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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손 편지/강동형 논설위원

    손으로 마지막 쓴 편지는 언제쯤일까. 학창 시절 부모님에게, 아내와 연애하던 그때 그 시절 말고는 편지를 써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얀 편지지를 책상 위에 펼쳐 놓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해야 할 이야기를 한자 한자 써 내려간 추억이 새롭다. 토라진 연인도, 화가 난 부모님도 정성 가득 진솔하게 써내려 간 편지를 받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얼어붙은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편지를 써 본 사람, 편지를 받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편지지에 담긴 사랑과 설렘의 사연을 디지털 문자로 대체했다. 그러나 손으로 쓴 편지의 힘은 여전한 것 같다.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 교포가 1년 전 하늘나라로 보낸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 100통이 미국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한다. 사연의 주인공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 이형씨. 그는 7살, 10살 남매를 남겨 놓고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캐서린)의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손 편지 100통을 써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볼 수 있게 홈페이지(www.100lovenotes.com)를 만들었다. 편지를 쓰게 된 동기는 죽음을 맞아 잊히는 것을 가장 두려한 아내를 위한 것이다. 아내를 잊지 않기 위한 사부가(思婦歌)인 셈이다. 편지는 짧은 문장으로 하루하루의 일과와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담고 있고, 연서 형식을 하고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쓴 편지가 50통이고,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가 남편과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 50통이다. 이씨는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편지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아내가 죽기 전에 잊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내가 잊히지 않았다는 걸 아내가 알아줬으면 좋겠다”면서 “내게는 늦었지만 여러분에게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도 이씨가 말한 것처럼 하루라도 늦기 전에 연인이나 친구, 부모에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연서나 안부 편지를 써 보자. 종이에 써서, 봉투에 담아, 우표를 붙여 보내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무방하다. “어머님 전상서, 어머님 어제오늘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졌습니다. 지난 추석 때 기침을 하고 가슴에 통증이 조금 있다고 하셨는데 괜찮아지셨는지요. 저희들은 어머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름이 아니오라….” 언제나 아들이 부모님께 ‘돈을 부쳐 달라’고 보낸 편지는 ‘다름이 아니오라’로 시작했다. 이씨의 편지 중 100번째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My love is Your love) 가사를 인용하고 있다. “심판의 날, 신이 내 인생을 물으면, 당신과 함께했노라고 말할게요.” 우리 모두 편지 한 통으로 올겨울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해운대’ CG 대신 감동 강조한 이유

    ‘해운대’ CG 대신 감동 강조한 이유

    영화 마케팅의 모든 것/한순호 지음/루비박스/256쪽/1만 2900원 2009년 한국 최초의 대형 재난 영화로 기대를 모았던 ‘해운대’. 거대한 쓰나미가 부산 해운대를 덮치는 장면을 담은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당시 우리 컴퓨터그래픽(CG)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그 정도가 어디냐는 것이다. 하지만 곧 할리우드 재난 영화 ‘2012’의 예고편이 공개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히말라야산맥을 삼킬 것 같은 해일에 견주면 ‘해운대’는 애들 장난에 불과할 정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케일과 특수 효과를 앞세우던 ‘해운대’의 배급사는 인간의 용기와 감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마케팅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그 결과 ‘해운대’는 1145만명을 끌어모았고 ‘2012’는 546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만약 해운대의 마케팅 전략에 변함이 없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에서 20여년간 ‘해리포터’ ‘다크나이트’ ‘인셉션’ 등 250편이 넘는 작품을 마케팅했던 저자는 요즘처럼 영화 시장이 ‘시네마 지옥’이 된 상황에서는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이라도 마케팅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영화는 줄잡아 1095편. 한 주에만 무려 21편이 개봉했다. 그나마 흥행 좀 했다고 어깨에 힘줄 수 있는 100만 관객 작품은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49편에 불과했다. 국민 1인당 연간 4.17편의 영화를 본다고 하지만 개봉 흔적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일반 관객이라도 이 책을 통해 마케팅 포인트를 이해하고 영화를 본다면 꽤 흥미로울 듯하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평화·화해의 성탄”…광복로 1.2㎞ 수놓는 40만개의 빛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평화·화해의 성탄”…광복로 1.2㎞ 수놓는 40만개의 빛

    “40만개의 불빛이 광복동거리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부산 광복동거리에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내년 초까지 한 달여간 펼쳐진다. 부산 중구는 ‘제7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28일 오후 7시 광복로 시티스폿에서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을 시작으로 내년 1월 3일까지 37일간 개최된다고 27일 밝혔다. ‘평화의 성탄! 화해의 성탄! 다 함께 미래로!’라는 주제와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란 부제로 개최되는 올해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는 평화통일과 화해 상생을 위한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장으로 빛과 갤러리로 꾸며진다. 산타클로스, 사슴, 눈, 아기천사 등의 조형물을 장식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길가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조명과 조형물들이 설치돼 한층 더 웅장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축제거리는 총 1160m으로 광복로 입구~시티스폿 440m는 ‘천사의 길’, 시티스폿~근대역사관 390m는 ‘희망의 길’, 시티스폿~국제시장 330m는 ‘환희의 길’ 등 세 곳으로 구분,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마련했다. ●천사들이 방문객 인도하는 ‘천사의 길’ 광복로를 따라 진입하면 천사의 길을 만난다. 차도 위로 걸린 천사들이 방문객을 메인트리로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올해가 광복 70년인 점을 감안해 독립문을 형상화한 화합의 광장을 시작으로 영도다리, 오륙도 일출, 부산 타워, 아이 러브 부산 등 주제별 트리와 소망 트리 등을 설치했다. 또 부산과 중구의 상징물을 표현하는 포토존을 설치해 광복로를 찾는 시민과 관광객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길 위에는 프러포즈 존, 트릭아트 등 빛을 소재로 만든 다양한 체험형 트리를 만날 수 있다. ●평화통일 희망 표현 ‘희망의 길’ 메인 무대가 있는 광복로 시티스폿 앞에는 트리축제의 꽃인 원뿔 모양의 초대형 트리가 우뚝 솟아 방문객들을 반긴다. 높이 17m인 메인트리는 한국 전통 조각보 형태를 띠고 있으며 ‘다른 게 모여서 하나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올해는 특히 예년의 천공 장식과 달리 지름 1m의 원형 장식물 60여개가 메인트리 주변 하늘을 수놓아 화려함을 더할 예정이다. 또한 직접 키운 높이 6m의 구상나무 생화 20여 그루가 메인게이트에 설치된다. 천공 부분은 수십개의 볼 형태의 미래적인 디자인을 접목시켜 역동성을 가미시켰다. 이어 메인무대에서 오른쪽인 근대역사관까지 이어지는 희망의 길에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평화통일의 희망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으며, 특수 제작된 스노플 등을 설치해 환상적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출하도록 했다. 국제시장 방면인 환희의 길에는 성탄절 선물로 가득한 기쁨의 거리를 노래하는 노엘 형상과 공 모양의 다양한 색의 크리스마스 볼트리를 이용해 만든 화려한 장식의 구조물들이 반긴다. 특히 국제시장 사거리 입구에는 ‘빛나는 선물로 가득한 광복동 축제의 밤’을 표현하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조성돼 볼거리를 더한다. 이와 함께 ‘한·일 우호의 날’, ‘북녘에도 성탄의 기쁨’ 등 평화통일과 화해 상생을 위한 특별행사도 준비됐다. 부산의 슈바이처인 장기려 박사 서거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LOVE 장기려’ 기념위크, 토크 콘서트, 기념전시회 등 뜻깊은 행사도 마련했다. ●성탄절 기쁨 노래하는 ‘환희의 길’ 매년 축제를 보러온다는 김미경(48)씨는 “해를 거듭하면서 축제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딱히 겨울 축제가 없는 부산에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런 축제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다음달 7일부터 31일까지 대형트리 앞 무대에서는 음악, 춤, 연주 등 아마추어 공연팀이 끼와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무대인 데일리 콘서트가 열린다. 또 ‘나는 크리스마스 스타다’라는 오디션 행사가 진행되며 상가활성화 프로그램으로 찾아가는 보물찾기, 옥션 광복로 경매행사 등도 준비했다. 광복로 오설록 구간에서는 다음달 1일부터 31일까지 오후 7시, 8시 두 차례 인공눈을 뿌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하는 메리크리스마스 타임이 진행된다. 크리스마스트리축제는 유엔해비타트 산하 아시아도시연구소가 선정한 ‘2014 아시아 도시경관상’을 받는 등 명실상부한 아시아 대표적인 겨울 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트리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정경내 기획실장은 “기본적으로 설치되는 각종 장식물이 부산의 대표적인 쇼핑 거리인 광복로 거리에 장식돼 거리를 찾아 걷는 것만으로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지역 상권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광복로 주변에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이 들어섬으로써 트리축제가 관광체류형 축제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분석됐다. 축제조직위에서는 앞으로 장기적인 축제 발전을 위해 용두산 공원을 활용할 계획이다. 광복로 인근에 있는 용두산 공원을 ‘라이트 윈터 테마파크’(Light Winter Thema Park)로 꾸미고 120m 용두산 타워를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한다는 구상이다. 김은숙 중구청장은 “축제 장소인 광복로 인근의 여러 관광자원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체류형 1박 2일의 관광코스도 준비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축제로 만들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암살´,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사도´는 4관왕

    영화 ‘암살’이 제36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26일 서울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청룡영화상에서 ‘암살’은 최우수작품상, 기술상(조상경·손나리) 등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최동훈 감독은 “일제 강점기 당시 힘들지만 용기 있고 명예롭게 사신 분들에게 감동을 받아 만든 영화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강하고 힘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암살’을 사랑하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남우주연상(유아인), 여우조연상(전혜진), 촬영조명상(김태경·홍승철), 음악상(방준석)을 거머쥐며 4관왕에 올랐다.  관객 1400여만명을 동원한 ‘국제시장’은 최다관객상과 함께 남우조연상(오달수), 미술상(류성희)을 받았다.  관객 1300여만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면서 역대 박스오피스 3위에 오른 ‘베테랑’은 10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나 감독상(류승완)만 수상했다.  다양성 영화의 선전도 눈에 띄었다. 각본상에 ‘소수의견’의 김성제 감독과 손아람 작가가, 여우주연상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정현이 각각 받았다.  신인감독상은 ‘거인’의 김태용 감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신인남우상과 신인여우상은 각각 ‘거인’의 최우식과 ‘간신’의 이유영에게 돌아갔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진화하는 사회공헌] 기업의 사회공헌 ‘제3의 경영’이다

    사회공헌 활동은 이제 ‘제3의 경영’으로 불릴 만큼 기업 경영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사회공헌은 기업이 소비자의 상품 구매나 서비스 이용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만큼 그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라는 요구에 맞춰 시작됐다. 그러나 이를 통해 기업 이미지 제고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스스로 사회공헌을 중시하는 분위기다. 이제는 단순한 기부나 봉사활동을 넘어 회사가 가진 자원과 능력을 활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의 사회적인 존재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과거 산업화 시대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활동은 ‘책임’이 아닌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당시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에 사회적 책임이란 의식 자체가 희박했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으로 대변되는 외환위기 사태를 맞으면서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도 달라졌다. 당시 수만 명의 근로자가 거리로 내몰리면서 기업은 국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곳이란 시각이 생겨난 것이다. 기업이 단순히 성장만 추구해서는 사회가 온전할 수 없음을 뼈아픈 경험으로 체득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유럽형 사회적 기업의 개념이 도입되고 일자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사회공헌의 필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기탁하는 단순한 기부 수준에서 점차 다양한 방법의 사회공헌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저녁 밥상에 필요한 밥 한 공기를 이웃집에서 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서로 부족했던 부분을 주변 이웃들과 함께 채웠던 정겨운 장면이 요즘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 집보다는 직장이 생활의 터전이 되고 이웃보다는 직장 동료가 인간관계의 중심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기업들도 이 같은 흐름을 인식하고 보다 다양하고 세부적인 방법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단순히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던 것에서 임직원 스스로가 직접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부터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보상 활동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도서산간 지역 학교에 정보기술(IT) 기기와 교육 콘텐츠 등을 제공하고 계열사별로 임직원들이 지역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LG그룹은 지난 8월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로 다리를 잃은 두 장병에게 총 10억원을 위로금으로 전달해 우리 사회에 감동을 주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전국 각 지역 본부와 함께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 부부의 합동 결혼식을 올려 줬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취약계층 주택과 복지시설 등의 노후 급·배수관을 교체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GS칼텍스는 학교 생활과 또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 CJ그룹은 임직원과 대학교수진 등이 참여한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진화하는 사회공헌] LG, 소외받는 영웅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진화하는 사회공헌] LG, 소외받는 영웅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지난 8월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벌어진 지뢰폭발 사고로 제1보병사단 소속 장병 두 명이 다리를 잃어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던졌다. 당시 두 장병과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위로의 손길을 내민 것은 LG였다. LG는 두 장병의 치료와 재활 등을 위해 각각 5억원씩의 위로금을 전달하는 ‘통 큰’ 결단으로 잔잔한 감동을 줬다. LG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다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들에게 꾸준히 위로금을 전달하며 업계에 귀감이 되고 있다. 2013년 4월에는 바다에 뛰어든 시민을 구하려다 희생한 인천 강화경찰서 소속 고 정옥성 경감의 유가족에게 5억원의 위로금과 자녀 3명의 학자금 전액을 지원했다. 지난해 7월에는 진도 팽목항 세월호 사고 현장의 지원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소방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소방관 5명의 유가족에게 1억원씩 총 5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구본무 회장과 LG 차원의 뜻에 따라 LG복지재단은 ‘LG의인상’을 제정했다. 첫 번째 LG의인상 수여자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9공수여단 소속 고 정연승 상사로, 지난 9월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여성을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하던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철도에 뛰어든 장애 청소년을 구하려다 순직한 고 이기태 경감은 두 번째 수상자로 지정됐다. LG복지재단은 정 상사와 이 경감의 유족들에게 1억원씩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LG는 LG복지재단을 통해 저소득가정과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장애인 등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저소득가정의 저신장 아동에게 성장호르몬을 지원하는 사업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올해까지 1100여명에게 80억원 상당의 ‘유트로핀’을 지원했다. ‘LG 사랑의 다문화 학교’는 이중언어와 과학분야에 재능이 있는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에게 한국외대와 카이스트 교수진이 지도하는 교육을 2년 동안 무료로 지원한다. ‘LG 사랑의 음악학교’는 피아노, 바이올린 등 음악영재들에게 특별 레슨과 연주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5년째 운영되고 있다. LG는 LG의 기술력을 활용한 사회공헌 활동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LG상남도서관의 ‘책 읽어주는 도서관’이다. LG전자와 LG유플러스가 개발해 기증한 ‘책 읽어주는 휴대전화’나 PC를 통해 시각장애인 및 독서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의 독서를 지원한다. LG는 지금까지 1만 2600대의 책 읽어주는 휴대전화를 기증했다.
  • “사회적 불평등·절망감… IS 젊은이들의 테러 이유부터 살펴야”

    “사회적 불평등·절망감… IS 젊은이들의 테러 이유부터 살펴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5)가 25~26일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강연과 좌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25일 열린 제15회 김옥길 기념 강좌에서 르 클레지오는 ‘혼종과 풍요: 세계문학과 문화로 본 이주’를 주제로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난민과 이민자 문제를 짚었다. 이민자의 후손으로 프랑스와 모리셔스 이중국적을 지니고 있는 그는 내전과 테러를 피해 유럽으로 건너오는 이민자들은 위협적 요소가 아니라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24일 오후 중국 난징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르 클레지오를 이화여대에서 만나 최근 벌어진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와 다문화사회의 위기 그리고 한국 문학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지난 9월부터 난징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충격적인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파리가 왜 이슬람국가(IS)의 테러 표적이 됐다고 생각하나. -왜 파리인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희생자들에 대한 생각을 먼저 말하고 싶다. 많은 무고한 젊은이들이 희생된 건 충격적이다. 젊은이들은 아무 죄 없이 젊음을 만끽하다가 죽었다. 테러가 일어난 장소 근처에 사는 내 딸의 친구들도 죽었다. IS 젊은이들이 어떻게 폭력과 범죄, 테러에 가담하고 어떤 사상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 노벨문학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17세’라는 소설에서 국가가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테러를 세뇌시키고 일본의 군국주의, 민족주의를 고양해 사람을 죽이게 하고 희생시키는지를 반군국주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있다. 왜 파리인가. 왜 프랑스인가.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테러가 일어났을 때 반향이 큰 나라들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다. 프랑스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어느 나라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9·11테러 이후 전 세계적으로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나. -9·11테러는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어제오늘 시작된 새로운 상황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도처에서 전쟁 상태가 계속됐다. 식민지 나라는 자유를 위해 싸웠고, 독립 이후에도 내전 같은 전쟁을 겪었다. 독립과 민주화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리카는 늘 전쟁 상태였다. 옛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증오감이 극단주의자를 키웠다. 거기에 종교 원리주의자들이 가세해 테러와 같은 극렬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나이지리아는 독립 이후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 간 내전을 겪었다. 전쟁이나 폭력적인 상태는 계속 있어 왔다. →유럽 극우세력은 이번 테러 사건을 난민과 이주자 수용 반대, 국경 폐쇄의 근거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파리 테러 이후 일주일 동안 영국에서 반이슬람 증오 범죄가 평소보다 3배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으로서 ‘테러 없는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원하는 것 중 하나가 그런 반작용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평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무력화하고 오로지 전쟁밖에 없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모든 정치인, 학자, 언론인이 움직여서 멈추게 해야 한다. 정부는 늘 옳게 행동하지 않는다. 일례로 프랑스 사회당이 모스크에서 아랍어로 설교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프랑스어로 설교를 하면 프랑스에 동화가 잘될 거라는 판단에서다. 부조리할뿐더러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다. 사회당은 극우파에 비하면 이주자들에게 너그러운 입장인데 그들마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또 다른 극단주의를 키울 뿐이다. →이번 강연의 주제도 마침 이주에 관한 것이다. 이민자 후손이라는 개인사가 인생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어릴 때 프랑스 문화권에서 자랐다.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1940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모리셔스 섬에서 태어났다. 모리셔스, 프랑스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 문화에 훨씬 더 가깝게 자랐다. 프랑스 교육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출신 국가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을 시키고 있다. 모든 학생이 프랑스 부모를 가진 것처럼 교육을 시키는데 그것은 오류다.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단 하나의 문화만 인정할 경우 이주민들에게 한을 갖게 한다. 통합에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테러는 일종의 병이다. 범죄자들은 벌해야 한다. 그러나 근원을 찾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다. 사회적 불평등, 젊은이들의 절망감 등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테러가 정치인들의 ‘프로파간다’로 이용돼선 안 된다. →이민자들로 인해 유럽이나 프랑스가 위협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수혈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프랑스는 원래 다문화국가다. 게르만 등 여러 문화가 늘 섞여 왔다. 다문화는 경제나 문화를 더 풍요롭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벽을 쌓고 그들을 막는다면 프랑스는 그들끼리만 사는 감옥에 불과하다. 프랑스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다 마찬가지다. 세계화 시대에 인간들은 서로 만나 관계를 맺어야 한다. 물은 장애물이 있어도 흘러 내려가듯 인간도 똑같다. 벽을 치고 막아도 새로운 땅으로 가려는 욕망이 있어 그 벽을 뚫고 가기 마련이다. 문학도 기술도 마찬가지다. 자기네 문학, 자기네 기술에만 갇혀 산다면 발전이 없다.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공부하고 멕시코와 파나마,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도 체류하는 등 끊임없이 전 세계를 돌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늘 세상을 돌아다녔고 지금도 그렇다. 아마도 가족의 유산일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아프리카에서, 할아버지는 모리셔스 섬과 영국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늘 세계 도처로 돌아다녔다. 호기심 때문에 세계를 돌아다닌다. 문화는 보면 볼수록 매우 다르다는 걸 느낀다. 한국에 체류하면서 많은 것을 봤다. 프랑스에서 고사리나 묵을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한국에선 맛있게 먹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문화적인 면에서 샤머니즘과 불교, 기독교가 조화를 이루며 뒤섞여 있었다.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 미신, 샤머니즘 하면 두려웠는데 한국에서 미신과 유일신이 잘 조화된 걸 봤다. 이것은 한국인 정신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다문화적인 문화다. 여행을 하면 열린 나라들, 탐구정신이 강한 나라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내 작품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2001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래 2008년에는 이화여대에서 1년간 강의하는 등 한국과 유독 인연이 깊다.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는 “한국과 내 작품에는 정신적 유사성이 있다. 나는 혈통상 아시아인일지도 모른다”고까지 했는데, 특히 어떤 부분에서 그런 점을 느끼나. -한국의 시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다. 최근의 프랑스 문학은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작품들뿐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 한국 작품은 타인에게 말을 걸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나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착도 닮았다. 문학은 타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내가 느끼는 감동, 희망, 절망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게 문학이다. →오랜 기간 한국과 인연을 이어 오고 있는데 한국 문학과 한국 사회의 어떤 점에 특히 끌렸나. -한강, 김애란 같은 작가는 남성 작가가 주를 이루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를 확인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페미니스트 같은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여성이라는 존재의 연대감을 확인하는 거다. 프랑스에선 이런 여성 작가를 볼 수 없다. 예전에 이대에서 한강과 만났을 때 황석영, 이승우 등을 예로 들며 ‘한국에는 한(恨)의 작품이 많다’고 했더니 한강은 ‘나는 그런 한이 없다. 한국전쟁 이후 어려움을 겪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문학적으로 표현하는지가 나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극단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4·3사건, 6·25전쟁 등 어려운 시기를 많이 겪었는데 그 어려운 역사를 잘 극복한 게 굉장히 감동적이다. 지난 추석 때 TV 뉴스로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장면을 봤다. 일흔 살 아들이 아흔 살 어머니 품에 안겨 우는 걸 보고 뭉클했다. 나도 전쟁으로 얼룩진 유년기를 보냈는데 어려운 시대를 겪었기에 희망을 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 문학이 지금보다 더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아직 배출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크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먼저 영어나 스웨덴어로 작품이 번역돼야 한다. 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웃음). 해외 학계에선 한국 젊은 작가들의 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세계에 한국 문학을 더 잘 알리기 위해선 작품 번역도 중요하지만 문학저널을 외국어로 발간해야 한다. 프랑스에는 ‘코리아나’라는 문학잡지가 있어 젊은 한국 작가들의 단편소설이 많이 실린다. 가능한 한 많은 외국어로 문학저널을 발간하는 게 중요하다. 인터뷰 이순녀 문화부장 coral@seoul.co.kr 정리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르 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 니스 출생 ▲1960년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 이듬해 니스대 졸업 ▲1963년 첫 소설 ‘조서’로 프랑스 르노도상 수상 ▲1964년 앙리 미쇼 연구로 엑상프로방스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1980년 ‘사막’ 발표.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상 수상 ▲1994년 ‘리르’지가 선정한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어권 작가’ ▲2001년 대산문화재단,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주최한 한불 작가 교류 행사로 첫 방한 ▲2007~2008년 이화여대 불문과, 통역대학원 석좌교수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2015년 9~12월 중국 난징대 초빙교수
  • 뮤지컬 ‘오케피’ 연습실 공개, 황정민 “주인공들만 모여서 합창이 어려워요”

    뮤지컬 ‘오케피’ 연습실 공개, 황정민 “주인공들만 모여서 합창이 어려워요”

    화려한 뮤지컬 무대의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25일 오후 5시 서울 남산창작센터에서 뮤지컬 ‘오케피’ 연습실 공개 행사가 열렸다. 뮤지컬 ‘오케피’는 한번쯤은 궁금했지만 한 번도 본적 없는 무대 아래 공간인 ‘오케피’(오케스트라 피트의 줄임말)를 무대화한 작품. 일본 스타작가인 미타니 코우키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에피소드와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연출 겸 배우 황정민은 2009년 연극 ‘웃음의 대학’ 공연 중 ‘오케피’라는 작품을 처음 알고 매료됐다. 당시 일본작가 미타니 코우키의 작품에 빠지게 됐고 뮤지컬 DVD를 찾아 봤다. 황정민은 “DVD를 본 순간 이 작품은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오케피’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황정민은 “당시 뮤지컬은 화려하고 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뮤지컬이 아니라 이런 연극적이고 감동이 있는 뮤지컬이 있다는 것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케피’에는 황정민과 더블 캐스팅으로 컨덕트 역을 맡은 오만석을 비롯해 하프 윤공주, 린아, 바이올린 박혜나, 피아노 송영창, 트럼펫 최재웅 김재범, 오보에 서범석, 섹소폰 정상훈, 비올라 김원해 등 국내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황정민은 “이분들이 다른 작품에서는 다 주인공 하시는 분들이라 캐스팅이 힘들었다”며 “솔로만 하신 분들이라 합창이 잘 안 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이분들은 모두 그 역할에 체화된 사람들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공연을 보러 다니며 레고 퍼즐처럼 캐스팅을 조합했다. 사랑스러운 분들”이라고 배우들에 애정을 드러냈다. 황정민과 함께 ‘웃음의 대학’ 공연 당시 일찌감치 캐스팅에 낙점됐던 서건창은 “연출로서는 별로 믿기지 않았는데 계속 해도 될 것 같다”며 “굉장히 섬세하고 배우를 했던 사람이라 배우의 감성을 잘 알아서 그런 부분을 이해해줘서 좋았다. 배우들이 게으른 면이 있는데 매일 가장 먼저 나와 혼자 연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성실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고 연출로서의 황정민을 인정했다. 뮤지컬 무대 밑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오케피’는 오는 12월 18일부터 2016년 2월 2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착한 예능 ‘위대한 유산’ 통할까

    착한 예능 ‘위대한 유산’ 통할까

    SBS ‘아빠를 부탁해’가 떠난 자리에 새로운 가족 예능이 찾아온다. MBC는 26일 밤 11시에 새 예능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을 첫 방송한다. ‘위대한 유산’은 가족에게 소홀했던 연예인들이 부모가 평생을 바쳐온 일터에 함께 출근해 부모의 삶과 일상을 경험하는 프로그램. ‘부모님께 인생의 결정적 매뉴얼을 물려받는다면’이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위대한 유산’은 지난 추석 파일럿 방송에서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아내며 ‘착한 예능’ 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규 편성됐다. ’위대한 유산‘에는 영화감독 임권택과 배우 권현상, 록그룹 부활의 김태원, 걸그룹 AOA의 찬미, 배우 강지섭이 출연한다. 특히 공식 석상에 한 번도 아들과 함께 선 적이 없는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과 아들인 배우 권현상의 첫 예능 동반 출연이 눈길을 끈다. 이들 부자는 하루에 한마디도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단 둘이 있었던 시간도 손에 꼽을 정도다. 권현상(본명 임동재)은 유명 영화감독인 아버지의 후광을 벗어나기 위해 개명하여 활동 중이다. 권현상의 소속사 측은 “아버지와의 동반 출연에 대한 오해를 염려해 그동안 아버지와 연결된 방송은 일부러 출연을 마다했었다”면서 “이번에는 연로한 아버지와 추억을 쌓고자 출연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에서 주로 차도남 이미지를 선보였던 배우 강지섭의 아버지는 43년째 중국집을 운영하며 억세게 자식을 키워낸 부산 사나이다. 강지섭은 평소 지인들에게 중국집을 적극 홍보하는 등 주변에 효자로 소문이 났다. 강지섭은 외길 인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함께 철가방을 들었다. AOA 찬미의 어머니는 경상도 구미에서 16년째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동네 원장님이다. 평소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찬미는 AOA 멤버들 사이에서도 남다른 손재주와 눈썰미로 인정받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미용실을 놀이터 삼아 자라났다는 찬미는 미용에 당찬 자신감을 내비쳤다는 후문. 이 밖에 파일럿 때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과 함께 출연해 잔잔한 감동을 안겼던 록그룹 부활의 김태원이 출연해 가족의 희망 이야기를 전한다. 제작진은 “화려함을 내려놓은 스타가 부모님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가족 예능으로서 진정성과 따뜻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시각장애인들이 만드는 희망의 하모니 “Heal the World”‘

    시각장애인들이 만드는 희망의 하모니 “Heal the World”‘

    “음악을 통해 세상을 치유한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은 오는 30일 오후 7시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Heal the World"를 주제로 2015 실로암콘서트를 개최한다. 실로암콘서트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음악재활아카데미 교육생들이 주인공이 되어 꾸미는 무대로, 시각장애인들이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발판을 마련하고 시각장애인들의 성취감과 만족도를 높여 음악적 역량을 강화시키려는 뜻에서다. 이번 공연에는 전통음악아카데미 교육생들도 참가해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뿐 아니라 신명나는 국악공연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음악재활아카데미를 통해 성악을 배운 김미순(49, 시각장애 1급)씨는 “유방암 3기 선고를 받고 심한 무기력감에 시달렸는데, 평소 관심이 많던 성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돼 자신감과 활력을 되찾았다. 음악을 통해 내 안에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된 만큼 실로암 콘서트에서 감동과 희망을 전하는 좋은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강생들은 이번 콘서트를 위해 플루트, 바이올린, 클라리넷, 밴드합주, 성악 등 다양한 무대를 준비했으며, 무대 중간 중간 사물놀이와 판소리 등을 함께 진행해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김미경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관장은 “태어나 처음 플루트를 잡아본 분, 열심히 배워 대학에 가고 싶다는 분, 실력을 쌓아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분 등 교육생들은 다양한 사연을 갖고 교육에 참여했다.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따뜻한 하모니를 만들어 낼 시각장애인들의 공연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은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2012년 시각장애인음악재활센터를 설립, 음악재활아카데미와 전통음악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상·하반기에 걸쳐 성인 41개 반, 아동·청소년 60개 반을 운영하며 복지관과 셜리번학습지원센터에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음악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피부가 돌덩이처럼 변한 ‘유기견’을 구하다

    피부가 돌덩이처럼 변한 ‘유기견’을 구하다

    심각한 피부병으로 몸이 돌처럼 변해버린 유기견 한 마리. 어느 때부터인가 버려진 택시 뒷좌석에 엎드린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이 유기견이 한 동물구조단체의 도움으로 구조돼 기적처럼 회복하는 모습이 공개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인도 동물구조단체 ‘제한 없는 동물구조팀’(Animal Aid Unlimited)이 21일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에는 ‘앨리스’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된 유기견이 구조돼 회복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버려진 삼륜 택시 뒷좌석에서 처음 발견됐던 앨리스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또 ‘흡윤개선’이라는 기생충으로 인한 피부병으로, 앨리스의 피부가 딱딱해지고 갈라져 진물이 나고 파리가 들끓고 있었다. 그런 앨리스를 구조하기 위해 구조대가 나섰다. 한 남성 구조원이 호감을 사려 앨리스에 비스킷을 건넸으며 배가 너무 고팠던지 개는 과자를 거리낌없이 받아먹었다. 이렇게 수차례 간식을 건넨 남성은 모포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앨리스의 몸을 감싸려 했으나 가만히 있는 듯하던 앨리스가 갑자기 달아나려 했다. 다행히 남성은 모포를 이용해 막아설 수 있었고 앨리스 구출에 성공했다. 이렇게 구조된 앨리스는 인도 우다이푸르에 있는 한 구조센터로 보내졌다. 센터에서는 앨리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우선 몸에 로션을 바르고 목욕을 시키며 치료에 나섰고 얼마 후 몸에 눌러붙어 있던 딱딱한 부위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흘이 흘렀고 앨리스의 피부는 거의 부드럽게 변했으며 일부에서는 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6주 만에 앨리스는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해당 영상은 지금까지 유튜브에서만 7만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봤다. 이 중 3600여 명이 추천했다. 또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사진=제한 없는 동물구조팀/유튜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전북 고창남중 음악동아리 “별솔하모니” 국무총리상 영예

    전북 고창남중 음악동아리 “별솔하모니” 국무총리상 영예

    전북 고창군 고창남중학교(교장 홍경표, 총동문회장 정형진 서울성북구의원) 음악동아리 “별솔하모니” 가 제15회 대한민국 청소년 동아리 경진대회에서 전국 최고의 대상을 받아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지난 10월 31일 청운대에서 개최된 제15회 대한민국 청소년 동아리 경진대회는 전국 초중고교에서 활동하는 400여개 3만여명의 청소년 동아리 회원들이 대회를 참가해 수준 높은 경연대회를 펼쳤다. 고창남중학교 별솔하모니 음악동아리는 2013년 7월 시골학교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교육 환경의 변화’를 이룩해보고자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들의 의지를 모아 전교생이 함께하는 음악동아리다. 그동안 별솔하모니는 농촌 지역의 작은 학교 실정에 맞게 클래식 선율과 우리나라 전통 사물놀이의 가락이 함께 어우러진 조합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 클래식과 국악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처음 시도해 보는 크로스 오버를 통해 고창남중만의 특별한 연주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무대와 새로운 감동을 선사해 격려와 호응을 얻었다.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노력과 사랑으로 시작된 별솔하모니를 통해 전교생이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가며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해갔다. 또 타인을 향한 존중과 화합이라는 인성의 중요한 덕목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친구의 소중함을 배워가며, 모두가 함께하는 마음으로 완성한 하모니를 만들어 갔다. 이러한 시골학교의 특별한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신선한 감동으로, 대한민국 창의인성 한마당에서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kbs 투데이전북, jtv 클릭 이 사람, 국회방송 ‘인성이 미래다’, KTV ‘살맛나는 이야기’ 등 언론을 통해서도 수차례 방송에 출연한 바 있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이래 봬도 전국 1등 ‘열정 7인조’

    이래 봬도 전국 1등 ‘열정 7인조’

    “작지만 강하다.” 부산 중구의회는 의원 정족수가 7명으로 단출하지만 지역 기초의회 가운데 의원 1인당 구정 질문을 가장 많이 했고, 조례안 발의도 두 번째로 많다. 초선 5명, 재선 1명, 3선 의원 1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제7대 중구의회는 찾아가는 현장 의정, 감동 주는 행복 의정, 소통하는 열린 의정, 함께하는 화합 의정을 내세우고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펴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은 김영면 의장과 이길희 부의장, 금동욱·윤정운 구위원 등 4명이고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은 김시형·황병연 의원 2명이다. 무소속은 최진봉 의원 1명이다. 개원 이후 중구의회는 조례 제·개정 44건을 의결했고, 구정 질문 20건과 210건의 행정사무감사를 했다. 의원 1인당 구정 질문은 부산의 16개 구·군의회 중에서 가장 많았다. 의원 1인당 조례안 발의는 1.8건으로 부산에서 두 번째로 많이 하는 등 입법활동과 집행부 견제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지난달 20일 제229회 임시회에서는 부산 원도심의 재도약을 가로막는 선거구 획정 분할 반대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최근 국회선거를 앞두고 부는 중·영도구 선거구 획정 예정안에 대해 적극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또 중구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조례안, 액화석유가스사업 허가기준에 관한 조례안, 신생아 건강관리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처리하는 등 주민생활복지향상과 상인들의 영업불편을 더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기록적인 폭우로 수해를 입은 기장군의 방역활동을 돕는 등 대외적으로도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쳤다. 지난 6대 구의회에서 처음 구성된 상임위원회도 집행부에서 시행하는 여러 가지 업무를 상시 점검하고 견제역할을 하는 등 자리를 잡았다. 김 의장은 “중구의회는 활발한 의정 활동으로 기초의회 무용론을 불식시키는 것은 물론 진정한 지방자치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사망 1주전 장기기증…5명에 새 삶 주고 떠난 소녀

    천식 발작으로 사망한 한 10대 소녀가 숨을 거두기 불과 일주일 전에 바라던 장기 기증을 하게 돼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한 사연이 뒤늦게 공개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주 영국 서퍽주(州) 삭스먼덤에 사는 데이비드 포드가 죽은 18세 딸을 대신해 ‘성요한의 기사단’(The Order of St John) 상을 받았다. 이는 영국 건강보험(NHS) 산하 혈액·장기관리기관이 장기 기증으로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주는 명예로운 상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딸 엘리자베스를 회상하며 포드는 “리지(애칭)는 (장기 기증으로)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리지의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들이 건강을 되찾아 자녀를 갖게 된다면 딸은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이므로, 우리 모두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면서 “더 많은 사람이 영감을 받아 장기 기증 등록에 가입해 누군가에게 삶의 기회를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는 15세 때 처음 천식 진단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빵 만들기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는 평범한 10대 소녀였다. 하지만 몸 상태가 갈수록 되자 그녀는 장기 기증을 결심하게 된다. 이에 대해 아버지 데이비드는 장기 기증을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딸이 죽어가면서 결심한 소원을 거절할 수 없었고 이제는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갖게 된 것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내 사랑하는 딸의 심장과 신장, 비장, 간 등의 장기가 심각한 병을 지닌 사람들에게 삶의 새로운 기회를 줬다”면서 “리지가 아니었다면 어찌 보면 그 사람들이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명예로운 상을 대신 받게 된 아버지는 “딸이 남긴 것이 만성적인 장기 기증 부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기 기증 부족 문제는 영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장기이식 등 의학적인 기술 면에서는 OECD 국가 중 우위에 있지만 기증자가 크게 부족한 형편이다. 이에 따라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사람은 해마다 500여 명이고 인체조직 자급률도 26%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낯선 동식물 모형들, 신선한 충격

    낯선 동식물 모형들, 신선한 충격

    현대미술은 캔버스가 아닌 다양한 매체에 다양한 방식으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관람자에게 색다른 감동을 안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벨기에 출신의 설치미술가 카르스텐 휠러(54)의 개인전이 25일부터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농업과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식물병리학 연구소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는 과학자이자 예술가인 휠러의 작품은 관람객과 공간, 관람객과 작품 간의 상호 소통을 유도하면서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다. 2000년 프라다 재단 전시에서 선보인 ‘거꾸로 선 버섯 방’은 붉은 빛깔의 독버섯들이 거꾸로 매달린 채 관객을 홀리듯이 천천히 회전하는 작품이다. 2006년 런던 테이트모던의 터바인홀에 설치했던 대형 미끄럼틀 ‘테스트 사이트’와 2011년 뉴욕 뉴뮤지엄 개관전에서 선보인 미끄럼틀은 유쾌하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공간에 대한 관람객의 인식을 뒤흔들며 설치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10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거울로 이뤄진 7개의 자동문 설치작업을 통해 주목을 받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며 순간적으로 새로운 공간에 고립되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마주함으로써 관람객은 주인공이 된 듯한 흥미로움과, 끊임없이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는 공간에 갇히는 두려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경험하는 작품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휠러의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50%’라는 제목으로 휠러의 근작과 신작 등 20여점을 선보인다. 그의 대표 조각작품 시리즈로 꼽히는 ‘자이언트 트리플 버섯’ 시리즈는 대형 버섯모형으로 흰색 점이 있는 새빨간 광대버섯과 다른 종류의 버섯으로 이뤄져 기이한 분위기를 준다. 샤머니즘 역사 속 광대버섯의 향정신성 성분과 주술적 맥락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으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문화 존재의 가능성과 문명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는 고글 ‘업사이드-다운 고글’과 보라색 ‘문어’, 초록색의 기이한 동물 모형 작품 또한 대상과 장소에 대한 낯선 경험을 제공한다. 현재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작업 중인 카르스텐 휠러는 뉴욕 뉴뮤지엄, 밀라노의 프라다 재단, 런던 테이트 모던, 프랑스 디종의 르 콩소르시엄 등 각국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3년,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2010년, 2014년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국제 신사’와 ‘국민 호감’ /서동철 논설위원

    한국이 세계 12대 야구 강국이 참여한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하는 과정은 어떤 시나리오 작가도 쉽사리 써 내지 못했을 드라마였다. 일본과의 준결승전은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식스 센스’보다 더한 극적 반전이었다. 그런데 두 주일 남짓 이어진 드라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대사는 김인식 감독이 결승전 전날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했다는 “어제도 해물탕 먹고 이겼으니 오늘도 해물탕 먹어야지”였다. 여유로운 표현에 담긴 승부에 대한 강한 집념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가진 능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번 대표팀은 선수 선발 과정에서 악재가 겹치면서 ‘사상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인식 리더십’이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국내용을 넘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준결승에서 일본을 누른 직후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잘 던지던 오타니 쇼헤이를 고쿠보 히로키 감독이 강판시킴에 따라 결과적으로 한국이 승리한 것을 두고 질문이 잇따랐다. 김 감독은 “상대의 사정은 그 팀 감독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면서 오타니 투수를 바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취지로 고쿠보를 배려했다. 그러면서 “야구에서 승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고, 오늘처럼 강자가 약자에게 지는 경우도 있다”고 망연자실한 일본인들을 위로했다. 현지 반응은 ‘신사 감독의 패자 배려’로 뭉뚱그릴 수 있다. ‘좋은 감독’을 넘어 ‘명장’이라는 표현도 있었으니 적장에 대한 이 이상의 찬사는 없다. 김 감독이 ‘프리미어 12’를 계기로 ‘국민 감독’에서 ‘국제 신사’로 발돋움했다면 내야수 오재원은 ‘국민 비호감’에서 일약 ‘국민 호감’으로 변신한 케이스다. 그는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에서도 2루수를 맡고 있다. 김 감독과는 한 세대를 넘는 연륜의 격차가 있는 오재원이 살아가는 방식 역시 김 감독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라운드에 집념을 쏟아낸다는 점에서 김 감독과 오재원은 닮은꼴이다. 하지만 김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가 ‘상대에 대한 배려’라면 오재원의 그것은 ‘상대에 대한 도발’이다. 그러니 KBO리그에서 두산이 아닌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오재원은 밉상 그 자체다. 원성을 부르는 과장된 리액션이 잦은 것은 그만큼 경기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오재원은 준결승 대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선두 타자로 나서 안타를 치고는 역전 결승타라도 때린 것처럼 자극적인 몸짓을 했다. 결과적으로 상대의 자신감을 잃게 만든 이 액션은 사실 늘 하던 그대로였다. 야구팬들은 “상대 팀 선수일 때는 얄미웠는데, 우리 팀 선수로 그 모습을 보니 오히려 자랑스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그렇게 ‘국민 호감’이 됐다. 이런 국민의 응원이 대표팀에 가진 것 이상의 힘을 내게 했다. 무엇보다 감동이 있는 스토리는 두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 @seoul.co.kr
  • 6년간 맥도날드서 혼자 식사한 노인…생일파티 베푼 직원들 감동

    6년간 맥도날드서 혼자 식사한 노인…생일파티 베푼 직원들 감동

    6년간 매일같이 홀로 한 맥도날드 매장을 찾아 식사를 해 온 외로운 단골 노인을 위해 직원들이 함께 생일축하 파티를 열어준 것으로 알려져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영국 컴브리아 카운티의 소도시 워킹턴에 살고 있는 93세 노인 해리 스콧은 지난 6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동네의 맥도날드 매장에 가서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이것은 스콧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내 마사가 세상을 먼저 떠난 이후로 지속된 습관이었다.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기에 마사가 숨지고 나자 스콧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매주 일요일은 스콧의 대녀(代女)가 그를 반겨주었으나 나머지 6일 동안 스콧이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그러나 맥도날드 매장에 앉아있을 때만큼은 스콧도 공동체 속에서 지인들과 함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매장을 매일 찾으며 자연스럽게 다른 단골들 및 직원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또한 식당 안에 늘 가득한 아이들은 스콧에게 가져보지 못한 자손들과 함께 하는 것 같은 기분을 안겨 주었다. 스콧은 “나는 자녀가 없지만 이 매장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모두 내 자식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그런 스콧은 단연 특별한 손님이었다. 그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준 직원 중 하나인 잭 홀리데이는 “단골손님이야 많지만 그 중에서도 스콧은 특히 눈에 띈다”며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쾌활하고 활기 넘치는 분”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이런 스콧의 93세 생일이 찾아왔을 때 조촐하지만 특별한 생일잔치를 베풀기로 마음먹었다. 생일이 되자 직원들은 스콧이 찾아올 시간에 앞서 그가 늘 앉는 테이블 주변을 현수막과 풍선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그가 늘 주문하는 메뉴에 더해 위스키와 비스킷을 선물로 준비했다. 뿐만 아니라 이 매장에서는 앞으로 그에게 무상 식사를 매일 선물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의 이러한 따듯한 손길에 스콧은 “그들이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었을 때 나는 눈가를 닦을 수밖에 없었다”며 감사와 감동의 심정을 표현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스타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오하라 역 ‘바다’

    [스타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오하라 역 ‘바다’

    ‘뮤지컬의 디바’ 바다(35·본명 최성희)가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지난 1월 초연에 이어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이번 재공연에서도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았다. “초연 때보다 더 숙성됐다고 할까요. 이제는 스칼렛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제 안에 스칼렛의 ‘에고’가 형성돼 있는 듯해요. 무대에 서면 제 자신이 스칼렛이라고 느껴져요. 무대에 선 저를 보고 어느 누구도 당신이 왜 스칼렛이냐고 반문하지 않을 정도로 스칼렛이 됐어요.” 뮤지컬 ‘바람사’는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1936년 출간한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로미오 앤 줄리엣’ ‘십계’ 등을 만든 프랑스 뮤지컬팀이 원작을 토대로 노예 해방, 자유, 인본주의 메시지를 담은 프랑스 뮤지컬로 제작했다. 2003년 프랑스 초연 때 9개월간 90여만명을 동원하며 흥행 신화를 썼다. 바다는 “‘바람사’ 초연 때 아쉬웠던 점은 없다”고 했다. “후회 없이 했어요. 저는 ‘오늘은 있다, 내일은 모른다’는 신념으로 살아요. 오늘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요. 제 공연을 보면 제가 최선을 다하는 데서 느껴지는 감동도 있을 거예요.” 실제 바다는 프랑스 오리지널 제작진으로부터 “스칼렛 그 자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는 스칼렛은 타고난 미인이 아니라고 했다. “스칼렛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해야 예뻐 보이는지를 아는 여자예요. 스칼렛을 연기하며 ‘온 동네 남자들이 어떻게 이 여자를 좋아할 수 있었을까’, ‘어떤 여자이기에 남자들이 이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려 할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그녀의 매력은 자신감이었던 것 같아요.” 바다는 2002년 걸그룹 S.E.S 해체 이후 뮤지컬계에 발을 내디뎠다.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노래도 계속하고 싶어서다. 안양예고 시절 연극에 푹 빠졌다. 1학년 때부터 학교 공연에서 ‘산불’,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 국내외 유명 작품의 배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때 친구들이 붙여준 닉네임이 ‘바다’다. 장차 연극배우가 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무대에서 연기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편찮아지시면서 집안이 힘들어져 꿈을 접어야 했다. 대학 학비를 전액 지원받는 조건으로 SM과 가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엔 가수들이 돈을 많이 벌었어요. 아버지께서 창을 하셔서 노래는 곧잘 했어요. 노래를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컸어요. 가수 겸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처럼 매력 넘치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SM과 계약 종료 후 연기와 노래, 두 개를 모두 살릴 수 있는 뮤지컬의 길을 걷게 됐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죽기 전에 연극이 됐든 뮤지컬이 됐든 최고의 연출가와 함께 꼭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2003년 첫 데뷔 작품으로 뮤지컬 ‘페퍼민트’를 택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잘나가던 아이돌 여가수가 해외 유명 작품이 아닌 국내 순수 창작물을 데뷔작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하지만 소신이 있었어요. 첫 작품은 무조건 창작물로 해야겠다는 믿음이었죠. 당시 뮤지컬 시장엔 아이돌도 없었고 지금과 달리 너무 척박했어요. 개척정신이 없으면 뮤지컬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어요. 프런티어 정신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더 큰 뮤지컬 배우로 커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첫 작품 이후 4년여간 뮤지컬 무대에서 바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수 활동 등 여러 가지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둘도 없는 친구의 죽음에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제 주변인 중 가족 같은 사람이 죽은 게 처음이었어요. 2년간 외부 활동을 안 했어요. 외국에 봉사활동을 나가거나 하며 고통을 견뎌냈어요.” 아픔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바다의 행보는 파죽지세였다. 2007년 뮤지컬 ‘텔미 온 어 선데이’로 무대에 다시 선 이후 ‘노트르담 드 파리’, ‘미녀는 괴로워’, ‘브로드웨이 42번가’, ‘금발이 너무해’, ‘모차르트’, ‘스칼렛 핌퍼넬’, ‘카르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매년 뮤지컬 흥행 기록을 세워 오고 있다. “‘텔미 온 어 선데이’는 제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작품이에요. 무대 등장과 동시에 48곡을 혼자서 다 부르는 ‘모노 뮤지컬’이었어요. 공연이 끝나야만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어요. 한국 공연 당시엔 한참이나 시대를 앞선 뮤지컬이었죠. 배우로서의 실력을 길러 줬어요. 그 뮤지컬을 하며 많이 성장했고 어떤 무대든 두려움이 없어졌죠. 기회가 되면 꼭 다시 하고 싶어요.”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까지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에 출연했을 때가 연예계 인생 통틀어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뮤지컬 출연 횟수도 적지 않았고 방송활동 등 다른 스케줄도 많아 몸이 버티지를 못했다.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뒤 지쳐 쓰러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영양주사를 맞으며 겨우 버텼다. “당시 저와의 싸움이었어요. 정신력으로 버티며 무대에 섰어요. 하루하루 힘든 공연을 하며 ‘성희야 너 살아 있어?’, ‘괜찮겠어?’라고 묻고 또 물었어요. 정말 처절했던 나날들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배우 대기실에 쓰러져 있을 때였다. 나이 지긋한 여성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 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을 만나러 올 사람이 없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이상한 예감이 들어 만났다. “대기실로 들어오는 그분을 딱 봤는데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단아한 느낌의 그 귀부인이 말했어요. ‘오늘 공연 너무 잘 봤다. 난 판사인데 돈도 명예도 다 얻었다. 내 인생에서 더이상 바랄 것도 이룰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늘 당신의 열정을 보고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난 당신 나이에 당신처럼 열정적으로 살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내게 이런 뉘우침을 준 사람은 인생 통틀어 당신뿐이다. 당신 덕분에 꺼져 가는 인생의 불꽃이 살아나게 됐다’고. 그때 배우로서 가장 큰 보람과 감동을 느꼈어요. 제 열정을 통해 새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분이 있다면 오늘 당장 쓰러져 죽는다 해도 삶의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 벅찼어요. 힘들 때마다 그분이 생각나요.” 바다는 내년엔 더 바쁠 것 같다고 했다. “차기 뮤지컬 작품으로 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 작품을 하게 된다면 내년에도 뮤지컬을 하게 될 거고 그러지 않으면 음반을 내고 중국 활동에 주력하려 해요. 음반을 오랫동안 내지 못했어요. 10개월 전에 음반을 내려 했는데 그때 ‘바람사’ 제의가 들어와 못 냈어요. 그 이후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고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고요. 고교 시절 푹 빠졌던 연극도 다시 해보고 싶어 좋은 작품을 생각해 보고 있어요.”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특파원 칼럼] 다시 출발점에 선 한류/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다시 출발점에 선 한류/이석우 도쿄 특파원

    일본과 한국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일본 어린이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자매,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모습들을 그려 냈다. 음식을 함께 먹었던 공간 등 배경도 정성 들여 묘사했다. 누구와 함께 어떤 상황에서 음식을 먹었는지가 강조돼 있었다. 이에 비해 한국 초등학생들은 어떤 음식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내가 먹은 음식’이 강조됐고, 음식 그 자체를 부각시켰다. 누구와 어떤 상황이었는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두 나라 어린이의 이런 그림들은 일본 오사카에 있는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이 한국 국립민속박물관과 공동 주최한 ‘한국과 일본의 음식박람회’에 전시된 것들 중 일부다. 전시회는 지난 10일까지 두 달 보름 동안 계속됐다. 전시회에는 400평 남짓한 공간에 한국인의 음식습관과 세시풍속, 한국 음식문화 연구 성과와 자료, 주방용품 500여점과 부엌 등이 재현됐다. 일본 것도 비교 전시됐지만, 한국에 초점이 맞춰졌다. 전시품 상당수가 한국에서 수송됐고, 박물관의 별도 공간에 음식 체험 코너가 마련돼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오사카공대, 교토조형예술대 등 지역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영상매체와 디자인 작업을 통한 한국 음식의 표현과 재현이라는 실험적인 코너도 있었다. “한국 음식이 맛있고 재미있다”는 반응과 함께 현지 일본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행사는 개막 초기에는 바닥이던 한·일 관계가 투영된 듯 “왜 전시 제목에 한국이 우리나라(일본)보다 먼저 나오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 왜 한국 관련 행사를 하느냐”는 등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일본 민족학박물관의 인류학자 아사쿠라 도시오 교수는 “음식을 통해 한국 알기가 목적”이라면서 “오감을 통해 한·일 음식과 문화를 비교하고, 한·일 소통의 계기를 마련했다”며 뿌듯해했다. 고려자기의 세계적인 컬렉션을 자랑하는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서 두 달 넘게 열리고 있는 ‘새로운 발견, 고려청자’ 전시회도 현지인들 사이에 한국의 미와 수준을 다시 보여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 등 역대 일왕들이 오사카 방문길에 빼놓지 않고 들르는 이 박물관에서는 한국이 소장한 주요 고려청자와 박물관이 소장한 고려청자 등 200여점을 비교, 전시하고 있다. 관람객들 사이에서 “한국을 다시 보게 됐다. 한국이 좋아졌다”는 반응과 반향이 뜨겁다. 오사카한국문화원 주최로 지난 13일부터 사흘 동안 열린 제1회 한국영화제에서도 행사마다 마련된 좌석의 2배 이상의 관람객이 몰렸다. 다시 꿈틀대는 한류의 가능성과 힘을 엿보게 했다. 일본에서 가장 한국 친화적이라는 오사카에서 최근 열리고 있는 문화 행사들은 악화된 한·일 관계 속에서 기존 한류에 식상한 일본인들에게 한류의 가능성과 방향성을 다시 보여 줬다. 뻔한 스토리의 TV 드라마와 몇몇 아이돌 연예인에게 의존하는 차원을 넘어 깊이와 영역을 넓힌 한국의 문화적 성취와 전통은 일본인의 마음을 흔들고, 감동시킬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달 초 3년 반 만의 단독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계 정상화가 모색되는 가운데 우선 우리의 문화적 성취와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 새롭게 돌아보고 확인하는 것이 절실하다. 한국인의 무궁한 멋과 미의 발산을 기대한다. jun88@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위의 시는 우리의 가난한 시인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첫 연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때, 위의 시처럼 ‘서러운 사랑’ 이야기 하나를 따라가보기로 하자. 하지만 마냥 서럽기만 한 사랑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긴 배웅길 주인공은 좀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벼슬아치와 기생이다. 선조 6년(1573년) 가을 어느 날, 저 함경도 땅 홍원에서 처음 만난 순간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엮여지게 되었는데, 남자는 문관 출신 시인인 최경창(崔慶昌), 여자는 홍원 관아 기생인 홍랑(洪娘)이다. 그때 홍랑은 나이 열 예닐곱의 갓 피어나는 처녀 몸이었지만, 고죽(孤竹) 최경창은 그보다 17, 8살이나 많은 34살의 중년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나이차를 가볍게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詩)와 음악이었다. 29살인 선조 원년(1568년)에 문과에 급제한 최경창은 당대의 문인 이율곡, 정철, 이산해, 양사언 등과 어깨를 나란히 교유하며 시와 문장으로 문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의 청절하고 담백한 시풍은 멀리 중국에까지 알려졌을 정도였다. 또 고죽은 피리의 고수였고, 홍랑 또한 거문고 연주가 최고수준의 기량이어서, 둘이 음률을 즐기며 시와 술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다 보니, 고죽은 이래저래 홍랑에게 대책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럼 과연 홍랑은 어떤 기녀였던가, 그 내력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야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홍랑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열두어 살 무렵에 잃었다. 말하자면 고아가 된 것이다. 그녀를 거두어준 것은 어머니의 병을 돌봐준 마을의 의원으로, 홍랑은 그로부터 글을 배웠다. 나이가 들면서 홍랑은 시와 음률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타고난 미모와 영특함으로 꽃다운 규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가난을 떨칠 수가 없어 기적에 몸을 올리고 홍원 관아에서 지냈다. 최경창이 홍랑을 만난 곳은 임지인 경성으로 가던 중 하룻밤 묵었던 함경도 홍원 관아였다. 당시 경성은 함경도 북부에 웅거하던 여진족들이 자주 출몰하던 곳으로, 말하자면 최전방 지역이었다. 병마절도사가 주재하는 경성도호부에 고죽 같은 문신을 북평사(北評事)로 보내는 것은 무관 출신인 병마절도사를 보좌하기 위함이었다. 홍원 객사에서 하룻밤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은 고죽과 홍랑은 경성으로 가는 길에는 동행하지 못한다. 부임지에 가면서 댓바람에 관기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 두 사람은 경성의 군막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는 여기서 홍랑의 다릿심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홍원과 경성은 굽이굽이 험한 산길로 이어지는 천릿길이다. 서울-부산 간 거리와 맞먹는 셈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낭군을 만나기 위해 홍랑은 남장을 한 몸으로 이 멀고도 험한 길을 주파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막중(幕中)에서 두 사람이 마주 섰을 때, 그 감동과 애틋함이 어땠을 것인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 꿈은 반년을 넘기지 못했다. 선조 7년(1574년)인 이듬해 봄, 고죽이 경성에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으로 돌아가야 했다. 경성에서 한양까지는 경흥대로를 따라가는 2천릿길이다. 홍랑은 차마 헤어지기 싫어서 배웅을 나선다. 문 밖 배웅 정도가 아니라,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고 따라 나선 길이 천릿길 홍원을 지나고, 함관령(함흥-홍원 간 고개) 넘어 쌍성(영흥)에까지 이르렀는데, 출발지인 경성에서 무려 1,300리 길이었다. 역사상 최장의 배웅길이 아닐까 싶다. (기네스북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다릿심 좋은 홍랑도 여기서는 더이상 갈 수가 없다.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해놓은 것이다. 이른바 양계(兩界/평안도·함경도)의 금(禁)으로, 두 도의 백성들은 도계를 넘어 남쪽으로 올 수 없었다. 오랑캐의 침입이 잦아 빠져나가는 인구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관북이 무인지경이 될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최고의 걸작 시조 ‘묏버들’ 두 사람은 쌍성 고갯마루에서 작별을 고했다. 때는 봄절이어서 골짜기마다 빛 고운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이 길은 한 40년 후 백사 이항복이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를 읊으며 귀양간 길이기도 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하염없이 걷다 보니 함관령 고갯마루다. 날이 저물고 차가운 빗발까지 뿌린다. 홍랑은 발길을 멈추고 길가의 산버들을 몇 가지 꺾었다. 그리고 지필묵을 펼쳐 시조 한 수를 적어내려갔다. 고죽은 자신의 일기에다 함관령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와 이별한 뒤, 홍랑이 함관령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고 비가 내렸다. 이곳에서 홍랑이 내게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이 시조가 바로 유명한 ‘묏버들’ 시조다. 한국문학사상 이보다 아름다운 연시는 없을 것이다. 묏버들 갈해^ 꺾어 보내노라 님의손대^자시는 창 밖에 심거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갈해/가려 ^님의손대/님에게로) 예전엔 이 시조 역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는 이 시조를 두고 우리 시조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했고, 작가 이태준은 “그 뜻의 그윽함과 소리의 매끄럽고도 사각거림이 묘미”라고 극찬했다. 여기에 ‘사각거림’이라고 표현한 것은 시 전편에 ‘ㄱ‘ 음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읽는 맛을 더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버들가지는 옛사람들이 친구나 정인과 이별할 때 꺾어주던 정표이다. 봄에 가장 잎이 빨리 피는 버들가지처럼 빨리 돌아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홍랑은 묏버들 몇 가지와 이 시조를 보자기에 정성껏 여며 인편으로 고죽에게 보냈다. 고죽은 이것을 받아들고 위와 같은 일기 기록을 남긴 외에도 이 시조의 한역가 ‘번방곡(飜方曲)’을 지었는데, ‘번방’이란 즉석 번역이란 뜻이다. 가람 이병기 시인은 두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이는 그 원가(原歌)가 ‘번방곡’이란 한시보다도 낫게 되었다. 간곡하고 심절한 그 석별의 뜻이 언사에 넘친다. 종래 시가에도 증절류(贈折柳)와 같은 것이 없지 않으나, 이것은 그런 걸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한 작품이다. 우수한 것이다. 한 보배이다.” 두 사람은 그후 한 3년간은 서로 만나지 못한 듯하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그건 요샛말이고, 당시에는 국법으로 도계(道界)도 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홍랑의 사랑은 그것마저 넘었다. 한성으로 간 뒤 시름시름 앓던 고죽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홍랑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길을 나섰다. 홍원에서 한성까지는 함관령을 넘고 나서도 천릿길이다. 이 먼 길을 홍랑은 놀라운 다릿심으로 이레 동안 밤낮으로 걸어 마침내 한양에 들어왔다(이것도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감이다). 그리고 그리운 고죽을 만났다. 실로 3년 만의 재회였다. 그러나 뼈밖에 남지 않은 고죽은 홍랑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때부터 홍랑의 눈물겨운 병수발이 시작되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않는 필사의 간병이었다. 옆에서 보는 고죽의 본부인도 그 부모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눈물겨운 정성이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고죽은 이윽고 건강을 회복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최경창이 건강을 되찾은 기쁨도 오래 가지 못했다. 선조 9년 봄, 사헌부는 최경창의 파직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홍랑이 관기의 신분으로 지역을 이탈하여 양계의 금을 어겼다는 것이다. 더욱이 홍랑이 최경창을 찾아온 때는 명종의 비 인순왕후가 죽은 지 1년이 안된 국상기간이었다. 선조는 사실 고죽의 팬이었다. 그의 시를 무척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명분을 버리면서 고죽을 감쌀 수는 없었다. 결국 최경창은 파직을 당했고, 홍랑도 다시 고죽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홍랑이 떠나던 날 고죽은 이별의 시 두 편과 ’번방곡‘을 홍랑 손에 건네주었다. 시로 맺어졌던 두 사람이 아니었던가. 고죽이 이별 선물로 건넨 ’송별‘이란 제목의 칠언절구는 다음과 같다. 고운 두 뺨에 눈물지으며 봉성을 나서네새벽 꾀꼬리도 이별이 서러워 그리 우는가비단옷에 말 타고 강 건너 떠나갈 제풀빛만 아득히 외로운 나그네 전송하리  홍랑의 ’묏버들‘ 시조 육필 서첩 발견​ 최경창은 파직당한 얼마 후 복직되어 함경도 종성 부사 등 변방의 한직으로 오래 떠돌았다. 홍랑을 한성으로 불러들일 수 없는 고죽으로서 외직을 자청한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둘 사이에는 그 동안 연면한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선조 16년(1583년) 봄, 고죽은 경성절도사로 근무하다가 성균관 직강으로 발령받아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지금의 왕십리 부근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그때 나이 겨우 마흔 다섯이었다. 멀리 함경도 홍원 땅에서 고죽의 부음을 들은 홍랑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시 길을 나섰다. 객사를 한 만큼 무덤 돌볼 사람이 마땅히 없어 고죽이 홀로 외로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잠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 시묘살이는 움집에서 생활하며 조석으로 상식 올리기를 3년 동안 하는 것이지만, 너무나 힘들어 기한을 지키는 예가 많지 않았다. 대개는 석 달 정도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파주 한강 옆 고죽의 무덤 곁에 움집을 짓고 시작한 홍랑의 시묘살이는 한강의 매운 바람 속에서 장장 9년이나 계속되었다. 그것은 시묘살이라기보다 숫제 고인과의 동거였다. 세상 무엇으로부터도,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홍랑은 시묘살이를 하는 중에 혹시 불측한 일이 일어날까 하여 스스로 ’용모를 흐트렸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는 인두로 얼굴을 지졌다고도 하는데, 실상은 잘 알 수 없다. 기나긴 홍랑의 시묘살이를 마감시킨 것은 다름아닌 임진왜란이었다. 최경창이 남긴 시 원고와 유품을 챙겨든 홍랑은 다시 함경도 홍원 땅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전쟁이 끝나기까지의 7년 동안 그녀의 행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고죽의 시와 문장이 담긴 '고죽집'(孤竹集)이 전해지게 된 것은 오로지 남편의 유고를 생명처럼 아낀 홍랑 덕분인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홍랑은 해주 최씨 문중을 찾아와 최경창의 유작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고죽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멀고 먼 고행으로 이어졌던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자기를 남편 곁에다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이 1598년 11월에 끝났으니, 홍랑의 기질로 보아 아마 그 이듬해 봄을 맞아 고죽에게로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때 홍랑의 나이 마흔 두셋 정도로, 고죽이 떠난 지 16년째의 봄이다. 자신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고난과 고행으로 점철되었던 홍랑의 삶은 그렇게 마침표가 찍어졌으리라. 홍랑이 죽자 해주 최씨 문중은 그녀를 집안 사람으로 받아들여 장례를 지냈다. 최씨 문중에서는 홍랑을 작은마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홍랑의 무덤은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바로 아래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해주 최씨의 문중 산에 고죽의 묘소와 홍랑의 무덤이 있다. 홍랑과 고죽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어 그 후손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음이 얼마 전에 밝혀졌다. 그리고 또 지난 2000년에는 홍랑과 고죽의 연시가 수록된 11쪽짜리 서첩이 발견됐다. 이 서첩엔 홍랑의 ‘묏버들’ 원본과, 고죽이 홍랑과 헤어지면서 써준 고죽 육필의 ‘송별’ 등 한시 두 편이 실려 있다. 단아한 글씨의 ‘묏버들’은 홍랑의 친필로 밝혀졌다. 이 서첩을 보고 가람 이병기 시인이 감상기를 적어넣은 발문도 함께 공개됐다. 그 멀고 먼 길을 걸었던 홍랑의 고단한 여정은 그녀가 10년 세월을 보냈던 파주 다율리 산자락에서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녀의 무덤자리를 찾는 후세인들의 발걸음은 아직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모양이다. 홍랑시비도 지난 1981년 무덤을 찾아온 시인들의 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어느 해 여름이던가, 홍랑 묘를 찾았을 때, 보라색 무릇꽃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무덤 앞에 ‘시인 홍랑지묘’라고 새겨진 오석 빗돌이 서 있고, 앞쪽의 아담한 시비에는 홍랑의 ‘묏버들’과 고죽의 번방곡’이 앞뒤로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400년도 더 지난 지금에까지, 묏버들 피는 봄을 지나 무릇꽃 흔들리는 산자락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완결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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