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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이 세기의 인물탐구:81)

    ◎박진감 넘치는 심혼의 선율… 청중 사로잡아/5세에 입문… 미 줄리아드서 혹독한 레슨 거쳐/연 100회 이상 공연 스케줄 잡힌 세계10대 연주자/67년 레벤트리트경연서 주커만과의 공동우승은 세계음악사에 기록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83년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연주자」로 정경화를 선정한 적이 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다이내믹과 이모션은 한번 활을 잡기만하면 폭풍같은 절조로 청중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만다.흡사 「마야의 박사가 조각조각 찢어져 신비에 가득찬 근원자의 무릎앞에 펄럭이 듯이 그의 몸속에선 마혹과 초자연이 흘러나온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더구나 자기비판에 엄격하여 「열광적 도취를 알지 못하는 정관(정관)은 참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정관이 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최근에는 진주빛 화염을 가라앉힌 「진한 포도주의 바다같은 심혼의 선율을 빚어낸다」는 평을 듣는다. 정경화의 일사불란하게 화려한 연주경력을 일일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는 데뷔이래 「톱」의 자리에 우뚝 선 채 자신의 위상을 도도하게 지켜왔고 지금도 그렇다.그중에서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난 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심포니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연을 들지 않을 수 없다.이 한번의 연주로 그는 미국의 9대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영국에서 30회를 연주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고 연 1백회이상의 연주스케줄을 갖는 가장 위대한 연주가의 한사람이 되었다. ○데뷔이래 정상에 우뚝 이보다 앞서 67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레벤트리트 경연대회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승을 차지한 일은 세계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기도 한다.평론가 위데 콤베는 이날 정경화연주에 대해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나 스턴이 이보다 더 출중한 연주를 했다할지라도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며 그녀만이 갖는 강한 호소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최상의 연주」라고 호평한바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도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잭 스턴을 대부로 하는 막강한 유태계 세력이 주커만을 에워싼 가운데 고독한 싸움에서 이긴 정경화는 지금 주커만 펄만과 어깨를나란히 하면서 명실공히 세계10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돌아본다.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 여신처럼 떠받들려진 그는 75년 샤를르 뒤트와 시벨리우스를 연주했을 때는 일본의 평론가 우노 호이모로부터 「예리한 칼로 살을 베었을 때 푹 솟아오르는 선혈처럼 신선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등의 극찬 등 황홀한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일찍이 레코드 재킷에서나 볼 수 있는 로린마젤 게오르그 솔티 리카르토 무티 앙드레 프레빈 루돌프 켐페 등이 지휘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영국의 데카를 통해 20여장의 레코드를 내놨고 언제부턴가 한국의 정경화만이 아닌 세계적 「대가」로 군림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그는 천재이며 타고난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른 것일까.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게 「노!」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그는 「음악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 없으며 연주할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고 단 한번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한다.지난번 광복 50주년 기념연주차 귀국했을 때도 그가 묵고있는 신라호텔 미팅룸에서 하루종일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연습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했다. 청중을 사로잡는 마력 때문에 만사에 적극적이고 어딘지 여걸스러우리라고 짐작되지만 정경화의 진짜 성격은 낯가림이 심하고 「말도 못하게 내성적」이며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서 친구도 별반 없는 편이다.다만 첼리스트인 언니 명화씨와 지휘자인 동생 명훈씨와의 트리오는 혈육다운 최상의 절창을 이루고 그리고 그를 생명처럼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여사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용모 또한 화사하고 순수하여 무대에서의 관록이나 권위따윈 찾아볼 수 없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 널리 알려지다시피 그는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9세때 서울시향과 협연,61년 가족이 미국에 이주하면서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일류 바이올리니스트만을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교수와 조지프 시게티의혹독한 레슨을 거쳐 「자기만의 표현능력과 음악적 언어로써 감정을 총괄하고 통제」하는 연주자로 성장했다.이는 「정말 바이올린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몸속에서 꿈틀거린 때문」이며 「수많은 장애를 극복한 일은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길이 없다」는 음악계의 평은 옳다.그런 점에서 「때로는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듯 때로는 귀기가 서린 박진감으로 인해 그의 연주를 듣고난 다음 다른 연주를 들으면 어딘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남아있는 듯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순열씨(음악평론가)의 말은 음악애호가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자연과 함께 살면서 그 속에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속에는 자연의 모든 색깔들이 칠해져 있다는 걸 나는 일찍이 스승들로부터 배웠어요』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주활동은 앞으로 10년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며 「음악이 지닌 색채감과 이디엄에 집중하여 자신감을 성취한 지예에 다다르고 싶다」는게 그의 꿈이다. 바이올린의 화신인듯 그래서 음악과 결혼한 것처럼 보이던 그가지난 84년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영국인 사업가 제프리 리게티씨와의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로인해 그의 들끓는 정열과 현란한 선율이 한치라도 사그라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그러나 결혼후 피아니스트 필립 몰과 레코딩한 「정경화 콘 아모레」는 『살바도르 달리가 「피는 꿀보다 달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이젠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꿀보다도 달다」란 그림을 그려야 할때』라는 평을 받을 만큼 신기의 솜씨로 청중을 도취시켰다.영국의 평론가 에드워드 그린필드는 「정경화가 온세계를 향해 바이올린의 활로 쏜 화살은 에로스의 황금화살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할뿐 아니라 우리들을 음악의 유토피아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쓸 정도였다.지난 봄 그의 귀국 연주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교장도 「음악을 끝까지 지킨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가 활을 긋는 그 순간부터 정경화는 아직도 우리의 희망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일깨운다.부군인 리게티씨(49)는 「성격이 온화한 정경화 음악팬」으로서 그의 음악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협조하고 외조한다고 전한다.두아들은 엄마를 따라 재곤(프레데릭·10)은 첼로와 피아노,유진(7)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고 방학을 이용해 광복50년기념행사에 다녀갔다. ○두 아들도 음악공부 실제로 결혼후 정경화만큼 눈에 띄는 변모를 보인 예술가는 별로 흔치 않다.한국에서 태어나 무수한 장애를 넘어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끈질긴 집념과 강한 개성 때문에 「때때로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앙칼져 보이기도 했던」 오기는 이젠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패기와 자존심과 싱싱함과 날카롭게 찔러오는 그 전율」은 한층 침후해지고 그의 손과 머리와 마음은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움을 캐면서 달빛이 녹아 강물을 이루듯 흘러넘치는 광채로 청중의 온몸을 적신다. 지금 「세계가 기억하는 연주가 정경화」는 「자연의 심장인 명작의 숲」속에 서서 인간의 심장이 아닌 영혼을 깨우고 흔드는 절기의 선율로 하늘을 꿰뚫고 싶을지도 모른다. □연보 ▲1948년 서울에서 출생.정준채씨와 이원숙여사의 4남3녀중 넷째 ▲53년서울시향과 협연 ▲61년 이화여중 재학중 도미­줄리아드음대서 갈라미언및 시게티사사 ▲64년 카네기홀 독주 ▲66년 메리웨더 포스트청소년 국제 콩쿠르 수상 ▲67년 레벤트리트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주커만과 공동1위­줄리아드 음악원 졸업­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입상 ▲70∼84년 런던심포니(지휘 앙드레 프레빈)뉴욕필(지휘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필라델피아·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몬트리올·보스턴심포니,로스앤젤레스·이스라엘·로열필,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빈·프랑스 국립교향악단 등과 연 1백회연주,데카 EMI전속 ▲73년 「스트라빈스키 왈튼협주곡」레코드로 에디슨상,독일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수상 ▲80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84년 결혼이후 런던필(지휘 리카르도 무티)·프랑스국립교향악단(피아노 필립 몰)·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오케스트라·프랑스국립관현악단·베를린필협연등 연 70회연주,유럽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지역 순회연주 ▲92년 미국의 92 엑설런스 20 00상 수상 ▲94년바르토크 협주곡으로 그라모폰상,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빈티지 레코드」선정 ▲95년 정트리오 시향협연및 부산 청주 마산 독주회,광복50주년 축전음악회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대향연(잠실주경기장) 피아노 필립 몰·라두루프 등과 데카·EMI에서 레코드 20여장및 CD LD출반
  • 폭우에 아파트 붕괴 위험/서울 도곡동 주공

    ◎2개동 지반 50m 무너져/1백20가구 4백여명 긴급대피/지하기둥 노출… 가스 누출대비 응급조치 24일 하오1시25분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주공아파트 32동에서 33동에 걸친 50m가량의 남쪽지반이 집중호우로 10m가량 밑으로 무너져 아파트 지하기둥이 드러나는등 붕괴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사고로 32동과 33동 1백20세대,4백여명의 주민이 인근 현대체육관으로 긴급 대피,수용됐다. 이날 사고는 밤새 내린 빗물이 아파트 남측 시멘트지반에 스며들어 지반이 10분간격으로 두차례에 걸쳐 침하되면서 발생했으며 무너져 내린 토사 더미가 아파트 아래 대도국민학교와 중대부속중학교 신축공사장을 덮쳐 공사장인부 5∼6명이 긴급대피했다. 사고가 나자 119소방대원,가스안전공사 직원등 50여명이 현장에 나와 아파트 붕괴위험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했으며 가스밸브를 잠그고 무너져 내린 토사에 비닐을 씌우는등 응급조치를 취했다. 경비원 정석원(47)씨는 『상오10시쯤 산비탈위에 위치한 33동쪽 지반이 폭 10㎝,길이 1m가량 갈라지기 시작했으며 계속된 비로 하오1시가 넘어서자 32,34동의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민 이모씨(40·여)는 『갑자기 「쉬」하면서 가스 새는 소리가 나고 집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흙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 급히 대피했다』고 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 93년 가을 폭우가 쏟아졌을때도 이 아파트 34동쪽 지반이 침하돼 주민들이 대피소동을 빚은 적이 있으며 최근에는 지난해 봄부터 시작된 중대부중 공사로 소음과 함께 유리창이 흔들릴 정도의 심한 진동으로 구청에 여러번 진정을 내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지난 77년 6월 매봉산기슭에 준공된 이 아파트는 노후화돼 곧 재건축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 “일류국가 건설 국민통합 협조를”/김 대통령

    ◎김대중씨 등 각계 원로 회동서 당부/세계화­개혁 계속 추진/대화합차원 10월 1천만명 일반사면 김영삼대통령은 23일 낮 청와대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창당준비위원장 등 여야 정당대표,전현직 국회의장·국무총리,그리고 김승곤광복회장 등 각계 지도자 24명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광복 50주년과 집권후반기 출범을 계기로 한 국민화합등 국정운영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올해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1백주년임을 상기시킨 뒤 『당시 우리 지도자들이 친일·친로로 갈라져 싸우다 결국 나라를 잃었지만 오늘날도 국론이 갈라지지 않고 힘이 있어야만 나라도 지키고 평화도 지킬 수 있다』고 말하고 『이제 국론분열만 없다면 세계 일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다』면서 국민통합과 국민동참을 위해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광복 50주년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것』이라고 강조하고 『완전한 광복은 통일을 이뤄야만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앞으로도 변화와 개혁을 꾸준히 추진할 것이며 부정부패척결 만큼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세계화와 변화·개혁을 통해 일류국가를 만드는데 국민 모두가 동참하도록 여러분들이 애국적 견지에서 도와달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광복절을 계기로 대화합을 위해 특별사면을 단행했으며 앞으로 정기국회의 동의를 얻어 1천만명으로 예상되는 사람에 대한 일반사면도 단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통령과 김대중 위원장의 이날 만남은 지난 92년 8월 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회에서 여야대표회담을 가진 이후 3년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것으로 향후 여야관계 정립및 정국운영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시간10분동안 진행된 오찬에는 김위원장이외에 김승곤 광복회장,김계수 광복기념사업회장,황낙주 국회의장,이만섭 전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김덕주·이일규 전대법원장,이홍구 국무총리,이영덕·이회창·황인성·현승종·정원식·강영훈·노신영·신현확 전총리,김용준 헌법재판소장,조규광 전 헌법재판소장,김윤환 민자당 대표위원,이기택 민주당 총재,이철승·이민우·유치송 전 야당총재등이 참석했다.
  • 시인 고은씨 불교소설 「선」펴내/인도승 달마 중에 선종 전파 묘사

    ◎선문답·고승 수행과정도 보여줘 우리 문단에서 일 욕심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고은(62)시인이 두번째 불교소설 「선」1,2권을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냈다.지난 51년 효봉스님 밑에서 불도를 닦다 10년만에 환속했던 그가 새삼 불교를 되끄집어내고 있는데는 노시인의 고향 회귀심리 같은 것이 엿보인다. 이 책은 인도승 달마가 중국에 건너가 선종의 씨를 뿌린 뒤 6조 혜능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이 시기는 선종이 불안한 남북조시대 중국사회에서 보리류지같은 반대세력의 음해를 뚫고 뿌리를 내리는 기간이다. 「저 성의 모양이 비록 실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저 성에 도달하게 되리라.일체의 실상을 하나의 비유로 돌리는 힘이라면 또한 실상이 아닌것을 실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음이니」같은 알쏭달쏭한 말씀들과 「초조께서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뜰앞의 잣나무니라」같은 선문답을 비롯,오묘한 경전구절과 게송,고승들의 행적과 기이한 수행과정 등이 그윽한 불립문자의 세계를 보여준다.한편 6대의 법통계승과정을 둘러싼 각축과 황실의 세력다툼으로 선의 세계에 끼어든 「정치」의 모습도 나란히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냉전이데올로기의 절대기간이 끝난데다 서구중심사관이 해체되고 있는데서 동양정신의 자기실천인 선의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히고 있다.혜능이후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갈라져 세력을 넓혀가는 선의 추후 이야기도 앞으로 같은 작품에 묶을 계획이다.
  • “10월∼11월 안보리 진출… 긍지 갖자”­김 대통령

    ◎「청와대 오찬회동」 대화록/“유엔총회때 연설 하셔야죠… 북선 누가옵니까”­DJ/“지도자들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뒷받침을”­KT 김영삼 대통령은 23일 낮 새정치 국민회의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을 비롯한 여야대표와 전·현직 3부요인 등 24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했다. 다음은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오찬회동 대화요지. ▲김대통령=옛 총독부건물을 헌 것은 국민 절대 다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그 건물은 사무실로 지은 것이지 박물관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우리 문화재 가운데 현재 그 건물에 있는 것은 5천여점이고 20여만점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새(임시)박물관을 짓고 있고 문화재 보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홍구 총리=정부가 홍보를 잘못한 부분도 있습니다.하나는 총독부 건물을 두고는 경복궁을 복원하지 못한다는 것,또하나는 따로 역사박물관을 짓고 있어 문화재 수장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보다 적극 알려야 했습니다. ▲김대통령=비가 많이 와서 대부분 해갈이 돼 다행입니다.전남지역에 90㎜가왔고 경북지역에도 10㎜가 왔으나 앞으로 더 올 것이라고 합니다. (김대중 위원장에게) 요즘 수고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김위원장=(가볍게 목례를 한뒤)유엔총회때 가셔서 연설을 하셔야죠.10월인가요.북한에서는 누가 오게 됩니까. ▲김대통령=10월에 가는데 첫날 제가 연설을 하고 다음날 북한이 연설을 하는데 누가 오는지는 알수 없고 연설만 신청해 놓고 있습니다. (이기택 민주당 총재에게)요새 고생 많이 하시지요. ▲이총재=야당이 원래 그렇습니다.고생에는 이골이 났습니다.국가지도자들이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뒷받침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김대통령=(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에게)고희때 제가 생신을 차려드린 기억이 있는데 벌써 팔순이 넘으셨으니…. ▲이전총재=그때는 어려울때인데 성대하게 치러줘 정말 감사했습니다. ▲김대통령=그때 등산을 배웠습니다.처음에는 10명미만이 갔고 나중에는 50∼1백명으로 늘어났어요.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결심,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시점입니다.조국광복을 위해 애쓴 분,그중에서도 들판에서 이름없이 사라진 분들을 생각할 때 광복 50주년은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광복은 통일을 성취해야만 달성됩니다.냉전이 종식됐다고 하지만 한반도 만은 냉전이 계속되는 불행한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6·25때 유엔 안보리 결의로 16개국이 참전,우리의 자유를 지켜줬는데 우리가 비상임이사국으로 오는 10월이나 11월 안보리에 진출하게 됩니다.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2차대전후 많은 신생국이 생겼지만 그중에서 한국은 전쟁의 참화로 가장 어려운 나라였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문민민주주의를 성취하고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됐습니다.세계에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이는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1백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당시 우리 지도자들이 친일·친로로 갈라져 싸우다 결국 나라를 잃고 말았습니다.국론이 갈라져 나라를 잃은 것인데 지금도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키고 평화도 지킬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한반도에서 우리가 이만큼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도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취임직후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에서 탈퇴,지난 2년여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임기중 어떻게 해서든 전쟁은 막아야 겠다는 각오아래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 변화와 개혁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갈 것입니다.광복절을 계기로 국민대화합을 위해 대사면을 단행했습니다.일반사면은 건국후 두번 있었는데 법무부에서 대상자 선정작업이 끝나면 정기국회의 동의를 거쳐 시행할 것입니다.대상은 1천만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변화와 개혁,세계화를 통해 일류국가를 만드는데 국민 모두가 동참하도록 해야합니다.우리의 경제력이 이만큼 컸기 때문에 국론분열만 없으면 세계 중심국가가 될수 있다는 점과 광복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러분의 협조를 바랍니다.부정부패척결은 앞으로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며 이번 사면에서도 그런 사람은 제외시켰습니다. 여러분이 애국적 견지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중심국가가 될수 있는기틀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고 국민들의 성원이 합쳐지면 반드시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나라를 물려 줄수 있게될 것으로 믿습니다.
  • 일본에선…/주일 한국대사관(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9)

    ◎68만 교민 대변하는 「작은 한국정부」/통상적 외교보다 정치적 업무 비중 커/“일은 한국도움 필요” 외교가서도 중시 일본하늘에 펄럭이는 태극기.그 태극기가 휘날리는 주일 한국대사관은 일본속의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한국대사관은 대일외교의 첨병 역할과 함께 양국을 잇는 가교역을 맡아 오며 국교정상화후 한·일관계 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다. 한국대사관은 도쿄 중심부의 외교가라 할 수 있는 미나미 아자부에 있다.한국대사관은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1965년에 설치됐으며 그전에는 1949년 1월부터 주일대표부가 있었다.일본에는 대사관 관할아래 오사카 총영사관,후쿠오카 총영사관,요코하마 총영사관등 10개의 총영사관과 가고시마 명예총영사관이 있다. ○양국발전에 공헌 주일 한국대사관과 한국외교사절을 대표하는 주일대사는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교민들을 보호·감독하며 양국간의 우호관계 증진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다.김태지 주일대사는 『대사관의 중요한 역할은 한국정부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교민의 이익을 보호하고양국의 우호관계를 통한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일본에는 특히 68만명의 재일동포가 살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관광객과 기업이나 각 기관의 주재원들이 크게 늘어나며 영사업무도 많아졌다. 한국대사관은 그러나 그러한 통상적인 역할과 업무와는 또다른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일본은 지난 36년동안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굴절된 역사관계가 있는 나라일 뿐 만 아니라 민단과 조총련으로 갈라진 이국땅에서의 민족분단의 비극과 이념적 대결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북의 정보도 수집 정치성이 강했던 한국대사관은 한·일간의 최대 현안인 과거청산문제 해결과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일본의 지원문제 등을 위한 중요한 창구역할을 해왔다.그러나 양국관계가 냉각되거나 일본정치인들의 역사문제에 대한 망언이 되풀이되면서 외교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대사관은 재일동포들의 권익보호와 법적지위향상 등을 위해 민단과 협조하며 일본정부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대사관은 또 남북대결의 또다른 현장인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수집이라는 중요한 임무도 담당해 왔다.한국외교관들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북한을 다녀온 조총련계 재일동포나 일본인들과 직·간접의 접촉을 시도하고 일본정부와도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주일대사관의 이러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때문인지 대사도 대부분 정치적 비중이 있던 인물들이었다.초대 김동조 대사를 비롯,2대의 엄민영,3대 이후락,4대 이호,5대 김영선,6대 김정렴,7대 최경록,8대 이규호,9대 이원경등 「거물급」이었다.정치적 현안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치적 대사」가 필요했다고 한 외교관은 말한다. ○90년이후 실무형 그러나 90년대 들어 서며 과거사문제가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냉전의 붕괴로 이념적 대결이 약화되며 정치적 비중보다는 양국간의 경제현안등 실무적인 문제들이 중요한 이슈가 되며 대사도 실무형의 전문외교관 출신으로 바뀌었다.그 첫시도가 10대 대사로 부임한 오재희 전외무차관이었다.그 후 11대의 공로명 현외무장관 그리고 현재의 김태지 대사로 이어진다. 주일 한국대사관은일본 외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크다.아시아국가중 일본이 가장 중시하는 국가는 물론 중국이지만 일본에 주재하는 외교관중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그 숫자가 많다.미국은 1백35명의 외교관을 일본에 파견하고 있으며 한국이 그 다음으로 78명,중국이 77명 그리고 러시아가 41명의 순이다. 『일본은 과거사문제때문에 한국과 껄끄러운 면도 있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로 한국을 중시하고 있다』고 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말한다.그는 『일본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에서의 협력을 비롯,대외정책에서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미국주재 한국대사관과 함께 외무부에서도 중시되고 있다.그러나 한·일간의 이슈가 많을 때는 외교관이 많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외교관 과잉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는 외교관도 있다. ◎김태지 주일 한국대사 인터뷰/국제무대서 한­일은 중요 파트너/일의 솔직한 과거 반성꼭 있어야 김태지 주일 한국대사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관계는 경제문제등 현실적인 현안들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일본은 아시아의 협력문제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복 50주년 한·일국교정상화 30년이 된 오늘의 한·일관계 현주소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일관계의 최대 현안인 과거사문제등 그동안 산적했던 많은 정치적 문제들이 어느정도마무리되고 경제문제등 실무적인 이슈들이 중시되고 있는 느낌입니다.일본은 한국에게도 중요하지만 일본도 한국을 매우 중요한 이웃나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한·일국교정상화 당시의 양국 교역은 2억달러 정도밖에 안됐었으나 지금은 3백90억달러로 그 규모가 커졌습니다.물론 무역역조의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만….그리고 양국간의 인적 교류도 활발하여 지난 해에는 2백70만명(일본인 1백65만명,한국인 1백5만명)이 서로 상대국을 방문했습니다. ­일본은 오늘의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국의 국력신장에 따라 국제적 위상이크게 높아졌다고 일본사람들은 말합니다.일본정부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등 국제기구와 지역협력을 위해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며 국제무대에서의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사문제의 해결방법은 어떻습니까. ▲일본사회에서는 과거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등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국수주의적 사고를 가진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일본은 아시아국가들이 납득할 만한 과거청산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이나 다른 아시아국가들이 과거사를 보는 시각이 일치되도록 일본은 노력하여야 합니다.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일치하려면 일본의 솔직한 과거청산이 필요합니다.그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일본이 세계로 진출하여야 좋은 외교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일본의 밝은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의 정치인·관료·지식인 등을 만날 때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양국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양국간의 진정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건전한 학술·문화의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양국간에는 또 과거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폭을 넓혀야 하며 그러한 접근이 과거문제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구조적인 문제인 무역역조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일본기업의 한국유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를 위해 한국은 투자유치단을 파견하고 홍보를 강화하는 등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과의 국교정상화회담 전망은 어떻습니까. ▲북한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합니다.그러나 일본은 북한과의 접촉과 관련,한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 「한국전쟁 기원」 논쟁(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2)

    ◎「이데올로기 잣대」 따라 남침­북침설 대립/본지연재 「모스크바 새증언」이 남침 입증 한국전쟁의 진행 상황은 본지 연재물 「6·25 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에서 이미 자세히 소개했습니다.따라서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시리즈에서는 전황을 직접 다루지 않는 대신 한국전쟁 기간중 있었던 주요 사건·사고와 정치·경제·사회적 흐름을 주로 소개하겠습니다.독자 여러분께 배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950년 6월25일 상오 4시 38선 일대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짙은 안개가 드리워 있었다.일요일을 맞아 새벽 단잠에 빠진 한국군부대 막사 위로 한순간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더니 이어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주력부대가 38선을 넘었다.이에 앞서 상오 3시30분쯤에는 북한 게릴라 3천1백여명이 해군 상륙선단편으로 동해안 옥계·삼척·임원 등 3곳에 상륙했다.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터진 것이다. ○북 군사력 한국 압도 북한군은 개전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7월 말에는 경상도·제주도를 제외한 국토 전역을 수중에 넣는 등 파죽지세로 대한민국을 유린했다.북한군이 전쟁 초기 일방적으로 공세를 벌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북한은 일찌감치 전쟁준비에 나서 개전 당시 군사력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개전 초기 양쪽의 전력을 볼 때 북한이 침략의도를 갖고 대한민국을 먼저 공격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일으킨 쪽이 어디냐는,곧 「한국전쟁의 기원」을 따지는 논쟁이 오랫동안 끊이질 않았다.이는 한국전쟁이 단순히 한민족간에 벌어진 내전이나 국지전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세계가 미국·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양블록으로 갈라져 냉전체제로 돌입한 다음 벌어진 첫 대결의 장이었다.따라서 한국전쟁 기원에 관한 학설에는 전쟁 자체의 성격 분석을 전제한 이데올로기적 잣대가 작용하게 마련이었다. 한국전쟁을 해석하는 시각은 냉전 발생의 책임을 미·소 중 어느쪽에 두느냐에 따라 두갈래로 나뉜다.하나는 「소련의 공격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대외정책이 미국의 단호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는 전통주의 학파다.거꾸로 「미국이 월등한 군사·경제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하므로 소련이 불가피하게 대응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쪽은 수정주의 학파라고 부른다.기본적으로 전통주의자들은 「남침설」을,수정주의자들은 「북침설」을 지지한다. 전통주의자들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주범으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자 수상인 스탈린을 대개 지목하며 그 동기는 다음 몇가지로 분석한다.첫째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유럽에서 압박을 가하자 이를 분산시키려고 극동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압력분산설」이 있다.또 ▲세계 적화를 노리는 스탈린이 미국의 대응 의지를 떠보려고 도발했다는 「저항력 실험설」 ▲주한미군 철수,애치슨라인 설정으로 미국이 한국방위를 허술히 한데다 한국에서도 「5·30선거」에서 우익세력이 패하자 그 틈을 노렸다는 「허점공격설」 등이 있다. ○냉전발생책임에 무게 반면 수정주의 학설은 「맥아더와 이승만이 공모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가설에서 출발했다.미국의 좌파 언론인 스톤이 제기한 이 주장은 「이승만은 국내 정치위기를해소하려고,맥아더는 미 정부의 관심을 아시아로 돌리기 위해」전쟁을 획책했다는 논지로 구성됐다.정확한 근거없이 단순한 추측에서 시작된 이 가설은 점차 미국·일본 등 서방국가 좌파 지식인사이에 널리 퍼져 수정주의라는 한 갈래를 이뤘다. 「6·25」를 겪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처구니없어 할 「북침설」이 나름대로 세력을 이룬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먼저 전통주의자건,수정주의자건 한국전쟁을 지나치게 냉전논리로만 파악했다는 점이다.이들은 당시 남북한의 정세나 군사력 비교 등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다만 소련 또는 미국이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분석했다.또 한국전쟁 발발에 관한 북한·소련측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은 점도 학자들의 연구를 제약한 큰 요인이었다.예컨대 북한군의 남침을 밝히는 한글 문헌은 1986년까지 한건밖에 공표되지 않았다. 이같은 학계 분위기는 80년대 후반 들어 반전한다.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 보관중인 「북한 노획문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이 「6·25」를 철저히 준비했고,치밀한 계획에 따라 전쟁을 수행했음이 속속 밝혀졌다.「북한 노획문서」란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에 나선 미군이 평양 등 북한 각지에서 압수한 각종 문서를 총칭하며 그 분량이 1백60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다.이 북한측 자료는,인민군 5개 사단이 6월23일부터 24일 밤사이 38선이북 수㎞ 안에 집결해 25일 새벽 선제공격을 가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가령 6사단 문화부가 6월13일 예하부대에 내려보낸 「전시 정치·문화사업」명령서를 보면 38선으로의 이동­공격 개시­점령지에서의 정치선전 활동에 이르기까지를 5단계로 구분해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북한 노획문서」의 공개와 이에 근거한 연구성과 발표는 어느쪽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느냐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전쟁을 계획하고 주도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이를 결정적으로 확인시켜 준 자료가 서울신문이 올해 발굴해 「6·25 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러시아 소장 비밀문서 9백50여건이다.러시아 외무부·대통령궁·옛소련공산당 중앙위·국방부에서 각각 입수,이번에 처음 공개한 이 자료더미는 한국전쟁 준비에서 휴전에 이르기까지 풀리지 않던 많은 의혹들을 해명해 주었다. ○“3인 공동정범” 밝혀 이에 따르면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은 한국전쟁에 있어 각각 주요 역할을 했고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김일성은 1949년 3월 스탈린을 만나 먼저 전쟁을 제의한다.이를 거부하던 스탈린은 50년 3∼4월 회담에서 남침을 허락했고,이후 53년 3월 사망할 때까지 전쟁을 주도한다.전쟁 계획을 확정하고,중공군을 끌어들였으며,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뒤에도 휴전을 거부하는 등 주요 결정은 모두 스탈린이 내렸다.한편 모택동은 초기에 참전을 주저하긴 했지만 막상 중공군을 투입하고 부터는 전쟁터를 책임진다. 러시아 비밀문서 발굴로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해묵은 논쟁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한민족에게 최악의 상처를 남긴 「6·25」에서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이 공동정범이라는 사실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로 증명됐다. ◎「당 7∼8월 사업계획서」/북,108군·1168면에 「인민위」 설치/도·시·군·면 행정단위 남노당위 “재건”/「평화옹호 서울위」,지지 서명 받아내 전쟁 개시 3일만인 6월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말에는 낙동강 동쪽을 제외한 국토 대부분을 점령한 북한은 점령지에서 당·정 기관의 건립,토지개혁,군지원을 보장하는 활동에 즉시 돌입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비밀문건을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국내 처음으로 공개한다.「당 중앙본부 7월∼8월 사업계획서」라고 이름붙은 이 문서는 「절대비밀」로 분류돼 있으며 등사본으로 50부만 찍은 귀한 자료다.이 문건은 전쟁 초기 승승장구하던 북한이 세운 전략을 알려준다. 사업계획서는 점령지 행정 중심방향으로 ▲옛 남로당조직 복구등 당세 강화 ▲군수품 생산 증대 ▲군·면·이 단위 인민위원선거 및 토지개혁 실시 ▲사회단체 활동 강화 ▲농촌에서의 증산 장려와 현물세 징수 등 5개항을 제시했다.또 10일마다 회의를 열어 이같은 지시사항을 점검하도록 했다. 이 문서에서 나타나듯 북한은 행정구역에 따라 중앙(서울)·도·시·군·면 단위로 각급 당 위원회를 재건하는 동시에 임시인민위원회와 사회단체들을 복구했다.당 위원회 재건작업은 북로당원으로서 파견된 공작대원,남로당 출신 월북자,형무소에서 출감한 남로당 간부 출신,빨치산 간부들이 맡았다.이어 두단계에 걸쳐 「인민정권기관」을 지체없이 세웠다.먼저 점령지에 지역 정권기관으로서 임시인민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곧바로 선거를 거쳐 인민위원회를 정식 설치했다.남한에서 인민위원회가 들어선 곳은 1백8개 군,1천1백68개 면이었다. 인민위원회는 북한에서 실시한 예에 따라 토지개혁을 실시했다.「무상 몰수,무상 배분」을 원칙삼아 일제와 한국 정부,지주 소유 토지는 모두 몰수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자작농은 5∼20정보만 인정했다. 북한은 정치 선전·선동에도 힘을 기울여 7월14일 「평화옹호 서울시위원회」를 조직,북한을 지지하는 서명을 억지로 받아냈다.그 내용은 ▲유엔에 미국의 참전 중지를 요구하고 ▲이승만 대통령 등 대한민국 요인을 반역자로 지목,처형을촉구한 것이었다.
  • 「눈먼 말과 워낭소리」/이준호 대신증권 사장(굄돌)

    용감하고 믿음직스런 오셀로 장군과 백합처럼 순결하고 아리따운 아가씨 데스데모나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만큼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이다.오셀로의 부하 이아고는 이렇듯 뜨거운 두 사람의 사랑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경쟁자를 없애버리고 싶어한다.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젊은 부관과 데스데모나가 불륜의 관계에 있다고 하는 이아고의 말을 들은 오셀로는 그의 귀를 의심하며 혼란에 빠진다.그럴리가 없을텐데 하는 미련은 젊은 부관의 숙소에서 자신이 데스데모나에게 전해준 손수건이 발견됨으로써 이윽고 분노로 변한다.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배신에 오셀로는 타오르는 격정으로 정확한 사실확인도 않은 채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의 목을 조르고 만다. 물론 젊은 부관과 데스데모나의 불륜은 이아고가 꾸며낸 모함이었다.정확한 상황 판단이야말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능력있는 장군 오셀로.그런 그가 엉성하기 짝이 없는 조작극에 놀아났다는 것은 이상한 아이러니다. 강변도로로 갈 것인지,노들길로 갈 것인지 하는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기업을 경영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무수히 해야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신뢰할 만한 정보와 정확한 상황파악과 함께 이들을 종합할 수 있는 개인의 역량이 조화를 이루어 내려진 판단이 올바른 판단에 조금 더 근접할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눈먼 말 워낭소리에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지금 가는 길이 자기가 가야하는 길인지도 모르는체 남이 가느대로 그저 따라만 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미 샌프란시스코 5.4 지진/인명 피해 없어

    ◎터키 남부서도 4.9 지진 【로스앤젤레스·앙카라 로이터 연합】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에서 북동쪽으로 1백90여㎞ 떨어진 리지크레스트에서 17일(현지시간)리히터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관리들이 밝혔다. 이날 지진으로 리지크레스트의 가옥 담벽이 갈라지는 등의 재산피해가 났으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또 터키 남서부 데니즐리주에서도 18일 리히터 규모 4.9의 지진이 발생했으나 인명이나 재산피해 상황은 즉각 보고되지 않고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전세계 소비자를 잡아라”/대기업 위성방송 광고경쟁

    ◎반도체 등 4개TV 선전­삼성/스타TV에 아반떼 소개­현대/LG·대우도 유러스포츠·CNN과 계약 대기업들이 위성방송을 통한 광고경쟁에 돌입했다.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 국경을 넘나들며 전세계의 예비 소비자들을 잡기 위한 글로벌 광고전략이다. 위성방송의 광고비는 국내 TV 골든 타임대의 10분의 1,평균 5분의 1에 불과하다.세계시장은 물론,국내에도 위성방송 시청자들이 급증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세계 속의 기업임을 알리는데도 효과가 크다.위성 TV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차세대 광고매체로 갈 수록 중요성이 부각될 전망이다. 삼성그룹을 비롯,현대와 LG,대우 등 대기업들이 위성광고를 시작했거나 준비 중이다.현재 선발주자는 삼성그룹.지난 달부터 국내 처음으로 CNN과 홍콩 스타 TV및 유러스포츠,텔레문도 등 4개 매체를 통해 광고 중이다.올 연말까지 총 2천8백회가 방영될 계획이다.「삼성의 강력한 기술력이 미래를 펼쳐 간다」는 자막과 함께,반도체(2백56메가D램)와 HDTV,노트북 PC,비디오 폰 등 첨단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인 만큼 GM과 코카콜라 등의 광고제작을 했던 마르코스 주리나가 총감독과 클리프 행어와 다이하드로 유명한 게리왈러 영상감독 등 세계적인 제작진들이 참여했다.오는 12월까지의 광고비가 4백55만2천달러(34억6천만원). 현대그룹은 이달 말부터 1백80만달러를 들여 홍콩 스타TV를 통해 기업 이미지 PR과 아반떼 자동차의 광고를 내보낸다.로봇이 자동차를 생산하는 최신 생산설비와 첨단 연구시설 등을 보여줘 현대의 첨단성을 알릴 계획이다.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아반떼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포근한 실내공간과 엔진 등의 첨단부품이 소개되는 화면이 있다.또 남미시장 공략을 위해 이달 10월을 목표로 ESPN과 CNN 등 현지에서 인기 높은 위성채널을 통한 광고도 준비하고 있다. LG는 오는 10월부터 홍콩 스타TV를 통해 기업 PR 광고를 계획 중이다.10만달러의 광고비를 들여 TV와 VCR 등의 전자제품을 통해 LG그룹의 첨단성을 강조할 예정이다.또 50만달러의 광고비로 유럽 전역에 방송되는 유러 스포츠와 CNN 등의 채널을 확보,내년 방송을 목표로준비 중이다.대우도 전세계에 펼쳐진 자동차 생산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내년부터 유러스포츠와 CNN,홍콩 스타TV 등을 통해 광고를 내 보낸다. 박종원 금강기획 국장(43)은 『스타TV의 경우 아시아 지역에 1천1백만 가구,국내에만 30만가구 이상이 시청해 위성광고 의존도는 점점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 외교·안보(21세기 한­일 새 지평:2)

    ◎양국의 발전적 미래를 위하여/세계화 시대… 일본과 적극 손잡을때/지난일 얽매여 무조건 기피 곤란/국제문제 협력,공동이익 추구를/윤정석 ▲중앙대 교수(59세) ▲서울법대졸 ▲법학박사 한일간에 참다운 미래가 있으려면 두나라 국민 사이에 신뢰와 협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일본의 제국주의 압박이 이 땅을 떠난지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그 쓰라림과 괴로운 경험을 잊지 못하고 미움과 불신으로 저들,일본사람들을 대할 때가 많다. ○신뢰·협력 있어야 요즈음에도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일본을 놓고 두가지의 강력한 입장에서 자기의 위치를 유지하고 그리고 자기의 존재를 넓혀가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한편에서는 일본을 욕하고 일본사람에 대하여 분노하고 그리고 이 철천지 원수와 협력하는 것을 철없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 어떤 자리에서라도 앞장서서 일본을 자극하는 이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없이는 한국의 앞날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일본이 가지고 있는 기술자본 그리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일본과 협력하여야 된다고하며 기회있을 때마다 이같은 주장을 하고 앞장서서 일본을 수용하는 이가 있다.이러한 두가지 사람들은 지식인이나 언론인 속에 더욱 많은 것 같이 보여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진다.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놓고 두갈래 세갈래 갈라져 서로 삿대질을 하는 모습이 아직도 흔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이런 일은 일본에 관한 연구 토론회에 참석해 보면 더욱 심하게 드러나 보인다. 왜 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한일관계를 볼수 없을까.내가 창씨를 했고,일본말을 쓰지 않아 벌을 받았고,친척누이가 정신대에 끌려갔고,형은 학병에 나가 전사했고… 등과 같은 일들과 지금의 나 자신과의 관계를 냉철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지금 내가 할 일은 과거에 매달린 감정표현이 아니라 미래를 보며 나의 정열을 쏟는 극일·배일·반일의 엄연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연한 이웃나라 지난 1백50년동안은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정신과 문명을 가지고 우리는 살았으나,그보다 훨씬 전 수백년동안은 우리가 일본에 정신·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을 일깨워주고가르쳤지 않은가.앞으로 우리는 예전과 같은 가르칠 영광을 되찾아야 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과 경쟁할 수밖에 없고,함께 어울려 서로 도와가며 살 수밖에 없다.한차례의 씨름판에서 힘을 겨루듯이 앞으로의 1백년을 내다보는 한일양국의 건전한 경쟁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신뢰하며 함께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 엄연하게 가장 근접해 있는 일본을 없는 것같이 태연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예를 들면 지난날 우리의 모든 국제항공노선이 도쿄의 국제공항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도쿄를 통해서 세계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이제 김포공항을 통해서 우리는 아시아 대륙과 직접 연결될 수 있고 유럽과 미국대륙에도 직접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그래서 우리는 이제 도쿄,말하자면 일본을 거치지 않고 세계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결국 일본은 없다는 것이 된다.그러나 여기까지 올 때 우리는 일본에 많은 신세를 졌고 일본으로부터 배웠으며 이제는 일본과 경쟁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안간힘을 다해서 미국·유럽과 과학기술을 놓고 경쟁하고있다.통신 정보는 물론 전자·신소재산업 등에 있어서나 생명과학 등의 첨단분야에 있어서 일본은 끊임없이 경쟁을 통해서 새로운 문명을 찾아가고 있다.여기에 우리는 또다시 일본의 신세를 지고 그들을 통해서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으로 보는가. ○서로 알아야 도움 일본의 국내정객이 일본정치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한국을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어려움이 많다.한국을 등지고 한국에 대하여 별 관련이 없이 지내온 일본정객은 국내정치에 어려움을 겪는 법이다.적어도 한반도의 정세에 능한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이것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얽혀진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일본의 국무총리는 한반도와 무관하게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고 있다. ○함께 이뤄 나가야 국제정치외교분야에서 일본과 협력하는 것을 마치 친일파들이 하는 짓으로 보는 이도 많다.지금의 세계사정에서 볼 때 국제정치 외교분야는 어떤 한나라가 주도적으로 국가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적어도 함께 이루어 놓고 그 결과를 나누어서 향유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고 특히 탈냉전이후의 국제관계라고 할 수 있다.동북아시아에 있어서 한국 단독으로 평화와 번영을 이룩할 수는 없다.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본다.이런 분야에 있어서 우리는 일본을 믿고 협력할 수밖에 없다.이제는 우리에게 일본은 그렇게 해도 될 만한 나라가 되었다고 본다.다만 우리의 안보문제에 있어서 군사력이 필요한 경우에 일본은 분명히 제외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된다.일본은 아직도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여 국제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일의 바람직한 대북한 정책/“「대북한 개방유도」 공동사업 인식 필요”/점진 변화 이끌어 돌발사태 예방/식량 지원문제 등 긴밀 협조해야/오코노기 ▲일 게이오대교수(50세) ▲게이오대 정치학과졸 ▲법학박사 올해가 전후 50년인데도 한일 양국이 여전히 「역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일본국회의 「50년 결의」및 몇몇 정치인의 무신경한 발언에서 보듯이 최근 감정마찰의 「잘못」은 분명히 일본측에 있다.이것이 김영삼·호소카와회담에서 나타난 우호적 분위기를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그 책임은 중대하다. ○우호분위기 파괴 북방외교를 추진했던 노태우 정권과는 달리 김영삼 정권은 미·일 양국과의 우호관계를 중시하는 정권이다.한편 과거의 전쟁책임을 명확히 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는 무라야마 정권도 호소카와,하타 정권 못지않게 적극적이다.자민당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총재,신당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대표도 여기에 이의가 없었다.사실 연립정권 발족 당시 여당 3당은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고 미래의 평화에의 결의를 표명하는 국회결의」를 채택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비둘기파 노선」이 보수파 의원을 자극했던 것 같다.그들은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을 결성해서 국회결의의 채택에 반대했다.그러나 한국내에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그룹은 확실히 소수다.최후까지 국회결의에 반대한 의원은 50명,즉 전체 중의원 5백2명의 10%에 지나지 않는다.그들은 오히려 「자기방어」를 위해 일어섰던 것이다. 따라서 「50년 결의」의 내용이나 몇몇 정치인의 발언을 과대평가해 과민반응을 보일 것은 없다.사실 그들은 일본국민의 다수파의 지지를 얻을 리가 없다.유감이지만 시간의 경과 이외에 이러한 상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처방전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세대가 교체됨에 따라 그들은 점점 고립화돼 나갈 것이다. ○정책적 협조 유지 그런데 이러한 감정마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한일양국 정부는 대외정책,특히 북한과 관련된 정책 분야에서 정책적인 협조를 유지하는데 성공하고 있다.냉전 종결에 따라 「공통의 적」의 소멸이 한일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예상과는 달리 북한의 핵문제라고 하는 「공통의 위협」이 양국에 긴밀한 협력을 요구한 것이다.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발족및 쌀원조에서의 한일협조가 이를 상징한다. 그러나 대국적으로 보면 냉전종결및 제네바 합의가 북미,북일관계 개선을 자명한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북한의 「친미」정책에 반대하면할수록 일본과 한국의 대북한정책은 경직화하지 않을 수 없다.만일 (북한의 친미정책을) 전면적으로 반대하면 우리는 크로스 승인이라고 하는 본래의 목표조차 상실하게 될 것이다. ○북 경제체제 위기 바꿔 말하면 한일양국에 요구되고 있는 것은 북한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국제체제에 끌어안는 것이다.따라서 우리의 최대 과제는 한일협력을 토대로 어떠한 국제체제를 여하히 형성하는가이다.북한이 북미 평화협정의 체결을 고집해 「새로운 평화보장체제」의 수립을 요구한다면 우리도 새로운 다국간평화구상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콸라룸푸르와 쌀원조 교섭의 과정에서 북한이 그 내부적인 약점,즉 심각한 에너지·식량·외화부족을 드러낸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거듭되는 「동결 해제」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지도부는 미국과의 교섭을 단념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으며 국내의 식량사정도 교섭의 장기화를 허용하지 않았다.즉 우리는 겨우 북한의 「배수진」 정책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중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쌀원조 문제로 상징되는 북한의 경제위기가 그것이다.궁지에 빠진 경제를 재건하기 이전에 북한은 긴급하게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나 그 전망은 밝지 않다.후계 문제에 관한 이러저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서기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정치체제의 위기보다도 오히려 경제체제의 위기인 것이다. 경수로및 쌀원조를 둘러싼 북한의 태도에는 비판받아 마땅한 점이 적지 않다.하지만 폭력적 사태를 피하면서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촉진해 한반도 통일에 따라는 유형무형의 코스트를 분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지 않으면 안된다.한일 양국은 이것이 공동사업이라고 인식해 북한의 개방·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여권의 국정안정책임(사설)

    국정의 새로운 출발을 이루기 위한 당정개편이 예고되고 있다.광복 50주년과 대통령임기 절반을 지나서 내달초에나 하려던 개편이 내주로 당겨진 것은 지방선거와 삼풍사고 이후 계속된 침체분위기의 조속한 청산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김영삼대통령에 의해 이미 단행된 대규모 사면 복권으로 다져진 국민화합의 기틀위에 당정의 새로운 진용이 후반기 국정목표에 합심함으로써 국가적 전진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편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 그것은 안정과 화합속의 함께하는 개혁의 기조를 이끄는 중심체가 되기를 기대한다.대통령중심제를 지탱해 온 양당체제가 6·27선거후 다당화로 바뀜으로써 정당과 정치의 구조적 안정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민자당과 행정부의 일체적 협력은 사회안정과 국가발전의 관건이 된다.여권이 뭉쳐 있으면 국민들은 신뢰를 보내지만 갈라져서 싸우면 사회전체가 어지럽게 되는 법이다.더구나 지역적 신당이 변수가 되고있는 가운데 내년4월로 다가온 총선은 정권의 향방을 가름하는 분수령이다.따라서 국가적 실패를 가져올 당정의 불협화와 계파갈등을 씻고 힘있는 국정주도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민자당의 자기개혁은 필수적이다. 민자당은 지방선거패배에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당정이 스스로 자금과 관권프리미엄을 포기하는 등 실명제와 정치개혁의 결과에 묶여버린,자기가 만든 성공의 피해자가 된 점이 없지 않다.그만큼 전반기의 개혁은 자부할만한 것이며 결코 갈등만 벌일 일이 아닌 것이다. 민정계와 민주계라는 두 세력이 화학적 결합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하기에 따라서는 환상적인 콤비가 못될 이유가 없다.야당도 과거의 이념적 색채를 바꾸고있는 마당이다. 민자당은 보수안정과 민주개혁의 두갈래 흐름을 조화롭게 통합운용하여 정책개발과 지지기반 확대에 나섬으로써 강점화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당내의 이견은 토론으로 조정하고 정부와도 조율을 거쳐 정책혼선을 막는다면 역사적 평가와 국정주도 역량의 극대화를 동시에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 여성소설가 인기/사회환경변화가 주인

    ◎평론가 박혜경씨 「문학동네」가을호서 분석/80년대 「광장 문학」서 90년대 「밀실 문학」으로/「사랑타령」 탈피… 여성문제 사회문제적 접근 문단에 여성 소설가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요즘 소설가들 가운데 공지영·신경숙·김형경 등은 남성보다 먼저 꼽히는 여성작가.마땅히 떠오르는 남성 신예작가는 없는데 한강·송경아·배수아·김미진·강규·김운비·김이소 등 여성 소설가들의 작품은 봇물을 이룬다.여성소설가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 여성소설가들의 작품이 듣기좋은 사랑타령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진지한 문제의식으로 뿌리깊은 남성위주의 문단체제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소설가들이 이처럼 문단에 「또하나의」 흐름을 이룰 정도가 되자 여성 비평가인 박혜경씨가 이같은 현상의 문학적 의미를 밝히는 평론을 내놨다.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의 「90년대 여성소설가」 특집에 실릴 「사인화된 세계속에서 여성의 자기 정체성 찾기」가 그것.평론가 황종연·우찬제·신수정씨의 작품론과 한데 묶일 이 글은 최근의 30대 여성소설가들을 여러 층위에 걸쳐 분석하면서 여성작가 붐의 의미를 따져보고 있다. 여성소설가 약진의 가장 큰 배경으로 박씨가 꼽는 것은 80년대와 90년대를 뚜렷이 가르는 사회환경의 변화.두개의 힘이 서로 다른 이념으로 맞섰던 80년대 곪은 사회를 껴안고 함께 쓰라려 해야 하는 것을 당위로 여겼던 문학은 역사·사회·정치 등 거시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끌여들였다.여성이 훨씬 민감하게 포착하는 개인적 욕망이나 실존의 문제는 자연히 스스로 잦아들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높기만 하던 명분이 어느 순간 물거품으로 변하자 문학도 존재의 내밀한 욕망,심리적 갈등 같은 사인의 문제에 자리를 내주게 됐다.80년대 「광장의 문학」이 90년대 「밀실의 문학」으로 바뀐 것을 계기로 여성작가들이 「비온 뒤의 죽순처럼 솟아 올라오기 시작」한 것.박씨는 80년대 중반부터 줄곧 내면의 미묘한 흔들림을 다뤄온 소설가 신경숙이 90년대 와서야 스타로 떠오른 이유를 이같은 정황에서 찾는다. 이런 배경하에 우선 가족사를 매개로 한 자전적 성장소설들이 쏟아졌다.신경숙의 「외딴방」,김형경의 「세월」,공선옥의 「떠도는 나무」,이혜경의 「길위의 집」 등이 모두 그같은 범주에 드는 것.이들은 「개인에게 주어진 작은 실존적 삶」으로 소설이 공간이동하는 사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면서 사회문제조차 가족이라는 용광로속에 끌어들여 녹여버린다. 한편 「이념」이 무너지고 난 자리에 페미니즘이 부상하면서 여성작가 소설의 주요한 전략으로 여성의 자기정체성 탐구가 대두됐다고 박씨는 분석한다.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이같은 전략이 전면에 드러난 예.같은 작가의 「고등어」나 김형경의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 등 운동권 뒷얘기를 다루는 후일담소설도 80년대 이념의 외피에 실은 남녀간 사랑문제를 담고 있다. 남성들과 관계맺고 상처받는 과정을 내밀한 목소리로 그려낸 작품들을 통해 여성작가들은 사적인 차원이라고 홀대받아온 이런 문제들을 어느덧 「사회문제의 범주」로 끌어냈다고 박씨는 평가한다.권력지향적 남성중심주의가 치명타를 입은 90년대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삶을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 갈라진 틈을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 원폭 제1목표는 고쿠라시/나가사키 투하는 제2선택

    ◎미 국방부 문서 비화/NYT 보도/B29 3회 비행… 구름덮여 공격지점 변경/첫 플루토늄 원폭 세례… 「우라늄탄」 능가 구름이 한 도시의 운명을 갈라놓았다.2차대전 당시 일본 규슈의 고쿠라시가 구름낀 날씨 덕에 원폭투하 세례를 받지 않고 대신 나가사키가 2차 원폭투하 대상지가 됐기 때문이다.뉴욕타임즈가 나가사키 원폭투하일(9일)을 맞아 보도한 내용을 요약한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지 3일 후인 1945년 8월9일 상오 10시30분.미국의 B29 폭격기 「복스 카」(흑맥주 차)는 고쿠라에 원폭을 투하하기 위해 세차례나 고쿠라 상공을 선회했으나 조종사 커미트 비핸은 구름이 깔려 지상의 목표물을 눈으로 식별할 수 없었다.비핸은 고쿠라 상공에서 목표물인 거대한 군수공장을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때에만 원폭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고쿠라 상공을 비행할 때 포격기의 폭탄적재실은 원폭투하를 위해 열려 있었고 조종석의 계기들은 투하준비 완료 상태를 알리고 있었다.비핸은 원폭의 섬광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보안경도 쓰고 있는상태였다.그는 군수공장 옆을 흐르는 강과 고쿠라의 건물들을 구름 사이로 볼 수 있었으나 군수공장단지 자체는 구름에 가려 있었다.비핸은 할 수 없이 고쿠라를 포기하고 제2의 원폭투하 대상지인 나가사키를 향했다.나가사키 상공에도 부분적으로 구름이 깔려 있었으나 많지는 않았다.결국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원폭은 나가사키에 내려졌고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원폭보다 위력이 훨씬 강했다. 고쿠라에는 일본 서부에서 가장 큰 군수공장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일본의 미사일,항공기 등 일본군의 무기들이 생산되고 있었다.이 도시에서는 또 화학무기가 비밀리에 제조되고 있기도 했다.비밀해제된 미 국방부 1급 군사기밀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고쿠라에서 화학무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1945년 7월2일 이미 알고 있었다.
  • 일본에선…/민단과 조총련(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5)

    ◎“흔들리는 조총련”… 이탈자 해마다 급증/사회주의 붕괴·김정일 체제 불안감 큰 몫/이탈 「제3세력」 포용하는 민단노력 절실/남북화해 물결따라 두 단체 교류 조짐도 재일동포 2세 전월선(36·여)씨는 일본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고 있는 오페라 가수다.그녀는 지난해 비제의 「카르멘」으로 한국무대에도 데뷰했다.그러나 전씨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둘로 갈라진 재일동포 사회가 안고 있는 분단의 아픔이 짙게 깔려 있다. 청중들의 열광적 박수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남·북으로 국적이 갈린 가족과 만나야 한다.그녀의 가족은 일본사회의 민족차별과 함께 또 하나의 비극인 민족분단의 비극 속에 살아가고 있다.전씨의 국적은 처음에는 조선(북한)이었다.그러나 지난 93년 한국으로 바꾸었다.그녀의 아버지도 한국 국적이다.그러나 어머니와 동생들의 국적은 조선이다.한 가정에서 조차 국적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재일동포 사회는 그녀의 가족과 같이 재일본 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나누어져 있다.민단자료에 따르면 현재 68여만명의 재일동포중 민단계는 49만여명,조총련계는 18만여명으로 나타나 있다.그러나 조총련계가 24만여명이라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일동포사회는 당초 1945년10월 「조선인연맹」이라는 하나의 단체로 출발했다.그러나 1946년 「조선건국촉진 청년동맹」과 「신조선건설동맹」을 비롯 20여개의 산하단체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독점됐던 조선인연맹을 탈퇴,새로운 단체를 구성함으로써 둘로 나뉘었다.냉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재일동포 사회도 이처럼 둘로 갈라놓았으며 오늘도 그러한 대립과 갈등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민단은 초창기 재일동포에 대한 세금투쟁,외국인등록령 반대투쟁 등을 시작으로 재일동포의 권익옹호와 민생안정를 위한 여러가지 민족차별 철폐 투쟁을 해왔다.83년에는 지문날인제도 철폐를 위해 1백80여만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64년 도쿄올림픽과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한국선수단을 지원했다. 민단은 75년7월 조총련계 동포들의 모국방문을 위한 성묘단 사업을 추진,많은 호응을 받았다.성묘단 사업을 계기로 조총련중 민단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당초 조총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인구 비율이 역전됐다. 그러나 민단은 고질적 파벌싸움과 재일동포에 대한 권위주의적 태도 등으로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있다.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재일동포는 민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주 싫어한다』고 잘라말했다.그는 『민단은 단비만 받고 재일동포를 위해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며 지나치게 권위주위적』이라고 혹평했다.민단 관계자들도 민단에 대한 무관심과 비난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신용상 단장은 『봉사하는 민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일동포사회의 또하나의 세력인 조총련은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북한에 대한 실상이 알려지며 이탈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 조총련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조선학교 교장과 조총련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박로호 모국방문추진도쿄위원회 부위원장(70)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사회주의의 모순을 깨달은 후 조총련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가졌었다』고 말한다.그후 조총련을 탈퇴한 박부위원장은 『조총련의 중요한 지지 기반인 지식인들의 갈등이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경제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조총련계 상공인들도 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날로 악화되는데 실망,크게 흔들리고 있다.지난해에는 조선상공연합회 부회장을 비롯 조총련계 상공인 1백40여명이 집단 탈퇴하기도 했다. 조총련은 한덕수의장이 88세의 고령에다 병을 앓고 있어 허종만 책임부의장 체제로 전환하려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도 외화공급원인 조총련을 끌어안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김정일에 대한 인식이 김일성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 외교관은 말한다. 조총련은 사실 당초 민단보다 지식인이 많았고 잘 조직됐었으며 지금도 경조사와 경제 문제 해결 등을 적극 지원하는 등 강한 조직관리를 하고 있다.그러나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시대의 큰 흐름과 북한의 모순과 어려운 실상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은 조총련을 떠나고 있다.최근에는 매년 5천∼6천여명이 탈퇴했으며 지난해 이탈자는 6천2백여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총련을 떠난다고 해서 그들이 민단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대부분이 민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조총련도 민단도 아닌 「제3의 세력」이 늘어나는 것이 오늘의 재일동포 사회 현실이다.그런 가운데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 움직임과 교류도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하지만 본격적인 화해는 아직은 미래의 일로 남아 있다.세계적 이념의 대결 시대가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 내의 이념적 대립은 한반도 뿐아니라 이국땅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인터뷰/민단 중앙본부 신용상 단장/재일동포 권익보호·생활안정에 최선/“참정권 획득,민족차별 철폐 앞장/권위주의 탈피 봉사단체로 일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의 신용상단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단은 앞으로도 재일동포들의 권익보호와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지금의 최대 현안은 재일동포들의 지방참정권 획득』이라고 말했다. 세금은 같이 내면서도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에서조차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참정권문제 등 민족차별철폐와 함께 재일동포들의 인식도 이제는 일본 영주로 정착되고 있으며 민단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지난해 4월 당초 이름에서 임시로 머문다는 의미의 「거류」라는 말을 빼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이라고 바꾸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민단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어 우려됩니다.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단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나 민단에 신세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신(판신) 대지진때의 위로금 분배를 민단에서 맡아 했듯이 재일동포를 위해서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민단은 일본정부에 대해서도 중요한 압력단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민단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난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봉사하는 단체의 역할을 해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벌의 알력과 후계자문제,계속 늘어나는 귀화현상 등 많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결코 비관하지는 않습니다.한국정부도 재일동포들이 한국에서도 사업을 하거나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장마철 가뭄」 영­호남·충청 현장 르포

    ◎댐·저수지 거북 등… 목타는 중·남부 ·저수지 천여곳 “기능 상실”… 공용수난 확산­경북 ·섬진댐 방류중단 임박… 김제평야 큰 타격­전북 ·곳곳서 논 갈라짐 현상… 재한급수 불가피­충북 ·논산일대 상수원 고갈… 관정에 식수 의존­충남 ·서남해안 수리불안전답 5만㏊ 피해 우려­전남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여름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가뭄 지역은 경북 전남·북 충남·북 등 중부권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식수난을 겪고 있으며 밭작물에는 이미 가뭄의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벼농사의 경우 낱알이 생기는 기간을 앞두고 있어,물이 가장 많이 필요하지만 주요 댐들은 물이 말라붙어 충분한 물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한해 강수량의 60%를 뿌리는 장마전선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제주에만 많은 비를 뿌렸기 때문이다.가뭄의 실태를 지역별로 점검한다. ▷경북◁ 경북 영천군 임고면에 자리잡은 영천댐의 취수탑은 거의 밑바닥까지 드러났다. 포항제철을 비롯한 포항시 일대의 유일한 수원지인 영천댐의 저수율은 19.7%이다.예년의 67.7%에는물론 대형 제조업체가 생산라인을 일시 중단했던 지난 해의 32%에도 못 미친다. 대구 지역의 주요 수원지인 임하댐의 저수율은 28%에 불과하고 조금 낫다는 덕동댐이 35%,안계댐이 46.5%이다. 5천5백62곳인 저수지의 저수율도 44%로 극심한 가뭄 피해를 입었던 지난 해의 43%와 비슷하다.예년의 절반을 밑도는 수준이다.저수율이 30% 이하인 1천2백여곳은 이미 저수지로서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동해안 지역은 더욱 극심하다. 포항지역의 3백14개 저수지는 27·8%의 저수율을 보이고 있고 포항시 북구 청하면 방어지와 흥해읍 덕장지 등 8개는 이미 말라붙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밭작물이 말라죽는 등 가뭄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고 도시 지역의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농민 전기웅씨(55·경산시 압량면 신대리)는 『올 장마에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아 과수와 밭작물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포항시는 절수운동을 펴기로 했고 포항제철은 이미 비상 용수원 확보에 나섰다.경북도도 7일부터 가뭄에 대비,흘러가는 물을 확보하기 위해 보를 쌓고 관정도 파라고 시·군에 요청했다. 올들어 6일까지 경북지역에 내린 비는 모두 4백8㎜로 예년의 평균 6백29㎜를 크게 밑돌았다. ▷전북◁ 최대 수원지인 섬진강 댐의 저수량은 3천3백90만t.총 저수량인 4억6천6백만t의 7.3%에 불과해 전국의 댐 중에서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섬진댐 “전국 최악” 거대한 호수의 바닥을 드러낸 섬진댐은 하루 2백만t의 물을 방류하고 있으나 앞으로 10여일 후에는 수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호남 최대의 곡창지대인 부안과 김제 지역의 농경지 3만여㏊는 농업용수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섬진댐의 물을 마지막으로 받는 김제군 진봉면과 광활면,부안군 동진면 등은 이미 지난 7월부터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농수로와 하천의 물을 퍼올려 쓰고 있다. 다른 댐도 형편은 비슷하다.대아댐의 8.1%를 비롯해 경천저수지 8.3%,동상댐 11.6%,구이저수지 14.6%,장남저수지 16.2%,오봉저수지 16.7%,내장저수지 22.7% 등 주요 저수지의 저수율이 한결같이 30%를 크게 밑돈다. 올들어 내린 비는 4백28.1㎜로예년(7백74.6㎜)의 55.2%에 불과하다.가뭄이 극심했던 지난 해의 3백98.2㎜보다는 29.9㎜가 많지만 가뭄이 지난 해부터 이어졌기 때문에 저수율이 낮다. 때문에 논농사가 어려워지고 있다.7월 중 16만9천◎의 논이 필요로 하는 하루 용수량은 1천여만t.그러나 전북도의 모든 저수지가 공급한 양은 5백만∼6백여만t 뿐이었다.나머지는 용수로에 고인 물을 퍼올려 썼다. 더구나 8월은 벼가 물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때라,큰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피해를 면하기 어렵다. 밭작물은 벌써 피해가 가시화됐다.고추 주산단지인 임실군 관촌면과 정읍군 태인면 등은 7월 중순부터 잎이 마르는 현상이 나타났으나 지난 1일 내린 소나기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고추 참깨 수박 참외 등 밭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들은 하천수와 지하수 등을 끌어올려 쓰고 있으나 지하수 역시 오랜 가뭄으로 수량이 달리는 형편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다음 주까지 가뭄이 계속될 경우 대부분의 밭작물과 3만여◎의 논이 가뭄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기 시작할 것』이라며 『2백㎜ 이상의큰 비가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 올들어 충북에 내린 비는 4백29㎜로 예년(7백16㎜)의 60% 선이다.가뭄이 극심했던 지난 해의 4백92㎜보다도 63㎜가 적다. 특히 영동의 3백2㎜를 비롯,보은과 옥천은 각각 3백29㎜와 3백43㎜로 6백81㎜인 예년의 절반도 안된다. 이에 따라 대청댐의 수위는 62.5m로 예년의 71.2m보다 8.7m가 낮고 저수율도 36.2%로 예년의 58%에 크게 못 미친다. ○1주내 비 내려야 8백64곳인 저수지의 저수율도 가뭄이 극심했던 지난 해와 같은 59%로 예년의 72%에 못 미친다. 강수량이 부족한 남부의 일부 논에선 양수 작업에도 불구,논이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은군 마로면 갈평리의 경우 1만여평의 논에 용수를 공급해온 갈평저수지의 저수율이 10% 아래로 떨어져 지난 해에 1억2천만원을 들여 인근 적암천에 만들어 놓은 양수시설을 풀 가동해 근근히 물을 대고 있다. 충북도는 『1주일 안에 2백㎜ 정도의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는 물론 옥수수 콩 고추 담배 과수 등의 밭작물이 심각한 한해 피해를 입게 되며 남부 3개군의 간이 상수도 6백21개소는 단수나 제한급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충남◁ 충남도 가뭄 피해권에 접어들고 있다.저수지의 저수율이 예년의 68%를 크게 밑도는 50% 선이다. 올해 강수량은 대전 3백81㎜,서산 3백52㎜,아산 3백95㎜ 등 평균 3백96㎜로 예년의 절반에 불과하다.장마철의 강수량도 1백79㎜로 지난 해의 2백39㎜에 못 미쳤다. ○저수율 30미만 저수율의 경우 서천 동부저수지가 22%,논산 탑정저수지가 26%를 보이는 등 대부분 30%를 밑돈다.서천과 논산에서는 이미 농업용수 부족과 급수난이 우려되고 있다. 천수답의 농작물은 앞으로 열흘 이내에 물을 공급받지 못할 경우 극심한 작황부진이 예상된다.상수원이 마른 논산군 연무읍은 식수와 생활용수를 전적으로 관정에 의존하고 있고 다음 달 초분부터는 논산군 전역이 제한급수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전과 충남·북 및 전북 일대 3백50여만 주민에 식수를 공급하는 대청댐도 수위가 62.5m로 가뭄이 극심했던 지난 해의 75.22m보다 12.7m가 낮다.초당 방류량도 이 달 들어 32t에서 25t으로 줄였다. 대청댐 관리사무소는 『한달안에 2백㎜ 이상의 비가 내리지 않으면 대전을 비롯한 일부 지역은 제한 급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남◁ 광주·전남도 올 강수량이 6백20㎜로 예년의 8백65㎜에 비해 2백45㎜가 적다. 당장 심각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 가을 가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영광 무안 진도 신안 등 서남해안 일부 지역은 지난 해처럼 심각한 식수난이 예상된다. ○무안·신안 등 심각 이 지역의 3대 상수원은 주암댐 수어댐 동복댐이다.주암댐은 저수율이 63.4%,수어댐 76%,동복댐 26.4%로 평균 59.7%이다.담양댐은 14%이다.나머지 47개 저수지의 저수율도 54.6%밖에 안 된다.예년에는 81%였다. 전남도 관계자는 『8월 말까지 2백㎜ 이상의 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리 불안전답 5만6천㏊와 밭작물이 지난해 못지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광주 기상대는 『예년에는 장마에 2백60㎜ 이상의 비가 내렸지만 올해에는 장마도 예년보다 5일쯤 짧았고 강우량도 평균 1백㎜안팎에 그쳐 앞으로 가뭄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 인도·방글라/사활건 갠지스강 물 쟁탈전

    ◎인,국경에 댐막고 자국에 물길 돌려/하류쪽 방글라 “불법행위” 강력항의/양국 공동위설치 합의… 인 양보 없인 해결 난망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갠지스강 물줄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인도의 동부에 맞붙어 있는 나라로서 지난 72년 인도로부터 독립했다.싸움의 발단이 된 갠지스강은 인도 북부의 네팔에서 발원,방글라데시 접경인 인도쪽 영토에서 두줄기로 나뉜다. 이 가운데 작은 물줄기가 서부벵갈을 관통해 인도의 캘커타쪽으로 흘러가고 다른 더 큰 물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방글라데시로 들어간다. 양국간 물싸움은 인도 정부가 강물이 갈라지는 지점인 파라카에 댐을 막고 이 파라카댐 위쪽과 인도쪽 하류(바지라티 후글리강)사이에 수로를 내 방글라데시쪽(파드마강)으로 흘러가야 할 물가운데 상당량을 인도쪽으로 돌려놓은 데서 비롯됐다.방글라데시는 인도가 77년 양국간에 합의된 강물 공유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며 인도측을 비난하고 나섰다. 인도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최근들어 강의 유량이 줄어들면서 바지라티 후글리강 하구의 할리다를 거슬러 캘커타를 연결하는 대형선박들의 운항에 여려움을 겪게 됐다는 것이 인도측의 변명이다.하류의 유량이 줄어든 근본 원인은 강상류에 있다.관개시설이 갖춰짐에 따라 상류의 물이 대량으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하더라도 인도가 파드마강으로 들어가야 할 물을 바지라티 후글리강으로 돌린 것은 방글라데시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불법행위이다.게다가 최근 방글라데시 정부를 더욱 불쾌하게 한 것은 인도가 강상류의 우타르 프라데시주 칸푸르지역에 댐을 건설할 계획을 세운 사실이다.이 댐이 건설되면 그러잖아도 부족한 유량이 더욱 줄어들게 뻔한 일이다. 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복잡하게 전개되자 양국은 지난 6월말 외무장관 회담을 열고 이 문제에 관해 몇가지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이 합의 내용을 보면 첫째,아무런 조건없이 강물을 영속적으로 공유한다는데 대해 상호 이해한다는 것,둘째 물공유 문제를 양국간 다른 분쟁과 분리시켜 독립적으로 다룬다는 것,셋째 강물 유량 감시 공동위원회를 재가동한다는 것등이다.유량감시공동위는 방글라데시 독립직후 양국간에 설치됐으나 88년 이후 휴면상태에 들어가 유명무실해졌다. 이 합의 가운데 앞의 두가지는 너무 원칙적이어서 별 쓸모가 없으나 셋째 조항은 분쟁해결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이 조항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양국간 유량 계산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방글라데시는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파드마강으로 들어온 물이 초당 평균 2만2천입방피트에 불과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인도측은 초당 3만2천입방피트였다고 주장하고 있다.공동위원회가 가동될 경우 이런 계산차이를 없앨 수 있고 이를 기초로 분쟁을 더 쉽게 해결할 계기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위원회 설치만으로 문제가 쉽게 풀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방글라데시는 파라카로부터의 유량이 감소함에 따라 특히 건기에 농작물피해,수질 및 고용악화등 많은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다.그러나 해결의 열쇠는 인도쪽이 쥐고 있어 인도 정부의 해결의지가 없는 한 물부족으로 인한고통과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결국 갈라선 재야 쌍두마차/이부영·김근태씨의 정치행보

    ◎3김시대 청산·세대교체 강력 주장­이/친DJ 표방… 제도권정치 소극 참여­김 이부영과 김근태.70∼80년대 재야운동을 이끈 쌍두마차이자 차세대 정치인군에서 주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다.그러나 이들은 사뭇 다른 이념과 노선을 걸어 왔다.때문에 재야나 정치권에서는 두사람의 관계를 「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한 사이로 보곤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도정치권에 입성,한때 민주당에 동승하기도 했지만 두사람은 민주당의 분당사태를 맞아 또다시 제갈래 길에 들어섰다.그동안 민주당에 잔류,구당파에 몸담고 있던 김씨가 2일 김대중씨의 「새정치 국민회의」로 옮겨간 것이다.지난 2월 김씨의 민주당 합류에 따라 이뤄진 두사람의 「동행」이 5개월 반만에 끝난 것이다. 80년대 재야의 민주화투쟁에 앞을 다투면서도 이들은 현실인식등에서 분명한 입장차이를 보여 왔다.87년 대선때 이씨는 김대중씨의 후보사퇴를 요구하는 「후보단일화그룹」을 이끌었다.사실상 김영삼 후보를 지지했던 것이다.반면 김씨는 김대중 후보를 지원하는 「비판적지지파」를 주도했다. 제도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시각이 달랐다.이씨는 87대선이후 적극적 정치참여를 주장하며 「후보단일화파」를 중심으로 「민련」(새정치와 개혁을 위한 민주연합)을 구성,지난 91년 이기택총재가 이끌던 「꼬마」민주당에 합류했다.민주당 구당파의 제정구·유인태·박계동·원혜영의원등이 민련출신들이다. 반면 김씨는 올 2월에야 「통일시대국민회의」의 일부 인사들과 더불어 민주당과 통합,제도정치권에 들어섰다.87대선직후 구성한 「평민연」(평화민주통일 연구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88년 평민당에 입당한 뒤에도 그는 한참이나 재야를 고집했었다.신당의 임채정·김영진·신계륜·이석현·정상용·장영달·조홍규의원등이 김씨와 평민연을 같이했던 인사들이다. 민주당에 함께 몸담고 있던 지난 5개월여 동안에도 두사람은 미묘한 견제관계를 유지했다.민련과 평민연출신들이 결성한 당내 「개혁모임」에 김씨가 합류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다.분당사태를 맞아서도 두사람은 따로 만나 거취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 두사람의 입장차이는 무엇보다 정국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이씨는 3김시대의 청산과 새정치세력의 결집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김씨는 「김대중 불가피론」을 편다.결국 김대중씨의 정계복귀를 계기로 두사람은 다시 각기 제갈길을 가게 된 것이다.두사람의 결별은 「후3김정국」에서 홀로서기에 아직 역부족인 차세대 정치인군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 민주당/「당수습안」싸고 감정싸움 양상/수당­구당파 힘겨루기 안팎

    ◎양측 “배후 의심간다” 상호비난/“갈라서면 공멸” 대화해결 여지 민주당이 시끄럽다.당초 이번주부터 당재건의 활로를 모색키 위해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로 한 이기택 총재와 구당파였다.그러나 31일 양쪽은 오히려 불신의 골만 더욱 깊게 했다. 구당파는 전날 이총재가 제시한 당수습방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그의 용퇴를 거듭 촉구했다.이에 발끈한 이총재측은 구당파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등 「힘의 우위」로 맞섰다.구당파도 이에 질세라 폭력에 대한 이총재의 사과를 공식 요구했다.이처럼 감정싸움이 악화일로를 치달으며 불신감은 더욱 커져갔다. 양쪽은 겉으로 협상과 대화를 강조한다.대화를 하면 수습방안을 찾을 것이라는데도 의견을 모은다.그러나 좀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서로 상대방의 항복을 요구하는 일종의 「배짱」전략만이 있다. 이유는 당재건이란 명분에 공감하면서도 어떤 방식으로,누가 주도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완전히 딴판이다.이는 곧 김대중씨의 신당이 빠져나간 공백을 누가 먼저,그리고 빨리 메우느냐는 이른바 「헤게모니 쟁탈전」에 다름아니다.결국 8월 전당대회 개최문제가 핵심이다. 이총재측은 전당대회의 강행을 주장한다.당수습의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는 전당대회를 제격으로 본다.「선전당대회 후당세확장」인 것이다.구당파가 전당대회를 끝내 거부한다면 총재직권으로라도 대회를 성사시겠다고 공언한다.구당파가 당권을 장악하면 김대중씨에게 「헌납」할 것이라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그러나 구당파는 『이총재가 당수습과는 아랑곳않고 기득권에만 연연하고 있다』며 「선수습 후전당대회」를 주장한다.8월 전당대회를 강행하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분당까지도 상정했다.협상용 카드라는 인상이 짙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차제에 구당파가 집단탈당,별도의 교섭단체를 만들자는 강경론도 있는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양쪽은 언제까지 일방통행식 주장만 되풀이할 수 없다.반목과 갈등의 끝은 「공멸」이라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고 따라서 「홀로서기」는 결코 검토의 대상이 아니라는 현실론에서다. 이총재가 이날 『앞으로 어떠한 몸싸움도용납하지 않겠다』고 유감의 뜻을 전한 것이나,구당파가 배후가 의심스럽다면서도 『인내와 대화로써 당의 재건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같은 맥락이다. 이런 가운데 이총재와 구당파는 1일 총재단회의를 열어 당무부터 정상화하기로 했다.
  • “명분보다 실리” 진로 급선회/김근태씨 구당파탈퇴 안팎

    ◎재야 분열·신당내 입지확보 주목 「마지막 재야」로 통하는 민주당의 김근태 부총재(48·경기 부천)는 29일 착잡한 표정으로 당사 기자실을 찾았다.김대중상임고문의 신당 창당과 관련한 자신의 진로를 밝히기 위해서다. 『군사정권시절 감옥에 갔을 때보다 마음이 괴롭고 아프다.오늘이 민주당에서는 마지막 날이다』라고 서두를 꺼낸 김부총재는 그동안 활동해 온 구당파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지난 18일 신당 창당이 선언되고 박석무의원 등 호남출신 세의원의 구당파 가세 등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슬로건이 이기택총재 퇴진에서 이총재와의 협상으로 바뀌어 잔류명분이 약해졌다는 게 그의 배경 설명이다.구당파의 노선수정이 탈퇴의 직접 동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날 곧바로 신당행을 선언하지는 않았다.대신 그가 이끄는 「통일시대 국민회의」의 전날 중앙위 회의 결과를 전했다.『영남및 중부권 출신 인사들의 이견이 있었지만 다수는 신당행을 원했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신당행은 시간문제일 뿐이다.김부총재의 측근은 『31일 신당참여를공식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예고했다.재야 때부터 줄곧 김대중고문을 지지해 온 그이기에 신당 합류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럼에도 그는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듯 했다.실제로 김부총재는 작별인사차 들른 구당파 회의석상에서 따끔한 비판을 받았다.장기욱 의원은 『군주가 잘못했을 때 이를 거역하는 것이 참된 신하의 도리』라고 지적했고 홍영기국회부의장도 『김대중씨를 군주로 생각하고 거기에 부화뇌동해 이런 저런 복잡한 논리를 내세워 동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마디 했다.김부총재는 『대의 명분이 없다는 충고를 유념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수평적 정권교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래도 어느쪽에 힘을 보태야 하는가 심사숙고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실리만을 생각한 게 아니라는 항변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우선 국민회의파의 분열이다.신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설 운명에 처해 있고 그렇게 되면 그의정치적 힘도 반감될 가능성이 크다.또 재야출신에다 개혁성향인 김부총재가 중도우파를 지향하는 신당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확대할 지도 의문이다.「구색 갖추기」의 희생양이 될 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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