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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처녀가 여아 유괴 살해

    ◎범행 5일만에 숙대 물탱크서 사체 발견/“돈으로 변심애인 환심사려 범행”/은행서 몸값 3천만원 찾다 잡혀/유치원에 “재은 어머니다”전화로 불러내/“너무 울어 목졸라”… 연행중 지하철 투신도 6살짜리 유치원 여자어린이가 가짜여대생에게 유괴돼 살해됐다. 서울 명문여대생으로 행세한 이 유괴범은 돈으로 변심한 애인의 환심을 사려고 범행을 저질렀고 어린이를 살해해 숨겨놓은 뒤에도 5일동안 매일 사체를 확인해가며 부모를 협박,결국 돈을 챙겨 달아나다 붙잡히자 자살을 기도하는 등 시종끔찍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30일 지난25일 유괴됐던 곽재은양의 유괴범 홍순영양(23ㆍ경기도 부천시 심곡1동 678의20)의 자백에 따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 음악대학7층 물탱크실에서 살해된지 5일이 지난 재은양의 시체를 찾아냈다. 숨진 재은양은 물탱크와 건물벽사이 30㎝가량의 틈새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고 주변에는 「곽재은」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노란색 유치원가방과 노란색우산 빨간색신발 등이 있었다. 곽명근씨(38ㆍ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ㆍ사업)의 맏딸인 재은양은 이웃 올림픽유치원에서 공부하다 유괴됐던 홍양은 범행 4일만인 29일 경찰에 붙잡혀 30일 범행일체를 자백했다. 지난 25일 상오11시35분쯤 재은양이 다니는 올림픽유치원 부원장 김순옥씨(39ㆍ여)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급한일이 있으니 재은이를 보내달라』고 속여 유치원 앞에서 재은양을 만난 홍양은 『엄마가 보내서 왔다』고 말해 안심시킨뒤 숙명여대앞 제과점까지 데리고 가 빵과 우유를 사주며 집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이때 재은양이 『엄마에게 데려다 달라』며 큰소리로 울며 보채자 홍양은 하오4시쯤 재은양을 숙명여대 음악대학 앞으로 끌고가 하오5시쯤 수건으로 입을 막고 목을 졸라 살해해 이 건물 물탱크실 옆에 숨겼다. 홍양은 다음날인 26일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28일 돈을 입금하면 재은이를 돌려보내 주겠다』면서 이상민이라는 이름으로 개설한 조흥은행 306­190­480 가계저축예금통장 구좌에 5천만원을 입금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어 29일 하오1시40분쯤 다시 전화해 『왜 돈을보내지 않느냐. 경찰에 신고하면 재은이를 죽이겠다』고 협박,어머니 김수정씨로부터 『이미 입금시켰다』는 말을 듣고 돈을 찾으러 갔다. 이날 하오2시44분쯤 국민은행 본점에서 BC카드로 30만원을 빼낸 홍양은 하오4시15분쯤 롯데호텔 2층에 있는 조흥은행 반도지점에서 역시 BC카드로 2백60만원을 인출했다. 홍양은 한꺼번에 많은 돈을 인출하는 것을 수상히 여긴 은행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지하철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붙잡혔다. 처음 당황해하던 홍양은 곧 『서울역 지하철에서 재은이를 데리고 있는 애인을 만나기로 했다』고 거짓 진술,경찰과 함께 서울역 구내를 서성이다 열차가 들어오자 선로로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머리가 5㎝정도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홍양은 경찰에게 『지난해 1월부터 김모씨(27ㆍS전자 인사부)와 애인으로 사귀어 왔으나 최근 김씨의 동료직원 박모양(23)이 끼어들어 둘사이가 멀어졌다』면서 『큰돈을 만들어 애인의 환심을 사려했다』고 털어놓았다. 홍양은 지난 5월31일 하오2시쯤에도 송파구 방이동 89세륜국민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안모양(7)을 같은 수법으로 납치해 자신의 집4층 옥상에 감금했다가 부모에게 들켜 되돌려보낸 일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경찰은 일단 홍양의 단독범행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또 홍양이 전화기에 수건을 대고 남자목소리를 흉내내 협박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그동안 전화목소리를 녹음해둔 테이프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목소리 감정을 의뢰했다.
  • 돈받고 청부폭력/7명 영장

    서울 성북경찰서는 30일 돈을 받고 청부폭력을 휘둘러 온 허범준씨(35ㆍ전과10범ㆍ성북구 정릉2동 416의44) 등 6명과 이들에게 폭력을 교사한 이병목씨(39ㆍ광고업ㆍ은평구 진관외동 175의 177)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허씨 등은 이씨가 건물신축을 위해 집을 비워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정송태씨(40ㆍ상업)를 「혼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1백만원을 받은뒤 지난15일부터 25일까지 7차례에 걸쳐 정씨를 성북구 정릉동 C호텔 17호실 등에 감금해놓고 주먹과 발로 집단폭행,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있다.
  • 여중생 3명 인신매매/5명 영장

    서울 성동경찰서는 29일 최원석씨(26ㆍ전주시 덕진구 중화3동 산7)와 유동자씨(41ㆍ중구 신당1동 33) 등 5명을 미성년자약취유인(인신매매)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달아난 박재만씨(32ㆍ술집종업원)를 수배했다. 최씨는 지난해 10월19일 하오1시쯤 전주시 중화동 전주병원 앞길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전주 P여중 3학년 한모양(15) 등 여중생 3명에게 『영화배우가 되게 해주겠다』고 속여 자신의 하숙방으로 유인,3일동안 감금ㆍ폭행한뒤 유씨에게 1백50만원을 받고 팔아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 남로당총책 박갑동씨의 「체험적 6ㆍ25론」

    ◎“공산주의로 잘 산다는건 꿈” 뒤늦게 자각/휴전 임박해서 박헌영과 함께 연금생활/후퇴길에 평양보고 “거지공화국” 실망 6ㆍ25 동란당시 38선 이남지역 남로당 지하총책이던 박갑동씨(72)가 27일 한국전쟁기념사업회(회장 이병형)주최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6ㆍ25 4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6ㆍ25체험담을 발표했다. 박씨의 체험담 요지는 다음과 같다. 50넌 6월 25일은 일요일이어서 나는 남로당 비밀아지트에서 쉬고 있었다. 아지트를 경비하는 사람이 외출후에 돌아와 전쟁이 터져서 피난민들이 미아리고개로 넘어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나는 순간 『김일성 이놈이 죽일놈』이라고 말하고 전신에 힘이 모두 빠져나갔다. 28일 새벽에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서울시내에 들어왔다. 나는 서대문 교도소에 갇혀있는 동지들을 구하기위해 나서며 비서에게 지하당원은 소공동 조선정판사빌딩에 모이도록 지시했다. 교도소에 갔다가 정판사빌딩에 가보니 비서 혼자 서있으면서 이승엽이 평양에서 전권을 가지고 서울시청에 와 당의 명령을 듣지않는 박갑동을 총살시키겠다고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이승엽을 만나러 서울시청에 가서 정태식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이가 매우 화를 내고 있어 주위사람들이 말리고 있으니 잠깐동안 몸을 피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이때부터 김일성과 이승엽에게 밉게 보여 지위가 점점 낮아져갔다. 나는 복간된 해방일보 논설위원으로 명맥을 유지해가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자 북으로 쫓기게 되었다. 유엔군이 북쪽에 가기도 전에 북쪽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인민위원회를 습격하고 약탈하고 있었다. 10월이 되자 북쪽은 상당히 추웠는데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이 얇은 여름옷을 입고 이불도 못덮고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이놈의 나라가 인민공화국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거지공화국이 아니면 간부공화국』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김일성이 5년동안 사회주의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회주의의 실상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평양에 도착해서 소위 인민시장에 가보았다. 국영상점 이외에 협동조합상점과 개인상점도 있었는데 생필품이 부족했다. 고무신점에 가보니 여자고무신이 두 종류 있었는데 하나는 흰색이고 하나는 회색인데 주인이 흰색은 남한제품이라며 품질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포목점에 가보니 옥양목은 짜지 못하는지 조악한 광목밖에 없었다. 국영정육점에 가보니 점원이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과 손으로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개인정육점에 가니 20세가량되는 처녀아이가 쇠고기1㎏을 정확히 한번에 잘라주는 것을 보고 국영상점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개인상점은 매일 매일 무거운 과세를 함으로써 국영상점을 우대했다. 국영상점 점원은 공무원이기때문에 손님에게 친절할 필요도 없고 많이 판다고 월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니 성의가 전혀없었다. 사회주의 경제는 상품생산과 유통시장이 존재하는 경제가 아니었다. 상품이란 소비자가 소중한 돈을 주고 사고싶은 물품을 사는 상행위가 기본이어야 하는데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욕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최저 최소의 생필품을 국가가 배급을 해주는것이 현실이었다. 휴전이 가까워지자 북한은 남로당계 인사를 출당하는 대대적인 숙청을 해 나는 박헌영과 함께 체포되어 56년 3월까지 감금생활을 했다. 56년 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비판을 한뒤 석방되어 북경을 경유,공산권에서 탈출했다. 57년에 북경에 갔다. 중국은 사회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대국주의ㆍ제국주의였다. 조선인민을 자기들이 도와서 미제국주의를 타도했다는 자부심으로 전국이 덮여있었다. 유엔군이 중국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으나 국경을 지키기 위해 출병했다는 것이다. 세계강대국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한다면 지구상에는 하루도 전쟁이 그칠날이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약소민족의 서러움과 비애를 느꼈다. 모택동의 소수민족정책이라는 것도 자세히 보면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을 통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소련은 명목적이나마 공화국을 수립해주고 연방으로 묶어 통치하지만 중국은 소수민족의 공화국은 금지하고 직접 통치하고 있었다. 50년대 후반의 중국 공산주의는 정말로 「독점」「독선」「배신」의 연속이었다. 나는 공산주의가고상한 도덕이며 인도주의라고 믿어왔는데 실제로 공산주의가 실천되는 현장을 보니 정치적으로는 중세기 암흑세계이고 경제적으로는 기술이 낙후하여 자본주의 생산성에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하에서 독립을 해서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키기위해 공산주의자가 되었는데 공산주의 국가 북한과 중국에 가서 앞날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자신이 부끄러워서 일본에 망명하여 성명을 바꾸고 일개 노동자로 일평생을 살아가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일본에 망명하여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속이고 고무공장 노동자를 몇해 하면서 숨어서 살아왔다. 당시 오키나와는 미군점령하에 있어 일본경찰이 본적을 조회할 수 없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나와있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선조가 남겨주신 유산으로 일본유학까지 해서 당시로서는 조선최고의 인텔리의 한사람이 그 능력을 옳게 발휘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뉘우치는 바이다.
  • 주부승객 납치 폭행/돈 요구하다 오빠 칼에 찔려 잡혀

    ◎자가용영업 운전사 서울 성북경찰서는 27일 양환우씨(31ㆍ전과14범ㆍ구로구 가리봉동 238의10)를 강간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양씨는 렌트카인 서울2 로9127호 르망승용차를 빌려 자가용 불법영업을 해오면서 지난11일 하오8시쯤 강남구 논현동 앞길에서 문모씨(44ㆍ행상)를 태워 집으로 가다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여 실신시킨 뒤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모호텔로 끌고가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씨는 또 문씨를 이틀동안 차에 감금시켜 5차례 폭행한뒤 연락처를 알아내고 13일 낮12시쯤 집에 데려다 줬으며 18일에는 문씨를 불러내 『폭행사실을 이웃에 알려 망신을 주겠다』고 협박,1천만원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딸(22)을 폭행하고 가족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양씨는 문씨가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자 25일하오 문씨집을 찾아가 흉기를 꺼내들고 3백만원을 요구하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오빠 문씨(51)가 휘두른 칼에 온몸을 찔려 전치5주의 상처를 입고 경찰에 붙잡혔다.
  • 무기수,교도관인질 난동/부산/37시간만에 자수

    ◎이감 불만,흉기로 찔러 1명 중상/교도소장 한때 감금,권총ㆍ실탄 탈취/검찰,사건은폐ㆍ허위보고 경위 조사 【부산=김세기기자】 부산교도소에 복역중인 전과7범의 무기수 정수근씨(49)가 안동교도소 이감에 불만,부산교도소 양우석소장과 용도과장 김성운씨(48) 등을 차례로 인질로 잡고 경비교도대 병력 1백여명과 대치하다 37시간만인 26일 하오8시40분쯤 자수했다. 정씨는 이날 하오7시30분 인질로 잡고있던 용도과장 김씨를 풀어준뒤 1시간10분 뒤인 하오8시40분 양소장으로부터 탈취해 갖고 있던 권총을 대치중인 교도대원에 반납하고 기계실에서 나와 자수했다. 정씨는 지난25일 상오8시쯤 작업장에서 교도관들로부터 자신이 규율이 엄한 안동교도소로 이감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작업장을 순시중이던 김진길교위(48)를 길이10㎝ 가량의 대형 못으로 옆구리를 찔러 전치2주의 중상을 입힌뒤 김교위의 권총을 빼앗고 작업장내 기계실로 끌고 들어갔다. 정씨는 이어 양우석교도소장이 이날 상오9시40분쯤 부상한 교도관 김씨를 풀어줄 것을 설득하러 들어가자 김씨를 풀어주는 대신 양소장을 다시 인질로 잡고 안동교도소가 아닌 순천교도소로 이감시켜 줄 것과 양소장이 동행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정씨는 양소장이 이같은 사실을 상부에 보고해 허락을 받겠다고 말하자 양소장을 13시간만인 이날 하오10시쯤 풀어주고 용도과장인 김씨를 대신 인질로 삼고 기계실 문을 걸어 잠근 채 흉기로 위협하며 교도관들과 대치극을 계속했었다. 정씨는 지난86년 부산에서 강도짓을 저질러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위반죄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중이었다. 한편 검찰은 부산교도소측이 처음부터 이 사실을 숨기고 정씨를 안동교도소로 이감시켰다고 허위로 보고한 경위 등을 조사중이다.
  • 조직폭력배 6명 또 검거/「보성파」6명 수배 해결사로 2억대 뜯어

    서울시경은 19일 유흥업소업주를 협박하고 빌려준 돈을 대신 받아내는 해결사 노릇으로 2억2천만원을 갈취한 정경호씨(28ㆍ전과3범ㆍ전남 보성군 보성읍 857) 등 「보성파」조직폭력 6명을 범죄단체조직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행동대원 최영일씨(23) 등 6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정씨 등은 지난해 10월 용산구 이태원동 J카페에서 전남 보성군 출신 폭력배들로 「보성파」를 조직한뒤 이태원일대의 카페 성인클럽 등 유흥업소 3백여곳으로부터 영업보호비 명목으로 업소마다 5만∼10만원씩 모두 2억여원어치의 금품을 뜯어온 혐의를 받고있다. 이들은 또 지난 4월5일 한모씨(37)로부터 6천만원을 받아달라는 채권해결청부를 받고 채무자 이모씨(34) 등 2명을 강남구 신사동 S호텔로 납치해 24시간동안 감금하고 『돈을 갚지 않으면 가족들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하는 등 10여차례에 걸쳐 해결사 노릇을 하고 사례금 조로 2천만원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밖에도 남대문시장에서 가짜꿀을 구입,유흥업소주인등에게 진짜꿀이라고 속여 비싼값에 강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말라빠진 감정이 문제로다”/윤남중 새순교회 담임목사(서울시론)

    ◎보리고개ㆍ꿀꿀이죽이 어제 같은데… 「요즘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포악해졌을까?」하고 소위 기성세대들이 모이면 걱정한다. 10대들의 성폭행도 그 도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각종 범죄형태는 더욱 잔혹해지고 있다. 데모를 했다 하면 투석과 화염병 투척 등 파괴와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 아무리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충족되지 않는다 해서 스승을 감금ㆍ삭발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기학교 총장을 내쫓을 수가 있을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아니면 학교교육이 잘못되었거나 사회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로하신 분들은 『배가 불러서 그래,사흘을 굶겨 놓으면 자기를 알고 세상을 알게 되어 감히 그런 짓은 엄두도 못낼거야!』라고 탄식한다. 구세대적인 관념일지 모르나 옛날 배곯던 시대엔 감히 오늘날과 같은 행동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우리 민족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홍수가 나고 재난이 났다하면 돈과 쌀과 의류를 언론기관에 기꺼이 보내는 인정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도 너도 나도 줄을 이어 주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인정이 있는 백성들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파괴적인 인성이 정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의 눈을 절대빈곤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지구촌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할 때이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Food For the Hungry International지부)에서 발행한 자료에 의하면 지금 지구촌에서는 1분간에 24명(그중에 18명이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1시간에 1천4백명,하루에 3만5천명,1년에 1천3백만명,그러니까 서울인구 정도가 먹지못해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1983년에서 1985년 3년사이에 후진국에서 전체인구의 21%인 5억1천2백만명이 굶주림으로 고통받았다. 현재로는 7억 이상이 굶주리고 있다. 매년 1천8백명에서 2천만명이 배고파 죽어가고 있는데 그중 1천4백만명이 어린아이들이다. 이것은 매일 4만명의 어린이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3일동안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피해보다 더 많은 셈이다. 이와 같이 빈곤의 가장 잔인한 대가는 어린이들의 생명이 희생되는 것이다. 소득이 점점 줄어가지만 가족들의 규모는 커져만 가고 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볼때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절대빈곤에 있는 사람의 3분의2가량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루 4만명 굶어죽어 질병과 충분한 영양 및 깨끗한 음료수의 부족으로 만신창이가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 가운데 3분의1은 다섯살이 되기도 전에 죽어간다. 살아남은 아이들 가운데 많은 수는 생후 6개월부터 2년 사이의 중요한 시기에 만성적으로 굶주린 결과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고 있다. 1989년도 UNICEF(유엔국제아동구호기금) 보고서에 의하면 한 개발도상국가에서 발전이 주춤해지거나 정체된 결과 지난 12개월 동안 적어도 50만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었다. 이러한 기근지역의 반 이상은 아시아에 분포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숫적인 면에서는 적지만 굶주린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특히 가뭄과 전쟁피해지역은 더 그렇다. 더욱이 이 지역들은 비상식량이나 다른 생필품들이 거의 닿지 못하는 지역들이다. 그래서이 문제로 많은 시골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여 판자촌과 빈민가에 정착한다. 후진국에서는 전체 3분의2가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빈민국의 특징은 빈곤과 비위생과 높은 실업상태인데 가난은 장소를 옮긴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가난이 그들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땅에 기어다니는 생물체는 다 잡아먹는다고 한다. 국제기아대책기구 총재 야마모리 데쓰나오 박사가 페루에 갔을때 어느 아기 엄마가 포장용 상자를 잘게 찢어서 끓인물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 풀기와 펄프 원료가 국물처럼 보였기 때문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필자의 제자중 월남인 바우 목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보트 피플들이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너무 배가 고파 제비뽑기를 해서 노약자를 잡아먹기로 했는데 그 희생자의 딸이 『제발 아버지의 눈만은… 』하고 절규하더란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도 한때 굶주렸던 민족이었다. 50대이상 나이의 사람들은 왜정때보리고개와 강제공출후엔 콩깨묵ㆍ소나무껍질ㆍ풀뿌리 등으로 연명했고 해방후와 6ㆍ25전쟁때 꿀꿀이 죽과 미국에서 보내온 구제물자ㆍ시레이션 등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잡지나 TV화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특히 뼈만 앙상하고 머리통은 크고 눈망울이 툭 튀어나오고 눈꼽이 끼고 온몸은 헐었는데 파리떼가 붙었으나 쫓을 기운조차 없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볼때 우리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전후세대들은 그 참상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때 『이 말라빠진 감정이 바로 문제로다!』라고 탄식한다. 우리들의 냉담ㆍ무관심ㆍ몰인정ㆍ무자비가 생명경시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최근들어 전후세대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데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 등 대개 잘사는 나라들을 보기 때문에 가난과 굶주림을 느끼지 못하고 온다. 오히려 사치와 과소비 풍조를 도입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동남아나 남미와 아프리카 등 앞에서 말한 가난한 나라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착한 사마리아인 필요 얼마전 일본의 TV대담에서 청소년들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보다는 동남아나 아프리카 여행을 보내어 해이해진 일본정신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바른 자녀교육을 위해서 동정심과 인정을 길러주기 위해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아시아의 기아현장을 구경시킬 필요가 있다. 인간은 물질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이웃이 서로 돕고 사랑하고 협력하는 정신을 자연스럽게 심어 주어야 한다. 불한당에 의해 매맞고 상하고 찢겨 고통당하는 나그네를 보고도 못본체 하고 가버린 레위사람과 제사장보다는 상처를 싸매주고 친절히 돌봐준 착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나야 할 사회이다. 무엇보다 삭막한 우리 사회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요구된다. 긍휼이란 함께 고통을 경험한다는 뜻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산상보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과거에 우방국가에 의해 도움받은 우리가 이제 긍휼을 베풀 때이다. 우리보다 더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들을 도와야 할 때이다.
  • 청부 폭력배 9명에 영장

    서울시경 특수기동대는 17일 박병수씨(29ㆍ전과6범ㆍ서울 강동구 천호2동 324) 등 조직폭력배 9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달아난 윤종길씨(31)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박씨 등은 지난1일 하오7시쯤 같은 고향의 서울 송파구 오금동 경희한의원 원장 홍정표씨(32)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일을 도와주고 있는 홍씨의 사촌동생 홍영표씨(31ㆍ서울 종로구 돈의동 103의121)를 전화로 불러내 승용차로 납치,서울 강동구 천호동 K여관 등지로 끌고 다니며 흉기로 위협하고 17시간동안 감금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입원 폭력조직두목 탈주/경관감시소홀 틈타/동생을 침대에 대신뉘고

    법원의 감정유치 결정에 따라 서울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있던 조직폭력배 김진술씨(38ㆍ전과15범ㆍ대전시 중구 산화동 143의1)가 15일 상오5시50분쯤 경찰의 감시 소홀을 틈타 병원에서 달아난 사실이 16일 밝혀졌다. 김씨는 지난 2월14일 대전시내 유흥가에서 세력다툼을 벌이다 반대파 3명을 납치해 호텔에 감금하고 폭행한 혐의로 지난달 24일 구속 수감된뒤 3년전 반대파와의 세력다툼과정에서 칼에 찔려 입은 상처로 왼쪽 팔다리가 마비증세를 보이자 지난달 26일 감정유치결정을 받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었다. 김씨가 달아날 때 병실에는 서울 동대문경찰서소속 문태봉경장(53)과 정왕식경장(52)이 감시전담요원으로 김씨를 지키고 있다. 김씨는 이날 7일전부터 간호해오던 동생 김진복씨(30)가 병상에 나란히 누워 잠든사이 이불로 덮어씌워 자신이 누워있는 것처럼 꾸며놓고 달아난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이날 하오2시 서울 형사지법에서 1심공판을 받을 예정이었다.
  • 「증인살해」 폭력조직 「보량파」 소행/검찰

    ◎30대 화교 두목등 8명 구속/「동화파」서 흡수한 조직원 60명 검거 나서 법정증인피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동부지청은 16일 이번 사건이 폭력조직 「동화파」의 일부 조직원을 끌어들인 신흥기업형 폭력조직 「보량파」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밝혀내고 두목인 화교 곡국경씨(31)와 기획참모 이도형씨(46),행동책 조유근씨(27) 등 8명을 범죄단체조직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곡씨와 함께 「보량파」를 결성한 부두목 송시용씨(37ㆍ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와 김기국씨(35)를 수배,법무부에 출국정지조치를 요청하는 한편 이들이 거느린 폭력조직원이 6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일제검거에 나섰다. 두목 곡씨는 지난해 12월말 서울 강동일대의 폭력조직인 「동화파」의 행동책이던 송씨와 「보량파」를 결성,자신이 대표로 있던 주식회사 보량의 사무실을 근거지로 청부폭력 등 각종 이권에 개입,사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뜯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월20일 8천만원을 주고 산 옥외광고탑에 광고주를 알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광고업자 이모씨(39)를 한 호텔로 납치,4일동안 감금하고 손해배상금을 구실로 9백만원을 뜯어 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지난 3월30일 자신들에게 광고용 쓰레기통 4천여개를 납품한 최모씨(43)가 대금 4천5백만원을 요구하자 보량사무실에 이틀동안 감금하면서 뭇매를 때려 오히려 「9월까지 7천만원을 주겠다」는 각서를 받아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배된 「동화파」두목 문계남씨(38)와도 긴밀히 협조해 오면서 필요에 따라 「동화파」조직을 「보량파」의 폭력에 가담시켜온 것으로 드러났다. 「보량파」는 지난 70년대 중반 광주 충장로를 중심으로 활개를 치던 「동아파」의 분파인 「동화파」에서 행동책을 맡고 있던 송씨가 조직원들을 이끌고 곡씨와 결합해 형성된 조직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송씨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왔으며 이번 증인살해사건도 주범인 변운연씨(24)가 송씨의 지시에 따라 김대현씨(24ㆍ일명 강대연) 등과 함께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 교사 감금 사표 강요/육성회장등 20여명

    【논산】 충남 논산군 양촌면 양촌고등학교(교장 구본정) 육성회장 등 육성회 임원들이 현직 교사를 불법 감금,강제로 사표를 받아 말썽을 빚고 있다. 사표를 쓴 이진형교사(29ㆍ영어)에 따르면 학교 육성회장 강두식씨(65ㆍ양촌면 신흥리 132) 등 육성회 임원 20여명이 지난12일 하오2시쯤 자신이 학생들을 의식화 시켰다며 학교 지하강당에 불법 감금,강제로 사직서를 쓰게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옆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던 박찬범교사(31ㆍ국민윤리)가 분개,같이 사표를 쓰자 이를 받아갔다.
  • 경관6명 한때 감금/계명대생,잠입 항의

    【대구】 11일 하오8시40분쯤 대구시 남구 대명동 계명대 캠퍼스에 들어갔던 경찰관 6명이 학내문제로 농성중이던 계명대 대학생 2백여명에게 붙잡혀 본관 학생과 사무실에 감금돼 무전기1대와 수갑2개 등을 빼앗기고 2시간20분만에 풀려났다.
  • 남아공,비상사태 해제/대통령발표/흑백인종 차별 완화위해 4년만에

    ◎「소요」나탈주엔 계속 발효 【케이프타운 로이터 AFP 연합】 남아공 백인정부는 흑백분리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흑인들의 저항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지난 4년간 실시해온 비상사태령을 오는 9일 0시(현지시간)를 기해 해제한다고 7일 발표했다.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의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남아공의 4개주중 폭력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나탈주를 제외한 3개주에 대해 이같이 비상사태를 해제한다고 선언했다.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전국으로 TV중계된 비상사태 해제선언 발표에서 『남아공 정부는 그동안 폭력이 통상적인 법률로 다스려질 수 있을 경우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린다는 최선의 목표를 위해 온힘을 기울여왔다』고 주장하고 『이제 이같은 상황이 실현됨에 따라 공공의 안녕이 아직 위협받고 있는 나탈주를 제외한 전국의 비상사태를 해제한다』고 말했다.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또 이같은 비상사태 해제조치로 흑인들과의 흑백분리 인종차별정책 폐지를 둘러싼 정치협상의 주요 장애물이 제거됐다고 강조했다. 피타 보타 전대통령은백인통치와 흑인 인권탄압에 대한 흑인들의 확산되는 항의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지난 85년 거의 전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이 조치는 남아공 보안군에 대해 아무런 혐의없이 체포ㆍ구금ㆍ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흑인들의 저항운동을 분쇄하는 무기로 활용돼 왔다. 비상사태 해제문제는 남아공의 흑인 민권운동지도자 넬슨 만델라와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백인정부와 흑인들간의 공식협상 개시를 위해 제시한 주요 전제조건중 하나이기도 하다. 남아공 경찰들은 그러나 비상사태와 관계없이 반체제 인사들을 무기한 연금할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으며 구체적인 혐의없이도 사람들을 무기한 감금할 수 있는데 남아공에는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1백여가지의 법률이 마련돼 있다. 한편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정부가 비상사태령을 해제해도 남아공정부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를 계속 촉구할 방침이라고 이날 말했다. 6일 남아공에 대한 경제제재를 계속 시켜주도록 요구하기 위해 6주간에 걸친 13개국 순방에 나선 만델라는 이날 비상사태 해제선언이 발표되기전 파리에서 기자들에게 『만약 정부가 비상사태 해제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바로 남아공 국민의 승리는 나타내는 것이나 그같은 조치가 나의 인식을 바꿀 수는 없다』면서 남아공 정부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행사를 계속 요구할 뜻을 분명히 했다.
  • 우려스런 「광신의 화」(사설)

    「목사」가 아들을 1년4개월동안이나 감금해 두었다가 친구들에 의해 「구출」당하게 한 사건은 충격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가 『자신의 신앙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때문이었다는 것에 더욱 아연함을 느낀다.아예 가출신고를 하여 주민등록까지 말소시킨 것을 보면 「목사」인 아버지는 자기를 따르지 않는 아들을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려 했지 않았나 의심하게 된다. 대저 목사란 어린 양떼 같은 인간을 하느님의 길로 인도하고,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하는 사명을 띠고 자신을 신께 맡긴 사람이다. 신의 「말씀」은 인류구원의 사명을 띠고 세상에 온 구세주가 가르치는 계명이다. 계명이란 인간이 옳고 바르고 착하게 살기를 가르치는 정신적인 지침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도리를 지키는 일은 목사가 솔선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말씀」중의 핵심은 용서와 사랑이다. 자기와 뜻을 같이하고,사랑받을 일을 하는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물론,자기와 뜻을 달리하고 반대하는 「원수」에게까지도 맞은 뺨을 돌리고 또한쪽 뺨까지도 내놓기를 가르친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바칠 자유도 있고 권리도 있다. 우리 귀에 설기는 하지만 자신이 받드는 신앙의 세계를 위해 목숨과 재산을 바치고,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들여 신앙에 정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그럴 수 있듯이 남도 그럴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이 잔혹한 느낌이 드는 목사아버지의 행적을 보며,현세적 기복에만 매달려 광신적인 이상신앙에만 몰두하는 듯한 우리의 종교실상이 새삼스럽게 우렬르 자아내게 한다. 우리가 종교에 기대하는 것은 삶이 풍요롭고 기품있으며 정의롭고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경영되기 위해 종교가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는 그 기대가 별로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충족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갈등과 분열이 더욱 조장되는 쪽으로 이바지하고 있다는 인상까지도 강하게 든다. 교회신축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신도가 생명을 걸고 대결하는 일이 주택가에서 예사롭게 일어나고 기도원을 지으려는 일을 사이에 놓고 극한 대립의난투극이 최근에도 벌어졌다. 교회나 기도원이 마을에 들어오면 성스런 분위기가 되고 삶에 이익이 된다고 환영받을 만한 인식을 심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종교의 불찰인 듯 환경을 오염시키고 소음과 배타적 광신으로 주민에게 곤혹을 주어 목숨을 걸고라도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종교의 존재의식에 반성을 부르는 일이다. 거대하게 성을 쌓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동서남북 끝끝에서 신도를 실어나르기 위해 교통혼잡을 부채질하는 교회때문에 믿지 않는 이의 적대감이 날로 확대되어 가는 현실도 불신을 조장한다. 걸핏하면 타종교를 비방하고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마귀들린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신도를 만드는 목사도 있다. 종교가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순화시키지는 못하고 분열과 반목과 증오를 제조하는 본거지가 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오늘같은 현실은 잘못된 일이다. 다같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만큼 심각한 이 현실이 걱정스럽다.
  • 소녀 5명 인신매매/10대 둘 구속/등교학생 10차례 갈취도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29일 이모군(18ㆍ재수생)등 10대 2명을 특수강도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조모군(17ㆍ재수생)등 동료 5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들은 중학교동창으로 지난달 20일 상오7시20분쯤 지하철1호선 동대문역 근처에서 오모군(17ㆍD상고2년)을 부근 골목으로 끌고가 뭇매를 때린뒤 오군이 갖고 있던 등록금등 20만3천원을 빼앗은 것을 비롯,지금까지 10여차례에 걸쳐 등교길 학생들을 대상으로 30여만원어치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오군을 종로구 숭인동 L여관 501호실로 끌고가 경찰에 신고하면 죽이겠다고 위협,8시간동안 감금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 이들이 술집에서 알게된 오모양(17)을 지난해 12월중순쯤 동대문 근처 술집에 30만원을 받고 팔아넘기는등 10대소녀 5명을 술집등에 3백만원을 받고 넘겼다는 진술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 목사,아들 감금 16개월/자기교회 골방에/이웃교회 못가게 막으려

    광명경찰서는 28일 허영만씨(52ㆍ밤빌리아교회목사ㆍ광명시 철산 3동 375)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허목사는 아들 윤혁군(23ㆍ서울H대 1년 휴학)이 평소 교리가 다른 이웃 영광교회에 나가는 것을 못마땅히 여기던중 윤혁군이 마침 교회 건물등 재산권문제로 소송중인 영광교회측에 유리하게 협조한 것을 염려해 지난해 1월20일 하오 학교에서 하교하던 윤혁군을 봉고차로 납치해 지난 26일까지 자신의 교회 5층 골방에 감금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윤혁군의 실종을 염려하던 같은 학교 권오수군(21ㆍ서울 신학대 2년)등 8명은 지난 26일 하오3시쯤 허목사의 딸 연실양(19ㆍ서울신학대 1년)이 『아버지가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는 윤혁오빠를 가두고 있다』는 말에 따라 이날 동료 20여명과 함께 각몽등을 들고 교회로 찾아가 이를 말리는 허목사등 신도 10여명과 몸싸움을 벌였다. 허목사는 경찰에서 『신앙심이 얕고 정신상태가 해이해진 윤혁이를 신앙심으로 정신병을 고치려했다』고 말했다.
  • 여중생13명 인신매매/스케이트장서 꾀어 제주술집에 넘겨

    ◎4명구속ㆍ둘 수배 서울시경은 24일 전성국씨(35ㆍ부천시 송내동 441) 등 인신매매꾼 3명과 술집주인 임봉필씨(53ㆍ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동 418) 등 4명을 약취유인 및 부녀매매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함기현씨(22) 등 2명을 수배했다. 전씨는 지난해 12월7일 하오3시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롤러스케이트장에 놀러온 이모양(15ㆍB여중3년) 등 여중생 13명을 함씨 등과 함께 유인,성동구 금호동 지하 셋방으로 데리고 가 폭행한 뒤 『담임선생님에게 알리겠다』고 협박,이틀 뒤에 서귀포 서림정 룸살롱 주인 임씨에게 2천6백만원을 받고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임씨는 이양 등을 자기집에 감금해 놓고 윤락행위를 시키면서 거부할 때는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흑산도로 팔아넘기겠다』고 위협하면서 마구 때렸다는 것이다. 전씨 등은 납치됐던 박모양(16ㆍY여중3년)이 술집을 빠져나와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해 붙잡혔다.
  • 룸살롱주인 납치폭행,경영권 강탈/청부폭력배 10명 영장

    서울시경 강력과는 23일 이재학씨(30ㆍ송파구 문정동 주공아파트 6동103호) 등 10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및 총포ㆍ도검ㆍ화약류단속법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 등은 지난달 1일 상오1시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A룸살롱에서 주인 채영식씨(32)를 4시간동안 감금ㆍ폭행하고 6천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5월 채씨와 함께 6천만원씩을 투자,이 술집을 함께 경영해 오다 장사가 잘 안돼 채씨에게 투자액을 되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경기도 안산시의 폭력조직 「목포파」 두목인 이호균씨(22ㆍ강원도 춘천시 옥천동 15의20)를 동원,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어 폭력배 이씨를 이 술집 총무부장으로 앉혀 경영권을 빼앗고 4천만원을 더 내놓지 않으면 가족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 중국 「서안사건」의 주역 장학량 54년만에 “자유의 몸”

    ◎장개석을 감금,홍군회생에 기여/대만,연금 풀고 망백연개최 추진/중국과 관계개선 노린 유화제스처인듯 지나간 역사의 페이지속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장학량이 54년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게 됐다. 만주군벌이던 장은 중국대륙에서 장개석과 모택동에 의한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36년 12월7일 독전차 그를 만나기 위해 서안으로 온 장을 감금,국공합작을 통한 항일전선을 구축케 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한 인물. 당시 모의 홍군은 막 장정을 마친뒤여서 세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으며 장은 이러한 홍군에 대공세를 감행,완전 소탕하기 위해 국민당정부군산하 만주군지휘책임자인 장에게 공격명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장학량은 그의 부친 장작림이 일본군에 의해 폭사한 원한 등으로 공산당이 내건 항일민족통일전선전략에 동조,장을 구금했고 이에 따라 괴멸직전에 놓였던 모택동의 홍군은 숨을 돌려 세력확장에 힘을 기울인 결과 대세를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장은 그후 장개석에게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체포돼 1949년 국민당정부와 함께죄인의 몸으로 대만에 온뒤 줄곧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채 연금생활을 해왔던 것. 대만의 중국시보 17일자보도에 따르면 장학량은 오는 6월1일 대북시 원산호텔에서 90회 생일축하연회를 가질 예정이며 이 연회에는 이등휘총통을 비롯한 국민당 고위간부 등 2백여명이 참석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 신문은 「서안사건」이후 54년만에 장이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는 사실은 국민당 정부가 그에게 특사의 혜택을 주는 것이며 앞으로 장은 기나긴 연금상태에서 풀려나 자유인으로 여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으로 끌려온 이후 그는 대북시 북투의 한 가옥에서 부인 조일적과 살고 있으며 생활비는 국민당에서 마련해 주고 있다. 이번 장의 90회 생일잔치를 위해 국민당측은 「장한경(장학량의 호)선생 9순경축위원회」까지 조직,요란스레 축하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관측통들은 오늘의 초라한 국민당정부를 있게 만든 장에 대한 대만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그가 너무 연로해 더이상 연금의 필요성이 없는데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선 불필요한 구원을 간직하는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을 비롯,모택동과 서안사건의 중재를 맡았던 주은래 등 동시대의 관련인물들이 이미 타계한지 오래됐음에도 장이 90세를 맞아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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