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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문사委가 밝힌 인혁당 재건위 사건 조작 전모/ 유신 ‘공작살인’ 국가서 첫 인정

    의문사규명위원회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 발표 내용을 수사부터 재판까지 부문별로 간추린다. ◆조직결성의 증거 유·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1차 인혁당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조직결성과 관련한 증거가 없다.트랜지스터 라디오,공식 출판 서적,학생들 선언문,민주수호국민협의회 관련 자료 등이 있을 뿐 강령,규약,조직문서,감청 기록 등 지하당 결성과 관련된 물증이 없다.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가한 고문의 실상- 중정 수사관들과 중정에 파견된 경북도경 등의 경찰관들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구타,몽둥이(야전침대봉 등)찜질,통닭구이고문,물고문,전기고문 등의 고문을 자행했다고 당시 서울구치소 교도관들은 증언했다. 서울시경 소속 경찰 전○○는 국방색의 야전용 전화기로 피의자를 전기고문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경북도경 경찰 이○○은 물고문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며 지하 보일러실은 고문을 하는 장소라고 진술했다. ◆각본에 의한 수사- 수사 마무리 단계에서 중정에서 갑작스럽게 조사했다.당시에 중정간부가 1차 인혁당 관련 기록을 보고 있었으며 중정에서 짜놓은 각본에 맞춰 조사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수사팀장인 윤○○이 수사관들에게 “물건(조직사건)을 만들라.”고 지시한 일도 있다고 진술했다. ◆고문을 통한 피의자 자백 강요- 수사관 이○○,신○○는 중정의 지시가 사실관계 및 상식과 어긋나는 것이 많이 있었지만 윤○○이 지시하면 무조건 조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다.피의자들이 처음에는 혐의사실을 부인하더라도 중정 수사팀이 고문을 한차례 하면 그 다음에는 별다른 저항 없이 시인조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관 조사 때 중정 수사관이 참여- 피의자들을 고문 당시 수사관들,검찰서기,피의자들은 검찰관 조사 과정에 중정의 수사관들이 수시로 입회하였으며 “혐의를 부인하면 6국 지하보일러실로 끌려나가 고문을 당하였고 검사가 물으면 예라고 답할 것을 강요당했다.”고 진술하고 있다.서울시경 소속 경찰 나○○은 “대구팀이 중정에서 검찰관과 같이 조사를 한 것은 중정에 있었던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고,그 목적은 혐의사실을부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공판조서 허위 작성- 재판을 지켜본 변호사들 교도관들,피고인의 가족들은 공판기록에 나타난 허위기재 사실은 크게 두 가지라고 입을 모은다.첫째는 부인한 혐의 사실을 정반대로 기록하는 것이고 둘째는 불법적인 고문 수사에 항의하는 발언을 기록에서 누락시키는 것이다. ◆위법한 재판과정- 변호인들이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증언자를 재판부에 신청을 해도 재판부에서 받아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더구나 피고인들이 고문당한 사실을 증언하면 재판부에서 막는 경우도 있었다.임구호 피고인의 경우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난 뒤 법정 밖으로 끌려나가 검찰관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하기까지 했다.피고인 가족도 방청이 한 피고당 1인으로 제한됐으며 기자들도 방청이 제한되어 보도하지 못했다. ◆전격적인 사형집행- 인혁당 재건위 사건 사형수들의 형 집행은 1975년 4월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다음 날 법무부장관의 지시에 의해서 새벽에 전격적으로 집행됐다.일반적으로 사형수들은 최소한 몇개월,길면 2∼3년 지난뒤 집행된다. ◆유언의 허위작성- 사형수들은 사형장에서 최후진술을 할 수 있고 사형집행명령부 비고란에 기록된다.그런데 사형집행명령부에는 도예종이 “조국이 하루 속히 적화통일 되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고 기록돼 있고 8명의 비고란 가장 아래에는 모두 종교의식을 거부한다고 기록돼 있다.그러나 당시에 사형 장면을 목격했던 교도관 김○○은 도예종이 “통일을 못 보고 죽는 것이 억울하다.”는 단 한마디만 했다고 진술했다. ■조사과정 이모저모/ 18개월간 400명 진술받아 조작 관여자 “시키는 대로”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지난 75년 옥중에서 병을 얻어 사망한 장석구씨 사건을 직권 조사하기로 지난해 3월 결정한 뒤 1년6개월에 걸쳐 수사와 재판에 관여했던 400여명의 진술을 들었다.이 가운데 120여명은 정식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규명위 관계자는 “대부분이 현직에서 퇴직한 상태였으며 치매로 조사가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참고인들은 고문과 사건 조작에 관여한 사실을 강력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규명위측이 유족과 관련자의 진술을 토대로 추궁을 하자 조금씩 사실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규명위 조사관들은 당시 중앙정보부에 파견돼 수사에 나섰던 경북도경 소속 경찰관들은 대체로 고문과 강압수사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중정 직원과 간부들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거나 “중정은 경찰 수사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수사과정에서 파견 경찰관과 중정 직원간의 갈등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규명위 관계자는 “경찰관 중에는 ‘공은 중정이 가로채고 나중에 문제될 일은 경찰에 떠밀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한 사람도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심지어 중정 간부들이 헌병을 동원해 반발하는 경찰관을 감금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구속하겠다.”고 협박한 사실도 밝혀졌다. 당시 검찰 관계자들도 책임을 부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규명위 관계자는 “대부분의 검찰 수사관들이 ‘우리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상부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며 발뺌했다.”고 전했다. 일부는 “빨리 사건을 끝내주는 것이 피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사형 당할 수 있는 중대한 혐의사실도 너무 쉽게 시인해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당시 재판부 판사들은 현재 해외에 체류중이거나 소재 파악이 안 돼 규명위로서도 접촉이 쉽지 않았다. 규명위 관계자는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진술을 요청해도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거나 ‘협조는 하겠으나 조서에는 남기지 말아달라.’며 답변을 회피했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재심 어떻게 - 최초 판결 법원 다시 재판 시작 재심은 법원에서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에서 사실 오인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피고인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이다.원심의 판결을 뒤집을 명백한 증거가 확보되거나 새로운 사유가 생겼을 때 구제받는 비상절차로 현행 형사소송법은 사법 판단의 안정을 위해 그 요건을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재심청구 신청서가 제출되면 재심 사유가 있는 심급의 법원이 심리에 착수,사건 관련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검토하게 된다. 1974년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가 이듬해 4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다음날 곧바로 사형이 집행된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 8명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최초 판결을 내린 법원에서부터 다시 재판을 진행해야 하다. 당시 관련자들이 1심인 보통군사법원을 거쳐 2심인 고등군사법원과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통해 형이 집행된 만큼 재심 판단은 군사법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안동환기자 sunstory@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인혁당 조종받는 민청학련 정부전복기도””/사형선고 20시간만에 핵심8명 전격 형집행 유신시절인 1974년 정부가 발표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은 제2차 인혁당사건으로도 불린다. 도예종씨 등 23명이 인혁당 재건위를 결성한 뒤 북한의 지령을 받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배후 조종,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것이 정부의 발표 내용이었다.당시 구속기소된 23명 가운데 75년 4월 대법원에서 8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20시간 만에 가족들도 모르게 형이 집행됐다.나머지 15명도 무기징역에서 징역 15년까지 중형을 선고받았다.일부는 수사 도중 구속정지 등으로 풀려났으며,구속기소된 인사 가운데 현재 9명이 생존해 있다. 민청학련 사건은 73년 8월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을 계기로 반유신 체제운동이 가속화되자 박정희(朴正熙) 정권이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당시 박 대통령은 “반체제운동을 조사한 결과,민청학련이라는 불법단체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었다는 확증을 포착했다.”고 발표하면서 긴급조치 제4호를 발동,학생들의 수업거부와 집단행동을 일체 금지시켰고,위반자를 잡아들였다. 앞서 64년 8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이 사주한 대규모 지하조직에 의해 국가 전복기도가 있었다.”고 발표한 사건이 제1차 인혁당 사건이다.그러나 인권단체에 의해 고문사실이 알려지고 담당 검사들이 사퇴하는 등 홍역을 치르면서 13명이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세영기자
  • NGO/ 반인권적 국가범죄 ‘공소시효 배제’ 여론 확산

    “천인공노할 국가범죄를 단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도대체 누가 국가와 법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가 권력이 저지른 반인권적 범죄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사회와 정치권에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지고 은폐됐던 수지김·최종길 교수·허원근 일병 사건 등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참여연대 등 139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길에서 ‘공소시효 배제 입법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 법사위원회측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회견문과 의견서를 통해 “무고한 국민을 살해하고 사건 조작과 은폐에 관여했던 범죄자들이 지금까지 버젓이 공직에 남아 진실규명 작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따라서 제2,제3의 범죄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국회는 반인도적 범죄의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법률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2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공소시효배제 입법토론회’에서도 참석자들은 “사회정의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국가기관의 범죄행위를 단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국가기관의 범죄에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소시효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게다가 범죄를 저지른 집단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기간에는 사실상 진실규명을 위한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국제적으로도 국가기관의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국제연합(UN)은 지난 68년 마련한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의 시효 부적용에 대한 협약’에서 특정 유형의 국가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포된 인권선언문도 고문 등 반인륜적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도록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이와 관련,현재 국회에는 지난 5월 이주영 의원 등 24명의 국회의원이 제출한 형사소송법개정안과 참여연대 등 13개 시민·인권단체들이 입법청원한 ‘반인도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등 2개의 법안이 계류돼 있다.이와는 별도로 민주당 이미경·한나라당 김원웅 의원 등 21명은 지난달 26일 중대한 인권침해범죄에 한해 공소시효 배제를 촉구하는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정치권 내부에서는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소급입법을 금지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공소시효 배제 입법에 부정적인 견해도 만만치 않다. ◆ 반인권적 국가범죄 = 국가 권력기관에 종사하는 자가 헌법과 법률에 반하여 시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거나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하는 행위를 일컫는다.구체적으로는 직무유기,직권남용,불법체포·감금,폭행·가혹행위,살인,증거인멸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례를 지칭한다. 이세영기자 sylee@
  • [9·11 테러 1주년] (중)분열의 골 깊어지는 미국사회

    ■“아랍계는 모두 테러범”인권유린 [뉴욕 백문일특파원] 이민법 위반으로 올해 미국에서 추방된 파키스탄인 무페드 칸은 지난 6월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나에게 미국은 이상향이었다.자유스럽고 민주적인 국가에서 사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곤 했다.그러나 9·11 테러공격 이후 그 이상향은 지옥으로 변했다.” 비단 칸에게만 해당되는 생각이 아니다.지금 미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불안하고 힘들다.9·11 테러 이후 인종간·종교간·지역간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특히 아랍이나 서남아시아 출신의 회교도들은 차별대우를 받기가 일쑤다.회교도들이 머리에 두른 검은 터번 때문에 살해되는가 하면 지난 7월에는 유타 허버에서 파키스탄인이 운영하는 모텔이 극우세력의 방화로 불탔다.극소수 극우파들의 행위지만 아랍계나 회교도들을 ‘테러리스트’와 동일시하는 편향된 시각이 미국 사회에 팽배하고 있다.아시아계 전체에 대한 거부감도 심화되는 추세다. ◇아랍계 평화- 미 연방정부조차 인종 차별적인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수천명을 동원한 테러 수사에서 ‘국가안위’는 인권유린의 방패막이로 활용된다.수사가 증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테러에 연계됐거나 정보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단순한 의심’에서 출발한다.이같은 이유로 수사당국의 심문을 받은 사람들은 수천명에 이르며 대부분 아랍계 남성 회교도들이다.혐의없이 무작위로 뽑힌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웃이나 지역 사회의 무턱댄 신고로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심문을 받은 사람 중 1200여명이 연행됐으나 지금까지 테러 관련 혐의로 기소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관광비자로 취업하거나 비자기한이 끝난 뒤에도 머문 사실이 드러나 이민법 위반으로 752명이 추방됐을 뿐이다.이 가운데 714명은 ‘특별대상’으로 분류돼 변호사 접견이나 보석이 허용되지 않은 감금상태로 있었다. 이집트 출신의 내과의사인 아메드 알레나니는 지난해 9월 21일 뉴욕 시내에서 차를 세워놓고 지도를 보다가 경찰에 연행됐다.이유는 차안에 WTC 사진 2장이 있고 여권이 만료됐기 때문이다.알레나니는 여권 연장을신청했다고 해명했으나 5개월 동안 연행돼 조사를 받다가 결국 추방됐다. 뉴욕의 ‘인권감시’는 지난달 발표한 ‘9·11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남용’보고서를 통해 “미 수사당국이 국적과 종교,성을 수사의 근거로 활용한 것은 법을 준수하는 수백만 이슬람권 이민자들에게 부당한 처사”라고 강력히 비난했다.보고서는 “이같은 편향된 수사가 실제 테러와 관련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아랍계와 회교도들의 반감만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침해 사례는 출입국 관리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이민귀화국(INS)은 테러지원국 출신들만 상대로 한 지문채취를 사업,관광,학생 비자로 입국하는 외국인 가운데 20만명을 선별,확대 적용하기로 했다.이 경우 아랍권 출신들이 표적이 될 것은 뻔하다.공항 검색대에서 중동계와 아시아계는 예외없이 신발을 벗고 두 다리 사이로 금속탐지기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백인이나 흑인들도 예외는 아니지만 누가봐도 행동거지가 이상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과 대조된다. ◇출입국 관리 강화- 이사할 때도 시민권이없는 외국인은 번거롭다.주소이전 신고를 1주일 이내에 마치지 않으면 벌금을 물고,심지어 영주권마저 취소될 수도 있다.과거에는 한달 이내에 운전면허증을 바꾸기만 하면 됐다.은행계좌를 만들거나 운전면허를 딸 때 필요한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도 과거 3∼6개월 정도면 나왔으나 외국인에게는 1년 이상 기다려도 나올지 알 수 없다. 미국의 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텍사스 휴스턴 대학의 로버트 부잔코 역사학 교수는 “인권이나 시민의 자유는 어떠한 예외없이 옹호돼야 한다.”며 “국가안보를 위해 인권이 제한되는 것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꼴”이라고 말했다.반면 테네시 멤피스에 있는 로데스 대학의 국제학 교수 존 F 코퍼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인권이나 윤리적 문제는 정책 우선순위에서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인권 문제와 국가안보가 균형을 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한 인권단체의 대변인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평겸 한인 9·11유족회장/ “아직도 매일 악몽에 시달려” [뉴욕 백문일특파원] “비통한 심정을 말로써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그저 잊고 사는 거죠.” 9·11 테러로 가족을 잃은 한인 유족회의 김평겸(62) 회장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 자체가 유가족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이라고 말한다.먹고사는 것보다 정상적인 생활리듬을 잃은 게 큰 문제라는 것.그럼에도 이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남편과 자식,부모를 억울하게 잃은 사람들이 1년이 지났다고 달라지겠습니까.” 생업에 매달리다보니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일 뿐,하루에도 수십번씩 그날의 악몽에 시달리다 허탈감에 빠지기는 모든 유가족들이 마찬가지라고 한다. 세계무역센터(WTC)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한인은 18명.이 가운데 단 1명만 뉴욕시로부터 유골을 확인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나머지는 시신은커녕 유품조차 찾지 못했다.합동 추모식을 치렀으나 영결식은 1주기가 되도록 갖지 못했다.연말에 합동 영결식을 생각하고 있다. 김 회장은 유족회 차원에서 준비하는 9·11행사는 없다고 밝혔다.유가족들이 과거를 떠올리기 싫어하기 때문이다.그러나 한 장소에 묘를 쓰고 함께 추모하기로 유가족들은 동의했다.때마침 이민 100주년 사업회가 추진하는 한인 기념공원 내에 함동묘역을 조성키로 확정했다.아직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공원내에 희생자 위령탑도 건립하기로 했다. 연방정부가 보상금 가이드 라인을 마련했으나 이를 받아들일지,아니면 개별적인 소송을 제기할지 여부는 확정짓지 않았다.영결식을 치르기 전에 보상금을 따질 상황은 아니라는 것.다만 손해배상 청구에는 대비하고 있다.현재 거론되는 1인당 보상금은 150만달러 정도지만 연봉이 30만달러를 넘는 희생자도 있었단 점을 감안하면 획일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일부 유가족은 희생자를 기리는 장학재단 설립을 추진중이다.김 회장도 WTC 93층의 투자자문회사에 다니다 희생된 둘째 아들(26)의 이름을 딴 ‘앤드류 김 장학재단’을 연말부터 운영할 생각이다.김 회장은 6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부인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 “”탈북선 기관장 원하면 北송환””, 정부 “”본인의사 존중””

    정부는 순종식씨 일가 탈북선의 기관장 이경성(33)씨의 송환 여부에 대해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조치하기로 했다. ▶관련기사 5면 정부 당국자는 20일 “본인이 원하고 북한 당국이 요청해오면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하겠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북으로 보내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합동신문조사의 최종 결과가 나오면 구체적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순씨 일가 탈북과정에서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감금·억류돼 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또 귀환 뒤에는 탈북 의사를 번복하고 잔류 의사를 비치는 등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그의 거취를 놓고 정부의 조치가 주목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여대생 공기총 살해’배후 의혹 원한관계 50대女 구속

    여대생 하모(22)양 피살사건의 공범으로 윤모(57·여)씨가 20일 경찰에 구속됐다.지난 3월16일 경기 하남시 검단산에서 하양이 머리에 공기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된 지 5개월 만이다. ●검거 경위와 배경= 윤씨는 하양의 사체가 발견되기 열흘 전인 3월6일 하양을 집 앞에서 납치·감금하도록 해외도피 중인 윤모(41)·김모(40)씨에게 사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두 용의자는 지난 4월 초 각각 베트남과 홍콩으로 달아났었다.달아난 윤씨는 구속된 윤씨의 친조카로 확인됐다. 그러나 윤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하양을 미행하도록 부탁한 적은 있지만 납치·감금을 청탁한 사실이 없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경찰은 계좌추적 결과 윤씨가 지난해 10월11일 차명계좌 통장에서 현금 7000만원을 인출,이 가운데 5000만원을 용의자 김씨에게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또 윤씨가 사건 직후인 지난 3월24일과 4월 초 등 두차례에 걸쳐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700만원을 건넸다는 것이다.경찰은 “윤씨가 사건 직전 친조카와 자주 만났고,하양을 미행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특히 윤씨가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 4대를 이용,친조카 윤씨와 범행 전후 수백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 전망= 경찰은 달아난 두 용의자를 붙잡기 위해 인터폴과 공조수사를 펴고 있다.또 범행에 가담한 또 다른 용의자가 국내에 1∼2명 머무르고 있다는 증거를 포착하고 검거에 나섰다. 윤씨는 부산에서 제분회사를 운영하는 재력가(55)의 부인으로,숨진 하양과 사위(29)의 불륜관계를 의심,하양을 미행하는 등 마찰을 일으킨 정황이 포착돼 용의선상에 올랐다. 광주 이영표 황장석기자 tomcat@
  • 강제탈북 처리 어떻게/ 北귀환 의사 오락가락 기관장 처리 정부 곤혹

    해상 탈북 가족 순종식씨 일행에 의해 강제 귀순된 것으로 알려진 어선 기관장 이경성(33)씨 처리를 둘러싸고 남과 북이 미묘한 기류에 처해 있다. 이씨는 20일 본격 시작된 정부 관계기관 합동 신문에서 당초의 귀환의사를 번복하는 등 심경이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이에 따라 정부도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이씨가 해경에 의해 발견됐을 때와 합동신문이 시작된 직후에도 귀환의사를 표시했었지만 20일 오전부터 ‘식구들과 같이 (남측에) 올 걸 그랬다.'며 진술을 바꿨다.”고 전했다. 고위 관계자는 “이씨처럼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경우 최종적으론 대부분 북한 송환을 거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며 “북으로 송환시 당할지 모르는 여러 불이익을 고려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상 탈북 사건이 발생한 뒤 복원단계에 들어선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용한’ 처리 기조를 유지해온 정부는 이씨의 결정을 존중키로 방침을 정했다.정부는 이씨가 북한으로 귀환을 원할 경우 그동안 남북간에 서로 ‘건드리지 않는 일’로 굳어져온 탈북자 문제를 놓고 남북간 첫 접촉을 해야 한다는 점 등에서 내심 고심해온 게 사실이다.어떤 경우든 북측을 자극하지 않기위해 조용히 처리하되,귀환시엔 그동안 해상에서 조난당해 우리측에 신병이 넘어온 북한 어민의 송환 사례를 따라 적십자사 차원에서 처리절차를 밟는다는 방침이다. 북한은 지난 94년 백령도 근해에서 표류하다 우리 해군에 구조된 김철진 하사와 김경철 전사를 판문점에서 넘겨받았을 때만 해도 “남측이 납치·억류·귀순회유했다.”며 남측을 비난하고 체제단속을 꾀했었다. 하지만 그후 수차례 발생한 표류 병사의 송환 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판문점에서 유엔사 담당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수정기자 ■강제탈북 경위 북한 주민 21명이 타고 귀순한 ‘대두 8003호’의 기관장 이경성씨가 자신의 의사와 달리 위협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왔다고 주장,그의 강제탈북 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선장 순룡범(46)씨 일행이 왜 이씨를 끌어들였으며,이씨를 감금했다가 어느 시점에서 자유롭게 했는지 등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해경의 한 관계자는 “귀순 일행 가운데 선박에 대해 아는 사람은 선장 순씨밖에 없는데다가,기관장은 기관 수리,엔진·오일압력 점검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선장을 대신해 조타기를 잡기 때문에 운항에 꼭 필요한 존재여서 이씨를 강제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절박한 필요에 의해 가담시킨 기관장을 이틀 가까이 감금했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약을 풀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모 기관 관계자도 “이씨를 일시 감금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이와 함께 배가 북한 영해를 벗어나 중국 산둥반도 인근 공해에서 중국 어선단을 만나 전속력으로 달아나다 고장이 나는 바람에 이 때 기관 수리를 위해 이씨를 해금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이 경우 대략 출항 후 7∼8시간이 지난 시점이다.해경은 지난 18일 귀순 어선을 발견,검색할 당시 기관장 이씨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자유로운 상태에서선실에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순룡범씨가 일가족 등을 데리고 비좁은 배에 타면서 당직 근무를 서던 이씨에게 “밤바다를 구경가는데 함께 가자.”고 유인했다는 말도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일단 건장한 남자 수명이 이씨를 배에서 제압한 뒤 가족을 태웠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경찰청, 기지촌 방문 업주에 미리 흘려 전시용 ‘실태조사’ 말썽

    경찰이 외국인 여성종업원의 인권실태를 현지 조사하기 위해 동두천 미군기지 주변 유흥업소를 방문했으나,사전 각본에 따른 생색내기식 전시행정에 그치고 말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16일 밤 한국주부클럽연합회 등 5개 여성단체로 이뤄진 ‘매춘여성 인권지킴이 위원회’ 소속 회원 25명과 내외신 기자 30여명이 동행한 가운데 동두천시 보산동·생연동의 36개 유흥업소를 찾았다. 이날 러시아와 필리핀 등 외국인 무희들은 “‘2차’도 나가지 않고 생활에 만족한다.월급도 제대로 받고 있으며 감금이나 폭행,매춘 강요는 없다.”며 입을 맞춘 듯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일부 업주는 “경찰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대비했다.”고 털어놓았다.경찰 관계자도 “오후에 업주들을 모아 교육을 했다.”고 했다.당초 경찰은 “위법 사실이 적발되면 단속도 할 것”이라고 공언했으나,앵무새같이 되풀이되는 ‘모범답안’ 때문인지 단 한건도 단속되지 않았다. 업소 방문을 마친 뒤 경찰은 간담회를 자청,일부 외신 보도에 불만과 항변을 늘어놓았다.경찰청 김강자 여성청소년과장은 “지난 3월에는 미국의 폭스뉴스가,7월에는 타임지가 ‘동두천 일대 인권유린이 심각하다.’고 보도했고,지난달에는 여기서 일하는 러시아 여성이 ‘감금 당하고 있다.’고 신고해 언론이 떠들썩했다.”면서 “언론 보도가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권에는 선진국형과 후진국형이 있는데 우리는 후진국형”이라면서 “인권의 유형이 다를 뿐 그들이 얘기하는 인권유린은 없다.”고 강변했다.그는 “믿어 달라.오늘이 고비다.그동안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잘 넘어왔다.”고 덧붙였다.김 과장은 “업주들은 오늘 고마워해야 한다.앞으로 수사기관에 (상대업소를)제보하고 그러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쓸데없는 잡음이 일지 않도록 알아서 ‘관리’를 잘 하라는 메시지였다. 이에 대해 일부 ‘인권지킴이’ 회원은 “현장의 인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면서 “언론 플레이와 전시행정에 들러리 역할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동두천 황장석기자 surono@
  • 北 요도호 납치범 귀국 용인

    (도쿄 황성기특파원) 북한 당국이 요도호 납치범들의 귀국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이들의 귀국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이들은 언제쯤 일본으로 귀국할 것인가.이들의 귀국을 용인하겠다는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 고니시 다카히로(小西隆裕·57) 등 4명의 납치범이 “귀국하고 싶다.”는의사를 밝힌 것은 이달 초.1970년 3월 일본항공(JAL)의 요도호를 납치,북한으로 건너간 지 32년만의 일이었다.귀국 의사를 밝힌 것은 오랜 망명생활에서의 염증과 함께 더 늙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귀국,재판을 받고 출옥해 일본에서 살고 싶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권이 없는 이들은 여권을 대신할 ‘도항(渡航) 신청서’를 작성해 대리인에게 전달했다.이 대리인이 일본에 도착한 것이 이달 9일이었다. ◆귀국 이뤄질까- 일본 국적의 이 대리인은 30일 현재까지 이 도항 신청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대리인은 ‘도항서를 제출하기 전에 두 가지 사항에 대해 협의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납치범들이 내걸고 있는 조건 중 첫째는 귀국 후 자신들이 받게 될 재판에서의 형량 감축이다.납치범 중 1명인 아카기 시로(赤木志郞·54)는 얼마전 일본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난 2월 도쿄지방 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동료 다나카 요시미(53)의 예를 들며 “다나카처럼 부당한 판결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협상’을 통해 형량을 가급적 줄여 판결받게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1983년 유럽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아리모토 게이코(有本惠子·당시23세)를 비롯한 일련의 일본인 납치 의혹에 자신들이 관련돼 있다는 ‘누명’을 벗겨달라는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이같은 협의 조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 관계자는 “형량은 일본 법무성이 판단할 성질이 아니라 법원의 고유한 권한이며 납치 문제도 역시 현 단계에서 일본 정부가 ‘그렇다.’,‘그렇지않다.’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다시 말해 이들이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두 가지는 납치범과의 협의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귀국 조건을 둘러싼 협상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들이 당장 귀국하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한 공안 관계자는 “연내 귀국은 절대 무리라고 본다.”면서“이들이 북한에서 전개하고 있는 사업을 정리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납치범과 가족들은 평양과 함경북도 나선(羅先)시에서 일본 물건을 수입하는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납치범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와 북한 당국은 납치범들의 귀국에 가장 유리한 타이밍을 골라 일본 당국에 귀국 신청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 타이밍이 언제인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들과 가족들은 평양 시내와 교외에 나뉘어 살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차례씩 만나 회의를 갖고 있지만 생활,사상 등을 토론하는 규율은 없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의도- 북한으로서는 이들을 더이상 잡아 둘 이유가 없다.오히려 이들은 큰 짐이다. 고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뜻이라며 이들을 북한 바깥으로 내보지 않고감쌌지만 미국에 의한 테러지원국 국가 지정,테러 지원국 지정에 따른 경제제재 등 이들을 보호하고 있던 대가는 너무 컸다. 북·미,북·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지금으로서는 이들의 귀국 용인은 북한이 쓸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귀중한 카드이다.이들의 귀국은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요구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5월 ‘국제테러 유형에 관한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15년째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서 그 주요 이유로 요도호 납치범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납치범의 귀국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제를 위한 조건의 하나는 충족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납치범과 일본측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이들의 귀국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이 있으나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 당국이 이들의 귀국을 은근히 종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요도호 사건- 일본의 극좌단체인 적군파 대원 9명이 1970년 3월 도쿄 하네다(羽田)발 후쿠오카(福岡)행 요도호를 공중납치,승객·승무원 129명을 인질로 삼고 북한행을 요구한 일본 최초의 비행기 납치사건.비행기는 북한 공항을 위장한 김포공항에 착륙했으나 이를 파악한 적군파가 3일간 기내에서 농성한 끝에 기장 등 3명을 제외한 승객을 풀어주고 평양으로 갔다. 일본 경찰은 범인 9명을 국외이송약취,감금 등 혐의로 국제수배했다.범인 가운데 3명은 사망했고 2명은 귀국해 재판 중이다. marry01@
  • ‘탈북자’ 근본대책 없나/ 전문가 3인 좌담 “난민지위 인정 국제공조 모색을”

    탈북자들의 남한 유입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현재 중국 베이징 한국영사관에서 보호중인 탈북자만도 12명에 달한다.지난 95년 41명에 불과하던 탈북자는 지난해 583명,올해에는 불과 여섯달 동안 514명을 기록할 정도로 가파른 증가 추세다. 탈북자 자원활동을 펴 온 불교단체인 사단법인 ‘좋은 벗들’ 노옥재(盧玉載) 사무국장,고려대 북한학과 박현선(朴炫宣) 박사,통일부최보선(崔寶善) 정착지원과장의 의견을 듣고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질문과 대답은 이메일과 개별 인터뷰를 통해 이뤄졌다. ■ 탈북자의 증가가 실제로 북을 빠져나온 사람이 늘어서인지 단순히 남한 입국자들만 늘어난 것인지. ◆ 박현선 박사 = 정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북한경제가 99년부터 플러스 6.2% 성장을 달성하며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보여지는 만큼 과거에는 ‘기아 모면형’ 탈북이 대부분이었으나,요즘에는 미리 이주·이민을 계획하는 ‘기획형’ 탈북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 노옥재 사무국장 =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하는 사례는최근 많이 줄어들었다.심각한 문제는 중국내 탈북자들의 인권문제다.이들은 성매매,노동착취,강제송환 위협 등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이런상황에서 외국 공관으로 들어가는 방식 또는 목숨을 건 한국행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남한 유입 탈북자 증가의 배경이다. ■ 탈북자 유형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나. ◆ 최보선 정착지원과장 = 과거에는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최근 여성 탈북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부인,자녀를 동반한 가족 입국자가 증가하기 때문일 것이다.또한 함경도 출신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중국에 접하고 있어 탈북이 쉬운데다 식량난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 박 박사 = 지난해 탈북자 583명 중 20대는 158명(27.1%),30대는 172명(29.5% )으로 20대와 30대가 전체의 56.6%를 차지하고 있다.이들은 바로 취업인구로 편입되어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또한 이미 얘기한 대로 기획형 탈북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남한내 생활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만큼 실망도 커질 수 있음을 나타낸다. ◆ 노 국장 = 중국내 탈북자의 62%가 여성으로 조사된 바 있다.인신매매의 대상 이 되며 감금과 학대를 받고 있다.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결국은 식량난에 의한 탈북이라고 봐야 한다. ■ 국제 NGO,종교단체 등의 탈북자 기획 망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 노 국장 = 기획 망명은 탈북자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하지만 망명에 성공한 소수는 잘 살지 모르지만 나머지 30만명의 탈북자는 집안에서 체포의 불안함에 떨어야 하는 역효과가 더 크다.정부간 공식적 통로가 아니라면 한국에 데려오더라도 조용한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언론의 상업적 보도가 오히려 문제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 박 박사 = 인도적 차원의 정당성을 안고 있고 탈북자 문제에 대한 국내외적관심을 유발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한·중,남북관계에 미묘한 사안인 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 탈북자들의 난민지위 인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박 박사 = 적극적인 난민인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난민지위 인정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따라서 정부는 난민지위 인정을 위한 국제적(중국,미국,유엔 등과) 공조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 노 국장 = 그동안 탈북자의 난민 지위 인정과 수용소 설치 등을 주장해 왔지 만 중국은 자국이 져야 할 정치적 부담 때문에 탈북자의 존재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결국 중국과 북한의 입장에서는 난민지위 인정이 어려운 형편이다.실현가능한 해법은 난민지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 정부에서 암묵적으로 체류를 인정하고 주민증을 주거나 합법화하는 것이다.중국도 인권탄압국가라는 멍에를 벗을 수 있을 것이다. ■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정착을 도와주는 우리 정부 정책중 바람직한 부분을 얘기해 달라. ◆ 최 과장 = 현 정부 들어 단순히 정착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안정적 직업을 갖도록 하고 있다. ‘하나원’ 교육중 전문직업상담가가 적성검사 및 직업지도를 함으로써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있다.거주지에 편입된 후에는 노동부에서 지정한 취업보호담당자를 통해 거주지보호기간인 5년간 본인이 원하는 분야의 공·사 직업훈련기관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훈련기간중 생활에도 불편이 없도록 훈련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또한 정착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취업확대를 위해 북한이탈주민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임금의 2분의1을 2년간 지원해주는 취업보호제를 실시하고 있다. ◆ 박 박사 = 단순한 물적 지원이 아니라 자립·자활 쪽으로 방향을 잡은 점이 의의가 있다.정착금의 확대와 ‘하나원’ 설립을 통해 적응 교육을 전면에 내세웠다.최근에는 정착금의 삭감과 차등적 지급,학습 능력에 따른 차별적 교육지원 등으로 경제적 논리를 몸에 익히도록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또한 탈북자를 민간단체와 연결시키며 사회적 네트워크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노 국장 = 원칙적으로 우리 정부가 모든 탈북자들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서해 교전 등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외교적인 통로를 통해 국제기구와 중국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국내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퍼주기’ 논란을 불식시키며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 탈북자 남한사회 정착에서 개선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 박 박사 = 단순히 정부의 정책 개선 의지나 그 결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와 관련된 정부,탈북자,국민,사회 연결망 등 모든 주체들이 각자의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통일준비라는 장기적 전망속에서 탈북자 지원을 해야 하며,국민은 탈북자들에 대해 일회적인 관심이 아니라 ‘자매결연운동’ 등 지속적 지원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탈북자들 역시 체제 교육 훈련 등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스스로의 적응 능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 노 국장 = 결국은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의 지속이다.경재협력개발기구(OEC D) 가입국으로서의 빈곤국에 대한 지원분담금-GDP의 최소 0.1%를 북한에 지원할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 최 과장 = 정부는 ▲탈북요인을 근본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대책 ▲제3국체류 탈북자 처리대책 ▲국내입국후 관리대책 등 3단계로 구분하여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국내 입국 희망자는 전원 수용한다는 기본 방침을 견지하면서 국내송환은 주재국 정부의 협조와 양해하에 성사되도록 노력하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 국제기구와의 협조하에 최소한 본인의사에 반하는 강제송환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 탈북자 문제에 있어서 민간 단체는 어느 분야에서,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박 박사 = 민간단체의 탈북자 지원은 새롭게 조직을 구성하기보다는 기존의조직과 전문성을 활용해 탈북자 전담 코너를 만드는 것이다.예를 들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탈북자 전담 코너’를 만들어 탈북자들의 법률 상담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민간단체가 지원사업을 수행할 때 정부는 당분간 재정이나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 최 과장 = 탈북자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사회 모두가 담당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고 탈북자들이 구체적 생활속에서 평균적 국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협력망과 인력을 확대 구축하는데 민간단체의 힘이 필요하다. ■ 탈북자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나. ◆ 박 박사 = 정부의 지원이 물적 지원에서 경제적 자립으로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지원금이 탈북자의 초기 정착을 충분히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지는 못한 것이 현실이다. 결국 탈북자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증가한다면 현재와 같은 보장 수준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이런 이유로 현재의 정부 주도를 더욱 적극적인 민간 주도로 전환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사회적 네트워크가 특히 소중한 가치로 작용하는 우리 사회에서 민간단체와의 사회연결망,사회안전망구축도 절실하다. ◆ 최 과장 = 대북포용정책의 적극 추진과 미·중·일 등 국제사회의 협조로 북 한의 경제적 안정과 인권개선을 통해 북한주민의 실질적 생활여건을 개선함으로써 북한내 식량난을 포함한 탈북요인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정리 박록삼기자 youngtan@
  • 인천공항 노사 인사갈등 심화

    ‘낙하산 인사’에 반발한 인천국제공항공사 노동조합의 1인 시위가 4일째 계속되면서 사측과 마찰을 빚고 있다. 노조측은 “17일 오후 2시쯤 공항청사 노조사무실 책상 위의 주요자료,세금계산서 등이 없어지고 중요서류가 보관된 캐비닛이 열린 사실을 발견했다.”고 18일 주장했다.노조는 “외부인의 자유로운 출입이 불가능한 사무실에 컴퓨터 등 집기가 흐트러진 것은 사측의 노조탄압과 무관치 않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지난 15일 직제개편에 따른 공항청사의 사무집기 조정작업 중 작업 업체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공항공사 노조는 “16일 1인 시위 도중 노조원이 공항 경비직원에게 끌려가 출국장 검사대 사무실에 5분쯤 감금된 일도 있었다.”면서 ‘낙하산 반대시위’를 더 강화할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사측은 “문제가 되고 있는 이사는 주주총회를 거져 정식으로 선임되어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
  • 여성종교인 11일 공권력 규탄집회

    비구니와 수녀 등 여성 종교인들이 최근 공권력과 빚어진 일련의 충돌사태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다. 전국비구니회와 불교인권센터·수녀모임 등 25개 단체로 구성된 ‘여성인권회복과 공권력 오남용 근절을 위한 종교인대책위원회’는 11일 오후3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공권력 오남용’규탄집회를 갖고 경찰청까지 거리시위를 가질 예정이다. 대책위는 “여성 성직자 등에 대해 경찰이 과잉진압을 불사하고 재량권을 남용하는 등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을 관행적으로 저지르고 있다.”며 “공권력의 오남용을 뿌리뽑기 위해 경찰에 대해 강도높은 사회적 고발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공사 저지를 위해 송추 원각사 입구에서 농성중인 비구니가 시공회사 직원들에게 강제로 끌려나왔으나 경찰이 방관한 일 △파업중인 한국시그네틱스 여성 노조원들에 대한 경찰의 알몸수색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촉구 집회중이던 두 수녀의 감금 등을 문제삼고 있다. 김성호기자
  • 인권위, 미군 첫 조사 착수

    국가인권위원회는 8일 취재 도중 미군으로부터 폭행·감금당했다며 인터넷방송국 ‘민중의 소리’가 주한미군을 상대로 낸 진정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인권위가 주한미군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는 것은 처음으로,이날 미 제2사단장을 상대로 자료제출 요구서와 서면조사서를 보냈다. 인권위는 “부대내 경찰권을 한국 정부로부터 위임받았음을 규정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감안할 때,주한미군이 인권위의 조사대상인 국가기관에 해당한다는 법적 판단에 따라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미 2사단측에 피의자 체포·구금 때 처우에 대한 내부규정 및 지침 등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또 민중의 소리 기자 한유진(32)씨등 2명을 체포한 미군과 유치장 구금을 담당한 미군 헌병을 상대로 통역관 및 변호사 대면요구를 무시한 이유,미란다 원칙고지 여부 등에 대해 서면조사에 응해줄 것을 요청했다. 인권위는 오는 15일까지 미 제2사단이 서면조사를 수용하는지 기다린 뒤 방문조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불법감금 윤락 방치“국가 책임”첫 인정

    감금 상태에서 윤락행위를 강요받다가 화재로 숨진 윤락여성들과 유족들에게 인권 유린을 방치한 책임을 물어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처음 내려졌다.이는 불법 윤락행위를 눈감아준 경찰공무원들에 대한 직무유기의 책임을 국가에 물은 첫 판결로 윤락여성들의 유사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 金熙泰)는 4일 화재참사로 숨진 윤락여성 5명중 3명의 유족 13명이 국가와 군산시,박모씨 등 포주들을 상대로 낸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위자료 6700만원을,업주들은 손해배상금 5억 9000여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공무원인 관할 파출소 경찰관들이 윤락업소 각방의 외부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을 식별할 수 있었고 감금된 채 윤락을 강요받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으나 이를 제지하고 업주들을 체포하는 경찰공무원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했다.”면서 “오히려 업주들로부터 뇌물을 받으며 적극적으로 방치한 점이 인정돼 화재로 숨진 윤락여성들과 유족들에게 금전적으로 위로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군산시에 대한 배상청구에 대해서는 “군산시 공무원들의 불법 윤락행위에 대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고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점과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윤락녀 인권보호 큰진전, 불법윤락 국가배상판결

    법원이 4일 불법 윤락행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어 위자료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윤락업소의 불법 윤락행위와 윤락여성의 인권유린에 대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함을 환기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관행적으로 윤락업소의 불법행위를 방치해온 경찰의 조치에 제동을 건 만큼 인신매매와 감금,성매매 강요,착취 행위 등 인권유린에 대한 경찰의 개입의무가 명확해진 것이다. 이번 판결은 또다른 윤락여성 사망사건인 군산 개복동 유흥주점 화재사건,서울 전농동의 윤락가 화재로 숨진 윤락여성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게다가,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유사한 피해 여성들을 도와 국가에 대해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전국 10만명으로 추산되는 감금 윤락 여성들의 유사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재작년 10월 소송이 제기된 후 10차례의 공판과 한차례 선고를 연기하면서 내린 재판부의 판단은 윤락여성들의 사망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던 업주들뿐만 아니라경찰공무원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국가공무원인 경찰관들이 윤락여성의 감금과 윤락행위 강요 등을 알고 있었음에도 뇌물을 받으며 이를 방치한 것을 인권유린의 ‘공동불법행위자’로 판단하고 이를 국가의 책임으로 명시한 것이다. 여성계는 이번 판결을 환영하면서 윤락여성에 대한 처벌 위주인 윤락방지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한국인 사업가 印尼서 피살

    (자카르타 연합) 한국인 사업가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소재 아파트에 장기간 감금됐다가 2일 피살체로 발견됐다. 자카르타 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알루미늄 수입상 박모(45세 추정)씨는 이날 오전 5시30분 자카르타 남부에 있는 P아파트 18층 안방에서 온몸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지난달 20일 인도네시아에 입국해 자카르타의 한 호텔에 투숙했다가 같은 달 24일 ‘미스터 용’이라는 중국계 남자와 만나 이 아파트로 유인된 뒤 변을 당했다.박씨의 동업자로 다른 호텔에 투숙했던 조모(42)씨도 같은 날 이 아파트로 유인돼 쇠사슬 등으로 온몸이 결박됐다가 2일 범인들이 집을 비운 틈을 이용해 외부에 감금 사실을 알려 출동한 현지경찰에 의해 무사히 구출됐다.
  • 호주제 2007년까지 폐지

    정부는 현행 호주제를 2007년까지 폐지하는 등 가족법상의 차별적인 요소를 정비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27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주재로 ‘여성정책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혼과 재혼 등으로 다양한 가족형태가 나타남에 따라 한가정의 가장을 아들·손자·딸 등의 순으로 승계하도록 한 현행 호주제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앞서 여성부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실시한 올해 업무보고에서도 호주제 전면개정 추진방침을 밝히면서, 특히 입양된 어린이가 양부모의 성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친(親)양자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이에 대해 유림단체 등에서 호주제 폐지에 대해 꾸준히 반대해오고 있어 향후 사회적 합의도출 과정에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또 여성에 대한 감금,노예매춘,인신매매 등 여성인권 유린 범죄를 신고하는 사람에 대해 최고 500만원까지 범죄신고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고,이를 위해‘범죄신고자 보호 및 보상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외국인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매춘행위 및 불법취업으로 적발되더라도 체불임금을 지급하며 소송 및 치료 등 권리구제 때까지 강제퇴거를 유예하고,업주들이 빚을 받아내기 위해 여권을 압류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키로 했다.정부는 특히 세계 60위권인 여성권한척도(GEM)를 2007년까지 30위권으로 끌어올리기로 하고, 2006년까지 지난해말 기준 4.4%인 5급 사무관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을 10%로 늘리고 부처별로 1명 이상의 과장 또는 국장을 여성으로 임명토록 유도하기로 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선택 6.13/ 유세 이모저모 - 비방은 ‘홍수’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주말인 9일 전국적으로 유세에 총력전을 펼치며 비난·폭로전을 이어갔고,상대당 후보에 대해 금권·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했다.선거전이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흐르고 있는 데 따른 책임 전가 의도로 풀이된다. ●불법선거 논란=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는 “지난 7일 내 지역구인 여주지구당에 민주당원으로 추정되는 20여명의 괴청년이 난입해 여성당원 등을 폭행하고 차에 감금했다.”고 주장하며,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을 ‘정치적 훌리건’이라고 비난했다. 이상득(李相得) 총장은 성명을 내고 “민주당이 패배가 예상되자 무정부적 탈법선거를 자행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이 미국과의 축구경기를 전후한 9∼11일 선관위와 우리당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대대적인 금품살포를 계획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의 막말·폭로·비방전은 구제역보다 더 나쁜 정치 전염병”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한나라당의 불법,부정선거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전국 각 지역에 벌어진 한나라당 후보 관련 불법선거 사례를 유형별로 공개했다.김원길(金元吉)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은 지방선거가 막바지에 이르게 되자,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부정선거에 몰두하고 있다.”면서 부정선거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김민석(金民錫)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 “‘94∼95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이라고 표기한 학력이 1년 전문가 과정으로 밝혀졌다.”면서 허위학력 기재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민주당도 이명박(李明博) 후보에 대해 ▲1월말 출판기념회를 빙자해 대학동문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불법서신 발송 ▲4월24일 잠원동아파트 주부들에게 책자배포 ▲5월16일 신정2동 주민 200명과 간담회를 빙자한 사전선거운동 등의 사례를 들며 이후보에 대해 사전선거운동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유세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선후보는 영등포 유세에서 “지금까지 국정을 잘못 이끈 이 정권에 국민의 뜻이 어디 있는지 보여줄 기회로 삼자.”면서 지지를 호소했다.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유권자들이 부패정권을 심판하는 결정골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경기도 광주에서 “한나라당 손학규(孫鶴圭) 후보는 안기부 예산 2억원을 받았으면서도 ‘기억이 없다.’‘안 받았다.’는 등 말을 계속 바꾸고 있다.”면서 ‘후보 자질론’을 집중 부각시켰다.한화갑(韓和甲) 대표는 양천구 유세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온 나라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고 말했는데,썩은 냄새는 이 후보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면서 “이 후보는 국세청을 동원해 세금을 걷어다 대선자금으로 썼고,안기부 예산을 총선자금으로 썼다.”고 공박했다. 이지운 홍원상기자 jj@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9)고종-니콜라이2세 특별한 관계

    ■두帝國 ‘마지막 황제' 친서외교 10여년 고종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침탈외교사에서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종(1852∼1919)은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강제로 대한제국의 황제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양위했지만 조선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니콜라이 2세(1868∼1918) 또한 1917년 2월 혁명에 의해 퇴위당한 뒤 유배지에서 처형당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두 사람이 조선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정서가 통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황제 대 황제의 동격 관계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꺼져가는 국운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고종이 일본을 밀어내기 위해 러시아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면 니콜라이 2세는 만주에서의 이익 등 국익에 반하지 않는 수준에서 ‘외교적’으로 고종을 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밀월관계의 출발은 아관파천(1896년 2월11일∼1897년 2월25일)이었다.초대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 넘게 서울에 주재하면서 고종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베베르가다리를 놓았다.대(大) 러시아제국의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에게는 저 멀리 극동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이 자국 공사관에 1년이상 몸을 의탁한 채 도움을 요청하자 애처로움과 동시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같은 관계의 성립은 니콜라이 2세의 자상한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니콜라이 2세는 전제군주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잔정이 많았다.해외 각국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들의 상주서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체크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중에는 고종과 니콜라이 2세가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30차례 가까이 등장한다.대부분은 고종이 보내고 니콜라이 2세가 받는 형식이었지만 니콜라이 2세도 여러 통의 친서를 보냈다.비공식 친서로는 1895년 7월 고종이 조선군 병참관 권동수(權東壽)를 연해주 지사 운테르베르게르 장군에게 보내 러시아 황제의 후원을 요청한 것이 있다.그러나 고종은 이후 문제가 야기되자 파견사실을 부인했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첫 공식친서는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민영환(閔泳煥) 특사를 통해 전한 다음 친서이다. 짐의 나라는 관습은 물론 언어와 문자도 고유해 외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불행하게도 짐 나라의 동쪽 이웃나라가 일본이다.일본은 섬나라이며 관습은 짐의 나라에서 유래됐고 문자와 제도도 짐의 나라에서 가르쳐주었다.…그 때문에 일본은 짐의 나라를 자기의 조상과 주인의 나라로서 섬겼다.…최근에 일본이 서양의 제도를 흉내내고 배워 동양의 맹주가 되려한다.…짐은 폐하가 짐의 나라의 실정을 동정하고 정의를 토대로 세계 열강제국이 짐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인 행위를 꾸짖고 나라의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모든 조약규정 위반을 즉시 중지하도록 권고하여 주시길 바라고 바란다.끝으로 짐은 눈물로 폐하께 호소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고종의 ‘눈물의 편지’를 읽은 니콜라이 2세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러시아는 1896년 10월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을 파견했다.그리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의 국호변경과 황제 즉위 등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자 열강 중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하고 축하전문을 보내왔다.눈치를 보던 일본,미국,프랑스,영국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고종은 혹시 러시아가 거부할 지 몰라 노심초사했으며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대군주 폐하)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연막을 쳤던 터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간의 밀착관계는 1898년 조선이 러시아 군사교관단 및 재정고문 알렉세예프의 본국소환을 요청하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종은 “재정고문과 군사교관단의 소환으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베푼 황제의 호의에 아무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러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에게 변함없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안심하도록 진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일단 무마됐다. 니콜라이 2세는 내심 불쾌했지만 복심(腹心)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이나 대한제국 정부가 앞으로도 러시아의 지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문의하라.”는 칙령을 내리는 등 고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하지만 고종을 공사관으로 피신시키겠다는 제2,제3의 아관파천 공작을 서울주재 공사관에서 보고하자 “그런 일은 현재의 정치여건 아래서는 지극히 위험한 사태를 몰고올 수도 있다.”면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니콜라이 2세가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키로 하면서 절정에 올랐다.니콜라이는 고종에게 축하친서와 함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성 안드레이 사도 1급훈장 등 러시아 최고 훈장을 선물로 보냈다.이에 앞서 고종은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바있다.안드레이 1급훈장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 최고의 훈장으로 명예는 물론 당시 가격으로 5000루블을 호가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그러나 기념식이 콜레라 창궐로 연기되는 바람에 수여되지 않았다. 고종이 “기념식은 연기됐지만 베베르를 서울에 체류토록 해달라.”고 요청하자니 콜라이 2세는 “폐하의 요청을 받고 짐은 만약 뜻밖의 어려움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폐하의 재위 경축식이 다시 열리는 내년 4월17일까지 베베르의 서울체류에 동의한다.”는 친서를 보내는 등 서로의 돈독함을 공개적으로 내비췄다. 이후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두 사람은 명헌태후 서거애도 친서,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 득남축하 친서 등을 주고 받았다.고종은 “황제께서 황태자를 생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자 한다.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축전을 치는 것이 도리였으나 외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제 서한으로 축하를 드리게 됐다.”고 기술했다.니콜라이 2세는 “감사함을 전하라.”고 공사관에 지시했다.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고종은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기를 바란다.”는 친서를 띄웠고 “러·일전쟁 발발시 중립준수를 요청한다.”는 니콜라이 2세의 친서를 전달받자 곧바로 중립선언문을 작성,일본을 비롯한 열강에 보내 화답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일본은 보란 듯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이로써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던 고종의 전략은 한계에 부딪힌다. 러시아는 모든 열강이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무력으로 독립과 불가침권을 침탈한 데 대해 견해를 밝힌 바 있다.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정부가 고종을 일본으로 이송,미리 준비한 비밀장소에 연금시킨다는 계획을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러시아는 천인공노할 일본의 계획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1905년 5월10일 외무부가 해외 러시아 공관에 보낸 회람전문) 니콜라이 2세도 이 전문상단에 “일본의 그런 행위는 어떻게든 예방돼야 한다.”고 지시하는 등 고종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덕분에 고종의 일본강제 이송 및 연금계획은 무산됐다. 고종 개인에 대해서는 우정을 유지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는 니콜라이 2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을사늑약체결 직후 고종이 “일본은 미리 작성해 온 조약문에 국새를 강탈해 날인하고 짐의 서명을 강요하였으나 단호히 거절했다.황제께서는 유럽 문명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려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시길 거듭 앙망한다.”고호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국내문제로 더 이상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후 헤이그밀사파견(1907) 등 고종의 거듭되는 친서와 러시아에로의 정치망명 요청 등에 대해 러시아는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준수와 극동질서를 강조하는 등 계속 딴전을 피웠다.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러시아혁명이라는 폭풍앞에 선 니콜라이 2세로서도 동방의 소국에 더이상의 잔정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종황제는 병이 들어 나약하고 병력이 없는 군부대신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고 다른 각부 대신은 일본인에 복종하고 있다.노쇠한 황제는 고통스러운 감금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대궐안팎은 일본인의 감시와 경비가 삼엄하다. 알현이 제한된 것은 물론 제3자를 통한 연락도 제한을 받고 있다.”는 1908년 12월8일자 소모프 총영사의 고종 및 대한제국에 대한 근황보고서는 두 마지막 황제의 관계가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종극(終劇)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주석기자 joo@ ■러시아가 본 조선王家 서울에 주재한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들은 대한제국의 왕가(王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번에 새로 발굴된 제정 러시아시대의 외교문서를 보면 러시아 외교관들은 고종과 주위의 대신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순종을 비롯해 엄비와 대원군,다음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오래전에 자주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고종은 측근에게조차 권위가 없다.또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대한제국 지배계급의 어느 한 집단이나 혹은 끊임없이 교체되는 명칭만 요란한 독립협회,황국협회,만민공동회,친러파,친일파,친미파,친영파 그리고 친독파로 구성되는 대신들에 의지하고 있다.(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 고종황제 자신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물이나 많이 쇠약해져 있다.황실에서는 고위직과 하위직을 막론하고 음모,뇌물수수,매수가 만연돼 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서 임용이 결정된다.(1903년 베베르 초대 대리공사) 명성황후의 시해이후 10여년동안 사실상 왕비의 역할을 한 엄비(嚴妃)가 서거하자 “엄비는 평민출신으로 양반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당의 굿에 의존했다.(1903년 베베르).”고 힐난한 대목도 나온다. 대원군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부정적이다.틈만 나면 고종 암살기도설 등을 정보보고하고 있다.1896년 베베르는 “고종은 부친 대원군을 숙청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러시아가 대원군을 아무르주 혹은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주기를 바라는 고종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라고 적고 있다.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황제의 친모인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민씨가 80세를 일기로 서거하자 “고종은 모친을 몹시 사랑했다.고종은 성품이 선량하고 동정심이 많고 나약한 점이 모친을 닮았다.(1898년 쉬테인)”고 애도하기도 했다. 1898년 대원군이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그로데코프에게 보낸 편지도 흥미롭다.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대원군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모와 자식간에는 화목하게 산다.그런데 수십년전 4명의 신하가 고종 임금앞에서 늙은 아비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하늘에 맹세코 말하지만 우둔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 부자지간을 이간시켜 놓음으로써 나는 지금도 아비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종은 천성은 선량하나 나쁜 신하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러시아에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차가운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순종의 즉위식이 8월27일 거행됐으나 고종과 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순종은 카키색의 군복을 입고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렸다.황제의 인상은 침울하고 창백하며 놀란 듯한 두 눈에 얼굴은 병으로 부어 환자처럼 보였다.(1908년 소모프 총영사). 고종황제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 대해 주목하면서 일일이 인물평을 늘어놓았다. 의화군 이강(李堈·후의 의친왕)을 유럽파견 공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정부가 통보해왔다.이강은 왕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궁인(귀인 장씨)에게서 얻은 왕자로 젊고 유능하며 쾌할한 성격이다.일부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세자로 책봉될 것이며 좀 우둔한 세자(순종)보다는 덕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고종은 세자를 더 사랑한다.(1895년 베베르) 또 1906년 1월1일 고종황제와 황실가족과의 신년 경축 알현식에 참석한 플란손 총영사는 “장자인 황태자는 30세로 명성황후의 적자이며 법통 후계자다.의친왕(李堈))은 17세이며 명성황후 생존시 상궁소생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삼자 영친왕(李垠)은 9세이며 엄비 소생으로 영특하고 야심만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노주석기자
  • 한국 공장운영 중국보다 불리

    한국이 중국보다 공장을 돌리기 어렵다.국내 제조업체의 인건비는 중국 평균치의 8배,최고 43배에 이르며 공단분양가는 평균 4배,최고 250배에 달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6일 한국과 중국에 각각 사업장을 가진 44개 대기업의 경쟁력 환경을 비교·조사한 ‘한·중 경쟁력 요소별 비용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 생산직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평균 7.75달러로 중국 현지공장의 0.92달러보다 8배 높았다.관리직의시간당 임금은 국내 평균치가 7.94달러로 중국 1.15달러의 7배에 달했다.국내 관리직 임금이 가장 높은 H사의 경우 시간당 15.2달러인데 반해 중국 내 임금이 가장 낮은 D사는 0.35달러에 그쳐 43배나 차이가 났다. 공단분양가는 한국이 ㎡당 평균 149달러,중국은 35달러로큰 대조를 이뤘다.국내 최고는 ㎡당 300달러,중국 최저는 ㎡당 1.2달러로 무려 250배의 차이를 보였다.산업현장에 적용되는 체감금리는 한국(연 7.6%)이 중국(5.6%)보다 2%포인트높았다.반면 자금을 차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중국이 신청일로부터 평균 25일로 한국의 19일보다 길었다. 박건승기자 ksp@
  • [심층분석 노무현] (3)이념성향 해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선후보는 당내 경선을 치르면서 라이벌인 이인제(李仁濟) 후보로부터 과격발언에 대한 집중포화를 당했다. 이 후보는 지난 88년 국회 속기록을 비롯해 각종 언론 보도와 기록을 샅샅이 뒤져 노 후보가 “노동자 세상 만들자.”“정당하지 않은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등 문제의발언을 들춰내 노 후보를 몰아세웠다. 실제로 노 후보는 집권당의 대선후보가 아닌,지난 80년대와 90년대 ‘운동권 정치인’ 시절에는 듣기에 따라 정제되지않은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89년 5공 청문회에서는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에게 의원 명패를 집어던질 정도로 제도권 정치인으로서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노 후보는 “현장의 논리라는 게 있다.상황에 따라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하게 마련이다.”“상징적인정치연설을 한 것”이라며 당시의 암울했던 정치의 현실을들며 이해를 구했다.이런 불안정하고 튀는 노 후보의 행동은 한나라당에 공격 호재로 제공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3월31일 노후보의 ‘말바꾸기 사례’를재벌·사회변혁·준법·노동자·언론탄압·정계개편 등으로나눠 거센 공세를 가하며 대선을 앞두고 ‘오픈 게임’을 치렀다.1일에는 노 후보가 전날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민주 연합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자 노 후보의 YS 비난 발언록을 공개하며 흠집내기에 열을올렸다. 실제로 노 후보는 지난 90년 YS와 결별한 뒤로 “김영삼은부산시민의 자존심을 팔았다.정계은퇴하고 용서를 빌어라.”“김영삼 정권은 정치를 음주운전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이날 “제가 YS를 많이 비난했지만,그때대로 비난의 이유가 있었다.”면서 “부부나 형제간에도곧 갈라설 듯 비난하다가도 화합해서 살듯이 당내에서도 비난할 것은 비난하면서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며 해명했다.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노 후보의 지난과격발언에 대해 “80년대는 군사독재 아래서 기본권마저 보장되지 않던 때”라면서며 과거의 ‘투사 노무현’ 이미지를 지워줄 것을 주문했다.노 후보는 지금까지 종종 거친 발언으로 정치적 고비를 맞았지만,그때마다 정면 돌파,정서적 호소,특유의 논리개발 등 다양한 대응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특히 일부 언론의 집중 포화에도 굴하지 않고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설파해 오히려 30∼40대를 중심으로 폭발적 지지층을 이끌어내는 등 ‘노무현식 뚝심’을 발휘,여당 대선후보를 쟁취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종락기자 jrlee@ ■장인의 좌익활동 기록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당내 경선과정에서상대 후보측으로부터 장인의 좌익 전력 의혹과 관련해 많은 공격을 받았다. 노 후보는 이에 “선거를 여섯번이나 치르는 동안 야당으로서 보안사,안기부의 검증을 받았고,사병으로 입대해 최전방에서 근무했다.”며 “장인의 전력에 대한 연좌제로 아내와헤어지라는 얘기인가.”라고 감성적인 접근방식으로 반격했다. 지난 73년 대검찰청 공안부가 발행한 ‘좌익사건실록’에 따르면 노 후보의 장인 권씨는 ‘경남 창원군 진전면 치안대활동사건’에 다른 67명과 함께연루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당시 28세였던 권씨는 67명 가운데 8번째 피의자로 기록돼 있다. 권씨는 조사,석방,수감,가석방,재수감 등으로 이어오다 복역중 71년 생을 마감했다. 실록에 따르면 권씨는 49년 6월 남로당에 가입하고 50년 8월 진전면 치안대를 조직했으며,‘노동당 창원군당 부위원장,반동분자 조사위원회 부위원장,반동분자 조사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것으로 돼 있다. 또 50년 9월10일 이들과 공모,불법 체포·감금·조사한 반동분자 김옥갑 외 수명에 대해 A급,B급,C급 등으로 구분, 학살음모 계획을 감행했다는 등의 기록이 포함돼 있다.권씨는 53년 다른 피의자 20명과 함께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국가보안법 위반 및 살인죄,살인 예비죄 등으로 부산지방검찰청 마산지청에 기소됐으나 구형량은 자료 유실 등의 이유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마을 주민 가운데 한 인사는 “인민군대가 창원을 점령하고 이어 경찰·공무원 등 20여명을 학살했다.권씨는 맹인인데다 공무원을 그만둬 화를 당하지 않았다.다만인민군대가 이른바 ‘반동분자’를 색출한다고 난리를 칠 때 누가 경찰이고,누가 공무원이었다는 것을 알려줘 화를 면했다.맹인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었겠나.”라고 반문했다. 김문 김상연기자 km@ ■언론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일부 유력언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91년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당시 초선의원으로 통합민주당의 대변인이었던 노 후보에 대해 한 유력신문사의 주간지가 ‘노무현 의원이 상당한 재산가’라는 식의 기사를 게재하자,“허위사실이다.”며 거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주위에서 “정치인이 언론과 싸워 좋을 게 없다.”며 만류했지만,그는 ‘전의(戰意)’를 꺾지 않았고 결국 재판에서승소한다.이때부터 이 신문사와 노 후보의 관계는 불편해졌고,지난해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더욱 심화된다. 노 후보는 지난해 6월 언노련초청 강연에서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주의 자유가 아니라기자의자유”라고 밝혔다.또 “그 자유도 취재·보도에 한정지어진 것이지 탈세의 자유나 그 밖의 어떤 초법적 자유가 아닌 만큼,기자는 사주의 특권을 비호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한국언론은 냉전적·국수주의적 시각을 가진 1∼2개 매체가 압도적 독점을 바탕으로 역사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기자는 사주의 횡포로부터 독립되고 인사·편집권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MBC라디오에 출연해서는 “언론은 국가의 공공적 재산인 만큼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제도개혁이 있어햐 한다.”고 소유형태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노 후보가 지난해 8월 한 술자리에서 ‘D일보 국유화’ 발언을 했다는 보도로 시작된 유력 신문들의 공격을 무난히 버텨낸 것은 인터넷의 급속한 상장과 보급에 힘입은 바 크다. 주동황 광운대 교수는 “조·중·동이 사상검증이나 색깔론 등으로 노 후보에게 상처를 입히려 했지만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들의 목소리가 커져 이들 메이저 신문의 목소리를 상쇄하는 효과가 있었다.”면서 “특히 네티즌 인구가 엄청나게늘어나 미디어 환경이 과거와 달리 신문·방송 위주가 아니라 인터넷이 가세하는 3자 구도로 정립돼 가는 것이 큰 몫을 했다”고 덧붙였다. 주 교수는 그러나 “무엇보다 노무현이라는 후보가 국민이바라는 정치권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들이 조·중·동의 공격을 버텨낸 주요 요인이었고 개인적으로 신중하면서 위험한 부분을 잘 피해나간 것도 한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유상덕 김상연기자 youni@ ■의원들이 본 노무현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이념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의원들의 노선차이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정치권의 이념적 성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이해됐다. 같은 부산출신으로 과거 통일민주당에 함께 몸담았던 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 의원은 “당시에도 좌충우돌하는 싸움꾼이었다.”면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급진주의자”라고평했다. 기자출신으로 40대 초반인 자민련 정진석(鄭鎭碩)의원은“의사 표시방식이 인기영합주의적이고 충동적이며 좌파적성향이 있다.”고 말했다.이어 “앞으로 그의 경제 운용기조나 기업·복지·노동·사회정책 등이 검증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일단 “‘급진적’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데까지는 동의하면서도 “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역시 기자출신의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급진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서구적 개념으로는 전형적인 진보·개혁적인 정책과 이념”이라고 설명했다.신기남(辛基南) 의원은 “진보적이지만 극좌와는 다르며 중도좌파적인 우리 당의 정강에도 부합한다.”면서 “특히 분배의 정의를 통한 사회안정을 이룩,성장을 지속시킨다는 복지정책이 마음에 든다.”고했다. 박종우(朴宗雨) 의원은 “거칠게 보이는 것은 표현상의 문제이며 맥을 잇는 정의를 살펴봐야 한다.”면서 “예전의 기준으로라면 극좌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요즘의 의미로보면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한나라당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미국에대한 발언 등을볼 때 기본적으로 할 얘기는 하고 있다.”면서 “그간 편중됐던 인식을 바로잡는 행동”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지운 홍원상기자 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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