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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애인이야!”…한남자 놓고 모녀 난투극

    “내 애인이야!”…한남자 놓고 모녀 난투극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난투극을 벌인 모녀의 이야기가 해외언론에 소개됐다.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리사 존슨(46)은 최근 딸에게 폭행당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당시에도 엄마와 딸인 제시카 픽슬(25)은 심한 욕설과 함께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경찰이 이를 제지하려 했지만 모녀간의 난투극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모녀가 치고받고 싸운 이유는 다름 아닌 리차드 보우먼 이라는 남성 때문. 엄마인 존슨은 자신이 폭행죄로 감옥에 간 사이 딸이 남자친구인 보우먼과 잠자리를 했다고 주장했다. 존슨은 경찰에게 “보우먼과 1년이 넘게 연애를 했지만,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딸이 내 애인을 빼앗아 갔다.”면서 “딸에게 이를 따지자 다짜고짜 집으로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딸인 픽슬은 어머니를 폭행한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지만, 남자친구 문제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치고받으며 사투를 벌인 모녀의 얼굴에는 ‘영광의 상처’가 남았다. 딸의 두 눈 주위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엄마의 이마에는 딸의 반지에 긁혀 찢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이를 조사한 경찰은 “엄마 존슨은 폭력전과가 있으며, 딸 픽슬은 엄마를 폭행한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기 때문에 이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모녀 난투극’의 불씨가 된 남성인 보우먼은 경찰 조사에서 “두 여자가 싸우는 와중에도 나를 붙잡은 채 놓질 않았다.”면서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데일리 텔레그래프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춘향전 능가하는 연애소설 써보는게 꿈”

    “춘향전 능가하는 연애소설 써보는게 꿈”

    “글을 쥐어짜는 괴로움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죠. 감옥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글을 마친 뒤 스스로 드는 만족감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황홀함을 안겨줍니다. 감옥은 감옥이되 ‘황홀한 감옥’인 셈이죠.” ● “글 쥐어짜는 괴로움은 황홀한 감옥”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3부작의 소설가 조정래(66)가 자신의 작가 인생 40년을 돌아보는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시사IN북 펴냄)을 내놓았다. 흥미진진하면서도 담담한 조정래의 문학론·작품론·인생론이다. 대하소설 3부작에 얽힌 비화, 제작 노트를 공개하는 내용들로, 영화로 치면 ‘메이킹 필름’과 같은 형식이다. 또한 포철 박태준 전 회장과의 각별한 인연, ‘소년 빨치산’ 박현채 교수의 도움에 대한 감사 등을 담았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안기부의 반대에도 중국 취재를 도와준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조정래는 6일 책 출간에 앞서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특히 이번 에세이의 형식이 돋보이는 점은 미래세대인 대학생들이 던진 84개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대화 형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작가의 계언(戒言)이 담긴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답변하기 껄끄럽거나 피하고 싶은 질문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86개 질문 모두 대답했는데 그중 2개는 부인 김초혜(시인)가 구구한 자기자랑은 작가의 몫이 아니라며 빼라고 해서 뺐다.”면서 “집안에 내부검열하는 또 하나의 중앙정보부를 가진 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라 들었지만, 충고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만이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 “80세 넘으면 유화 그리고 싶어” 그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춘향전을 능가할만한 연애소설을 쓸 자신이 있다면 한 번 써보는 것이 꿈”이라고 밝히며 “80살이 넘어서면 물감을 전혀 아끼지 않고 덕지덕지 발라서 유화의 질감을 마음껏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헤르만 헤세처럼.”이라고 식지 않는 예술의 열정을 드러냈다. 그는 연말부터 계간지 ‘문학의문학’을 통해 새로운 장편소설을 세 차례에 걸쳐 나눠서 선보일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디스 이즈 잉글랜드

    [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디스 이즈 잉글랜드

    소년에서 갑자기 어른이 될 수는 없다. 누구나 질풍노도의 청년시절을 거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세계는 안개 자욱한 저편에서 몸을 웅크리며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혼돈기의 청년시절이 지나고 난 뒤, 그 시절에 대해 생각하면 누구나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그때는 아직 세상을 몰랐다고, 그때는 너무나 어렸다고, 하지만 순수했고 지금은 그 순수함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립다고. 일반적으로 성장영화는, 개인적 자아에서 사회적 자아로 성숙해 가는 성장통의 주인공을 바탕으로, 개인사적 이야기와 가정이나 학교 등과 다른 소집단을 중심으로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개 같은 내 인생>이나 <정복자 펠레>처럼 뛰어난 성장영화들은 단지 주인공의 개인사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집단과 세계를 함께 볼 수 있는 폭넓은 시선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한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그 소년이 살고 있는 세계의 인종적·사회적·계층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는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마치 <트레인스포팅>이 1990년대 영국 사회의 심장부를 총알처럼 관통하며 뜨거운 충격을 주었던 것처럼, 모순과 혼돈으로 뒤덮인 1980년대 영국 사회를 표현하고 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12살 소년 숀이 가정과 학교를 벗어나 더 큰 세계와 부딪치는 혼돈과 함께, 개인적 상처가 어떻게 집단화 되는가에 대한 문제도 섬세하게 추적하고 있는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대처 수상이 집권하고 있던 1980년대 초반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초등학생 숀(토머스 터구스)의 아버지가 포클랜드 전쟁에서 전사한 것으로 설정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포클랜드섬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이 전쟁은, 대처 정권 당시 영국 내 국수주의자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영국인들을 내적으로 단결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타민족 타문화에 대한 배타적 시선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민족적 동일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이민족에 대한 배타적 시선, 가정과 학교로 둘러싸인 작은 사회에서 더 큰 세계와 부딪치는 과정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1983년 어느 여름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던 숀은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거리에서 20대 전후의 청년들로 구성된 우디(죠 길건) 패거리를 만난다. 숀은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들에게서 동료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우디의 친구인 콤보(스티븐 그레이엄)가 감옥에서 출소하면서 우디와 콤보 사이에 갈등이 형성되고 기존의 우디 패거리들은 각각의 성향에 따라 우디와 콤보 쪽으로 갈라지게 된다. 숀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킨헤드족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포클랜드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이 들어 있다. 숀이 국수주의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자로 변해가지는 않지만 상처 입은 그의 어린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감독은 머리를 빡빡 깎고 스킨헤드족으로 변신해가는 숀의 일상 사이에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유품을 배치해서 그의 심리적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1980년대 초반의 영국 사회,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갈등을 배경으로 유색인종에 대한 강한 거부의식, 가진 자들, 즉 유산계급에 대한 공격적 자세, 그리고 집단의 대의적 목표와 개인적 욕망이 부딪치면서 극대화되는 갈등을 세인 메도스 감독은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성장 영화가 갖고 있는 꿈과 판타지보다는 뒷골목 시궁창 같은 더러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면서도 역사와 현실에 대해서 균형감각을 발휘하는 미덕을 발휘한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12세 소년 숀의 성장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주제의식은 날이 서 있지만 표현방법은 따뜻해지는 미덕이 있다. 숀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온다. 상대는 우디 일행 중 한 명으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뻘이지만 숀은 의젓하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키스도 한다. 가슴 설렘 가득한 첫 키스, 그리고 따뜻한 동료애로 뭉쳐 있던 소집단 내에 균열이 생기고 갈등이 증폭되면서 숀은 혼란을 느낀다. 우디 일행들처럼 자신도 머리를 빡빡 깎고 스킨헤드족의 일원이 된 숀. 그들은 영국기를 앞에 두고 조국에 대한 사랑을 맹세한다. 파키스탄 이민자들의 가게에 들어가 폭력을 행사하고 동료이지만 유색인에게는 이유 없는 무차별 폭력으로 분풀이를 한다. 반인종적 집단이라는 점에서 스킨헤드나 신나치주의자들, KKK단들은 일맥상통한다.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민족적 동일성을 회복하고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어려워진 경제적 조건 아래서 반인종주의자들은 이민족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더욱 극성을 부린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 역시 80년대 초반 대처정권 시절 어려운 영국 경제의 위기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영화 내적으로는 우디와 콤보의 갈등, 외적으로는 스킨헤드족과 기성세대와의 갈등이라는 이분법적 큰 축이 형성되어 있다. 12세 소년 숀의 일상을 중심으로 그가 가정과 학교라는 소집단에서 스킨헤드족이라는 사회의 또 다른 소집단으로 행동반경을 넓혀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균형감을 발휘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무게중심을 잡으며 통합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실제로 소년시절 스킨헤드족의 일원이었다고 고백한 세인 메도스 감독은, 자신의 소년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사실적인 스킨헤드족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군더더기 설명 없이, 그렇다고 지나친 비약이나 생략도 없이,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리면서 당대의 사회적 삶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는 인종적 편견과 폭력 뒤에 숨겨진 그들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비난이 아니라 모든 행동 뒤에 숨겨진 원인과 상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시선을 확보한다. 대표적인 스킨헤드족으로 등장하는 콤보의 경우만 해도, 그의 폭력적 행동 이면에 감춰진 복잡하고 나약한 인간성을 드러냄으로써 한 인간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특히 12세 소년 숀 역의 토머스 터구스의 힘 있는 연기는, 새로운 가능성의 발굴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아 마땅하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힘 있게 상처 받은 한 소년의 내면을 연기하는 터머스 터구스는, 그 자체가 진짜 숀이다. 글_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 유럽? 난 스크린으로 떠나!

    올해로 10회를 맞은 메가박스 유럽영화제(MEFF)가 ‘다시 만나는 유럽’이란 슬로건 아래 축제의 향연을 벌인다. 새달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와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만날 수 있다. 라인업은 어느 해보다 화려하다.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자크 오디아드의 ‘예언자’를 개막작으로 선보이는 것을 비롯해 모두 30여편의 유럽 화제작들을 상영한다. ‘예언자’는 순진한 아랍계 문맹 청년이 프랑스의 감옥에서 마피아 두목이 되는 이야기를 담은 범죄드라마다. 또 ‘로망스’, ‘팻걸’을 만든 카트린 브레이야의 신작 ‘푸른 수염’,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카를로스 사우라의 시대극 ‘돈 조반니’도 소개된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 ‘인 디스 월드’ 등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마이클 윈터바텀은 ‘제노바’를 들고 찾아온다. 이 밖에도 리암 니슨이 출연한 ‘천국에서의 5분간’, 제시카 비엘과 콜린 퍼스가 호흡을 맞춘 ‘이지 버츄’, 줄리 델피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더 카운테스’, 로버트 패틴슨이 화가 살바도르 달리로 나오는 ‘리틀 애쉬:달리가 사랑한 그림’도 목록에 올랐다. 10주년을 기념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수면의 과학’ 등 지난 영화제에서 사랑을 받은 10편의 작품도 함께 상영된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27년만에 벗은 살인누명… 남은 건 노숙뿐

    27년만에 벗은 살인누명… 남은 건 노숙뿐

    젊은 여성 바텐더를 살해한 범인이 29년 만에 DNA 감식을 통해 밝혀졌다. 하지만 진범은 10여년 전 목숨을 끊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범인으로 몰린 남성은 종신형까지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다. 1979년 12월 영국 사우샘프턴을 여행하던 데이비드 라체(당시 17세)는 22세의 바텐더 테레사 드 시몬(여)을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하지만 경찰이 범인으로 지목한 이는 당시 범행 현장 근처에 있던 신 호드슨이라는 남성이었다. 절도 전과의 노숙자였던 호드슨은 범인으로 몰린 뒤 결백을 주장했지만 경찰은 혈액형이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같다는 이유로 그를 범인으로 몰았다. 호드슨은 재심에서 DNA가 일치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27년만인 지난 3월 풀려났다. 영국에서 DNA테스트가 도입된 것은 1986년 이후였다.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 8월 라체의 시신을 다시 발굴해 DNA 감식을 한 결과 시몬의 몸에서 발견한 것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라체는 1983년 강도죄로 붙잡혀 4년을 복역한 뒤 풀려나 88년 자살했다. 하지만 경찰의 부실 수사로 범인으로 몰린 호드슨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고 영 일간 더타임스는 전했다. 석방 뒤 호드슨은 노숙으로 전전하다 최근 자리를 잡고 정기적인 치료를 받으며 살고 있다. 시몬 콜 경찰부서장는 “누명을 쓴 남성이 30년 가까이 감옥에서 보내게 된 것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9일 TV 하이라이트]

    ●환경스페셜(KBS1 오후 10시) 지난 6월1일, 평화의 상징으로 불렸던 도시 비둘기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앞으로 배설물 등으로 문화재나 건물에 피해를 주는 집비둘기에게 피해를 받으면 누구나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 포획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과연 비둘기는 우리 인간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입히는 ‘유해야생동물’일까? ●소비자 고발(KBS2 오후 11시15분)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에 하나는 바로 그 지역에서 나는 제철 특산물을 맛보는 일이다. 산지에서 직접 잡은 지역 특산물은 최고의 제품이라는 믿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하지만 이런 특산물이 중국에서 수입해 온 것이라면? 중국산 수산물이 지역 특산물로 둔갑하는 현장을 공개한다. ●지붕뚫고 하이킥(MBC 오후 7시45분) 현경은 순재와 교감 자옥의 관계를 눈치채고,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지났는데도 사랑에 눈 뜬 순재가 못마땅하다. 더욱이 그 상대가 자신의 학교 교감 자옥이란 사실에 용납할 수 없다며 흥분한다. 신애와 세경은 동냥 생활을 시작하며 아빠가 만나자던 남산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그리워한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15분) 필리핀 마닐라 구치소에는 3년9개월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프랑스 용병 출신으로 알려진 조광현씨. 그의 혐의는 살인과 절도다. 그런데 필리핀 검찰과 법원은 아직도 그의 죄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감옥에서 시간만 보냈다. 도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극한직업(EBS 오후 10시40분) 집채만 한 돌에 수만 번의 정질을 통해 온기를 불어넣는 석공전문가들. 누군가에겐 쓸모없는 돌이 그들의 손을 통해 영혼을 얻는다. 100t이 넘는 돌과 씨름하며 압사의 위험을 견뎌내는 극한의 작업현장. 수천수만 년 가는 돌처럼, 한자리에서 굳건하게 지켜온 그들의 고집스러운 땀의 현장을 찾아가본다. ●YTN 초대석<김승조 한국항공우주 학회장>(YTN 낮 12시35분) 우주시대의 야심찬 꿈을 안고 발사됐던 나로호는 결국 절반의 성공에 그치며 다음을 기약하게 했다. 그러나 우주를 향한 신천지 개척은 국가의 성장 동력에 불을 지피는 화두로 등장했다. 서울대학교 김승조 교수와 함께 ‘나로호’ 이후의 로드맵과 과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 [깔깔깔]

    ●황당한 남편과 아내 볼링광 사내가 담배를 사려고 집을 나섰다. 자판기를 이용하려고 그가 찾아간 곳은 인근 술집. 예쁜 여자를 발견하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결국 그 여자 아파트로 가게 되었다. 재미를 보고 나서 보니 새벽 3시. 그는 분가루를 달라고 해서 그것을 손에 문지르고는 집으로 향했다. 마누라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대관절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담배자판기를 이용하려고 바에 갔다가 거기서 멋진 여자를 만났어.” “그래요? 어디 손 봐요. 거짓말쟁이, 또 볼링을 하고 왔잖아!” ●어느 좀도둑의 기도 좀도둑이 그의 은신처에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훌륭한 경찰을 주셔서 소매치기와 악독한 무리들을 감옥에 잡아넣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배려가 없다면,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와 같이 불쌍한 도둑은 도저히 제대로 먹고살 길이 없사옵나이다. 아멘.”
  • 바지입은 수단여성 감옥행

    공공장소에서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수단 여성이 이를 이행하지 않아 교도소에 갇혔다고 BBC 등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제연합(UN) 수단 지부의 언론 부문에서 일하는 루바나 아흐메드 후세인은 “판결에 어떤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기 위해” 벌금을 내지 않았다고 그녀의 변호인 나빌 아디브가 밝혔다. 벌금은 200달러(약 24만 6000원)였다. 후세인은 벌금을 내자는 변호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한달의 징역형을 선택했다. 후세인은 지난 6월 수도 하르툼의 한 레스토랑에서 ‘단정치 못한 옷차림’, 즉 바지를 입은 혐의로 다른 여성 12명과 함께 체포됐다. 이중 10명은 태형 10대의 약식 처벌을 받고 풀려났다. 후세인과 다른 2명은 정식 재판을 요구, 여성의 옷차림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이슬람식 법 조항에 반기를 들었다. 수단 형법 제152조는 음란한 옷차림을 한 사람을 태형 40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후세인은 면책권이 적용되는 유엔 직원까지 그만두고 재판에 임했다. 그녀는 자신의 재판이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한 시험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실린 칼럼에서 ‘나는 내 딸들이 절대로 경찰들에 대한 두려움에 살지 않기를 기도한다. 경찰이 우리를 보호하고 그 법이 철회되어야만 우리는 안전해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후세인은 항소할 예정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길섶에서] 대림사 돌비석/노주석 논설위원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이벤트의 하나인 ‘대한국인 손도장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3만명의 손도장을 모아 폭 30m·길이 50m의 초대형 손도장 이미지를 만들어 의거일인 10월26일부터 2주일 동안 서울 광화문 KT빌딩에 내걸 예정이다. 손도장을 모으려고 일본에 간 대학생 동아리 회원들이 미야기현 구리하라시 대림사를 방문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대림사는 ‘재소자의 아버지’ 삼중 스님이 1984년 사연을 처음 알린 이후 명소가 된 곳이다. 뤼순 감옥의 안 의사 담당 일본인 간수가 낙향해 안 의사에게서 받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란 붓글씨를 대웅전 앞 집채만 한 돌에 새겼던 것이다. 안 의사에게 감화받은 간수는 돌비석을 세우고 영정을 모셨다. 추모는 부인을 거쳐 딸의 대까지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림사도 안 의사가 태어난 9월3일을 기념하는 추도 법회를 28년째 열고 있다. 손도장 프로젝트도 좋지만 ‘한국식’ 반짝 이벤트는 속보인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서울광장] 안중근 의사 재발견/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안중근 의사 재발견/노주석 논설위원

    지난 2일은 ‘대한국인’ 안중근의사 탄생 130주년이었다. 다음달 26일은 의거 100주기다. 우리에게 ‘10·26’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사태’로 각인돼 있지만 10·26은 본래 100년 전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자랑스러운 ‘하얼빈 의거일’이었다.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가 “중국과 조선인민의 진정한 연대는 안중근 의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한 바로 그날이다. 한국인 사업가가 중국 하얼빈의 명동 격인 중앙대로에 11일 동안 세웠던 안 의사의 동상을 국내에 들여왔다. 2006년 1월 저명한 중국인 조각가에게 의뢰해 만든 동상은 공안당국의 지시에 의해 철거됐다. 이후 3년 동안 숨어 있다가 이번에 햇빛을 보았다. 동상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사유지에 세운다면 꺼릴 것이 없겠지만, 공공장소에 세우기를 원한다. 서울시내 44개의 공공 동상은 ‘동상·기념비·조형물의 건립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통과한 것들이다. 전문가들이 작품성 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한·중 합작’ 동상을 공공장소에 세우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입지는 청계천이나 서울광장, 서울역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 지난해 어느 시사주간지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조사했더니 1위는 세종대왕, 2위는 이순신 장군, 3위는 백범 김구가 차지했다. 역사 속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광개토대왕, 도산 안창호, 다산 정약용이 10위 안에 들었다. 안 의사는 근근이 공동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오히려 국가보훈처가 조사한 보훈 인물 중 백범에 이어 2위로 뽑혔다. ‘국민 속의 안중근’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토를 저격한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강해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쯤으로 비치게 한 탓이다. 안 의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 ‘동양평화론’과 이토를 처단한 대의가 잊혀지고 있다. 동양평화론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이 공동군대를 편성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하자는 선각자적인 정치사상이다. 국제주의적 민족주의 개념이다. 유럽통합 방식을 100년 전에 주창한 것이다. 안 의사는 학교를 두 개나 세운 육영사업가이며, 200여점의 붓글씨를 남긴 명필이다. 최초의 해외 독립군부대인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한 전쟁영웅이다. 나라 안팎에서 ‘안중근 재발견’이 활발하다. 왜 안중근인가. 뤼순 감옥에서 쓴 ‘안응칠 소회’에 오롯이 담겨 있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멀리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짱만 끼고 아무런 방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옳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생각다 못해, 늙은 도적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여, 뜻있는 동양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를 옮겨 엮은 열화당 이기웅 대표는 “위대한 스승 안 의사의 말씀은 그 시대 청년들에게 머물지 않고,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매서운 죽비로 다가온다.”라고 평했다. 그렇다. 안 의사는 사표(師表)가 없는 이 시대의 스승될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이다. 이 땅의 청년들은 안 의사의 당당함과 논리를 배워야 한다. 불멸의 민족혼을 본받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안 의사의 원혼은 100년째 중국 뤼순감옥 사형수 무덤 주위를 떠돌고 있다. 독립된 고국에 묻어달라던 ‘백년원(百年寃)’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재발견은 유해찾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괴물·유령보다 무서운 건 도시화 된 미디어 사회

    괴물·유령보다 무서운 건 도시화 된 미디어 사회

    벽장 문을 열고 나타나는 괴물이나 유령에 부들부들 떨었던 어린 시절을 돌아 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어른이 돼 무분별한 도시화로 파괴되는 환경 속에서, 후기 정보화 산업사회에서 유통되는 정보와 미디어의 가공할 만한 힘, 그리고 이기심으로 가득찬 개인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하는 공포와 비교할 때 그때의 공포란 천진난만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동연 작가는 어린 시절 느꼈던 괴물과 유령에 대한 공포를 차라리 ‘아름다운 공포’라고 부른다. 김 작가는 그의 상상 속의 공포의 대상들은 통통하고 몽실몽실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 괴물의 일상은 인간과 똑같다. 휴식을 취하다가, 광목으로 된 흰 의상을 입고 외출하면 유령이 된다. 인간을 잡아다가 가두는 업무시간(Working Time)이 있는가 하면, 때때로 프리티켓으로 공연을 보기도 한다. 이들이 활기차게 돌아 다닐 때 인간은 쇠창살이 달린 감옥 같기도 한 대형 저택(파놉티콘-panopticon)에서 그림자처럼 매달려 있다. 인간들이 사는 도시가 마치 유령도시 같기도 하다. 파놉티콘은 정보기술로 구축된 감시체제의 결정판으로, 21세기 인류가 처한 현실과 인식을 보여 주고자 했다. 신관 1층에 설치된 이상을 논한 플라톤과 현실을 논한 소크라테스 조각은 원뿔 형상 위에 놓여 있는데, 이 원뿔은 뒤집어 놓은 지식의 호수다. 호수의 깊이를 채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현실을 꼬집었다고 한다. 라파엘의 그림 ‘아테나 학당’에서 형상을 따왔다. 김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1995년 토탈미술관 개인전에 이어 14년 만에 열리는 전시로, 작품 활동은 1988년 유학을 떠났던 독일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2005년 경희대 미술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독일과 한국에서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전관에서. 27일까지. (02)739-4937.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산가족 상봉’ 가슴 졸이는 사람들

    ‘이산가족 상봉’ 가슴 졸이는 사람들

    이틀째 금강산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적십자회담 결과를 가슴 졸이며 지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반세기 넘게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 못한 8만여명의 이산가족이다. 올 추석에는 헤어졌던 부모 형제와 가슴벅찬 상봉을 기대하는 이산가족 세사람이 27일 털어 놓은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99세 어머니 살아계실는지 5년 전 협심증으로 수술을 받은 김교영(82)씨는 지난 2월 주치의의 재수술 권유를 뿌리쳤다. 수술대에 누워 있으면 북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러갈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김씨는 사흘째 서울 명동의 대한적십자사를 찾고 있다. 함남 여흥이 고향인 김씨는 1950년 7월 남으로 내려 왔다. 전쟁 물자를 수송하고 원호사업을 하던 김씨는 ‘남으로 내려 가라.’는 지시를 받고 평양행 밤기차를 탔다. 어머니 앞으로 ‘중앙위원회에서 오라니 급히 떠납니다. 몸 건강하십시오.’라는 편지만 남겼다. 김씨는 “어머니 손목 한번 못 잡아 보고 떠나 왔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경남 하동에 파견된 김씨는 다리가 끊어진 섬진강 사이로 군량미를 실어 나르는 임무를 받았다. 쌀 가마니를 메고 가슴턱까지 차오르는 강을 밤새 오가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전쟁이 끝나면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북을 갈라 놓은 38선은 고향 가는 길을 막았다. 서울에서 결혼한 뒤 3남매를 키웠지만 가슴은 늘 허전하다. 그는 “내년이면 100살인 어머니, 아직도 살아 계실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 뱃속 셋째 두고 왔는데 강원 이천에 살던 김영식(76)씨는 47년 전, 새벽 같이 명태잡이에 나섰다. 26살의 아내는 따뜻한 밥과 김치 보시기, 간장 종지로 아침상을 차려 냈고 사립문까지 걸어 나와 김씨를 배웅했다. 4살짜리 아들 현일이, 두돌 지난 딸 경자는 자고 있었다. 아내의 뱃속에는 일곱달 뒤 태어날 아이도 있었다. 그날 따라 그물에 고기가 가득 딸려 나왔다. 고기 낚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배가 남으로 가는 줄도 몰랐다. 배는 결국 남측 경비정에 끌려 가고 말았다. 고깃배는 간첩선으로, 김씨를 포함한 선원 6명은 간첩으로 오인받았다. 26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김씨는 “경자는 포대기랑 기저귀를 남이 절대 못 만지게 하는 야무진 계집애였는데 지금은 애 엄마가 돼 있겠지.”라며 애끊는 부정을 드러냈다. 그는 “아내를 만나면 남은 생애 여왕처럼 받들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금강산서 10리 가면 집인데 문상봉(84)씨는 남파 공작원들을 배로 실어 나르는 안내원이었다. 1960년 여름, 간첩으로 체포되기 전까지 문씨는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아내와 두 딸 정애, 정옥이의 얼굴은 옥살이를 하는 28년 동안 가물가물해졌다. 문씨는 9년 전 집에 돌아갈 기회도 있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사항으로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으로 송환될 때였다. 그는 “짐도 다 싸뒀는데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며 실망에 찬 어투로 말했다. 그런 문씨가 가족 상봉의 희망을 다시 품게 된 까닭은 2005년 금강산 관광 때문이었다. 문씨가 살던 강원 고성은 금강산 밑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10리만 가면 살던 집과 아이들이 뛰어놀던 마당이 보일 거라 말하는 문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내일 이산가족 등록 신청을 하러 가는데 사진 한 장이 필요하다.”면서 장롱에서 낡은 앨범을 꺼냈다.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을 가위질하는 그의 손이 한참 동안 떨렸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입원 전 민주화 동지들과 최후의 오찬

    “하다 못해 벽을 향해 고함을 지르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6월25일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어온 민주화 동지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공개됐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해동(75·전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목사는 21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키면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최후의 오찬’ 당시를 생생하게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즐겨 찾던 서울 신수동에 있는 음식점 ‘거구장’에서 한승헌 전 감사원장,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등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위원들과 오찬을 나누면서 시종 비장한 어조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요즘 잘 때 집사람과 손 잡고 기도를 한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나는 늙고 일할 힘도 없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하겠다.”면서 “절대 지지 않는 방법이 있다. 우리가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옳은 건 옳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확실히 지는 방법이 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동하라. 투표 바르게 하라. 하다 못해 벽을 향해서 고함을 지르더라도 행동만 한다면 우리는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이 목사는 전했다. 이 목사는 “전에 없이 김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사정을 알아 봤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결정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오뉴월 뙤약볕에 두 시간가량 앉아 계시면서 무리를 했고,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마음의 상처도 컸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한참 동안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쳐다 보면서 “가까이서 지켜 본 그 분은 인간적이고 실력을 갖춘 위대한 분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목사가 그 분과 두 번이나 함께 감옥에 갇혔던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특별기고-김대중 전대통령 영전에 부쳐] ‘대화의 힘’ 믿은 뼛속깊은 휴머니스트

    [특별기고-김대중 전대통령 영전에 부쳐] ‘대화의 힘’ 믿은 뼛속깊은 휴머니스트

    그는 ‘대화의 힘’을 신봉했다. 뼛속깊이 민주주의자였다. 정치의 정도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을 향해 대화와 설득으로 합의와 타협을 이루는 과정이라 했다. ‘공산국가를 향한 억압과 고립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오로지 개방과 대화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흔들림없이 믿었다. 역사발전은 이를 실증하고 있다. 철의 장막, ‘중공’의 빗장을 열게 한 것은 닉슨이 먼저 찾아가 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감옥으로 몰아 넣고 생명을 위협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7·7선언’을, 그 대화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납치와 투옥, 감시와 연금 등으로 자신을 모질게 탄압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독재정권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과의 ‘적대적 경쟁’이 아니라 ‘형제적 경쟁’을 원했다.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원했다. 늘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을 갈구했다. 감옥 안에서도 그랬다. 그는 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이었다. 그런데도 머리맡의 물그릇이 얼어 터지는 혹한의 감옥에서도 그는 결코 독재자를 증오하지 않았다. 대신 한달에 한 장만 주어지는 봉함엽서에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가족과 대화를 시도했다. 엽서 주소란까지 촘촘히 메운 사연은 그가 참으로 자잘하고 섬세한 여성적 심성을 가진 남성임을 보여 준다. 이 ‘양성적’인간은 놀랍게도 영하의 감옥에서 오히려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경지에 닿는다. 증오와 복수가 아니라 오래도록 참고 기다리는 사랑의 기술을 터득한다. ‘대화지상주의자’인 그는 1980년대에 택할 수밖에 없었던 ‘장외투쟁’을 싫어했다. 그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사랑했다. 대의정치가 맺은 국민과 대표자 간의 계약과 신의를 존중하고자 했다. 그래서 재임기간에는 거부권을 한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너무도 부당했지만 국회의 결정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 역시 그의 오랜 인내의 결실이다. 그는 북한이 거부하는 조선일보 기자의 방북취재와 김일성 주석이 잠들어 있는 금수산궁전 참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평양으로 향했다. 그는 오히려 평생 동안 자신을 음해하고 괴롭힌 보수신문의 취재허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누구 못지않은 빼어난 논리와 달변을 갖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양에 머무는 내내 북한 지도부의 말을 ‘경청’하기만 했다. 그는 극도로 자신의 말을 아꼈다. 대화를 위한 선결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좌우명처럼 여겼다. 친지들에게 자주 붓글씨로 써주었다. ‘때로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흑색선전에 현혹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이외에는 믿을 대상이 없었던’ 그는 오로지 국민의 힘에 철저히 의지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사면복권되었을 때 그는 국민에 대한 그의 무한신뢰를 확인했다.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는 ‘가난은 나라가 구제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자본주의 정글에서 소외되고 뒤처지는 이들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다. ‘기초생활보장제’는 간난신고를 거듭했다. 재원도 부족하고 일각에서는 이념공세를 퍼부었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이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굶거나 헐벗는 이들은 없다. 휴머니스트인 지도자의 힘은 그래서 존귀하다. 그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못한다.’는 왕조의 수준을 ‘공화국’으로 변환시켰다. 이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군사정권이 조작하고 유포한 거짓들이 아직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더 기다려야 할까? 만인을 잠시 속일 수 있고, 소수를 오래 속일 수 있지만 만인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믿자. 한 시대 대중의 소망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이를 두고 우리는 영웅이라 부른다. 김대중, 그는 진정 민주주의와 평화를 꿈꾸는 우리들의 캡틴이었다. 실로 너무 멀고도 험한 길을 외롭게 걸어온 당신. 이제 더는 음해와 핍박이 없는 하늘에서 부디 평안을 누리소서.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상임위원
  • 무슨 영화 볼까

    ■ 요가학원(공포, 드라마/15세 관람가) 감독 윤재연 줄거리 홈쇼핑 쇼호스트 효정(유진)은 매력적인 후배의 등장으로 입지가 좁아진다. 열등감에 시달리던 어느 날 효정 앞에 동창생인 선화(이영진)가 나타난다. 학창시절 볼품 없던 선화는 몰라보게 미녀가 돼 있다. 미모의 비법이 간미희 요가학원의 심화훈련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간다. 하지만 수련을 받는 도중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데…. 감상 작위적 주제와 설정의 지루한 반복. 공포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 퍼펙트 겟어웨이(스릴러/15세) 감독 데이빗 토히 줄거리 결혼식을 올린 클리프(스티브 잔)와 시드니(밀라 요보비치) 커플은 신혼여행으로 하와이에서 스릴 넘치는 모험을 즐기기로 한다.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자신들이 숙원하던 파라다이스에 당도했다고 생각하지만, 곧 해변에서 다른 신혼부부의 시체가 발견되자 불안해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미심쩍기만 하고 생존 위협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감상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에 마지막 반전까지…. 그럭저럭 볼 만하다. ■ 라르고 윈치(액션, 스릴러/18세) 감독 제로미 샐레 줄거리 세계 5위의 기업, 윈치그룹의 창업자인 네리오 윈치가 암살당한다. 그에게 공식적인 후계자는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비밀이 있었으니, 30년 전 두 고아를 입양해 한 명을 후계자로 키운 것이다. 그 아이는 라르고 윈치(토머 시슬리)다. 그러나 라르고는 레아라는 여성을 만난 뒤 마약 밀매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다. 가까스로 탈옥해 본사로 가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회사를 뺏으려는 음모들이다. 감상 4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편. 얽히고 설키는 두뇌게임이 재미있다. ■ 약속해줘!(코미디/18세)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줄거리 15살 소년 차네(우로스 밀라바노비치)는 할아버지와 함께 시골에 산다. 어느 날 죽을 뻔한 사고 위기를 넘긴 할아버지는 차네를 불러 말한다. “내가 죽으면 너 혼자 남게 될 테니 도시로 가서 소를 팔고 그 돈으로 세 가지를 가져오너라.”고. 할아버지는 성화, 기념품, 그리고 참한 신부를 구해오라고 말한다. 차네는 혼자 도시로 떠난다. 감상 거장 감독이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마술적 리얼리즘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
  • 伊도 부르키니 금지논란

    프랑스에서 시작된 부르키니(이슬람 수영복) 착용 논란이 영국을 거쳐 이탈리아에도 도착했다. 프랑스 일간 르 파리지앵은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 도시 바랄로 세지아의 지안루카 부오나노 시장이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한 명분이 인종 차별 성격이 강한 데다 범위와 강도가 높아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이민을 반대하는 극우파 정당 북부동맹의 당원이기도 한 부오나노 시장은 “얼굴을 가린 여성은 어린이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면서 수영장만이 아니라 (강이나 계곡 등) 유수(流水)에서도 부르키니를 입고 수영을 하지 못하게 했다. 나아가 규정을 위반하면 500유로(약 89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그는 “무슬림 국가에서 서양 여성들이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면 참수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고 추방당한다.”면서 “우리가 관용의 마음을 의무적으로 가질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결정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사람은 집 욕조에서 수영하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부르키니 착용을 둘러싼 논쟁은 최근 프랑스의 한 도시에서 무슬림 여성이 부르키니를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려다 ‘위생에 안 좋다.’는 수영장측의 반대로 입장하지 못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영국에서는 한 수영장에서 일정 시간에는 부르키니만 입고 수영할 수 있도록 해 반대 양상의 논란이 일어났다. 이탈리아 바랄로 세지아시(市)의 논란은 또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시장이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한 이유로 위생 상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인종 차별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열린세상]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 그는 분명 현대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불세출의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서는 해방 후 한국정치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남긴 커다란 족적만큼이나 그의 정치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1963년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30년을 군사정권과 맞서 싸웠다. 그 사이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 숱한 가택연금과 투옥, 그리고 해외망명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 1997년 마침내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네 번째 도전 만에 얻어낸 대권이었다. 1987년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와 1995년 정계은퇴 번복이라는 오점을 남기면서 성취한 그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정치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우선 한국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1987년 직선제 쟁취로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나 정권은 또다시 군부세력에 넘어갔고,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은 3당 합당을 통한 것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는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이 갖는 또 다른 의의는 35년간의 영남정권을 종식하고 호남정권을 출범시킨 것이다. 해방 후 첫 진보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그 세 번째 의의다.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는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 영남 대 호남, 그리고 보수세력 대 진보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점철돼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변해 왔던 민주화 세력, 호남, 그리고 진보세력, 이 세 집단 모두 정권교체 이전까지는 핍박받는 소수집단이었다. 소수세력을 대표하는 그는 항상 투쟁과 저항의 한가운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치역정이 고단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민주화를 향한 그의 집념, 남북화해 협력에 대한 그의 신념은 굳건했다. 그랬기에 그는 버틸 수 있었고 뜻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사회 갈등의 한 축에 서 있었기에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세력이 많았으나, 그 반대편 역시 적지 않았다. 그의 정책이 모든 국민의 공감을 자아내지도 못했고, 한국 정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어 국민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재임기간 중 가장 아쉬운 점이 ‘동서화합’이라던 그의 고백처럼 지역주의의 담을 허물지 못했다. 한국정치의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인 패거리 정치와 측근정치의 벽도 뛰어넘지 못했다. 세 아들이 모두 정치비리에 휘말리는 상황을 막지도 못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 우리는 그를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 그가 한평생 지향한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에 대한 신념을 기릴 것인가, 아니면 그 사이 얼룩진 흠결을 기억할 것인가? 올해는 미국 링컨 대통령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라 한다. 링컨은 미국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묘소에는 20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어린 학생들의 생일카드가 장식되어 있다. 그는 과연 100점 만점의 대통령이었을까? 재임 당시 링컨은 그다지 사랑받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의 전기를 보면 많은 과오도 저질렀다. 남북전쟁 기간 중 언론을 통제했고, 남부 연합에 동조하는 1만 8000명을 재판 없이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젊은 시절 사생활도 그리 깨끗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노예를 해방하고 국가통합을 이룩한 최고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수많은 흠집보다는 그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을 기렸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모든 정파가 입을 모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다. 그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야 어떻든, 그가 우리 역사에 드리운 무게감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다양한 관점으로 그를 평가할 것이다. 그에 앞서 그를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는 우리 몫이다. 그의 흠집 대신 그가 지향한 가치와 이루어낸 성과를 후손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링컨이 아닌 우리 대통령의 위인전을 남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김 전대통령 서거]박근혜·이재오 홈피도 추모

    [김 전대통령 서거]박근혜·이재오 홈피도 추모

    한나라당 각 계파 수장들이 홈페이지 등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회고하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19일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문에 흰색 정장 차림으로 묵념하는 사진을 내걸었다. 사진 아래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홈페이지에도 애도의 글과 함께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고인의 사진을 팝업창으로 올렸다. 전날에는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어른이 서거하셨다.”고 말했다. 이재오 전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정치 복귀 시기를 묻는 질문에 “때가 오지 않겠느냐. 때가 안 오면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정치인이고, 돌아가신 김 전 대통령도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일생 하신 일이 민주화와 통일인데 아직 민주주의도 성숙하지 못했고, 통일도 접점을 못 찾고 있는데 돌아가셔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며 애도를 표했다. 그는 민주화 투쟁 시절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자신에게 고인이 웅담을 선물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군사독재 시절 모든 사람이 침묵을 강요 당하던 무렵 야당 정치인으로서 어두운 길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줬다.”고 돌아봤다. 이 전 의원은 홈페이지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온몸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과 조국의 평화, 통일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다.’고 적었다. 그는 이날 오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의 임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상득 의원 쪽은 “조만간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박지원 “김 前대통령 입원 전까지 일기 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입원 전까지 동교동 자택에서 일기를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유서를 남기지 않으셨다고 한다.”면서도 “혹시 일기에 (유언이 될 만한) 얘기를 남겼는지 여사께서 챙겨 보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이 이 여사에게 얘기하지 않고 유서를 작성해 생전에 쓰던 책상, 서랍 등에 보관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옥에서 여사님과 몰래 주고받은 편지를 토대로 ‘제2의’ 옥중서신을 집대성해 곧 출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연 오달란기자 oscal@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민주화 꽃 피우고 ‘인동초’ 지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민주화 꽃 피우고 ‘인동초’ 지다

    민주화의 상징이자 남북 화해에 큰 족적을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서거했다. 85세. 지난달 13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지 36일 만이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이날 오후 병원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전 대통령이 오늘 오후 1시43분 서거했다.”면서 “폐렴으로 입원하셨지만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 심장이 멎었고 급성호흡곤란증후군과 폐색전증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회견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홍일·홍업·홍걸씨 3형제, 며느리를 비롯해 가족과 측근들이 임종을 했다.”고 발표했다. 박 의원은 “가족들의 뜻을 잘 받들고 정부와도 긴밀히 협조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정중히 모시겠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립 현충원 국가 원수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는 국내외 각계각층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밤까지 400 0여명의 조문객이 빈소를 찾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이 문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만인 지난달 15일 폐렴 확진판정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며 호흡부전으로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한때 병세가 호전돼 일반 병실로 갔으나 23일 폐색전증이 발생하면서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29일에는 기관지 절개술을 받았다. 지난 1일 혈액투석 도중 갑자기 혈압이 떨어져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된 김 전 대통령은 잠깐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영면의 길에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보고 받고 참모진과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가졌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이 병석에서도 우리 사회의 화해를 이루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조문할 예정이며 영결식에도 참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굴곡 많은 한국 현대 정치사를 풍미했다. 1973년 도쿄 피랍사건 등을 비롯해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파란만장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은 1997년 15대 대통령에 당선돼 반세기 만에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1960년대부터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 사람이 이끌어온 ‘3김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이종락 허백윤 오달란기자 baikyoon@seoul.co.kr ■용어클릭 ●다발성 장기부전 한마디로 인체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주요 장기들이 동시에 나빠지는 상태로, 병명이라기보다 상황을 아우르는 지칭이다. 신체에 염증성 반응이 심해지면서 심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의식장애가 오며 호흡부전·신부전·간부전 등의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 의학적으로 수습이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만성질환으로 인해 전신성 염증(패혈증)이 왔을 때 주로 발생하며, 심장 기능 정지 등 치명적인 쇼크를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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