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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 노역·감금… 절망 속 피어난 치유와 희망의 땅

    작은 사슴을 닮아 붙여진 이름 소록도(小鹿島·전남 고흥군 도양읍). 1916년 조선총독부가 한센병 환자 100명을 강제 이주시켜 자혜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한 ‘한센병의 섬’ 소록도는 많을 때는 환자가 6000명까지 모여 살았던 격리의 땅이다. 지금은 병동과 7개 한센인 마을에 539명의 환자와 직원, 가족 등 700여명이 살아가고 있다. 천주교주교회의가 국립소록도병원 100년(5월 17일)을 앞두고 처음으로 소록도 전체를 공개해 25~26일 동행 취재했다. 이곳 유일의 사제인 소록도성당 김연준 주임신부의 안내로 발길을 옮기자니 곳곳에 한센인의 아픔이 절절하다. 관사 성당이라 불리는 1번지 성당. 한센병 천주교 신자가 늘면서 공소가 설립됐고 1960년 소록도본당으로 설정됐다. 제대 뒤쪽의 21개 유리를 붙여 만든 돔형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든다. 가운데 배치한 ‘붕대 감긴 십자가’와 그 양옆으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은 그야말로 한센인의 아픔과 구원의 염원 그대로다. 중앙공원 언덕의 2번지 성당(병사 성당). 1961년 건립 때 한센인들이 땅을 고르고 벽을 만드는 등 공사에 참여했다.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 한센인들의 간곡한 서신을 받고 찾았던 곳이다. 제단 중앙에 요한 바오로 2세가 선물한 십자가가 걸려 있다. 교황의 방문은 소록도를 크게 바꿔 놓았다. 자원봉사자가 밀려들었고 한센인을 보는 시각도 변했다. 특히 제비선착장의 폐쇄가 회자된다. 당시 소록도를 들고 나는 부두는 환자 전용의 제비선창과 직원 전용의 선착장 등 두 개가 있었다. 미국 한 방송사가 인권침해의 현장으로 보도한 뒤 교황 방문 직전 제비선창을 폐쇄, 이후 환자와 직원이 한 선착장을 이용하게 됐다고 한다. 소록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마리안네 스퇴거(82)·마가레트 피사렉(81) 수녀다. 오스트리아에서 간호 수녀와 보조자로 1962년 소록도를 찾은 이들은 43년간 환자들과 동고동락했다. 의사조차 한센병 환자들과의 대면을 꺼렸던 시절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무릎에 진물이 흐르는 환자의 환부를 올려놓고 치료해 ‘할매 천사’로 불렸다고 한다. 두 수녀는 환자들의 아이를 맡아 영아원을 운영하는가 하면 목욕탕, 결핵병동까지 세워 봉사하던 중 2005년 “부담이 되지 않고자” 아무도 모르게 심야에 한국을 떠났다. 스퇴거 수녀는 오스트리아 양로원을 찾아와 “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행사에 꼭 참석해 달라”는 김연준 신부의 청에 못 이겨 며칠 전 소록도를 방문해 중앙공원 언덕, 옛날 기거하던 집에 머물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집 문 앞에는 누군가가 두고 간 소박한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바다를 낀 ‘치유의 길’은 그야말로 고통의 길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해 병원 재정이 전쟁비용이 되고 강제 노역이 시작되면서 소록도 탈출을 시도하는 원생들을 붙잡아 가두기 위해 만들었던 길이다. 원생 6000명을 총동원해 한겨울 20일 만에 4㎞의 길을 만들었단다. 스퇴거 수녀가 세운 결핵병동이며 강제 노역을 못 이겨 목숨을 버린 낙화암, 한센인 교도소가 당시의 아픔을 차례로 증언한다. 중앙공원의 흔적들은 어떤가. 요양소 확장을 위해 연간 140만장을 생산할 수 있는 벽돌공장을 짓는 강제 노역 현장에 세워진 성모동굴과 십자가상, 한센병 근절의 허울 아래 저질러진 강제 정관 절제 시술소인 단종대, 한센인 시체를 해부하던 검시실, 한센병 환자를 불법 감금했던 감금실…. 줄곧 기자들을 안내하던 김연준 신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은 한센인들이 살았던 소록도는 희망의 땅이기도 합니다. 절망의 감정을 극복하려 했던 한센인과 그들을 보듬어 희생한 봉사자들이 함께 살았던 소록도는 ‘대한민국의 진주’입니다.” 소록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성폭행 당하는 과정, 스마트폰 앱으로 생방송 ‘충격’

    성폭행 당하는 과정, 스마트폰 앱으로 생방송 ‘충격’

    친구가 성폭행당하는 과정을 생방송한 사건이 발생해 미국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 오하이오주(州)에 사는 마리나 로니나(18)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사이인 17세 소녀가 성폭행당하는 현장을 생방송 한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을 기소한 오하이오 프랭클린 카운티 검찰 측은 레이먼드 게이츠(29)는 17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 마리나 로니나는 그 모습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페리스코프’로 생방송 한 혐의로 형사 고소됐다고 발표했다. 론 오브라이언 검사는 이번 성명에서 “성폭력 현장을 생방송한 사건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피해 소녀와 로니나는 오하이오 주도 콜럼버스 교외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함께 다니는 친구 사이로, 시내 한 쇼핑몰에서 쇼핑하던 중 게이츠와 만났다. 이날 게이츠는 미성년자인 두 소녀에게 술을 사주고 다음날 다시 만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사람은 지난 2월 27일 오후에 다시 만났으며, 이날 게이츠가 17세 소녀를 강제로 억누르고 성폭행한 것이 검찰 조사로 드러났다. 로니나는 평소 ‘페리스코프’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다양한 피사체를 촬영했는데 이날 친구가 성폭행당하는 모습까지 생방송 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로니나의 한 친구가 생방송을 우연히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오브라이언 검사는 “로니나는 17세 소녀가 성폭행당하는 모습을 생방송 함으로써 게이츠가 그만둘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방송을 시청한 사용자들은 로니나가 직접 소녀를 감금한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로니나의 변호를 맡은 샘 샤만스키 변호사는 “로니나는 게이츠가 강제로 보드카 한 병을 마시게 했다. 그녀 역시 피해자다”면서 “로니나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하므로 분명히 성인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로니나는 경찰 조사에서 “성폭행 증거를 남기기 위해 촬영했다”고 말했다. 증거로 제출된 성폭행 현장 영상을 관찰한 샤만스키 변호사는 “로니나는 성폭행을 막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게이츠가 성폭행을 자행했다”면서 “로니나는 현장을 떠난 뒤 곧바로 경찰에 이 사건을 신고했는데 이는 친구를 욕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건 기록을 위해 영상을 촬영한 것일 뿐”이라고 변호했다. 하지만 10분 분량의 이 영상에서는 로니나 피고가 피해 소녀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소리치며 울면서 게이츠에게 “안 돼”(No), “멈춰”(Stop), “도와줘”(Help me)라고 말하는 장면이 10초 정도 있지만, 영상 대부분에서 로니나는 웃고 있었던 것도 확인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로니나는 친구가 성폭행당하는 도중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점도 지적되고 있다. 현재 로니나와 게이츠는 각각 12만5000달러(약 1억4000만 원)와 30만 달러(약 3억 4000만 원)에 달하는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된 상태다. 오브라이언 검사는 “로니나가 다른 날에도 피해 소녀의 알몸 사진을 촬영했던 사실도 있어 여죄도 추궁하고 있다”면서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두 피고는 최소 4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에 쓰인 애플리케이션 페리스코프는 트위터가 지난해 3월 인수한 것으로,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 사용자가 음주 운전이나 미성년 음주 등 범죄 행위를 과시하는 데 사용해 논란을 빚었다. 사진=오하이오·AP=연합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아랍S다이어리] 사우디 여성에게 운전대를 許하라!

    [아랍S다이어리] 사우디 여성에게 운전대를 許하라!

    여성이 운전할 수 없는 유일한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이 다시 시동을 걸었다. 사우디 가제트 등 현지 언론은 19일(현지시간) 국왕 자문기구인 슈라위원회 위원 두 명이 여성의 운전 가능 여부를 공론에 부쳤다고 전했다. 이들은 교통법 36번째 조항을 ‘운전은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한 권리다’라고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하야 알-미나이 위원은 지난해 최초로 여성들이 지방의회 선거에서 당선되는 등 여성들이 선봉에 서는 것이 더 이상 문화적으로 터부시 되지 않게 됐다며 “3년 전에도 슈라위원회에서 운전을 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여성의 운전에 반대하는 투표자가 더 많았다. 이번엔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 사우디에는 여성의 운전을 금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우디 정부는 그러나 여성에게 운전 면허증을 발급해 주지 않음으로써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막고 있다. 사우디 여성들이 자유롭게 운전을 하게 해달라는 요청은 20년도 넘게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1990년엔 여성 50여 명이 운전대를 잡음으로써 여성 운전 금지에 대해 시위했다. 이들은 하루 감금됐다 풀려났는데 여권은 모두 압수됐고 직장도 잃었다. 또한 그들의 남자 가족들은 6개월 동안 출국할 수 없었다. 새천년이 시작됐지만 1400년 된 이슬람 율법은 과거에 머물렀다. 2011년 6월에는 한 사우디 여성이 운전하는 동영상을 올렸다가 체포되자 40여명이 차를 끌고 나와 이에 항의했다. 그 중 한 명은 태형 10대를 선고 받기도 했다. 사우디 여성이 히잡을 벗는 것만큼이나 여성의 자유로운 운전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지만 최근 권위 있는 자들의 긍정적인 발언이나 사우디의 정치, 경제 상황이 예전과는 달라진 점을 미뤄보았을 때 부분적으로나마 여성 운전이 가능해 질 수도 있다. 몇 해 전 여성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허용됐을 때 근방에 남편 등 남자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달린 것처럼 말이다. 70대인 최고 종교지도자는 종교채널 알-마지드에서 여성이 운전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여성을 ‘악’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문제”라고까지 언급했지만, 올해 31살인 왕위 계승 서열 2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방의회 선거에서 총 20명의 여성 의원이 선출됐다며 “사우디 여성은 이제 원한다면 어느 직업이든 가질 수 있다. 어떤 장애물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사우디 억만장자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는 2013년에 자국내에서 여성들의 운전을 허락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트윗을 남긴 적이 있다. 그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추방하고 여성들이 운전을 하도록 허락하면 최소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했던 50만 개의 일자리를 줄여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중교통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사우디 여성들은 차로 이동을 해야 할 땐 남자 가족이 운전하는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남자 운전수를 고용하거나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일종의 콜택시 서비스를 이용한다. 사우디의 유명 여성 언론인 사마르 알-모그렌도 자신의 트위터에 여성 운전 허가에 대한 짤막한 트윗을 남겼고 그의 13만 팔로워들은 긴 논쟁을 벌였다. 한 팔로워는 여자들이 외국인 운전수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하기보다 직접 운전하도록 하는 게 더 낫다고 했고 또 다른 팔로워는 여자를 외국인 운전수와 차에 타는 걸 허락하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가족이 아닌 남자라도 없는 차를 운전하도록 두는 것도 문제라고 달았다. 마데하 알-아이루시 등 여성 활동가들은 2년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그가 여성 인권을 다뤄주길 바라며 차를 몰고 도로로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20일 다시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찾았다. 오바마의 ‘안보 무임승차’ 발언과 미 의회의 ‘9·11 테러의혹조사 입법’ 등이 있은 뒤라 세상의 이목은 양국 관계에 쏠리겠지만 일부 사우디 여성들은 차에 시동을 걸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다시, 자유로(自由路)를 향해! 윤나래 중동통신원 ekfzhawoddl@gmail.com
  • 동남아 ‘노예 어부’ 추적 보도 AP통신 여기자 4명 퓰리처상

    동남아 ‘노예 어부’ 추적 보도 AP통신 여기자 4명 퓰리처상

    펜 끝은 칼날보다 날카로웠다. AP통신의 여기자 4명이 동남아시아의 ‘노예 어부들’을 파헤친 탐사보도로 올해 100회째를 맞은 퓰리처상 공공부문을 거머쥐었다. 이들은 1년 넘게 가혹한 노예 노동의 실태를 추적했고, 이렇게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해산물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규명했다. 주인공은 마지 메이슨, 로빈 맥다월, 마서 멘도사, 에스더 투산 등이다. 이들은 2014년 인도네시아의 벤지나섬을 찾아가 우리에 갇힌 남자들을 발견하면서 노예 선원 취재에 들어갔다. 이 중 맥다월은 야음을 틈타 보트를 타고 트롤 어선에 접근, 노예 노동자들의 참상을 찍으려다 위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특종 욕심도 잠시 보류한 채 어선 노예들이 먼저 풀려날 때까지 기다렸다. 노예 노동자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도 뒤 실상이 알려지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형사재판을 열어 관련자들을 처벌했다. 이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등에서 꾐에 빠져 어선에 감금된 채 죽도록 일하던 노예 노동자 2000여명이 풀려났다. 수상자 중 멘도사는 2000년 한국의 노근리 학살 사건 보도로 한국인 최상훈 기자와 함께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마누스섬서 수천 년 간 진화한 신종 ‘거대 쥐’ 발견

    마누스섬서 수천 년 간 진화한 신종 ‘거대 쥐’ 발견

    사람 사는 곳에서는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신종 거대 쥐가 발견됐다.최근 영국언론 가디언은 파푸아뉴기니의 마누스섬에 고립돼 오랜 시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종 거대쥐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호주의 유명 고생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애들레이드 대학 팀 플래너리 교수팀이 발견한 이 쥐의 학명은 '래투스 디텐투스'(Rattus detentus). 500g을 훌쩍 넘는 몸무게를 가진 이 쥐는 거친 털과 짧은 꼬리를 가진 것이 특징으로 수천 년은 대륙과 동떨어져 나홀로 진화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연구팀은 쥐를 의미하는 래투스와 라틴어로 감금됐다는 의미의 디텐투스를 붙여 이같은 이름을 붙였다. 마누스섬에 거대한 쥐가 살고 있다는 것은 주민들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나무 열매에 크고 날카로운 설치류 이빨자국이 심심치 않게 목격됐고 쥐의 화석까지 확인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으며 이번에 연구팀이 처음으로 사진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연구를 이끈 플래너리 교수는 "거의 30년 간 이 쥐를 쫓아다녔다"면서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살면서 몸집이 커지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거대한 몸집을 가졌지만 목격하기가 쉽지 않으며 안타깝게도 현재 멸종위기에 몰려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09년 파푸아뉴기니에서 현존하는 들쥐 중 가장 큰 신종이 발견된 바 있다. 보사비 울리 들쥐(Bosavi Woolly Rat)라는 이름이 붙은 이 쥐는 꼬리부터 주둥이까지 길이가 90cm, 몸무게는 1.5kg에 달해 웬만한 고양이만하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태국, 음주운전자에 영안실 봉사 명령 내리는 이유는?

    태국, 음주운전자에 영안실 봉사 명령 내리는 이유는?

     연휴 기간이면 늘어나는 음주 운전 사고로 골머리를 앓아온 태국 정부가 올해 송끄란(태국 설날인 4월 13일 전후로 열리는 연휴 및 축제) 기간에는 음주 운전자를 영안실 봉사를 통한 특별 교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현지 언론이 12일 보도했다.  송끄란 기간에 음주 운전을 하다가 적발돼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병원 영안실에서 사회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태국 경찰 특별임무계획국의 크리앙데즈 잔따라웡 부국장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교통법규 위반자는 병원 영안실에서 사회봉사 활동을 해야한다”면서 “이를 통해 부주의한 운전이나 음주 운전을 하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음주 운전 의욕을 꺾는 예방적 차원의 조치”라고 덧붙였다.  아누락 아몬펫사타폰 공중보건국장은 “영안실 사회봉사는 부주의한 운전자들이 잘못을 깨닫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이는 공원이나 도서관 봉사활동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사고가 초래하는 육체적, 정신적 훼손을 보아야 한다”며 “그들은 영안실에서 시체를 닦고 운반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그들이 고통을 느끼고 정신을 차린다면 도로는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국 최대 축제인 송끄란 연휴 기간은 연말연시와 함께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급증하는 기간이다.  통상 이 연휴기간에는 시간당 2.3명이 죽고 160명이 부상한다.  정부 안전 캠페인에서는 이 기간을 ‘위험한 7일’이라고 부를 정도다.  한편 태국 정부는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 연말연시에는 최고 15일의 감금 교화를 도입하기도 했고 오토바이 음주 운전 적발자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오토바이를 압수하기도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헤어진 애인 니킥 등 날려 죽인 전 킥복싱 선수 징역 15년

    대구고법 제1형사부(부장 이범균)는 7일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헤어진 애인을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킥복싱 송모(24)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공범인 송씨 여자친구 A(33)씨에 대해서도 항소를 기각하고 상해치사죄로 징역 3년을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얼굴 전체에 피멍이 드는 등 누가 보더라도 피해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피고인 자신도 경찰 조사 과정에 피해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하는 등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피를 흘리는 피해자를 병원에 데려가는 등 최소한의 구호 조치도 하지 않았다”며 “범행이 잔인하고 결과도 중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난해 6월 23일 오후 6시쯤 경북 구미의 주택에서 송씨 전 여자친구(27)를 4시간여 동안 감금하고 폭행해 뇌출혈 등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폭행에는 무릎으로 얼굴 부위를 타격하는 ‘니킥’ 등 킥복싱 기술이 동원됐다. 피고인들은 피해 여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나이도 어리면서 한참 연상 여자와 사귄다” 등 글을 올린 것에 격분해 범행했다. 피고인들은 항소심 재판에서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제주서 부동산사업 중국인 감금 협박한 중국인 남매

    제주 서부경찰서는 제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중국인 A(44)씨를 감금한 채 금품을 요구한 장모(35·여)씨와 장씨의 남동생(30) 등 중국인 2명을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일 오전 10시쯤 제주시 애월읍 소재 한 골프텔에 A씨를 부른 뒤 감금한 뒤 200만 위안(약 3억 5000만원)의 차용증을 작성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A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계좌에 있던 200만원을 텔레뱅킹으로 자신들의 계좌로 이체시켜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중국 내 같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A씨가 제주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사전에 범행을 공모한 뒤 지난달 31일 제주로 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추가로 5억 10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33시간 만에 A씨를 풀어준 후 은행에서 돈을 송금받으려다 A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지난 2일 오후 8시 22분쯤 제주시내 모 은행 주변에서 장씨 등이 타고 다니는 차량을 발견, 1㎞가량 도심 추격전 끝에 장씨 남매를 붙잡았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재력가 지인 감금해 인감 훔쳐 수백억 가짜차용증 만들어 협박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6일 재력가 지인의 인감을 훔쳐 수백억원의 가짜 채권을 만들어 돈을 갚으라고 협박한 이모(43)씨를 특수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또 이씨의 여동생과 조카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 등은 지난달 7일 오전 1시쯤 부산 해운대구 자신의 아파트에 놀러 온 재력가 지인 박모(60)씨가 잠이 들자 박씨의 인감도장, 외제차 열쇠 등이 든 가방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같은 날 오전 9시쯤 박씨에게 가구사업에 투자를 강요했지만 거절하자 흉기 등으로 위협하며 8시간 동안 감금했다. 박씨는 음식 배달원이 온 사이 탈출하자 박씨가 두고 간 외제차를 훔쳐서 무면허로 운전해 달아났다. 이후 이들은 훔친 박씨의 인감도장을 이용해 가짜 차용증 20장(171억원 상당)을 만든 뒤 박씨와 가족에게 모두 19차례에 걸쳐 재산 압류 내용증명서를 보내는 등 협박했다. 이씨는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면서 현금으로 171억원을 박씨에게 빌려줬다고 주장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범죄 실화 ‘클랜’ 티저 예고편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범죄 실화 ‘클랜’ 티저 예고편

    198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클랜’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클랜’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푸치오 가족의 양면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강렬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은 제7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을 비롯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극중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푸치오 가족은 겉으로는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하는 헌신적인 아버지, 가정과 학교에 충실한 교사 어머니, 국민적인 럭비 선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큰아들과 자녀까지, 일곱 명으로 구성된 평범한 중산층이다. 하지만 이들은 가장인 아르키메데스를 중심으로 모든 가족 구성원이 납치, 감금, 살인 등 극악무도한 범죄에 직·간접적인 공모자들이다. 실제 사건은 당시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으며,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예고편은 다정한 이웃으로 가장한 채 악랄한 범죄를 일삼는 푸치오 가족의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랑스러운 딸의 저녁을 챙겨주는 모습과는 180도 다르게, 복도 끝에 있는 닫힌 방문을 여는 순간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바로 납치, 감금한 인질에게 식사를 주는 잔혹한 범죄자로 돌변하는 아르키메데스 푸치오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작품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처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푸치오 가족의 잔혹한 범죄 실화를 다른 ‘클랜’은 오는 5월 국내 개봉된다. 상영시간 108분. 사진 영상=더블앤조이픽쳐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라익스를 지나친 7개의 관계적 시간

    라익스를 지나친 7개의 관계적 시간

    네덜란드의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는 전 세계에서 온 젊은 예술가들에게 최고의 창작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가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10년째 라익스아카데미와 교류한 결과 총 13명의 작가를 배출했다. 낯선 시간과 공간, 그리고 타인들과의 관계 맺기는 그들 작업의 다양한 동기로 작용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관계적 시간’은 라익스아카데미라는 낯선 경험이 작업의 내용과 형식에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레지던시에 참여했던 작가 중 김성환(2004~2005년), 손광주(2006~2007년), 임고은(2008~2009년), 오민(2011~2012년), 진시우(2011~2012년), 배고은(2012~2013년), 안지산(2013~2014년) 등 7명이 회화, 영상, 설치 작품을 출품했다. 전시를 기획한 차승주 큐레이터는 “작가들은 각자 거쳐 간 시기가 다르고 작업 스타일이나 내용, 형식적 측면에서 뚜렷한 개성과 차이를 보이지만 작업들이 내포한 다양한 의미 속에서 서로 공유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관계적 시간’은 이 연결 지점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개별 작업에 담긴 시간의 다양한 성격을 뜻한다. 전시는 라익스아카데미의 연말 행사인 오픈스튜디오와 마찬가지로 작가들의 개별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작가별 공간으로 구획화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손광주는 라익스아카데미에서 겪은 경험을 창작을 위한 자발적 감금의 상태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기악과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오민은 시간의 구조를 탐색하고 이를 음악적으로 구조화한 영상 작품을 출품했다. 수학과 미술을 전공하고 미국 뉴욕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성환은 라익스아카데미에서 함께 작업했던 작가 니나 유엔과의 협업 작업을 선보인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프로젝트 골렙에 작업 공간을 두고 작가 공동체 그룹 클룹코의 구성원으로 활동 중인 임고은은 배우로서 관객을 시험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을 내놓았다. 안지산은 인터넷이나 영화, 신문, 잡지 등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을 초현실적 가공의 세트 안에서 재구성한 회화 작품을 출품했다. 까다로운 질문들을 시적인 내러티브로 발전시키는 진시우는 부서진 작품의 복구 방식을 산발적인 단어나 문장에서 시작된 비선형의 내러티브로 정리하고,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통제와 불협화음에 주목하는 배고은은 실제로 벌어진 사회적 사건의 기록을 재해석한 영상과 설치를 보여준다. 별도로 설치된 아카이브 섹션에 송상희(2006~2007년) 작가가 특별히 인터뷰 및 도큐먼트 자료들을 제공해 라익스아카데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전시는 6월 19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해외여행 |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

    해외여행 |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더 가까운 섬, 조선통신사 외교의 징검다리였던 섬, 일제강점기의 한恨이 서린 섬, 조선 마지막 황녀의 흔적이 남은 섬. 대마도를 여행한 시간은, 대마도를 ‘애증’한 시간이었다. 그 섬을 찾는 이유 부산에서 배를 타고 1시간 10분이면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일본 대마도對馬島에 닿는다. 일본에서는 쓰시마つしま라고 부르지만 우리에겐 대마도로 더 익숙한 섬이다. 행정구역상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는데, 거리로는 부산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 142km여서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훨씬 가깝다. 그래선지 여권을 들고 출국심사를 받으면서도 기분이 영 얼떨떨하다. 그래도 외국은 외국이라 면세 쇼핑의 기회는 똑같이 주어진다. 부산항 여객터미널엔 양손에 바리바리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많았다. 뱃삯만 내면 되니 부산 사람들은 면세 쇼핑을 위한 당일치기 대마도 여행을 자주 한단다. 멀미약을 입에 털어 넣고 꾸벅꾸벅 졸았더니 금세 도착이다. 배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이 민망할 정도로 금방이다. 거리 분위기는 영락없는 일본 시골마을인데, 가는 곳마다 온통 한국어 표지판이라 한국 같기도 하다. 식당과 호텔 직원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한국말을 구사하고, 주요 관광지마다 있는 조그마한 커피트럭에서는 한국 돈으로 값을 치를 수 있을 정도다. 알고 보니 일본 본토에서 대마도를 여행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대마도를 찾는 여행객의 95%가 한국인이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한 해 대마도를 여행하는 한국인은 10만명 이상. 사실 오늘날 대마도가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로 개발된 것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도발에서 시작되었다. 국내 최초의 대마도 전공 박사이기도 한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가 대마도 여행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독도 앞바다에 찾아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 외치는 운동을 수십 번 하다가, 그냥 놔둬도 우리 땅인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외치는 방식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히려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이 독도를 사수하는 더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는 1997년,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는 한국 땅’이란 슬로건을 들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 14명과 대마도로 갔다. 당시엔 부산-대마도 뱃길이 없었기 때문에 후쿠오카를 경유해 가야 했다. 4박 5일 일정 동안 배를 탄 시간만 왕복 42시간. 첫 순례 이후 부산의 선사들을 찾아가 부산-대마도 직항 운항을 적극 권유했고 마침내 1999년 부산-대마도 뱃길이 생겼다. 지금은 발해투어 말고도 많은 여행사들이 대마도 여행 상품을 팔고 있고, 낚시·캠핑·등산 여행지로도 인기를 끌게 됐다. 이번 여행에선 대마도 여행길을 처음 열었던 그때 그 마음으로, 황백현 박사와 함께 대마도에 남겨진 우리 역사의 흔적을 훑었다. 대마도는 실제로 우리 땅이었다 솔직히 대마도를 가기 전까지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말이 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무관심했고 무지해서였다.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우리 조상들이 대마도에 남긴 수많은 흔적들이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황백현 박사는 그의 저서 <대마도 통치사統治史>와 <대마도에 남아 있는 한국문화재>를 통해 대마도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우리 영토였음을 보여 주는 역사적 기록들을 세세히 소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일본 천태종 승려 현진이 1197년에 집필한 <산가요약기>에는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해 기른 곳이며,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1419년 이종무 장군을 필두로 대마도를 정벌했고, 이듬해인 1420년 대마도 8대 도주島主가 “대마도는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이 곤란하니 대마도 사람들을 조선에 의탁한다”는 문서와 함께 대마도를 조선에 바친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세종대왕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켰으니 앞으로 모든 보고와 문의는 반드시 경상도를 통해 하도록 하라”는 답서를 보냈고 그때부터 대마도는 공식적인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 황 박사는 ‘대마도’와 ‘쓰시마’라는 이름도 우리말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에 말馬이 없었던 2세기에 ‘말 마馬’자가 들어가는 ‘대마도對馬島·말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섬’라는 지명이 생길 수 있었던 건, 고대부터 말을 키우던 우리나라에서 붙여 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쓰시마’라는 이름 또한 ‘두 섬Tu-Sem’이라는 한국어 발음이 변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말한다.대마도에서 1,500년 전 백제 사람이 심은 은행나무를 만났다. 나이로는 일본에서 첫 번째, 크기(높이 23m, 둘레 12.5m)로는 두 번째다. 본래는 ‘백제 은행나무’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몇 해 전 일본이 그중 ‘백제’라는 말을 삭제했다고 한다. 일본은 ‘일본 고유의 영토 쓰시마는 역사와 관광의 섬입니다’라고 쓴 안내판도 새로 설치했다. 이 은행나무는 1789년 벼락을 맞아 나무속이 불타기도 했고, 1950년 태풍으로 줄기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웅장한 모습으로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 은행나무 앞에 서서 생각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 역사를 잊지 말자.’ 대마도의 생명줄이었던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1607년부터 200여 년간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다. ‘200년 동안 겨우 12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이 한 번 일본을 오가는 데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렸고, 매번 300~5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움직였다는 걸 생각하면 적은 횟수가 아니다. 이 조선통신사의 길을 연 것이 대마도다. 평지가 없고 땅이 척박해 쌀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대마도는 조선과의 무역으로 식량을 공급 받아 먹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조선과 교역이 끊기자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게 됐다. 당시 대마도 도주였던 소宗 요시토시義智는 국서를 위조하면서까지 일본 막부와 조선 왕실의 외교 회복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렇게 성사된 조선통신사는, 말하자면 대마도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였다. 대마도는 조선통신사가 반드시 거치는 기항지였다. 한양에서 출발한 일행은 부산을 거쳐 대마도에 상륙했다가 다시 수로와 육로를 이용해 에도(지금의 도쿄)로 갔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조선 왕실에서는 통신사의 출발일이 결정되면 관리 3사(정사, 부사, 종사관)를 궁으로 불러 어사주를 내렸고, 그날 밤에는 영의정이 남대문 밖에서 송별연을 열어 주었다. 출발 전날엔 마포나루터에 통신사 일행과 그 가족들이 모두 모여 송별연을 가졌고, 부산에 도착하면 무사왕복 기원제를 올렸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도착하면 그 숙소에는 조선의 학문과 예술을 전수받으려는 일본 문인들과 유학도들이 몰려들었다. 조선 선비들의 한시漢詩 한 수를 보물처럼 여기는 일본인들도 많았다고. 그러니 한류가 최초로 전해진 곳이 대마도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테다. 대마도에서 가장 번화한 이즈하라에는 지금도 그 역사를 기억하는 ‘조선국통신사의 비朝鮮國通信使之碑’가 세워져 있다. 그 앞의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는 길이 16.58m에 달하는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소장되어 있다. 매년 8월에는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 마쓰리’ 축제도 개최된다. 친일의 기록과 항일의 흔적 대마도 사람들은 한국어 공부도 참 열심히 했다. 과거 이즈하라에는 한국어 학교가 두 개나 있었다. 먼저 1727년 세워진 한어사韓語司는 조선과의 무역으로 먹고 살던 이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던 곳이다. 3년 동안 하루 4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듣고 매달 월말고사를 치렀던, 속된 말로 ‘빡센’ 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공부한 일본인들은 조선 선비들보다 한글을 더 잘 썼다는데, 당시 조선 양반들은 한글을 천시하며 잘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한어사 건물은 지금도 개인주택으로 대마도에 남아 있다. 한어사에서 불과 200m 거리에 1872년 세워진 한어학소韓語學所는 설립 취지가 불순했다. 조선 침략을 준비하기 위해 통역사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한국어를 공부한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는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통역비서로 일했다. 고쿠분 쇼타로는 을사늑약 조약문 초안과 한일 합병문 초안을 작성하는 일까지 맡았고, 조선총독부 인사국장을 거쳐 내부차관까지 지냈다. 그런 사람이 죽자 통탄해 하면서 묘비명을 쓴 사람이 바로 매국노 이완용이다. 당대 최고의 명필 중 하나로 꼽혔던 이완용은 그 묘비 왼쪽 아래에 ‘후작 이완용 쓰다侯爵 李完用 書’라고 자랑스레 새겼다. 스스로가 매국노라는 증명을 길이길이 남긴 셈이다. 이 묘비를 황백현 박사가 대마도에서 2007년 발굴했고 3년 동안 다수의 서예가들과 학자들의 검증을 거쳐 이완용의 필체임을 밝혀냈다. 한국에는 없는 이완용의 매국 증거물이 대마도 땅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런 친일의 기록이 있는가 하면 대마도에는 항일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이즈하라의 절 ‘슈젠지修善寺’에는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의병들의 선봉장이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을 기리는 비석과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선생은 항일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대마도 감금 3년 형을 받고 이송당하면서도 일본 땅을 밟지 않겠다며 양쪽 짚신 바닥에 고국의 흙을 한줌씩 담아 신고 갔다고 한다. 결국 “원수가 주는 끼니로 몸과 입을 더럽힐 수 없다”며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대마도에서 목숨을 거두었다. 슈젠지는 최익현 선생의 시신이 부산으로 이송되기 전 나흘간 장례를 치른 곳이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듣고 한국전망대에 올랐다.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부산이 내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전망대다. 일제강점기 대마도에 잡혀 온 우리 선조들은 명절만 되면 이곳에 올라 바다 건너 고향땅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며 설움을 달랬다 한다. 그 자리에 1997년 한국에서 공수한 자재를 이용해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을 본뜬 모양으로 이 전망대를 지은 것이다. 찬 바닷바람이 몸이 비틀거릴 정도로 강하게 불어대는 한국전망대에 서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절대로, 절대로, 이 역사를 잊어선 안 되겠다고. *이토 히로부미 |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등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해 죽었다. 조선 마지막 황녀의 눈물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기울어 가는 국가의 왕녀로 태어나 불운한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대마도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대마도에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가 있다. ‘결혼 봉축’이라고 하니 축복받은 결혼인 건가 싶었는데, 그 반대였다. 덕혜옹주는 19살이던 1931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대마도 도주*의 세손인 ‘소宗 다케유키武志’ 백작과 결혼했다. 말하자면 시댁이 대마도였던 셈인데, 결혼식은 도쿄에서 올렸고 덕혜옹주가 대마도를 찾은 건 결혼한 해에 단 한 번 인사차 방문한 것뿐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런 연고로 대마도에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가 세워지게 됐다. 덕혜옹주는 고종황제가 61세 때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다. 고종은 덕혜옹주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으려 7살 때 약혼시키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일본은 덕혜옹주를 13살 때 도쿄로 강제 유학을 보내 고종황제와 떼어 놓았다. 덕혜옹주는 식민지의 공주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갖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고, 정신질환까지 얻게 됐다. 일본은 그런 덕혜옹주를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과 일본이 완전히 하나의 국가라고 주장했던 일본의 조선 통치 정책’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마도 도주의 세손과 결혼시켰다. 덕혜옹주의 딸 정혜 역시 갖은 차별 대우와 따돌림을 당하다 어머니처럼 정신질환을 얻었다. 결국 정혜는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써 놓고 실종되었다. 그 일 이후 덕혜옹주의 우울증과 몽유병은 날로 더 악화되었다. 1955년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이혼했고,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 외롭게 수감되었다. 그 사실을 조선일보 기자가 폭로해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귀국시킴으로써 마침내 덕혜옹주는 고국에 돌아왔다. 7년간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다가 1989년 7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李王家宗伯爵家結婚奉祝記念碑’라고 쓰여 덩그러니 놓인 회색 비석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맺혔다. 탄생부터 결혼, 출산,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순간도 축복받을 수 없었던 덕혜옹주의 인생. 그와 너무나 상반되는 ‘결혼 봉축’이라는 이름의 비석이 그 삶을 더 기구하게 비추는 듯했다. 때마침 흩날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꼭 덕혜옹주의 눈물 같아 더 속상했다. *대마도 도주島主 | 오랜 세월 대마도를 지배했던 ‘소宗’가家는 에도시대 이전까지 도주였고, 이후에는 번주藩主가 되어 대마도의 모든 것을 통치한 지방 토착세력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조선의 교류 재개에 노력을 기울여 조선통신사의 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조선통신사를 영접하는 등의 임무도 수행함으로써 당시 일본 막부와 조선 모두에게 공을 인정받았다. ▶travel info 대마도 FERRY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과 대마도 히타카츠항, 이즈하라항을 연결하는 쾌속선이 매일 운항된다. 히타카츠까지는 1시간 10분, 이즈하라까지는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다수의 페리회사가 부산-대마도 노선을 하루에도 수차례 운항하기 때문에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다. Shopping대마도 대형마트 티아라 쇼핑몰 대마도 이즈하라에는 대형마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에서도 티아라 쇼핑몰은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입구에는 큼지막한 한국어 안내문도 붙어 있다. 마트에는 일본 본토에서 만날 수 있는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이 모두 들어와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PLACE5,000엔 화폐 속 여인의 사랑 나카라이 도스이 기념관 대마도 이즈하라 태생 소설가이자 기자인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의 생가를 개조해 만든 기념관이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자 5,000엔 화폐 속 인물인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의 문학 스승이자 연인이었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아버지의 근무지인 부산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 한국말에 능통했고, 서울에서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에 입사한 뒤에는 <춘향전>을 번역해 20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했다. 히구치 이치요는 1891년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나카라이 도스이를 찾아가 소설 지도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히구치 이치요는 20살, 나카라이 도스이는 32살이었다. 히구치 이치요는 어린아이들의 성장과 사랑을 그린 <키재기>, 창부들의 삶을 그린 <흐린 강>,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나 때문에> <매미> 등 작품들을 쏟아내고 25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도스이를 연모한 그녀의 마음은 사후 발표된 일기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대마도판 하롱베이 에보시다케 전망대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는 아소만의 수많은 섬이 펼쳐진 풍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해발 176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주변에 그보다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다. 들쑥날쑥한 해양 지형이 특징인 아소만은 진주 양식으로 유명하다. 이 전망대는 석양과 일출이 아름다워 연말연시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오키나와를 닮은 해변 미우다 해수욕장‘일본 해수욕장 100선’에 속하는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의 바닷물은 마치 오키나와의 해변인 듯 영롱한 에메랄드빛을 낸다. 물이 맑아 물고기, 성게 등 해양 생물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도 하기 좋다. 근처엔 캠핑장도 있어 여름철엔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캠핑과 해수욕을 하러 찾아온다. Food대마도 도주가 좋아했던 간식 카스마키‘대마도 명물’이란 별명이 붙은 카스마키는 달콤한 팥소를 카스테라로 돌돌 만 것이다. 대마도 도주가 특히 좋아했던 간식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커리로 유명한 일본답게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대마도 여행 중 간식으로 먹거나 선물용으로 사 가기에 좋다. 글 고서령 기자 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취재협조 발해투어 051-253-5887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날 보러와요’ 시사회, 김민종과 함께 온 조민성-이채원 누구?[포토]

    ‘날 보러와요’ 시사회, 김민종과 함께 온 조민성-이채원 누구?[포토]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날 보러와요(이철하 감독)’ 시사회에 배우 김민종과 신인배우 조민성 이채원이 참석했다. 조민성과 이채원은 김민종이 이사로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배우. 조민성은 2014년 연극 ‘밑바닥에서’로 데뷔해 지난해 한중합작 웹드라마 ‘스완’, ‘성형시즌’ 등에 출연했다. 한편 ‘날 보러와요’는 정신병동에 106일 동안 감금된 강수아(강예원 역)와 이 사건을 취재하는 ‘추적24시’ 나남수(이상윤 역)PD가 겪는 미스터리 스릴러. 오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SM 신예 조민성-이채원, “김민종 이사님과 함께 시사회 나들이”[포토]

    SM 신예 조민성-이채원, “김민종 이사님과 함께 시사회 나들이”[포토]

    4일 영화 ‘날 보러와요(이철하 감독)’의 VIP 시사회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렸다. 이날 배우 김민종은 자신이 이사로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배우 조민성, 이채원과 함께 시사회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날 보러와요’는 정신병동에 106일 동안 감금된 강수아(강예원 역)와 이 사건을 취재하는 ‘추적24시’ 나남수(이상윤 역)PD가 겪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오는 7일 개봉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년 전 실종 여중생’ 日명문대생이 납치·감금

    ‘2년 전 실종 여중생’ 日명문대생이 납치·감금

    용의자 자살 시도… 경찰에 검거 일본 명문대생이 여중생을 납치해 2년 동안 감금한 사건이 알려져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28일 NHK방송 등에 따르면 일본 경찰은 미성년자 유괴 용의자인 데라우치 가부(23)를 이날 시즈오카현에서 발견해 신병을 확보했다. 데라우치는 명문대인 국립 지바대를 최근 졸업하고, 다음달부터는 소방설비회사에 출근할 예정이었다. 그의 범행은 전날 낮 12시쯤 도쿄 나가노구의 집에 감금돼 있다 탈출한 A(15)양이 인근 JR히가시나가노역 공중전화를 이용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드러났다. A양은 중학교 1학년이던 2014년 3월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하교 중 실종돼 행방이 묘연해졌다. 경찰은 이 여학생이 지바현에서 2년 가까이 감금돼 데라우치와 함께 거주하다가 지난달 도쿄 나가노구의 아파트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피해 학생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밖에서 문을 잠가 도망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A양은 이날 오전 데라우치가 장시간 외출한 틈을 타 문을 부수고 도망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A양은 탈출 직후 공중전화로 먼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A양을 안전하게 보호한 뒤 곧바로 데라우치를 공개 수배했다. 경찰은 시즈오카현 이토시 시내에서 한 남자가 피투성이인 채로 걷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28일 오전 3시 20분쯤 데라우치를 검거했다. 용의자가 흉기로 자살을 시도한 직후였다. 그는 대학 연구실에서 일할 만큼 모범적이었고, 항공 분야에도 관심이 깊은 학생이었다고 지바대학 관계자들은 밝혔다. 용의자가 거주하던 도쿄 아파트의 주민들도 “빈방이라고 생각할 만큼 늘 조용했다”며 “그런 사건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이혼 소송 중인 아내 감금+고문한 50대男 구속

    이혼 소송 중인 아내 감금+고문한 50대男 구속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혼 소송 중인 아내를 24시간 넘게 감금하고 고문한 혐의(감금 등)로 50대 남성 A씨를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5일 정오쯤 자신이 운영하는 서초구의 한 주점에 별거 중인 아내 B씨를 불러내 지하창고에 가둔 뒤 인두로 고문하는 등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B씨가 면접교섭권을 논의하려고 A씨를 만났다가 변을 당했다고 전했다. A씨는 이튿날 오후 B씨를 직접 병원 응급실에 입원시키고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감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B씨는 사건이 일어나고 일주일이 지나서 입원병동으로 옮긴 뒤에야 112에 신고할 수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돈 때문에 가족이 날 감금하려 해”… 서울광장에 2500만원 뿌린 여성

    “돈 때문에 가족이 날 감금하려 해”… 서울광장에 2500만원 뿌린 여성

    50대 여성이 21일 서울광장에서 현금 2500만원을 공중에 뿌리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이 여성은 “돈 때문에 남편과 아들이 나를 미행하고 병원에 감금시키려 한다. 이를 알리려 제주도에서 올라와 현금 2500만원을 찾아 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 [단독] 7세 딸 암매장한 엄마는 ‘집주인의 꼭두각시’였다

    [단독] 7세 딸 암매장한 엄마는 ‘집주인의 꼭두각시’였다

    “처음엔 단순히 애 엄마(박모씨·42)가 딸을 때려 살해한 뒤 암매장한 사건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꽤 복잡한 사건이더라고요. 아이 엄마는 집 여주인(이모씨·45)이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어요. 딸에 대한 폭행도 집주인의 사주에 따라 이뤄졌어요. 아이 엄마에게 집주인은 일종의 교주였던 셈이죠. 집주인 이씨에게 살인죄를, 엄마 박씨에게 학대치사죄를 적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수사팀 관계자의 말) 박씨의 딸 A(2011년 10월 사망 당시 7세)양이 숨지기 직전 33개월(2009년 1월~2011년 10월) 동안 어른 6명과 그들의 자녀 5명이 함께 생활했던 경기 용인의 72평 아파트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고성 여아 학대 암매장 사건’의 주범인 이씨와 이씨의 언니(50), 박씨, 박씨의 친구 백모(42)씨, 백씨의 친모 유모(68)씨 등 피의자 5명이 최근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사건의 수사를 담당한 검찰과 의학 전문가 등이 전하는 비극의 실상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21일 검찰 등에 따르면 박씨가 A양과 둘째 딸 B양을 데리고 이씨의 아파트로 들어온 건 2009년 1월이었다. 대학(서울의 4년제 대학) 동창인 백씨로부터 “기도만 해 줘도 아픈 게 싹 낫는 영험한 분”이라고 이씨를 소개받고서였다. 이씨는 백씨 아들(11)의 학습지 교사였다. 박씨는 당시 몸도 아프고 의지할 곳도 없는 외로운 상태였다. 친정 식구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멀리 있었고, 남편과는 별거 중이었다. 이씨는 박씨를 “나와 함께하면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꼬드겼다. 박씨는 늘 자신만만하고 믿음직해 보이는 이씨를 친언니 이상으로, 그리고 선생님 이상으로 모셨다. 자신의 친정집을 처분해 마련한 9억여원을 이씨에게 건넸을 정도였다. 백씨가 이씨에게 준 돈도 1억원에 달했다. 이씨를 포함한 이들은 모두 기독교 신자였다. 이들에게 이씨는 용인 아파트라는 ‘성전’을 이끄는 ‘교주’였다. 박씨와 백씨가 3년 가까이 이씨 소유의 휴대전화 매장 등에서 월급도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박씨와 백씨는 주민등록증까지 뺏겨 외부와의 접촉도 막힌 상태였다. 이씨는 “위(하나님)에서 시킨 일”이라는 논리로 집안의 독재자로 군림하며 박씨의 큰딸인 A양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소파 등 가구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기도해 보니 A가 한 짓이라는 계시를 받았다”며 박씨에게 딸을 때리도록 했다. 그전까지와 달리 박씨가 A양을 폭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씨의 사주로 자기 딸을 “희대의 악녀”라고 부르며 베란다에 감금하고, 보름간 하루 한 끼만 주는 등 학대 행위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A양이 숨지던 날에도 이씨는 박씨에게 “A가 여기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니 교육 좀 시키라”고 지시했고, 박씨는 딸을 의자에 묶은 뒤 30여분 동안 수십 차례 허벅지 등을 때렸다. 이씨는 박씨가 휴대전화 매장으로 출근한 뒤엔 A양을 직접 때리고 4시간 동안 방치했다. 그 결과 A양은 쇼크 등으로 사망했다. 암매장을 지시한 것도 이씨였다. 박씨의 무한 충성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지난해 10월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박씨와 일곱 살이던 B양을 매정하게 쫓아냈다. 올 1월 박씨는 충남 천안의 한 막걸리 공장 숙직실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의 혐의는 취학연령인 B양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죄(교육적 방임)였다. 그럼에도 A양 피살사건 수사 초기 박씨는 이씨의 존재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는 ‘선생님(이씨)을 저주하면 천벌받아 죽는다’며 끝까지 이씨를 보호하려 했다”고 전했다. 이씨와 박씨의 지배·종속 관계에 대해 이들을 상담했던 김경우 통영정신병원장은 “박씨에게선 의존성 인격장애 성향이, 이씨에게선 자기애성 인격장애 성향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의존성 인격장애 환자는 보살핌을 받으려는 과도한 욕구 탓에 타인에게 순종적이고 매달리려는 성향을 보인다.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경우 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게 특징이다. 전체 인구의 각각 1%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김 원장은 “양극단에 위치해 있는 인격장애 환자들이 만나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매우 드문 사례”라며 “박씨의 경우 가족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고립이 심해지면서 의존성 인격장애가 악화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사건의 자문을 맡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박씨는 재산까지 모두 이씨에게 건넨 뒤 경제적 독립도 불가능해졌다”며 “박씨는 이씨의 끊임없는 이간질로 같은 집에 살던 사람들로부터도 고립되면서 이씨에 대한 심리적인 종속이 강화됐고, 그 결과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단독] 7세 딸 암매장한 엄마는 ‘집주인의 꼭두각시’였다

    [단독] 7세 딸 암매장한 엄마는 ‘집주인의 꼭두각시’였다

    “처음엔 단순히 애 엄마(박모씨·42)가 딸을 때려 살해한 뒤 암매장한 사건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꽤 복잡한 사건이더라고요. 아이 엄마는 집 여주인(이모씨·45)이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어요. 딸에 대한 폭행도 집주인의 사주에 따라 이뤄졌어요. 아이 엄마에게 집주인은 일종의 교주였던 셈이죠. 집주인 이씨에게 살인죄를, 엄마 박씨에게 학대치사죄를 적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수사팀 관계자의 말) 박씨의 딸 A(2011년 10월 사망 당시 7세)양이 숨지기 직전 33개월(2009년 1월~2011년 10월) 동안 어른 6명과 그들의 자녀 5명이 함께 생활했던 경기 용인의 72평 아파트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고성 여아 학대 암매장 사건’의 주범인 이씨와 이씨의 언니(50), 박씨, 박씨의 친구 백모(42)씨, 백씨의 친모 유모(68)씨 등 피의자 5명이 최근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사건의 수사를 담당한 검찰과 의학 전문가 등이 전하는 비극의 실상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21일 검찰 등에 따르면 박씨가 A양과 둘째 딸 B양을 데리고 이씨의 아파트로 들어온 건 2009년 1월이었다. 대학(서울의 4년제 대학) 동창인 백씨로부터 “기도만 해 줘도 아픈 게 싹 낫는 영험한 분”이라고 이씨를 소개받고서였다. 이씨는 백씨 아들(11)의 학습지 교사였다. 박씨는 당시 몸도 아프고 의지할 곳도 없는 외로운 상태였다. 친정 식구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멀리 있었고, 남편과는 별거 중이었다. 이씨는 박씨를 “나와 함께하면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꼬드겼다. 박씨는 늘 자신만만하고 믿음직해 보이는 이씨를 친언니 이상으로, 그리고 선생님 이상으로 모셨다. 자신의 친정집을 처분해 마련한 9억여원을 이씨에게 건넸을 정도였다. 백씨가 이씨에게 준 돈도 1억원에 달했다. 이씨를 포함한 이들은 모두 기독교 신자였다. 이들에게 이씨는 용인 아파트라는 ‘성전’을 이끄는 ‘교주’였다. 박씨와 백씨가 3년 가까이 이씨 소유의 휴대전화 매장 등에서 월급도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박씨와 백씨는 주민등록증까지 뺏겨 외부와의 접촉도 막힌 상태였다. 이씨는 “위(하나님)에서 시킨 일”이라는 논리로 집안의 독재자로 군림하며 박씨의 큰딸인 A양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소파 등 가구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기도해 보니 A가 한 짓이라는 계시를 받았다”며 박씨에게 딸을 때리도록 했다. 그전까지와 달리 박씨가 A양을 폭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씨의 사주로 자기 딸을 “희대의 악녀”라고 부르며 베란다에 감금하고, 보름간 하루 한 끼만 주는 등 학대 행위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A양이 숨지던 날에도 이씨는 박씨에게 “A가 여기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니 교육 좀 시키라”고 지시했고, 박씨는 딸을 의자에 묶은 뒤 30여분 동안 수십 차례 허벅지 등을 때렸다. 이씨는 박씨가 휴대전화 매장으로 출근한 뒤엔 A양을 직접 때리고 4시간 동안 방치했다. 그 결과 A양은 쇼크 등으로 사망했다. 암매장을 지시한 것도 이씨였다. 박씨의 무한 충성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지난해 10월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박씨와 일곱 살이던 B양을 매정하게 쫓아냈다. 올 1월 박씨는 충남 천안의 한 막걸리 공장 숙직실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의 혐의는 취학연령인 B양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죄(교육적 방임)였다. 그럼에도 A양 피살사건 수사 초기 박씨는 이씨의 존재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는 ‘선생님(이씨)을 저주하면 천벌받아 죽는다’며 끝까지 이씨를 보호하려 했다”고 전했다. 이씨와 박씨의 지배·종속 관계에 대해 이들을 상담했던 김경우 통영정신병원장은 “박씨에게선 의존성 인격장애 성향이, 이씨에게선 자기애성 인격장애 성향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의존성 인격장애 환자는 보살핌을 받으려는 과도한 욕구 탓에 타인에게 순종적이고 매달리려는 성향을 보인다.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경우 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게 특징이다. 전체 인구의 각각 1%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김 원장은 “양극단에 위치해 있는 인격장애 환자들이 만나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매우 드문 사례”라며 “박씨의 경우 가족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고립이 심해지면서 의존성 인격장애가 악화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사건의 자문을 맡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박씨는 재산까지 모두 이씨에게 건넨 뒤 경제적 독립도 불가능해졌다”며 “박씨는 이씨의 끊임없는 이간질로 같은 집에 살던 사람들로부터도 고립되면서 이씨에 대한 심리적인 종속이 강화됐고, 그 결과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단독] 7세 딸 암매장한 엄마는 ‘집주인의 꼭두각시’였다

    [단독] 7세 딸 암매장한 엄마는 ‘집주인의 꼭두각시’였다

    “처음엔 애 엄마(박모씨·42)가 딸을 때려 살해한 뒤 암매장한 사건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꽤 복잡한 사건이더라고요. 아이 엄마는 사는 집 여주인(이모씨·45)이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어요. 딸에 대한 폭행도 집주인의 사주에 따라 이뤄졌어요. 아이 엄마에게 집주인은 일종의 교주였던 셈이죠. 집주인 이씨에게 살인죄를, 엄마 박씨에게 학대치사죄를 적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검찰 관계자) 박씨의 딸 A양(2011년 10월 사망 당시 7세)이 숨지기 직전 33개월(2009년 1월~2011년 10월) 동안 어른 6명과 그들의 자녀 5명이 함께 생활했던 경기 용인의 72평 아파트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고성 여아 학대 암매장 사건’의 주범인 이씨와 이씨의 언니(50), 박씨, 박씨의 친구 백모(42)씨, 백씨의 친모 유모(68)씨 등 피의자 5명이 최근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사건의 수사를 담당한 검찰과 의학 전문가 등이 전하는 비극의 실상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21일 검찰 등에 따르면 박씨가 A양과 둘째 딸 B양을 데리고 이씨의 아파트로 들어온 건 2009년 1월이었다. 대학(서울의 4년제 대학) 동창인 백씨로부터 “기도만 해 줘도 아픈 게 싹 낫는 영험한 분”이라고 이씨를 소개받고서였다. 이씨는 백씨 아들(11)의 학습지 교사였다. A양의 친모 박씨는 당시 몸이 아프고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상태였다. 친정 식구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멀리 있었고, 남편과는 별거 중이었다. 집주인 이씨는 박씨를 “우리가 함께 지내야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며 꼬드겼다. 박씨는 늘 자신만만하고 신실해 보이는 집주인 이씨를 언니이자 선생님으로 모셨다. 자신의 친정집을 처분해 마련한 9억여원을 이씨의 꾐에 빠져 갖다 바쳤다. 백씨도 이미 1억여원을 이씨에게 건넨 상태였다. 집주인 이씨는 11명 공동 주거지의 ‘교주’ 집주인 이씨를 포함한 이들은 모두 기독교 신자였다. 이들에게 이씨는 용인 아파트라는 ‘성전’을 이끄는 ‘교주’였다. 친모 박씨와 친구 백씨가 3년 가까이 이씨 소유의 휴대전화 매장 등에서 월급도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한 것도 그런 탓이었다. 박씨와 백씨는 주민등록증과 휴대전화까지 뺏겨 외부와의 접촉도 막힌 상태였다. 집주인 이씨는 “위(하나님)에서 시킨 일”이라는 논리로 집안의 독재자로 군림하며 박씨의 큰딸인 A양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소파 등 가구에 흠집이 생기면 “기도해 보니 A가 한 짓이라는 계시를 받았다”며 박씨에게 딸을 때리도록 했다. 그전까지와 달리 박씨가 A양을 폭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씨의 사주로 자기 딸을 “희대의 악녀”라고 부르며 베란다에 감금하고, 보름간 하루 한 끼만 주는 등 학대 행위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자수하자”는 A양 친모에게 암매장 지시 A양이 숨지던 날에도 이씨는 친모 박씨에게 “A가 여기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니 교육 좀 시키라”고 지시했고, 박씨는 딸을 의자에 묶은 뒤 30여분 동안 수십 차례 허벅지 등을 때렸다. 이씨는 박씨가 휴대전화 매장으로 출근한 뒤엔 A양을 직접 회초리 등으로 마구 때리고 4시간 동안 방치했다. 그 결과 A양은 쇼크 등으로 사망했다. “자수하자”는 박씨에게 암매장을 지시한 것도 집주인 이씨였다. 박씨의 무한 충성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지난해 10월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박씨와 일곱 살이던 B양을 내쫓았다. 올 1월 박씨는 충남 천안의 한 막걸리 공장 숙직실에서 B양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혐의(교육적 방임)로 경찰에 검거됐다. 그럼에도 수사 초기 박씨는 집주인 이씨의 존재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검찰 관계자는 “박씨는 ‘선생님(이씨)을 저주하면 천벌받아 죽는다’며 끝까지 이씨를 보호하려 했다”고 전했다. 집주인은 ‘자기애성’, 친모는 ‘의존성’ 인격장애 이씨와 박씨의 지배·종속 관계에 대해 이들을 상담했던 김경우 통영정신병원장은 “친모 박씨에게선 의존성 인격장애 성향이, 집주인 이씨는 자기애성 인격장애 성향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의존성 인격장애 환자는 보살핌을 받으려는 과도한 욕구 탓에 타인에게 순종적이고 매달리려는 성향을 보인다.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경우 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게 특징이다. 전체 인구 중 각각 1%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김 원장은 “양극단에 위치해 있는 인격장애 환자들이 만나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매우 드문 사례”라며 “박씨의 경우 가족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고립이 심해지면서 의존성 인격장애가 악화된 것 같다”고 밝혔다. “‘안산 세모자 사건’과 비슷한 양상” 자신과 두 아들(17세, 13세)이 남편 등 주변인 40여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30여차례나 허위로 고소하면서 지난해 11월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산 세모자 사건’의 어머니 이모(44)씨와 사건을 배후 조종한 무속인 김모(56·여)씨 역시 이들과 비슷한 경우로 손꼽힌다. 검찰 관계자는 “안산 세모자 사건의 이씨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줬다’고 여긴 김씨를 맹목적으로 따랐다”면서 “김씨 역시 이씨를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기 위해 이씨와 주변인들 사이를 꾸준히 이간질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자문을 맡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박씨는 재산까지 모두 이씨에게 건넨 뒤 경제적 독립도 불가능해졌다”며 “이씨의 끊임없는 이간질로 박씨는 같은 집에 살던 사람들로부터도 고립되면서 이씨에 대한 심리적인 종속은 강화됐고, 그 결과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내몬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사건 해결의 단서는 박씨 스스로 제공했다고 수사팀 관계자들은 전했다. A양의 행방에 대해 박씨는 “서울 노원구의 한 놀이터에서 잃어버렸다”고 했다가 나중엔 “내가 죽여 혼자 야산에 파묻었다”고 말을 바꿨다. 수사팀 관계자는 “자기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누군가를 보호하려는 듯한 모습에 의구심을 가졌던 게 결국 주변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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