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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티우시 “한국 패피 안목 까다로울 만큼 세련”

    마티우시 “한국 패피 안목 까다로울 만큼 세련”

    “한국 소비자들은 안목이 정말 세련돼서 까다롭다 싶을 정도예요. 이곳에서 ‘아미’가 성공을 거둔 것을 감사하죠.” 빨간 하트와 에펠탑을 닮은 A자 심벌로 세계인의 마음을 홀린 브랜드 ‘아미’의 창립자 알렉상드로 마티우시(42)가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 11일 광화문 육조광장에서 열린 아미의 2023 봄여름 쇼를 위해서다.패션쇼를 하루 앞두고 그가 묵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다. 그는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며 어깨를 으쓱했지만 막상 본격적인 질문이 오가자 무섭게 집중했다. 마티우시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한국 친구들이 하트 손을 해 줘 감동”이었다며 검지와 엄지를 교차한 한국식 손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마티우시가 ‘친구들과 함께 입을 수 있는 따뜻하고 친근한 브랜드’를 목표로 2010년 설립한 아미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단독 수입해 전개한다. 스웨터 하나가 50만원에 달하는 등 비싼 가격에도 아미는 2030세대가 열광하는 ‘신명품’의 선두주자로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올해 9월까지 국내 매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60%에 이를 정도다. 마티우시는 30분 남짓 이어진 대화에서 ‘이지’(편안함), ‘텐더’(상냥한), ‘쿨’(멋진) 등의 부드럽고 따뜻한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곤란한 질문에도 ‘울라라’(아이코, 저런 등을 뜻하는 불어)라는 감탄사를 내뱉곤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돌려줬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똑 떨어지는 검정 가죽재킷을 걸친 이 프랑스 남자에게는 으레 성공한 디자이너에게 기대되는 예민한 주름이 없었다. 경쟁이 싫어 좋아하던 발레를 관뒀다는 그의 어린 시절이 자연스럽게 연상됐다. 아미를 상징하게 된 하트 심벌은 그가 어린 시절 편지 끝에 그려 넣곤 했던 하트를 변형했다. 여기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독려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는 “첫 시즌에선 (하트 라인의) 반응이 별로였는데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계속해서 로고 플레이를 독려했다. 마케팅과의 대화와 협업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하트 심벌을 ‘쿨 스터프’(멋진 것)라고 칭했다. 다만 “여기에 갇히고 싶지 않다”면서 하트로 성공을 거둬 이 자리에 있는 건 맞지만 좀더 “조화로운 옷장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광화문의 밤을 수놓은 아미의 2023 봄여름 쇼는 1960년대 복고풍 무드로 가득했다. 브랜드의 특징인 다양한 색을 중심으로 몽마르트르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그곳에 끌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풀어냈다는 설명이다. 옷은 프렌치 감성으로 무장했으나 무대를 둘러싼 익숙한 빌딩과 뒤로 솟은 북악산, 코끝을 물들이는 서울의 가을 바람이 어우러져 쇼는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저는 패션 디자이너이긴 하지만 옷이 남는다기보다는 브랜드를 둘러싼 경험, 가치 등이 결국 남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패션 디자이너로 기억되기보다 좋은 협업자, 좋은 아들, 친구,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인터뷰] 최우식·수영·박해수도 반했다...아미 마티우시 “한국 소비자 까다로울 정도로 취향 좋아”

    [인터뷰] 최우식·수영·박해수도 반했다...아미 마티우시 “한국 소비자 까다로울 정도로 취향 좋아”

    “한국 소비자들은 안목이 정말 세련돼서 까다롭다 싶을 정도예요. 이곳에서 ‘아미’가 성공을 거둔 것이 감사하죠.” 빨간 하트와 에펠탑을 닮은 A자 심볼로 세계인의 마음을 홀린 브랜드 ‘아미’의 창립자 알렉산드로 마티우시(사진·42)가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 11일 광화문 육조광장에서 열린 아미의 2023 봄여름 쇼를 위해서다. 패션쇼를 하루 앞두고 그가 묵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다. 그는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며 어깨를 으쓱했지만 막상 본격적인 질문이 오가자 무섭게 집중했다. 마티우시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한국 친구들이 하트 손을 해줘 감동”이었다며 검지와 엄지를 교차한 한국식 손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마티우시가 ‘친구들과 함께 입을 수 있는 따뜻하고 친근한 브랜드’를 목표로 2010년 설립한 아미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단독 수입해 전개한다. 스웨터 한 벌이 50만원에 달하는 등 비싼 가격에도 아미는 2030세대가 열광하는 ‘신명품’의 선두주자로 매년 두자릿수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올해 9월까지 국내 매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60%에 이를 정도다. 마티우시는 30분 남짓 이어진 대화에서 ‘이지’(편안함), ‘텐더’(상냥한), ‘쿨’(멋진) 등의 부드럽고 따뜻한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곤란한 질문에도 ‘울라라’(아이코, 저런 등을 뜻하는 불어)라는 감탄사를 내뱉곤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돌려줬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똑 떨어지는 검정 가죽재킷을 걸친 이 프랑스 남자에게는 으레 성공한 디자이너에게 기대되는 예민한 주름이 없었다. 경쟁이 싫어 좋아하던 발레를 관뒀다는 그의 어린 시절이 자연스럽게 연상됐다.아미를 상징하게 된 하트 심볼은 그가 편지나 카드 끝에 그려 넣곤 했던 하트를 변형했다. 여기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독려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는 “첫 시즌에선 (하트 라인의) 반응이 별로였는데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계속해서 로고 플레이를 독려했다. 마케팅과의 대화와 협업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그는 하트 심볼을 ‘쿨 스터프’(멋진 것)라고 칭했다. 다만 “여기에 갇히고 싶지 않다”면서 하트로 성공을 거둬 이 자리에 있는 건 맞지만 좀 더 “조화로운 옷장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광화문의 밤을 수놓은 아미의 2023 봄여름 쇼는 1960년대 복고풍 무드로 가득했다. 브랜드의 특징인 다양한 색을 중심으로 몽마르트르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그곳에 끌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풀어냈다는 설명이다. 옷은 프렌치 감성으로 무장했으나 무대를 둘러싼 익숙한 빌딩과 뒤로 솟은 북악산, 코끝을 물들이는 서울의 가을 바람이 어우러져 쇼는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저는 패션 디자이너긴 하지만 옷이 남는다기보다는 브랜드를 둘러싼 경험, 가치 등이 결국 남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패션 디자이너로 기억되기보다 좋은 협업자, 좋은 아들, 친구,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문화유산 알박기/전곡선사박물관장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문화유산 알박기/전곡선사박물관장

    코로나19 팬데믹이 거의 끝날 것만 같은 10월의 하늘 아래 우리나라는 온통 축제의 무대가 됐다. 전곡선사박물관이 자리잡은 전곡리유적에서도 3년 만에 연천 구석기축제가 열렸다. 거리두기와 비대면이라는 처음 겪는 고통의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에게 다시 열린 축제의 무대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잘 보존된 전곡리 구석기 유적에 모여 ‘전곡 패밀리’를 자처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고고학 전문가들이 정성껏 준비한 선사 체험을 마스크 없이 웃고 떠들며 맘껏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19의 끝이 보이는 것을 실감했다. 연천 구석기축제가 시작된 지 어느덧 30여년이 흘렀다. 1978년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되면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이 세계 구석기 문화 연구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이러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선구적 노력으로 1993년 시작된 연천 구석기축제는 문화유적의 보존과 활용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직접 보여 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 축제가 됐다. 개발의 광풍이 거세던 90년대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닦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상하게 생긴 돌멩이들을 주워다가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하는 고고학자들의 연구는 사기라고 폄훼되기도 했다. 돌아보면 포클레인으로 유적을 훼손하던 시절을 꿋꿋이 견뎌 내며 무려 23만평에 달하는 구석기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돼 지금까지 원형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그야말로 ‘문화유산 알박기’ 신공의 성공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김포 장릉 아파트와 춘천 중도 레고랜드 등 수많은 개발사업의 과정에서 언론에 예의 등장하는 타이틀은 안타깝게도 “문화유산, 개발의 발목을 잡나” 식의 선정적 제목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언제 문화유산이 개발의 발목을 잡은 적이 있었던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발굴사업 중 겨우 5% 정도의 유적만이 보존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직 문화유산을 개발의 걸림돌로만 보는 비뚤어진 시선만이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긴급 상황에서 결국 우리가 돌아갈 곳은 자연뿐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 이때, 암사동 선사유적처럼 개발의 삽날을 피해 간신히 ‘알박기’해 놓은 문화유산들이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에서 잠시 숨 쉴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은 감동적이다.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도시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순간의 정치적 인기를 위해 문화유산을 개발의 걸림돌로 낙인찍는 지자체장들도 늘고 있어 걱정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
  • ‘백투더퓨처’ J 폭스와 로이드 나이도 30년 세월도 뛰어넘은 ‘허그’

    ‘백투더퓨처’ J 폭스와 로이드 나이도 30년 세월도 뛰어넘은 ‘허그’

    사진 오른쪽은 할리우드 스타 마이클 J 폭스(61), 왼쪽은 그와 1985년 1편을 시작으로 ‘백 투 더 퓨처’ 3부작에서 호흡을 맞춘 크리스토퍼 로이드(84)다. 폭스는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의 대타로 출연했다가 큰 인기를 얻는 행운을 누렸고, 로이드는 브라운 박사를 연기하며 그를 완벽하게 도왔다. 로이드를 부축할 나이의 폭스가 오히려 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무대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폭스는 스물아홉 살 때인 1991년 파킨슨씨병을 진단받고 30여년 투병 중이다. 그는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코믹 콘 아이콘 프로그램에 로이드의 부축을 받아 무대에 힘겹게 올라 팬들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작지 않은 감동을 느꼈다고 많은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로이드는 원래 맥플라이 역으로 기용된 에릭 스톨츠와 6주 정도 촬영이 진행되던 중 갑자기 폭스로 교체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입을 열었다. “새벽 1시쯤 더 이상 마티를 연기하던 배우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됐다며 다음날부터 마이클이 대신한다고 하더라. 6주 동안 촬영한 것을 무르고 다시 찍어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마이클은 알지도 못하는 배우였다. 하지만 제작진은 금방 둘이 케미를 맞출 것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였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판단은 적중했다. 작은 영화사를 일거에 대형 프로덕션으로 도약시켰다. 폭스는 오랜 투병에도 여전히 강인한 내면을 드러내 보였다. 그는 “지난해 뺨과 눈을 다쳤고 손과 팔꿈치, 어깨가 부러지기도 했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힘든 한 해를 보냈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해 줬고 그래서 정말 멋졌다. 그런 기분은 계속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감사할 것들을 늘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항상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나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한 뒤 “긍정적이라면 상황을 나아지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그것을 믿고 감사하면 남은 생애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단을 받은 직후부터 자신을 아낌없이 응원해 온 로이드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 고령 지병 동료 수감동료 폭행 숨지게 한 80대 폭행죄만 적용

    고령 지병 동료 수감동료 폭행 숨지게 한 80대 폭행죄만 적용

    고령에다 지병이 있는 동료 수감를 폭행해 숨지게 한 80대에게 폭행죄만 적용됐다. 대구지법 형사11부(이상오 부장판사)는 A(84)씨에게 폭행죄를 적용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폭행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했다거나 당시 폭행으로 인해 피해자가 급성심근경색을 일으켜 사망할 것이라고 피고인이 예견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허혈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긴 했으나 이미 고령의 고혈압 환자로 관리되고 있었고 2018년 부정맥 및 심방세동 진단을 받은 상태였으므로 폭행 행위와 같은 외부 자극이 없더라도 내부적, 병리적 요인만으로도 급성심근경색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살인죄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대구교도소에 수감된 A씨는 지난해 1월 16일 오후 8시 10분쯤 교도소 노인치료거실에서 B(83)씨와 다투다 방석으로 B씨 머리와 몸을 여러 차례 폭행하고 주먹으로 얼굴 부분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폭행당한 후 응급 벨을 누르고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같은 날 오후 9시 8분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
  • “子 윌리엄이…” 샘 해밍턴, ‘슈돌’ 하차 이유 공개

    “子 윌리엄이…” 샘 해밍턴, ‘슈돌’ 하차 이유 공개

    방송인 샘 해밍턴이 고정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차하게 된 이유를 직접 밝힌다. 그리고 아들 윌리엄이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오는 12일 오후 10시30분 방송되는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는 샘 해밍턴, 제이쓴, 장동민, 최민환, 조충현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샘 해밍턴은 5년 동안 출연했던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차한 이유를 털어놨다. 이어 ‘슈퍼맨이 돌아왔다’ 덕분에 전 세계 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샘 해밍턴은 지난 2005년 KBS 특채로 발탁된 ‘외국인 1호 개그맨’으로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특히 아들 윌리엄, 벤틀리와 함께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호주 아빠’ 샘 해밍턴은 호주식 육아법과 윌벤져스를 육아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그는 첫째 윌리엄의 남다른 효심에 크게 감동했던 사연을 전했고 이를 듣던 장동민이 눈시울을 붉혔다. 샘 해밍턴은 이어 ‘윌벤져스’의 귀여운 근황을 전하며 “윌리엄이 비밀 연애 중이다”라고 고백했다. 한편 이날 ‘라디오스타’에서는 샘 해밍턴 뿐만 아니라 제이쓴, 장동민, 최민환, 조충현까지 연예인 아빠들이 육아 수다를 쏟아낸다. 이들의 대화를 지켜본 ‘라디오스타’ MC들은 “산후조리원 휴게실을 보는 것 같다”라고 했다.
  • “감염병, 온난화시대 문학에서 필요한 것은 실천, 참여, 상상력”

    “감염병, 온난화시대 문학에서 필요한 것은 실천, 참여, 상상력”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현재진행형인 온난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신종 감염병이나 온난화에 대응하는 것은 과학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인이나 소설가 같은 문인들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순수 문예잡지 ‘월간문학’ 10월호에서는 최근 열린 ‘제61회 한국문학심포지엄’ 지상중계를 통해 이 같은 문학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문학과 재난대응’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문학인들은 감염병과 기후변화라는 엄중한 상황에 맞닥뜨린 한국문학이 추구해야 할 것은 실천과 참여, 상상력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기후 변화에 따른 문학의 대응’이라는 주제발표를 한 강호삼 소설가는 “쥘 베른이 달세계 여행, 해저2만리 같은 과학소설을 발표해 과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해 오늘날 우주여행과 인공위성 발달을 실현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당면한 기후변화와 전 지구적으로 예견되는 재난에 있어서 우리 문학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해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말했다.19~20세기 초 창조적이고 놀라운 생각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추동했던 것처럼 기후변화로 위기에 처한 현재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문학인들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우리 문학도 심기일전해 꾸준히 소재를 찾아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유한근 문학평론가는 ‘유행병 시대의 문학작품 고찰’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는 불안하게 살아가지만 어떻게 살아도 안전하지 않다”며 “다가올 시대에 우리를 위안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문학’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 평론가는 “재난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한국현대시는 일제침탈기 저행시와 한국전쟁 당시와 그 전후에 쓰였던 참혹한 전쟁을 고발하는 시”라면서 “지금도 진행중인 코로나19를 모티프로 하는 저항시들이 창조될 것”이라며 현재 한국 문학이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0년 4월 강원도 고성 산불을 계기로 탄생한 산림문학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김선길 한국산림문학회 이사장(시조시인)은 “문학인들이 산림을 연구한 작품을 쓰면 문학이 숲이 되고 산림인들이 문학을 연구하면 숲이 문학이 된다는 것을 산림문학이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하며 “문학인들이 자연을 소재로 쓴 작품들은 국민에게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산림문화 르네상스 시대로 나가는 데 큰 동력이 될 것”이라며 재난재해 상황에서도 문학인들의 할 일은 적지않다고 강조했다.
  • 영규, 휴정 승군 통솔 이전에 공주서 봉기… 청주성 탈환 일등공신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영규, 휴정 승군 통솔 이전에 공주서 봉기… 청주성 탈환 일등공신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영규, 전국 의승 기치 높이 든 기폭제왜군 “승산 없다” 판단 청주서 퇴각청주 앞서 1·2차 금산성전투에 참여 휴정 제자 영규는 동명이인설도당상관 제수 했으나 금산서 전사조선왕조, 전사 영규 유교식 예우무덤 만들고 진영 모시고 제사도임진왜란의 의승장(義僧將)이라면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대사 유정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휴정이 조선 승군을 통솔하기 이전에 공주 의승장 영규가 있었다. 영규대사의 봉기는 전국의 의승이 잇따라 기치를 높이 드는 기폭제가 됐다. 낫으로 무장한 영규의 승군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근접전의 전력을 당대 최강으로 끌어올린 왜군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과시했다. 왜군이 청주성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영규의 승군과 부딪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산대사 휴정의 문하로 20년 공부 기허당(騎虛堂) 영규(靈圭·?~1592)의 흔적이 가장 진하게 남아 있는 고장은 당연히 고향인 충남 공주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는 계룡산 자락과 함께 남쪽으로 달리는데 갑사 초입에 계룡면 소재지가 있다. 영규대사를 기리는 한 칸짜리 작은 여각(閭閣)은 계룡면행정복지센터 마당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행정복지센터 앞길의 이름도 ‘영규대사로(路)’다. 이 길을 따라 논산 방향으로 조금 더 달리면 영규대사 묘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그런데 ‘스님의 무덤’이라니 좀 생소하다. 고승이 입적하면 화장해 부도에 모시는 것이 불교의 전통이다. 무덤 아래 그의 진영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영정각도 보인다. 조선왕조는 금산성싸움에서 전사한 영규대사를 불교식이 아닌 유교식으로 예우한 것이다. 속성(俗姓)이 밀양 박씨로 알려진 영규는 계룡산 널티(板峙)에서 태어났다. 갑사로 출가하고, 휴정 문하에서 공부를 마치고는 처음 머리를 깎은 갑사 청련암으로 돌아가 무예를 익혔다고 한다. ‘회양 표훈사 청허당 휴정대사비’에는 대사의 제자로 영규라는 이름이 있지만, 두 사람이 꼭 사제 관계였는지는 그다지 분명치 않다는 느낌도 든다. 갑사에 전하는 ‘임진의병승장복국우세 기허당대선사일합영규사실기’(事實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영규는 성품이 침착하고 강직했으며, 말수가 적고 용력이 뛰어나며 공부의 진척 속도가 빨랐다. 경전과 그 밖의 책을 20년 남짓 공부하고 나자 휴정은 영규에게 이제 고향인 호서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는 것이다.갑사로 돌아온 영규는 스스로 불목하니가 돼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절에서 가장 위계가 낮은 불목하니는 영규의 이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각종 전승에는 영규가 장작을 다루며 무기로 만들어 무예를 익히는 모습을 부각시킨다. 금산 보석사에 1840년(헌종 6)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 건립을 주도한 당시 영의정 조인영도 비석 뒤편 ‘영규대사순의비명병서’에 ‘영규는 본래 신통한 힘이 있어 선승들이 쓰는 지팡이로 무예를 연마했다’고 적었다. ‘사실기’에는 갑사 대중이 “왜 불목하니 역할을 하느냐”고 묻자 영규는 “다른 사람이 반나절 걸리는 일을 나는 단번에 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번거롭더라도 잠깐 동안 열 군데 불을 때면 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쓰겠는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곧바로 ‘휴정의 제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명단에는 영규(靈圭)라는 이름을 가진 승려가 둘이다. 당대 의승군으로 활약한 동명이인의 존재를 보여 주는 게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우리가 영규에 주목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의 법맥(法脈) 때문이 아니다. ● 영규 천체 움직임에서 국난 조짐 읽어 조선 후기 문인 연경재 성해응(1760 ~1839)은 ‘금산순절제신전’(錦山殉節諸臣傳)에 영규의 봉기 과정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서술했다. 영규는 천체의 움직임에서 국난의 조짐을 읽었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불가의 계율에도 국가에 은혜를 갚고자 나무로 무기를 만들고 낫 수천 개를 주조했으며 오백 남짓한 용맹한 승려를 모아 때를 기다렸다. 10년이 지나지 않아 왜적이 침입했는데 승려들이 흩어지려 하자 의(義)를 일으켜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3일 낮밤을 통곡하니 감동한 승려 1000명 남짓이 죽기를 각오하고 갑사에서 봉기했다는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임진년 8월 1일의 청주성 전투다. 선조수정실록은 ‘영규는 사람됨이 장건하고 키가 보통 사람의 갑절이나 됐으며 지략과 계책이 있고 많은 무리를 잘 부렸다. 청주 전투도 실로 영규가 지휘하고 계획한 것이었다. 조헌이 금산전투를 굳이 고집하면서 자기의 말을 따르지 않자 틀림없이 패하리라는 것을 알고도 권율에게 서면으로 보고하고 군사를 합쳐 진군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의열(義烈)로 세상에 일컬어졌으니, 불교가 있은 이래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다’고 했다. 청주성 탈환의 일등 공신으로 영규를 꼽은 것이다. 영규와 승군의 청주성전투 과정은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의 문집인 ‘문소만록’(聞韶漫錄)에 비교적 자세히 담겨 있다. 훗날 윤국형으로 이름을 바꾸는 윤선각은 의병 활동을 방해한다며 조헌이 불만스러워했던 인물이다. ‘문소만록’의 영규 관련 서술도 고위 인사의 냉정한 시각으로 한껏 내려다보는 분위기지만 평가만큼은 정밀하다는 인상이다. 윤선각이 만난 영규의 인상은 이랬다. ‘매우 건장하기는 하나 별다른 지혜나 꾀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녹록한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 한 방면을 방어하게 할 만은 했다. 내가 “만일 그대에게 승군 약간 명을 준다면 그대는 이들을 거느리고 가서 적을 치겠소?” 했더니, 그는 기꺼이 승낙했다. 이에 내포의 승군 수천 명을 뽑아서 그에게 거느리게 하고, 승병패두(僧兵牌頭)라 불렀다.’ 윤선각은 ‘영규는 글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의 성명 정도만 조금 분별했다’고도 적었다. 윤선각은 ‘영규는 청주성전투로 안팎에서 명성이 났다’고 했다. ‘청주 전투 이후 승병이 곳곳에서 계속 일어났으니, 실로 영규가 불러일으킨 것’이라는 것이다. 조정에 올린 장계에는 ‘영규가 저희 무리를 많이 모았는데, 모두 낫을 가졌고 기율이 매우 엄해 적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투 과정의 일화도 흥미롭다. ‘영규는 청주에서 적을 칠 적에 관군 수령들이 혹 물러서면 짚고 있던 큰 몽둥이로 등을 치면서 “평일에는 고기를 먹으며 잘 지내더니, 이제 와서는 도망갈 생각밖에 없느냐?” 하니 감히 뒤처지는 수령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적 침입하자 “義 일으켜야” 봉기 선조실록은 “충청도는 적의 요새가 되는 곳이다. 그런데 적이 청주를 차지한 지 벌써 넉 달이 넘었다. 중 영규가 의(義)를 분발해 성 밑으로 진격했는데 제일 먼저 돌입해 마침내 청주성을 공략했다. 그가 호령하는 것을 보면 바람이 이는 듯하여 그 수하에 감히 어기는 자가 없었고 질타하는 소리에 1000명의 중들이 돌진하자 다른 군사들도 이들을 믿고 두려움이 없었다’는 비변사의 보고 내용을 옮기고 있다. 영규의 의승군은 청주성전투에 앞서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이 순국한 제1차 금산성전투에도 참여한 듯하다. 고경명의 종사관 유팽로가 남긴 ‘월파집’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해가 질 무렵 성문을 두드리며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그가 급하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전일 말씀하신 영규상인(靈圭上人)이 승도 수백 명을 거느리고 왔습니다.” 공(고경명)은 즉시 나가서 맞아들여 인사를 나눈 다음 장수들에게 말했다. “영규가 왔으니 이는 반드시 하늘의 도움이다.”’ 호남의 대표적 유학자 고경명 진영의 불제자 영규에 대한 예우가 깎듯하기만 하다. 제2차 금산성전투의 경과는 ‘문소만록’을 참고한다. 조헌에 대한 윤선각의 시선이 차갑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영규는 “전라도 순찰사가 군사 수만 명으로 진격하려 하면서 나에게 선봉이 돼 주기를 청했으나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경솔히 나갈 수는 없다”며 조헌에게 순찰사와 날짜를 약속하도록 권했다. 그런데 답장이 오기도 전에 조헌은 적을 속히 쳐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금산으로 들어가니 영규도 마지못해 따랐다. 부하들이 “반드시 패할 것이니 가지 마소서” 했으나, 영규는 “가부를 의논할 때는 말을 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먼저 갔는데 따르지 않는다면 누가 구원하겠느냐?”고 했다.’ 당시 금산성의 왜군은 1만명을 헤아린 반면 조선군은 조헌 의병이 700명 남짓, 영규 의승군도 600~1000명 수준에 그쳤다. ‘문소만록’의 영규 관련 서술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청주의 적을 몰아냈다는 보고가 의주에 이르자, 조정은 이를 가상히 여겨 영규에게 당상관을 제수하고 옷감까지 보냈다. 하지만 영규는 이미 금산에서 죽어 받지 못했다.’
  • 장영란, 시아버지 생일에 현금 플렉스

    장영란, 시아버지 생일에 현금 플렉스

    방송인 장영란이 시아버지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장영란의 남편 한창은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버지 생일 파티 현장을 공개했다. 영상 속에는 장영란의 시아버지가 케이크 속 숨겨져 있던 돈다발을 뽑아내는 모습이 담겼다. 장영란의 시아버지는 감동 받은 듯 눈물을 흘리며 즐거워 하는 모습. 영상에서 장영란은 “아버님 계속 뽑으라”며 감동 받은 시아버지의 모습에 흐뭇한 리액션을 보인다. 장영란의 남편 한창은 “아버지 생신 맞이 가족 여행”이라며 “집에서부터 서프라이즈 선물 준비한 며느리”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가정을 꾸리게 해준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며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준 영란씨 고마워요”라는 글을 덧붙였다. 한편 장영란과 한창은 지난 2009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 ‘대도약 전남 행복시대’ 실현할 아이디어는?

    ‘대도약 전남 행복시대’ 실현할 아이디어는?

    전남도가 국민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해 도정에 반영하기 위해 ‘2022년 정책 제안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한다. 민선8기 도정 비전인 ‘세계로 웅비하는 대도약! 전남 행복시대’를 실현할 내용이다. 도정 방침인 ▲도약하는 지역경제 ▲문화융성 관광수도 ▲생동하는 농산어촌 ▲감동주는 맞춤복지 ▲소통하는 혁신도정을 실현할 구체적 아이디어를 제안받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기간은 오는 27일까지다. 도는 12월 중 제안심사위원회를 통해 최종 선정된 우수 제안을 실무 부서 검토를 거쳐 민선8기 도정에 적극 반영토록 할 계획이다. 우수 제안자에게는 상장과 함께 금상 1명 300만원, 은상 1명 200만원, 동상 2명 각 100만원, 장려상 3명 각 50만원 등이다. 참여를 바라는 국민은 국민 참여 포털 ‘국민신문고(www.epeople.go.kr)’와 우편(전남도청 정책기획관실 제안담당자 앞)을 통해 접수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전남도 공식 누리집(www.jeonnam.go.kr)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공식 누리소통망(SNS)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도는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공모전 소식을 개인 누리소통망 계정에 공유하면 추첨을 통해 50명에게 모바일 상품권을 증정하는 소문내기 이벤트도 진행한다. 김종기 도 정책기획관은 “공모전을 통해 도정에 변화를 불러올 다양한 아이디어가 발굴되길 기대한다”며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한편 도는 도정 발전에 기여할 국민과 공무원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제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올 상반기 ‘남도장터 고국배송 서비스 도입’ 및 ‘민원동 명칭 변경’ 등 총 20건의 우수 제안을 채택, 정책에 반영했다.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고려시대 개성, 금주령 잦았지만 막걸리 즐겼다/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고려시대 개성, 금주령 잦았지만 막걸리 즐겼다/전 국립고궁박물관장

    대표적인 개성 음식은 보쌈의 원조 격인 개성 쌈김치, 만두, 개성 장땡이, 약과, 조랭이 떡국 등을 들 수 있다. 개성 음식은 조선왕조의 도읍지 서울 음식과 조선왕가의 발상지 전주 음식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음식의 하나이다. 개성 음식의 발달 요인은 고려의 식문화에서 기인한다. 개성은 지리적 이점으로 해산물과 농산물 등 식재료의 풍부함에 고려 궁중음식의 화려함이 더해져 식문화가 발달했다. 하지만 고려의 음식문화에 대한 기록과 자료는 몇몇 고문헌과 당시 문인들의 시를 통해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루 몇 끼를 먹고 무엇을 먹었는지 등은 너무 일상적이고 당연한 사실이라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고려 때 개성사람들은 뭘 먹었을까. 고려인들이 주로 먹었던 곡물은 쌀과 보리, 밀?콩류?조?기장?피 등이었다. 쌀은 알이 크고 달아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고려 말 이색은 ‘목은집’에서 “부잣집들은 노적가리가 마치 높은 언덕을 이루며 썩어 나지만, 가난한 집은 그날그날 방아를 쪄 땟거리를 마련하고 햅쌀이 아닌 묵은쌀도 겨우 먹었다”고 했다. 백설기는 하늘이 내린 음식이라 할 정도로 맛이 있고, 약밥을 선물로 받기도 했으며, 쌀죽을 끓여 먹었다고 했다. ‘늘그막에 병중에서 맞이한 동지’라는 시에서는 ‘연유 같은 팥죽이 푸른 사발에 가득하구나’라며 팥죽이 꿀보다 맛있다고 했다. 두부 반찬을 보고는 마치 막 썰어낸 비계처럼 맛있고 부드러워 늙어서도 보양식으로 먹기 좋다고 했다. 또한 점심에 부인이 해 준 오이채와 연한 부추 잎을 곁들인 국수를 먹고 감동해 ‘오찬’이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국수는 요즘과 달리 사신 접대나 생일, 잔치 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그 이유를, 고려는 밀이 생산되지 않고 모두 중국에서 사와야 해서 값이 비싼 때문이라 했다. 고기는 양과 돼지, 소, 꿩 등을 먹었다는 기록이 보이며, 숭불정책으로 살생과 도살을 싫어해 서민들은 잘 먹지 못했다. 1123년 6월 개성에서 한 달을 보낸 서긍은 “고려인들은 양과 돼지를 기르지만 왕과 귀인이 아니면 먹지 못했고, 대신 해산물이 풍부해 서민들이 많이 먹는다”고 했다. 특히 해산물은 귀천에 관계없이 주로 복?조개?미꾸라지?왕새우?문합?게?굴?해초?거북이 다리?다시마 등을 먹었다. 당시에도 김치를 먹었을까. 그렇다. 김치가 최초로 문헌에 등장한다. 오늘날 배추김치와는 다른 순무를 재료로 한 김치이다. 이규보는 채마밭에 여섯 종류의 채소를 심고 읊은 ‘가포육영’에서 “무장아찌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 되네”라고 해 당시 무장아찌와 동치미를 먹었음을 알게 해 준다. 이색은 우엉과 파와 무를 섞어 담근 침채장을 선물로 받았다고 했다. 과일은 어떤 것들을 먹었을까. 이색은 자신이 좋아하고 즐겨 먹었던 산딸기?수박?참외?앵두?배?복숭아?홍시?살구 등을 시로 읊었으며, 서긍도 ‘도려도경’에서 참외?사과?복숭아?배?대추?앵두?개암?잣?연근?능금?인삼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다양한 과일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술은 잦은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많이 마셨다. 서긍은 “고려인들이 술과 단술을 귀하게 여기며, 맵쌀에 누룩을 섞어서 술을 빚는데 빛깔이 걸고 맛이 독해 쉽게 취하고 깬다. 서민들의 술은 맛이 싱겁고 빛깔은 찐한데 아무렇지도 않게 다들 맛있게 마신다”고 했다. 개성에서는 술을 주막에서 팔았다. 이규보는 높은 관직에 있을 땐 청주를 마셨지만 관직이 없을 땐 막걸리를 마셨고, 주막의 푸른 깃발만 봐도 목이 축여지는 것 같다고 시로 읊었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자세히 보아야 이쁜 귀엣-고리/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자세히 보아야 이쁜 귀엣-고리/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귀엣고리’는 옛말로 ‘귀에 있는 고리’라는 뜻이다. ‘귓불에 다는 고리’와 ‘귓불에 다는 장식품’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표준어는 귀걸이, 귀고리다. 국립공주박물관이 ‘백제 귀엣-고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특별전시를 열고 있다. 2023년 2월 2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무령왕과 왕비 귀걸이를 비롯한 백제 귀걸이를 한자리에 모은 최초의 전시다. 백제 귀걸이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만든 사람과 소유자의 마음을 모두 조명하는 자리로 백제 귀걸이 외에도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를 모두 아우른다. 귀걸이를 제대로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다. 최초의 단순한 둥근 귀걸이에서부터 극강의 기술과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귀걸이까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는 백제 귀걸이의 구조와 특징, 제작 과정도 보여 준다. 무령왕 귀걸이를 재현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귀걸이에 붙은 작은 금알갱이 등 부속품 하나하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영상 속의 재현품은 그 옆에 전시돼 있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삼국시대 귀걸이 6쌍을 함께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백제 무령왕과 무령왕비 귀걸이와 함께 신라 경주 보문동 합장분 출토 귀걸이, 가야 합천 옥전 무덤 출토 귀걸이를 감상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각 국가 간의 갈등 속에서도 교류를 이어 나갔던 그들의 미의식과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담당 학예직들이 고민하고 연구했던 흔적들을 확인했다. 귀걸이를 이렇게 아름답게 전시한 적이 있었던가. 처음으로 단독 진열장에 공중에 떠 있는 모습으로 전시된 커다란 황금 귀걸이. 2m가 넘는 진열장은 귀걸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아래 30㎝가 넘는 무게중심을 두었고 전열장 앞에 서면 성인은 귀걸이를 한 모습이 연출된다. 이 전시를 본 나태주 시인은 ‘백제 귀고리’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써 주셨다. ‘찬란하여라/ 눈부셔라 /가슴 벅차기도 하네 /이쁜 그대 /귓불에 걸린 /달랑달랑 /조그만 하늘 /조그만 우주’ 써 주신 글을 보니 전시에 감동받으신 것이 분명하다.
  • 낫을 든 의승군에 왜군 야반도주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낫을 든 의승군에 왜군 야반도주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의 의승장(義僧將)이라면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대사 유정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휴정이 조선 승군을 통솔하기 이전에 공주 의승장 영규의 봉기가 있었다. 영규대사의 활약은 전국의 의승이 잇따라 기치를 올리는 기폭제가 됐다. 낫으로 무장한 영규의 승군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근접전에서 당대 최강이었던 왜군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과시했다. 왜군이 청주성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영규의 승군과 부딪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허당(騎虛堂) 영규(靈圭·?~1592)의 흔적이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고장은 당연히 고향인 충청남도 공주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는 계룡산 자락과 함께 남쪽으로 달리는데 갑사 초입에 계룡면 소재지가 있다. 영규대사를 기리는 한칸짜리 작은 여각(閭閣)은 계룡면행정복지센터 마당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행정복지센터 앞길의 이름도 ‘영규대사로(路)’다. 이 길을 따라 논산 방향으로 조금 더 달리면 영규대사 묘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그런데 ‘스님의 무덤’이라니 좀 생소하다. 고승이 입적하면 화장해 부도에 모시는 것이 불교의 전통이다. 무덤 아래 그의 진영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영정각도 보인다. 조선왕조는 금산성싸움에서 전사한 영규대사를 불교식이 아닌 유교식으로 예우한 것이다.  속성(俗姓)이 밀양 박씨로 알려진 영규는 계룡산 널티(板峙)에서 태어났다. 갑사로 출가하고, 휴정 문하에서 공부를 마치고는 처음 머리를 깎은 갑사 청련암으로 돌아가 무예를 익혔다고 한다. ‘회양 표훈사 청허당 휴정대사비’에는 대사의 제자로 영규라는 이름이 있지만, 두 사람이 꼭 사제관계였는지는 그다지 분명치 않다는 느낌도 든다.  갑사에 전하는 ‘임진의병승장복국우세 기허당대선사일합영규사실기’(事實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영규는 성품이 침착하고 강직했으며, 말수가 적고 용력이 뛰어나며 공부의 진척 속도가 빨랐다. 경전과 그 밖의 책을 20년 남짓 공부하고 나자 휴정은 영규에게 이제 고향인 호서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갑사로 돌아온 영규는 스스로 불목하니가 되어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절에서 가장 위계가 낮은 불목하니는 영규의 이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선지 각종 전승에는 영규가 장작을 다루며 무기로 만들어 무예를 익히는 모습을 부각시킨다. 금산 보석사에 1840년(헌종 6)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 건립을 주도한 당시 영의정 조인영도 비석 뒷편 ‘영규대사순의비명병서’에 ‘영규는 본래 신통한 힘이 있어 선승들이 쓰는 지팡이로 무예를 연마했다’고 적었다.  ‘사실기’에는 갑사 대중이 “왜 불목하니 역할을 하느냐”고 묻자 영규는 “다른 사람이 반나절 걸리는 일을 나는 단번에 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번거롭더라도 잠깐동안 열 군데 불을 때면 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쓰겠는가”고 했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곧바로 ‘휴정의 제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명단에는 영규(靈圭)라는 이름을 가진 승려가 둘이다. 당대 의승군으로 활약한 동명이인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우리가 영규에 주목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의 법맥(法脈) 때문이 아니다. 조선 후기 문인 연경재 성해응(1760~1839)은 ‘금산순절제신전’(錦山殉節諸臣傳)에 영규의 봉기 과정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서술했다. 영규는 천체의 움직임에서 국난의 조짐을 읽었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불가의 계율에도 국가의 은혜를 갚고자 나무로 무기를 만들고 낫 수천개를 주조했으며 오백 남짓한 용맹한 승려를 모아 때를 기다렸다. 10년이 지나지 않아 왜적이 침입했는데 승려들이 흩어지려하자 의(義)를 일으켜야한다고 호소하면서 3일 낮밤을 통곡하니 감동한 승려 1000명 남짓이 죽기를 각오하고 갑사에서 봉기했다는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임진년 8월 1일의 청주성 전투다. 선조수정실록은 ‘영규는 사람됨이 장건하고 키가 보통 사람의 갑절이나 되었으며 지략과 계책이 있고 많은 무리를 잘 부렸다. 청주 전투도 실로 영규가 지휘하고 계획한 것이었다. 조헌이 금산전투를 굳이 고집하면서 자기의 말을 따르지 않자 틀림없이 패하리라는 것을 알고도 권율에게 서면으로 보고하고 군사를 합쳐 진군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의열(義烈)로 세상에 일컬어졌으니, 불교가 있은 이래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다’고 했다. 청주성 함락의 일등공신으로 영규를 꼽은 것이다. 영규와 승군의 청주성전투 과정은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의 문집인 ‘문소만록’(聞韶漫錄)에 비교적 자세히 담겨있다. 훗날 윤국형으로 이름을 바꾸는 윤선각은 의병활동을 방해한다며 조헌이 불만스러워했던 인물이다. ‘문소만록’의 영규 관련 서술도 고위인사의 냉정한 시각으로 한껏 내려다보는 분위기지만 평가만큼은 정밀하다는 인상이다.  윤선각이 만난 영규의 인상은 이랬다. ‘매우 건장하기는 하나 별다른 지혜나 꾀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녹록한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 한 방면을 방어하게 할 만은 했다. 내가 “만일 그대에게 승군 약간 명을 준다면 그대는 이들을 거느리고 가서 적을 치겠소?”했더니, 그는 기꺼이 승낙했다. 이에 내포의 승군 수천 명을 뽑아서 그에게 거느리게 하고, 승병패두(僧兵牌頭)라 불렀다. 윤선각은 ‘영규는 글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의 성명 정도만 조금 분별했다’고도 적었다.  윤선각은 ‘영규는 청주성전투로 안팎에서 명성이 났다’고 했다. ‘청주 전투 이후 승병이 곳곳에서 계속 일어났으니, 실로 영규가 불러 일으킨 것’이라는 것이다. 조정에 올린 장계에는 ‘영규가 저희 무리를 많이 모았는데, 모두 낫을 가졌고 기율이 매우 엄해 적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투 과정의 일화도 흥미롭다. ‘영규는 청주에서 적을 칠 적에 관군 수령들이 혹 물러서면 짚고 있던 큰 몽둥이로 등을 치면서 “평일에는 고기를 먹으며 잘 지내더니, 이제 와서는 도망갈 생각밖에 없느냐?”하니 감히 뒤처지는 수령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은 “충청도는 적의 요새가 되는 곳이다. 그런데 적이 청주를 차지한 지 벌써 넉달이 넘었다. 중 영규가 의(義)를 분발해 성 밑으로 진격했는데 제일 먼저 돌입해 마침내 청주성을 공략했다. 그가 호령하는 것을 보면 바람이 이는 듯하여 그 수하에 감히 어기는 자가 없었고 질타하는 소리에 1000명의 중들이 돌진하자 다른 군사들도 이들을 믿고 두려움이 없었다’는 비변사의 보고 내용을 옮기고 있다. 영규의 의승군은 청주성전투에 앞서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이 순국한 제1차 금산성전투에도 참여한 듯 하다. 고경명의 종사관 유팽로가 남긴 ‘월파집’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해가 질 무렵 성문을 두들리며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그가 급하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전일 말씀하신 영규상인(靈圭上人)이 승도 수백명을 거느리고 왔습니다.” 공(고경명)은 즉시 나가서 맞아들여 인사를 나눈 다음 장수들에게 말했다. “영규가 왔으니 이는 반드시 하늘의 도움이다”’ 호남의 대표적 유학자 고경명 진영의 불제자 영규에 대한 예우가 깎듯하기만 하다.  제2차 금산성전투의 경과는 ‘문소만록’을 참고한다. 조헌에 대한 윤선각의 시선이 차갑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영규는 “전라도 순찰사가 군사 수만 명으로 진격하려 하면서 나에게 선봉이 되어 주기를 청했으나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경솔히 나갈 수는 없다.”며 조헌에게 순찰사와 날짜를 약속하도록 권했다. 그런데 답장이 오기도 전에 조헌은 적을 속히 쳐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금산으로 들어가니 영규도 마지못해 따랐다. 부하들이 “반드시 패할 것이니 가지 마소서”했으나, 영규는 “가부를 의논할 때는 말을 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먼저 갔는데 따르지 않는다면 누가 구원하겠느냐?”고 했다. 당시 금산성의 왜군은 1만명을 헤아린 반면 조선군은 조헌 의병이 700명 남짓, 영규 의승군도 600~1000명 수준에 그쳤다.  ‘문소만록’의 영규 관련 서술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청주의 적을 몰아냈다는 보고가 의주에 이르자, 조정은 이를 가상히 여겨 영규에게 당상관을 제수하고 옷감까지 보냈다. 하지만 영규는 이미 금산에서 죽어 받지 못했다’    
  • 이대호 “사직 오면 눈물 날 것 같아… 은퇴 다음날은 푹 잘 것”

    이대호 “사직 오면 눈물 날 것 같아… 은퇴 다음날은 푹 잘 것”

    “진짜 사직구장 못 올 거 같습니다. 오면 눈물이 날 것아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40)는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은퇴 경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팬들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면서, 은퇴를 맞는 자신의 심정을 담담하게 밝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랑하던 롯데를 우승시키지 못하고 은퇴해서 마음이 무겁다”면서 “후배들이 노력해서 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대호의 기자회견 전문 →은퇴를 앞둔 심정은 어떤가. -떨리고, 기대되고, 아쉬운 점도 있다. 저를 보기 위해서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사랑받으면서 떠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아침에 출근할 때 가족과는 어떤 이야기를 했나. -딸이 아파서 아침에 병원을 다녀왔다. 아빠 은퇴하니까 딸도 긴장이 풀렸나 보다. 감기에 걸려서 병원 다녀왔는데. 딸이 아픈 바람에 슬플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딸이 아빠 울지 말라고 대신 아픈 것 같다. →마지막이라는 실감이 언제 들었나. -올스타전 끝나고부터 실감하고 있었다. 팬들이 주시는 사랑을 느끼며 은퇴할 때가 됐구나 싶었다. (은퇴식 날짜인) 10월 8일이 안 올 줄 알았는데 빨리 와서 아쉽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좋은 결과로 웃으면서 떠나겠다. →야구장 출근길은 어땠나. -‘진짜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새벽같이 오셔서 줄 서서 사인받으려 노력하는 팬들의 모습에 감사드린다. 비록 다 해드리진 못했지만 제 마음은 경기만 없으면 다 해드리고 싶었다. →오늘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홀가분하게 열심히 준비했던 게 생각보다 결과가 잘 나왔다. 한국에 우승하고 싶어서 돌아왔다고 했는데, 후배들한테 짐을 맡기고 떠나는 게 미안하다. 저는 떠나지만, 제가 가진 야구 기술이라든지 노하우는 후배들에게 언제든 이야기해 줄 것이다. →은퇴 다음 날인 내일 계획은. -은퇴 투어 준비하면서 잠을 많이 못 잤다. 사인도 해야 하고, 은퇴사 준비하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 딸이 감기 때문에 밤에 기침도 많이 했다. 내일은 일요일이고, 다음 날도 공휴일이니 집에서 푹 쉴 생각이다. →은퇴식 특별 유니폼은 어떤가? -마음에 든다. 제가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생각보다 예쁘게 나왔다. 팬들께서 벌써 준비하셔서 사인받으려고 들고 오신 걸 보니 감사할 뿐이다. →오늘 경기를 앞둔 마지막 연습은 어땠나. -후배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다. 유니폼 입는 게 마지막이라 느끼면서 할 말은 다 한 거 같다. 후배들이 성장해서 성적을 내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야구 인생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경기는 많다. 올림픽이라든지 아시안게임이라든지. 특히 국가대표가 기억에 남는다. 돌이켜보면 제일 처음 국가대표를 했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이 생각난다. 성적이 안 났을 때 비난받았고, 그게 기억에 남는다. 우승하고 금메달 땄을 때는 국민들이 좋아해 주시지만, 선수로 기억에 남는 건 열심히 하고 결과가 안 좋을 때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팬들에게 알아달라는 말을 못 하는 게 마음이 아프더라. 국가대표가 영광이지만, 성적 스트레스도 받는다. 선수들도 사람인데 열심히 안 하고 싶겠는가. 선수들도 이기고 싶다. 준비도 많이 했는데 성적 안 났을 때 위로해주시면 더 좋은 선수가 될 거다. 잘했을 때보다 못했을 때 위로해주시면 한국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따로 기부 계획을 밝힌 걸로 안다. -구단이 저를 위해 (1억원을) 기부한다고 한다. 2년 전 롯데와 계약할 때 우승하면 옵션으로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걸었다. 팬들과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하다. 은퇴 투어 하면서 제가 기부한 돈으로 수술해서 건강을 찾았다는 말에는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했다. 비록 우승은 선물 못 했지만, 아내와 상의 끝에 저도 1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도움 필요한 분 찾아서 좋은 데 쓰겠다. →롯데에서 우승은 못 했어도 일본에서는 했다. -소프트뱅크 우승했을 때 인터뷰한 게 기억난다. 거기서 우승했을 때 기분 좋았고 일본 선수와 헹가래하고 샴페인 뿌리며 좋았다. 그때 ‘제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롯데가 우승했으면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부산 팬이 좋아할 거 같다’고 말했다. 결국 약속 못 지키고 가는 게 미안하다. 후배들도 노력하고, (롯데) 그룹에서도 힘을 써서 우리 롯데 팬이 염원하는 우승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은퇴 시즌 좋은 성적에 자부심을 느끼는가. -올해 은퇴를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더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더 노력하려고 했다. 마지막에 좋은 모습으로 나가는 게 믿음에 보답하는 거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운이 좋았다. 덕분에 이렇게 사랑 많이 받고 떠난다. →사직구장은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나. -진짜 사직구장 못 올 거 같다. 오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여기 20년을 왔다 갔다 했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안다. 저도 모르게 유니폼을 입어야 할 거 같다는 마음이 들 거 같다. 방망이 들어야 할 거 같고. 가진 에너지를 다 써서 많이 힘든데 남은 한 경기, 9이닝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 →최동원 선배에 이어 영구결번이 됐다. -최동원 선배 때문에 야구를 했다. 최동원 선배의 정신력을 우리 후배들이 좀 더 안다면 이른 시일 내에 우승한다고 생각한다.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우승도 못 했을 것이다. 후배들에게 항상 말하는 게 희생이다. 아프다고, 쉬고 싶다고 쉬면 팀에 마이너스다. 어릴 때부터 무조건 뛰어야 한다는 게 제 마음속의 기본이었다. 부상도 사치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후계자를 지목한다면. -한동희 선수가 지금 우리 팀에서는 가장 잘할 거 같다. 1군에 김민수 선수나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가 있다. 그 선수들이 갑자기 좋아질 수도 있다. 잠재력 충분한 선수이니 기대 많이 하고 응원하겠다.→한미일 3개국을 다 경험했다. -일본도 도전이었지만, 미국은 정말 다 내려놓고 갔다. (2017년) 한국 돌아올 때도 힘이 있을 때 와서 롯데 팬에게 우승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걸 못 이뤄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죄짓고 떠나는 기분이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지도자를 할 계획은 있나. -기회가 된다면 롯데에서 동고동락했던 선수, 코치들하고 같이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후배들이 많이 울었다. -(강)민호는 삼성에 있으면 안 되는 선수다. 정말 강민호와 손아섭 선수는 롯데에 뼈를 묻어야 하는 선수인데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민호와 아섭이는 힘들 때를 같이 겪었던 후배다. (성적이 나빴던) ‘비밀번호’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다. 그 선수들이 롯데에 없다는 거 자체가 롯데는 보석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선배로서 안타깝다. 저 다음 (롯데의 상징이) 강민호라 생각했는데 안타깝다. 아섭이도 정말 열심히 했다. 다른 팀 갔지만,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만 앞으로는 잘하는 롯데 선수가 다른 팀으로 안 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투수로 입단했는데 은퇴 경기에 투수로 나올 수 있나. -20년째 준비는 했는데 될지는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등판) 준비하다 대타로 나가서 홈런 친 기억이 있다. →스스로 야구 인생에 점수를 매긴다면. -50점이다. 개인 성적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정말 사랑받고 떠나서 행복하다. 그러나 제가 어릴 때부터 사랑한 롯데를 우승 못 시키고 떠난다는 생각에 50점이라 생각한다.
  • “여의도 명당 선점 전쟁”…3년 만의 불꽃축제 100만명 몰린다

    “여의도 명당 선점 전쟁”…3년 만의 불꽃축제 100만명 몰린다

    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열리는 ‘2022 서울세계불꽃축제’에 100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세계불꽃축제는 8일 오후 7시~8시30분까지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진행된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여의도 한강공원에는 세계불꽃축제를 보려는 시민들이 일찍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오후 2시 기준 여의도 한강공원 잔디밭은 이미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텐트와 돗자리로 가득 찼다. 노점상도 3년 만에 열린 축제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올해 불꽃축제의 주제는 ‘위 호프 어게인(We Hope Again)’이다.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을 위로하고 다시금 꿈과 희망의 불꽃을 쏘아 올린다는 의미다. 오후 7시20분 일본팀(Tamaya Kitahara Fireworks)이 먼저 첫 포문을 연다. 일본팀은 ‘희망으로 가득한 하늘(A Sky Full of Hope)’이라는 작품명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의 극복’, ‘희망으로 가득한 세상’을 표현할 예정이다. 이어 오후 7시40분 이탈리아팀(Parente Fireworks Group)이 ‘신세계(A New World)’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강렬한 음악과 어우러진 대규모 불꽃 연출이 특징인 이탈리아팀은 다시 맞이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와 ‘지구를 위한 찬가’를 펼친다. 행사의 백미는 오후 8시부터 30분간 진행되는 한국팀(㈜한화)의 불꽃쇼다. 한화 관계자는 “3년 만에 진행되는 행사인 만큼 더 깊은 감동과 더 오랜 기쁨을 드리기 위해 지난 축제보다 더 많은 화약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한화는 ‘We Hope Again–별 헤는 밤’을 테마로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담긴 불꽃쇼를 선보인다. 불꽃이 연출되는 구간이 기존 원효대교~한강철교에서 마포대교까지 확장돼 진행되는 것도 올해 달라진 점이다. 관람 가능 구간이 그만큼 넓어져 더 많은 관람객이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번 불꽃 작품을 디자인하고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참여한 한화의 윤두연 불꽃 디자이너는 “모든 불꽃이 스토리와 음악을 함께 머금고 있다”며 “꼭 음악과 함께 불꽃을 관람하시기를 추천한다”고 전했다.한편 이날 축제 전후인 오후 2시~11시까지 마포대교 남단에서 63빌딩 앞까지 여의동로가 전면 통제된다. 필요시 여의상류IC와 국제금융로 등도 통제될 예정이다. 도로 통제로 여의동로를 경유하는 19개 버스 노선은 모두 우회 운행한다. 축제 중 여의도중학교·여의나루 양방향 등 4곳의 버스 정류소 이용은 불가하고, 우회 경로상 주변 정류소에서 승·하차할 수 있다. 서울시는 대중교통 이용객이 몰릴 것에 대비해 지하철 5·9호선 운행횟수를 평소보다 70회 늘린다. 5호선은 오후 8시30분~10시 사이 63회로 18회 증회하고, 9호선은 오후 5시~11시 사이 192회로 52회 더 운행한다. 오후 8시부터 10시 사이 여의도환승센터·여의도역·여의나루역을 경유하는 26개 버스노선도 행사 종료시간에 맞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기존 272회에서 345회로 집중 배차한다. 여의도역·여의나루역 등 행사장 주변 16개 역사에는 평소보다 5배 많은 259명의 안전요원을 배치한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여의나루역의 경우 혼잡도에 따라 무정차 통과하거나 출입구를 임시 폐쇄 조치할 예정이다. 여의나루역 무정차 통과는 행사 시작 전 오후 6시~7시, 출입구 폐쇄는 오후 8시~11시 중 역사 내 혼잡도를 고려해 조치한다. 무정차 통과가 결정되면 사전에 모든 역사와 열차 내 안내방송과 현장요원을 통해 안내할 예정이다. 이 경우 여의나루역 대신 여의도역, 마포역, 샛강역 등을 이용하면 된다. 오후 8시 이후 여의나루역 출입구 4곳은 모두 폐쇄된다. 열차에서 하차해 출구로 나가는 경우에만 통행이 허용된다. 출구별로 안전요원과 경찰병력이 배치되고, 여의도역 등 인근 역으로 대체 이용을 안내할 예정이다. 행사 당일 여의도 일대에서 공공자전거와 개인형이동장치 반납·대여는 불가능하다. 공공자전거나 개인형이동장치(킥고잉, 씽씽)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운영 앱에서 이용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남궁민 결혼식서 눈물 흘리는 설현 포착

    남궁민 결혼식서 눈물 흘리는 설현 포착

    걸그룹 AOA 멤버 겸 배우 설현이 남궁민 결혼식에서 눈물을 흘렸다. 설현은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남궁민 진아름 결혼식 현장 인증샷을 공개했다. 사진에서 설현은 결혼식을 지켜보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다. 설현은 “감동”이라며 “아름다웠던 결혼식 축하드려요”라고 전했다. 남궁민 진아름은 7일 오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번 결혼식에는 가까운 친인척과 지인, 동료 연예인들이 하객으로 참석했다.한편 남궁민과 진아름은 지난 2015년 영화 ‘라이트 마이 파이’(감독 남궁민)에서 감독과 배우로 인연을 맺으며 연인으로 발전했다. 2016년 공개 열애를 시작했다.
  • 제시 “눈물 날 것 같아”…송은이 응원에 울컥한 사연

    제시 “눈물 날 것 같아”…송은이 응원에 울컥한 사연

    ‘히든싱어7’ 원조 가수로 함께한 제시가 히든 판정단의 응원에 감동했다. 지난 7일 오후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히든싱어7’에서는 제시가 원조 가수로 출격, 다수의 모창능력자들과 대결했다. 데뷔 18주년을 맞은 대체 불가 ‘센 언니’ 제시가 출연해 100표 우승을 예고하며 자신감을 폭발했다. 이어 제시는 “이렇게 사람들이 제 음악과 목소리를 알아주는 게 영광이다”라며 ‘히든싱어 7’에 출연한 소감을 밝혔다. 히든 판정단 송은이가 판정단에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이어 송은이는 “제시가 예능에서 활약하면서 재밌고, 유쾌한 캐릭터로만 알려졌지만, 사실 굉장히 내공 있는 가수다”라고 제시의 탄탄한 실력을 언급했다. 송은이는 “제시는 당당함을 노래를 통해 가사로 표현, 센 언니 캐릭터로 많은 사람들을 시원하게 한 그 음악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다, 유쾌하고 엉뚱한 캐릭터로만 이곳에 있는 게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더불어 송은이는 “이후 제시의 히트곡이 나왔고, 글로벌 스타가 됐고, 본인이 증명해냈다, 제시가 ‘히든싱어 7’ 출연이 영광이고, 부끄럽다고 했지만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만 실수하지 않는다면 100표도 가능하다”라고 응원했다. 제시는 송은이의 응원에 “감동이다, 눈물 나올 것 같다”라며 울컥한 모습을 보이기도. 송은이뿐만 아니라 히든판정단으로 함께한 선우용여가 제시를 본명 제시카로 부르는 등 애정을 드러냈다. 선우용여는 제시의 거침없고 강렬한 표현이 고스란히 드러난 1라운드 미션곡 ‘어떤X’(What Type of X)를 극찬하며 “제시는 너무 솔직하고 예쁘고 당당하다, 가슴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기 때문에 랩이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제시는 선우용여의 진심과 든든한 응원에 “나 울다가 노래 못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감격했다. 선우용여는 높은 정답률을 자랑했고, 제시는 그런 선우용여를 보고 엄마를 떠올리는 등 제시와 선우용여가 훈훈한 케미를 발산해 재미를 더했다. 이날 제시는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히든싱어 7’ 자신감을 증명했다. 한편, JTBC ‘히든싱어7’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와 그 가수의 목소리부터 창법까지 완벽하게 소화 가능한 ‘모창능력자’의 노래 대결이 펼쳐지는 신개념 음악 프로그램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 8시 50분에 방송된다.
  • “드디어 한국에 갑니다” 2022 K-POP 커버댄스 페스티벌 인 태국 성료

    “드디어 한국에 갑니다” 2022 K-POP 커버댄스 페스티벌 인 태국 성료

    지난 1일 오후 2시(현지시간) 태국 방콕 북부에 위치한 퓨처파크 랑싯 쇼핑몰에서 ‘케이팝(K-POP) 커버댄스 페스티벌인 태국’ 행사가 열렸다. 문승현 주태국 대한민국 대사는 축사에서 “최근에는 한국과 태국이 함께 교류하는 아이돌들도 태국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같은 한태 교류는 양국의 우정을 투텁게 하고 소프트파워 성장에 좋은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으로 3년 만에 개최된 이번 축제에 대한 관심은 참가자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큰 환호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쇼핑몰 각층마다 곳곳에서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보며 뜨거운 박수와 호응을 보냈다. 관객들의 열기는 시원한 실내를 뜨겁게 달구면서 지나가는 발걸음도 멈추고 함께 즐기는 모습도 가득했다. 조재일 주태국 한국문화원장은 “코로나 사태 이후 3년 만에 한국문화원, 서울신문, 한태교류센터가 힘을 모아 오프라인으로 개최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뛰어난 실력을 가진 태국의 2PM 닉쿤, 블랙핑크 리사, 갓세븐 뱀뱀, NCT 텐, (여자)아이들 민니 등이 K팝 가수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전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의미가 매우 크다” 전했다. 세븐틴의 고맙다를 커버한 13인조 ‘건스쿼드’(GunSquad)가 태국 우승을 거머쥐며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구성된 건스쿼드는 학생, 엔지니어,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큰 공통점은 역시나 바로 케이팝을 사랑하는 마음이다.팀 리더 보스는 “같이 춤을 춘지 3년 정도 됐다”며 “예전부터 케이팝 커버댄스를 좋아해서 태국 대표로 참가하고 싶은 마음에 팀을 결성했는데, 실제로 태국 우승팀이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멤버 전원이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정말 많이 구경하고 싶고 무엇보다 서울에서 열리는 전세계 결승에서 최종 우승을 하고 싶다”는 각오도 밝혔다. 마지막 소감을 전하고 우승팀은 관객석의 팬들에 둘러싸여 한참 동안 함께 사진을 찍어주며 태국 무대 우승을 즐겼다. 홍지희 한태교류센터 대표는 “코로나 이후 감격스러운 무대가 열린 것 같다. 팀들이 그 사이 더욱 발전한 것 같다”며 “상황이 어려운데도 다들 열심히 노력한 것 같아서 감동적”이라고 전했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2022 케이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은 세계 최초, 세계 최대의 케이팝 온·오프라인 한류 팬 소통 프로그램이다. 서울시,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서울관광재단, 뉴에라, 올케이팝, 펜타클이 후원했다. 각국의 우승팀은 오는 15일 서울 월드 파이널 최종 결선에 초청돼 다국적 케이팝 팬들과 함께 뜨거운 교류의 무대를 즐기게 된다.
  • 3년간 모은 용돈 기부한 초등학생 형제

    3년간 모은 용돈 기부한 초등학생 형제

    “기부하고 싶어서 저금했어요. 꼭 좋은 일에 써주세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형제가 3년간 모은 용돈을 기부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7일 전주시복지재단에 따르면 전북 전주시 인후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정연우(11)·정지우(9) 형제가 최근 재단을 찾아 100만원을 기부했다. 이들 형제는 심부름과 착한일, 독서 등을 하고 부모에게 받은 용돈을 지난 2019년 9월부터 3년간 모아 기부금을 마련했다. 평소 어려운 이웃을 돕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형제는 “기부를 목적으로 저금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부를 통해 형제는 전주시복지재단 ‘전주사람’에서 진행하는 ‘백만천사캠페인’의 2022년 30호 백만천사가 됐다. 형제의 아버지는 “기부를 위해 저금을 시작할 때 중도에 포기할 줄 알았는데 끝까지 해낸 연우, 지우가 자랑스럽다”며 “어려운 이웃을 위한 배려와 나눔을 아는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병관 전주시복지재단 ‘전주사람’ 이사장은 “열심히 모은 귀중한 용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해 준 정연우, 지우 학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전달된 기부금은 도움이 필요한 전주시민을 위해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마당] 드디어 터진, 국민 합창의 시대/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

    [문화마당] 드디어 터진, 국민 합창의 시대/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

    요즘은 회식 문화도 사라지고 저녁이 있는 삶이 중요해진 터라 숨겨진 생활예술 장르들이 하나둘씩 주목을 받는다. 그중에서 ‘춤’ 다음으로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장르가 ‘합창’이다. 가수처럼 혼자만 잘 부르는 독창이 아니고 음이탈 좀 나더라도 소리로 한마음이 돼 보는 아마추어 시민 합창 말이다. 프로가 아닌 만큼 음정이 흔들리고 실수도 곧잘 하지만, 반드시 협동해야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데다 참가자들의 각기 다른 삶의 스토리가 곁들여져 최근 합창 커뮤니티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그동안 합창은 민간은 물론이고 정식 공연으로도 주목받지 못했던 비인기 장르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립 합창단이 많지만 지나치게 경직되고 단조로운 연출로 관심을 끌기엔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북유럽과 발트 3국, 선진국을 중심으로 매우 친화적이고 기능적인 취미활동으로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왔다. 특히 겨울이 긴 북유럽에서는 실내에서 소그룹으로 즐길 수 있는 실내악 또는 합창 문화가 발달했는데, 한 맺힌 침략의 역사를 바탕으로 100~150년 된 합창 축제가 열리고 있는 발트 3국의 경우 합창단원만 3만명, 시민댄서 8500명, 관객 7만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등 세계 최대 규모의 합창 대국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중에서도 5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에스토니아의 합창 축제 ‘라울루피두’(노래하는 파티)는 러시아로부터의 독립 과정에서 폭력과 억압 대신 자유를 외치는 수단으로 큰 역할을 해 왔다. 이 때문에 발트에서의 합창은 단순한 예술활동이 아니라 역사운동의 한 축으로 인식될 정도다. 국내에서 합창 콘텐츠의 가능성을 눈치채고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도시는 춘천이다. 춘천은 나이, 성별 상관없이 온 세대가 자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7년 전 처음 합창 축제를 기획했는데, 지금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모여 노래하는 가족합창단부터 청소년들의 합창 멘토가 되겠다며 암 투병 중에도 몇 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시민, 두 살 때 합창하는 엄마 등에 업혀 있다가 올해는 최연소 단원으로 참가한 아이까지 가슴 뜨거워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동안 춘천은 호반의 도시에서 문화도시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문화사업을 활발히 이어 왔지만 대외적 인지도 측면에서 축제 형식으로는 사실상 춘천마임축제가 유일했다. 하지만 올해 온 세대 합창 페스티벌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10년 후 춘천을 기억시킬 대표 축제가 무엇이 될지 헷갈릴 정도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 이런 트렌드를 방송도 놓칠 리 없다. 최근 SBS에서 선보이고 있는 합창 경연 프로그램 ‘싱포골드’도 차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은퇴 후 합창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아가는 어른들의 이야기, 합창하다 결혼한 이야기, 당근마켓에서 쇼핑하다가 합창하게 된 엄마들 등 출연진의 다양한 스토리와 뜻밖의 노래 실력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기다 2023년 7월 개최 예정인 강릉의 세계합창대회에 강릉단오제로 단련된 시민참여 문화를 기반으로 최근 125개 팀이 참가 신청을 마쳤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그나저나 비인기 장르였던 합창이 뒤늦게 주목받는 이유가 뭘까. 뭐든지 혼자 하던 세상에서 모처럼 한마음이 돼 보는 감동적인 경험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건 아닐까. 이참에 나도 오디션에 도전해 봐야겠다. 좀 꽥꽥거려도 화려한 율동이면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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