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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웅산테러는 양국 주권침해”/미얀마 강민철 사면 우리정부 입장

    ◎미얀마­“심신쇠약 상태” 내세워 사면 추진/한국­“잔혹한 테러범 교도소내 치료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범인 강민철(41)은 한국의 주권은 물론 미얀마의 주권을 침해한 양국의 국사범이다.따라서 미얀마정부가 테러범을 석방하려는 것은 국가원수시해 기도를 당한 한국정부에는 물론 미얀마측에서 보더라도 적절치 않다. 미얀마 정부가 우리정부에 내세우는 강민철의 사면 검토 이유는 일단 인도적인 것이다.지난 83년 이후 13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강민철은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된 것으로 알려진다.강민철은 유일하게 범행을 자백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북한의 보복등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황이라는 것이 미얀마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가 강민철의 사면을 추진하는데는 남·북한과 관련한 미묘한 외교적 고려도 있는 것 같다. 미얀마 정부는 최근 재야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한 박해 의혹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눈총을 받아왔다.이와함께 북한이 최근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외교관계 수립노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북한은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최근 서유럽과 동남아에 대한 외교공세를 강화하고 있다.특히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은 북한과의 수교 방침을 확정한 상태이다. 강민철이 실제로 사면·석방된다 하더라도 갈 곳은 마땅치 않다.우리나라로 올 경우 북한은 『아웅산 사건은 한국정부의 자자극』이라고 주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북한이 『남한에 의한 희생자를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대남공세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따라서 강민철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미얀마 당국이 교도소내에서 치료를 하든지,아니면 일시 석방시켜 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정부의 입장인 것 같다. 강민철은 북한이 잔혹한 테러국이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증언한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에 그의 거취는 국제적으로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 서울신물 선정 1996년 10대 뉴스­국내

    ○OECD 가입 확정 정부는 지난 12일 국회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비준서를 프랑스 정부에 기탁,이 기구의 가입을 확정지었다.선진국의 국제경제,공공정책 협의기구의 성격을 갖는 OECD의 29번째 회원국이 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결정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됐으나,금융 자본 서비스 분야에서의 개방확대로 선진국과의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들어가게 됐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 9월18일 새벽 강릉시 안인진리 해안에서 좌초된 북한 잠수함이 발견됐다.동해안 군사시설 정찰임무를 띤 이 잠수함에는 26명이 타고 있었으며 좌초직후 전원 강릉 일대로 침투했다.군 당국은 2개월간 공비소탕작전을 벌여 1명 생포,24명 사살의 전과를 올렸다.우리측도 민간인 4명을 포함,11명이 사망했으며 국내외에 북한의 침략성을 다시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일가족 17명 대탈북 10월26일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씨((61) 일가 16명과 이들의 탈북을 도운 북한 사회안전부 안전원 최영호씨(30)가 죽음을 무릅쓴 44일간의 대탈주 끝에 12월 9일 서울에 도착했다.함북 회령에서 중국,홍콩을 거쳐 망명한 이들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망명한 최대규모로 기록됐으며 식량난,경제난 등으로 위기에 봉착한 북한체제의 이완현상이 심각함을 보여주었다. ○2002년 월드컵 유치 지난 5월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에서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권을 따내 한국은 또 한번 국제 스포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조직위구성 및 유치활동 등 모든 면에서 경쟁국 일본보다 뒤늦게 뛰어들어 사실상 가능성이 희박했으나 막판 응집력으로 공동개최를 이끌어내 한국스포츠의 저력을 발휘했다.특히 월드컵 공동개최는 국제사회에서의 한·일 공조분위기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총련 연세대 시위 한국 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지난 8월12일 정부의 불허 방침에도 아랑곳없이 「8·15 조국통일 범민족 청년학생 통일축전」을 개최하기 위해 연세대를 불법 점거,9일동안 폭력시위를 벌였다.이 사태로 구속기소된 학생만도 444명이나 돼 사법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점거농성의 중심지로 건물의 절반 이상이 불에 탄 연세대 종합관은 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전·노씨 세기의 재판 12·12 및 5·18사건과 비자금 사건으로 법정에 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항소심이 끝나고 대법원의 최종 심판만 남겨두고 있다.1·2심 포함,피고인은 5·6공의 핵심인사와 재벌총수 등 모두 34명.법정에 불려나온 증인만도 최규하 전 대통령 등 70여명으로 「세기적 재판」이라고도 불렸다.1심에서 사형과 징역 22년6월을 선고받았던 전·노 피고인은 2심에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옛 총독부 건물 철거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준공된지 70년만에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 침탈의 본거지로 세운 조선총독부 건물은 일제 패망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일제의 상징물로 남아있다가 경복궁 복원과 민족정기 회복차원에서 철거작업에 들어가 지난해 광복50주년 기념식때 중앙돔 첨탑이 해체된지 1년 4개월만에 완전히 철거됐다. ○노동법 개정 파문 지난 4월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신노사관계 구상 발표로 시작된 노동법 개정작업은 노사 및 공익대표로 구성된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의 7개월에 걸친 절충에도 불구하고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합의도출에 실패했다.정부는 노개위의 공익위안을 토대로 정부안을 마련,12월초 국회로 넘겼지만 여야의 의견 대립으로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했고,이어 열린 임시국회에서도 여야가 대치중이다. ○15대 총선 여당 승리 15대 국회의원을 뽑은 4·11총선은 야당분열에 따른 비판여론과 세대교체 바람에 힙입어 신한국당의 승리로 끝났다.지역구 253석 가운데 121석을 얻어 전국구 18석을 포함,전체 299석 중 139석을 확보했다.특히 서울에서 첫 여당 승리라는 대이변을 기록했다.또 역대 어느 선거보다 신진기예들의 진출이 두드러져 46·5%가 초선의원인 점도 특징중 하나였다. ○안두희씨 피습 살해 역사의 진실은 끝내 묻히는가.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인 안두희씨(79)가 지난 10월23일 상오 인천시 중구 신흥동 3가 동영아파트 502호 자택서 박기서씨(46·버스운전사)의 피습을 받고 살해됐다.박씨는 범행에「정의봉」이라고 새겨진 몽둥이를 사용했으며 경찰에서는 『평소 백범선생을 존경해와 안두희를 죽였다』고 진술했다.현재 각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박씨에 대한 구명운동이 한창이다.
  • “아웅산테러범 석방 곤란”/북한과 복교 협의중

    ◎정부,미얀마정부에 우려 전달 정부는 최근 미얀마(옛 버마) 정부가 지난 83년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의 범인인 북한 특수부대원 강민철(41)을 사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대해 비공식 경로를 통해 항의성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정부는 아웅산 사건후인 83년 11월4일 단교한 북한과의 외교 재개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민철의 사면문제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5면〉 미얀마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 국제적인 고립을 탈피하려는 북한이 유럽과 동남아 국가들을 상대로 외교관계 수립 노력을 강화중인 시점에 나온 것이다. 미얀마 정부는 83년 10월9일 폭파사건 직후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양곤(옛 랑군) 부근의 인세인 교도소에서 13년째 복역중인 강민철이 최근 실명상태에 이른데다 실어증까지 발생하는등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인도적인 이유로 사면을 검토중이라는 뜻을 우리정부에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이 아웅산 테러사건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는등 공식적인 마무리 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강민철에 대한 사면은 불가하며 특히 신병 치료를 위한 일시 석방은 모르지만 강민철을 석방한뒤 북한으로 돌려보내려 한다면 한·미얀마 관계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을 미얀마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이순자 회고록 제출」 사실무근”/권성 재판장 문답

    ◎영·미 판례 참조… 성공한 쿠데타 처벌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 항소심 재판장인 서울고법 권성 부장판사(55·사시8회)는 18일 기자들과 만나 『하나의 재판을 끝냈다는 것 이상의 특별한 소감은 없다』면서 선고후의 심경을 털어놨다.다음은 권부장판사와의 문답 내용. ­그래도 재판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힘든 일로 치면 지난 93년9월 윤관 대법원장 취임이후 추진된 사법실천연구발전위원회 실무책임을 맡았던 일이다.굳이 따지자면 법복을 입은 이후 두번째로 힘들었다. ­심리기간이 짧지 않았나. ▲판사 3명으로는 역부족이었다.외국 판례와 논문 번역 등에 다른 10여명의 판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성공한 쿠데타 처벌이론은 어떻게 완성됐나. ▲영·미판례를 뒤졌다.특히 미국 학술잡지에 난 논문 3편을 많이 참고했다.이 논문에 파키스탄·가나 등 세계각국의 쿠데타에 대한 판례와 학자들의 분석이 들어있었다. ­6·29선언까지를 내란과정으로,금융실명제 위반부분을 무죄로 판단한데 따른 파장이 큰데. ▲판결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이미 내 손을 떠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의 회고록이 재판부에 제출됐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디서 나온 말인지 모르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증거자료를 살펴보면 알 것이다. ­판결문 작성은 언제 마쳤나.전씨에 대한 감형결정 시기는. ▲판결문은 선고 이틀전인 14일 작성을 마쳤다.형량에 대한 판단과정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재판과정에서 계속됐다.엄밀히 말하자면 선고순간 결정된 것이다. ­재판진행 과정이 원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가능한한 검찰과 변호인 쌍방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게 하고 요청사항이 있으면 조사해 주려고 노력했다. 한편 이순자씨는 「6·29 선언」 과정과 전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곧 발간할 것으로 알려졌다.
  • 「12·12」 「5·18」 항소심재판 뒷얘기

    ◎감형 전씨 표정 한결 밝아져/검찰 “법리논쟁서 사실상 이겼다” 자찬/변호인단 내란 종료 시점에 강한 불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17일 전날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탓인지 평소보다 한결 표정이 밝아졌다고 안양교도소 관계자가 전했다. ○…김상희 부장검사는 『변호인과의 법리논쟁에서는 사실상 우리가 이긴 것』이라며 자찬.검찰은 박준병·정태수·이경훈 피고인 등 무죄 또는 일부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들을 우선 상고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상고심 준비작업에 착수했으며,상고대상과 폭 등은 상고이유서 접수 만료기간인 오는 23일쯤 최종결정할 방침. 김부장검사는 지난 10월 「6·29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각종 시위관련 자료를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어떤 용도로 쓰일지 몰라 한동안 고민했다고 소개.그는 『선문답과 같은 어려운 숙제여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고충을 토로. 김부장검사는 권성 부장판사로부터 『양형자료로 쓰일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으나 감형과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근거자료로 쓰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피력.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날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일기쓰기와 불경읽기,독서 등 평소대로 일과를 보냈다고 교도소관계자가 전언. 전 전 대통령은 이에앞서 지난 16일 선고공판을 마치고 낮 12시쯤 안양교도소로 돌아와 아들 재국·재만씨,사위 등 가족들과,이양우변호사 등 변호인을 차례로 만나 향후 대책을 숙의.노 전 대통령은 아들 재헌씨와 박영훈 비서관을 만났으며 평소 읽던 「조선왕조실록」을 탐독. 정주교 변호사는 『전 전대통령이 내란의 종료시점을 87년 6월29일로 규정한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그렇다면 5공정부의 모든 기간이 범죄기간이냐」며 불만을 표시했다』고 전언.그러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소개. 노태우 전 대통령측 한영석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의 형량에 대해 『형식적으로 비자금 부분만 감경한 것 아니냐』며 시큰둥한 반응. ○…지난 16일 저녁 연희동 전피고인 집을 찾은 이양우 변호사는 『일단 생명형을 피했다는 점에서 가족들이 안도하고 있으나,공소시효를 늘려잡아 5공의 정통성을 훼손한 판결내용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고 연희동측 분위기를 전달. 한편 담당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의 권성 재판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하루종일 문을 굳게 잠그고 전화도 사절하는 등 외부와의 접촉을 회피.
  • 일 언론,전·노씨 감형으로/김 대통령 정치부담 줄어

    【도쿄 연합】 일본언론들은 17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등에 대한 서울고법의 감형 판결로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줄어 들게 됐다고 논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자 조간에서 이번 판결은 결과적으로 「역사 바로잡기」정국의 수습을 모색해온 김영삼정권의 의중에 부합되는 것이 됐으며 김대통령으로서는 전·노씨의 사면 문제에 대한 부담이 경감돼 내년 대선의 후계자 결정과 차기정권 창출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 전씨 무기로 감형/12·12 5·18 항소심

    ◎노태우씨도 징역17년 선고 □선고형량 ·징역 8년­황영시·허화평·이학봉 ·징역 7년­정호용·이희성·주영복 ·징역 6년­허삼수·유학성 ·징역 5년­최세창 ·징역 3년6월­차규헌·장세동·신윤희·박종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과 징역17년이 각각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권성 부장판사)는 16일 12·12 및 5·18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비자금 사건과 병합된 전·노피고인에 대해 군형법상 반란 및 내란죄,뇌물수수죄 등을 적용해 이같이 선고했다. 1심에서 전피고인은 사형,노피고인은 징역 22년6월을 선고받았었다. 전·노피고인이 기업체로부터 뇌물로 받은 2천2백5억원과 2천6백28억원은 추징금으로 부과했다.추징금은 1심보다 54억5천만원과 2백10억원이 줄어들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피고인에 대해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고 5·17내란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면서 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불법으로 조성한 막대한 자금으로 정치를 타락시켰다』면서 『그러나 87년 6·29선언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천한데다,자고로 항장은 불살이라 하였으므로 형량을 낮춘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5·18 내란은 6·29 선언으로 국민들의 저항에 굴복하여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따라서 공소시효는 87년 6월29일 시작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노피고인에 대해서도 『전피고인을 추수(뒤쫓아 따른다는 뜻)하여 영화를 누렸지만 수창(우두머리가 되어 주창한다는 뜻)한 자와 추수한 자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황영시·허화평·이학봉 피고인에게는 반란중요임무종사죄 등을 적용해 징역 8년,정호용·이희성 피고인 징역 7년,허삼수·유학성 피고인 징역 6년,최세창 피고인 징역 5년,차규헌·장세동·신윤희·박종규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6월 등 1심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하지만 주영복 피고인에게는 1심과 같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 피고인에게는 『12·12 사태 당시 20사단 병력을 동원하라는 전피고인의 요청에 응하지 않은 점 등이 인정된다』면서 또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 검찰측/판결내용엔 긍정적… 형량엔 아쉬움/검찰·변호인 반응

    ◎변호인측/피고인 대부분 감형에 흡족한 표정 항소심 재판부가 16일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에게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하는 등 1심보다 형량을 낮춰 선고하자 변호인측은 대체로 흡족한 표정이었으나 검찰측은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석진강 변호사 등 대다수의 변호사는 『대체로 만족한다』고 응답.다만 이양우 변호사만 즉답을 피하면서 『좀더 생각을 정리한 뒤 밝히겠다』고 신중한 자세를 견지. 정주교 변호사는 『내란죄기산점을 산정하면서 80년5월17일 비상계엄확대조치 이후부터 87년 6·29선언시까지의 기간을 내란죄구성요건인 폭동의 진행으로 본 것은 문제가 있는 만큼 대법원의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며 상고방침을 시사. ○…검찰은 판결내용은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도 형량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 김상희 부장검사는 『12·12가 반란,5·17이 내란,5·18이 내란목적살인이라는 검찰의 법리를 지지해주었다』며 재판부의 판결에 만족.또 정호용·황영시 피고인에게 내란목적살인죄가 추가된 데 대해서도 환영의 뜻을 피력.김부장은 그러나 『형량이 구형량에 못미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상고할 뜻이 있음을 시사.또 『박준병 피고인에 대한 무죄가 그대로 유지됐고,재판부가 견해를 달리해 무죄를 선고한 부분이 몇가지 있다』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김부장은 『주권자의 결집된 의사와 관련해 국민을 헌법기관으로 보고,6·29선언까지 내란이 지속된 것으로 본 것은 특이한 점』이라고 지적. 김각영 특별공판부장는 『우선 검토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을 언급을 회피.
  • 「12·12」 항소심 선고­시민반응

    ◎“역사와 법의 심판은 이미 끝나”/“역사바로 세우기 의지 퇴색 납득못해”/“국가발전 이바지 인정해줘야” 엇갈려 16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감형되자 국민정서를 무시한 판결이라는 반응이 대체로 많았다.그러나 국민화합 차원에서 적절한 재판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유재현 사무총장은 『12·12 및 5·18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를 군사반란과 내란으로 규정하고 5공 전기간을 폭동의 연속으로 규정하면서도 관련 피고인에 대해 대폭 형량을 낮춰 선고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은 『피고인들을 감형하게 된데는 재판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법원의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이어 『1심에서 전·노 두 피고인에게 사형과 징역 22년6월이 내려진 것으로 이미 역사와 법의 심판을 받은 셈』이라고 덧붙였다. 5·18 기념재단 전 이사장인 조비오 신부는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역사를 왜곡시킨 자들은 일단 법의 영역에서 정의와 진실에 입각해 처벌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중대한 범죄를 항소심에서 감형시킨 것은 법의 권위를 실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북도의회 김수광 의장은 『국민들도 전직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이들이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는 인정해줘야 하며 국민화합차원에서도 이번 선고결과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대구지방변호사회 정한영 변호사도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어든 점은 법률적으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역사바로세우기를 요구한 국민들의 법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비자금 항소심 선고­재벌총수 형감형 이유

    ◎경제기여 참작­「강요된 뇌물」 인정 감형/“검은돈 정치권에 더 큰 책임 물어야”/「지하미로 설계자」 이원조씨는 단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최원석 동아그룹회장·장진호 진로그룹회장 등 재벌총수 3명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권위주의적 정치풍토에서 비밀스럽게 돈을 건넨 것에 대해 1차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권성 재판장은 『국가를 운영하거나 정치활동을 하는데 돈이 드는 것은 인정하지만 돈의 흐름은 공개되고 통제가 가능한 「지상의 수로」를 통해 흘러야 한다』면서 『「지하의 미로」를 통해 흐르는 것은 정치권력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판결문에 직접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참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과 이경훈(주) 대우 대표는 자금을 변칙적으로 실명전환하기는 했으나 은행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볼수 없다며 업무방해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정회장은 1백억원을 노전대통령에게 제공한 부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5년)만료를 이유로 면소판결을 받았다. 재판부의 잣대는 이원조 피고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이피고인은 『5·6공을 거치며 대통령의 뇌물수수에 간여,「지하의 미로」를 적극 설계한 자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징역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안현태 피고인은 계획적으로 범행에 가담했고 성용욱·안무혁 피고인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 않은 사실이 고려됐다. 노 전 대통령은 최종현 선경그룹회장과 배종렬 전 한양그룹회장으로부터 받은 2백10억원에 대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이 없어 뇌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추징금을 감경받았다.전 전 대통령도 안무혁 전 안기부장과 공모해 기업으로부터 54억5천만원을 거둔 것으로 볼수 없다며 추징금을 감했다. ◎「12·12」 「5·18」 재판일지 ▲95년 10월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 시중은행 예치폭로. ▲10월20일=대검 중수부 수사착수. ▲11월16일=노 전 대통령 구속수감.▲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제정발표. ▲12월4일=조홍전 수경사헌병단장 등 관련자 본격소환. ▲12월15일=헌법재판소 5·18헌법소원에 대해 사건종료 결정. ▲12월18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첫공판. ▲12월21일=단식하던 전 전 대통령,안양교도소에서 경찰병원으로 후송.5·18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특별법제정,공포. ▲96년 1월17일=장세동·최세창·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등 구속영장청구. ▲1월23일=전·노 두 전직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차규헌 피고인 등 기소. ▲1월29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관련 이건희 피고인 등 재벌총수 14명 구형. ▲1월30일=정호용·허삼수·허화평 피고인 등 국회의원 3명 구속영장 청구. ▲2월16일=5·18특별법 합헌결정. ▲2월22일=박준병 피고인 구속영장청구,최세창·장세동 구속. ▲2월26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첫 공판. ▲2월28일=12·12 및 5·18사건 수사종결. ▲4월29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안현태 피고인 등 4명구형. ▲6월27일(17차공판)=윤성민 전 육참총장을 시작으로 증인신문. ▲7월4일(19차공판)=전·노 피고인측의 변호인단 집단불출석,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임. ▲7월8일(20차공판)=전·노 피고인측 이양우 변호사 등 변호인 8명 집단사퇴,전·노 피고인 출정거부선언. ▲7월16일=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구속집행정지. ▲7월29일(25차공판)=유학성·황영시 피고인측 정영일 변호사 등 변호인 6명 집단사퇴. ▲8월5일(27차공판)=김경일 12·12당시 1공수 1대대장(현역 소장)의 증언을 끝으로 사실심리 종료.검찰 전·노 피고인 비자금 사건과 병행해 구형. ▲8월26일(28차공판)=12·12 및 5·18사건과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피고인 34명에 대한 선고. ▲10월7일=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첫공판.최규하 전 대통령 등 증인 33명채택. ▲10월10일=전·노씨 비자금 사건 항소심 첫공판. ▲10월17일=광주 피해자 강길조씨,「피해자 진술권」으로 첫증언. ▲11월7일=노씨 비자금사건 2차공판. ▲11월14일=최 전 대통령 강제 구인돼 법정증언.항소심 결심 및 검찰구형.▲12월16일=항소심 선고.
  • “항장은 불살”/권성 부장판사 한자 판결 눈길

    ◎“수창과 추수한 자” 차이들어 앙형/“아직도 양연” 반성없는 태도 질책 한학에 조예가 깊은 권성 부장판사는 16일 판결문을 통해서도 예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두환 피고인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가장 큰 이유로 「항장은 불살」이라는 말을 썼다.「6·29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이는 등 국민의 저항에 굴복했으므로 사형선고를 피하겠다는 의미다. 권부장판사는 지난 10월 변호인측에 6·29선언 관련자료를 제출하도록 지시해 그 의도를 궁금케 한 적이 있었다.판결문내용에 비춰보면 이때쯤 전피고인의 무기징역을 결심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노태우 피고인에게는 「수창한 자와 추수한 자」의 차이를 들어 징역 17년으로 감형했다.우두머리인 전피고인의 「호령」에 따랐다는 뜻이다.전피고인처럼 「군주의 지위에 오르려는 의도」가 없었으므로 동등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보안사 3인방」인 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인에게는 「자시하여 전피고인의 우익이 돼 뜻을 성취했다」고 죄를 적시했다.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특히 「아직도 앙연하다」고 지적,뉘우치는 빛이 없다고 질책했다.
  • 「12·12」 항소심 선고­전·노씨 감형 이유

    ◎6·29선언으로 내란 종료 민주 회복/“권력 내놔도 죽는일 없게” 원칙 확립 16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전두환 피고인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을 비롯,피고인 대부분의 형량이 줄었다.1심과 같은 판결이 내려진 피고인은 징역 7년의 주영복 피고인과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 피고인 두명뿐이다.내란목적살인죄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유죄가 인정된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조차 감형됐다. 전두환 피고인은 87년 6·29선언을 수용한 것이 크게 참작됐다.재판부는 『대통령 재임중 6·29선언을 수용해 민주회복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단서를 연 것은 늦게나마 국민의 뜻에 순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재판부가 판단하기에 내란은 6·29선언으로 비로소 종료됐으며,전피고인은 내란을 기획하고 주도한 장본인이지만 한편으로 6·29를 수용함으로써 내란을 종료시켰다는 것이다.따라서 내란종료에 기여한 점을 인정한다는 취지다.재판부는 『권력을 내놓아도 죽는 일이 없다는 원칙을 확립하는 일은 쿠데타를 응징하는 것에 못지 않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노태우 피고인은 전피고인의 감형에 준해 무기징역에서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1심의 무죄판결이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 여부로 관심을 끈 박준병피고인은 검찰의 공소사실변경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죄를 선고받았다.재판부는 박피고인이 12·12 당일 20사단 참모들에게 자신의 지시 없이 부대를 출동시키지 말라고 지시한 것을 반란에 가담하고 육군본부의 부대장악을 저지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황영시 피고인은 지난 80년5월27일 실시된 광주재진입작전을 논의하는 4차례 회의에 참석한 것이 인정돼 내란목적살인죄가 추가됐으나 고령인 점이 인정돼 징역 10년에서 8년으로 감형됐다.정호용 피고인에게도 내란목적살인죄가 추가적용됐으나 12·12사건에는 가담하지 않은 이유 등이 참작돼 징역 10년에서 7년으로 형량이 줄었다. 장세동 피고인은 3차례나 옥고를 치른는 점이 참작돼 징역 7년에서 3년6개월로 형이 절반이나 줄었다. 나머지 피고인도 전피고인의 감형과 같은 취지이거나고령이라는 이유 등으로 감형됐다. 재판부는 다만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주영복 피고인은 지위가 높고 책임이 막중했으므로 변명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1심과 같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이 피고인들에 대한 역사적 단죄의 뜻이 있다면 이번 항소심 재판은 피고인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한 흔적이 짙다.
  • “쿠데타 앞으론 없을 것”/정치권의 반응

    ◎신한국 “강압적 정권찬탈 추방 계기로”/국민회의선 전씨 등 감형에 유감 표명 사법부가 16일 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 12·12 및 5·18사건 관련자에 대한 항소심에서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고 확인한데 대해 여야는 한 목소리로 『사필귀정』이라며 환영했다.다만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전피고인 등 일부 피고인의 감형에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어두웠던 역사에 대한 심판은 단순히 심판대상자에 대한 처벌로써 그 의미가 다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 모두는 이번 심판을 통해 무력에 의한 정권찬탈과 직위를 이용한 축재는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이번 판결은 국민의 법감정과는 거리가 있다』고 감형판결에 유감을 나타내고 『이제 두 전직대통령은 자신들이 역사와 국민 앞에 저지른 과오와 죄악을 참회하고 진심으로 사과,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위헌시비를 제기하며 「5·18특별법」제정에 반대했던 자민련은 감형조치를 『사회정의의 구현과 소급입법불가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재판부가 겪은 사법적 고민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긍정평가했다.안택수 대변인은 『이로써 5공정권 창출과정의 불법성 및 부패정권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일단 마무리됐다』고 논평했다. 민주당은 장광근 부대변인은 『쿠데타에 대한 심판뿐 아니라 부정부패에 대한 단죄에도 주목해야 한다』며 『현정권 역시 진정으로 역사를 두려워하는 개혁을 해나가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논평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일부 피고인의 감형 등 2심 형량과 관련,『사법부에서 하는 일이므로 논평할 일이 못된다』고 공식반응을 자제. 그러나 판결문이 강한 것에 대해서는 『쿠데타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 고위관계자는 또 사면·복권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사면·복권할 수 있는 분은 한분뿐이며 그 분이 아무 말씀을 않고 있는데 누가 알아서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
  • 「12·12」 항소심 선고­법정안팎 이모저모

    ◎검사들은 굳은 표정… 변호인은 다소 여유/무죄 박준병씨 회색… 실행 이원조씨 낙담/전·노씨 가족 예상밖 감형소식 듣고 안도/재벌총수 집행유예·무죄선고에 그룹관계자 반색 12·12 및 5·18사건과 비자금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16일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과 재벌총수 등 피고인 27명의 형량이 어떻게 바뀔 지에 대한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된 탓인지 이른 아침부터 긴장이 감돌았다. ○…재판장 권성 부장판사와 우배석 김재복·좌배석 이충상 판사 등 재판부는 공판 시작보다 3분 정도 빠른 상오 9시57분쯤 입정.김각영 서울고검 특별공판부장 등 검사진 10명은 상오 9시55분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으며,변호인들은 다소 홀가분한 표정으로 상오 9시30분쯤부터 이진강 변호사를 시작으로 10여명이 입정을 완료. ○…공판 검사들은 재판부의 감형이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한 듯 시종 굳은 표정으로 판결을 지켜봤다. 김상희 주임검사 등은 재판 도중 광주교도소 습격,전·노 피고인의 뇌물수수 일부 무죄 등 1심을 뒤엎는판결이 나올 때마다 서로 귓속말을 주고 받는 등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 ○…피고인들은 재판이 끝난뒤 웃으며 악수를 주고 받는 등 여유를 보이기도.특히 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인 등 이른바 「보안사 3인방」은 웃으면서 방청석을 향해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입정때부터 시종 여유를 잃지 않았던 박준병 피고인은 재판장이 1심대로 무죄를 선고하자 45도 각도로 크게 인사하기도. ○…재판부가 전·노피고인 등에게 1심 때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하자 방청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특히 5·18관련 단체 회원들은 재판부가 퇴정한 뒤 목소리를 높이고 법정앞에서 시위를 해 법원 정리들과 한바탕 몸싸움을 하기도.재판부에는 전피고인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사실을 TV를 통해 확인한 시민들이 항의 전화가 쇄도. ○…법정에 가지 않고 TV로 상황을 지켜본 서울 연희동 전피고인의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재만씨 등 비서관을 통해 감형소식을 전해듣고 크게 안도하는 모습. 한 비서관은 『가족들 모두가 감형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기뻐하고 있다』고 전언. ○…전피고인 집에서 600여m 떨어진 노피고인 집에는 법정으로 간 아들 재헌씨를 제외하고 부인 김옥숙씨와 비서관들만 집을 지켜 다소 쓸쓸한 분위기.김씨는 감형소식을 반기면서도 지난번 1심 공판 때도 유기 징역형을 선고 받았기 때문인지 전피고인쪽에 비해 담담한 분위기. ○…권성 재판장은 선고가 모두 끝난 뒤 기자들이 면담을 요청했으나 『선고 당일 언론에 의견을 비추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면서 거절.다만 김재복·이충상 판사 등 배석판사들이 기자들과 잠시 만나 판결 소회를 피력. 재판부는 노피고인에게 형량 징역 17년을 선고한 것과 관련,『여러가지를 감안할 때 15년은 너무 낮고 20년은 너무 길다고 생각 했다』며 『특히 정병주 당시 특전사령관 체포와 관련헤 노피고인에게 적용했던 상관살해미수 혐의는 반란모의 참여죄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무죄로 판단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 ○…재벌 총수들에 대한 비자금 재판은 권성재판장이 판결문 중반부에서 『뇌물공여의 1차적인 책임은 돈의 흐름을 「지하의 미로」로 강요한 권력에 있다』고 밝히자 방청석의 그룹 관계자들은 집행유예가 선고될 것을 의식한 듯 술렁이기 시작. 김우중 피고인을 비롯,총수들에게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정태수·이경훈 피고인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자 방청석의 그룹 관계자들은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 그러나 이원조 피고인은 1심과 마찬가지로 실형이 선고되자 안면근육을 떠는 등 크게 낙담한 모습. ○…공판을 방청하러온 미 컬럼비아대 한미관계 연구대학원생 존 코치씨(30)는 방청권이 없어 발을 구르다 5·18 유족회의 한 회원이 자신의 표를 줘 간신히 입정에 성공. 코치씨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 두명이 같은 법정에 서는 모습과 함께 선고형량을 직접 듣고 싶었다』고 방청이유를 설명.
  • 「12·12」 항소심 선고­전·노씨 법정표정

    ◎“감형”순간 안도의 한숨/전·노씨 공판끝나자 「옛 부하」들 손잡고 위로 『피고인 전두환』 40여분에 걸쳐 재판부가 쟁점에 대한 판단과 양형이유 등을 설명하는동안 고개를 숙이거나 머리를 긁적이던 전피고인은 어깨를 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시선은 법정 전면을 향하고 있었다. 이어 옆자리 노태우 피고인도 허리를 곧추세우고 일어서며 재판부를 쳐다보다 다시 고개를 조금 떨구었다. 16일 상오 10시50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권성 재판장은 판결「주문」을 읽어 내려갔다. 『피고인 전두환을 무기징역에,피고인 노태우를 징역 17년에…』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전피고인은 『권력의 상실이 죽음을 의미하는 정치문화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감형이유에 귀기울이며 고개를 잠시 제쳤다가 믿기지않는 듯 재판부를 응시했다. 다음은 노피고인 차례. 『전두환의 참월하는 뜻을 시종 추수하여 영화를 나누고 그 업을 이었다.그러나 수창한 자와 추수한 자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전두환의 책임에서 감일등한다』 결석 등으로 건강상태가 좋지않은 것으로 알려진 노피고인은 어깨를 약간 움츠린채 아무런 미동없이 주문을 들었다.선고에 앞서 노피고인은 흰 고무신을 벗어 그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가 다시 신기를 반복했었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 피고인은 재판부에 공손하게 인사한 뒤 얼마후 자리를 떴다. 입정 직후 노피고인의 손을 두어번 다독거렸던 전피고인은 공판이 끝나자 노피고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방청석을 향해 돌아선 전피고인은 웃음기어린 표정을 지으며 뒷줄에 있던 황영시·차규헌 피고인의 손을 잡았다.『건강하고…,용기를 잃지말고…』 방청석 앞자리에서도 들릴 정도로 소리를 내어 옛 동지들을 위로했다.이어 노피고인도 다른 피고인들과 악수를 나눴다. 법정정리의 퇴정명령에도 아랑곳없이 이들의 「해후」는 얼마간 계속됐다. 법정을 나서는 피고인들의 등뒤로 『이게 무슨 재판이냐』,『수천명을 죽이고도 무기라니 말이 되느냐』는 광주관련단체회원들의 고성이 쏟아졌다.
  • 폴리에타 미 의원/전두환씨 면회계획

    지난 85년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망명지 미국에서 귀국할때 「신변보호인」으로 김총재와 동행했던 미국의 톰 폴리에타 하원의원(민주당)이 오는 30일 방한,다음달 2일쯤 수감중인 전두환씨를 면회할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씨측의 한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금시초문』이라고 면회 및 감형노력 요청사실을 부인했다.
  • 「중앙아 폭군」 보카사 사망

    【방기 AFP 로이터 연합】 아프리카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장 브델 보카사 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75)이 3일 수도 방기의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보카사는 지난 79년 역쿠데타로 실각해 해외를 떠돌다 86년 중앙아프리카로 돌아와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93년 감형으로 석방된 이후 방기의 한 별장에 거주하며 투병 생활을 해왔다. 65년 쿠데타로 집권해 72년 종신 대통령,77년에는 자칭 황제임을 선포했던 보카사는 고혈압과 신장병등 신병 치료를 위해 지난 9월 19일 코트디부아르로 갔다가 지난달 13일 방기로 돌아왔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 신한국 윤한도 의원(국감인물)

    ◎농정참여 경험살려 피부에 와닿는 날카로운 질의 농림해양수산위 윤한도 의원(신한국당)의 대정부 추궁은 갈수록 위력을 더해간다.초선이지만 경남지사 등을 역임하며 농정에 직접 참여해 본 경험이 날카로운 질의로 표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농림부는 물론 해양수산부,산림청 국감 등에서 그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지난 4일 해양수산부 국감에서 윤의원은 해양오염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바다속에 방치된 2만6천여드럼의 유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해양오염의 시한폭탄』이라며 『주무관서인 해운항만청과 해양경찰청,지방자치단체가 서로 책임을 전가해 사태는 악화일로에 있다』고 추궁했다. 도지사 출신 다운 대안제시도 눈길을 끈다.농림부 감사에선 『최근 5년간 벼 재배면적이 15%나 감소,쌀자급률이 17%로 떨어졌다』며 『식량안보 차원에서 생산비 절감형 다수확 품종의 조기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윤의원은 앞으로도 거창한 주제보다 농어민 자녀의 학자금 지원확대,농어촌 의료보험 국고확대 등 피부에 와닿는 문제로 승부를보겠다는 전략이다.〈오일만 기자〉
  • 가짜 거북선총통 인양/해군대령 징역 1년/군사법원 선고

    가짜 거북선총통 인양사건으로 구속기소됐던 전 충무공해전 유물발굴단장 황동환 대령(51·해사22기)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해군본부 보통군사법원 재판부는 31일 황대령에게 변호사법위반 및 허위공문서 작성·행사죄를 적용,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관할 지휘관인 안병태 해군참모총장의 확인과정을 거치면서 징역1년으로 감형됐다.
  •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한국」/오버도퍼 미 칼럼니스트(해외논단)

    ◎“전·노씨 중형… 법치제도의 새 이정표”/“정치·군도 법이 지배” 계기 마련에 큰 의미 한국의 두 전임대통령이 동시에 법정에 세워져 중형을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신문의 저명한 외교전문 칼럼니스트였고 현재 미국 존스홉킨스대 외교정책연구소의 초빙언론인인 돈 오버도퍼씨는 『한국의 법치제도 정착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사건』이라고 정의내렸다.그는 그러나 이 법치제도의 단초를 존속시키고 키워나가는 것은 한국민들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말했다.다음은 근착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실린 그의 기고문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한국」의 요지이다. 한국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각각 사형과 22년6개월의 형이 선고된 사건은 이 나라가 법치국가,시민사회로 나아가는데 있어 하나의 이정표이다.문제는 이 이정표가 먼 여정에서 만나는 첫번째 이정표가 될지 아니면 여행의 끝부분에 나타난 이정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선고를 보며 세계는 한국민들 못지않게 충격을 받았다.우리는 이미 지난해두 전직 대통령이 재임중 천문학적인 액수의 뇌물을 받아 숨겨온 사실이 밝혀졌을때 큰 쇼크를 받았다.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이전의 태도를 바꿔 79년에 이 두 전직대통령이 주도한 군사쿠데타를 처벌키로 결정했을 때 세계는 다시한번 놀랐다. 지금 우리는 이번 판결이 선고대로 실제로 실행될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있다.지금 한국민들 중에서 두 전직 대통령 재임시 반체제활동을 하다 고통을 받았거나 80년 광주사태 때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굳이 두 사람을 사형시키거나 오랫동안 감옥에 가두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명예와 체면을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한국사회에서 두 사람은 이번 재판과정을 통해 이미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불명예를 겪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남은 재임기간과 퇴임후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참고해서 두 사람에 대한 사면,감형에 대한 때와 폭을 결정해야한다.김 대통령은 지금의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있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현 집권당의 전신을 만들었으며 김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때 두 전임 대통령의 출신지역 유권자들의 지지에 많은 도움을 입었다. 50여년의 현대사중 한국의 전임 대통령들은 망명,암살,그리고 이번 경우같이 감옥에 가거나 하며 하나같이 크나큰 불명예를 겪었다.김 대통령은 그의 후임 대통령 역시 자신이 한 것과는 또다른 게임의 룰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한다.바로 이같은 이유로 이 「이정표」의 정체는 아직 불투명하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미숙성을 보여왔다.이번 사건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정치와 경제적 성숙성 사이의 이 격차를 좁혀주었다는 것이다.경제적으로 한국은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섰고 OECD가입을 눈앞에 두게 됐다.이제는 시대상황의 변화로 북한의 무력침공보다는 정치적 후진성으로 인한 내부분열이 더 우려되는 상황이 됐다.두 전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게된 것도 결국 이런 상황변화가 한몫을 했을 것이다.이번 주에 있었던 재판은 정치제도와 군부를 모두 법의 지배 밑으로 끌어들였다는 의미를 가진다.우리는 앞으로 한국민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 법의 지배를 존속시키고 키워나가는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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