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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이기영(전 성주산업 대표)씨 별세 재민(대한농구협회 국제이사)재덕(자영업)혜련(〃)씨 부친상 1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30분 (02)3410-6920 ●김승현(자영업)영현(구리시의원)씨 부친상 김이지(헤럴드경제 기자)씨 조부상 18일 경기도 구리시 한양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9시 (031)560-2433 ●김태수(KIST CAD/CAM연구실 책임연구원)씨 별세 영준(서강대 대학원)영재(군복무)씨 부친상 김태영(에스유티 대표)씨 형님상 16일 태능성심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2)978-7299 ●유승우(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씨 모친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6시30분 (02)3010-2262 ●윤병기(학생)씨 부친상 양두석(라비패션 차장)최성민(대림산업 〃)조광희(한진해운 과장)이정주(굿모닝신한증권 정자동지점 대리)씨 빙부상 18일 건국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6시 (02)2030-7903 ●이상복(한국미니스톱 대표)상현(강화군 성은감리교회 담임목사)상영(도봉구청 민원봉사과)씨 부친상 18일 서울아산병원,21일 오전 9시 (02)3010-2295 ●김성수(신구대 교수)씨 별세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3010-2237 ●고찬혁(기술과미래 대표)권혁진(써키드플랙스 〃)씨 부친상 신봉교(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상무)김준영(세븐스프링스 대표)씨 빙부상 18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0일 오전 10시 (02)392-3099 ●이상성(사업)씨 부친상 정희(서울버스 지점장)경희(매일전기 인천관리 부장)씨 조부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6시 (02)3010-2252 ●우종남(사업)종현(〃)종권(앤드앤위드코포레이션 대표)씨 부친상 김봉준(한국토지공사 과장)씨 빙부상 18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31)787-1057 ●이경호(HST 대표)창호(에센올 〃)인호(학원사 주부생활 광고국 이사)씨 모친상 17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921-1099 ●방윤현(KBS 심의팀장)태현(부산은행 범어출장소장)정미(거창 중앙고 교사)씨 부친상 하용주(부산 서구청)최영진(거창 샛별중 교사)김일용(거창 대성중 〃)씨 빙부상 17일 거창장례식장, 발인 20일 오전 8시 (055)945-1401 ●전준수(아토스 전무)창수(사업)익수(홍은제지 부장)씨 부친상 임병관(사업)임남재(포스코건설 상무)씨 빙부상 김은숙(서울 영풍초등학교 교사)씨 시부상 18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31)787-1501 ●이정근(한국경제TV 마케팅본부 과장)씨 모친상 18일 인천 강화장례식장, 발인 20일 오전 8시 (032)932-8761 ●이종억(교통방송 보도부 취재차장)종찬(현대경제연구원 팀장)은미 은숙씨 부친상 백장현(한전산업)민정식(관저고 교사)씨 빙부상 18일 대전 충남대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42)257-6944 ●최경희(한양제재소 과장)은희(한국외대 언론정보연구소 연구원)윤실(동삼건영 과장)씨 부친상 홍제연(충남역사문화원 연구원)씨 빙부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7시 (02)3010-2265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6)한국 최고의 목조 성당 강화읍 성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6)한국 최고의 목조 성당 강화읍 성당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에 들어선 뒤 고려궁지로 향하다가 오른쪽 좁은 골목길을 끼고 구릉 정상에 오르면 만나게 되는 강화읍성당(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북산과 남산의 가운데 지점에 한옥으로 잘 지어진 이 성당이 바로 개항기 최대의 선교 거점이었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전통 목조 중층 한옥의 성당은 정면 4칸, 측면 10칸의 총 40칸 규모. 팔작지붕을 얹고 목골 벽돌조로 외벽을 두른 한옥이지만 내부공간을 전형적인 삼랑식(三廊式) 바실리카 양식으로 연출한 동서양의 정교한 만남이 이채롭다. 지금은 관할 사제 1명에, 불과 100여명의 신자가 적을 두고 있는 작은 교회지만 1900년 세워질 때만 하더라도 강화에선 기독교를 통틀어 가장 먼저 세워진 큰 교회였다. 성공회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희준을 배출한 성당이고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철범 주교도 이 성당 출신. 이 성당보다 조금 늦게 강화에 세워진 온수리 성당은 현재 강화에서 교세가 가장 크지만 여전히 강화읍성당은 이 지역 12개 교회와 기관을 대표하는 중심 성당이다. 성당의 모습은 세워질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산을 향해 외삼문, 내삼문, 성당, 사제관이 늘어서 마치 배의 형상을 연상케 한다. 선교사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가 되자.”는 뜻을 세워 배의 모양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선 성당의 바깥 출입문인 외삼문은 뱃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강화읍내를 훤히 내려다보고 있다. 외삼문에서 3계단을 더 올라 내삼문을 지나도록 돼 있는데 여기에는 종각이 들어서 있다. 원래 이 종각에는 1914년 영국에서 들여온 종이 매달려 있었는데 서울대성당의 것보다 조금 작지만 음색이 아름답고 소리가 4방 30리까지 울려퍼졌다고 한다.1945년 일제에 의해 징발되었으며 지금의 종은 1989년 신자들이 모금해 다시 매단 것이다. 종각 중간에 서서 배의 선복에 해당하는 성당의 팔작지붕을 올려다보면 가장 먼저 ‘천주성전(天主聖殿)’이란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성당이나 예배당에서 일반적인 ‘당(堂)’ 대신 성전으로 쓴 것이 독특하다.‘천주성전’ 현판 밑 4칸 벽면에 주련이 걸렸는데 이 주련 위에 연꽃 무늬를 장식한 것도 인상적이다. 출입구인 전실과 회중석, 통로, 지성소(대제대), 감실(소제대), 예복실로 구성된 성당의 내부는 바깥에서 보기와는 영 딴판. 모두 20개의 큰 나무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전실에서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3번째 기둥 중간에 세례할 때 쓰이는 화강암 성천대가 있다.6번째 기둥부터 북쪽으로 지성소와 제대가 들어서 전체적으로 이 곳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꾸몄다. 지성소 안에는 회중석 마루보다 높은 계단 위에 돌판을 깔고 그 위에 화강암 제대를 고정했다. 이 제대는 의식을 거행할 때 신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신성한 곳으로 성당 전체적으로 가장 정성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제대 뒤 가운데 기둥에 하느님 야훼를 뜻하는 ‘만유진원(萬有眞原)’이라 쓴 현판은 당시 선교사들이 선교의 근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성소 북쪽 1칸을 2계단으로 높이고 제대를 놓은 후 정면에 성체를 봉안하는 성막을 안치했는데 이곳이 작은 예배가 이루어지는 집회공간. 성당의 구조상 미사때 사제가 신자들에게 등을 보인 채 집전하는 형식이 살아 있는 유일한 성당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초기 교회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유배지 강화에 이처럼 큰 성당이 세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초기 선교사들이 이곳을 영국의 이오나(Iona) 섬처럼 신앙의 성지로 삼으려는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서안에 있는 이오나 섬은 6세기쯤 콜롬바(Colomba)가 들어가 교회를 개척하고 수도원을 세운 성공회의 뿌리. 유배지 강화도도 당시만 해도 소외와 핍박의 땅으로 교회가 전혀 없었다. 선교사들은 강화외성 출입문인 진해루 밖 나루터에서 한옥 한 채를 마련해 처음 선교를 시작했는데 바로 이곳이 강화 최초의 교회인 셈이다. 당시 조선정부가 해군을 육성하기 위한 해연총제아문을 설치해 그 직속으로 조선수사해방학당을 1893년 이곳에 설립했던 것도 성공회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던 요인. 당시 영국인 해군장교와 포병교관이 임명되고 통역으로 고용된 성공회 교인이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강화읍성당이 축성된 것은 성공회 3대 주교인 조마가(트롤로프) 신부때.1899년부터 터닦기를 시작,1년간의 공사를 거쳐 1900년 11월15일 축성식이 열렸다. 조마가 신부가 신의주에 직접 가서 백두산 원시림 적송을 뗏목으로 강화까지 운반했으며 도목수는 경복궁을 신축할 때의 도편수였다고 전해진다. 조마가 신부는 지금도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에게 회자될 만큼 강화도 지역에서 그의 치적은 곳곳에 담겨있다. 기와와 석재는 모두 강화산을 썼으며 성당내 석물과 담장 기단은 인천에서 온 중국인 석공들이, 담장 미장은 강화 주민들이 맡았다. 강화읍성당이 축성된 뒤 감리교, 장로교 등 개신교와 천주교가 앞다투어 선교에 나서 교회들을 세우면서 그야말로 강화는 종교 각축장이 되어갔다. 지금 강화읍성당 주변에 감리교 중앙교회, 장로교 성광교회, 천주교 강화성당 등 강화지역에선 가장 큰 교단의 중심 건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당시 선교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강화읍에선 지금 이 교회들과 주변의 고려궁지, 용흥궁 등을 연결하는 문화벨트 조성공사가 추진중이다. 강화읍성당 관할사제이자 성공회 강화교무국 총사제인 김준배(57) 신부는 “성공회는 구한말 열강의 각축과 맞물려 경쟁적으로 진행됐던 기독교 선교양태와는 사뭇 다르게 한국문화와의 접목을 시도했고 강화읍성당은 그 토착화의 전형”이라면서 “기독교계에서 한국 초기 선교의 역사와 토착화된 교회 양식을 담고 있는 이 성당을 원형대로 보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kimus@seoul.co.kr ■ 강화도 의병운동과 교회 1907년 강화도에서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번졌던 정미 의병운동은 지금까지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정미 의병운동이란 정미조약 직후 강제해산당한 군대 출신들이 의병을 조직해 무력투정을 전개한 사건. 이동휘 연기우 지흥윤 유명규 등이 주도한 의병들이 일본인 순사와 일진회 강화지부 총무였던 강화 군수 정경수를 살해했는데 이와 관련해 일본군 수비대가 의병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인과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강화 의병운동의 핵심인 이동휘는 강화 진위대장 출신으로 1905년 강화읍에서 감리교로 개종한 인물. 강화읍교회의 권사로서 강화 지역을 순회하며 선교사들로부터 ‘강화의 바울’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동휘가 감리교 권사였다는 사실 때문에 감리교회는 민족주의 단체로 인식됐고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에 비해 성공회는 직접적인 무력투쟁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중도적인 입장을 택해 많은 주민들을 구한 공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주민들이 전란을 피해 강화성공회 성당이나 수녀원에 모여들었는데 성공회 단 아덕(터너) 주교가 일본군 대장과 두차례 담판하여 일군을 물러나게 함으로써 화를 면했던것. 성공회는 “일군의 공격을 사전에 막아 주민들의 희생을 줄였지만 일본군의 무력행동에 대한 비판없이 사태수습에 나선 것은 아쉬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 [인천이 원조] (9) 초등학교

    [인천이 원조] (9) 초등학교

    인천항 개항 후 다양한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도 서구식 신교육이 도입된다. 1892년 존스 목사는 인천시 중구 내동 내리교회를 보살피던 아펜젤러에 이어 2대 목사로 부임했다. 이어 감리교 여선교부도 이화학당의 마거릿 벤젤을 이 교회에 파견했다. 서울에서 교사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1892년 4월 내리교회 내에 성경 공부를 비롯해 신교육을 펴는 매일(daily)학교를 설립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 기관인 ‘영화학당’의 출발이다. 물론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영화학당보다 먼저 설립됐지만 이들은 중등 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영화학당의 초기 학생수는 남자 3명, 여자 2명에 불과했다. 실제 교육은 내리교회에 상주하던 전도사였던 강재형씨와 부인 강세실리아가 자신들의 숙소에서 실시했다. 최초의 ‘부부교사’인 셈이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이라 각기 다른 방에서 강씨는 남자 어린이를, 부인은 여자 어린이를 가르쳤다. 초미니 학교지만 설립 주체도 달랐다. 존스 목사는 남학교를, 벤젤은 여학교를 각각 설립했다. 이들도 1893년 5월 결혼식을 올려 ‘부부교장’이 되었다. 그러나 영화학당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인천에서는 서양인들이 어린이 간을 약에 쓴다는 등의 요언이 나돌아 1895년에야 겨우 학생이 2명 늘 정도였다. 당시 학생들은 가난해서 학교측이 학용품은 물론 용돈까지 대줬다. 학과목은 한문·국문·성경·지리·영어에다 수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였는데, 매 시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기 위해 손으로 흔드는 종을 사용했다고 했다. 1904년 존스 목사는 어려운 학교 운영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자선사업가인 콜린스로부터 1000달러를 기부받아 그해 11월 인천시 중구 경동 싸리재에 벽돌로 된 단층짜리 교사를 신축하고, 인천의 유지와 교원들로 구성된 의사회(議士會)를 통해 학교발전책을 논의한다. 의사회는 이듬해 교직원과 학생들이 단발을 하고 검정색으로 염색한 교복을 입도록 하는 등 개화에 앞장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더구나 1906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북돋아주기 위해 내리교회 신자가 미국으로부터 구입해 기증한 나팔과 북, 고물 소총 등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해 시민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영화학당은 1911년 지금의 영화초등학교 자리인 인천시 동구 창영동 36번지에 2층 벽돌집 교사를 마련해 이전하고 1913년에는 강당까지 건립, 명실상부한 인천의 명문교로 발돋움해 수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뿐만 아니라 이 학교에서는 일본말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교육당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박사이자 여성계 지도자였던 김활란, 유아교육의 개척자 서은숙 박사, 이화여대의 교육자 김애마 학장, 미국 줄리아드 출신 음악가 김영의 교수, 영화배우 황정순 등이 모두 영화학교 출신이다. 그러나 영화학당은 1930년대에 이르러 관립 학교에 밀려 서서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학교 이름도 영화소학교-영화국민학교를 거쳐 영화초등학교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학교는 아직까지 옛 그 자리에서 초등학생들을 양성하고 있다. 전체 학생은 학년당 1학급씩 90명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효시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4) 정동제일교회 ‘벧엘 예배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4) 정동제일교회 ‘벧엘 예배당’

    ‘한국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정동제일교회(서울 중구 정동34·사적 제256호). 정동제일교회의 초석이자 신자 수 150만명에 달하는 한국 감리교의 요람이 바로 ‘벧엘예배당’이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을 중심으로 선교를 펴나간 ‘하나님의 집’(벧엘). 이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건물 안에는 교회사에 남을 숱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서울시청 건너편 덕수궁 돌담 길을 따라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정동극장과 이화여고, 시립미술관에 둘러싸인 아담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크지 않지만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교회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게 벧엘예배당. 지금은 주변의 높은 빌딩들에 가려 왜소해 보이지만 1898년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통적인 라틴십자형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을 때만 해도 이 ‘언덕 위의 신식 건물’은 단연 장안의 명물이었다. 하나님 신앙을 상징하는 중앙의 높은 천장지붕과 양측 측랑의 삼랑식(三廊式)에, 출입구에서부터 제단까지 장방형의 긴 수평선을 갖추고 있다. 중앙의 높은 수직과 장방형 긴 수평방향의 내부공간이 유럽 전통의 고딕양식을 띠고 있지만 신랑(身廊)과 측랑(側廊) 천장높이의 큰 차이가 없는 것은 전통 고딕양식에서 탈피한 느낌이다. 삼각형의 박공 지붕형태가 고딕 교회에서 흔한 뾰족첨탑을 대신하는 게 독특하다. 기둥은 처음 지어질 땐 없었지만 증축과정에서 생겨난 것.4각 또는 원형의 석조기둥이 중앙 신랑과 양측 측랑을 구분하고 있으며 이 내부 기둥을 통해 가운데 신랑과 양쪽 측랑이 구분되어 종교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창문의 첨두아치와 격자무늬 장식창은 일반적인 고딕형태보다 단순화된 형태로, 나중에 교회창문의 모형이 됐다. 제단은 내부 전면에 4각의 형태로 외부에 약간 돌출되어 있고 내부의 반원형 아치는 전통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만들어 들여온 강단 성구는 한국 개신교 최초의 것으로 이후 모든 교회들이 같은 형태의 성구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1885년 부활절에 한국 땅을 밟은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가 서울 정동구역에 일군 역사는 곳곳에 스며 있지만 이 벧엘예배당은 그중에서도 핵심. 미국 감리교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의 책임을 부여받아 한국에 파송돼 온 선교사 아펜젤러 일행이 처음 치중했던 것은 선교가 아닌 교육사업이었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그가 처음부터 선교를 강행하기엔 무리였다. 아펜젤러를 비롯해 당시 선교를 위해 함께 한국에 들어온 일행이 고종으로부터 허락받은 것도 교육과 의료사업에 국한됐다. 그래서 1887년 시작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그같은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선교에 앞서 탄생한 한국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벧엘예배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 온 뒤 정동의 조선인 집을 사들여 내실 한 방을 지성소로 꾸며 첫 예배처로 삼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정동예배처’. 한국 감리교와 정동제일교회의 태동지로, 이곳에서 한국선교회가 창시됐으며 배재학당이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남녀가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남자들은 교회이자 학교인 아펜젤러의 집에서 모였고 여자는 함께 파송된 스크랜튼 여사의 집과 이화학당에서 모였다.1885년 10월11일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한 한국개신교 최초의 성찬예배가 드려졌는데 정동제일교회는 이날을 창립일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조선인에게 전도하는 것은 여전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아펜젤러는 우선 일본 공관원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이 모임이 성장해 서울연합교회로 발전했으며 초대 담임목사로 아펜젤러가 선임됐다. 그러다가 고종이 ‘배재학당’이라는 학교명을 하사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복음선교사업도 본격화되었다. 이같은 흐름을 타고 세워진 게 바로 벧엘예배당이다. 예배당 건립비용(8048.29원, 조선인 모금액 693.03원)은 미국 선교부가 대부분 충당했고 한국의 교인들도 헌금을 했지만 극히 일부분이었다. 건립 당시의 예배당 규모는 길이 70자, 너비 40자, 높이 25자,115평. 지붕은 함석으로 꾸몄고 사방으로 유리창을 내어 자연채광을 하였다.1897년 6월 거의 완공됐을 무렵 배재학당 방학식을 먼저 치렀고, 헌당예배는 그해 12월26일 성탄절에 드렸지만 실제 건물이 완공된 것은 이듬해인 1898년 10월이었다. 2년 반에 걸친 공사 끝에 세워진 벽돌예배당은 단연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당시만 해도 검은 기와나 초가지붕에 흙으로 쌓은 집 일색이었으므로 당연히 화제가 되고도 남았다. 이 건물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줄을 이었다. 처음 보는 십자가 모양 예배당 형태 자체는 물론, 남쪽 귀퉁이에 솟은 종탑은 퍽 이색적인 것이었다.“교회당에 지붕을 올린 후 8개월 동안 고종황제를 비롯해 시골에서 온 농부들까지도 교회당의 구조에 대해 경이로움을 갖고 구경하러 왔다. 교인들과 외국인들도 감격에 겨워 교회당 주변을 맴돌았다.”(1897년 아펜젤러 연례보고서) 예배당이 처음 건립됐을 때만 해도 의자 없이 마룻바닥에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보았으며 남녀석 가운데에는 휘장을 쳐 남녀를 구분했다. 예배 때면 창문을 통해 예배 모습을 들여다보는 구경꾼들로 혼잡을 빚곤 했다.“주로 이화학당 학생들로 구성된 성가대와 찬송소리를 듣기 위해 주일마다 교회창문은 구경꾼들로 메워졌고 제단에 나와 남녀 교인들이 나란히 무릎꿇고 예수의 피와 살을 받아먹고 마시는 그 거룩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정동제일교회 구십년사).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혼례도 이곳에서 열렸다. 예배당이 건립된 이듬해인 1899년 7월14일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 두쌍이 합동결혼식을 가진 것으로 이후 이른바 ‘신식결혼’‘연애결혼’이 확산되었다.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정동거리는 당시 문학예술인들의 중요 활동처. 나도향 전영택 등이 작품활동을 하며 후진을 양성했고 창조, 백조 등의 주요 문학동인지가 탄생했는가 하면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일제치하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정동교회 역시 수난을 피하지 못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감리교 대표가 9명으로 이 가운데 정동교회 교인 2명이 옥고를 치렀다. 특히 2만 5000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서울 중심부에 몰려들면서 정동교회 주변에 살던 신자들이 성밖으로 밀려나 예배 참석자가 사뭇 줄었고 1912년 한 해에만도 교인 54명이 상하이, 만주로 망명하거나 이민을 간 것으로 정동교회측은 밝히고 있다. 벧엘예배당은 1916년 북편을 증축한 데 이어 1926년 1500명 수용 규모로 60평을 증축하면서 원래의 라틴십자가형에서 지금의 사각형으로 변해 원형을 잃은 아쉬움이 있다. 6·25전쟁 중엔 폭격을 받아 예배당의 절반가량이 무너져 내렸으며 이때 예배당에 있던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도 부서졌다.1977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 ‘문화재 예배당’으로 불려 왔으며 1987년 화재로 소실된 내부 보수와 1990년 종탑 보수,2001년 건물붕괴 우려에 따른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kimus@seoul.co.kr
  • [서울의 문화재] (9) 구세군 본관

    [서울의 문화재] (9) 구세군 본관

    지난 5일 구세군 본관을 찾았다. 주소는 서울 중구 정동 1의 23. 지난 연말 종이 울리는 가운데 한 소년이 구세군 자선 냄비에 돈을 넣는 장면이 떠올랐다.‘구세군 자선활동을 하는 본부는 어떤 모습일까.’하는 설렘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본관을 대면한 첫 느낌은 유럽 배낭여행 때 본 건물 같다는 것.5m밖에 안 되는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넝쿨이 뒤덮인 덕수궁 돌담길이 있다. 유럽식 건물과 한국 전통 담장이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문을 열자 구세군역사 박물관장인 김준철(67)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군복에 수염을 기른 그가 역사책에서 본 영국 신사와 비슷해 보여 살짝 미소를 지어 보았다.“건물안에 들어오니 영국에 있는 한 집에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을 붙이자, 그는 “맞아요.80년 전쯤 영국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구세군 본관은 현관 앞에 4개 기둥이 있고 좌측과 중앙, 우측이 1대 2대 1의 비율로 나뉜 르네상스 양식이다. 근대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2년 3월 서울시 기념물 20호로 지정됐다. 덕수궁 주변엔 영국식 건물이 몇개 더 있다. 구세군 본관 뒤편엔 영국대사관이 있다. 대사관 옆엔 영국 성공회교회가, 교회로부터 20m이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회인 영국 감리교회인 정동교회가 있다. 정동교회와 성공회교회는 모두 110년과 80년 전에 지어졌다. 영국에서 본 수백년 된 아름다운 건물이 생각났다. 영국에 다녀온 사람은 덕수궁 주변을 돌면 잠시 영국에 온 느낌이 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구세군은 자선단체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구세군은 기독교의 한 종파이다. 본래 구세군은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라는 뜻이다. 종파가 군 조직으로 이뤄진 건 독특하다. 구세군에서 교주는 대장으로 불린다. 구세군 본관도 1928년 구세군 대장이었던 브람웰 부스의 방문 기념으로 지어졌다. 대장 아래 98개의 군국으로 이뤄졌다. 군국은 보통 국가와는 좀 다르다. 한국처럼 한 국가가 한 군국이 되기도 하지만 신자가 적으면 몇 나라가 합쳐 한 군국이 된다. 구세군은 군대 조직인 만큼 군국 책임자는 사령관, 신자는 병사로 불린다. 목사는 사관이고 이들은 계급에 맞는 계급장을 단다. 140년 된 구세군 역사를 살펴 보면 구세군 창립자는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다. 산업혁명 이후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자 부스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선교활동을 하며 사회사업을 한다. 빈민들은 그들을 구세군이라고 불렀고 교회가 구세군을 혹독하게 비판하자 부스는 독립해 구세군 교회를 세웠다. 그 뒤 구세군은 창립 취지에 따라 선교활동 못지않게 사회사업에 큰 비중을 두게 된다. 구세군의 한국에서의 사회복지사업 활약은 대단했다.1908년 한국에 들어온 구세군은 그동안 어두운 시절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들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전쟁 당시 일부 구세군이 인민군에게 처형을 당하는 억압 속에서도 사회사업을 멈추지 않았다.1960∼1970년대 연말에 불우한 이웃을 돕고 물난리 등 국가 재해 때 적극 복구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런 한국 구세군 역사는 구세군 본관 1층 구세군 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1930년대 초 구세군 냄비가 있다. 앞면엔 ‘남비’, 옆면엔 ‘냄비’라고 표기돼 있어 재미를 더 한다. 냄비가 바른 표기다. 또 한국 전쟁과 1960∼1970년대 불우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재해 복구작업을 하는 장면을 찍은 흑백사진들과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 구세군 군복의 변형 과정과 최초 한국에 구세군을 전도한 허가두 정령의 책상과 의자도 있다. 박물관에서 나오면서 “경제 발전으로 한국에서 구세군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 아니냐.”고 묻자, 김 관장은 “건물이 커질수록 그림자도 커진다.”면서 “도시 곳곳에 빈민이 오히려 늘고 있어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의 비유는 양극화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이 구세군 마음이 널리 퍼져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 아끼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데스크시각] 총무원장이 추기경을 만났을 때/김성호 문화부 부장급

    27일 종교계 수장들의 의미있는 만남이 있었다.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성북동 ‘성가정 입양원’을 방문, 지원금을 전달했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지관 총무원장을 반갑게 맞은 것이다. 종교계 수장들이 나란히 앉은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데 더해 두 수장의 화제가 ‘종교간 대화’였으니 예사롭지 않다. 올해 부활절과 부처님오신날 언저리에서 종교간 화해가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의 주제가 ‘생명과 화해’였던 데 이어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각 불교 종단 대표들이 낸 법어에 화해가 단골로 낀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는 그중에서도 놀랄 만한 것이다.“번뇌 속에 푸른 눈을 여는 이는 부처를 볼 것이요, 사랑 속에 구원을 깨닫는 이는 예수를 볼 것입니다.” 불교계 큰 어른이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어에서 예수를 거론한 것이다. 종교계에 남을 화해의 법어가 아닐 수 없다. 이에 화답하듯 정진석 추기경은 조계종 총무원에 전달한 ‘불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지금도 끊임없는 분쟁, 증오와 대립,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자비하심을 닮고 모든 종교의 근본 가르침인 사랑을 실천할 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종교간 대화를 강조했다. 오는 7월 1만여명의 세계 감리교인들이 참가해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감리교대회의 큰 주제 역시 종교간 화해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와 한국교수불자연합회는 다음달 19일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종교간 화합을 놓고 공동학술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종교계에 불고 있는 화해의 바람(?)에서 잠깐 비켜서 속내를 들여다보면 화해일색만은 아니다. 우선 개신교 사상 처음으로 보수쪽 한기총과 진보쪽 KNCC가 공동주최한 지난 부활절 연합예배만 하더라도 아쉬움이 크다. 연합예배의 자리였지만 한기총과 KNCC 두 단체를 뺀 천주교며 여타 기독교 단체들이 빠졌다. 기독교 전체를 아우르는 행사로 치른다는 기대가 또 불발로 끝난 것이다. 해마다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북한의 조선그리스도연맹과 남한 교회들은 공동기도문을 채택해 봉독한다. 북한의 교회마저 동참하는데 왜 부활절 예배며 미사에 가톨릭과 개신교 단체들은 한자리에 모이지 않을까. 부처님오신날도 사정은 마찬가지. 석탄일마다 북한 불교도연맹과 조계종은 번번이 공동발원문을 봉독하지만 남한의 불교 종단들이 모두 참여하는 발원문 같은 것을 마련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얼마전 국내 개신교 가운데 가장 교세가 크다는 교단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였다.10여년전 ‘교회 밖(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소신을 펴다가 이단으로 몰려 출교당한 교역자의 복권을 묻자 교단 대표들은 한결같이 “시간이 더 흘러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지. 교단 내부에서조차 열린 마음을 보이지 못하는 실정에서 종교간 화해를 기대하는 게 무리일 것도 같다. 말로만의 화해가 아니라 실천하는 화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최근 세계 각국의 종교 성지를 함께 순례하고 돌아온 원불교·불교·천주교 여성 교역자들의 모임인 삼소회의 한 멤버가 이런 얘기를 했다.“3개 종단 여성 교역자들만의 만남과 대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남성들, 모든 종교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사실상 한국 종교 대표들의 만남은 1970년대 초반부터 있어왔다. 종단 대표들의 모임인 종교지도자협의회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종교간 대화와 화해에 있어선 이렇다 할 흔적이 없다. 물론 한국만큼 종교간 분란없이 공존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종교간은 차치하고라도 종단, 교단간의 교류조차 일천하기 짝이 없다.27일 총무원장과 추기경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구두선이 아닌 종교계 전체의 실천적 만남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김성호 문화부 부장급 kimus@seoul.co.kr
  • 세계 감리교대회 서울서 연다

    전 세계 감리교 교인 1만여명이 한국에 모여 한반도와 세계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 오는 7월20일부터 5일간 서울 망우동 금란교회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케 하시는 하나님’을 주제로 열리는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 세계감리교협의회(WMC)가 5년마다 개최해 7000만 세계 감리교인들이 함께 하는 선교축제이자 세계 교회 친교대회로 ‘감리교인들의 올림픽대회’라고도 불린다.이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 외국의 감리교인 5000여명이 1200여명의 한국 감리교인과 남북·국가간, 사회·교회간, 개인의 화해를 놓고 주제발표와 토론을 벌이며 참석자들은 대회 말미에 ‘한반도 화해와 평화선언’도 발표할 예정이다. 대회에는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 샘 코비야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와 로마 교황청의 교회일치평의회 의장 발터 카스퍼 추기경, 케네스 키론 세계성공회협의회 사무총장 등이 들어 있다.특히 대회에 앞서 미국교회협의회 총무 로버트 에드거(하원 의원)를 비롯한 미국 감리교 대표단 20여명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토록 미국 국무부가 추진 중이라고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측이 귀띔했다.또 지난해 11월 신경하 기감 감독회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위원장 강영섭 목사가 대회 참석의사를 밝힌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아직까지 북한측 교회 대표가 남한을 방문한 사례는 없다. 대회 참가자들이 행사기간중 일반 신자들의 집에서 묵는 홈스테이도 종전 대회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 대회만의 독특한 진행방식이다. 한편 기감은 7월23일 임진각에서 대회에 참가하는 외국의 목회자·신도 300여명과 국내 목회자·신도 700여명이 함께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 예정이다.신경하 기감 감독회장은 “이번 대회는 단순한 감리교 교파 차원의 종교적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적인 행사이자 기회”라고 말했다. 1729년 영국에서 존 웨슬리에 의해 시작되어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본부를 둔 감리교는 132개국의 78개 교단이 가입돼 있으며, 교인은 총 7300만명. 미국에선 남침례교 다음으로 신자가 많고 영향력이 가장 큰 종교단체로 꼽힌다. 한국에는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처음 전했으며 신자는 150만명에 달한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인천의 원조] (1) 한국최초의 호텔 ‘대불’

    [인천의 원조] (1) 한국최초의 호텔 ‘대불’

    인천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들어선 시설이 많다. 조선 말 이후 인천항이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통로 역할을 한 데다 인적 교류 또한 왕성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음식, 제품, 문화, 생활사 등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을 인천시민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한 ‘인천이야기’를 시리즈로 풀어본다.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인천에는 구미 각국의 외교사절, 선교사, 여행객들이 밀려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목적지가 서울이었기 때문에 인천에 도착하면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그러나 철도가 놓이기 전이어서 교통편이라고는 조랑말이나 가마 정도가 고작이었다. 걸어서 가려면 하루종일 걸렸다. 또 배의 도착시간에 따라 하루를 묵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자 자연스레 숙박시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숙박시설의 정결함을 유난히 따지는 서양인들을 주막에 재울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근대적 숙박시설인 호텔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효시가 1888년 인천시 중구 중앙동에 세워진 ‘대불호텔’이다. 이 호텔은 1902년 서울시 중구 정동에 들어선 ‘손탁호텔’보다 14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대불호텔은 일본조계 입구에 벽돌식의 3층 건물로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에 의해 1887년 착공돼 다음해 완공됐다. 당시 일본조계 첫집이 호리씨 자택이었고, 두번째가 대불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구라파인이나 미국인들을 겨냥해 서양식으로 설계됐다. 대불호텔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중국인 이타이라는 사람도 외국인 상대로 장사를 했는데,1층에는 잡화상점을 차렸고 2층에는 ‘스튜워드 호텔’을 개업했다. 대불호텔은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맞았으며 침대가 딸린 객실 수는 11개, 다다미 수는 240개에 달했다. 숙박료는 당시 화폐로 상급 객실 2원 50전, 중급 2원, 하급 1원 50전이었다. 같은 시기 일본식 여관인 ‘수월루’의 상급 객실 숙박료가 1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무려 2배 이상 비쌌음을 알 수 있다. 호텔 내에서는 외국인들의 입에 맞는 서양요리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불호텔은 일제시대 때 중국요리집인 ‘중화루’로 바뀌었다. 중화루는 공화춘, 동흥루 등과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3대 중국요리집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 건물은 1978년 헐린 뒤 현재는 나대지로 방치돼 있다. 대불호텔에 대한 또다른 기록은 우리나라에 처음 온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의 서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1885년 4월 5일자 비망록에는 “끝없이 지껄이고 고함치는 일본인과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들 한복판에 짐들이 옮겨져 있었다. 다이부츠 호텔로 향했다.”라는 구절이 있다.‘다이부츠’는 대불호텔의 일본식 발음이다. 따라서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1888년 대불호텔을 건립하기 이전에 이미 같은 이름의 서양식 호텔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펜젤러는 “호텔방은 편안하고 넓었으나 약간 싸늘했다. 식탁에 앉았을 때는 잘 요리되어 먹기 좋은 음식이 나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美보수단체 포드車 불매운동

    심각한 판매부진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포드자동차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보수 기독교 단체의 불매운동 위협에 직면했다. 동성애자 권리단체를 지원하고 동성애자 잡지에 광고를 게재했다는 이유다. 감리교 계통의 보수단체인 미국가족협회(AFA)가 포드자동차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선언했다고 로이터와 AFP통신 등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FA는 “포드가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란에서 중립 지키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동성애 단체와 행사에 대한 지원 중단 약속을 어겼다.”면서 “300만명의 회원과 함께 1년 동안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포드가 수십만달러를 동성결혼 허용을 주장하는 단체에 줄 권리가 있듯이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포드가 만든 자동차를 사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포드의 캐틀린 보크스 대변인은 “포드는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오직 혁신적인 승용차와 트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포드의 입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포드는 지난해 5월 AFA로부터 처음 불매운동 위협을 받고 동성애자 행사 후원과 광고 게재 중단을 약속해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하지만 동성애자 인권단체의 집중포화를 맞자 다시 결정을 뒤집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계속해왔다.동성애 합법화 논란과 관련, 홍역을 치른 기업은 포드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빌 게이츠 회장이 동성애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바람에 올해초 보수 기독교계의 ‘MS주가 떨어뜨리기 운동’을 불렀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의좋은 3형제 합동결혼식

    의좋은 3형제 합동결혼식

    바빠서 “너먼저” 하는 형에 “형님 먼저 들어가셔야죠” 長幼有序(장유유서)라는 유서깊은 질서원리에 따라 세 신랑과 그들의 신부의 이름을 읽어보자. 신랑 宋榮燮(송영섭) 군(29) 신부 劉澤蓮(유택연) 양(24) 신랑 宋顯燮(송현섭) 군(26) 신부 金景珉(김경민) 양(23) 신랑 宋顯洙(송현수) 군(23) 신부 朴京子(박경자) 양(22) 3형제의 키는 후리후리한 장신.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분간할 수 없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신랑들인데 2시5분이 되자 그중 한 신랑이『형님 빨리 들어가세요!』소리친다.『너 먼저…』정신 없는 형님이 입장순서에 자칫 혼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동생이 다시 소리친다.『아니, 형님이 먼저 들어가셔야죠!』 주례 李漢溪(이한계)전도사 (성동구 중곡동 감리교회)가『첫째 신랑 입장』하자 첫째신랑이 씩씩하게 걸어들어오고 뒤를 이어 첫째 신부가 흐르는『웨딩•마치』를 따라 흘러 들어오는데, 신부의 친척되는 이가 팔에 매어달려 따라들어온다. 이어서『둘째 신랑 입장』『세째…』복잡하게 들어온다. 손님들은 와글와글 웃고 주례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나간다. 첫째 한 쌍은 석달 전 중매, 둘째•세째는 오랜 연애로 세 쌍의 신랑신부 6명이 돌아서서 손님들을 향해 선다. 맏형 榮燮군은「워커힐」등에서 일해 왔는데 곧「롯데」제과 판매부에 입사하게 되어 있고 신부 澤蓮양은 영등포우체국 교환원으로 있다가 결혼 결정과 더불어 직장을 그만 두었다. 둘째 顯燮군은 大林산업에 근무중이고, 세째 顯洙군은 韓林農園(한림농원·원장 韓太鉉)의원예사. 첫째「커플」은 3개월 전에 중매로 알게 된 사이고, 둘째와 세째는 4~5년간 熱愛(열애)을 해온 연애졸업생. 신랑 3형제와 그들의 신부들은 한결같이 홀어머니뿐. 그러니까 퍽 신통하게도 세「커플」은 편모슬하라는 점에서부터 평등한 셈. 신랑들의 어머니 朴順伊(박순이·56)씨에 의하면 원래는 첫째만 결혼시키기로 되어 있었는데, 결혼식 불과 1주일 전에 3형제 합동결혼식의 결정을 보았다. 합동결혼 결정의 주요 이유는 경비절약. 가령 3형제가 각각 결혼하려면 50만원쯤 들 경비가 동시에 식을 올리면 25만원으로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이야기. 따라서 가정의례준칙을 솔선이행하는 모범시민의 자격을 선취한 셈이기도 하다. 원래는 첫째만 하려다가, 경비절약 1주 전에 결정 뿐만 아니라 성동구중곡동 山1에 사는 宋씨 3형제는「3형제집」이라고 불릴만큼 동네에서도 우애 있기로 소문난 형제들. 그래서 동네사람들과 중곡동 감리교회(3형제는 모두 감리교 신자)에서는 합동결혼식을 종용, 권유했고 宋씨 일가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모든 집안일에 家長(가장)격으로 관여, 사실상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맏형 영섭군은 가족회의를 주재하면서 동생들과 같이 결혼하기로 결정, 그런 의도를 신부 澤蓮양에게 말해서 동의를 얻었다. 동생들의 신부, 어머니들도 쾌히 승낙, 각「커플」들은 서둘러 준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례자의 식사가 끝나자 찬송가.「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합소서…」그리고 주례의 간곡한 기도를 지나서 각「커플」의 서약. 신랑은 신부에게 반지를, 신부는 신랑에게 시계를 각각 예물로 교환. 다시 기도. 공포. 교회 성가대「트리오」의 축혼가. 가족대표의 인사 史上 가장 짧은 인사.『바쁘신 중에 왕림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쌍의 부부는 네명의 어머니가 앉아 계신 쪽을 향해 돌아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신랑들의 어머니 朴順伊씨는「예수」의 말처럼『다 이루었다』는 안도감에 푹 젖은 표정으로 세쌍의 부부를 바라본다. 『감격스럽지요…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버지는 십년전에 돌아가셨어요. 시골에(全北월천면) 땅좀 가지고 있다는데… 남의 빚보를 서다가 다 날리고 병이 나서…』 朴여인은 세 딸과 세 아들 6남매를 데리고 상경, 용산구이태원에 셋방을 얻었고 10년동안 자식들을 키워 시집, 장가 보내기 위해 시장에서 각종 장사를 해왔고 행상 노릇도 했다. 신랑집 두 누나와 3형제, 한울타리 안에서 살기로 세 딸은 아들 3형제의 손위 누나들인데 둘째 딸만 홧병으로 33세에 죽고 나머지 두 딸은 어머니의 집과 한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즉 어머니 및 세 아들이 사는 집과 두 딸들이 사는 집이 서로 통하게 되어 있는 한울타리 안. 3형제가 각각 집은 얻어 놓았느냐고 묻자 영섭군은『아뇨, 같이 살기로 했읍니다』라고. 즉 지금 어머니와 3형제가 살고 있는 셋집에서 맏아들 내외가 살고 바로 옆에 사는 두 누나네 집의 방을 하나씩 비울 수 있으니까 두 동생들은 각각 그 방으로 들어가면 만사는 OK라는 것. 3형제 합동결혼식이 끝나자 가족사진을 3번 찍는데 3형제의 어머니 朴여인은 세번 다 들어가고, 3형제중 맏형 신랑부부가 찍을 때는 나머지 두 동생 신랑이 가족의 자격으로, 다음 둘째가 찍을 때는 다른 두 신랑이 가족의 자격으로 사진을 찍는 식이어서 복잡무쌍. 이번 결혼식에 3형제가 쓴 결혼비용은 24만원. 신혼여행은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생략. [ 선데이서울 69년 7/6 제2권 27호 통권 제41호 ]
  • 순교·박해의 교회사 생생 증언

    한국의 기독교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한다.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단일교회를 갖고 있는가 하면 그 성장세 또한 세계인들이 놀랄 정도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가 이처럼 번창하기까지 숱한 시련과 희생이 있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이 지난 1일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초지리) 특별전시실에서 개막해 연말까지 계속하는 ‘복음 선교 120년, 신앙 위인 120명-인물로 보는 한국 교회사’전시는 이 땅의 기독교를 위해 희생한 인물들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대규모 기획이다.120년에 걸친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신앙 위인’ 120명을 엄선해 그들의 사진과 관련 사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인물은 기독교문사에서 펴낸 ‘기독교백과사전’(1980∼1992년),‘기독교 대연감’(1986∼1993년),‘한국 기독교 인물 100년’(1987년),‘한국기독교의 역사’(1989∼1990년)와 한국 교회사 관련 저술들을 토대로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부관장)가 주축이 돼 선정했으며 이들을 모두 8개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측은 “이번 전시는 교회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무명과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 이름을 남긴 120명을 추린 것으로 고난과 역경 속에서 신앙의 열정으로 교회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신앙 선배들의 역사가 제대로 알려지고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이영표(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 홋스퍼 선수)태호(형제실업 대표)완표(미래정보통신 과장)씨 부친상 30일 경기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 발인 2월1일 오전 8시 (031)386-2345 ●구본홍(기독교TV 부사장)본호(송원건설 대표)씨 모친상 김영태(한서대 행정사감)씨 빙모상 3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월 1일 오전 9시 (02)3410-6914 ●신규철(전 태양무역 대표)씨 별세 진화(대구지법 판사)용화(유학)씨 부친상 윤철호(사회평론 대표)박만성(티맥스 상무)이승준(유학)씨 빙부상 30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2월 1일 오전 9시 (02)2001-1092 ●홍석문(국립수의과학검역원 관리과장)석철(한국일보 고객서비스본부 대구·경북지사장)씨 모친상 백종인(수원구치소 교감)정철교(강릉제일고 교사)하준성(자영업)김종호(춘천효자감리교회 목사)씨 빙모상 29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월 1일 오전 6시 (02)590-2661 ●배동승(전 송파구청 기획관리과장)씨 별세 봉섭(미래건축 대표)경섭(한국씨티그룹캐피탈 이사)씨 부친상 김기철(한화 기술고문)권도하(무역협회 중국팀 차장)씨 빙부상 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월 1일 오전 7시 (02)3410-6929 ●최호(HP 이사)철호(한창LK 대표)씨 부친상 김영신(사업)안덕용(통계청 구리출장소장)씨 빙부상 2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월 2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6 ●김명순(전 고양초등학교 교사)씨 별세 최진원(전 미도파백화점 차장)진섭(인천대 법과대 교수)씨 모친상 최문희(서울디지텍고 교사)씨 시모상 30일 순천향대 부천병원, 발인 2월 1일 오전 9시 (032)327-4004 ●남준진(전 레이크사이드골프장 부장)건진(대구 중구청)씨 부친상 28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2월 1일 오전 7시 (053)959-4441 ●맹창현(거명건설 대표)씨 모친상 30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월 1일 오전 10시 (02)590-2538 ●조정제(제이콥스비클한국 대표)영제(동서대 디자인대학원장)씨 모친상 홍래(한국투자증권 전무)홍준(712파트너스 실장)씨 조모상 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1일 오전 10시 (02)3410-6908 ●강효주(필립강갤러리 대표)충주(초석공인중개사 대표)옥주(서울연가초등학교 교사)씨 모친상 남완규(세일공업 상무)정헌봉(평화엔지니어링 〃)씨 빙모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1일 오전 11시 (02)3010-2292 ●김형두(대한항공 부산지사 홍보실 차장)씨 상배 혜경(부산CBS 기자)씨 모친상 29일 부산 부민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30분 (051)342-7982 ●정용일(한국기계연구원 무저공해자동차사업단장)용욱(윈텍시스템 대표)동신(한국IBM 실장)충신(문화일보 문화부 차장)경미(곤지암고 교사)씨 부친상 유영철(유남부직포 대표)씨 빙부상 27일 경남 진주 경상대병원, 발인 31일 오전 8시 (055)750-8651 ●김성현(여명교회 담임목사)현영옥(동호정보공업고 교사)씨 모친상 오희천(서울신학대 겸임교수)씨 빙모상 30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월 1일 오후 1시 010-4852-0925 ●허진영(대구대 강사)진용(무역업)씨 부친상 김두영(동아일보 경제부기자)씨 빙부상 28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2월 1일 오전 9시 (053)957-4442 ●문민행(동환산업 이사)찬돈 장우(울산시교육청 기획관리국장)씨 모친상 수인(매일경제신문 정치부 기자)씨 조모상 30일 경남 창원한마음병원, 발인 2월 1일 오전 6시30분 (055)286-5102
  • [부고] 뒤늦게 태극무공훈장 ‘전쟁 영웅’ 김영옥씨

    한국계 전쟁 영웅인 김영옥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이 지난 29일(현지시간) 숙환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다.86세. 고(故) 김 대령은 방광암으로 여러 차례 수술받는 등 힘겨운 암투병 생활을 해왔다. 김 대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유색인 미국 장교로 맹활약,1945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최고무공훈장을,195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십자무공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2월에는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무공훈장도 받은 전설적인 전쟁영웅이다. 2차대전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잠시 세탁소를 운영했던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재입대해 미 육군 7사단 31연대 1대대장으로 중부전선에서 전선을 약 60㎞ 북상시키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그는 작년 10월 한국전 당시 공로를 인정받아 뒤늦게 우리 정부로부터 무공훈장 중 최고등급인 태극무공훈장 수여자로 결정됐다. 장례식은 9일 샌타모니카 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릴 예정이며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측은 외교 행낭편으로 태극무공훈장을 전달받아 영결식장에서 추서할 예정이다.로스앤젤레스 연합뉴스
  • 사학법시행령 개정委 ‘반쪽구성’

    개정 사립학교법 국무회의 의결을 하루 앞둔 26일 시행령 개정 작업을 맡을 ‘사립학교법 시행령개정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고 활동에 들어갔다.정부는 27일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개정 사학법을 상정, 의결한 뒤 30일 공포할 예정이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이에 대해 28일 개정 사학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고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개정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첫 회의를 열고 한국외국어대 이장희 교수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위원회에는 종교계와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추천받은 인사 12명으로 구성됐다.종교계 인사로는 김완두 중앙승가대 교수를 비롯해 원불교 배은종 교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백도웅 총무목사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사학법에 반대하는 천주교 및 개신교, 사학단체들은 위원을 추천하지 않았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인사말에서 “사학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종교계의 건학 이념을 살리는 방향으로 시행령이 개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회의에서 개정 법률에서 위임된 대통령령 규정 사항을 검토, 여론과 전문가 의견을 모아 대통령령 개정 사항과 교육부장관 및 정관이 정할 사항 등을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사학 단체들이 문제삼고 있는 개방이사의 추천·선임방법 등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집중 검토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이와는 별도로 김광조 차관보를 상황실장으로 하는 ‘사립학교법 시행 대책상황실’을 설치, 운영에 들어갔다. 상황실은 초중등반과 전문대학반, 대학반, 홍보반 등 4개반과 1개 행정팀으로 구성, 개정 사학법 시행 과정에서 신입생 배정 거부 등 일선 학교의 움직임에 대응하게 된다. 김 부총리는 이날 낮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통합, 감리교단, 성공회, 복음교단 등 교계 원로인사들을 만나 개정 사학법 내용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한편 진보적 개신교 성직자 180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성공회주교관 회의실에서 ‘현 시국에 대한 2005 기독교성직자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기독교사학이 ‘건학이념 훼손’,‘사유재산 탈취’ 등 문제제기와 ‘학교 폐쇄’를 언급하고 나서는 것은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비판했다.김재천 이효용기자 patrick@seoul.co.kr
  • 종교와 문화의 ‘따뜻한 만남’

    종교와 문화의 ‘따뜻한 만남’

    지난 4일 경기도 고양 어울림극장에서는 작지만 뜻 있는 문화행사가 열렸다. 김포시 고촌감리교회가 15년 전 시작한 교육선교 프로그램을 통해 악기 연주를 배운 청소년 60여명이 결성한 ‘김포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정기연주회를 개최한 것. 매주 토요일 교회에 모여 연습해온 실력으로 클래식은 물론 캐럴까지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연말을 맞아 종교와 문화가 만나는 훈훈한 행사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대부분이 자선공연 형식으로 진행돼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선교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선교에는 영화가 최고’ 문화선교연구원은 오는 12∼16일 서울 종로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생명·소통·평화’라는 주제로 ‘제3회 서울기독교영화축제’를 연다. 경쟁부문인 단편영화제를 비롯, 애니메이션 상영, 특별기획전, 세미나 등으로 이뤄지며 기독교 관련 영화 20여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개막작으로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의 역사현장 조명을 통해 부흥의 본질적인 풍경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부흥’(김우현 감독)이 선보인다.(02)743-2535.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 노량진 CTS아트홀에서 꿈이 있는 교회(담임 하정완 목사) 주관으로 열린 ‘수요영화예배 아이즈’ 행사에는 수험생과 일반인 등 5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연극과 찬양공연, 영화 ‘주먹이 운다’ 상영 등과 함께 설교·영화묵상이 곁들어진, 새로운 형식의 예배가 이뤄진 것. 하 목사는 “청년 신자들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영화·연극 등 다양한 문화요소들을 예배에 적용, 교회의 문턱을 쉽게 넘기 위한 시도”라면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마다 영화예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음악회에서 패션쇼까지 다양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옥한흠)는 오는 22일 오후 7시 서울 저동 영락교회 베다니홀에서 모자가정을 위한 자선음악회 ‘One 母 Time’을 개최한다. 불의의 사망 등으로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경제적 능력이 없어 가정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모자가정을 향한 관심을 촉구하는 행사다. 성악가 오현명 한양대 명예교수,CCM가수 소리엘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가들이 공연을 펼친다. 기독교 선교단체인 한시미션 코이디아연대는 9일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경남 함양군 어린이들을 초청, 자선 콘서트인 ‘제17회 다해사랑 콘서트’를 연다.‘피아노 치는 변호사’의 저자 박지영 변호사와 아침·김도현·타루·이어픽·티어즈 등 CCM·국악공연팀이 출연한다.(02)552-2449. 유니세프는 오는 13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친선대사를 맡고 있는 영화배우 안성기씨의 사회로 ‘에이즈 고아를 위한 2005 유니세프 자선의 밤’ 앙드레김 특별패션쇼를 개최한다. 탤런트 이영애·김래원 등과 주한 외교사절 부인 등이 모델로 특별 출연한다.(02)735-2310. 앞서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6일 서울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2005 대한민국 불교음악 페스티벌’을 열고, 창작 찬불가를 선보였다. 크리스챤 뉴스위크는 1∼4일 서울 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싱가포르 최고 마술쇼인 ‘매직오브러브’ 초청공연을 개최, 호평을 받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도 4일 서울 혜화동 동성고 강당에서 휘성·장우혁·서지영·코요테 등 인기가수들이 공연을 펼치는 ‘생명의 밤’ 행사를 열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부고]

    ●정광용(스포츠서울A&B 대표)씨 부친상 김광철(이언기업 대표)씨 빙부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010-2292●안준(연세재활의학과의원 원장)씨 부친상 박재환(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오정석(삼성전자 반도체총괄지원팀 과장)씨 빙부상 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392-2299●김백식(현대자동차 기술연구소)범식(넥센테크)씨 부친상 진준진(로얄소브린)이재경(문화일보 AM7 광고부장)씨 빙부상 6일 경기도 오산 한국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31)378-9726●이덕재(에스비씨리디어 사장)씨 별세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5시 (02)3410-6914●임병무(전 추원산업 대표)씨 별세 성주(추원산업 대표)홍주(L&L Wireless 대표)씨 부친상 송관규(고려대 의대 교수)씨 빙부상 6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30분 (02)921-3099●구본선(교동감리교회 목사)씨 부친상 김창현(방송위원회 광주사무소장)씨 빙부상 6일 전북 익산 팔봉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10시 (063)832-0125
  • [부고]

    ●김우영 만나교회 원로목사 김우영 만나교회 원로목사(한국감리교신학원장)가 31일 낮 12시3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70세. 1981년 만나교회를 개척해 이끌어온 고인은 감리교신학대학 객원교수 및 이사, 세계성신클럽 초대회장,21세기부흥선교회협회 대표총재를 역임한 뒤 2004년 3월 은퇴했다. 2000년 한국기독교선교대상 목회자부문에서 수상했으며 저서로 ‘병과 죄’‘부흥회와 교회성장’ 등이 있다. 유족은 부인 이종례씨와 병국(K&P Holdings대표)·병삼(만나교회 담임), 은실(볼리비아선교사)·은아씨 등 2남2녀, 발인 4일 오전 10시,(031-706-3351) ●김성수(인하대 교수)창수(GM 연구원)씨 모친상 김인균(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이수(리도파트너 사장)씨 빙모상 3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 (02)3410-6910 ●노기태(국제신문 사장)씨 형님상 31일 대구가톨릭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53)656-3016 ●이창승(코아그룹 회장·전북중앙신문 대표)씨 모친상 31일 전북대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63)250-2450 ●오수명(경희대 의대 교수)수영(재미 과학자)수창(약사)수기(재미 의사)씨 모친상 유재홍(재미 의사)씨 빙모상 31일 경희의료원, 발인 2일 오전 9시 (02)959-7499 ●박흥섭(사업)운섭(〃)진섭(〃)성섭(〃)만섭(현대캐피탈 양재지점장)씨 모친상 김원룡(전 광주고속 서울영업소장)씨 빙모상 박국호(제패트로닉스 대표)씨 조모상 3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일 오전 1시 (02)3010-2293 ●김용직(법무법인 케이씨엘 파트너 변호사)용석(삼성전자 상무)용길(재미 약사)씨 모친상 성인영(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과장)씨 시모상 차학주(재미 의사)씨 빙모상 3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 (02)3010-2379 ●황인걸(신용보증기금 안양지점 수석부지점장)인자(서울특별시 제1정책보좌관)인남(부천대 교수)인수(EBS 편성실장)인경(성균관대 박사과정)씨 모친상 3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일 오전 10시 (02)3410-6915 ●이재구(애니동물병원 원장)종대(충현교회 목사)종한(SBS 드라마국 부국장)씨 모친상 29일 오후 9시 경북 안동 안동병원, 발인 1일 오전 9시(054)820-1673,011-718-2344
  • [부고]

    ●정성환(사업)윤환(〃)유석(이화산부인과원장)희환(사업)진환(〃)최환(〃)씨 부친상 나병헌(식품의약품안전청 감사관)노시영(전 농협)안재억(익산시청)씨 빙부상 28일 고대안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 (031)484-8099●김정필(대건산업 대표)정환(광명산업 〃)정대(보건의료원)정호(구미교육청 과장)정무(현대중공업 〃)씨 부친상 노백무(전 포항 동부초등학교 교장)김봉관(전 삼성항공 이사)노삼석(신한생명 상무)씨 빙부상 28일 울산 동강한방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 (052)241-3342 ●홍대기(문학과지성사 영업차장)씨 모친상 27일 대구전문장례식장, 발인 29일 오전 10시30분 (053)965-7108●이기홍(의정부성모병원 임상병리과 선임기사)동훈(오금동성당 신부)씨 부친상 정태성(MBC 보도제작국장)홍광표(감사원 서기관)씨 빙부상 28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30일 오전 10시 (02)590-2576●윤재한(전 농업진흥공사 이사)씨 별세 상수(사업)상돈(그린화재 법인영업부장)씨 부친상 임상현(사업)씨 빙부상 27일 하계동 을지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970-8748●윤영욱(MBC 보도국 통일외교부장)영식(캐나다 거주·사업)영진(나이키 골프 팀장)씨 모친상 28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30일 오전 (02)590-2560●김종호(감리교 원로목사)종수(한국성악회 회장)종우(미국 거주·사업)씨 모친상 27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9일 오전 9시 (02)929-3699●문덕규(SK건설 고문)석규(서울시북부수도사업소 요금2과장)씨 부친상 성환(한국산업은행 지역여신심의실)씨 조부상 이준수(배려금속 대표)씨 빙부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 (02)3010-2295●박중국(대성기획 대표)주은(자영업)화자(〃)주천(〃)주완(〃)주열(〃)씨 부친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2)3010-2267●김현준(청담관 대표)현직(남양우체국 차장)현관(삼성화재 과장)씨 부친상 김대훈(삼성중공업 부장)송원근(두산유리)김용우(공무원)씨 빙부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 (02)3010-2235
  • 국내 最古 정동제일교회 120돌

    국내 最古 정동제일교회 120돌

    국내 최고(最古)의 개신교회인 감리교 정동제일교회가 창립 12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연다. 특히 교회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120년 화보집’이 출간될 예정이어서 국내 교회사에 한 획을 그을 전망이다. 5일 정동제일교회에 따르면 창립 120주년인 오는 11일에 앞서 9일 기념주일에 ‘창립 120주년 기념잔치’를 갖는다. 옛 교역자·교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홈커밍 연합예배’에 이어 참석자들이 교회 설립자인 아펜젤러 목사의 묘지를 참배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창립 120주년 기념화보집’을 이달 중 발행할 예정이며, 정동 120년사를 담은 역사책 편찬에 착수, 오는 2007년 출간할 계획이다. 교회측은 기념행사와 함께 선교와 교육, 복지사업 강화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성도들의 특별헌금 작정을 통해 3개년 계획으로 서울 근교에 ‘120주년 기념 교회’ 설립을 추진키로 했다. 이와 함께 정동 66번지에 위치한 미국 선교사들의 안식처인 ‘게스트 하우스’를 리모델링해 해외선교센터로 개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개신교의 모(母)교회답게 선교사 교육과 무료 개안수술 등 사회복지사업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올 들어 감리교 신학대학의 석·박사 과정 2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경기도 이천 실천신학대학원에도 3000만원을 지원, 목사 양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지난달 11일과 25일 개최한 학술강연회인 ‘정동포럼 120’.21세기 정동제일교회의 사명과 비전을 확인하면서 지난 120년을 회고하고, 종합적인 장기 비전을 세우는 자리로 마련됐다. 특히 교회 최초로 김고광(수표교교회), 정주채(향상교회), 김병삼(만나교회) 담임목사 등 외부 목사들을 초청, 수준 높은 강의와 토론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정동제일교회는 1885년 4월 미국 아펜젤러 목사가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그해 7월 정동 한옥을 구입, 예배실을 설치했으며 3개월 뒤인 10월11일 첫 성례식을 개최함으로써 공식 창립됐다.2년 뒤인 1887년 9월 언더우드 목사가 창립한 장로교 새문안교회와 함께 국내 개신교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평신도가 먼저 회개합시다”

    “평신도가 먼저 회개합시다”

    “평신도들이 나서 한국교회 바로 세우자.” 교회 평신도와 여성, 청년 등이 주축이 돼 한국교회의 잘못을 반성하고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14일 개신교계에 따르면 60여개의 교회 및 사회선교단체들이 연합해 교회의 개혁과 사회적 책임을 모색하는 행사인 ‘교회의 날’조직위원회를 최근 출범시켰다. 조직위는 “한국교회가 내부 분열과 다툼, 목회 세습, 목회자의 타락, 왜곡되고 변질된 신학과 신앙 등으로 인해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 안팎으로 변화와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면서 “교회의 죄를 회개하고 교회의 역할을 바로 세우는 데 동참하는 평신도와 교회, 선교단체들이 뜻을 모아 ‘교회의 날’행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직위에는 계동교회, 덕수교회, 사랑교회, 수도교회, 한울교회 등 30여개 교회와 감리교청년회,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기독여민회, 기장청년연합회, 정의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와사회위원회 등 선교단체·기관들이 참여·후원한다. 이들은 지난해 10월에 열린 종교개혁연합기념제에서 만난 뒤 올 3월부터 ‘교회의 날’행사 개최를 준비해왔으며, 지난 12일 조직위원회를 발족했다. ‘교회의 날’행사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라는 주제로, 다음달 6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과 연동교회, 정동제일교회 등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첫날에는 ‘한국교회의 과거사 극복’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리며,‘여는 예배’와 평신도 성례전 등 부문별 행사,‘치유와 화해를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심포지엄,‘닫는 예배’와 축제 등이 이어진다. 이를 통해 교회의 과거사를 청산하고 교회의 선교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독교 문화잔치’를 만들겠다는 것. 김종원(새민족교회 집사) 조직위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교회행사가 주로 대형 연합단체 위주로 이뤄져 일반에 파고들지 못했다.”면서 “행사 전까지 참여교회를 100여개까지 늘리고 일반 시민단체들의 참여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02)744-3542.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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