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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완의학교실]항암면역요법(상)

    면역요법,기공요법,테이핑요법….난치병 극복을 위해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치료법들의 이름이다.현대의학의 체계를 따르지 않아 한때 ‘비과학적’이라 외면받기도 했지만 최근들어 이에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이를 적용하는 환자와 의사가 늘고 미국국립보건원등 정통의학계가 이를 연구대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기존의학을 대체한다는 의미로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혹은 기존의학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의미로 ‘보완의학(Complementary Medicine)’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치료의학을 방법별로 각기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 수십년간 암을 정복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수술요법과 방사선요법,화학요법 등의 치료법을 낳았다.20세기 암치료는 이들 3대 요법을 통한 암과의 전쟁이었다.이 요법들의 기본 개념은 수술로 암을 제거하고,항암제로 암세포를 죽이고,방사선으로 암세포를 태우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끝에 서 있는 지금,그 성과는 어떠한가.지난 30년간 이들 요법이 끊임없이 발전했음에도 대부분 암환자들의 장기생존율은 크게 길어지지 않았다.이들 요법만으로 암을 정복하기에 힘이 부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이런 현실에서 새 치료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 인체 면역기능을 이용한 면역요법이다. 면역요법의 필요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암의 발생과정을 알아야 한다.우리몸은 약 60조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고,끊임없이 세포분열이 일어난다.세포분열이 거듭되면서 많은 돌연변이세포,즉 암세포가 생겨난다.건강한 우리 몸속에도 암세포는 존재하고 누구나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그러면 암세포가생겼다고 모두 암에 걸리는가.그렇지 않다.우리 몸속에 매일 암세포가 생겨나고 있음에도 아무일 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는 몸속에 면역감시기구가 있어 암세포가 출현할 경우 즉시 제거해버리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런 면역감시기구의 기능이 떨어지면 암세포가 면역감시기구를 피해 성장하고,암으로 발전하는 것이다.비록 여러 원인에 의해 돌연변이가 생기고 암세포가 발생하지만,그 이면에는 암세포가 암종양으로 커지도록 허락한 약해 빠진 면역감시기구가 있다.면역감시기구는 암세포로부터몸을 지키기 위해 절대적이며,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 있는 중요한 기구인것이다. 이것은 만일 면역감시기구를 인위적으로 강화시킬 수만 있다면 암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이러한 배경에서 실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면역요법인 것이다.(02)478-0035장석원 서울내과의원 원장
  • [제2공화국과 張勉](30·끝)시리즈 결산 전문가 좌담

    ‘제2공화국과 장면(張勉)’시리즈를 30회로 마감하며 제2공화국 시대와 장면정부,그리고 장면에 관해 총정리하고 평가하는 대담을 갖는다.참석자는 ▲장면정부 때 민의원 의원으로서 내무부 정무차관을 지낸 김영구(金永求)씨와 ▲올 가을 ‘장면 재조명’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사진전시회 등을 준비중인 조광(趙珖)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이다. 김영구전의원 제2공화국을 재평가하는 기회를 갖게 돼 장면정부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반갑습니다.그동안 장면정부의 실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왜곡된 모습만 강조됐습니다.뒤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지요. 조광교수 장면박사와 제2공화국을 평가하려면 그 기준부터 제대로 마련해야 합니다.한국 현대사의 지향점은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입니다.정치적으로는 문민통치에 입각한 민주사회의 확립,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한 국민소득 증대를 추구하는 것 등이라고 봅니다.하나의 정권이나 인물을평가할 때 이런 정책들을 굳은 신념을 갖고 현명하게 추진했느냐가 중요한평가요소가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전의원 장면박사야말로 자유당 일당독재에 맞서 국민 참정권 회복에 공헌한 민주투사예요.제2공화국 내각 수반으로서 민주사회 확립을 도모했고,관료 공채제도를 최초로 시행해 관료사회의 전문화와 효율화도 꾀했고.경제제일주의를 내세워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해 이를 관(官)주도가 아닌민간자율 형식으로 실천했습니다. 조교수 장면박사는 이 땅에 단군이래 최초로 민주주의라는 신화를 역사적 현실로 바꿔놓은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자유당 독재체제 아래 위축됐던 각 이익집단과 사회단체들이 분출해 내는 욕구를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억누르지 않았습니다.대화라든지 협력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취했습니다. 김전의원 사실 억업됐던 자유를 풀어주니까 여러가지 반응이 나왔습니다. 방종으로 흘렀다고나 할까요.이를 극복하지 못해 군부세력이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키는 소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하긴 장면정부가 무능해서 쿠데타가일어난 것만도 아니지요.군부세력은 이승만정부 때부터 쿠데타를 계획해왔으니까요. 조교수 각종 한국사 개설서를 들춰보았는데 자유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부정 일변도로 기술했습니다.연구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잘못 평가한 것이지요.저는 장면정부가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 아니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부패,무능은 쿠데타이후 군사정권이 정당성을 강변하려고 조작한 것입니다. “부패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그보다는 혁명적인 열정과 순수성을 갖고 정치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그 청렴성은 정권에서 담보됐습니다.공채제도 하나만 예를 들어도 그렇습니다.이는 공정성과 효율성을 전제해야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전의원 공개채용에는 사심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입학시험 보듯 한 거니까요.그때 뽑힌 사람들이 나중에 거의 전부 장·차관을 했습니다.유능한 사람을 시험 쳐서 뽑았으니까 그대로 키우니 인재가 된 거예요. 조교수 장면정부를 ‘데모공화국’운운하는 것도 잘못이지요.쿠데타 직전에는 오히려 데모가 줄고 사회가 안정돼 갔으니까요.데모 하나 진압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이라는 비난은 쿠데타를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부패의 예라고 거론된 사건이 몇가지 있지만,모두 정략적 차원에서 나온 모략이라는 것이(쿠데타세력의)혁명재판에서 입증됐습니다.공판기록에 다 나와 있거든요. 당시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시급합니다. 김전의원 당시 우리는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영영 놓친다고 생각하고 밤낮으로 머리를 싸맸습니다.머리를 짜낼만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 밤을 샜어요.국토개발계획의 틀이 거기서 나왔습니다.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져야 해요.군사정부는 장면정부로부터 하나도 이어받은 것이 없다고 하고,국토개발계획도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민주당정부에서 만든 겁니다. 군사정부는 또 아무 기초도 없이 재벌을 양산했습니다.그래서 중소기업의 토대가 없어졌어요.재벌의 배만 불리는 재정·경제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IMF로 이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조교수 외교면에서도 대단히 유능한 정권이었습니다.우월한 입장에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추진했지요.제2공화국이 한·일관계에서 어떤 정책을수립하고 무엇을 했는지 더 밝혀야 합니다. 김전의원 한·일관계 정상화 교섭 때 장면정부는 처음 일본에 배상금을 100억달러 요구했어요.일본정부가 깜짝 놀라 “그 절반 정도면 안되겠느냐”고 했습니다.교섭 당사자의 말을 들으니 50억달러는 무난했고 아마 70억∼80억달러는 받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그런데 쿠데타후 군사정권은 ‘3억달러+α’에 합의했습니다.국민을 배신한 것이지요. 조교수 이 문제가 밝혀져야 장면정권의 진면목을 알게 됩니다.군사정부는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서둘렀고 국민에게 이같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로 6·3사태가 일어난 겁니다. 김전의원 군사정부는 ‘3억달러+α’를 받아서 기반을 닦았다지만 민주당정부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50억달러이상을 받아 경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저는 지금도 그것을 한(恨)으로 생각합니다. 조교수 이는 특히 강조해야 할 부분입니다.일본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매달릴 때 고자세로 나가야 했는데 말입니다.군사정부는 태생적인 취약성 때문에 열세의 입장에서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김전의원 신·구파 갈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조병옥(趙炳玉)박사가 일찍 돌아가신 게 비극이에요.조박사만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신·구파가 갈라서지 않았을 겁니다.윤보선(尹潽善)씨나 김도연(金度演)씨는 리더십을 가진사람이 못됩니다.그나마 윤보선씨가 구파를 장악했더라면 일본 자민당처럼(신·구파가)교대로 정권을 잡았을텐데.그랬다면 쿠데타에 빌미를 주지 않아30년 동안 군사독재 때문에 분통이 터지는 일이 생기지도,국민이 고생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교수 모든 정권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갈등 자체를 문제삼아서는 안됩니다.요는 수습과정과 합의된 의견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의 정당성 여부입니다.장면정권은 권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합의를 도출해내는 힘을가졌습니다.내각이 몇차례 바뀌고 보강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쿠데타 직전에는 안정이 됐습니다. 김전의원 장면박사가 평화시에는 훌륭한 재상이 될 수 있지만 난세에는결국 어려웠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하지만 장박사는인간적으로,정치적으로 훌륭한 분입니다.상대방 파트너들이 나빴지요.그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쿠데타에 빌미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교수 장면박사가(정치에 어울리지 않는)성직자 상이라는 평가는 우리정치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정치인은 적당히 부패하고 권모술수에 능해야 한다는 평가는 전근대적 지도자 상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장박사는정치인으로서도 정당성을 확보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련의 저항세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이 때문에 쿠데타로 정권을 상실했다는 시각이 있지만,공과를 논할 때 공(功)은 장박사에게 돌리고 허물은 당시 한국사회의 후진성 내지는 미숙성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당시 과(過)의 대부분은 개인의 능력부족이나 결함에서 유래했다기보다는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김전의원 제2공화국 사람들도 다 가고 내 나이도 이제 여든인데….대한매일이 진상을 파헤쳐준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이 시점에서 바로잡지 않으면(장면정부의 진실은)영원히 역사적으로 자리잡을 공간이 없어집니다.학자들이 깊이,또 많이 연구해 나가기 바랍니다. 조교수 대한매일의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는 그 역사적 의의를 재평가하는 출발선에 섰음을 알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지요.민주사회의 정당성에관한 일반의 의식을 드높이는 데도 이바지했습니다.본격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학계에 부여한 점도 빼놓을 수 없지요. 덧붙이자면 장면박사와 제2공화국에 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우리의 장래를 위해 모델을 찾는 작업에 너무 무관심합니다.학계도 그렇고 일반인도,제2공화국 연구를 강화하고 이해를 깊이해 우리 민주주의를 건전한방향으로 이끌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대한매일의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의 현대적 요청에 부합하는,시의적절하고도 역사성을 가진 기획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리 이용원 문호영기자 ywyi@■張勉시리즈 목차 지난 2월23일 시작해 오늘 30회로 끝을 맺은 ‘제2공화국과장면(張勉)’시리즈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2회 국토건설사업(상·하) 3∼5회 경제개발 5개년계획(상·중·하) 6∼8회 윤보선(尹潽善)과의 갈등(상·중·하) 9∼11회 신구파 대립과 분당(分黨)(상·중·하) 12회 소장파(少壯派)의 도전 13∼15회 분출하는 욕구(상·중·하) 16회 혁신계의 부침(浮沈) 17∼18회 봇물 터진 통일론(상·하) 19∼20회 요동치는 군(상·하) 21회 대일(對日)외교 전략 22∼23회 지지부진한 혁명과업(상·하) 24회 실패한 내각책임제 25∼27회 장면의 정치역정·생애(상·중·하) 28∼29회 김대통령 특별회고(상·하) 30회 시리즈 결산 전문가 대담대한매일·스포츠서울 뉴스넷(http:///www.kdaily.com 또는 http:///www.seoul.co.kr/)은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물 총 30회분을 정리,별도의 아이콘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대한광장] 朴正熙와의 화해는 잘못된 것인가

    우리사회는 좁은 시야에서 비롯된 단견과 경박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사안의 경중도 가리지 못하고 여론이라는 이름의 장단에 휩쓸리기도 한다.감정이 지배하는 가운데 이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양상도 나타난다.도대체 목표가 분명치 않고 중심도 없다. 고위층 여인네들의 철없는 행동에 여러날 동안 온 나라가 들썩거렸고 신문들은 신바람이 나서 연일 지면을 도배질하다시피 했다.그게 그렇게 온 나라를 뒤흔들 만큼 큰 일이었을까? 무슨 중대한 로비가 성사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지나치게 요란을 떤 게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물론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었다.그러나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 와중에 정작 중요한 남정네들의 비리의혹은 쟁점이 되지 못했다.최순영리스트 말이다.옷 로비로 그렇게 요란법석을 떤 결과 6·3 재선거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고급옷 로비사건이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주관없이 여론과 감정에휩쓸려 투표장으로 달려간 보통 여인네들은 선거결과에 만족할까? 대부분의 주요 신문들은 여당의 참패를 1면 머릿기사로 올렸다.그런데,남북간에 차관급 회담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보다 재선거 결과가 더 중요한 뉴스였다고 할 수 있을까? 차관급 회담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외교와 북한에 대한 일관된 포용정책이 결실을 낳은 소중한 결실로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이산가족들은벌써 가족과 상봉하는 꿈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개혁을 등한시해서도 안되겠지만 우리시대에,그리고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하는 과제는 동서와 남북의 화합 및 통일이라고 생각한다.이 둘은 동시에 가야 한다.동서가 지역감정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현실을 모른 체하고 남북통일만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따라서 남북관계의 개선을소신있게 밀고 나가고 있는 정부로서는 동서갈등의 해소도 동시에 추진하는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김대중대통령이 지난 달 대구에서 박정희 전대통령과화해선언을 한 것은 의미있는 사건이었다.그런데 일부 언론과 시민운동단체,그리고 지식인들이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그 이유는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내린 정략적인 판단이란 것이었다.그리고역사학자의 몫을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빼앗아갔다는 주장이었다. 그럴까? 그런 논리라면 이제 역사학자들은 할 일을 잃고 손을 놓고 있어야한다.김대통령의 선언은 지역감정을 풀기 위한 대통령으로서의 선택이고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여전히 역사학자들의 과제로 남아있다.설령 정략적인 선택이라고 해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기념관 건립을 정부에서 지원하느냐 않느냐는 방법론의 문제일 뿐이다. 호남지역의 상징이었던 김대통령이 박정희를 포함한 전직 대통령들과 대립하고 있는 한 지역감정의 해소는 요원하다.그러면 김대통령이 자신을 박해했던 전직 대통령들과 계속 반목하면서 원칙만을 고집해야 옳을까? 그럴 경우뭇사람들은 이를 두고 정치보복이라고 할 것이다.김대통령의 선택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지역감정의 해소를 말하지 말아야 한다.김대통령은 지금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 전대통령은 공보다 과가 훨씬 많다.그러나 공과를 따지고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것과 동서갈등을 푸는 일은 별개라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영남지역의 정서가 거기에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동서화합을 얘기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지금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큰 마음으로 동서가 하나가 된 가운데 남북의분단구조를 청산하여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나가야 할 때라고 믿는다. 金 東 敏 한일장신대 교수·언론학
  • 金대통령, 현충일 추념식후 논산훈련소 방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6일 오전 대전 국립묘지에서 열린 제44회 현충일추념식에 참석하고,이어 논산 육군훈련소를 방문,부대 간부 및 훈련병들을격려했다. 김대통령은 훈련소에서 “병역을 기피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 전정권의 일”이라며 “병무비리에 대해선 가차없이 처벌하고 부정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대북 포용정책의 목적은 전쟁방지와 남북 화해·협력에 있다”면서 “한·미 군사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현충일 기념식 추념사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가호로 이제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에 새로운 화합과 협력의 기운이 싹트고있다”며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이 결실을 거둬가고 있는 만큼 남북한의 차관회의가 열리게 되면서 이산가족의 재결합이 실현되고 여러가지 협력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개혁을 완수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과 헌신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며 개혁을 통한 제2건국의 길에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당부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6·4 天安門사태 10주년(下)-주역들 현황

    톈안먼(天安門)사태의 주역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89년 봄 톈안먼 광장에서 7주동안의 짧은 ‘베이징의 봄’을 연출했던 주요 학생지도자들은 대부분해외로 탈출,당시 열기가 무색하게 소시민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 활기를 띠고 있는 해외의 중국 민주화운동 조직들도 대개 이들의 선배세대가 이끌고 있다. 유혈 진압을 둘러싸고 갈라섰던 지도자들은 영욕(榮辱)을 달리하며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적으로 나뉘었다.강경 진압을 주도했던 지도자들은 리펑(李鵬·72)전인대 상무위원장처럼 권력 핵심에 남아있거나 수명을 다해 사망했다. 반면 유혈진압을 반대했던 지도인사들은 여전히 고난의 길을 가고 있다.시위학생들을 만나 눈물 흘리며 해산을 호소했던 총서기 자오즈양(趙紫陽·80).유혈진압직전 실각된뒤 제한된 외부 접촉만 허용받고 있다. 자오즈양의 비서였던 바오퉁(67)정치국 비서.‘반체제들과의 내통’을 이유로 7년 복역끝에 지난해 5월 클린턴 미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풀려날 수있었다.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즈양에 가까웠던 자유주의적 색채의 지도층인사들이 함께 정리된 것은 물론이다.차세대를 이끌것으로 확실시됐던 후치리(胡啓立·70) 정치국 상무위원의 실각도 한 예다. 당시 ‘수배 1호’였던 베이징대 사학과생 왕단(王丹·34).6년5개월간의 수감생활을 하다 미국의 도움으로 지난해 4월 풀려난뒤 미 하버드대 학생으로지내고 있다.주요 학생지도자 우얼카이시(吾爾開希·31)는 타이완(臺灣)에서 영주권을 얻어 방송사회자로 생활중이다. 애띤 용모의 여학생 지도자 차이링(柴玲·32).미국에서 인터넷관련 작은 소프트회사를 경영하고 있다.최근 “우리 세대는 톈안먼의 비극을 극복하고 있다”며 미래를 낙관했다. 사태직후 1년여동안 베이징 미대사관에 숨어있던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 팡리즈(方勵之·63) 허베이 과기대 교수.92년부터 미 애리조나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민주화세력들은 아직 지리멸렬한채 통일된 목소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중국내 반체제 세력과의 연계성도 이뤄내지 못한 상태다. ‘베이징의 봄’과 유혈 탄압 주역들의 모습은 중국정부의 사태의 재평가나 중국내 민주화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란 점에서 중국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이석우기자 swlee@
  • [외언내언] 볼쇼이 발레단

    볼쇼이 발레단의 인기는 팽이처럼 돌아가는 필루에트,한 다리로 서는 ‘쉬라 포엥트’의 모든 기교가 빈틈없이 완벽한데다 드라마틱한 작풍과 민족적인 색채 등이 볼거리인 디베르티스망이 눈부시기 때문이다. 지난 88올림픽때 볼쇼이 발레단이 처음 서울에 오자 발레팬들은 한동안 들떴으나 그것은 정단체가 아닌 타단체에 속한 15명의 혼성팀에 불과했다. 음악도 오케스트라의 생음악이 아니었고 공연은 단순한 맛보기 무대였으나 볼쇼이 발레단 내한자체만으로 우리는 세계와 맞닿은 듯한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다. 대한매일신보사는 오는 11월,창간 95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볼쇼이 발레단 230여명 전원을 초청하는 대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볼쇼이 발레단 전원이한국에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러시아·몽골방문 성과에 대한 수행기자단 간담회에서 볼쇼이 발레단의 서울공연은 “러시아와 한국문화의 교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볼쇼이’를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오랜 전통과 각고의 훈련으로정제된 발레리나·발레리노들을 얼마든지 배출해왔고 동작 하나하나를 살아움직이게 만드는 예술성 높은 음악 등은 ‘세계 최고’로 꼽는데 손색이 있을 수 없다. ‘볼쇼이 발레(Bolshoi Ballet)’란 본래 러시아어로 ‘큰 발레단’이란 뜻이다. 1780년 페트로프스키극장의 발레단으로 발족,219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속에서 그들이 걸어온 길은 고난도의 발레기교 만큼이나 영욕으로얼룩져 있다. 제정 러시아의 황제들과 옛소련 지도자들의 지배와 후원을 받았으며 소련붕괴 이후에는 정부 보조금이 끊기는 바람에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고 세계의 언론들은 ‘표현의 자유는 얻었지만 공연의 기회는 잃을 것 같다’는 우려의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러시아정부의 ‘볼쇼이 되살리기’ 정책으로 지난 30여년간 발레단을 카리스마로 지배해왔던 유리 그리고로비치감독을 사임시키는가 하면 지난 96년에는 긴 침체에서 벗어나 비야체슬라프고르디에프 새 감독의 ‘마지막 탱고’로 대변신의 면모를 보였다. 지금도 볼쇼이 발레단만의 분방한 기교와 완벽주의는 ‘러시아문화의 자존심’을 상징하는데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리우스 페티바,알렉산더 고르스키 등 천재적 안무가들의 불후의 명작인 ‘백조의 호수’에서 ‘지젤’로 이어지는 수많은 주옥편은 세계의 발레광(狂)들을 경도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다. 오는 가을(11월 2·3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올려질 화려한 볼쇼이 발레단 갈라공연은 과연 세계 최정상의 예술과 맞닿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한·러 문화교류 활성화와 함께 양국간 ‘문화협력의좋은 상징’이 되기를 기원한다.
  • 본사 초청, 볼쇼이발레단 11월 방한

    대한매일과 스포츠서울의 초청으로 오는 11월 초 이뤄질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서울 공연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볼쇼이극장의 주연 무용수,악단이 총출동,‘세계무용의 정수’를 선보이는 화려한 무대가 될 전망이다. 볼쇼이발레단의 국내 공연은 90년 이후 95년까지 모두 세번 있었다.하지만이때는 주연급 무용수 1∼2명을 포함시킨 정도거나 20대 ‘신예’들을 대거포함시켜 ‘볼쇼이발레단’으로 ‘포장’했었다는 것이 국내 무용계의 지적. 96년 미국 공연에서는 20대 신예와 은퇴 무용수를 포함시킨 팀을 ‘볼쇼이발레단’으로 명명했다가 ‘가짜’ 법정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 가을 방한하는 발레단은 러시아외에 뉴욕 파리 로마 등 전세계에 흩어져 활동중인 프리마돈나급이 한자리에 집합,명실상부한 볼쇼이의 진면목을 선보이게 될 것이라는 게 블라디미르 바실례프 볼쇼이극장장의 얘기다.일행은발레단원과 오케스트라단원을 포함해 220명선이며 무대세트도 원형 그대로반입될 예정이어서 볼쇼이극장을 옮겨오는 것과 같다. 1776년 창단된 볼쇼이 발레단은 19세기 발레 거장 글루스코프스키와 산코프스카야,보그다노바 등을 배출하며 유럽 국가를 앞질렀다.20세기 초 고르크키,로스라프레바를 거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발레의 정수를 보여줘 왔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잠자는 숲속의 미녀’‘호두까기인형’과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신데렐라’‘스파르타쿠스’‘아뉴타’‘돈키호테’ 등 주옥같은 명작을 공연했다. 11월 공연은 대표적 작품들의 하이라이트를 엮어 편성한 갈라(gala)형식으로 꾸며지며 경비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교보생명이 협찬할 예정이다. 유민기자 rm0609@
  • 몽골방문 金대통령 이모저모

    울란바토르 양승현특파원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내외는 30일 오후(이하한국시간) 3박4일간 러시아 국빈방문을 마치고 몽골 울란바토르에 도착,몽골 국빈방문 일정에 들어갔다.이에 앞서 29일에는 디닐로프 수도원을 방문,알렉세이 2세 총주교를 면담하고 스테파신 총리 주최 오찬에 참석한 뒤 볼쇼이 공연 관람으로 러시아 문화·예술을 접했다. 몽골 도착 및 러시아 공항 환송행사 김대통령 내외는 이날 저녁 울란바토르 보양트 오하공항에 도착,토야외무장관과 갈바드라흐 주한몽골대사 내외,우르진훈데브 의전장의 영접을 받고 공항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징기스칸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날 울란바토르 공항에는 개항 후 처음으로 대형 보잉 747-400기가 착륙하게 돼 아시아나 항공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특별기 착륙연습을 하는 등 만전을 기했다는 후문이다. 현지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김대통령의 국빈방문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대통령 내외의 일대기나 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소개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몽골리안 메데지는 “몽골 국회에서 국빈자격으로 연설하는 것은 김대통령이 처음”이라고 소개했고,우눈두르지는 “가장 오래된 한국관련 문헌자료는 732년에 세운 쿨테긴왕 비석의 비문중 4번째 줄에 나온다”고 보도했다. 정치연합당수접견 김대통령은 같은날 오후 숙소인 영빈관에서 러시아의 야당인 야블린스키 야블로코 정치연합당수를 접견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통일은 상당히 먼 얘기고 지금은 평화공존이 중요하다”며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러시아를 비롯한주변 4강이 지지해 평화공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블린스키 당수는 “러시아의 현 옐친 정권에만 기대하지 말고다음 정권에도 지지를 기대해도 좋다”고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지속적인 지지 입장을 약속했다. 볼쇼이관람 김대통령 내외는 29일 밤 마지막 러시아 방문 일정으로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볼쇼이 갈라 발레 공연을 관람했다.김대통령은 공연 후골로브키나 볼쇼이 발레학교 교장,바실리예프 볼쇼이 극장장,발레리나 10여명 등과 다과를 함께 하며 환담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발레가 이같이 아름답고 힘차다는 것을 몰랐다. 감동을 뭐라 말할 수 없다.잘 가르친 덕분”이라고 말했다.또 볼쇼이학교에재학중인 한국 학생들을 격려했다. 골로브키나 교장은 “서울에 자매학교를 세우기 위해 서울 삼육대와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TV회견 및 한반도 전문가 초청 조찬 김대통령은 같은날 오후 숙소인 영빈관에서 러시아 국영 에르테에르(RTR)TV와 회견을 가졌다. 김대통령은 대북 햇볕정책의 전망에 대한 질문에 “조금씩 좋아지고 있으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며 “이번 러시아 방문은 한반도 주변 4대국의 지원체제를 완성시킨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숙소인 영빈관에서 비탈리 이그나텐코 이타르타스통신 사장 등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조찬을 함께 하며 한반도문제와 한·러관계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대통령은 “과거 정부 때와 달리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있는 만큼 여러분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등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이그나텐코 사장은 “한·러 수교 10주년이 되는 내년에 ‘러시아와 한국,과거와 미래’라는 주제로 대한제국 국왕의 친서,100년전 한국지도 등의 전시회를 한국측 민간 조직위와 공동추진하고 있다”며 김대통령에게 당시 지도 한부를 선물했다. 김대통령은 이그나텐코 사장의 한국정부 지원 요청에 “문화관광부가 관심을 갖고 이인호(李仁浩)대사와 협의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 金대통령 행보 특징

    ?綬凋뵀㈈? 양승현특파원?戍갬?시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27일 오후 동포간담회).“오랜 옥중생활을 통해 탐독한 푸슈킨,레르몬도프,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투르게네프,솔제니친,사하로프 등의 러시아 문학이 나에게 준 영향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28일 오후 모스크바대학 강연).“국민시인인 푸슈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기간에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 것은 행운입니다. 한 진보적인 러시아 지식인을 위한 푸슈킨의 시구처럼 ‘아플만큼 벅찬 기대를 품고 신성한 자유의 순간을 기다린’ 두사람의 우정을 부러워했습니다”(28일 저녁 국빈만찬 답사). 러시아를 국빈방문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연일 러시아의 역사와 문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쏟아내고 있다.러시아와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한배려지만,문화적 향내가 가득한 김대통령의 행보는 러시아 방문을 특색있게만들고 있다. 주말인 29일에도 러시아 정교의 중심지인 다닐로프성당과 유서깊은 볼쇼이극장을 찾아 갈라발레를 관람한다. 다닐로프성당은 1282년 몽골 지배때 지은 모스크바 최초 수도원으로 교회·주교관 등 아름다운 건물과 유명한 성상화 등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고 대사관측은 설명했다. 1780년 개관했으나 나폴레옹 침입으로 전소된 적이 있는 볼쇼이극장은 1856년 1,800석의 극장건물로 개축했다고 했다. 김대통령 내외가 관람할 갈라발레는 볼쇼이발레학교 학생 및 졸업생을 주축으로,여러 대표적인 발레작품 가운데 하이라이트 부분만을 뽑아서 모은 줄거리 없는 공연이다. yangbak@
  • 경제부처 4곳 인사교류 할까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간에 직원들을교환 배치할 것이다’ 최근 경제부처에서는 이런 예상들이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정부조직개편과정에서 거론된 인력 풀 제도가 가장 색깔이 비슷한 이들 4개 부처에서 처음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관리들은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관가에서 4개 핵심 경제부처간 인사교류설이 나오는 것은 직제개편으로 사실상 옛 기획원이 기획예산처,공정위,재경부로 갈라진데다 옛 재무부는 재경부와 금감위로 인력이 분산됐기 때문이다. 인사권자로서는 인력의 선택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강봉균(康奉均)재정경제부 장관이 옛 재무부 성향이 농후한 재경부를 혁신하려 할 경우 개인적인성향이 비슷한 기획예산처와 공정위의 인력을 데려다 쓸 가능성이 있다고 관리들은 예상하고 있다.기획예산처는 ‘예산’이라는 좁은 영역보다 ‘정책’을 담당하길 원하는 관리들의 희망으로 4개 부처간 인사풀 제도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고 한 관리는 전했다. 청와대에 파견된 차관보와 일부 국장급의 경우 기획예산처,재경부,금감위등으로 복귀한다는 설이 나돌고 있어 인사풀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당위성도 곁들여진다. 이와 관련 모 경제부처 장관은 “자체로는 인사폭이 좁을 수 밖에 없어 고심”이라면서도 “인력풀 제도는 오래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되어왔으나 개각후 관련 부처가 협의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재경부 등 4개 부처는 아직 자체 인사이동을 단행하지 않고 있다.강 재경장관이 한·러 정상회담에서 돌아오는 내달 1일쯤 ‘러시아 구상’으로 재경부의 인사구도가 드러날 것으로 보여 인력 풀제도가 채택될 지 관심을 모은다. 이상일기자 bruce@
  • 새 천년 사업 주요내용/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장과 문답

    새천년 준비위원회가 19일 발표한 주요 사업내용을 소개한다. ●평화행사 ▲평화 12대문:‘고려공사 3일(高麗工事三日)’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의 조급성을 불식하기 위해 월드컵 상암경기장 인근에 100년에 걸쳐 건설한다.우선 월드컵 개막식 때 첫번째 문을 준공하고 두번째 문은 2010년 1월1일 만든다.10년 마다 문을 하나씩 만들고 통일이 되는 해에 하나 더 지어 12대문을 완성한다.1개 문의 규모는 10층 정도로 전망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내부는 평화역사 체험관으로 구성한다.문의 형태는 홍살문 또는전통적인 문의 양식을 절충한다.문의 외관은 시민들의 이름과 기도문,역사를 표현하는 부조물 또는 벽화로 장식하고 문전에는 역사의 계단을 만든다.우리나라의 역사를 단군,삼국시대,고려,조선,해방 등으로 구분,한단 한단을 상징적으로 쌓아간다.문 안 또는 계단에는 타임캡슐을 매립한다.이를 위해 실행 소위원회와 별도의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서원(誓願)의 벽’ 등을 통해 기금을 조성한다.▲평화공원:평화관련 조형물로 만든 평화지역(Zone). 전 세계 주요 전쟁지역의 돌·흙·나무를 옮겨와 평화의 땅 한국의 흙과 섞어 공원을 만든다.기공식은 2000년 1월1일 0시 20분에 한다.또 주요 전쟁지역을 대표하는 꽃을 심어 평화를 기리는 명소로 자리매김한다.▲평화기상대:평화의 대문 앞에 지구본 모양의 평화기상대를 만든다.세계 각국의 평화지수를 산출,공표하고 새천년 1월1일부터 전쟁과 갈등을 매일 지수화,발표한다. ●2000년 맞이 국가행사 ▲일몰행사:1999년 12월31일 오후 5시부터 서해안방파제에서 수백명이 군무를 춘다.군무에는 지나간 천년의 아쉬움과 다가올새천년의 희망을 담는다.장소로는 변산반도 또는 인천 송도가 꼽힌다.▲자정행사:2000년 1월1일 0시부터 0시10분까지 광화문 일대에서 첨단 영상기술로전쟁터를 재현한 테마공연을 갖는다.김대중 대통령이 평화 메시지를 선포하고 새천년에 가장 먼저 태어난 즈문둥이와의 연결행사도 갖는다.이 행사는판문점에서의 백남준 비디오 씻김굿 공연과 연계된다.▲일출행사:2000년 1월1일 오전 6시부터 강원도 정동진 또는 경북 포항에서우주인 복장을 한 사물놀이패가 대규모 공연을 갖는다. ●공유공간 조성사업 건설교통부,행정자치부 등 관계 기관과 협의,대규모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를 건설할 때 일정 규모의 공유공간을 건설하는 방안을추진한다.또 우체국을 컴퓨터 교육장과 인터넷 플라자로 활용하는 등 정부시설을 복합,공용화해 커뮤니티 센터로 기능을 강화한다. ●2000 즈문이 내년에 20살이 되는 젊은이 2,000명을 선발한다.이들은 2000년 4월 바다가 갈라지는 전남 진도에서 밀레니엄 대행진을 갖고 문화유산 답사,국토대행진 등의 다양한 행사를 갖는다.또 아프리카 등 해외지역 봉사요원으로도 활용한다. ●한글 세계화 한글이 자동으로 번역되고 통역되는 시스템을 구성하고다국적 언어사전과 문화사전도 펴낸다. ●공문서 및 국가기록 디지털화 우리의 생활모습,예술작품,산천 등을 디지털 영상으로 보존하고 전국 1만개의 보존가치가 있는 장소를 매달 촬영,보존한다.또 보건복지부,여성특별위원회 등과 협조,가정생활도 기록한다. - 李御寧 새천년준비위장 문답“밀레니엄법 제정…”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을 간추린다. ●밀레니엄은 서구 기독교의 개념이 아닌가. 그리스도가 재림,이 땅을 통치한다는 신성한 천년동안의 시간이 밀레니엄이다.그러나 우리가 맞는 천년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지구의 시간을 의미한다.또 이 서력(西歷)에 맞춰 모든 나라의 컴퓨터가 작동되고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한국인에게 새 천년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려가요에 천을 뜻하는 ‘즈믄해’라는 말이 나온다.또 민중들 사이에서는 백년,천년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땅에 향을 심는 ‘매향비(埋香碑)’의식이 있었다.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천년의식을 잊고 살아왔다.이에 따라 우리는 새천년,뉴밀레니엄이라는 말과 함께 ‘즈믄’이라는 말도 쓰겠다●새천년의 기산년도는 2000년인가 2001년인가. 2000년으로 본다.다른 나라도 2000년에 맞췄다.2001년에 할 경우 김이 샌다. 100년전에도 이런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1900년이 20세기의 출발점이 됐다. ●평화 12대문은 100년의 장기사업인데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데 문제는 없나.각종 사업의 영속성을 위해 밀레니엄법을 제정하려 한다.강조하지만 12대문은 국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국민의 성원이 크면 대문은 커지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의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각종 사업과 관련,예산은 어느 정도 확보됐나. 새천년 위원회는 집행기구가 아니라 자문기구이다.여러가지 사업에 대한 기본 컨셉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임태순기자
  • [역경을 딛고…] 고대에 10억 기중한 최병순할머니 육필수기(7)

    나는 곧 그 집의 자랑거리가 됐다.일에는 빈틈이 없었다.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했다.못쓰는 이부자리를 빨고 다려 꾸미고,풀로 다듬고 물들여 새것으로 만들고,밤을 새가며 저고리도 만들어 주니 ‘복덩어리’를 얻었다며좋아했다.주인이 인정을 해주니 나도 힘드는 줄 몰랐다. 하지만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주인집이 이듬해 부도가 났다.온갖 패물에 전화까지 내다 팔아야 할 정도였다.주인은 아이들 차비는 못줘도 내 월급 1만원은 거르지 않았다.그런 주인이 고마워 월급 일부를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주었다.내가 뭘 도와야 할까.생각 끝에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주인집가족들은 “한 식구인데 왜 나가느냐”고 말렸다.나도 떠나기 싫었다.정말가족처럼 정든 사람들이었다.하지만 떠나는 것이 돕는 길이었다.7개월 만이었다. 몇개월 뒤 5·16이 일어났다.사회가 어수선한 탓인지 마땅한 일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암표 장사를 시작했다.명동극장 주변에서 보름쯤 했는데 단속때문에 그만두고 하숙집으로 들어갔다.열일곱 식구의 수발을 해야 했다.고된 일이었다.하루에 2시간도 못잤다.손가락 마디가 갈라지고 발에는 얼음이 박였다.그때 발톱 10개가 모두 없어졌는데 지금도 그대로다.10개월쯤 하다 일을 그만두었다.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주인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집을 드나들 때마다 연탄의 개수를 셌다.언젠가 “연탄 한 장이 없어졌다”며의심을 하길래 싸움을 하고 나와버렸다.그 어려움 속에서도 정직하게 살아온 나인데,억울하고 분했다.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목이 메고 말문이 막힌다. 그 뒤 보모 자리를 얻었다.박정희대통령 영부인인 육영수여사의 친척 뻘 되는 사람의 집이었다.아이가 조금 자라자 육여사의 이모라는 분이 함께 살자고 했다.이른바 침모 생활이었다. 여간 까다로운 분이 아니었지만 지극 정성으로 돌보니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그 분은 청와대를 거의 매일 드나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친척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재혼을 하라는 권유가 들어왔다.소개받은 사람은 용산에 사는 한 노인이었다.조그마한 가게 하나를 갖고 있었을 뿐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었다.4남매가 있었지만 모실 만한 형편도 안됐고 돈도 없었다.육여사의 이모도 내키지 않아 하다가 “사주팔자를 봤더니 궁합이 좋더라”며 적극 권했다. 재혼을 했다.내가 48세였고 노인은 60세였다.다른 큰 이유는 없었다.다만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출옥 후 3년간 옷 하나 해 입지 못하고 번 돈 35만원으로 장사 밑천을 댔다. 문방구,벽지,철물 등을 파는 잡화점을 내고 전차를 타고 다니며 배달도 직접 나갔다.당시 용산에 있던 사창가에서 홑이불을 걷어다 한장에 20∼30원씩받고 빨아 가게 밑천을 댔다.열심히 했더니 가게가 커지기 시작했다. 10여년을 고생했다.집을 사고 시골에 땅도 살 만큼 돈을 모았다.남편의 자식들도 돌보았다.공장을 짓도록 돈도 대고 혼인에다 시동생들 장례까지 집안 대소사를 다 치렀다.작은 아버지의 사업 자금도 댔다.그사이 남편은 중풍을 맞았다.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장사를 계속했지만 남편이 치매 증세까지 보여 병간호를 위해 가게를 그만두었다.
  • 재야운동가 백기완씨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발간

    재야 운동가 백기완씨가 ‘사전 예매제’로 화제를 모았던 책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백산서당 펴냄)를 내놓았다. 지은이가 밝히듯 31년 만에 문을 닫은 통일문제연구소를 다시 일으키려고책이 나오기도 전에 1만 권 예매라는 독특한 방법을 도입한 결과가 빛을 본셈이다. ‘역사의 길 인생의 길’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에는 백씨가 한 평생 ‘반골’의 길을 걸어오면서 몸으로 건진 값진 경험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깃들어 있다. 백범 김구와의 인연,장준하와 의형제를 맺은 배경,통일운동에 전념하게 된사연 등을 풀어내고 있다.또 나무심기운동 농민운동에 이어 민족·민중운동에 얽힌 많은 일화도 들려준다.그 소용돌이 속에서 당한 처참한 고문 장면과 후유증이 행간에 배어 있다. 아울러 지은이가 단순히 경제적 사정 말고도 출판을 하게 된 절절한 심정을 토로하는 대목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그것은 외곬로 재야를 지켜온 운동가의 현실 진단으로서 때론 “지금껏 통일을 반대해온 덕으로 떼부자가 된 재벌이 소 떼를 몰고 간 통일기운의개척자”로 미화되는 데 대한 분노로드러난다.역으로 “열아홉 살 적부터 민족문제·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통’자만 써도 살인적 탄압을 하던 군사독재의 폭압을 뚫고 통일문제연구소를 만들고 일생을 부대껴온” 자신이 재정난으로 연구소 간판을 내려야하는 상황에 대한 탄식으로 내비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내용들이 전래 민담에 바탕을 둔 지은이의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에 힘입어 빛나고 있다. 그는 눈보라 소리를 갈라치는 버들가지 물오르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할머니의 지혜를 통해 ‘희망을 보는 법’을 전해준다.봉산탈춤때 지르는 ‘질라라비 훨훨’ 소리의 기원이 2만년 동안 길들여 온 닭이 옛살라비(고향)인 산속으로 날아가 들짐승·날짐승과 맞서 싸우며 얻은 질라라비(자기 해방자)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주면서 ‘인간 해방’을 강조한다. 모든 얘기의 밑바닥엔 지은이가 줄곧 보듬어 온 ‘건강한 민중성’이 자리잡고 있다.그 모습은 “삶의 나이테는 젊음의 축적이지 늙음의 지표가 아니다”라는 지은이의 말처럼 힘차고 젊다.이종수기자 vielee@
  • 허술한 시공·감독체계

    매설과정에서의 부실은 하수관의 문제점을 결정적으로 부각시킨다. 땅속 1∼2m 깊이에 묻히는 하수관은 상부의 하중에 견디도록 하기 위해 밑부분에 콘크리트로 받침대를 하거나 15∼20㎝의 모래를 깔고 윗부분에는 고운 흙으로 덮어줘야 한다.또 매설을 끝내고 흙을 덮을 때에는 층별로 시간을 두고 충분히 다지기를 하여 지반침하를 방지해야 한다. 충분한 다지기가 되지 않으면 지반이 침하되면서 하수관 이음새 부분이 꺾여 누수현상을 빚게 된다. 그러나 일선현장에서는 시공기간의 촉박성 등을 들어 이러한 원칙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건설회사 관계자는 “현장인부들이 하수관은 묻히면 그만이라는 인식하에최소한의 원칙마저도 무시하고 매설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도심지역에서 가스관·통신관 등 다른 지하구조물 설치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하수관이 손상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97년 환경부 조사 결과 9,815곳의 하수관이 타관 관통으로 훼손되었다. 상수도관 7,424개,통신관 1,943개,가스관 315개,전선관 133개 등의 순위였다. “일본에서는 눈에 안띄는 지하구조물이라 더 신경을 쓰는데 비해 우리는안 보이니까 대충하려는 경향이 있다.이러한 의식차이가 양국의 하수시스템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는 국립기술품질원 관계자의 지적은 우리가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하수관에 대한 관계기관의 감독체계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하수관 개량·보수 예산을 각 시·도에 배정하는 환경부,관급 물량을 공급하는 조달청,품질검사를 감독하는 국립기술품질원 및 한국표준협회 등 어느 하나 감독을 제대로 하는 곳이 없다. 실질적인 품질검사를 업자들에게 맡긴 것은 감독체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립기술품질원은 92년까지 시·도에 의뢰해 1년마다 정기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93년부터 한국표준협회에 사후관리를 위임했고,한국표준협회는 다시흄관 제조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원심력콘크리트공업협동조합에 관리를 위임했다.위임에 위임을 거쳐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에 관리가 맡겨진 것이다. 조합은 해마다 1∼2차례 각 업체의 기술진으로 품질평가단을 구성해 자체검사를 하고 있다.강도문제에 공통된 치부를 갖고 있는 업체들끼리 서로를 심사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 애초부터 엄격한 심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96년까지만 해도 검사항목에 균열하중 20점,파괴하중 20점 등 강도와 관련된 점수를 100점 만점에 40점이나 배정했으나,97년 하반기부터 균열하중 점수를 15점으로 내리고 파괴하중 항목은 아예 없애 조합이 정확한 검사보다는 업계의 편의를 위해 애쓴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다만 KS인증기구인 한국표준협회가 5년마다 정기검사를 하고 있으나 KS인증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데 주안점을 둬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 기독교 이단교파 실태·문제/150여단체 ‘反성경’활동

    인류가 신앙을 가진 이래 이단 시비로 몸살을 앓지 않은 종교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기독교의 이단논쟁은 그 뿌리가 깊다.기독교 자체가 유태교의 이단으로 출발했으며 개신교도 가톨릭의 이단으로 몰렸던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각 교파의 선교사가 경쟁적으로 들어오면서 수많은 이단 시비를 낳았고 이것이 토착신앙이나 사회상황 등과 겹치면서 증폭됐다.현재 기독교계 주요교단의 이단·사이비성 연구단체들은 한국교회 안에 이단으로 지적되는 종교단체나 개인이 15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 이단·사이비성 종교단체로 꼽히는 것은 지난해 집단자살로 큰 물의를 일으킨 ‘영생교’,92년 휴거소동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미선교회’,수혈이나 집총을 거부해 논란을 빚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오대양사건으로 한때 사회적 문제가 됐던 침례회 계열의 ‘구원파’,‘30개론’이란 통일교 원리강론과 유사한 교리로 대학가에 확산됐던 ‘국제크리스천연합(JMS)’ 등이 있다. 또 안수기도로 병을 고친다는 ‘할렐루야기도원’을 비롯,‘태백기도원’,나운몽장로의 ‘용문산기도원’,극단적 신비주의 형태로 92년 예장(통합)으로부터 이단으로 낙인 찍힌 ‘레마선교원’,귀신을 쫓는 비디오를 보여 주며 전도하는 ‘땅끝예수전도단’,비슷한 계열의 ‘김기동류(베뢰아아카데미)’,비성경적 현상을 중시하는 ‘예태해’도 정통 교단에서는 이단·사이비성종교단체로 꼽고 있다. 이번에 MBC 방송중단사태를 빚은 만민중앙교회는 지난달 30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회장 지덕)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았다. ‘종말론 사경회’라는 포스터를 붙이며 종말복음을 전파하는 ‘밝은빛 종말론’,공산당을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로 보는 ‘새일파’,4년 전 종교연구가 탁명환씨 피살사건 관련설이 나돌았던 ‘대성교회(구)’,사탄 마귀귀신을 중심으로 인간의 죄와 구원을 푸는 일종의 사탄신학 내지는 축사신학(逐邪神學)으로 사이비 기독교운동의 특성을 지닌 ‘다락방전도운동’도 대표적인 이단·사이비성 단체. 이밖에 미국의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여기서 갈라져 나온 ‘엘리야선교원’,‘몰몬교’,중국인 위트니스 리가 세운 ‘지방교회(회복교회)’,로마가톨릭적 요소에서 출발한 ‘트레스 디아스’,장막성전 계열의 ‘무료성경신학원(신천지안양교회)’도 정통 교단에서는 이단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 유독 이단 시비가 빈발하는 것은 개신교 교파의 분열에 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교단마다 교세경쟁을 하다 보니 이단문제가 불거져 나와도 쉬쉬하기에 급급하고,해당 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아도 다른 교단으로 옮겨가거나 새 교단을 차리면 되기 때문이다. 개신교계 내에서 ‘이단성’을 판정하는 공식적인 기관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교회의 보편성 원리와는 달리 통일된 잣대가 없는 것도 이단시비를 부추기고 있다.심지어는 이단 판정을 둘러싸고 ‘금품수수설’이 난무하고 이단문제로 치부하려는 이른바 ‘이단 장사꾼’까지 등장하는 형편이다. 이단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통’을 자처하는 측에서 단죄해야만 가능한 것이다.그 잣대는 신학적인 문제가 핵심이다. 성경의 절대 기준에서 어떻게 얼마나 벗어나 있느냐 하는 것이 이단·사이비를 규정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지 윤리적 도덕적으로 빗나간 현상때문에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종교학자들은 이단신앙의 특징으로 ▲시한부 종말론 ▲개인숭배 ▲열광적이고 주술적인 종교의례 ▲초능력 동원 ▲선민사상 주입 ▲치병(治病)강조와 헌금종용 ▲자의적인 경전해석 ▲무속 등 다른 종교와 배합 ▲신비주의적 체험 강조 ▲배타적 공동체형성 등을 들고 있다.
  • 중산층 저축 늘리는 방안을

    우리나라 지난해 저축률이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주목을 끈다.한국은행은 지난해 고소득층의 저축이 증가함으로써 민간저축률은 약간 늘어났으나 세수(稅收)감소와 사회보장 지출 증가로 정부저축률이 하락,총저축률이 지난 86년 이후 가장 낮은 33.2%에 머물렀다고 발표했다.지난해 저축률은 외환위기로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고있다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갖게 한다. 외환위기로 인해 저축률에 두 가지의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고 앞으로 이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돼 걱정이다.지난 92년 이후 해마다 10% 이상씩 늘던 정부저축률이 98년에 전년보다 24.4%나 감소해 놀랍다.정부저축률이 이처럼 뚝 떨어진 것은 경기침체로 세수는 줄어든 반면 실업급여·국민연금 등사회보장지출이 급증한 데 기인한다.정부지출 가운데 사회보장적 성격의 지출은 올 들어 더욱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정부저축률은 더 낮아질 전망이다. 또 외환위기는 소득의 불균형 현상을 심화시켰다.98년중 소득계층별 저축·소득 증감률을 보면이 현상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지난해 가장 못 사는측에 속하는 최하위 20%계층 저축은 97년보다 무려 426.8%나 감소했다.최하위 계층은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애써 저축해온 예금을 해약해서 쓸 수밖에없기 때문에 저축률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반면에 가장 잘 사는 최상위 계층의 저축은 13% 증가했다.이 계층의 저축이 늘어난 것은 외환위기 직후 금리가 천정부지로 올랐고 금융소득 종합과세 유보조치로 세금을 덜 내게 된 데기인한다. 외환위기 이후 저축이 늘어난 측은 최상위 20% 한 계층뿐이고 나머지 차(次)상위·중간·차하위·최하위 등 4계층 모두 줄었다는 것은 중산층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는 것은 소득 불균형현상심화라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 정치·사회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많다.다시 말해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되면 사회적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고 정치는 급진적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으로 갈라져 국민적 통합에 의한 안정된 정국운영이 어렵게 된다.더구나 국민의 정부는 중산층과 저소득 서민층의 지지기반위에서 출범한 정부가 아닌가. 그러므로 정부는 중산층 이하 서민층의 저축증대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할 것이다.중하위층의 저축증대를 위해 가계저축에 대한 세금 및 금리면에서 우대조치를 강구하고 고소득층과 부유층에 대해서는 소득에 걸맞게 세부담을 할 수 있도록 가급적 이른 시일안에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다시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
  • 금세기 마지막 축제 ‘칸 영화제’내일 팡파르

    - 23일까지 공식·비공식부문 74편 상영 중·일등 동아시아권 영화 본선 대거 진출 한국 단편·학생작품부문 4편 입성 세계 영화인의 금세기 마지막 축제인 제52회 칸국제영화제가 12일(한국시각 13일 새벽) 프랑스 남부 해변의 휴양도시 칸에서 화려하게 개막한다. 오는 23일까지 12일동안 열리는 올 영화제에는 공식 및 비공식 부문 등에서 본선에 진출한 74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주요 부문별 본선 진출작 수를 보면 장편 경쟁 부문과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이 각각 22편씩이고 단편경쟁 부문 12편,중단편 및 애니메이션의 시네 파운데이션 부문 18편 등이다. 영화제측은 전세계 73개국이 출품한 1,138편의 장단편 영화 중에서 이들 본선진출작을 골라냈다.출품작 수는 지난해의 1,054편에 비해 다소 늘어난 것이다.그러나 영화제측은 ‘쓸만한 예술 작품’이 줄어들어 본선 진출작 선정에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동아시아권 영화가 예년에 비해 많이 본선에 올랐다는 점이다. 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동아시아 영화는모두 3편으로 중국 첸 카이거감독의 ‘황제와 암살자’,일본 키타노 타케시 감독의 ‘기쿠지로’,홍콩 유릭와이 감독의 ‘사랑이 우리를 갈라 놓을거야’ 등이다. 또 신인감독의 작품을 상영하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일본과 대만이 각각 2편의 영화를 초청받았으며 단편 영화 부문에는 한국이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3편을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국내 단편 영화는 지난해 ‘스케이트’가 처음이다. 아울러 영화학교 학생들의 기량을 겨루는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도 한국,일본,대만의 작품이 각각 1편씩 뽑혔다. 그러나 한국의 장편영화는 단 한편도 경쟁 부문과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은물론,비경쟁 부문에도 진출하지 못했다.지난해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가비평가 주간에,‘아름다운 시절’이 감독주간에,‘강원도의 힘’이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각각 올랐다. 개막작은 러시아의 니키타 미하일코프 감독 작품인 ‘시베리아의 이발사’이며 폐막작은 영국 올리버 파커 감독의 ‘이상적인 남편’이다.개폐막작으로 미국이 아닌다른 나라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지난 93년 이후 처음이다. 영화제 측은 당초 ‘스타워즈 에피소드 Ⅰ:유령의 위협’을 폐막작으로 선정하려 했으나 제작사인 미국의 20세기폭스로부터 거절당했다.이어 최근 숨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마지막 작품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을 유치하려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 [외언내언] 백령도

    동(東)에서 서(西)로 비스듬히 남북을 갈라놓은 155마일 휴전선이 서해에이르면 다시 북쪽으로 올라간다.그 끝 최북단에 자리잡은 섬이 백령도(白翎島).여의도의 다섯배인 45.4㎢에 5,000여명의 주민이 살고있는 우리나라 9번째 크기의 섬이다.행정구역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겉보기로는 여느 섬과 다를 것이 없는 평화로운 섬이지만 24시간 팽팽한 긴장속에 싸여있다.바다위 군사분계선을 따라 나란히 늘어서있는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와 함께 북쪽 땅을 마주보는 최전방이기 때문이다.바다라 철책선이 없다뿐이지 긴장감은 육상의 전선보다 오히려 더하다.73년 서해 5도사태와 비슷한 남북 대치상황에 대비하여 군은 물론 일반 주민들까지 항상경계상태이다. 백령도 주민들의 생활권은 인천이다.뱃길로 9시간이나 걸리고 그나마 기상이 조금만 나쁘면 끊기던 불편은 92년부터 편도 4시간의 쾌속여객선 취항으로 크게 나아졌다.그러나 위도상으로는 개성과 비슷한 위치이며 생활권인 인천(173㎞)보다는 평양(143㎞)이 훨씬 가깝다.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공양미 300석에 몸을 판 효녀 심청이 물속에 뛰어들었다는 인당수를 앞에 둔 북녘 땅 장산곶이 코앞에 보인다.서해상에서의 북한 군사활동을 크게 제약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목에 박힌 가시같이 신경 쓰이는 곳이다.최근 들어서는 뜸한 편이지만 바다와 하늘에서 수시로 긴장상태를 조성한다. 백령도에는 지금 뒤늦은 봄기운이 완연하다.바닷가 절벽에는 세계적인 희귀조 가마우지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품고있으며 천연기념물인 바다표범들이 바위들을 뒤덮고 있다.생각보다 넓은 들판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갖가지형상의 기암절벽들이 둘러있어 제2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두무진이나 천연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는 세계 2곳뿐이라는 사곶 백사장,옥석같이 아름다운 콩만한 자갈들로 뒤덮여있는 콩돌해안등에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긴장상태는 마찬가지이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편입니다.”주민의 말이 아니더라도 백령도에도 분명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었다.서해의 최전방 진지(陣地)정도로만 알려졌던 이곳에도 여름이면 하루 3번 왕복하는 쾌속선의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이 몰리고 이들을 맞을 편의시설의 건설도 활발하다.한반도에 일고있는 대결속의 화해·협력 분위기 탓이아닐까.금강산 관광선이 오가는 동해와 같이 서해의 뱃길도 하루빨리 뚫렸으면 싶다./장정행 논설위원
  • 자민련에 둥지 튼 金熙完후보

    김희완(金熙完) 전 서울시 부시장이 4일 자민련에 새 둥지를 틀었다.다음달 3일 서울 송파갑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로 확정됐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공천으로 성사됐다. 김전부시장은 원래 ‘야당맨’이다.지난 85년 신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당시 이민우(李敏雨)총재 공보보좌관으로 입문했다. 통일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고,평민당과 통일민주당으로 갈라지자 통일민주당에 남았다.87년 ‘양김’씨가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때다.이후 ‘YS사람’으로 분류됐다. 그는 90년 3당합당과 함께 YS를 떠났다.5년 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하자 합류했다.이 시점에서부터 ‘DJ사람’이 됐다.이번에는 JP를 새 지도자로 찾았다.‘3김’을 두루 거치게 된 셈이다.꽤 파란만장한 정치행로다.이같은 행로는 자의도 있으나 타의도 꽤 작용한 결과다. 그는 이번이 세번째 도전이다.총선에서 두번 낙선을 맛보았다.14대 때는 국민당 바람으로 조순환(曺淳煥)후보에게 졌다.15대 때는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후보에게 밀렸다.그러나 이번에는 공동여당 연합공천 후보로 다시 도전장을 내게 됐다. 이번 공천은 두 여(與)간 타협의 산물이다.김전부시장은 처음에 국민회의후보를 원했다.그러나 국민회의는 송파갑을 자민련에 양보했다.여여(與與)공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국민회의 정균환(鄭均桓)사무총장이 나서 자민련행을 적극 권유했다는 후문이다. 김전부시장은 개혁 성향이다.반면 자민련은 보수원조를 자처한다.당선 가능성만을 고려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라는 비판도 나왔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민련은 ‘젊은피 수혈론’으로 맞받아친다.‘신보수주의’라는 논리도 곁들였다. 박대출기자 dcpark@
  • [사설] 행정개혁 서둘러야

    공동여당은 3일 밤 국회 본회의를 열어 야당의 강력저지 속에 정부조직법,공무원법,노사정위설치법,공직자병역공개법,추곡수매가 동의안 등을 강행 처리했다.203회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 10시간에 결친 여야 대치끝에 불과 10분 만에 마무리된 이 강행 처리는 가뜩이나 비틀대던 정국에 또 하나의 악재(惡材)를 보탠 셈이다.한나라당이 여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반발해 국정보고대회를 열기로 하는 등 강경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어차피 여야관계는 한동안 순탄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이던 터이긴 하다.서울 송파갑과 인천 계양·강화갑 재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강행 처리’가 여야간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킨 사실을유감으로 생각하며 여야가 다 함께 대화정국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 줄 것을 다시금 당부한다.또한 재선거와 국정이 뒤엉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해 둔다.국정이 한두 곳의 재선거 열풍에 휘둘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번 임시국회를 지켜본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촉구할 것이 있다.이번에 통과된 법안들을 즉각 실천에 옮기라는 것이다.그동안 정부는 국정이 원활하게 수행되지 못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집권 초기에 정부가 추진했던 정부조직 개편이 ‘기형’(畸形)으로 끝난 탓이라고 주장해 왔다.야당의 반대에 밀려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려던 중앙인사위 구상이 무산됐고 기획예산처의기능도 기획예산위와 예산청으로 갈라지는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국민들이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대 주장에 선뜻공감하지 않았던 것은 정부쪽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부가 당초 의도했던 대로 정부조직을 개편할 수 있게 됐다.그러므로 정부는 새 정부조직법에 따라 신설된 부처의 장(長)을 임명하고 각 부처의 개편도 이른 시일 안에 마무리하는 등 행정개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흔들리고 있는 공직사회를 하루빨리 안정시켜야 한다.뿐만 아니라 집권 2년째에 접어들면서 공직사회의 위기의식과 기강이 해이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공직사회의 기강을 확실히 다잡아기풍을 쇄신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이 또 있다.정부의 개혁의지에 대한 공직사회의 공감대를 넓히고 공직사회를 활성화하는 일이 그것이다.개혁을 향한 정부의 전열을 정비한 다음 국정 최고책임자의 소신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국정을 밀고 나가야 한다.국정수행의 결과물로 나타나는 실적(實績)이야말로 이번 ‘강행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 시비를 판단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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