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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구화된 입맛… 샐러드 채소 잘 팔리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김장철인 11월, 김치용 채소보다 샐러드용 채소가 더 많이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마트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김장철인 11월 채소 매출을 분석한 결과 김치용 채소(배추, 무, 갓, 얼갈이, 열무 등)의 매출이 전년 대비 2014년 10.9%, 2013년 21.1% 각각 감소했다고 4일 밝혔다. 반면 샐러드용 채소(파프리카, 아스파라거스, 방울양배추, 양상추, 브로콜리, 엔다이브 등)의 전년 대비 11월 매출은 2014년 19.3%, 2013년 4.8% 각각 늘었다. 롯데마트는 이런 변화가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양식과 일식 등 다양한 식문화가 보편화되면서 김치를 먹지 않고 끼니를 해결하려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또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증가해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기초 반찬 가운데 하나인 김치가 식탁에 오르는 횟수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줬다. 롯데마트는 이런 소비자 변화에 따라 5일부터 1주일간 이색 김장 채소들을 시세 대비 최대 30%가량 저렴하게 판매해 김치용 채소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생각나눔] 농촌길·등산로 가로등 ‘눈에 불 켠’ 아우성 이유는

    [생각나눔] 농촌길·등산로 가로등 ‘눈에 불 켠’ 아우성 이유는

    경기 오산시는 최근 등산객이 많이 찾는 필봉산 등산로 2㎞ 구간에 가로등을 설치했다. 새벽이나 야간에 산행하는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가로등을 설치해 달라는 민원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환경단체들이 “생태환경 가치를 무시한 비상식적인 행정”이라며 가로등 철거를 요구했다. 시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보고 “가로등 점등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등 자연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 대책을 밝혔다. 농촌지역이나 등산로 등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빛 공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가로등이 보행자의 어두운 길을 밝혀 주고 차량 운행에 도움을 주지만 벼 등 농작물 생육에는 지장을 주는 공해이기 때문이다. 3일 경기도가 한국환경조명학회에 의뢰한 ‘경기도 빛 공해 환경영향 평가 및 측정·조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2013~14년 경기지역에서 제기된 빛 공해 민원 894건 중 48.7%인 435건이 농작물 피해 관련 민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방해 427건(47.8%), 눈부심 피해 11건(1.2%)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벼는 낮보다 밤이 길어야 이삭이 패고 꽃이 피는 단일식물이어서 야간 조명에 노출되면 이삭 패는 시기가 지연돼 수확량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 조사 결과 가로등에서 10m쯤 떨어진 지점(6~10럭스)에서 벼 수량은 평균 16% 감소하고 콩은 43%, 참깨 32%, 들깨는 94% 줄었다. 시금치는 보름달의 두 배 밝기인 0.7럭스에서도 반응을 보여 가로등 근처에서는 아예 자라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성시 관계자는 “들깨를 재배하는 농민이 찾아와 가로등 때문에 농사를 망쳤으니 보상해 달라는 민원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화성시는 최근 2년간 빛 공해 민원 18건 중 72%인 13건이 농작물 피해 민원이었다. 김포시는 58건 중 무려 87.9%인 51건이 농작물 피해 민원으로 밝혀졌다. 최근 농촌의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야간 조명 때문인 농작물 피해 민원이 늘고 있다. 돼지·닭 등 가축과 곤충들도 생리불순을 겪거나 바이오리듬을 잃어버려 이상행동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흥지역에서는 골프장 야간 조명 문제로 시끄럽다. 시흥환경운동연합과 농민들은 습지보호구역(갯골) 인근에 조성된 S골프장의 야간 조명시설 철거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골프장에서 발생하는 강한 빛이 생태공원과 농경지(11만 6000여㎡) 작물의 생육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는 이 같은 빛 공해를 막기 위해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 조례’를 제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김상철 생활환경 팀장은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해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가로등 불빛 방향을 작물 반대쪽으로 하거나 등에 갓을 씌우도록 시·군에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6] 젓갈과 스시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6] 젓갈과 스시

     우리 고유의 젓갈, 식해가 일본의 스시(초밥)와 한 뿌리에서 나온 음식이라는 사실을 말하려면 2000여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젓갈과 본래의 스시는 강이나 바다를 끼고 풍요롭게 살아가던 옛 해양 민족의 고급스런 먹거리였다. 젓갈과 스시에 오랜 음식 문명사가 서려 있다. ● 소금 음식저장에 필수... 소금광산 차지가 전쟁의 필수 요건 기원전부터 인류는 상하기 쉬운 생선을 되도록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다. 그 결과 생선을 소금으로 절이는 염장법을 발견한다. 소금은 생선의 단백질이 필수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것을 도와주는데, 이런 발효와 더불어 저장 기간도 늘려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소금은 워낙 귀한 식재료여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기후 조건이 맞는 갯벌이나 지구상에 몇 안 되는 소금 광산에서나 공급이 가능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북몽골의 거란족을 친 이유나 로마제국이 희생을 무릅쓰고 다키아(루마니아 일대)를 정복한 것도 그들의 거친 땅에 자연이 선물한 소금 광산을 손에 넣으려는 데 있었다. 소금 광산이 있는 곳은 아주 오래전 땅이 아니라 바다였다.  다행히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큰 한반도의 서해 주변에는 귀한 소금이 풍부했다. 영산강과 금강을 중심으로 젓갈 문화가 발달한 이유다. 서해 건너편인 중국 산동 지방에서도 일찌감치 젓갈에 대한 역사가 전한다. 한(漢)족인 한나라 무제가 한때 강성했던 동이(東夷)족을 추격해 산동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나서 찾아보니, 동이족이 생선을 소금에 절여 흙으로 덮어둔 젓갈 항아리를 발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짭조름한 감칠맛의 대표적인 젓갈에는 황석어젓 등 생선 젓갈 외에도 새우젓, 조개젓, 어리굴젓, 창난젓, 명란젓 등이 있다. 묽은 액젓은 음식 맛을 돋우는 조미료로도 쓴다. 이탈리아의 앤초비는 청어 액젓의 일종이다. ● 밥알로 소금 대체, 생선 뱃속에 밥알 채워 부패막기도 남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일본 규슈, 고대 오키나와, 인도네시아 등 당시 해상 교역이 활발했던 곳에서도 소금은 귀했다. 그래서 소금을 대체할 만한 식재료를 찾았는데, 그게 밥이다. 벼농사는 아시아 남방 지역에서 한반도와 북중국으로 유입됐다. 밥알은 소금보다 부패 억제 등 효능이 떨어졌지만, 그런대로 훌륭한 발효 촉진제다. 갓 잡은 생선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뒤 밥알을 눌러 채우는 것이다. 익힌 좁쌀 등 다른 곡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나중에 항아리에서 꺼내 먹을 땐 속에 넣어 둔 밥알을 버리고 딱딱하게 곰삭은 생선만 먹었다. 이게 세월이 흘러 일본의 후나즈시(붕어 초밥)와 라오스의 쏨빠, 태국의 남플라 등이 된다. 또 우리 동해 지역에서 발달된 식해도 곡물을 이용해 삭힌 젓갈의 변형이다.  백제와 문명 교류가 잦았던 일본 규슈와 간사이(관서) 지방에서는 후나즈시를 통해 젓갈 문화를 따라가기는 했으나, 만들기 까다로운 후나즈시는 귀족만 즐길 수 있던 고급 음식이었다. 그래서 또 생각해 낸 게 스시다. 생선에 밥알을 채워 1~2년씩 삭혀야 하는 후나즈시는 백성에겐 호사였기 때문에 더 쉽게 만들고 빨리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후나즈시를 속성 발효시키기 위해 누룩을 넣었고 썩는 것을 막으려고 청주도 뿌렸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납짝해지는 것을 빨리 맛보려고 절인 생선을 작은 상자(하코)에 넣어 손으로 눌렀다. 지금도 교토나 오사카의 명물인 하코스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 밥알 넣어 발효시킨 스시 대신 식초-와사비 이용해 시큼한 맛 만들어 일본의 스시는 17세기 초 교토 등을 근거지로 했던 오다 노부나가 등 백제계 세력이 몰락한 뒤 도쿄를 건설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신라계가 득세하자, 또 한 번의 변신 기회를 맞는다. 교토의 하코스시 맛을 잊지 못하지만 바빠서 엄두를 못 내던 도쿄 젊은이들에겐 재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스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연안 도시인 도쿄에 풍부한 날 생선에다 한 움큼의 밥을 싸서 먹기는 했는데, 날 것의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식초와 와사비(고추냉이 뿌리) 소스를 함께 먹었다. 겨자는 고추냉이의 씨로 만든 노란색 소스이고 와사비는 뿌리로 만든 녹색 소스다. 즉 생선을 오랫동안 먹기 위해 밥으로 삭힌 음식이 어느 순간 시큼해서 자꾸 당기는 초밥을 신선한 생선회에 싸서 먹는 음식으로 바뀌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전통의 도시 교토는 신흥 도시인 도쿄의 이 변종 스시를 외면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도쿄는 고집스런 교토의 옛 스시를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도 두 지방에선 각자의 스시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고유의 맛을 아끼면서도 훌륭한 변화에는 찬사를 보내는 여유와 배려가 음식 문화를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전어> 시인 안도현  날름날름 까불던 바다가 오목거울로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곰소만으로 가을이 왔다. 전어떼가 왔다. 전어는 누가 잘라 먹든 구워 먹든 상관하지 않고 몸을 다 내준 뒤에 쓰디쓴 눈송이만한 내장 한 송이를 남겨놓으니 이것으로 담근 젓을 전어속젓이라고 부른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반세기 넘게 밤바다·뱃사람 다 비춘 동해의 수호천사

    [명인·명물을 찾아서] 반세기 넘게 밤바다·뱃사람 다 비춘 동해의 수호천사

    반세기 넘게 밤바다 길잡이 역할을 해오는 강원 동해시 ‘묵호 등대’가 새로운 관광명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푸른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주변에 아기자기한 벽화마을과 펜션, 카페촌까지 어우러져 연인과 가족동반 맞춤 여행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묵호 등대가 관광명소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당시는 전망 좋은 곳에 있는 등대들이 앞다투어 해양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추세였다. 묵호 등대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변신했다. 묵호 등대는 지금도 밤이면 불빛을 밝히며 등대 본연의 역할에 나서고 있다. 낮에는 관광객들에게 고스란히 속살을 공개하며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묵호항에서 울릉도를 최단거리로 정기 운항하는 배편이 생기면서 관광객들이 더 몰리고 있다.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등대 입구에는 쉼터 광장을 만들어 관광객과 시민들 누구나 찾아가 바다를 보고 쉬어 갈 수 있도록 했다. 등대 외벽과 광장 곳곳에는 각종 조각상을 전시하고 시를 새겨놔 볼거리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첫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전문이 초입에 새겨져 관광객들에게 역동적인 동해의 의미도 알려 주고 있다. 등대 내부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 벽면에는 우리나라 유명 유인 등대를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고 동서남북 구분 없이 둥글게 터 놓은 유리 전망대에 오르면 묵호항과 동해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맑은 날에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석처럼 눈부시고, 흐린 날에는 감청색으로 변한 바다가 깊은 맛을 낸다. 등대 내부는 저녁 시간에는 고유의 등대 역할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등대 앞 쉼터광장에서는 밤바다와 불켜진 어항, 가로등 켜진 마을의 밤거리 모습을 볼 수 있어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한다. 10여년 전부터 등대마을 주변에 조성한 벽화가 또 다른 볼거리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묵호항에서 등대로 오르는 골목길 4갈래 길옆 담에 그려 놓은 벽화들이 추억의 걷기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옛 묵호항의 모습부터 오줌 누는 강아지 모습, 주요 생활도구였던 리어카, 봇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는 할머니, 구멍가게 모습 등 40~50년 전 어항주변 달동네 마을의 옛 모습을 그려 놓은 것이 관광객들에게 향수를 주고 있다. 마을의 옛이야기와 모습을 벽화로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것이 오히려 관광객들에게 이색적인 재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연인과 가족동반 관광객들은 이런 그림을 보기 위해 골목마다 10여분씩, 40~50분에 걸쳐 걸어서 오르내린다. 벽화만 감상하는 관광객들도 생겨났다. 곳곳에 기념사진 찍는 곳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작은 입간판도 세워 놓았다. 마을이름도 등대마을에서 아예 ‘논골담길 벽화마을’로 불려지고 있다. 골목을 오르다 등대와 인접한 언덕 마을 정상쯤에 있는 집들은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정집을 커피숍과 펜션으로 꾸며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골목 정상에 옹기종기 작은 간판을 내걸고 개업한 서너 평씩의 아담한 커피숍들은 바닷가로 통유리를 내고 손님을 맞는다. 아예 작은 옥상에도 테이블을 놓고 야외 커피숍을 차린 곳도 있다. 이웃집 지붕과 지붕이 손만 뻗으면 잡히고 골목길 모퉁이 모퉁이마다 앙증맞은 입간판이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매달려 분위기를 더한다. 작은 꽃 화분과 소품들까지 작은 카페에 어울리는 물건 하나하나가 정겹다. 마을 정상에 개업한 커피숍만 6곳, 펜션은 10곳이 넘는다. 김태욱 동해시 관광과 주무관은 “항구 주변이 아늑한 만(灣)으로 둘러싸여 잔잔한 바다 모습이 좋고 부서지는 파도와 먼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어 더없이 좋은 곳”이라면서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등대와 마을의 풍광이 뛰어나다 보니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미 1968년 화제를 불러 모았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고, 최근에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찍은 장소로 알려져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하며 인접한 골짜기에는 길이 30m 남짓 되는 출렁다리도 설치했다. 구불구불 난 벽화 골목길을 오르고, 등대에서 바다를 조망한 뒤 작은 밭둑 길을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닷가 옛 시골마을을 산책 나 온 듯하다. 이렇게 등대가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지난해에만 21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찾았다. 2~3년 전부터 해마다 20% 이상씩 관광객들이 늘고 있어 주변 마을 사람들도 반기고 있다. 벽화마을 아래 항구 쪽에는 어항을 끼고 있어 횟집들이 많다. 그다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횟집들이 어항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활어를 회로 떠 손님상에 내고 있다. 사계절 달리 잡히는 고기들이 동해안의 다양한 바닷고기를 맛볼 수 있게 한다. 횟집 등은 바다를 끼고 난 해안선 도로를 따라 동해안 드라이브를 즐기려는 사람들과 등대, 벽화마을을 찾아 걷기에 나섰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또 다른 먹거리 명소가 되고 있다. 추억의 장소로 만들어 관광객들이 더 올 수 있도록 지난 8월에는 등대 앞에 ‘행복 플러스 우체통’도 만들었다. 관광객들이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우편엽서를 써 넣으면 1년 뒤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이다. 설치 한 달 만인 지난달에만 400여통이 쌓여 벌써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동해시는 아예 올해 말까지 묵호등대마을 정비를 더 진척시켜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노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낙후된 등대마을에 벽화를 더 늘려 그려 넣고 마을 곳곳의 공터에는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더불어 쉴 수 있는 ‘쌈지 쉼터’를 만들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갤러리도 조성할 계획이다. 특히 오징어가 한창 많이 잡힐 때 어부들이 머물던 임시 판잣집들을 살려 볼거리로 만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씀씀이가 주민 소득으로 직접 연계될 수 있도록 마을 공터 곳곳에는 작은 카페와 지역특산품, 먹거리를 판매할 수 있는 지역소득지원시설도 짓기로 했다. 심규언 동해시장은 “1962년 주민들이 지게와 대야로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직접 나르며 고생해 세운 묵호 등대가 5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이제는 지역을 살리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면서 “묵호항이 울릉도와 독도를 잇는 여객 관광항으로 자리잡고 등대와 주변 마을도 스토리텔링, 지역상품 브랜드, 향토 음식과 지역축제, 마을기업 설립 사업 등도 함께 추진해 묵호지역의 소프트 파워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동해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민중을 기록하다(박태순·황석영 외 20인 지음, 실천문학 펴냄) 스무 편의 르포와 한 편의 시로 엮은 한국 현대사다. 박태순, 황석영, 공지영, 윤정모, 오수연 등 한국 대표 작가들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21개 사건들에 직접 뛰어들어 역사 한 줄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침묵을 깨뜨리고 우리가 외면한 진실이 무엇인지를 담았다. 아무도 모르는 청계피복공장 23살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추적하고, 기사 한 줄로만 기록된 강원도 고한 탄광지대 산재 사건의 진실을 좇는다. 대검으로 무장한 공수부대에 맞선 5월 광주의 시민들과 함께하며 불법 이주로 내쫓기는 갈색 눈의 노동자들과 같이 분노하고, 미군기지 이전에 맞서 살붙이 같은 터전을 지키려는 황혼기 노인들의 손을 맞잡았다. 616쪽. 2만 8000원. 외교의 시대(윤영관 지음, 미지북스 펴냄) 한국의 국제정치적 상황과 나아가야 할 길을 밝힌 외교 전략서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격화되기 시작했고, 한반도가 위치한 동아시아는 두 대국의 첫 번째 격돌 장이 됐다.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자 국제정치학자인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책에서 향후 국제 질서가 흔히 이야기하는 주요 2개국(G2, 미국·중국) 양극 체제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보다는 미국과 중국이 제1변수가 되고 일본, 러시아, 인도, 유럽 등 대국들이 제2변수가 되는 다극 체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출판사 측은 “한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가 양극화하는 것을 막고 통일을 이뤄야 한다”며 “이 책은 이를 위한 한국의 미래 전략을 제시한다”고 소개했다. 416쪽. 2만원. 베이징 800년을 걷다(조관희 글, 푸른역사 펴냄) 베이징은 원나라 이후 현재까지 800년 이상 한 나라의 수도로서 중국의 심장부 역할을 해 왔다. 단순히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집적돼 있는 공간이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선 베이징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소설로 읽는 중국사’ ‘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 등을 통해 중국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힘써 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중국의 속살을 날것 그대로 만날 수 있도록 베이징의 모든 것을 담았다. 2008년 펴낸 ‘세계의 수도 베이징’을 새롭게 다듬으면서 베이징의 역사, 문화, 풍습, 제도 등을 보다 알기 쉽도록 다시 썼다. 저자는 “베이징은 중국인들의 중화 관념에 따라 만들어진 계획도시”라고 설명했다. 368쪽. 1만 8000원. 이십원 쁘로젝뜨: 미친 방랑(문정수·김광섭 지음, 이정수 사진, 북하우스 펴냄) 세 명의 청춘이 모였다. 특별히 오랜 벗? 아니다. 문득 만나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말 그대로 20원-딱히 부여할 의미는 없지만 무가치함의 상징쯤 된다-만 들고 서울에서 부산을 향해 떠났다. 삼복더위에 갓 쓰고 저고리 입고 걸으니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이 차를 태워 주거나 잠을 재워 주기도 해서 교통과 숙박의 걱정은 덜고, 권하는 술잔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요기하고, 흥이 나면 각설이 타령을 뿜어내거나 엉터리 사주관상쟁이 흉내를 내며 인생 상담한 대가로 돈을 벌었다. 대책 없이 영혼은 자유로운 이들은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인생의 행복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기성세대의 어설픈 위로보다 훨씬 낫다. 348쪽. 1만 5000원.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존 프리먼 지음, 최민우·김사과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저자는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계간지 ‘그랜타’의 편집장 출신이다. 당시 오에 겐자부로, 귄터 그라스, 무라카미 하루키, 존 업다이크, 조이스 캐럴 오츠, 모옌, 필립 로스 등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부커상 등을 받은 세계적 문학의 거장 70명과 직접 만나 그들의 삶과 문학을 자신의 언어와 사유로 유려하게 펼쳐냈다. 문학사의 교과서와 같은 얘기, 대표작의 서사가 만들어진 배경, 그 대표작의 그늘에 가려진 다른 작품이 담아낸 깊이 등을 따라가다 보면 진짜 작가가 갖춰야 할 자세, 정신 등이 죽비 소리처럼 다가온다. 580쪽. 1만 8000원.
  • [허백윤 기자의 독박육아] “너 키울 땐 안 그랬다” 할머니 핀잔에 초보엄마 냉가슴

    [허백윤 기자의 독박육아] “너 키울 땐 안 그랬다” 할머니 핀잔에 초보엄마 냉가슴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예전에 무슨 일을 했고 공부를 어디까지 했든 관계없이 첫아이를 낳는 순간 모두 ‘처음’ 부모가 된다. 부모의 자녀로 30여년을 살아오다 갑자기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 그 자체로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험을 하면서도 여전히 ‘부모의 자녀’가 돼 내 자녀를 키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부딪힌다. ●노하우 알려준다는 할머니 반갑지만은 않아 사소하게는 아이를 키우면서 마주치는 주변 사람들과 부모님의 육아 관련 조언부터 시작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서른 살 먹은 엄마도 여전히 어리고 아이처럼 보일 테니 자신들의 경험을 알려주기 위해 많은 말들을 전한다. 그러나 젊은 초보 엄마들에게는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전달되는 방식이 어긋날 때가 많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조언이라도 썩 달갑지 않다. 그러나 대응을 하자니 제대로 알고 있는 육아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다. A씨는 아이를 낳자마자 시작된 모유 수유가 너무 힘들었다. 열심히 밥을 먹고 모유 수유를 시도해도 아기가 제대로 먹지 못했다. 모유량도 적은데 엄마도 아기도 서로 괴롭기만 한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모유 수유를 포기했다. 그러나 아기가 감기라도 걸리면 “애가 엄마 젖을 못 먹어서 약하다”는 소리를 매번 들으니 안 그래도 아기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지내는데 가슴이 아프다. 모유 수유에 성공한 B씨라고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잘 먹이는 것 같은데 아기의 몸무게가 쉽게 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찰나 “물젖이라 애한테 별로 영양가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C씨는 임신을 한 직후부터 “무조건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러나 양수가 먼저 터졌고 분만이 더디게 진행돼 아기가 위험한 상황이 됐다.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했다. 아픈 수술 부위를 부여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는데 졸지에 자연분만에 실패한 못난 엄마가 돼 있었다. 초보 엄마들이 흔히 맞닥뜨리는 상황들을 정리해 봤다. 엄마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두고도 여전히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 아이가 크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면 누구보다 속상한 건 엄마다. 그런데 “엄마가 뭐했길래 애가 이렇게 됐어?”, “엄마가 제대로 못 돌봐서 아프다”는 등의 말을 들으면 자책하는 엄마의 마음을 후벼 파는 것 같다. 나는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하루 종일 남에게 맡길 생각에 가뜩이나 심란했다. 그런데 아이를 향해 “이제 엄마가 없으니 불쌍해서 어떡하니”라고 건네진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가슴이 무너졌다. ●서툰 내 모습 나도 불안한데… 지적은 비수로 초보 엄마들은 모든 게 서툴다. 그렇잖아도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다. 아기의 모든 것이 내 책임이고 내 탓 같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지나가다 툭 한마디씩 던진 말일지라도 엄마들에게는 비수로 꽂힐 때가 많다. 누구보다 내 자식을 생각하고 가장 걱정하는 게 바로 엄마인데, 그런 마음은 몰라 주고 낯선 방식을 강요하면 오히려 잔소리로만 들린다. 게다가 젊은 엄마들이 접하는 육아 정보들이 30, 40년 전의 그것과 같을 수도 없다. 그런 점을 이해시키려다가는 “요즘 젊은 엄마들 너무 유별나다”는 핀잔만 듣는다. 아기의 키가 잘 자라고 다리가 곧게 뻗으라고 어른들이 신생아의 다리를 쭉쭉 펴주고 꾹꾹 눌러 주곤 한다. 하지만 요즘 엄마들 사이에선 너무 어린 아기들에게 일명 ‘쭉쭉이’를 하면 안 된다는 게 정설로 여겨진다. 아기의 뼈와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의견을 말하면 “너희도 다 이렇게 컸다”는 말로 무시되곤 한다. 옛날에 다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도 나는 내 아이에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그런 엄마의 방식은 ‘예민함’으로 치부돼 버리곤 한다. 그럴 땐 ‘쭉쭉이’ 자체가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존중받지 못해 화가 난다. 이제 갓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에게 자꾸 이것저것 먹여 보려는 어른들에게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 마치 엄마의 반응이 더 재미있다는 양 그 자리에서 아기 입에 과일 하나를 더 집어넣는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몸에 울긋불긋한 반점이 생기거나 설사를 하는 아기를 보며 속이 상하는 건 엄마일 뿐이다. ●“세대가 다르다… 차라리 집안일을 도와줘라” 미국 스탠퍼드대학 어린이병원에 마련된 다양한 육아 관련 프로그램 가운데에는 조부모들을 위한 강의도 있다. 새로운 육아 방식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당신들이 자녀를 키울 때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니 결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한다. 한 참가자에 따르면 강의 내용 중에는 “새로 엄마가 된 사람들은 아기와 함께 있어야 하니 ‘아기를 안아 주겠다’고 하지 말고 차라리 집안일을 도와주라”는 내용도 있었다. 부모님에게 하루 종일 아기를 맡겨야 하는 직장맘들의 속앓이는 더 심하다. 주양육권자가 아예 엄마에서 할머니로 옮겨지다 보니 아이에게 1순위도 할머니, 육아 방식도 할머니의 것대로 갈 수밖에 없다. 부모는 출퇴근 전후 약 6시간 안팎만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예 평일에는 할머니 댁에 보내고 주말에 상봉하는 ‘주말부모’들도 드물지 않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2 보육실태조사’에서는 영아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의 54.5%가, 유아의 경우 63.5%가 아이의 조부모로부터 양육 지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조부모에게 맡기는 경우 매번 가서 아이를 데려오거나 보는 경우가 89.2%로 가장 많지만 가끔 데려오거나 보는 경우도 10.8%였다. ‘가끔’일 경우에는 평균 11.1일 만에 부모와 아이가 만난다고 한다. ●맞벌이 가족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 신세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속앓이도 만만치 않다. D씨는 평일 동안 시부모께 두 돌 지난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 아이를 만난다. 분명히 좋은 분들이고 지금껏 큰 마찰도 없었다. 하지만 양육 방식이 엄연히 다르니 불만이 점점 쌓인다. 그런데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다. 남편에게 속상한 점을 이야기했지만 “너를 도와주시는데 무슨 불만이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아이도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따른다. 자녀와 육아 앞에서 D씨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없다. 두 아이의 엄마인 F씨는 아예 아이를 한 명씩 나눠 맡긴다. 큰아이는 친정에서 친정어머니가 봐 주시고 둘째 아이는 베이비시터를 뒀다. F씨는 친정에 머물고 남편은 둘째가 있는 집에 머문다. 자녀 두 명을 봐줄 베이비시터를 구하기가 힘들었고, 그나마 첫째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어서 내린 결정이다. 네 가족이 모두 만날 수 있는 날은 주말 이틀뿐이다. 남에게는 도저히 믿고 맡길 수가 없으니 멀리 떨어져서 며칠에 한 번씩만 볼 수 있더라도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게 된다는 것이다. 친정이 해외에 있는 나도 어쩌다 한번쯤은 이 어린 아기를 그냥 해외에 맡겨 놓고 6개월에 한 번씩 가서 볼까 하는 고민을 한 적도 있다. 어린이집이나 베이비시터. 분명히 아이를 돌봐주는 일인데도 너무 불안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의존할수록 부모로서의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초보여도, 일을 하느라 바빠도 ‘엄마’다. 존중받고 싶다.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길수록 엄마의 주도권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할지라도 최소한의 ‘부모권’은 존중될 수 있는 환경이길 바란다. 여전히 엄마인 나를 아이로 보는 어른들의 시선, 그러나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마음 편히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현실. 엄마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냉가슴만 앓는다. baikyoon@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의 커피 향/이동구 논설위원

    북악산 자락의 카페 커피가 가을 맛을 전해 줬다. 구수하면서도 달콤한 듯한 향기가 진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이제 막 울긋불긋 가을 색으로 단장한 나뭇잎들은 커피 향과 견주듯 청량한 가을의 향기를 보냈다. 코끝을 지나 머리까지 맑게 해 주던 커피 향은 어느새 혼미한 추억 속으로 끌어들였다.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갓 20대. 당시 한창 성행했던 음악다방은 친구들과 만나는 아지트(집합 장소)였다. 요즘 말하는 다방 커피 한 잔이면 몇 시간을 족히 즐길 수 있었다. 커피는 친구를 만날 때 먹어야 하는 음료이자 자릿세였다. 그렇지만 커피의 진한 향기와 함께 DJ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음악은 친구들과 조잘대는 젊음을 다독여 주기에 충분했다. 요즘의 커피는 맛과 향에서 그때와 비교가 안 된다. 훨씬 고급스러워지고 다양해졌다. 그래서인지 국민 1인당 연간 338잔(3.38㎏)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1주일에 12.3회꼴로 밥이나 김치보다 더 자주 먹는다. 대단한 커피 사랑이다. 그래도 가끔은 젊은 날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마셨던 다방 커피가 그리워진다. 커피 한 숟가락, 프림 둘, 설탕 셋.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5] 선어회와 활어회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5] 선어회와 활어회

     십수 년 전 일본 도쿄에서 운 좋게 지인을 따라 정부 청사 근처의 호젓한 곳에 있는 고급 횟집을 간 적이 있다. 일본 관료들이 진짜 전통식 회를 즐기고 싶을 때 마음먹고 찾는 곳이란다. 단아한 분위기에다 꽤 비싼 집인 것 같아서 은근히 맛에도 기대가 됐다.  깔끔하게 모양을 낸 전채요리를 후루룩 먹고 나자 막 바로 주인공인 생선회가 큰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그런데 회 두께가 거의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처럼 두껍고, 겉에서 은빛 윤기도 나지 않았다. 머뭇거리다 한 점을 입 안에 넣고 찝는 순간 물컹하면서 퀴퀴한 냄새마저 났다. 아마 한국에서 이런 일을 겪으면 우리는 당장 주인을 불러 “어제 팔다가 남은 회를 손님 상에 내놓느냐”고 항의했을 만하다. 이게 본래 일본식 회란 말인가. ● 일본식 회는 3~4일 낸장 숙성... 독특한 감칠맛 특징 대체로 일본인은 활어에 대나무 꼬챙이 등을 꽂아 즉시 피를 뺀 뒤 냉장 숙성시킨 선어회를 좋아한다. 도톰하게 썬 횟감을 축축한 물수건에 싸서 3~4일씩 보관하기 때문에 독특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횟감을 다루는 것을 마치 예술 행위처럼 여긴다. 반면 우리는 갓 잡아서 바로 먹는 활어회를 제대로 된 회로 여긴다. 솔직히 복잡한 과정은 없다.  우리 선조들도 술안주로 가끔 회를 먹었다. 고려 때 이색부터 조선 때 이항복, 정약용 등은 시에 인용하기도 했다. 위험하긴 하지만 붕어 등 민물고기까지 회로 먹었다. 물론 섬 국가이자 대양과 접해 있는 일본은 각종 어류가 더 흔했다. 아주 오랫동안 육식을 금기했기 때문에 생선이 거의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렇다면 이웃한 두 나라 사이에 왜 이렇게 기호에서 차이가 날까. 논리적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 일본 막부시대 운송수단 열악해 영주 밥상까지 수일씩 걸려 일본은 19세기에 막부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 사실상 군사력이 바탕인 영주(성주) 중심의 연맹국 형태였다. 음식 문화의 다양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의 음식 형태에 여러 기법을 동원해 집중한다. 반면 한국에선 왕권 국가로서 왕의 건강을 위해 맛이나 모양보다 약리 작용을 중시하는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음식 모양만 보면 식재료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자칫 볼품없어 보인다. 중국은 황제국이라며 주변의 이질적 문화도 흡수해 화려하고 다양한 음식 향연의 꽃을 피운다. 고급스런 전통 음식은 권력자나 집안 어른의 입맛을 기준으로 발달하기 마련이다.  고대 일본에서는 좋은 생선이 잡히면 이를 손에 들고 영주의 밥상을 차리는 성까지 사람이 뛰어서 가야 했을 것이다. 고구려 등 한반도로부터 유입된 말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생선이 쉽게 상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아예 물수건에 싸서 숙성시키는 게 낫다. 횟감을 미리 얇게 썰어서도 안 된다. 숙성된 회를 먹어 본 영주가 “맛있구나”라고 했다면, 그때부터 이런 회가 맛있는 생선회가 된다. 사실 잘 숙성된 회는 달달하면서도 살살 녹는 맛이 있기는 하다. 퀴퀴한 냄새도 익숙해지면 풍미가 된다. ● 한반도선 날 생선 거의 안먹어 어부들 즉석에서 활어회 먹던 습성 남아 반면 한반도의 왕들은 독성이 남아 있는 날 생선을 거의 먹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를 탄 어부들은 갓 잡은 생선을 된장에 찍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결국 우리에겐 쫄깃쫄깃한 활어회가 참맛이 된다. 중국 황제도 고소한 튀김 요리 등에 둘러싸여 날 생선을 먹었을 리가 없다. 춘추시대 공자가 생선회를 좋아했다고 하지만, 그건 옛말처럼 여겼을 것이다.  늦가을에는 광어, 참돔, 방어가 고소하게 살이 찌는 제철이다. 펄떡펄떡 뛰는 횟감의 껍질을 발라내고 흰 살만 얇게 썰어서 초고추장이나 와사비(고추냉이 뿌리) 간장에 찍어 먹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또 횟감을 6~7시간 냉장시키면 단백질 구조가 깨지면서 풍미와 감칠맛이 짙어지는 숙성 회(싱싱회)도 된다. 요즘엔 이를 즐기는 식객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본래 일식 횟집의 본고장은 서울 무교동과 북창동 등이었다. ● 무채 독성 흡수 기능... 스키다시 일본엔 없는 우리식 상차림 한편 지레짐작 탓에 오해하는 편견이 있다. 생선회 접시에 깔린 무채는 그냥 모양 좋으라고 나오는 게 아니다. 무는 식품의 독성 물질을 제 몸으로 흡수하는 효능을 지녔다. 따라서 날 생선의 독성을 무가 빼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독성을 고스란히 흡수한 이 무채를 먹어선 안 될까. 무는 독성을 빨아들인 뒤 스스로 비독성 물질로 바꾸기 때문에 생선회와 곁들여 먹어도 괜찮다. 메밀국수와 무즙을 함께 먹는 이치와 같다. 다만 국내 횟집에서는 무채를 아무도 먹지 않기 때문에 다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미심쩍으면 먹지 않는 게 낫다.  또 생선회가 나오기 전 상에 깔리는 스키다시(결들이 음식)는 정작 일본에는 없는 우리식 상차림이다. 1960~1970년대 부산에 대규모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근로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넉넉해지자 비싼 사시미(회)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튀김, 조림, 구이, 무침 등 여러 반찬을 눈으로 봐야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 습성이 횟집 문화를 바꾼 것이다. 결국에는 손을 대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마땅치 않은 허례는 버려야 한다.   <붕어회> 조선의 문신, 학자 서거정   서리 내린 차가운 강에 붕어가 통통 살쪄 회칼 휘두르니 흰 살점이 실날처럼 흩날리네 젓가락 놓을 줄 몰라 접시가 이내 텅 비었네 두보 시의 은빛 회가 자주 생각나누나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대전 ‘과학기술 창작대전’ 폐막

    세계과학정상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2015년 대한민국 과학기술 창작대전’이 22일 폐막했다. 창작대전은 대전 카이스트 류근철스포츠컴플렉스에서 안전, 건강, 편리, 문화 등 4가지를 주제로 열렸다. 문화 부문에서 SF단편소설, SF시나리오, SF희곡, SF웹툰 등 과학기술을 주제로 많은 스토리작가들이 참가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과학창의재단 관계자는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등 세계 과학정상들은 한국의 첨단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전통 창작품인 갓, 금속 활자본, 한지 등의 재료와 제작방법을 묻는 등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新국토기행] 제주 우도

    [新국토기행] 제주 우도

    ‘섬 속의 섬’ 우도는 제주도의 축소판이다. 쪽빛 바다와 오름(기생화산), 해안 절경, 푸른 초원과 검은 돌담, 하얀 등대와 물질하는 해녀…. 우도는 제주 본섬의 풍광을 쏙 빼닮았다. 제주도에 딸린 여러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은 6.18㎢, 해안선 길이는 17㎞에 이른다. 소가 드러누운 형상이라고 해서 우도라고 불리며 1700여명의 주민이 농업과 수산업, 관광업에 종사한다. 우도는 요즘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한적했던 해안가에는 카페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시설도 앞다퉈 문을 열었다. 2010년 12월 제주 본섬과 연결되는 해저 상수도가 통수되면서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는 말끔하게 해소됐다. 한때 일부 주민들이 우도와 제주 본섬을 연결하는 연륙교 개설을 주장했으나 ‘섬이어서 더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여론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 ‘우도에 가기 위해 제주에 온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요즘 우도의 인기는 상한가다. 한 해 15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우도를 찾는다. 우도 절경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바야흐로 우도 전성시대다. 제주도 개발 광풍이 작은 부속 섬에까지 불어닥치면서 우도도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최근에는 우도의 대표적 해안 절경 중 한 곳인 돌칸이해안과 인접한 곳에 대규모 체류형 숙박시설 조성이 추진돼 경관 파괴와 환경 훼손 논란을 빚고 있다. >>볼거리 ●현무암과 대비되는 강력한 풍경의 홍조단괴해빈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빈 퇴적물이 홍조단괴로만 이뤄진 해빈(바닷가)으로 우도의 대표 명소다. 홍조단괴해빈은 우목동 해안에 길이 300m, 폭 15m 정도로 백사장처럼 펼쳐져 있다. 홍조단괴는 홍조류가 석회화되면서 암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만들어진다. 우목동 해안 앞바다에 서식하는 홍조류가 강한 조류와 태풍 등의 영향을 받아 뒤집히고 굴러다니면서 점차 성장하고 돌멩이처럼 굳어진 뒤 떠밀려 와 해빈을 형성하고 있다. 홍조단괴해빈은 너무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이 돈다. 2004년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됐다. 화산섬의 검은색 현무암과 대비되는 하얀 홍조단괴해빈은 강렬한 풍경을 연출한다. 과거에는 ‘산호사 해빈’으로 알려져 왔으나 수년 전 해빈 퇴적물이 홍조단괴로 밝혀졌다. 태풍 등 기상이변과 온난화 등으로 해마다 홍조단괴해빈은 침식돼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1979년 10월에는 홍조단괴해빈 면적이 1만 8318㎡였으나 2013년 8월 조사에서 1만 2765㎡로 34년 새 30.3%(5553㎡)가 사라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의 상승으로 수심이 깊어져 같은 파도라도 해안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데다 인공 구조물인 호안이 설치돼 홍조단괴해빈이 계속 침식되고 있다. 1995년 이곳에 해안도로가 건설됐다. 2005년에는 파도와 모래가 제방 등을 넘어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높이 0.4∼2.5m, 폭 0.3∼4.8m, 길이 282.5m의 호안벽이 설치됐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이런 인공 시설 때문에 홍조단괴 해빈이 훼손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을 조망할 수 있는 우도봉 우도의 동남쪽에 솟아 있는 소머리오름인 우도봉(132m)은 우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다. 우도봉 아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17㎞ 해안선을 따라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 우도봉 정상에서는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의 동쪽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성산일출봉의 동쪽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도봉 정상이 유일하다. 정상에는 제주에서 가장 먼저 들어선 우도 등대가 있다. 우도 등대는 1906년 3월 무인 등대로 점등됐다가 1959년 9월 유인 등대로 바뀌었다. 2003년 12월에 신등탑을 신축했고 97년간 불을 밝히던 서쪽 옛 등탑은 2003년 11월 문을 닫았다. 옛 동탑은 역사적 가치 등으로 원형대로 보존 중이다. 신등대 설치와 함께 들어선 국내 최초의 등대 테마공원도 볼거리가 많다. 덴마크 안홀트, 미국 킹스턴, 프랑스 코르두앙, 일본 다테이시사키, 독일 브레머하펜, 이집트 파로스와 부산 오륙도, 인천 팔미도, 포항 호미곶, 강원 대진, 제주 마라도 등대 등 우리나라와 세계의 유명한 등대 모형이 전시돼 있다. ●옛 돌담 등 가장 제주다운 풍경 선물하는 우도 올레 제주 올레 1~1 우도 올레는 푸른 초원과 검은 돌담, 하얀 등대 등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터벅터벅 걸으며 사계절 내내 쪽빛 바다색을 자랑하는 우도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쇠물통언덕을 지나 제주도의 옛 돌담을 고스란히 간직한 돌담 올레를 걷고 호밀과 보리, 땅콩이 자라는 밭둑 올레도 즐길 수 있다. 기존 우도봉 산책 코스는 바로 올라 전망대로 가지만 우도 올레는 해수를 담수로 만들었던 우도저수지 옆길을 지나 우도봉으로 오르도록 길을 냈다. 이 길은 꽃양귀비와 크림손클로버로 뒤덮인 아름다운 초원 풍경을 보여준다. 천진항을 출발해 홍조단괴해빈 해수욕장~하우목동항~산물통 입구~파평윤씨공원~하고수동 해수욕장~조일리 오거리~연자마~우도봉 입구~우도 등대~천진항으로 돌아오는 우도 올레는 17㎞로 4~5시간이 걸린다. 관광객이 늘면서 우도 올레는 요즘 방해꾼들이 많아졌다. 하루 내내 관광객이 대여한 사륜차와 모터사이클이 굉음을 내며 우도를 휘젓고 돌아다녀 호젓한 올레길을 즐기기는 어렵게 됐다. 또 이들의 잦은 교통사고도 골칫거리다. 한가롭고 호젓한 분위기를 기대했다가 하루 내내 시끄러운 모터사이클 소리가 끊이지 않는 우도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도 많다. 우도에서 모터사이클을 추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대여업을 하는 주민들의 생계와도 연결돼 있어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다. 다행히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 600대의 차량만 우도 반입을 허용하는 차량총량제를 실시 중이다. ●집담·산담·밭담 등 제주만의 풍경 간직한 돌담 우도는 집담, 산담, 밭담 등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돌 문화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집 울타리 역할을 하는 집담은 집의 경계를 나타내고 소나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산담은 무덤가 울타리 돌담이다. 밭 울타리인 밭담의 경우 산에는 짐승들이, 들에는 소나 말, 가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하며 수시로 부는 바람과 태풍 등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것이다. 누군가 쌓아 올린 우도의 돌담은 오랜 시간의 흔적이자 노동 축적의 산물이다. 무너진 돌담은 세대를 이어 쌓고 또 쌓았다. 우도의 해안 돌담은 13㎞나 된다. 북쪽 지역의 돌담 높이는 무려 3m가 넘는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우도는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더 높이 쌓았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면 그 씨앗이 바람에 날리지 않게 높은 돌담을 쌓아야만 했다. 돌과 돌 사이에는 구멍으로 바람 길을 냈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고 오랜 세월을 이겨낸 견고한 제주 돌담의 비결이다. 돌담은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지난해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자연스러운 울림·선율이 흐르는 고래콧구멍동굴 고래콧구멍동굴(경안동굴)은 우도 검멀레해안에 있는 해식동굴이다. 넓은 실내 공간과 동굴의 자연 울림으로 1997년 동굴음악회를 시작한 이래 해마다 음악회가 열린다. 1992년 ‘동굴소리연구회’가 제주의 여러 동굴을 직접 답사한 후 최적의 동굴음악회 장소로 낙점했다. 동굴이 지닌 공명 등 자연 음향의 우수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음악회에는 전국에서 팬들이 찾아온다. 동굴소리연구회는 오는 25일 오후 2시 30분 고래굴에서 ‘한국 가곡의 대향연’이라는 주제로 ‘2015 우도 동굴음악회’를 연다. ‘자연스러운 소리 감각이란 자연스러운 울림 공간에서 더 효과적으로 체득된다’는 게 동굴음악회가 주는 매력이다. 동굴 공간 울림의 뛰어남을 알리고 동굴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동굴음악회는 우도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이다. 검멀레해변은 이름처럼 검은 모래로 이뤄졌다. 응회암이 부서져 만들어진 덕에 독특한 빛깔을 낸다. 이곳에서 올려다보는 우도봉은 해안 절벽의 높이가 20m나 된다. 인근 남서쪽의 돌칸이해변은 둥글고 큰 먹돌이 지천이다. ‘돌칸이’는 소의 여물통이라는 뜻이다. >>먹거리 ●껍질째 먹어야 맛있는 우도 땅콩 우도는 바람, 토지, 기후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땅콩 재배 최적지다. 타 지역에 비해 땅콩이 작고 껍질은 얇고 부드럽다. 우도 땅콩은 껍질째 먹어야 더 맛있다. 우도 땅콩은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E, 니아신, 엽산 등 비타민 공급원을 다량 함유해 치매 예방과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타 지역 땅콩은 조단백질과 조지방 위주로 구성됐지만 우도 땅콩은 조단백질, 조지방 외에도 탄수화물까지 골고루 함유하고 있다. 우도 땅콩으로 만든 땅콩아이스크림은 우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 땅콩밥, 땅콩국수 등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세계 땅콩요리 페스티벌, 땅콩아이스크림 만들기, 땅콩 수확 체험 등 우도 땅콩 축제가 열린다. 최근에는 ‘치맥’(치킨과 맥주) 대신 ‘땅맥’도 우도에서 인기다. 고소한 우도 땅콩과 맥주 한잔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몰이 중이다. ●바다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우도 소라 우도 소라는 크기부터 다르다. 제주에서 가장 큰 소라가 우도 바다에서 잡힌다. 수심이 깊은 데다 물살도 세 우도 바다에서는 큰 소라가 자란다. 해녀들이 갓 잡아 올리는 우도 소라는 다소 비리지만 바다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소라 특유의 맛을 자랑한다. 소라회로도 먹고 소라구이로도 먹는다. 소라구이를 할 때는 소라를 석쇠 위에 올려 놓은 후 물을 조금 부어 끓기 시작하면 부어낸 뒤 소주를 넣고 다시 굽는다. 어느 정도 끓으면 소주잔에다 비우고 또 소주를 부어 끓인다. 이렇게 2, 3회 한 후에 소주는 소주대로 알맹이는 알맹이대로 꺼내 먹는다. 생소라에는 경단백질인 콜라겐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비타민, 미네랄도 풍부하다. 우도에는 소라구이집이 수두룩하다. 연간 2000여t을 생산해 일부는 일본으로 수출한다. 해마다 10월이면 추억의 소라목걸이 만들기, 맨손으로 소라 잡기, 소라구이 시식회 등 소라 축제가 열린다. 글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4] 고추와 겨자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4] 고추와 겨자

     외국인들이 한국인 하면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빨간 고춧가루에 버무린 김치를 늘 밥상에 두고 먹는 사람들일 것이다. 김치가 맵다고 하지만 사실 태국이나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멕시코, 페루 등 남미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매운 고추 요리를 즐긴다. 그럼에도 고춧가루 김치가 한국인의 상징처럼 보이는 것은 매운맛보다 강렬한 느낌의 빨간색 때문이지 않을까. 고추의 효능은 몸속 혈관을 확장해 자율신경의 활성도를 높이고 혀에서 느끼는 통증을 쾌감으로 바꾸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이다. 일종의 운동 효과와 비슷하다. 낙지볶음이나 떡볶이, 짬뽕 등을 먹으며 연신 입바람을 불고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는 게 괜한 말은 아니다. 매운맛은 여성들이 더 좋아하는 듯하다.•고추, 자율신경 활성도 높이고 항생제 역할 고추처럼 입 안을 얼얼하게 만드는 맛은 생강, 마늘, 양파, 깻잎, 갓 등에도 있다. 이 모두가 몸에 이로운 항생제 역할을 한다. 특히 매운맛 음식은 열이 땀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가서 몸속에 냉기가 차는 여름에 먹는 게 좋다고 한다. 또 기온이 뚝 떨어지고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고 활력이 떨어질 때 먹으면 좋다. 우리 고추 품종 가운데 가장 맵다는 청양고추는 그냥 장에 찍어 먹는 것도 좋지만, 찌개나 국에 양념으로 넣으면 그 맛과 향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라면을 끓일 때 하나만 썰어 넣어도 금방 느낀다. 이 청양고추에는 ‘탄생 신화’가 있다. 1983년 일본의 한 카레 회사가 국내의 고추 육종가에게 매운맛의 품종 개발을 요청했고, 이 고추 박사는 제주산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교배했다. 시험 재배지는 경북 청송과 영양. 그러나 새로운 품종의 고추는 의뢰 회사의 요구 조건에 맞지 않아 폐기 위기에 놓였다. 이때 새 고추의 맛을 아는 청송과 영양의 농민들이 씨를 넘겨받았고, 이 고추는 기사회생을 한다. 그래서 이름이 청송과 영양의 지명을 딴 청양고추가 된다.•고추가루용은 단연 청양산, 고추장용으론 순창 빼놓을수 없아 청양고추의 맛과 향이 입소문을 타자 충남 청양군에서 의의를 제기했다. 본래 청양의 고추도 유명했는데, 졸지에 매운 고추로 오해받기 때문이다. 고추는 날로 먹는 풋고추, 김장이나 고추장에 쓰이는 홍고추, 볶음용에 좋은 꽈리고추, 절임용인 아삭이 고추, 단맛의 파프리카 등으로 구분된다. 본래 청양에서 나는 고추는 붉은 빛깔과 단맛이 나는 고춧가루용 고추다. 빛깔과 맛이 좋은 고추장을 꼽을 때 전북 순창의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다. 순창 고추장은 조선 시대부터 유명했다. 섬진강 주변의 깨끗한 지하수와 발효균에 안성맞춤인 습한 기후, 고운 빛의 태양초 등이 전래의 손맛과 어우러진 덕분이다. 고추장은 우리가 오랫동안 먹어 온 된장에 고춧가루와 은근한 단맛을 가미한 것이다. 고추는 15세기 남미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뒤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에 전했다고 본다. 한반도에는 임진왜란 때 영남 지역부터 퍼졌거나, 왜란 이전에 일본 대마도와의 교역 상품으로 건너왔을 수도 있다. 처음에 고추는 생소하고 강한 맛 탓에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다 조선 후기 때 김장에 고춧가루가 들어가고 고추장으로 변신한다. 고추장 덕분에 우리의 반찬이 풍성해진다. 맵고 빨간 더덕, 깻잎, 굴비 등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한다.• 선조들 겨자로 만든 ‘머스터드 소스’ 즐겨먹어... 진통제 역할도 그러나 선조들이 예부터 음식 소스(장)로 활용한 식재료는 빨간 고추가 아니라 꽃이 노란 식물인 머스터드였다. 피자나 치킨을 찍어 먹는 머스터드 소스가 고추장보다 우리에게 더 뿌리 깊은 맛이라니 놀랄 일이다. 코끝을 톡 쏘는 맛의 겨자류 식물은 세계에 2000여종이나 있다. 양배추와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콜라비 등 요즘 건강 식재료로 각광받는 것들이다. 이런 겨자류의 본래 종자가 갓김치에 들어가는 한해살이 속씨식물 갓이다. 겨자나 갓은 기원전부터 고대 이집트나 고조선 등에서 귀한 약재이자 식재료로 다뤘다. 자극성 강한 맛과 향에 항암, 소염, 감기 등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겨자를 물에 풀어 몸에 바르면 신경통, 관절염, 통풍 등에 좋은 파스(소염진통제) 역할까지 했다. 그래서 양배추를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와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늘 먹었고, 현대에선 브로콜리가 세계 10대 슈퍼푸드에 선정된 것이다. 호배추로 김장을 담그기 직전에 제철을 맞는 갓김치를 밥상에 올리는 것도 입맛과 건강을 함께 챙기는 지혜다.   <고추의 노래> 일본 시인 오노 도자부로   한국 요리는 왜 매운가.  김치라고 하는 반찬에 이르기까지  고추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검붉은빛 큰 알맹이의 한국 고추  너는 그것을 갓 푼 밥 위에 들어부어  땀도 흘리지 않고 개걸스럽게 먹었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피난민’과 골목길 산책… ‘김광석’과 동네 한 바퀴

    ‘피난민’과 골목길 산책… ‘김광석’과 동네 한 바퀴

    골목엔 사람의 체취가 강하게 담겨 있다. 아이들에겐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등의 놀이를 통해 사회성과 경쟁심의 묘한 경계를 체험하던 곳이었다. 마음에 둔 소녀의 골목 안쪽 집을 사람들 눈 피해 은근히 다녀오던 비밀의 통로이기도 했다. 어른들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다. 출근의 ‘좌절’과 퇴근의 ‘기쁨’을 담장 곳곳에 새겨 뒀겠지. 그렇게 골목은 비좁지만 경쟁과 다툼, 서정 등 온갖 종류의 감성이 넘나드는 공간이었다. 감성에 시간이 덧대지면 서사가 되고 역사가 된다. 대구에 그런 골목이 있다. 세월이 더께로 내려앉은 골목이다. 낡고 허름한 공간에 불과했지만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히고 나니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른바 대구 근대골목이다. 대구는 한국전쟁 때 수많은 사람이 피난처로 삼았던 곳이다. 한국전쟁의 포연이 비껴갔다는 얘기다. 특히 대구 중구의 경우 도시화와 재개발 열풍마저 피해 갔다. 이는 부산, 대전 등의 원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 덕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흔적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대구 근대골목은 이런 골목길을 주제별로 나눠 관광코스로 개발한 것이다.골목길 투어는 제1코스 경상감영달성길부터 제5코스 남산 100년 향수길까지 모두 5개 구간으로 나뉜다. 가장 유명한 건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이다. 길이는 1.64㎞에 불과하지만 건물이며 길 등이 거대한 노천박물관을 이루고 있어 제대로 보려면 2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들머리는 계명대 동산의료원과 신명여고다. 여기가 그 유명한 청라언덕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으로 시작하는 가곡 ‘동무생각’에 나오는 그 언덕이다. ‘푸를 청’(靑)에 ‘담쟁이덩굴 라’(蘿)자를 쓰는데, 이는 언덕 위에 있는 세 채의 선교사 사택 담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가곡 가사에 ‘백합 같은 내 동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작곡가 박태준(1900~1986)이 짝사랑하던 신명여고 여학생을 뜻하는 표현이다.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 사라진다’고까지 했으니 여학생에 대한 연모의 정이 대단히 깊었던 듯하다. 당시 박태준과 교분이 두터웠던 시조시인 이은상이 그의 심정을 담아 시를 썼고 여기에 박태준이 곡을 붙였다.청라언덕에는 1905~1910년 사이에 지어진 선교사 주택이 남아 있다. 한식과 양식이 조합된 건물로, 일제가 대구읍성을 허물고 나온 돌이 일부 건축자재로 쓰였다. 이 가운데 의료 박물관으로 이용되는 챔니스 주택은 계성학교 2대 교장인 레이너와 챔니스 등의 사택으로 이용됐고, 선교 박물관인 스윗즈 주택은 계명대 초대 학장이었던 캠벨 등 선교사들의 주거 공간이었다. 스윗즈 주택 옆엔 사과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다. ‘대구 사과’의 효시가 됐던 사과나무의 3세목이다. 1899년 동산의료원 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3개 품종의 사과나무를 들여와 사택 뜰에 심어 키웠고, 이 중 미주리 품종만 자라 동산의료원 주변으로 보급한 것이 대구를 사과 주산지로 만든 계기가 됐다고 한다.곧이어 3·1 만세운동길. 90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오르막길이다. 계단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계산성당이다. 1918년 서울 명동과 평양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이 성당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김수환 추기경 역시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계산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계산성당 오른쪽 길가 담벼락에는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꿈꾼 민족운동가 서상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의 모자이크 초상화와 벽화, 시 등이 그려져 있다. 골목 안쪽엔 용케 재개발 위기를 모면한 서상돈, 이상화 고택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이어 옛 제일교회와 약령시, 종로, 진골목, 화교소학교 등 격동기 대구의 근대문화 흔적들이 펼쳐진다.골목길 투어에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빼놓을 수 없다. 1996년 서른셋 나이에 세상을 등진 ‘비운의 가객’ 김광석을 현재로 소환하는 공간이다. 대구의 한 문화기획단체가 도시화의 뒤편으로 밀려났던 전통시장과 골목길을 재창조하기 위해 ‘김광석 테마’를 도입했는데 이게 여러 세대의 공감대를 얻으며 이른바 ‘대박’을 쳤다. 원래 4코스에 속한 길인데, 코스 완주 여부에 상관없이 꼭 찾아봐야 할 곳이다.골목에 들면 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대개 그렇듯 그의 노래의 끝자락은 영혼의 위로에 가닿지 않던가. 애잔한 노래가 대부분이지만 듣다 보면 절로 가슴이 움직여지고 어느샌가 행복해진다. 그러니 이제 갓 이등병 계급장을 단 군인이며 겨우 서른 즈음에 이른 젊은이, 중장년층과 60대 노부부 등이 나이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그의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는 것일 게다.팁 하나. 김광석길 관광안내소, 서문시장 관광안내소는 반드시 들르자. 간간이 설문조사 등의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참여한 이들에게 전통시장상품권 등을 선물로 준다. 사실상 현금이나 다름없어서 서문시장 등에서 ‘먹방 투어’를 즐길 때 제법 요긴하게 쓰인다. 물론 관광안내책자를 받아 오는 것도 잊지 말자.팔공산 동화사는 달 뜬 밤에 찾으면 좋다. 낮의 소란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적요해진 절집 뜨락을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 동화사가 깃든 대구 동북쪽 지명은 대개 고려 태조 왕건과 관계가 깊다. 예컨대 왕산(246m)은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지나간 산, 곱창골목으로 이름난 안지랑은 왕건이 앉아서 깜빡 잠이 든 곳, 은적사는 꿈에 나타난 노인이 대피하라고 알려 준 절집이란 식이다. 반야월은 왕건이 허겁지겁 도망가다 이쯤이면 안심해도 되겠지 하고 하늘을 보니 반달이 떴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앞산전망대는 대구를 굽이돌아 가는 낙동강과 대구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올라 일망무제의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대구의 밤 풍경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다만 케이블카가 연장 운행되는 금~일요일에만 가능하다. 야경을 여유 있게 감상하고 등산로를 따라 걸어 내려올 수도 있지만 그리 권할 만한 코스는 아니다.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여행수첩]→가는 길:근대골목 투어 때 꼭 정해진 들머리를 이용할 필요는 없다. 2코스의 경우 서문시장 쪽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대구 지하철 3호선(모노레일) 신남역 6번 출구로 나와 7분 정도 걸으면 시작된다. 동산의료원 쪽에서 접근하면 청라언덕 등 하이라이트 부분부터 되짚어 나오게 된다. 시청 홈페이지나 전화로 해설을 신청하면 문화관광해설사와 동행하며 상세한 설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053)661-2624. 골목에 얽힌 내력 등이 적힌 ‘도심문화탐방 골목투어’ 지도는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대구 중구청, 혹은 골목길 안내소 등에서 얻을 수 있다. 모노레일 출발지는 수성못역이다. 대구 10미 가운데 하나인 막창골목과 가깝다. 서문시장에서 먼저 요기를 하겠다면 서문시장역, 김광석길을 먼저 가겠다면 대봉교역에서 내린다.→맛집:대구에서 맛봐야 할 게 ‘대구 10미’다. 이 가운데 납작만두, 누른국수(칼국수), 찜갈비, ‘야끼’(볶음)우동, ‘뭉티기’(생고기), 복어 불고기, 따로국밥 등 7가지를 서문시장과 골목길 투어 코스 주변에서 맛볼 수 있다. 특히 조선 시대 3대 시장 가운데 하나였다는 서문시장은 ‘먹방 투어’를 꿈꾸는 이들이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다. 값싸고 맛있는 음식들과 만날 수 있다.
  • [독박(讀博) 육아일기](29) 1인실 쓰고도 출산비 ′0원′…호주·미국 육아맘에게 물었다

    [독박(讀博) 육아일기](29) 1인실 쓰고도 출산비 ′0원′…호주·미국 육아맘에게 물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것들, 외국에 사는 다른 엄마들은 어떨까. 우리나라만 이렇게 혼자 아기 키우기 힘든 환경인 걸까, 아니면 우리나라 엄마들만 유독 힘들어하는 것일까. 마침 사촌들이 해외에서 국제 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고 있다. 큰이모의 딸, 작은 아버지의 딸, 고모의 딸이 그렇다. 이런 조합을 찾는 것도 흔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궁금한 내용들을 물었다.모두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된 뒤 해외로 떠났다. 미국과 일본, 호주. 살고 있는 나라도, 형부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이들의 경험과 사연을 통해 ‘독박육아일기 해외편’을 적어보기로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는 사촌언니 허지혜(34)는 지난해 7월 딸을 낳았다. 남편은 대만계 미국인이다. 고모의 딸인 홍서영(32)은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 호주인 남편과 가정을 이뤘다. 지난 3월 아들을 낳았다. 두 명 모두 아기를 낳은 뒤 우울감이 심해 심리치료나 상담을 받기도 했다. 미국과 호주의 육아 경험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본다. (편의상 나라 이름으로 표시한다)     -그곳에선 아이 키우는 환경이 어떤지, 경험을 중심으로 알고 있는 보육정책에 대해 알려달라.  →호주: 나는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서 출산휴가를 따로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 각 가정의 수입에 따라 정부 지원금(family benefit)이 나온다. 2주마다 300~400 달러를 받고 있다.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출산비용과 예방접종 비용도 모두 정부에서 부담한다. 나는 출산하고 1인실에 입원했는데도 내 돈은 단돈 100원도 들지 않았다.  →미국: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은 꽤 있는 걸로 아는데 나처럼 그냥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겐 혜택이 적다. 지난해 아기를 낳고 세금에서 2500달러 정도를 줄여 받았지만, 내가 받은 돈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단기장애보험(Short-term Disability Insurance·SDI)이라고 하는 갑자기 건강이 좋지 않을 때를 대비한 보험 프로그램이 있다. 매달 급여에서 1~2% 정도를 보험료로 냈다. 임신과 출산 관련 비용도 이 보험을 통해 처리했다. 이 보험을 통해 출산 전 4주 동안과 출산 후 6주 동안 월급의 55%를 받는다. 금액이 적다 보니 그냥 아기를 낳기 바로 직전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들은 예방접종을 무료로 지원해준다는데 여기는 아기들도 개인 보험을 들어야 한다. 가장 저렴한 것을 찾아서 매달 300달러의 보험료를 낸다.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정기 진료를 받을 때마다 또 20달러를 내야 한다. 약이나 영양제도 모두 따로 사서 먹여야 한다. 아기가 생후 4일 만에 황달로 병원에 하루 입원했는데 병원비가 1400달러나 나왔다. 아기가 돌이 지난 뒤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일주일에 사흘 보내는데 한 달에 1700달러를 낸다. 4일 이상 보낼 경우에는 2200달러였다.     -출산 이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엔 어땠나.→미국: 12주 동안 육아휴직을 하며 월급의 55%만 받아 빠듯했다. 이후 복직을 해야했는데 모유수유를 하던 아기가 젖병을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풀타임 근무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다행히 재택근무를 허락한다는 직전 회사의 제안을 받았고, 현재 회사와도 협상이 가능해서 두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집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기를 데리고 재택근무을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힘들었다. 시어머니가 평일에 와서 아기를 봐주셨지만,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 것과 집안일까지 해야했다. 일할 틈이 없었다. 아기가 밤 10시쯤 잠들면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밤중수유도 해야했고 거의 매일 밤을 꼴딱 새다시피 했다. 결국 아기가 11개월 됐을 때 한 회사의 일을 그만뒀다. 수입은 줄었지만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임신부가 예정일까지 꽉 채워서 일을 했다거나 출산 직후 바로 복직을 했다는 얘기가 많고, 그렇게 하는 걸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호주: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니 회사에서 출산 3개월 전부터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고, 휴직 기간을 포함해 18주 동안 정부지원금을 2주마다 90만원씩 받았다고 한다. 월급 만큼은 아니어도 많은 부담을 덜었다고 한다. 단 한화로 연봉 1억 3000만원 이상은 이 수당을 받을 수 없다. 직장맘은 어린이집 비용도 절반 지원을 받는다. 다만 어린이집 비용 자체가 비싸다. 하루에 70~80달러, 어떤 곳은 100달러가 넘을 정도다.  특히 일하는 여성에게 좋다고 여긴 것이 유연근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만 4세와 1세의 두 자녀를 둔 친구는 주 1일 오전 9시~오후 2시 파트타임으로 회사 일을 하고 있다. 그 사이 큰 아이는 유치원에 보내고 작은 아이는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 봐준다. 업무 분야에 따라 재택근무와 유연근무가 가능한 회사에는 직장맘을 배려해주는 편이다.    -출산 및 육아에 있어서 남편들을 위한 정책은 뭐가 있나.→호주: 남편이 아내 출산시 주어지는 2주의 출산휴가를 받았고 그 기간 동안 급여도 모두 받았다. 그래서 산후조리 기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미국: 단기보험(SDI) 프로그램에 따른 6주의 휴가와 이후 6주의 육아휴직을 엄마와 아빠 모두가 이용할 수 있다. 아기가 돌이 될 때까지 아무 때나 쓰면 된다. 남편은 출산 직후 3주 동안 집에서 나를 도왔다. 이후엔 7주 동안 일주일에 2~3일만 일을 하며 육아를 함께했다.    -외국인 아빠들의 육아에 대한 생각과 실제 참여도는 어떤가.→호주: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집안일은 요리는 주로 내가 하고 남편은 빨래와 청소를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분담이 돼있다.→미국: 남편은 정신적으로는 70%, 실제로는 30% 정도 육아에 참여하는 듯 하다. 회사가 집에서 멀다 보니 처음에는 깨어있는 아기를 마주칠 시간조차 없었다. 서서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우리는 아기 이유식 재료 같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서로 의논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크게 부딪힌 일도 있다. 미국에서는 영아 돌연사 때문에 부모와 아기가 함께 자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자랐고 한국 친구들이 아기와 같이 자는 걸 봤기 때문에 아기를 데리고 자고 싶었다. 남편은 왜 아기를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하냐며 극구 반대했다. 결국 따로 재우는데, 아기는 혼자서 절대로 자려고 하지 않았고 내내 울어대기만 했다. 한 사흘 정도 남편이 잠든 사이 눈치를 봐가며 내 옆에서 데리고 잤더니 아침까지 푹 잘 잤다. 그런데 남편이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거듭 지적하더라. 간만에 나도 잠을 잘 수 있어서 힘이 났는데 그 말이 너무 서럽고 화가 났다.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건 뭔가.→호주: 산후조리 기간에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다. 가족이나 친정 엄마가 함께 있으면서 먹을 것부터 하나하나 챙겨줬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육아에 대해 모르는 시기에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애를 많이 먹었다. 남편이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육아와 살림, 정서적인 보살핌까지 모두 충족할 수 없었다.→미국: 나는 돈이 제일 필요했다. 원래 나는 돈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어서 전공과 직업도 모두 돈과는 거리가 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택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보니 돈이 곧 아기와 지낼 수 있는 시간이자 도와줄 사람이었다. 돈이 있어야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집에서 아기를 더 돌볼 수 있고 돈이 있어야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쉬면서 여유도 갖고, 그러면 아기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사는 동네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대부분 일주일에 한 두번 가사도우미를 부르고 음식도 배달시켜 먹는다. 또 보모를 고용해 일주일 내내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런 엄마들은 잠도 충분히 자고 아기들과 놀 시간도 많다. 그래서인지 그 아기들이 내 딸보다 더 건강해보이기까지 했다.    -육아에 대한 정보는 주로 어떻게 얻었나. 한국에서는 주로 산후조리원 동기모임을 하거나 동네에서 또래 아이 엄마들과 친해지며 육아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미국: 자연주의 출산을 해서 집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낳았는데, 그 산파가 돌보는 가족들이 3주마다 모인다. 출산부터 육아 정보까지 두루 공유한다. 또 대학 어린이병원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엄마와 아기들이 모이는 프로그램이 있다. 아기가 6주쯤 되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임을 찾아갔다. 또래 엄마들과 고충을 나누며 서로 위로가 되고 있다.→호주: 퀸즐랜드주에서는 출산 직후 ‘레드북’을 준다. 여기에는 출생 정보와 예방접종 스케줄 등 다양한 육아 정보들이 담겼다. 출산하면 병원에서도 많은 지역 정보를 제공해준다. 무엇보다도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육아 프로그램에나 공원의 유모차 모임 등 엄마들과 함께 소통했을 때가 가장 도움이 된다.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나 우울감은 어떻게 해소했나.→미국: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큰 도움이 됐다. 대학병원 엄마·아기 모임에 참여하면 한주 동안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을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속마음도 알게 되고 현재의 고충과 아기들의 발달상황을 공유한다. 어느 날 한 엄마가 자기는 사흘씩 샤워를 못한다고 털어놨다. 너무 피곤하고 바빠서 씻는 게 버겁다고. 모임이 있던 그날은 머리에 하도 기름이 져서 베이비파우더를 머리에 뿌리고 왔단다. 그 엄마가 “그래서 오늘은 할머니처럼 머리가 하얘졌다”고 웃으면서 말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도 모두 웃다가 울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내가 요즘은 얼마나 깨끗하고 덜 피곤해졌는지 깨달으며 웃음이 난다.→호주: 산후우울증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상담치료나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의사들은 나의 힘들었던 점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진지하게 귀담아 들어주었다. 산후우울증이 엄마 개인의 문제 만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잘 되어있다고 느꼈다.     -한국 엄마들과 외국 엄마들의 임신, 출산, 육아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공통: 외국에서는 산후조리의 개념이 거의 없다. 한국의 산후조리원 같은 시설은커녕 출산 직후에도 평소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하는 걸로 생각한다. 출산 후 바로 샤워를 하고 평소에 먹는 음식들을 그대로 먹는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한다는 생각도 없고 찬 음식도 바로 먹는다.→호주: 출산 후 일주일이든 이주일이든 몸이 회복되는 대로 움직이고 외출한다. 운전도 마찬가지다. 갓 태어난 신생아를 데리고 쇼핑몰에도 많이 나온다.→미국: 미국도 그렇다. 신생아들이 밖에서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카시트나 유모차를 큰 돈 들여서 좋은 것으로 장만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엄마들은 수면교육을 많이 한다. 일찌감치 아기를 따로 재운다. 그런데 신기한 건 미국 아기들도 거기에 잘 적응한다는 거다. 미국 아이들 대부분 독립심도 강하다고 느낀다. 육아 모임에 가면 우리 아이만 동양 아기인데 유독 혼자서만 나에게 매달려 울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아기 자체의 성향 때문인지 엄마의 특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 미국 엄마들은 자신의 커리어나 행복 추구를 당연하게 여긴다.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모유를 짜서 버리는 일도 많이 봤다. 아기를 맡기고 엄마들끼리만 저녁에 모여 식사를 하거나 주말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나는 아직 그 정도로 마음이 놓이지는 않는다. 나는 아기 옆에 있는 게 제일 행복하고 아기 몸에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육아가 힘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아기와 꼭 붙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더 강하다.     -공통점은 뭐가 있을까.→미국: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든 다 같은 것 같다. 모임을 하다보면 동질감을 더 많이 느낀다. 시어머니와 갈등이 있는 것도 비슷하다. 스탠포드 대학 어린이병원에 육아 관련 강의가 많은데 그 중에 조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도 있다. 핵심은 “요즘은 당신들이 자식을 키울 때랑 많이 다르다. 그러니 결코 당신이 알고 있는 (육아 정보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새로 엄마가 된 사람들은 아기와 함께 붙어있어야 하니 아기를 안아주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집안일을 도와주라”는 등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 강의가 있을 만큼 할머니와 초보 엄마의 갈등이 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호주: 고부갈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기서도 시어머니가 육아에 간섭하며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똑같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아들을 은근히 선호하기도 한다. -아이와 엄마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시선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최근 ‘노키즈존’을 내세우는 식당이나 카페도 늘어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호주: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면 모두 버스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리를 내주거나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 길을 비켜준다. 여성과 아이에 대한 배려심이 아주 높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공원을 지나다가 아기 엄마가 모유수유를 하는 것을 몇 번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모유수유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위기다.  한 지인은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운전하던 중에 경찰에게 제지를 당하고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아이가 카시트에 잘 앉아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더나 카시트가 아이 몸에 잘 안 맞게 돼있다는 거였다. 안전벨트의 헐렁임 정도와 어깨선 높이 등을 재보고는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미국: 아기가 잘 울고 활동적이라 밖에 나가면 약간 피해를 끼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가 눈치를 주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울면 “도와줄 것은 없냐”, “얼마나 힘든지 안다”는 등의 위로가 되는 말을 건네준다. 그리고 전업주부나 전업남편들도 많아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들 잘 알고 있다. “차라리 회사에서 일하는 게 쉬는 것”이라는 농담도 많이 한다. 전반적으로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한 많은 이해가 되어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호주: 처음에는 모르는 것 투성인데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고생을 많이 하고 산후우울증도 겪었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빨리 치료를 해서 육아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생겼다.→미국: 힘들었던 경험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항상 활짝 웃고 사람들을 잘 따르는 아기를 보면 정말 행복하다. 육아하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그나마 나는 친정이 세 시간 거리에 있고, 시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시고 신랑도 자상하고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었어도 잘 극복하려고 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23)엄마의 책임감도 아이와 함께 자란다 (24)깜깜한 초보엄마를 깨워줄 길잡이가 필요하다 (25)아들 딸 구별 말자던 세상, 정말 달라졌을까 (26)가끔은 그냥 ‘나’이고 싶다 (27)1년에 단 며칠인데 뭐가 그리 힘드냐고요? (28)좋은 엄마 나쁜 엄마 따로 있나요 ▶1회부터 22회까지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허백윤 기자의 독박 육아일기 / ☞블로그
  • [新국토기행] 전남 목포시

    [新국토기행] 전남 목포시

    전남 목포는 개항 116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항구도시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많은 예술인을 배출해 온 남도 예향의 본고장이다. 서남권 다도해를 비롯해 천혜의 관광자원과 문화유적을 자랑한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색과 맛의 향연이 넘실대는 맛과 멋, 빛의 도시다. 세계파워보트레이스를 이끄는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델 팔라시오, 주한 일본대사였던 우시로쿠 도라오 등 외국인들은 일찍이 “목포 바다는 지중해보다 아름답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일제강점기 활발한 부두경기를 누렸던 목포항은 상업 무역 중심지가 되면서 한때 3대항 6대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는 유달산 자락의 목원동 일대가 쇠락해 가면서 도심 전체가 침체에 빠졌다. 지난해 목원동 일원 60만㎡가 국토교통부로부터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되면서 2017년까지 200억원이 투입돼 제2의 도약을 꿈꾼다. 특히 중국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上海)시와의 거리가 671㎞로 가깝고, 중국 최대 경제권인 장쑤(江蘇)성, 저장(浙江)성 등 동부 연해지역과도 멀지 않은 이점을 활용해 동북아 중심도시로 성장한다는 구상이다. 물류비용 절감과 교역 접근성, 목포 입구에 있는 세라믹산업단지와 대양산단을 개발해 중국 수출의 교두보로 활용하기 위해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볼거리 ●봄꽃소식 육지에 가장 먼저 전하는 유달산 남쪽바다를 건너온 봄꽃 소식이 육지에 처음 와 닿는 곳이다. 봄이 오면 유달산에는 노란 개나리와 화사한 벚꽃이 어우러진 꽃동산이 돼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노령산맥 마지막 봉우리인 유달산은 해발 228m,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기암절벽에서 온갖 조형미가 묻어나고 문향 가득한 눈요깃거리가 많다. 유달산 정문 쪽 큰 바위 노적봉은 목포 사람들에게 마르지 않은 ‘지혜의 섬’으로 통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봉우리에 이엉을 덮고 군량미로 위장해 놓은 것을 왜군이 대군이 진주하는 것으로 알고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노적봉 윗부분을 사진 찍어 90도로 회전할 경우 그 형상이 더욱 뚜렷하다. 이순신 장군을 닮은 큰 바위 얼굴로 목포를 끝까지 수호해 준다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겼다. 대학루, 달선각, 유선각, 관운각, 소요정 등 5개 정각은 고즈넉한 목포항의 정겨운 풍경과 아름다운 다도해 절경을 한눈에 바라다볼 수 있다. 4만 6280㎡(약 1만 4000평) 규모의 조각공원과 국내 희귀 난 194종이 있는 난공원도 있다. 단아한 난의 자태와 꽃냄새로 감동이 넘친다. 한때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는 신호로 사용했던 오포대를 지나 올라가면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나온다. 주말마다 새천년 시민의 종 타종 체험과 천자총통 발포 체험을 즐길 수 있어 다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체험거리도 풍부하다. ●날갯짓하는 학의 모습 형상화한 목포대교 2012년 완공된 목포대교는 총연장 4.129㎞, 너비 35~40m의 왕복 4차선 도로로 북항과 고하도를 잇는 해상 교량이다. 3346억원을 투입, 초속 74.9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높이 167.5m 다이아몬드 주탑 2개, 교각 36개, 상판 슬래브 36경간, 최대 5만 5000t급 선박과 충돌하더라도 다리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돌보호공을 설치했다. 목포 역사상 최대의 역점사업으로 추진됐다. 무안국제공항이 활성화되고 물류비용 절감과 접근성 향상으로 대불산단, 대양산단, 세라믹산단 등의 기업 유치를 촉진시킨다. 목포 북항권과 원도심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는 등 서남권 발전에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세계 두 번째이자 국내에서는 처음 도입된 ‘삼면배치(3-way) 케이블 공법’을 적용하는 등 해상교량 기술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탑과 케이블은 목포의 시조(市鳥)인 학 두 마리가 목포 앞바다를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해 운전자들이 교량을 건널 때 케이블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갯짓하는 듯한 시각효과를 느낄 수 있다. 경관 조명 설치로 학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日영사관 등 근대 건축물 보존된 역사의 거리 1관인 일본영사관은 목포 최초의 서구적 근대 건축물로 당시 중국 샤먼(厦門) 영사관과 함께 일본 재외 영사관으로 쌍벽을 이뤘다고 한다. 일본 영사관은 목포의 근대 역사를 담은 사진을 전시하기 위한 근대역사관 본관으로 쓰고 있다. 700m 떨어진 2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전남도 기념물 제174호다. 호남지역 유일하게 보존된 일본식 정원인 이훈동 정원도 만날 수 있다. 한국 야생종과 외래 수종 등 113종의 수목과 원주형, 직부형, 설견형 등의 일본식 석등으로 이뤄졌다.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 촬영지이기도 하다. ●박물관·전시관 모여 있는 갓바위 문화 타운 갓바위를 비롯해 천혜의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한 박물관과 전시관이 집적돼 있다. 남조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예향 목포를 느낄 수 있는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복합 관광지다. 산 교육 학습장으로 매년 봄이면 수학여행과 현장학습을 위해 찾아오는 학생들로 붐을 이룬다. 갓바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갓을 쓴 모습의 애틋한 전설이 담긴 바위로 지질학적, 관광학적 가치가 높아 2009년 문화재청으로부터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됐다. 파도·해류 등에 의해 바위가 침식되는 현상과 암석이 공기·물 등의 영향으로 어떻게 변화돼 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다른 지역 풍화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성을 가지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자연사박물관도 있다. 공룡모형, 화석, 식물, 곤충, 조류, 어류표본 등 총 4만여점의 방대한 자료를 소장해 지구 46억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최고의 자연학습장이다. 박물관에는 전남 신안군 압해도에서 발견된 국내 유일의 초대형급 육식공룡둥지 화석을 볼 수 있다. 이 화석은 알 크기가 43㎝에 이르는 국내 최대 크기의 육식공룡알 19개가 포함된 직경 230㎝ 둥지로 복원됐다. 갓바위와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벗하는 문예역사관, 남농기념관,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관, 목포 문학관 등이 함께 있다. ●기네스에 등재된 세계최초 춤추는 바다분수 2012년 한국관광기네스에 등재된 세계 최초 초대형 부유식 음악분수다. 목포항을 형상화한 부채꼴 모양과 삼학도를 상징한 조형물, 유달산 모형의 구조물은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수반길이 150m, 높이 13.5m, 최대 분사 높이 70m로 경관 조명과 어우러져 다양한 모양이 표출된다. 환상적인 음악과 분수, 영상, 레이저 빛이 뿜어내는 다이내믹한 연출은 관광객들에게 목포의 색다른 낭만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요트 등 수상 레포츠 즐길 수 있는 삼학도 세 처녀의 애절한 사랑을 스토리로 간직한 삼학도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를 각종 사료와 영상자료로 살펴볼 수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과 갯벌 체험·심해모형잠수정·깊은 바다 재현 영상·바다 동식물 생태 및 먹이 모형 체험 등 아이들의 감각을 풍부하게 자극하도록 구성된 어린이바다과학관이 있다. 카누와 요트 체험 등을 통해 도심 속 공원에서 쉽게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먹거리 ● 원기 회복에 좋은 갯벌의 인삼 ‘세발낙지’ 목포를 상징하는 대표 먹거리다. 발이 세 개여서가 아닌 발이 가늘다는 뜻의 세(細)로 갯벌 속의 인삼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원기에 좋은 건강식이다. 세발낙지는 크기가 작아서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통째로 먹어야 제맛이다. 목포 사람들은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연포탕, 새콤달콤한 회무침, 낙지비빔밥, 갈낙탕 등 10여 가지 음식으로 조리해 먹는다. 일반적으로 낙지는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잡히지만 세발낙지만은 목포와 무안 등지에서 많이 잡힌다. 속담에 ‘봄 조개, 가을 낙지’라고 한 것처럼 가을에는 여름철 무더위에 지친 몸을 추슬러 원기를 돋우는 데 최고로 불린다. ●톡 쏘는 맛과 오돌오돌한 식감 ‘홍어’ 남도사람들이 예부터 즐겨 먹던 수산물로 지금도 잔칫상에 홍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두엄 더미에 파묻어 잘 삭힌 홍어의 오감을 관통하는 톡 쏘는 맛과 살과 뼈가 어우러진 오돌오돌 씹히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홍어는 삭힌 회를 그대로 먹는 게 가장 좋지만 무침, 찜, 애국, 전, 튀김 등 요리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서해안 앞바다에 광범위하게 서식, 분포하고 있어서 흑산도나 인근 서해에서 잘 잡힌다. 흑산 홍어를 최고로 치지만 가격이 높아서 수입 홍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홍어회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면 오묘하고 알싸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정신을 깨우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삭힌 홍어와 삶은 돼지고기, 묵은 김치를 곁들인 삼합과 감칠맛 나는 막걸리를 함께하는 홍탁삼합은 대표적인 목포 음식이다. 지옥 같은 향기, 천국 같은 맛으로 불린다. ●두 말 필요없는 ‘밥도둑’ 꽃게무침·꽃게장 발그스레한 소스에 버무려 내놓은 꽃게무침과 꽃게살은 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가득하다. 꽃게가 많이 나는 봄에 1년분 꽃게를 사서 냉동실에 넣어둔다. 여름철에 냉동 상태에서 꺼내기 때문에 비브리오 패혈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참기름과 김가루를 얹진 밥에 비벼 먹다 보면 저 많은 양을 언제 다 먹을까 싶었던 걱정도 금방 사라질 정도로 ‘밥도둑’이다. 먹고 나면 든든한 포만감이 오래가 다음 끼니가 맛이 덜할 정도다. ●껍질·부레·지느러미까지… 민어 한상차림 수심 30~120㎝ 진흙 바닥에 주로 서식하는 민어는 다른 지역과 달리 회뿐만이 아닌 껍질, 부레, 뱃살, 지느러미까지 한 상 푸짐하게 나온다. 회맛은 쫄깃하고 달콤하다. 또한 1주일 정도 갯바람에 말린 후에 찜으로 조리하거나 쌀뜨물에 민어, 멸치, 무, 대파 등을 넣고 탕으로 요리하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먹갈치만의 독특한 감칠맛 간직한 ‘갈치찜’ 목포 먹갈치만이 가진 독특한 감칠맛 나는 갈치요리는 갈치찜, 갈치구이 등으로 목포의 대표 요리로 각광받는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갈치잡이를 하는 낚시꾼들로 호황을 이루는 북항 방파제의 살아 움직이는 풍경도 볼 수 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우주를 보다] 첫울음 터트리듯...갓 태어난 아기별들의 ‘불꽃놀이’

    [우주를 보다] 첫울음 터트리듯...갓 태어난 아기별들의 ‘불꽃놀이’

    갓 태어난 아기는 울음을 터트려 세상에 첫 인사를 한다. 그런데 별도 비슷한 신고식을 치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별이 울음을 터트리지는 못하지만, 대신 강력한 가스의 제트를 양 축으로 뿜어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주변에 알리는 것이다. 탄생을 축하하는 일종의 불꽃놀이라고 할 수 있다. 별의 재료가 풍부한 가스 성운에서 중력에 의해 먼지와 가스가 뭉쳐지면, 초기 별의 씨앗이 형성된다. 이 가스 덩어리의 중심부 압력과 온도는 자체 중력에 의해서 점점 높아지는데, 어느 순간에 이르면 안정적인 수소 핵융합 반응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정도에 도달한다. 그러면 갑자기 빛이 나면서 별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초기 별을 'T 타우리 별'(T Tauri star)이라고 불리는데, 자전축 아래위로 강력한 가스를 분출할 때가 있다. 이는 '허빅-아로 천체'(Herbig–Haro objects)라고 부르는데, 그 시간은 별의 일생 중 매우 짧은 수천 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주의 수많은 별 가운데 이를 관측할 수 있는 대상은 극히 적다. 최근 제니미 관측소의 천문학자들은 지구에서 1,300광년 떨어진 오리온 B 분자 구름에서 독특한 T 타우리 별을 찾아냈다. HH24라고 알려진 이 제트는 한 쌍이 아니라 적어도 6개나 되는 데, 덕분에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은 독특한 'X'자 같은 모양을 만들어낸다. (사진에서는 희미하긴 하지만 이것 이외에도 다른 제트 흐름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불꽃놀이(fireworks)라는 명칭을 붙였다. 과학자들은 이 별난 아기별이 왜 2개보다 더 많은 제트를 가졌는지 알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러 개의 별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아마도 5개 정도의 별이 동시에 탄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모습은 사이좋게 우주에서 불꽃쇼를 보이는 다둥이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태어나는 별 가운데 일부는 형제들과 완전히 떨어진 '고아별'이 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새롭게 태어나는 다둥이별을 연구해 별의 일생 초기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든 정 통신원jjy0501@naver.com
  • [스타뷰] “1000만 대박보다 300만 중박이 좋다”

    [스타뷰] “1000만 대박보다 300만 중박이 좋다”

    멀끔하게 잘생긴 스무 살 젊은이는 1994년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도, 노래 부르는 것도 부끄러워했다. 그저 왠지 선배들이 술을 잘 사줄 것만 같아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 연기부도 아닌 그냥 스태프의 하나였다. 그러다 갑자기 사정이 생긴 선배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급히 무대에 올랐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속 목에 줄을 묶인 채 개처럼 끌려다니는 노예 ‘럭키’ 역할. 변변한 대사도 없는 단역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무대 위 눈부신 조명 앞에 선 그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이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고, 드디어 배우의 운명이 두텁게 덧입혀졌다. 2015년 현재 뮤지컬, 영화, 드라마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이선균(40)의 배우로서 삶은 그렇게 시작했다. 지난 5일 서울 삼청동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 ‘성난 변호사’의 주연배우로서 개봉(8일)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혼자서 좌충우돌하며 영화의 서사와 등장인물의 관계를 끌고 가야 하는, 명실상부한 ‘원톱 주연 영화’다. 큰 걱정과 기대를 함께 품을 만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가 내뱉은 첫 반응은 의외로 덤덤하다. “허종호 감독이 ‘이 영화는 너랑 나랑 절반씩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1000만 영화는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200만~300만 드는 중박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허 감독은 한예종 동문 친구다. 허 감독은 그를 재승박덕의 까칠한 변호사 ‘변호성’역으로 일찌감치 정해놓았다. 그리고 영화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했다. 주연일 뿐 아니라 스릴러와 코미디 사이를 오가는 영화 시나리오의 수정 작업, 다른 배우 캐스팅 과정에도 함께했으니 책임져야 할 몫은 단순한 주연배우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주연배우로서 갖는 부담감은 ‘끝까지 간다’에서 충분히 느꼈다. 그때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마인드가 모두 바뀌었다”고 잘라 말했다. 책임감에 대한 강조였다. 놀라운 점은 그 책임감의 영역이 단순히 개인적인 부분이나 자신이 참여한 영화의 성패를 뛰어넘어 한국영화산업 전반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가 이번 영화가 중박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 말은 짐짓 겸손을 부리는 것과는 달랐다. “지난해 ‘끝까지 간다’가 이런저런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이유로 참 괜찮은 영화였다고 평가해요. 1000만 영화의 틈바구니에서 극장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영화들이 많은데, 350만 관객이 드는 상업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영화판에서 새로운 영화를 기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죠.” 그는 “요즘 제작비 수십억원은 기본이고, 어지간하면 100억원 넘는 영화도 많은데 그렇게 1000만 영화가 되는 것보다 설령 많지 않은 제작비를 들였더라도 다양한 소재로 재미있게 만든 영화가 200만, 300만 영화가 돼서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말했다. 국내영화산업의 지속가능성 및 건강한 영화 생태계 확보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는 “사실 최근 영화판을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은 영화가 거의 없고, 남성영화, 오락영화, 장르영화 중심으로 영화 기획의 편중 현상이 심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다닐 때만 해도 한예종은 재학 중 상업적 외부 활동이 금지돼 있었다. 단편영화와 연극무대에 오른 뒤 졸업하고 27살 때 처음 뮤지컬을 통해 데뷔했다.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에서 주연 혹은 준주연급으로 활동을 이어 오던 이선균은 2010년 TV 드라마 ‘파스타’에서 ‘버럭 셰프 최현욱’으로 나타나 뭇 여심을 뒤흔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면 ‘츤데레’(겉으로는 퉁명스럽지만 속으로는 자상한 남자)의 원조격이다. 최고 시청률 21.2%를 기록한 초절정 인기 드라마였고, 그의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러고 나서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끝까지 간다’, 그리고 이번 ‘성난 변호사’까지 일관된 이미지를 구축했다. 바로 뻔질대거나, 까칠한 30대 남자 이미지다. 그의 실제 모습과 헷갈려하는 경우조차 있다. 그는 “‘끝까지 간다’ 이후 한동안 형사물만 계속 들어왔는데, 사실 한 번 이미지가 굳어지면 비슷한 시나리오의 비슷한 역할이 계속 들어온다”면서 “배우로서 선택할 수 있는 폭 안에서 고를 뿐”이라고 말했다. 맞다. ‘버럭 배우’ 이미지는 그가 갖고 싶다고 계속 유지하고, 버리고 싶다고 쉬 버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연기의 폭과 깊이를 고려하기에는 그 역시 생활인으로서 한계를 갖고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는 이들은 안다. 그가 가진 연기의 깊이가 어떤 것인지 말이다. 이선균은 2009년 영화 ‘파주’에서 감정을 따라 느릿한 속도로 펼쳐내야 하는, 처제와 금기의 감정에 빠져드는 남자의 삶을 연기했다. 지금 까불대며 몸을 쓰는 배우 이선균의 이미지로는 쉬 떠올리기조차 어렵다. 고작 13만 명의 관객만 영화를 봤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파주’요? 좋은 영화죠. 근데 워낙 사람들이 안 본 작품이라서…. 사실 배우라는 위치를 떠나 첫손가락에 꼽는 영화는 ‘살인의 추억’이에요. 이야기도 다 알고, 결론도 다 알고 있지만 몇 번을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재미있어요. 무려 10년도 더 된 영화인데….” 그는 “‘영웅본색’, ‘시네마천국’처럼 어렸을 때 봤던 영화의 여운이 오래 남는 것 같다”면서 “비디오가게에서 빌린 뒤 돈이 아까워서 몇 번씩 봤던 영화들의 음악, 키스 장면 등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내 “아내가 이런 촌스러운 얘기는 하지 말랬는데, 하하하”라고 덧붙였다. 이선균의 아내도 배우다. 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역할을 맡은 전혜진(39)이다.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서로 간간이 상대방의 이름을 언급해왔다. 그는 “최근에 영화 보면서 그렇게 울었던 적이 없었다”고 ‘팔불출 모드’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같은 작품에서 함께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사람들이 실제 부부가 같이 나와서 연기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예전에 연극은 같이해봤는데, 영화까지 같이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색하며 손사래를 치던 그는 “전혜진이 연기를 아주 잘한다. 내가 자격지심을 느낄 정도”라면서 다시 ‘팔불출 모드’로 들어섰다. ‘버럭’, ‘츤데레’, ‘팔불출’ 등 다양한 수식어를 이름 앞에 붙여 놓고 있는 그는 누아르 장르 영화(‘소중한 여인’)와 코미디 퓨전 사극(‘임금님의 사건수첩’)에 잇따라 캐스팅돼 촬영을 앞두고 있다. “한때 연출을 꿈꾸고 시나리오도 써 봤지만 지금은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처럼 광폭 연기 행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2015 프레지던츠컵] 대니 리 뒤엔 호주팬 ‘Fanatics’ 노란 물결

    [2015 프레지던츠컵] 대니 리 뒤엔 호주팬 ‘Fanatics’ 노란 물결

    “대니 리, 대니 리, 스피킹 워즈 위즈덤(Speaking words wisdom) 대니 리~.” 9일 오전 10시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1번 홀 갤러리석. 포볼 경기에 나선 인터내셔널 팀의 대니 리가 티샷을 하기 위해 그린 위에 오르자 광신자라는 뜻의 ‘퍼내틱스’(Fanatics)가 새겨진 노란색 상의와 초록색 모자 복장을 갖춘 20여명의 응원단이 대니 리를 캐리커처한 그림을 든 채 비틀스의 ‘렛 잇 비’를 개사해 노래를 불렀다. 황금연휴 첫날인 이날 총 3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갤러리석은 이른 아침부터 골프팬들로 계단까지 빽빽이 들어찼지만 이들의 응원은 경기 내내 갤러리의 시선을 끌었다. ‘퍼내틱스’는 호주의 가장 큰 스포츠팬 커뮤니티로 회원들은 골프뿐만 아니라 크리켓, 축구, 럭비,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의 국제 대회가 열릴 때마다 응원단을 꾸려 현지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원 조슈아(34·남아프리카공화국)는 “퍼내틱스는 1997년 호주에서 처음 시작됐지만 현재 남아공, 잉글랜드 등 영연방 국가까지 폭을 넓혀 회원이 5만명에 달한다”며 “호주에서 우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퍼내틱스가 응원하는 골프 대회는 프레지던츠컵, 브리티시오픈, 마스터스 등 메이저 대회다. 회원 재니(33·호주)는 “골프팬인데 프레지던츠컵이 최초로 아시아에서 열린다고 해서 자비를 들여 한국까지 왔다”며 “골프나 테니스는 조용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는데 우리처럼 즐겁게 응원하면서 경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뒤 배상문이 티샷을 준비하자 퍼내틱스의 구호는 ‘위 갓 더 PGA 챔피언’(We got the PGA Champions)으로 바뀌었다. 이들의 응원 덕분인지 대니 리-배상문 조는 18번 홀에서 미국팀의 리키 파울러-지미 워커 조를 1타 차로 제치고 인터내셔널 팀에 1승을 보탰다. 글 사진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오 마이 베이비 태오, 동생 낯설어하는 태오 “아직 준비가 안 된 듯” 깜짝

    오 마이 베이비 태오, 동생 낯설어하는 태오 “아직 준비가 안 된 듯” 깜짝

    ’오 마이 베이비’ 태오 ‘오마베’ 태오가 갓 태어난 동생 태라에 낯설어했다. 10일 방송된 SBS ‘오! 마이 베이비’에서는 셋째 태라가 태어나는 리키김네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태오는 처음 만난 ‘쭈쭈’ 태라를 낯설어했다. 이에 리키김은 “동생이 태어나는 게 태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쭈쭈는 뱃속에 있어야 하는데 탄생을 이해하지 못한 태오다. 동생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류승주의 병실에는 다섯 가족이 모두 모였고 태오는 류승주의 배를 보며 태라를 찾았다. 낯설어하는 태오를 위해 리키김은 태오가 태라를 안을 수 있게 했다. 태오는 여전히 낯설다는 반응을 보였고 가족들은 태오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오 마이 베이비 태오, 오 마이 베이비 태오, 오 마이 베이비 태오, 오 마이 베이비 태오, 오 마이 베이비 태오 사진 = 서울신문DB (오 마이 베이비 태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신해철 같은 사고 나면… ‘의사보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해철 같은 사고 나면… ‘의사보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는 27일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의 1주기다. 최근 고인의 유족이 병원장을 상대로 20여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의사배상책임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보험은 의사가 감당하기 힘든 거액의 배상금을 보험사가 대신 내주는 것이다. 안정적인 진료와 환자 권익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인 만큼 운전자보험처럼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률적으로 의무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과잉 규제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8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의사배상책임보험 가입 건수는 지난달 7일 현재 현대해상 2583건, 한화손보 1413건 등 총 4235건이다. 의사협회공제조합을 통한 가입도 7324건에 불과하다. 반면 의료분쟁 건수(공인기관 접수 및 소송 기준)는 2000년 1674건에서 2013년 5302건으로 3배 넘게 뛰었다. 지난해 A씨 부부는 갓 낳은 아기를 뇌손상으로 잃었다. 의료진이 신생아 입안에 있던 이물질을 제때 제거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A씨 부부는 의료진을 상대로 2억 7000만원의 피해보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의사의 과실을 60% 인정했다. 해당 의사는 보험을 통해 1억 6000만원을 지급했다. 이렇듯 순기능이 큰데도 보험 가입률이 저조한 까닭은 ‘손해 보는 장사’라고 여기는 병원들의 인식 탓이 크다. 연간 1000만~2000만원인 보험료에 비해 보장 범위가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공제조합의 경우 1000만~3억원, 손보사는 1억~2억원이 보상 한도의 최대치다. 그런데 산부인과 등에서는 해마다 1100만원가량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미국, 스웨덴, 프랑스, 덴마크 등 14개국에서는 의사배상책임보험이 의무 가입 조항이다. 미국은 병원이 자체적으로 보험사를 운영하거나 배상 한도를 넘는 부분은 정부에서 보상하기도 한다.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두고서는 의료계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이동욱 대한평의사회 대표는 “의료가 공공성을 띠고 대부분의 국민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만큼 운전자보험처럼 의사배상책임보험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래야 개개인 의사들이 소신 있게 진료하고 환자들의 권익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병원이 파산할 정도로 배상 금액이 높게 나오는 만큼 보상 한도를 현실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의사협회 관계자는 “보험이라는 게 위험(리스크)을 분산시키기 위해 드는 것인데 의료 분야마다 위험도가 다르고 필요성도 다르다”면서 “의사협회공제조합이 비슷한 기능을 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보험업계는 “지금도 보험료가 낮은 수준”이라고 항변한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말로만 의료관광 활성화를 외칠 게 아니라 의료사고 보상책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신해철 같은 사고 나면… ‘의사보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해철 같은 사고 나면… ‘의사보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는 27일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의 1주기다. 최근 고인의 유족이 병원장을 상대로 20여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의사배상책임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보험은 의사가 감당하기 힘든 거액의 배상금을 보험사가 대신 내주는 것이다. 안정적인 진료와 환자 권익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인 만큼 운전자보험처럼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률적으로 의무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과잉 규제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8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의사배상책임보험 가입 건수는 지난달 7일 현재 현대해상 2583건, 한화손보 1413건 등 총 4235건이다. 의사협회공제조합을 통한 가입도 7324건에 불과하다. 반면 의료분쟁 건수(공인기관 접수 및 소송 기준)는 2000년 1674건에서 2013년 5302건으로 3배 넘게 뛰었다. 지난해 A씨 부부는 갓 낳은 아기를 뇌손상으로 잃었다. 의료진이 신생아 입안에 있던 이물질을 제때 제거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A씨 부부는 의료진을 상대로 2억 7000만원의 피해보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의사의 과실을 60% 인정했다. 해당 의사는 보험을 통해 1억 6000만원을 지급했다. 이렇듯 순기능이 큰데도 보험 가입률이 저조한 까닭은 ‘손해 보는 장사’라고 여기는 병원들의 인식 탓이 크다. 연간 1000만~2000만원인 보험료에 비해 보장 범위가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공제조합의 경우 1000만~3억원, 손보사는 1억~2억원이 보상 한도의 최대치다. 그런데 산부인과 등에서는 해마다 1100만원가량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미국, 스웨덴, 프랑스, 덴마크 등 14개국에서는 의사배상책임보험이 의무 가입 조항이다. 미국은 병원이 자체적으로 보험사를 운영하거나 배상 한도를 넘는 부분은 정부에서 보상하기도 한다.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두고서는 의료계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이동욱 대한평의사회 대표는 “의료가 공공성을 띠고 대부분의 국민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만큼 운전자보험처럼 의사배상책임보험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래야 개개인 의사들이 소신 있게 진료하고 환자들의 권익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병원이 파산할 정도로 배상 금액이 높게 나오는 만큼 보상 한도를 현실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의사협회 관계자는 “보험이라는 게 위험(리스크)을 분산시키기 위해 드는 것인데 의료 분야마다 위험도가 다르고 필요성도 다르다”면서 “의사협회공제조합이 비슷한 기능을 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보험업계는 “지금도 보험료가 낮은 수준”이라고 항변한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말로만 의료관광 활성화를 외칠 게 아니라 의료사고 보상책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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