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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살만, 카슈끄지 살해 계기로 본격 공포통치 시작하나

    빈살만, 카슈끄지 살해 계기로 본격 공포통치 시작하나

    사우디아라비아 반(反)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라는 의혹이 부풀어도 그의 권력 기반은 공고해 보인다.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빈살만 왕세자가 본격적인 ‘폭압 통치’를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은 결국 빈살만 왕세자의 편에 서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백악관은 카슈끄지 사망을 파악한 직후 이 사건이 빈살만 왕세자의 지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미국이 이 사건을 이용해 어떤 이익을 누릴 수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했다. 백악관은 카슈끄지 살해를 빌미로 사우디의 카타르 봉쇄 해제 및 예멘 내전 종식을 종용하려 했다. 또 빈살만 왕세자의 독단을 견제할 만한 총리 또는 기타 고위 관리를 임명하라고 살만 빈압둘아지즈 국왕에게 제안했다. 사우디는 그러나 카타르 봉쇄 해제, 또는 예멘 내전 종식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31일 예멘 반군이 장악한 남서부 항구도시 호데이다 외곽에 약 3만명의 병력을 서방세계가 보란 듯이 증파했다. 빈살만 왕세자의 권력을 제한할 직위도 신설하지 않을 전망이다. 살만 국왕이 이에 부정적이었을 뿐 아니라, ‘뒤탈’을 두려워해 누구도 그 자리를 맡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했다가는 사우디의 실세 빈살만 왕세자에게 맞서는 것처럼 보일수 있어서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자리한 카네기중동센터의 마하 야하 국장은 “빈살만 왕세자가 스스로 변할 수 있게 도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모두 이번 상황을 각자 자신의 이익으로 바꾸고,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빈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를 죽임으로써 왕족, 관리 등을 협박하고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했다는 NYT의 분석이다. 이미 수많은 왕족이 지난 빈살만 왕세자가 급부상한 최근 3년 간 돈과 영향력을 잃었다. 사우디 왕실의 한 인사는 “모두 빈살만 왕세자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입을 열면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계속해서 사우디에 무기를 팔고 석유를 사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프린스턴대 지역 근동 연구소의 버나드 헤이켈 교수는 “모든 권력은 왕으로부터 나온다”면서 “왕은 사람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왕이 그것을 빼앗을 때까지 그 사람에게 속한다”며 살만 국왕이 빈살만 왕세자를 지지하는 이상 그 권력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서방의 한 외교관은 “빈살만 왕세자가 제약을 받으면 그는 폭주할 것”이라면서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하 카네기중동센터 국장은 반응은 이번 사건이 아랍의 권력자들에게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비꼬았다. 그는 “아랍 권력자들은 ‘이미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해져도 좋다. 다만 더 똑똑하게 행동하라. 영사관 안에서 유명 언론인을 죽이지 말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영국, 이달부터 의료용 대마초 사용 합법화…처방 가능

    영국, 이달부터 의료용 대마초 사용 합법화…처방 가능

    영국이 현지시간으로 11월 1일부터 의료용 대마초 처방을 합법화 했다. 의사의 처방전을 가진 환자라면 이제 합법적인 대마초 치료가 가능하다. BBC 등 현지 언론의 이날 보도에 따르면 영국 내무장관은 이미 지난 달 합법적인 의료용 대마초 처방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 특정 질병 및 환자에 한해 합법적 처방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영국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국제개발기구인 ‘보건 및 빈곤 퇴치를 위한 행동’(Health Poverty Action)은 지난 여름 보고서에서 영국이 대마초를 합법화하면 연간 10억~35억파운드(약 5조 206억원)의 세수를 거둬들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대마초를 합법화하면 관련 범죄를 줄여 경찰, 법원, 감옥, 보호감찰 등에 사용되는 비용도 절감하는 동시에, 치료용으로 대마초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많았다. 간질이나 뇌전증 등을 앓는 어린 환자에게 예외적으로 대마초 처방전이 내려지긴 했지만, 이를 합법화 할 경우 대마초 접근성이 좋아져 범죄 발생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아 논란이 이어졌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 일부 지역에서 ▲심각한 정도의 간질을 앓는 어린 환자 ▲항암화학치료를 받은 디 구토와 메스꺼움을 느끼는 성인 환자 ▲다발성 경화증으로 인한 근육긴장을 보이는 성인환자 등 특정 환자에게만 대마초 치료제 사용을 허가하겠다고 결정했다. 대마초 치료제는 알약이나 캡슐, 오일 형태로 지급되며, 대마초에 함유돼 있으며 위 질환의 호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항정신성 물질(THC) 및 카나비디올(CBD)이 적절하게 혼합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해 9개 주가 의료용뿐만 아니라 기분전환용(기호용) 대마초 사용을 합법화 했으며, 캐나다 역시 의료용·기호용 대마를 합법화 한 상황이다. 대마를 전면 합법화한 국가는 우루과이에 이어 캐나다가 두 번째이며,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한 국가는 이스라엘, 호주, 독일, 호주, 스페인, 이탈리아, 중국 등 29개국이다. 태국은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31일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 계획을 밝혔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독일월드컵 우승 멤버 이아퀸타 마피아 재판서 3년형 선고

    독일월드컵 우승 멤버 이아퀸타 마피아 재판서 3년형 선고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이탈리아의 우승에 힘을 보탠 빈센초 이아퀸타(38)가 마피아 범죄에 연루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유벤투스 출신이기도 한 이아퀸타는 31일(현지시간) 무려 148명의 피고인이 함께 기립해 판사로부터 120명 이상이 유죄 판결을 들은 레지오 에밀리아 법원의 법정 안에 아버지와 나란히 섰다. 은드랑게타(‘Ndrangheta)란 이름의 이탈리아 남부에 거점을 둔 대형 마피아 조직을 단죄하는 재판이었다. 이아퀸타는 법원이 총기 소지를 불허한 아버지에게 총기 둘을 건넨 혐의가 인정됐다. 검찰은 6년형을 구형했지만 세 판사들은 2년형을 언도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유죄가 인정돼 19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아퀸타 부자는 선고를 들은 직후 “아둔하고 부끄럽다”고 절규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이탈리아 법률에는 피고가 두 차례 항소할 수 있으며 선고가 확정되더라도 이아퀸타가 실제로 감옥 살이를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은드랑게타는 무려 조직원이 6000명이었던 것으로 미연방수사국(FBI)은 추정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칼라브리아가 주 활동 무대였다. 이탈리아 마피아는 유럽 내 코카인 거래의 80%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아퀸타는 이탈리아 대표팀 경기에 40차례 출전해 6골을 기록했다. 2007년 유벤투스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전까지 우디네세에서 대부분 선수 생활을 했다. 2014년 은퇴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감옥서 최후 맞은 美 ‘1급 악당’ 벌저

    감옥서 최후 맞은 美 ‘1급 악당’ 벌저

    악당이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31일(현지시간) 1970~1980년대 미국 보스턴의 암흑가를 주름잡은 폭력조직의 두목 제임스 ‘화이티’ 벌저가 웨스트버지니아주 브루스톤밀스의 헤이즐턴 교도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89세.벌저는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라덴과 함께 연방수사국(FBI) ‘일급수배자 10인’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모두 19명을 죽이거나 살인을 교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가운데 11건은 유죄가 확정됐다. 그는 16년간 도피 행각을 이어가다 2011년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벌저의 범죄 행각은 ‘디파티드’, ‘블랙매스’ 등 영화의 소재가 됐다. 벌저는 애리조나주 투손 연방교도소 등을 거쳐 사망 전날인 헤이즐턴 교도소로 이송됐다. 당국은 벌저의 사인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NYT는 교정당국자를 인용해 “최소 2명의 재소자가 벌저를 살해했다”고 전했다. FBI는 이송 경위를 포함한 사건 정황을 조사 중이다. 벌저는 2015년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여고생 3명에게 “나는 인생을 허비했고, 바보스럽게 보냈다”면서 “범죄로 돈을 벌려면 로스쿨에 가라”고 답장해 화제가 됐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보스턴의 악명 높은 갱스터 화이티 벌저 이감 직후 주검으로

    보스턴의 악명 높은 갱스터 화이티 벌저 이감 직후 주검으로

    미국 보스턴을 무대로 암약했던 갱스터 제임스 ‘화이티’ 벌저(89)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연방 교도소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동료 수감자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플로리다주의 감옥에서 이감된 30일 아침(현지시간) 1385명의 중죄인들이 수용된 해즐턴 교도소의 집중 감시시설에 수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진 채 발견됐다. 살인 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연방수사국(FBI)의 16년 집요한 추적 끝에 2011년 캘리포니아주에서 검거된 그는 2년 뒤 11건의 살인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었다. 보스턴 남부 윈터힐 갱조직의 리더였던 벌저는 여러 편의 영화 줄거리를 제공한 것으로도 이름 높다. 자니 뎁이 주연한 ‘블랙 매스’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맷 데이먼이 주연해 2007년 아카데미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한 ‘디파티드’가 모두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보스턴 언론들은 그가 이감 직후 동료 수감자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다며 마피아에 연결된 수감자들이 이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연방교정국은 벌저를 왜 이감하도록 결정했는지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일간 보스턴 글로브에 따르면 벌저는 애리조나주의 한 교도소에서 자신을 카운셀링한 여성 정신과 상담의와 너무 가까워졌다는 판단에 따라 플로리다주 교도소로 이감된 적이 있다. 아일랜드계 가정의 여섯 자녀 중 한 명으로 1929년에 태어난 그는 아일랜드 카톨릭의 영향력 아래 양육됐지만 샴록이란 갱조직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자동차를 훔치다가 나중에 은행을 털었다. 10대 때 청소년 비행으로 처음 체포됐다. 그 뒤 돈 갈취, 도박, 고문, 마약 거래와 살인 등 온갖 범죄에 발을 들였다. 무장 강도 및 납치 혐의로 1959년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의 알카트라스에 수감됐다. 그는 그곳을 특히 좋아해 FBI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인데도 여자친구와 함께 그곳을 관광하며 버젓이 죄수복을 입은 채 사진을 찍었다.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무기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일화도 전해진다. 두 여성을 목졸라 살해한 적도 있고 기관총으로 머리를 날려버리기 전에 몇 시간째 남성을 고문한 적도 있었다. 또 유난히 밝은 자신의 은발 머리 때문에 붙여진 별명 화이티를 싫어해 지미라고 불리길 원했다. 다른 갱조직에 대한 정보를 FBI 요원에게 흘려주고 대신 자신의 활동을 보장받는 교활함도 보였다. 동생 윌리엄은 1978년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의장이 되고 나중에 매사추세츠 대학 총장에 오를 정도로 지역사회에 명망 있는 인물이었다. 동생이 형의 범죄 행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당국에 고변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1995년부터 FBI의 추적이 시작돼 무려 16년을 숨어 지내다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검거됐는데 여자친구 캐서린 크레이그와 함께 숨어 다닌 것으로 드러나 그녀는 미네소타주 여자 교도소에 수감됐다. 미국 정부는 그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희생된 이들의 유가족들에게 200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2015년 그는 역사 공부를 위해 편지를 보내온 학생들에게 쓴 답장을 통해 “인생을 낭비했고 어리석게 흘려 보냈다”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9호선 지하철 탑승기, 분노하거나 도를 닦거나/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열린세상] 9호선 지하철 탑승기, 분노하거나 도를 닦거나/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지난여름 서울에 갔을 때 9호선 지하철을 탔다. 9호선을 탄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을 떠난 이후 생긴 노선이기 때문이다. 강남 쪽에서 여의도를 거쳐 가야 했는데, 친구가 이 시간에는 도로가 많이 막힐 거라고 했다. 저녁 약속에 맞추어 가는 길이었다. 언젠가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꼼짝달싹 못 하고 갇혀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 넓은 대로에 그렇게나 많은 차들이 가득 차 조금도 못 움직이고 서 있는 광경을 보고 좀 장관이라고 감탄했다. 런던도 차가 막히는 도시지만, 런던의 도로들은 넓어 봤자 편도 2차선 정도다. 그러니 이런 거대한 주차장과도 같은 장면을 연출할 수는 없다. 그때 물론 약속에 늦었다.충고대로 지하철을 탔는데, 새로 생긴 노선이라 그런지 런던의 지하철보다 매우 좋더라고. 깨끗하고 넓고 모던하다. 런던 지하철은 낡고 좁고 우중충하다. 무엇보다 대개 지하철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으니 여름에 지하철을 타는 것은 꽤나 고역이다. 서울의 지하철은 여름이면 시원하다 못해 춥고 겨울이면 더울 정도로 난방이 되지 않던가. 어쨌거나 9호선 지하철을 타고 서서 가기 시작했다. 조금 멀리 빈자리가 하나 있기는 했는데, 굳이 거기까지 가서 앉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서울의 지하철은 런던에 비해 진동도 심하지 않다. 처음에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서서 가도 될 것 같았던 것이다. 이 결정이 착각이요 패착이었다는 건 그리 머지않아 깨닫게 됐다. 한두 정거장 지나니 사람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으로 구성된 쓰나미처럼. 지하철 안의 모든 것을 덮칠 듯이 사람들이 한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기세란. 정말이지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는데, 바늘 하나 더 꽂을 자리가 없다는 말이 실감 났다. 영국뿐 아니라 서구 사회에서 타인의 몸에 닿지 않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예의다. 이는 혼잡한 시간의 대중교통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수로라도 타인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만일 다른 사람의 몸에 닿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그러니 남을 밀치거나 하면서 혼잡한 차에 올라타는 일은 보기 어렵다. 올라탈 공간이 없을 것 같으면 포기하고 다음 차를 탄다. 반드시 그 차를 타야만 할 사정이 있는 경우 미안하지만 좀 타겠다고 부탁을 하면 이미 탄 사람들이 어떻게든 움직여 공간을 만들어 준다. 물론 사정을 해도 꼼짝도 하지 않는 매정한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니 이 경우에는 급박함의 정도와 투덜거림을 참아 낼 수 있는 신경줄의 두께 등을 고려해 결행할 일이다. 하지만 이때도 가능하면 신체 접촉을 피하고 대개는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아무튼 다시 9호선. 당시 바로 왼쪽에는 젊은 여성이 서 있었는데, 손에 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잡이는 아예 잡지 않고 온몸을 그저 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오른쪽 사람에게 닿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악착같이 잡고 버티는 동시에 왼쪽 사람의 체중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사실은 그토록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매너니 개인적 공간을 논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돼 버렸다. 그 지경이면 그냥 열차가 가면 가는 대로, 멈추면 멈추는 대로 흔들리면서 옆사람에게 자기 체중을 의지하면서 또한 옆사람의 체중을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 그렇게 가는 거다. 옆사람을 견디거나, 싫어하거나, 화를 내거나 아니면 불쌍하게 여기거나 하면서. 나중에 물어보니 어제오늘 일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맞는 일인가. 사람이 사람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말이다. 아침저녁으로 그런 지하철을 타고, 화가 난 채로 하루를 시작하고 진저리를 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인가.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분들에게 꼭 9호선을 타시라고 권하고 싶다. 어쩌다 시민들을 만난다며 이벤트로 타지 말고 9호선을 그것도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타라는 이야기다. 신영복은 여름의 감옥이 더 끔찍하다고 했다. 동료 재소자를 미워하게 되기 때문에. 선량한 시민이 다른 선량한 시민을 미워하기 딱 좋은 것이 9호선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그와 유사한가 싶었다. 분노로 가득차게 되거나 도를 닦게 되겠더라.
  • 임산부 죽이고 뱃속 아기 탈취한 女 방조한 남친도 종신형

    임산부 죽이고 뱃속 아기 탈취한 女 방조한 남친도 종신형

    미국에서 동거한 여자친구가 임산부를 살해한 뒤 뱃속 아기를 탈취하는 것을 도와준 공범 남성에게 종신형이 선고됐다. 미 노스다코다주 파고의 노스다코다주 법원은 29일(현지시간) 동거했던 여자 친구가 이웃의 젊은 만삭 임산부를 살해하고 아기를 탈취하는 것을 도운 윌리엄 호엔(33)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는 동거녀 브루크 크루스(38)가 지난해 8월 임신 8개월 상태의 사바나 그레이윈드(당시 22세)를 죽이고 그 아기를 자궁에서 적출하는 것을 돕고 경찰에 거짓말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크루스는 지난해 호엔과 헤어지기 싫어 그에게 거짓으로 임신했다고 말했고, 호엔은 그렇다면 아기를 진짜로 낳아보라고 압박했다. 이에 다급해진 크루스는 극단적인 수단을 생각해냈다. 크루스는 바느질을 돕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를 방문한 이웃 그레이윈드와 말다툼을 벌인 뒤 그레이윈드를 넘어뜨려 기절한 상태에서 그 자궁을 갈라 아기를 꺼냈다. 크루스는 자신의 혐의를 시인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죽은 엄마의 자궁에서 꺼내진 아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현재 생부가 양육 중이다. 크루스는 법정에서 “당시에는 어떻게든 아기를 갖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느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호엔은 크루스가 그레이윈드를 죽이고 아기를 탈취하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부인했고 다만 아기를 숨기고 경찰에 위증한 혐의만 인정했다. 하지만 크루스는 호엔이 아파트에 들어와 아직 피를 흘리며 살아 있는 그레이윈드를 보고 목을 밧줄로 졸라 숨통을 끊었다고 증언했다. 검시관은 부검 결과 이 산모의 사인이 질식사인지 출혈 과다인지 판정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피살된 그레이윈드의 어머니 노베르타는 법정에서 호엔에게도 종신형을 내려 달라며 “그는 우리 딸이 자기 아파트에서 죽어 있는데도 뻔뻔하게 우리와 얼굴과 시선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제발 이 자를 다시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호엔은 애초에 공모 혐의와 거짓 진술을 이유로 21년 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톰 올슨 재판장은 이날 재판에서 호엔이 위험한 범죄자라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석방을 허용하는 종신형으로 형량을 결정했다. 호엔은 재판에서 자신의 행동은 “정당화하기 불가능한 행위였다”고 사과하면서 “그런 참극을 미리 막을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도움을 줘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시인했다. 한편 현지 경찰은 세 번이나 용의자들의 아파트를 수색했지만 엄마의 시신과 아기를 찾지 못했고 나중에야 아기를 찾아 아기 아버지에게 인계했다. 시신은 비닐에 싸여 레드리버강에 버려졌다가 며칠 뒤 카약을 타던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기고] ‘1991, 봄’/김종식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기고] ‘1991, 봄’/김종식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영화 ‘1991, 봄’ 시사회에 다녀왔다.‘1991, 봄’은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로 시작해 5월 25일 김귀정 열사까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한 11명의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한국판 드레퓌스’로 불리었던 당시 유서 대필과 자살 방조라는 죄명으로 낙인찍힌 스물일곱살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시대적으로 보면 지난해 개봉해 72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1987’의 후속작 같은 영화다. 1987년 6월 항쟁은 미완이긴 해도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승리의 항쟁으로 기억되는 반면 1991년 봄은 실패한 항쟁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성공한 항쟁이 얼마나 될까. 1980년 5월 민중 항쟁은 군인들에 의해 제압됐고 동학혁명도 실패했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과 항쟁의 고귀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겠는가.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의 자료에 따르면 1959년 사형당한 조봉암 선생부터 1987년 이한열 열사까지 수십년 동안 국가에 의해 희생된 열사들보다 1987~1991년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열사들이 많다고 한다.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989년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의 방북으로 통일 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왔고 국가 폭력에 저항해 투쟁이 들불처럼 번져 일어났다. 반통일적이고 반민주적인 불의한 정치 권력과 탐욕스런 자본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이었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민중 항쟁의 5년이었다. 영화에서 노동자 김진숙은 하늘 위에서 369일 동안 고공농성한 이유가 1991년 의문사한 박창수 열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김진숙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죽음을 세상에 말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1987년과 1991년은 2017년 촛불 항쟁으로 연결돼 있다. 영화에서 박승희 열사는 말한다. “왜 사람들은 죽은 사람보다 죽인 사람 편을 들까.” 김귀정 열사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난 무엇이 될까, 10년 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필자는 1991년 봄의 싸움으로 감옥에서 4년을 보내는 대가를 치렀지만 여전히 살아 있기에 김귀정 열사의 질문이 현재진행형이다. 거울을 보듯 내 삶을 성찰하게 만들었고 내 삶의 무수한 선택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끊임없이 되묻게 했다. 그 질문들은 내 인생의 항로에서 흔들림 없이 어두운 밤 갈 길을 밝혀 주는 북극성 같은 질문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1991, 봄’은 회고적이기보다는 대단히 성찰적인 영화다.
  • ‘피해자들 아픔 기억하고, 과거 잘못 단죄해야’…나눔의 집, 조소 작품 설치

    ‘피해자들 아픔 기억하고, 과거 잘못 단죄해야’…나눔의 집, 조소 작품 설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은 지난 27일 오전 ‘고 배춘희 할머니 흉상 제막식’과 ‘2018 나눔의 집 조소 작품 공모전’ 수상작 시상식을 열었다. 또 영화 ‘귀향’ 세트장으로 조성된 영상기념관과 고인이 되신 할머니들을 기리는 추모공원을 공개했다. 행사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던 하점연(향년 97세) 할머니가 지난 10월 26일 별세한 상황을 고려해 간결하게 치러졌다. 배 할머니의 흉상은 세상을 먼저 떠난 김학순, 강덕경, 김순덕, 문필기, 박두리 할머니 등 9명의 피해자 흉상과 함께 자리했다. 배춘희 할머니 흉상을 제작한 이행균 작가는 “할머니와 닮게 만들었지만 미소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담기가 어려워 작업하면서 마음이 아팠다”며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각자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일본이 우리 앞에서 무릎 꿇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은 “엄숙하고 좋은 날, 이곳을 찾게 된 것이 영광스럽다”며 “‘귀향’ 제작진 모두 한마음으로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와 보상을 바란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해결 가능한 그날까지 포기하지 말고 함께 싸워나가자”고 말했다. 동상 제막식에 이어 영화 ‘귀향’ 세트장으로 조성된 영상관 개관과 추모공원 개원식이 진행됐다. 시민이 부지 300여㎡를 기부해 조성된 공원에는 이번 조소공모전의 수상작들이 전시됐다. 조소작품 공모전 대상에는 양형규 작가의 ‘새가 되어...’가 선정됐다. ‘새’가 된 손을 통해, 일제의 폭력 속에서도 고향과 자유 의지를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소녀의 모습을 표현한 양 작가는 “할머니들의 가슴 속 상처를 잊지 않고 후대에 전하는 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몫”임을 강조했다.또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일임을 강조한 변사무엘 작가의 ‘단절된 시간’에 금상을, 일제강점기 시대 성노예로 끌려가 감옥에 갇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던 상황을 묘사한 김재호 작가의 ‘문 없는 집’, 일제의 전쟁범죄를 고발한 강민수 작가의 ‘숨길 수 없는 진실’이 은상을 수상했다.동상에는 차준홍 작가의 ‘흰 나비를 닮은 나비가 아닌 것’, 안경문 작가의 ‘귀향’, 이상희 작가의 ‘바람...처럼’, 양진옥 작가의 ‘그 날’이 각각 선정되었다. 작가들 모두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과거의 잘못을 단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수갑차고 매일 16시간 채팅 사기 강요당하다 남편 경찰에 신고

    수갑차고 매일 16시간 채팅 사기 강요당하다 남편 경찰에 신고

    한 중국 여성이 하루에 16시간씩 인터넷 채팅으로 다른 남성을 유혹해 돈을 뺏도록 강요한 남편을 경찰에 신고했다. 이 여성의 남편은 아내가 인터넷 사기를 통해 번 돈으로 비싼 스포츠카를 사고 성매매를 하다 결국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충칭 샤핑바법원이 남편을 신고한 여성에게도 2년 형을 선고했다고 27일 보도했다. 이 여성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8월까지 약 18개월 동안 인터넷 사기로 31만 위안(약 5000만원)을 갈취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매일 컴퓨터 앞에서 채팅으로 가난을 빙자해 동정을 사거나 낯선 남성들을 성적으로 유혹해 돈을 뺏었다. 이 여성의 남편은 아내의 한쪽 손과 자신의 손을 수갑으로 연결해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은 “남편이 어디를 가든 따라다녀서 도망갈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여성의 남편은 인터넷 채팅 사기로 하루 최소 3000위안(약 50만원)을 벌라고 요구했으며 아내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폭행까지 저질렀다. 이 여성은 주로 양쯔강 삼각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사기 목표로 삼았는데 이 지역 거주자들이 대체로 부유하기 때문이었다. 사기 피해자들은 여성에게 선의로 돈을 주기도 했으며 때때로 채팅을 통해 누드 사진을 요구했다. 자기 지역을 방문해 함께 놀자고 한 사기 피해자들도 있었다. 한 남성은 6만 위안의 거금을 송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기로 벌어들인 모든 돈은 남편이 낭비했으며 집으로 성매매 여성을 불러 침대에서 자는 것을 아내가 보도록 강제했다. 샤핑바법원은 여성이 남편의 협박으로 사기 범죄를 저지른 데다 7살 난 딸을 키워야 하는 점을 고려해 남편보다 관대한 처벌을 내렸다. 법원은 사기 피해자들을 보상하기 위해 이 부부의 차는 경매에 처했다. 몇몇 피해자들은 여성의 사연이 지역 언론에 보도되자 돈을 돌려받길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이용자들은 “남편의 협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 경찰에 신고한 여성이 왜 감옥에 가야 하나? 남편에 대한 처벌이 너무 관대하다”는 등의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네티즌은 “만약 이 여성이 그렇게 오랫동안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구조 요청을 할 수도 있었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여기는 중국] 강간·살인으로 투옥된 男, 23년 만에 ‘증거 불충분’ 판결

    [여기는 중국] 강간·살인으로 투옥된 男, 23년 만에 ‘증거 불충분’ 판결

    성폭행 및 살인 혐의로 감옥에 수감돼 23년 형을 산 한 남성이 뒤늦게 재판부로부터 '증거 불충분’ 판결을 받았다. 중국 법제일보 등 현지 언론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진 저훙(50)은 23년 전인 1995년 한 여성(사망 당시 20세)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재판부는 진 씨가 피해 여성을 오토바이로 납치한 뒤 성폭행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고, 이후 이어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초 진 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후 돌연 재판장에서 자신의 혐의를 자백했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23년 째 복역 중이었다. 하지만 진 씨는 2014년부터 자신이 무죄라고 다시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자백은 경찰 측으로부터 고문을 당한 뒤 거짓으로 진술한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에 현지 법원은 지난 3월부터 재조사에 들어갔고, 지린성(省) 고등법원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24일 열린 재판에서 진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검사와 변호사 모두 진 씨 사건의 증거가 불충분하고 사건의 인과관계가 명확치 않다는 사실을 판사 측에 전달했다. 실제로 이 사건은 피해 여성과 가해자로 추정되는 진 씨를 제외하고, 특별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었다. 특히 진 씨의 진술은 피해 여성의 살해 추정 시각 및 장소 등과 일치하지도 않았다. 진 씨의 변호사는 “증거도 목격자도 불분명한데다 의뢰인의 진술서도 실제 사건과 일치하지 않았고 동기도 불분명했다. 대부분이 의뢰인의 거짓 자백으로만 판결이 났다”고 주장했고, 결국 법원은 이를 인정했다. 지린성 고등법원이 최종 판결 날짜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현지 법조계에서는 그가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진 씨의 변호사는 “그가 억울하게 투옥돼 있는 동안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그를 버렸으며, 아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커야 했다”면서 “그는 다시 사회에 복귀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강간·살인으로 투옥된 男, 23년 만에 ‘증거 불충분’ 판결

    강간·살인으로 투옥된 男, 23년 만에 ‘증거 불충분’ 판결

    성폭행 및 살인 혐의로 감옥에 수감돼 23년 형을 산 한 남성이 뒤늦게 재판부로부터 '증거 불충분’ 판결을 받았다. 중국 법제일보 등 현지 언론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진 저훙(50)은 23년 전인 1995년 한 여성(사망 당시 20세)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재판부는 진 씨가 피해 여성을 오토바이로 납치한 뒤 성폭행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고, 이후 이어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초 진 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후 돌연 재판장에서 자신의 혐의를 자백했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23년 째 복역 중이었다. 하지만 진 씨는 2014년부터 자신이 무죄라고 다시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자백은 경찰 측으로부터 고문을 당한 뒤 거짓으로 진술한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에 현지 법원은 지난 3월부터 재조사에 들어갔고, 지린성(省) 고등법원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24일 열린 재판에서 진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검사와 변호사 모두 진 씨 사건의 증거가 불충분하고 사건의 인과관계가 명확치 않다는 사실을 판사 측에 전달했다. 실제로 이 사건은 피해 여성과 가해자로 추정되는 진 씨를 제외하고, 특별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었다. 특히 진 씨의 진술은 피해 여성의 살해 추정 시각 및 장소 등과 일치하지도 않았다. 진 씨의 변호사는 “증거도 목격자도 불분명한데다 의뢰인의 진술서도 실제 사건과 일치하지 않았고 동기도 불분명했다. 대부분이 의뢰인의 거짓 자백으로만 판결이 났다”고 주장했고, 결국 법원은 이를 인정했다. 지린성 고등법원이 최종 판결 날짜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현지 법조계에서는 그가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진 씨의 변호사는 “그가 억울하게 투옥돼 있는 동안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그를 버렸으며, 아들은 다른 사람의 손에 커야 했다”면서 “그는 다시 사회에 복귀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강서구 아파트 살인’ 피의자 영장심사 출석…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

    ‘강서구 아파트 살인’ 피의자 영장심사 출석…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전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49)씨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25일 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범행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김씨는 이날 오전 9시 56분쯤 서울남부지법에 도착했다. 검은색 패딩과 마스크, 모자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바로 법정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지난 22일 새벽 4시 45분쯤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전 아내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혼 과정에서 쌓인 감정 문제 등으로 전 아내를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피해자의 딸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강서구 등촌동 47세 여성 살인사건의 주범인 아빠는 절대 심신미약이 아니고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면서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청원했다. 피해자의 딸은 또 “어머니는 25년 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 수차례 살해 협박 끝에 결국 죽임을 당했다”면서 김씨가 평소 딸에게 “엄마 죽이고 나서 감옥에서 6개월만 살다 나오겠다”는 말을 했다. 김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서울 강서경찰서는 “과거 가정폭력 혐의로 신고된 사실이 있다”면서 “철저한 계획범죄로 보인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25년간 가정폭력 시달린 엄마, 결국 살해당해”

    “25년간 가정폭력 시달린 엄마, 결국 살해당해”

    “아빠 협박에 결혼… 수차례 살해 위협”“어머니는 25년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수차례 살해 협박 끝에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살해된 이모(47)씨의 딸 김모(21)씨는 24일 양천구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씨의 빈소에서 터져 나오는 슬픔을 억누른 채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김씨는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빠는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다. 사형을 선고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딸 김씨에 따르면 아버지 김모(48)씨의 폭력은 25년 전 시작됐다. 이씨는 헤어지고 싶어 했으나 “헤어지면 죽여버리겠다”는 흉기 협박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했다. 폭력은 계속됐지만 딸을 위해 이씨는 폭력을 견디고 또 견뎠다. 2015년 2월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온 이씨는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한 아버지 김씨에게 얼굴을 심하게 얻어맞았다. 당시 18살이던 딸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아버지 김씨는 연행된 지 하루 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이씨는 이혼 소송을 냈고 그해 9월 남남이 됐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 김씨가 끊임없이 찾아와 모녀는 4년 동안 6차례나 이사를 거듭했다. 2016년 흉기를 들고 찾아왔을 때 아버지 김씨는 또 경찰에 연행됐으나, 보복을 두려워한 이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풀려나고 말았다. 아버지 김씨는 평소 딸에게 “엄마 죽이고 나서 감옥에서 6개월만 살다 나오겠다”는 말을 했다. 또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이씨의 주변을 맴돌며 동선을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김씨는 이씨가 아침 일찍 수영장에 간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렸다가 이씨를 살해했다. 흉기는 현장에 그대로 두고 도주했다. 딸 김씨는 “아버지는 엄마를 죽인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날 잡아가라는 뜻으로 흉기를 두고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4일 아버지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가정폭력 혐의로 신고된 사실이 있다”면서 “철저한 계획범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참혹한 살인으로 비극적 결말 맺은 ‘25년 가정폭력’

    참혹한 살인으로 비극적 결말 맺은 ‘25년 가정폭력’

    “엄마 죽이고 감옥서 6개월이면 나온다고 해극악무도한 아빠 사형시켜 주세요” 靑청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25년간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수차례 살해 협박 끝에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살해된 이모(47)씨의 딸 김모(21)씨는 24일 양천구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이씨의 빈소에서 터져 나오는 슬픔을 억누른 채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앞서 김씨는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빠는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다. 사형을 선고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김씨에 따르면 아버지 김모(48)의 폭력은 25년 전 시작됐다. 이씨는 김씨와 헤어지길 원했으나, 김씨가 “헤어지면 죽여버리겠다”며 흉기로 협박해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야만 했다. 결혼 이후에도 김씨의 폭력은 계속됐다. 하지만 이씨는 아이들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견뎠다. 2015년 2월 김씨는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온 이씨가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하고 이씨의 얼굴을 심하게 때렸다. 당시 18살이었던 딸은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김씨는 경찰에 연행된 지 하루 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이씨의 ‘합의이혼’ 요구를 김씨가 거절하자 이씨는 이혼 소송을 냈고 결국 그해 9월 이혼했다.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모녀는 4년 동안 6차례 이사를 거듭했지만, 김씨는 이씨와 딸이 사는 집을 수소문해 끊임없이 찾아왔다. 2016년 김씨가 흉기를 들고 찾아왔을 때 이씨는 김씨를 타일러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식당 주인에게 눈빛을 보내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이 김씨를 연행했으나, 이씨는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경찰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했고 김씨는 또 풀려났다. 김씨는 평소 딸에게 “엄마 죽이고 나서 감옥에서 6개월이면 나올수 있다”는 말을 했다. 또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이씨의 주변을 맴돌면서 동선을 파악하고 살해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씨가 아침 일찍 수영장에 간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씨의 아파트 앞에서 기다렸다가 이씨를 살해했다. 흉기는 현장에 그대로 두고 도주했다. 딸 김씨는 “아버지는 엄마를 죽인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날 잡아가라는 뜻으로 흉기를 두고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4일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24일 “김씨는 과거 가정폭력 혐의로 경찰에 신고된 사실이 있다”면서 “철저한 계획범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줄무늬의 이중성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줄무늬의 이중성

    줄무늬가 서양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3세기 중반 가르멜수도회 수도사들이 줄무늬 망토를 걸치고 파리에 들어가면서였다. 파리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면서 그들을 경멸했다. 중세 유럽인에게 줄무늬는 ‘다양성’을 의미했다. 오늘날에는 다양성을 젊음, 관용 같은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중세에는 다양성이 죄악과 지옥을 연상시키는 부정적 개념이었다. 호랑이·하이에나·표범 같은 줄무늬 동물도 중세인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긍정적 의미의 줄무늬는 1776년 미국 독립혁명과 더불어 확산되기 시작했다. ‘낭만과 혁명’을 뜻하는 줄무늬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영국과 적대 관계였던 프랑스는 아메리카 식민지인을 지지하면서 미국적인 것에 끌렸다. 성조기의 줄무늬는 자유의 상징물로 부각됐다. 이때부터 줄무늬는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된다. 줄무늬 옷은 영국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한 수단이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삼색기를 비롯해 다양한 줄무늬를 채택했다. 줄무늬 옷을 입는 것은 혁명 이념을 적극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삼색기가 자유와 독립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삼색기를 모방한 국기가 유럽 각국에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줄무늬에는 상반된 가치가 공존한다. 18세기 말에 사람들이 줄무늬 옷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죄수였다. 프랑스는 특히 죄수들에게 줄무늬 옷을 많이 입혔다. 죄수복의 줄무늬는 감옥의 창살과 밀접한 상징적 관계를 갖는다. 줄무늬는 ‘보호’의 의미도 있다. 잠잘 때 입는 파자마가 줄무늬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잠잘 때 무방비 상태가 된다. 잠든 동안 악령과 악몽에서 우리를 지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줄무늬 파자마를 입는 것은 아닐까? 횡단보도의 줄무늬는 통행의 어려움을 뜻하지만, 동시에 안전한 통행 가능성을 뜻한다. 통행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보행자를 보호하기도 한다. 줄무늬를 가로세로 엮으면 그물이 된다. 소외 계층에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의 ‘망’(網)이 ‘그물망’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진사회일수록 정교한 줄무늬가 필요한 이유다.
  • 롯데, 5년간 50조 투자·7만명 일자리 창출 ‘청사진’

    롯데, 5년간 50조 투자·7만명 일자리 창출 ‘청사진’

    유통·화학 중심 미래 먹거리 발굴 역점 첫해인 내년 투자액 12조 사상 최대 규모 전자상거래 육성… 온라인사업 1위 목표 신 회장 日 출장 호텔롯데 상장 논의할 듯지난 5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감옥에서 풀려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곧장 경영 일선에 복귀하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롯데그룹이 앞으로 5년 동안 50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추진하고 7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대규모 청사진을 내놨다. 약 8개월 동안 총수 부재로 사실상 ‘경영 시계’가 멈췄던 롯데가 본격적으로 재가동에 나섰음을 대내외적으로 보여 주는 동시에 떨어진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신 회장의 의지를 반영했다는 해석이다. 롯데그룹은 23일 임원회의를 열어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결정하고 “향후 5년 동안 국내외 전 사업 부문에 걸쳐 50조원을 투자하고, 같은 기간 7만명을 고용해 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신 회장이 “롯데가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에서 모색해 달라”고 주문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롯데는 그룹의 양대 축인 유통과 화학부문을 중심으로 2023년까지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그룹 전반에서 디지털 전환을 이루고, 해외에서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신시장 진출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롯데가 공개한 계획안에 따르면 5년 동안 예정된 50조원의 투자액 가운데 화학·건설이 40%, 유통이 25%, 관광·서비스가 25%, 식품이 10%를 각각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해인 내년에는 약 12조원의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국내 유화사를 인수했던 2016년 투자금액인 11조 2000억원을 넘어서는 수치로 사상 최대 규모라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우선 전자상거래(이커머스)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온라인 사업 역량을 업계 1위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물류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는 등의 세부 계획을 수립했다. 또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복합쇼핑몰 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화학부문에서는 국내 여수·울산·대산 지역 및 인도네시아, 미국 등 국내외 생산 거점에 대규모 설비 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뤄 글로벌 경쟁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롯데는 이날 5년 동안 7만명에 달하는 고용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롯데 관계자는 “올해는 대내외 여건이 악화돼 연말까지 1만 2000명가량의 채용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약 10% 증가한 1만 3000명 이상을 채용하는 등 매년 규모를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통부문의 이커머스 분야에서 많은 채용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신 회장의 구속 수감으로 잠정 중단됐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 회장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신 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일본 롯데홀딩스의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고바야시 마사모토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주요 경영진을 만나 현안을 보고받고, 한국 롯데그룹과 맞물려 있는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분의 99.28%를 일본 롯데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호텔롯데를 상장하는 것이 신 회장이 하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마지막 단추인 만큼 일본 주주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37년간 지킨 것은…

    [그 책속 이미지] 37년간 지킨 것은…

    바꿀수없는/정지윤 지음/h2(에이치투)/226쪽/2만원양희철. 1934년생. 1955년 고려대 상과대에 입학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4·19 학생운동에 가담한다. 1961년 남파공작원으로 내려왔던 큰형과 함께 월북했다. 이후 체코에서 유학하다 5·16 쿠데타를 접한 뒤 월남해 학생운동을 하다 1963년 4월 12일 체포된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고려대 학생들 앞에서 10분간만 전향 연설을 하면 바로 풀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양씨는 거절한다. 10분 연설을 포기한 대가는 참으로 가혹했다. ‘양희철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된다. 수갑이 채워진 채 거꾸로 매달려 포승줄로 난타당하는 고문을 받고, 살기 위해 쥐를 잡아먹기도 했다. 37년이 지난 1999년, 3·1절 특사로 풀려난다. 그때 그의 나이 예순여섯이었다. 신간 ‘바꿀수없는’은 양씨와 같은 비전향장기수 19명을 담은 사진 에세이집이다. 일본 사상 검사들이 만들어낸 ‘전향’(轉向)의 반대말 ‘비전향’의 감옥에 갇혀 오랫동안 탄압받던 이들이다. 경향신문 사진부 기자인 저자가 담은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은 더도 덜도 없어 더 와 닿는다. 모진 옥살이를 겪으면서도 그들이 바꿀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20(끝)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20(끝)

    서울신문은 대한제국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찾았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직접 조선과 일본에 머물려 취재해 쓴 이들 소설에는 고종의 해외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대한제국이 배경인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먼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 <마지막회(20회)>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과 소녀, 그리고 내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작은 드라마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 실패한 뒤 소녀와 나는 요트를 타고 상하이로 건너왔다. 그 뒤 나는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 브루클린에 터를 잡았다. 우리가 모험을 펼쳤던 조선은 어떻게 됐냐고? 베델과 민영환 대감이 황제를 데리고 궁으로 돌아간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11월 17일. 마침내 하세가와(당시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관으로 훗날 조선의 2대 총독이 되는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군대를 소집해 경운궁을 에워쌌다.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이토(이토 히로부미)가 궁에 직접 들어가 겁쟁이 황제(고종)에게 “조선은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 결국 일본은 이날 강제로 조약(을사늑약)을 체결했다. 그 일 뒤로 2년이 지난 1907년 7월. 우리가 구하려 했던 조선의 늙은 왕은 일본에게 왕위마저 빼앗겼다. 이후 궁에 갇혀 사실상 옥살이를 시작했다. 이에 격분한 조선의 애국자들이 의병대를 꾸려 서울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지만 안타깝게도 일제에 의해 잔혹하게 처단됐다. 조선 역사에 큰 죄를 지은 황제는 지금(이 소설을 출간하는 1912년 12월)도 궁에서 살고 있다. 민 대감은? 조선 왕이 일본의 총검 앞에서 외교권을 포기하는 조약(을사늑약)에 서명한 다음날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적어도 언론을 통한 ‘공식적인’ 경로로는 그렇게 알려졌다. 하지만 저 너머에 있는 진실을 과연 누가 알겠나... (번역자주:이 부분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민영환이 일본인들에게 의해 타살된 뒤 자살로 위장 처리됐을 것이라는 설정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죽지 않고 해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나섰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아마도 작가가 이 소설을 시리즈로 쓰려고 ‘열린 결말’의 형태로 남겨둔 것으로 보입니다.)가장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 건 나의 오랜 벗 베델이었다. 영국은 동맹국인 일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재판정에 세웠다. 영국의 벗인 일본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반역을 선동했다는 혐의다. 결국 베델은 영국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상하이에 있는 영국 감옥에서 복역했다. (번역자주:실제로 베델은 1908년 6월 서울 주재 영국총영사관에서 재판을 받고 3주간 금고형(6개월 근신 포함) 선고를 받았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영국인을 구금할 시설이 없어 중국 상하이에 있던 영사관 내 감옥으로 보내졌습니다. 인천과 상하이 간 정기 배편이 없었기에 영국 군함 ‘클리오’호가 베델 한 사람을 데리러 인천에 오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감옥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영자지)를 발간하며 일본인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이 저항은 오래 가지 못했다. 조선에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고 얼마 안 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내가 아는 한 베델은 지금도 그 유령의 땅(조선)에 묻혀 있다. (번역자주:베델은 평소에도 몸을 돌보지 않던 성격이었던데다 일제의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독주와 담배로 달랜 것이 원인이 돼 1909년 5월 1일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토 히로부미는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듯 주도면밀하게 조선 병합 작업을 진행하다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한 조선인(안중근)의 총에 맞아 숨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생전에 그토록 원하던 바람이 이뤄졌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어디선가 고통받는 ‘지은’이를 구하는 불씨 되길”

    “어디선가 고통받는 ‘지은’이를 구하는 불씨 되길”

    옆집 학대받던 아이를 본 경험서 시작 아동학대는 정신을 죽이는 것과 같아 영화 본 관객들이 주위 둘러봐 주시길 고생한 아역 시아양에게 짠하고 고마워영화 ‘미쓰백’은 편한 마음으로 보기에는 꽤 무거운 작품이다. 가슴을 들끓게 하는 분노의 순간과 자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학대받고 버림받은 상처를 지닌 백상아(한지민)가 친부와 친부의 애인으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아이 지은(김시아)을 구하기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깡마른 몸에 온몸이 시퍼런 멍투성이인 지은은 게임 중독인 아빠와 동거녀로부터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한다. 어두컴컴한 화장실에 숨어 지내다가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하는 지은이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쓰라릴 정도로 애처롭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이 작고 힘없는 아이를 온몸으로 지키는 상아를 향한 지지는 영화를 볼수록 단단해진다.아이에 대한 연대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는 백상아는 이 작품을 연출한 이지원(37) 감독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수년 전 이 감독이 실제 경험했던 일이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의 바탕이 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이 감독은 “6~7년간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져서 매일 수면제를 먹고 잠들 정도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옆집에서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면서 “화장을 하고 옷도 잘 차려입은 옆집 엄마가 아이를 끌고 가듯이 지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때 나를 바라본 아이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꿈에서 ‘저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서 세상 밖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어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옆집이 이사를 했더라고요. 결국 ‘내 고통에 사로잡혀서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못해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미쓰백’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죠.” 이 감독은 아동보호센터와 전문가들을 통해 알게 된 6~7건의 실제 아동학대 사건을 종합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피해 아동들을 상담했던 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정보도 수집했다.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참담한 실태에 너무 화가 나서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충격적이고 가슴 아팠던 사실은 ‘지은’이와 같은 아이들을 발견한다고 해도 고통은 계속된다는 사실이었어요. 폭력이 끊임없이 대물림되고 그 폭력이 남긴 상처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거죠. 아동학대는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이의 어린 시절 멘탈(정신)을 죽이는 것과 똑같아요. 살인과 비슷한 행위를 저지르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그야말로 솜방망이이고,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5~6년 지나 (감옥에서)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죠. 아이는 또 불안에 떨면서 살아야 하고요.” 영화는 시종일관 현실의 어두컴컴한 그림자를 보여 주지만 마냥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디딘 지은이가 평범한 일상생활을 누리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관객들이 지은이를 보며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예쁜 아이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나’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사실 마주하기엔 불편한 현실이지만 영화를 보신 관객들이 주위를 둘러보게 되면 좋겠어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지 모르는 ‘지은’이들을 구해 낼 수 있는 데 이 영화가 미약하나마 작은 불씨가 될 수 있다면 영화를 고생해서 만든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영화에 오롯이 빠져들게 하는 데에는 6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지은 역에 캐스팅된 김시아(10)양의 역할이 크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과 우수에 찬 깊은 눈빛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붙든다. 이 감독 역시 시아양에 대한 감정이 남달라 보였다. “보통 아이들은 오디션 볼 때 겁에 질리거나 무서워하는데 시아는 고목나무가 들어앉은 것처럼 흔들림이 없더라고요. 제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른이랑 대화하는 느낌이었죠. 연기를 처음 해 보는 아이인데 촬영만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요. 사실 촬영할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시아를 볼 때마다 짠했어요. 영화 개봉도 예정보다 미뤄져서 내심 미안했는데 윤가은 감독님 신작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그다음 작품까지 예약돼 있다는 소식 듣고 울었어요. 마음으로 낳은 자식 같은 아이거든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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