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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창동계올림픽유치D-1] 내일밤 12시 운명이 발표됩니다

    [평창동계올림픽유치D-1] 내일밤 12시 운명이 발표됩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 후보 도시의 운명이 6일(현지시간) 갈린다. 이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투표는 어떻게 진행될까. 오전 8시 30분 국제컨벤션센터(ICC) 세션룸에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개회사로 제123차 IOC 총회가 개막된다. 8시 45분 뮌헨(독일), 안시(프랑스), 평창 순으로 후보 도시 프레젠테이션이 펼쳐진다. 후보 도시들은 저마다 ‘필살기’를 내세워 지지를 호소한다. 오찬 뒤 오후 2시 45분부터 IOC 현지 실사 평가단의 보고와 개최지 선정 시험 투표가 이어진다. 마침내 오후 3시 35분. IOC 위원들이 ICC 세션룸에 집결, 개최지 선정을 위한 전자투표에 돌입한다. 불과 15분 안에 세 후보 도시의 희비가 완전히 갈린다. 위원들 테이블 밑에는 1, 2, 3 등 번호가 붙은 버튼(전화기 키판 형태)이 있고 후보 도시별로 번호가 부여된다. 간혹 번호를 잘못 눌러 기권 또는 오표로 처리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실제로 2005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2년 하계올림픽(런던) 투표 당시 A위원이 스페인 마드리드 대신 영국 런던으로 잘못 눌러 소동을 빚었다. 그는 단상에 올라 재투표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33-31로 런던이 앞섰다. 그가 제대로 눌렀다면 동수가 나와 이후 상황은 예측불허였다. 또 옆 위원이 어느 도시를 지지하는지 슬쩍 엿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버튼을 누르면 결과가 모니터에 뜨고 IOC 감사와 감표원들이 집계한다. 이후 로게 위원장에게 결과 봉투가 건네진다. 위원장은 반수가 넘은 도시가 나오면 예정된 공식 발표 시간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과반수를 얻은 도시가 없으면 탈락 도시를 즉시 발표한다. 남은 두 후보 도시의 번호가 다시 배정되고 2차 결선 투표로 곧바로 이어진다. 2차 투표가 끝나면 세션룸에서 오디토리엄으로 장소를 옮겨 오후 5시 개최지를 공식 발표한다. 이때 단상 하단에 올림픽 패밀리와 두 후보 도시 관계자들이 자리 잡고 그 뒤에 TV 카메라가 위치한다. 단상 양쪽으로 사진기자들이 자리하는데 이들이 쏠리는 쪽이 개최 도시로 유력해 주목된다. 두 도시 관계자들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 위원들이 자리를 잡으면 화동이 개최 도시가 담긴 편지 봉투를 위원장에게 전달한다. 위원장은 개최 도시의 이름을 호명한 뒤 봉투에 담긴 도시명을 뒤집어 앞쪽에 내보인다. 이후 도시별 득표 수가 발표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더반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19년 전 中서 잃어버린 아이, 美서 발견된 사연

    19년 전 中서 잃어버린 아이, 美서 발견된 사연

    19년 전 중국의 한 기차역 앞에서 잃어버린 아들이 최근 미국에서 발견되는 기막힌 사연이 알려졌다. 19년 전 리쉬원(李緒文)씨는 중국 장쑤성(江蘇省) 쑤저우시(蘇州市) 난징(南京)역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5살 난 아들을 잃어버렸다. 사방팔방 아들을 찾아나선 리씨. 경찰에도 신고하고 아들을 보호할 만한 곳 모두를 수소문 했으나 결국 리씨는 아들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얼마전 리씨는 중국 아동복지센터에서 보내온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자신의 아들이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되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또 아들 리샹(24)이 양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자라나 현재 대학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근황도 전했다.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찾은 리씨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너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원만한 가정 그자체였을 것” 이라며 “미국에서 살지, 중국에서 살아갈지는 너의 의사에 맡긴다.” 고 적었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리샹의 양부모는 “현재 리샹이 대학원 시험을 앞두고 있다.” 며 “친부모를 만날 것인지는 리샹 개인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고 밝혔다. 리씨는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을 찾아준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 며 “집을 팔아서라도 아들을 지원해 진짜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리샹이 19년 전 실종돼 미국으로 입양된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신영록 50일만에 기적의 의식회복···박경훈 감독 “감독님 해봐”

    신영록 50일만에 기적의 의식회복···박경훈 감독 “감독님 해봐”

     경기 도중 쓰러졌던 신영록(24·제주 유나이티드)이 마침내 긴 잠에서 깨어났다. 50일 만이다.  제주 구단의 관계자는 27일 “제주한라병원으로부터 신영록이 많이 좋아져 의식을 찾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신영록은 현재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다. 세밀한 움직임은 어렵지만 빠르게 호전되고 있어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신영록은 지난 달 8일 K리그 경기에 출전했다가 후반 종료 직전 갑자기 쓰러져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동안 저체온 치료와 수면치료를 받아왔다.  한편 신영록의 아버지 신덕현씨는 아들이 의식을 회복하자 가장 먼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신씨는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필편지에서 “영록이가 기나긴 악몽에서 깨어나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의 애정과 관심 덕분에 저희 가족들은 희망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영록이를 아끼고 사랑한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신영록의 의식회복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박경훈 감독도 감격을 함께 누렸다. 박 감독은 “영록아 감독님 해봐.”라며 말을 시켰고 신영록은 힘겹지만 뚜렷한 목소리로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이어 “영록아 손 한 번 잡아봐.”라고 하자 신영록은 왼손을 들어 박 감독의 손을 잡았고 병실은 감동의 물결을 이뤘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서울광장] 양건 감사원장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양건 감사원장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감사원장님은 기억나지 않겠지만 1980년대 대학생이던 필자가 다니던 대학에 외부 강사로 ‘헌법’을 강의하실 때 한 학기 내내 뵈었습니다. 지금까지 따로 만나 인사드린 적이 없으니 제자라고 내세울 처지도 못 되지요. 예의 없는 제자가 옛 스승께 어쭙잖게 펜을 든 것은 작금의 감사원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입니다. 검은 돈을 받고 감사 무마 청탁에 나선 감사위원(차관급), 구제역 최일선 감사 현장에서 피감기관들과 음주가무를 즐긴 감사관들, 해외출장 간 군 장성을 문책 요구 대상에 넣었다가 뺀 천안함 감사. 국민들 눈에 비친 나사 빠진 감사원의 현주소입니다. 나랏돈이 허투루 쓰이는 걸 제대로 잡아 낼는지,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는 추상같은 영(令)을 세울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여기저기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조롱이나 받는 건 아닌지요. 감사원의 상징이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마패’인 것은 아시지요.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한 은진수 전 감사위원 구속 건은 암행어사가 도적들과 한패가 돼 선량한 백성들을 등친 것과 다를 바 없죠. 나쁜 놈들 잡아들이라 나랏님이 마패까지 내줬더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래도 감사원 맨들은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인사의 일”이라며 선을 그으려 합니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내부 인사라고 그리 큰소리칠 위치에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원내에서조차 “특정인은 운이 좋아 저축은행 사태에서 비켜난 것 같다.”는 식의 얘기가 흘러나왔던 것을 보면 평소 엄격한 자기관리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감사원 맨들이 없진 않나 봅니다. 앞으로 정당 출신 인사는 감사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한다는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내부 인사, 외부 인사 각 3명씩 땅따먹기 하듯 나눠 먹는 감사위원.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자질 검증 없이 아무나 가서야 되겠습니까. 금명간 은 전 위원의 후임과 오는 11월 퇴임할 하복동 위원 후임 등 감사위원 자리가 두 자리나 비니 그 자리를 노린 이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죠. 이참에 감사위원 인선을 한층 깐깐하게 스크린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조선시대 감사원 역할을 하던 사헌부의 관료인 대관(臺官)만 하더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4대 친족까지 ‘현미경 검증’을 했습니다. 다른 어떤 관직보다 더 엄하고 까다롭게 인선을 했지요.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규찰·탄핵해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인물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죠. 공정과 청빈은 기본이고, 뛰어난 식견과 강직한 성품도 필수였죠. 제약도 많았지요. 첫째, 공금횡령, 부정축재 또는 뇌물을 받은 탐관오리의 아들·후손은 대관에 임명되지 못했지요. 둘째, 정실에 흐르지 않도록 다른 관직보다 훨씬 심한 상피제(친족이 같은 관청·지역에 일하지 못하게 한 제도)의 적용을 받았지요. 셋째, 본인을 비롯해 부모와 처의 4대조(代祖) 허물까지 샅샅이 뒤졌다죠. 오늘날 총리·장관 인사청문회는 저리 가라입니다. 취임 전 일이긴 해도 사실 저축은행 사태 전부터 이미 감사원은 망가져 가고 있었습니다. 과거 정권에서 청와대에 파견 나갔던 감사원 출신들이 체급도 안 되는데 대통령과의 학연·지연으로 사무총장으로 금의환향하면서 감사원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줄 잘 서면 된다.’는 정치 학습으로 감사원 기강은 해이해졌고, 출세의 처세술을 익힌 이들의 벼락 승진은 감사원 문화를 퇴행시켰지요. 실세 사무총장이 감사원장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희한한 일이 생긴 것도 그리 먼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현재 작금의 사태들이 터진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은 전 위원만 하더라도 맑은 물을 흐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아니라 이미 감사원은 미꾸라지가 놀기 좋은 흙탕물이었던 거죠. 지금 감사원은 개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흐트러진 내부 조직부터 다잡으셔야 합니다. 감사원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bori@seoul.co.kr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연임] “행복하려면 총장직 안 맡아야”

    “행복하려면 유엔 사무총장을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1일(현지시간) 연임이 확정된 뒤 유엔 한국대표부에서 가진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희생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드러냈다. →총회장에 들어설 때 기립 박수를 받았는데 소회는. -회원국들이 적극 성원해 준 데 대해 깊은 감사와 겸허한 마음 느낀다. →일각에서 너무 조용한 외교를 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조용한 외교든, 적극적 외교든 겸해서 사용해야지 어느 한 가지만 한다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그동안 나는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 공통의 가치에 대해서는 강한 목소리를 내 왔다. 아랍 민주주의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낸 것도 그런 측면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어떤 자리라고 생각하나. -“당신은 사무총장을 즐기느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행복하려면 유엔 사무총장을 안 하는 게 낫다. 보람은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행복이나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게 낫다. 세상에 수많은 인재(人災)들이 있는데, 어떤 때에는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참혹하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울적하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운 이들에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교사도 없는 학교에서 공부했던 내 과거를 설명하면서 희망을 잃지 말라고 강조하곤 한다.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이라고 말했다는 데 수긍이 간다. 엄청나게 곤란한 일이 많다. →임기 2기의 우선 과제는. -기후변화 문제를 포함한 지속개발이 될 것이다. 물 부족, 에너지 부족, 식량 위기, 보건 문제 등을 따로 연구하지 않고 연관시켜 전체적인 맥락에서 검토할 생각이다. 여성 지위 향상도 중요 어젠다이고, 핵 없는 세상, 질병 예방 등에 대해서도 비전을 제시토록 하겠다. →연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의외로 회원국들의 적극적이고 신속한 호응을 받아 고무돼 있다. 한 달에 지구 한 바퀴씩 1년에 12바퀴를 돌고, 매일 정상급 인사들과 전화 통화를 하거나 만났다. 1년에 500회쯤 각료들과 전화를 하면서 생긴 신뢰관계가 바탕이 된 것 같다. 연임 도전 선언 후 정상들이 봇물 터지듯 지지하겠다고 얘기해 왔고, 편지를 보낸 정상 수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으면 하는가.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한국의 기여도는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많은 개도국이 나를 유엔 사무총장으로도 보고 대한민국 사람으로도 본다. 경제 개발과 민주주의에서 성공한 나라의 사무총장으로 봐서 심적 부담을 갖고 있다. 한국의 위상은 어떤 기준으로 따져도 자랑할 만한 위치에 있다. 이에 상응하는 기여를 해야 한다. 뉴욕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한국戰 전사자 유해발굴] 국방부 ‘사망사고 민원조사단’ 5년간 종횡무진

    “존경하는 이명박 대통령님, 저는 1952년생으로 가슴에 한을 안고 살아온 평범한 주부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1953년 3월 23일 육군에 입대한 오석근 병장입니다. 복무 4년 1개월째 대퇴부 및 좌우측 파편창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그후 저는 생활고 속에서 자라며 아버님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의 사망이 변사처리되었음을 알게 된 후 명예를 회복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쳐 있을 때 국방부 사망사고 민원조사단을 알게 되었고, 2008년 9월 아버님의 사건 재조사를 의뢰했습니다. 2년여의 노력 끝에 2010년 9월 조사단은 아버님을 순직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53년간 가슴에 안고 있던 응어리와 아버님의 한을 풀어드리게 되어 이 기쁜 마음을 바칩니다. ” 지난해 10월 대통령실 인터넷 국민신문고란을 통해 접수된 오영숙씨의 편지 내용 일부다. 오씨가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2년간 아낌없이 노력해 준 ‘국방부 사망사고 민원조사단’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온 것이다. ●수십년 전 전투기록 찾아 이처럼 국방부 ‘사망사고 민원조사단’은 수십년 간 가슴에 사묻힌 군인 사망사고자 가족들의 한(恨)을 풀어주는 ‘해결사’다. 민원조사단은 국방부 조사본부 산하에 불과 16명(장교 5명, 준사관 1명, 부사관 8명, 군무원 2명)으로 구성된 작은 조직이다. 하지만 조사에서만큼은 최고 수준의 베테랑들이다. 이들이 지난 한 해 전국을 누빈 거리는 20여만㎞. 지구를 4바퀴 반 이상 돈 거리다. 민원조사단의 총기사고 전문 조사관인 이창호 공군 상사의 기록을 보면 더욱 놀랍다. 지난 한 해 431회 출장, 참고인 조사 횟수 360회, 1년 365일보다 더 긴 1년을 보낸 셈이다. 2006년 창설된 조사단은 573건의 사망사고에 대한 민원을 접수해 534건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109건 255명에 대해 전사 및 순직 결정을 받아냈다. 모두 수십년 만에 명예를 되찾은 사례들이다. ●전사자·유가족 명예회복 지난 1957년 9월 원인미상 사망자로 분류된 최모씨 사건의 경우 조사관들이 검색한 참고자료는 인사명령지 2350장, 매장 및 화장 보고서 13만 2460여장, 입원환자 명부 2010장, 20여명의 참고인을 방문조사했으며, 460명에 대한 인원조회를 실시했다. 욕설을 들어가면서도 관련자 150여명에 대해 전화조사를 실시해 최씨가 군복무 중 지금은 사라진 제36후송병원에 후송 치료 중 사망한 사실을 밝혀내 순직처리했다. 40여년 만에 최씨와 그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해 줬다. 또 국민방위군 홍모 이병은 6·25전쟁 당시 징집돼 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처리됐다. 홍 이병의 아들은 수십년이 지나 아버지의 사망 원인을 규명해줄 것을 민원조사단에 요청했다. 홍 이병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조사단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홍 이병과 함께 징집된 국민방위군 151명이 모두 동일한 날짜인 1951년 1월 8일에 사망했다는 기록이다. 151명 가운데 불과 4명만이 전사처리됐으며 나머지 147명은 단순 사망으로 잘못 처리된 것. 2009년 11월 조사단은 육군본부에 이들을 모두 ‘전사’처리토록 했다. 홍 이병 등 국민방위군 147명과 유가족들의 한을 60년 만에 풀어준 셈이다. 김지환(육군 대령) 조사단장은 “국방부 산하 조직이지만 군 복무 중 사망한 장병과 그 가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기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비흥행감독이라뇨? 그런 선입견 깨고 싶었죠”

    “비흥행감독이라뇨? 그런 선입견 깨고 싶었죠”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이 제작한 영화 ‘풍산개’(23일 개봉)는 기존의 김 감독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다. 휴전선을 넘나들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3시간 만에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상당히 대중성이 강하다는 평가다. 그 중심에는 김기덕 사단의 대표주자인 전재홍(34) 감독이 있다. 그를 지난 1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시사회 때 ‘풍산개’는 토털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영화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였나. -첫 장편 영화인 ‘아름답다’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많이 했지만, 그 덕(?)에 국내에서는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를 고집하는 비흥행 감독으로 낙인 찍혀 버렸다.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 내가 보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김기덕 사단의 영화와는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연출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기존 김기덕 필름의 영화는 롱테이크(한번에 길게 찍기)에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 드는 작품이 많았다면, ‘풍산개’는 빠른 스피드를 강조했다. 액션과 코미디는 물론 여성 관객을 겨냥한 멜로까지 넣었다. 제 나이에 맞는 영화를 하고 싶었고, 김 감독님도 같은 생각이셨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간 뒤 오스트리아에서 성악과 경영학을 전공하는 등 주로 외국에서 생활했는데 분단 소재 영화를 다루기가 어렵지 않았나. -해외에 살면 남북 상황을 더 집중적으로 보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이라 학교에서도 북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음악을 공부하는 같은 민족이었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장벽을 느꼈다. 저를 비롯해 젊은 세대에게는 6·25전쟁이 흑백 영화처럼 느껴진다. 기존의 분단 영화는 이념적인 접근도 많았다. 왜 우리는 3시간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편지나 소포도 주고 받지 못하는지 30대의 시각에서 현실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남북한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풍산은 상당히 거칠면서 말 한마디 없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풍산을 복수의 화신이 아닌, 남북 통일에 대한 이상을 표현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표준말을 쓰면 한국사람 같고, 북한 사투리를 쓰면 북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 일부러 대사를 넣지 않았다. 풍산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다. 풍산개는 주인에게는 온순하지만, 호랑이도 잡는 맹수다. 외적으로는 강인하지만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따뜻한, 그런 상반된 매력을 가진 인물로 풍산을 표현하고 싶었다. →TV드라마 ‘최고의 사랑’으로 인기를 누리는 윤계상의 주연 캐스팅이 잘 맞아떨어졌다. -처음엔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에 윤계상씨 캐스팅을 반대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난 해외에 있어서 그룹 god의 윤계상보다는 영화 ‘집행자’의 연기자로 그를 기억했다. 드라마 속의 순수하고 연약한 이미지를 영화에서 180도 변신시키는 것이 재밌었다. 한겨울에 몇 번씩 차가운 물에 들어가준 윤계상씨에게 고맙다. 잘해서 여러번 시켰더니 나중엔 “감독님이 악마 같다.”며 웃더라. 윤계상씨도 이번 작품을 통해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노개런티(무보수)로 참여한 것도 화제다. 김기덕 감독도 “나를 일으켜준 영화”라고 했는데. -돈을 생각한다면 누가 이 영화를 하겠나. 오직 열정으로 뭉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김 감독님이 나에게 시나리오를 줬을 때, 우리에겐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폐허 같았다. 총 2억원의 적은 제작비이지만, 영상과 음악 디테일 등 그 이상을 보여주려고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쏟아부었다. →김 감독이 신작 ‘아리랑’에서 한국 영화계를 신랄히 비판했는데. -곁에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저로서는 김 감독님이 제작자뿐만 아니라 감독으로 다시 눈을 뜬 것에 대해 감사한다. ‘돌파구’(김기덕 감독 연출부 출신들의 모임) 회원인 장훈 감독은 친형 같고 돈독한 사이다. 시사회 때 훈이 형을 초대했지만, ‘고지전’(장훈 감독의 차기작) 후반작업 때문에 오지 못했다. 김 감독님과 제자들이 싸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다. 촉망받는 성악도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계기가 뭔가. -어렸을 때 말 더듬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성악을 했다. 대학에서 성악과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와 닿지 않았다. 스물 아홉 살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이후로 하루에 두 편씩 영화를 봤다. 다행히 어머니가 대찬성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외할아버지를 통해서 김기덕 감독과 인연이 닿을 수 있었다. →김 감독 제자를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가까이에서 본 김 감독은. -김 감독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충격 그 자체였다. 음악과 비주얼 등 예술성과 작품성이 뛰어났다. ‘빈집’은 아이디어도 색다르다. 내게 김 감독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다. 영화에 대해 아무 배경이 없는 나를 믿어주고 내 재능을 유일하게 인정해 주신 분이다. 사람들은 감독님을 상당히 거친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상하고 제자에 대한 애착이 많은 분이다. 언제나 “너 자신을 믿으라.”고 다독이고 격려해 주신다. 인터뷰 때마다 전 감독은 “겁이 없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풍산개’에서 자신의 실력을 2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는 그는 앞으로 빠르고 젊은 감각의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고 했다. 상업적인 흥행도 욕심이 난다는 전 감독. 그는 김기덕 사단이 낳은 ‘겁 없는 신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한쪽 팔로 장애인 구두 만드는 장애인

    한쪽 팔로 장애인 구두 만드는 장애인

    “정말 이 일 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17년의 세월을 이렇듯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세창정형제화연구소의 남궁정부(71) 소장은 12살 때부터 구두 만드는 일을 해오며 수제화 제작으로 일가를 이뤘다. 그러다 지난 1995년에 지하철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구두장이로서 가장 중요한 팔을 잃어 낙심하던 그는 우연히 장애인 구두를 만들어보라는 권유를 받고 이 길에 뛰어들었다. 장애아들의 교정용 구두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한 팔로 작업하는 일에 익숙해지는 데 5년이 걸렸다. 지금은 당뇨로 발의 일부를 잘라낸 사람, 뇌병변 장애자, 평발이나 류머티즘 환자 등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구두’를 만들어 건네는 일을 하고 있다. 남궁 소장은 17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오른팔이 없는 게 아니라 오른팔만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 어느덧 17년이 됐다.”며 “전국 각지는 물론, 멀리 외국에서까지 손님이 찾아오고 고객들이 감사의 뜻을 담아 편지나 특산품, 선물 등을 보내올 때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애인 구두는 장애나 기형의 정도와 형태에 맞춰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생산량도 많지 않고 작업도 더디다. 직원 17명이 일하는 이 연구소에서 하루에 만들 수 있는 구두는 12켤레뿐이다. 남궁 소장은 “처음엔 아내가 식당일을 해서 번 돈과 남에게 빌린 돈으로 생계도 꾸리고 직원들 월급도 주느라 힘들기 짝이 없었다.”며 “지금도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지만 돈보다 보람 때문에라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구두는 모두 7만 켤레로 추정된다. 그의 손길이 닿은 신발이 있어 뇌병변으로 걷기 힘들었던 소녀가 웨딩마치를 할 수 있었고, 기형적으로 발이 커 단 한 번도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는 사내에게 걷는 기쁨을 선사할 수도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장애인에게 구두 제작 기술을 가르쳐 자립하게 하는 양성소를 만들고 싶지만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한 뒤 “장애인이 구입하는 신발에 대한 의료보험 혜택이 2년에 한 켤레밖에 되지 않는데 ‘1년에 한 켤레’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대학등록금 논란 어디까지, 박홍기 논설위원이 제시하는 해법, 신선한 제안이 정책으로, ‘하늘 위의 특급호텔’ 타 보니, 조은지 기자의 국가대표 훈련 한 달, 진경호의 시사 콕 등이 방영된다. 글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가족 같은 이주여성 통역서비스 최고”

    “가족 같은 이주여성 통역서비스 최고”

    “결혼 실패로 자살하려던 동포를 보건소 정신보건센터에 소개했는데…. 그리고 전문치료를 받게 했더니 고맙다는 감사의 편지를 받아 뿌듯했어요.”(중국 결혼이주여성 통역상담사 천강미씨) 광진구 보건소에서 지난달 24일부터 실시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을 위한 통역 서비스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에 5년 이상 살고 있어서 우리말과 글에 능통한 서비스 요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광진구에는 중국, 베트남, 일본, 필리핀 등 다국적 이주여성 931명이 거주하고 있다. 중국 국적이 68%인 634명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 국적이 14%인 132명으로 뒤를 잇는다. 구 보건소는 이주여성 비율에 따라 중국어와 베트남어가 가능한 통역요원 2명을 우선 채용해 제대로 된 한국어 사용법 등에 대해 사전교육을 마친 뒤 본격적인 통역 서비스를 시작했다. 매주 화·수·금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 동안 동행하며 통역은 물론 보건의료사업 안내, 상담 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다. 하루 6~7명 정도 상담한다. 필요할 경우 의료기관 동행과 가정 방문을 통해 이주여성의 고민을 들어주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중국 출신인 유펑윈(26·구의2동)씨는 “임신으로 우울증이 찾아와 힘들어하던 중 보건소 건강교육 프로그램을 소개받았다.”며 “통역 요원의 도움으로 아이들 양육방법도 배우고 또래 엄마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게 돼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이정남 보건소장은 “통역 요원들이 일일이 집까지 찾아가 상담하는 열정을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다.”며 “앞으로도 다문화가정과 보건소 간의 높은 벽이었던 언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역할뿐 아니라 건강 지킴이 역할도 톡톡히 해내 이주여성들의 안정적인 정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北선 경찰과 친해지는 일은 상상도 못 하는데…”

    “北선 경찰과 친해지는 일은 상상도 못 하는데…”

    한 북한이탈주민 가족이 일선 경찰서장 앞으로 보낸 감사의 편지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편지는 서울 중계동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안성록(58·가명)씨의 맏딸 안미혜(29·여·가명)씨가 지난달 30일 황성모 노원경찰서장 앞으로 보낸 것이다. 미혜씨는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힘들었던 삶에 대한 이야기와 가족들을 정성껏 돌봐 준 경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가족 모두 장애인… 힘든 세월 보내 “서장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미혜씨 가족이 국내로 들어온 뒤 겪었던 힘든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미혜씨 가족은 2003년 5월에 입국했다. 탈북하기까지의 고된 시간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혜씨 가족은 하나같이 몸이 성치 않다. 성록씨는 척추 수술을 받아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고, 아내 이명화(54·여·가명)씨는 시각장애 1급이다. 미혜씨는 탈북 과정에서 무릎을 다쳐 지체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록씨는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 지원금 3600만원을 몽땅 사기로 날려 버렸다. 이런 아픔을 안고 사는 미혜씨 가족은 자신들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노원경찰서에 감사하는 마음을 편지에 또박또박 담았다. 노원경찰서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조기 정착을 돕기 위해 2009년부터 이들과 한가족 결연 맺기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노원경찰서 신변보호담당관과 보안협력위원회가 북한이탈주민 가족과 한가족 결연을 맺어 매달 3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관내 병원과 협약을 맺어 이들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탈북 청소년들에게는 책을 모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사업들이 미혜씨 가족을 비롯한 북한이탈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미혜씨는 “북한에서는 경찰(안전부)과 친해지는 일은 상상도 못 한다.”면서 “우리 가족과 자매결연을 맺어 준 서윤덕 경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미혜씨 가족과 결연을 맺은 보안과 서윤덕 경위는 “밑바닥 생활에도 흔들리지 않고 밝게 살아가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보면 오히려 감동받을 때가 많다.”면서 “북한이탈주민 2만명 시대에 접어든 만큼 탈북자라는 편견을 버리고 우리의 이웃으로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갈래요” 미혜씨 가족들도 한국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쏟았다. 성록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고물 수집을 시작했다. 마땅히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한국에 정착하려면 가장 밑바닥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성록씨의 노력 덕분에 미혜씨와 두 동생은 모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미혜씨는 편지에서 “고생스러워도 화 한번 안 내시고 묵묵히 애쓰시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적고 한국 사람으로 당당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글 사진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제19회 공초문학상] “시는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영속성 가질 수 있죠”

    [제19회 공초문학상] “시는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영속성 가질 수 있죠”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에 버리고 온 나를 찾아가지 못한다 의상대 붉은 기둥에 기대 울다가 비틀비틀 푸른 수평선 위로 걸어가던 나를 슬그머니 담배꽁초처럼 버리고 온 뒤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제는 봄이 와도 내 손에 풀들이 자라지 않아 머리에 새들도 집을 짓지 않아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기쁨을 드리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을 이미 잊은 지 오래 동해에서는 물고기들끼리 서로 부딪치지 않고 별들도 떼지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치지 않는데 나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서로 부딪쳐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 종소리도 듣지 못한다 1970~80년대였다. 분노의 언어는 분명히 적의 심장에 날아가 꽂혔건만 가슴이 아리고 피 흘린 쪽은 외려 자신이었다. 엄정한 과학의 언어는 체계적이었지만 이념의 틀 안에서 쉬 헤어나지 못한 채 바싹바싹 메말라 갔다. 공중에 한 뼘쯤 떠 있는 듯한 관념의 언어 또한 사람들의 마음에 정박하지 못한 채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 시절은 그랬다. 그때 정호승(61) 시인의 시(詩) 속 언어들은 더욱 빛났다. 갈갈이 찢긴 시대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았고 조심스레 이어 붙였다. 다치고 서러운 마음을 가만히 쓸어 주고 위로해 줬다. 투쟁을 들먹이지 않으며 투쟁을 버팅기게 했고,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 너머를 꿈꾸게 했다. 모든 가치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잘 더듬어 찾아보자고 노래했다. ‘서울의 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 등 내놓는 시집마다 모두 그랬다. 시대의 아픔을 똑바로 쳐다보면서도 이율적으로 사랑을 얘기한 ‘사랑의 시인’이었다. 그러나 지난 30일 만난 시인은 정색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제 이미지가 너무 고정됐나 봐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사랑의 시인’이라며 남녀상열지사나 얘기하는 시인처럼 바라보더라고요. 저, 젊은 시절에 너무 가난해서 데이트 한 번 변변히 못한 사람이에요.” 그렇다. 그는, 그의 시는 많이 변했다. 1972년 등단했으니 벌써 40년 차 시인이다. 변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수 있는 세월이다. 그는 “시대가 변하고 삶이 변하는데 그 변화의 마디마디가 없을 수 없다.”면서 “시대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판단했지만 지금은 내 눈물 닦기도 버겁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내 시를 읽고 공감과 위로를 받고 스스로 눈물을 닦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시는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는 만큼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영속성을 가질 수 있죠. 시대는 지나가지만 시는 영원하잖아요.” 정호승 시인이 제19회 공초문학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점점 선명해진다. 수상작은 지난해 말 내놓은 열 번째 시집 ‘밥값’(창비 펴냄)에 들어 있는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이다. 시가 품은 성찰과 자성, 관조가 두드러지고 시어는 더욱 넉넉해졌다. 그리고 수상작 속에서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라고 표현했듯 스스로 더욱 엄격해졌다. 얼핏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공초 오상순’과 ‘정호승’의 접점이 널찍해지는 지점이다. 그는 “1968년 대학(경희대 국문과)에 입학하며 대구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왔을 때 공초 선생은 이미 돌아가신 뒤라 뵌 적이 없었다.”면서도 “그 이름으로 남긴 문학상을 받게 된다니 오랜 시간 시를 버리지도, 시로부터 버림받지도 않았음을 감사할 따름”이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나는 아직’ 외에도 시집 ‘밥값’에 깔린 전체적인 심상은 죽음, 특히 스스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죽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삶에 대한 집착, 욕망에 대한 거리두기를 꾀하는 초월의 지향도 함께 밝힌다. “죽음도 인간의 본질임을 인식하며 더욱 천착하게 되네요. 나이 탓인가…. 삶의 본질로서 사랑과 죽음이 품고 있는 무게감이 똑같지 않으냐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랑의 또 다른 형태겠죠. 더욱 성찰하고 시대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역시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랑의 시인’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정호승 시인은…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 10권의 시집과 ‘항아리’, ‘연인’ 등 동화집, ‘정호승의 위안’ 등 산문집 출간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지리산문학상 등 수상
  • ‘통큰’ 자치구들 세계와 교류

    ‘통큰’ 자치구들 세계와 교류

    ‘서울은 좁다.’ 서울 자치구들이 지역을 넘어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과거 선진행정을 벤치마킹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단순 교류를 뛰어넘었다. 강남구는 26일 러시아 자치공화국 사하에서 ‘의료관광 설명회’를 개최한다. 의료 수준이 열악한 사하공화국의 부유층 공략에 나선 것이다. 한반도의 14배에 달하는 사하공화국은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 매장지로, 차가운 기후와 자원개발 등으로 인한 부작용 탓에 호흡계·암·심장·척추질환자 등이 적절한 진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구는 공화국과 양해각서(MOU)를 교환, 지역 의료기관과 함께 어린이 대상 의료봉사활동, 의료 전문인력 육성 등의 활동도 펼 예정이다. 중구는 패션산업의 메카인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와 중국 패션의 중심지인 광저우 월수구 복장협의회의 민간교류 활성화를 지원하고, 남대문시장의 해외판로 개척을 돕는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880만명 중 동대문패션타운 방문객이 45%인 399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패션을 통한 해외 관광객 유치에 나설 계획이다. 송파구는 25일 신천동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서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편지와 축구공, 학용품을 전달하는 행사를 열었다. 구는 국제구호단체인 ‘월드투게더’와 함께 아프리카 어린이날(6월 16일)을 앞두고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와 다디웨레다 지역 초등학생 300여명에게 초등학교 학생이 작성한 그림 편지와 축구공 2500개를 전달한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최빈국이지만 반세기 전 한국전쟁에 참전한 오랜 우방국이다. 행사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에티오피아 유학생 라지라 게타초 군이 참석해 구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구는 지난달 28일에는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우물 개발사업과 태양광램프 지원 등 지구촌 희망나누기 사업도 벌였다. 광진구는 지역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자 기본소양교육의 일환으로 ‘생명의 우물파주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식수가 부족한 캄보디아 농촌에 우물을 만들어 주는 사업으로 국제개발구호 단체인 ‘지구촌공생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기본 소양 교육을 받은 선화예술고와 대원고, 동대부속여고 등은 십시일반으로 모금활동을 펼쳐 지구촌공생회에 전달했다. 영등포구는 해외자원봉사활동 참여 방법 등 전문자원봉사자 양성을 위해 다음달 7일부터 23일까지 문래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자원봉사대학’을 운영한다. 자원봉사대학은 2005년부터 다양한 자원봉사 관련 교육을 통해 전문 자원봉사자를 양성하고 있으며, 현재 수료생 2600여명을 배출했다. 서울시는 한국 관광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시는 다음 달 24일부터 7월 31일까지 열리는 ‘서울 서머세일’을 앞두고 25일 중국 항저우에서 대규모 관광설명회를 개최했다. 시는 지난달 중국 칭다오에서 관광설명회를 개최한데 이어 8월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관광설명회를 열어 최근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동남아 관광시장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조현석·강동삼기자 hyun68@seoul.co.kr
  • [열린세상] 버나드 쇼의 경고/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열린세상] 버나드 쇼의 경고/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계절의 여왕 5월은 감사의 달이다. 녹음방초가 꽃의 아름다움을 이기는 늦봄의 풍광에 고마워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삶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줄지어 있으니 사람으로서의 도리, 곧 인륜을 바탕에 두고 마음을 나누며 정성을 주고받는 계절이다. 이러한 절기가 때로 성가시기도 하지만, 이를 계기로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미처 내놓지 못했던 말도 전할 수 있으니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그러나 이 기꺼운 일들 중에는, 경우에 따라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나 슬픔을 숨기고 있는 사례도 많다. 사랑을 표현할 대상을 여의어서,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없어서 눈물로 대신해야 하는 이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두가 긴 까닭은 필자에게 스승의 날이 해마다 가슴 밑바닥을 저미는 동통과 함께 지나간다는 사연을 토설하기 위해서이다. 고등학교 3년간 내리 담임을 하셨던 고 남상현 선생님은, 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나간 필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네가 당선된다면 학교에 좋은 일이고 낙선한다면 네게 좋은 일이다.” 그렇게 정이 깊으셨던 선생님은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아직 어리고 생각도 여물지 않았던 내게, 그보다 더 큰 격려는 없었다. 당선되면 학교를 위해 성과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니 좋고, 낙선하면 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그야말로 양수겸장의 후원이었다. 지방도시에서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한 이래, 나는 늘 이 말씀의 의미를 끌어안고 살았고 재학 중 군문으로 떠나기까지는 편지로 연락도 자주 드렸다. 그런데 제대를 하고 복학한 이후가 문제였다. 왜 그런 모자라는 발상으로 스스로를 구속했는지 지금도 애가 탄다. 내가 선생님께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사회적 성취를 이룬 다음에야 선생님을 뵈러 가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번 끊긴 연락은 쉽게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열심을 다해 살았다.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무슨 큰 성취라 할 수 없겠으나, 삼십대 후반 모교에 발령을 받은 다음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무슨 청천벽력 같은 사태였을까. 선생님은 그 얼마 전에 폐가 나빠져서 유명을 달리하셨던 것이다. 참 많이도 울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쓸데없는 원칙을 세워놓고 미련하게 지키고 있었을까. 어느 시기든 내 모습 그대로를 선생님께서 더 기뻐하셨을 것이라는 깨우침이, 지천명의 세월을 여러 해 넘긴 인생행로에 와서는 더욱 절실하게 밀려온다. 근자에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의 같은 학과에 있던 동갑의 교수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그 제자들이 빈소와 영결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것을 보고 아, 이분이 참 잘 살았구나, 라는 감동이 깊었다. 또 얼마 전 가까이 모셨던 소설가 김용성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친밀했던 문인들이 장례를 마친 후에 그분을 못 잊어 함께 추억을 가진 주점을 전전하는 것을 보고, 나는 참된 우정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해 보았다. 세상에 시간을 저축해 두고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리고 오랜 벗과 우의를 다지며 사제 간의 깊은 교감을 나누는 데 절대량의 시간이 부족한 것을 대개 잊고 산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무책임과 무관심이다. 희대의 독설가 버나드 쇼는 ‘우리의 동료 피조물에 대한 가장 나쁜 죄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무관심한 것이다. 그것은 비인간적인 태도의 본질이다.’라고 단정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렇다. 그 우물쭈물의 강고한 습관을 벗어 던질 때가 곧 감사의 계절 5월이다. 쇼의 일생 전체를 건 경고를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귀담아 들을 것인가. 그가 자신에게 남긴 말이 우리 모두를 향한 덕담이 되도록 해야 옳겠다. 누구에게나 사랑할 날은 많지 않다.
  • “현 감사방식은 이공계 교수 누구라도 온전 못해”

    지난달 10일 연구인건비 유용사건으로 고민하다 자살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태관(54·생명과학과) 교수의 부인 손모(53)씨가 11일 학교 전 구성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섭섭함을 토로했다. 손씨는 오전 교수와 학생 등 카이스트 전체 구성원에게 ‘총장님을 비롯한 모든 카이스트인들께’라는 이메일 편지를 발송했다. 손씨는 “이 사건을 개인의 일로만 돌리기에는 남편이 너무 가엾고 안타까운 점이 너무 많다.”면서 “지금과 같은 연구환경에서 이런 식의 감사를 받을 경우 이공계 교수라면 그 누구라도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조차 다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씨는 서남표 총장에게 “남편은 올해의 카이스트인으로 뽑힐 만큼 훌륭한 연구성과를 거뒀다.”면서 “그런 교수를 연구비 유용이라는 문제로 걸어 교육과학기술부와 세상에 알리는 것이 총장과 카이스트가 도덕적이고, 이 정도 교수까지도 철저히 조사한다고 보여주는 방식이냐.”고 섭섭해했다. 이어 “총장과 교과부의 긴장관계가 이 사건에 조금의 영향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고 따진 뒤 “빈소를 찾은 총장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했는데 이 모든 일을 제 남편 개인의 일로 돌리고 넘어가야 하느냐.”라고 캐물었다. 손씨는 또 총학생회에 대해서도 “교수와 학생들 간 동의 아래 관행적이고 암묵적으로 집행된 연구비 사용 문제를 제도적으로 시정하려는 노력 없이 특정 교수를 지목하여 문제제기만 해서야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손씨는 “나와 아이들은 평생을 안고 갈 상처를 입었지만 카이스트를 원망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글을 끝맺었다. 한편 카이스트는 이날 고 박 교수와 홍순형 신소재공학과 교수, 이해신 화학과 교수팀이 초고강도 전도성 섬유를 제조하는 방법을 담은 논문이 독일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에 표지논문으로 실렸다고 발표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서울광장] 교사 오토다케/박홍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교사 오토다케/박홍기 논설위원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신체적 특징’이라고 말한다. “팔다리가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계기는 자서전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을 통해서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도쿄 특파원으로 갓 근무를 시작한 2007년 4월 5일이다. 5학년과 2학년인 아이들이 전학한 스기나미(杉並) 제4초등학교의 개학식에서다. 그 역시 교사, 선생님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날이다. 휠체어를 탄 그는 운동장 단상에 올라 첫인사를 했다. “저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지내면서 ‘이런 땐 곤란하겠구나’라고 생각될 땐 꼭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세요.”라고.  오토다케는 첫해 5학년 사회를 가르쳤다. 몸이 자유롭지 못한 탓에 보조교사 오노가 항상 곁에 있었다. 아들은 일본어가 서툴렀다. 할 줄 몰랐다. 때문에 그는 다른 교사들의 수업내용까지도 아들 옆에서 영어로 설명해 주거나 메모해 줬다. 하루는 아들이 편지를 가져왔다. ‘박군, 5학년 한반이 된 지 한달이 지났죠. 일본어를 잘할 줄 모르는데도 정말 열심히 뛰고 있다고 생각해요. 박군이 말할 상대가 없어서 쓸쓸해 보이는 얼굴을 짓지만 선생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선생님도, 에치젠 담임 선생님도 박군 편이에요. 뭔가 곤란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편지를 써 보세요. 5월 11일 오토다케.’ 그의 솔직함에, 따뜻한 배려에, 한 획 한 획 정성을 담아 예쁜 한글로 쓴 편지에 놀랐다. 이후 운동회날 만나 물었더니 한글을 배우는 아내가 번역해 써준 것이라고 했다.  오토다케는 2008~2009년 연거푸 3학년과 4학년 담임을 맡았다. 지난해 3월 학교를 떠날 때까지 학생들에겐 선생님 이전에 친구이자 멘토였다. 보통 때엔 휠체어를 탄 채 수업을 진행했지만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는 휠체어에서 내려 학생들과 함께 뛰었다. 축구를 하고, 농구를 했다. 전동 휠체어엔 늘 학생들이 매달려 있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워했던 것은 주위사람들이었다. ‘장애인=특별한 사람’이라는 상식을 깼다. 장애를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여겼다. 교사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 ‘괜찮아 3반’을 통해 교육 철학인 “넘버 원(No.1)이 아니어도 좋아, 온리원(Only one)을 목표로 삼자.”를 다시 강조했다. 또 “모두 다르니까 모두가 좋아, 사람은 저마다 개성이 있고 장점을 드러내는 분야가 있어.”라며 격려하고 용기도 줬다.  4년 전 오토다케의 기억을 떠올린 이유는 15일 스승의 날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스승의 날은 제자들이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하지만 세태 탓인지 마음으로 감사하는 학생들이, 성심으로 감사를 받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학생들은 똘똘하지만 친구끼리 우정을 다지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사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학교엔 그다지 감동이 없다. 입시에 얽매인 중·고교는 차치하더라도 초등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온통 나만을 위한 경쟁교육에 내몰린 탓이다. 오죽하면 초·중·고교생의 행복지수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꼴찌를 기록했을까. 불행한 일이다.  선생님들이 좀 더 제 몫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우수한 집단이다. 교육 강국인 싱가포르·핀란드보다 훨씬 월등한 ‘상위 5%’ 인재들이지 않은가. 학생들의 행복을 되찾아 주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넘버 원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장점을 키워 온리 원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학생들 자신이 사랑받고 소중하게 다뤄진다는 느낌을 갖도록,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손을 내밀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의 학생들을 진심으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교사 오토다케처럼 “너희들을 가르칠 수 있어 진정 행복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hkpark@seoul.co.kr
  • ‘황혼이혼’ 막으려면 이렇게 하세요

    ‘황혼이혼’ 막으려면 이렇게 하세요

    김상현(67·가명)씨는 아내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 말을 하면 곧바로 말다툼으로 이어져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오전 7시에 남편에게 식사를 차려주고 집을 나가버린다. 각방을 쓴 지도 7년이 넘었다. 저녁에 TV에서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고 대화를 하기 위해 말을 걸면 오히려 ‘이 사람이 갑자기 왜이래.’라는 눈총을 받기 일쑤다. 그는 아내를 “목석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혼은 시간 문제가 됐다. 그는 “뭔가 요구하면 무조건 거절하는 냉담한 사람이다 보니까 함께 살 이유도 없는 것 같다.”면서 “이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아예 따로 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고 토로했다. 황혼이혼에 이르는 과정은 대부분 갈등과 대화의 단절에서 시작된다. 은퇴 후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뒤늦게 부부관계를 돌려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젊을 때 미리 노년기에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부터 서울 동작노인종합복지관에서 ‘노인 부부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성부현 한마음상담센터 상담사는 “가장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철저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노인이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상대의 생각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타인의 감정을 헤아려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방법은 ‘표현’이다. 많은 노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숨기는 경향이 있다. 드러내 놓고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면 표현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성 상담사는 강조했다. 표현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감사’다. ‘자녀도 건강하게 키우고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돌이켜보니 너무 감사하다.’는 표현은 서로의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북돋울 수 있다. 편지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항상 감사하다고 표현한다면 갈등이 생길 틈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면 집에서 말없이 지내기보다 밖으로 나가 여가생활을 함께하는 것이 좋다. 부부 댄스 강습을 받거나 가벼운 등산, 조깅 등은 부부 사이의 친밀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성 상담사는 “무슨 일이라도 좋은데 중요한 것은 함께할 수 있는 것이어야 된다.”면서 “복지관을 함께 들러 어떤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노벨화학상 나왔으면”

    80대의 서울대 동문이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모교에 잇따라 거액을 기부했다. 자신의 이름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은 그는 올 2월 1억원을 서울대에 기부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연구실 환경 개선에 사용하라며 3000만원을, 3일에도 2000만원을 더 냈다. 서울대 상학과 49학번인 그는 1억원을 기부한 후 자연대 학장에게서 온 감사 편지를 읽다가 추가로 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편지에는 “자연대의 염원인 노벨상과 필즈상(수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낡은 연구실을 보수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상을 타게 하려면 연구 환경 개선 부분에 먼저 지원했어야 했는데, 전에 기부한 1억원은 수상자에게 주라고 낸 것이었다. 아차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추가로 기탁한 3000만원은 자연대의 연구 환경 개선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자치구마다 孝데이 행사 ‘풍성’

    자치구마다 孝데이 행사 ‘풍성’

    자치구마다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효(孝)를 되새기고 부모님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효 잔치가 풍성하다. 광진구에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경로잔치에 써달라며 후원금 300만원을 기부한 천사가 있어 눈길을 끈다. 능동에서 건축업을 하는 박상희(51·여)씨는 평소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던 차에 주민센터 경로잔치 현수막을 보고 선뜻 후원금을 내놓았다. 또 4일 동주민센터별로 어르신 위안잔치가, 14일 오전 10시 구의동 동의초교에서 추억의 운동회, 18일 서울대공원을 관람하는 독거노인 나들이 행사가 잇따른다. 동대문구는 6일 청량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한국전통타악그룹 ‘디딤소리’ 예술공연을 비롯해 노인인권센터 인형극과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을 무대에 올리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다. 7일 오후 6시 용두공원에서는 색소폰동호회 연주회, 판굿이 어우러진 퓨전 공연으로 나들이 나온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성북구는 6일 오후 2시 길음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 미용·네일아트를 해드리고 사진을 찍어 액자에 담는 ‘청춘을 돌려다오’ 행사를, 강북구는 4일 오후 1시 강북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 신사임당을 뽑고 무료로 사진촬영도 해드리는 ‘천태자비 효축제’를 개최한다. 19일 강북스포츠센터에선 장수를 기원하는 합동 금혼식도 열린다. 서초구는 4일 오전 10시 서초구민회관에서 1004(천사)개의 카네이션을 어르신들에게 달아드리는 시간을 마련한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손자·손녀가 전하는 감사의 편지 전달식을 갖고 실버가요제를 연다. 중랑구에선 3~6일 중·고교 학부모봉사단과 학생 160명이 복지관, 병원 등을 찾아 홀몸 어르신 2000명에게 사랑의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말벗 해드리기, 청소 자원 봉사활동을 펼친다. 은평구는 4일 어르신 초청 강화도 나들이, 같은 날 금천구에선 달빛충만 카네이션 패밀리 축제, 용산구에선 다음 달 10일 어르신 가수왕을 뽑는 실버 가요제를 열어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강남구는 6일 오후 2시 도곡동 숙명여고 강당에서 지역 어르신 1300여명을 모시고 ‘孝 Day’ 행사를 갖는다. 행사는 대학생들의 ‘큰절 올리기’와 함께 효행자, 장한 어버이, 노인복지 유공자에 대해 표창하고 한국 벨리댄스협회 소속 어린이와 주부가 선사하는 열정적인 ‘밸리댄스 공연’에 이어 가수 서수남씨의 즉석 ‘노래교실’도 곁들인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청해부대원 땀냄새 지상최고 향수였다”

    “불길한 생각으로 백년 같은 시간을 보내고 밝은 하늘 아래서 처음 본 청해부대원들이 우리의 우상이 됐습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될 위기에 처했던 한진텐진호(7만 5000t급)의 박상운(47) 선장은 지난 24일 청해부대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엇으로도 갚지 못할 크나큰 은혜를 입었다.”면서 감사인사를 전했다. 합동참모본부가 25일 공개한 박 선장의 편지는 긴급피난처에 숨어 있던 박 선장과 선원들은 청해부대원들이 자신들을 찾아냈을 때 안도하며 느꼈던 마음을 글로 표현했다. 박 선장은 “크나큰 은혜를 입은 한진텐진호 승조원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탈한 상태에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순항 중”이라면서 “청해부대장과의 무선 통화가 처음 성공했을 때 통렬한 기분은 평생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땀으로 완전히 젖은 군복에서 인도양의 바람을 타고 밀려드는 소금기 잔뜩 안은 그 진한 땀의 향기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향수였다.”면서 “작전 수행을 했으면서도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에 고마워하던 당신들의 모습에 펑펑 울었다. 우리는 그날 다시 태어났다.”고 당시의 감동을 표현했다. 박 선장은 또 긴급피난처에서 통신기를 통해 들려온 청해부대원들의 목소리에 대해 “선원 여러분 안심하라던 무전기 소리는 하늘의 음성과도 같았다.”면서 “아직도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웃음 짓게 한다.”고 기억했다. 박 선장은 “앞으로 여러분의 그 모습 백분의 일이라도 닮으려고 애쓰며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청해부대는 지난 21일 아덴만 해역에서 해적으로부터 한진텐진호의 한국인 14명과 인도네시아인 6명 등 선원 20명을 구조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싸우더라도 물건 갖고 싸워야”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싸우더라도 물건 갖고 싸워야”

    “프랑스가 5년 뒤에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싸울 때 싸우더라도 물건을 갖고 싸워야 합니다.” 정명훈(58)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드문 일이다. 15일 서울 세종로 서울시향 예술감독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 감독은 “외규장각 도서 귀환에는 자크 랑 프랑스 전 문화부 장관의 노력이 컸는데 누군가는 공개적으로 감사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일평생 처음인 일(간담회 자청)을 했다.”고 말했다. 친한파로 불리는 랑 전 장관은 최근 20년간 외규장각 도서의 한국 반환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망설이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감독과도 친분이 깊다. 1989년부터 5년간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을 지낸 정 감독은 사르코지에게 편지를 쓴 뒷얘기도 털어놓았다. “2009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오페라 공연을 하던 중 랑(전 장관)과 우연히 만났는데 외규장각 도서 문제가 진척이 없는 것 같다고 하자 나더러 사르코지에게 편지를 써 보라고 했다. 그래서 프랑스에 오래 살고 프랑스를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의궤를 원하는지 썼다. 1년쯤 뒤에 답장이 왔다. ‘잘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전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기자회견장에 가려다가 주위 만류로 그만뒀다는 정 감독은 ‘대여’ 형식을 둘러싸고 비판도 있지만 일단 물건(의궤)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 정부 누군가는 “저스트 생큐, 자크 랑” 한마디를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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