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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호란 다시 읽기] (50)자멸의 길로 들어서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0)자멸의 길로 들어서다

    우여곡절 속에 조선이 후금과의 관계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을 무렵 명의 정세는 어떠했는가? 후금의 위협이라는 커다란 외환(外患)을 앞에 두고 명은 이런저런 내우(內憂)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극복은커녕 망하는 길로 확실히 접어들고 있었다.1630년 9월, 원숭환(袁崇煥)이 북경의 저잣거리에서 처형된 것은 명이 자멸의 길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홍타이지, 명의 허를 찌르다 1629년 10월2일, 홍타이지는 몽골의 코르친(科爾沁) 부족을 길잡이로 앞세워 북경 공략에 나섰다. 홍타이지는 원숭환이 굳게 지키고 있던 영원성과 산해관을 우회하여, 영평(永平) 관할의 용정관(龍井關)과 준화(遵化) 관할의 대안구(大安口), 희봉구(喜峰口)를 통해 직접 북경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산해관에서 영원성으로 이어지는 주공로(主攻路) 방어에 집중하고 있던 명군은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일찍부터 혼인 정책 등을 통해 몽골 부족을 회유하여, 산해관 동북의 장성 외곽을 돌파하려 했던 후금의 시도가 성공했던 것이다. 그 같은 사태는 원숭환이 이미 예견했던 것이다. 그는 일찍이 황제에게 올린 상소에서 산해관을 제외한 장성 외곽지역의 방어 태세가 몹시 취약하다는 것, 후금이 몽골을 회유하여 쳐들어 올 경우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10월26일, 후금군은 황성(皇城) 코앞의 경기(京畿) 지역까지 들이닥쳤다. 영원성에 머물던 중에 홍타이지의 공격 소식을 접한 원숭환은 당황했다. 그는 병력을 끌어 모아 그야말로 미친 듯이 북경을 향해 달려갔다. 원숭환은 산해관에 도착한 직후 참장(參將) 조솔교(趙率敎)에게 병력 4000을 주어 준화를 구원하도록 명령했다.11월4일, 후금군은 준화성 공격에 나섰다. 왕원아(王元雅)가 이끄는 명군은 힘껏 저항했지만 곧 무너지고 말았다. 성안에서 후금군에게 내응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준화를 향해 달려오던 조솔교는 중간에 복병을 만나 전사하고 말았다. 성 함락 후 준화에서는 후금군에 의해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준화 함락과 대학살 소식에 북경은 전율했다. 11월17일,90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밤낮으로 달려온 원숭환은 북경 광거문(廣渠門) 앞에 이르렀다. 병사와 말 모두 굶주림도 잊고 휴식도 없이 달려온 길이었다. 부총병 주문욱(周文旭)은 일단 휴식을 취하고 상황을 보아 북경으로 들어가자고 했지만 원숭환은 듣지 않았다. 황성이 포위되려는 마당에 휴식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11월20일, 원숭환의 명군은 광거문 앞에서 후금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6시간 이상 벌어진 10여차례의 사투 끝에 후금군은 뒤로 물러났다. 무리한 행군과 굶주림 속에서도 정신력으로 버틴 끝에 얻은 승리였다. ●홍타이지 원숭환에 패해 후퇴하다 11월23일, 후금군을 물리친 뒤 원숭환은 숭정제에게 장거리 행군과 전투, 그리고 노숙에 지친 병사들이 성안으로 들어가 휴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다. 숭정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원숭환이 분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숭정제는 이미 원숭환에게 노여움을 품고 있었다. 후금군이 북경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 원숭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숭환 휘하의 병력은 엄동에 다시 노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11월27일 좌안문(左安門)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원숭환은 후금군을 격파했다. 원숭환이 있는 한 북경을 도모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홍타이지는 병력을 북경 외곽의 남해자(南海子)란 곳으로 철수시켰다. 그는 북경에서 물러나면서 숭정제에게 서신을 보내 화친을 맺자고 요구했다. 일종의 양동작전이었다. 홍타이지는 이후 북경의 상황을 관망하면서 북경 주변의 여러 지역에 병력을 풀어놓았다. 후금군은 영평(永平), 준화, 난주( 州), 천안(遷安) 등지의 성과 촌들을 마구잡이로 겁략했다. 그들은 도처에서 사람과 가축, 각종 물자를 약탈하고 저항하는 인원들을 도륙했다. 황성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명군은, 후금군이 외곽 지역에서 벌이고 있던 약탈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후금군은 통주(通州) 등지에서 1000척 가까운 조운선(漕運船)을 불태웠다. 수만 명의 포로를 획득하고, 후금군 병사 한 사람에게 1필씩 돌아갈 만큼의 우마를 획득했다. 잔혹한 학살과 방화, 그리고 약탈 속에서 북경 주변은 초토화되었다. 비록 황성은 어렵사리 지켜냈지만 명은 심장부가 유린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홍타이지는 원정을 통해 또 다른 명의 장성(長城)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너뜨리게 된다. 그 ‘장성’이란 다름 아닌 원숭환이다. 후금군은 광거문 전투에서 원숭환에게 패했지만 귀중한 포로 두 사람을 사로잡았다. 마방태감(馬房太監) 양춘(楊春)과 왕성덕(王成德)이 그들이었다. 홍타이지는 이 두 사람의 포로를 활용하여 원숭환과 숭정제를 이간시킬 수 있는 반간계를 구상했다. 양춘과 왕성덕을 감금해 놓은 방 바로 옆에서 홍타이지의 부하 고홍중(高鴻中)과 포승선(鮑承先)이 밀담을 나누었다. 밀담은 ‘원숭환이 이미 홍타이지와 몰래 약속하여 북경을 공취(攻取)하기로 했고 곧 함락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겨우 벽 하나로 나뉘어진 옆 방에서 환관 두 사람은 고홍중과 포승선의 밀담 내용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홍타이지와 후금군 지휘부가 의도적으로 그 같은 상황을 연출했음은 물론이다. 11월29일, 홍타이지의 명을 받은 고홍중과 포승선은 태감 두 사람을 고의로 풀어주었다. 자금성으로 달려온 두 환관은 숭정제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홍타이지가 북경을 기습한 직후부터 명 조정에 있던 엄당(奄黨)의 잔당들은 원숭환을 제거할 함정을 이미 만들어 놓고 있었다.‘원숭환이 오랑캐를 일부러 사주하여 북경으로 끌어들였다.’는 참소가 주된 내용이었다. 또 ‘원숭환이 병력을 이끌고 북경 옆의 통주에 다다를 때까지 후금군과 한번도 접전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도 떠돌고 있었다. ●원숭환, 하옥되다 당시 19세에 불과한 데다, 대국(大局)을 볼 수 있는 역량이 없었던 숭정제는 홍타이지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1629년 12월1일, 황제는 원숭환을 황성으로 불렀다. 명목은 ‘군량 문제를 의논하자.’는 것이었다. 이미 ‘원숭환이 오랑캐와 내통하고 있다.’고 믿었던 숭정제는 혹시라도 원숭환이 낌새를 채고 오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군량 문제’를 운운했던 것이다. 원숭환이 황성 앞에 도착했을 때 문지기들은 성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오랑캐’에게 북경 주변이 포위된 계엄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는 대신 성 위에서 밧줄에 달린 바구니가 내려왔다. 당시 계요총독(遼總督)이자 병부상서 직책을 갖고 있던 원숭환은 바구니에 실린 채 황성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것 자체가 치욕이었다. 황성으로 들어선 직후 원숭환은 금의위(錦衣衛)의 감옥에 투옥되었다. 반면에 그와 동행했던 총병 만계(滿桂)와 흑운룡(黑雲龍) 등은 황제로부터 칭찬을 듣고 승진했다. 내각 대학사 성기명(成基命)이 원숭환을 구명하기 위해 애써 숭정제에게 호소했지만 황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림당(東林黨)에게 복수하기로 작심했던 엄당의 신료들은 원숭환을 죽이라고 아우성이었다. 원숭환은 동림당 계열의 대학사 전용석(錢龍錫)의 문인이었기 때문에, 원숭환의 ‘죄’를 물고 늘어지면 동림당 계열을 일망타진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홍타이지의 반간계는 완벽하게 성공했다.1618년 누르하치가 무순성을 공격하여 선전포고했던 이래 후금군은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그 승승장구에 제동을 걸고 끝내 누르하치를 비명횡사시킨 장본인이 바로 원숭환이었다. 그가 영원성과 산해관을 막아서는 한, 아니 그가 존재하는 한 중원 정복이라는 목표는 실현될 수 없었다. 원숭환은 바로 명의 장성이었다. 그런데 그 ‘장성’이 반간계 한 방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요컨대 홍타이지는 탁월했고, 숭정제는 암우(暗愚)했다. 지도자의 차이가 후금과 명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中법원, 미성년 성매매조직 만든 교사에 사형선고

    최근 중국에서 교사들로 이루어진 성매매 조직을 만들어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한 중학교 교사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중국 구이저우(貴州)성의 모 중학교 교사 자오칭메이(赵庆梅)외 17명의 교사는 지난 2006년 3월부터 약 4개월간 미성년자 성매매를 알선해 오다 지난 8월 쓰촨(四川)성에서 체포됐다. 구이저우성 중급인민법원(畢節地區中級人民法院)은 지난 14일 이를 주도한 자오씨와 남편 츠(馳)씨에게 성폭행·미성년자 성매매 법 위반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자오씨는 지난 2006년 3월 인근 중학교 교사인 남편 츠씨와 함께 범행을 계획했다. 츠씨는 근처 여관에 2명의 여학생을 감금한 후 성폭행했으며 4900위안(한화 약 63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알선했다. 이후 두 사람은 교사들로 이루어진 ‘미성년자 성매매’ 조직을 결성하고 자신의 반 학생과 성매매를 주선해 4000위안(약 51만원)을 받기도 했다. 이 조직은 2006년 3월부터 6월까지 28명(중학생 22명, 13세 미만 6명)의 미성년자를 감금한 후 성매매를 주선한 댓가로 총 3만 2350위안(약 420만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법원은 “감금·폭행 뿐 아니라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매매를 강요한 죄가 매우 크다.”며 “특히 자오씨에게는 불법 조직을 결성하고 남편이 성폭행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의 악질 행위로 사형을 선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자오씨는 법원 판결 후 “내 죄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사회와 피해자의 가족에게 모두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중증 정신질환자 감금·학대…인권위, 병원장등 4명 고발

    광주 동구의 400병상 규모인 A정신병원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의 중증 정신지체자 김모(24), 이모(19), 조모(20)씨와 박모(15)군을 매트리스가 뜯겨나간 철제침대에 올초부터 4∼6개월 동안 묶어 놓았다. 병원측은 목욕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기저귀만 채운 상태에서 팔과 다리를 묶어 놓았으며, 병원 직원과 다른 환자들이 볼 수 있도록 방치해 놓았다. A병원은 또 미인가 복지시설 등에서 환자의 부모도 모르게 환자를 넘겨받아 부모의 서명이 위조된 동의서를 바탕으로 입원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병원은 입원에 필요한 환자의 주민등록등본 15건을 동사무소에서 부정 발급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5일 환자를 감금·학대하고 서류 등을 위조해 강제 입원시킨 병원장 주씨와 신경정신과전문의 이모씨, 전·현직 원무팀장 등 4명을 형법 273조(학대) 및 276조(감금)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이 병원의 위법 행위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전국 정신의료기관에서 아동과 성인을 같은 병실에 수용하는 실태를 조사해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국인 임직원 감금 상하이 화인방적 사장 제외 6명 7일만에 풀려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상하이 충밍현에서 중국인 근로자들에게 감금돼 있던 화인방적 한국인 임직원들 중 우영판 사장을 제외한 6명이 30일 풀려났다. 풀려난 직원들 가운데 일부는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 사장은 현지에 남아 은행 및 공장 소재지인 충밍현 신허진 정부와 토지대금 및 은행 대출금 정산을 위한 협상을 계속할 예정이다. 중국인 근로자들은 지난 23일 회사를 비정상적으로 청산하려 한다는 이유로 우 사장 등 7명을 공장에 감금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은 집단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이날 화인방적은 중국인 근로자들에게 11월분 임금을 한달 앞당겨 지급했다. 화인방적측은 현재 회사 자산에 대한 실사작업이 진행 중이며 중국측이 요구하는 금액이 정당한지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jj@seoul.co.kr
  • ‘바다를 품은 사찰’ 김제 망해사

    ‘바다를 품은 사찰’ 김제 망해사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나들목을 나서면 횡으로 드넓은 평야가 확 펼쳐진다. 국토의 3분의2가 산지인 이 땅에서 하늘과 땅이 맞닿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김제·만경평야다. 내 나라 안 으뜸가는 곡창지대. 그 지평선의 끝자락, 그리고 막 수평선이 시작되는 곳에 망해사(望海寺)가 자리잡고 있다. 동해 양양의 낙산사, 남해 여수의 향일암 등 바다에 접한 명찰들과 규모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해조음(海潮音) 가득한 망해사 또한 서해를 대표할 만큼 빼어난 주변 경관을 갖고 있다. 망연히 바다만 바라보고 서 있을 것 같은 절. 승속의 구분이 엄연한 절집 이름에서 여전히 끊어내지 못한 세속에의 그리움이 느껴지는 불경을 범하며 절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 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절집 망해사로 가는 길의 초입은 드넓은 평야다. 조정래는 소설 ‘아리랑´에서 ‘그 끝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얼마나 들판이 넓었으면 ‘징게맹갱 외애미뜰(김제 만경 너른 들)´이란 말이 나왔을까. 망해사는 지평선이 수평선과 만나는 진봉산자락 한 귀퉁이에 비좁게 서 있다. 징게맹갱 외애미뜰의 장대한 규모에 비교하면 손바닥보다도 작은 사찰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과 학승 몇 명이 기거한다는 낙서전, 그리고 요사채와 범종각 등이 절집의 전부다. 거기에 팽나무 몇 그루가 찰랑거리는 바닷물을 내려보며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절집 뜨락만은 세상의 어느 거찰보다 넓다. 바다-새만금간척사업이 바다를 갈라놓았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자면 육지 속 바다라고 불러야 옳을 듯하다-를 앞마당 삼고 있기 때문이다. 계곡물과 강물소리를 듣는 절집은 흔천이지만, 지척에서 바닷물이 들고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해우소의 창문은 차라리 해학적이다. 슬며시 미닫이문을 열면 바다가 한걸음에 달려오는 듯하다. 살아온 연륜도 짧지 않다. 처음 세워진 시기에 대해 백제 의자왕 2년(642년)에 부설거사가 세웠다고도 하고,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부설스님이 지었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개창 시기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세(寺勢)를 크게 확장시킨 인물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인 진묵대사다. 전라북도 지정문화재 자료 128호로 지정된 낙서전도 1589년(선조22년)에 그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 작지만 풍광만은 너른 곳 낙서전 앞 바닷가쪽에 7∼8m 거리를 두고 선 팽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끈다. 나이는 400세 남짓. 전라북도 기념물 제114호로 지정된 이 나무들에는 각 각 할배나무와 할매나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안쪽의 할매나무는 바깥쪽 할배나무에 비해 다소 왜소한 편이다. 할배와 더불어 거친 세상과 마주하며 애면글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던 할매의 신산한 삶을 보는 듯하다. 절집 위쪽의 전망대에 오르면 작은 진봉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치고는 참으로 넓은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군산에서 김제, 부안까지 내쳐달리는 황톳빛 바다가 망망대해를 이루고, ‘징게맹갱 외애미뜰´의 누런 들판이 비슷한 크기로 뭍을 뒤덮고 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로 눈을 돌리면, 오른쪽엔 내륙의 한가운데를 관통해온 만경강이 마지막 줄기를 토해내고, 왼쪽으로는 심포항이 바다 위에 고즈넉하게 걸려 있다. 대해(大海)와 단절된 탓일까. 광대하기는 하나 어딘가 쓸쓸함을 감출 수 없는 풍경이다. 범종각에 걸린 낙조가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대해의 위세를 잃어버린 바다 아래로 몰락하는 해가 여느 곳보다 유난히 붉을 듯하다. 김제땅에서 바닷가와 만난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곳은 심포항이다. 백합 산지로 많이 알려진 곳. 물때에 따라 끝이 4㎞에 달한다는 심포 갯벌은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새만금 물막이공사로 인한 갯벌 생태계 변화가 걱정거리지만 어민들은 여전히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는다. 요즘은 관광단지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찾는 발길은 많지 않은 편. 아직까지는 때묻지 않은 소박한 어촌풍경을 느낄 수 있다. 닻을 내린 채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며 서 있는 고깃배들의 모습이 평온하기만 하다. 비승비속의 호방한 행적으로 유명했던 진묵대사는 심포항에서 지척인 불거촌 태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기를 잡은 뒤에는 통발을 잊는 법(得魚忘筌)´이란 경구를 후세에 남겼다고 한다. 새만금 물막이공사의 당사자들은 거대한 둑으로 물길을 막아도 갯벌이 예전과 같은 생명력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기왕 고기는 잡았더라도, 통발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글 사진 김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서김제 나들목→삼거리 우회전→29번 국도 만경 방향→만경고 삼거리→좌회전→702번 지방도 심포항 방향→망해사. 심포항은 망해사를 지나쳐 직진하면 된다. 김제시청 063)540-3114, 망해사 543-3187. # 맛집 김제 시청 인근 매일회관(542-7345)은 청국장, 김치찌개 등에 20여가지 반찬이 딸려나오는 백반집.5000원.‘가격대비 성능’이 좋다. 시청 지나 지평선마트 사거리에서 우회전, 시장길을 따라가다 새마을금고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 낙원예식장 근처다. 시내 수협 옆의 변산온천산장바지락죽 김제점(546-3939)은 바지락죽으로 유명한 변산온천산장의 김제 분점.2만원짜리 바지락정식을 주문하면 바지락전, 바지락죽, 초밥, 백합구이, 조개구이 등이 나온다. # 주변 관광지 금산사(geumsansa.org)는 후백제의 왕 견훤이 아들에게 감금된 역사를 간직한 대찰이다.3층탑 형식의 미륵전(보물 62호)은 내부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독특한 건물.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 자락에 있다.1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의 치수시설인 벽골제가 지척이다. 김제시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부량면 방향으로 달리면 된다.
  • 상하이 한국 방적공장 중국인 근로자들 한국인 7명 나흘째 감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상하이(上海)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방적공장 임직원 7명이 중국인 근로자들에 의해 나흘째 감금돼 있다. 26일 주상하이 총영사관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 충밍(崇明)현 신허(新河)진에 있는 H방적 공장에서 사장을 비롯, 한국인 7명이 지난 23일부터 중국인 근로자 1800여명에 의해 공장에 감금돼 있다. 중국인 근로자들은 회사측이 지난 20일 공장의 생산설비를 일부 처분하자 야반도주하려는 것으로 간주하고 11월 임금과 경제보상금, 밀린 잔업수당 등을 요구하며 한국인 임직원을 감금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한국인 직원들이 중국인 근로자에게 구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임직원들은 현재 공장밖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있으며 공장 출입시 중국인 근로자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H방적은 중국인 근로자 1800여명을 두고 10년 전부터 충밍현에서 방적공장을 운영해 왔으며 2년 전에는 제2공장을 설립하는 등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특히 내년 신노동계약법 발효 등 경영환경 변화로 자금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주상하이 총영사관은 사건발생 직후인 23일 담당 영사관을 충밍현 공장으로 파견, 현지 공안에 한국인 직원들의 신변안전을 요청하는 한편 지방정부·회사측과 원만한 사태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와 근로자들은 현재 회사측을 상대로 금융기관 대출금과 직원 급여, 잔업수당 등 120억원 가량을 요구해놓고 있다. jj@seoul.co.kr
  • 식물인간 의사소통 기술 개발

    의식은 말짱하지만 눈만 깜박일 뿐 언어 등 모든 신체기능이 마비된 이른바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 환자의 의사소통 희망 내용을 실시간 소리로 전환시키는 기술이 나왔다.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 신경과학학회 학술회의에 보고됐다. 미국 보스턴 대학의 조너선 브룸버그 박사는 환자가 스스로 말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이 때 언어를 관장하는 뇌부위의 신경신호를 포착, 전자신호로 전환시킨 뒤 이를 다시 말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는 작업에 성공했다고 밝혔다.영국 데일리 메일이 전문지인 ‘과학 선구자들’(New Scientist)을 인용,16일 보도했다. 연구진은 8년 전인 1999년 교통사고로 감금증후군 환자가 된 뒤 눈의 움직으로만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에릭 램지(27)를 신기술 실험대상자로 삼아 성공을 눈앞에 뒀다. 앞으로 나머지 모음과 자음까지 소리의 영역을 넓혀 궁극적으로는 환자와의 대화를 실현할 날도 머잖았다는 게 연구진의 전망이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알몸감금쇼 “심하다” “새롭다”

    알몸감금쇼 “심하다” “새롭다”

    ‘DMB판 올드보이’를 내세우는 감금·탈출 리얼리티쇼가 국내 처음으로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위성DMB(이동멀티미디어방송) 사업자인 TU미디어가 14일 오후 7시30분에 첫 방영할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올누드보이’(15세 이상 시청가). 출연자 3명은 영화 ‘올드보이’ 주인공처럼 맨몸으로 밀실에 감금된 채 만두만 먹으면서 지내야 한다. 이들이 탈출할 수 있는 길은 700만원 상당의 경품을 모으는 방법뿐. 감금방에서 지내는 이들에게 지급되는 것은 경품응모를 위한 라디오, 컴퓨터, 엽서, 볼펜, 모니터(지시사항 전달기구), 수신전용 전화 등 단 6가지다. 이 밖에는 팬티 한장만 걸친 채 칫솔 하나 없이 지내야 하며, 다른 먹을거리나 생필품이 필요하면 전달받은 임무수행에 성공하거나 시청자와 경품을 교환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TU미디어는 이들의 감금·탈출기를 프리미엄 채널인 TU엔터테인먼트(채널 3번)를 통해 매일 저녁(월∼금) 6시55분부터 매시간마다 5분씩 5차례에 걸쳐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기로 했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주)파란고양이의 홍재현 PD는 “기획도 형식도 국내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시도되는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서 “개그맨 지망생들이 출연해 즉흥적인 재치와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생방송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출연자들은 라이브 개그공연장인 ‘컬투홀’에서 공연하거나 SBS ‘웃찾사’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쌍방향 참여가 가능한 DMB의 미디어 성격을 잘 살렸으며, 매시간대 실시간 중계 또한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에서는 보기 힘든 획기적 편성”이라면서 “컨셉트 자체는 뉴미디어 환경에서 방송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앞선 시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참신함과 특이점에도 불구하고 선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극한 조건에서 생존을 위해 시청자들이 문자메시지로 지시하는 미션과 벌칙을 수행해야 하고, 탈출하기 위해 경품을 빨리 따야 하는 등 상황을 절박하게 몰아가기 때문이다. 정덕현씨는 “시선을 끌기 위해 상황 자체를 과도하게 설정해 프로그램이 자극적·가학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면서 “단순히 재미만 추구해서는 시청자들이 금방 외면하기 쉬운 만큼 콘텐츠의 질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역사가 당시 재판장 심판할 것”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역사가 당시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재판장을 심판할 것입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가 12일 조작됐을 개연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린 ‘간첩조작 의혹사건’의 피해자인 김양기(57)씨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고문과 감옥살이, 그후 이어진 보안관찰로 인해 내가 겪었던 고초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일본 도쿄에서 운수업을 하던 숙부의 초청으로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숙부 일을 도와준 뒤 국내로 돌아왔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1986년 갑작스레 보안사 수사관에게 연행됐다. 당시 그는 설을 쇠기 위해 잠시 귀국했던 숙부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들렀다가 ‘재일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해 보고했다.’는 혐의로 보안사에 끌려갔다. 그는 “당시 중풍으로 몸이 불편했던 숙부도 연행돼 한달 동안이나 보안사 지하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줄곧 “영장도 없이 보안사에 43일간 불법 감금된 상태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온갖 가혹 행위를 이기지 못해 간첩 행위를 자백했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이후 간첩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5년을 복역했고,1991년 5월 정부의 특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보안관찰은 1999년까지 계속됐다. 그는 “명예회복을 해야겠다는 일념이 없었다면 이미 미치광이가 됐을 것”이라면서 “요즘도 고문 후유증에 따른 당뇨 등으로 약봉지를 달고 살고, 잠을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하소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어떤 이는 지난해인 2006년이 모나리자 탄생 500주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이 1507년 완성된 것으로 보아 2007년이 500주년이라고 얘기한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검은 의상을 입고 상반신을 우측의 관객 쪽으로 향하면서도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며 입가에 신비스런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의 이 스푸마토(Sfumato)기법의 상반신 유화초상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술작품임에 틀림없다. 눈썹은 면도로 밀었는지 없고 머리엔 잘 보이지 않지만 베일을 쓰고 있다. 환상적인 자연 풍경이 멀리 보이는 테라스에서 난간과 두 개의 원주를 뒤로 한 채 반원형 나무의자에 앉아 왼팔은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고 오른 손은 왼손 손목 위에 포개 놓고 있다. 모나리자 때문에 떼돈 번 사나이 얘기부터하자. 오래 전 미국의 흑인 저음가수 낫킹콜이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다. 그가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공연할 때 그 유명한 노래 ‘모나리자’를 스스로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대 이름을 불러본다. 신비한 미소를 띤 부인이여....” 1950년 6월 10일 낫킹콜이 발라드풍의 ‘모나리자’를 불러 이를 모나리자에게 바치자 300만장의 레코드판이 팔려나가는 기적적인 매상을 보여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이 젊은 날의 멜로디는 지금도 내 귓가에 흐르고 있다. 나의 가라오케에서의 18번의 하나는 바로 이 노래 모나리자가 된 것이다. 모나리자로 큰돈을 챙긴 여인은 당대의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이다. 그녀는 2003년 모나리자 이름을 빌린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즐리 여대에 새로 부임한 미술사 교수로 출연하면서 몸값으로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 약 2백 80억 원을 챙겼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용 면에서 모나리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무슨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까? 2005년 말 화란의 암스테르담 대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연구팀의 감성 인식 컴퓨터를 통한 그림 이미지 공동연구 결과 모나리자의 미소는 인간의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 중에서 행복 83%, 불쾌함 9%, 두려움 6%, 분노 2%, 무표정 1%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라움은 전혀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모나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모나리자의 정체를 놓고 몇 가지 대조적인 주장이 있다. 1)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가 죽자 그의 전기를 쓴 조르지오 바사리의 주장에 의하면 피렌체의 비단 장사였던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이라 본다. 그리하여 조콘도의 여성형인 ‘라 조콘다’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모나리자 혹은 라 조콘다로 불린 것은 19세기에 와서 이고 그 전에는 ‘한 피렌체부인의 초상’ 혹은 ‘면사포를 쓴 창부’라고 불리기도 했다. 2004년 이태리 학자 쥬세페 팔란티니는 이 모나리자가 1479년 생으로 24세 때 이 화가의 화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5명의 자녀를 낳고 1542년 63세로 죽어 피렌체의 상오솔라 수도원에 묻혔음을 밝혀낸다. 2) 벨연구소의 슈와르츠 박사는 컴퓨터로 디지털 해상분석을 통하여 얼굴 라인을 대조한 결과 이 그림은 여성화되긴 했으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의 초상화라는 주장을 도출하였다. 그렇다면 여장남인으로서 다빈치의 얼굴윤곽을 닮은 가공의 여인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3) 미술 감정가 헨리 퓰리처는 다빈치의 후견인이었던 밀라노의 메디치가(家)의 쥴리아노의 부인 프랑카빌라 공작부인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녀의 애칭도 ‘라 조콘다’였다. 4) 다른 연구가 뤼르센은 그림의 여인은 밀라노 공작의 부인인 아라곤 이사벨라라고 주장하였다. 다빈치는 11년간 밀라노 공작을 위하여 궁정화가로 일하였었다. 다른 유명화가 라파엘이 그린 밀라노 공작부인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는 어디에 그려져 있는가? 보통 캔버스가 아니라 포플러 나무판에 그려져 있다. 모나리자의 화폭 크기는? 세로 77cm, 가로 53 cm이다. 35인치 텔레비전 화면의 크기와 비슷한 정도이다. 모나리자의 몸값은 얼마짜리인가? 기네스북에 의하면 보험에 든 그림 중에 가장 값비싼 그림이 바로 모나리자라고 한다. 모나리자는 1962년 당시 미국 순회 전시를 위한 보험에 들 때 실제로 1억불로 감정하였다. 이것을 현가(2006년 기준)로 치면 적어도 6억 7천만 달러로 환산할 수 있다. 우리 돈으로 6천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모나리자를 욕보인 남자들은 누구인가? 1) 1956년 신원미상인 사람이 산을 모나리자에 뿌려 그림하반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2) 같은 해 12월 30일 남미 볼리비아사람인 우고 비예가스는 모나리자에 돌멩이를 던져 손상을 입혔다. 그 결과 모나리자의 왼쪽 팔꿈치에 상처가 가게 되었다. 이제는 그림에 방탄유리를 씌어 전시 중이다. 3) 1911년 8월 21일 이태리인 빈센초 페루지아라는 루브르미술관 목공 직원은 모나리자를 훔쳤다. 그녀를 납치(?)후 2년간 자기 아파트에 감금하였다가 피렌체의 미술상 알프레도 게리에게 팔았고 이것이 뒤 미쳐 알려지자 우여곡절 끝에 이태리에서 순회전시가 끝나면서 루브르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페루지오는 나폴레온 시대에 프랑스가 빼앗아간 이태리의 문화유산을 도루 찾아오기 위할 목적으로 훔쳤다고 증언하였으나 실은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발피에르노에 고용되었었다. 그는 모사전문 화가 이브 쇼드론에게 모나리자의 모작을 그리게 하여 진품이라고 속이고 미국의 부호 여섯 명에게 각각 팔아치워 큰돈을 챙겼다. 페루지오는 1년 15일 감옥에 있다가 이태리에 대한 애국적인 입장을 참작하여 풀려났다. 이를 사람들은 20세기 최대의 미술품도난 및 사기 사건으로 일컫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모나리자 때문에 구치소 신세를 졌다? 1911년 모나리자가 도난당했을 때 프랑스의 전위 시인 기욤 아포리넬리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체포되었고 그의 친우였던 파블로 피카소도 이어서 체포 구금되었다. 나중 그들은 풀려났지만 피카소는 일생 모나리자의 저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릴린 몬로와 모나리자의 인연은? 1963년 세계적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은 현대적 아이콘으로 모나리자를 나염 천에 그려 넣음으로써 그가 즐겨 그린 마릴린 몬로와 함께 자기의 마스코트임을 나타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모나리자가 미국 나들이를 했을 때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함으로써 그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마릴린 몬로와는 앤디워홀의 붓끝을 통해 모나리자를 사이에 두고 다시 연계되는 꼴이 되었다고나 할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나리자의 관계는? 미국의 뉴요커 지는 1999년 2월 8일 모나리자 이미지를 모니카르윈스키와 합성한 그림 ‘모나 모니카’를 표지에 실음으로써 클린턴에게 아픔을 주었다. 모니카르윈스키는 클린턴 대통령 집무실 옆방에서 지퍼게이트라 불리는 오랄 섹스 스캔들의 장본인이다. 살바도르 달리와 모나리자의 콧수염? 1919년 다다이즘화풍의 거장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모습에 콧수염과 염소 턱수염을 단 그림을 발표한바 있으나 이에 한 술 더 떠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54년 콧수염 달린 자신의 초상화를 모나리자 스타일로 형상화하였다.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고려대 ‘출교 무효’ 항소키로

    고려대는 31일 처장단 회의를 열고 이른바 ‘교수 감금사태’에 연루된 학생 7명의 출교 조치를 무효화한 법원 판결에 대해 항소하기로 했다. 고려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중대하고도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이 아무런 반성도 없이 면죄부를 받아서는 대학의 존재 가치가 부정된다는 판단 하에 항소할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다만 고려대는 징계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법원의 지적을 수용해 조만간 출교자들에 대한 징계 조치를 재심키로 결정했다.
  •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 “간첩누명 씌운 정부 책임져야”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 “간첩누명 씌운 정부 책임져야”

    “죄없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면 (정신 이상이 생겨)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4일 ‘송씨 일가 간첩사건’은 정보기관의 반인권적 간첩조작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리자 피해자 송기복(74·여·서울 관악구 신림1동)씨는 “이제야 진실이 밝혀졌지만 지난 25년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 신광여중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그는 1982년 3월 아버지 송창섭씨에게 포섭당해 간첩활동을 했다며 안전기획부(현 국정원)에 끌려가 4개월간 감금을 당한 채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는 “당시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안기부 직원이 수업 시간에 들이닥쳐 ‘아버지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며 끌고 갔다.”면서 “안기부에서 수사관이 손을 뒤로 묶은 뒤 욕을 하고 허리띠로 폭행하며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 석방된 뒤에도 한동안 자다가 일어나 ‘나는 아니다.’라고 외치는 등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치를 떨었다. 당시 안기부는 6·25때 충북도 인민위원회 상공부장으로 활동하다 월북한 후 남파된 그의 아버지 송창섭씨가 서울·충북을 거점으로 25년간 간첩 활동을 하며 기복씨와 그의 어머니 한경희씨, 동생 기수씨 등 자식까지 포섭해 간첩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안기부 밀실에서 4개월간 불법 구금돼 구타와 고문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주변 친구들도 ‘빨갱이’라며 등을 돌렸다. 공군 중령이었던 남편은 그 해 7월 강제 전역됐다. 남편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진실 규명을 위해 뛰어 다니다 2002년 진실 규명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편이 숨을 거두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누구보다 건강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것이 유언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제야 간첩 누명은 벗었지만 고문과 거짓 재판으로 우리 가족에게 간첩혐의를 씌웠던 장본인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을 맺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 DJ납치사건 남은 의혹·과제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 DJ납치사건 남은 의혹·과제

    김대중(DJ)전 대통령의 납치 사건에 대해 국정원 진실위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지시로 실행됐고 사건 이후 조직적으로 은폐됐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1973년 8월8일 DJ가 일본 도쿄 소재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납치돼, 바다로 옮겨져 용금호에 감금됐다가 8월13일 서울 동교동 자택 부근에서 풀려난 것을 말한다. 진실위는 모든 의혹 사항을 해소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중정직원 11명과 용금호 선원 4명 등의 증언을 듣기는 했으나 핵심자료인 ‘KT공작계획서’를 찾아내지 못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최고위 지시자를 놓고는 이 전 부장의 지시설과 박 대통령의 지시설이 엇갈린 상태에서 구체적인 증거 없이 다소 무리한 결론을 내렸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불신을 받던 이 전 부장이 DJ의 반유신활동과 관련된 중정의 대처 방안에 대해 강한 질책을 받자 과잉 충성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 전 부장과 이철희 당시 중정 정보차장보, 김종필 총리, 김정렴 비서실장, 김치열 법무장관 등은 “이후락이 옆에다 갖다 놓고서 나한테 얘기를 해.”라며 박 대통령이 노발대발했다고 증언했다. 반면 피해자인 DJ의 증언, 사안의 중대성, 박 대통령의 사후 관리 대책 지시를 종합하면 박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란히 제시했다. 국가적인 공작을 이씨가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당시 하비브 주한 미 대사가 국무장관에게 “납치사건은 이후락의 지시에 의해 이뤄진 게 확실하다. 박 대통령의 명백하거나 암묵적인 승인하에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한 전문도 소개했다. 진실위는 공작 목표에 대해서도 단순 납치인지, 살해가 최종 목적인지 명쾌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KT공작계획서’를 작성했다고 시인한 김모씨는 “일본 야쿠자를 이용한 납치계획이었다.”고 증언했으나 윤 모씨는 “야쿠자를 활용, 암살하는 안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엇갈린 진술에 진실위는 “다수의 중정요원 개입, 단계별로 납치가 진행돼 국내로 데려온 후 사면한 상황을 종합하면 공작계획 단계에서 살해안이 논의된 것이 사실이지만, 납치 실행단계에서는 단순 납치 방안이 확정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공작을 지시한 이 전 부장과 지휘라인의 책임자인 김치열 차장은 건강 악화로, 공작부서 책임자인 하모 국장, 현지 공작 총괄책임자인 김모 주일대사관공사는 사망하는 등 핵심 인물에 대한 면담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열린세상]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 공동상임대표·변호사

    [열린세상]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 공동상임대표·변호사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휴대전화요금을 내리겠습니다’‘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머리를 안 깎아도 되게 하겠습니다’….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매니페스토 교육을 시켜보았다. 그후 ‘내가 만일’하고 대선공약을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내놓은 공약들이다. 그런가 하면 ‘경제를 부유하게 하겠습니다’‘국민 모두의 평등을 중요시하겠습니다’‘남북통일에 신경 쓰겠습니다’‘국민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는 것도 있었다. 순진하면서도 이상적이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도 이런 순진한 생각으로 대선공약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번 ‘또라이’ 소리 들을 작정을 하고 마음껏 순진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정치판부터 뜯어고치겠다. 대통령이라는 명칭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큰 대(大)자에, 거느릴 통(統)자, 거느릴 령(領)자다. 지금같은 세상에 누가 누구를 크게 거느린단 말인가. 그래서 대통령이란 명칭을 주사(主事)로 바꾸겠다. 지금은 6급 공무원을 가리키지만 주사란 본래 사무를 책임지고 맡은 사람이란 뜻이다. 얼마나 겸손하고 일꾼 같은가. 주석(主席)보다 훨씬 좋지 아니한가. 선거풍토를 뜯어고치기 위해 아예 선거후보자들을 무인도쯤에 감금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 선거운동은 매니페스토 공약집으로 하면 될 것 아닌가. 또 무인도에서 정책토론을 하고 이를 TV로 중계방송하면 될 것 아닌가. 게다가 모든 장관이나 국회의원·도지사·시장·군수들은 무급 자원봉사자로 갈아치우겠다. 감투라는 것은 본래 그토록 목에 힘주고 으스대라는 것이 아니다. 봉사정치, 그 얼마나 좋은가. 양성평등 시대를 열기 위해 국무위원들을 싹뚝 반토막 내 절반을 여성으로 갈아치우겠다. 이 부분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미 써먹었는데 우리는 더 나아가 국회의원도 싹뚝 반토막을 내고 말겠다. 그리고 정치판에는 온통 문과 출신들만 득실거려, 도시 말싸움만 무성해 머리가 아프니 웬만한 요직은 문과·이과 출신을 반반으로 배치하겠다. 또 인구 열명 중 한명은 장애인이므로 요직의 10분의1은 장애인에게 할당하겠다. 외교·국방·통일문제로 가볼까. 도대체 이 나라는 으리으리한 4강에 둘러싸여 있고 또 북쪽에는 이 지구상의 가장 유별난 세력이 진치고 있다. 그러니 아예 영세중립강국이 되겠음을 선포하겠다. 그런데 이런 선언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최첨단 과학군대를 만들겠다. 과학기술 투자비를 과감하게 군에 투입해 과학기술 발전의 메카로 삼겠다. 대신 군인 숫자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모병제로 채우겠다. 그리고 전국민은 남녀 구별없이 민병대로 한달에 한번씩 훈련 받게 하겠다. 사회부문은? ‘거짓말금지법’을 만들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머리가 좋아 수없이 많은 사기·비리가 그치질 않기 때문이다.‘욕설·싸움박질금지법’도 만들겠다. 위반자에게는 1주일 내내 욕설이나 싸움박질을 하도록 명령하겠다. 스스로 지겨워 나자빠지도록. 다음으로 경제부문은? 복지부문은?… 이런 식으로 공약을 만들어 나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다. 실제로 이런 공약을 내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워낙 뚱딴지같은 이야기들이니까. 문제는 우리가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철학을 가져야겠다는 것이다. 매니페스토 정책공약은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내용을 수치로 제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보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 어떤 것이고 인간과 공동체의 삶에 대한 기본철학이 무엇이냐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경제성장률 몇 %이니, 복지예산 몇 %이니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것들을 통해 어떤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인지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그 공약들에 담긴 숨은 철학을 읽어내야 한다. 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 공동상임대표·변호사
  • 성매매업소 화재 피해여성에 법원 “업주는 10억 배상하라”

    성매매 업소 화재참사로 숨진 성매매 여성들의 유족들과 업소에 감금돼 일하던 성매매 여성들에게 업주는 1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는 2005년 3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집창촌 화재로 숨진 여성 4명의 유족들과 성매매를 강요당한 박모씨 등 3명이 업주 고모(여)씨와 국가, 성북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고씨는 10억원을 물어주라.”고 원고 승소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하지만 국가와 성북구에는 불법행위 책임이 없다고 판정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인권 팔아먹은 정신병원

    #1 행려자인 황모(55)씨는 2005년 8월 거리에서 쓰러져 있던 중 경찰에 발견돼 경기 파주의 B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은 데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원에서는 황씨를 무려 450일 동안 강제입원시켰다. 보호자가 없을 경우 시·군·구청장의 동의가 있어야 입원이 가능하지만, 병원은 이를 무시하고 황씨를 입원시킨 뒤 국가로부터 제반 비용을 받아냈다.#2 정신장애를 앓고 있던 장모(54·여)씨는 지난해 4월 거리에서 신원불상자로 발견돼 경찰에 의해 B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장씨의 남편은 곧 관할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냈지만 아내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장씨는 이 병원에 1년 넘게 강제 입원돼 있던 중 지난 6월 남편에게 발견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보호자의 동의없이 행려자 등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켜 장기간 감금하거나 부당하게 의료비를 청구해 최소 수억원의 부당 이득을 올린 부산 A병원과 경기 파주 B병원을 정신보건법 및 형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는 “행려자 등을 불법으로 장기간 입원 및 퇴원심사를 하지 않고 감금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악의적이고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해 고발하게 됐다.”면서 “일부 정신병원 등 시설에서 강제 입원을 시켜놓고 국가로부터 돈을 타내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두 병원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환자들에 대해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를 요청했다. 또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두 병원의 의료기관 폐쇄 등 행정조치를, 광역자치단체장에겐 병원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해당 지자체장에게 경고조치를 할 것을 각각 권고하기로 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2003년부터 지난 5월까지 B병원은 98명,A병원은 16명 등 환자들의 입원 심사를 누락시켰으며 입원 과정에서도 보호 의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A병원은 지난 3월 현재 257명의 환자를 입원시키는 등 허가 병상수 및 정신과 전문의 대비 정원을 모두 초과했다.B병원은 환자복과 담요, 수건 등 비품 비용이 입원료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2003년 1월부터 환자들에게 소모품비로 5만원씩을 따로 받아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두 병원은 입원 환자들에게 전화통화 횟수를 제한하거나 간병과 세차 등 작업을 시키고 부당하게 격리·강박했으며 과도하게 CC(폐쇄회로)TV를 설치해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드러났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딸이 부친 병원 감금… 카드 빼돌려 호화 생활

    친아버지를 알코올중독으로 몰아 정신병원에 가두고 아버지의 전세 계약금과 신용카드를 빼돌려 호화생활을 누린 20대 여성이 결국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서울중앙지검은 15일 A(23·여)씨를 존속감금 및 강도·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A씨는 지난 8월9일 저녁 중앙응급환자이송단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 B씨가 알코올중독자이니 병원에 입원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응급환자이송단이 서울 성북구에 살고 있는 B씨를 붙잡아 경기도 부천시의 한 정신과의원에 강제 입원 시켰다. B씨는 본인 소유의 상가 건물 2채로 임대사업을 하면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A씨는 아버지 집에 들러 신용카드 두 장과 주민등록증 등이 든 지갑과 휴대전화를 챙겼다. A씨는 빼돌린 신용카드로 서울 강남의 유명 백화점에서 구두와 핸드백 등 200여만원 어치를 사고, 비만클리닉의 몸매 관리와 댄스교습 등에 모두 990여만원을 써버렸다.A씨는 또 아버지의 셋 방 보증금 중 220여만원을 빼내기도 했다.A씨의 행각은, 아버지의 행방을 쫓던 다른 형제들이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사실을 알아내면서 42일 만에 덜미가 잡혔다. 검찰 관계자는 “A씨가 조사과정에서 ‘평소 술만 마시면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붓는 아버지에게 알코올중독 증세가 있다.’고 말하는 등 불우한 가족사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범법행위는 엄연한 처벌대상이다.”고 밝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미얀마 군부서 시위 희생자들 비밀리에 화장”

    미얀마에서 민주화 시위의 희생자들이 비밀리에 화장돼 희생자 처리 방식까지 ‘제2의 톈안먼 사태’를 연상케 하고 있다고 일부 외신이 전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인터넷판은 7일(이하 현지시간) 보안군이 옛 수도 양곤 북동쪽의 시 화장터에서 유혈진압 희생자들의 시신을 비밀리에 화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은 “밤이면 (사망자들을) 천으로 덮은 녹색 트럭들이 속속 화장터로 들어간다. 이어 가마 굴뚝에선 연기가 계속 피어오른다.”고 증언했다.무장군인들이 일반인들의 화장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일주일째 목격됐다. 시민들 사이에선 일부 중상자들이 산 채로 화장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시민들은 지난달 28일 보안군이 평화시위대에 발포하며 무력진압에 나선 뒤 하루 뒤부터 화장이 시작됐다고 전했다.간헐적으로 계속된 화장은 지난 주말까지 이어졌다. 타임스는 미얀마의 모습이 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 때 베이징 바바오산 화장터에서 신원미상의 시신들이 불태워진 것을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 탄압도 계속되고 있다. 한 외국인 의사는 “군부가 각 병원에 시위 부상자에게 어떤 치료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미얀마인 의사로부터 들었다.”면서 “보안군에 잡혀 두들겨 맞거나 부상입은 채 감금된 사람들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유혈진압이 중단된 이후 미얀마 시가지의 낮은 평온한 모습이다. 하지만 국내외 승려들은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새로운 시위 계획을 밝히는 반면 보안군은 시위가담자를 색출하는 등 여전히 긴장감은 흐르고 있다.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밤이면 체포자들을 실은 트럭 행렬이 덜컹대며 지나가는 걸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국제적십자사가 억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입국하겠다는 요청도 거절했다. 군정측은 2093명이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승려 최소 1000명, 시민 3000명 이상이 억류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와 관련, 지난주 미얀마를 방문한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특사는 5일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탄압이 심각한 국제적인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군정당국에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는 또 6일에는 일정을 앞당겨 11월중순 이전 미얀마를 다시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법원 “고대 교수감금 학생 출교 부당”

    지난해 이른바 ‘고려대 교수 감금 사태’에 가담한 학생들에게 내린 출교조치 처분은 지나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는 4일 ‘교수 감금 사태’로 출교 조치를 당한 김모씨 등 7명이 고려대 법인을 상대로 낸 출교처분 무효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재판부는 “원고들이 교수와 교직원들을 감금한 사실이 인정된다. 학생의 본분을 벗어난 행위로써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면서도 “하지만 피해자인 학생처장이 징계위원회 위원장으로 출교 처분을 의결했는데, 이는 사건 당사자가 법정에서 재판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사안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원고들의 행위가 변명의 여지없이 잘못되긴 했지만, 출교 조치는 학교로서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미얀마 또 봄날은 간다

    대규모 시위로 촉발된 미얀마 사태가 꼭 2주일째를 맞은 2일 민주화 함성으로 가득했던 옛 수도 양곤은 정적만 감돌았다고 BBC 등 외신들이 이날 전했다. 10만명이 모여 들끓던 양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또 한번의 좌절 때문인지 시민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짙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들은 “시위가 끝났나?”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손으로 ‘X’를 그으며 “끝났다.”고 잘라 말해 절망감이 그득히 묻어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군사정권이 단행한 야간 통금령은 1주일째 풀리지 않았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일 제네바 유엔유럽본부에서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회의를 개최,“미얀마 당국이 폭력을 최대한 자제하고 추가 폭력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모든 정치범도 지체없이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특사가 평화적 사태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이날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최고 지도자인 탄 슈웨 국가평화개발평의회(SPDC) 의장과 면담했으나 10분만에 끝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대화내용도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거리 시위가 늘 성공적인 민중봉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정권의 불안정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강제진압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일깨워준다.”고 밝혔다. 방송은 이번 민주화 운동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독재정권 타도의 5대요인을 제시했다.5대요인은 1. 대중시위 확산과 다양한 사회·경제단체 참여 2. 명확한 구상을 가진 야당 중심의 세력 결집 3. 메시지 전파를 위한 미디어 이용 능력 4. 군정 내부에서의 쿠데타와 개혁파 출현 등 정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체계 5.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 국가들로부터의 외부압력 등이다. 이같은 분석에 따르면 군사정권에 맞선 이번 미얀마 시위는 실패로 끝난 1988년 88사태를 되풀이할 것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영국 더 타임스는 미얀마 반체제 인사들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운영하는 ‘버마의 민주 목소리(DVB)’ 방송 보도를 인용, 만약의 사태를 우려한 슈웨 의장의 부인과 딸, 사위가 싱가포르로 피신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양곤의 폐쇄된 경마장이나 대학건물 등에 감금된 승려 수천명이 북부 감옥으로 이송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AP통신은 실제 시위로 빚어진 참상이 알려진 것보다 더하다고 보도했다. 또 “시민들이 정부가 운영하는 화장터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다.” “두들겨 맞아 숨진 승려의 시체가 강물에 떠다녔다.”는 등의 소문마저 나돌아 민심이 흉흉해졌다. 재미 반정부 단체인 ‘버마를 위한 미국운동’은 지난달 27일 양곤 시내에서 군인들이 자동소총을 갈겨 100명이 숨졌으며, 양곤 북쪽에 있는 탐웨 마을의 한 고교에서도 총을 쏴 학생 1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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