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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구하고 얼굴 잃은 ‘영웅’…안면이식으로 되찾은 일상

    여성 구하고 얼굴 잃은 ‘영웅’…안면이식으로 되찾은 일상

    끔찍한 사고로 얼굴을 잃었던 한 남성이 안면이식 수술 후 5년 만에 놀라울 만큼 회복한 모습을 드러내 시선을 모으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외신들은 군인 출신의 미국 남성 미첼 헌터가 겪어야 했던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소개했다. 2001년, 당시 21살의 젊은 나이었던 미첼 헌터는 친구 및 친구의 애인과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친구의 운전 실수로 인해 전신주에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더 아찔한 상황은 충돌 이후에 벌어졌다, 차량 밖으로 빠져 나온 친구의 애인이 충격으로 끊어져 아래로 늘어진 전선에 닿을 위기에 처했던 것.이 순간 헌터는 여성을 밀어낸 뒤 그를 대신해 고압 전류에 감전됐다. 이 사고로 헌터는 다리를 잃었으며, 얼굴 또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손상되고 말았다. 이후 병원에 이동된 헌터는 당시 가능한 유일한 얼굴 재건 수술이었던 팔다리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20여 차례의 재건 수술을 받았지만 그의 얼굴은 아이들이 보고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여전히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헌터는 더 이상의 회복을 포기한 채 여자친구인 카타리나와 평범한 삶을 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카타리나가 임신을 하면서 헌터의 생각은 달라졌다. 자신의 아들이 자기 얼굴을 보며 겁에 질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2011년 헌터는 실험적인 치료법인 안면이식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이는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시행 사례가 많지 않은 불확실성이 큰 수술이다. 헌터는 30명의 의사가 참여한 14시간의 대수술 끝에 성공적으로 안면 이식 수술을 마쳤다. 코, 눈꺼풀, 입술, 안면근육, 신경 등을 모두 교체했고, 동맥과 얼굴의 모세혈관을 이어붙이는 정밀한 수술을 거쳤다. 그리고 이후 총 30회 이상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그 후 5년이 지나 이제 35세가 된 헌터는 언론에 나서 크게 회복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헌터는 얼굴의 감각과 움직임을 되찾았고 외관적으로는 눈 주변에 다소의 어색함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부분 역시 의사들에 의해 수정될 예정이다. 현지 방송에 출연한 헌터는 얼굴로 느끼는 일상의 사소한 감각들마저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고 밝혔다. 그는 “뜨거움, 차가움, 고통, 간지러움, 수염을 쓰다듬는 느낌, 누군가 내 얼굴에 입 맞출 때의 느낌 등을 이제는 모두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나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일들에 대한 걱정은 접어둔 채 삶을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다”며 “또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며 살기를 바란다. 언제 그런 기회를 영영 빼앗기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사진=미첼 헌터 페이스북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해외여행 | 스리랑카-코끼리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해외여행 | 스리랑카-코끼리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스리랑카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코끼리들이 사는 나라였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코끼리와 인간의 관계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죽고 죽이는, 그 악업의 고리를 끊을 해결책은 아직도 막막하다. 실론티와 불교 그리고 코끼리의 나라 90년대 초, ‘실론티’라는 제품이 국내에 처음 나왔다. 약간 쓰고 떫은맛의 홍차를 단숨에 좋아하게 만들었던 음료였다. 뚜껑을 따면 독특한 차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기분 좋게 씁쓸하고 달콤한 맛이 혀를 즐겁게 했다. 액체를 마시면서 ‘실론’이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해 찾아본 기억이 난다. 실론은 지금은 ‘스리랑카’ 라고 불리는 섬나라의 옛 이름이다. 15세기부터 전 세계의 바다로 진출한 포르투갈이 1505년 이 섬에 도착해 실론Ceilao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1815년 영국이 실론을 지배하게 되면서 1867년부터 내륙 산악지대에서 차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차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지형에서 생산된 실론티는 고급차의 대명사가 됐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차 산업은 부침을 겪었지만 스리랑카는 지금도 세계 4위의 차 생산국이다. 사람들은 스리랑카를 ‘인도양의 진주’, ‘인도 대륙이 흘린 눈물방울’로 비유한다. 남한의 3분의 2 면적에 2,000만 인구가 사는 이 나라는 차 외에 다른 두 가지로도 유명하다. 바로 소승불교와 코끼리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로부터 전파된 불교는 지금까지도 스리랑카의 주류 종교다. 인구의 70%가 불교 신도다. 10세기 이후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가 득세한 반면, 스리랑카는 소승불교의 진수를 면면히 보존하고 있는 종주국이다. 오래전부터 스리랑카 승려들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불교의 전통을 전파했다. 오늘날 인도의 고대 불교 사원들은 폐허가 되어 관광객과 순례자들만 찾아가는 쓸쓸한 곳으로 남았지만, 스리랑카의 오래된 불교 사원들은 아직도 신도들로 붐빈다. 매일 승려들이 주재하는 종교 의식이 열린다. 사원을 찾아 꽃과 음식을 정성스럽게 바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진지하고 숭고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스리랑카는 코끼리의 나라이기도 하다. 불교는 코끼리를 신성시한다. 석가모니는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여러 전생을 거쳤는데, 그중 하나가 코끼리였다.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싯다르타석가모니의 속명를 낳기 전 자궁 속으로 흰 코끼리가 들어오는 태몽을 꾸기도 했다. 코끼리는 불교 사원과 부처의 수호신이면서, 스리랑카 건축과 미술의 가장 흔한 소재이다. 종교 행사의 맨 앞장에 서는 동물도 코끼리다. 해마다 지역별로 열리는 페라헤라Perahera 축제 행렬의 선두는 좋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점잖게 걷는 코끼리의 차지다. 그토록 사랑받는 동물이라 그런지 스리랑카의 단위 면적당 코끼리 밀도는 어느 국가보다도 높다. 현재 약 6,000마리의 야생코끼리가 국립공원과 민가 주변의 숲에서 노닐고 있다. 같은 소승불교를 믿는 라오스나 미얀마에선 좀 다르다. 코끼리를 일꾼으로 부린다. 그곳의 코끼리들은 산악 벌목 현장에서 베어낸 통나무를 끌고 내려오는 고된 일을 해야 한다. 반면 스리랑카의 코끼리는 유유자적, 먹이를 먹으며 숲과 들판을 어슬렁거린다. 개발에서 시작된 비극 다큐멘터리 제작차 스리랑카의 내륙을 지나던 중 도로에서 50m쯤 떨어진 들판에서 코끼리 3마리가 나뭇가지를 훑으며 이파리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 늦은 밤 숲을 관통하는 도로에선 길을 건너는 코끼리 가족을 여러 번 마주쳤다. 그럴 때면 스리랑카 운전사는 자동차를 멈추고 거대한 동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새끼를 거느린 어미를 자극할까 봐서다. 자동차에 위협을 느낀 어미나 성난 수컷 코끼리가 자동차를 공격하고 짓밟아서 탑승자가 사망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고 한다. 코끼리의 습격은 민가나 경작지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스리랑카에선 매년 코끼리에 밟혀 죽는 사람이 60~70여 명에 달한다. 밭에서 일하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코끼리와 잘못 마주쳐 변을 당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비참하게 죽는 일이 호랑이한테 잡혀 먹히는 호환虎患이었다면, 21세기 스리랑카에선 상환象患이 가장 끔찍한 죽음이다. 코끼리는 인가를 습격해 집을 부수기도 한다. 취재팀이 방문한 지방의 양곡상 주인은 집에 설치해 둔 CCTV에 찍힌 코끼리를 보여 줬다. 대낮에 열어 놓은 대문으로 코끼리 한 마리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 침입자는 주인이 소리를 지르자 뒷마당으로 가서 짖어대는 개의 집을 부셔 버리고 내뺐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 양곡상 주인은 인근에 국제공항이 들어선 이후부터 코끼리의 침입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스리랑카엔 몇년 전부터 개발붐이 일고 있다. 코끼리 서식지인 정글을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공항과 크리켓 경기장, 신규 주택지를 조성했다. 살 곳과 먹이를 잃은 코끼리들은 경작지와 민가를 습격했다. 코코넛야자나무를 머리로 박아 쓰러뜨린 뒤 잎을 훑어 먹고, 논밭을 짓밟고 다니며 벼와 토마토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식성이 좋은 코끼리는 하루 200kg의 식물을 먹는다. 코끼리 한두 마리가 경작지를 휩쓸고 지나가면 몇 달 농사를 한순간에 망쳐 버리는 셈이다. 내가 만난 코끼리 피해지역 농부들은 농사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농민들도 반격에 나섰다. 코끼리를 쫓기 위해 함정을 파고, 고압 전기선을 설치했다. 가장 잔인한 퇴치법은 호박폭탄이다. 코끼리가 좋아하는 둥근 호박의 윗부분을 칼로 오려내고 속에다 폭발물을 집어넣는다. 그걸 농민들이 밭에 뿌려 두면 코끼리는 폭탄이 든 줄도 모르고 큰 호박을 코로 집어 한 입에 우적 씹는다. 그 순간 폭탄이 터지면서 턱과 입이 찢겨 나간다. 당장 죽지 않은 코끼리는 쓰러져서 며칠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다가 숨이 끊어진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매년 100마리 이상의 야생코끼리가 죽어 간다. 정글을 없애고 개발이 계속되는 한 코끼리와 인간이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의 악순환은 끊이지 않을 테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생긴 그 악업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지, 해결책은 아직 막막한 실정이다. 오늘도 버려지고 죽어 가는 코끼리 스리랑카에는 코끼리 고아원과 임시보호 센터가 몇 곳 있다. 고아원은 말 그대로 어미를 잃은 새끼 코끼리를 거둬 키우는 곳이다. 임시보호 센터는 고아 코끼리가 국립공원이나 밀림으로 돌려보내질 때까지 야생에 적응하도록 돌봐 주는 곳이다. 인간과의 갈등으로 희생되는 코끼리가 많아질수록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는 어린 짐승도 늘어난다. 고아 코끼리가 가장 많은 곳이 스리랑카 정부가 운영하는 피네왈라Pinnewala 고아원이다. 이곳엔 약 60마리의 코끼리가 살고 있다. 코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어린 새끼에게 우유를 주고 먹이를 먹이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지 못한 아기 코끼리들은 관광객이 든 우유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더 달라고 보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른 녀석들은 다른 새끼의 등 위에 올라타고 장난을 친다. 코끼리와 인간의 분쟁을 취재하던 중, 어느 마을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달려가 보니 야자나무 옆에 어린 코끼리 한 마리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다 자라지 않았는데도 누워 있는 몸집은 커다란 바위처럼 육중했다. 허공으로 뻗은 네 다리는 단단한 기둥 같았다. 새벽에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전기선에 감전된 것 같다고 주민들이 알려 줬다. 코끼리의 사체를 처음 봤기에 가슴이 저렸다. 코끼리의 감은 눈에는 물기가 서려 있었다. 밤새 맺힌 이슬인지, 아니면 고통스럽게 죽어 가며 흘린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냄새를 맡은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하늘을 까맣게 덮은 채 맴돌고 있었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사진 손현철 KBS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배명진 숭실대 교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배명진 숭실대 교수

    초등학교 때 소리 안 나오는 라디오에 미쳐 회로도 달달 외우고 전파상 취직 꿈꿨던 괴짜 용산공고 전자과 진학 금성사 실습 때 월급쇼크 뒤늦게 숭실대 입학 소리공학 연구로 세월호 선장 사형 증거잡기도 노벨상이 꿈 “저를 40대로 보는 사람이 아직은 좀 있죠.”(웃음) 지난 18일 서울 상도동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TV 화면보다도 훨씬 젊어 보였다. 환갑을 앞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짙고 풍성한 모발을 갖고 있었다. “젊어 보여 좋으시겠다”고 하자 그는 한술 더 떠 서랍에서 자신의 30대, 40대, 50대 사진들을 꺼냈다. 그것들을 책상 위에 트럼프 카드처럼 늘어놓고는 “별로 안 변하지 않았느냐”며 익살맞은 눈짓을 보냈다. 그건 자기 전공 분야의 ‘효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리’와 함께하는 생활이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라는 얘기였다. 10평 남짓한 배명진(59·전자정보공학부) 교수의 연구실 내부는 ‘소리를 내는 클립’ ‘소리 바람 소화기’ 등 그의 아이디어가 깃든 작품들로 움직이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나는 ‘괴짜’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소리공학의 대가’,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학자’라는 찬사도 듣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는 걸 잘 안다. “TV에 너무 많이 나온다”,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부각시키려 애쓴다” 뭐 이런 것들이다. “저렇게 외부 활동하고 애들은 언제 가르치느냐”는 말도 단골로 듣는다. 그러나 과학자라면 모름지기 사람들이 궁금해하거나 불확실한 것들을 규명하는 데 막중한 책무를 느껴야 한다. 난 거기에 최선을 다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연구실에 있는 학자도 필요하고 대중과 소통하면서 실생활에서 과학의 저변을 넓히는 학자도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그리고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사실이 있다. 내가 제출하는 국제적 수준의 논문 편수가 최근에는 거의 매년 대학에서 전체 10위 안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명진씨, 회로도에 맞춰 제대로 구성을 했는데도 안 되는데 이유가 뭘까.” 옆에 있던 ‘4년제 대졸 신입사원’ 형이 ‘고3 실습생’인 나에게 물었다. “형, 그건 이 부분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 나는 거의 눈을 감고도 보이는 문제의 원인이 그분에게는 안 보였던 모양이다. 서울 용산공고 3학년 때인 1975년, 당시 서울역 앞에 있던 전자회사 금성사(현 LG전자)에 실습생으로 파견 나갔을 때 일이다. ‘4년제 대학을 나왔는데도 공고생인 나보다 한참을 모르네.’ -실습 생활을 3개월쯤 했는데 내가 원하면 금성사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한양대 공대를 졸업한 신입사원 형의 월급봉투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봉투 겉면에 ‘14만 5000원’이 찍혀 있었다. 내가 정사원이 되면 받을 초임(4만 5000원)의 3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고졸’이냐 ‘대졸’이냐의 차이 때문에 평생 엄청난 처우 불평등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건 참기 힘든 일이었다. ‘자격증과 실력이 전부가 아니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는 학력이 필요해.’ 종로에 있던 대입학원 야간반에 등록했고 1977년 숭실대 전자과에 들어갔다. -1957년 내가 태어났을 때 가족들은 너무 약하고 볼품없어 얼마 못 가 죽을 걸로 알았다고 한다. 다리에 힘이 없어 아장아장 걸어 다닐 나이에도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 지냈다. 두 살 때까지 업혀만 있던 결과가 지금의 ‘팔(八) 자’형 다리다. 지금의 내 이름 ‘명진’(明振)은 다섯 살 되던 해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이 지어 주셨다고 한다. ‘밝을 명(明)’에 ‘떨칠 진(振)’. 결국 ‘소리로 세상을 밝게 만들라’는 이름대로 소리공학자가 된 것인지. 당시 스님이 “나중에 잘되면 다 내 덕이오”라고 했다는데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 소백산맥 기슭의 경북 예천은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다. 아버지는 고장 난 라디오나 재봉틀 같은 기계를 수리하는 일을 하셨다. 늘 풍기던 기름내가 지금도 기억난다. 당시에는 트랜지스터라디오만 갖고 있어도 좀 사는 집 축에 들었다. 미제 제니스 라디오는 쌀 수십 가마니와 바꿀 정도로 비쌌다. 나는 아버지가 고치는 라디오에 푹 빠졌다. 조그만 사람이 라디오의 작은 통 안에서 기어 나올 것만 같았다. “거기서 아무도 나오지 않아.” 어른들은 놀렸지만 나는 늘 라디오 앞에서 턱을 괴고 뭔가를 기다렸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군에서 막 제대한 막내 외삼촌이 ‘광석 검파 라디오 키트’를 사 줬다. 나의 첫 라디오였다. 그러나 조립이 잘됐는데도 소리는 먹통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도 2년간 ‘왜 소리가 안 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했다. 고민과 실험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었다. 라디오를 전깃줄에 이으면 될 거라는 누군가의 말에 방석을 10장 겹쳐 놓고 그 위에 올라가 집 안에 있던 전깃줄 피복을 벗겨 연결했다가 감전돼 죽을 뻔하기도 했다. 궁금증은 한참 후에야 풀렸다. 예천의 고립된 지형이 문제였다. 안동 방송국이나 점촌 중계소에서 전파를 받아야 하는데 두 곳 모두 우리 집에서 30㎞ 이상 떨어져 있었다. 광석 검파 라디오의 전파 수신 범위는 기껏해야 5㎞였다. 하지만 라디오와 몇 년을 씨름한 덕에 내부 회로를 눈 감고도 그릴 정도가 됐다. -그 실력은 중학교에서 빛을 발했다. 예천중 2, 3학년 때 정부에서 주관한 전국 라디오 조립 경연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중학교를 마칠 즈음 나는 독학으로 세계적인 발명왕이 된 에디슨처럼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빈한한 집안이라 공부를 그만두겠다는데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에디슨처럼 되려면 일단은 전문가의 밑에 들어가야 해.” 예천읍내 전파상을 찾아갔다. “저를 조수로 받아 주세요.” 전파상 주인은 “밥 좀 더 먹고 오라”며 코웃음을 쳤다. 일단 고등학교 졸업장은 받아 놓기로 했다. -1972년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금호강을 건너가야 나오는 학교까지는 걸어서 2시간 30분이 걸렸다. 어릴 때부터 약했던 두 다리가 버티지 못했다. 몇 달 후 학교를 그만뒀다. 집에서 빈둥거리며 라디오나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누나가 서울의 구로공단에 취직을 하게 됐다. 누나를 따라 서울로 왔다. 신림동에 3평 남짓한 월세방을 얻었다. 당시 누나 월급이 1만원이었는데 월세로만 7000원이 나갔다. 빠듯한 생활이었다. 시골에서 가난하면 산과 들에 캐거나 따 먹을 거라도 있지만 도시 빈민에게는 그런 호사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예천 촌놈에게 번화한 서울은 그 자체로 커다란 매력이었다. 계속 여기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배워야 했다. -원래 못하는 공부는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살이 시작 이듬해인 1973년 용산공고 전자과에 들어갔다. 영어와 수학은 좀 부담스러웠지만 과학은 늘 1등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자격증 취득에 쏟아부었다. 고등학교 다니며 딴 자격증이 아마추어 무선사 등 14개에 이른다. 국가기능올림픽에 출전해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금성사의 ‘월급봉투 충격’ 때문에 우발적으로 시작한 대학 공부였지만 재미는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실무를 아니까 책과 강의가 눈과 귀에 쏙쏙 들어왔다. 상당수는 내가 직접 만져 보고 고쳐 본 것들이었다. 새벽에 도서관 문이 열릴 때 들어가 한밤중 문이 닫힐 때 나왔다. 등록금은 학기마다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지만 생활비는 해결되지 않았다. 대학생 과외 공부 아르바이트가 금지돼 있던 시절, 나는 동네 가전제품 수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발명연구실의 ‘조수’가 되겠다던 꿈을 대학교의 ‘교수’로 수정한 것은 입학 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1981년 서울대 대학원에 합격했다. 숭실대에 전자과가 생기고 나서 첫 서울대 대학원 입학이었다. 학비가 다른 사립대학의 5분의1 정도밖에 안 되는 게 너무 좋았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은 시작부터 피 말리는 경쟁의 연속이었다. 우리 연구실의 7명 중 단 2명에게만 박사 과정 진학 기회가 주어졌다. 영어, 수학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나는 논문이나 특허, 강의 경력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서울역 인근 남영동삼거리에 있던 한국전파학원에서 ‘기사 시험 전문반’ 강사로 나섰다. 강사료로 시간당 2만 5000원을 받았는데, 20대 중반 가난한 대학원생의 형편이 활짝 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1983년 통신 분야의 거성으로 불리던 안수길 교수님에 의해 박사 과정 합격자 2명 중 1명으로 낙점됐다. -나는 ‘교수’보다 ‘소리공학자’로 불리기를 원한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의 소리박사라는 말이 참 듣기 좋다. 1992년 숭실대 교수로 오면서 소리공학연구소라는 간판을 달았는데 ‘소리공학’이라는 우리말 자체를 처음 만든 사람이 나였다. 소리공학연구소는 2008년 개인연구소의 지위에서 대학 공식 연구소로 격상됐다. -1983년 숭실대 시간강사 시절 사귄 교직원과 이듬해 결혼을 해 딸 둘을 얻었다. 딸들은 많은 연구에 모티브를 제공했다. 무수한 발명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것도 ‘부모 목소리 동화 구연 시스템’이다. 첫째가 다섯 살, 둘째가 세 살 때였는데 내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성우의 멋진 목소리보다 아빠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더 좋아했는데, 성우들이 녹음한 목소리를 엄마, 아빠의 목소리로 바꿔서 들려주는 장치였다. 최근 발명한 ‘소리 바람 소화기’도 애착이 간다. 상품화를 진행 중이다. 소화기를 켜면 큰 소리가 나오는데 이 소리가 화재를 진압한다. -소리공학을 활용한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다. 2005년 소리 분석을 해 보니 저격범 문세광의 총이 아니라 경호원의 총에 육 여사가 서거했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가 중년 남성의 목소리와 닮아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 파도가 칠 때마다 조약돌이 구르며 내는 몽돌 소리가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준다는 이론 등도 기억에 남는다. -재미있는 연구도 좋아해 가끔 엉뚱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이가 들면 왜 트로트를 좋아할까. 원인은 사람의 청력이 1년에 1%씩 늙기 때문이다. 20~30년 지나면 20~30% 노화된다. 노화는 저음화를 의미한다. 10대는 1만 8000헤르츠를 듣지만 20대는 1만 6000헤르츠를 듣고 30대는 1만 4000헤르츠까지만 들을 수 있다. 트로트는 저음의 미학이다. 내 꿈은 여전히 노벨상을 받는 것이다. 사람들은 웃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생리의학상 분야로 노벨상을 노리고 있다. 소리로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을 실험 중이고 관련 논문들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일명 ‘불로음’(不老音)이다. -‘세월호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의 공학적 연구 결과를 보고한다. 그동안에도 우리 연구팀의 소리 연구는 세월호 수사에 많은 도움을 줬다. 팬티 바람으로 퇴선하던 선장 뒤로 바람 소리에 날리는 세월호 안내 방송이 어렴풋이 들리는데 선장은 법정에서 “퇴선 명령을 안내 방송으로 내렸다”고 했지만 우리가 소리를 분석하니 “안전한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내용으로 결론 났다. 2심 재판에서 선장에게 사형이 선고된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이달 말 우리 연구소팀이 맡은 세월호 조사가 끝이 난다. 다음에는 국립중앙도서관과 요절한 가수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애수의 소야곡’을 부른 남인수, ‘목포의 눈물’ 이난영, ‘돌아가는 삼각지’ 배호 등인데 요절해서 가짜 앨범이 너무 많다고 한다. 자세히 감정해 볼 생각이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귀로 듣기에 좋은 목소리는 성대 주파수로 말하면 남자는 110~130헤르츠, 여자는 210~240헤르츠 정도의 중저음이다. 특히 남자는 저음의 울림과 함께 안정감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목소리, 여자는 밝은 음색의 목소리를 선호한다. 남자나 여자 모두 말을 할 때 톤에 변화를 주고 리듬감 있게 발음하면 듣는 사람이 정감을 느낄 수 있다. 좋은 목소리는 선천적으로 타고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좋은 목소리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배명진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소리공학’을 국내에 도입하고 개척한 음향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1992년 소리공학연구소를 설립해 과학적, 공학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미국 ‘마퀴스 후즈후’에도 이름을 올렸고, 지금까지 국내외에 15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방송이나 인터뷰, 저서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고 함께 호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간혹 연예인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스펀지’ ‘TV동물농장’ ‘위기 탈출 넘버원’ 같은 TV 프로그램에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저서로 ‘소리로 읽는 세상’ ‘소리이야기’ 등이 있다. ▲1957년 경북 예천 출생 ▲예천중, 용산공고, 숭실대, 서울대 석·박사 ▲호서대 전자공학과 조교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음성통신전공 교수 ▲한국음향학회장.
  • 경남, 축제장 사고예방 위해 안전점검단 운영

    경남도는 10일 다음 달부터 도내에서 크고 작은 각종 축제가 잇달아 열림에 따라 축제장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민·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축제 안전점검단’을 구성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안전점검단은 전기·소방·건축·교통 등 4개 분야에 대학교수, 공학박사, 공기업 안전 담당자 등 전문가와 도·시·군 공무원 등으로 구성했다. 안전점검단은 축제가 열리기 2∼3일 전에 고정 및 임시건축물(무대, 전시장 등)과 행사 부속시설(향토음식점, 어린이 놀이시설 등), 불꽃놀이장, 주차장, 강·바다를 비롯한 수변시설 등을 집중 점검한다. 건축물 붕괴와 누전에 따른 감전 및 화재, 가스 누출, 익사, 주차장 교통사고 등의 위험성을 살펴보고 위험성이 있으면 현장에서 바로 시정·개선조치를 한다. 안전점검단은 다음 달 개막하는 진해군항제를 시작으로 진주남강유등축제, 산청한방약초축제 등 규모가 큰 주요 축제를 현장 확인해 점검한다. 규모가 작은 축제는 해당 시·군 자체 점검단이 점검한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전기화재 줄이지 못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지요”

    “전기화재 줄이지 못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지요”

    취임 2년새 화재 1130건 줄어… 올해 전기화재 비율 15% 목표 “어린이 감전사고 예방 초점 전기안전관리법 신설해야” “전기 화재를 못 줄이면 우리 공사는 문 닫아야지요.” 이상권(61) 한국전기안전공사(KESCO) 사장은 29일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전기화재 감축”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우리가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어도 전기 화재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공공기관으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2013년 8889건에 달하던 국내 전기 화재는 이 사장 취임 후인 2014년 8287건, 지난해 7759건으로 2년 새 1130건이 줄었다. 전기 화재 한 건당 목숨을 잃는 사람이 평균 0.043명인데 1130건이 줄었으니 2년 사이 48명의 목숨을 구하고, 전기 화재 한 건당 재산 피해 평균이 4470만원이니 약 500억원을 보전한 셈이다. 2013년 전체 화재 가운데 21.7%에 달했던 전기 화재 비율은 2014년 19.7%, 지난해 17.5%로 매년 2% 포인트 이상 줄고 있다. 올해 목표는 선진국 수준인 15%대에 진입하는 것이다. 어린이 감전 사고 예방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사장은 “어린이 감전 사고는 예방 교육이 중요한데, 현재 초등학교 1~4학년 교과서에는 전기 안전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면서 “내년부터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 학년 교과서에 전기 안전에 대한 내용이 수록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전기안전관리법’ 신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대부분 선진국은 전기사업 발전과 관련된 법과 안전 관리법을 따로 나눠서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하나로 뭉쳐 있다 보니 안전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면서 “전기안전관리법은 정전 등 전기관련 사고가 발생했을 때 광범위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여하는 등 소비자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는 해외 시장 진출에도 본격적으로 나선다. 이 사장은 “지난해 11월 베트남에 전기법 시행령이 개정됐는데, 정기 검사, 안전진단 방법 등 우리가 갖고 있는 전기안전 관리 체계와 운영 노하우를 전수했다”면서 “카타르의 변전설비 검사 사업 등 해외 정부가 발주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에도 문을 두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인사]

    ■미래창조과학부 ◇국장급 승진△주오스트리아공화국대사관 겸 주빈국제기구대표부 공사참사관 임승철△국립외교원 교육훈련 파견 이창희◇과장급 전보△운영지원과장 손승현△기획재정담당관 박윤규△구주아프리카협력담당관 박민하△거대공공연구정책과장 권현준△지역연구진흥과장 황성훈△연구기관지원팀장 최도영△생명기초조정과장 백일섭△성과평가혁신총괄과장 허재용△창조경제기획과장 구혁채△창조경제기반과장 이옥형△미래성장전략과장 정택렬△정책총괄과장 강도현△소프트웨어정책과장 류제명△정보활용지원팀장 김정태△통신경쟁정책과장 송재성△통신이용제도과장 전영수△통신자원정책과장 김보열△주OECD대표부 주재관 김경만 ■외교부 △의전장 최종현 ■행정자치부 △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 허언욱△대변인 윤종진△의정관 한창섭△한국지역정보개발원 기획조정실장 김혜영△지역정보지원과장 김회수△정부통합전산센터 기획전략과장 김상광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조정실장 박일준△산업정책실장 박원주 ■환경부 △국립환경인력개발원 교육기획과장 이경훈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장 최상운△경북지방노동위원회 사무국장 김상용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관 조진우 ■해양수산부 △국제협력총괄과장 윤상린△수산정책과장 최용석△양식산업과장 오광석△해운정책과장 전재우◇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운영지원과장 권현욱△검역검사과장 지정훈 ■방송통신위원회 ◇국장급 승진△국립외교원 파견 김동철 ■금융위원회 △대변인 임규준△자본시장국장 김태현◇부이사관 승진△행정인사과장 김진홍 ■식품의약품안전처 ◇부이사관 승진△국립외교원 교육훈련 파견 정용익 ■서울시교육청 ▶유치원 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원감에서 원장 승진△위례별유치원 이선경◇원장 전보△은빛유치원 박찬화◇교사에서 원감 승진△동부교육청 박정화△중부교육청 이정인△강동송파교육청 한은경△성북교육청 이미숙◇원감 청간 전보△서부교육청 강상이△강남교육청 김연숙◇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유아교육과 심지은△강서교육청 안진숙▶초등학교 교장·교감 ◇교감에서 교장 승진△신곡초 고관희△신내초 김경희△상수초 김도연△유현초 김명희△선곡초 김선희△전곡초 김순희△상봉초 김인자△개웅초 김정수△망우초 김향연△광희초 나수연△인헌초 박란순△개원초 박승란△신원초 박옥선△삼광초 박은미△길동초 박찬미△월정초 박찬옥△백운초 성경숙△계상초 양경환△장충초 유안근△등촌초 유양숙△신현초 유정원△신길초 윤경혜△도곡초 윤미희△상계초 윤준원△장수초 이옥주△토성초 이정복△용두초 이정옥△위례별초 이중렬△양화초 이희숙△사근초 임인숙△연희초 정준섭△인왕초 조현희△창천초 진경자△홍릉초 채정옥△장월초 최미묘△오류남초 최순옥△강서초 하순옥△천동초 하준수△내발산초 홍길선△백석초 황늠이◇공모교장 임용△지향초 김선희△원묵초 김영식△묵현초 김인선△동신초 김진화△군자초 나용주△면중초 장언경△양목초 진만성△송례초 최치수◇공모교장에서 교장 임용△공항초 권기옥△미동초 권성기△미아초 김재식△금호초 김혜경△명원초 문교민△문현초 박경자△가재울초 오종열△공진초 이봉학△삼선초 이은숙△윤중초 장덕실◇교장 중임·전보·유예△석계초 김병수△봉은초 안세은△도성초 유정옥△불암초 이일순△중평초 정광선△소의초 조준형△버들초 조희숙△신정초 최태규△방산초 허옥진△창림초 박란희△왕북초 송춘례△중원초 정내석△연은초 최순옥△경인초 함창덕△용동초 박동일△마장초 이이영△강동초 강혜숙△명일초 김경옥△독립문초 이해순◇교육전문직(관급·사급)에서 교장 전직△영풍초 문종국△신상도초 송정기△동구로초 오시형△신학초 허인수△여의도초 한철수△세명초 배영직△옥정초 이근실◇교사에서 교감 승진△서부교육청 고영미 권선태 김미경 김영신 김은영 박찬익 유선미 이경진 이미경 이봉열 이옥선 이윤희 최영미 홍선의△강남교육청 고정원 노재훈 송선희 심순실 윤영주 이복영 이충원 이후남△동부교육청 고흔석 이미경△강서교육청 김경화 김선희 박영준 안순 유승혜 윤정노 주락철 채미정△강동송파교육청 김광호 유향숙 이남섭△동작관악교육청 김명철 마귀숙 서진숙 양영미 이대희 이부영 이상숙△북부교육청 김병영 서동표 이승미 임우재△성북교육청 김세자 신명애 양인화△남부교육청 신숙이 장용분 정혜은 한희경△중부교육청 양기철◇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교감 전직△남부교육청 정민규◇교감 청간 전보△강동송파교육청 조미연 안성원▶초등 교육전문직원 ◇교장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 전직△강남교육청 교육장 안종복△남부교육청 초등교육지원과장 김정한△성동광진교육청 초등교육지원과장 김재환△학교혁신기획운영장학관 임세훈△상담대안교육장학관 김귀숙◇교육전문직원(관급) 승진·전보·전직△평생진로교육국장 한상로△동부교육청 교육장 김정석△서부교육청 교육장 문명근△강서교육청 교육장 김재환△민주시민교육과장 김시영△가평영어교육원분원장 이재관△동작관악교육청 교육지원국장 김용수△성동광진교육청 교육지원국장 박혜자△교육연수원 초등교원연수부장 오명환△과학전시관 기획운영부장 권병진△강동송파교육청 초등교육지원과장 민계홍△강서교육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이상래◇교감·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 전직△초등교육과 정지숙△남부교육청 홍연호△동작관악교육청 노덕균△동부교육청 곽정은◇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참여협력담당관 강동수△교육혁신과 김병노 이수연△초등교육과 박현주 김정원 윤태환△민주시민교육과 김경하△대변인 유재정△감사관 김태환△교육연구정보원 임정미 박경진△남부교육청 양영식△교육연수원 김장균△중부교육청 전용재△강동송파교육청 윤순단 김영진△성동광진교육청 이병재 안선영△성북교육청 배창빈 정진아▶초등 특수 교원 ◇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교감 전직△서울정애학교 전상희▶초등 특수 교육전문직원 ◇교장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 전직△학생생활교육과 안일홍◇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 전직△동작관악교육청 심정와◇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학생생활교육과 허진△성동광진교육청 이주율▶중등 교장·교감 ◇교감(공모교장)에서 교장으로 승진△아주중 구자홍△신상중 김종현△장원중 김원숙△이수중 서종일△은평문예정보교 임성빈△중암중 정선영△증산중 이재만△구로중 황수선△영원중 박상태△시흥중 유경식△노곡중 송선화△수락중 김현청△하계중 이종문△용산중 김해숙△송례중 이희원△신남중 이주암△신서중 황원기△염창중 최수일△도곡중 박경실△관악중 성화숙△미성중 박옥빈△봉원중 김학윤△북악중 정광인◇공모교장△미양고 이건재△서울과학고 임규형△휘봉고 이재억△성서중 이영아△화계중 노유경◇교장중임△서울전자고 송재영△자운고 엄종훈△태릉고 박조현△을지중 홍광표△원촌중 나영자△강현중 김중호△개포고 김응갑△방산고 심현각△선유고 주영림△홍은중 류명호△창일중 유서영△개봉중 공영택△구일중 이사인△신양중 이현자◇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구암고 이혜순△상계고 임호성△수명고 김용호△신도고 송의열△영신고 이만대△인헌고 이혜련△서울산정교 신승인△성일중 박광훈△신수중 류성남△무학중 한홍열◇교장 전보(전보유예 포함)△용산공고 노승희△경기기계공고 오영수△석관고 유장전△서울공고 양한석△서울문화고 안광식△서울방송고 김홍식△성수공고 신광철△장평중 박미연△신관중 심성안△번동중 박택◇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경기고 김재명△중화고 박정욱△청담고 박용범△서울다솜학교 김명환△동부교육청 유정호△서부교육청 신만섭 박상복 권혜순△강동송파교육청 박성규 심정희△강서교육청 김미혜 이동익△강남교육청 박종찬 김경희 김대성 조묘인 한수찬 이유호△성동광진교육청 강구정△성북교육청 권경순◇교육전문직원에서 교감으로 전직△경기여고 이성호△광남고 김진효△등촌고 최환호△석관고 김해경△신도림고 박치동△양재고 이준임△잠신고 김성준△태릉고 이대해△선린인터넷고 김재순△북부교육청 남정란△강남교육청 신선호 변영수◇교감전보·전보유예△문정고 박정란△서초고 임종률△선유고 강동숙△세종과학고 이수형△여의도고 강원희△여의도여고 장미숙△강서공고 안진수△서울공고 전병현△서울전자고 전필규△성수공업고 윤태원△송파공고 장민호△한강미디어고 이춘근△동부교육청 정낙영△서부교육청 이태행 강병재 김승덕△남부교육청 이준용 박영식 조규태 유양옥 오애영 서해인△북부교육청 유흥석 이인섭 방덕원 윤종현△중부교육청 박은종 황덕진△강서교육청 금원숙 손기서△강남교육청 채홍녀△동작관악교육청 장인순 박영자△성북교육청 조재옥 변원목 임정자 노강환▶중등 교육전문직원 ◇교육전문직(관급) 승진△성동광진교육청 교육장 임종근◇교육전문직(관급) 전보△동부교육청 교육지원국장 이재근△성북교육청 교육지원국장 나징기△정책연구장학관 윤신덕△북부교육청 중등교육지원과장 조호규△강동송파교육청 중등교육지원과장 최영규◇교장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동작관악교육청 교육장 이형범△학생생활교육과장 박인규△진로직업교육과장 홍민표△서부교육청 교육지원국장 이윤복△교육연구정보원 기획평가부장 최춘옥△교육연구정보원 교육과정인성진로부장 최형철△학생교육원 교육기획운영부장 안재홍◇교감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교육혁신과 중고체제개선담당 장학관 안윤호△중등교육과 외국어교육담당 장학관 정복영△중등교육과 중등인사담당 장학관 하태진△진로직업교육과 직업교육담당 장학관 김삼현△서부교육청 중등교육지원과장 고은정△성북교육청 중등교육지원과장 민병인◇교사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교육연구정보원 교육연구관 손동빈◇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으로 전직△연구정보원 안미경△학생교육원 이주석△서부교육청 박상정 한선△남부교육청 도귀연△중부교육청 이상철 김종우△강남교육청 신혜정△동작관악교육청 곽호원△성동광진교육청 이승섭△성북교육청 김수미◇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감사관 장윤숙△감사관 이원렬△참여협력담당관 김남희△교육혁신과 김찬기 정원진 이지수△초등교육과 이동희△중등교육과 권미숙 김양수 전국△민주시민교육과 정나미 박귀자 김선옥△학생생활교육과 윤정옥△진로직업교육과 김창영△체육건강과 최정운△교육연구정보원 김근회△과학전시관 배병일△교육연수원 전혜진 서근주 황희순 김상헌△학생교육원 고승우 박상임△동부교육청 이옥경 김해용 박진△북부교육청 이재홍 신창애 김원준△강동송파교육청 임유원 정동회 손용 이미진△강서교육청 이현수 최한자 허현정△강남교육청 송현미△동작관악교육청 최정윤△성동광진교육청 오병택 홍숙정▶국립 전입 ◇교육부에서 교장으로 전입△가재울중 김정화◇국립학교·국립국제교육원에서 교감으로 전입△면목고 홍준표△서부교육청 김찬우◇국립국제교육원에서 장학사로 전입△서부교육청 김한주▶중등 특수 교장·교감 ◇교감에서 교장으로 승진△서울정문학교 김현진◇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서울광진학교 강병두◇교감 전보△서울정진학교 홍용희
  • [독자의 소리] 작은 관심으로 아동학대 막을 수 있다/조경희 부산 사상구 감전동

    하루가 멀다 하고 아동학대 기사가 각종 언론매체를 도배하고 있다. 연일 보도되는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내가 사는 이곳이 대한민국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조차 든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아무 거리낌없이 방치하고 학대하며 심지어 생명까지 앗아 가고 있다. 자기 자식이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한참 잘못된 생각을 가진 부모들, 그리고 설마 싶으면서도 자기들 일이 아니니 상관하지 않고 방관만 하는 이웃들. 이러한 어른들의 무관심이 부른 결과는 실로 참혹하기만 하다. 아동학대는 해당 아동의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아동학대는 그 피해 아동이 성인이 되어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범죄다. 외국의 경우는 학대나 방임은 엄격하게 법으로 다스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분야가 사각지대에 노출돼 있고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대책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우리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주변에 학대받는 아이들은 없는지 우리 이웃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건 어떨까.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세상은 ‘어둠’이 아닌 ‘밝은 빛’으로만 가득한 세상이기를 바라며 아동학대가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소망해 본다. 조경희 부산 사상구 감전동
  • 라디오스타 양세찬 ‘나와 같다면’…김연우 완벽 모창?

    라디오스타 양세찬 ‘나와 같다면’…김연우 완벽 모창?

    개그맨 양세찬의 김연우 모창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안겼다. 10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는 지난주에 이어 ‘라스클리닉-사랑과 전쟁’ 특집 2탄으로 꾸며져 양세찬을 비롯 양세형, 박나래, 장도연이 출연했다. 이날 양세찬은 무대에 올라 김연우의 ‘나와 같다면’을 불렀다. 시작부터 여유로운 표정과 안정적인 음정으로 김연우의 목소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양세찬의 실력에 출연진은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양세찬의 노래 실력에 숨은 비결은 곧 드러났다. 노래와 입술이 조금씩 어긋나며 모창이 아닌 립싱크라는 사실이 들통이 난 것. 하지만 양세찬은 꿋꿋이 신들린 립싱크를 이어가며 폭소를 자아냈다. 뱃고동 소리와 감전사고, 치즈버거 등의 CG를 넣은 제작진의 재치도 빛났다. 한편 김국진, 윤종신, 김구라, 규현 4MC가 촌철살인 입담으로 게스트들의 진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황금어장-라디오스타’는 매주 수요일 밤 11시 15분에 방송된다. 사진·영상=황금어장-라디오스타(양세찬이 부르는 ‘나와 같다면’)/네이버tv캐스트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실험영상] 남녀가 번갈아 성추행해봤다…그런데 시민 반응은 달랐다☞ ‘응팔’ 동료들 아프리카행 소식에 혜리 ‘벌러덩’
  • 버스 운전사 점심 훔쳐가는 교활한 원숭이

    버스 운전사 점심 훔쳐가는 교활한 원숭이

    버스 운전사의 점심을 훔쳐가는 원숭이의 영상이 화제입니다. 5일(현지시간) 미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브레이크닷컴(break.com)은 최근 스페인 내 영국령인 지브롤터를 지나는 버스 안 운전석 손잡이를 잡고 있는 마카크원숭이(barbary macaque) 영상을 소개했다. 마카크원숭이는 유럽에 사는 유일한 영장류로 통상적으로 ‘바바리에이프원숭이’(Barbary Ape)로 불린다. 영상에는 운전석 창문 옆 손잡이를 잡고 있는 마카크원숭이가 바나나를 한 개 받아먹은 후, 버스 운전사의 점심이 든 비닐봉지를 훔쳐 달아나는 모습이 포착돼 있다. 예상치 못한 원숭이의 행동에 관광객들과 운전사가 놀라는 모습이다. 사진·영상= Fatal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러시아 염소와 호랑이 ‘별난 동거’ 끝나게 된 이유는? ☞ ‘제발 내려와!’ 전깃줄 위 감전사하는 야생원숭이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가 이현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가 이현세

    갓 태어나서 큰집에 양자로 갔다 10대의 나는 연좌제에 떨었다 20대의 나는 까치였다 30대의 나는 최고 작가였다 40대의 나는 영화를 말아먹고 심의·검열과 싸웠다 50대의 나는 내 시대는 갔다고 생각했다 60대의 나는 웹툰을 배웠고 처음 신인상도 받았다 70대의 나는 동화를 쓰고 싶다 20년 동안 ‘삼촌’과 ‘숙모’로 알아 왔던 분들이 실제로는 나를 낳아 준 사람들이었다. 나 자신의 우둔함에 질식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안해준 식구들이 야속했다. 방황하기를 한 달여, 그 숙모가 조용히 말했다. “친자식에게 더운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인 나만큼이나 아프겠니. 나를 봐서라도 이래선 안 된다.” 어머니는 눈빛으로 아들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이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박찬호가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자기가 이긴 게임에서 던진 공들, 경기장 입장권을 다 갖고 있는 친구예요. 미국 생활에서 여러 번 위기가 왔는데, 그때마다 자기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포기를 못했다더군요.” 화실 창가에 놓인 박찬호 투구 모습 모형(피규어)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그가 말했다. 그는 박찬호를 매우 좋아하고, 또 친하다고 했다. 그의 등번과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사러 미국 LA 다저스 구장까지 갔다 오기도 했다. “자기를 정말 사랑합니다. 자유, 독립, 자존이라는,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3가지 가치를 가장 확실히 실현한 친구죠.” 그건 어떻게 보면 자신과 닮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화실. 이현세(60) 만화가는 아무런 준비 없이 평소처럼 앉아 있었다. 눈가의 주름과 희끗희끗한 머리만 빼면 영락없는 ‘까치’였다. -‘현세는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 아직 모르나 봐요.’ 친척들이 하는 나직한 수군거림이 대형 스피커 음량으로 내 귀에 꽂혔다. 경주 시내로 나가 재수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20년 동안 ‘삼촌’과 ‘숙모’로 알아 왔던 분들이 실제로는 나를 낳아 준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참석한 문중 시제(時祭). 엄마와 숙모, 누나들 모두 나에게 비밀로 해 왔던 ‘천기’를 집안 어른들이 누설하고 말았다. 내가 갓난아기 때 큰집에 양자로 들어갔고, 생부는 내가 아홉살 때 돌아가신 삼촌이었다는 사실. 나 자신의 우둔함에 질식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안 해준 식구들이 야속했다. -수험서를 덮고 매일 술만 마셨다. 왜 그렇게 20년을 꽁꽁 숨겼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혼자서 끙끙 앓으며 방황하기를 한 달여. 어느날 밤 술에 취해 ‘숙모’의 품에 안겨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그 숙모가 조용히 말했다. “친자식에게 더운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인 나만큼이나 아프겠니. 나를 봐서라도 이래선 안 된다.” 어머니는 눈빛으로 아들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이다. -그 일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대학을 포기하고, 만화의 길을 걷기로 했다. 혼자서 서울로 왔다. 경주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서울은 또 달랐다. 생활은 만만치 않았고 정착할 곳도 찾아지지 않았다. 문하생으로 받아 달라고 무수한 만화작가 화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내가 제법 ‘성공’을 한 뒤 그분들 중 한 분을 뵀는데 “눈빛에 반항기가 줄줄 흘러 부담스러웠다”고 당시 얘기를 하셨다. 처음 자리잡은 곳은 순정만화로 유명한 나하나 선생님 화실이었다. 그다음은 개그만화의 하영조 선생님 화실. 액션만화를 추구했던 나에게 두 분 선생님과의 작업은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순정만화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미학과 개그만화의 익살맞은 표정 연기 등이 합쳐져 까치를 비롯한 내 만화의 등장인물 라인업이 구축될 수 있었다. -분단의 비극을 오롯이 간직한 우리 집의 가족사를 떼어 놓고는 나와 만화를 말할 수 없다. 일제 때 만주에서 살던 할머니는 해방 직후 서른 언저리에 아들 셋을 데리고 경북 울진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향이라고 해도 먹고살 게 없었다. 얼마 후 둘째 아들은 “내가 돈 벌어 오겠다”며 다시 만주로 나갔다. 그러다 38선이 그어지면서 둘째는 졸지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6·25가 터지고 북한 인민군이 남쪽까지 밀고 내려오면서였다. 둘째는 인민군이 돼 나타났다. 형제가 어울리는 모습이 마을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 인민군이 퇴각한 후 첫째 아들이 괴뢰군 부역자로 몰려 헌병대에 끌려갔다가 죽임을 당했다. 큰아들은 처형되고 둘째 아들은 월북. 할머니는 차라리 만주에 계속 있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1956년 셋째 아들의 장남으로 내가 태어났다. 할머니는 나를 큰며느리에게 양자로 보냈다.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해서였다. -우리 일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전쟁 직후에 흥해(현재 포항시 북구 흥해읍)로 터전을 옮겼다. 부역자 가족이란 딱지를 달고서 울진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길러 준 어머니는 잡화점을 냈고, 낳아 준 아버지는 자갈땅을 사서 밭을 일궜다. 그 덕에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됐을 때 ‘삼촌’이 경주역의 기차 수리 공장에 취직했다. 어느 날 삼촌에게 “크레파스를 사 달라”고 졸랐다. 선뜻 돈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극장에서 서부영화를 보고 만화책을 빌려 보느라 그 돈을 다 써 버렸다. 다음날 저녁 삼촌이 집에 들러 새로 산 크레파스로 그림 한번 그려 보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나는 “저한테 돈 주겠다고만 하시고 그냥 가셨잖아요”라고 둘러댔다. 삼촌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가 착각했다”며 다시 돈을 주셨다. 아들이 거짓말하는 걸 다른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게 싫으셨던 것이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날 수업을 받는데 작은누나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교실로 왔다. 아버지가 일하던 공장으로 뛰어갔는데 할머니와 큰어머니, 숙모가 통곡을 하고 있었다. 앞에는 아버지가 하얀 무명천에 덮여 누워 있었다. 전기 감전이라고 했다. 삼일장 내내 나는 학교에 있었다. ‘삼촌은 나를 거짓말하는 아이로 알고 돌아가셨겠구나’ 생각하니 죄스럽기도 했지만, 억울하기도 했다. 10여년 후 그가 나의 진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그 일이었다. -학교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그럭저럭 공부를 잘해서 지역 명문인 경주중에 입학했지만 줄곧 형사들의 감시 속에 살았다. 연좌제에 걸려 인생이 막혀 있다는 생각이 점차 커져 갔다. 경주고에 들어가면서 원래 좋아했던 술이 더 잦아졌다. 방과 후에 당시 경주오거리에 있던 막걸리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열성이었던 건 미술부 활동이었다. 고1 때 유도에 빠져 2학년 때는 경북 대표로 전국체전까지 나가기도 했지만, 미술만큼은 아니었다. 특히 스케치는 어렸을 때부터 꽤 소질이 있었다. 미대 진학을 유일한 길로 생각했다. 연좌제의 공포가 나를 더욱 미술로 몰아갔다. 그러나 미대 입학원서를 쓰기 위해 안과에 가서 색맹검사를 했더니 색약 판정이 나왔다. 그때는 왜 그렇게 색약에 대해 엄격했는지. 당시 입시제도하에서 나는 미대 지원을 아예 할 수가 없었다. -유신과 군사정부 치하에서는 노래나 영화가 그렇듯 만화에 대해서도 검열이 심했다. 이를테면 갈등이 증폭되는 스토리나 격투 장면 같은 게 들어가는 그림은 허용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액션만화를 보면 커서 데모를 하기 쉽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스포츠 만화로 방향을 돌리고 ‘공포의 외인구단’을 처음 내놓은 것이 1982년. 26세 때였다. -내가 만화를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캐릭터다. 날 대신해 움직여 줄 수 있는 아바타만 구현하면 그다음부터 소재나 스토리는 부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스토리 궁핍을 느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게 필생의 캐릭터인 ‘까치 오혜성’이다. 한(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의지로 부딪쳐 결국 파괴되는 인간이랄까. 가족사 때문에 트라우마와 핸디캡에 시달려야 했던 성장기의 아픔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기도 하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전에도 나는 대본소(만화방) 시장에서 꽤 인지도 있는 작가였다. 하지만 외인구단은 기존 작품과 차원이 달랐다. 어린이 만화만 있던 시절, 극단적이고 상처투성이인 주인공 영웅이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고난에 시달리다 결국 이를 극복하지만 최후에는 처절히 파멸하는 이야기의 만화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대략 한 달에 한 권씩 2년간 30권을 내놨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본소의 맨 앞칸에는 언제나 외인구단이 자리잡았다. ‘까치’를 이름으로 내건 만화방들이 속속 생겨났다. -나이 서른 전에 최고액을 받는 작가가 됐는데, 권투(‘지옥의 링’)든 시대극(‘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이든, 페미니즘(‘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이든 뭘 그려도 잘 팔렸다. ‘남벌’은 서울대 신입생들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선정됐다. 만화가 뜨니 나도 스타가 됐다. 맥주 등 광고 CF에까지 나올 정도였다. 돈도 정말 많이 벌었다. 돈이 나를 거쳐 밖으로 흘러나가는 게 문제였지만. 마흔을 갓 넘긴 1997년부터는 세종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의 40대는 ‘전쟁’의 시기였다. 첫 번째 난관은 1996년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아마게돈’의 대실패였다. 한동안 영화계에서 최고의 손실액 기록을 보유했을 정도다. 총감독으로서 투자를 담당했던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손해를 많이 봤다. 돌이켜보면 그건 영화도 아니었다. 영화 문법도 모르는 총감독의 오만과 무지 탓이다. -두 번째 난관은 ‘천국의 신화’ 필화 사건이다. 대하 역사물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서른 살 때였다. 미국에 가서 광활한 그랜드캐니언을 마주하고 나니 ‘내가 왜 스포츠 만화나 그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여년간 ‘환단고기’ 등 역사서들을 공부하고 ‘100권’을 목표로 1996년 1부 3권을 내놨다. 그러나 2년 뒤 청소년 음란물 시비로 검찰에서 기소하고, 법원이 3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터무니없는 심의와 검열에 내가 고개를 숙이면 어느 작가가 이겨 낼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은 것은 6년이 흐른 뒤였다. 당시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1남 2녀)이 끝까지 아버지를 믿어 준 데 대해 지금도 고마움이 크다. -50대가 되니 세상이 많이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인기 만화 작가 ‘이현세’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엔 ‘내 시대는 갔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지만 이게 당연한 세상의 섭리 아닌가.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그려 큰 인기를 얻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표현이 좀 과한가?(웃음) 완벽하다고 여긴 작품은 없다. 그리고 원래 나는 ‘옥에 티’가 많은 작가다. ‘공포의 외인구단’에도 같은 사람인데 야구 글러브가 왼손, 오른손 바뀌어 그려진 장면들이 있다. 나는 쓰레기통 속에서 수많은 ‘가짜 꽃’을 피우다가 언젠가는 한 송이 진짜 꽃을 피우는 게 작가라고 여긴다. 내 작품은 아직도 쓰고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던질 습작의 연장선상이다. 난 천재형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부모님께 극단적인 집중력과 낙관주의를 물려받았다. 한창때는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하루이틀 꼬박 밤을 새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덕분에 마감은 종종 늦었지만 펑크를 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남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배가 고프고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천국의 신화’ 6부를 시작했다.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도록 수위를 조절했지만, 나로서는 무척 감사한 일이다. 작년 말에는 네이버에서 ‘웹툰 신인상’까지 받았다. “60 평생에 처음으로 신인상을 받았다”고 하니 후배 작가들이 다들 자지러졌다. -지금 연재 중인 천국의 신화는 10년 정도 더 해야 한다. 6부는 고조선 멸망으로 끝난다. 이후 여러 민족들이 군웅할거했던 시기를 지나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다. 그 뒤에는 나도 70대가 된다. 그때는 동년배를 위한 동화를 그리고 싶다. 아니면 손주를 위한 동화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큰아이가 30대 후반인데, 이 녀석들이 셋 다 결혼을 안 했다는 거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만화가 이현세(60)씨는 한국 만화의 ‘오늘’을 있게 한 대표적인 작가다. 1979년 ‘저 강은 알고 있다’로 데뷔한 그는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을 통해 운명에 맞서는 열정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역동적인 그림체로 선보여 만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나이 불과 26세였다. 이후 ‘지옥의 링’(1985), ‘야수의 전설’(1985),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1988), ‘아마게돈’(1988), ‘블루엔젤’(1989), ‘폴리스’(1992), ‘남벌’(1994), ‘천국의 신화’(1997) 등 히트작과 문제작을 내놓으면서 ‘불온’과 ‘미숙’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만화를 대중문화의 중심부로 격상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초로(初老)의 나이에도 ‘천국의 신화’ 6부를 웹툰에 연재하는 여전한 ‘현역’이다. ▲경주중·경주고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1997~) ▲한국만화가협회 회장(2005~2007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2009~2012년)
  • 북극 정령이 흘려놓은 풀빛 오로라, 시간이 멈춘 듯

    북극 정령이 흘려놓은 풀빛 오로라, 시간이 멈춘 듯

    겨울, 북극에선 누구나 뤼나티크가 될 수밖에 없다. 달빛에 홀린 월광병 환자 말이다. 핀란드 북쪽의 작은 마을 레비. 이곳에선 하루 가운데 20시간이 밤이다. 하늘엔 별이 총총, 땅엔 불빛에 반사된 얼음 알갱이들이 반짝대며 ‘다이아몬드의 바다’를 이룬다. 그뿐이랴. 머리 위로는 ‘북극의 꽃’ 오로라가 핀다. 이 빛, 참 고혹적이다. 유혹의 선처럼 다가온다. 멀리서 아른대다 어느새 훅 하고 머리 위까지 날아와 넘실댄다. 그러니 밤 풍경 속을 떠돌 수밖에. 옛사람 안견이라면 몽유‘설’원도를 그렸겠지. 한데 잊지는 마시라. 북극은 오로라 그 이상의 풍경을 선보인다는 걸. 짧은 낮 동안에도 극한의 환경이 만든 극적인 풍경이 이어진다. 이건 좀 세다. 추위는 각오했지만 이 정도로 혹한일 줄은 몰랐다. 어지간한 방한 장비로는 턱도 없다. 같은 핀란드라도 수도 헬싱키와 북쪽의 소도시 키틸라 사이엔 무려 20도 이상 기온 차이가 난다. 헬싱키는 북극권(아크틱 서클) 아래, 키틸라는 북극권에서도 북쪽으로 170㎞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 동안 한반도를 꽁꽁 얼렸던 ‘북극의 찬 공기’도 따지고 보면 키틸라 일대의 공기와 사촌 간이다. ●상상 이상의 추위… 키틸라에서 레비로 착륙 십여 분 전. 기내 스크린에 고도 등 각종 영상정보들이 표출된다. 외부기온 영하 19도. 보통은 하늘이 더 차다. 높을수록 기온이 떨어지니 당연하다. 하지만 이곳, 북극은 다르다. 땅이 더 차다. 착륙 당시 기온 영하 31.9도. 냉동실보다 낮다. 생전 처음 겪는 온도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는 게 다행이다. 이 기온에 바람까지 불었다면 체감온도는 상상 이하로 곤두박질쳤을 테고, 여정 내내 입에 육두문자를 달고 지냈을 테니 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세상 어디보다 냉혹한 곳이지만 한편으론 더없이 아름다운 땅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극지방 특유의 풍경들을 갈무리해 뒀다. 엄혹한 땅에서 멋진 풍경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선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 겸손이다. 추위를 이기려 들지 말고, 순응하며 지혜롭게 견뎌내야 한다. 이 추위는 이길 수 있는 추위가 아니다. 키틸라 공항에서 ‘겨울 레포츠의 천국’ 레비로 넘어간다. 이곳에서 습기는 찾기 힘들다. 정확히는 습기가 습기일 틈이 없다. 습기를 품은 온기는 곧바로 얼음 결정으로 변한다. 입에서 나온 김이 곧바로 얼음으로 변해 얼굴 주변에 맺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눈도 비슷하다. 얼음 알갱이 외에 습기란 없다. 우리나라에 내리는 눈이 습기 가득한 습설이라면, 핀란드에 내리는 눈은 마른 눈, 건설이다. 우리와 달리 눈 쌓인 도로에서 스노 타이어가 우수한 제동력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극한의 자연 환경은 극적인 풍경을 만든다. 대표적인 게 오로라다. 사실 이번 여정의 ‘팔할’도 오로라를 보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일정 내내 오로라 관측 가능지수는 ‘2’였다. 미국 알래스카 대학의 과학자들이 운영하는 사이트(www.gi.alaska.edu/AuroraForecast)에서 예상한 수치다. 이 사이트에선 매일 오로라 활동 지수를 0에서 9까지 10단계로 나눠 게시하는데, 지수가 3 이상이고 날이 맑다면 오로라와 마주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는 수치일 뿐이다. 오로라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기적처럼 당신을 찾을 수 있다. 오후 8~9시께 오로라가 나타났다면 그날은 가급적 새벽 3~4시까지 잠을 미뤄두길 권한다. 당신 생애에 가장 화려한 오로라와 마주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정령들의 춤·전쟁의 처녀신·여우불 ‘오로라’ 오로라의 사전적 의미는 ‘태양에서 방출된 전기 입자들이 지구 대기와 부딪쳐 빛을 내는 현상’이다. 북극권 일대에 사는 이들은 메마른 현실 언어보다 동화적인 방식으로 오로라를 표현한다. 북미의 인디언들은 ‘정령들의 춤’, 바이킹은 ‘전쟁의 처녀신’ 발키리의 방패에서 반사된 빛이라고 했다. 사미족(族)은 북극 여우가 불붙은 꼬리로 하늘에 뿌려대는 불꽃이라고 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레본툴레라고 부른다. 여우불이란 뜻이다. 도착 이튿날 오후 8시. 오로라를 ‘영접’하러 갈 시간이다. 장소는 레비 마을 옆 호숫가다. 현지 주민들이 오로라 감상 최적지로 꼽은 곳이다. 꽝꽝 언 호수 위에서 덜덜 떨며 기다리길 두어 시간쯤. 북쪽 하늘 위로 여러 갈래 빛이 쏟아져 내렸다. 이게 오로라일까. 일반적으로 오로라는 물결치듯 흘러간다. 한데 이 ‘오로라’는 특이했다. 빛이 바늘처럼 내리꽂혔다. 당시엔 오로라일 거라 철썩같이 믿었다. 오로라에 대한 갈망이 컸던 탓이다. 게다가 안내 책자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오로라 사진을 본 터라 바람은 쉽게 확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본 건 빛기둥(light poles)으로 추정된다. 대기 중의 얼음 알갱이들이 불빛을 반사해 생겼을 것으로 판단된다. 빛기둥도 진기한 자연현상이다. 오로라가 전자들이 빚어낸 빛의 예술이라면 빛기둥은 얼음 알갱이들이 연출한 ‘불빛쇼’라 부를 수 있겠다. ● 빛기둥·눈보라가 만든 피니시 라플란드 행운은 마지막 날 밤에 찾아왔다. 저녁 식사 도중 생일을 맞은 일행 한 명이 소원을 말하려던 찰나, 퇴근했던 현지 관광청 직원이 부러 식당을 찾아 오로라 출현 소식을 알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식당 문을 박차고 나선 순간, 마을 하늘 위로 풀빛의 오로라‘들’이 유령처럼 흘러다녔다. 곧이어 뒷덜미를 훑어 내려가는 전율. 초록빛 광선에 감전된 듯한 느낌이다. 서둘러 호숫가로 달렸다. 이 시간을 카메라에 가둬놓기 위해서다. 오로라는 이후 두 시간 남짓 너울거렸다. 책에서나 보았던 ‘어마무시한’ 오로라는 아니었지만, 감동은 충분했다. 레비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현상 몇 가지 덧붙이자. 피니시 라플란드는 눈보라가 반복적으로 쌓여 거대한 괴물의 형상을 한 나무를 일컫는 표현이다. 레비 스키장 언덕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마을 근처의 수목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굵기의 눈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해가 뜨고 질 때면 얼음 알갱이에 반사된 볕이 아래로 확산되는 현상도 볼 수 있다. 글 사진 키틸라(핀란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모자부터 신발까지 두툼하고 따뜻하게 추위에 견딜 장비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 모자부터 신발까지 무조건 ‘두툼’해야 한다. 외투의 경우 아웃도어 업체 블랙야크에서 제작한 발열다운 점퍼가 요긴하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온도와 습도를 외부 조건에 맞춰 제어할 수 있다. 발열섬유는 옷 안의 등쪽에 붙어 있다. 점퍼 탈착식 배터리에서 전원을 공급하면 신기하게도 금방 등쪽이 따뜻해진다. 몸 한쪽에 열을 내는 장치가 있다는 건 냉혹한 환경에서 대단한 위로가 된다. 점퍼 충전재도 거위털이라 한결 따뜻하다. 바지는 두툼하되, 몸에 달라붙는 것이 좋다. 내복과 양말, 장갑 등은 두 개씩 준비한다. 하나는 얇고 하나는 두꺼워야 탈착이 수월하다. 안면 가리개와 모자 등도 필수다. ‘핫팩’은 아쉬운 점이 많다. 신발과 장갑 등 외부에 노출된 부분에 부착한 발열팩은 제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밖에 나가기 전 미리 발열팩을 덥혀 두는 게 좋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오래 열기가 지속된다. 외투 주머니에 넣어 둔 발열팩은 열기가 제법 오래 간다. ●핀에어 인천~헬싱키 직항편 주 7회 운항 핀에어(www.finair.com/kr)가 인천~헬싱키 직항편을 주 7회 운용한다. 매일 오전 11시 15분에 출발해 오후 2시 15분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레비 등 북극권 지역으로 가려면 헬싱키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레비 인근 키틸라 공항까지 1시간 30분쯤 걸린다. 이발로 공항을 거쳐 가는 경우엔 2시간 남짓 소요될 수도 있다. 키틸라에서 레비는 20분 거리다. ●오로라 보려면 기동성 필수… 렌트카 추천 오로라를 보려면 기동성이 필요하다. 현지에서 차량을 렌트해야 오로라를 만날 가능성을 한층 높일 수 있다. 키틸라 공항에 유럽카 사무소가 있다. 아우디 A4가 하루 15만 7000원 정도다. 도로가 늘 눈에 덮여 있어서 차량자세제어장치 등의 기능이 탑재된 중형차 이상을 선택하는 게 좋다. 스노 타이어는 모든 차종에 장착돼 있다. 눈길 운전에도 별 무리가 없다. 한국에선 퍼시픽에어에이젠시(PAA)가 유럽카 판매를 대행하고 있다. 홈페이지(www.europcar.co.kr) 참조. (02)317-8776. 차량 연료는 가솔린의 경우 옥탄가에 따라 약 1.5~1.6유로, 경유는 1.3유로 정도다.
  • 애플, 감전 위험 리콜 “한국 대부분 제품 해당될 듯” 플러그 어댑터 어느 부분 확인?

    애플, 감전 위험 리콜 “한국 대부분 제품 해당될 듯” 플러그 어댑터 어느 부분 확인?

    애플, 감전 위험 리콜 “한국 대부분 제품 해당될 듯” 플러그 어댑터 어느 부분 확인?애플 감전 위험 리콜 2003년~2015년 한국·유럽 등에서 맥·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 등과 함께 교류(AC) 전원 플러그 어댑터에서 감전 위험이 발견돼 애플이 리콜에 나섰다.시기 및 지역으로 볼 때 한국에서 팔렸던 애플 제품 대부분이 리콜 대상일 가능성이 있어 사용자들의 확인이 요구된다. 애플은 28일(현지시간) 한국과 유럽 대륙,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브라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2구 AC 플러그 어댑터가 “극히 드문 경우 파손돼 만지면 감전의 위험이 생길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리콜 방침을 발표했다.이 플러그 어댑터는 애플이 판매한 ‘여행용 어댑터 키트’에도 포함돼 있었다. 애플은 리콜 대상 플러그에 문제가 생긴 사례를 전 세계에서 12건 파악했다고 밝혔다.리콜 대상은 전원 어댑터 본체가 아니라, 여기에 끼웠다가 뺐다가 할 수 있는 플러그 어댑터다. 오리 머리와 닮았다고 해서 ‘덕헤드’ 혹은 ‘벽면 어댑터’라고도 불리는 이 플러그 어댑터는 벽면 전원과 전원 어댑터 본체를 연결해 주는 구실을 한다.납작한 육각기둥(한국·유럽용)이나 정육면체(미국용)에 가까운 모양의 일체형 5W USB 전원 어댑터는 리콜 대상이 아니다.리콜 대상 플러그 어댑터는 2구 애플 전원 어댑터에 연결되는 부분인 내부 슬롯에 4∼5자의 글자가 표시돼 있거나 혹은 아무 글자도 표시돼 있지 않다.이와 달리, 문제가 없고 리콜 대상이 아닌 새 모델 플러그 어댑터는 슬롯에 ‘KOR’, ‘EUR’, ‘AUS’, ‘ARG’, ‘BRA’ 등 세 글자로 된 지역 코드가 표시돼 있다.미국과 영국, 중국, 일본 등 다른 지역용 플러그 어댑터는 리콜 대상이 아니다.리콜 대상 플러그 어댑터를 가진 고객은 맥과 아이패드, 아이폰, 아이팟의 일련번호를 확인한 후 현지 애플 공인 서비스 제공업체(locate.apple.com/kr/ko/)에서 새 플러그로 교환할 수 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애플, 감전 위험 리콜 “한국 대부분 제품 해당될 듯” 플러그 어댑터 어디가 문제?

    애플, 감전 위험 리콜 “한국 대부분 제품 해당될 듯” 플러그 어댑터 어디가 문제?

    애플, 감전 위험 리콜 “한국 대부분 제품 해당될 듯” 플러그 어댑터 어디가 문제?애플 감전 위험 리콜 2003년~2015년 한국·유럽 등에서 맥·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 등과 함께 교류(AC) 전원 플러그 어댑터에서 감전 위험이 발견돼 애플이 리콜에 나섰다.시기 및 지역으로 볼 때 한국에서 팔렸던 애플 제품 대부분이 리콜 대상일 가능성이 있어 사용자들의 확인이 요구된다. 애플은 28일(현지시간) 한국과 유럽 대륙,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브라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2구 AC 플러그 어댑터가 “극히 드문 경우 파손돼 만지면 감전의 위험이 생길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리콜 방침을 발표했다.이 플러그 어댑터는 애플이 판매한 ‘여행용 어댑터 키트’에도 포함돼 있었다. 애플은 리콜 대상 플러그에 문제가 생긴 사례를 전 세계에서 12건 파악했다고 밝혔다.리콜 대상은 전원 어댑터 본체가 아니라, 여기에 끼웠다가 뺐다가 할 수 있는 플러그 어댑터다. 오리 머리와 닮았다고 해서 ‘덕헤드’ 혹은 ‘벽면 어댑터’라고도 불리는 이 플러그 어댑터는 벽면 전원과 전원 어댑터 본체를 연결해 주는 구실을 한다.납작한 육각기둥(한국·유럽용)이나 정육면체(미국용)에 가까운 모양의 일체형 5W USB 전원 어댑터는 리콜 대상이 아니다.리콜 대상 플러그 어댑터는 2구 애플 전원 어댑터에 연결되는 부분인 내부 슬롯에 4∼5자의 글자가 표시돼 있거나 혹은 아무 글자도 표시돼 있지 않다.이와 달리, 문제가 없고 리콜 대상이 아닌 새 모델 플러그 어댑터는 슬롯에 ‘KOR’, ‘EUR’, ‘AUS’, ‘ARG’, ‘BRA’ 등 세 글자로 된 지역 코드가 표시돼 있다.미국과 영국, 중국, 일본 등 다른 지역용 플러그 어댑터는 리콜 대상이 아니다.리콜 대상 플러그 어댑터를 가진 고객은 맥과 아이패드, 아이폰, 아이팟의 일련번호를 확인한 후 현지 애플 공인 서비스 제공업체(locate.apple.com/kr/ko/)에서 새 플러그로 교환할 수 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실험영상] ‘감전 자전거’ 훔친 도둑들의 최후

    [실험영상] ‘감전 자전거’ 훔친 도둑들의 최후

    거리에 세워둔 자전거를 슬쩍하는 도둑들을 골려주는 내용의 실험 영상이 화제다. 독특한 실험 영상으로 유튜브에서 백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트윈즈티비’(TWINZ TV)의 ‘제레미’와 ‘제이슨 홀든’은 자전거 도둑들을 골려주고자 LA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자전거 핸들에 리모컨으로 조작되는 전기 충격기를 설치했다. 도둑들이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는 순간 이들을 감전시키기 위함이다. 실험이 시작되고, 청년들은 길가에 자전거를 세우고서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본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자전거에 접근하는 도둑이 포착된다. 도둑이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며 쾌재를 부르는 바로 그 순간, 청년들은 전기충격기를 작동시킨다. 이에 도둑은 그대로 고꾸라진다. 또 다른 도둑들도 자전거를 훔치던 중 전기가 올라 바닥에 나뒹굴거나 부상을 입는다. 자전거를 도둑맞은 피해자가 이토록 많은 걸까. 해당 영상은 누리꾼들의 큰 공감을 얻으며 공개된 지 일주일이 지난 현재 436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영상=TwinzTV/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제발 내려와!’ 전깃줄 위 감전사하는 야생원숭이

    ‘제발 내려와!’ 전깃줄 위 감전사하는 야생원숭이

    야생 동물들이 변고를 당하는 일은 비단 로드킬(Roadkill)뿐만이 아니다. 최근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게재된 영상에는 외국의 한 시골 전깃줄 위에서 감전사 당하는 원숭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전깃줄을 연신 흔들어대며 줄타기를 즐기는 원숭이. 잠시 뒤, 원숭이가 건너편 전깃줄로 점프해 이동한다. 그리고 연이어 바로 옆 전깃줄을 양팔로 잡는 순간, 불꽃이 일며 원숭이가 감전돼 추락한다. 원숭이를 구경 중이던 청년들이 원숭이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피지만 원숭이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다. 한편 이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원숭이가 불쌍하네요”, “인간의 문명이 야생동물에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하네요”, “야생동물을 보호합시다” 등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댓글을 달았다. 사진·영상= Happy Galeria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문재인 대표 지역구 사무실서 흉기 인질극…1시간 만에 종료

    60대 남성이 문재인 대표 지역구 사무실에서 흉기 인질극을 벌이다가 1시간여 만에 검거됐다. 30일 오전 9시 10분쯤 부산 사상구 감전동에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무실에 60대 남성이 흉기를 들고 난입했다. 자신을 유명 다큐 작가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이 남성은 문 대표의 특보 최모씨를 청테이프로 결박한 뒤 시너를 바닥에 뿌리는가 하면 소화기를 건물 밖으로 던지면서 1시간 넘게 난동을 피웠다. 이 남성은 경찰에게 “기자를 불러달라”고 요구했고, 문 대표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문현동 금괴사건 도굴법 문재인을 즉각 구속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인질극을 벌이던 이 남성은 오전 10시 16분쯤 스스로 건물 밖으로 나와 경찰에 검거됐다. 이 남성은 “이제 모든 게 끝났다. 경찰과 검찰에 가서 모든 것을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남성을 사상경찰서로 이송, 인질극을 벌인 동기 등을 수사할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기고] 농업 생명공학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

    [기고] 농업 생명공학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

    지난 11월 4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최한 원탁토론회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한 우리나라 농업 발전 방안’이 서울 강남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자 단체인 한림원이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창조농업 혁신의 근간은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지구온난화로 급격히 떨어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고소득 농업경영을 달성하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은 일부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불안감으로 기술 혁신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생명공학에 의한 신품종 개발을 국가 중점 연구개발 사업으로 채택해 이미 충분한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로써 다국적 종자 기업들의 독점적 시장 진입을 막고 자체 개발한 유전자변형(GM) 작물 재배로 농업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생명공학 연구개발을 위한 수준 높은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지난 30여년의 연구 성과로 다수의 생명공학 신품종을 개발해 놓고 있으나 막상 실용화는 하지 못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인체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레스베라트롤을 다량 함유한 쌀 신품종을 개발해 상용화하려고 한다는 발표를 하자 일부 극렬 유전자변형농산물(GMO) 반대운동 시민단체가 농친청 앞에서 반대 시위를 벌여 연구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GMO에 대한 연구와 안전성 평가기술은 크게 발전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28개국 1억 8000만㏊(세계 전체 경작지의 12%)에서 GM 신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와 콩의 90% 이상이 GM 작물이다. 미국 국민들은 이것을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고 지난 20년간 먹었다. 재래 품종과 전혀 차이가 없는 실질적 동등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인의 식생활에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생명공학 작물들을 못 먹을 것이라고 우기고 반대 시위를 하는 비과학적 행동 때문에 우리나라 농업 혁신이 발목을 잡히고 있다. 기후변화로 가뭄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고 해수면이 높아져 염분 피해를 받는 농경지가 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뭄저항성, 염분저항성 신품종을 이용해야 하는데 오히려 근거 없는 GM 반대운동을 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다. 이분들이 과학기술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신기술의 개발은 항상 이득과 위험을 동반한다. 과학 연구는 이득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다. 전기가 발명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전 사고로 사망했고, 그래서 프랑켄슈타인 소설도 나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전기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현대 문명사회를 만든 것이다. GMO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우려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의 사용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전기의 사용을 반대하는 것과 같다. 그보다는 계속적인 연구개발로 위험을 최소화해 인류가 당면한 식량 위기를 타개하는 도구로 만들어야 한다.
  • [제8회 교통문화발전대회] 서울신문사장 특별상

    [제8회 교통문화발전대회] 서울신문사장 특별상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시설공단이 현장 맞춤형 사고 예방 활동으로 안전사고를 크게 줄였다. 공단의 철도사업비는 최근 10년간 2배 이상 증가했고, 건설 현장 상시 근로자 수도 2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올해 안전사고는 2005년의 4분의1 수준으로 감소했다. 안전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비결은 사고 유형 분석과 맞춤형 사고 예방에서 찾을 수 있다. 공단이 10년간 사고 유형을 자체 분석한 결과 공사별로 추락·감전·끼임 등 사고 유형이 다르고 완공 직전에 집중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3개월 미만 근무한 신규 근로자가 재해자의 60%를 차지했고, 외국인 근로자는 내국인 근로자에 비해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유형 및 발생 시기별로 안전관리자, 감리단, 시공사, 하도급사, 신규 근로자 및 외국인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한 현장 맞춤형 사고 예방 특별 교육을 시행하고 취약 현장에 대한 예방점검을 강화했다. 안전사고에 취약한 신규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는 안전모 색상을 노란색으로 통일해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고 경력이 많은 근로자와 함께 작업을 맡기는 등 현장에서 특별 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안전교육 교재를 7개 언어로 제작하고 통역사를 동반한 안전교육도 시행하고 있다. 강영일 이사장은 “안전 관리 활동으로 재해율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며 “고품질 철도를 건설해 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안전 대한민국-서울신문고] ‘도로 위 폭탄’ 얽히고설킨 전깃줄 말끔히 제거

    [안전 대한민국-서울신문고] ‘도로 위 폭탄’ 얽히고설킨 전깃줄 말끔히 제거

    최근 강원 화천군 상서면 파포리 인근 도로에서는 한 경찰관이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던 중 전신주에서 떨어진 전깃줄에 감전돼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전깃줄을 땅에 묻는 지중화작업을 벌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얼기설기 공중에 매달려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처지기 십상이다. 때론 끊기는 바람에 길바닥에 나뒹굴기도 한다. 결국 화재의 원인이 되거나 비라도 내리면 ‘도로 위 폭탄’으로 바뀌어 지나가는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 9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이처럼 전깃줄 탓에 안전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제보가 안전신문고를 통해 심심찮게 접수되고 있다. 전남 목포시 상동 신흥로에 들어선 전신주의 송전선이 늘어져 얼른 조치해야 한다는 신고가 올라 왔다. 안전처에서 조사한 결과 한국전력 관할이었다. 한전은 해당 사업자에게 연락해 전선을 떨어지지 않도록 전신주에 단단하게 다시 설치하는 작업을 벌였다. 인천 서구 가재울로에서도 전선이 보행자의 머리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 안전을 위협한다는 신고를 받고 미래창조과학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공중선정비 민원 콜센터를 거쳐 깔끔하게 처리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시중 형광등 절반이 불량… 관련 사고 중 93%가 화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형광등 제품의 절반가량이 화재나 감전에 취약한 불량 제품인 것으로 나타나 주의가 요구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은 17일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69개 형광등제품(등기구 29개, 안정기 40개)에 대한 제품 안전성 조사를 벌인 결과 35개(등기구 16개, 안정기 19개) 제품에 화재·감전 등 우려가 있어 리콜(결함 회수)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리콜된 35개 제품은 주요 부품이 인증 당시와 다르게 제작됐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4년간 소비자위해 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767건의 형광등 관련 위해 사례에서 화재사고가 716건(93.4%)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낙하파손 47건(6.1%)과 램프 교체 도중의 감전사고 4건(0.5%) 등도 있었다. 화재사고 원인별로는 형광등기구 내부 부품 합선이 416건(58.1%)으로 최다였다. 과부하로 인한 과열 62건(8.7%), 접속 불량 43건(6.0%) 등도 문제였다. 화재 장소는 상가와 주택이 각각 44%, 33%로 엇비슷했고 실내 거실이 504건으로 70.4%를 차지했다. 실외간판 148건(20.7%), 주방 및 욕실 61건(8.5%) 등이었다. 국표원은 리콜 제품 정보를 제품안전정보센터(www.safetykorea.kr)에 공개하고 전국 대형 유통매장에서 즉시 판매를 차단하기로 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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