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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 보양식 때문에 뼈 무게 검색”…고유정 변호 맡은 이유?

    “남편 보양식 때문에 뼈 무게 검색”…고유정 변호 맡은 이유?

    피해자 측 “고인의 명예훼손…넘지 말아야 할 선 넘었다”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기소 된 피고인 고유정(36·구속기소)에 대한 첫 공식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에서 고유정의 변호를 맡은 변호인은 지난달 사임했던 인물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난여론에 사임계를 냈다 최근 다시 고유정의 변호인으로 복귀한 A씨는 과거 판사로 재직하면서 집시법에 대한 위헌법률신청을 제청해 ‘촛불 판사’로 불린 인물이다. 그는 CBS 노컷뉴스에 다시 고유정의 변호를 맡은 이유와 관련 “사건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니 고유정의 우발적 범행 주장을 받쳐주는 객관적 증거를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며 “범행 동기와 관련해 피고인이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재판에 복귀하기로 어렵게 결정했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12일 제주지법 제2형사부(부장 정봉기)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전 남편 강씨의 강한 성욕을 강조하며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피해자 측에 돌렸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설거지를 하는 평화로운 전 아내의 뒷모습에서 옛날 추억을 떠올렸고, 자신의 무리한 성적 요구를 피고인이 거부하지 않았던 과거를 기대했던 것이 비극을 낳게된 단초”라고 주장했다. 졸피뎀 처방 내역과 ‘뼈의 중량’ 등 범행 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내용도 “클럽 버닝썬 사태 당시 연예기사를 보던 중 호기심에 찾아봤으며, 뼈의 무게는 현 남편 보양식으로 감자탕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꼬리곰탕, 뼈 분리수거, 뼈 강도 등으로 연관검색 상 자연스럽게 검색이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졸피뎀이 피해자 혈흔에서 나온게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객관적 조사에 의해 이불과 담요 등에서 명확하게 피해자 혈흔이 나왔고 졸피뎀이 검출됐다”며 “이 사건의 단초를 피해자의 행동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피고인의 변호인은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방적인 진술을 다수 함으로써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며 “고인을 아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이러한 주장은 인간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유정 “의붓아들 살인자로 몰았다” 현 남편 고소 고유정의 다음 재판은 9월 2일 오후 2시 열린다. 고씨는 지난 5월 25일 오후 8시 10분부터 9시 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혐의는 살인과 사체손괴·은닉이다. 한편 고유정은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과 관련해 현 남편 A(37)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씨가 현 남편이 자신을 의붓아들 살인자로 몰았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B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 청주에 있는 고씨 부부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군이 사망할 당시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 경찰은 B군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고씨와 A씨를 살인과 과실치사 혐의로 각각 입건해 수사를 벌여왔다. 경찰 관계자는 “고씨가 현 남편이 자신을 의붓아들 살인자로 몰았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시론] 혼돈의 동북아, 환경공동체 구축 나서야/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시론] 혼돈의 동북아, 환경공동체 구축 나서야/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최근 해외 뉴스 중심에 동북아 관련 뉴스가 매우 많아졌다. 북한 김정은의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와 이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근과 채찍’ 전략과 함께 한일 등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등 ‘청구서’가 커지고 있다. 중국과 미국 간 무역전쟁은 미중 관계를 넘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위협할 만큼 경제 불안을 증가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양국 간 경제 문제를 넘어 서울 도심의 촛불집회를 불러오고 있다. 부품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지만 핵심 소재의 대일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에 당장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홍콩 시위 사태는 중국을 넘어 서울 광화문에도 지지 모임이 열리는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다. 복잡한 세상이라지만 동북아시아는 그야말로 어디 하나 편안한 곳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던 세계화, 하나의 지구촌, 협력하는 동북아는 어디로 간 것인지 모르겠다. 이렇듯 불안한 동북아가 된 배경은 지역 공동 어젠다를 잃어버린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주변 국가들은 서로 협력을 통한 공동이익을 달성해야 하는데 그 대상이 없어지고 국가들은 자국의 국익 증대에만 혈안이 돼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으로 중화사상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듯하다. 약화되는 국제사회 영향력을 만회하려고 하는 듯 일본 아베 정부는 날이 갈수록 한국을 비롯해 중국, 북한 등 주변국과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로 동북아를 넘어 세계 평화에 대한 도전 메시지를 통해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콩 하나도 나눠 먹는 것이 인간 세상인데 동북아 국가들은 국경을 닫고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있다. 공동의 어젠다가 없는 자국 중심의 국가 간 경쟁은 자칫 세계 분쟁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우려마저 든다. 1970년대 프랑스는 심각한 지중해 지역의 오염 문제에 대한 공동대응을 계기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정치적으로 복잡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앞장섰다. 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관련 과학 연구를 촉진하고, 정치를 배제한 공동의 환경문제 대응을 위한 회의 장소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유엔이 지중해 해양환경 협력을 본격적으로 확대해 역사적,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연안 국가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냈다. 하나의 해양환경이니 국가들이 하나로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가 적중한 것이다. 지금은 지중해 지역의 오랜 해양환경 협력을 바탕으로 지속가능 발전이 가능한 협력 사업들도 국가들 간 진행되고 있다. 동북아에서도 기후변화 환경이 지역 공동체 형성을 주도할 수 있는 어젠다가 될 수 있다. 요즈음 우리를 많이 괴롭히는 미세먼지는 중국과의 공동 노력이 없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오염의 주범인 디젤자동차를 몰아낼 수 있는 전기자동차 보급은 모든 국가들의 관심사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대신 태양광, 풍력 등 다양한 저탄소 발전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도 이미 열심히 추진하고 있다. 4차산업 기술을 공동으로 활용하면 미세먼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미세먼지 지역 조기경보 체계 구축은 황사 대응의 경우에서 보듯이 가장 쉽게 구축이 가능할 수 있다. 해양환경 분야에서는 다자협력이 힘들다는 이 지역에서도 이미 1990년부터 유엔 등 국제기구도 참여하는 다양한 소규모 협력체들이 존재한다. 2004년부터 추진돼 지역 국제기구 설립을 표방하고 있는 황해광역생태계보호사업, 한중일은 물론 러시아도 참여하는 북서태평양보전실천계획이 그 예다. 이 외에도 북한도 참여하는 동북아환경협력계획, 장관급 협의체인 한중일 3국 환경장관회의 등 이미 많은 다자 환경협력체들이 존재한다. 다만 이들은 모두 소규모로 상호 간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지중해 지역에서 서로의 정치적 반목을 넘어 하나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협력체를 통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협력을 이끌었던 것을 교훈 삼아 동북아에서는 우리가 나서 기존의 소규모 협력체들을 통합하고 새로운 환경 이슈들을 추가해 동북아 기후변화 환경 공동체 형성을 추진하면 어떨까. 우리 모두의 건강을 지키고 하나뿐인 생태계를 보호하는 기후변화 환경은 동북아를 다시 한번 협력으로 묶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공동 어젠다일 것이다.
  • 고유정 변호인 “전 남편 성욕이 비극의 단초”…유족 측 “선 넘었다”

    고유정 변호인 “전 남편 성욕이 비극의 단초”…유족 측 “선 넘었다”

    고유정 측 “‘뼈 무게’ 검색어는 연관검색”검찰 “네이버·구글에 직접 쳐서 검색한 것”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훼손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36)이 첫 정식 공판에서 강씨가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범행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특히 강씨가 변태 성욕자라고 주장해 유족과 방청객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12일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정봉기) 심리로 열린 첫 정식 공판에서 고유정이 새로 선임한 변호인은 “수사기관에 의해 조작된 극심한 오해를 풀기 위해 계획적 살인이 아님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변호인은 “우선 피고인은 한 아이 엄마로서, 아버지의 사망으로 아이가 앞으로 아버지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말할 수 없이 미안하고 슬픈 마음이며, 피해자 부모님과 졸지에 형을 잃은 동생에게도 말할 수 없이 깊은 사죄의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강씨의 강한 성욕을 강조하며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피해자 측에 돌렸다. 고유정 측은 아들과의 면접 교섭이 이뤄지는 동안 강씨가 고유정에게 스킨십을 유도하기도 했고, 펜션에 들어간 뒤에도 수박을 먹고 싶다는 아들이 방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싱크대에 있던 고유정에게 다가가 갑자기 몸을 만지는 등 성폭행을 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설거지를 하는 평화로운 전 아내의 뒷모습에서 옛날 추억을 떠올렸고, 자신의 무리한 성적 요구를 피고인이 거부하지 않았던 과거를 기대했던 것이 비극을 낳게 된 단초”라고 말했다. 이러한 진술에 피해자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피고인의 변호인은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방적 진술을 다수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서 터무니 없는 진술을 한 부분에 대해 응당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마치 고인을 아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이러한 주장은 인간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청석에서도 고유정 측의 이러한 주장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추잡스럽다”, “너무하는 것 아니냐” 등의 야유가 쏟아졌다. 검찰은 “사건 비극의 단초가 피해자의 행동이라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하고,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고유정 측은 계획범죄가 아닌 우발적 범행임을 강조하는 데 힘을 쏟았다. 고유정 측 변호인은 고유정이 CCTV에 얼굴을 노출시키면서 한 모든 행동이 경찰에 체포될 수밖에 없는 행동으로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또 카레에 졸피뎀을 넣었다는 검찰의 주장도 반박했다. 피해자 강씨가 졸피뎀을 먹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수사당국은 시신을 찾지 못해 피해자의 몸에서 졸피뎀을 직접 검출하지 못했다. 이불 등에 묻은 혈흔에서 졸피뎀 반응이 나왔다는 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이 혈흔이 고유정의 혈흔이라고 주장했다. 고유정이 강씨와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묻은 고유정의 혈흔이지 강씨의 혈흔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졸피뎀 처방 내역과 ‘뼈의 중량’ 등 범행 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내용에 대해서는 “클럽 버닝썬 사건 때 연예 기사를 보던 중 호기심에 찾아봤으며, ‘뼈의 무게’는 현 남편 보양식으로 감자탕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꼬리곰탕, 뼈 분리수거, 뼈 강도 등으로 연관검색어로 자연스럽게 검색이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검찰은 “졸피뎀이 피해자 혈흔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객관적 조사에 의해 이불과 담요 등에서 명확하게 피해자 혈흔이 나왔고 졸피뎀이 검출됐다”면서 변호인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피고인이 연관검색어로 우연히 계획적 범행 추정 관련 단어를 검색하게 됐다는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서도 “네이버 통합 검색과 구글 검색을 통해 자신이 직접 쳐서 검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유정의 다음 재판은 9월 2일 오후 2시 열린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조선인 수감자 끌고 간 日, 패망하자 1200여명 학살·매장 추정

    조선인 수감자 끌고 간 日, 패망하자 1200여명 학살·매장 추정

    日, 1939년 하이난섬 점령 뒤 군사기지화 식민통치 저항한 수형자 등 2000명 동원 혹독한 노역 못 이겨 해방까지 절반 사망 살아남은 조선인도 학대·굶주림에 시달려 항복한 日, 무기 뺏기자 칼·곡괭이로 학살 1995년에야 알려져… 中부지 보전 불투명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공황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1차 세계대전(1914~1918)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 일본이 그간 협력하던 자세를 버리고 각자도생에 나섰다. 다른 제국주의 국가보다 내수시장 규모가 작았던 일본은 경제 위기를 탈출하고자 중국 만주(1931)와 상하이(1932)를 차례로 침공했다. 이 지역 이권을 선점한 미국과 영국이 철군을 요구했지만 되레 일본은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을 벌여 전선을 넓혔다. 이 과정에서 난징 대학살(1937)과 하이난섬 대학살(1939~1945) 등 민간인 학살도 자행했다. 하이난섬 대학살은 우리에게도 ‘천인갱’(千人坑·1000명이 묻힌 구덩이) 사건의 아픔을 남겼다.●조선인 1000명 묻힌 구덩이 ‘천인갱’의 아픔 11일 학계에 따르면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전선이 고착화돼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중국군은 영국령 버마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국가들로부터 다양한 군수물자를 받았다. 영국·프랑스 등과 불편한 관계였던 일본은 중국군의 해외 보급로를 차단하고 동남아시아 지역에 군사 거점을 확보하고자 중국 최남단 하이난섬을 접수하기로 마음먹었다. 1939년 일본군이 하이난섬 기습 상륙작전에 나서 불과 일주일 만에 섬을 점령했다. 섬에 있던 중국 공산당 게릴라가 저항하자 본격적인 토벌작전에 나섰다. 이 섬 주민 수십만 명이 일제에 희생됐다는 추정이 나온다. 일본군은 하이난섬을 군사기지로 만들고자 원주민과 전쟁포로, 중국 본토인을 동원했다. 특히 1942년 미국과 치른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해 전세가 기울자 일본 오키나와와 조선의 제주도, 중국 하이난섬 등에 전시요새를 구축해 버티기에 들어갔다. 진지를 지으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지만 이미 상당수가 징병·징용으로 차출돼 새로 투입할 인력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자 한반도 전역에 수감된 죄수들 가운데 노역을 감당할 만한 이들을 ‘남방파견보국대’(南方派遣報國隊·조선보국대)라는 이름으로 끌어 들였다. 일제는 “6개월만 참여해도 잔여 형기를 모두 면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때 불려간 이들 상당수가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저항한 이른바 불령선인(不逞鮮人·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저항한 조선인을 일제가 부정적으로 이르던 말)이었다. 이렇게 1943년부터 조선 전체 수형자의 10% 정도인 2000여명이 노무자로 보내졌다. 생존자와 현지 주민들은 “일본군이 강제노동에 지쳐 도망가거나 큰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조선인을 가차 없이 죽였다”고 전한다. 1945년 해방 때까지 조선보국대의 절반 남짓한 1000여명이 노역을 못 이기고 사망했다. 징용 조선인들이 얼마나 혹독한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살아남은 하이난 조선인들은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았다. 하지만 이들도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군의 학대와 굶주림, 전염병으로 숨을 거뒀다. 일본군이 하이난섬을 떠나기에 앞서 조선인을 대거 학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당시 일본군은 항복과 동시에 무기 사용이 금지됐다. 총을 사용하면 국제법상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칼과 곡괭이, 몽둥이로 도륙한 뒤 시신을 집단 매장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천인갱으로 불렀다. 본국 귀환 기록이 없는 강제 징용자 1200여명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李총리, 3월 방문때 조화…“하루빨리 고국으로” 우리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1995년 중국 하이난성 정부가 일제 피해자 구술집을 발간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실체가 드러났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천인갱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개발 열풍이 불어오면서 이들의 시선도 달라졌다고 한다. 주변에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역 등이 생겨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앞으로 천인갱 부지가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앞서 이낙연 총리는 지난 3월 하이난섬에서 열린 보아오포럼 참석 때 정운현 총리비서실장을 통해 천인갱에 본인 명의의 조화를 보냈다. 추모관을 둘러본 정 실장은 “나라 잃은 백성의 참혹한 현장을 보고서 국가의 의무를 생각한다. 하루빨리 고국으로 모실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방명록을 남겼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정우성 나이 몇 살이길래? 모두가 놀란 40대의 복근

    정우성 나이 몇 살이길래? 모두가 놀란 40대의 복근

    정우성이 의외의 장면에서 복근을 드러냈다. 9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산촌편’에서는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 강원도 정선에서 자급자족 라이프를 즐기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첫 번째 손님으로 배우 정우성이 등장해 시청자는 물론 출연진들도 놀라게 했다. 정우성은 등장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영석 PD를 만나 인사를 나눈 정우성은 마이크를 착용하기 위해 웃옷을 올렸다. 이때 드러난 복근에 제작진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47살의 나이를 믿기 힘들 정도의 탄탄한 몸매가 눈길을 끈다. 세끼 하우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정우성은 “어제 다들 뭐 했냐”고 물었고 나 PD는 “집 구경하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와인 먹고 잤다”고 답했다. 정우성은 “와인까지 마셨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염정아와 90년대부터 같이 활동했다”고 한 정우성은 “옛날 사람이 한 명 더 와 큰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음식은 어떠냐”는 나 PD의 질문에 “음식은 다 잘 먹는다. 설거지 잘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나 PD는 “두 분이 같이 하셔야죠”라며 이정재를 언급했고 정우성은 “나 PD님, 훅 들어오시네요”라며 철벽을 쳐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나 PD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도회적인 두 분이 같이 해야한다”며 “10년째 정우성 이정재의 시골살이를 기획하고 있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세끼하우스’에 입성한 정우성은 감자를 캐던 윤세아와 박소담을 만났다. 이들에게 정우성은 “염정아는 어디있냐”고 물었고 윤세아는 “설거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정우성은 “설거지하러 가야겠다”며 염정아에게로 향했다. 윤세아는 그런 정우성을 보며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너무 잘생겼다”고 감탄했다. 염정아 혼자 있는 집에 도착한 정우성은 옛날 노래를 틀어놓고 박스 앞에 숨어 염정아를 지켜봤다. 염정아는 노랫소리에 밖으로 나와 “누가 틀었냐. 내가 틀었냐”며 의아해 했다. 이후 정우성을 발견하곤 웃으며 “감자 캐러 왔구나”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공개된 예고편에선 철저한 정리정돈과 잔소리꾼으로 돌변하는 의외의 모습이 공개돼 다음 방송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방송 도중 갑자기 복근 자랑한 정우성

    방송 도중 갑자기 복근 자랑한 정우성

    정우성이 의외의 장면에서 복근을 드러냈다. 9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산촌편’에서는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 강원도 정선에서 자급자족 라이프를 즐기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첫 번째 손님으로 배우 정우성이 등장해 시청자는 물론 출연진들도 놀라게 했다. 정우성은 등장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영석 PD를 만나 인사를 나눈 정우성은 마이크를 착용하기 위해 웃옷을 올렸다. 이때 드러난 탄탄한 복근에 제작진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끼 하우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정우성은 “어제 다들 뭐 했냐”고 물었고 나 PD는 “집 구경하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와인 먹고 잤다”고 답했다. 정우성은 “와인까지 마셨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염정아와 90년대부터 같이 활동했다”고 한 정우성은 “옛날 사람이 한 명 더 와 큰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음식은 어떠냐”는 나 PD의 질문에 “음식은 다 잘 먹는다. 설거지 잘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나 PD는 “두 분이 같이 하셔야죠”라며 이정재를 언급했고 정우성은 “나 PD님, 훅 들어오시네요”라며 철벽을 쳐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나 PD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도회적인 두 분이 같이 해야한다”며 “10년째 정우성 이정재의 시골살이를 기획하고 있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세끼하우스’에 입성한 정우성은 감자를 캐던 윤세아와 박소담을 만났다. 이들에게 정우성은 “염정아는 어디있냐”고 물었고 윤세아는 “설거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정우성은 “설거지하러 가야겠다”며 염정아에게로 향했다. 윤세아는 그런 정우성을 보며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너무 잘생겼다”고 감탄했다. 염정아 혼자 있는 집에 도착한 정우성은 옛날 노래를 틀어놓고 박스 앞에 숨어 염정아를 지켜봤다. 염정아는 노랫소리에 밖으로 나와 “누가 틀었냐. 내가 틀었냐”며 의아해 했다. 이후 정우성을 발견하곤 웃으며 “감자 캐러 왔구나”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공개된 예고편에선 철저한 정리정돈과 잔소리꾼으로 돌변하는 의외의 모습이 공개돼 다음 방송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특파원 생생리포트]美 수감자 노역의 하루 일당은?...‘현대판 노예’ 논란

    [특파원 생생리포트]美 수감자 노역의 하루 일당은?...‘현대판 노예’ 논란

    미국 교도소 수감자의 인권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교도소 내 생활환경 등 문제뿐만 아니라 수감자의 노역 일당이 2달러(약 2400원) 내외라고 알려지면서 ‘현대판 노예’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 교도소 노역의 최저 일당 10만원에 비해도 한참 못 미친다. 7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의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수감자 노역에 애리조나와 펜실베이니아는 각각 시간당 15센트, 19센트를 지급하고 있으며 텍사스는 아예 일당을 주지 않고 있다. 또 지난해 캘리포니아 산불 현장에 동원된 수감자들도 일당 1.45달러를 받았다”면서 “이는 미국의 최저 임금인 시간당 7.25달러에 비해 터무니 없는 금액”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일당을 받고 미국의 수감자들이 노역에 나서는 이유는 ‘교화’라는 명목으로 하루 일과 중 생산 작업이 포함되면서 수감자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의무’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수감자들이 온종일 교도소에서 빈둥거리는 것보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권단체들은 정부와 기업이 이런 수감자들의 약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2014년 기준으로 220만명 이상의 수감자들이 월마트와 홀푸드마켓, AT&T 등의 일부 제품, 의류와 가구 등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수감자의 생산 인력은 미 전체 제조업 생산 인력의 4%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게 인권단체의 주장이다. 바꿔말하면 미 일부 기업들은 최저 임금 이하의 엄청나게 싼 수감자들의 노동력으로 자신의 잇속을 챙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 정부도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만든 의자와 책상 등 가구를 산하 기관에 반강제로 판매한다. 이렇게 생긴 이윤으로 교도소 유지 비용 등을 충당하고 있다. 결국 수감자들에게 돌아가야 몫이 기업이나 정부로 흘러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또 수감자들은 노동자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수감자가 일하다가 죽거나 다쳐도 대부분 주에서는 책임지지 않고 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도 승소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로드아일랜드의 인권단체인 ‘우리들의 저항을 조직하는 동맹’은 “우리는 잘못을 했다고 해서 인권을 무시하거나 박탈하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면서 “교도소 수감자의 최저 임금 지급과 생활환경 개선 등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입맛 없을땐 냉면보다 싼 밀면 드이소

    입맛 없을땐 냉면보다 싼 밀면 드이소

    “서울에 냉면이 있다면 부산에는 밀면이 있다!” 장마가 물러가고 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가만히 있어도 얼굴과 등에 땀이 줄줄 흐른다. 사뭇 입맛도 잃어버린다. 부산에서는 이럴 때 밀면 한 그릇으로 더위를 싹 날려버린다. 살얼음 둥둥 뜬 벌건 국물에 담긴 면을 젓가락으로 후루룩 한입 빨아당기면 입안에 만족감이 퍼진다. 여름이면 거의 매일 점심 때 밀면을 먹는다는 김종규(46)씨는 “부산을 대표하는 여름철 음식인 밀면은 잃어버린 입맛을 찾는 데 최적화된 메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6·25전쟁 때 실향민들이 메밀 구하기 어려워 ‘밀가루 ·전분’ 섞어 만들어 밀면은 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의 대표 피란 음식이자 향토 음식이다.밀면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6·25전쟁 때 부산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실향민들이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을 구하기 어려워 미군 원조품인 밀가루에 감자가루(전분)를 섞어 면발을 만들어 ‘밀면’이라는 이름으로 냉면 대신 먹었다고 한다. 원래 ‘밀 냉면’, ‘경상도 냉면’ 등으로 불렸으나 사람들이 ‘밀면’으로 줄여 부르게 됐다는 말도 있다. 백과사전에는 밀가루와 전분을 넣고 반죽해 만든 국수, 6·25전쟁 때 만들어진 음식으로 부산의 대표적 향토 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밀면의 원조는 1952년 개업한 남구 우암동 ‘내호 냉면’이라는 게 정설이다. 창업주는 함경도 출신의 실향민이다. 1960년대부터 진구 가야동에서 영업해 온 ‘가야 밀면’은 지명도가 더 높다. 대부분 밀면 집 상호에 ‘가야’라는 두 글자가 빠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이원기 국제밀면 사장은 “밀면은 원래 피란민들이 고향에서 즐겨 먹던 냉면을 밀가루를 대신 사용해 만든 게 시초”라며 “이후 부산의 대표적 향토음식이 됐다”고 설명했다.●냉면의 아류?… 쫄깃한 면발에 육수는 냉면과 같은 듯 다른 맛 부산사람 대부분은 냉면 대신 밀면을 먹는다. 심심한 맛의 평양냉면과 달리 자극적인 밀면의 맛이 부산사람 입맛에 더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부산에는 냉면집이 많지 않다. 냉면보다 비교적 경제적이면서 맛도 뒤지지 않는 밀면이 대체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대중 음식으로 불린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당시 냉면은 밀면보다 배 이상 비싼 고급음식이어서 서민들은 냉면 대신 값싼 밀면을 즐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밀면을 냉면 아류라고 한 단계 아래 음식으로 취급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지만 쫄깃한 면발과 육수는 냉면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맛을 낸다. 마치 담백한 맑은탕과 자극적인 매운탕의 차이랄까?” 밀면은 1990년대 후반부터 대표적인 부산 음식으로 인정받았다. 2000년대 들어 인근 경남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했다. 2009년엔 부산시의 대표 향토 음식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같은 여세를 몰아 부산의 한 밀면 집이 서울에 진출했으나 냉면의 아성에 밀려 철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강렬한 맛을 즐기는 부산사람과 달리 담백하고 싱거운 음식을 즐기는 서울 등 타지역 사람들의 입맛을 잡는 데 실패했다는 평이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킴 카다시안·르브론 제임스 등이 사면 청했던 신토이아 브라운 풀려나

    킴 카다시안·르브론 제임스 등이 사면 청했던 신토이아 브라운 풀려나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신토이아 브라운(31·미국)이 7일(현지시간)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다. 킴 카다시안 웨스트, 리한나, 스눕독, 르브론 제임스 등 유명인들이 가장 불공정한 재판이라며 사면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결과였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브라운은 16세 매춘부였다. 친어머니가 자신을 가졌을 때 알코올 중독 상태였다. 2004년 양부모 집을 떠나 호텔에서 별명도 흉악한 남성과 지내게 됐는데 이 남자는 윤락을 강요하며 성폭행을 일삼았다. 테네시주 내시빌의 부동산 중개인 자니 앨런(당시 43)이 드라이브인 레스토랑 안에서 자신을 범하려 하자 그의 총을 빼앗아 살해했다. 미국 대법원은 청소년에게 보호관찰 없는 종신형을 선고한 것은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테네시주는 하급심에 적어도 51년을 복역한 뒤에는 보호관찰을 신청할 수 있으므로 연방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해 받아들여졌다. 그 뒤 킴 카다시안 등이 성매매 희생자라며 석방하라는 목소리를 높여준 덕에 지난 1월 빌 해슬램 주지사의 사면 허용을 받은 뒤 그동안 직업 교육 등 사회적응 훈련을 받고 이날 아침 일찍 테네시 여자교도소 문을 나섰다. 해슬램 지사는 10대 시절 저지른 잘못에 견줘 지나친 처벌이라며 수감자로 지내면서 대학교육을 마친 브라운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을 사면 이유로 밝혔다. 제임스도 트위터에 “신토이아 브라운, 웰컴 홈!!”이라고 적었다. 그녀는 10년의 보호 관찰을 받는다. 어떤 주법이나 연방법도 어겨선 안된다. 직업을 구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카운셀링도 받아야 한다. 브라운은 지난 5일 성명을 내 성적 유린 등으로 착취받는 여성이나 소녀들을 돕고 싶다고 밝힌 뒤 해슬램 지사 부부가 날 믿는 데 한 표를 던진 것에 감사하며 신의 도움으로 이걸 해낸 나나 지지자들 모두 자랑스러워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브라운은 사면이 허용된 뒤에 석방 이후의 인생 계획을 짰는데 직업 전환 센터를 다니며 립스콤 대학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연방 교정당국은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또 10월 중순 책을 내고, 그녀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공개될 예정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딸로 위장해 탈옥 시도한 브라질 갱 두목, 감옥서 사망

    딸로 위장해 탈옥 시도한 브라질 갱 두목, 감옥서 사망

    면회 온 10대 딸처럼 위장해 교도소를 걸어 나가려다 들통난 브라질 갱단 두목이 감방에서 사망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주 교정당국은 6일(현지시간) 오전 자신의 감방 안에서 숨져있는 클라우비누 다 시우바(42)를 발견했다고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당국은 그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딸로 ‘완벽’ 변장한 브라질 갱단 두목, 탈옥에 실패한 이유…“너무 떨어서” ‘꼬마’라는 별명으로 통하던 시우바는 리우데자네이루 내 마약 유통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브라질 내 최악의 갱단 중 하나로 손꼽히던 범죄조직을 이끌다 구속돼 73년에 달하는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이었다.그는 지난 3일 자신을 면회하러 온 19살 딸을 교도소에 남게 하고, 자신은 딸처럼 꾸며 탈옥한다는 황당한 계획을 세웠다. 가발과 실리콘 마스크, 여성 속옷까지 써서 감쪽같이 변장해 거의 성공할 것 같았던 그의 계획은 불안해 보이는 태도 탓에 정문을 통과하기 직전 들통났다. 그는 탈옥에 실패한 뒤 삼엄한 보안 시설을 갖춘 독방에 보내졌다. 시우바의 죽음은 수감자 과다 수용과 열악한 시설, 범죄조직 간 세력다툼 등으로 악명 높은 브라질 교도소에서 일주일여 만에 다시 발생한 ‘굴욕적인’ 사건이라고 가디언은 평가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2seoul.co.kr
  • 딸로 변장해 탈옥 시도했던 브라질 갱 두목, 숨진 채 발견

    딸로 변장해 탈옥 시도했던 브라질 갱 두목, 숨진 채 발견

    면회 온 자신의 10대 딸로 위장해 탈옥을 시도했던 브라질의 마약 두목이 교도소에서 의식이 잃은 채 발견된 후 결국 숨졌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가장 강력한 갱단 중 하나를 이끌던 클라우비누 다 실바(42)는 최근 자신을 면회 온 19세 딸을 대신 남겨놓고 딸처럼 변장해 교도소를 나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그는 실리콘 마스크와 길고 검은 가발,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지웠다. 그러나 불안해 보이는 태도와 눈빛이 들통나 결국 발각됐고 그는 다시 교도소로 끌려갔다. 리오타임즈 등 현지 언론의 6일 보도에 따르면 다 실바는 탈옥에 실패한 뒤 보안 수준이 더 높은 교도소로 이송됐고 징계를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탈옥 시도가 있은 지 불과 3일 후, 자신이 수감 돼 있던 감방에서 의식 불명의 상태로 발견됐고 교도소 측이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현지 교도소는 성명서에서 “수감자가 침대 시트를 이용해 스스로 목을 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번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 중이라고 밝힌 가운데, 브라질에서는 교도소의 보안 수준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CNN의 6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에는 브라질 북부의 한 교도소의 수감자들 사이에 대규모 패싸움이 벌어져 5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폭동은 브라질에서 가장 수감자 밀집도가 높고 예산이 적은 교도소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며, 2017년에는 브라질 서부의 교도소 4곳에서 유사한 폭동이 벌어져 수감자 55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격납고 인근에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터널같이 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3~5m 두께의 잡석들을 쌓아 인공 둔덕을 만들었다. 풀을 심은 둔덕은 얼핏 동산같이 보이지만 벙커 내부는 수십 명이 너끈히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환기용 굴뚝과 배수로, 별도의 설비관로까지 설치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통신시설로 쓰인 듯하다. 활주로 반대 송악산 쪽으로 3개의 작은 오름이 연달아 있는데 이를 통틀어 셋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 정상부에는 고사포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땅을 파고 지름 6m의 원통형 콘크리트 진지를 구축했다. 원통의 중심부에 고사포를 설치해 360도 회전하며 적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원통부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숲속에 뚫린 원형탈모 상흔과 같다. 모두 5기를 배치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2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인근 송악산의 원래 이름은 ‘절울이오름’으로 ‘물결이 우는 소리를 듣는 오름’이란 뜻이었다. 바다 위에 솟은 대단한 절경이지만 60여기의 일제 동굴진지가 여기저기 뚫린 상처 입은 오름이다. 화순포구 쪽에서 보면 인공적으로 뚫은 해안동굴들이 절경을 훼손하고 있다. 총 15기의 해안동굴에는 1인용 모터보트들을 주둔시켰는데, 선두에 250㎏의 폭약을 싣고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함이었다. 합판으로 선체를 만들고 자동차 엔진을 달았다니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하는 1회용 자살함정이었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린 가이텐 특공대가 있었다. 모두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무모한 전술이며 최후 발악의 광기였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 봐야 할 이유 전쟁은 건축을 파괴하지만, 그래도 군사용 시설은 건설된다. 1940년대 제주에 남겨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나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해안동굴 진지들은 여러 감상을 불러온다. ‘이 땅과 민족을 희생시켜 일본의 영토를 지킨다?’ 일제에 분노가 치밀지만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 역사적 수치심이 앞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이 수치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왜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세워졌으며 어쩌다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됐는가.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을 일컬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제주의 일제군사시설은 거의 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인장력(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과 압축력(누르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를 합쳐 천하무적이 된 건축 재료다. 20세기 초 발명한 이 재료는 강하기는 강철 같지만 밀가루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 알뜨르의 격납고는 공중폭격에 가장 강한 반원통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벙커는 수m 두께의 토압을 견디고 내부 통행이 가능하도록 아치형 터널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며,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축은 죄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는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식민지근대화론도 그렇다. 일제는 이 땅에 항만, 철도, 공장 등 근대적 시설을 지었다. 해방 후 근대화는 그 혜택의 연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누가 차지했는지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는 허구이며 식민지수탈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전에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350㎞ 길이의 초대형 철근콘크리트 지하 진지를 완성했다. 참호전으로 점철했던 1차대전의 교훈에서 얻은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개전과 동시에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운 기동력으로 마지노선을 돌파, 이를 무력화했다. 마지노선 건설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일제의 전략은 무모하고 시설은 어리석다. 전원 옥쇄란 사무라이 싸움에서나 있을 법한 전략이다. 총길이 15㎞에 달하는 제주 내 동굴 진지들도 자학적이다. 내부에 아무 지원시설 없어 단 며칠도 버티기 어려운 동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찌 대항하나. 가미카제나 가이텐 특공대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높을까. 통계에 따르면 특공대 1명의 자폭으로 미군 1명을 사살했을 정도라 한다. 전쟁의 실체를 모르는 시대착오적 전술은 얼마나 허망한가. 해방 74년, 일제가 남긴 알뜨르의 군사건축이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격납고 인근에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터널같이 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3~5m 두께의 잡석들을 쌓아 인공 둔덕을 만들었다. 풀을 심은 둔덕은 얼핏 동산같이 보이지만 벙커 내부는 수십 명이 너끈히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환기용 굴뚝과 배수로, 별도의 설비관로까지 설치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통신시설로 쓰인 듯하다. 활주로 반대 송악산 쪽으로 3개의 작은 오름이 연달아 있는데 이를 통틀어 셋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 정상부에는 고사포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땅을 파고 지름 6m의 원통형 콘크리트 진지를 구축했다. 원통의 중심부에 고사포를 설치해 360도 회전하며 적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원통부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숲속에 뚫린 원형탈모 상흔과 같다. 모두 5기를 배치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2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인근 송악산의 원래 이름은 ‘절울이오름’으로 ‘물결이 우는 소리를 듣는 오름’이란 뜻이었다. 바다 위에 솟은 대단한 절경이지만 60여기의 일제 동굴진지가 여기저기 뚫린 상처 입은 오름이다. 화순포구 쪽에서 보면 인공적으로 뚫은 해안동굴들이 절경을 훼손하고 있다. 총 15기의 해안동굴에는 1인용 모터보트들을 주둔시켰는데, 선두에 250㎏의 폭약을 싣고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함이었다. 합판으로 선체를 만들고 자동차 엔진을 달았다니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하는 1회용 자살함정이었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린 가이텐 특공대가 있었다. 모두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무모한 전술이며 최후 발악의 광기였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 봐야 할 이유 전쟁은 건축을 파괴하지만, 그래도 군사용 시설은 건설된다. 1940년대 제주에 남겨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나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해안동굴 진지들은 여러 감상을 불러온다. ‘이 땅과 민족을 희생시켜 일본의 영토를 지킨다?’ 일제에 분노가 치밀지만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 역사적 수치심이 앞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이 수치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왜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세워졌으며 어쩌다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됐는가.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을 일컬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제주의 일제군사시설은 거의 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인장력(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과 압축력(누르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를 합쳐 천하무적이 된 건축 재료다. 20세기 초 발명한 이 재료는 강하기는 강철 같지만 밀가루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 알뜨르의 격납고는 공중폭격에 가장 강한 반원통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벙커는 수m 두께의 토압을 견디고 내부 통행이 가능하도록 아치형 터널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며,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축은 죄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는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식민지근대화론도 그렇다. 일제는 이 땅에 항만, 철도, 공장 등 근대적 시설을 지었다. 해방 후 근대화는 그 혜택의 연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누가 차지했는지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는 허구이며 식민지수탈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전에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350㎞ 길이의 초대형 철근콘크리트 지하 진지를 완성했다. 참호전으로 점철했던 1차대전의 교훈에서 얻은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개전과 동시에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운 기동력으로 마지노선을 돌파, 이를 무력화했다. 마지노선 건설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일제의 전략은 무모하고 시설은 어리석다. 전원 옥쇄란 사무라이 싸움에서나 있을 법한 전략이다. 총길이 15㎞에 달하는 제주 내 동굴 진지들도 자학적이다. 내부에 아무 지원시설 없어 단 며칠도 버티기 어려운 동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찌 대항하나. 가미카제나 가이텐 특공대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높을까. 통계에 따르면 특공대 1명의 자폭으로 미군 1명을 사살했을 정도라 한다. 전쟁의 실체를 모르는 시대착오적 전술은 얼마나 허망한가. 해방 74년, 일제가 남긴 알뜨르의 군사건축이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은평 전통시장 가면 아이 맡기고 장 본다

    은평 전통시장 가면 아이 맡기고 장 본다

    지난달 24일 서울 응암동 대림시장에선 까르륵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시장 입구 왼편에 자리한 아이 돌봄 시설에서 피어나는 소리였다. 은평구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전국 최초로 시장에 조성한 ‘아이조아 돌봄 나눔터’는 생긴 지 4개월 만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재래시장을 찾고 싶어도 백화점, 대형마트 등과 견줘 아이와 함께 장보기가 불편해 꺼리던 주민들이 많았죠. 하지만 이제 전국 처음으로 시장에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돌봄 시설이 생기니 시장을 찾는 주민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날 ‘아이조아 돌봄 나눔터’를 찾은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상인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보니 시장의 변화가 체감된다”며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이날 시설에선 2~5세 아이 5명이 부모가 장을 보러 간 사이 돌봄 교사 2명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었다. 연면적 31.05㎡로 1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연령대별 성장과 발달을 돕는 장난감과 동화책, 탈것 등이 짜임새 있게 마련됐다. 돌봄 교사 정영희(61)씨는 “한 번 아이들을 맡겨 본 어머니들은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거듭 찾아오시고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갈 때면 가기 싫어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이조아 돌봄 나눔터에 대한 호평이 퍼지면서 이용 고객이 개소 직후인 지난 5월 40명에서 지난 7월 112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김 구청장은 “서울시에서도 찾아와 좋은 시도라며 다른 자치구에 전파하겠다고 하고 타 자치구에서도 운영 상황을 물어보며 벤치마킹하려 한다”면서 “예산은 적지만 젊은 고객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효과가 있다”고 자평했다. 박민규 대림시장상인회 상무도 “올해 매출이 재작년보다 30% 넘게 올랐다. 구에서 최근 몇 년간 시장 환경을 개선해 주면서 이제 상인들 스스로 노력해 활로를 찾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14개 전통시장과 상점가를 품고 있는 은평구는 올해 시장별 특화상품을 찾아 육성하는 ‘1시장 1특색’ 사업을 펼친다. 오는 10월에는 연서·대림·대조·증산시장 등 9개 시장의 특색 있는 상품과 먹을거리를 자랑하는 ‘은평구 전통시장 박람회’도 선보인다. 김 구청장은 “대림시장의 경우 응암동 감자국 거리, 응암오거리 전통주 거리는 물론 최근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돼 5년간 100억원을 지원받게 된 응암3동 다래마을까지 연계해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해외 여행에서 ‘망고’, ‘소시지’를 사오면 안되는 이유

    해외 여행에서 ‘망고’, ‘소시지’를 사오면 안되는 이유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여름 휴가철 해외 여행객이 늘면서 해외 병해충의 국내 유입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생과일과 축산물 등을 반입하지 말라달라고 4일 밝혔다. 인천공항지역본부는 오는 11일까지 ‘여름철 해외여행객 휴대물품 특별검역기간’을 운영한다. 생과일과 축산물에 묻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동·식물 검역병해충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인천공항에서는 농·축산물 296t을 압수해 폐기했다. 망고 43t, 사과 18t, 고추 9t 등 농산물 178t과 소시지 47t, 우육 23t, 돈육 20t 등 축산물 118t을 폐기했다. 지난해 특별검역기간 동안 인천공항에서는 178건의 과태료를 집중적으로 부과했다. 지난 6월1일부터 동물검역 대상물품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 부과되는 과태료 금액이 최고 1000만원으로 상향됐다. 휴대 반입이 금지된 품목으로는 사과,망고,감귤,라임,오렌지 등 생과일,고추,토마토,풋콩 등 신선 열매채소다. 또 감자,고구마,마,껍데기가 붙은 호두,사과, 배, 포도 등 과수의 묘목·접수·삽수, 흙, 흙 부착 식물, 살아있는 곤충 등이다. 검역본부는 특별검역기간 중 동남아, 중국 등 금지물품 반입 위험도가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수하물에 대한 엑스레이(X-ray) 및 탐지견 검색을 강화하고, 세관 등 유관기관과 긴밀히 공조하여 한층 강화된 검색활동을 실시할 계획이다. 검역본부는 “망고 등 생과일에는 국내에 없는 해외 병해충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 해외 병해충 유입 시 우리나라 농업과 자연 생태계에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 생과일 등 휴대 반입 금지품을 반입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만약 가져왔을 경우에는 입국장에 주재하는 동·식물검역관에게 반드시 신고해 검역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10㎝도 안 되는 소녀상까지…일본 항의로 독일서 철거

    10㎝도 안 되는 소녀상까지…일본 항의로 독일서 철거

    독일 나치 강제수용소 기념관서 철거일본, 독일 곳곳서 소녀상 전시 훼방유럽 최초 소녀상도 설명 비문 철거일본, 위안부합의 근거로 들며 항의 일본이 독일의 한 나치 강제수용소 기념관에 전시된 10㎝도 채 안 되는 초소형 ‘평화의 소녀상’마저 기념관 측을 압박해 철거하도록 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4일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페어반트(Korea Verband)에 따르면, 이 단체의 한정화 대표는 지난 2017년 초 베를린 북부 브란덴부르크 주의 소도시 라벤스브뤼크의 옛 나치 강제수용소 기념관(Ravensbruck Memorial)에 ‘작은 소녀상’을 선물했다. 기념관 측은 의미가 깊은 선물이라면서 같은 해 4월부터 여러 작품과 기념품을 모아 놓은 기념관 입구에 작은 소녀상을 전시했다. 이 소녀상은 곳곳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과 동일한 외형이지만, 높이가 10㎝가 안 되는 초소형 크기다. 소녀상 왼쪽에는 ‘평화비’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설명이 적혀 있다. 소녀상이 설치된 입구는 방문객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위치다.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는 나치 시절 체제에 반항하는 여성을 가둬놓는 여성 전용 수용소였다. 이 수용소의 일부 수감자는 다른 강제수용소에 성노예로 보내지기도 했던 만큼, 한국에서 온 작은 소녀상이 특별한 의미였기에 소중히 여긴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는 소녀상 전시 당시 기념관을 찾아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일본 대사관 측이 이를 알게 되면서 지난해 1월쯤 브란덴부르크 주 당국과 기념관을 상대로 항의하며, 전시물에서 이 소녀상을 제외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한 대표는 “당시 기념관 측과의 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주 당국과 기념관이 일본 측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일본 측의 강한 반발에 당황한 기념관 측은 일본 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이유를 묻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일본 측의 전방위적이고 집요한 압박 속에서 기념관 측은 작은 소녀상을 전시 작품에서 제외했다. 소녀상 전시 등과 관련한 일본의 방해는 독일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이다.베를린의 여성 예술가 전시관인 ‘게독’(GEDOK)이 지난 2일 시작한 ‘토이스 아 어스’(TOYS ARE US) 전시회에 소녀상이 출품되자, 주독 일본대사관은 게독 측에 공문을 보냈다. 전시된 소녀상은 일본 최대 국제 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소녀상과 같이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작품이다. 최근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선 보인 소녀상은 결국 전시장에서 철거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일본 대사관 측은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맺은 합의를 근거로 들며 “일본과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했다”면서 “이후 문재인 정부가 화해·치유 재단을 해산한 것은 2015년 양국 합의의 관점에서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게독에 전시된 소녀상은 지난 6월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독일 교회의 날’ 기념 전시회에서도 전시됐는데. 당시 일본 뒤셀도르프 총영사관이 전시관 측에 연락해 철거 요청을 했다고 전시 관계자들이 전했다. 2일 전시관을 찾은 일본인 여성 미술가인 아이 코바야시는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단체들이 소녀상을 걸고넘어지고 있는 게 문제”라며 “일본에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가짜뉴스가 너무 많고, 미디어는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앞서 2017년 3월에 남부도시 비젠트의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에 유럽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소녀상에 대해서도 일본 측이 공원 측에 철거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같은 해 공원 측은 소녀상은 철거하지 않되, 소녀상을 설명한 비문을 철거했다. 재독동포 단체인 풍경세계문화협의회가 본에 있는 여성박물관에도 소녀상을 세우려고 추진해왔지만, 일본 측의 방해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2016년에는 수원시가 자매결연을 한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소녀상을 설치하려고 했지만, 일본 측의 항의로 무산됐다. 일본 측 인사들이 프라이부르크 시 당국을 찾아 강력히 항의한 것이다. 프라이부르크와 자매결연을 해온 일본의 도시 마쓰야마는 소녀상을 세울 경우 단교하겠다는 뜻까지 전하며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인사] 제주특별자치도

    ■ 제주특별자치도 ◇ 이사관급 승진 △ 도민안전실장 양기철 ◇ 부이사관급 전보 △ 관광국장 강영돈 △ 세계유산본부장 고길림 △ 제주특별자치도(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정태성 ◇ 부이사관급 승진 △ 교통항공국장 현대성 △ 해양수산국장 조동근 △ 강정공동체사업추진단장 김남윤 △ 제주특별자치도(국회사무처) 양한식 △ ″(기획재정부) 강승옥 △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창호 ◇ 서기관급 전보 △ 환경보전국장(직대) 박근수 △ 인재개발원장(직대) 김기범 △ 서울본부장(직대) 양석하 △ 특별자치제도추진단장 김명옥 △ 제주시 부시장(직대) 이영진 △ 총무과장 송종식 △ 특별자치법무담당관 변덕승 △ 세정담당관 유태진 △ 자치행정과장 강동우 △ 문화정책과장 양인정 △ 일자리과장 양제윤 △ 환경정책과장 박경수 △ 의회사무처 좌정규 △ 제주도(제주대학교) 장문봉 △ 제주도(제주의료원) 한용택 △ 제주시 고숙희 △ 수산정책과장 홍충희 △ 해녀문화유산과장 이승훈 △ 세계유산본부 세계유산문화재부장 정성호 △ 세계유산본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장 김대근 △ 돌문화공원관리소장 이학승 ◇ 서기관급 승진 △ 비서실장 한웅 △ 시설관리공단설립준비단장 김창세 △ 소상공인·기업과장 이기택 △ 통상물류과장 고순심 △ 건축지적과장 양창훤 △ 교통정책과장 오임수 △ 여성가족청소년과장 오나영 △ 인재개발원 교육운영과장 양원준 △ 설문대여성문화센터 소장 김정완 △ 의회사무처 김형은 △ 의회사무처 오영오 △ 제주특별자치도(제주경제통상진흥원) 강애숙 △ 생활환경과장 현윤석 △ 산림휴양과장 이창흡 △ 친환경농업정책과장 한인수 △ 공항확충지원단 주민소통센터장 양홍식 △ 상하수도본부 하수도부장 강경돈 ◇ 사무관급 전보 △ 청년정책담당관(직대) 김미영 △ 평생교육과장(직대) 이인옥 △ 평화대외협력과장(직대) 채종협 △ 투자유치과장(직대) 고영만 △ 카지노정책과장(직대) 변영근 △ 도시계획재생과장(직대) 홍종택 △ 농업기술원 총무과장(직대) 고성철 △ 감사위원회 조사과장(직대) 부윤환 △ 청렴혁신담당관 청렴감찰팀장 김용필 △ 총무과 총무팀장 김인영 △ ″ 인사팀장 강재섭 △ ″ 공직노사협력팀장 김학수 △ 성평등정책관 성평등기획팀장 류일순 △ 정책기획관 기획팀장 고윤성 △ ″ 균형발전팀장 김군자 △ 청년정책담당관 대학정책팀장 김영희 △ 예산담당관 재정분석팀장 김준하 △ 안전정책과 생활안전팀장 박봉수 △ ″ CCTV관제센터팀장 배진용 △ 자치행정과 민원팀장 유은숙 △ 회계과 계약팀장 김용우 △ ″ 계약심사팀장 박재관 △ 평생교육과 교육지원팀장 현광철 △ 문화정책과 문화예술팀장 강상웅 △ ″ 종교팀장 강기종 △ 평화대외협력과 재외도민팀장 고경대 △ 체육진흥과 체육진흥팀장 김운석 △ 관광정책과 관광정책팀장 고영철 △ ″ 관광마케팅팀장 임병종 △ 투자유치과 투자정책팀장 홍호진 △ 카지노정책과 카지노산업팀장 진석빈 △ 저탄소정책과 전기차지원팀장 김동희 △ 미래전략과 바이오산업팀장 강봉숙 △ 정보정책과 정보서비스팀장 김병찬 △ 일자리과 일자리행정팀장 김관현 △″ 고용서비스팀장 김성배 △ 경제정책과 사회적경제팀장 지경주 △ 통상물류과 물류총괄팀장 강무성 △ ″ 물류지원팀장 현봉주 △ 도시계획재생과 도시재생기획팀장 현민철 △ ″ 김상윤 △ 건축지적과 지적새주소팀장 송석철 △ 건설과 건설진흥팀장 김영범 △ 도로관리과 도로관리팀장 부남기 △ 교통정책과 택시행정팀장 김형규 △ 복지정책과 복지정책팀장 김홍림 △ 노인장수복지과 노인정책팀장 부영춘 △ 여성가족청소년과 보육정책팀장 윤인성 △ ″ 아동친화팀장 고정화 △ 보건건강위생과 감염병관리팀장 강정혜 △ 환경정책과 환경정책팀장 오종찬 △ ″ 기후변화대응팀장 이승민 △ ″ 환경평가팀장 김시완 △ 물정책과 수자원총괄팀장 양애옥 △ 생활환경과 생활환경팀장 강승향 △ 산림휴양과 산림휴양팀장 한정우 △ ″ 산지경영팀장 현문익 △ ″ 한라생태숲팀장 지경찬 △ 친환경농업정책과 농업정책팀장 김병훈 △ ″ 농업기반팀장 홍동철 △ 감귤진흥과 과수지원팀장 임영준 △ 동물방역과 동물방역팀장 문성업 △ 수산정책과 자원유통팀장 우윤필 △ 해양산업과 해양관리팀장 오상필 △ 해녀문화유산과 해녀정책팀장 윤영유 △ 특별자치제도추진단 특별분권팀장 윤세명 △ 공항확충지원단 총괄지원팀장 김형섭 △ 인재개발원 교육운영과 교육기획팀장 권기웅 △″ 교육운영과 교육운영팀장 윤창호 △ 보훈청 항일기념관장 오태수 △ 상하수도본부 하수도부 하수계획과장 김성철 △ ″ 하수시설과장 양희근 △ 세계유산본부 세계유산문화재부 역사문화재과장 김근용 △ ″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공원보호과장 조맹용 △ 축산진흥원 가축자원과장 김병수 △ 해양수산연구원 미래양식연구과장 홍성완 △ 해양수산연구원 광어연구센터장 고형범 △ 동물위생시험소 방역진단과장 문성환 △ 한라도서관 운영과장 이남희 △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문화기획과장 고성진 △ 감사위원회 김시윤 △ 의회사무처 김정수 △ 제주특별자치도(통계청) 이지현 △ ″ (서울특별시) 강선순 △ ″ (법제처) 양필성 △ 제주시 김정환 △ ″ 김문형 △ ″ 신은재 △ ″ 고재완 △ ″ 김현집 △ 서귀포시 허종현 △ ″ 오영관 △ ″ 이연수 △ ″ 최문보 △ ″ 강미애 △ 소통담당관 강명욱 △ 소통담당관 김경철 ◇ 농촌지도관 전보 △ 농업기술원장 정대천 농업기술원 △ 기술지원국장 최윤식 △ 농업기술원 서귀포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 이춘보 ◇ 농업연구관 전보 △ 신품종감자보급T/F팀장 송승운 △ 농업기술원 원예연구과장 고상환 △ ″ 감귤아열대연구과장 홍순영 △ ″ 친환경연구과장 송정흡 △ ″ 농산물원종장장 조연동 △ ″ 동부농업기술센터 소장 김성배 △ ″ 원예연구과 연구협력팀장 강종훈 △ ″ 친환경연구과 작물보호연구팀장 송인관 △ ″ 원예연구과 연구협력팀장 강종훈 △ ″ 제주농업기술센터 소장 양규식 △ ″ 서부농업기술센터 소장 서익수 △ 축산진흥원장 김영훈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기대다-영주 부석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기대다-영주 부석사

    #배흘림기둥 #목조건축의_고전 #혜곡최순우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운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1994. 학고재> 배흘림기둥. 영주에 위치한 부석사(浮石寺) 주불전인 무량수전 기둥은 민흘림이 아닌 장독처럼 배부른 배흘림모양이다. 이 배흘림으로 인해 원래도 유명하였던 영주의 부석사는 더 큰 이름이 전국적으로 났다. 제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고미술사학자인 혜곡 선생이 부석사 배흘림기둥에 반하고 만다. 그는 배흘림기둥을 두고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라는 평가를 남긴다. 배흘림기둥에 다시금 기대어 서 보자.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오래된 목조건축물로는 부석사의 무량수전, 봉정사의 극락전, 수덕사의 대웅전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국보 제 15호 지정된 고려시대 양식의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지만 미학적인 측면에서는 국보 제 18호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좀 더 윗길로 보는 견해도 많다. 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봉황산 중턱에 있는 절로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지은 절로 알려져 있다. 부석사라는 절집 이름이 붙여진 유래는 이러하다. 당나라에서 의상을 흠모하는 여인이 있었다. 선묘라 부른다. 그녀는 용으로 변하여 봉황산까지 날아와 산채에 숨은 도적 500명을 바위를 날려 물리쳤다고 한다. 그 때의 바위가 무량수전 바로 뒤편에 있다. 큰 바위가 바닥에서 떠 있는 형상이라 하여 ‘浮石(부석)’이라 하였고 사찰명도 ‘부석사(浮石寺)’가 되었다. #안양루의_풍광 #영주맛집 #석양풍경 사실 부석사에는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안양루, 선묘각, 조사당, 취현암, 범종루, 선열당 등 많은 당우와 전각이 있지만 특히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는 곳은 무량수전과 안양루다. 부석사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한국 건축의 고전(古典)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사찰이 들어선 가람의 위치 때문이다. 누구라도 부석사의 범종각이나 안양루 오르면 눈 아래 펼쳐지는 소백산맥 휘어드는 봉우리들의 풍경에 넋을 놓고 만다. 신라 시대, 그 옛날에 봉황산 중턱 좁고 가파른 땅을 높은 석축과 건물을 잘 이용하여 이렇듯 짜임새 있게 공간 배치를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부석사의 본전(本殿)은 무량수전이다. 배흘림기둥이 있는 건축물로 우리나라에서 창건 연대가 확인된 목조 건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또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대표되는 불전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순한 팔작지붕 집으로 기둥머리는 34cm, 중간 배흘림 부분은 49cm, 기둥밑은 44cm의 배흘림으로 내려와 건축에 대한 문외한인 관람객이 보아도 대단히 탄력적이며 역동적이다. 무량수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현종 7년(1016년) 원융국사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배흘림기둥이 있는 무량수전 경내로 들어가는 출입문 역할을 하는 안양루도 유명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곳에 오르면 뒤로는 무량수전, 앞으로는 경내의 여러 건물들의 지붕들과 선이 맞닿은 소백의 여러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석양이 질 때 바라보는 아스라하게 사라지는 운무와 붉은 구름 속의 산과 들은 부석사가 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 건축물로 손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신발관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석양이 질 때 바라보는 무량수전 앞 풍광은 압권이다.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혹은 연인 끼리도 좋다. 석양을 노려라. 3. 가는 방법은?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 영주 버스 터미널에 내리면 20~30분 간격으로 부석사에 가는 버스가 많다. 4. 특징은? - 불교라는 종교적 의미보다 건축미학적인 의미가 더욱 더 짙은 곳.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유명세에 비하면 관람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 관광버스로 오는 중년의 관람객들이 주 방문객. 6. 꼭 봐야할 장소는? - 무량수전 뒤의 부석(浮石),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안양루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유명한 먹거리 맛집이 많다. 영주 축협 한우프라자, 한결 청국장, 묵호문어집, 명동감자탕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pusoksa.org/main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무섬마을, 소수서원, 영주선비촌전통시장, 영주인삼박물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부석사는 유명한 곳이다. 한 번은 다녀오면 좋다. 부석사 여행의 포인트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석양 풍경을 또 한 컷.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마트에서 판매중인 감자에 ‘소변’보고 도망친 美 여성

    마트에서 판매중인 감자에 ‘소변’보고 도망친 美 여성

    미국의 한 여성이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상품에 소변을 보고 도망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폭스뉴스, 뉴욕포스트 등 현지 언론의 30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25일 새벽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월마트를 찾은 그레이스 브라운은 자연스럽게 감자와 고구마, 야채 등을 파는 구역으로 들어섰다. 이후 판매 중인 감자가 든 바구니를 꺼낸 뒤 현장에서 옷을 내리고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이후 해당 바구니를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은 뒤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직원 한 명이 문제의 장면을 목격했지만, 경찰에 신고하는 사이 문제의 여성인 현장에서 사라졌다. 현지 경찰은 해당 여성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트위터 등을 통해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상 속 ‘범인’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변호사와 경찰서로 찾아왔다. 조사 결과 이 여성은 올해 20세의 그레이스 브라운으로 알려졌으며,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고, 곧 처벌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공연음란죄 및 무질서한 행동 등의 범죄행위가 인정돼 기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월마트 측은 성명서를 통해 “이러한 유형의 외설스러운 행위는 터무니 없는 일이며, 즉시 문제가 있었던 제품을 처분하고 고객의 청결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해당 구역의 위생 처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은 17세 소녀가 지난달 텍사스주의 월마트에서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어 혀로 핥고 다시 냉장고에 집어넣었다가 붙잡힌 사건을 연상케 하며 또 다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아무거나 제왕’ 유명 유튜버 그랜트 톰프슨 패러글라이딩 참변

    ‘아무거나 제왕’ 유명 유튜버 그랜트 톰프슨 패러글라이딩 참변

    위험한 실험도 마다하지 않아 이른바 ‘아무거나 제왕(King of Random)’으로 불렸던 유명 유튜버 그랜트 톰프슨(38)이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정기 구독자만 11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끈 톰프슨은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유타주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다 귀환하지 못했다. 다음날 그의 몸에 부착된 위성위치시스템(GPS)이 주검의 위치를 알려줬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글을 올려 죽음을 공식 발표했는데 “ 아무거나 제왕을 오늘 기려 사랑과 친절이 담긴 어떤 일이든 무작위로 해보라”고 주문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독창적인 내용으로 유명했지만 때로는 위험을 초래하는 것들을 방영했다. 예를 들어 “니트로겐 용액으로 얼굴에 뭘 할 수 있지?” 같은 것이다. 고인은 2017년 미디어킥스(MediaKix) 인터뷰를 통해 학교 다닐 때 왕따를 당했지만 결국 파일럿이 됐고 10년 넘게 비행기를 몬 뒤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 다음 “반은 은퇴해”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내가 서투르게 만지작거리던 것들과 내가 이뤄낸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히트작 가운데 성공적인 실험들은 “LEGO 거미 캔디를 어떻게 만들까”, “대양을 데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법의 찰흙을 어떻게 만들지-감자로!” 등이 있다. “가슴이 찢어진다”고 애도의 글을 남긴 유명 유튜버 로건 폴을 비롯한 유튜버 동료들과 팬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고 영국 BBC가 지난 31일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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