게 울었지만 그때부터 배우라는 직업이 가슴에 남았다. 막연하게 꿈을 키우다가 아버지, 어머니 몰래 경성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당시 부산은 서울과는 달리 연극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에 1학년 때부터 크고 작은 공연이 끊이지 않았다. 졸업 때까지 스태프로, 배우로 50개 안팎의 무대에 서며 공부하고, 놀고, 사랑하고 헤어졌다. 연극이 곧 생활이었던 것. 졸업 뒤 서울시립극단에 들어갔지만 작품 하나를 하고는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태해진다는 느낌에 극단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려고 했다. 이때 예기치 않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우연히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연출부였던 군대 고참을 만난 것. 이 인연으로 권상우를 괴롭히는 ‘야생마 패거리2’로 스크린에 얼굴을 내비치게 됐다. “영화도 연극처럼 연기의 본질은 같았지만 시스템이 새롭고 흥미로웠죠. 이제 영화에 도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우리형’, ‘강적’, ‘마이뉴파트너’, ‘쌍화점’, 그리고 ‘국가대표’에 이르기까지 단역, 조역으로 14편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사실 그의 본명은 조원준이다. 지금 쓰는 이름은 아버지 성함.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됐을 때 무엇인가 의미를 다지고 싶었다. 그래서 ‘말죽거리 잔혹사’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간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했다. 아버지는 “별거를 다 빌려간다.”며 타박했고, 할머니는 “그런 불효가 어디 있냐.”며 혀를 찼다. 아버지에게 누가 될까봐 마음가짐,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된다는 그는 “아버지를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하니까 항상 같이 하고 싶었죠.”라며 웃었다. 요즘 아버지가 “로열티는 없냐?”고 농담을 던진단다. “언제 돌려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조금 더 잘되면 돌려드릴까요? 하하하.” 연기가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기 때문에 ‘크라잉 게임’ 등에 나왔던 포레스트 휘태커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그는 “처음에는 무대에 선다는 게 그냥 즐겁고 좋았어요. 서른이 넘다보니 연기가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에 필요한 여러 포지션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광대가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그런데 하면 할 수록 어렵네요. 정년 퇴직이 없는 직업이니 죽을 때까지 하는 게 소원이죠.”라고 말했다. ●아버지 이름 예명으로… “죽을때까지 연기하고파” 맛깔스러운 연기는 쭈욱 계속된다. 극장에서는 새달 24일 개봉하는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과 10월 개봉 대기 중인 김영호 주연의 ‘부·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조만간 크랭크인하는 엄정화 주연의 미스터리 스릴러 ‘베스트셀러’에도 출연한다. 안방에서는 ‘솔약국집 아들들’이 막을 내리면 이미 촬영에 돌입한 사극 ‘추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재미있는 게 없는 사람이지만, 제가 하는 작품들은 분명히 재미있을 겁니다. 저를 기억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가 연기한 캐릭터는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치열하게 광대짓을 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글ㆍ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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