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갈라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세종대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376
  • 김연아, 안도 미키와 갈라쇼 대결

    김연아(17·군포 수리고)가 오는 9월14∼16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리는 ‘현대카드 슈퍼매치V-슈퍼스타스 온 아이스’에서 세계 은반의 스타들과 또 한 차례 경연을 벌인다.타이틀이 걸린 대회가 아니라 갈라쇼 형식의 ‘은반의 축제’다. 쇼에는 일본의 간판으로 복귀한 안도 미키(20)와 남자 피겨의 ‘쌍두마차’ 예브게니 플루첸코(25·러시아)-브리앙 주베르(21·프랑스) 등은 물론 중국을 피겨 강국으로 발돋움시킨 페어의 자오 홍보-셴 수에 조까지 출전, 국내 피겨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전망.특히 안도는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아사다 마오와 세계기록까지 세운 김연아에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 김연아와의 은반 대결이 주목되는 이유다. 다음 시즌 개막 직전에 열리는 만큼 이번 쇼에서는 김연아의 달라진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다. 우선 지난 시즌 끈질기게 따라붙던 허리 부상에 대한 우려를 깨끗이 털지 여부가 관건. 기술적인 변화도 주목된다. 김연아는 “스파이럴과 스핀 등 지난 시즌 경기를 하면서 발견한 단점을 보완해 나가겠다.”면서 “07∼08시즌에 대비한 새 프로그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다음달 시작되는 캐나다 전지훈련에서 음악 선곡 등을 코치와 상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이맘 때 김연아의 키는 162㎝. 이제 겨우 1㎝가 컸지만 명성 만큼은 그보다 훌쩍 자랐다. 김연아는 오는 29일 재팬피겨선수권에서 시범경기를 치른 뒤 새달 9일 캐나다로 출국, 다음 시즌을 위한 본격 훈련에 들어간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진도 바닷길 멋과 맛

    진도 바닷길 멋과 맛

    17일 오후 5시37분. 섬(모도) 쪽에서 갈라지기 시작한 바닷물이 무지개 모양으로 구부러져 육지 쪽으로 내달린다. 시퍼런 바닷물이 영화 ‘모세’의 한 장면처럼 사라지면서 맨살 바닥을 드러낸다. 미처 도망을 못간 털게와 조개, 낙지가 재빨리 몸을 감춘다. 바닷길이 열리자 꽹과리와 북을 앞세운 농악놀이패가 구성진 남도 들노래 가락과 함께 바다를 뒤흔든다. 관광객 수십만명이 함성을 지르면서 갈라진 바다로 뛰어든다. 이렇게 바닷길은 고군면 회동리 뽕할머니 동상 앞에서 의신면 모도리까지 길이 2400m, 폭 40∼50m로 17∼19일 사이에 세 차례나 열린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알리는 전남 진도군의 신비의 바닷길 축제는 올해 30회째를 맞는다. 바닷길이 열리는 날 회동마을 앞 공연장에서는 민속문화의 보고답게 진도군이 자랑하는 북놀이, 남도민요 부르기, 씻김굿, 강강술래, 농악놀이가 펼쳐져 색다른 볼거리를 선보인다. 물이 갈라지는 것은 세번.17일과 18일 오후 6시29분,19일 오후 7시12분이다. 매번 50분남짓 바다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 이 때 관광객들은 바다에서 호미로 조개를 캐고 미역과 다시마, 전복을 주울 수 있다. 16일에는 전야제 행사가 준비돼 있다. 진도읍 청용마을에서 맨손으로 숭어를 잡는 개매기 체험과 진도읍에서 연예인 노래공연 등 축하의 밤 행사가 이어진다. 한태철 진도군 축제 담당자는 “이번 축제는 30년이라는 역사성을 살려 진도 알리기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따라서 축제를 예년보다 더 화려하게 치른다. 축제 한 마당은 일본 NHK에서 생방송으로 내보낸다. 김오현(53·진도군립예술단장) 신비의 바닷길축제추진위원은 “국내에서 진도지역 민속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번에 민속행사를 보다 다양하고 알차게 준비했다.”며 “진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결코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도에 오면 꼭 챙겨야할 게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군내면 녹진전망대와 용장산성 홍보관에서 충무공이 17일 동안 머문 벽파진과 삼별초 항쟁지 등 호국 유적지를 둘러봐야 한다. 또 의신면 사천리에는 소치 허련 선생의 운림산방, 소치기념관, 진도 역사관이 있다. 금요일 오후 7시에는 임회면 상만리 국립 남도국악원에 국악한마당이 열린다. 시간이 나면 국내에서 일출·일몰이 가장 아름답고, 해가 가장 늦게 떨어진다는 조도 도리산 돈대봉과 지산면 세방리 세방낙조를 봐야 한다. 요즘 진도에는 어느 식당에서나 참전복구이·회와 간재미회, 활어회가 나온다. 여기에 진도의 명주인 홍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진도읍 5일 장터에는 소전 막걸리집이 유명하다. 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이용 광주→목포IC→영산강하구둑→영암방조제→금호방조제→77번 국도→우수영→진도 서해안고속도로 이용 목포IC→영산강하구둑→영암방조제→금호방조제→77번국도→진도 남해고속도로 이용 부산→광양→국도2호선→강진→18번국도→진도 ▶문의 진도군청 (061)544-0151, 숙박 태평모텔 (061)542-7000, 요식업소 (061)544-3586. ■ ‘보배로운 섬’ 진도의 즐길거리 진도(珍島)는 이름 그대로 보배로운 섬이다. 그대로 살아 숨쉬는 민속문화의 보고다. 진도군은 4∼11월 토요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진도읍 향토문화회관에서 전통 공연을 펼친다. 지금까지 338회를 이어오고 있다. 공연때마다 관람객이 600개의 좌석을 꽉 메울 정도로 인기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을 비롯해 지역에 사는 예능 보유자들이 기량을 뽐낸다. 국가와 도 지정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이 출연해 현실감을 더한다. 진도에는 국가지정문화재가 4개, 도지정 무형문화재가 3개나 있다. 강강술래ㆍ남도들노래ㆍ씻김굿ㆍ다시래기는 국가 지정문화재다. 진도북놀이ㆍ진도만가ㆍ남도잡가는 도지정문화재다. 강강술래 박용순, 남도들노래 박동매, 진도씻김굿 박병천, 다시래기 강준섭 등은 창과 무악, 단막극으로 관중을 휘어잡는다. 더욱이 진도가 자랑하는 강준섭 선생의 다시래기는 압권이다. 진도만의 독특한 풍습인 다시래기는 초상집에서 상주를 위로하는 즐겁고 신나는 장례 연극이다. 공전의 대기록을 세운 영화 ‘왕의 남자’ 주인공 감우성이 강 선생의 단막극에 무릎을 쳤다고 한다. 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남북 태권도 통합 ‘아직은… ’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가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자 전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3박4일 일정을 끝내고 9일 남측을 떠났다. 이번 방한은 지난 1월 ITF 태권도협회가 국내에서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기간 태권도의 올림픽 퇴출 위기 등을 타개하기 위한 태권도 통합 문제가 자연스레 관심의 대상이 됐다. 통합 논의는 어디까지 진행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막 한 걸음을 뗐다는 것.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처럼 남북 공동 입장이라는 극적인 이벤트가 이른 시일 내에 마련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북한 태권도는 독립운동가 출신이자 국군 6군단장을 역임했던 고 최홍희씨로부터 유래됐다. 최씨는 1959년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하고 1966년 ITF를 만들었으나 1972년 캐나다로 망명했고, 국내에서는 WTF가 발족해 ITF의 빈 자리를 메우게 됐다.ITF는 이후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했다. 현재 IOC가 인정하는 국제 단체는 WTF다. ●이제 걸음마 시작 WTF와 ITF 통합은 오래전부터 거론됐다. 지지부진하던 논의는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다시 화두가 됐다. 조정원 현 WTF 총재가 2005년 6월 스위스 로잔에서 장 총재와 만나 통합을 위한 단체 실무 회의를 갖기로 합의했다. 두 단체는 4차례 실무 회의를 거쳐 지난달 31일 태권도통합조정위원회 1차 회의를 열었다.1차 회담은 대표단 상견례 수준에 머물렀다. 이 회담에 참여한 WTF 관계자는 “통합은 행정 부문과 기술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당장 행정 통합은 어렵고, 아무래도 기술쪽부터 논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남북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실제 통합 여부는 미지수.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이기는 하나 WTF와 ITF 모두 세계화된 단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ITF는 장 총재 주도 계열이 있고, 최홍희씨의 아들인 중화씨 계열, 베트남 출신 트란 트류 콴 계열 등으로 갈라졌는데 장 총재를 제외하곤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 합의에 도달해도 WTF는 182개 가맹국이 모두 참여하는 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녹록지 않다. ●WTF와 ITF의 차이는 WTF가 스포츠적인 성격이 짙다면,ITF는 무도(武道)적인 성격이 강하다.WTF의 품세는 ITF에서는 ‘틀’이라고 한다. 또 겨루기-맞서기, 호신술-특기, 격파-위력 등 용어에서 차이를 보인다.WTF가 발 기술을 주로 사용한다면 ITF는 주먹을 이용한 안면 타격도 허용된다. 특히 WTF는 경기에서 머리와 몸통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맨발로 승부를 가리지만 ITF는 머리·몸통 보호장비가 없는 대신 장갑과 발 보호대를 차고 경기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솔로몬제도 산호초 죽어간다

    규모 8.0의 강진과 쓰나미로 최소 20명 이상이 숨진 솔로몬제도의 산호초가 죽어가고 있다. 지난 2일 솔로몬제도를 강타한 지진으로 섬 하나가 수m 이상 상승했기 때문이다. 해안선의 위치가 70m나 옮겨갈 정도로 지진은 섬의 모습조차 바꿔 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산초호로 둘러싸인 길이 32㎞, 폭 8㎞의 라농가섬이 지진으로 해안선의 위치가 3m나 수면 위로 상승했다. 이 때문에 섬을 에워싼 아름다운 산호초가 해수면 위로 드러났다. 전 세계 다이빙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지역 산호초는 바닷물이 빠지면서 서서히 말라가고 있으며 곳곳에서 죽은 물고기 등으로 인해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을 주민 해리슨 가고는 “지진은 라농가 섬을 거의 두 개로 갈라놓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현지 다이빙 관광운영자 대니 케네디는 “지진으로 솔로몬제도 서부의 산호초 대부분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잠수장비를 이용해 주변 바닷속을 살펴본 어민 헨드릭 케갈라는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균열이 500m나 이어져 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군함으로 보이는 배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지진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높은 지역으로 대피했던 주민들은 아직도 저지대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기를 꺼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야생생물기금(WWF)의 솔로몬제도 책임자 재키 토머스는 “라농가 섬의 산호초 파괴는 이곳 어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산호초가 복원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한탄했다.AFP 연합뉴스
  • [한·미 FTA 시대] “명태어민 몇명·피해액 얼마냐”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일 열린 ‘한국경제와 한·미 FTA 워크숍’에서 정부부처의 ‘막연한’ 피해와 ‘허술한’ 대책을 보고받고 질책한 것으로 6일 뒤늦게 알려졌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경과보고 이후 7개 부처의 보고 시간은 모두 한 시간. 보고는 산업자원부가 가장 먼저 예상 피해규모와 대책을 설명한 뒤 농림부·해양수산부 순으로 이어졌다. 6일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공개한 당시 행사의 부분 녹취록과 참석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이 “명태 어업이 큰 영향을 받게 돼 엄청난 피해가 우려된다.”고 두루뭉술하게 보고하자, 노 대통령이 “명태 어업에 배 몇 척, 몇 명이 종사하나.” “그중 한국인 선원은 몇 명인가.” “그러면 그중 피해가 얼마나 되나.”라며 구체적으로 따져 물었다.이에 김 장관이 다시 “명태 어민은 모두 700명이고 이중 한국 선원은 절반 정도”라고 답하자 노 대통령이 “명태시장이 얼마고 선원이 얼마인데 15년 동안 이 선원들이 얼마만큼 줄어들도록 할 것이고 보상은 어떻게 하겠다는 식으로 명료하게 얘기해야 한다.”며 보고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 참석자가 “전 부처가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자 대통령은 구체적 자료도 없이 어떻게 FTA 타결로 피해가 엄청나다는 식으로 보고할 수 있느냐.”며 강한 톤으로 지적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워크숍에서 “지원대상을 선정할 때 실제 손해가 있는지,FTA와 인과관계가 있는지 고심하지 않으면 국민의 세금을 대충 갈라 주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해 달라.”고 했다고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같은 노 대통령의 반응으로 일각에서 제기해온 정부의 대책수립에 구멍이 실제로 많음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돈다. 듣기에 따라서는 정부가 타결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는 홍보전에 치중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워크숍 논의내용이 전면 공개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윤 수석은 “노 대통령이 중간에 자리를 떴다거나 책상을 치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전했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이경혜 지음, 알마 펴냄) 16세기 조선 문인 허난설헌의 시 27편을 번안에 가깝게 옮기고 해설을 붙였다. 허난설헌은 선조 때의 명사 허엽의 딸이며 허성과 허봉의 누이동생이며 허균의 누나이다. 자식을 둘씩이나 먼저 하늘로 보낸 불행한 어머니였던 허난설헌은 스스로를 이 세상에 귀양 온 여자 신선으로 여겼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평생 쓴 원고를 불사르게 한 불우한 시인이었다. 허난설헌의 작품은 중국에서 처음 인쇄, 발행됐다. 임진왜란 때 종군한 명의 지식인들은 조선의 시문 수집에도 열심이었다. 허난설헌은 중국과 일본에도 많은 독자를 뒀다.9800원.●세상을 바꾼 위대한 책벌레들2(김문태 지음, 뜨인돌어린이 펴냄) 정조대왕은 1752년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나 8세의 나이로 세손에 책봉됐다. 신임사화를 비판한 아버지 사도세자가 노론 세력의 음모로 뒤주 속에서 죽는 광경을 직접 본 정조는 독서로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했다.‘독서기’라는 책을 만들어 어려서부터 읽은 모든 책을 경·사·자·집 각 분야별로 나눠 소상히 기록했다. 정조는 24년 재위 중 150여종 4000권의 책을 편찬했고,‘홍재전서’ 184권 100책의 개인문집을 남겼다. 책엔 정조를 비롯해 이황, 서경덕 등 책벌레 7인의 독서비법이 실렸다.9000원.●청개구리(이금옥 지음, 보리 펴냄) “청개구리네 마을은 강둑 아래. 바람이 속삭이는 푸른 갈대숲. 청개구리 집은 포근한 갈대 밑. 아침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청개구리 이야기를 재일조선인 작가가 시적인 언어의 그림책으로 펴냈다. 작가는 죽은 엄마를 강가에 묻은 뒤에야 잘못을 뉘우치는 청개구리를 아이다운 모습을 간직한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그린다. 일본의 조선청년사에서 출간한 ‘조선 명작 그림책’ 가운데 하나로 일본의 출간 방식을 그대로 살려 책장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도록 했고 글도 가로쓰기 대신 세로쓰기를 택했다.9800원.●회색곰이 보고 싶을 거예요(알렉산드라 라이트 지음, 김길원 옮김, 킨더랜드 펴냄) 회색곰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넓은 초원을 좋아한다. 미국에서 알래스카 말고는 회색곰을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북아메리카의 산에는 마운틴라이언 또는 쿠거라고 불리는 퓨마가 산다. 지금은 미시시피강 동쪽에 사는 플로리다 퓨마를 빼고는 다른 퓨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몸무게가 270㎏이나 되는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은 나팔 소리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 어찌나 큰지 1.6㎞나 떨어진 곳에서도 잘 들린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흥미로운 생태를 만날 수 있다.8000원.
  • 국립발레단 군부대서 공연

    국립발레단은 다음달 1일 충남 서산의 한 전투비행장에서 군 장병들 대상의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을 무료로 진행한다. 공연은 이 부대 정훈장교 김태봉 소령이 지난 2월말 국립발레단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부대 정훈장교로서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우리 부대 장병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간절하게 요청한 것을 박인자 예술감독이 받아들여 성사됐다.이에 따라 이 전투비행단은 여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치러 발레 해설자 1명을 선발하는 한편 공연에 맞춰 600석 규모의 공연장 무대 폭을 넓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립발레단은 갈라로 진행될 공연에서 조지 발란신 안무의 ‘차이콥스키 파드되’, 바실라 바이노엔 안무의 ‘파리의 불꽃 그랑 파드되’ 등을 보여줄 예정이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25) 인사동 승동교회

    [종교건축 이야기] (25) 인사동 승동교회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인사동 쪽으로 방향을 잡아 길을 들어서면 초입 왼쪽 좁은 골목 끝의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교회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골동품 가게며 크고 작은 현대식 건물들이 어수선하게 엉킨 풍경에선 영 생뚱맞게 보이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뾰족집 승동교회(종로구 인사동 137·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0호)다. 인사동을 찾는 이는 물론 주민들도 대부분 존재 자체를 잘 알지 못하는 이색 공간. 이처럼 생소하지만 1904년 이후 줄곧 지금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해온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교단의 대표적인 모교회다. 특히 일제 치하 3·1운동의 중심지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곳. 통합·합동으로 갈라진 대한예수교장로회 분열의 현장이란 아픔을 함께 담고 있는 개신교계의 또렷한 유산이다. 승동교회의 뿌리는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인 옛 곤당골의 작은 한옥에서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인 새뮤얼 포먼 무어(1860∼1906·한국명 모삼열) 목사가 1893년 시작한 목회. 곤당골이란 청계천 변에 고운 담(곤담)이 둘러쳐져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당시 주변에는 백정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교도소 수감자와 빈·천민 대상 사목으로 널리 알려진 모삼열 목사가 이 곤당골에서 최하층 신분의 백정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시작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초창기 예배에 이 백정들을 중심으로 16명의 교인이 참여했는데 그 때문에 승동교회에는 지금도 ‘백정 교회’라는 이름이 별명처럼 따른다. 곤당골 교회가 인사동에 한옥을 사들여 이사한 것은 2대 당회장인 이눌서(W.D.Reynolds) 목사가 시무하던 1904년 10월. 이듬해부터 새 예배당 건립에 나서 1912년 지금의 본당 골격을 갖췄다. 원래 적벽돌을 쌓아 박공 지붕을 인 정방형의 벽돌조 로마네스크 건물이었는데 1959년 앞 출입문쪽 신자석 공간을 늘린 증축공사로 초기의 모습을 잃었다. 초창기엔 앞쪽에 두 개의 출입문을 따로 내 남녀 신자들의 출입과 예배 공간을 구분했지만, 지금은 증축된 공간 쪽으로 한 개의 통합문을 내어 당시와는 영 딴판이다. 그나마 독경대를 비롯한 중앙의 의식공간은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본당 주변에 흩어져 있던 옛 모습의 한옥들은 전도회 장소로 쓰이고 있다. 지하엔 기도실과 교역자실, 상담실, 유치원, 성가대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인사동에서 ‘승동’이란 옛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승동의 원 명칭은 인근 절골(寺洞)로 이어지는 마을이란 뜻의 승동(承洞).1907년 이 교회에서 장로교 경기도연합부흥회가 열렸는데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 장로였던 길선주 목사가 설교하면서 “이웃 절골과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이길 승(勝)자를 쓰기 시작, 그때부터 승동(勝洞)교회가 됐다고 한다. 교회 이름에 얽힌 사연은 썩 내키지 않지만 승동교회는 이후 여러 이유에서 한국 개신교계의 중요한 신앙 터로 거듭 주목받았다. 일제 강점기 한국 교회들이 자의반 타의반 동참했던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반성에 앞장섰던 것도 그중 하나.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38년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제27회 총회를 열어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승동교회 총회에서 ‘당시의 신사참배는 잘못된 것’이라며 무효선언을 해 세상의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백정교회 이후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신앙철학을 지킨 역대 목회자들도 교회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주 요인이다. 특히 김익두(9대·1935∼1938년 담임) 목사와 뒤를 이은 오건용(10대)·이덕흥(11대) 목사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황해도 안악 태생인 김익두 목사는 원래 불량배 출신이었으나 부흥사가 돼 이 교회를 이끈 인물. 몸이 아픈 신자들을 치료하는 재능이 탁월했는데 그의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회심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구름처럼 몰려든 신자들을 두려워한 일제가 김 목사와 교회를 탄압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결국 신사참배에 강력하게 맞섰던 김 목사는 강제로 물러난 뒤 6·25전쟁때 새벽기도회를 하던 중 퇴각하던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오건용·이덕흥 목사는 맹인들을 위한 신앙공간이 없던 무렵 맹인 선교에 치중해 대부분의 맹인 신자들이 이 교회에 의지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을 놓고 용공성 시비 끝에 의견이 나뉘어 장로교가 갈라진 것은 한국 개신교계의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당시 WCC 가입에 반대하던 측은 승동교회에서, 찬성하던 측은 연동교회에서 각각 총회를 열었는데 이를 계기로 합동(승동교회측)과 통합(연동교회측)으로 교파가 나뉘었다. 갈라진 지 43년 만인 지난 2002년 6월 양측 교회가 극적으로 교환예배를 갖긴 했지만 교회의 통합은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이 교회에 적을 둔 신자는 3000명. 이 가운데 예배 출석 인원은 1500명 정도로 대를 이어 이 교회를 다닌 신자가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신자들이 사는 곳도 분당, 안산, 춘천 등 다양해 그야말로 전국적인 교회인 셈이다. 다른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승동교회만의 특징은 노인 사목. 인근 탑골공원을 찾아 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세례를 주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승동교회를 찾아와 신도가 됐다고 한다. 10년 전부터는 탑골공원을 자주 찾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노인 위주의 장년 2부를 운영해 지금은 매주 300여명의 노인이 예배에 참석한다. 세례 받은 노인들은 사후 경기도 백석의 승동동산 묘역에 안치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찾아와 신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상훈(54) 담임목사는 “승동교회는 드물게 도심 복판에 남아 있는 전통적인 교회”라면서 “초기의 ‘백정교회’ 이후 사회 기여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목회와 신앙을 이어온 흔치 않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3·1운동 유적지’ 지정된 항일역사의 산실 승동교회는 비록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교회’가 됐지만 일제 강점기 항일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자 3·1운동의 본산으로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1900년대 초 우국지사들이 모여들어 예배를 보면서 민족주의의 색채를 띠어간 승동교회는 청년운동의 주축인 YWCA(대한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를 태동시켰고 한신대 전신인 조선신학교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919년 3·1운동에 앞서 학생 대표들이 모여 만세운동을 모의한 학생지도자회의가 열렸던 현장임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승동교회 청년모임인 청년면려회장이었던 김원벽은 연희전문대생으로 학생들의 큰 신망을 얻었던 인물. 김원벽을 주축으로 한 전국 학생대표들은 승동교회 지하실(지금의 기도실)에 모여 태극기와 기미독립선언문을 나눠 갖고 3월1일 거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조계사 뒤쪽 보성사에서 인쇄된 독립선언문은 거사 전날인 2월28일 새벽부터 전국에 전달됐다. 이 가운데 1500여장이 승동교회에 모였던 학생대표와 신자들을 통해 서울 시내 각처로 배포됐다. 학생 대표들은 3·1운동 나흘 뒤인 5일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다시 일으켰는데, 현장에서 일경이 휘두른 칼에 찔려 체포된 김원벽은 3년여의 옥고를 치른 뒤 결국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3·1운동 직후 당시 승동교회 담임이었던 차상진 목사가 주도한 이른바 ‘십이인등의 장서(十二人等의 長書)’ 사건도 유명한 일화다. 차 목사를 비롯한 목회자 12명이 연서해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장서를 종로 보신각 앞에서 발표한 뒤 총독부에 제출한 사건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모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같은 사연으로 인해 승동교회는 지난 1993년 ‘3·1운동 유적지’로 지정됐으며 매년 3·1절 주일마다 3·1정신을 기리는 예배가 올려지고 있다.
  • ‘문화꽃’ 활짝

    ‘문화꽃’ 활짝

    서울의 4월은 풍성하다.3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립미술관, 세종문화회관, 남산골한옥마을, 열린극장-창동 등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9일까지 남서울분관에서 소장작품을 선별해 전시하는 ‘소장작품기획전-호흡’을, 마포구 상암동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는 6일부터 ‘난지환경조각전’을 연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5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흥선대원군 및 운현궁 유물 30여점을 전시하는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특별전’을 마련한다. 세종문화회관은 12∼15일 서울시오페라단이 기획작품으로 준비한 ‘오페라 리골레토’를 선보인다.23일에는 입장료 1000원으로 수준 높은 문화행사를 체험할 수 있는 ‘천원의 행복’을 즐길 수 있다. 주제를 ‘무용갈라’로 정한 이달 공연 신청은 5∼7일에 받는다.27일부터는 서울시내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 2007 미라클 서울’ 개막제가 열리면서 축제의 분위기를 5월까지 이어간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민주당 중심 중도개혁세력 통합” 민주당 새 대표 박상천씨

    “민주당 중심 중도개혁세력 통합” 민주당 새 대표 박상천씨

    민주당 새 대표에 박상천 전 의원이 선출됐다. 범여권 통합 논의와 관련해 ‘강력한 민주당 중심론’을 강조해온 박 대표 체제의 출범으로 정계개편의 흐름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민주당은 3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박 전 의원을 신임 대표로 선출했다. 박 대표는 재적 대의원 8420명 중 5118명이 투표한 표결에서 전체의 42%인 2164표를 얻어 1925표(38%)에 그친 장상 전 대표를 누르고 당선됐다. 김영환·김경재·심재권 전 의원은 각각 3·4·5위를 기록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박 신임 대표는 민주당 원내총무와 대표 최고위원을 지냈다.2003년 민주당 분당 당시 신당파와 사수파간 대결국면에서 사수파 좌장 역할을 맡았고,17대 총선에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고배를 마셨다. 박 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당 체제를 정상화하고 민주화한 뒤 통합 논의에 나서겠다.”며 외부세력과의 통합 논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당 대 당 통합은 ‘도로 열린우리당’이 될 수밖에 없고, 그걸 가지고는 한나라당과 겨룰 수 없다.”면서 “민주당을 해체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중도개혁세력을 통합해 중도정당으로 변모 시킨 뒤 열린우리당 등과는 12월 대선후보 단일화를 모색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김홍업씨 전략공천 문제와 관련해선 “전략공천은 문제가 있지만 공식기구에서 공천한 이상 취소하라는 것도 문제가 있다.”며 피해갔다. 박 대표는 취임 이후 선결과제로 ‘원외위원장 대 현역의원’ 양태로 갈라진 당심(黨心) 추스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선거유세 등을 통해 “내년 4월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양대 정당으로 올라설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해 원외위원장들의 지원을 받았다. 당이 해체될 경우 기득권을 잃을 것을 우려한 원외위원장들의 표심을 겨냥한 전략이었다. 반면 장 전 대표는 ‘범여권 통합’을 강조, 많은 현역 의원들의 후원을 받았다. 현역 의원들은 범여권의 통합이 안될 경우 대선에서 패배하고 이어 4개월 뒤 총선에서도 승산이 없다는 계산하에 장 전 대표를 밀었다. 박 대표의 당선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탈당그룹 등 범여권에선 관측이 엇갈렸다. 일부 의원들은 “통합에 부정적인 박 대표 체제가 들어선 것이 오히려 현역 의원들이 제3지대 구축을 위해 민주당을 뛰쳐 나올 가능성을 높여준 측면이 있다.”고 기대했다. 반면 다른 의원들은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총선을 불과 1년 앞두고 당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의원80명 “반대”… 비준 진통 불가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2일 타결됨에 따라 비준권이 있는 국회로 공이 넘어왔다. 정부가 국회에 비준동의를 요청하는 시점은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오는 9월 이후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비준안이 9월에 제출되더라도 실제 처리는 내년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우선 12월 대선을 눈앞에 둔 9월 국회에서 정치권이 농민 유권자 등을 의식해 적극적으로 비준동의안 처리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선 이후 내년 2월 임시국회 역시 시기상 ‘4월 총선’ 직전이어서 국회에서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하반기 비준안이 통과돼도 실제 발효는 일러야 2009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한덕수 신임 국무총리가 ‘FTA 전도사’로 불릴 만큼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현재 정치권의 각 정당·정파가 이번 협상 결과를 두고 찬반으로 심각하게 갈라져 있다는 점도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의 진통을 예상하게 한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한·미 FTA에 대해 긍정 평가해 왔다는 점에서 비준동의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방향을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각 당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리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경우 지도부 입장과 당내 의원들 간 견해 차가 커 향후 당론 결정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경우에도 농어촌이 지역구인 의원들이 총선을 의식해 당론과 별도의 의견을 개진할 가능성이 있다. 정당 구분 없이 최대 80여명에 이르는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 대거 반대표를 행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은 김근태·천정배 의원 등 대권예비주자들이 거세게 반대하는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열린우리당 서혜석 대변인은 “당내 분위기로 볼 때 찬반이 반반 정도로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지금 분위기라면 비준안이 어떻게 처리될지 감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냉이 추천요리 2가지

    냉이 추천요리 2가지

    산에 들에 봄의 생기가 마구마구 피어납니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끼리 냉이캐러 가보면 어떨까요. 그런 다음 집에서 요리를 함께 만들면 기쁨과 행복이 10배가 아닐까요. 봄철을 맞아 냉이 요리를 두가지를 추천해 봅니다. 도움말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냉이는 나생이·나숭게라고도 한다. 들이나 밭에서 자란다. 전체에 털이 있고 줄기는 곧게 서며 가지를 친다. 높이는 10∼50㎝이다. 뿌리잎은 뭉쳐나고 긴 잎자루가 있으며, 깃꼴로 갈라지지만 끝부분이 넓다. 어린 순·잎은 뿌리와 더불어 이른 봄을 장식하는 나물이다. 냉이국은 뿌리도 함께 넣어야 참다운 맛이 난다. 또한 데워서 우려낸 것을 잘게 썰어 나물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냉이의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제채(齊寀)라 하여 약재로 쓰는데, 꽃이 필 때 채취하여 햇볕에 말리거나 생풀로 쓴다. 말린 것은 쓰기에 앞서서 잘게 썬다. 약효는 지라(비장)를 실하게 하며, 이뇨, 지혈, 해독 등의 효능이 있어 비위허약·당뇨병·소변불리·토혈·코피·월경과다·산후출혈·안질 등에 처방한다. ●냉이국밥 재료 밥 4공기, 냉이 300g, 얼갈이배추 250g, 콩나물 150g, 소금 약간, 후춧가루 약간. 육수:양지머리 200g, 물 8컵, 대파 1대(100g) 양념:된장 11/2큰술, 고춧가루 1큰술, 국간장 1작은술,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파 2큰술. 만드는 방법 1. 냄비에 물을 붓고 양지머리와 대파를 넣어 1시간 정도 끓여 면보에 걸러 육수를 만든다. 2. 삶아진 양지머리는 한 입 크기로 썬다. 3. 냉이와 얼갈이배추는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 후 물기를 꼭 짠다. 4. 데친 냉이와 얼갈이배추는 양념 재료를 넣고 버무린다. 5. 냄비에 육수를 붓고 끓으면 양념에 버무린 냉이와 얼갈이배추를 넣고 좀 더 끓인다. 6. 콩나물과 양지머리를 넣고 콩나물이 익으면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간한다. 7. 밥과 함께 그릇에 담아낸다. ●냉이콩가루샐러드 재료 냉이 300g, 달래 50g, 오이 1/2개(75g), 파랑 피망 1/4개(25g), 붉은 피망 1/4개(25g), 날치알 1큰술, 소금 약간, 식용유 약간 양념장: 된장 2작은술, 콩가루 1/4컵, 다진 마늘 1작은술, 다진 양파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만드는 방법 1. 냉이는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친 후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짠다. 2. 달래는 5cm 길이로 자르고 오이는 반 갈라 어슷 썬다. 3. 파랑 피망, 붉은 피망은 다진다. 4. 팬에 식용유를 약간 두르고 날치알과 다진 피망을 살짝 볶는다. 5. 재료를 모두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6. 볼에 준비한 냉이와 달래, 오이를 담고 양념장을 넣어 버무린다. 7. 그릇에 버무린 채소를 담고 볶은 날치알과 피망을 올린다.
  • [사설] 대선주자 주요 정책 책임있게 말하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과 3불 정책 등 국가적 현안이 쟁점화되면서 대선주자들도 속속 논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고 있다. 진부한 이념논쟁이나 거대담론을 벗어나 이처럼 구체적 현안을 놓고 대선주자들이 논쟁하는 것은 정책선거 정착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장밋빛 공약을 앞세운 선동정치, 이미지정치 대신 정책이슈를 붙들고 논쟁하는 선진국형 ‘소매정치’(retail politics)로 다가서는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의 찬·반 의견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과연 이들이 깊이 있는 정책적 연구와 구체적 정책비전을 갖추고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3불 정책만 해도 각 대선주자들의 주장이 모호하기 짝이 없다. 대입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등을 놓고 마치 좌판의 물건을 고르듯 이건 찬성, 저건 반대 식으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옳든 그르든 3불 정책은 지금 이 나라 교육제도의 근간이다. 책임 있는 대선주자라면 3불 정책을 유지하든, 수정하든 이 나라 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그 비전부터 내놓고 찬·반을 주장해야 마땅할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접근 태도는 더욱 한심하고, 심각하다. 협상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무조건 된다 안 된다로 패를 갈라 싸우고 있다. 협상에 대한 찬·반 논란이 아니라 고작 시장개방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FTA 찬·반 논쟁을 통해 대선정국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려는 정략적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는 협상이 어떤 식으로 타결되든 국회 비준을 위한 합리적 검증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올해 대선은 대북정책과 부동산 세제 등 그 어느 때보다 정책현안이 많이 걸려 있다. 그만큼 대선주자들의 책임있는 정책 행보가 중요하다. 현안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말하되 구체적 정책비전을 내놓고 국민의 지지를 구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 피겨맘의 남모를 눈물

    |도쿄 최병규특파원| ‘은반을 녹인 피겨맘의 눈물’ 국제빙상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 여자 싱글 챔피언을 가린 지난 24일 도쿄체육관. 김연아(17·군포 수리고)의 어머니 박미희(48)씨는 차마 딸의 경기를 볼 수 없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세계 기록을 낸 전날도 그랬지만 이날은 더더욱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박씨는 체육관 밖 벤치에 앉아 잔뜩 찌푸린 도쿄의 밤하늘을 쳐다봤다.6일간의 숨막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실 도쿄에 발을 디딘 그날부터 박씨를 포함한 ‘김연아팀’의 악전고투는 시작됐다. 주치의 신준식 박사, 매니지먼트사 IMG코리아의 이정환 대표와 함께 박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진 가슴을 쓸어올렸다. 첫 경기 전날까지 허리와 꼬리뼈의 통증이 반복되자 박씨는 “6위 안에만 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아예 체념해 버렸다. 첫날 체육관 밖에서 딸의 쇼트프로그램 성적을 휴대전화로 전해들은 박씨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하도 흘려 이젠 눈물샘이 말라버렸다고 착각했었다. 1997년 박씨가 당시 7살이던 딸의 손을 잡고 동네 스케이트장을 찾은 건 처녀 시절 잠시 타본 피겨의 향수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모녀에겐 가시밭길이 시작됐다. 자신에겐 ‘피겨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위기도 있었다. 초등학교 6년 때 “너무 힘들어 못하겠다.”고 버틴 딸과 냉전을 펼친 끝에 백기를 받아내기도 했던 박씨는 지난해 그랑프리파이널 직전 “연아의 허리 통증이 심해 이번엔 내가 은퇴를 시켜야겠다고 결심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젠 굴레를 벗기고 평범한 딸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극성 엄마’라는 꼬리표도 따라다녔지만 박씨는 딸의 ‘리얼코치’임을 마다하지 않는다. 딸과 호흡을 맞춘 지가 벌써 10년째.‘피겨 도사’가 다 됐다. 다른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비디오로 분석할 수준이다. 24일 김연아가 라이벌 안도 미키와 아사다 마오(이상 일본)에 밀려 3위에 그쳤을 때 그는 또 링크를 등지고 눈물을 흘렸다. 이번엔 아쉬움과 대견함이 범벅이 된 눈물. 밤 11시가 넘어서야 도핑을 마친 딸의 손을 꼭 붙잡고 체육관을 빠져나오는 박씨의 표정은 밝았다.“한국 피겨 100년 만에 따낸 첫 메달이라면서요. 근데 그것보단 연아가 어제 오늘 안 아팠다니까 그게 더 기뻐요.” 박씨는 25일 ISU가 발표한 세계랭킹에서 역대 최고인 2위에 오른 김연아와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됐다.25일 ‘갈라쇼’를 끝으로 대회를 모두 마친 뒤 27일부터 일주일 동안 일본 순회 공연에 나서는 것. 박씨는 “이제 누구와 경쟁해야 할 게 아니니까 마음이 편하네요. 연아한테 구경도 실컷 시키고 맛난 음식도 많이 사줘야죠.”라며 활짝 웃었다. 김연아는 새달 1일 입국, 치료에 집중한 뒤 29일 재팬오픈에 초청선수로 참가해 아사다와 또 한 차례의 대결을 펼친다. 직후 김연아는 캐나다 장기 훈련을 통해 세계 1위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cbk91065@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7000만원이 250억 이길 수 있나?

    |도쿄 최병규특파원| 우리나라에 피겨스케이팅이 첫선을 보인 건 1894년 겨울로 전해진다. 당시 조선 주재 외국인들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지켜보는 가운데 얼어붙은 경복궁 향원정에서 ‘얼음 위를 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후 ‘빙족회(氷足會)’라는 이름의 피겨팀이 등장했다. 한국피겨는 100년을 웃도는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김연아가 지난 24일 일본 도쿄에서 처음 참가한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피겨 사상 첫 메달을 따냈다. 그동안 한국의 성적은 2001년 박빛나가 세운 23위가 최고였다. 김연아는 분명 한국피겨의 역사를 또 새로 썼다. 그러나 씁쓸하다. 메달 뒤에 숨겨진 우리 피겨의 현실 때문이다. 이 대회 ‘톱5’ 가운데 3명이 순위를 쓸어담은 일본과 한국의 토양은 분명 다르다. 도쿄체육관 밖에서 표를 구하려는 피켓을 든 수십명의 일본팬 모습은 분명 충격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속이 쓰렸던 건 ‘김연아팀’의 ‘악전고투’였다. 혹자는 이번의 쾌거를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린 것”이라고도 말한다. 김연아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게 쏟아붓는 돈은 스폰서 및 공식·비공식을 합쳐 연간 25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김연아가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공식적으로 받는 지원금은 연간 7000만원이 전부다. 한 차례의 광고 출연으로 번 돈은 거의 바닥이 났다. 아사다가 대형버스를 대절해 혼자 타고 다닌 반면 김연아는 어렵게 마련한 6인승 승합차에 단출한 팀원들과 구겨지듯 끼어서 다녔다. 지난해 우리 체육계는 김연아를 위한 ‘2010밴쿠버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아직 느낄 수 없다. 단 1명뿐인 연맹의 피겨 실무자가 이번 대회는 물론 그동안 단 한 차례도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5일 이시카와현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가 고층건물에서도 현기증을 느낄 만큼 도쿄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입상자들의 ‘갈라쇼’가 펼쳐진 도쿄체육관은 되레 인파로 넘쳐났다. cbk91065@seoul.co.kr
  • ‘갑작스런 햇볕’에 갈라진 한나라

    대북정책 기조를 전면 수정키로 한 한나라당이 세부적인 수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당 지도부와 실무기구 사이에 마찰음이 새어나오는 등 혼란상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대북정책 패러다임 재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주간 비공개 논의를 통해 한·미간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합의를 수용해 전작권 전환을 반대하지 않기로 하고,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해 준외교급 기관인 남북 상호 대표부를 설치키로 하는 등의 세부내용을 담은 수정안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이같은 내용은 북핵 불능화 조치가 선행되지 않은 전작권 조기 환수에는 강력 반대하며, 북핵 불능화 조치가 선행되더라도 전작권 이양 문제는 차기 정부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당론과 대선주자들의 주장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대북정책 TF’는 이밖에도 ▲6자회담 틀 속 북한 인권문제 논의와 확장된 인권 개념적용 ▲검증을 전제로 한 대북 인도적 지원과 개성공단 적극 지원 등 경제협력 대폭 확대 ▲핵불능화 조치를 전제로 한 평화체제 구축 논의와 남북정상회담 찬성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공동 방위체제 전환 인정과 한·미동맹 공고화 등의 세부내용을 수정안에 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내용이 유출되면서 당원들 사이에 찬반 논란이 거세지자 ‘대북정책 TF’는 물론 당 지도부도 적잖이 당혹스런 모습이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와 만나 “설령 대북정책 TF에서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당론으로 확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축제가 온다 서울이 설렌다

    축제가 온다 서울이 설렌다

    서울의 대표 축제 ‘하이 서울(Hi Seoul) 페스티벌 2007’이 4월2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4월28일부터 5월6일까지 도심과 한강변에서 펼쳐진다. 예년보다 축제 기간도, 행사도 다채로워졌다. 가상인물 오서울(47)씨 가족과 함께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한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미리 다녀왔다.<서울신문 3월20일자 15면 보도> ●조선 군인의 무예시범 축제 첫날인 4월28일, 오씨 가족은 서울 역사 축제가 한창인 광화문으로 나섰다. 경복궁 근정전에서는 세종대왕 즉위식(오후 2시)이, 서울광장에서는 조선시대 중앙군의 군례의식(오후 3시)이 각각 열렸다. 군사들이 전통무예와 진검베기 시범을 보이자 아이들이 껑충껑충 뛰며 좋아한다. 경희궁에서 역사 드라마에서나 접하던 왕실 문안인사, 다례의식, 어의진맥 등을 선보이자 드라마 마니아인 아내가 넋을 잃고 지켜봤다. 어두워지자 오씨 가족은 여의도 특설무대로 발길을 옮겼다. 한국대표 비보이(B-boy)팀이 가야금연주단, 시립국악관현악단 등과 협연하기 때문이다. 빛과 소리, 영상이 어우러지는 공연(29일)과 뮤지컬 갈라쇼(30일), 대종상 영화상영(5월1∼6일)도 이어졌다. ●서울 성곽을 밟아보자 29일 오전 7시, 아이들의 야단법석에 오씨가 눈을 떴다. 축제에서 할 것, 볼 것이 많다며 어서 나가자고 졸라댄다. 오씨 가족은 오전 9시 ‘서울 성곽 밟기’에 참여했다.5000명이 사직공원에서 출발, 인왕산 정상에 올랐다가 창의문, 사직공원으로 돌아오는 3.2㎞ 코스. 일찌감치 인터넷으로 행사 참여를 신청한 덕에 오씨 가족은 조선 600년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정조반차도’를 구경하러 창덕궁으로 향했다.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경기 화성으로 행차했던 8일간의 행렬이 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시민 930명과 말 120필이 창덕궁을 출발해 보신각∼명동 입구∼남대문∼서울역∼용산역∼한강대교 북단∼노들섬까지 행렬하며 장관을 연출했다. 특히 이촌지구 한강둔치와 노들섬 사이를 배로 이은 ‘배다리(300m)’를 건너는 장면이 연출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쏟아졌다. 오씨는 청계천에 걸려 있는 도자(陶瓷)벽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를 떠올렸다. 한강대교 건너편에는 30㎝ 깊이의 수중다리가 놓였다. 오씨 가족은 신발, 양말을 벗고 다리로 뛰어들었다. 한강물의 촉감이 차가웠다.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뛰어다녔다. 축제의 밤은 선박 퍼레이드가 화려하게 수놓았다. 중국 돛단배, 타이타닉, 고대 유럽선, 스위스 범선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배가 밤마다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선유도∼여의지구∼이촌지구를 행진했다. 오씨는 아내와 강둑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퍼레이드를 감상했다. ●세계적인 명인 서울에 모이다 5월2∼5일 ‘제1회 세계줄타기대회’가 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에서 열렸다. 세계 외줄 명인의 시범 공연에 이어 외줄 횡단 기네스 기록 도전이 펼쳐졌다. 이 장면은 스포츠 채널 ESPN을 통해 120개국으로 중계됐다. 외줄은 길이 1㎞, 높이 3(중심)∼22(양안)m. 오씨도 메인줄 1개와 보조줄 2개를 달고 아찔한 외줄 횡단을 체험했다. 한국판 ‘우드스탁 축제인’서울 월드 DJ페스티벌이 5월4∼6일 난지지구 캠프장, 축구장, 잔디광장에서 진행된다.24시간 테크노음악·힙합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것이다. 오씨 가족은 ‘음악예술마을’로 변신한 난지도 캠핑장에 터를 잡고,2박3일간 DJ 댄스 페스티벌, 인디밴드의 라이브 공연, 비보이 파크(B-boy Park) 등을 즐겼다. 오씨는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을 다시 경험해 행복했다.”면서 “해외 방문객과 서울시민이 어우러지는 진정한 축제였다.”고 평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모든 평범한 삶은 특별하다

    모든 평범한 삶은 특별하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려 애를 쓸수록 문은 굳게 닫힙니다. 돌아서서 일에 파묻혔더니 문득 세상 밖에 나와 있습니다.” 심재명 엠케이픽처스 영화제작부문 총괄 사장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 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 영화 일을 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심재명: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꿈꿨어요. 당시만 해도 청소년들에게 롤 모델이 될 만한 영화제작자가 드물었고, 또 한국영화라면 왠지 극장에 가서 보기 부끄러웠던 때였지만, 그래도 막연히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선망이 있었어요. 아무 이유 없이 영화 보는 게 좋았던 거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감상을 끼적이거나 감독의 이름을 외운다거나 하는, 요즘 말로 하면 마니아 단계에까지 이르렀어요. 그렇게 그냥 좋아하다 보니까 꿈이 이뤄지더라고요. 혼자 있기 좋아하는 말수 적은 소녀, 영화사 사장 되다 공병호: 말씀은 쉽게 하셔도 그렇게 간단치는 않았을 테고, 과정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죠. 심재명: 대학을 졸업하고 두 군데 영화사에서 4년 반 정도 기획과 홍보 일을 했습니다. 이후 잠시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가 나이 서른하나에 창업을 했죠. 공병호: 요즘 표현으로는 ‘벤처’네요. 창업 이후에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재능을 발견하셨나요. 심재명: 아니, 그런 거창한 표현보다는…. 저는 직장생활이 참 힘들었어요. 회사에 동년배는 드물고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했죠. 하도 신경을 써서 나중에는 위궤양에 시달리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독립을 하니까 싹 낫더라고요. 그때 아, 나는 생리적으로 조직에 맞지 않구나, 느꼈죠. 공병호: 자신의 길을 때맞춰 잘 수정해 오셨네요. 그나저나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 일을 하신 지 근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간의 시간들을 돌아보신다면…. 심재명: 모험정신이 넘치는 도전적 삶을 살았다, 뭐 이런 모범답안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으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수세적守勢的으로 살아요. 만약 이십대에 몸을 담았던 회사가 제게 더 많은 동기 부여를 했더라면 계속 그곳을 다녔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다행히 제 곁에 결단력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저는 영화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구체화시키지 못했는데, 이른바 운동권 영화를 만드는 운동권 출신의 독립영화 감독이었던 제 남편(이은, 현 ‘엠케이픽처스’ 대표)이 저를 이끌었어요. 그렇게 1995년에 만든 ‘명필름’을 10년가량 운영하다가 주식회사 상장을 계획하게 되었고, 제작만으로는 너무 리스크가 크다,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배급과 투자를 겸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4년 <강제규필름>과 합쳐 <엠케이픽처스>라는 상장사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10년도 안 돼 사라진 ‘21세기를 책임질 영화인’ 공병호: 일반인들은 영화 한 편의 제작 규모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 합니다. 심재명: 편당 평균 제작 비용 30억, 마케팅 비용 20억 등 도합 50억 원 정도의 자금이 투입됩니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그만큼 결실도 클 수 있으니 말 그대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 risk, high return’이죠. 공병호: 50억 프로젝트라, 중소기업 규모의 영화사로서는 말 그대로 엄청난 리스크네요. 심재명: 작년에 제작된 한국 영화가 총 108편인데, 그중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영화는 20편에 불과합니다. 이런 수치는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라고 해요. 공병호: 올해는 몇 편 정도 제작을 하실 계획인가요. 심재명: 저희 회사 브랜드로 여섯 편쯤. 공병호: 작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통상 제작기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심재명: 의외로 길어요. 아이템 발굴에서 극장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시점까지의 기간이 평균 2년쯤 되죠. 예를 들면 강제규 감독이 만든 <쉬리> 같은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까지 포함해서 4년 이상이 걸린 거예요. 공병호: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그 사이 소비자의 취향이 달라지지 않나요? 심재명: 영화는 정서적인 장르인 데다 더욱이 작품 수가 한정되어서 어느 정도의 여유는 있어요.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108편인데, 그게 너무 많다는 거예요. 전문가들은 한국의 영화산업 규모에서 인구 대비 적정 편수를 7, 80편 정도로 보고 있어요. 한 편 만들면 주목받기 쉬운 거죠. 최근의 통계를 참조하면 한국 영화 1년 관객이 1억 7천만 명 정도 된답니다.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 앞으로 2억 명까지는 갈 것 같고, 치솟는 제작, 마케팅 비용만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우리 영화산업은 낙관적이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해외 시장에서 더 많은 성과를 올려야겠지만…. 공병호: 집에서 비디오, DVD 등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심재명: 그것을 이른바 ‘2차 윈도우’라고 부르는데요. 이웃 일본은 그 시장이 굉장히 커요. 그러나 우리는 요즘 와이드 배급이라고 해서 영화 한 편이 개봉 첫날 수백 개의 스크린에 동시에 걸리는 까닭에 상영 기간의 호흡이 굉장히 짧아졌어요. 예전에 <공동경비구역 JSA>가 6개월 만에 6백만 명이 들었는데 지금은 3, 4개월 만에 천만 명이 들거든요. <괴물> 같은 영화를 전 국민이 알고, 보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거지요. 공병호: 우리는 뭐든 참 급하군요. 심재명: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2차, 3차적 방법으로 보지를 않아요. 그렇게 비디오나 DVD 시장이 완전히 죽었고, 방송이나 케이블 판권도 기대만큼 금액이 상승하지 않으니까 개봉 첫 주에 승부하지 못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한국영화산업의 현안懸案이고요, 한류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해외 시장에서 생각했던 것만큼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도 심각한 타격이지요…. 인간이 되기 전에 성공을 논하지 마라 공병호: 그간 영화계에서 많은 사람들의 부침을 지켜보셨을 겁니다. 저도 되돌아보면 재기발랄한 사람들이 의외로 중도에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이는 왜 쓰러지는 걸까,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지요. 심 대표께서 목격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어떤 것입니까? 심재명: 성공하는 분들은 무엇보다도 ‘인간’ 자체가 좋아요. 반대로,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눈앞의 이익을 쫓아 판단이 흐려지는 분들은 길게 가지 못하죠. 며칠 전 방을 정리하다가 1999년에 나온 한 영화 잡지를 다시 읽게 된 일이 있습니다. 그 안에 ‘21세기를 책임질 영화인 50인’이라는 설문조사가 실렸는데, 오늘 시점에서 그 면면을 살펴보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분들이 많더라고요. 채 10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공병호: 퇴보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일이 그렇게 힘이 듭니다. 자, 그렇다면 좀 더 실질적으로, 과연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영화의 ‘키 석세스 팩트 Key Success Fact (성공요인)’는 무엇일까요. 심재명: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 그중 첫 번째는 시나리오 즉, ‘이야기’입니다. 공병호: 결국은 컨텐츠라는 말씀이시군요. ‘이야기’를 판단하는 기준은. 심재명: 가장 먼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인가’를 스스로 묻습니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할 것인가’를, 마지막으로는 ‘돈이 될 수 있는가’를 따져보죠. 공병호: 와, 제가 책을 쓰기 전에 고려하는 관점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건 독자 여러분께 밑줄을 쳐서 보여줘야 합니다! 심재명: 두 번째 요인은 ‘탤런트talent’예요. 팀워크가 중요하지만, 그래도 우선 되는 것은 재능입니다. 공병호: 탤런트를 우리는 재능이라고 하지만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인재라는 뜻도 있어요. 그래서 인재 전쟁을 ‘워 포 탤런트War for Talent’라고 하죠.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갈수록 흥미진진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심재명: 영화는 굉장히 과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터무니없이 비과학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해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제때를 찾아야 하지요. 공병호: 아주 좋습니다. 제대로 된 인터뷰라면, 뭔가 ‘프로페셔널’한 것을 끄집어내서 소개해줘야 해요. 심재명이라는 사람이 영화라는 업業을 저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테마가 있어야 해요. 오늘은 이 세 가지만 전해드려도 되는 거예요! ’해피엔딩’이 행복할 수 없는 까닭 공병호: 영화제작자에게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영화, 많이 보시지요? 심재명: 사나흘에 한 편, 1년에 100편 정도 될까요. 공병호: 좋아하는 장르는? 심재명: 결혼하기 전에는 굉장히 잔혹한 영화, 개성 강한 영화를 좋아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따뜻한 영화가 좋아지더라고요. 요즘 들어서는 구분 않고 다양한 영화를 봅니다. 이 분야의 종사자로서 잘 만든 영화는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영화는 한 쪽으로 골라내고…. 공병호: 조폭 스타일의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용감하지만 그건 또 질색이라서 항상 불만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크게 비난하지 못하는 것이 고객의 니즈needs 가 있으니까 그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심재명: 저 역시 그런 영화를 싫어해요. 하지만 영화라는 것이 어둠 속에서 자기 혼자 스크린을 보는 거고, 그 안에는 보통 사람들의 일탈과 욕망을 담아야 하니까 불량식품 같은 요소도 들어 있어야죠. 폭력, 섹스 이런 것들은 동전의 양면같이 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이에요. 공병호: 듣고 보니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드문 것 같습니다. 그것도 결국은 제작자의 취향을 따라가는 것이겠지요. 심재명: 사실이에요. 감독도 그렇지만 제작자들도 나름의 성향이 있지요. 저희는 남성 취향의 컨텐츠는 거의 없고요. 그보다는 발을 땅에 디딘 현실적 내용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어요. 공병호: 말초적인 자극에 지친 관객들을 위해 좋은 영화 한 편 추천해주세요. 심재명: 최근에 본 〈리틀 미스 썬샤인Little Miss Sunshine〉(2006)이 괜찮을 듯하네요. 미국에서 만든 아담한 가족영화인데 소외되고 뒤처진 인생을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 안는 작품이에요. 공병호: ‘가족’이라, 그러고 보니 심 대표께서 요즘 가족영화에 대한 사업적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심재명: 극장들이 이제는 주거지역까지 파고들 만큼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잖아요. 영화관에 들르기가 그만큼 쉬워진 거죠. 가족 단위 관객들은, 저도 딸을 키우고 있지만, 주로 방학 때 할리우드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나 교양물을 즐겨 봅니다. 이 점에 착안해서 이제쯤이면 우리 관객들도 우리가 만든 가족영화를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예요. <안녕 형아>(2005), <아이스케키>(2006) 등이 그런 취지의 작품들인데, 앞의 것은 조금 성공했고 뒤의 것은 조금 실패했죠. 어쨌든 이런 과정에서 한국영화 컨텐츠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공병호: <조용한 가족> <바람난 가족> <구미호 가족> 같은 연작물도 제작하셨지요. 가족에 대해서 할 말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심재명: 제가 가족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가족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내포하고 있는 특별한 의미를 주목注目하고 있을 뿐이에요. ‘우리’라는 말처럼 ‘가족’도 가끔은 강박으로 작용해서, 누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가족’에서 찾으려 하잖아요. 그리고 이들 영화는 앞서 말한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가족영화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아요. 저는, 예를 들어 가족을 다뤄도 어설픈 가족주의로 문제를 봉합하려는 태도를 혐오해요. 제가 얌전하게 보이고 또 실제로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기존의 체제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발심이 커요. 그런 의미에서 이들 작품들은 오히려 가족의 해체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 기존의 관념을 깨는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거죠. 영화 같은 삶보다 삶을 꿈꾸는 영화가 좋다 공병호: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심재명: 10년 넘게 알고 지내는 분들이 저더러 너무 안 변한다고들 하더군요. 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칭찬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도 시대 흐름에 민감해야 하고 좀 더 적극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할 텐데, 좀 아쉽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비관적이고…. 이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되었지만, 그러나 저는 겉으로 드러난 사회적 이미지에 대한 환상이 없어요.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많은 여성 중에는 야심적인 전략가들도 계시죠. 물론 저는 ‘워커홀릭workaholic(일 중독자)이에요. 하지만 그런 분들하고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어요. 공병호: 일에 파묻히겠다, 세평世評에 관심 두지 않겠다…. 심재명: 저를 힘센 페미니스트로 보는 분들이 있어요. 육아에 대한 책임도 남편과 평등하게 나누어 질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달라요. 아무리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주말에는 꼭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죠. 공병호: 오늘 답변이 제 예상을 많이 빗나갑니다. 얼핏 생각하면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적극적 성격을 지니셨을 것 같은데, 의외로 내부지향적 측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얻고 싶은 답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를 해보지요.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심재명: 성공해야겠다, 이런 생각 전혀 안 했어요. 얼마 전 딸아이가 앨빈 토플러를 얘기하면서 금융, 경제 이런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얘기하던데…. 이전에 다른 매체에서도 인터뷰를 하면 꼭 성공을 화제로 삼더라고요. ‘성공한 여자’가 어떻고 하는 것들…. 저는 스스로 성공했다는 생각은 한 적 없고요. 굳이 성공이라는 말과 연관을 시키자면 제가 몸을 담고 있는 일에서 발전을 이루는 일이겠지요. 지금도 가끔 제 능력의 한계와 위기의식을 느끼는데, 어느 시점에선가 현명하게 나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운신의 폭을 달리하면서 여전히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그것도 또 하나의 성공한 인생이라고 보는 거지요. 공병호: 음, 이 답도 굉장히 소박하네요. 내가 반성을 좀 해야겠어요. 아무튼 심 대표께서 꿈꾸시는 또 다른 방식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심재명: 박사님도 늘 건승하세요. 공병호 어떻게 그렇게 많은, 좋은 글을 쓰십니까.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온 그것들을,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렸습니다. 배를 타본 사람은 압니다. ‘이물’에 앉아 있으면 두 갈래로 물살이 갈라져 빠르게 ‘고물’ 쪽으로 달려갑니다. 화살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나간 일에는 아무런 기쁨이 없습니다. 실패하면 사람들로부터 잊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재능이 있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다작多作을 합니다. 밥 먹고, 글 쓰고, 책을 냅니다. 그것이 나의 일상입니다. 1960년 경남 충무 생. 고려대학교 경제학과(1983), 미국 라이스대학교 박사(1987).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2001~). 저서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10년 후, 한국> 등. 심재명 재테크요? 문외한이에요. 성격이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랄까, 지레짐작해서 일을 그르친다고 남편에게 늘 주의를 받아요. 화나는 일이요? 어떻게 하면 영화를 잘 만들까 고민하지 않고, 잘 살아남을까만 궁리하는 사람들을 볼때…. 어떻게 화를 내냐고요? 못 내요. 스트레스를 푸는 비법이요? 저는 비법이 없는 게 문제예요. 좌우명이요? 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 성공이요? 그런 걸 꼭 생각해야 하나요? 저 참, 별로지요…. (아, 사람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기에 언어는 너무 가볍다. 침잠沈潛하지 못하고 부유浮游하는 나뭇잎처럼.) 1963년 서울 생. 동덕여대 국문과(1987), (주)명필름 창립(1995), 여성영화인모임 준비위원회 위원(2000),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겸임교수, (주)엠케이픽처스 이사. <조용한 가족, 1998> <해피엔드, 1998> <공동경비구역 JSA, 2000> <질투는 나의 힘, 2002> <바람난 가족, 2003> <그때 그사람들, 2004>.
  • 우리집 밥상에 봄이 올라왔네

    우리집 밥상에 봄이 올라왔네

    평소 아이들에게 나물 한번 제대로 먹이기가 쉽지 않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런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편식 버릇을 떨치기가 그리 쉽지 않아 고민하는 어머니들이 많다. 추운 겨울 꽁꽁 언 땅을 뚫고 싹을 피워낸 봄나물들. 그 어떤 보약이 이보다 좋을까. 지난주 한 TV 방송에서는 잘못된 건강정보를 무분별하게 적용한 사람들의 실태를 보여줬다. 몸에 좋다고 가려 먹은 것이 오히려 영양결핍을 초래했다. 건강은 고루 잘 먹어야 지킬 수 있다는 건 두말이 필요없는 진리다. ‘영양의 보고’ 봄나물을 좀더 색다르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쿠킹아트센터(02-6273-8577) 장경진 실장으로부터 달래, 두릅, 냉이, 돌나물 등을 이용해 샐러드, 샌드위치, 수프, 파스타 만드는 법을 알아봤다. 만들기도 쉽고 맛있는 이 요리들은 아이들과 나물을 좀더 친하게 만들고 어른들의 입맛도 늦게나마 교정하기에 제격이다.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부드러운 목넘김이 좋다 - 두릅수프 ▲재료 두릅 1팩(약 100g), 감자 1개, 양파 1/4개, 닭육수 1컵, 생크림 1/2컵, 우유 1/2컵, 버터 1/2큰술, 소금 후추 약간씩 ▲만드는 법 (1) 두릅은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낸다. (2) 양파는 채썰고 감자는 납작하게 썬다. (3)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른 후 양파, 감자 순으로 담가 반정도 익을 만큼 볶는다. (4) (3)에 닭육수를 넣어 살짝 끓인 후 데친 두릅과 함께 믹서에 간다. (5) (4)를 냄비에 담고 생크림, 우유로 맛과 농도를 맞춘 뒤 버터,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 입안에 감도는 바다향기- 달래해물샐러드 ▲재료 달래 1묶음(약 70g), 주꾸미 3마리, 중하 3마리, 청오이 1/2개, 배 1/3개 소스 : 식초 4큰술, 설탕 1큰술, 모과청 3큰술, 마늘 2톨, 꽃소금 1작은술, 레몬 1/4개 분량 ▲만드는 법 (1) 달래는 5㎝ 길이로 자른다. (2) 주꾸미는 데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3) 새우는 등쪽에 있는 내장을 제거 한 후 데쳐 반으로 저며 놓는다. (4) 오이, 배는 채썬다. (5) 마늘은 다져서 분량대로 소스를 만든다. (6) 해물에 소스를 약간 넣어 버무려 나머지 채소와 함께 접시에 담는다. ■ 동서양의 환상적인 만남 - 냉이 파스타 ▲재료 파스타 140g, 냉이 1컵, 파르메산 치즈, 소금, 후추 소스 : 냉이 1/2컵, 올리브유 3큰술, 잣 1/2큰술, 치즈가루 1큰술, 마늘 1톨 ▲만드는 법 (1) 냉이는 뿌리 쪽 부분의 흙을 살살 긁어 껍질을 벗겨 끓는 소금물에 데친다. (2) 분량의 소스는 믹서에 간다. (3) 파스타는 10분 정도 삶아 간 소스, 데친 냉이, 소금, 후추로 버무리고 완성 그릇에 담은 후 파르메산 치즈를 갈아서 위에 뿌려준다. ■ 봄의 상큼함이 입안에 확~ - 돌나물 샌드위치 ▲재료 모닝빵, 돌나물, 칵테일새우, 토마토, 파프리카. 소스 : 칠리소스, 머스터드 ▲만드는 법 (1) 돌나물은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닦아 놓는다. (2) 모닝빵은 반을 갈라 팬에 살짝 굽는다. (3) 토마토, 파프리카는 원형으로 썬다. (4) 새우는 칠리소스로 버무린 후 팬에 살짝 굽는다. (5) 빵에 머스터드를 바르고 돌나물, 토마토, 파프리카, 새우 순으로 담고 칠리소스를 뿌려 마무리한다. ■ 봄나물의 효능 싱싱한 봄나물, 효능이 높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돼 있다. 춘곤증을 이기는 데도 좋을 뿐만 아니라 만물이 소생하는 봄기운을 몸에 넣는다는 자체가 생기를 돌게 한다. 늘 이맘때면 봄나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언급된 냉이, 두릅, 돌나물, 달래 등 4가지 봄나물에는 어떤 효능이 있는지 정리했다. # 달래 백합과에 속한다. 예부터 여름철 배탈이 났을 때나 종기에 물렸을 때 쓰였다고 한다. 정신안정과 숙면을 위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비타민C가 풍부하며 알칼리 채소이기 때문에 빈혈, 동맥경화, 불면증, 장염, 위염에 효과가 있다. 막 된장을 풀어 찌개를 끓여도 맛있고 초장에 무쳐서 먹어도 맛이 그만이다. # 돌나물누워서 하늘을 구경하는 풀(와경천초)이라고도 한다. 바위나 돌무더기 위에 자라며 잎 조각이 연꽃잎과 닮았다 하여 ‘석련화’라고도 했다. 갱년기 장애가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감소하기 때문인데, 돌나물은 이 에스트로겐을 대체할 수 있는 놀라운 효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또 칼슘 식품의 대명사 우유보다 무려 2배나 칼슘 함량이 높다. 그래서 골다공증에 아주 효과적인 식품이다. 또한 평생에 걸쳐 조절이 필요한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 두릅 두릅은 두릅나무의 어린 순이다. 향기가 신선해 마음을 안정시킨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이 먹으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단백질과 회분, 비타민C가 많고 단백질의 구성요소인 아미노산의 조성이 좋아 영양도 매우 좋다. 일반적으로 초고추장에 무치거나 찍어먹는다. 만성 신장병으로 몸이 붓고 소변을 자주 보는 사람이 먹으면 신장기능이 강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 냉이 겨자과에 속한다. 잎과 뿌리가 달착지근해서 별미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이른 봄, 된장을 풀어 냉이를 넣어 끓이는 냉잇국은 최고다. 또한 고추장이나 된장에 무쳐 먹어도 되고, 생 콩가루에 비벼 쪄서 먹어도 좋다. 냉이는 코리, 아세틸콜린, 후말산 등의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맥경화와 간에 지방이 고이는 것을 막아주고 변비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지혈작용도 있기 때문에 폐출혈, 자궁 출혈, 그리고 생리 불순에도 좋다는 게 정설로 알려져 있다.
  • [종교건축 이야기] (24) 춘천 죽림동 성당

    [종교건축 이야기] (24) 춘천 죽림동 성당

    강원도 춘천 시내의 언덕 지대인 약사리 고개에 우뚝 선 죽림동 주교좌성당(등록문화재 54호·죽 림동 38)은 춘천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이다. 신도들이 자생적인 신앙의 싹을 틔워 공소·본당에서 주교좌성당까지 이끌어냈고 그 과정에서 숱한 희생이 따랐다. 지난 1990년 후반까지만 해도 4000여명이 미사에 참석할 만큼 교세가 컸던 본당. 개발 바람이 불어 인근 지역에 아파트 단지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신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지금은 ‘주교좌성당’의 명맥만 근근이 이어가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신앙의 태동기부터 고난의 신앙 역정을 모두 견뎌내고 묵직하게 선 ‘맏형’격 신앙터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죽림동 성당의 역사는 1920년 본당으로 설립된 곰실 공소로부터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강원 중심 본당인 횡성 풍수원 성당의 신부가 이 지역의 작은 공소들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죽림동 성당에서 동쪽으로 5㎞ 떨어진 외딴 곳의 곰실 공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신도가 늘어나면서 본당 설립을 요청했고 마침내 1920년 본당이 설립돼 당시 풍수원 성당의 보좌였던 김유용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모셔왔다. 이후 신도들은 춘천 시내에 성당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함께 가마니를 짜고 짚신을 삼아 내다 팔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지금의 성당 아래 골롬반의원 터와 아랫마당, 수녀원 터를 사들여 성당을 세운 게 1928년 5월이다. 지금의 성당은 이 부지에 보태 1939년 서울(경성)대목구에서 춘천 지목구가 분할되면서 부임한 구인란(Quinlan) 주임신부와 신도들이 약사리 고개 언덕의 도토리 밭을 추가로 매입해 마련한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성당 모양새만 갖췄지 구조며 성물은 변변치 못했던 것 같다. 결국 1941년부터 새 성당을 지을 계획을 세웠는데, 성당 벽의 라틴어 초석이 말해주듯 일제의 살벌한 감시와 박해로 8년 뒤인 1949년 4월5일에야 착공할 수 있었다. 전남 광주의 ‘자’씨 성을 가진 화교 기술자가 설계와 건축을 맡았다. 홍천 발산리 강가에서 석재를 날라다 외벽을 모두 쌓고 동판 지붕까지 얹어 내부공사를 하던중 6·25전쟁이 터졌다. 한쪽 벽이 모두 무너지고 사제관이며 부속건물이 대파되었는데 전쟁 중에도 복구작업을 벌여 1956년 6월 마침내 주교좌 성당 축성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후 교구 설정 60년을 맞은 1998년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가톨릭 미술가회 작가들이 힘을 모아 제대며 내부 성물들을 새롭게 꾸몄는데, 물론 외벽이며 골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성당은 명동성당의 옛 십자가와 똑같은 모습의 십자가와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이 작은 십자가는 서울대교구에서 갈라져 출발한 교구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서려면 둔중한 청동 문을 지나야 하는데 성당 건립을 관할했던 성골롬반외방선교회를 기리는 한 쌍의 아일랜드풍 십자문양이 새겨져 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주로 강원과 호남 지역을 관할했는데 죽림동성당에서도 1939년부터 30년간 모두 11대에 걸쳐 이 선교회 소속 신부가 주임을 맡았다. 지금도 성당 입구엔 이 선교회 소속 수녀원이 있으며 성당 아래쪽 병원의 이름도 여전히 ‘성골롬반 의원’. 지역 주민들에게 ‘성당 병원’이라 불리는 이색 공간이다. 고풍스러운 외벽과는 달리 내부는 현대식으로 가꿔져 대조를 이룬다. 양쪽 벽을 두른 정감어린 예수 고행 14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이 성당의 핵심은 역시 감심과 화강암 제대, 독경대, 주례석, 촛대로 구성된 중앙 제대 공간. 한국 천주교계에서 성미술과 전례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정평난 장익 주교와 가톨릭 미술인들이 뜻과 품을 모은 작품들이다. 요즘 새로 짓는 성당들이 모두 이곳에 와 그야말로 ‘한 수 배워간다’는 바로 그 이름난 전례공간이다. ‘파격의 아름다움’을 뒤로 한 채 성당 뒤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이내 낯선 광경을 만나게 된다. 이 성당에 몸을 담았거나 강원 지역에서 희생된 내외국인 성직자 유해 16구를 모신 성직자 묘역이다. 성당 본당에 바로 붙여 묘지를 쓴 흔치 않은 곳이다. 묘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전쟁기 북한으로 끌려가다 순교한 신부들. 전쟁 발발 당시 보좌신부였던 프란치스코 신부와 라바드리시오 신부, 고안당 신부, 진야고보 신부의 이름이 눈에 띈다. 외국인 신부들 틈에 나란히 누운 한국인 이광재 신부는 원산까지 끌려가 어느 방공호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춘천교구는 해마다 11월 첫 주간을 ‘위령의 달’로 정해 이 ‘죽음의 행진’에서 희생된 사제들의 넋을 위로한다. 이 ‘위령의 달’ 행사에는 춘천 지역 사제와 신도들이 모두 모인다고 한다. 6·25 전쟁 중 주요 인사들이 쇠사슬에 손이 묶인 채 북한으로 끌려간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서 기독교계도 숱한 희생자들을 냈다. 당시 교황 사절을 비롯해 외국인 사제와 수녀, 개신교 목사 수백명이 평안북도 산골에 강제수용돼 34개월간 포로생활을 했는데 적지 않은 인물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이 성당이 건립될 때 주임으로 있었던 구인란 신부도 미사 도중 끌려갔으나 기적적으로 돌아와 주한 교황청 대사를 지낸 뒤 1955년 초대 춘천 대목구장에 부임했다고 한다. 죽림동 성당과는 아주 질긴 인연을 가진 인물인 셈이다. 이 묘역 바로 뒤편에는 기이한 십자가가 나무에 기대어 서있다. 지난 2000년 대희년 6월25일 춘천교구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를 열면서 제단에 설치했던 십자가다. 동해안 지역을 휩쓴 화마로 불 탄 소나무에 북한의 주목나무를 엮어 만든 것으로 분단 교구의 아픔과 신도들의 통일 염원이 서려 있다. 지금 죽림동 성당에 적을 둔 신도는 1600명. 대부분 오래도록 이 성당을 다닌 나이 든 세대들이다. 지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3800명이 성당을 다녔다고 한다.2000년대 들어 춘천 지역엔 17개의 성당이 새로 생겨나 애막골, 퇴계동, 수무숲 성당같은 곳엔 신도 수가 3000명을 넘는다. 지난 2003년부터 주임을 맡고 있는 김현준 신부는 “지금 죽림동 성당은 옛날의 교세와 모습과는 크게 다르지만 신도들의 자생적인 믿음에서 출발해 신앙 공간을 일군 흔치 않은 성당으로 한국 교회사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kimus@seoul.co.kr ■ 죽림동 성당·춘천교구 ‘밀알’ 엄주언 죽림동 성당과 천주교 춘천교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지역에 신앙의 싹을 틔워 성당을 세워놓은 밀알인 엄주언(말딩·1872∼1955)이다. 한국의 천주교가 외국 선교사의 전교없이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특징을 갖는다고 할 때 춘천 지역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그 한 가운데 바로 엄주언이 있는 것이다. 춘성군 장학리 노루목에서 태어난 엄주언은 19살때 우연히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천주교와 연을 맺었다. 맏형과 함께 천주교 발상지인 광주 천진암을 찾아 움막생활을 하면서 가족 모두가 영세하도록 인도했지만 정작 고향에서는 ‘천주학쟁이’로 몰려 따돌림과 온갖 수모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화전을 일구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감화된 주민들이 차츰 모여들었으며 죽림동 성당의 모태인 곰실 공소를 마련해 예절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곰실 공소가 본당으로 설립된 것도 순전히 엄주언의 공이다. 풍수원 성당과 서울의 명동 성당을 오르내리며 상주사제 파견을 간청한 결실이다. 본당 설립후 신도들의 애련회를 조직해 춘천 시내로 진입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나서 결국 성당 터를 구입했으며 여기에 6대 춘천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구인란 신부가 인근 밭을 매입해 지금의 죽림동 성당을 세우게 된 것이다. 성당 입구의 사제관과 연결된 말딩회관은 바로 춘천교구가 그의 공을 기려 지난 1997년 건립한 곳으로 춘천 지역 천주교계의 핵심 공간으로 통한다.
위로