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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송년 릴레이 인터뷰] ② 27년간 기부한 류양선 할머니

    [나눔 송년 릴레이 인터뷰] ② 27년간 기부한 류양선 할머니

    서울 지역 아침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내려간 지난 16일 오전 11시. 칼바람이 안쪽까지 들어오는 서울 노량진동 수산시장 젓갈부의 ‘충남상회’에서 노란 옷을 겹겹이 껴입은 작은 체구의 할머니를 만났다. 37년간 젓갈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으로 책과 장학금 기부를 이어가는 ‘젓갈 할머니’ 류양선(77)씨가 그 주인공. 할머니는 가게 한편에 있는 좁은 구들장 위에 앉아 손님맞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온기가 도는 바닥과 할머니 앞에 놓은 작은 전기난로 덕분에 그나마 따뜻한 엉덩이와 발을 제외하고는 시장 안까지 불어닥치는 찬바람에 코가 시렸다. 할머니는 전기세가 아까워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이틀 전에야 비로소 난로를 켜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습관이 돼 있는 까닭이다. 류 할머니는 이렇게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어’ 모은 돈을 전부 책 사고 장학금 마련하는 데 사용한다. 얼마 전 국어사전 1억여원어치를 구입해 전국의 초·중학교 200여곳에 기부한 것이 알려지면서 할머니의 기부 열정은 또다시 화제가 됐다. 수없이 찾아오는 인터뷰 요청이 귀찮을 법한데도 할머니는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을 흔쾌히 환영했다. 할머니의 선행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져야 할머니를 닮은 제2, 제3의 기부 천사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젓갈이 더 많이 팔려야 더 많은 학생들에게 책을 사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할머니는 가게 벽면에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크게 뽑아 걸어뒀다.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사진과 기사를 보고 나서는 할머니를 알아보고 젓갈을 구입해 가기도 한다. “장사가 잘돼야 애들 책 한권이라도 더 사줄 수 있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온통 학생들 생각뿐인 듯 보였다. 말할 때마다 입에서 김이 나오는 날씨 속에서도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가 힘들지 않았던 것은 할머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 옷만큼이나 따뜻한 ‘기부 천사’의 마음씨 때문이었다. 100촉짜리 백열전구 7개가 환하게 비춰 아늑하게 느껴지는 9.9㎡(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할머니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날씨가 추운데 장사하시느라 고생 많으시죠. -날씨가 추워서 문제지. 여기 앉아 있으면 찬바람이 슝슝 들어와. 위아래로 잔뜩 껴입었는데도 춥네.(이날 할머니는 상의로 내복, 티, 양털조끼, 노란색 바람막이, 노란색 점퍼 등 5겹을, 하의로 내복, 기모바지, 방수 재질 바지 등 3겹을 겹쳐 입고 점퍼에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기 구들장이 있어 엉덩이는 따뜻해. 전기난로 켜놓으면 그나마 낫지. 이것도 한서대학교에서 보내준 건데 잘 틀지도 않어. 젊었을 땐 새벽 4시에도 나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못 나와. 아침 7~8시 사이에 나와서 그래도 제일 늦게까지 장사하지. 밤 8~9시면 닫아. 그런데 어제오늘 날씨가 추워서 손님이 더 없네. →젓갈이 잘 팔려야 기부도 많이 하실 텐데요. -많이 팔아야 하는데. 올해는 완전히 적자야, 적자. 10월 20일부터 며칠 김장철에만 ‘빤짝’하고. 4월에서 9월까지는 정말 손님 없었어. 그전에 모아둔 돈 없었으면 나도 파산할 뻔했지. 임대료랑 창고 사용료 230만원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어. 난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부할 용의가 있는데 기부도 못 하게 생겼어. →적자가 났는데도 기부는 그치지 않으셨어요. -내가 벌고 남은 돈으로 기부하는 것도 아닌데 뭘. 형편 따라 기부하나? 애들 책 사주고 하려고 적금을 미리미리 들어놓지. 1000만원짜리고 2000만원짜리고, 3년짜리 4년짜리 있어. 그거 탈 때 기부하는 거지. 이번에도 3000만원 3년짜리 그게 만기돼서 그걸로 책 산 거야. 4~5번에 걸쳐서 줄 테니까 미리 책을 보내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떼먹을 사람은 아니니까 보내주시더라고. 고맙지. 크는 애기들이니까 얼릉 공부해야 하잖아. 죽기 전에 최대한 많이 (기부) 해야지. 나머지는 1년에 한번씩 계속 해서 갚아야지. (할머니는 지난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어대사전’ 201세트, 1억 854만원어치를 구입해 전국의 초등학교, 중학교에 보냈다. 사전 구입비로 3000만원을 내고 나머지 돈은 앞으로 5차례에 걸쳐 고려대 측에 분할 납부하기로 했다.) →처음 기부를 시작하신 건 언제인가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처음한 게 1983년도일 거야. 아, 완도. 완도초등학교 애들이 여기에 견학을 왔더라고. 그래서 걔들한테 책을 보냈지. 동화책. 그게 계기가 돼 가지고 책 기부를 시작했지. 어린 애들이 할머니가 보내준 책 잘 읽었다고 편지도 보내고 하니까 참 마음이 좋더라고. 거기도 책 여러 번 많이 보냈지. 나중에는 완도초등학교에서 애들이랑 학교가 같이 감사패도 보냈더라고. 여기서 감사패를 제일 먼저 받았는데 계속 기부하다 보니까 감사패가 나중엔 줄줄줄…지금은 한 100개는 돼. →지금껏 어느 정도 기부하셨는지 가늠하세요. -(손사래 치며) 모르지 그걸 어떻게 기억해. 무조건 주면 그만이지. 그런 걸 뭐라고 일일이 다 적어 놓나? 버는 대로 모이는 대로 족족 주는걸. →기부하시면 어떤 점에서 보람을 찾으시나요. -책 사주고 장학금 보내고 하는 그 자체가 좋아. 그러다 아이들이 고맙다고 편지라도 쓰면 그냥 엔도르핀이 팔구월에 목화송이 피듯 피지. 그런 편지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해. 이번에도 서산 국민학교 6학년 애가 편지허구 장갑허구 봉투에 같이 넣어서 보냈더라고. 할머니따라 기부 천사가 되겠다고 그렇게 썼더라고. 내가 이번에 사전을 그 동네 학교마다 쫙 보냈거든. 그걸 받은 아이가 기사에서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편지를 보낸 모양이야. →할머니 뒤를 이어 기부 천사들이 늘겠어요. -그게 제일 좋은 판단이여. 내가 자식들이 없어. 할아버지는 4년 됐나, 5년 됐나 돌아가셨고. 나 혼자 사는데 내가 준 장학금이나 책 받은 학생들이 자식처럼 손주처럼 찾아오면 반가워. 내가 준 장학금 받은 대학생들도 종종 가게로 찾아와. 젓갈도 사 가고 할머니도 뵙고 그런다고. 할머니가 기부하니께 우리도 같이 기부하는 거라고 젓갈도 더 많이 사 가고 하지. 기부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녀. 자기가 스스로 허고 싶어야 허지. 자기가 받아보면 주고 싶은 마음도 더 생기는 법이야. 그래서 내가 어린 친구들한테 더 많이 나눠주려고 해. (인터뷰 도중 할머니는 기자에게 추운 날 고생한다며 간식을 이것저것 꺼내주셨다. 장사를 하다 보면 끼니 때 사이에 배가 고파져 두부, 고구마 등 새참을 드신다고 한다. 이날도 할머니는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흰 두부를 잘라 양념간장에 찍어 드셨다. 이 두부는 할머니가 장학금을 기부하는 대학 관계자의 친척이 감사의 표시로 자신이 운영하는 두부공장에서 직접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한다. 두부를 다 드신 할머니는 점심·저녁 밥을 지어 먹는 작은 전기밥솥에서 찐 고구마까지 꺼내 드셨다. 할머니는 “새참은 나눠 먹어야 제맛”이라시며 기자에게도 작은 밤고구마 한개를 건네셨다.) →얼마 전에는 학생들에게 또 사전을 사주셨는데 유난히 책을 많이 사주시는 이유가 있나요. -내가 사주는 건 전부 책이지 뭘. 돈으로 하면 고루고루 가간? 책으로 하면 1학년이 보고 나면 2학년, 2학년이 보고 나면 6학년 다 보잖아. 보고 나면 또 보고, 찢지만 않고 두면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으니 책이 좋지. 돈은 그냥 쓸데없이 쓰기도 하고 쓰고 나면 없고. 그니께 책 선물이 제일 좋은 거야. 그리고 또 내가 못 배웠응께. 어렸을 때 배워야지. 나 지금도 모르는 거 무슨 소린가 하고 사전에서 찾아보고 그러면 이튿날 보면 다 없어졌어. 어렸을 때 배운 건 지금까지도 아는데. 배움에도 때가 있지. 나무도 어린 나무에 거름을 줘야지 고목나무에 거름 줘봤자 소용없어. →학생들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원래 꿈은 뭐였나요. -배우고자 하는 애 가르쳐야 혀. 내가 돈 벌면 내 고향에다가 하버드 대학보다 더 좋은 놈 지어서 돈 많은 사람은 돈 받고, 돈 없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한테 받아서 주고 그렇게 하는 게 꿈이었어. 그랬는데 돈 많은 부자가 나보다 먼저 짓데. 내가 지으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선수 치네(웃음). 그런 시골은 가난하니까 이런 서울에 와서 공부 못 해. 공부 잘해서 서울대학교에 붙어도 하숙비도 없고 생활비도 없어서 올라오지도 못혀. 그게 내 최종 목표였는데 이미 서산에 대학교가 생겼네. 그래서 내가 이제 거기다가 장학금도 보태주고 땅도 보태줬지. 할머니는 1998년부터 한서대학교에 20억원대의 부동산을 기부하고 현재 한서대학교 ‘류양선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할머니가 기증한 부동산에서 나오는 세는 이 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인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위치한 한서대학교는 1992년 개교했다.) →보통 사람들은 돈 벌면 자기 자식한테 물려주기 바쁜데 할머니는 어떠세요. -다 그렇지. 난 자식은 없어.(할머니는 28살에 결혼해 3년 정도 함께 산 남편이 두 번째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간 뒤 쭉 혼자 사셨다고 한다.) 돈 많은 재벌들도 다 번 돈 자기 자식한테 주려고 하지 뭐.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저 자식들은 뭐 두 손 두 발 붙들어 맸나. 저희들이 벌어서 먹고살아야지. 그러니까 자립심이 없어. →올 겨울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로 기부가 크게 줄었다던데요. -그렇다 하대. 안한다고. 그런 돈을 가져간다냐. 지가 노력해서 먹고살아야지. 아주 못 쓰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 그런 사람은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혀. 기부가 어그러졌어. 허먼 뭘 혀. 그런 사람들이 다 가져가는걸. 난 그래서 책으로 하지 돈으로 안 해.(이 대목에서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할머니는 등을 떼고 몸을 일으키며 언성을 높였다.) →기부 계획이 더 있으신가요. -건강이 허락해서 장사를 하는 날까지는 천원짜리 하나라도 더 보태줘야지. 우선 얼마 전에 애들 사전 보내준 거, 고려대학에 남은 돈 채워넣어 줘야지. 사전값이 1억 좀 넘는데 처음에 적금 탄 돈 3000만원만 일단 주고 나머지는 차차 갚기로 했어. 장사해서 차곡차곡 돈 모아서 일단 그것부터 갚고. 그 뒤에는 또 학생들 책 사주고 대학교 장학금도 보태주고 할거야. 죽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주고 가야지. 나이는 공짜로 먹다 보니까 어느새 이렇게 많이 들었는데 얼마나 남았을지는 몰라도 죽을 때까지는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기부해야지. 허허.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류양선 할머니는 37년간 노량진서 젓갈장사 서산 한서대에 20억 기증 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중 1933년 충남 서산읍(현재 서산시) 양대리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얼마 안 되는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류 할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학업을 잇지 못했다. 류 할머니의 기부가 대부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책 마련에 쓰이는 것은 가난해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던 본인의 아쉬움 때문이다.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다 28살에 남편을 만난 류 할머니는 1972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먹고살 궁리를 하던 끝에 ‘장사가 안 돼 오래 두어도 썩지 않는’ 젓갈 장사를 택했다는 할머니는 그 후 지금까지 37년간 서울 노량진동 수산시장에서 ‘충남상회’를 운영하며 수익금의 대부분을 기부와 나눔에 쓰고 있다. 장사를 하면서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27년 전부터 기부를 시작한 류 할머니는 고향인 충남의 양로원, 재활원, 보육원 등을 비롯해 낙도와 지방의 초등학교 등에 책과 물품을 전달해왔다. 1983년 수산시장에 견학 온 완도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동화책을 보내준 것이 기부의 시작이 됐다. 충남 서산 한서대에도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세번에 걸쳐 20억원대의 부동산(경기 광명시 소재)을 기증해, 현재 한서대 ‘류양선 장학회’ 이사장으로 장학 사업에 힘쓰고 있다. 류 할머니는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고향인 서산에 대학교를 지으려 했던 꿈을 대신해 앞으로도 장학금과 책으로 기부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인천 찜질방에 ‘연평우체국 출장소’

    인천 찜질방에 ‘연평우체국 출장소’

    북한의 무차별 폭격으로 ‘유령 마을’이 된 연평도 주민들에게 우편물과 택배는 차질 없이 배달되고 있다. 직원 5명에 불과한 전국 최소 규모급 연평우체국의 운영이 재개됐다. 인천 찜질방에서 생활하는 연평도 피란민을 위한 출장소까지 차려졌다. 연평우체국이 지난달 29일 다시 문을 열고 이달부터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우체국 직원은 모두 5명. 이 가운데 2명이 연평도 주민 300여명이 기거하는 인천 찜질방 ‘인스파월드’에 파견됐다. 이들은 인천우체국에서 연평도 주민들에게 배달되는 우편물을 개개인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다. 정창권 연평우체국장은 “20년 안팎의 배달 경력을 지닌 ‘베테랑 집배원’이 1400여 주민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배달 사고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지서나 광고전단 같은 우편물은 배달하지 않는다. 집을 떠나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주민의 처지를 고려한 배려다. 청첩장, 일반 우편물, 아이들 학습지 등 당장 필요한 우편물을 중심으로 배달한다. 집배원 노명준(52)씨는 “일부는 ‘지금 내가 편지 받을 정신이 어디 있냐’고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예상하지 못한 우편물에 감사하다고 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평우체국은 1962년 설립됐고, 일반 우편물과 신문도 배달한다. 신문 구독 주민은 6명. 정 우체국장은 “우체국 등 기관도 제자리를 찾은 만큼 주민들도 하루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평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LG·코오롱 패션도 ‘매출 1조클럽’

    제일모직, 이랜드에 이어 LG패션과 코오롱 패션사업군이 국내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1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LG패션은 지난달 30일 매출 누계 1조원을 넘어섰으며 코오롱 패션군은 지난달 30일까지 9951억원 누계로 2일 1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코오롱 측은 “패션군이 전년 대비 18%나 성장했다.”며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연초 목표치를 초과 달성해 연간 매출액이 1조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LG패션은 1조원 돌파를 기념해 1일 전국 1200여개 매장에 구본걸 대표이사 이름으로 감사편지를 보내고 축하 떡을 돌렸다. 코오롱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과 캠브리지코오롱의 국내 매출 합산이 2일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코오롱FnC 백덕현 대표가 1547개 매장과 본사 임직원에게 친필 편지와 함께 쿠키와 떡을 선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각각 2005년과 2006년 ‘1조 클럽’에 가입한 이랜드와 제일모직은 올 연간 매출이 각각 1조 6000억원, 1조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패션은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와 여성의류 브랜드, 코오롱은 아웃도어 코오롱스포츠와 스포츠 브랜드 헤드, 남성정장 캠브리지멤버스의 선전이 1조 클럽 가입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주범 눈물의 결혼식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주범 눈물의 결혼식

    이보다 더 극적이고, 가슴 벅찰 수 있을까.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할 날, 그는 이날을 그렇게 기리고 싶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섬 소년에서 꿈 많은 대학생, 조직폭력배라는 오명과 살인 그리고 사형수…. 고된 인생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지그시 감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가, 박수로 그를 맞는 하객들이, 그리고 만감에 울음을 삼키는 노모까지 모두 눈물에 번져 아른거렸다. 꿈 같았다. 52세의 새 신랑은 그렇게 울고 있었다. 10일 오후 3시 서울 흑석동 성당. 키 175㎝가량의 건장한 체격이 무색하게 주인공 박영진(왼쪽·52)씨는 신부보다 더 떨고 있었다. 그는 “내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소원이 이뤄진 날”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부는 동료 조직원의 누나였던 장우순(53)씨. 박씨와 함께 서진룸살롱 사건에 가담한 동생의 옥바라지를 위해 교도소를 오가던 장씨는 어느새 박씨에게도 늘 기다려지는 존재가 됐다. 처음 사형선고를 받은 뒤 그는 가톨릭 신자가 됐다. 그를 종교로 이끈 이가 장씨였다. 처음엔 멀리서만 그를 지켜봤다. 그러다 수감 10년이 넘으면서 그의 가슴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싹트는 걸 느꼈다. 이심전심이었던지 장씨도 그 무렵부터는 매달 찾아와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것이 사랑임을 그제야 알았다고 박씨는 털어놨다. 기약 없는 수감생활에 발이 묶인 그가 품기에는 너무 큰 꿈이라고 여겼으나 모범수로 감형을 받으면서 둘은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출소를 몇 년 앞둔 어느 봄날, “그립고 기다리는 마음이 커지는 이곳에서 당신만이 나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라며 “운명적으로 만난 당신과 영원히 같이하고 싶다.”는 옥중 프러포즈를 전했다. 사실, 그에게 결혼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세기의 사건’이라는 1986년의 ‘서진룸살롱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20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그에게 ‘서진룸살롱 사건’의 꼬리표는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녔다. 강남 역삼동의 한 룸살롱에서 발생한 그 사건은 당시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건장한 20대 청년들이 술을 마시다가 우발적으로 충돌, 급기야 회칼 등을 들고 다른 무리와 집단 난투극을 벌여 4명을 살해한 80년대 대표적 사건. 박씨를 비롯한 관련자 12명은 살인 등의 혐의로 모두 구속됐다. 2006년 겨울, 죗값을 치르고 사회에 나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싸늘했다. 당장 생활고에 내몰렸다. 취직도 어려웠다. 그런 그가 ‘과거’에 매몰되지 않도록 버팀목이 돼 준 이가 바로 지금의 아내와 종교였다. 미혼모였던 아내의 20대 아들도 둘 사이에서 충실한 가교 역할을 하며 힘을 북돋았다. 안경점을 하는 그 아들이 지난해 첫 아이를 낳아 박씨는 결혼도 하기 전에 벌써 ‘할아버지’가 됐다. 그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고맙다.”며 감사의 뜻을 비쳤다. 출소 후 건설회사를 하는 선배의 도움으로 운전을 하며 새 출발을 준비했던 그는 어렵사리 서울 대치동에 작은 셋집도 마련했다. 지금은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성당 봉사활동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는 모범 시민이다. 그의 늦은 결혼식에는 내로라하는 ‘왕년의 어깨’들이 운집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결혼식이 열린 성당 앞마당은 물론 인근 유치원과 진입로가 검은 승용차로 채워졌고, 성당 안팎에는 1000여명에 이르는 검은 양복의 ‘어깨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긴 혼인미사가 시작되자 잡음 하나 없었다. 오후 3시 30분. 혼인미사를 집전한 신부가 박씨의 편지를 읽자 장내는 일순 숙연해졌다. 신부에게 전하는 박씨의 마음이었다. “만나지 못할 때 가슴이 저리는 그리움이 생겼고, 그 그리움이 사랑의 결실이 되기를 기도했고, 그리고 그 기도가 오늘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중략) 하느님을 꼭 기억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예식을 마치고 행진을 하는 박씨가 그제야 미소를 띠었다. 그는 줄곧 고맙다며 하객과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한 남자의 늦었지만 뜻깊은 새 출발, 넓은 성당을 ‘어깨들의 박수’가 가득 채웠다. 글 백민경· 사진 이호정기자 white@seoul.co.kr
  • 블로그 vs 트위터…같으면서 다른 온라인 소통 나선 두 교육수장

    블로그 vs 트위터…같으면서 다른 온라인 소통 나선 두 교육수장

    대한민국 교육의 양대 축인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최근 컴퓨터 앞에 앉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두 사람 모두 ‘현장’과 ‘소통’을 중시하는 성격이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숨돌릴 틈조차 없는 게 문제. 결국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시민과의 접촉을 늘리고, 각자의 교육 정책도 홍보하겠다는 길을 찾아냈다. ‘온라인 소통’에는 양측이 공감하는 반면, 실제 노선은 블로그와 트위터로 다르다. ●이 장관 13만여명에 이메일 발송 이 장관은 지난 9월 블로그 ‘긍정의 변화’를 개설, 격주에 한 번씩 학부모와 연구원, 교사 등 교육관련 인사 13만 4000명에게 ‘긍정의 편지’란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1호에서는 최근 입시 화두인 입학사정관제 이야기를 담았고, 2호와 3호에서는 각각 오스트리아 출장에서 느낀 한국의 원자력 기술과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소감을 전달했다. 주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홍보나 현장 방문을 소개하는 사진 자료가 많다 보니 50일이 지난 5일 현재까지 방문자 수는 9000명 수준. 예상보다 저조하지만 보좌관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 태연한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1만번째 방문자와 장관의 점심’ 이벤트와 ‘정책질의’ 코너 증설 등을 통해 인기몰이에 나설 계획이다. 이 장관도 바쁜 일정 사이에도 비서진을 통해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을 듣기도 하고, 중요한 주제는 직접 컴퓨터로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신에게 응원글을 써준 고등학교 교장과 시민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지난 4일에는 교육분야에서 활동하는 파워블로거를 초청해 인기 비결도 들었다. ●곽 교육감 팔로어 수 1만 9200여명 1954년생으로 이 장관보다 7살 많은 곽 교육감은 지난 6월 트위터(nohyunkwak)를 개설했다. 방통대 교수 시절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에 강점을 보여온 만큼, 온라인 소통분야에서도 이 장관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다. 최근에는 명함 옆에 곽노현 트위터로 직접 연결되는 QR 코드를 인쇄해 지인과 학생들에게 뿌리는 등 오프라인 홍보에도 열심이다. 이 장관의 블로그 운영에 정책보좌관 6명이 참여하는 것과 달리, 곽 교육감의 트위터는 1인 단독 운영체제여서 비서진들은 교육감의 돌출발언으로 인한 사고를 우려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평이다. 곽 교육감은 또 바쁜 일정을 감안해 차 안에서 직접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현장 방문이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후기와 소감을 올리는 열정도 보이고 있다. 5일 현재 곽 교육감의 트위터 팔로어 수는 1만 9299명으로 웬만한 파워트위터와 맞먹는 수준이다. 비서실 관계자는 “교육감이 젊은 층과의 만남에 관심이 많은 데다, 특히 소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뒤처지지 않으려는 욕심이 많아서 최근에 새로 나온 태블릿PC에도 관심이 많다.”고 귀띔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서울광장] 김황식총리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김황식총리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 승차 반대 발언 여파로 마음이 불편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일각에서는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번 일로 총리께 적지 않은 ‘기대’를 갖게 됐습니다. 그 발언이 감사원장 시절 감사를 통해 복지 예산이 헛되이 줄줄 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고 보기 때문이죠. 감사원·총리실을 출입해 본 저로서는 감사원장으로서 중앙부처는 물론 공공기관이 안고 있는 각종 문제를 현미경으로 보듯 자세히 들여다 보셨다는 뜻이니, 앞으로 최소한 ‘의전총리’는 탈피해 정책을 제대로 챙기실 것 같았습니다. 제가 본 한 총리는 아랫사람이 써준 ‘말씀자료’도 제대로 소화를 못해 회의가 엉망이 된 적이 있었어요. 그러고도 그 총리는 자료가 부실했다고 간부를 혼냈다고 하네요. 참, 총리께서 전임자들이 ‘자원외교’, ‘세종시’ 총리를 내세워 요란한 행보를 한 것을 행여 벤치마킹할 생각이라면 그러지 마세요. 그들은 별 실권이 없어 그런 타이틀이라도 필요했던 겁니다. 정책을 아신다면 그런 대외 과시용 ‘모자’를 일부러 쓰실 필요는 없지요. 이해찬 전 총리야말로 특별한 것을 내세우지 않아도 실세 총리였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평소 말 많던 한 부총리도 그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총리 주재 회의에 불참하던 일부 장관들도 결석하지 않는 착한 학생이 되었답니다. 이미 눈치채셨는지 몰라도 대통령과 가까운 장관들은 총리 알기를 좀 우습게 여기거든요. 이 전 총리의 막강 파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측면이 강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힘센 총리는 ‘까칠한 정책통’이었기에 가능했지요. 장관들을 불러 묻고 따지니 기강이 안 잡히겠습니까. 이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총리 앞에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장관들은 행정부 공무원들을 다잡게 되고, 그러니 내각이 팽팽 잘 돌아갔죠. 이회창 전 총리처럼 헌법에 나온 총리 권한을 들먹이지 않아도, 인사권을 논하며 청와대와 괜한 신경전을 펼치지 않아도 총리가 힘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정책 챙기기입니다. 어떤 이들은 청와대와 부처가 다 조율하는데 총리가 무슨 끼어들 일이 있냐고 하지만 부처 간 정책 갈등, 중앙·지방정부 간의 문제 등을 청와대가 일일이 다 챙기긴 어렵죠. 각종 행사에 다니시느라 시간 내기 어렵더라도 정책을 차고 앉아 챙기신다면 힘은 절로 실릴 겁니다. 그럼, 총리께서 급히 챙겨야 할 과제 하나 알려드릴까 합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권익위원회가 ‘행정규제의 피해구제 및 형평보장을 위한 법’ 제정을 추진해 국무회의를 거쳐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한답니다. 획일적인 규제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면 ‘예외’를 인정한다는 뜻은 좋아요. 그러나 법의 안정성·형평성·신뢰성 등에서 문제가 많지요. 불합리한 규제라면 법령을 고치면 될 것을 그러지 않고 규제를 피해가는 법을 제정한다는 것인데, ‘법위의 법’을 만드는 겁니다. 살아 있는 기존 법령을 무력화시키는 법 제정은 법치주의에 어긋날뿐더러 어떤 경우에 규제대상에서 예외로 할 것인지 기준도 모호해 특혜시비 등 논란이 일 게 뻔합니다. 묶인 규제를 푸는 과정에서 부패·비리도 생길 겁니다. 당초 정부내에서조차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요술방망이 법’이라며 부정적 견해가 많았지만 대통령 측근이 밀어붙인다는 얘기가 있어요. 게다가 이 법은 규제완화 신청의 주체와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를 들어 ‘수도권정비법’에 묶여 한 대기업이 공장을 짓지 못할 경우 권익위에 규제 완화를 신청해 공장허가를 받더라도 아무도 모르죠. 기존 법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누군가에게 밀실에서 특혜를 주고 싶지 않다면야 이런 법을 도대체 정부가 왜 만드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규제 완화도 좋지만 의욕이 과해 잘못된 법을 만든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법을 전공하신 총리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 이런 일에 제동을 거는 것이 총리가 할 일입니다. bori@seoul.co.kr
  • “군사도시 이미지 벗고 평화·문화도시로”

    “군사도시 이미지 벗고 평화·문화도시로”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을 만나 계룡시가 세계적인 평화안보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지난 22일 충남 계룡시청에서 만난 이기원(58) 시장은 인구 4만 3000여명의 초미니 ‘시(市)’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반기문 총장 만나 지원 요청할 계획” 이 시장은 계룡시가 육·해·공군본부가 자리잡은 ‘계룡대’라는 이미지를 벗고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는 꿈을 안고 있다. 초미니 도시의 이 시장과 세계를 아우르는 유엔의 반 총장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평화·안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이 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장은 반 총장을 만나 계룡시 지원을 요청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세계평화라는 차원에서 예산도 유엔에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국방부와 통일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통해 관련 지원을 받고 싶다고 했다. 이 시장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평화를 위한 안보공원이자 도시로 계룡시가 맞춤도시”라면서 “절반이 군인가족이라 평화와 안보에 시민들도 관심이 높아 시 전체가 평화안보도시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사도시라는 한계를 깨고 세계적인 평화안보, 문화 도시로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기숙형 고교 설립… 장학금 100억 조성” 계룡시는 인구 2만 9000명이던 2003년 충남 계룡출장소에서 시로 승격됐지만 7년간 1만 4000명의 인구가 증가하는데 그쳤다. 4만 3000명의 시민 중 절반은 군인 가족들이다. 하지만 군인 가족들도 각군의 엘리트 장교들이 근무하는 계룡대가 수십년째 자리잡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많지 않은 수다. 이 시장은 군인가족이나 일반인이 계룡시에 정착하지 않는 이유로 ‘교육’을 꼽았다. 특히 중·고교 자녀를 둔 현역 장교들은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군인들에게 계룡시는 퇴직 후에 자리잡고 살만한 곳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는 “기숙형 고교와 특수목적고를 설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국방부와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가 3사관학교 8기로 임관해 20년 가까이 군생활을 하고 소령으로 전역한 만큼 직업 군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었다.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장학금 100억원 조성’이란 목표도 세웠다. 이 시장은 “현재 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학금은 10억원 정도인데 은행에 넣어 두고 그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장기적으로 100억원 정도는 모아야 계룡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장학금 모금의 해결방안으로 ‘기부’를 꼽으며 “방위사업체에 직접 편지를 써서 장학금 모금을 위한 도움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에 장비를 납품해 수익을 얻는 방위사업체가 군인 자녀와 군사도시를 위해 십시일반 정성을 모은다면 금세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환원 개념과도 같은 맥락이다. ●LH 대실지구 사업 보류가 큰 고민 현재 계룡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에 대해 묻자 이 시장은 입술을 살짝물고 ‘LH공사’라고 말한다. 부실경영으로 사회적 문제가 된 LH공사는 이 작은 소도시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는 “15년 전 계룡 인근 대실지구는 LH공사가 주택단지조성지구로 지정해 이미 보상계획까지 내놓았지만 경영상태가 악화됐다는 이유로 사업을 보류하고 있다.”면서 “계룡시와 인근 도시가 15년간 꿈을 갖고 기대하던 사업이 하루 아침에 중단되면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사장은 국방위원들의 도움을 받고자 지난 15일 국방위의 계룡대 육군본부 국정감사에 모습을 나타내 공사 촉구를 위해 노력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중소 상인과 인근 주민들이 개발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 희망을 잃고 있다.”면서 “조속히 대실지구 사업이 시작돼 근심을 털어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LH공사를 직접 찾아 사업을 추진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시장은 올해 제3기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당선돼 7월부터 계룡시의 시정을 맡고 있다. 글 사진 계룡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누드 브리핑] 진익철 서초구청장 “해외좌천 경험이 동포정책에 도움”

    “옛날 서울시 간부로 일하면서 여러 차례 좌천됐던 뼈아픈 경험이 지금 와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바뀌었지 뭐예요.” 진익철 서초구청장이 13일 이렇게 말했다. 한 중국동포로부터 편지를 받은 데 따른 소감이다. 그는 “몇년 전 서울시 사업이 자신의 소신과 맞지 않는다며 끝까지 고집을 피우다가 엉뚱하게 해외 근무를 발령받았다.”며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며 겪은 것들이 다문화 정책을 펴는 데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5일 보건소에서 마련한 ‘중국동포와 함께하는 만남의 장’을 예로 손꼽았다. 중국동포 근로자 200여명과 진 구청장을 만난 최정옥(47·여)씨는 최근 편지를 보내 “일요일 휴식을 포기한 채 우리 얘기를 경청해준 데 감사하다.”면서 “무료 건강검진, 건강관리까지 해주는 것은 덤이다.”라고 적었다. 최씨는 “고국인 대한민국에 와서도 눈에 보이지 않게 억압과 차별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역할하며 떳떳하게 한국 사회에서 살고 싶은 염원이 이제야 이뤄졌다. 그래도 고국은 우리를 품에 꼭 안는구나 하고 느꼈다.”며 글을 끝맺었다. 진 구청장은 강덕기 서울시장 직무대행 시절인 1998~2001년 비서실장을 지낸 뒤 중국 베이징 서울무역관장,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지냈다. 2005년부터는 1년 6개월간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 베이징 수석대표를 역임하는 등 5년 반을 해외에서 근무했다. 진 구청장은 “해외 근무 경험이 없었다면 다문화 국제교류팀을 신설하거나 중국동포 전담 민원창구를 마련하는 등 프로그램을 생각이나 했겠느냐.”며 당시를 회고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JYJ 시아준수 “팬들 사랑으로 결실 맺은 앨범”

    JYJ 시아준수 “팬들 사랑으로 결실 맺은 앨범”

    동방신기 3인이 결성한 그룹 JYJ의 시아준수가 오랜만에 팬들 앞에 서게 된 소감을 전했다. JYJ는 12일 오후 6시와 9시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월드와이드 정규앨범 ‘더 비기닝’(The Begining)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었다. 이날은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가 JYJ로서 국내 팬들 앞에 최초로 선보이는 라이브 무대이자 첫 정규 앨범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 시아준수는 “무대에 서는 게 오랜만인데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앨범을 5시 30분쯤에 손으로 받아봤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여러분들의 사랑에 힘입어 결실을 맺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화정체육관은 이들을 보기 위한 팬들과 그들의 함성 그리고 빨간 야광봉으로 가득 찼다. JYJ 세 멤버는 ‘엠프티’를 시작으로 ‘비더원’ ‘비마이걸’ ‘찾았다’ ‘애니걸’까지 이번 앨범에 수록된 5곡을 열창하며 팬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영웅재중은 “음악이 생소하게 들릴 텐데 우리 목소리는 익숙하실 것”이라고 팬들과의 두터운 신뢰감을 드러냈다. 믹키유천은 “앞으로 여러분들 자주 뵀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JYJ는 팬들에게 전하는 영상편지와 미공개 영상, 앨범작업 에피소드 영상 등을 통해 오랫동안 자신들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 JYJ의 첫 음반에는 미국 팝스타 카니예웨스트와 로드니저킨스, 솔리드 출신 정재윤 등이 작곡가로 참여했다. 세 멤버들 역시 자신이 직접 작업한 곡을 수록해 의미를 더했다. 여기에 리믹스곡 등 총 10곡이 담긴 이번 앨범은 12일 일반판과 한정판으로 동시 발매됐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사진=현성준 기자
  • ‘왕의 귀환’ 동방3인 JYJ “무대와 팬들 그리웠다”

    ‘왕의 귀환’ 동방3인 JYJ “무대와 팬들 그리웠다”

    ‘왕의 귀한’, 믹키유천, 영웅재중, 시아준수가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동방신기가 아닌 JYJ로 팬들 앞에 선 세 사람은 강렬한 카리스마와 무대를 향한 그리움으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JYJ는 12일 오후 6시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월드와이드 정규앨범 ‘더 비기닝’(The Begining)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었다. 이날은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가 JYJ로서 국내 팬들 앞에 최초로 선보이는 라이브 무대이자 첫 정규 앨범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 그런 만큼 화정체육관은 이들을 보기 위한 팬들과 그들의 함성 그리고 빨간 야광봉으로 가득 찼다. JYJ 세 멤버는 ‘엠프티’를 시작으로 ‘비더원’ ‘비마이걸’ ‘찾았다’ ‘애니걸’ 등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열창하며 팬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시아준수는 “무대에 서는 게 오랜만인데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앨범을 5시 30분쯤에 손으로 받아봤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여러분들의 사랑에 힘입어 결실을 맺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이어 JYJ는 팬들에게 전하는 영상편지와 미공개 영상, 앨범작업 에피소드 영상 등을 통해 오랫동안 자신들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어 팬들이 사전에 보내준 질문에 답하며 체육관을 가득 메운 팬들과 소통했다. 믹키유천은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싶었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며 “매 앨범 열심히 했지만 이번 앨범은 남다르고 많은 추억들과 생각과 고민이 들어간 앨범이다. 요즘은 바쁜 게 즐겁다. 그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벅찬 마음을 표현했다. 영웅재중은 “여러 일이 많았고 앞으로도 어려운 일도 많을 거고 그만큼 웃을 일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며 “앞으로 여러분들 앞에서 얘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을 준비해서 사랑받고 싶고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이번 앨범이 그 시작”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JYJ의 첫 음반에는 미국 팝스타 카니예웨스트와 로드니저킨스, 솔리드 출신 정재윤 등이 작곡가로 참여했다. 세 멤버들 역시 자신이 직접 작업한 곡을 수록해 의미를 더했다. 여기에 리믹스곡 등 총 10곡이 담긴 이번 앨범은 12일 일반판과 한정판으로 동시 발매됐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사진=현성준 기자
  • [교황청은 해결사?] “코란소각 비판 고마워” 이란대통령 교황에게 편지

    [교황청은 해결사?] “코란소각 비판 고마워” 이란대통령 교황에게 편지

    이슬람 국가인 이란의 대통령이 가톨릭 중앙 기관인 교황청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10일 AP 등 외신에 따르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난 6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최근 코란을 불태우겠다고 위협한 미국의 목사를 비판한 것에 대해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서한은 모하메드 미르타조디니 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해 전달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편지를 통해 “교황이 현명하지 못한 미국의 한 교회를 비난해 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면서 “(덕분에) 수많은 이슬람교도가 모욕당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교황은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교회 담임 목사인 테리 존스가 9·11테러 9주년을 맞아 코란을 소각하겠다고 밝히자 “모든 종교는 존중과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계획을 철회하라고 압박했다. 존스 목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의 사회 각계 인사가 나서 코란 소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자 계획을 취소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또 편지에서 “인간이 종교의 가르침을 무시한 채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에 젖어들고 있다.”면서 “이러한 파괴적 움직임을 막기 위해 종교 간 공동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란 대통령의 편지를 받은 바티칸은 답장을 보낼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교황에게 서한을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란은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자국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제재를 가하자 도움을 구하는 편지를 교황청에 보낸 바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행복 전도사’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행복 전도사’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지난 7일 오후 8시30분 경기 고양시 장항동의 한 모텔방.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날 아침 7시15분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투숙했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 들여다보니 숨져 있었다는 종업원의 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침대에 단정히 누운 채, 남자는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였다. ‘행복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최윤희(63)씨와 남편 김모(72)씨였다. 방 안에는 편지지 1장 분량의 유서 한 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겉봉에는 “완전 건강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라고 적혀 있었다. 전날 오붓하니 여행 다녀 오겠다기에 지방에 요양이라도 간 줄 알았던 자식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설마했던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와 함께라니…. 최씨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유서에 적어놨듯 2년 전부터 몸 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 폐에 물이 들어차면서 숨 쉬기가 힘들어지는 바람에 지난 추석 때는 응급실에 실려가기까지 했다. 심장에도 이상이 생겼다. 절망에 빠진 최씨는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 내려가 자살하려 했다. 그때 막아선 이는 남편이었다. 홀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남편이 119에 신고했다. 최씨는 왜 자살을, 그것도 한사코 말리는 남편과 함께 가는 길을 택했을까. 최씨의 인생 역정은 충분히 ‘긍정적’이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최씨는 38살이던 1985년 133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현대그룹 주부 공채에 합격,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로 변신했다. 22살에 만난 남편의 사업 실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은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톡톡 튀는 젊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광고 회사에서, 그것도 남녀 차별이 심한 시절에, 마흔 살 코앞의 아줌마는 울기도 참 많이 울었지만 현대방송 홍보국장으로 영전했다. 최씨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냥 전업주부로 살았을 것”이라면서 “사업 실패로 힘들었지만 사회생활을 하게 해준 남편이 지금은 너무 감사해서 매일매일 표창장을 준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쉰둘의 나이에 사표를 던졌다. 자신이 나가면 젊은 친구 3명 정도는 더 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이어 대한민국 주부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에세이집 ‘행복, 그거 얼마예요’를 내놨다.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이화여대 교지 편집장 출신다운 글재주와 대한민국 아줌마의 입심으로 방송은 물론 대학, 기업, 군, 경찰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강연 요청을 끌어냈다. 최씨가 강연이나 책에서 가장 강조했던 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복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었다. 예쁘지 않은 외모 때문에 스스로를 “엉겅퀴, 씀바귀, 고들빼기 삼종 혼합인간”이라고 부르면서도 “못생긴 거, 가난한 거, 무식한 거는 죄가 아니다. 죄는 딱 한 가지다. 열심히 안 사는 죄”라고 잘라 말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행복 전도사’, ‘행복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런 그도 2년여의 투병생활 앞에서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최씨는 유서에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700가지 통증에 시달려 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했다.”고 적었다. 말없이 담배 피워 무는 우수에 찬 모습에 반해 억지로 졸라서 결혼했다던 남편과의 동반자살에 대해서는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 마라’, ‘최윤희의 웃음비타민’, ‘딸들아 일곱번 넘어지면 여덟번 일어나라’ 등 고인의 책을 낸 원앤원북스의 강현규 이사는 “내가 만나 본 저자들 가운데 가장 인간적이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했고. 글 쓰신 그대로 사시는 분이구나 싶어 참 좋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4일에도 고인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강 이사는 “‘행복 전도사가 자살이 웬말이냐.’ 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던데, 정말 아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언젠가는 글에서 하도 남편 자랑을 하기에 그렇게 좋으냐고 최씨에게 슬쩍 찔렀더니 “젊었을 때는 ‘웬수’였는데 늙으니까 너무 좋다고 하시는데 그 표정이나 말투가 정말 사이가 좋으시구나 싶었다. 자제 분들도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친구처럼 보였다. ”는 말도 덧붙였다. 충격과 애도 속에 네티즌들은 “힘든 마음을 모르지는 않으나 그래도 자살은 안 된다.”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동반 자살에는 건강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만성통증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최씨의 병명은 ‘흉반성 루푸스’와 ‘세균성 폐렴’. 각 신체기관에 만성적으로 염증을 불러일으키는 면역계 질환이다. 김종우 경희의료원 정신과 교수는 “만성화된 통증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면서 “(최씨의 자살은) 충동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통증에 대한 무기력증에서 나오는 우울증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미국에 거주하는 딸과 아들(38)이 있다. 최씨 부부의 시신은 경기 일산병원에 안치되어 있다. 빈소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차리지 않았다. 시신은 10일 화장될 예정이다. 조태성·홍지민기자 cho1904@seoul.co.kr
  • 릴웨인, 감옥서 마지막 편지 “난 행운아”

    릴웨인, 감옥서 마지막 편지 “난 행운아”

    감옥에서 날아온 릴 웨인(Lil Wayne)의 ‘마지막 편지’가 7일(현지시간) weezythanxyou.com 블로그에 올라왔다. 릴 웨인은 “어쩔 수 없는 내 상황 때문에 오늘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될 거다”고 소식을 전한 뒤 “‘I Am Not a Human Being’을 지지해 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내 음악을 듣고 좋아해 주시는 여러분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고 적었다. 이어 “평생 그 빚을 갚겠다. 이제 끝이 보인다. 사랑한다. 여러분을 위해 계속 기도하겠다. 여러분도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릴 웨인은 변함없이 그를 지지해 주는 팬들 덕분에 어려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감사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의 진심과 기도가 제 수감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아마 아무도 모를 거다. 나 같은 행운아가 또 있을까 한다. 매일 겸손한 마음으로 지낸다. 27일 동안 너무 마음 졸이지 말아 달라. 이제 다시 시작이다” 사진 = 앨범재킷 빌보드코리아 / 서울신문NTN 뉴스팀 ▶ 케샤, 신곡 두번째 뮤비서 격한 80년대 재연▶ 씨 로 그린, ‘BBC 쇼’서 풍부한 가창력으로 신곡 열창▶ ‘미드’ 글리, 빌보드 100차트서 비틀즈 기록 뛰어넘어▶ ‘영화감독 변신’ 카니예 웨스트, 영화 ‘런어웨이’ 공개▶ 브렛 마이클스, 포토샵 없이 ‘탄탄섹시’ 식스팩 과시▶ 토니 브랙스톤, 2번째 파산신청…빚만 최대 561억▶ 위저, 112억 해체제안 속 화려한 무대 선보여
  • 앤드류 넬슨, ‘슈퍼스타K2’에 편지..제작진 감동

    앤드류 넬슨, ‘슈퍼스타K2’에 편지..제작진 감동

    ’슈퍼스타K2’ 앤드류 넬슨이 제작진에게 자필로 쓴 감사 카드로 감동을 선사했다. 5일 ‘슈퍼스타K2’ 김태은PD는 "지난 9월 30일, 슈퍼스타K 제작진 앞으로 소포가 하나 왔다. 다들 궁금해 하며 열어보니 거기엔 앤드류 넬슨이 제작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글씨로 쓴 감사 카드가 있었다”고 전했다. 앤드류넬슨은 카드를 통해 “이렇게 좋은 기회와 가수의 길을 열어 주신 것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슈스케의 대성공을 축하드립니다. Mnet이 자랑스러워하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2010년 9월 28일. 앤드류 네슨”이라고 다짐했다. 김 PD는 “예상치 못한 카드 선물에 제작진은 큰 감동을 받았다”며 “카드를 받자마자 ‘잘 받았다.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앤드류 넬슨은 탈락 후에도 합숙 때 받았던 관리대로 규칙적으로 운동과 보컬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의 근황을 알렸다. 한편 앤드류 넬슨은 이번 TOP 11중 가장 막내인 15세로 어린 나이답지 않은 감정 표현력과 특유의 발랄함으로 ‘슈퍼스타K 2’에 참가한 동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다. 사진 = 엠넷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압구정 사과녀-홍대 계란녀, 알고보니…▶ 이효리 컷트머리 변신…"뭘 해도 인형포스"▶ 남규리, 금발 엘프녀 변신 "인형이야 사람이야"▶ 이외수 ‘트위터 돈벌이’ 비판에 "외진요 등장?" 풍자▶ 이윤지 파격 화보 공개..’고전+섹시’ 극과극 매력
  • 앤드류 넬슨, ‘슈퍼스타K2’에 편지..제작진 감동

    앤드류 넬슨, ‘슈퍼스타K2’에 편지..제작진 감동

    ’슈퍼스타K2’ 앤드류 넬슨이 제작진에게 자필로 쓴 감사 카드로 감동을 선사했다. 5일 ‘슈퍼스타K2’ 김태은PD는 "지난 9월 30일, 슈퍼스타K 제작진 앞으로 소포가 하나 왔다. 다들 궁금해 하며 열어보니 거기엔 앤드류 넬슨이 제작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글씨로 쓴 감사 카드가 있었다”고 전했다. 앤드류넬슨은 카드를 통해 “이렇게 좋은 기회와 가수의 길을 열어 주신 것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슈스케의 대성공을 축하드립니다. Mnet이 자랑스러워하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2010년 9월 28일. 앤드류 네슨”이라고 다짐했다. 김 PD는 “예상치 못한 카드 선물에 제작진은 큰 감동을 받았다”며 “카드를 받자마자 ‘잘 받았다.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앤드류 넬슨은 탈락 후에도 합숙 때 받았던 관리대로 규칙적으로 운동과 보컬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의 근황을 알렸다. 한편 앤드류 넬슨은 이번 TOP 11중 가장 막내인 15세로 어린 나이답지 않은 감정 표현력과 특유의 발랄함으로 ‘슈퍼스타K 2’에 참가한 동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다. 사진 = 엠넷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이정현, 일상생활 사진서 여전한 동안미모 과시▶ 차예련 “권상우와 생전 처음 만나 키스부터”▶ ’엄마옷’ 서우-’과욕’ 민효린, 드레스 굴욕▶ 김성은 “미달이, 내 인생의 독이자 약” 솔직 고백▶ 귀국 앞둔 신정환 씨, 네팔에서 안녕하신가요?▶ 레이디 가가·저스틴 비버, 유투브 10억 조회수 곧 달성
  • 앤드류넬슨 편지 화제…손글씨 진심에 ‘슈스케’ 제작진 감동

    앤드류넬슨 편지 화제…손글씨 진심에 ‘슈스케’ 제작진 감동

    ‘슈퍼스타K2’ 제작진이 5일 공개한 앤드류 넬슨의 편지가 실시간 인기를 얻으며, 네티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태은 PD는 “지난 9월 30일 ‘슈퍼스타K’ 제작진 앞으로 소포가 하나 왔다. 다들 궁금해 하며 열어보니 거기엔 앤드류 넬슨이 제작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글씨로 쓴 감사 카드가 있었다”고 앤드류 넬슨 감사카드를 공개했다. 카드엔 “이렇게 좋은 기회와 가수의 길을 열어 주신 것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슈스케의 대성공을 축하드립니다. Mnet이 자랑스러워하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2010년 9월 28일. 앤드류 넬슨”이라고 손글씨로 작성된 내용이 담겨있다. 삐뚤빼뚤한 글씨체에 한글이 아직 서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한글로 감사를 전함이 쉽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직접 써내려간 흔적이 역력해 보여 제작진에 대한 앤드류 넬슨의 진심이 느껴진다. 제작진은 앤드류 넬슨의 감사편지에 “예상치 못한 카드 선물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카드를 받자마자 ‘잘 받았다.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앤드류 넬슨은 탈락 후에도 합숙 때 받았던 관리대로 규칙적으로 운동과 보컬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앤드류 넬슨의 근황도 아울러 소개했다. 한편 앤드류 넬슨은 이번 TOP 11중 가장 막내인 15세로 어린 나이답지 않은 감정 표현력과 특유의 발랄함으로 ‘슈퍼스타K 2’에 참가한 동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다. 사진 = 엠넷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차예련 "권상우와 생전 처음 만나 키스부터"▶ 최홍만 눈물고백 "내 모든 것 걸어 그녀 되찾을 것"▶ 김성은 "미달이, 내 인생의 독이자 약" 솔직 고백▶ 배다해 "박칼린에 혼날 때 부모님 눈물" 고백▶ 뎅기열이 韓걸그룹 탓?..태국서 핫팬츠 경계령
  • 리비아서 석방된 선교사 이상득의원에 감사 편지

    “감옥에서 저희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행복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의원님을 통해 소망을 이뤄주셨다.” 리비아 당국에 억류돼 있다 지난 3일 석방된 구모 선교사가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에게 이메일로 보낸 감사 편지다. 구 선교사는 5일 이메일을 통해 “체포된 6월15일 이후 이 의원님이 링거를 맞으면서 어려움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활동하셨다는 것을 풀려난 뒤에야 들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지난 3일 감옥(트리폴리 구치소) 마당에서 성경을 읽고 있다가 형무소장의 사무실로 불려간 뒤 석방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열린세상]“살아 있어 행복합니다”/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열린세상]“살아 있어 행복합니다”/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나무 한 포기 없는 삭막한 칠레 북부의 산호세 광산. 이곳에서 감동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 8월22일 지하 700m 밑에서 “우리는 모두 대피소에 잘 있다. 33인”이라는 쪽지가 올라왔다. 탄광 매몰 17일 만이었다. 절망과 비탄의 산호세 광산은 ‘희망의 캠프’로 바뀌었다. 시추공의 작은 구멍으로 음식·약품 등을 공급하고 있지만, 지금도 광부들은 암흑·더위·습기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다행히 신속한 굴착작업으로 이르면 이달에, 늦어도 다음 달엔 구조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놀라운 일은 그들이 어떻게 외부와 접촉이 완전히 끊긴 채 17일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생존의 필수조건인 비상식량과 물이 있었고, 독성가스가 거의 없었다는 매몰 환경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큰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깥 세상과 연락이 두절돼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17일간의 사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막장의 혼란과 불안을 희망과 질서로 바꾼 리더십이었다. 리더로 나선 인물은 최연장자인 예순두 살의 마리오 고메스였다. 그를 도운 또 다른 2명의 리더는 작업반장 우루주아(54)와 건강담당 배리오(50)였다. 이들 모두 광부 집안 출신이다. 그들이 탄광에서 일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90년이 넘는 베테랑 광부들이다. 열여섯 살 때부터 광부로 일한 고메스는 젊은 나이에 수직갱도에서 손가락이 끊어지는 끔찍한 사고 이후, 작은 성경책에서 위안을 찾았다고 한다. 삶의 역경을 헤치고 살아온 고메스였기 때문에 매몰 광부들에게 정신적 리더가 될 수 있었다. 33인의 광부들은 3명씩 팀을 짜 조직적으로 생활했다. 혼자서는 쉽게 무너져도, 단결하면 강해질 수 있다. 모두를 위해 각각 맡은 역할과 책임이 있을 때 살아갈 이유와 힘이 생긴다. 바로 하모니의 힘이다. 이틀에 참치 두 스푼과 비스킷 한 개씩을 나눠 먹는 극한 상황에서도 광부들은 단합했다. 각각 맡은 음역 파트를 책임지듯이, 33인의 광부들은 각각 맡은 소임을 다하며 희망과 상생의 하모니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역경 속에서 광부들을 살아가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은 바로 평범한 일상의 리듬과 소소한 삶의 즐거움이다. 광부들의 생존은 확인되었지만, 3000~4000t의 돌더미 밑에서 그들을 구조하는 일은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르는 어려운 작업이다. 전문가들이 가장 염려한 것은 낮과 밤이 없는 어둠 속에서 인간이 겪는 정신적·신체적 외상이다. 매일 해가 뜨고 지고, 여기에 맞춰 24시간의 사이클로 살아가는 일상이 인간 생존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가장 먼저 요구했던 것은 바로 ‘칫솔’이었다. 이어 담배, 레드와인, 심지어 아이팟 충전 등을 원했다. 축구경기 TV 중계, 도미노 카드게임 등 일상적 오락 역시 그들을 견디게 하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가족과의 편지와 통화도 중요했다. 가슴 찡한 사랑 메시지도 있지만 집안 일, 청구서 대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등 일상의 소소한 걱정과 대화가 오히려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위안이 되었다. 재난과 역경 속에서 우리가 꼭 부여잡는 희망의 동아줄이 평범한 일상 그 자체라는 게 칠레 광부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도 살아 있는 일상을 감사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33인의 칠레 광부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도, 그들을 살아남게 만드는 것도 모두 그들이 바로 ‘광부’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낮과 밤을 바꾸는 고된 노동, 어둠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체력, 늘 생사고락과 죽음의 공포를 같이한 동료들의 연대감, 그리고 어떤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강인한 삶의 의지…. 고된 삶에서 체득한 위기 극복의 DNA가 역경 속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가장 평범한 인간이 고난 속에서 오히려 가장 위대한 영웅이 되는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이유이다. “살아 있어 엄청 행복하다.”는 칠레 광부들 모두가 하루빨리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의 기적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 [빌보드]릴 웨인, 감옥서 또 편지 “최근 R&B에 푹 빠져”

    [빌보드]릴 웨인, 감옥서 또 편지 “최근 R&B에 푹 빠져”

    릴 웨인(Lil Wayne)이 감옥에서 팬들에게 편지를 또 보내왔다. 릴 웨인의 28번째 생일 다음 날인 28일 Weezythanxyou.com 블로그 사이트에 편지가 올라왔다. 릴 웨인은 편지를 통해 항상 응원해 주는 가족과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릴 웨인은 “여전히 카드게임 우노를 즐기고 있다. 팔굽혀펴기 같은 운동도 변함없이 계속 하고 있다.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내 모습은 아마도 똑같을 것”이라며 “최대한 편하게 쉬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차피 밖에 나가면 쉬지 못할 테니까”라고 일상을 소개했다. 이어 최근 R&B에 푹 빠져있다고 전하며 에릭 베넷(Eric Benet)의 ‘Sometimes I Cry’가 특히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는 “멕스웰(Maxwell)의 ‘Woman’s Worth’ 이후 최고의 명곡인 것 같다. 어른들을 위한 노래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웨인의 새 앨범에서 슬로우 잼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것은 웨인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적 영감을 얻는 것. 평소와 마찬가지로 웨인은 아이들과 영머니 가족들의 이름을 외쳤고 어제 디지털로 공개된 새 앨범 ‘I Am Not A Human Being’도 잊지 않았다. Weezythanxyou.com에서 편지 전문을 읽어 볼 수 있다. 사진 = 빌보드 빌보드코리아 / 서울신문NTN 뉴스팀 ▶ [빌보드] 크리스 브라운, 인터넷 방송서 ‘듀시스’ 리믹스 첫 공개 ▶ [빌보드] 저스틴 비버 꼭 닮은 ‘피규어 인형’, 크리스마스 시즌에 출시 ▶ [빌보드] 미드 ‘글리’ 열혈팬 기네스 펠트로, 남편과 함께 출연 확정 ▶ [빌보드]트레이송즈 “어머니로부터 음악적 영감 받아”(인터뷰) ▶ [빌보드] 마룬5·잭 브라운 밴드, 빌보드 1위 놓고 앨범판매 경쟁 돌입 ▶ [빌보드]50센트·제레미, 3D 뮤비서 섹시한 여성들과 뜨거운 한때
  • 빅토리아, ‘남편’ 닉쿤과 태국시댁 나들이 ‘긴장백배’

    빅토리아, ‘남편’ 닉쿤과 태국시댁 나들이 ‘긴장백배’

    걸그룹 에프엑스(f(x))의 빅토리아가 가상 남편 닉쿤을 따라 시댁 태국을 방문한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를 통해 가상 부부로 출연하고 있는 빅토리아와 닉쿤은 지난 11일 방송분에서 닉쿤의 어머니가 준비한 선물로 기뻤던 순간을 맞이했다. 편지와 선물로만 시어머니를 접했던 빅토리아가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할 기회가 생겼다. 이들 커플은 9월 16일 오전 9시 30분 비행기로 태국을 향했다. 이들은 닉쿤 집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특히 얼짱으로 알려진 닉쿤의 여동생과 이미 ‘우결’ 방송에서 빅토리아와 전화상으로 인사를 한 바 있는 둘째 여동생도 출연할 예정이다. 우월한 이들 남매를 키운 닉쿤의 부모님 역시 방송에 등장한다. 관계자는 “닉쿤은 빅토리아를 데리고 태국을 갈 생각에 들떠있다”며 “자신이 자주 가던 태국의 곳곳을 함께 가보고 싶어 한다. 완벽한 가이드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했다”고 전했다. 빅토리아는 처음으로 시어머니를 만날 생각에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 ▶ 한혜진, 숏팬츠로 각선미 과시…공항패션 ‘시선집중’ ▶ 강은경 작가 “윤시윤 진심이 김탁구 성공 시켰다” ▶ ’생존’ 위한 예능에 ‘발목 잡힌’ 가요계 ▶ 이연희, SM 아이돌과 美서 셀카놀이에 푹 빠져 ▶ ”학교가 팔렸다” 140억 뒷거래 명문사립 j여고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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